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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계에 부는 소득세율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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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계에 부는 소득세율 논쟁

익명 (미확인) | 화, 2019/01/15- 11:14

편집자 주: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개원한 연방하원의원 중에 민주사회협회(DSA) 여성회원 다수가 등원하면서 민주당 내에 진보적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29세로 최연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가 중심이 되어 소득세 최고세율을 70% 이상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미국 정계와 언론이 요란한 논쟁에 빠져있다. 공화당 측에서 AOC가 대학 중에 춤에 빠진 얼간이었다는 비난성 유튜브를 올리자 그녀는 즉각 개원 첫날 춤을 추며 의원 사무실로 들어가는 동영상을 올려 공화당의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비하의 시각에 일격을 가했다. 아래의 글은 뉴욕시립대학의 크루그만 석좌교수가 NYT에 AOC의 입장을 지지하는 칼럼을 올린 것을 번역한 것이다. 증세 정책에 거부감을 보이는 문재인 정부에게 전하는 간곡한 충고이기도 하다.


 

필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가 하원의원으로서 얼마나 좋은 의정활동을 펼칠 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당선은 이미 대단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젊고, 주관이 뚜렷하며, 화면을 잘 받는 유색여성이 일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많은 우파들이 잔뜩 벼르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한 광기 속에서 그들은 무심코 그들의 속내 진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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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노출되고 있는 공격의 몇몇 모습들은 문화적 형태를 띄고 있다. AOC가 대학시절 춤을 추던 영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히스테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비치고 있다. 우선 AOC 본인에 관한 것이 아닌 히스테리 자체에 관한 노출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면면들엔 학구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우파가AOC의 “정신나간” 정책 아이디어를 비난하는 모습에서, 누가 진정으로 정신 나간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은 고소득자들에 대한 70-80% 세율에 대한 AOC의 찬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파의 생각은 뻔한 이야기겠지만, 미친 생각이 아닌가? 과연 누가 이런 정책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겠는가? 노벨상 수상자이며 세계적인 공공재정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피터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이나 찬성할만한 아이디어일 것이다. (공화당과 지지자들은 그가 “부적격자” 라는 이유로 연방준비 위원회에 지명되는 것을 막긴 했다. 실화다.)

그리고 이 정책은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했던 적이 없다? 2차대전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냈던 시기를 포함한 기간 동안의 미국을 제외하면 말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에마누엘 사에즈(불평등에 관련한 최고의 전문가들 중 한 명이다)와의 공동연구에서, 다이아몬드는 최적의 최고세율을 73%로 예측했다. 더 높게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바마 전대통령의 경제자문 위원회 수장이었고, 최고의 거시경제 학자이기도 한 크리스티나 로머는 최고세율이 80%를 넘어야 한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치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이아몬드와 사에즈의 분석에는 두 개의 기본명제가 있다. 바로 “한계효용체감”과 “경쟁시장”이다.

한계효용체감은 상식적인 개념이다. 소득이 아주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 1달러의 추가소득은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1달러의 추가소득보다 의미가 적을 수밖에 없다. 연소득이 2만 달러인 어떤 가족에게 1천 달러가 더 주어진다면 삶에 큰 변화가 생기겠지만, 백만 달러를 버는 어떤 사람에게 1천 달러가 주어진다면 체감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경제정책에 시사하는 점은, 정책을 정할 때 소득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정책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부자들을 조금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끼칠 뿐이고, 영향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 역시 느낄 삶의 만족도에도 별 영향은 없을 것이다.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은 사고 싶은 걸 모두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왜 100 % 의 세금을 매기지는 않는가? 그렇게 하면 그들이 그 많은 돈을 벌게 만드는 장려책을 모두 없애는 것이 되며,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부자들에 대한 세금정책은 그 자체로는 부자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장려책으로 하여 부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나머지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경쟁시장이라는 요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독과점이나 여타 왜곡이 없는 완전경쟁 경제체제 안에서는-보수주의자들은 우리 경제가 이러한 상태에 있다고 믿길 원한다- 모두가 한계 생산물만큼 돈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한시간에 1000달러를 번다면, 당신이 한시간을 일할 때마다 경제산출량에 1000달러를 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왜 신경을 써야 하는가? 부자 한사람이 일을 한시간 더해서 경제의 산출량에 1000달러를 더한다면, 즉 본인이 일을 한 대가로 1000달러를 받아 간다면, 다른 모든 이들의 소득을 합한 총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있다. 왜냐하면 부자는1000 달러의 추가 소득에 대하여 더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소득자들이 일을 조금 더 열심히 하게 만들면 추가적인 노력으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는 것이며, 반대로 그들이 일을 덜하게 되면 그들에게서 거두는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둘 때는 얼마의 세수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만 신경 쓰면 된다는 의미이다. 최고 소득자들에 대한 최적세율이란, 가능한 최대의 세수를 거둘 수 있는 세율 것이다.

앞서 말한 연구들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세율이다. 부자들의 세전소득이 세율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지를 나타내는 증거들을 기반으로, 상기 최적의 세율을 산출해 내는 것이다. 말한 바 있듯이, 다이아몬드와 사에즈는 최적세율을 73%로 보았고, 로머는 80% 이상으로 예측하였다. 이는 AOC가 주장한 바와 일관성 있게 연계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시장이 완전경쟁 상태가 아니며, 많은 독점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답은 거의 확실하게 더욱 높은 세율이다. 짐작컨데 이런 독점체제들 속에서 돈을 버는 것은 고소득자들이니까.

그렇기에 AOC가 본인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에 의거한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그녀가 몇몇 저명한 경제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에, 그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로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정책적 아이디어와, 광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세금정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거의 한 입을모아 부자감세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의견들은 상류층에 대한 감세가 경제에 커다란 혜택을 가져온다는 주장에 근거한 것인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사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공화당의 세율 정책을 뒷받침하는 진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실제 증거들이 압도적으로 그런 주장들을 반박하고 있으니까.

최고한계 효용세율(왼쪽)과 1인당 GDP(오른쪽, 10년간 측정)를 비교한 결과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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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세율과 성장/신용-세금에 대한 정책센터의 경제분석국 자료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미국이 부자들에게 굉장히 높은 세율을 부과 했다는점(이는 현재 AOC가 제안하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러면서도 경제상황은 좋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세율이 낮아지면서, 경제성장은 둔화되기 시작했다.

왜 공화당은 초당적인 경제학자라면 누구도 지지하지 않고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비교해도 논박 당하기만 하는 세금이론에 매달려 있는가? 부자감세로 혜택을 받는 이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그리고 대답은 뻔하다.

바로 당의 물주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경제학에 매달리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사기꾼임이 분명해 보이고 수치도 효과적으로 조작하는 소위 “경제학자”들을 선호한다.

AOC와 그녀를 무식한 괴짜로 만들려는 지속적인 노력들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 해보자. 세금에 관해서라면 그녀는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며, 공화당 당원회의 소속된 거의 모든 사람들보다 경제학에 관해서는 확실히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그녀가 뭘 “모른다”는 말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Paul Krugman(폴 크루그먼)

2000년부터 NYT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였으며, 뉴욕 시립대 대학원의 석좌교수

국제무역과 경제지리학에 관한 연구로 2008년 노벨 경제과학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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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실패규모는 숨이 턱 막힐 정도입니다. 그것은 민주당지도자나 공화당지도자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 정치문화의 끊임없는 실패이며, 이는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다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무지하며 관심이 없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개발도상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은 예외없이 부패를 경험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전반기에 미국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에서 싸웠습니다. 이에는 민주당의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인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책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거의 같은 해에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전역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독재자들을 세우고 지원했지만, 수십 년 동안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1961년 초에 CIA가 파트리스 루뭄바 암살을 암암리 지원한 이후, 콩고 민주 공화국의 모부투 독재 정권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1980년대에는 로널드 레이건 휘하의 미국은 좌파정부를 방해하고 전복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으로 중앙아메리카를 황폐화했으며 해당지역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1979년 이후 중동과 서아시아는 미국의 외교정책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아프칸 전쟁은 42년 전인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 행정부가 소련이 지원하는 정권과 싸우기 위해 이슬람의 지하디스트를 은밀히 지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CIA가 지원하는 무자헤딘은 소련의 침공을 도우며 역설적으로 소련을 쇠약하게 만드는 분쟁에 가두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을 폭력과 유혈 사태의 40년 동안 끝없는 나락의 상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프칸을 포함하여 중동과 서남아 지역 전체에 걸쳐 미국의 외교 정책은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1979년 이란의 샤(미국이 설치한 독재자)를 축출한 이란혁명에 대응하여,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의 신생 이슬람 공화국과 전쟁과정에서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고 무장시켰습니다. 당시의 이란-이라크의 전쟁에는 대량 유혈사태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화학전이 뒤따랐습니다. 황당하게도 상기의 유혈사태(이라크의 실패)는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어지고 1990년과 2003년 두 차례 미국 주도의 걸프 전쟁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프간의 비극’이라는 마지막 라운드는 200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9.11 테러 공격이 있은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했던 이슬람 지하디스트를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 주도의 침공을 명령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을 계속하고 더욱 많은 군대를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CIA에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하여 시리아 대통령 알-아사드를 전복시키도록 명령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잔인한 시리아 내전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오바마는 NATO에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엘-카다피를 축출하라고 명령했고, 리비아와 이웃 국가들(리비아에서 전투기와 무기 유입으로 불안정해진 말리 포함)에게 10년 간의 불안정을 조장했습니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단지 정책실패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기저에는 모든 정치적 도전에 대한 해결책이 군사개입이나 CIA가 배후인 불안정화(CIA-backed destabilization)이라는 미국외교 정책기관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다른 나라들의 욕망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보듯이, 미군 및 CIA 개입은 심각한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가군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고통을 완화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대신, 일반적으로 이들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기반시설을 폭파하는 한편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목숨을 걸고 해외로 도주하도록 결과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지출을 얼핏 보기만 해도 아프가니스탄 정책의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아프가니스탄재건 특별감찰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에서 2021년 사이에 약 9,46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1조 달러에 달하는 지출을 했지만 미국은 아프칸인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9,460억 달러 중 8,160억 달러, 즉 86%가 미군을 위한 군사비로 사용되었습니다. 더구나 너머지 1,300억 달러 중에 830억 달러가 아프간 보안군에게 지원되고 약 100억 달러는 마약금지 작전에 150억 달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관에 사용되는 등,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미국의 지원에 혜택을 실제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적 지원” 자금으로 210억 달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테러를 지원하고 국가경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효과적이고 접근가능하며 독립적인 법률시스템의 개발을 우선 지원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지출의 많은 부분이 실제 발전과는 거의 관련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 지출의 2% 정도, 아마도 2% 미만이 기본 기반시설 또는 빈곤감소 서비스의 형태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미국은 깨끗한 물과 위생, 학교건물, 진료소, 디지털 기반투자, 농업 장비 및 확장, 영양 프로그램 및 기타 많은 프로그램에 투자하여 경제적 궁핍에서 국가를 구제했어야만 했습니다. 대신 기대수명이 63세, 산모사망률이 10만명 당 638명, 발육부진아의 비율이 38%인 나라를 남겼습니다.

미국은 1979년에도, 2001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 20년 동안도 아프가니스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군사개입이 불가피했다면, 미국은 산모의 건강, 학교, 안전한 물, 영양 등에 투자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육성 지원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특히 아시아 개발은행과 같은 기관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의 인도적 투자는 아프가니스탄과 기타 빈곤한 지역에서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고 미래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들은 그런 사소한 일에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 대중에게 강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슬픈 진실은 미국의 정치계급과 대중매체가 가난한 나라에 가차없이 무모하게 개입하면서도 그들 나라의 사람들을 경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 엘리트들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조차 비슷한 경멸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카불 함락 이후 (한때 미국의 중동개입을 충동질한) 미국 대중매체는 예상했다는 듯이 아프가니스탄의 회복불가능한 부패를 미국의 실패 탓으로 돌립니다. 미국인의 문제의식에 대한 부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지에서 전쟁에 수조 달러를 지출한 후 미국이 행한 노력의 결과물로 보여줄 것이 모래 위의 뿌려진 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8-18.

Jeffrey D. Sachs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로 해당대학의 지속가능개발센터 소장이자 3대째 UN사무총장의 자문역으로 SDGs를 주도하였으며 현재 지속가능개발솔루션 네트워크의 의장을 맡고 있다

월, 2021/08/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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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처럼 예측가능한 막무가내의 강경파, 기회주의적인 외국혐오파, 심지어 일부 합리적인 평론가들도 아프가니스탄의 참패로 인해 미국의 신뢰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New York Times 의 Uber-hawk Bret Stephens 는 이제 “대만,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국가, 이스라엘, 일본 등 모든 동맹국이 스스로 아프칸 상황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만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적인 시도로 중국정부 대변지인 Global Times 는 상기의 Stephens의 의견에 동의하고 대만 지도자들에게 중국이 공격한다면 미군은 그들을 도와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카불의 함락은 “대만 미래운명의 징조”임을 암시합니다. 일반적으로 냉철한 정신을 지닌 Financial Times 의 Gideon Rachman조차도 Biden에 대한 신뢰성이 “파괴”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재난이 “서구사회가 미국의 안보보장에 의존할 수 없다”는 주장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믿습니다.

뉴욕타임즈의 Stephens 발언은 아마도 현재의 시점에서 지나치게 상황을 과장을 하고 있고  Global Times는 내용은 무시해도 좋은 선전용이지만, 일반사람들은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결과가 미국의 신뢰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한 논리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익을 위해 헛된 전쟁을 계속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보다 심각한 이익이 위협을 받을 때 상대국과 싸울 것인지’에 대한 결정과는 무관합니다.

20년이 지난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2,500명의 미국인이 사망하고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이 미국이 알래스카, 하와이 또는 플로리다를 방어하기 위해 맹렬히 싸우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결론지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진지한 사람이라면 미국이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립하는 것(거의 없을 것 이지만)을 방치하거나, 러시아의 NATO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미국안보에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해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미국 안보자원의 장기적인 고갈을 제거함으로써(아프가니스탄에 최소한의 미군 주둔에도 연간 400억 달러 이상 비용이 소요됨) 아프칸에서 철수하면 미국이 보다 중요한 우선순위에 시간, 재정 및 관심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보다 중요한 이해관계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과 이러한 문제에 집중할 정치적 관심을 높일 수 있으며, 따라서 제시한 여러 공약을 불신하기 보다는 보다 신뢰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George F. Kennan이 베트남 상황에 대하여 말했듯이, “사치스럽거나 전망이 없는 목표를 완고하게 추구하는 것보다 잘못된 입장을 단호하고 용감하게 청산함으로써 세계로부터 인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경험의 역사는 철수에 대한 확신의 두 번째 원천을 제공합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50,000명 이상의 군대를 잃은 후 똑같이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철수와 뒤이은 사이공의 함락은 NATO의 붕괴를 일으키지 않았고,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이 소련이나 중국과 연합하도록 이끌지 않았으며, 미국의 다양한 중동 클라이언트 국가들이 미국과 관계를 단절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케넌의 말이 맞았습니다. 전쟁을 끝내고 미군은 특히 베트남의 시대에 무시되었던 재래식 전력의 재건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4년 후, 오히려 소련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고 염려했던 도미노 현상은 동유럽에서 발생했습니다.

