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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의 공간 내력 –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숙영지로 징발된 초자제조소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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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의 공간 내력 –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숙영지로 징발된 초자제조소가 있던 자리

익명 (미확인) | 목, 2019/01/24- 17:52

식민지 비망록 43

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의 공간 내력

–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숙영지로 징발된 초자제조소가 있던 자리

 

이순우 책임연구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에 나온 <관보> 1949년 3월 14일자의 광고란에는 다음과 같은 행려사망(行旅死亡)에 관한 내용 하나가 수록되어 있다.

1. 본적: 미상 2. 주소: 미상 3. 성별: 여, 성명 나혜석, 연령 53세 4. 인상(人相): 신장 4척 5촌, 두발 장(長), 수족 정상, 입 코 눈 귀 정상, 체격 보통, 기타특징 무(無) 5. 착의(着衣): 고의(古衣) 6. 소지품: 무 7. 사인(死因): 병사 8. 사망장소: 시립자제원(市立慈濟院) 9. 사망년월일: 단기 4281년 12월 10일 하오 8시 30분 취급자 서울시 용산구청장 명완식(明玩植) 단기 4282년 1월 3일

나혜석의 행려사망 사실이 기록된 『관보』 1949년 3월 14일자의 해당 지면

 

관보의 말미에 겨우 수록된 행려 사망자의 내역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는 참으로 의문이지만, 여기에 언급된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 살아간 천재예술가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바로 그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
는 철저하게 여느 사람들의 망각 속에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나마 여기에 기재된 이름 석 자가 아니었더라면 그의 죽음에 관한 이토록 희미한 기록마저 영영 잊힐 뻔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숨진 곳은 ‘시립자제원’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일제시기 의료구호기관이던 경성불교자제원(京城佛敎慈濟院, 원효로 1가 12번지)이었고, 해방 이후에 ‘서울시립 자혜병원’ 시절을 거쳐 1960년 1월 1일에는 시립남부병원(市立南部病院)으로 전환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 병원이 서울중부병원과 합쳐 1977년 7월 2일에 시립강남병원으로 통합 이전된 뒤에는 도로확장공사 탓에 부지 일부를 상실한 용산경찰서(龍山警察署, 원효로 1가 25번지)가 이곳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자리의 내력이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그 흔적이 저 멀리 1904년 러일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드러난다.

<용산시가도> (1929)에 나타난 ‘불교자제원’의 위치이다. 바로 인접한 곳에 선립상업학교와 일본인 사찰 서룡사 및 흥국사가 포진한 것이 눈에 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각사등록(各司謄錄)> ‘외부일기(外部日記)’ 1904년 2월 17일자에는 일본공사관의 조회(照會)를 통해 “우리 북진군(北進軍, 일본군)이 내일 18일에 약 2만 명 내외의 병력이 일시 경성에 도착하여 2, 3일 머문 후 발정할 예정이므로 이들이 머물 곳으로 경복궁 안의 사용 무방한 청사를 일시 빌려서 이들 병력의 숙소로 충당”하겠다는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아울러 “일본공사의 알현시 용산에 있는 별영창과 초자제조소(硝子製造所) 및 정미소(精米所) 3곳도 신속히 차용하기로 윤허를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 서울 인근에 일본군 병력이 대거 밀려들게 되자 당연히 이들이 묵을 공간 확보 문제가 긴급 현안으로 대두되었는데, 이에 따라 한국군 주둔지와 다수의 관공서 또는 학교 터가 징발되어 그들의 숙소로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경성부사(京城府史)> 제1권(1934), 731쪽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 18일 이후의 입성병(入城兵)에 대해서는 일본인측 가옥으로는 가장 먼저 수용의 여지가 없어졌으므로 한국 측으로부터 용산 별영창(龍山別營倉, 현 원정 3정목 조선서적인쇄회사 내의 옛 건물), 초자제조소(硝子製造所, 경성 원정 1정목 경성불교자제원의 부지 내), 서대문밖 평양병병영(平壤兵兵營, 현 죽첨정 1정목 서대문경찰서 적십자병원 부지 내 일대의 지점), 서소문안 시위제일대대(侍衛第一大隊, 현 서소문정 120번지 총독부 관사 부지의 일부), 통내(統內) 친위제일대대(親衛第一大隊, 현 연지동 전매지국의 부지 내), 동궐 앞 친위 제이대대(親衛第二大隊, 현 운니동 99번지 이왕직분실), 저동 공병대(苧洞 工兵隊, 영락정 1정목 전매국 부지 내)의 각 병영 및 명동 장악원(明洞 掌樂院, 현 황금정 2정목 동척회사 부지의 서남 모서리), 필동 잠업과(筆洞 蠶業課, 현 앵정정 2정목 186번지의 지점) 등의 여
러 장소를 빌려 받아 숙영(宿營)했다.

