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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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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개벽

익명 (미확인) | 금, 2019/01/18- 11:40

1. 자생과 자각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연신 끄덕거리다 말미에 갸우뚱 물음표가 돋았습니다. 저 또한 메이지유신 150주년(2018)을 기해 일본에서 나온 서적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문명개화’, 그간의 개화사 150년과는 다른 결의 서사가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동북지방의 안도 쇼에키까지 거슬러 올라 개벽의 단서를 찾는 것은 쉬이 수긍하기 힘듭니다.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하셨죠.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라고 추키셨습니다. 글쎄요. 저로서는 문장의 들머리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이 더 도드라집니다. 18세기에도 여전히 일본은 무인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유학적 소양으로 단련된 사대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조선, 월남이 구현했던 문치주의 유교국가와는 일선을 긋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였죠. 최근에는 메이지유신이야말로 그 기저에 유교화=중국화=근대화의 동력이 작동했다는 독법마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무라이에서 사대부로, 무사에서 문인관료로 지배층의 세련화(=文化)가 천년이나 가로 늦게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왕후장상의 씨를 따지지 않는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제법 오랩니다. 씨갈이, 역성혁명이 거듭되어 천자를 갈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만세일계 천황이 존재한다는 점이야말로 일본의 예외성입니다. 즉슨 성인 중심의 유교문명을 비판했다 하여 ‘개벽파’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유학국가를 온전히 구현해본 적이 없는 일본서는 자칫 허수아비를 때리는 꼴입니다. 물론 중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 모두가 성인이다.’ 하였던 15세기의 왕양명을 개벽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병한 사진2 수운 최제우(위키)
수운 최제우

개화파와 척사파의 갈림길, 그리고 개벽파의 새길 내기는 적어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는 19세기 이후의 사태입니다. 이른바 ‘서구의 충격’,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조우라는 역사적 맥락을 소거하면 개벽파의 독창성과 독보성을 도리어 제거해버리고 맙니다. 자칫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개벽파가 출몰할 수도 있습니다. 영성이 충만했던 서구의 중세가 개벽기도 아니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의 범신론적 사유를 개벽과 직접 결부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동학혁명이 그 이전의 숱한 민란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한 지배층에 대한 민중 반란이라는 흔하고 빤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충격’이 촉발한 전대미문의 천하대란에 임하여 문명적 각성을 예리하게 품어내었던 것입니다. 개벽을 개벽답게 만드는 티핑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벽파의 역사성에 대한 적확한 인식은 엄밀한 용어 사용과도 직결됩니다. ‘토착적 근대’라는 말이 저는 여전히 말끔하지 않습니다. 내재적, 내발적, 자생적 이라는 수사 또한 깔끔치가 않습니다. 죄다 자족적인 개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타를 나누고, 내/외를 가르는 발상입니다. 세계사 다시 쓰기, 소위 글로벌 히스토리는 서구적 근대조차 내발적이고 자생적이고 토착적이지 않았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에도 아랍과의 교류, 아시아와의 교섭, 아프리카-아메리카와의 교역이 중요했음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계몽주의에 ‘몽골의 충격’과 한문으로 쓰인 동방경전의 알파벳 번역이 있다하여 그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학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토착적이고 내재적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세계적이어서 소중한 것입니다. 내발론의 강박이 18세기 조선에서 서구적 근대의 맹아를 억지로 추출해내는 실학 담론의 패착을 낳았음을 통렬하게 비판한 점이 <한국 근대의 탄생>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자폐적인 내발론과 자멸적인 외발론을 동시에 극복합시다. 선후(先後)를 따지기보다는 박후(薄厚)를 살펴봅시다.

13세기 몽골이 유라시아의 대일통을 이루었던 것처럼, 19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구를 석권했습니다. 다만 그 편입과정에서 문명마다 나라마다 여러 갈래의 대응이 등장합니다. 한사코 거부했던 세력이 척사파입니다. 척사파의 양태는 중국에도, 인도에도, 심지어 서유럽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반대편에서 무조건 수용코자 했던 세력이 개화파입니다. 이 또한 여러 나라 여러 문명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것을 고수한 척사파와 새 것을 추수한 개화파의 충돌이 보/혁 갈등으로 치달았습니다.

‘제3의 길’도 있었습니다. 낯익은 전통을 타파하면서도 낯선 현실의 혁파 또한 겸장했던 개벽파입니다. 자기 고집도 자기 상실도 아닌 자기 혁신을 도모했습니다. 척사파가 무책임하고 개화파가 무절제했다면, 개벽파는 응시하고 응수하고 응전했습니다. 척사파가 시대의 물결에 조응하지 못하고 조선의 적자에서 적폐로 떠밀려갔다면, 개화파는 서세동점의 파고에 휘말리고 휩쓸려서 조선을 배반하고 매국의 독배를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척사파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면, 개화파는 깜빡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반면 개벽파는 반짝반짝 눈을 부릅떴습니다. 서늘한 눈으로 천하대세를 직시하고 빛나는 눈으로 나라다운 새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각적 근대’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즉 근대 세계체제는 단일합니다. 다만 그 근대세계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의 차이로부터 학파와 정파가 분기합니다. ‘서구적 근대’라 해서 개화파 일색이 아닙니다. 그렇게 쓰인 서구사=개화사조차도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서구에도 척사파와 개화파와 개벽파가 길항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비서구적 근대’라고 하여 개벽파가 돌출했던 것도 아닙니다. 작위적인 지리적 구획을 복제하기보다는 사상적 지향에 방점을 두는 편이 이롭습니다. 제가 동학을 높이 치는 이유 또한 묵은 유학을 맹신하지도, 설은 서학을 맹목하지도 않은 탁월한 균형 감각 때문입니다. 구학을 답습하지도, 신학에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서구의 충격에 대한 가장 창발적이고 주체적인 응답(Response+Ability)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동학은 ‘자각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개벽은 ‘자각의 탄성’이었습니다. 깨어나고 깨우치고 깨달아서 19세기의 유레카, ‘다시 개벽’을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개벽을 누락한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넌센스, 비상식과 몰상식이 판을 쳤습니다. 무식하고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근저에서 무심했습니다. 그 무심과 무지와 무식의 소산으로 쌓아올린 탑이 ‘실학’ 연구였습니다. 실학에서 동학으로의 회향,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회심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헌판을 갈고 엎어 새판을 짭시다.

