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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의 공간 내력 –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숙영지로 징발된 초자제조소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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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의 공간 내력 –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숙영지로 징발된 초자제조소가 있던 자리

익명 (미확인) | 목, 2019/01/24- 17:52

식민지 비망록 43

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의 공간 내력

–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숙영지로 징발된 초자제조소가 있던 자리

 

이순우 책임연구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에 나온 <관보> 1949년 3월 14일자의 광고란에는 다음과 같은 행려사망(行旅死亡)에 관한 내용 하나가 수록되어 있다.

1. 본적: 미상 2. 주소: 미상 3. 성별: 여, 성명 나혜석, 연령 53세 4. 인상(人相): 신장 4척 5촌, 두발 장(長), 수족 정상, 입 코 눈 귀 정상, 체격 보통, 기타특징 무(無) 5. 착의(着衣): 고의(古衣) 6. 소지품: 무 7. 사인(死因): 병사 8. 사망장소: 시립자제원(市立慈濟院) 9. 사망년월일: 단기 4281년 12월 10일 하오 8시 30분 취급자 서울시 용산구청장 명완식(明玩植) 단기 4282년 1월 3일

나혜석의 행려사망 사실이 기록된 『관보』 1949년 3월 14일자의 해당 지면

 

관보의 말미에 겨우 수록된 행려 사망자의 내역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는 참으로 의문이지만, 여기에 언급된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 살아간 천재예술가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바로 그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
는 철저하게 여느 사람들의 망각 속에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나마 여기에 기재된 이름 석 자가 아니었더라면 그의 죽음에 관한 이토록 희미한 기록마저 영영 잊힐 뻔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숨진 곳은 ‘시립자제원’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일제시기 의료구호기관이던 경성불교자제원(京城佛敎慈濟院, 원효로 1가 12번지)이었고, 해방 이후에 ‘서울시립 자혜병원’ 시절을 거쳐 1960년 1월 1일에는 시립남부병원(市立南部病院)으로 전환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 병원이 서울중부병원과 합쳐 1977년 7월 2일에 시립강남병원으로 통합 이전된 뒤에는 도로확장공사 탓에 부지 일부를 상실한 용산경찰서(龍山警察署, 원효로 1가 25번지)가 이곳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자리의 내력이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그 흔적이 저 멀리 1904년 러일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드러난다.

<용산시가도> (1929)에 나타난 ‘불교자제원’의 위치이다. 바로 인접한 곳에 선립상업학교와 일본인 사찰 서룡사 및 흥국사가 포진한 것이 눈에 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각사등록(各司謄錄)> ‘외부일기(外部日記)’ 1904년 2월 17일자에는 일본공사관의 조회(照會)를 통해 “우리 북진군(北進軍, 일본군)이 내일 18일에 약 2만 명 내외의 병력이 일시 경성에 도착하여 2, 3일 머문 후 발정할 예정이므로 이들이 머물 곳으로 경복궁 안의 사용 무방한 청사를 일시 빌려서 이들 병력의 숙소로 충당”하겠다는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아울러 “일본공사의 알현시 용산에 있는 별영창과 초자제조소(硝子製造所) 및 정미소(精米所) 3곳도 신속히 차용하기로 윤허를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 서울 인근에 일본군 병력이 대거 밀려들게 되자 당연히 이들이 묵을 공간 확보 문제가 긴급 현안으로 대두되었는데, 이에 따라 한국군 주둔지와 다수의 관공서 또는 학교 터가 징발되어 그들의 숙소로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경성부사(京城府史)> 제1권(1934), 731쪽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 18일 이후의 입성병(入城兵)에 대해서는 일본인측 가옥으로는 가장 먼저 수용의 여지가 없어졌으므로 한국 측으로부터 용산 별영창(龍山別營倉, 현 원정 3정목 조선서적인쇄회사 내의 옛 건물), 초자제조소(硝子製造所, 경성 원정 1정목 경성불교자제원의 부지 내), 서대문밖 평양병병영(平壤兵兵營, 현 죽첨정 1정목 서대문경찰서 적십자병원 부지 내 일대의 지점), 서소문안 시위제일대대(侍衛第一大隊, 현 서소문정 120번지 총독부 관사 부지의 일부), 통내(統內) 친위제일대대(親衛第一大隊, 현 연지동 전매지국의 부지 내), 동궐 앞 친위 제이대대(親衛第二大隊, 현 운니동 99번지 이왕직분실), 저동 공병대(苧洞 工兵隊, 영락정 1정목 전매국 부지 내)의 각 병영 및 명동 장악원(明洞 掌樂院, 현 황금정 2정목 동척회사 부지의 서남 모서리), 필동 잠업과(筆洞 蠶業課, 현 앵정정 2정목 186번지의 지점) 등의 여
러 장소를 빌려 받아 숙영(宿營)했다.

