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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미확인) | 월, 2019/01/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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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제주 KAL호텔에서 ‘국제 인권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국제 심포지엄이 제주4·3 기념사업위원회 등의 주최로 열렸다. 심포지엄에서는 국제 인권 기준에 비추어 한국의 과거사 청산의 한계와 성과를 짚어 보고 향후 한국의 과거사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됐다.

1. 유엔 특별보고관이 말한 과거사 청산에 필요한 몇가지
2. ‘나 몰라라’ 일본 앞에 해결 요원한 한국의 가장 오래된 과거사
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4. “말뿐인 사과 필요 없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토해낸 울분

일제 강점기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80여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고령으로 끝내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으로 대표되는 일제 강점기 국가폭력 사건들은 과거사 청산 작업에 있어 시급한 문제로 꼽히지만, 일본이라는 벽에 부딪혀 성과보다는 한계가 많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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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조문을 하며 “왜 갔어 안간다고 했잖아”라며 고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지난 19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 주최로 열린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국제 심포지엄에서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첫 번째 세션 ‘한국의 과거사 청산, 한계와 성과’ 중 ‘청산되지 않은 대일과거사 문제와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해 발표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날 특별 초청된 파비앙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재발 방지 특별보고관을 언급하며 “그의 직무에 긴 이름이 붙은 것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전환기적 정의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국제사회가 진실, 배상, 재발 방지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사에 관한 유엔의 기본원칙은 2005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 제60/147호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갖는 인권목록을 제시하는데, 크게 ▲진실을 알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 ▲배상 또는 피해구제를 받을 권리 등으로 나뉜다고 조 연구위원은 말했다.

대일과거사 피해자들의 진실을 알 권리에 대해 그는 “일제와 기업이 생산한 관련 기록의 확보와 생존 피해자들의 증언 청취가 필수적이지만, 일본 정부는 식민지통치와 관련된 자료를 부분적으로만 제공했을 뿐이다”라며 기록이 반환되지 않아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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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 주최로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국제 심포지엄이 제주 KAL호텔에서 진행됐다. 첫 번째 세션 ‘한국의 과거사 청산, 한계와 성과’에 이상희 변호사의 사회로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 김세은 변호사가 발표했다. [2019.03.19ⓒ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그러면서 “국제법상 식민지통치자료는 넘겨줄 것이 요구된다”라며 “기록 반환의 문제는 역사자료의 문제만이 아니라 빼앗긴 사람의 목숨과 재산 못지않은 인권의 요청”이라고 덧붙였다.

정의를 실현할 권리에 대해 조 연구위원은 “올바른 재판을 받을 권리”라고 설명하며, 특히 배상 또는 피해구제를 받을 권리에 대해 “배상은 금전배상뿐 아니라 사죄, 추모, 재교육 등 책임 있는 조치와 사회복귀, 재발 방지 보증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조 연구위원은 “이러한 민사 소송들은 대일과거사문제가 단지 민족 감정의 문제라거나 역사적 관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구제와 관련된 법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국가와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만을 내렸다.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법리(국가무답책), 소송제기와 필요한 기간의 경과 또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권리 해결 등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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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安倍晉삼) 일본 총리가 14일 자위대의 날을 맞아 도쿄 북쪽 아사카(朝霞)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관열식을 갖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훈시에서 “모든 자위대원이 자부심을 갖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라며 헌법 개정에서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에 대해 거듭 의욕을 나타냈다. 2018.10.14ⓒ사진 = 뉴시스

2000년대 들어서 일본 소송에서 패소한 피해자들은 한국법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이어갔다. 위안부, 원폭 피해자들은 2011년 헌법재판소로부터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국정부의 부작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현재 이 합의는 헌법소원 사건으로 계류 중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2015년 7월 미국법원에 일본을 상대로 제소했다. 그러나 ‘국가는 동의 없이 외국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고 규정한 국제법에 따라 소송 자체가 봉쇄됐다. 피해자들은 한국법원에서 소송을 이어갔으나 일본 정부는 헤이그 송달협약을 근거로 주권 침해라며 소장의 접수조차 거부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공시송달 명령을 내렸다.