여기에서 용산 별영창의 위치를 ‘조선서적인쇄회사’라고 적어 놓은 부분은 잘못된 설명이다. 별영창은 원래 조선시대 훈련도감에 속한 군병들의 급료 지급을 맡았던 한강변 창고이며, 한강 조망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했던 읍청루(挹淸樓, 청암동 168번지)라는 누각도 이곳의 구역 내에 함께 있었다. 위의 글에서 ‘원정 3정목’에 있다고 잘못 적어 놓은 것의 정체는 군자감 강감(軍資監江監, 원효로 3가 1번지 일대) 터를 말하며, 이곳에는 용산 전원국(龍山 典圜局)과 총독부 인쇄국에 이어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朝鮮書籍印刷株式會社)를 거쳐 1936년 12월 이후에는 체신이원양성소(遞信吏員養成所)가 들어서게 된다.
앞의 내용에 등장하는 ‘초자제조소’는 대한제국황실에서 필요한 유리창을 조달하기 위해 만든 ‘ 유리제조공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조선신문> 1925년 5월 19일자에 게재된 경성불교자제회 실비진료부의 광고 문안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포함된 「한정(韓廷) 고용 외국인 해용(解傭) 처분에 관한 건(1904.5.30)」에 따르면, 유리제조기사로 초빙된 러시아인 화학교사 메이로(Meiro)와 내장원경 이용익(內藏院卿 李容翊)사이에 고용계약이 성립한 것은 1902년 1월 31일의 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이 당시 “대한정부
의 한성(漢城) 및 부근지에 건립될 황실유리창 공역에 투입된 기계검사와 제조 등의 사무”가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하지만 이 자리는 오래지 않아 러일전쟁의 개시와 더불어 러시아인 기사가 퇴각함에 따라 버려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에 일본인 거류민단의 이시이 신(石井信)과 소가 츠도무(曾我勉)가 주축이 되어 한국정부로부터 이곳을 무상 양수하여 전염병자를 위한 한성병원 부속 청파피병원(靑坡避病院)을 설립하였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나중에 이곳에 들어선 것이 바로 ‘경성불교자제원’이었다.

 

옛 초자제조소 자리에 들어선 ‘경성불교자제회 부설 실비진료소’의 입구 모습이다. (<조선사회사업요람>, 1924)

 

<매일신보> 1941년 11월 13자에 수록된 행려병인구호기관 ‘불교자제원’에 대한 탐방기사이다.

 

이 단체는 원래 1908, 9년 무렵 ‘대곡파 본원사 경성별원’, 즉 동본원사(東本願寺, 남산동 3가 33번지)의 경내에 행려병인의 구호를 위해 설립한 것이 시초였으며, 차츰 수용자가 증가하자 1917년 4월 20일에는 경성각파불교사원연합회(京城各派佛敎寺院聯合會)의 성격을 지닌 경성불교자제회(京城佛敎慈濟會)가 성립되어 이곳의 새로운 경영 주체가 되었다. 또한 1921년 7월 1일 이후에는 행려병인의 수용 이외에 일반구료(一般救療)를 목적으로 하는 실비진료소(實費診療所)를 두는 한편 양로구조(養老救助)의 업무도 개설하기에 이른다.
옛 청파피병원 터에 경성불교자제회가 옮겨온 시기에 관한 자료는 <매일신보> 1918년 2월 1일자에 실린 「수용소 준공기(收容所 竣工期)」 제하의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경성부(京城府)에서 행로병인수용소(行路病人收容所)에 관하여는 본지(本紙)에 누차 보도함과 여(如)하거니와 용산 청파(龍山 靑坡) 원 피병원적(元 避病院跡)을 개축하여 차(此)에 당(當)할 계획인데 기(旣)히 부(府)에서 경성불교자제회 기타(其他)에 인계하여 총독부(總督府)에서 보조금(補助金) 5천 원(圓)도 하부(下附)가 될 터인즉 지(遲)하여도 4월까지에는 차(此)의 준공을 견(見)함에 지(至)하겠더라.

 