1979년 이란 샤(황제)의 몰락, 1984년 레바논에서 미국의 철수, 1994년 소말리아에서 철수, 또는 실패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같은 자질한 여러 차질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심각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어느 것도 다른 국가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도움을 구하고 소중한 자산과 가치를 지닌 막강한 강대국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유일한 예는 아닙니다. 영국은 유럽의 정치가들에게 오랫동안 “배신적인 알비온(영국인에 대한 비속어)”으로 조롱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끊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들의 정부는 공동의 이익을 반영할 때 강력한 동맹을 신뢰할 수 있으며, 맹목적인 충성만으로 강대국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셋째, 미국의 신뢰에 대한 외국의 비판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의 보호에 의존하게 된 국가들의 엘리트들은 워싱턴이 자신의 국가를 위하여 보다 많은 일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미국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엉클 샘(미국)이 외교적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상황에 보다 많은 자원을 쏟아 붓지 않기로 결정할 때마다, 어딘가에 동맹국이 나타나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선언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워싱턴은 많은 무기를 보내거나 고위관리가 손을 잡고 추가지원의 서약을 제공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상대국에게 날아가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아프칸 개입에서 배워야 할 핵심적 교훈은 미국이 지닌 자기과신의 위험입니다. 과연 미국의 지도자 중에 누군가 이점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공정하게 말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전쟁과 비극적인 결말은 모두 미국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약속의 신뢰성을 부정할 만큼 실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은 2006년, 2009년, 2011년, 심지어 2017년에도 철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많은 미국 파트너들이 아프칸에서 떠나갈 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전에 주장한 바와 같이, 미국이 지닌 세계영향력의 핵심 요소는 상황을 읽고, 어려운 선택을 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선택하고, 잘 설계된 전략을 수행하는 성실함을 포함하여 능력과 훌륭한 판단력에 대한 평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방금 일어난 일은 미국의 외교정책기관이 여전히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그러한 문제제기는 20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일입니다. 적절한 교훈은 미국이 소위 내용없는 신뢰를 위해 어리석은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반복적인 오류를 결정한 인사들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이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기 모든 것이 일부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가장 염려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자신의 방어를 소홀히 하고 미국의 보호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부유한 미국의 동맹국이라면 이제 그러한 접근방식의 판단을 재고하고 싶을 것입니다. 당신이 무능하고 불법적인 지도자이고 정부가 부패로 가득 차 있다면 Ashraf Ghani(아프칸 대통령)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굴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에 비하여 약한 강대국(중국)은, 미국이 아프칸이라는 수렁에 빠진 20년 동안 막대한 이익을 받았다면, 이제 미국이 점차 정신을 차리고 미래에는 자신의 발등에 총을 쏘는 어리석음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점에 대하여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방어에 정당한 몫을 지니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충실한 합리적인 파트너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Foreign Policy(포린폴리시) on 2021-08-21.

Stephen M. Walt

하버드 국제관계학 분야의 석좌교수로 해당분야에 구루로 평가받고 있으며, 포린-폴리시에 정기적인 칼럼을 제공하고 있다

화, 2021/08/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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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아프가니스탄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실패하면서, 이는 시리아의 붕괴보다 서구의 자유세계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탈레반의 절대권력과 전세계에 퍼져있는 지하디즘과 연계는 조만간 다양한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협할 것입니다.

뉴델리 —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성급하고 허술한 군사적 퇴장에 따른 테러리스트들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미국의 오랜endless전쟁에 비참한 종말을 가져 왔습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팍스-아메리카나의 종말을 공식화하고 근대역사에서 서구의 우위라는 장막을 찢어 내리는 중대한 분수령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미국 정치집단은 자국민을 경멸하는 강압 국가들에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개입해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탈레반의 승리를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난치병적인 부패 탓으로 돌리고 있는 미국의 자기기만적인 대중 미디어매체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제적 우위가 이미 중국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던 시점에, 아프칸에서 일어난 전략적이며 인도주의적 실패로 인하여, 미국은 자신에게 가해진 국제적 신뢰와 위상의 타격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 동맹국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들이 위험에 처하여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전략적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입니다.

아프칸의 재앙은 미국이 파트너인 아프간 정부를 철저히 묵살하고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테러리스트인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한 이후에 전개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탈레반과 파우스트적 협상을 진행했고, 이들이 공개적으로 합의를 위반했음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협상에 따라 군사적 철수를 서둘러 진행하였습니다.

아프간 방위군의 극적인 붕괴와 정부의 무기력함은 미국의 배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주둔미군을 이미 최소 수준인 2,500명으로 줄였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는 작은 규모라도 군사적 발자국(주둔)을 유지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연례적 전투시즌이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철수를 명령하여 아프간 방위군의 받침대를 제거함으로써, 탈레반의 신속한 카불 점령을 도왔습니다.

미국은 전황인식을 위한 무인항공기를 포함한 근접항공 지원에서부터 미국무기 공급시스템의 작동유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쟁의 수행능력에 대해 아프간의 방위군이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미국과 나토에만 의존하도록 훈련시키고 관련의 시스템과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방위군의 독자전투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환의 계획도 없는 바이든의 허술한 군대철수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켰고, 8,500명의 NATO군과 약 18,000명의 미군 용병들도 철수하여 아프간 정부방위군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전 CIA국장 David Petraeus가 언급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전투작전이 종료된 2015년 1월 1일 이후로, 아프가니스탄 방위군은 올 여름 미국이 갑자기 그들을 버리고 떠나면서 치명적인 상황으로 몰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용감하게 조국을 위해 싸우고 죽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방위군의 사망자 수에 의해 다시 확인됩니다. 미군의 전투역할이 6년 반 전에 끝난 이후로, 아프칸 정부군은 수만 명의 군인을 잃은 반면, 미국인은 99명의 사망자만을 냈습니다.

미국이 동맹국을 배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근래역사에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2019년 가을, 미국은 북부시리아의 쿠르드 동맹을 갑자기 포기하여 이들을 터키의 공세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칸에서 비를 뿌렸고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이 자초한 패배와 굴욕은 군사적 리더십이 아닌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이든은 현장의 상황을 무시하고, 지난 4월 현지의 군사령관이란 존재를 묵살하고 모든 미군에게 귀국을 명령했습니다. 결국 아프칸에서 20년간의 미국전쟁은 적군(탈레반)이 의기양양하게 권력을 장악하면서 종말을 고하였습니다.

58,220명의 미국인(대부분 징집병)이 베트남에서 사망한 반면, 2,448명의 미군(모두 지원병)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패배한 지정학적 의미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패배한 것보다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광범합니다.

파키스탄에서 기반을 닦은 탈레반은 국제적 수준의 사명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지만, 폭력적인 이슬람주의에 대한 군국주의적 신앙은 수니파가 아닌 이슬람교도에 대한 적대감을 근대화에 대한 허무주의적 분노로 몰아가는 국제지하디스트 운동과 중요한 연결고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탈레반의 권력탈환은 지하디스트의 운동에 참여하는 여러 폭력단체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들을 격려 하면서 국제적인 규모의 테러리즘 부활을 돕게 될 것 입니다.

탈레반의 토후국인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IS)의 잔당,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아프칸에 은신처를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면서,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전선으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하카니 Haqqani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아프가니스탄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실패한 것은 시리아의 붕괴보다 서구의 자유세계에 훨씬 커다란 위협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실패는 유럽으로 엄청난 난민유입을 촉발하고 ISIS가 칼리프 국가를 선언하고 이라크로 침투해가는 것을 허용할 것입니다. 아프칸에서의 탈레반 절대권력은 조만간 다양한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협할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중국은 탈레반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패배시킨 데에 반사적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실패한 미국의 아프칸 철수는 미국의 위력이 돌이킬 수 없이 쇠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대만에 대한 대응을 포함하여 중국의 강압과 팽창주의를 위한 국제적 공간을 열어 줍니다.

기회를 엿보는 중국은 광물이 풍부한 아프가니스탄에 전략적으로 진출하고 파키스탄, 이란 및 중앙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의 개방을 활용할 것이 확실합니다. 중국은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탈레반을 승인하기 위해 이미 민병대(반군)가 아프칸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즉 외교적 승인 더불어 필요한 기반시설 및 경제지원 을 제공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극도로 보수적이며 중세적인 지하드를 찬양하는 토후국의 재건은 미국의 실패에 대한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카불 소재 미국 대사관에서 미국인들을 수송하는 Chinook과 Black Hawk 헬리콥터의 이미지는 1975년 사이공의 긴급했던 철수상황을 연상하게 하며 미국의 신뢰상실과 세계지배라는 Pax-Americana의 종말에 대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8-17.

BRAHMA CHELLANEY

뉴델리에 소재한 정책연구 센터의 전략연구 교수이자 베를린의 로버트 보쉬 아카데미 펠로우이며 ‘Asian Juggernaut Water: Asia’s New Battleground ‘의 저자이다

수, 2021/09/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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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미군과 NATO의 철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을 경험한 더글라스 맥아더가 1961년 4월 28일 케네디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그의 보좌관들과 갈등을 겪을 때 말한 것처럼 아시아에서 장기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합니다. 맥아더는 케네디에게 “아시아에서는 절대 장기적인 지상전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불치병환자인 전쟁광들에게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향후에도 군사적 해결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경험한 끝없는endless 전쟁은 지정학적 사고의 실패한 전략 패러다임에 속한다는 인식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대영제국의 그레이트 게임이론(The Great Gae)과 Bernard Lewis와 Zbigniew Brzezinski가 주창한 위기의 화살(Arc of Crisis) 등 잘못된 지정학적 전략이론들을 모두 영원히 추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지정학적 음모와 조작을 끝내고 평화공존 원칙의 적용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프가니스탄 관련의 모든 이웃 국가들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1980년대 소련에 대항하여 소위 이슬람 카드를 사용했던 Brzezinski의 ‘10년 전쟁’이라는 전략의 무대로 인하여 매우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2000년 이래 탈레반에 대한 미국과 NATO 군대의 ‘20년 전쟁’으로 이중적인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폭격, 테러, 야간 공습에 대한 공포는 멈춰야 합니다!

 

화해로서의 재건

바야흐로 아프칸의 전쟁에 침략자로 참가한 모든 국가들이 화해의 방법으로 재건에 참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탈레반 지도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Mulla Abdul Ghani Baradar)가 최근 중국을 방문하여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을 때 왕이(王毅)는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보전과 내정불간섭을 위한 중국의 약속을 강조했습니다. 바라다르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의 이익을 존중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국제관계에 있어 강대국들이 상대국가의 내정에 불간섭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의무적이며, 이것이야말로 이해집단의 강국들이 다른 국가에 대한 대리이익 추구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수세기에 걸친 위대한 역사적 성취를 이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국무장관 Blinken이 최근 인도를 방문했을 때, 미국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발전에서 중국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주중 아프간 대사의 입장과 같이, Blinken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중국이 ‘테러진압과 아편생산의 중단’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양국이 실질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러시아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특사인 자미르 카불로프는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Wang Yi는 역시 아프칸의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반복해서 밝혔습니다.

 

위대한 문명에 대한 기억

아프가니스탄과 이웃 국가들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는 또 다른 배경과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기원전 2000년부터 존재한 청동문명발생지) 지역에 고시대의 도시문명이 존재하여 ‘천 개 도시의 땅’이라는 이름을 얻은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많은 증거들은 특히 소비에트 시대의 고고학 작업 덕분입니다.

이러한 문명은 이란의 아케메네스(페르시아)제국,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에 걸친 동시대에 일어났습니다. 모든 인류가 이처럼 위대한 역사에 대해 더욱 많이 배우고 문명 최고의 전통과 공헌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렇듯 위대한 문명의 기억을 발굴하는 것은 큰 풍요로움이 될 것입니다.

아프칸 지역의 지난 5000년의 역사와 보편성를 밝히고 이에 대한 절대적 공헌을 보여주는 것이 인류사회의 위대한 공동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칸은 현재 기로에 서 있습니다. 유라시아 통합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미성숙한 청소년기를 뒤로 하고 인류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성숙기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우주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출처 : CGTN과의 인터뷰내용 on 2021-08-20.

Helga Zepp-LaRouche

독일의 소수정당을 이끄는 정치활동가로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비판하며 ‘문명대화론’을 주창하였고, 미국과 영국 등 강국의 금융양적완화가 남부유럽의 경제적 위기의 동인이라고 분석하였다. 미국인 남편 Lyndon LaRouche(2019년 사망)과 함께 실러국제재단을 설립하여 문명사적 진보사상을 보급하고 있다

목, 2021/09/0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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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을 들이는 순간부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의 비참하고 값비싼 불행은 미국의 국내용 선거정치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이제 탈레반이 미국을 몰아냈기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의 셈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국가가 직면한 실제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신들의 이득여부를 타산해야 할 것입니다.

Austin, Texas – 이제 주요 언론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슬픈 비극을 너무 많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그저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에 관한 것이었으며 대상 지역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정치를 위한 단막의 쇼(side-show)에 불과했습니다. 공식보도에 따르면 2001년 9월 11일 플로리다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미국영토에서 테러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이들 대부분은 사우디인들이었습니다. 9/11 사태 이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수단을 떠난 후 아프가니스탄에 잠시 거주하였습니다만, 곧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여 죽는 순간까지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아프칸의 탈레반 통치자들은 9/11 공격에 직접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1년의 침공은 빠르고 확고하게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상원에 대한 공화당의 우위를 희생시킨 (버몬트의 제포드에 의한) 탈당으로 지위가 흔들리고 있던 조지 W. 부시는 아프칸의 침공결정으로 위기의 대통령직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90%까지 치솟았으며 이후 다시 꾸준히 하락하다가 다시 2003 년 3월 이라크 침공과 12월 사담 후세인의 사살로 두 번의 반등기회를 가져다 주면서, 결국 그는 2004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합니다.