피해자 권리 구제할 법원이 오히려 ‘재판거래’로 또 인권침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은 대일과거사 청산 작업에 있어서 뚜렷한 성과와 한계를 보인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고 패소로 판결한 하급심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하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에 조 연구위원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고 강제동원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고 판단해 피해구제의 길을 열었다”라고 평가했다. 해당 판결로 후지코시 회사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자 등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줄을 이었다.

이후 파기환송심이 대법원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에 위자료 1억 원을 각 피해자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하자, 이에 불복한 일본 기업은 상고를 제기했다.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간 지 5년 후인 지난해 10월 피해자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조 연구위원은 “마침내 강제동원 피해가 사법부에 의해 인정됐다”라며 “이 판결로 좁게는 강제동원에 공모한 일본 기업의 책임이 확정된 것이지만, 간접적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도 법적으로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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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사법 농단 수사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이 과거사 사건들을 재판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강제동원 사건은 그중에서도 대표적 사례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신설, 법관의 해외 파견 등 협조를 얻기 위해 청와대·외교부 요청대로 해당 사건 재판을 장기간 지연시켰고, 판결의 결과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했다.

재판이 지연되는 사이 애초 4명이었던 이 사건 원고들은 세상을 떠나 결국 1명의 원고만이 최종 선고를 지켜봤다. 유일한 생존 원고인 이춘식 씨는 “기쁜 날인데, 혼자만 남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며 선고 내내 눈물을 흘렸다. 대법원의 해당 사건 판결 선고 전까지 후속 소송을 제기한 총 14건의 강제동원 소송 절차도 멈춰 있었다. 그 사이 고령인 다수의 원고는 끝내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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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슬찬 기자

강제동원 피해자를 변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세은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법부가 오히려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재판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고,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실효성 있는 사법적 구제를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새로운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나 배상, 온전한 피해구제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법원이 판결을 바로잡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원에 의한 새로운 인권침해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차원에서 과거사 청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거래라는 결과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회를 맡은 민변의 이상희 변호사는 “법원 차원에서 과거 권력에 부역했던 진지한 사과가 없었다. 그런 사과 없이 양승태 체제에서 사법 농단이 진행됐다”라며 과거사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피해구제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 연구위원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고려 중인 (강제동원) 생존자와 가족들이 많다”라며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를 찾고 지금 소송을 제기하면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의 판단에 극도로 반발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그는 “피해자 권리를 다시 침해하는 행위”라며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한일 경제갈등까지 이야기되고 있지만, 양국 정부가 배상 문제에 대해 평화적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마무리 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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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대법원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 참석해 눈을 감고 있다.ⓒ김슬찬 기자

법원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재판거래 등이 가능했던 과거 사법행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라며 “개혁의 핵심은 대법원장이 가진 제왕적 권한의 분산과 법원행정처의 실질적 폐지”라고 강조했다. 최근 김명수 사법부의 개혁안에 대해 그는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고 법원행정처는 법원사무처로 명칭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법원에 재판거래 진상규명, 재판거래 당사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 재판거래의 결과 제거,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또 정부에 국민 중심 사법개혁기구 구성할 것을, 국회에 재판거래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 결의를 촉구했다.

<2019-03-21>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나 몰라라’ 일본 앞에 해결 요원한 한국의 가장 오래된 과거사

금, 2019/03/2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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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IDS홀딩스  1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2016년 9월 2일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 되고

그 이후 모집책으로부터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만 했습니다

본인도 큰돈을 투자했으며

IDS가 잘못되면 자신이 더 큰일난다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물어볼때마다 희망고문 하듯

잘 될꺼라고만 했고

실질적인 변제안이 나올거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을 했기에

전 믿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와서는 제가 결정하고 투자한거니 변호사비용이며 법원 인지세와 송달료등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써는

다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성훈을 비롯하여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말 피같이 모은 돈인데

그냥 이대로 사기맞은것으로 끝난다면 미쳐버릴것 같고 절대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씩 들어날때마다 어이가없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떡~!하니 나타나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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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形醜女(성형추녀)

 

擧首過驕色(거수과교색)

慇懃眼鼻奇(은근안비기)

豚魚登面上(돈어등면상)

犬馬笑嚬眉(견마소빈미)

 

성형 수술한 醜女

 

머리 쳐들고 지나치게 뽐내는 낯빛

은근슬쩍 눈과 코가 썩 기이하구나

돼지와 물고기 얼굴 위에 올랐으니

개와 말도 비웃으며 눈살 찌푸린다.

