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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다·만·세 100년,“빨갱이란 비난까지 받았지만, 역사 바로잡기 멈출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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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다·만·세 100년,“빨갱이란 비난까지 받았지만, 역사 바로잡기 멈출 수 없어”

익명 (미확인) | 토, 2019/01/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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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부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email protected]

준비 과정부터 18년 걸친 대장정
시민들 자발적 모금이 큰 원동력

친일파에 대한 엄격한 기준 정하고
편찬위원들 지인까지 수록했는데
편파적이라는 비판에 동의 못해

특정한 사람 매도할 의도 없어
지도층 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
훗날 받을 평가 신경쓰도록 영향

해외와 지방의 친일파 조사 미비
여건 좋지 않지만 개정판 준비 중

역사학자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71)은 2002년부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편찬작업이 한창이던 2005년 어느 날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을 비난하는 신문 형식의 전단이 대량 살포돼 있었던 것이다. 한 강연회에서 한·미 공조와 더불어 민족공조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친북적’이라는 억지 주장이었다. “거기에 도표가 나오는데 강만길 선생-한완상 전 부총리-나 이런 식으로 무슨 간첩단 사건처럼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당시는 편찬위원장을 맡아 일부 보수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일부 교회 사람들이 연세가 아흔이 넘은 장모님에게 ‘당신 사위 빨갱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은 멈출 수 없었다. “1949년 친일 경찰의 습격으로 와해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잇는 작업”이자 “역사정의를 위해 반드시 정리하고 가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의 음해와 소송전을 극복하고 2009년 11월8일 친일파 4389명이 담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됐다. 정보기관의 압력으로 발간기념식장 대관마저 취소되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효창원 애국선열 묘역으로 행사장을 옮겨 백범 김구 선생 영전에 사전을 헌정했다.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온 지 올해 10주년이 됐다. 윤 위원장을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 사전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나.

“민족문제연구소가 1991년 출범한 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친일 문제를 꼭 한번은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계속해왔다. 준비 과정부터 따지자면 18년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그사이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가 진전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오욕의 역사’를 제대로 성찰해야 한다는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밑바탕이 되었다.”

– 시민 참여가 가장 큰 원동력인 건가.

“한 예로 2005년쯤 기초조사 사업차 5억원 정도가 정부예산으로 편성됐는데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이를 보도를 통해 알게 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순식간에 7억원이 모였다.”

– 왜 ‘사전’이라는 형태이고 명칭은 ‘친일인명사전’이었나.

“사전은 가치중립적이다.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사전이 적합하다고 봤다. ‘친일파’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공간을 거쳐 최근까지 널리 사용된 역사화된 용어다. 그대로 쓰자고 했다.”

– 객관성을 어떻게 담보했나.

“전문연구자 150명이 편찬위원을 맡았다. 180여명의 한국근대사 전공자들이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 1차 자료를 방대하게 조사했다. 친일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정했다. 사전에 수록 예상자를 발표해 이의신청까지 받았다.”

– 주변의 우려도 많았을 것 같다.

“2002년부터 위원장을 맡았다. 2005년 한성대 총장 선거를 앞두고 보수적 교수사회에서 친일 청산에 앞장서는 게 총장이 되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우려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총장이 안되더라도 이 일은 피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교수도 하고 총장도 했지만 역사학자로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것이 평생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 일부 보수세력은 편파성을 물고 늘어졌다.

“사전을 편찬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던 적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우리 문중에 친일한 사람이 많았다. 평소 존경하고 가까이 지낸 목사님의 아버지도 들어갔다. 안타깝긴 하지만 역사화는 개인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스승인 백철, 지도위원인 강만길 선생의 지도교수였던 신석호,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인 임종국 선생의 부친인 임문호까지 사전에 올랐다. 이게 편파적인가.”

– 가장 논란이 된 인물은 누구였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위원장인 내가 최종 결정을 해야 했다. 당시 쟁점 중 하나가 ‘혈서’였다. 일제에 충성하는 혈서를 썼다는 얘기는 많이 돌아다녀도 막상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그 근거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에 실린 박정희의 낯 뜨거운 만주군관학교 지원 혈서 기사를 찾아냈다. 박정희를 뺄 수 없었다.”

– 의외의 친일파도 있었나.

“장지연이 대표적이다. ‘시일야방성대곡’ 논설로 얼마나 애국자로 칭송받았나. 조사를 해보니 1910년 일제에 병합된 뒤 경남일보 주필 등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친일 시문을 기고했다.”