이 조직은 1936년 12월에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면서 그 이름도 ‘경성불교자제원’으로 변경하는데, <조선총독부 관보> 1937년 4월 28일자에 게재된 ‘법인조합등기’ 항목에는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법인설립
▪ 명칭: 재단법인 경성불교자제원 ▪ 사무소: 경성부 원정 1정목 12번지 ▪ 목적: 불교의 정신에 기초한 자선구제의 사업을 행함 ▪ 설립허가 연월일: 소화 11년(1936년) 12월 18일 ▪ 자산총액: 금 59,792원(圓) 55전(錢) ▪ 출자의 방법: 일반 기부 및 기타의 수입 ▪ 이사의 씨명 주소: 경성부 서사헌정 166번지 이사 카메야마 코오(龜山弘應), 경성부 서사헌정 산4번지의 5 이사 우에노 쐌에이(上野舜頴), 경성부 대화정 3정목 26번지 이사 타케오 라이쇼(嶽尾來尙), 경성부 장사동 182번지 이사 카잔 타이기(華山大義), 경성부 약초정 107번지 이사 고토 쵸신(後藤澄心), 경성부 본정 3정목 50번지 이사 쿠가 지코(久家慈光), 경성부 남산정 3정목 33번지 이사 우에노 코진(上野興仁), 경성부 원정 1정목 18번지 이사 후지 토넨(富士洞然), 경성부 한강통 11번지 이사 카토 칸센(加藤觀穿) ▪ 대표이사: 이사장 카메야마 코오(龜山弘應) 여기에 수록된 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광운사(光雲寺, 고야산 경성별원), 박문사(博文寺), 조계사(曹谿寺), 묘심사(妙心寺), 약초관음당(若草觀音堂, 진종본파 본원사별원), 정토종 개교원(淨土宗 開敎院), 동본원사(東本願寺), 서룡사(瑞龍寺), 용광사(龍光寺) 등 경성 지역에 두루 포진한 일본인 불교사찰들의 주지 또는 포교관리자가 망라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신보> 1941년 11월 13일자에 수록된 「총후사회사업시설(銃後社會事業施設)의 이모저모 (5) 행려병인 구호, 불교자제원 편」 제하의 탐방기사에는 설립 이래 이곳에서 수용구제를 받은 연인원(延人員)이 21만 740여 명이고, 사망자도 3,540여 명에 달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개 농촌을 떠나 직업을 찾아서 도회지로 나왔으나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거리를 전전하다가 병마로 쓰러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잘 걸리는 병으로는 폐결핵이 40퍼센트, 위장병이 30퍼센트의 순서이고 사망률도 15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나혜석의 경우에도 일제패망기 이후 경성양로원(京城養老院, 청운동 산4-3번지; 청운양로원)과 경성보육원(京城保育院, 옥천동 126번지)의 안양농장, 그리고 공주 마곡사 등지를 떠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가 끝내 1948년 11월 무렵에 경성불교자제원의 후신(後身)인 ‘시립자제원’에 간신히 정착을 시도하였으나 불과 한 달여 만에 질병으로 인한 최후를 맞이 하였던 것이다.

<동아일보> 1956년 1월 31일자에 수록된 ‘김창룡 저격사건의 현장약도’. 여기에 묘사된 ‘자혜병원’ 바로 앞 사건현장은 도로구조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경성불교자제원에 관한 흔적을 찾다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별스러운 기록 하나가 있다. 일본군 헌병오장 출신으로 자유당 시기 육군특무부대장으로 악명을 떨친 김창룡(金昌龍, 1916~1956)이 1956년 1월 30일 출근길에 저격되어 죽은 곳이 바로 자혜병원(慈惠病院, 시립자제원) 앞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날 아침 ‘원효로 1가 17-5번지’ 자택에서 짚차를 타고 ‘원효로 1가 51번지’ 지점을 지나는 도중에 다른 짚차로 길을 막아선 저격자(옛 부하였던 육군대령 허태영의 지시를 받은 특무부대 출신자들)가 쏜 여러 발의 권총탄에 맞아 피살된 바 있다.
겉으로만 보면 행려병자의 구호기관이 오랜 세월 터를 잡았던 곳으로만 인식되기 십상이지만, 그 내면을 파고들면 이곳 역시 근현대사의 굴곡이 제법 진하게 농축되어 있는 공간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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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반민족 행위자…

과거의 일만은 않인듯합니다.

현재 진행이 않일까…

친일 인명사전에 박근혜, 양승태, 뉴라이트등 추가 해야 하지않을까요?

수, 2018/10/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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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月末日夜

 

昨日芳春節(작일방춘절)

今宵落葉聲(금소낙엽성)

思君尋紙筆(사군심지필)

不忍詠其情(불인영기정)

 

시월의 마지막 밤에

 

어제 꽃 피는 고운 봄철이었는데

오늘 밤에는 잎이 떨어지는 소리

님을 생각하며 종이와 붓 찾지만

차마 그 情일랑 읊지 못하겠구나.

 

<時調로 改譯>

 

어제 봄이었는데 오늘 밤엔 낙엽 소리

님 생각 간절하여 종이와 붓을 찾지만

애틋한 그 情일랑은 차마 못 읊겠구나.

 

*昨日:  어제  *芳春:  꽃이  한창  피는  아름다운 봄. 아름다운  여자의  젊은 시절.

방기(芳紀) *今宵: 금야(今夜). 오늘 밤 *紙筆: 종이와 붓 *不忍: 차마 할 수 없음.

 

<2018.10.31, 이우식 지음>

수, 2018/10/3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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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0/31-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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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권,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 안 돼”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피고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의 상고를 기각, 피고가 원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원고들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로 일본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철주금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고 원고들은 2005년 한국에서 다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모두 “일본 판결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은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우리나라에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1031-1

사건을 재심리한 서울고등법원은 다음해 7월 원고들에게 각 1억 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함에 따라 장장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결론지어졌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①동일한 내용의소송이 일본에서 패소 확정됐는데 한국에도 효력이 미치는지 ②피고 신일철주금이 구 일본제철의 손해배상채무를 승계하는지 ③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지 ④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할 수 있는 지로 이 중 원고들의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먼저 대법원은 ①, ②, ④ 쟁점에 관해 “일본 법원의 판결은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에 대해서도 행사할 수 있으며,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핵심 쟁점인 ③쟁점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효력을 두고 대법관 사이에 견해가 엇갈렸다.