빠르고 쉬우며 값싼 승리라는 보상은 미국 유권자들만이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세계 저편 먼 곳의 산속에서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진행되는 전쟁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들은 특히 죽은 사람, 부상당한 사람, 외상을 입은 사람, 우울한 사람들의 이미지와 해설을 싫어합니다.정치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시민들은 전쟁의 희생자 숫자가 줄어 들면서 이를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투의 횟수가 잦아들고 사상자가 줄면서 미군 개개인의 생명이 미국 시민들에게 더욱 귀중하게 다가오고 병사 한사람 한사람의 사망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2009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아프간 전쟁을 물려받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전쟁의 지속을 지지했습니다. 오바마는 2011년 5월 빈 라덴을 사살했지만 이로부터 정치적인 이득을 거의 얻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그의 지지율의 반등은 단지 한달 정도 지속되었고, 그의 정치적 기량은 아프칸의 상황이 뉴스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곳 즉 리비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화려한 승리(칼라-혁명)를 기대하였습니다만, 그러나 어느 것도 기대만큼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바마에 이어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화려하게 조작된 상기의 작은 전쟁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울한 분위기를 즉각 포착했습니다. 사실, 이슬람국가 IS는 트럼프의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쉽게 노출된 목표물인 도시전체(모술과 락까)를 파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IS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전쟁은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으며 트럼프 자신이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트럼프는 아프칸에서 미군의 철수를 협상하였고 이의 실행을 그의 두 번째 임기, 실제로는 후임자의 임기로 일정을 연기하였습니다. 바이든 신임 대통령은 여러 대안들을 면밀히 검토하였겠지만, 결국 타격과 손실을 줄이기로 신속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만 간에 밝혀지겠지만, 바이든의 결정은 아마도 국내의 정치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국내의 정치적 계산으로 선택하는 일이 올바르기도 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베트남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 미국이라는 제국은 1960년대 초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패배하고 교착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부 정치그룹을 위해서는 미국 유권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9/11 테러공격보다 훨씬 파괴적인 도발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이를 가정하고 희망하면서), 개입주의를 부추긴 (치어리더 칼럼니스트 Thomas Friedman과 David Brooks, 정책입안자 Samantha Power와 Victoria Nuland 등) 인사들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제국(전쟁)국가를 부추기는 또 하나 치어리더인 Michael Rubin은 아프칸의 함락이 NATO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종당에는 그가 미국이 이제 러시아에 연접한 리투아니아를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할까요? 루빈에게는 아마도 이 것(전쟁을 한다는 것)이 옳고,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 ​연합의 회원국들인 발트해 연안국가들은 러시아와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지도 않으며 NATO가 없어도 무탈하게 잘 지낼 것입니다.

비슷한 정치적 계산이 미국이, 공식적으로 군사적 약속을 하지 않은, 대만과 그리고 정전중인 한국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두 지역의 지도자들이 이제 정치적 계산을 조정하면서, 양안관계의 장기적인 안정화(대만)와 분단된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바라던 해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멕시코는 외부의 제재가 없고 불간섭의 원칙을 기반으로 구축된 지역연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미국 스스로 방대하고 값비싼 군사력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목적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제 드디어 해외의 주둔병력을 철수시키고, 오래된 함선을 퇴역시키고, 전투기와 폭격기의 제작 계약을 취소하고, 핵탄두와 운반 시스템을 해체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예산과 자원을 국가가 직면한 실제적 위협에 대응하는데 투입해야 합니다: 즉, 열악한 공중보건, 낙후된 사회기반시설, 증가하는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 에너지와 교통 등 지속적인 환경을 위한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기후재앙의 대응 등.

2018 년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을 당시, 두마(러시아 연방의회)의 높은 공직자가 내게 소비에트 이후 러시아의 복구를 위한 결정은 1992년 군사지출의 75%을 삭감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고 궁극적으로 국내사업의 재건을 분명히 하고 심지어는 러시아의 현대적 안보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군대를 창건하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순간에 미국이 서 있습니다. 현재 미국을 감돌고 있는 분위기 즉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솔직함과,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기민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Project Syndicate on 2021-08-20.

JAMES K. GALBRAITH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의 교수로 공공정책 연구소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클린턴 시절 정책자문 위원회 의장과 이후 중국정부 경제자문역을 역임한 바 있다


<보충자료>

9/11 이후 미국은 군사주의에 21조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군사주의를 위하여 투자한 21조 달러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훨씬 많은 대가를 의미합니다.”

9.11 테러 이후 20 동안 미국정부는 국내와 해외를 포함하여 대규모 감시시설의 설치와 열악한 감호소 운용 그리고 이민자 공동체와의 대립하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및 기타 지역에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0년간의 파괴적인 전쟁과 점령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최종적으로 철수한 후 발표된 새로운 보고서는 탈레반의 급속한 아프칸 장악이 “지금까지 우리의 군사 투자에 대해 깊은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합니다.

20년 전에 “실현되지 않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비전을 약속할 때는 단지 600억 달러의 군사비용이 들 것이다”고 당시의 부시행정부는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돌입하고 테러에 대한 국내안보에 다시 초점을 맞추면서 군대, 퇴역군인, 이민 또는 국내법 집행 기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책연구 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이니셔티브인 NPP(National Priorities Project)는 2001년 9월 11일의 여파로 “대외 및 국내 군사화”에 미국이 투자한 직간접 총비용 21조 달러(브라운 대학 연구보고는 직접비용을 8억 달러로 추정) 중 16조 달러가 군대에, $3조 달러가 재향군인 프로그램에, 미국 국토안보부DHS에 9,490억 달러, 연방법 집행에 7,320억 달러가 지출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새로운 보고서는, 해외에서의 죽음과 파괴를 부채질한 것 외에도, 해외전쟁에 대한 지출이 국내에서도 군사화를 강화하여 국내에서 안보를 위한다는 구실로 경찰의 단속을 더욱 폭력적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합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군사장비가 경찰에 이전되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군이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2010년에 경찰로 이전된 금액은 총 3천만 달러였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미국은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시켰고 경찰로 군사장비의 이전이 급증하여 2014년에 3억 8천 6백만 달러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오늘 시점에서 이전비용은 테러와의 전쟁초기보다 훨씬 높아져서 2020년에는 총 1억 5200만 달러, 2021년 상반기에만 1억 1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NPP의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새 보고서를 주도한 Lindsay Koshgarian은 수요일 성명에서 “군사주의를 위하여 투자된 21조 달러는, 단순히 달러라는 수치보다 훨씬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Koshgarian은 “전쟁을 통해 많은 민간인과 군인들의 생명이 희생당했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민정책, 치안 유지, 대규모의 감금시스템으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과 생명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군사주의로 인하여 9/11의 희생자 수치보다 많은 생명이 매일같이 희생당하고, 전염병과 엄청난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과 불안정 또는 기후 변화로 인해 허리케인과 산불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기후행동 및 주요한 글로벌 및 국내 현안의 우선순위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지난 20동안 군사와 안보의 명목으로 지출한 21조 달러보다 훨씬 적은 액수입니다. 상세한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4조 5천억 달러로 미국전력의 공급망을 100% 탈탄소화 할 수 있습니다.

2조 3000억 달러로 시간당 15 달러의 일자리 500만 개를 만들 수 있으며, 개선된 사회복지의 혜택을 10년 동안 제공할 수 있습니다.

1조 7000억 달러로 대학 학자금의 빚을 청산할 수 있습니다.

4,490억 달러로 아동지원의 세금공제를 10년 동안 계속할 수 있습니다.

2,000억 달러로 10년 동안 모든 3세 및 4세 어린이에게 무료유치원을 보장하고 교사급여를 인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50억 달러로 저소득 국가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NPP 보고서는 ‘브라운 대학의 전쟁비용 프로젝트(Cost of War Project)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및 기타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한 9/11 전쟁 이후 최소 929,000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하는 연구보고서가 나온 날 동시에 발표되었습니다. “엄청난 과소계산 – 실제 8조 달러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들었습니다.”

Koshgarian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식은 우리에게 진정하게 필요한 곳에 재투자할 기회를 제공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20년 후에 우리가 우선순위를 기꺼이 조정한다면 기반시설, 일자리 창출, 가족지원, 공중보건 및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투자로 미국을 더욱 안전한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출처 : CommomDreams.Org  2021-09-01.

월, 2021/09/0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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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칸의 군사 및 행정 조직의 급속한 붕괴는 미국주도의 노력만으로 아프칸의 정부가 자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회의적 판단을 단적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했지만, 미국은 자립할 수 있는 아프칸 독자정부를 수립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워싱턴 DC –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아프칸 국민과 국제사회가 품위있고? 안전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한 것이 불과 몇 달 만에 무산되었습니다. 탈레반은 지난 일요일(2021-08-15)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국토 전역을 장악하고 카불로 이동하여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도피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탈레반이 아프칸을 짧은 시간에 사실상 무혈진입으로 장악한 상황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칸에서 미군과 연합군을 철수하도록 결정한 판단에 대해 명백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탈레반의 빠르고 용이한 카불의 입성은 바이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음을 재확인할 뿐이며 이를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프칸 정부군과 행정조직이 형편없이 붕괴된 사실은 카불 정부가 제 발로 자립할 수 있도록 미국이 주도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전략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회의적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20년 가까이 수천 명의 인명피해와 더불어 수조 달러를 지출하면서, 알-카이다를 굴복시키고 탈레반을 격퇴하도록 아프칸 정부를 지원하고 조언하고 훈련을 시키면서 아프칸 정부군을 무장시켜 왔습니다. 또한 통치조직들을 받쳐 주면서 민간의 시민사회에도 투자를 하여 왔습니다.

그런 중에 상당한 진전도 있었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의 빠른 진격에서 드러났듯이, 20년 간의 꾸준한 지원에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아프칸의 통치조직을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배경에는 그러한 목표의 설정이 처음부터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프칸을 중앙집중식 단일국가로 만들려는 것은 애당초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닌 산악지형, 인종의 복잡성, 부족 및 지역의 충성도는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을 낳습니다. 서로에게 문제가 많은 이웃들과 외부의 간섭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제3국의 개입이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렇듯 피할 수 없는 상황은 아프칸을 서구적인 현대국가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헛된 노력을 지속하는 일을 철회시키고 끝내려는 정치적으로 매우 힘들고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철수에 대한 결정은 한편에서는, 비록 미국이 추구한 국가의 건설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주요 전략적 목표인 아프간 영토에서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향후의 테러공격을 방지하는 일을 달성했다는 현실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대대적으로 제거했으며, 아프칸에 있는 이슬람국가 IS의 조직이 아프칸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공격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한 것도 배경의 하나입니다.

그 동안 미국은 세계적으로 테러리즘과 싸우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미국토의 방어를 공동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글로벌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동맹국은 2001년 9월 11일보다 훨씬 강력한 테러의 목표물이 되었습니다만, 알-카에다는 2005년 런던폭탄 테러 이후 주목받을 해외공격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탈레반이 다시는 알-카에다 혹은 이와 유사한 단체에 은신처를 전혀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탈레반의 조직은 스스로 규율을 제대로 지켜 왔으며 알-카에다와 같은 극렬한 단체들과의 파트너십을 다시 맺을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탈레반은 또한 국제사회에서 정당성과 지지를 어느 정도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며, 아마도 외국세력에 대한 테러공격을 기획하는 조직을 수용하려는 모든 유혹을 거부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그룹은 다른 지역(국가)에서 매우 쉽게 조직을 재편성할 수 있을 경우에, 구태여 아프칸에서 조직의 편성을 추구할 동기가 거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이 아프칸에서 군사임무를 종료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지킨 것이 옳았습니다. 그런 결정은 미국 유권자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지지자이든 공화당 지지자이든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중동의 “영원한 전쟁”에 대하여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트럼프의 선거(재선될뻔한) 당시 방종적인 포퓰리즘으로 중동의 넓은 지역에서 미국이 과도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 유권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고 팬데믹의 엄청난 영향으로 악화된 현실상황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아프칸의 칸다하르가 아닌 미국의 캔자스에 투입되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Biden 노력의 성공여부는 사실상 국내에 자원을 투입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의회를 통과한 기반시설 및 사회정책의 예산안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외교정책도 역시 중요합니다. 바이든이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할 때, 그는 이를 미국대중의 지지를 받는 국가외교정책의 브랜드로서 수행해야 합니다.

아프칸은 가까운 시일 안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다행히 미국주도의 군사임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국제사회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인도주의적으로 현재의 고통을 완화하고 아프칸인들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정치적 균형을 추구하면서 외교에서 타협과 자제를 모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1-08-16.

CHARLES A. KUPCHAN

연방의회 외교위원회의 선임연구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Georgetown University의 국제문제 교수이자 Isolationism: A History of America’s Efforts to Shield Self from the World 의 저자이기도 하다.

화, 2021/09/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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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칸에서 미국이 철수하면서, 서남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할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수많은 논평들이 촉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정학적 이득이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상당한 우려를 지니면서 탈레반의 등장을 관찰할 것입니다.

대략적인 논평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철수는 중국이 아프칸이 매장하고 있는 광물자원을장악하고 소진하거나 혹은 탈레반과 제휴를 통하여 아프칸을 중국의 일대일로 BRI사업의 중심지대로 전환시킬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예측하건데, 혹은 아프칸 상황이 중국으로 하여금 가까운 시일 내에 ‘대만과 관련된 국가이익을 추진하도록(점령?) 부추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기의 가설들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1990년대에 이미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했던 탈레반과 중국의 대립적 관계에 대한 당시의 기록과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지닌 중층적 이익구조를 모두 무시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프칸의 안보위협이 신장지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방어적 이해관계(defensive interests)에서 일차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적 투자라는 관점에서부터 상하이 협력기구(SCO)에 대한 역할을 추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에 상응하는 많은 이해관계는 차후의 주제일 뿐입니다.

많은 분석가들은 미중의 전략적 경쟁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선호하면서, 상기에 언급한 요소들을 무시합니다. 예를 들어, 호주전략정책 연구소의 책임자인 피터 제닝스는 “아프칸에서 일어난 상황을 아마도 베이징 당국은 절대적인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타격은 인도-태평양 전체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미국의 ‘패배’에 대하여 중국 관료와 언론들은 이를 오히려 ‘불길한 승리 –Schadenfreude’ 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Wang Yi 외무장관은 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에서 아래 내용을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 “아프칸의 정권교체라는 개입에 대하여 미국은 너무 쉽게 판단하였으며, 아프칸의 상황은 자국 국민의 지지없이는 어느 정권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중국정부의 강경한 대변지인 Global Times 는 워싱턴의 아프칸 실패는 ‘다른 나라를 변화시키려는 미국의 오만함’과 ‘세계질서에 대한 상호주의라는 중국의 가치’를 대비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수사학적 표현은 중국 또한 아프칸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에 대한 주의 및 우려와 상호 결합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방어적 이해관계(defensive interests)라는 주제는 아프칸 상황에서도 여전히 전략적 우선순위입니다.