여기에서 용산 별영창의 위치를 ‘조선서적인쇄회사’라고 적어 놓은 부분은 잘못된 설명이다. 별영창은 원래 조선시대 훈련도감에 속한 군병들의 급료 지급을 맡았던 한강변 창고이며, 한강 조망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했던 읍청루(挹淸樓, 청암동 168번지)라는 누각도 이곳의 구역 내에 함께 있었다. 위의 글에서 ‘원정 3정목’에 있다고 잘못 적어 놓은 것의 정체는 군자감 강감(軍資監江監, 원효로 3가 1번지 일대) 터를 말하며, 이곳에는 용산 전원국(龍山 典圜局)과 총독부 인쇄국에 이어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朝鮮書籍印刷株式會社)를 거쳐 1936년 12월 이후에는 체신이원양성소(遞信吏員養成所)가 들어서게 된다.
앞의 내용에 등장하는 ‘초자제조소’는 대한제국황실에서 필요한 유리창을 조달하기 위해 만든 ‘ 유리제조공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조선신문> 1925년 5월 19일자에 게재된 경성불교자제회 실비진료부의 광고 문안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포함된 「한정(韓廷) 고용 외국인 해용(解傭) 처분에 관한 건(1904.5.30)」에 따르면, 유리제조기사로 초빙된 러시아인 화학교사 메이로(Meiro)와 내장원경 이용익(內藏院卿 李容翊)사이에 고용계약이 성립한 것은 1902년 1월 31일의 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이 당시 “대한정부
의 한성(漢城) 및 부근지에 건립될 황실유리창 공역에 투입된 기계검사와 제조 등의 사무”가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하지만 이 자리는 오래지 않아 러일전쟁의 개시와 더불어 러시아인 기사가 퇴각함에 따라 버려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에 일본인 거류민단의 이시이 신(石井信)과 소가 츠도무(曾我勉)가 주축이 되어 한국정부로부터 이곳을 무상 양수하여 전염병자를 위한 한성병원 부속 청파피병원(靑坡避病院)을 설립하였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나중에 이곳에 들어선 것이 바로 ‘경성불교자제원’이었다.

 

옛 초자제조소 자리에 들어선 ‘경성불교자제회 부설 실비진료소’의 입구 모습이다. (<조선사회사업요람>, 1924)

 

<매일신보> 1941년 11월 13자에 수록된 행려병인구호기관 ‘불교자제원’에 대한 탐방기사이다.

 

이 단체는 원래 1908, 9년 무렵 ‘대곡파 본원사 경성별원’, 즉 동본원사(東本願寺, 남산동 3가 33번지)의 경내에 행려병인의 구호를 위해 설립한 것이 시초였으며, 차츰 수용자가 증가하자 1917년 4월 20일에는 경성각파불교사원연합회(京城各派佛敎寺院聯合會)의 성격을 지닌 경성불교자제회(京城佛敎慈濟會)가 성립되어 이곳의 새로운 경영 주체가 되었다. 또한 1921년 7월 1일 이후에는 행려병인의 수용 이외에 일반구료(一般救療)를 목적으로 하는 실비진료소(實費診療所)를 두는 한편 양로구조(養老救助)의 업무도 개설하기에 이른다.
옛 청파피병원 터에 경성불교자제회가 옮겨온 시기에 관한 자료는 <매일신보> 1918년 2월 1일자에 실린 「수용소 준공기(收容所 竣工期)」 제하의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경성부(京城府)에서 행로병인수용소(行路病人收容所)에 관하여는 본지(本紙)에 누차 보도함과 여(如)하거니와 용산 청파(龍山 靑坡) 원 피병원적(元 避病院跡)을 개축하여 차(此)에 당(當)할 계획인데 기(旣)히 부(府)에서 경성불교자제회 기타(其他)에 인계하여 총독부(總督府)에서 보조금(補助金) 5천 원(圓)도 하부(下附)가 될 터인즉 지(遲)하여도 4월까지에는 차(此)의 준공을 견(見)함에 지(至)하겠더라.