– 일부 보수세력은 색깔론, 공과론, 민족공범론으로 비난했다.

“자랑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정한 사람을 매도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역사가 엄중하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 발간 후 10년 동안 호응이 얼마나 있었나.

“최근까지 8쇄를 찍었고 1만1000질 정도가 나갔다. 처음에 출판 전문가들이 와서 사전은 어차피 많이 팔리는 종류가 아니니 초판 500질만 찍으라고 했다. 그런데 2000질이 순식간에 다 나갔다. 한 질이 30만원이다. 그런데도 초판 대부분을 개인 후원회원들이 구매했다. 집안의 가보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 사전이 10년간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 ‘무슨 행동을 하거나 발언할 때 훗날 어떻게 평가를 받을 것인가’하는 문제 인식이 커진 것 같다. 지도층 사람들이 앞으로 행동 하나, 발언 하나에 신경 쓰도록 만들게 된 것 같다.”

– 편찬 작업이 선생님에게 끼친 영향도 있는 건가.

“언제 한 인터뷰에서 좌우명을 묻길래 준비 없이 ‘역사학도로서 훗날 어떻게 내 행동과 발언이 평가받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행동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신 앞에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려 노력한다’고 답변했다. 이후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됐다. 민족과 역사 앞에 행위가 바르지 않으면 결국 심판을 받는 것이다.”

– <친일인명사전> 작업은 지속되나.

“아직 미비한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해외와 지방의 친일파 조사가 그렇다. 여기에는 다수의 전문인력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민간기구라 여건이 좋지 않지만 개정판 준비는 계속하고 있다.”

–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을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된 사건이다. 그 혁명을 ‘민’이 주도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우리 근대사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갔던, 일제에 순응했던 사람들과 3·1운동으로 핍박받았던 사람들, 그 둘이 대비가 된다. 3·1운동에서 민이 들었던 횃불이 오늘날의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그 힘으로 <친일인명사전>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인터랙티브] 맹렬한 무장투쟁가, 아나키스트 역사가…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100년 전, 대한독립을 주창하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들었고 만세를 불렀고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평범한 이들에게 3·1운동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 독립운동가가 된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지만, 택한 방법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만주에 정착해 무장투쟁단체를 조직했고, 누군가는 머나먼 미국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다. 이념과 노선도 민족주의를 기본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여성해방 등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같은 독립운동 안에서도 누군가는 맹렬한 무장투쟁가로, 누군가는 여성운동을 주도하는 대중운동가로 궤도를 달리했다. 만약 내가 독립운동가라면 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 선택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는 누구였을지 알아보자.

▶ [인터랙티브]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링크 클릭이 안 될시 주소창에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2019/myact/ 를 입력해주세요.

시민들의 의견

조선의용대 창설 8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10월 10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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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용대 창설 8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인사말하는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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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회의가 열린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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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회의가 열린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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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회의가 열린 식민지역사북물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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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회의장을 찾은 독립운동가 후손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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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을 발제하는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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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을 발제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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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그리고 밀양’을 발제하는 최필숙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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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자로 참석한 조형열 연세대 연구교수, 조철행 독립기념관 연구원,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오른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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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로 상임대표를 좌장으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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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학술회의에는 약 70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화, 2018/10/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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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한살은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칠팔

칠구

팔공

787980

천주고

1021

ㄱㅕㅇ찰의날이네

음력구일삼

칠구에서

칠자종성은 이엉으로

차박사문기자공교수

시무하린날

보세

민중의지팡이와  사회의목탁은

겨레에게(사진은페이스북에)

 

화, 2018/10/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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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을 위한 제안

 

독립운동하신 분들과 후손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실정에 대하여 안타깝다 못해 국가의 정통성마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독립운동 후손분들에 대한 예우는 더욱 존중하고 높여야 하여야 한다는 등의 말장난은 그만하고 친일파에 대한 재산몰수라든지 물리적인 처단이 어렵다면 역사의 평가와 응징을 통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후대에 교훈을 남겨야합니다.

 

하여 제나름대로 제언을 한다면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분석과 정리를 통하여 역사로서 응징한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파들은 즉시 파묘하고 거기에 친일행위자가 묻혔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그 자의 무릅 꿇은 청동상을 세운다.

광화문광장, 독립기념관 광장등에 독립과 친일역사거리를 만들어 친일매국노들의 이름과 행적을 새긴 청동으로 깔고 그 내용이 선명하게 보일수 있도록 강화유리로 처리하여 사람들이 밝고 다니게한다.