칭화 대학의 Qian Feng 교수는 아프칸이 제공하는 상황을 ‘중국이 마주해야 하는 강대국의 파워게임’과 ‘아프칸의 재건에 참여라는 이익의 잠재력’이라는 위험과 기회의 混在로 파악합니다. 그의 평가는 베이징 당국이 경험한 장구한 이해관계의 중층적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신장에 대한 위협과 관련하여 Qian은 1990년대에 중국이 견지한 것과 거의 동일한 용어로 ‘아프칸의 혼란이 북쪽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로, 남쪽으로 파키스탄 및 기타 국가로, 다음에는 중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누가 아프칸을 통치하는지에 관계없이 중국의 핵심관심은 카불 당국이 테러리즘의 격퇴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흥강대국으로서 영향력의 게임과 관련하여, Qian은 아프칸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여 중국,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중요한 이해관계자들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최근에 중국은 상해협력기구SCO를 활용하여 회원국가 그룹들이 아프칸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해 관계를 중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결국 비생산적인 상해기구SCO를 포기하고, 현재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과 중국+C5 그룹(중국 및 중앙아시아 공화국)이라는 지역다자적 형식으로 4자협력 및 조정기구를 형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배경에는 여전히 아프칸의 ‘테러리스트’ 감염으로부터 신장을 보호하려는 노력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China+C5와 같은 소규모 비밀회의(추기경 선출방식과 같은)를 통해 중국은 러시아 및 인도와 같은 지역 강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의제를 설정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하여 또한 중국의 중층적 이익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난 5월에 있었던 중국+C5의 공동서명은 ‘새로운 경제 및 인프라건설의 이니셔티브’뿐만 아니라, 예건데 아프칸 등과 이해의 충돌에 대비한 ‘정치적 합의’에 대한 희망을 애매모호한 용어로 발표하였습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Wang Yi는 ‘연착륙’을 위하여 아프칸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중국은 아프칸이 1990년대와 같이 다시 지역불안정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는 탈레반이 독자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달성하는 것보다는 역내의 다른 정치세력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절망적인 희망’으로 보입니다만, 이것이 중국이 불안정의 파급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양자 및 지역다자적 노력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있었던 중국의 시민과 자산에 대한 테러공격은 중국을 공격목표로 삼는 무장단체들이 아프칸을 피난처로 삼는 상황을 중국이 감당할 여유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단기적으로, 중국은 미국의 철수 이후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칸에 대처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방어적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매우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East Asia Forum on 2021-08-26.

Michael Clarke

시드니 공과대학(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의 호주-중국관계 연구소(Australia-China Relations Institute)와 호주국립대학(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의 전략 및 국방연구센터(Strategic and Defense Studies Center)의 객원연구원이다

수, 2021/09/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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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미국 부시 행정부는 반테러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이다를 징벌하기 위해 아프칸을 침공하였다. 20년이 지난 후, 이제 미국은 아프칸을 몹쓸 땅으로 황폐화시킨 채, 매우 성급하고 불명예스러운 방식으로 군대를 철수시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집권했지만, 곧바로 아프칸에서 난관(Waterloo-돌파할 수 없는)에 봉착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자기맹신이라는 패착으로, 미국은 아시아의 한구석에서 스스로 갇히는 비극을 연출하였고, 그의 후유증은 향후 수십 년 지속될 것이다.

 

패악 1 : 전쟁 미치광이

2021년 미국의 브라운 대학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미국이 아프칸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을 대략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7만 4천명이 희생되었는데 이것에는 7만 명의 아프칸 정부군과 경찰 그리고 4만7천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포함되었고, 추가로 수십 만 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아프칸 전체인구의 1/3 정도가 피난을 가야 했다. 전쟁을 통하여 아프칸은 기나긴 불황의 나락 속에 빠져들면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군으로 전락하였으며, 총인구의 절반이상이 절대빈곤선 이하에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국 역시 이번 전쟁에서 얻은 이익이 전무한 상태에서, 2.26조 달러의 천문학적 비용을 소진하였고 미군 2,442명과 용병(주로 Black-water를 통한) 3,846명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패악 2: 음모주의(Machiavellian)

미국은 상대방을 소모품으로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음모의 기술에 익숙하여 왔으며, 아프칸은 다만 최근의 희생양이 된 것뿐이다.

냉전시기에 미국은 소비에트의 남하를 방지하기 위하여 아프칸 내의 지하드 그룹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철군하자마자, 곧바로 이 지역을 포기하면서 아프칸이 이슬람 테러리즘의 근거지로 발전하는 것을 방치하였다.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아프칸이 갖는 지정학적 가치를 이용하려고 이미 내전으로 분열된 나라에 군사력을 파견하여 탈레반의 지배력을 저지하고 친미적인 민주정권을 세우고자 Karzai와 Ghani를 대통령을 앞세워 후견하면서, 서남아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의 영향력을 봉쇄하는 교두보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후 미국의 전략적 중심추가 인도-태평양으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아프칸의 지정학적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아프칸의 예는 미국이라는 패권은 필요하면 일시 지원했다가도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게 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등을 돌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트럼프 시절에 이루어진 탈레반과 회합을 통해 궁극적으로 미군을 철수시키는 협상이 없었더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미군을 아프칸에서 철수시켰을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이 재차 확인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패악 3: 인권의 남용

미국은 자신을 “언덕 위에 있는 신성한 도시’로 묘사하면서 자연권적인 인권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국가로서 다른 국가들이 본받을 모범이라고 자찬하고 있지만, 아프칸에서는 상기의 수사가 헛된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배신의 행위들을 노출하였다. 한마디로 아프칸에서 미국의 주둔은 대량살상기계의 배치와 다를 바 없었다.

2010년에 미군은 잘 알려진 5인조 ‘사살팀-Kill Team’을 편성하여 질주하는 아프칸 시민들에게 재미삼아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하였다.

2012년에는 악명높은 살인자 Robert Bales가 자신의 주둔기지에 가까운 민간촌락을 습격하여 대부분이 여성과 아동들인 16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더구나 믿기지 않는 사실은 그가 재판과정에서 협상제도(Plea Deal)를 이용하여 사형을 면했다는 것이다.

같은 해, 미해병 전투복장의 4명의 병사가 탈레반 전사의 사체에 오줌을 누면서 조롱하는 혐오스러운 장면이 미국 내에서 비디오 온라인으로 버젓이 방영되고 있었다.

2020년에는 국제형사재판소 ICC의 책임검사가 수백 병의 아프칸인 죄수들이 미군 정보기관들의 심문과정에서 고문과 인신공격 그리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믿을만한 증거들을 공개하였다. 이는 9/11 테러공격의 혐의자들을 수감하려고 세워진 악명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끔찍한 사례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패악 4 : 테러집단을 지원하다

미국은 반테러에 대하여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2002년 9월 유엔은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을 테러집단으로 자명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무부는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우리는 유엔이 ETIM를 테러집단으로 지명한 것을 환영한다. 이는 아프칸과 키르기즈스칸 미국과 중국 등 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서남아 지역를 테러의 위협에서 방어하는 일에 대한 공동적인 협력을 향한 매우 중요한 포석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의 말기 워싱턴 당국은 유엔이 ETIM을 테러집단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무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 미국의 반대 결정은 지난 수십 년 동안 ETIM이 계속 테러 활동하였다는 믿을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다음과 같다 “여전히 아프칸 지역 여러 곳에 분산되어 수백 수천 명의 ETIM 민병대가 활약하고 있다”는 ETIM의 홍보비디오가 무기로 무장한 그룹들이 Badakhshan 지역에서 언제든지 전투에 투입될 훈련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도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유엔의 분명한 증거가 확실하게 보여 주듯이, 미국은 아프칸 정부의 반테러 노력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하여 왔다. 미국은 ISIL과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들이 포위하고 있던 Nangarhar 지역을 목표로 아무런 소탕작전을 전개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 지역으로 ISIL의 전사들이 충원되는 것을 공공연히 묵인하면서 오히려 이들에게 무기와 군수품을 제공하여 왔다.

러시아 외무성의 여성대변인은 2018년 8월 브리핑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러시아는 불명의 핼리콥터들이 아프칸 내 탈레반과 ISIL집단들에게 무기를 공급해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미군이 아프칸의 모든 공중비행을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에 이들의 허락없이 아프칸 지역에서 불명의 헬리콥터들이 운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연코 미국의 지원으로 2001년에는 10개 남짓하였던 테러집단이 이후 20개 이상을 증가하였다.”

 

패악 5: 헤로인(마약)의 밀매

아편밀매는 아프칸의 전쟁와중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전쟁으로 인한 광범한 시설파괴와 실직 그리고 외국지원의 급작스런 중단은 아프칸 국내의 경제와 인권상황에 위기의 불을 지폈고 빈곤한 아프칸 시민들은 결국 자신들의 생존을 마약거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미군들은 양귀비를 완벽한 전쟁의 작물로 간주하였다. 미정보기관의 간부들은 관할 지역내 아프칸들에게 양귀비재배의 기술을 암암리에 제공하였고 양귀비 종자를 공급해주고 이의 재배를 지원하면서 불법거래를 조장하여 왔다.

2017년 유엔산하의 마약범죄관할기구는 당시 아프칸 내 12만 핵타르에 달하는 지역에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다고 공개하였다. 미군이 침공하기 전 아편의 생산량은 180톤에 불과했으나, 침공이후 곧바로 3000 톤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2020년에는 10,000 톤에 달했다. 아프칸은 미군의 침공이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양귀비를 재배하면서 전세계 생산량의 85%에 달하는 아편을 생산하고 있다.

 

패악 6: (이슬람)신에 대한 불경

미국은 아프칸인들의 종교적 자유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은 오히려 이슬람 신앙에 대한 전통적 관습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2005년 ‘Date Line’이라는 탐사전문 뉴스프로그램이 제공한 영상에 따르면, 미군 병사들이 탈레반 반군의 사체를 태우면서 주변의 이슬람 민병대를 향해 그을리고 연기가 나는 시체를 조롱거리로 삼고 있었다. 이들의 소름끼치는 행위는 사체의 화장을 금하는 이슬람의 전통적인 매장관습에 대한 심각한 신성모독으로, 이슬람 전역에 매우 강력한 증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2012년에는 Bagram 공군기지에 중무장한 미군병사 몇 명이 코란을 포함한 이슬람 종교서적들을 불태웠다. 이에 수천 명의 현지인들이 공군기지의 외곽을 둘러 쌓고 항의를 벌렸으며, 이 와중에 충돌이 벌여져 8명의 아프칸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패악 7 : 환경의 파괴

다른 국가들을 침략하고 주둔하면서 현지인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과정에서, 미군이 군사적 작전을 전개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할 것으로 기대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2017년, 미군은 MC-130 공수기를 이용하여 GBU-43이라는 대량포격으로 “포탄의 어머니, the mother of all bombs” 라고 불리는 폭탄을 투하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파키스탄에 인접한 Bagram 주 일대의 환경이 심각하게 손상을 당하였다.

미군이 Bagram 공군기지를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치명적인 화학물질을 다량 담은 수십 만개의 용기를 방치하고 파괴하여, 지역의 토양과 자연수를 오염시키고 손상시켰다.

상기에 언급한 7가지 사례의 패악들은 미군이 지난 20년간 아프칸에 주둔하면서 범한 수많은 범죄행위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최고의 가르침을 남긴다. 아프칸에서 미군이 행한 모든 일들은 ‘미국우선”과 “백인우월”이 혼합된 맹종(mndset)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들이 아프칸에서 행한 임무는 결코 “(친미적) 국가를 건설하는” 따위가 아니었다고 바이든은 솔직하게 언명했다. 미군이 발자국을 남기는 지역은, 이라크와 시리아 혹은 그곳이 우연히 아프칸이었지만, 피비린내와 온갖 혼란, 기근과 가난, 그리고 피신 등으로 점철된 전설을 예외없이 남겼다.

미국의 아프칸 실패는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 할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이제 미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죄상에 속죄하고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되찾는 일들을 실천해야 한다. 세계는, 특히 개발도상국가들은, 미국의 패권과 군사적 개입과 소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칼러-혁명에 경각심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아프칸의 비극이 절대로 결코 되풀이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출처: CGTN 편집부 2021-08-25.

목, 2021/09/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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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중국과 미국 공히 아프칸 과도정부가 미국과 유엔 등에서 제재하고 있는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국제관계를 뒤로 하고 국내 상황의 장악과 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환구시보는 테러의 확산과 근거지에 대한 우려를 견지하면서 중국의 지원에 부웅한 반-테러 정책의 희망을 피력하는 반면에, 미국의 CNN은 과도정부의 공식성을 부인하고 여성인권 등을 구실로 제2차 전쟁 – 경제적 압박을 통한 탈레반의 실패와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아프간 탈레반은 화요일 새로운 과도정부의 핵심 구성원을 발표했는데, 기본구조는 탈레반이 국가에서 정치적 지배와 절대적인 통제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현단계에서 탈레반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내부 문제해결을 우선시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한편, 과도정부의 핵심 직위는 탈레반 지도부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일부 풀뿌리 직위는 탈레반이 아닌 세력과 공유할 수 있다고 분석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 고위직들 중 일부는 유엔의 제재명단에 포함돼 있어 이 점이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남아 있으며, 동시에 과도정부가 외부에 널리 인정받고 정상적인 국제교류를 회복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중국분석가들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상황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탈레반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촉구하는 입장을 견지할 것입니다.

아프칸 새정부의 총리로 물라 하산 아쿤드(Mulla Hasan Akhund)가, 부총리 대행에는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Mulla Abdul Ghani Baradar)와 압둘 살람 하나피(Abdul Salam Hanafi) 두 사람이 임명됐다고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Haqqani 네트워크의 설립자의 아들인 Sarajuddin Haqqani가 내무장관 대행이 될 것이며 탈레반 창시자인 고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물라 모하마드 야쿱이 국방장관 대행으로 임명됐다고 탈레반의 대변인 Zabihullah Mujahid가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이에 대하여 Mujahid는 상기의 임명은 과도정부를 위한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하였습니다.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인 물라 하이바툴라 아쿤자다 Mullah Haibatullah Akhundzada가 과도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로이터는 지난 달 서방의 지원을 받는 친미정부가 무너지고 카불을 장악한 이후로, 그가 아직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보거나 직접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새 정부의 구조는 탈레반이 모든 핵심위치를 장악할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온전한 통제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에 포용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과 반-탈레반 모두를 참여시키는 정치구조를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 과도정부 구성의 발표를 반복해서 연기한 배경임에 분명하다”고 상하이 국제연구대학의 중동연구 연구소의 류종민 교수는 분석합니다.

탈레반은 공식적으로 온건한 접근방식으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를 건설할 것이며 테러 조직의 피난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아프칸의 복잡한 역사와 상황을 감안할 때 오랜 동맹집단들과 결별이 가능한지 여부는 여전히 큰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란저우 대학의 아프칸 연구센터 소장인 주영뱌오(Zhu Yongbiao)는 탈레반 집단이 핵심직책을 맡았기 때문에 과도정부가 미리 주장한 것처럼 “포괄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합니다.

Haqqani와 관계 외에도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자다 Haibatullah Akhundzada 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에미르(Emir: 최고의 통치권자)가 될 것이라고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Zhu는 에미르 Emir의 임명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정치시스템이 이전과 유사하게 에미르 자신과는 별도로 총리를 포함한 고위관리들이 국가의 행정 업무를 분담하며 카불이 아닌 칸다하르에 거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대테러 및 아프칸 전문가는 “이전 카불공항 테러공격을 행하였던 IS-K라는 테러단체와는 탈레반이 결별을 분명히 하겠지만, 아프칸 내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을 같은 기준으로 다룰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합니다. “탈레반은 다른 이웃국가 및 전세계 주요 강대국과 거래하기 위한 협상의 칩으로 일부 테러리스트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현재 과도정부가 아프칸 내의 모든 테러리스트와 단호하고 절대적인 단절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탈레반 정권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은 중국의 주요 관심사이며, 동시에 중국이 아프칸의 지속가능한 통치를 위한 유의미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ETIM의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문가는 전망합니다.

