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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가 이화림 지사의 삶을 복원하여 알리고 있는 박경철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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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가 이화림 지사의 삶을 복원하여 알리고 있는 박경철 회원

익명 (미확인) | 목, 2019/01/24- 13:40

인터뷰

잊혀진 독립운동가 이화림 지사의 삶을 복원하여 알리고 있는 박경철 회원

인터뷰 조한성 출판팀장

 

독립운동가의 삶을 새롭게 발굴하고 알리는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실한 작업이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들 가운데 대부분은 제대로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역사 속에 잊혀져버린 분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작업의 주체가 역사가냐 아니냐의 여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잊혀진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중요할 뿐이다.
충남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박경철 회원은 농업·농촌·농민문제, 즉 3농문제 전문가이지만, 한인애국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에 참여해 큰 역할을 하셨던 이화림 지사의 회고록을 발굴하여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삶을 복원하였다.
충남연구원에 찾아가 이화림 지사의 자서전 <정도征途>를 번역해 <이화림 회고록>으로 펴낸 박경철 회원을 만났다. 인터뷰에는 임무성 교육위원도 함께 했다.

문 : 어떻게 이화림 지사를 알게 되셨나요?
답 : 중국 베이징대학 유학 당시 한국유학생 연구생회 활동을 하면서 타이항산 역사탐방을 추진해서 4차례 정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이화림 지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학 가기 전부터 윤세주 열사나 조선의용군이 활동했던 옌안 지역은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BS 특집 다큐멘터리 10부작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를 본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그래서 연구생회에서 뜻이 잘 맞았던 후배 정원식과 함께 역사탐방을 추진했는데요. 당시 베이징대학에 방문학자로 와 있던 서울시립대학 염인호 교수의 소개로 윤세주 열사의 후손과 연락이 닿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석정윤세주열사기념사업회’와 연결되었습니다. 또 개인사업을 하시면서 기념사업회 일도 도와주시던 김영민 선생도 이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영민 선생이 윤세주 열사와 함께 활동하신 분 중에 이화림이라는 분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면서, 이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서전을 남기셨다고 하는데, 윤세주 열사의 외종손인 윤명화, 윤명순 할머니가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하고 계시다
는 거예요. 이 얘기를 듣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저기 자서전을 찾아봤습니다. 제가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던 때인데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중고서점에 들어갔다가 이화림 선생의 자서전 <정도征途>를 발견하였습니다. 얼른 그 책을 주문해서 받았는데 그때 온몸에 흘렀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이 책이 나에게 오게 되었을까. 뭔가 특별한 인연이 작용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문 : 번역은 언제 시작하신 건가요?
답 : 그때는 먼저 천천히 정독했구요. 박사논문을 다 쓰고 학위를 받아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도중에 번역을 좀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이 책이 번역되기를 기다리시는 윤명화, 윤명순 할머니의 연세도 너무 고령이셔서 마음도 급했구요. 그래서 타이항산 탐방을 같이 했던 김선경 후배와 함께 번역해서 <이화림 회고록>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문 : 회고록을 보면 이화림 지사나 가족이 3·1운동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것 같아요?
답 : 네. 맞습니다. 먼저 3·1운동 당시 이화림 지사의 오빠들이 굉장히 열심히 활동했어요.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전단지를 인쇄해서 뿌리기도 했구요. 그 과정에서 소학교 학생이던 이화림 지사도 오빠들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1995년 8월 요녕민족출판사가 출간한 <정도>와 한글 번역판 <이화림 회고록>

이화림 지사나 오빠들이 3·1운동에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 듯 해요.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숭현소학교에서 일하셨는데, 상당히 민족의식이 강하셨어요. 구들장에 태극기를 숨겨놓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그걸 보여주면서 잊지 말라고 하셨다고 해요.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경찰들의 압박이 심해졌다는 거구요. 오빠들은 체포될 위험에 처하자 만주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후 독립군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 후론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문 : 이화림 지사는 언제 중국으로 망명하셨나요?
답 : 이화림 지사는 당시 나이도 어렸고 공부도 계속해야 해서 어머니와 함께 국내에 남았어요.