그 앞에는 가장 존경받는 모습으로 독립운동가의 청동상을 만들고 앞에는 무릅 꿇은 친일파 조각상을 만들어 역사로서 응징한다.

친일파가 태어난 곳에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장소에 위와 같은 것을 지역규모에 맞게 설치한다

3.1절과 광복절에는 독립기념관과 광화문광장에 친일파상징물을 만들어 상징물을 밟는 친일밟기(지신밟기)놀이로 승화시켜 문화로 발전시킨다.

친일후손들에게는 일정기간 기준을 설정하여 공직은 철저히 배제한다.

중국의 남송 악왕묘(악의) 옆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간신 진회부부의 무릎꿇은 간신조각상이 있고 사람들이 침을 많이 뱉어 형식적으로 침을 밷지 마세요란 표지도 해 놓았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방법이라도 강구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였으면 합니다

 

 

 

수, 2018/10/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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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을 위한 제안

 

독립운동하신 분들과 후손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실정에 대하여 안타깝다 못해 국가의 정통성마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독립운동 후손분들에 대한 예우는 더욱 존중하고 높여야 하여야 한다는 등의 말장난은 그만하고 친일파에 대한 재산몰수라든지 물리적인 처단이 어렵다면 역사의 평가와 응징을 통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후대에 교훈을 남겨야합니다.

 

하여 제나름대로 제언을 한다면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분석과 정리를 통하여 역사로서 응징한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파들은 즉시 파묘하고 거기에 친일행위자가 묻혔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그 자의 무릅 꿇은 청동상을 세운다.

광화문광장, 독립기념관 광장등에 독립과 친일역사거리를 만들어 친일매국노들의 이름과 행적을 새긴 청동으로 깔고 그 내용이 선명하게 보일수 있도록 강화유리로 처리하여 사람들이 밝고 다니게한다.

그 앞에는 가장 존경받는 모습으로 독립운동가의 청동상을 만들고 앞에는 무릅 꿇은 친일파 조각상을 만들어 역사로서 응징한다.

친일파가 태어난 곳에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장소에 위와 같은 것을 지역규모에 맞게 설치한다

3.1절과 광복절에는 독립기념관과 광화문광장에 친일파상징물을 만들어 상징물을 밟는 친일밟기(지신밟기)놀이로 승화시켜 문화로 발전시킨다.

친일후손들에게는 일정기간 기준을 설정하여 공직은 철저히 배제한다.

중국의 남송 악왕묘(악의) 옆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간신 진회부부의 무릎꿇은 간신조각상이 있고 사람들이 침을 많이 뱉어 형식적으로 침을 밷지 마세요란 표지도 해 놓았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방법이라도 강구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였으면 합니다

 

 

 

수, 2018/10/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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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港映畵俳優周潤發氏全財産寄附

 

錢蟲盈四海(전충영사해)

快擲此誰何(쾌척차수하)

衆語眞英傑(중어진영걸)

村儒詠讚歌(촌유영찬가)

 

홍콩의 영화배우 주윤발 씨의 전 재산 기부

 

온 세상이 돈벌레들로 가득한데

시원스레 내던지니 이 누구인가

뭇사람이 진짜 英傑이라 말하니

시골의 선비도 찬가를 읊는다네.

 

<時調로 改譯>

 

돈벌레 세상인데 쾌척하니 이 뉘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진짜 英傑이라 하니

시골에 사는 선비도 찬가를 읊는다네.

 

*香港: 홍콩  *四海: 온  세상.  사방의  바다  *快擲: 금품을  마땅히 쓸 자리에 시원

스럽게 내놓음 *誰何: 누구 *英傑: 영웅호걸(英雄豪傑) *村儒: 시골에 사는 선비.

 

<2018.10.18, 이우식 지음>

목, 2018/10/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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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cafe.daum.net/minjokstraight/ihsH/2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10명? 1만3천명?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

2018년 3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12,959명입니다.

실제 회비를 내는 회원은 월 평균 9,818명입니다.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2018년도 정기총회 자료집 7~8P)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1만3천여 명이 아니라 고작 10명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임원이 5명입니다.

결국, 임원을 제외하면 회원은 고작 5명입니다.