 

이 조직은 1936년 12월에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면서 그 이름도 ‘경성불교자제원’으로 변경하는데, <조선총독부 관보> 1937년 4월 28일자에 게재된 ‘법인조합등기’ 항목에는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법인설립
▪ 명칭: 재단법인 경성불교자제원 ▪ 사무소: 경성부 원정 1정목 12번지 ▪ 목적: 불교의 정신에 기초한 자선구제의 사업을 행함 ▪ 설립허가 연월일: 소화 11년(1936년) 12월 18일 ▪ 자산총액: 금 59,792원(圓) 55전(錢) ▪ 출자의 방법: 일반 기부 및 기타의 수입 ▪ 이사의 씨명 주소: 경성부 서사헌정 166번지 이사 카메야마 코오(龜山弘應), 경성부 서사헌정 산4번지의 5 이사 우에노 쐌에이(上野舜頴), 경성부 대화정 3정목 26번지 이사 타케오 라이쇼(嶽尾來尙), 경성부 장사동 182번지 이사 카잔 타이기(華山大義), 경성부 약초정 107번지 이사 고토 쵸신(後藤澄心), 경성부 본정 3정목 50번지 이사 쿠가 지코(久家慈光), 경성부 남산정 3정목 33번지 이사 우에노 코진(上野興仁), 경성부 원정 1정목 18번지 이사 후지 토넨(富士洞然), 경성부 한강통 11번지 이사 카토 칸센(加藤觀穿) ▪ 대표이사: 이사장 카메야마 코오(龜山弘應) 여기에 수록된 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광운사(光雲寺, 고야산 경성별원), 박문사(博文寺), 조계사(曹谿寺), 묘심사(妙心寺), 약초관음당(若草觀音堂, 진종본파 본원사별원), 정토종 개교원(淨土宗 開敎院), 동본원사(東本願寺), 서룡사(瑞龍寺), 용광사(龍光寺) 등 경성 지역에 두루 포진한 일본인 불교사찰들의 주지 또는 포교관리자가 망라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신보> 1941년 11월 13일자에 수록된 「총후사회사업시설(銃後社會事業施設)의 이모저모 (5) 행려병인 구호, 불교자제원 편」 제하의 탐방기사에는 설립 이래 이곳에서 수용구제를 받은 연인원(延人員)이 21만 740여 명이고, 사망자도 3,540여 명에 달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개 농촌을 떠나 직업을 찾아서 도회지로 나왔으나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거리를 전전하다가 병마로 쓰러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잘 걸리는 병으로는 폐결핵이 40퍼센트, 위장병이 30퍼센트의 순서이고 사망률도 15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나혜석의 경우에도 일제패망기 이후 경성양로원(京城養老院, 청운동 산4-3번지; 청운양로원)과 경성보육원(京城保育院, 옥천동 126번지)의 안양농장, 그리고 공주 마곡사 등지를 떠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가 끝내 1948년 11월 무렵에 경성불교자제원의 후신(後身)인 ‘시립자제원’에 간신히 정착을 시도하였으나 불과 한 달여 만에 질병으로 인한 최후를 맞이 하였던 것이다.

<동아일보> 1956년 1월 31일자에 수록된 ‘김창룡 저격사건의 현장약도’. 여기에 묘사된 ‘자혜병원’ 바로 앞 사건현장은 도로구조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경성불교자제원에 관한 흔적을 찾다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별스러운 기록 하나가 있다. 일본군 헌병오장 출신으로 자유당 시기 육군특무부대장으로 악명을 떨친 김창룡(金昌龍, 1916~1956)이 1956년 1월 30일 출근길에 저격되어 죽은 곳이 바로 자혜병원(慈惠病院, 시립자제원) 앞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날 아침 ‘원효로 1가 17-5번지’ 자택에서 짚차를 타고 ‘원효로 1가 51번지’ 지점을 지나는 도중에 다른 짚차로 길을 막아선 저격자(옛 부하였던 육군대령 허태영의 지시를 받은 특무부대 출신자들)가 쏜 여러 발의 권총탄에 맞아 피살된 바 있다.
겉으로만 보면 행려병자의 구호기관이 오랜 세월 터를 잡았던 곳으로만 인식되기 십상이지만, 그 내면을 파고들면 이곳 역시 근현대사의 굴곡이 제법 진하게 농축되어 있는 공간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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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일제시대에 만든 일본 신사는 국내에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고흥 소록도에 남아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최근 철거와 보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99번째 3·1절을 맞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보도에 박승현 기잡니다.