1938년 중경 시절의 이화림 지사

 

이화림 지사는 숭현소학교와 숭의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역사문학연구회’라는 독서클럽에 가입했어요. 그곳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저서들을 처음 접합니다. 그후 1927년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얼마 후 이화림 지사는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오빠들이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북지역으로 떠나는데 오빠들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문국의 소개로 김두봉 선생을 찾
아 상해로 갑니다.
그런데 김두봉 선생이 말하길, 독립운동은 김구 선생에게 가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김두봉 선생의 소개를 통해 김구 선생을 찾아갔는데 김구 선생이 이렇게 물어요.
“너의 조국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 이화림 지사는 “나의 조국은 조선이고 평양에서 자랐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김구 선생은 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화림 지사는 김구 선생의 비서 역할을 하며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활동합니다. 이화림 지사는 이봉창 의사가 일본에 거사하러 갈 때 폭탄을 넣어갈 속옷 고쟁이에 주머니를 만드는 일도 했구요. 윤봉길 의사의 거사 때에는 윤봉길 의사와 일본인 부부로 위장해 홍커우공원을 미리 정탐하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화림 선생이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활동한 바로 이것이 이화림 지사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독립운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화림 지사가 이렇게까지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김구기념사업회나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쪽에서는 이화림 지사의 한인애국단 활동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 같아요. 이화림 회고록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역사학계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 부분에 대하여 연구해주셨으면 합니다.

문 : 이후 이화림 지사는 김구 선생과 헤어져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에서 일하게 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답 : 이화림 지사가 김구 선생과 헤어지게 되는 과정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에요. 한인애국단은 일본의 추격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화림 지사도 그 과정에서 자연히 김구 선생과 헤어지게 된 거죠. 이화림 지사는 광저우로 피신하는데 거기서 유학생이었던 김창국이라는 분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도 낳게 되요. 그런데 이때 조선민족혁명당의 지도자 윤세주가 광저우에 와서 유학생들에게 연설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나서달라는 것이었죠. 이화림 지사는 그
연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반성도 하게 된 것 같아요. 독립운동을 하려고 국경을 넘어놓고 지금은 유학생과 결혼해서 애기를 낳고 평범한 삶의 행복을 누리려고 했으니까요. 이화림 지사는 고민 끝에 남편과 아들을 남겨두고 민족혁명당이 있는 난징으로 떠납니다. 이화림 지사는 민족혁명당 부녀국에서 박차정 지사와 함께 열심히 활동하게 됩니다.
사실 윤세주의 후손 분들이 생전에 이화림 지사에게 연락하고, 자서전을 찾으려고 노력한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윤세주 열사 때문에 이화림 지사가 개인의 행복한 삶을 버리고 힘든 독립운동의 길에 나서게 됐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윤세주 열사의 마음의 빚을 그 후손 분들이 나누고 계신 거지요.
1942년 5월 일본군 수십만이 팔로군을 섬멸하기 위해 타이항산지구로 쳐들어왔던 유명한 타이항산 전투에서 조선의용군은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팔로군 주력부대가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는 길을 여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전투에서 윤세주, 진광화 열사가 전사하게 되는데요. 이 전투에서 이화림 지사는 중산대학에 다니던 시절부터 배워왔던 의술을 발휘해서 부상자 치료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화림지사의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 시절 가장 빛나는 활약은 바로 이것이
라고 할 수 있죠.