노스웨스트 대학교 중동연구소 부교수인 Wang Jin은 과도정부의 임명이 어느 정도 포용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탈레반이 새로운 정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부처 장관의 직위를 포함하여 다른 정치단체와 상당히 공유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물라 하산 아쿤드(Mulla Hasan Akhund)가 총리에 임명된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고 덧붙였습니다. 새 과도정부의 총리인 아쿤드는 유엔의 제재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입니다.

아프칸의 탈레반은 유엔가입을 희망하고 있지만 유엔제재의 명단에 있는 인사를 과도정부의 주요 요직 고위관리로 임명하기로 결정하면서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Wang은 Zhu와 마찬가지로 새 과도정부의 다른 고위관리들이 UN 제재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 국제사회와 서방을 다루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직책에 대한 지명은 또한 아프칸의 탈레반이 먼저 국내 정치상황을 공고히 하고 나중에 점차적으로 국제관계를 증진하기 시작하기를 희망하는 현실적인 정치적 견해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Wang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프칸의 탈레반은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있어서나 국제관계를 처리하는 것에서나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Global Times- 환구시보 on 2021-09-07.


탈레반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집권했을 때보다 온건한 형태의 이슬람 통치와 포용적 정부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칸의 축출된 지도부 출신과 여성을 과도내각의 대행이나 자문 역할로 지명되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은 고(故) 모하마드 오마르(Mohammad Omar)의 측근인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Mohammad Hassan Akhund)를 총리대행으로 지명했고, 탈레반의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Abdul Ghani Baradar)를 부총리로 임명했르며, 오마르의 아들인 모하메드 야쿱이 국방장관 대행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탈레반이 국제적 인정과 절실히 필요한 지원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상기의 선택은 외국정부들의 우려를 완화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메시지와 비전을 전달합니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동결한 자금과 국제통화기금(IMF)에 접근할 수 없는 아프칸은 악화되는 인도주의적, 경제적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글로벌 기구와 대출기관은 탈레반이 야당, 여성, 소수 종교 및 소수 민족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여전히 관망하고 있습니다.

이란 외무장관은 화요일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그룹 간의 대화에 기반한 아프칸 정부를 촉구하고 국가의 다양한 인종구성을 반영하는 포용적인 정부구성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탈레반 대변인은 “우리는 아프칸 전체를 대표하고 아프칸 전체의 수준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우리의 투쟁은 아프칸 전역을 기반으로 진행했다. 우리는 한 부족이나 하나의 민족사람들이 아니며 이러한 개별단위를 신뢰하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변인인 자비훌라는 성명에서 새정부가 “국가의 최고이익”을 보호하고 탈레반이 해석한 샤리아 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장단체는 조만간 공식적인 지도부를 임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관타나모 수감자와 미국이 지정한 테러단체의 구성원 그리고 국제제재의 대상인사들이 포함된 고위직의 라인업은 아프칸에 대한 탈레반의 지도력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에 대한 첫 번째 스냅샷을 보여줍니다.

탈레반의 새 내각의 주요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임시총리는 현재 유엔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탈레반의 고참 회원으로 그는 약 20년 동안 슈라(Shura) 또는 중앙지도위원회의 리더였습니다.

일부 분석가는 원래 Abdul Ghani Baradar가 최고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Baradar는 카타르 도하의 탈레반 정치국에서 근무했으며 미국과의 탈레반 평화회담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20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아프칸에 돌아와 CIA국장인 William J. Burns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탈레반 및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고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Haqqani 네트워크의 고위구성원 2명도 과도정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둘 다 유엔과 미국의 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리더인 Sirajuddin Haqqani가 내무장관 대행이 됩니다. Haqqani는 2016년부터 탈레반의 부수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FBI의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현상금 1천만 달러를 걸고 있습니다. Sirajuddin의 삼촌인 칼릴 하카니(Khalil Haqqani)는 난민담당 장관대행으로 임명됐습니다. 그 역시 과거 알카에다와 관계로 현상금 500만 달러가 걸려 있습니다.

정부 고위직을 맡은 4명의 남성은 이전에 관타나모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다가 2014년 포로교환으로 풀려난 인물들입니다: 탈레반은 Noorullah Noori를 국경 및 부족 장관대행으로, Abdul Haq Wasiq을 정보부장대행으로, Khairullah Khair를 정보문화부 장관대행으로, Mohammad Fazil Mazloom을 국방부차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탈레반에 따르면 2014년 포로교환으로 석방된 다섯 번째 수감자인 모하메드 나비 오마리가 지난달 남동부 Khost 주의 주지사로 임명됐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2001년 집권한 탈레반 정권의 중·고위급 관리들이었으며, 아프칸 전쟁 초기에 억류됐었습니다.

화요일 발표는 탈레반이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는 지역의 장악을 주장한 지 하루 만에, 그리고 무장단체가 8월 중순에 아프가니스탄 통제를 장악하고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단 한 발의 총도 발사하지 않고 대통령 궁을 점거한 이후, 처음으로 규모있는 거리시위가 벌어 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수백 명의 시위대 중에는 탈레반 통치하의 평등권과 정치 생활에 대한 완전한 참여를 요구하는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시위는 탈레반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일부 시위대는 폭력적으로 구타되고 다른 일부는 구금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탈레반 지도자들은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여성도 정부구성을 위한 회합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 탈레반은 여성들에게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고, 어떤 경우에는 무장세력이 여성들에게 직장을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화요일 발표에서 여성의 인권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대변인은 탈레반 지도부가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오늘 탈레반이 발표한 새정부에서 여성이 배제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아프칸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하려는 최근 탈레반의 약속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실망과 의구심을 표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프라밀라 패튼 UN 여성대표 대행은 탈레반이 모든 시민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조항과 국제조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나는 또한 카불당국이 자신들의 권리를 평등하게 향유할 것을 요구하는 평화로운 시위대, 주로 여성에 대해 보고된 무력사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주목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공공 및 정치 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하여 여성인권에 대한 제한조치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정당화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대변인인 Zabihullah는 시위대에 대한 탈레반 탄압의 항의에 대하여 불법시위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출처: CNN- The US.

월, 2021/09/1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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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이 일어난 지 20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탈레반이 아프칸의 권력을 재장악한 현실은 미국과 나토 그리고 많은 아프칸인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2001년 미국은 알-카이다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당시 아프칸을 장악했던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켰으며 당시에는 대부분의 목표를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또한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면서 다종족적이고 인권을 존중하며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친미적 국가를 아프간 지역에 남기려 했지만, 그러한 목표는 실패했습니다. 국제적인 노력의 과정에는 많은 실수와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자신이 아프칸에 제대로된 장권의 수립을 유도하지 못했으며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을 중단하도록 설득하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프칸 정부 지도자(미국이 내세운)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편협하고 부패한 이해를 국가이익보다 우선시하려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지배구조와 부패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탈레반 반군은 미국이 20년 동안 약 1조 달러를 투입해 가면서 지원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과연 탈레반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탈레반의 통치에 반대하는 무장의 저항세력을 어떻게 처리하고 국가경제와 외부세계와 관계를 여하히 관리하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탈레반의 내부갈등

탈레반 정권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은 아프칸의 내부에서 올 수 있습니다. 반군으로서 탈레반의 성공은 이들을 분열시키려는 미국과 NAT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응집력을 유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습니다.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편차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탈레반 내의 파벌들 사이에서 응집력을 유지해야 하는 탈레반의 도전과제는 권력을 장악한 지금이 더욱 심각합니다.

새정권 내부의 파벌은 통치조직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포용성 여부, 외국인 전사에 대한 처우, 경제 및 대외관계 등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젊고 국제적인 지하디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1990년대 잘못된 통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 없는 중간층의 지도부는 상층부의 지휘관 그리고 지역의 지도자들보다 강경한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책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이해를 조정해내는 것 외에도 탈레반은 핵심 사령관과 일반 병사들이 서로 분열되지 않도록 적정하게 경제적 수입을 배분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번 여름에 있었던 탈레반 전격전의 핵심사항은 지역의 민병대 및 권력의 중개인들과 협상이었으며, 탈레반은 이들에게 Badakhshan의 광업 및 Kunar의 벌목과 같은 지역경제에 대한 이익의 일부를 유지하도록 약속하였습니다.

탈레반 내부에 파벌이나 외국인 전사들과 갈등이 발생하면 오랫동안 서로 싸움을 지속해온 탈레반의 주요 라이벌인 IS-K(the Islamic State Khorasan)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IS-K는 현재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붕괴의 씨앗이 될 수는 있습니다. IS-K의 핵심 지도부 인사들은 Mullah Akhtar Muhammad Mansour(미군의 폭격으로 사망)를 포함하여 이전에 탈레반의 지휘관 출신들로 이들은 너무 잔인하고 너무 종파적이고, 너무 독단적이어서 탈레반의 그룹에서 추방되었습니다.

 

IS-K라는 존재

최근 몇 년 동안 그리고 1990년대 집권시기 동안 탈레반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성과라는 기반(이데올로기 기반이 아닌)의 정당성에 의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와 갈등을 억제하는 능력을 보여 왔으며 범죄와 반란군에 대하여는 잔인하지만 상황에 합당하는 엄격한 명령을 집행하였습니다. 최근의 8월 26일에 있었던 13명의 미군병사와 160명 이상의 아프간인을 살해한 유혈테러(IS-K가 저질렀지만)가 재발하는 것을 막지못하면, 텔레반의 주장(입지)은 약화될 것입니다.

또한 지난 10년처럼 부패와 함께 테러라는 폭력이 지속되면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경제적 투자를 주저할 것 입니다. 현재 탈레반은 중국의 투자를 원하고 매우 필요로 합니다.

과거 IS-K는 자주  소수그룹인 시아파를 공격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니파-시아파 전쟁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지도자인 Mullah Mansour는 이를 억제하여 왔습니다. 탈레반이 이러한 공격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란과의 개선된 관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싸움이 탈레반 내부의 파벌 갈등을 촉발한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탈레반이 반-시아파의 테러리즘과 탈레반 내부파벌 및 외국인 전사 간의 갈등, 그리고 IS-K의 이란유입을 막지 못한다면, 이란은 아프칸의 Fatimiyoun 집단을 활성화시키려 할 수도 있습니다. Fatimiyoun 집단은 수만 명에 달하는 아프칸의 시아파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란이 훈련시켜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싸우도록 배치해 왔습니다. 아프칸으로 되돌아온 이들은 탈레반의 통치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현재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Panjshir계곡 Ahmad Massoud와 Amrullah Saleh의 적고 미약하며 분열된 반-탈레반 집단의 저항(탈레반은 이를 진압했다고 발표)보다, 상기에 언급된 잠재적 위험들이 미래에 훨씬 강력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통치의 어려움

임시의 점령체제에서 탈레반은 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자 학교를 운영하기 위하여 교사들이출근하는 것을 보장하고 정부와 공무원들이 부정하게 물품을 훔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습니다. 탈레반은 또한 신속하고 청렴하며 강제적인 방식으로 현안의 분쟁을 해결하고 마약경제를 보호하면서 정치적 신뢰를 얻고자 합니다. 또한 NATO가 제공하는 물품공급의 배급에서부터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시행과 마약 및 벌목에 이르기까지 합법 및 불법적인 경제활동에 세금을 부과하는 데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거시경제정책을 수립하거나 가뭄을 해결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고사하고, 전기나 물의 공급과 같은 사회기본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유지하는 경험이나 기술관료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기본 서비스의 제공을 유지하고 최소한 다단계적인 정책과제를 헤쳐나가려면 기술관료들의 도움과 인도주의적 NGO의 형태 등 외국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탈레반의 통치가 숙청과 ​​복수에 중점을 둔다면, 필요한 기술관료들은 계속 해외로 도망칠 것입니다. 물론 탈레반은 이들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업무의 지속을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탈레반이 계속 잔인하게 통치한다면 국제사회는 이들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고 강화할 것입니다.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칸과 합법적인 관계 를 맺고자 하는 국가와 기업들이 탈레반이 잘못하는 것을 저지할 것입니다. 제재의 사항에서 인도적 예외가 보장되지 않으면, NGO 활동도 중단될 수 있습니다.

 

경제와 주변의 현안

현재 탈레반 정권의 아프칸에 할당된 수십억 달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미국, 유럽연합)가 정지된 한편에 더하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아프칸의 중앙은행 준비금이 미국정부에 의해 동결되었습니다.

불법적이고 비공식적인 경제로는 상기 손실의 일부만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탈레반은 양귀비 경제를 단순히 두 배로 늘릴 수 없습니다. 세계의 마약시장은 이미 오피오이드 등으로 포화상태입니다. 양귀비의 재배를 금지시키고 아프칸을 마약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약속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COVID-19, 가뭄 및 경제위축이라는 타격은 이미 절망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 90%의 사람들이 빈곤 속에 살고 있고 ,30%는 심각한 식량불안정을 겪고 있습니다. 마약의 금지조치는 탈레반의 중급 지휘관들과 일반병사의 수입을 격감시킬 것입니다.

마약금지령이 아니더라도 탈레반 정권은 그간 미국이 급여를 지급한 아프간 정부군들이 실직상태로 빠지면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입니다. 명목상 이들 병력의 절반이 ‘유령병’이거나 이미 전사했고 실제로 15만 명 미만의 군인이 싸웠다고 해도 이들은 이제 자신과 가족을 위한 수입이 없는 집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수입이 없는 상태로 계속 방치되면 이들은 도둑질에 의지하거나 경제적 수입을 얻기 위해서라면 탈레반에 저항하는 민병대에 합류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탈레반이 그동안 이란, 중국, 중앙아시아와 교역하여 얻은 수입을 계속하여 확보하고 수억 달러 의 비공식 세금을 유지하려면, 테헤란, 베이징, 모스크바가 요구하는 반-테러의 입장을 수용해야 합니다. 이란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텔레반의 반-테러 입장을 아프가니스탄이 제공하는 어떤 경제적 기회보다 훨씬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서남아 지역에 테러가 광범하게 확산된다면, 이들의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며, 오로지 파키스탄과 무역만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게다가,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는 중국과 걸프 국가들만이 인도적 지원을 넘어선 유의미하고 실제적인 원조의 주머니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란은 파산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동안 텔레반에게 군사 및 정보 지원을 제공하였던 파키스탄의 경제는 심각한 곤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의 승리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만족하겠지만 승리감은 빠르게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집권한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멍에를 풀고 대외관계의 다양화를 심화하기를 열망할 것입니다. 주변의 국가들은 파키스탄이 탈레반의 행동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중재하길 기대하지만 이슬라마바드가 성공하지 못할 때 심각한 불만을 터트릴 것입니다.