■ 2017년 12월 ~ 2018년 3월 신입회원
민족문제연구소는 회보 『민족사랑』에 매월 신입회원과 신입회원 인사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신입회원만 27명이고, 2018년 1월 40명, 2018년 2월 69명입니다.
2018년도 정기총회가 열린 3월에는 46명이었습니다.
3월달 신입회원도 안되는 10명을 대상으로 총회를 소집하고,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2017년 12월 신입회원 27명

◎ 2018년 1월 신입회원 40명

 

◎ 2018년 2월 신입회원 69명

 

◎ 2018년 3월 신입회원 46명

■ 민족문제연구소 2018년도 정기총회, 숙명여대 순헌관 중강당

2018년 3월 24일. 민족문제연구소 2018년도 정기총회가 숙명여대 순헌관 중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수 백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습니다.

(2018.10.12. 숙명여대에서 좌석수는 360석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알림/화보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10명!!!!!!!!!!
민족문제연구소는 3월 8일에 정기총회를 열었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의사록을 신고했고, 4월 24일에 임시총회를 열었다며 의사록을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회원이 참석한 3월 24일자 2018년도 정기총회 의사록은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3월 8일자 정기총회와 4월 24일자 임시총회는 도대체 누가 열었고, 누가 허위로 의사록을 작성했을까요?

민족문제연구소가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한 총회의사록을 보겠습니다.

■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2018년 정기총회 회의록 

1. 회의 일시 : 2018년 3월 8일 17:00~19:00

2. 회의 장소 : 민족문제연구소 3층

3. 회원 총수 : 10명(함○○, 임○○, 윤○○, 조○○, 신○○, 김○○, 박○○, 박○○, 방○○, 이○○)

4. 임원 총수 :   5명(함○○, 임○○, 윤○○, 조○○, 신○○)

5. 출석 회원 :   9명(함○○, 임○○, 윤○○, 조○○, 신○○, 김○○, 박○○, 방○○, 이○○)

6. 출석 감사 :   2명(임○○, 최○○)

7. 회의 안건 : 2017년 결산 승인(안)

8. 회의 내용 

                     정관 규정에  따라 위와 같이 법정수에 달하는 회원이 출석, 본 총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음을 알린 후 개회를 선언하고, 사전에 통지한 사항인 다음의 의안을 부의하고 심의를 구하다.

[의안 상정] : 2017년도 결산 승인(안)

이하 생략…

■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2018년 임시총회 회의록

1. 회의 일시 : 2018년 4월 24일 18:00~19:00

2. 회의 장소 :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청파동2가, 서현빌딩 3층) 소재 당 법인의 사무소

3. 회원 총수 : 10명(함○○, 임○○, 윤○○, 조○○, 신○○, 김○○, 박○○, 박○○, 방○○, 이○○)

4. 임원 총수 :   5명(함○○, 임○○, 윤○○, 조○○, 신○○)

5. 출석 회원 : 10명(함○○, 임○○, 윤○○, 조○○, 신○○, 김○○, 박○○, 박○○, 방○○, 이○○)

6. 회의 안건 : 2017년 결산 승인(안)

7. 회의 내용 

                     정관 규정에  따라 위와 같이 법정수에 달하는 회원이 출석, 본 총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음을 알린 후 개회를 선언하고, 사전에 통지한 사항인 다음의 의안을 부의하고 심의를 구하다.

[의안 상정] : 감사 선임

                 감사 최○○

위 피선자는 즉석에서 그 취임을 승낙하다. …

■ 언제부터 회원이 10명이 되었나?
○ 1997년 106명, 1999년~2000년 100명, 2002년 30명, 2003년 3월에 10명, 11월에 20명, 2004년 2월에 20명입니다.
2000년 초반 부터 회원이 많이 늘었는데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년도별 총회의사록의 총 회원수는 여기에서 확인하세요.  http://cafe.daum.net/minjokstraight/jWTQ/6

◎ 1997년 6월 15일 정기총회 106명

2004년 4월 17일자 임시총회부터 전체 회원은 10명이 됩니다.
2008년 7월 15일자 임시총회에서 9명으로 줄고, 2009년 2월 21일자 정기총회에서 다시 10명이 됩니다.
이때 부터 2018년 4월까지 10명이 유지됩니다.

전체적으로 볼때 2004년부터 2018년까지 14년 동안 신규 회원이 한 명도 늘지 않고 10명을 유지합니다.

◎ 2004년 4월 17일 정기총회 10명


의사록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8년까지 회원이 단 한명도 증가하지 않습니다.


■ 1만3천여 회원은 어디로 갔습니까?
○ 우리 1만3천여 회원이 3월 24일 숙명여대에서 개최한 총회는 무엇입니까?

○ 우리 1만3천여 회원이 언제 10명에게 1만3천여 회원의 권리를 대신하라고 했습니까?

○ 우리 1만3천여 회원이 언제 10명이 감사를 선출하고, 결산 승인을 대신하라고 했습니다?