문 : 이화림 지사의 해방 후 활동은 어떠했나요?
답 : 이화림 지사는 옌안에서 해방을 맞습니다. 해방 후 조선의용군은 팔로군과 함께 북진하여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중국 내전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이화림 지사는 당시 무정 장군의 권유로 옌안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무정 장군이 이화림 지사는 옌안에 남아서 의학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이화림 지사는 1947년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옌볜에 있는 중국의과대학 제1분교에서 근무합니다.
그러던 중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고, 이화림 지사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해 북한으로 들어옵니다. 그곳에서 의무병으로 부상자 치료에 전념했구요. 그러나 미군의 폭격으로 다리를 다쳐 다시 랴오닝성 선양으로 복귀합니다. 이화림 지사는 부상 치료 후 다시 북한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부상이 너무 심해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그 후 이화림 지사는 중국에서 의사로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합니다. 1955년에는 교통부 위생처 기술과장으로 일했고, 옌볜조선족자치주 위생국 부국장, 국장, 옌볜조선족자치주 인민대표, 당대표 등을 역임합니다.
이화림 지사는 1984년 퇴직하는데, 그동안 생활비를 아껴 모은 돈 1만 2천 위안을 옌볜아동문학상기금회에 기부합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놓고 왔던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아동단체에 대한 기부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문 : 평생 독립운동을 위해 싸우셨는데, 해방 후 활동이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고 있군요.
답 : 네. 그렇습니다. 중국인민지원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서훈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독립운동, 사회주의자의 독립운동에 대한 서훈을 어디까지 할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이화림 지사의 서훈이 이 문제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 같아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다 하더라도 이분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의사였다는 점에서 좀 더 전향적인 검토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MBC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이화림 지사를 취재해 갔는데요. 그런 관심이 좀 더 널리 퍼져서 서훈 문제도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문 : 이화림 지사에 대해 여쭙느라고 정작 선생님에 대한 질문은 못했습니다. 현재 하고 계신 일에 대해서 소개해주시고, 올해의 계획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답 : 저는 최근 몇 년 동안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에 관해 연구해서 전국에 알리고 중앙정부부터 지방까지 이 정책이 채택되고 추진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민기본소득이란 농민들에게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 인데요. 현재 농민들의 소득은 도시 농촌 간에도 차이가 크지만 농민 간에도 소득차가 큰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사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농민에게 농민기본소득을 보장해주자는 주장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공론화되어 현재 해남, 강진, 부여 등지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한 상태이구요. 조만간 경기도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30여 차례 농민기본소득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요. 올해도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그 외에 농촌의 사회문제, 복지, 개발문제도 연구하고 충청남도와 중국과의 교류 활성화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올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아름다운 공주의 풍경을 뒤로 하고 박경철 회원과 인터뷰를 마쳤다. 역사가 왜 연구와 실천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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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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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고려박물관회원들, 독립기념관 등 3.1운동 유적지 답사

“내년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일본인에게 3·1만세운동 정신을 알리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유관순 기념관과 생가, 독립기념관,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돌아보면서 내년 전시에 대한 구상과 해당 기관의 자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72) 이사장은 이번 방한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어제(21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을 방문한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 14명은 무더운 날씨 속에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 현장을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길에 올랐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일제침략 시 만행의 현장과 기억 공간을 둘러보며 “조상들이 저지른 침략”에 대해 무한한 참회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통역 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기자는, 가는 곳마다 메모 노트를 꺼내 꼼꼼하게 적어가면서 “참혹하고 잔인했던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려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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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생가 유관순 생가에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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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기념관, 만세운동 당시를 재현한 방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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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의병 전시실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일본인들에게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 알릴 것”

이번에 방한한 일본인들은 고려박물관 내 조선여성사연구소 회원들로, 이들은 특별히 내년에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3·1운동 100돌 전시 준비위원회’를 꾸렸으며 전시기획을 위한 사전답사의 목적으로 방한한 것이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지난 27년간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건물을 빌리고 자원봉사로 고려박물관을 꾸려오면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일본 사회에 고발하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이다.

이들은 “침략의 역사는 없다”고 잡아떼고 있는 아베 정권에 맞서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각종 전시와 강연 등을 27년간 지속해왔다.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과거 침략의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일본인들에게 “3·1만세 운동 정신”을 알리려는 기획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3·1만세운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내년 100돌을 맞아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알릴 생각입니다. 또한 3·1만세운동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행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한국의 3·1만세운동 정신의 현대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방한 목적대로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3·1만세운동 유적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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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박물관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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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 이윤옥

이들은 유관순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아우내 장터의 함성을 떠올리며 순대국밥을 함께 먹었으며,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을 둘러보던 날은 토속 음식인 청국장 등을 먹으며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악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이들은 3일째 마지막 일정인 제암리교회 답사를 마치고 상경하여 한국외대 세미나실에서 기자로부터 3·1만세운동과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의를 늦은 시각까지 듣는 열의를 보였다.