이병한 사진2 _인류세_ 전시 작품
인류세 전시작품(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의 대리석 채석장)

 

2. 서세동점에서 인류세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애써 이틀을 썼던 문장을 싹둑 지워버렸습니다. “실학과 동학”으로 써내려갔던 내용을 통째로 덜어냈습니다. 지금 이곳은 수운회관 15층입니다. 1월 15일 오전 9시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부쩍 창밖이 뿌옇습니다. 희뿌연 미세먼지가 시야를 온통 가립니다. 인왕산은 희미하고 청와대는 흐릿합니다. 왜 한국의 근대를 실학이 아니라 동학에서 구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글이 어쩐지 한가해 보입니다. 갓 50일이 된 아들래미 얼굴이 떠올라 더더욱 답답해집니다. 개벽사 쓰기 또한 자칫 먹물의 고질병, 책상물림의 직업병일지 모른다는 노파심이 입니다. 현장감이 덜한 것입니다. 이번만큼은 에둘러 가지 않기로 합니다. 고준담론은 잠시 미루어두고 왜 또 다시 개벽인가,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절박하고 절실하고 절절한 제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봅니다.

거듭 강조컨대 더 이상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기 힘듭니다. 20세기형 인문학의 낡은 관습일 뿐입니다. 북반구(선진국)과 남반구(후진국)를 쪼개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20세기형 사회과학의 후진 습관일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제3세계론이나 세계체제론에서도 별다른 자극과 영감을 받지 못합니다. 동도와 서도를 견주고 서세에 동세를 맞세우는 것 또한 철지난 발상이라고 여깁니다. 목하 한치 앞도 가리어버린 저 기후변화는 동/서와 남/북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의 지구가 있을 뿐입니다. 그 둥근 지구, 하나의 하늘 아래 동서남북은 갈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온누리와 온생명과 한살림이 있을 뿐입니다. 동도(東道)와 서도(西道)의 소모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천도(天道)와 대도(大道)와 일도(一道)를 탐구합니다. 세계체제론(World System)의 국가간 경쟁을 훌쩍 뛰어넘는 인류와 지구의 공진화, 지구체제론(Earth System)을 모색합니다.

한살림 선언(1989)과 <녹색평론>(1991)도 이제는 어쩐지 미진한 감이 듭니다. 언젠가부터 동어반복의 식상함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은 여전히 지상(地上)과 천하(天下) 사이에 주력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의 길, 천지인의 근대화, 천인합일의 현대화를 천착합니다. 지하(지질학)와 천상(천문학)까지는 아우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물질대사는 물론이요 우주의 물질대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이미 오래인데도 혁신과 갱신에 게으릅니다. 인류사와 지구사가 합류하여 도달한 인류세(人類世)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상, ‘다시 개벽 2.0’을 갈구합니다.

생태적 사유는 한사코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려 듭니다. 포스트휴먼, 만물 가운데 하나로 강등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 등장한 그 어떠한 생명도 지구와 우주의 행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로 획기적인 사태입니다. 가히 유례없는 사건입니다. 선천개벽 창세기(홀로세, Holocene)와 후천개벽 인류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신의 뜻이나 자연의 법칙에 버금갈 만큼 인간의 역량이 증대된 것입니다. 45억년 지구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의지가 깃든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의지는 자연의 힘(force)과는 달리 억제되고 절제될 수도 있는 힘(power)이라는 점에서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즉 서구의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여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지구는 갈수록 인류의 이 집합적 의지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힘의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정신개벽)이야말로 인류를 고유한 생명체로 우뚝 서게 합니다. 지구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힘이 절정에 치달은 바로 이 순간에 인류의 고유한 특성을 외면하는 생태론이 갑갑하고 어색한 까닭입니다. 포스트휴먼을 궁리할 것이 아니라 네오휴먼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신인간(新人間)=신인간(神人間)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경쾌한 유발 하라리를 따라 라틴어로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라 하겠습니다. 묵직한 의암 손병희에 기대어 한자로 풀면 인내천(人乃天)이 가장 적절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이 즉 한울인 것입니다.

160년 전 노이무공(勞而無功), 아무리 노력해도 헛되었노라, 하늘의 탄식을 들은 이가 최제우입니다. 유학의 천인합일에서 동학의 천인합작으로 도약하는 비상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늘과 인간이 합작하는 인류세의 비전을 이미 내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1848년 <공산당선언>이 20세기를 추동했다면, 1860년 <동경대전>은 21세기를 격동시킬 것이라고 호언하고 다니는 연유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턱없이 모자란 발상입니다. 만인과 만물이 얽히고 섥히는 21세기, 경천(敬天)과 경물(敬物)과 경인(敬人)의 삼경사상야말로 자유-평등-형제애를 능가하는 시대정신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고작 ‘자유-평등-형제애’라고 해보았자 ‘경인’ 단 두 글자로 족합니다.