○ 우리 1만3천여 회원이 개최한 총회에서 선출한 임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 우리 1만3천여 회원이 총회에서 승인안 결산승인, 예산승인, 사업승인은 무엇입니까?

목, 2018/10/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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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牧師輩與僧徒

 

病者焉嘲藥(병자언조약)

飢人捨食糧(기인사식량)

耶蘇同佛淚(야소동불루)

盜賊數無量(도적수무량)

 

목사들과 중들에게 告함

 

病者가 어찌 藥을 조롱하겠으며

굶주린 이가 양식을 버리겠는가

예수와 부처 눈물을 흘리시나니

도둑놈 숫자 헤아리지 못하겠다.

 

<時調로 改譯>

 

병든 이가 어찌하여 藥을 조롱하겠으며

잔뜩 굶주린 사람이 양식을 버리겠는가

예수와 부처가 우니 도둑놈이 無量하다.

 

*僧徒: 수행하는 중의 무리 *飢人: 기자(飢者). 굶주린 사람 *食糧: 양식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盜賊: 도둑 *無量: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음.

 

<2018.10.19, 이우식 지음>

금, 2018/10/19-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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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0/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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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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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그라퍼 김효룡 작가님이 참가자들에게 예쁜 글씨를 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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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3팀으로 나누어 마곡사를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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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 문화해설사분이 마곡사 답사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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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답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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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에 놓인 돌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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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양주 김재광 회원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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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의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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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백범당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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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지’를 집필한 지수걸 연구소 이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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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대광보전 안에 시주자 명단에 ‘조병갑’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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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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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운동가 주하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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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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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찬 최수련 부부의 우리가락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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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섭 공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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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섭 공주시장과 공주지회 회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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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의인 고 안병하 치안감님의 아들 안호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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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까지 이어진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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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숙소를 떠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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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숙소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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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세종회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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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에서 답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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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치 전적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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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우 운영위원장의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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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을 기약하며 ‘친일파 청산!’

금, 2018/10/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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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內外政勢

 

狡猫摩鼠子(교묘마서자)

餓虎舐羔羊(아호지고양)

兩者云仁愛(양자운인애)

歎聲滿四方(탄성만사방)

 

나라 안팎의 政勢

 

교활한 고양이가 쥐를 쓰다듬고

굶주린 호랑이가 어린羊을 핥네

兩者가 어짊과 사랑을 운운하니

감탄의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네.

 

<時調로 改譯>

 

狡猫가 쥐 어르고 餓虎가 어린羊 핥네

어짊과 또 사랑 따위 兩者가 운운하니

오호라! 감탄의 소리 사방에 가득하네.

 

*國內外: 나라 안팎 *鼠子: 쥐 *餓虎: 굶주린 범이는 뜻으로, 매우 위험하거나

무서운 대상을 이르는 말 *羔羊: 어린羊. 또는 염소와 羊 *仁愛: 어진 마음으로 

사랑함.  그 사랑  *歎聲: 몹시  감탄하는  소리. 몹시  한탄하거나  탄식하는 소리.

 

<2018.10.21, 이우식 지음>

일, 2018/10/2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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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隣村老巨富入獄

 

錢財無限慾(전재무한욕)

末路果如何(말로과여하)

我樂貧窮道(아락빈궁도)

蝸廬又醉哦(와려우취아)

 

이웃 마을 늙은 巨富가 감옥에 갇힘을 보며

 

돈에 대한 욕심이 무한하더니

마지막 무렵이 과연 어떠한가

나는야 빈궁함의 道를 즐기며

오두막에서 또 취하여 읊는다.

 

<時調로 改譯>

 

錢財慾 끝없더니 末路 과연 어떠한가

나는야 가난함과 궁색의 道를 즐기며

초라한 오두막에서 또 취하여 읊는다.

 

*隣村: 이웃  마을 *巨富: 대단히  많은  재산.  富者  중에서도 특히 큰 富者 *入獄:

감옥에  들어감. 또는  감옥에 갇힘. ≒입뢰(入牢) *錢財: 돈 *末路: 사람의 일생

가운데에서  마지막 무렵. 또는 망해 가는 마지막 무렵의 모습 *貧窮: 가난하고

궁색  *蝸廬: 달팽이의  집이라는  뜻으로, 작고  초라한  집을 비유으로 이르

. 와사(蝸舍). 와실(蝸室). 와옥(蝸屋). 또는 자기 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2018.10.22, 이우식 지음>

월, 2018/10/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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