다수의견은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판단에는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칙적으로 부인했고,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권리문제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점,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했음에도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된 정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상고를 기각해야 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으나 그 이유를 달리하는 별개의견으로 이기택 대법관은 “이미 2012년 5월 24일 선고된 환송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므로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해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소영, 이동원, 노정희 대법관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이에 반해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라며 일본 기업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이들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한다”며 “청구권협정으로 인하여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고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정에 따라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허용되지는 않지만 협정으로 인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는 국가에 의해 보상돼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 측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고노 다로 외무상도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위배되며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쌓아온 양국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제재판 등 강경 대응할 뜻을 나타냈다.

<2018-10-30> 법률저널

☞기사원문: 대법원 “日기업, 강제동원 피해자에 위자료 1억 지급해야”


협의 VS 강제집행…강제동원 피해배상은 어떻게 진행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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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의 재판 끝에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떠한 방식으로 배상받게 될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춘식(94)씨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심 승소 판결 이후 흐른 5년…강제동원 소송 원고 4명 중 1명만 남아

신일본제철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소송은 지난 1997년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구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됐던 고(故) 여운택씨와 고(故) 신천수씨는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임금지급과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 2003년 10월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고 여씨와 고 신씨는 지난 2005년 대한민국 법원에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했던 또 다른 피해자 이씨와 고(故) 김규수씨도 소송에 합류했다. 1, 2심에서는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2013년 7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5년이 지난 후에야 대법원은 원심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씨를 제외한 피해자 3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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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 vs 강제집행…“국외 재산은 집행 절차 복잡해”

긴 기다림 끝에 확정 판결이 내려졌으나 즉각적인 배상금 지급은 요원하다. 배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신일철주금에서 배상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으로부터 집행문을 받아 강제 집행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법령에 따라 재산조사를 걸쳐 국내에 있는 부동산과 주식, 채권 등으로 배상금을 받게 된다.

이씨 등의 소송을 지원한 시민·사회단체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에 따르면 신일철주금은 국내 기업인 포스코의 지분을 약 3% 보유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재산 내역은 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해당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김세은 변호사는 “신일철주금과 협의를 할지 강제집행을 할지 좀 더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2013년 서울고법의 판결에 근거해 가집행할 수 있었으나 5년 동안 기다렸다. 신일철주금에서 직접 이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외에 있는 재산을 강제 집행해야 할 경우 상황은 조금 복잡해진다. 국외 재산에는 우리 법원의 판결 효력이 미치지 못한다. 일본 법원을 통해 강제 집행 판결을 별도로 받아야 가능하다. 문제는 일본 법원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해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는 것이다. 우리 법원은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개인의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일본 법원의 해석은 다르다. 일본 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 배상에 대한 집행 판결을 승인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일철주금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청구권 협정과 일본 정부의 견해에 반하는 판단이 나와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 정부의 대응 상황 등을 감안해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매우 유감이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국제 재판을 포함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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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불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는 어떻게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손해배상 소멸시효 기간 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의 쟁점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이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일본 기업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밝혔다. 향후 강제동원 재판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언제부터냐는 것이다.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 사유가 없어진 때’부터 계산된다. 전문가들은 강제동원 손해배상의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확정된 이날을 기점으로 봤다. 앞서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이 난후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사 사건에 대한 소멸시효가 너무 짧다”며 단기 소멸시효인 3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 1938년부터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과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800만명이 끌려갔다. 이중 최소 60만명 이상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이소연 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박효상 기자 [email protected]

<2018-10-31> 쿠키뉴스

☞기사원문: 협의 VS 강제집행…강제동원 피해배상은 어떻게 진행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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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지난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박수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여 만에 승소하면서 피해자 측은 강제동원 등 일제의 반(反) 인도적 행위에 관한 배상 청구권이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는 관련이 없게 돼 배상이 가능해졌다며 반겼다.

이날 승소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징용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기업 징용 피해자나 근로정신대 등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그러나 해당 일본 기업에서 실제 배상을 받아내기까지는 쉽지 않은 절차가 남아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대법원 선고가 나온 지난 30일 오후 민변 사무실에서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법무법인 해마루 김세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청구권협정에 관한 쟁점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면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모두 소멸했는가, 일본 기업 상대로 일제 때 있었던 불법행위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등이 쟁점이었다”고 짚었다.

이어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대법원의 결론”이라면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는가는 오랫동안 논란이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이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소송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법률과 조약에 대한 법률적 해석에 대한 최고 권한은 대법원에 있다”면서 “외교부와 법원이 입장이 다르다거나 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는 유권해석만 있었던 것이고, 오늘의 대법원 확정판결에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구속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판결에 힘입어 이춘식(94) 씨 등 원고(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신일철주금에 위자료 지급을 임의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한일 양국의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탓에 신일철주금이 임의이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태다.