 

<時調로 改譯>

 

너무 뽐내는 낯빛 눈코가 기이하구나

도야지와 물고기 얼굴 위에 올랐으니

犬馬도 썩 비웃으며 눈살을 찌푸린다.

 

*醜女: 얼굴이 못생긴 여자. 추부(醜婦)  *擧首: 거두(擧頭). 머리를 듦 *驕色:

잘난 체하며 겸손함이 없이 뽐내는 낯빛 *眼鼻: 눈과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

*豚魚: 돼지와  물고기  *犬馬: 개와  말을  아울러  이름  *嚬眉: 눈살을  찌푸림.

 

<2018.7.5, 이우식 지음>

금, 2018/07/0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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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某寺刹全燒

 

佛陀加被甚(불타가피심)

寺刹豈全燒(사찰기전소)

笑柄神通力(소병신통력)

虛言一擧消(허언일거소)

 

어떤 절이 다 타 버림을 보며

 

석가모니의 加被가 썩 두텁거늘

사찰이 어찌 全燒하고 말았는가

신통한 힘이 웃음거리 되었으며

헛된 말씀도 一擧에 스러졌도다.

 

<時調로 改譯>

 

부처 加被 두텁거늘 어찌 全燒하였는가

신통한 힘이라는 것 웃음거리 되었으며

마침내 헛된 말씀도 一擧에 스러졌도다.

 

*全燒: 남김없이    타 버림  *佛陀: 석가모니. 부처 *加被: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笑柄: 웃음거리  *神通力: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靈妙하고  불가사의한  힘이나  능력.  불교에선  禪定을 수행함으로써 이를 얻을 수

있다고 *虛言: 실속 없는 빈말. 虛語 *一擧: 한 번 움직임. 또는 한 번 일을 벌임.

 

<2019.4.8, 이우식 지음>

월, 2019/04/0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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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에 짓밟힌 조선인 여학생들의 꿈
– 부산항공립고등여학교 졸업앨범, 1944년

 