【 기자 】
지난 1935년 건립된
고흥 소록도 내 일본 신사입니다.

당시 일제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전국 천개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신사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존치하자는 쪽은 소록도 신사는 이미 원래 기능을 잃었고
일제 침략의 흔적인 만큼
교육자료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소록도 신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역사를 극복함으로서 후세에 좋은 교육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반면 철거해야 한다는 쪽은
신사는 단순 시설물이 아닌
일제의 정신적 의미가 담겨 있어
역사 청산과 함께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 노성태 / 향토 사학자
– “일본 군국주의 정신의 상징터 거든요. 따라서 저희들이 남겨놓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보존이냐 철거냐 논란이 커지고 있는
소록도 신사.

이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kbc 박승현입니다.

<2018-03-01> KBC광주방송

☞기사원문: 국내 유일 ‘日 신사’ 존폐 논란

토, 2018/03/03- 03:15
47
0

미때미꼬?

민중이지팡이!

글카고

저울사들

칼사들…..동창핸….아나나?

갑장낼보재이,,,,,도미징친구차말로친구

渡美증칭구!

우짜건노 옷사이피고밥사미고잠재구고

 

…..&&&&그마드리  漢다카는데,

 

 

토, 2018/03/03- 21:59
91
0

총무국장 !

심재욱님!

호빵사부야!

삼월 열나흩날 이란다.

물요일?

사대강물은 우리핵고 댕길때처럼,

운재 돌아올란지,

꼴초야!

화면좀보자!

시계방울아!

상판대기 운재 배줄래…

경상고5기의 삼월십사일  사대강물요일이….

월, 2018/03/05- 19:45
164
0

역적 시즌2 #9-2 미당문학상 이야기 (맹문재 시인과 함께)

화, 2018/03/06- 09:33
32
0

MC노&방 팀장&조 작가의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

그 첫번째 에피소드 의열단 두번째 이야기!!

화, 2018/03/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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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미투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제 아내가 거의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몇 년전부터 오랜시간 정신과 상담을 받아오던 중이었습니다. 20대 청춘을 여 군으로 삶을 보내다가 전역한 아내입니다.

실제 아내가 보냈던 군 생활은 본인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계급사회고 그러다보니 상명하복은 기본인데 그렇게 강한 생활에서 많은 불만들이 있었고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문제가 발생하여 심적인 상처가 깊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심리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심각할 정도로 병적인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도대체 왜그러는지 정말 남편에게도 말못할 일이 있는 건지…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정말…원통하고 화가나서 미칠 지경입니다.

군 내부에서 계급사회의 권력구조를 이용한 일상적인 성희롱, 성추행과 성폭력 만연하다는 사실…그리고 제 아내 역시 그러한 상황에 피해자로 노출이 되어있었다는 사실…

20대 젊은 나이를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한몸 바쳐보겠다는 아내의 애국심은 그렇게 군대 안에서의 만연한 성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동기들과 어려운 얘기를 나눠봐도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 상황들…오롯이 지켜만보는 수많은 방관자들 속에서 아내의 삶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고…이런 일들이 결국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사실…

개인이 대응해서 해결하기에 너무 큰 군대라는 조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길은 보이지 않고…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MeToo운동이 꼭 군 조직에서도 만들어지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군대 안에서의 미투운동을 응원하며…저희 가족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군(軍)의 성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군대 안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계급이 낮은 여군을 상대로 한 상급 지휘자의 성폭력 사건 상당수가 공개되지 않은 채 묻힐 것으로 보고 있다.

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478건이던 군내 내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4년 649건, 2015년 668건, 2016년에는 871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6월 말 기준 442건으로 전년 수치를 웃돌았다. 군 별로는 육군이 전체 성범죄 발생 건수 3108건 가운데 77%인 2408건을 차지했고, 이어 해군 367건(12%), 공군 232건(7%), 국방부 직할부대 101건(3%)의 순이었다.