원고 측은 신일철주금이 한국 국내에 재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강제집행 절차를 밟을 수도 있지만, 이에 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김 변호사는 “오늘 판결을 근거로 국내 재산에는 법원을 통해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신일철주금이 포스코 제철소에 3%가량 지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당 주식에 대한 집행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가느냐는 별개 문제”라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강제집행 절차를 선택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신일철주금 주주총회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를 의향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면서 “다만 정부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도 있기에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제법 전문가인 민족문제연구소 조시헌 연구위원은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 밖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일 간에 합의가 없다는 것이 오늘 확인된 것”이라면서 “앞으로 한일 간 협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고, 협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제 중재를 통해 분쟁 해결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피해자들이 고령인데 국제 분쟁 해결 절차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한일 간에 과거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해 청구권협정 외에 추가 협정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그동안 강제동원 진상규명 노력이 충분치 않았던 점을 인정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해·유골 수색 및 봉헌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혼조차 귀국 못하는 분들도 돌아오게 해야 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외교적 보호 등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송 당사자인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씨는 “(원고가) 나까지 네 명인데 혼자 재판을 받으니 과히 기분이 안 좋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도 많이 나오고 서럽다”면서 “일본도 한국이 이렇게 해줬으니 ‘시원하다, 잘했다’ 하면서 환영하고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며 취재진 앞에서 처음으로 밝게 웃었다.

원고들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낸 1997년부터 원고들을 도운 일본재판지원회의 우에다 케이시 씨는 “이번 판결로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권리를 회복하고, 신일철주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서 배상책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이를 토대로 한일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지털뉴스부

<2018-10-31> 경인일보

☞기사원문: 강제징용 피해자 측 “신일철주금 배상의사 타진할 것… 신일철주금 포스코 지분 강제집행 가능성”

수, 2018/10/3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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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 대한 배상판결에 대한 성명]

1. 판결의 경과와 ‘사법농단’

이번 판결은 1997년 12월 24일 이번 사건의 원고 가운데 고 신천수씨와 고 여운택씨가 일본의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다음, 일본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에서 2003년 10월 9일 패소한 후, 2005년 2월 28일 서울지방법에 제기한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다. 일본 소송이 있은 지 21년, 한국 소송이 있은 지 13년 만에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또한 해방이 되어 강제노동에서 풀려난 지 74년 만에 법적 판단을 받아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 동안 원고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오늘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이 판결은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이에 따라 2013년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이 원고들에게 일부 승소 판결한 것에 대하여 피고 회사인 신일철주금주식회사(新日鐵住金주식회사, 이하 ‘신일철주금’으로 약칭한다)가 상고한 것에 대하여 5년 여 만에 선고를 한 것이다. 이 판결은 이렇게 수년 간 재상고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된 동안 최근 전 박근혜대통령, 청와대 비서실, 외교부를 한편으로 하고 대법원장과 대법원 행정처를 다른 편으로 하여 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한, 이른바 ‘사법농단’, ‘불법 재판거래’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2. 이번 판결의 의미와 미해결된 강제동원 문제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여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게 되어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된 청구권 가운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11:2의 다수의견으로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로 피해자들이 갖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의 권리가 인정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이에 대한 일본정부와의 협상과 추가협정의 여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2012년 판결에서와 같이 피고인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최초로 일본기업의 일제하 침략전쟁중의 책임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인정된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1998년 이래 국제노동기구(ILO)의 전문가위원회가 취하고 있는 견해, 즉 전쟁시기의 강제노동자 문제는 일본에 의한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 협약) 위반이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판결은 이러한 관련 국제법이나 국제인권법상 피해자들이 가지는 권리에 관하여 구체적인 검토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미흡하다.

<참고사항>

[전쟁시기의 강제노동자 문제는 일본군‘위안부’문제와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 국제노동기구(ILO)에 제기되었다. ILO의 전문가위원회(정식 명칭은 협약과 권고의 적용에 관한 전문가 위원회, CEACR)는 1998년 ILO의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 협약)에 대하여 “일본에 의한 협약 위반이 있었음이 명백”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전문가위원회는 사건에 대하여 구체적인 구제조치를 명령할 권한이 없지만 2000년에 “피해자들의 연령과 급속한 시간의 경과를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과 정부에 모두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이들의 청구들에 대응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명하였고, 2012년에는 일본정부가 “사건의 심각성과 장기에 걸쳐있다는 성격을 감안하여 피해자들과 화해를 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계속할 것과, 지체 없이 산업강제노동과 군대에 의한 성노예제로 인한 고령의 생존 피해자들이 제기한 청구에 응답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요망하는 확고한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이후에도 전문가위원회는 일본정부에게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너무도 오래 끌고, 뒤늦은 것이기는 하지만 원고들에게 조금이나마 배상을 하고, 그 동안의 고통과 피해를 치유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과거 피고회사에 강제동원 된 피해자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국외동원 피해자와 연인원 500만 명이 넘는 국내동원 피해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2004년 한국의 특별법에 따라 진행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조사로 피해자 인정과 그에 대한 지원금 지급 등 보상이 한국정부에 의해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강제동원 피해문제는 한일 간에 해결되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자리한다. 현재 미쓰비시중공업과 후지코시 등 일본의 기업들에 대한 다수의 소송이 한국법원에 제기되어있는 상태이다.

1030-13. 판결의 이행 문제

이번 판결로 원고들이 승소하였다고 하여 이들이 곧바로 배상금을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 신일철주금이 이 판결에 승복하고 판결이 명하는 대로 원고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원고들은 또다시 피고회사의 재산을 찾아서 판결을 강제집행하여야 하는 지난한 길을 걸어야한다. 벌써부터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가지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느니 재판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협박성 발언들도 들린다.

