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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경찰’ 노덕술도 무공훈장 유지 친일 인사 서훈 취소 손 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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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경찰’ 노덕술도 무공훈장 유지 친일 인사 서훈 취소 손 놓은 정부

익명 (미확인) | 금, 2019/01/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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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고문·탄압한 노덕술은 훗날 한국전쟁 때의 공로로 화랑무공훈장 등 세 차례 훈장을 받았다. 사진은 일제 당시의 행적이 문제시돼 반민특위에 붙잡힌 노덕술을 보도한 신문 일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제강점기 ‘고문 경찰’로 악명을 떨친 노덕술 등 친일인사들의 훈·포장이 취소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사업을 벌이면서도 절차상 문제를 들어 친일인사의 상훈 취소에 소극적이다. 친일행위가 밝혀진 이들의 상훈 유지는 서훈의 가치뿐 아니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의 의미도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경향신문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친일행적’을 이유로 대통령장·애족장·애국장 등 상훈이 취소된 이들은 정부 수립 이후 모두 25명이다. 현재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 중 상훈을 유지하고 있는 이는 224명이다.

취소는 김성수 등 25명뿐
친일 224명 상훈 그대로

“법률적 요건 마련 안돼”
행안부, 훈장 취소에 난색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하는
정부의 노력까지 퇴색 우려

인촌 김성수(1891~1955)는 1962년 건국훈장인 대통령장을 받았다가 지난해 2월 상훈이 취소됐다. 앞서 2017년 4월 대법원이 징병과 학병 찬양 등 친일행위를 인정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를 고문·탄압하고 해방 후에도 경찰로 활동하다 육군으로 소속을 옮긴 노덕술은 한국전쟁 당시 받은 화랑무공훈장 등 3건의 훈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군 헌병으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신상묵(을지무공훈장 등 8건), 일제 고등형사를 지낸 이정용(홍조근정훈장 등 6건) 등 해방 후에도 경찰 등으로 활동했던 친일인사들의 훈장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현행법상 친일행적이 있다고 서훈을 다 취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상훈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상훈법에서 친일경력을 서훈 취소의 요건으로 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사람으로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경우 등이 아니면 서훈을 취소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독립·건국유공자로 상훈을 받은 인사의 친일경력이 훗날 밝혀지면 취소할 수 있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해 체육훈장을 받은 사람은 친일경력이 드러나도 상훈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포상 취소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고, 특별법 등 법률적으로 취소 요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단편적인 사실로 훈장 자체를 취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 등을 발굴해 독립유공자로 서훈심사를 요청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친일경찰 문제 등을 청산하는 데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며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상훈과 친일은 정통성과 역사성에 대한 문제”라며 “친일행적이 상훈 취소 요건이 되지 않는 건 법이나 규정 자체가 미비한 것이지, 그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친일행적에 대한 평가는 분야를 떠나서 봐야 한다”고 했다.

2016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국회에 친일파 등의 상훈을 취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인 의원은 발의 당시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에 서훈 대상자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의 가해자, 전범자인 경우를 추가하고, 서훈이 확정 또는 취소된 경우 관보뿐만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해 서훈의 가치를 높이고, 그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경찰을 발굴하는 등 잊혀진 소수의 인물을 찾아내는 일은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과거 일을 깊이 반성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병행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미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email protected]

<2019-01-11> 경향신문
☞기사원문: ‘고문경찰’ 노덕술도 무공훈장 유지 친일 인사 서훈 취소 손 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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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회원) 알고 있었던 민문연》

( 임소장은 응답하라)

내가(회원) 낸 회비는 모두 민문연으로 내었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도 민문연으로 내었으며그 돈으로 친일인명사전도 발간했고 식민지역사박물관도 세우고 빌딩도 우리가(민문연)이 매입 한 줄 알았으며 총회에서 임소장이 23억 빚을 회원들이 갚아 달라고 말한 것에도 이의 없이 들었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모든 것을 다 잘해 이렇게 컸구나 뿌듯했다그런데 지금 제기되고 았는 내용을 보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허상이었다

민문연(사단법인) 하나인 줄 알았는데 관계도 애매한 단체가 몇개나 되고 역사관 기금도, 빌딩구입도 민문연과는 별개요 권리도 전무하다 우리가 낸 회비는 민문연 인건비 경비 등으로도 빠듯하여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에 돈을 보태주고 자시고 할 능력도 없다 만일 민문연 돈이 그 재단법인에 넘어 갔다면 큰 회계적 범법이다 식민지박물관도 기금을 기부한 것이라 면 회원(민문연)과는 별개다(조승현 교수)

여기서 생기는 의문

1.구입한 빌딩은 우리 것도 아니고 우리 돈으로 산 것도 아니라는데(권리등기에는 민문연 이름 없음) 왜 소장은 총회에서 빌딩구입시 빚 낸 23억원을 우리 회원이 갚아주셔야 한다고 했을까 (조승현교수 말이 맞다면 소장은 당연히 옳지 않다)

2.우리와 전혀 별개라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의 통합 경과보고와 사업계획을 왜 민문연 총회보고서에 버젓이 올려 놓았나(p46, p67)(이것 역시 조교수 말이 옳다면 소장은 월권행위요 회원을 기만한 처사 아닌가 )

3. 총회보고서에 있는 정관은 사단법인법 정관에 배치되는 내용이 많다면서 왜 지금까지 그 잘못된 정관을 민문연의 당연 정관으로 인식하도록 그대로 올려 놓아 회원들이 오해하도록 했는가?이 정도애서만 보아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틀렸다

 ●이제 임소장은 응답하라

(어느 것이 옳은지 회원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2018년 6월 22일

이기자(동부지부)(통일염원시민회의 대표)

 

금, 2018/06/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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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저는IDS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사건을 검색해보시면 제2의조희팔사건이라고 나옵니다.