이번 3·1만세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뒤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씨는 “제암리교회 양민 학살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특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년 전시 때 한국의 유관기관의 자료를 협조 받아 제대로 된 3·1만세운동의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아오야기 준이치(青柳純一)씨는 “저는 독립기념관 뒤뜰에 전시 중인 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종말과 그들이 저지른 잔혹사에 참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 아베 정권은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저 개인이라도 한국인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 보면서 참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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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암리교회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을 둘러 본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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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건물 독립기념관 야외공원에는 해체한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철통같았던 조선통치를 기억하며 그 악행에 대한 사죄를 했다. ⓒ 이윤옥

이번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방한 일정에는 박미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사의 숨은 노력이 컸으며 아울러 <신한국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등 여러명의 한국인들이 3박 4일 일정에 동행하여 한일 사이 우정을 쌓았다. 특히 수원박물관 이동근 학예연구사와 독립기념관 윤소영 선임연구위원,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 등의 친절한 응대와 향후 적극적인 협조 의사에 대해 고려박물관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이사장은 회원들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기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내년 3·1만세운동 100돌 기념사업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많은 단체 등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의 순수한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일에 우리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이사장 하라다 교오코)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 28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자는 2014년(1월~3월)과 2016년(11월~2017년 2월), 2회에 걸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과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 등을 했다.

*고려박물관은 도쿄 신오쿠보 한국수퍼 ‘광장’ 맞은편에 있으며 전화는 03-5272-3510이다. 이곳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일본인 회원들도 거의 한국어가 가능하다.


글: 이윤옥(koya26) 편집: 박혜경(jdishkys)

<2018-06-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만세운동 100돌 전시’ 위해 한국 찾은 일본인들

토, 2018/06/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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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스토킹은 적폐인가요 아닌가요

화, 2017/11/2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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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소장님, 조세열 전 사무총장의 민족문제연구소에서의 현재 위치는 무엇입니까?

지난 4월 조세열씨가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본인에게는 물론 박수현 실장, 임헌영 소장님께도 전화를 드렸으나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고 문자도 드렸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426일자 본인의 임헌영 소장님과 조세열 사무총장께 여쭙습니다.” 글 참조

아마도 그때 연구소의 박OO이 연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때라 그걸 감추려 통화조차 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암튼, 연구소 홈페이지 임직원 소개에 박수현 실장이 사무총장 직무대행 역을 맡은 걸 보면 조세열 전 사무총장이 지금 사퇴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민족사랑 등 어디에도 공지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OO이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할 때도 회보에 퇴직했다며 이름을 올렸는데, 더욱 중차대한 실무 총책임자의 직책인 사무총장이 사퇴를 했는데도 아무런 공지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혹시 외부로부터의 소나기(?)를 잠시 피해보고자 꼼수로 직무배제시킨 것은 아닌가요 

임헌영 소장님, 연구소 운영을 이렇듯 불투명하게 하는 것은 회원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연구소와 재단은 특정인을 뒤 봐주기 위한, 아니면 잘못하면 사퇴하고 여기서 저기로 마음대로 옮겨다니는 은신처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전부터 그렇게 (신상)필벌하지않고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봐줘왔기 때문에 조세열 총장도 그 밑의 누구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함부로 지탄받을 행동을 하고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친일파들이 지은 죄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았다며 분개하는 우리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운영위원장이던 시절에 조세열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이 오랜 기간 큰 잘못을 저질러 운영위원회 석상에서 공식사과를 한적 있는데 (2015. 6), 임헌영 소장님은 분명 징계를 하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후에 그 약속을 깨셨습니다.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해서는 보직사퇴 시키겠다고 하시고는 “조세열과 방학진이 없으면 민족문제연구소 망한다”며 직제에도 없는 ‘기획실장’에 발령하셨지요? 

운영위원장과의 약속을 뒤집어가면서까지 두 사람을 비호하는 그런 조치를 취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벌받지 않을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이런 현상이 또 다시 발생하고 있는 거라 봅니다.   

아무튼 조총장이 지난 총회에서 연구소 상임이사로 셀프승진하면서 한가하게 외부에 기고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연구소 상임이사는 아직 회원들 회비로 월급 주는 자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소와의 관계와 정체가 불분명한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에서도 상임이사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도 회원 회비로 월급을 받을 일은 없다고 봅니다.

이점 임명호 회계감사님은 정확하게 해서 발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26일에도 임헌영 소장님과 조세열 사무총장께 여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만, 아직도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조세열 사무총장에 대한 거취를 발령 여부와 함께 민족사랑지에 분명히 공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8. 6. 22

회원 여인철

(9대 운영위원장)

금, 2018/06/2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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