이병한 사진2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그러함에도 동학과 개벽은 여태 수줍습니다. 지난해 11월 토론토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종교의회의 말석을 지켰습니다. 겨우 한국과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만 동학과 개벽 얘기가 나지막이 오고갔습니다. 한국 연구자와 한국의 종교인들만 단출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크게 안타까웠습니다. 깊이 아쉬웠습니다. 딱하다는 생각마저 일어났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속이 쓰렸습니다. 입맛이 쓰디썼습니다. 세계종교의회 행사를 맞춤하여 토론토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회 주제가 바로 ‘인류세’였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다인종, 다종교, 다국적 인류를 지그시 바라보며 “신동학이 인류세의 학문이요, 또 다시 개벽이 인류세의 시대정신이라”,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온타리오 호수를 산책하다 곰곰 궁리하노라니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 또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퍼뜩 일어났습니다. 서세동점, 20세기의 수세적 입장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세에 맞춤하여 문장의 앞뒤 순서를 바꾸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신을 개벽하야 물질을 개벽하자’고 말입니다. 자각하여 구세하자고도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갈고 닦아 인물부터 사물까지 만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편이 인류세에 임하는 인류의 태도에 한층 더 부합하지 싶습니다. ‘다시 개벽’이 19세기의 자각이었다면, 21세기는 ‘또 다시 개벽’의 유레카를 외칠 만 한 것입니다. 고로 개벽파는 코즈모폴리턴, 세련된 세계시민마저 돌파합니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엘리트들의 허위의식을 넘어섭니다. 개벽인이야말로 진정한 지구인이며, 하늘과 더불어 지구의 운명을 개척하는 개벽꾼이야말로 참말로 하늘사람입니다. 국민(國民)에서 천민(天民)으로, 국가에서 천국으로. 그런 기상과 기개가 있어야 기미년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해년의 ‘선언’(Manifesto)에 값할 것입니다.

이병한 사진2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그래야 개벽파를 한낱 학술 유행의 신종 아이템으로 회수하려는 각종 유혹과 회유를 떨쳐낼 수도 있습니다. 부디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합시다. 신동학을 살기로 합시다. 앎의 전환에 그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수반하는 수련과 수행을 수반합시다. 그래야만 민심의 감화를 이루고 천심의 감동을 일으켜 포교와 포덕 또한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파만파 지구에 파동을 일으키고 우주까지 파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야 이 탁한 세상에 맑은 하늘을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태어난 후세들에게도 푸른 하늘 은하수를 되물려줄 수 있습니다. 꼬장꼬장, 깨작깨작, 자꾸 논문과 비슷해지려던 문장을 몽땅 지워버린 까닭입니다. 후련해졌습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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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란 결코 지위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물론 ‘저항’을 생각하는 공무원이 지나치게 많게 된다면, 그 또한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상명하복과 동종교배식의 조직 분위기만으로 과도하게 충만된 관료사회에서 그 권위와 관행에 ‘저항’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있는 공무원들이 존재해야만 조직이 그나마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왕따’되지 않고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우리 공직사회도 비로소 희망이란 게 존재하고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이제까지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에 근무하면서 몇 번이나 징계와 면직 위기를 겪어야 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기자는 필자에게 “걸어 다니는 징계혐의자”라고 농담 삼아 말할 정도였다.

필자가 직면했던 대표적인 징계위기는 바로 지금 이 기고문에서 계속 지적하고 있는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회 공무원들이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막강한 입법권한을 행사하는 ‘검토보고’ 제도에 위헌 소지가 있으며 따라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신문에 발표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국회사무처가 필자에게 뒤집어씌운 혐의는 ‘품위 유지 위반’ 혐의였다. 그러나 정작 ‘품위 유지’를 어긴 것은 오직 그들이라는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뒤 필자는 양승태 전(前)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추진법안에 국민들이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미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서명한 사실을 비판하고 상고법원은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기고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다시 징계위기에 몰렸다. 당시 국회 법사위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필자를 징계하기로 했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훗날 풍문으로 들었다(그런데 이 기고문을 계기로 필자는 대한변협의 ‘상고법원반대 TF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마침내 상고법원을 저지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보수정당 출신의 어느 국회의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기고를 포함한 필자의 활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랫것’의 ‘하극상’에 못마땅해 한 것이리라. 봉건성과 비민주성의 뿌리가 깊다. 한편 국회사무처의 한 고위간부는 언론사에 메일을 보내 필자를 비방하면서 필자의 기고문을 실어주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고,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는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필자의 발표만 돌연 취소되기도 했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필자는 조직 내에서 이른바 ‘왕따’가 되어 시대를 앞선 ‘혼밥족’으로 산지 몇 년이 계속되었고, 또 필자가 조직 내 ‘왕따’로 지내는 사이에 나이가 상당히 어린 한 직원에게 “당신”이라는 말을 듣는 수모까지 당했다. 하지만 결코 이를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심성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사실상 면직의 위기였던 두 차례의 징계위기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서면경고’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발단은 무슨 비판을 하고 기고문을 발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공포(公布)’라는 법률 개념을 둘러싼 학술 차원의 논의로 인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이 문제 제기는 최소한 입법을 주 업무로 하는 국회로서는 법률적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로잡은 것으로서 상을 받아야 마땅한 문제였다. 하지만 필자는 관련 개념의 정확한 규정을 요구했다고 하여 결국 기관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기관장으로부터 공식석상에서 “×××”라는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정신병자”로 지칭되기도 했다(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했지만, 국회는 자신들 소관 밖이라며 접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국회의 다른 문제를 국민국익위에 제기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국회는 소관업무 외라는 회신만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하여 국회 조직은 ‘그들만의 리그’, ‘성역’으로 영역화한다).