 

서양의 개입여부

앞으로의 탈레반에게 놓여진 다양한 도전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서방이 손쉽게 제재를 통해 탈레반 정권을 쉽게 전복시키거나, 지난 20년 동안 형식적으로는 존재했던 정치적 다원주의와 인권 및 여성의 권리 를 보존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국제사회와 깊은 분열이 발생하여 경제가 산산조각난 경우에도, 잔인한 정권은 불법 및 비공식 경제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몇 년 동안 버틸 수 있습니다.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또는 미얀마에서 보듯이, 전면적인 서방의 제재와 고립은 아프간 사람들의 끔찍한 고통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 대신, 서방은 탈레반과 교섭과 개입을 진행하되 다음과 같은 특정 요구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즉 잔인한 억압을 줄이고, 매사 신중하고 사안적인 처벌의 방식을 안착시키고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유도하는 길고도 복잡하며 성패가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야 할 것입니다.

 

출처: Brookings 연구소 on 2021-08-31.

Vanda Felbab-Brown

Brookings 연구소의 21세기 외교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이며, 국내 및 국제범죄와 테러조직에 대한 전문가이다


<참조할 보충의 칼럼>

아프칸 탈레반과 ISIS-K 간의 가교불가능한 분열

아프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지난 달부터 미군이 철수한 후 패권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두 개의 주요 세력에 의해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Ahmad Massoud와 아프간정부 Amrullah Saleh 전 부통령의 저항 그리고 ISIS-K(이라크와 Lvant-Khorasan 지방의 이슬람 국가)로 불리는 집단들이 탈레반과 국가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상기 Panjshir의 지역군(이미 진압된 것으로 알려짐)과 Nangarhar의 ISIS-K 두 세력 모두 아프간 탈레반의 권위를 거부하지만 이 두 세력의 차이점은 현저합니다.

Panjshir는 전정부 지지자들과 군대가 주요 구성이며, 이들 군대와 아프간 탈레반 간의 갈등은 정치적 대화와 협상을 통해 미래에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ISIS-K와 아프간 탈레반 사이의 분열은 너무 적대적이어서 서로 협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카불 국제공항에서 미군과 민간인에 대한 테러 공격은 미국에 굴욕을 줄 뿐만 아니라 탈레반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째, 아프간 탈레반과 ISIS-K의 법적 기반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둘 다 샤리아 법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국가로 아프가니스탄을 건설하기를 희망하지만 두 그룹의 법적 지위는 다릅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종교세력이 이끄는 이슬람 토후국에 정당성을 두고 있습니다. ISIS-K는 ISIS 지도부에 대한 정당성을 기반으로 하며 스스로 “칼리프국”의 지역지부 또는 전세계 모든 무슬림의 자칭 이슬람 최고지도자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탈레반과 ISIS-K는 서로의 정당성을 거부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둘째, 두 그룹의 구성원이 적대적입니다. ISIS-K의 많은 구성원들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가담했지만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에서는 두 그룹 사이에 격렬한 갈등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서로에 대한 증오가 커졌습니다. 카불을 점령한 후 탈레반은 즉시 카불 감옥에 갇힌 ISIS-K 회원들을 처형했습니다.

셋째, 두 집단의 전망은 정반대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포용적인” 정부를 수립하고 여성과 소수자를 보호함으로써 국제적 지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반면, ISIS-K는 ISIS와 유사하게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고 다른 종교나 민족집단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탈레반을 포함한 적대단체를 “불충한” 또는 “불충실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두 그룹 사이의 가교불가능한 분열을 감안할 때, 그들의 갈등으로 미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출처 : CGTN(중국국제방송) on 2021-09-04.

화, 2021/09/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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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프칸 실패와 더불어 미국의 일방적 철수결정으로 충격을 받은 유럽연합은 독자적 전략과 군사운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나토 등 기존의 대서양동맹을 유지 강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신속대응군의 편성을 넘어서 독자적인 유럽군의 창설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무엇보다도 아프가니스탄 인들에게 비극입니다. 필사적으로 나라를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특히 여성과 소녀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서구에게도 큰 타격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 20년 간 그 어느 때보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든 회원국이 서로를 방어할 것을 약속한 NATO의 5조가 발동된 것은 아프가니스탄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유럽인들은 총 172억 유로 또는 203억 달러에 달하는 강력한 군사적 실행과 중요한 경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철수시기와 성격은 일방적으로 워싱턴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유럽인들은 미국의 결정에 따라 카불 공항에서 대피했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유럽인 자신의 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대서양 동맹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은 당연히 모든 것을 혼자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능한 동맹이 되려면 유럽이 스스로 안보역량에 더 많이 투자하고 전략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사건은 참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와 미국 간의 동맹이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심화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대서양의 협력을 강화하려면 이제 유럽이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가 직면한 위협과 이를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 즉 공통의 전략적 문화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유럽연합은 향후 5~10년 동안 안보와 방위에 대한 우리의 야망을 정확하게 정의할 문서인 유럽전략나침반(European Strategic Compass )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회원국들은 이런 활동에 전적으로 참여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는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약 5,000명의 군대로 구성된 유럽의 “최초 진입부대-신속대응군”의 창설을 제안했습니다. 카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공항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을 미래목표에 대한 하나의 유형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협력의 정신과 잠재력을 담아 2022년 봄에 발행될 문서가 우리의 공동미래에 대한 지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이버 공간, 바다 및 우주 공간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위협으로 가득찬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NATO, UN 또는 EU에 있든 유럽인들이 국방분야에 더욱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수 및 급유, 지휘 및 통제, 전략적 정찰 및 우주 기반자산과 같은 중추적인 군사능력의 증가와 함께 우리는 더욱 능력있고, 신속한 배치가 가능하고, 상호운용이 가능한 독자적 군대가 필요합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한 이니셔티브의 형태로 이미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멀리 아주 빨리 가야 합니다. 유럽연합의 방위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유럽방위기금( European Defense Fund )은 향후 6년 동안 거의 80억 유로(94억 달러)에 달할 것입니다. 이는 공동연구와 필요한 국방기술개발을 크게 지원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보다 전략적으로 자율적이고 군사적으로 유능한 EU는 유럽의 이웃과 지역너머에서 닥칠 도전과제를 보다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미국과 대서양 동맹의 이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결국 모든 파트너십에는 유능한 동맹과 정치적 신뢰가 필요합니다.

이보다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탈레반의 집권은 다시 테러공격의 위험, 마약밀매의 증가, 대량의 피난민 이주의 위험을 수반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고 변화하는 지역환경에 대응하는 데 단호해야 합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이 관련 지역에서 더욱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며 파키스탄, 인도, 터키, 걸프 군주국들은 모두 역할의 자리를 바꿀 것입니다. 우리만이 서방의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과의 유일한 대화상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유럽은 미국과 함께 참여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적어도 탈레반이라는 단독의 현안은 아닙니다만, 이들이 아프칸을 재장악하는 것을 막지 못한 후에 우리는 이제 선택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조정된 국제적 접근을 위해 노력하면서 탈레반에 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행동, 특히 인권존중에 대한 명확한 조건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특히 소수민족과 여성과 소녀들을 계속 지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미 올해 인도적 지원을 2억 유로(2억 3600만 달러)로 4배 늘리고 개발원조를 보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도전적 과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인도적 지원을 진행하고 이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임박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안전한 탈출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사건은 유럽이 국제적 도전에서 물러나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유럽연합은 대담하게 동맹을 강화하고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약속과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1-09-01.

Josep Borrell Fontelles

유럽연합 집행위의 부위원장이자 외교안보분야 최고위직을 맡고 있다


<보충자료>

유럽연맹의 탈레반 정부 승인에 대한 5가지 원칙

유럽연합(EU)은 탈레반과 타협할 수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새정부에 대한 승인여부의 기준선을 마련하였습니다. 요제프 보렐 EU 외교정책 최고위직은 금요일 EU외무장관 회의 후 “아프간 국민을 지원하려면 아프가니스탄 새정부와 협력해야 한다”며 지원과 참여의 수준은 탈레반의 행동에 따라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무장관들은 관용을 선언한 탈레반의 약속을 평가하기 위한 여러 기준에 동의했습니다.

여기에는 1) 여성의 권리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존중, 2) 포괄적 대표성을 지닌 과도정부 수립, 3) 테러리스트 수출국이 되지 않도록 보장, 4) 외국인과 취약한 아프간인의 철수 허용, 5) 인도적 지원의 자유로운 접근허용이 포함됩니다. Borrell은 “우리의 지원과 참여는 상기 조건의 충족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천명하였습니다.

그는 논의를 촉진하고 8월 31일 모든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서방에 협력했던 아프간인들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하기 위해 EU는 “안보조건이 충족된다면” 카불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Borrell은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EU의 인도적 지원을 늘리고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여 “해당지역을 안정시키려면 매우 필요한” “지역정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유럽에서 심각한 인도적 상황과 아프간 경제의 지속적인 붕괴가 피난민의 이주물결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15년에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리아 및 기타 지역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온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 위기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이로 인하여 유럽은 6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해결의 깊은 사회적, 정치적 분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Borrell은 유럽연합이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미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일부의 유럽연합회원국들은 워싱턴에 대한 의존도를 벗어나도록 유럽연합에 촉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철수에 대해 유럽연합과 협의하지 않은 후, 2급 동맹국으로 취급받은 분노가 유럽연합 전체에 만연해 있습니다.

미국주도의 조급한 철수 이후, EU의 국방장관들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미래의 위기에 배치될 수 있는 유럽의 “신속한 대응군”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강화했습니다. 슬로베니아 국방부장관은 병력이 2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007년에도 EU는 작은 규모의 군대를 창설에 합의했지만, 자금지원의 규모와 군대배치에 대한 회원국 간의 합의부족으로 인해 실제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수, 2021/09/1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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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수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탈레반의 집권에서 도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비행기에 매달리는 비디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IS-K의 자살폭탄 테러로 인하여 미군 13명을 포함하여 최소 170명이 사망한 사건에 또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엔 산하기구들이 아프칸 국민들이 겪을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재무부는 아프칸 중앙은행의 94억 달러 외화보유 예치금을 모두 동결하여 향후 몇 달 동안 아프칸 국민들에게 공급할 식량과 기본적인 서비스의 기회를 탈레반의 새정부에게서 박탈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은 탈레반과 아프칸 국민들을 2차적인 경제전쟁으로 위협함으로써 전쟁의 패배에 대하여 보복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압력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보낼 예정인 4억5000만 달러의 자금까지 실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과 함께 서방 국가들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8월 24일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G7정상회의를 주재한 후, 새정부에 대한 원조와 승인을 보류한 것이 탈레반에 대하여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매우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서방 정치인들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들과 동맹국들이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과 이해를 상실하지 않기 위하여 무척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레버리지의 수단으로 달러, 파운드 및 유로라는 화폐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는 아프칸 사람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서구 분석가의 말을 읽거나 들으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20년의 전쟁을 통하여 아프칸이라는 국가를 현대화하고 역내의 여성을 해방하며 의료, 교육 및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온건하고 유익한 노력들을 기울여 왔으나, 이러한 상황들이 이제 잔인한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모두 휩쓸려갔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며 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미국은 아프칸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2조 2600억 달러를 지출 했습니다. 이런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약 1조 5000억 달러(75% 수준)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오로지 미군의 점령을 유지하면서 아프칸에 8만개 이상의 폭탄과 미사일을 투하하고 민간계약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며, 군대, 무기 및 군사장비를 밤낮없이 수송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군사용 지출에 사용되었습니다.

미국이 국가채무의 비용으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자지급에만 5,000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아프칸에서 부상당한 미군의 의료 및 장애의 비용은 이미 1,750억 달러 이상이 지출되었고 이들 부상군인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이라크와 아프칸에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 대가의 의료 및 장애 비용은 결국 1조 달러를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엄청난 비용을 치른 “아프칸의 재건”은 제대로 이루졌을까요? 의회는 2001년 이후 아프칸의 재건을 위해 1,440억 달러를 책정했지만 그 중 880억 달러는 아프간 “정부군”을 모집, 무장, 훈련 및 급여를 지불하는 것에 사용되었는데, 결국 이들 정부군들은 모두 해체되어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오히려 텔레반 진영에 가담하였습니다. 2008년에서 2017년 사이에 지출된 별도의 155억 달러는 아프칸의 재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특별감찰관들이 “낭비, 사기 및 남용”한 것으로 문서화되었습니다.

아프칸에 대한 미국 총지출액의 2% 미만인 남은 부스러기는 약 400억 달러 정도로, 그나마 경제개발, 의료, 교육, 기반시설 및 인도적 지원에 지출되면서 아프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혜택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아프칸에서 미국이 지원하여 수립된 정부는 부패하기로 악명이 높았으며 부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공고해지고 조직화되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미국이 점령한 아프칸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부의 하나로 일관되게 선정 발표했습니다.

서방의 독자들은 이러한 부패가 미국점령에 따른 특정한 특징과는 무관하게 별개로 아프칸의 오랜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투명성기구는 “2001년 이후 아프칸 정부의 부패규모가 이전수준에 비해 매우 증가한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 2009년 보고서도 “부패가 이전의 행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경고했습니다.

2001년 미국침공으로 권력에서 물러난 탈레반 정부와 1980년대에 미국이 지원한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선구자들에 의해 전복된 소련과 연합사회주의 정부도 부패한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시 소련의 연합정부가 붕괴하면서 그들이 이루어 놓은 교육, 의료 및 여성의 권리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레이건 정부에서 국방부 관리를 지낸 Anthony H. Cordesman이 출간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어떻게 타락시켰는가”라는 제목의 2010년 보고서는 사실상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아프칸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미국정부를 질책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2013년에 “정기적으로 CIA는 달러를 담은 가방과 배낭 그리고 플라스틱 가방을 뇌물로 아프칸 대통령에 전달하면서 군벌과 정치인들을 매수하도록 지원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또한 부패는 서구 정치인들이 현재 아프칸 점령의 구실로 주장하는 교육 및 의료와 같은 분야, 바로 그런 영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교육 시스템은 종이로만 존재하는 학교, 교사,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프칸의 약국에는 가짜이거나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품질낮은 의약품들이 가득했으며, 대부분이 이웃 파키스탄에서 공급된 밀수품이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부패는 외국의 NGO 및 계약업체에서 일하는 운좋은 아프칸인 급여의 10분 의 1에 불과한 교사들과 공무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부패를 근절하고 아프간인의 삶을 개선하는 일은, 탈레반과 싸우고 꼭두각시 정부의 통제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려는 미국의 주요 목표에 비하여, 항상 부차적인 주제이었습니다. 투명성기구가 보도한 바와 같이, “미국은 협력 또는 정보를 보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밀리에 다양한 무장단체들과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했으며, 부패에 찌들은 주지사들과도 협력했습니다. 부패라는 고리를 통하여 아프칸 정부는 점차 무기력해지고 미국의 임무는 시험에 부딪치게 되었으며 정부에 제공한 물적 자원은 반군들에게 흘러들어 갔습니다.