또한 이번 판결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금전의 지급만으로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배상의 권리가 충족된다고도 할 수 없다. 국제인권법에 따르면 강제동원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은 진상규명, 책임자의 공식 사죄, 피해배상, 피해자의 추모와 기념, 역사교육, 재발방지 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원고들은 그 동안 피고회사 측의 선의를 기대하며 판결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가압류절차를 밟지 않았다. 피고회사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성실히 이행해야할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의 차원에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사죄 등 필요한 조치들을 다하여 강제동원문제의 해결을 위한 훌륭한 본보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는 비단 이번 사건의 피고인 신일철주금만이 아니라 원고들의 강제동원에 관여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따져 물을 것이 필요하고, 한국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4.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제들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단초를 연 이번 판결을 충실하게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남은 강제동원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국내적, 국제적 조치들이 뒤따라야한다는 점이다.

비단 이번 소송의 원고들에 국한되지 않는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제하 모집, 관알선, 징용 등의 명목으로 사기와 기타 강제적인 방법에 의하여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고향을 떠나 해외인 일본으로 끌려가 일방적으로 노동을 강요당하고 가혹한 대우를 수년 간 견뎌와야했다. 강제노동 또는 노예적 노동의 피해자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들은 애타게 그리던 조국으로,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려던 한편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한 주목하고자 한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들이 일본에 진주하기 전과 후는 물론 지금까지도 일본정부와 전쟁기업들은 이들 피해자들의 피와 땀에 대한 사죄나 배상은커녕 명목적인 임금과 강제저축 등 주어야 할 돈마저 주지 않고 자료를 소각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피와 땀으로 침략전쟁을 계속했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으로 전후부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더욱이 최근 일본정부는 군함도 등 피해자들이 일했던 강제노동의 현장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하고, 피해자들이 일본의 전쟁노력에 ‘지원’한 것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지경이다.

우리는 또한 1945년부터 70년이 넘는 지금까지 계속된 이들의 정당한 요구가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태는 이번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강제동원재판에 대한 청와대와 외교부 및 사법부의 불법한 개입이 상징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 2012년과 오늘 대법원은 개인의 청구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없어진 게 아니라고 확인하였다. 이로써 이제라도 한국정부는 수백 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하여 외교적 보호에 나서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2011년 8월 30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원폭피해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하여 일정한 외교행위에 나서야 할 헌법상의 의무를 진다고 하였다. 한국정부가 지금에라도 피해자들을 위한 외교적 보호에 나서지 않으면 이들의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국익과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은 가운데 청구권협정을 체결하고 피해자들의 모든 권리가 소멸되었다는 일본정부의 논리를 받아들였던 과거의 잘못이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사건을 통하여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일제의 불법한 지배와 강제동원의 피해자들 역시 진정한 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정의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요구를 하고자 한다.

요 구 사 항

신일본제철은 이번 판결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사죄와 추모 등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을 수립하라!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사법농단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함은 물론 그 동안 재판의 지연과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원고들에게 사죄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라!

일본정부는 이번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보여주고 있듯이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 유해와 유골 반환, 공식 사죄, 피해배상, 추모와 기념, 역사교육, 재발방지 등 피해구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즉각 나서라!

한국정부는 그 동안 강제동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이번 사건과 현재 법원에 계류된 사건들뿐만 아니라 모든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태와 일본정부와 관련 기업들의 책임을 묻고, 아직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망한 피해자들의 유해와 유골의 수색과 봉환,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영혼조차 귀환하지 못한 식민지병사로써 전쟁터에서 죽음을 강제 당했던 피해자들의 문제와 해방 후 피해자들의 요구가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의 과정에 관한 조사를 포함하여 일제하 인권피해자들을 전면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외교적 보호에 나서고 필요한 국내외적인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조속히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라!

2018.10.30.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평택원폭피해자2세회・평화디딤돌・포럼 진실과 정의・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합천 평화의집・흥사단・1923한일재일시민연대・KIN지구촌동포연대


다운로드   [판결문: 대법원 2018.10.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수, 2018/10/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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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p>

<p>그동안 꽁떡 어플이랑 채팅사이트 여러개 쓰면서..</p>

<p>나름 어디가 꽁떡하기 좋았는지 정리해 볼겸 끄적거려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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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bsp;</p>

<p>1. 달*한**</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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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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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꽁떡 어플이랑 채팅사이트 여러개 쓰면서..

나름 어디가 꽁떡하기 좋았는지 정리해 볼겸 끄적거려봄.