또 그 ‘서면경고장’을 준 총무과 계장은 필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훈계’까지 하였다. 나아가 이 징계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요청해 열린 고충처리 소청조차도 “근무한지 몇 년이나 됐느냐?” 등 조롱 섞인 언사만 들어야 하는 채 기각되었다. 이 소청에서 필자는 중요한 증인이기도 한, 진보진영 출신으로서 훗날 국회의원까지 된 한 당료의 증언을 요청했지만, 그는 귀찮은 탓인지 아니면 문제의식이 결여된 때문인지 출석을 거부했다. 무릇 정치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배려하고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가장 큰 덕목일 터다. 불행하게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 이렇듯 무관심하고 경시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폐단이리라.

내게 서면경고를 ‘부여’한 기관 측은 서면경고가 징계도 아니고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징계도 아닌 것”을 그토록 한사코 ‘부여’하고자 했을까? 필자가 서면경고를 받은 바로 그 날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 직원들이 복도에서 지나치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 날로부터 완전히 ‘왕따’가 되었고, ‘혼밥족’이 되어야 했다. 확실한 사실은 그것은 ‘주홍글씨’로서 곧 조직 내 ‘왕따’의 분명한 신호라는 점이었다.

언젠가 이 ‘법률 문제’에 대해 내가 발표를 하고 기관에서 관련 전문가를 초청하여 학술토론회를 연 적이 있었다. 당시 토론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할 때 한 법대 교수가 내 직함인 ‘해외자료조사관’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석했던 과장은 “번역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건 예를 들어 방호과 직원을 앞에 두고 “문지기”라고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 ‘조사관’이란 명칭그대로 조사를 담당한다고 하면 될 일을 굳이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예의 차원만이 아니라 인격 모독, 인권 유린이기도 했다. 나아가 “번역하는 사람”이 발표하는 자리에 토론하러 참석한 교수들도 모독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 과장은 이후 사과하라는 내 요구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과장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공무원으로 된 후 기관에서 개혁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것을 보거나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징계를 받던 당시 나는 갈릴레오처럼 탄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모두가 막무가내 1+1=3이라 강변하면서 1+1=2라는 나의 정답을 처벌하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부연해야 할 특징적인 사실은 필자에 대한 징계 사안이 묘하게도 모두 교수 출신의 기관장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여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야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또 그들이 입으로 진보를 내세우는가 보수를 내세우는가와 전혀 무관했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그러한 비정상적인 압박이나 상황에 굴복하여 무릎 꿇고 살 수 없었다. 필자는 매일같이 어둠 속 새벽 출근길에 국회 정문을 들어서면서 다짐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고 ‘투쟁’하자. 그리고 ‘연구’하자.” 그러면서 감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오늘도 국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전심전력, 실천하고자 하였다.

 

모든 분야에서 비판자, 실천자가 나와야 하고,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2019년 11월, 필자는 청천벽력과 같은 아내의 췌장암 4기 확진으로 근무가 불가능해졌고 끝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소속된 과의 과장이라는 사람은 한 마디의 위로의 말이나 문자도 없었다. 알고 지내던 한 국회사무처 고위 간부는 필자의 후임 채용에 자기 아는 사람을 도와준다며 정말 너무 경황이 없는 필자에 전화해 일언반구의 위로도 없이 필자가 수행했던 업무 내용 좀 보내줄 수 있냐는 어이없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또 내가 가슴이 무너지는 사연으로 직장을 떠났건만 국회도서관 노조 게시판에는 필자 후임 채용을 언급하면서 필자를 “문제아”라고 표현해 ‘조롱’과 ‘적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노조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화목이 가득한 직장”이다). 물론 필자를 응원해준 국회 직원들도 적지 않게 있지만, 참으로 몰인성화(沒人性化)된 조직의 성격이 그대로 투영된, 어이없게도 슬프고 이기적이며 비인간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1760년대의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 베카리아는 사람들이 분석적 탐구보다는 진부한 인상에 좌우되기 때문에 “생명과 자유에 가장 필수적인 문제에서도 수많은 오판을 겪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지쳐 인내의 한도에 이른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괴롭혀온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의 눈은 가장 자명한 진리를 향해 열린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이제 진리를 향해 눈을 떠야 할 때이다.

민주주의란 결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비판자 그리고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나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확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한 힘의 총화로써 우리 사회가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되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그리고 희망은 멀리 ‘추상’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까운 곳에 ‘구체’로 존재한다.

모름지기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실천되어야 한다. 입으로 진보를 주창하는 인사일수록 정작 그 일터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의 현실이다. 공적 가치와 사적 이익 추구의 주관적 등치가 빈발한다. 자기의 삶터와 일터라는 가까운 곳에서는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침묵하고 방관, 동조하면서 오로지 멀리 ‘열매’와 ‘자리’만 추구했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모순과 혼돈이 초래된 것이리라.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된다.