이번 달에 소개할 소장자료는 부산에 있는 경남여자고등학교의 전신 부산항공립고등여학교(釜山港公立高等女學校) 졸업앨범이다. 표지에는 ‘추상(追想), 2604’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타난 숫자는 ‘황기2604년(皇紀;초대 천황이 즉위한 기원전 660년을 기점으로 계산)’을 일컫는 것으로 서기로 바꾸면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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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는 원래 1927년 4월에 부산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부산여고보’로 줄임)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였으나, 1938년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 개정에 따라 고등여학교로 편제되었다. 그 전까지는 국어(國語), 즉 일본어를 상용(常用)하느냐 아니냐의 구분에 따라 조선인은 보통학교(6년), 고등보통학교(5년), 여자고등보통학교(5년 또는 4년)에 다녔으나, 제3차 교육령에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명분으로 내세워 일본인과 조선인 구분 없이 일본인 학교처럼 모두 소학교, 중학교, 고등여학교로 이름을 바꿔달도록 했다.
따라서 이름을 고등여학교로 바꾸자니 이미 부산에는 일본인 학교였던 부산고등여학교가 있었으므로 이를 피하다보니 ‘부산항고등여학교’라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명칭이 탄생한 것이다. 가령 서울에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가 경성제일중학교가 아닌 ‘경기중학교’로, 경성제이공립고등보통학교가 ‘경복중학교’로, 경성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경성고등여학교가 아닌 ‘경기고등여학교’로 각각 엉뚱한 이름을 갖게 된 연유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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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넘겨 본문으로 들어가면 첫머리에 봉안전(奉安殿)과 대마전(大麻殿, 대마봉사전) 사진이 먼저 눈에 띈다. 봉안전은 교육칙어나 ‘천황’의 ‘어진영(御眞影, 사진)’을 받들어 모시도록 했던 공간이며, 대마전은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발급하는 부적인 대마를 보관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의 학교라면 대개 이런 시설물을 갖춰놓고 학생들에게 일상적인 참배를 강요하곤 했다. 사진 아래에 팔굉일우(八紘一宇 ; 온 세상이 하나의 집이라는 뜻)라고 새긴 비석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것은 황기 2600년을 맞이하여 강원신궁건국봉사대(橿原神宮建國奉仕隊)에 참가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다시 두 어장을 넘기면 일본인 교장의 집무실 풍경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건전한 국민의 양성은 전적으로 사표(師表)가 되는 자의 덕화(德化)에 따른 것이니 …… 운운” 하는 ‘소화천황의 교육자에 관한 칙어’를 적은 액자와 함께 일본 도쿄 황궁 앞 이중교(二重橋, 니쥬바시) 사진이 벽면에 나란히 걸린 모습이 보인다. 특히, 천황의 존재를 상징하는 이중교 사진 액자는 대개 각 교실마다 칠판 위쪽에 걸려 있어서 일본인 교사들이 걸핏하면 “천황 폐하께서 우리를 굽어보신다”고 하면서 학습을 독려하거나 학생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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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몇 장을 더 넘기면 10여 명씩 짝을 이룬 졸업생들의 기념촬영사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의 복장을 보아하니 학생복이긴 한데 한결같이 치마가 아닌 이른바 ‘ 몸빼’ 차림인 것이 이색적이다. 전시체제를 강화하면서 활동성을 높이고 물자를 절약하는 방편으로 남자들에게는 국민복에 각반(脚絆)을 착용토록 했고, 일반여성은 물론이고 여학생들에게도 ‘몸빼’ 제복을 강요하던 시절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행군연습을 나가거나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 활동에 동원되는 경우에도 몸빼 차림을 한 학생들 모습이 사진첩 곳곳에 드러나 있다. 금속물공출(金屬物供出) 장면이나 용두산신사봉찬체육대회(龍頭山神社奉讚體育大會) 사진도 전시체제기를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눈 여겨볼 만하다.
이 사진첩에 수록된 이색적인 풍경을 하나 더 소개하면 바로 체력장검정(體力章檢定)이다. 일제는 1939년 4월 장차 강제 징병으로 국방의 제일선에 서게 될 청년남녀에 대한 체력관리를 목적으로 체력법(體力法)을 제정하고 조선 전역에 체력장 검정을 실시했는 데 체력검사 결과에 따라 등급별로 체력장(體力章)을 수여했다. 여학생들에게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였는데, 여기에는 1천 미터 달리기, 줄넘기, 무거운 짐 들고 나르기(20킬로그램 무게를 들고 50미터를 20초에 달리면 ‘중급’으로 간주), 단봉(短棒)던지기 등의 종목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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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첩 말미에는 여느 졸업앨범과 마찬가지로 졸업생 명부와 출신지를 적은 향관록(鄕關錄)이 첨부되어 있다. 이 당시 졸업생은 4의 1조, 2조(‘반’이 아니라 ‘조’라고 부름)를 합쳐 99명이었는데, 창씨개명(創氏改名) 탓인지 조선식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은 거의 드물었다. 대신 졸업생 이름 끝자가 영자, 인자, 경자, 희자, 정자, 숙자, 광자, 애자처럼 자(子)로 끝나는 경우가 3분의 2나 되는 65명이나 되니 ‘자’자 돌림 여자 이름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 졸업생이 아직 살아있다면 곧 아흔줄에 들어서는 연세가 된다. 졸업하자마자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 이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때가 하필이면 청춘기와 겹치다보니, 대부분 격동의 시대에 고통과 역경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 와중에 학창시절의 푸른 꿈은 다들 얼마만큼이나 성취하였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 보면 광포한 군국주의에 짓눌린 세상에서 제대로 미래에 대한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없지 않다.
한 권의 졸업앨범이지만 시대 변천과 라이프 히스토리가 무궁무진하게 담긴 생생한 역사자료로 평가된다. 우리 연구소에는 일제강점기부터 1960, 70년대까지 졸업앨범이 적지 않게 수집되어 있다. 혹여 책장 귀퉁이나 집안 다락에 의미없이 꽂혀 있는 옛 졸업기념 사진첩이 있다면 개인의 소중한 추억거리이고 기념물이긴 하지만, 이를 기증해 훌륭한 역사연구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면 더욱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이런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이 축적되면 될수록 암울했던 식민지 시기의 일상을 구체화하고 이를 재현하는 일이 한결 더 풍성하고 용이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목, 2018/07/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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