 

 

1. 달*한**

 

실시간 다수 매칭이라서 경쟁 타야함 막판에 긴장감 오짐

처음이 어렵고 살아남으면 이후로는 수월함

요즘은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새로운 남여 유입이 없어보임

 

 

2. ㄷ단*

 

한창 랜덤채팅 인기탈때 흥했던 곳으로 홈런후기도 많았고

나같은 평민들도 이곳에서 꿀 많이 빨았음 최근에 다시 깔아봤는데

사람도 없고 조건글로 넘쳐난다. 쪽지 보내고 기다리다 보면 간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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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으니 월척 톡아이디 받으면 곧바로 다른쪽으로 이어가야함

 

 

3. 슈**ㅌ

 

여긴 작년에 핫 했음 이메일로만 가입하고 먼저 접속한 사람을

밀어주는 매칭 방식이라서 일반 랜덤 방식이랑 확실히 틀려 가끔

재미 보는데 기다리기 짜증나면 기본 택시비 정도로 만날 수 있음

 

 

4. 쎄**

 

최근에 누가 기혼녀 만난 후기썰 올려 유명세 탄 곳으로

짧은 거리순으로 먼저 매칭돼서 경쟁타며 시간뺏길 염려가 적음

요즘 유행하는 채팅이고 만나서 꽁떡하기까지는 여기가 가장 쉽다

조건거는 일부 생계형 여성들 차단하고 대충 쪽지만 몇개 날려도

바로바로 답장옴 의외로 오전에도 많고 여자들도 찾기 귀찮으면

가까운 거리순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기다리면 쪽지도 먼저 온다

 

(좌표: http://bit.ly/2MGyBQ5 (PC 가능))

 

 

지금 대학생들 공강 많아서 사람도 많고 나는 4번 같은 경우가

귀찮게 설치 안해서 좋고 목적이 확실한 애들로 걸러져 있어서 쉽다

간혹 근거리에 30대 후반이 보이기는 하는데 지금은 들어가서 근거리

접속자만 봐도 20대 여자가 더 많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다

 

목, 2018/11/01- 09:01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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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 2018/11/01- 09:01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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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和華之證人之兵役拒否

 

無邦無百姓(무방무백성)

此理忽皆忘(차리홀개망)

背族焉容忍(배족언용인)

刑懲亦至當(형징역지당)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 거부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는 것을

이러한 이치를 문득 다 잊었구나

민족 배신함 어찌 참고 용서하랴

형벌로 징계함 또한 썩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나라 없는 백성 있냐 이 이치를 잊었구나

민족 향한 배신 행위 어찌 참고 용서하랴

형벌로 징계하는 것 그 또한 썩 마땅하다.

 

*耶華: ‘여호와’의 음역어(音譯語) *背族: 자기 민족을 등지고 배반함 *容忍:

참고  용서함  *刑懲: 형벌을  주어서  징계함  *至當: 이치에  맞고  지극히  당연함.

 

<이우식 지음>

목, 2018/11/0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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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役拒否及大法院之無罪判決

 

最優先義務(최우선의무)

拒否此誰何(거부차수하)

大法云無罪(대법운무죄)

愚氓歎息歌(우맹탄식가)

 

병역 거부와 대법원의 무죄 판결

 

가장 앞서 이행할 의무이거늘

병역을 거부하니 이 누구인가

대법원에서 죄 없다 운운하니

愚民은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時調로 改譯>

 

최우선 의무이거늘 거부하니 누구인가

이 나라 최고 법원이 죄 없다 운운하니

오호라! 못난 백성은 탄식 노래 부른다.

 

*最優先: 어떤 일이나  대상을 특별히 다른  것에 비하여 가장 앞서서 문제로

삼거나  다룸  *誰何: 누구  *大法: 대법원  *愚氓: 우민(愚民).  어리석은  백성.

 

<2018.11.2, 이우식 지음>

금, 2018/11/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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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동북아역사재단서 개최…”일본 전역 활동가들 모여”

1102-1

▲ [70년 만의 귀향] 안장되는 유골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일본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봉환단이 2015년 9월 2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서 115위 유골을 안장하고 있다. 2015.9.20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실태를 짚고 봉환 등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국제심포지엄이 6일 오후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에서 열린다.


재단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이러한 내용의 심포지엄을 연다고 1일 밝혔다.


심포지엄에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홋카이도, 오키나와, 야마구치, 오사카, 이와테 지역 시민단체 등에서 조선인 유골 실태조사와 봉환을 위해 노력하는 인사들이 참석한다.


재단은 “일본에서 조선인 유골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지역 거의 모든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부 개회식에 이은 2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현황’을 살펴보는 자리다.


남상구 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하수광 사무국장·니시자와 기요시, 이와부치 노부테루 태평양전사관 관장이 발표에 나선다.


남 소장은 “유골문제는 식민지 피해가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북한과 일본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유골을 전부 봉환하지 못하더라도 사망 경위와 유골 실태를 유족에게 설명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밝힐 예정이다.


3부는 시민 활동가들이 조선인 유골 실태를 조사·발굴하고 봉환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구시켄 다카마쓰(가마후야), 오바타 다이사쿠(물비상(水非常)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 우에다 게이시(전몰자 유골을 가족 품으로 연락회)가 발표한다.