수, 2020/05/2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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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이 왜 국회에 존재하는지를 아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신은 국회도서관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국회도서관이 왜 존재하고 있으며, 원래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사실 국회도서관이 무슨 목적으로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국회도서관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국회 직원, 심지어 국회도서관 직원 자신들조차도 거의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아무런 인식도 관심조차 없다.

 

국회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읽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국회도서관이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무슨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 ‘국회도서관’이라는 명칭에는 왜 ‘도서관’ 앞에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이렇게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고 한다면 (2) 과연 ‘국회’와 관련하여 어떠한 임무를 그 특성으로 하는 도서관인가가 분명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회도서관은 도서의 수집, 정리, 보존 업무를 위주로 하는 일반 도서관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그런 도서관이어서는 안 된다. 국회도서관이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국회 내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국회’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영국 하원도서관의 『의회도서관을 위한 가이드』에는 “의회도서관은 입법부의 의원 및 증가하고 있는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특정하게 한정된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회도서관은 과연 이러한 존재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의회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의회조사처의 역사를 살펴보면, 1900년대 초에 의회도서관 직원의 능력만으로는 대규모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에 도서관 내에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의회조사처는 처음에 의회도서관의 6개 부서 중 하나의 기구로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오히려 의회도서관 전체보다도 질적인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부서로 발전하였고, 오히려 의회도서관이 의회조사처의 업무를 지원하는 거대한 정보 저장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세계 의회기구에서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모두 ‘의회조사처’ 기구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의회에서는 외교안보와 국제관계를 담당하는 ‘조사처’의 부서에서 수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입법고사국의 해외정보조사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의 직무 범위에도 ‘외국의 입법동향 분석 및 정보의 제공’(입법조사처법 제3조 5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여전히 국회도서관에 두고 있어 전체 입법지원 업무가 효율적으로 수행되지 못한 채 중첩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그대로 밝히자면, 국회도서관 내에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에 관련 석박사급 인력을 유지하면서 오직 그들을 활용해 국회도서관의 조직 유지 및 확대만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회도서관 내 전문 인력에게 승진의 기회나 계장 및 과장 등 간부의 길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의회 기구에서 ‘조사처’ 조직이 도서관과 별도로 분리된 프랑스 의회도서관은 직원수가 29명, 독일은 91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처’가 통합되어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도서관 직원이 총 226명인데, 그 중 조사실에 82명이 배치되어 있다. 즉, ‘조사처’ 조직이 분리된 의회도서관은 기본적으로 100명 규모를 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의회도서관이 국립중앙도서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와 전혀 단순 비교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 국회도서관의 정원은 300명이 훨씬 넘는다. 이미 입법조사처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순수 도서관 기능’만을 수행하는 데 현재의 인력이 적정규모인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뒤바뀐 국회도서관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지휘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은 거의 사서(司書)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도서관의 ‘의회정보실장’이나 ‘법률정보실장’이라 하면, 일반 사람들은 대단한 의회전문가 혹은 법률전문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직책들은 사서직 혹은 행정직이 담당하고 있다. 조직 구성에 있어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조직 운용의 원칙을 지키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배치한다는 뜻이다.

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독점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독일 의회도서관은 일반 사서와 레퍼런스(입법지원 담당) 사서로 구성되는데 레퍼런스 담당 사서는 연구직으로서 일반 사서의 상위에 있다. 또 일본 국회도서관 입법고사국의 전문조사원의 대우는 행정부 1급에 준해왔다.

한편 사서에 관한 공무원 직제도 미국에서 일반 사서는 GS-7등급(GS; General Schedule, 미국 공무원은 GS-1등급부터 GS-15등급까지 분류되어 있다. GS의 숫자가 클수록 고위직이다)이고 전문성과 경력에 의하여 GS-9등급부터 GS-12등급으로 분류된다(그 이상의 등급도 가능은 하다). 이에 비하여 미국 의회도서관의 의회조사처 수석 연구원의 경우는 GS-18등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100에서 1016까지 순차적으로 구분된 공직 분류지수 중(숫자가 높을수록 직위가 높다) 일반직 사서(주제전문 사서 포함)의 지수는 204에서 779에 속해 있다. 여기에서 780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3급에 해당하고, 결국 일반직 사서는 3급 이상의 간부직에 임용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회도서관은 본래의 존재 이유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본말은 전도되고, 그 위상은 뒤바뀐 채 왜곡되었다. 감시가 결여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제 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본래의 설치 목적에 부합하는, 국회도서관다운 국회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이 복원되어야 한다.

화, 2020/06/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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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자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어 봅니다.