김성훈은 무허가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여명의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등을 챙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감방동기와 말도안되는 변제안을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현옥시키는 머리좋은 사기꾼입니다.

피해자들중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을 도와주셔야죠.

IDS홀딩스사건을 제대로 봐주시고

파산사건을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수, 2017/12/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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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2) 

 

이민우 운영위원장, 지난 514일부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답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촉구하면서, 어제(6. 25) 올린 글에서 두번째로 언급한 중대한 내용에 대한 질문을 아래와 같이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라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유가 무언가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화, 2018/06/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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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정관에서 회비 납부와 정관 준수를 의무로 정하고 있고
회원은 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사업과 활동에 참여,  자료 이용, 회보 투고를 권리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의무를 정한 정관을 비공개(정보공개청구 공개했지만)했습니다.
심지어 의사록(총회, 이사회)의 공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 비공개도 있을 수 없는일인데
의사록 마저 공개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최소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회원이 모르는-절대 알면 안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1만 3천여 회원에게 감춰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연구소에서는 회원이 알면 안되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작태를 보고 어떤 회원이 가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연구소에 쓴소리 한다는 이유로 제명하고, 사고지부로 지정하고…..
정관과 의사록도 비공개하고….
앞으로 어떤 역겁고 추한 모습을 더 보여주실 생각입니까?

회원의 기본 권리도 보장하지 못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외치는 진실과 정의는 무엇입니까?

화, 2018/08/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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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상범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교수님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연구소 2대 소장을 지내셨으며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거의 못하셨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셨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셨던 교수님, 실천하지 않고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지식 장사꾼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던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함이 안타깝다. 연구소 소장님으로 2년 남짓 모셨던 인연으로 몇 가지 교수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1991년 창립부터 10년 동안 봉사해온 김봉우 초대 소장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소장 직을 그만둔 후 후임 소장 물색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조문기 이사장님께서 신의 한 수처럼 모셔 온 분이 바로 한상범 동국대 법대 교수님이었다. 연구소로서는 천군만마요 야구로 치면 믿을만한 구원투수의 등판이었다. 왜냐하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법학계에서 한교수님만큼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역설한 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국법학계를지배한일본법학의유산>을 발표해 법학계의 일제잔재청산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일제잔재 무엇이 문제인가>등 제목만보면연구소가 펴낸책 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 한교수님은 친일청산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역사법정에세우다><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서 볼수 있듯이 독재와 불의에 대해서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분이었다. 그야말로 준비된 구원투수의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연구소 소장 재임 시절 술을 전혀 안 하시는 이유를 여쭤보니 1980년대 초 평생 마실 술을 다 드셨다고 한다. 이유인즉 신군부 시절 불법으로 연행당해 며칠 동안 고초를 겪고 난 뒤 울화가 치밀어 매일 밤 독주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법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무법이 횡행하는 시절을 살아내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복기, 김기춘, 우병우 등 시대를 막론하고 늘 ‘법꾸라지’들이 난무했기에 교수님은 ????화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라는책을펴내서법기술자들을질타했다.
또한 법 문구를 어렵게 만들고 난해하게 표현하여 특권층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며 <한글헌법 노트><한자숭배 나라망친다>는책을 펴내기도했다.법학자로서보기 드문 한글 사랑으로 한교수님은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번은 재일교포 단체 초청으로 일본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재일교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교수님은 원고 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잠시 강연하시더니 곧바로 “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왔으므로 이제부터 한국말로 연설하겠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신다. 실용에 앞서 자존을 중시하는 태도였다.
민족적 자존 나아가 인간의 존엄은 개성 출신으로서 6·25의 참화를 처절하게 겪어낸 한교수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따라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체제에 대한 본능적 저항은 한교수님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교수님은 멀리 지방 출장길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외출 때도 늘 작은 책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집일 때가 많다. 한번은 나에게 “시인 중에 누굴 좋아하시나?”라고 물으시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시와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회적 모순과 싸운답시고 자칫 거칠고 메마를 수 있는 감정을 다독이며 사회운동의 초심을 지키라는 조언이셨을 것이다.
지방 출장 중에 부득이 한방에서 묵어야 할 때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당대 인물들에 대한 평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당시 평판에 올랐던 인물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 중용되어 지금까지도 몇몇은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다.(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 인물평들을 녹음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밖에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로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재판을 받을 당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법적, 역사적으로 박정희의 악행을 거론하며 흉상 철거는 정당하다고 저항권의 입장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한교수님은 피고인석에 선 우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이제 연구소는 1991년 창립 이래 터 잡고 활동하던 동대문시대를 접고 용산시대를 연다. 동대문시대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성취했다면 용산시대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과 대중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동대문을 떠나며 가장 어려운 시절 연구소 2대 소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주셨던 한상범 교수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국가보안법? 허~ 참나. 머릿속의 생각을 벌주는 나라가 어딨어?”

방학진 기획실장

화, 2018/01/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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