미군의 점령지역에서 발생하는 끝없는 폭력과 미국이 지원하는 정부의 부패는 특히 아프간 인구 4분의 3이 살고 있는 농촌지역에서 탈레반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강화했습니다.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 해결할 수 없는 빈곤도 탈레반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국과 서방동맹국과 같은 부유한 국가의 점령이 자신들을 그토록 비참한 빈곤에 빠뜨릴 수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위기가 있기 훨씬 전부터 빈곤선의 소득으로 생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프칸인의 수가 2008년 60%에서 2018년 90%로 증가했습니다. 2018년 Gallup이 자체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칸의 “복지” 수준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Gallup의 조사내용은 아프간인들에 대하여 기록적인 수준의 비참함을 보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지닌 미래에 대한 전례없는 절망감을 담고 있었습니다.

소녀들을 위한 교육에서 약간의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에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3분의 1만이 초등학교에 다녔고, 십대 소녀들의 37%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프칸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적은 이유 중 하나는 6세에서 14세 사이 2백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빈곤에 시달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칸 국민들을 빈곤에 빠뜨린 자신들의 역할을 속죄하는 대신, 서방지도자들은 이제 아프칸 공공부문 지원금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GDP의 40%를 구성하는 필수적이며 절절한 경제 및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단시키고 있습니다.

사실상 미국과 동맹국은 전쟁에서 패하자 탈레반과 아프칸 국민을 “2차적-경제전쟁”으로 위협함으로써 자신들의 패배에 대하여 보복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의 탈레반 새정부가 그들의 “지렛대”에 굴복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미국은 자신이 벌린 경제전쟁의 희생자들을 핑계로 이란과 쿠바의 정부를 악마화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서방 지도자들은 아프칸의 국민을 굶주리게 하고 뒤이은 기근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탓하며 탈레반의 정부를 비난할 것입니다.

아프칸의 끝없는 전쟁에 수조 달러를 쏟아 부은 뒤, 미국의 진정한 임무는 이제 그들이 가한 전쟁으로 끔찍한 상처와 외상을 당한 4천만의 (조국을 버리지 않은) 아프칸 인들의 치유와 더불어 가뭄으로 올해 곡물생산량의 40%나 격감하고 코로나-19의 세번 쨰 타격에서 벗어나도록 신속한 회복을 돕는 일입니다.

미국은 미국은행들에 예치되어 있는 아프칸의 자금인 94억 달러의 동결을 즉시 해제해야 합니다.현재는 해체되었지만, 아프칸 정부군을 지원하고자 할당되었던 60억 달러의 군사지원금을 이제는 인도적 지원금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각종 지원금을 보류시킨 유럽과 IMF를 독려하여 UN 2021 조항에 따라 준비되었던 인도적 긴급지원금 13억 달러(아프칸에 40%를 할당했던)를 곧바로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과거 미합중국은 영국과 소련의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 독일과 일본을 물리칠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국과 패전국 공히 건강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국가로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식민시대의 인종차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반인도적 범죄(핵무기 투하), 가난한 나라들과 신식민지 관계수립 등 미국의 심각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세계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을 본받고 따르고자 하는 번영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미국이 결국 아프칸에서 보여준 것이 전쟁과 부패 그리고 빈곤뿐이라면, 세계는 이제 미국의 이러한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서구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성찰, 국가주권과 국제법에 대한 새로운 강조,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물리적 군사력을 대체하는 대안,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및 기후재앙와 같은 글로벌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지구적 협력을 조직하는 보다 공정한 국제기구 등.

미국은 군국주의와 강압으로 세계를 통제하려는 무익한 시도에 걸려 여전히 허우적대거나, 아니면 이번을 계기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재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미국의 시민으로서 세계패권국가의 사라져가는 역할에 종지부를 찍을(페이지를 넘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또다시 세계를 군사력으로 지배하려는 야심을 대신하여, 지구촌 미래의 의미있는 새로운 건설에 협력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출처 : WorldBeyondWar(전쟁없는 세상) on 2021-08-30.

벤자민

미국 반전평화운동의 상징적 여성운동가로 Global Exchange 와 CODEPINK: Women for Peace를 공동설립하였으며 “Inside Iran: The Real History and Politics of the Islamic Republic of Iran”을 저술함

데이비스

독립적인 언론인으로서 CODEPINK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으며 “Bloods on our hands: The Americans invasion and destruction of Iraq”의 저자

목, 2021/09/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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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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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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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나는 이제 표층에서 심층까지,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발전하고 확산될 때에만 드러나는 세 가지 특성들을 논의하겠다. 지식경제가 현재 프린지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경우 지식경제는 그 본성을 숨긴다. 우리는 현재의 고립적인 지식경제가 제공하는 파편적인 증거에서 지식경제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더 심층적인 첫 번째 특성은 한계수확체감(다른 요소들이나 투입물들이 불변적인 상황에서 하나의 요소나 투입물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한계산출에서 수확체감)의 제약조건을 완화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키겠다는 약속이다.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생산성은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감소하기 시작한다. 경제생활의 어떤 특징도 한계수확체감의 제약만큼 경제생활의 보편적이고 초시대적인 법칙으로 여겨질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과 그 가능한 수정이나 대체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법칙과 종종 혼동되는 다른 관념, 즉 규모수익(returns to scale)을 구별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상이다. 규모수익이란 두 가지 정량의 관계를 말한다. 첫 번째 정량은 생산에서 모든 투입물이나 요소들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에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요소나 투입물의 증감이다. 두 번째 정량은 장기간에 걸쳐 표시된 산출물의 결과적인 증가 또는 감소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투입물의 증감에 비례하여 산출물이 증감할 때 규모수익은 불변적이다.

규모수익은 통상적으로 불변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규모수익의 체증이나 체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모든 투입물이 동일비율로 증가된 더 큰 공장은 더 작은 공장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덜 효율적일 수 있다. 규모수익불변의 발생은 결코 경제생활의 법칙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반박가능한 사실적 가정이다. 그러한 가정은 생산의 투입물이나 요소들 사이의 유익한 또는 유해한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그 가정을 부정할지도 모르는 무수한 상황 중 어느 것도 없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가정은 뉴턴 역학에서 불변적인 운동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의 허다한 경제분석과 마찬가지로 계시적 단순화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유용한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경제가 규모수익체증과 관련이 있고 이러한 추정을 정당화하는 원인을 이러한 생산방식의 일정한 특징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중 일부는 지식경제의 일부가 누리는 장점, 즉 플랫폼사업의 사용자 커뮤니티에 새로운 고객을 추가하는 데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러한 장점을 갖지 못한 지식경제의 다른 부분들이 어떻게 규모수익체증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기껏해야 지식경제의 특정 분야에 대한 주장이다.

다른 제안들은 지식경제의 기업들이 의존하는 통찰력, 기술, 인력들에 의해 발생되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실천적인 지식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다. 이러한 기업들이 판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그러한 지식을 풍부하게 구현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 지식기반 기술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지식경제의 기업들은 그들 주위에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 제도, 관행, 아이디어의 넓은 잠재 영역을 창조해야만 번창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육화되거나 암묵적인 모든 지식은 경제학자들이 “비경합적” 재화라고 부르는 유형을 대표한다. 지식재산법이 비경합적 재화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자 개입하여 이를 “배제적인” 재화로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비경합적 재화는 일부 사람들의 재화 사용이 다른 사람들의 재화 사용을 막을 수 없는 재화를 의미한다. 지식경제에서 공유된 암묵적 지식과 능력의 확산은 생산체계의 선진기업들과 선진분야들의 발전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 기업과 부문들(성공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선도성을 확장함으로써 번창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바로 이들은 (유형적 자원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축적에 의해) 지식경제의 비경합적이고 비배제적인 재화를 이용할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는 지식경제만의 특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비슷한 제한 아래서 이전의 생산형태들에서도 일상적이었다. 예컨대, 이전의 생산방식들이 19세기의 기계발명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발명가들을 지원한 과학, 문화, 제도들에도 의존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긍정적인 외부효과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의 전성기에도 일상적이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이나 긍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이러한 추측들이 과잉포섭이나 과소포섭 없이 그들의 주제(지식경제)를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추측들은 더 기본적인 결함을 가질수도 있다. 즉 이러한 추측들은 우선적으로 편의적이고 우발적이고 경험적인 가정에 불과한 표준(규모수익불변)에서 한계적인 이탈을 설명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산성의 미래에 대한 지식경제의 혁명적 중요성을 다른 부분에서, 즉 지금까지 사실상 경제법칙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진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을 완화하거나 역전시키는 지식경제의 잠재력에서 찾아야만 한다. 생산과정에 모든 투입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고 그 중 하나의 투입요소를 증가시켜보자. 그 투입요소의 증가에 대한 산출물의 수확은 증가하다가 한계에서 감소할 것이다.

산출물의 감소를 막고 회피하고 지연시키는 것은 개념적, 과학적, 기술적, 조직적 또는 제도적 혁신이다. 그러나 혁신들이 일련의 산발적인 일회성 조치들로 그친다면 각 혁신은 수확체감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투입요소와 등가적인 요소가 된다. 혁신은 산출물의 증가를 낳지만 이윽고 혁신이 가진 촉진적인 잠재력은 소진되고 혁신의 더욱 확장적인 사용에 대한 한계수확은 체감하기 시작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다른 투입물들이나 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생산에서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에 따른 생산성의 체감)은 규모수익불변과 모순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은 이 법칙이 적용되는 단기간에는 규모수익불변을 당연시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관행상 장기적이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이러한 법칙의 발생은 엄청나게 중요한 장기적 결론을 내포한다. 이러한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계수확체감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경제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근본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계수확체감의 기초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별로 없다는 사정은 주목할 만하다. 그 기초는 혁신의 일회적 또는 불연속적 성격이고, 이러한 성격은 생산체계에서의 진보가 생산체계 외부에 있는 과학적 기술적 (그 자체로 일회적인) 돌파구들에 의존함으로써 악화된다. 혁신은 한계수확체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다. 그러나 혁신이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회적이거나 불연속적인 것이라면, 각 혁신은 마치 동일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 아래서 새로운 투입요소 혹은 수정된 기존 투입요소인 것처럼 작동할 것이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 특히 지식경제의 바로 직전 형태인 공장제 대량생산과 그 선행 형태인 기계화된 제조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혁신들의 특성을 이루어온 세 가지 불연속 형태를 고려해보자. 첫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발견의 역사 자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의 발명과 이로부터 나오는 이론, 실험, 절차의 조직이나 규칙화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통찰을 과학기술적 발명에 적용하는 데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과학의 관행에 대한 과학기술적 발명, 특히 과학적 장비의 역(逆)작용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 불연속 형태는 생산체계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을 이용하는 데에서의 불연속이다. 이러한 중첩적이고 누적적인 불연속들은 생산 외부의 진보에 생산이 의존한다는 점과 결합하여 한계수확체감이라는 제약조건의 궁극적인 기초를 형성한다.

지식경제는 한계수확체감의 궁극적 기초를 무너뜨리고 따라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극복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잠재력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하여 한계수확체감의 완화 또는 역전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왜 규모수익체증을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원용된 이유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동시에 더 특수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다음 절에서 논의하게 될 지식경제의 더 심층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우리의 협력방식을 상상력의 작동방식과 더욱 유사하게 만들고 노동자가 기계의 거울이라기보다는 기계의 대립물이나 보완물이 될 수 있게 하는 과학적 실험주의의 모형에 따라 생산을 쇄신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불연속적인 상태에 머물지 모른다. 그러나 지식경제를 특징짓는 실험주의적인 생산은 과학적인 발견과 기술적 발명을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또한 더 지속적으로 생산활동으로 변형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주는 결과물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관행과 제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들에서도 스스로 끝없는 혁신의 원천으로 변한다.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을 더욱 닮아가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창조한 것을 더 기꺼이, 더 완전하게, 더 항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혁신이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띨수록, 혁신이 생산체계 외부에서 발전된 아이디어와 기계의 이용뿐만 아니라 생산체계 내부에서도 더 많이 일어날수록,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시키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가능성은 그 만큼 더 커진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기술 속에 구현된 지식과 관련해서도 나아가 노동과 자본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모든 투입요소와 관련해서도 완화되거나 역전될지도 모른다. 각 요소와 각 투입물의 성격과 그 생산적 잠재력은 지식경제의 일부가 됨으로써 변화된다.

이러한 사변적 명제들은 반증가능한 가설을 낳는다. 우리는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에 비례하여 그러한 완화가 발생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약의 극복에서의 성패는 한가한 호기심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성패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물질적 도덕적 이익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하거나 극복하는 것은 생산의 성격에 중대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경제사는 대체로 세 시기로 구분된다.

가장 원시적인 조건에만 해당하는 경제사의 제1기에서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제약은 현재의 소비를 공제한 잉여의 규모, 즉 마르크스가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라고 불렸던 바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본원적 축적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요한 연구대상인 그 시대의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한계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서 매매상품으로서 노동력의 취급에 대해서도 지배적인 설명은 잉여의 강제추출을 확보할 필요성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기술적인 노동분업의 계층적이고 전문화된 형태 아래서 노동자의 비인간화는 경제적 진보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미래 성장에 필요한 자본 스톡을 증가시키기 위한 조건의) 일부를 형성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오류를 범했다. 그들의 시대에도 이미 잉여의 규모가 아니라 관념적,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혁신이 성장에 대한 결정적인 제약이었다. 영국은 꽤나 높은 수준의 국내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농업적-관료적 제국들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적 연구는 영국이 도리어 다수의 아시아 제국들보다 낮은 저축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영국은 혁신과 이에 적합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서 이러한 아시아 사회들과 달랐다.

문명의 시작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역사 전체에 해당하는 경제적 진화의 제2기에는 혁신의 수준, 범위, 속도 나아가 생산기술과 생산안배에서의 혁신과 제도, 과학, 문화에서의 혁신의 관계가 경제성장의 주요한 제약조건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혁신은 성장의 주요한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저축은 성장의 원인이기보다는 성장의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혁신에 의해 촉발되고 지속된 성장은 희소성과 한계수확체감의 이중적인 비호 아래서 일어났다. 혁신은 비록 다면적이지만 단속적이었다. 혁신은 여타지속적인 관행과 안배에서 일련의 불연속적인 변화였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사람들의 협력방식과 인간의 편익을 위한 자연의 변형이나 자연적 요소들의 동원과 관련된 혁신이었다. 기계의 설계와 사용은 두 가지 유형의 실험(자연에 대한 실험과 협력적 관행에 대한 실험)의 흔적과 이러한 실험을 연관시키는 방법의 흔적을 간직하였다.