현대철학은 니이체와 프로이트 및 마르크스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니이체는 존재는 생성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폐기하고 생성론을 새로운 존재론으로 제시하였으며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식의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에 칸트의 주체철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선포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서구의 관념론을 거부하고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시하면서 물적 토대에 대한 구조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설파하였습니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는 토대인 생산양식의 혁명을 주장하였으며(마르크스는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엥겔스의 객관적인 결정론을 버리고 토대의 모순이 극대화된 임계상황에서 정치적 의식화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지가 고양되었을때 토대인 자본주의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후기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슬라보이 지젝은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을(대중의 계급의식이 소멸함에 따라 토대의 혁명은 불가능해졌기에 상부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이라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유와 무가 둘이 아니듯 불교의 중도사상과 양자역학 의 중첩성의 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하나만의 혁명은 온전한 변혁이 아니기에 결코 그에 따른 희생에 비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마르크스의 혁명이 종국에 실패한 것은 상부구조에 위치한 욕망의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부구조는 토대에 종속된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이분법적인 실체론에 입각한 유물론의 필연적인 결론이라 할 것이므로 욕망의 본성을 반영하지 아니한 새로운 생산양식의로의 혁명의 성공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토대에 대해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 즉 상대적 결정론을 주장한 발터 벤야민이나 조르주 루카치의 견해를 계승한 지젝의 상부구조의 혁명론도 현실적으로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결코 절반의 치유책에 불과하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한 대중의 기본적 욕망의 결핍을 대부분 해소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욕망의 절대적 결핍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서 자본이 자신의 확장 및 심화를 위하여 생산한 잉여욕망을 마치 본래적인 인간의 욕구인 것처럼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대중은 무한한 잉여욕망을 당연한 본성인 것처럼 추구하다보니 결핍에 따른 계급의식 또는 투쟁의식을 상실하였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을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못 벗어난 대중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임을 깨닫고 이를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진지전 이론을 개진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전통을 옹호하는 전통적 지식인 대신에 유기적 지식인이 전선의 참호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어 이를 해체하는 진지전을 펼침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국가나 자본을 해체하여 재구성 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대중보다는 깨어있는 유기적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자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론운 제시한 그람시의 이론이 더욱 실현가능성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볼 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유물적인 심층분석 보다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진영의 이데올로기나 포플리즘의 전위로서 정치적 구호에 흡수되어 자신의 변혁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착잡함을 금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진보 또는 보수의 이항대립적 대결구도로 해석하면서 피상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할 뿐 결코 한국의 국가재벌독점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에 대해서는 과감히 눈을 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온전한 혁명은 상부. 하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언듯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바램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는 온전한 혁명은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물론 지식인조차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토대와 상부구조를 변혁할 선구적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지혜와 토대를 변혁할 대중의 결집된 주체의식과 투쟁의지가 가능하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들을 전위에서 창도하고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토대와 상부구조를 주체적, 자발적인 혁명에 의해서는 불가하므로 결국 외부적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슬프지만 어쩔 수없이 추단해봅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회 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자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민운동이 시민단체운동으로 협소하게 왜곡되어버리고 그나마 시민이 아닌 실무자 중심의 운동으로 전락해버렸으며 그 결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운동을 한 단계 레벨업을 시키기보다는 대부분이 정치운동으로 흡수되면서 결코 시민운동과 주체는 물론 목적과 작동방식이 다른 정치운동의 하부구조로 전락해버려 시민운동의 존재의미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기에 이제는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페스트에 의해 중세가 몰락하고, 세계대전에 의해 근대가 몰락한 역사가 반증하고 있듯이 현대 산업화의 모순에 따른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지구적 차원의 파괴도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 이번 코로나 팬더믹 사태가 인간의 생존방식과 생산양식의 변환을 가져올 사건, 즉 알랭 바디우의 진리사건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따라서 데리다의 ‘부재의 진리’를 찾는 노력도 우리에게 그나마 혁명의 당위성을 가르쳐주고 있읍니다만 이 또한 관념적 철학자의 현실불가능한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지젝은 불가능에 도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고민해야할 문제점은 현재의 생산양식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다른 생산양식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치명적인 결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복지국가를 통하여 이미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시켜왔기에 다른 보완재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외에 한국만의 독특한 재벌자본주의에 따른 독점모순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평등 모순 및 기타 부가적 모순인 분단모순 및 지역모순 등을 열거할 수가 있는 바, 과연 그러한 모순들이 한국사회 시스템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유불가능한 치명적 상황을 만들었기에 대체재가 필요한 임계상황인지 아니면 재정비하거나 보완하는 차원으로 치유가 가능한 상태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으나 어떤 결론이 나던지간에 이들을 치유하는 방식은 결국 구조적인 접근방식으로 분석하고 해답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진보정권이라하여도 지금껏 계급과 계층 및 집단을 망라하여 한국사회 모순에 대한 구조적인 진단과 근본적인 치유책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집단을 초월하여 진지한 연구와 성찰과 변혁의지가 부재한 실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긴 안목으로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적 자세를 갖춘 열린 대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참여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금, 2020/06/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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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한민국 대전환의 시작을 선언했다. 지구촌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증유의 바이러스 위기를 벗어나면서 경제위기와 기후위기까지 잡아보겠다는 야심찬 ‘한국판 뉴딜’ 추진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5년간 국비만 114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투자를 약속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지방비 25조원을 포함하여 어떻게 이 막대한 투자비를 조달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인재 양성계획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 정당 등 주요이해관계집단의 기대와 요구를 담아냈다. 정부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환경부, 산업부, 과기부, 행안부, 교육부, 복지부, 중기부, 해수부, 산림청, 고용부 등이 참여하여 정책통합을 시도했다. 기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3대 축으로 구성된 경제정책 기조아래 ‘사회 안정망 확충’을 바탕에 깔고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림 1> 한국판 뉴딜 3대 정책 및 5년간 투자 총액 160조 원, 예상 일자리 190만개

한국판 뉴딜 정책은 앞으로 5년 동안 국비와 지방비, 민간투자를 포함하여 총사업비 160조원을 투자하여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함으로써 3중복합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추격형 국가에서 추월하는 선도형 국가로 대전환하겠다는 담대한 포부와 정치적 의지의 반영이다.