4부에서는 종합토론을 통해 남북한과 일본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시민단체(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강제동원문제해결과대일과거청산을위한공동행동)와 종교 단체(통국사, 유골봉환종교인시민연락회의), 동북아역사재단,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email protected]

<2018-11-01>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 유골문제 해결 논하는 심포지엄 열린다

금, 2018/11/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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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모집 응한 것…’징용공’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
“식민지 압제下 日정부 주도로 모집…강제동원 부인은 ‘본질 흐리기'”

1102-20

▲ 일제 강제징용 13년만에 결론(CG) [연합뉴스TV 제공]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징용 피해자를 지칭하며 사용했던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꿔 부르며 징용의 ‘강제성’을 희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강제노동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동원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국회에서 기존의 ‘징용공’이라는 단어 대신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의 국가총동원령법의 국가징용령에는 모집과 관(官)알선, 징용이 있었는데, 이번 재판의 원고는 모집에 응했다고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전날 관련 부처들에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일본어로 ‘징용’을 의미하는 ‘조요'(徵用·ちょうよう)는 한국어 ‘징용’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일정한 일을 시키는 것(쇼가쿠칸<小學館> 사전)을 뜻한다

1102-21

▲ 아베 “징용소송 韓판결,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
(도쿄 AFP/지지통신=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0일(현지시간)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판결 직후 도쿄 총리 관저에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한 데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email protected]

아베 총리의 발언은 대법원 판결의 원고 4명이 형식상 ‘징용’이 아닌 ‘모집’에 의해 일본에 건너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징용 피해자들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고인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은 가운데 모집을 했고, 당시가 군국주의 일제의 압제가 극에 치닫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 동원임을 부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원고 이춘식 씨는 대전 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돼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사실상 감금 당한 상태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처음 6개월간은 외출도 하지 못했고 임금은 저금해준다는 말만 듣고 구경도 못했다. 헌병들은 보름에 한번 노역장에 와서 인원을 점검했다.

상황은 야하타 제철소에서 노역한 다른 원고 김규수 씨도 마찬가지였다.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돼 일본에 온 그는 일체의 휴가나 개인 행동을 허락받지 못한 채 임금도 못받고 노역을 했다. 그는 도주하다 발각돼 7일간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1102-22

▲ 대법, 13년 만에 일본기업 강제징용 배상책임 확정
(서울=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후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사진은 일본 탄광 징용 피해자 조선인들. 2018.10.30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email protected]

오사카 제철소에서 일한 여운택 씨와 신천식 씨는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된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했지만 실제로는 죽도록 노역만 해야 했다.

한달에 1~2회 외출만 허용됐고 2~3엔의 용돈만 지급받고 월급은 받지 못했다.

원고들의 재판을 지원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아베 총리의 발언이 대내외적으로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징용 피해자들이 실제 노역 현장에서 겪은 일은 공고 내용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며 일본 정부가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팀장은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 총독부 지시에 따라 모집이 행해졌다”며 “아베 총리가 본질을 흐리게 하려고 새로운 논란거리를 끄집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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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강제징용 전시관인 ‘단바망간기념관'(丹波 マンガン 記念館)의 전시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email protected]

<2018-11-01> 연합뉴스

☞기사원문: 돈도 못받고 맞으면서 일했는데…’징용 강제성’ 없다는 日아베

금, 2018/11/0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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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재단서 국제심포지엄…”공동 조사·발굴·감식 이뤄져야”

1106-3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18.1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해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 실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대규모 학술 행사가 6일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는 근대사 연구자와 유골 송환을 위해 노력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가했다.

재단에 따르면 해외에서 사망한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은 약 2만2천명에 달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정부를 통해 들어온 유골은 2천여 위에 불과하다.

강제동원으로 한국을 떠났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외국에 남은 노동자 유골 수는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 4월 한국에 제공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일본 전역에 산재한 시설 339곳이 조선인 유골 2천798위를 보관 중이지만, 신원이 명확하게 확인된 유골은 167위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은 2004년 한일 정상이 합의해 2008년부터 2년간 423위가 조국으로 돌아와 국립 망향의동산에 안치됐으나, 이후 큰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민화협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해 8월 조선인 유골 송환을 위한 남북일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북 민화협은 지난 3∼4일 금강산에서 만나 유골 송환 공동추진위원회를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추진위원회로 확대하는 안을 논의하고,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룰 공동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1106-4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일본측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2018.11.6

심포지엄에서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이 인권과 존엄의 문제이자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과제이며, 남·북·일 정부와 민간단체가 힘을 합쳐 풀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 특히 강조됐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인 유골의 행방에 대한 조사와 봉환 책무를 방기한 것은 비인도적 처사”라며 “유골 문제는 식민지 피해가 아직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원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남 소장은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유골을 봉환하지 못해도 사망 경위와 유골 실태에 대해 유족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이 적지 않고, 여러 유골이 합해진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북이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남북 정부와 남북 민화협, 일본 시민단체로 구성된 위원회가 단일 창구를 이뤄 일본 정부와 교섭하고, 사망자 명부와 유골 실태 자료는 남·북·일이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해외 유골 조사와 봉환에 남과 북이 참여하도록 일본 측에 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유골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에 의해 보장되는 인권과 관련된다”며 “같은 일본인이라며 동원했다가 패전으로 방치하는 이율배반적 권리 침해 상태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골 문제를 다루면서 일관해야 할 원칙은 사망자에 대한 존중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은 그들의 죽음을 성찰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 활동가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씨는 동아시아 국가와 미국 정상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전쟁 피해자 유골에 대한 공동 조사와 발굴, 감식을 추진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동북아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사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유골 문제는 해결이 더디고 어렵겠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11-06>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유골송환은 존엄 문제…남북일 협력 필요”

화, 2018/11/0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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