지난달 28일에는 군인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전 육군 사단장(소장)이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로 원심판결이 확정됐고, 영관급 장교인 B 중령은 부서 회식 자리에서 부하 여군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아 보직해임됐다.

하지만 아직도 계급이 높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3년간 여군 상대 군대 내 성폭력 사건 대부분은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등 미온적 처벌만 내려지거나 부적절한 법 조항이 적용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직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성범죄 가해 군인 189명 가운데 징역형은 9명뿐이었다. 집행유예 22명, 기소유예 16명, 벌금 12명, 혐의 없음 11명, 선고유예 9명, 무죄 3명 등이었고 나머지는 재판 중이거나 가해자 전역으로 일반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 여군의 58%는 부사관이었고 대령 이상 장성급은 한 명도 없었다.

김학용 의원은 “사회 전반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계급사회인 군 내부에서는 여군이 현직 지휘관을 성범죄로 고발하기는 어려운 시스템”이라며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해주고 군내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을 강화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email protected]

화, 2018/03/06- 16:04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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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1

화, 2018/03/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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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금성정치인들(일부)

이사진을  봄시로

나의 칠팔년과

나의 중딩년…

ㄴㅏ의 초딩…칠공70

홍지팡이와박목탁에게!

가리느까?

가로노까?

퐁로사실을

동시다발적으로

ㅇㅣ바구하는 일부 자매들의

의도성 의문이 간다.

남한전국적으로  파문이 되는것과,    미혼여성미혼남성”””            홀로여성홀로남성”””

물론, 박목탁홍지팡!             …………………………….니도 그런생각이  들더나?

일부여성 즉+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는  겨레여동생은

ㅇㅕ태마리엄따!

나의성고백은 초딩에게.”””

ㅊㅜㄹ산과  남성

출산과 여성

아이와남성

아이와 여성 …….                      $%# 세계여성의날도  이서야 된다면  세계남성의날도 이서야

성사회학  입장에서본  전반적  일부성남성의 위기와 일부 성여성의  인과관계를  우째볼건지,?

“”””분단재벌성장남성여성피해노동자본종속미국일본중국남한북한비정규정규””””””저출산과성문제?

…..거둘절미해서….   (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스타인들과 관계된,

오늘여성들의 일부들도  당시에  왜?   원치않는 성침핼 당했다고,  박목탁들과  홍지팡들에게  이바구  안핸는지…… 필잔또…. 어느곳에 이력서를  넣고,  봄비  오훈…..실장님국장님도    ….엄꼬!

목, 2018/03/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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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유권자와독자관객은

봄비다.

성사회학의 남한조국은 또다른  시돌 해야지 않는지,

목, 2018/03/08- 08:03
101
0
팟캐스트 역적의 새로운 파일럿방송 “역전다방; 의열단 3편”
목, 2018/03/08- 09:35
14
0

국가인원위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군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이니 어떻게 문제 해결이 되겠나. 3년동안 군대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문제의 가해자는 200명 정도이고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10명이 안되는 상황이다.

대학시절 꽤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가 초창기 ROTC 지원을 했다.
당시에 여성 ROTC 지원자에세 많은 혜택도 있었고, 여자친구가 평소에도 유난히 활동적이고 단체생활에서도 리더로 역할을 잘해내는 장점이 있어서 나 역시도 많은 응원을 했었다.

그렇게 군생활도 대학생활도 잘해내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부터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평소와는 다르게 밝은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나에게 어렵게 털어 논 내용은 정말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의 상관이었던 작자는 회식자리나 식사자리에서 은근슬쩍 스킨쉽을 시도하기를 수차례 진행을 했었고, 나름 우회적으로 거절과 거부의 의사를 밝힌 여자친구의 의사표현을 묵살하며 더러운 짓을 계속하다가 심지어는 군생활을 오래 잘 해내기 위한 훈련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대학시절의 거의 대부분과 장교로 임관을 해서도 그렇고 대한민국 군인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여자친구를 제대로 보살펴줬던 나 역시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군대라는 조직이 가지는 특성은 성폭력문제가 기생하여 독버섯처럼 퍼지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지금 같은 솜방망이식 처벌은 우리나라 군대문화를 바꿔내기엔 너무 부족한게 현실이다.

하루빨리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가해자들이 처벌받기를 기도해본다.

금, 2018/03/0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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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목, 2018/03/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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