<그림 2> 한국판 뉴딜 비전과 2+1 정책방향 <출처 : 기획재정부>

<그림 3> 한국판 뉴딜 4+3+2 사업 분야 및 28대 과제 <출처: 기획재정부>

녹색전환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길 (1)

민간투자를 포함해 58조2천억 원을 투입하는 디지털 뉴딜은 ①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 생태계 강화, ②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③ 비대면 산업 육성, ④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 강화는 ① 고용사회 안전망과 ② 사람투자이다.

그린 뉴딜은 ①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②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③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하는 것이다. 이 3개 분야에 아래와 같이 8개 세부 사업을 추진한다.

<그림 4> 그린 뉴딜 3대 분야 및 8대 사업 분야 <출처: 기획재정부>

정부의 담대하고 야심찬 계획 발표에 대해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으면서도 몇 가지 넘어서야 할 지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린 뉴딜이 ‘문재인 대통령식의 녹색성장’이라는 비판을 벗어나려면 다음과 같은 5대 쟁점들이 모두 풀려나가야 할 것이다.【1】

첫째, 그린 뉴딜의 정의와 목표가 무엇인가,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린 뉴딜을 단순히 친환경산업에 공공재정을 투입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1930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을 추진했던 것처럼 그동안 정당한 사회경제적 대가를 받지 못한 노동자계층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노사관계 개혁과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함으로써 미국식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실현하는 사회대개혁을 추진했던 것처럼 한국의 그린 뉴딜도 환경을 적극 고려하면서 경제성장도 도모하는 새로운 녹색경제체제로 대전환하는 사회적 합의, 사회적 협약인가 여부이다. 여전히 그린 딜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되고 있다. 임기 이후까지 5년 동안 막대한 규모의 재정투자를 통해 문제가 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언제까지 얼마나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2050 넷 제로(Net Zero)’를 달성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이 환경단체에 의해 지적되었다. 그 대신 이번 발표에는 “탄소 중립을 지향한다”라고만 되어 있어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았다.【2】

한국은 이명박 정권 시기에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고 녹색성장을 추진하여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그린 뉴딜정책을 이미 시행했다.【3】 당시 정부는 이 녹색뉴딜 사업의 핵심인 국정과제 최우선순위인 일자리 창출 수치를 내놓았고, 그동안 부처간 중복이 심하고, 산출숫자가 ‘주먹구구’라는 비판과 지적을 의식해 비교적 구체적 계산방법과 함께 사업별 고용 창출 인원을 끝자리 수까지 맞춰 내놨었다. 그러나 이미 계획에서부터 건설단순생산직이 95.8%였다.【4】

<그림 5> 이명박 정권의 녹색 뉴딜사업 구성도

한 마디로 이명박 정권의 녹색 뉴딜 사업은 일자리 창출계획이었고 사회간접자본 개발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추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었고, 사회적 동의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효과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2020년 그린 뉴딜은 이것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분명히 정리하고 나가야 한다.

어떤 경우든 녹색 세탁(green washing)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재원의 확보와 함께 투자 규모는 적정한가 여부이다. 그린뉴딜 종합계획은 “5년 단기투자 계획 제시에 그쳐 기후위기 대응 중장기 비전이 안 보인다, ‘2050년 넷 제로’ 같은 탈탄소사회 청사진을 못 내놨고, 에너지전환 정책 목표도 없고, “혁신적 계획 수립도 의욕적 재정투자도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5】

한국 경제 규모는 유럽(EU)의 10배라고 볼 수 있다. 유럽 역내 국가들은 그린 뉴딜을 위해 7년간 1,0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규모로 볼 때 100조원 정도는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5년간 42조7천억 원을 투자하는 데 그치고 있다.【6】

둘째, 그린 뉴딜의 대상 영역과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린 뉴딜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개념정의나 문제의식과 직결된 이 쟁점은 그린 뉴딜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과 세계경제의 파국적 변화 가능성, 감염병의 세계적 만연과 확산위기라는 점에서 에너지 전환을 비롯한 포괄적 전환에 치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에너지 전환만이 모든 문제 해결수단과 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슨 분야나 영역을 선택하고 집중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책의 우선순위 배정과 비중 부여문제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

<그림 6>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초안

2020년 7월 14일 발표된 한국판 뉴딜정책 내용과 6월 1일 처음 발표된 정책내용의 기조가 사실상 동일, 유사하다. 더 나아가 그린 뉴딜과 관련해 보자면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문재인 정부의 그것 역시 동일, 유사하다(그림 3, 4, 5, 6 참조).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놓고 보자면 그동안 관련부처 정책입안자들은 교체, 이동, 보충되었으나 정책내용과 구조는 이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 유사한 틀 안에서 이것저것 꿰어 맞추는 방식으로 채워져 온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석탄 화력발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부에 달려있다. 석탄 화력발전의 조기 폐쇄와 가동 중단, 대체 에너지 개발, 석탄 화력발전 종사자의 전업 훈련교육과 전업, 탈석탄 발전시대의 지역경제 회복과 일자리 영향 최소화 등 보완대책이 병행 개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형성, 지속가능성을 보장·확보할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하며 다양한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순환경제를 위한 자원순환정책, 농수산식품정책, 전반적 환경질 제고, 생물종 다양성 보전과 생태계 회복탄력성 유지 등을 포함한 포괄적 정책을 개발, 추진, 이행하고 있다.