경제사의 제3기는 혁신이 그 단속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되거나 심지어 역전되는 때 시작된다. 희소성과 부족한 자원의 분배와 이용에 관한 다양한 방법들의 불평등한 결과는 계속해서 경제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혁신은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갖는다. 혁신은 생산체계 외부에서 도입된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게될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 내부적으로 된다. 좋은 기업이 좋은 학교를 닮기 시작하고 생산의 발전이 지식의 발전을 닮기 시작하는 까닭에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은 이완된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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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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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지식경제의 또 다른 심층적인 특징은 지식경제가 우리가 작업하는 방식과 정신이 관념을 발전시키고 발견을 성취하는 방식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을 수립해준다는 데에 있다. 생산이란 우리의 힘을 향상시키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자연을 변형하고 자연의 힘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지식성장이 경제활동의 중심축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신규제품이나 신규자산, 이를 형성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의 추측과 실험을 상품과 서비스로 구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식경제의 이와 같은 성격규정에서 경제생활에 중요한 어떤 것들, 예컨대 생산에서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 즉 협력체제나 기술적 노동분업 나아가 우리가 협력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제도적 안배들은 배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식경제의 중요한 충동을 급진화함에 따라 실천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은 상상력의 표현이 된다. 이 방향으로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수준에서, 즉 현장에서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경제와 정치의 제도적 안배들을 쇄신하여 이러한 안배들이 시장과 국가에 관한 확립된 가정과 안배들을 당연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를 초극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정신활동의 두 측면에 대한 견해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상상력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데에서 무엇이 관건적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한 측면에서 정신은 구닥다리 기계, 즉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에서 중요했던 기계의 일종과 같다. 이러한 정신은 모듈과 같아서 (뇌가소성에서 한계가 존재하는 한) 뇌의 구분된 영역들과 연결된 다양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공식과 같아서 판에 박힌 공식, 규칙 또는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신의 행동 또한 반복적이다.

다른 측면에서 정신은 모듈이나 공식과 다르다. 이러한 정신은 뇌가 소성을 이용하여 뇌의 물리적 하부구조의 다양한 부분들에 유사한 역량을 부여할 수 있고, 자유롭게 모든 것을 여타 모든 것과 재조합할 수 있다. 이는 수학에서 회귀적 무한(recursive infinity)이라고 부르는 역량이다. 이러한 정신은 자신의 정립된 관행이나 방법을 기각하고 자신의 확립된 전제들에 도전하고 계속해서 발견을 이루거나 정신이 회고적으로 명료화하는 통찰들, 적절한 관행들, 방법들, 전제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시인이 부정적 능력이라고 불렀던 권능이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력이라고 부르는 정신의 측면이다. 상상력은 기계로서의 정신과 대조적인 반(反)기계로서의 정신이다. 상상력의 측면에서 정신은 두 가지 구성적 작동방식을 가진다. 첫 번째 작동은 칸트가 강조했던 것으로서 거리두기이다. 그 이미지는 인식의 기억이다. 두 번째 작동은 칸트가 간과한 것으로서 변형적인 변주이다. 우리는 어떤 자연적이거나 계획적인 개입에 반응하여 현상의 변화를 기획하거나 자극함으로써 현상을 파악한다. 우리는 그 현상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혹은 우리가 그 현상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지와 같은 인접한 가능성들의 범위에 현상을 포섭함으로써 그 현상을 이해한다. 생산과 상상력의 근접성은 지식경제의 심장이며, 지식경제가 확산되고 심화될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생산과 상상력의 유사성을 탐구할 수 있다. 하나는 작업을 조직하는 방법이나 노동의 기술적 분업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기계로서의 정신과 반기계로서의 정신(상상력)의 상대적 권능이나 우위성은 뇌의 물리적 구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 상대적 권능이나 우위성은 생산의 제도와 관행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조직에 의해 형태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만약 정치가 인간관계의 형태를 둘러싼 투쟁을 의미한다면) 정치의 역사는 정신의 역사에 내재적이다.

지식경제 하에서 우리가 함께 일하는 방식(기술적 노동분업)은 상상력으로서의 정신의 작동방식과 닮기 시작하고, 그 각각의 특징들, 한편으로는 정신의 비모듈적이고 비공식적인 특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이 더욱 완전하게 발현됨에 따라 그 회귀적 무한의 역량과 부정적 능력을 갖기 시작할 수 있다. 생산은 이러한 특성들과 능력들 덕분에 인접한 가능성의 잠재영역에서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생산의 가능성들을 이용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 감독적 역할과 집행적 역할 간의 차이나 결과적으로 전문화된 집행적 역할들 간의 차이가 완화될수록, 생산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실현할 기회는 더 나아진다.

생산계획은 집행과정에서 작업반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결과적으로 작업반 내에서 전문화된 역할들은 더 이상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역할들 간의 구분의 고착성은 개념 정립과 집행 간의 차이의 명료성의 이면일 뿐이다.

기술적 노동분업이 어떻게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경제에 적용되는 경우 당혹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더 익숙한 군사적인 응용사례를 가지고 있다. 재래식 정규군으로 조직된 보병여단은 지휘관과 병사의 엄격한 구분과 야전에서 고정된 역할들을 가진 지휘통제구조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보병여단은 자체적으로 구비한 군사기술의 잠재력, 즉 화력기술 및 통신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에서 매우 제한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보병여단은 기습전에 대응하여 전장에서 재편성하고 변통하는 능력에서도 제한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적절한 훈련을 받고 기술을 습득하고 장비를 갖춘 비정규군은 전투의 계획과 실행 사이에 그와 같은 뚜렷한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군대는 엄격한 지휘통제구조를 피할 것이며, 긴급한 장애와 기회에 비추어 계획을 조정할 더 큰 재량을 하급 장교와 하급 부대에 배정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군대는 스페셜리스트에게 동시에 제너럴리스트가 되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부대가 이러한 이상을 추구하면 부대는 뛰어난 작전능력을 구비할 것이고 전통적인 정규군보다 화력과 통신장비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는 야전에서 흩어지고 다시 집결하고, 일관성과 추진력을 상실하지 않은 채 기습전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적 진화의 노선은 정규군이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확장하고 중앙의 (그러나 느슨하고 유연한) 통제를 수용하고 야전에서 일관성과 추진력을 보존하는 능력을 유지하면서 비정규군의 일부 특성들을 외부로부터 획득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경제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식경제의 발전과 확산에서 진보를 의미한다. 현장에서 협력방법은 더욱 완전하게 상상력의 특징들을 띠게 된다.

이제 상상력으로서의 생산이라는 동일한 아이디어가 기술적 노동분업 뿐만 아니라 기계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기계화된 제조업과 그 후속형태인 공장제 대량생산) 아래에서 노동자는 마치 자신이 기계의 일부인 것처럼 일했다. 애덤 스미스의 핀공장이나 헨리 포드의 조립 라인에서 그의 동작은 기계들의 동작을 연상시켰다. 노동자와 기계의 유사성은 은유나 먼 비유 그 이상이었다. 그러한 유사성은 프레더릭 테일러와 같은 산업조직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정전화되어 경영자와 작업반장에게 실제적인 지침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 하에서 우리는 심지어 그러한 관행의 가장 신중한 표현형태에서도 기계로서의 정신을 본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이 교육을 경제성장의 기본요소 중 하나로 떠받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 시대의 노동자에게 교육을 통해 요구되는 바가 사실상 거의 없다는 사정은 당연하다. 이러한 노동자가 필요로 했던 것은 복종심, 기본적인 문해력과 수리력, 손재주, 특히 손과 눈의 협응력이었다.

지식경제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또한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은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상상력의 모형에 따른 생산의 쇄신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또 다른 실례를 제공한다. 여기서 이러한 변화를 지도하는 원칙을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기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개관으로 제시한다.

아주 최근까지 기계의 요체는 우리가 반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런 기계들을 공식과 같은 것이라고 부르자. 기계가 틀에 박힌 공식과 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기계의 가장 큰 가치가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공식과 같지 않게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시사할지도 모른다. 그 기계의 사용자는 반복하고 기계 장치로 코드화하는 것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활동들에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원,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자원(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와 사용자의 이와 같은 관계는 생산방식의 역사에서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량생산에서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실례가 보여주듯이, 노동자는 더욱 빈번히 기계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모방하거나 다양하지만 비교적 공식과 같은 활동으로 기계를 보완함으로써 마치 그가 자신의 기계 중 하나인 것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교적 단순하고 경직된 기계일지라도 사용자들로 하여금 기계를 모방하는 대신에 기계를 최선으로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기술의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의 잠재력은 주류 경제사의 주변으로 내몰리게 된 공예적이거나 장인적인 생산형태로 달성되었다.

생산방식의 역사와 이러한 생산방식을 배태한 경제, 정치, 문화의 역사는 기계의 진화를 위축시키고 또한 기술적 노동분업을 형성해왔다. 기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기계가 아닌 것, 반(反)기계, 또는 비공식적이거나 비알고리즘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이라는 아이디어는 지금까지도 순전히 사변적인 가능성에 그쳤다.

지식경제의 도래는 현재의 고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형태에서도 기계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이용방식을 거부하는 기계들의 발전을 수반하였다. 지식경제의 도래는 특히 현재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으로 알려진 기술혁신의 가장 혁명적인 분야에서 그러한 발전을 수반하였다. 지식경제의 초기 역사에서 지금까지 발전된 기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두가지 기본적인 방식이 있다.

우선, 지식경제의 기계들은 공식에 따르는 좀 더 고차원적인 장치들일 뿐이다. 우리는 특정한 용도에 한정하여 일련의 제한된 조작들의 공식들과 알고리즘들을 그러한 장치에 코드화하는 것 그 이상을 수행한다. 우리는 그러한 장치가 사례와 경험에서 새로운 동작을 추론하고 그에 따라 1차적인 알고리즘과 공식을 변경하도록 허용하는 메타적인 공식들과 알고리즘들을 혹은 2차적인 추론규칙들을 그러한 장치들에 부여한다. 우리는 기계들이 자신의 절차들을 조정할 때 반응하는 경험과 사례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심지어 이러한 기계들에 무작위성의 요소까지 장착할 수 있다.

또 다른 이해에 따르면 이 기계들이 수행하기 시작한 활동은 고차적인 형태의 공식과 같은 활동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계들은 일반적인 추론규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공식에 따르지 않은 기계기능을 문의 손잡이를 돌리는 방법과 같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차량을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과 같은 더욱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적응적인 조작능력의 획득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능력들은 과업들의 물리적 수행의 맥락에서 발전한다.

가장 발전한 기계들에 대한 두 번째 이해에 따르면 우리가 고차적인 추론규칙으로 파악한 것은 그러한 추론규칙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규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적응적인 진화적 상승에 대한 회고적 기술에 불과하다. 그러한 능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은 피아제의 인지심리학에서 연구된 발달과정과 유사하다. 즉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인 것 다음에 나타나고 개념적인 것은 조작적인것 다음에 나타난다. 공식적인 환원이나 표현에 반발하는 실용적인 여분은 존재한다

기계의 역사에서 이러한 새로운 단계, 즉 지식경제에서 시작하고 지금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라고 부르는 단계에 관한 메타-공식적이고 조작적인 이해들은 부상하는 새로움에 대한 대안적인 철학적 해명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해명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 신뢰할 만한 근거를 적어도 아직까지는 확보하고 있지 않다. 기계 역량들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이 두 가지 설명들을 등가적이거나 보완적인 것으로 더 이상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지점까지 진보하는 때가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술의 역사에서 이러한 새로운 단계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든지 상관없이 사람과 기계의 관계에서 어떤 근본적인 사항은 이미 변하였다. 비록 그러한 접근 방식이 심지어 비교적 원시적인 초기 기술의 모든 잠재력을 허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기계의 친구로서 배역을 주는 방식으로 대량생산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현재 고립적이고 단절된 형태에서도 지식경제의 노동자를 기계의 그림자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 기계들은 어떤 일에서는 인간 노동자가 일찍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계도 가질 수 없는 것, 즉 상상력을 보유한다.

공식적인 것에서 메타-공식적이거나 포스트-공식적인 것으로의 운동은 내가 앞에서 상상력이라고 불렀던 마음의 두 번째 측면을 기계(원칙적으로는 모든 기계)가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아니다. 상상력의 특징은 부정적 능력이다. 즉 상상력은 어떤 현상이나 어떤 사태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고 이윽고 변형적 변주들의 범위 안에 그러한 현상이나 사태를 포섭하는 정신의 능력이며, 정신이 아직 볼 수 없었던 어떤 것을 더 잘보기 위하여 정신의 확립된 방법들을 버리고 정신의 현재적 전제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신의 능력이고, 나아가 이전에는 생성될 수 없었던 통찰을 이해하는 방법들을 반성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전제들을 공식화하는 정신의 능력이다. 상상력은 역량에 관한 것이 아니라 비전에 관한 것이다. 기계는 원칙적으로 이와 같이 이탈적이고 예지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 즉 인간 실존의 온갖 유한한 결정 요소들에 대한 인간의 초월성, 우리가 만들고 살아가는 개념적이고 사회적인 세계 안에 유폐될 수 없는 우리의 역량에 뿌리박고 있는 힘이다.

이러한 기계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은 마치 자신이 기계인 것처럼 작업하거나 사고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의한 기계사용이다. 기계와 반기계(달리 말하면, 노동자)의 결합은 노동자나 기계가 독자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우리는 기계에게 부여하였던 저차원의 규칙과 고차원의 규칙 이외에 이러한 규칙에 저항하는 능력과 이러한 저항으로 성취한 발견들을 반성적으로 이해하는 능력까지 기계에게 장착함으로써 기계를 상상력의 거점으로 만들 수 없다. 우리가 인간과 기계의 격차를 줄이고 심지어 연산능력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계까지 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보다 앞서 간다. 거북이, 즉 우리가 손수 만든 거북이[기계]와의 가장 중요한 경쟁에서 아킬레스처럼 기계는 결코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다.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서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물질적 이익뿐만 아니라 도덕적 이익에도 응답한다. 우리가 늘 하는 일의 더 많은 부분을 기계가 수행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와 기계가 분열하는 세계를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은 결국 대부분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라는 유령을 불러왔다. 나는 나중에 급진화되고 경제 전반에 확산된 지식경제 아래서 노동의 성격은 변할 것이지만 노동의 총량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주장은 기술혁신에 대한 반론으로서 노동총량불변이론에 대한 정통경제학의 거부 태도와 완전히 일치한다. 진정한 위험은 그 반대다. 노동자층의 압도적인 다수는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기계가 할 수도 있는 일을 수행하도록 내몰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의 능력에 대한 존중을 통해 발전하는 경제라면 어느 누구도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경제의 제도적 안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러한 잠재력은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을 제외하고는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논의하게 될 특정한 방향의 시장질서의 제도적 개편은 지식경제의 심화와 보급을 위한 주요한 요건 중 하나이다. 그러한 변화의 한 요소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서 일찌감치 언급할 만하다. 계약형태로 매매하는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이 자유노동의 지배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한, 지식경제가 선호하고 요구하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는 억압되거나 통제되기 쉬울 것이다. 재산권의 이름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경영 재량권의 극대화에 대해 갖는 이익은 이러한 잠재력의 달성을 억제한다. 이들의 권력적 이익은 엘리트 노동자와 기술자의 작고 고립된 세상 바깥에서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를 반대한다.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의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대로 임노동이 점차 고차적인 자유노동으로서 독립자영업과 협동기업으로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러한 19세기 이상이 21세기의 현실과 가능성으로 전환되는 경우 그 이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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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6/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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