셋째, 그린 뉴딜은 정의로운 전환인가?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기술의 개발과 도입, 디지털 전환, 생태적 전환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고용기회가 확대될 수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 일자리 축소나 회색 노동자의 소멸로 이어질 기회가 넓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연소 동력의 자동차 생산은 수많은 부품업체와 협력업체, 완성차 노동자들의 고용 현장이었으나 전기차, 수소차 제조가 주류가 되면 기존 자동차공업 노동자의 대량실직, 해고는 불가피하다. 이 경우 이들 회색 노동자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재교육 기회 제공, 전직을 통해 노동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는 고용의 연착륙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포럼은 디지털 그린특구 지정을 제안했다. 예를 들면 화력발전이 밀집한 당진과 보령지역에 그린데이터특수, 영덕 삼척 디지털 클린에너지특구, 자동차공업 밀집지역인 울산, 경남에 디지털모빌리티특구, 김해 그린데이터센터특구, 창원 그린리모델링특구 지정을 말한다.

넷째, 그린 뉴딜 추진을 위한 법률과 제도, 조직을 어떻게 입안, 구성, 운영할 것인가?

한 마디로 그린 뉴딜은 기존 방식과 접근으로 추진해 왔던 개별 사업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 협약’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이런 담대하고 통합적인 추진내용을 담아내는 법을 마련하여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지속가능발전법, 에너지법을 폐지하여 일부 통합, 전면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린 뉴딜 추진, 이행을 위한 협치·공치(거버넌스) 기구로써 기존의 녹색성장위원회, 국가기후환경회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미세먼지대책특별위원회 역시 폐지, 전면 교체, 통합하여 운영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누가 그린 뉴딜 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하고 주도할 것인가?

말하자면 누구를 위해 누구와 함께 추진하는 그린 딜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는가 여부이다. 디지털 뉴딜이든 그린 뉴딜이든 ‘한국판 뉴딜’은 말 그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합의여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와 정당 등은 기후위기 극복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판 뉴딜을 위한 대전환을 재빠르게 논의해 왔다.

▪2020년 6월 05일 : 228개 전국 모든 기초 지자체, “기후위기 비상선언”

▪6월 30일 : 국회 한정애 의원 등 48인,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 제출

▪7월 02일 : 김성환의원 등 109인, 기후위기비상선언 결의안 제출

▪7월 07일 : 17개 전국 모든 광역 지자체, 탄소중립 선언

▪7월 08일 : 국회 강은미 의원 등 12인,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기후위기대응 및 특별위원회 설치 결의안 제출

▪7월 14일 : 대통령, 한국판 뉴딜 발표. 2050년 탄소 제로 발표 예정되었으나 없음

<출처: 연합뉴스>

이들 뿐만 아니라 경제계와 노동조합, 시민사회와의 협치·공치와 공동행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보 논의와 범사회적 수용성이 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수도권 부동산가 파동을 해결하기 위한 주택공급을 위해 박정희 정권 이래 고수해 온 서울지역 그린벨트 해제 논의나 석탄 화력발전 해외 수출 결정과 같이 그린 뉴딜 시책에 정면 배치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 회색정책이 반복된다면 누가 녹색정책의 주류화, 산업정책의 녹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될 것인지 매우 의심이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만이 앞장서서 한국 뉴딜을 선도하는게 아니라 장관과 차관이 책임지고 이웃부처와의 정책조정과 협의를 통해 정책통합을 우선 실현하고, 확정된 추진과제는 대통령 임기이내, 국가계획 추진일정에 맞추어 지체나 차질이 없이 이행, 실천되어야 한다. 그런 그린 뉴딜 우선순위 정책 효과가 가시적으로 성과를 거두어 갈 때 시장과 시민사회의 신뢰가 축적되어 협치가 구현됨으로써 회색국가에서 기후불량국가의 오명을 씻어내며 이산화탄소 등 지구온난화기체 배출이 없는 녹색국가로의 대전환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1】 윤순진 2020 「그린 뉴딜의 원칙과 방향」. 그린뉴딜 경제위기 기후위기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현장과 정책의 대화. 주최·주관 국회의원 이학영·김성환·안호영·진성준·강은미·윤준병·이해식·한국환경정책연구원·한국환경회의 발표 자료. 2020. 7. 1.

【2】 경향신문 2020.07.15.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7152052005#c2b

【3】 기획재정부 2009.01.23. 보도자료. 국제기구 UNEP의 한국 녹색뉴딜정책에 대한 긍정평가. UN 환경계획(UNEP,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은 ‘09.1.9일 보도 자료에서 한국과 일본이 녹색뉴딜의 국제적 기조확산을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하였음. UNEP Achim Steiner 사무총장의 브리핑 주요 내용 : ㅇ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 및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세계적 차원의 녹색뉴딜(Global Green New Deal) 및 녹색경제 이니셔티브(Green Economy Initiative)가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

ㅇ 청정기술ㆍ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경제침체와 실업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

ㅇ 최근 한국과 일본이 녹색뉴딜 정책을 입안ㆍ발표함으로써 국제적 기조확산을 주도.

* UNEP는 ‘10년까지 녹색산업 시장, 공공지출 및 정책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통해 각국의 경제위기 극복 및 녹색경제성장 전략 수립지원 예정.

【4】 아시아경제 2009.01.06. https://www.asiae.co.kr/article/2009010610274672546

【5】 한겨레, 2020.07.14.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53682.html

【6】 세계일보, 2020.07.15.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484470

목, 2020/07/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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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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