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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비리 부정 등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 (1)- 비리 적폐 상근자들을 비호하는 임헌영 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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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비리 부정 등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 (1)- 비리 적폐 상근자들을 비호하는 임헌영 소장님

익명 (미확인) | 금, 2019/01/11- 01:22

민족문제연구소 비리 부정 등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 (1)
– 비리 적폐 상근자들을 비호하는 임헌영 소장님


지금 비리투성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이끌고 나가시는 분은 임헌영 소장님입니다. 

임소장님에 대해서 저는 2015년 3월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직접적 만남이나 대화 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무지 존경했었고 그에 따라 깍듯하게 예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 운영위원장으로 그 분을 직접 만나 회의하고 대화하면서 그런 생각은 깨졌습니다. 존경심은 물론 사라졌습니다.

연구소에 2002년에 부소장으로 오셔서 다음해 한상범 소장님이 사퇴하시고 바로 소장직을 맡아 10수년이나 계속 해 오셨는데(올해로 치면 부소장 재임기간 1년 포함 18년), 그렇게 오랜 세월을 혼자 계속 연임하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때문인가?

전임 한소장님은 2년만에 물러나셨는데…하는 근본적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내내 임소장님은 편파적으로 집행부, 특히 (당시) 조세열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잘못을 해도 늘 감싸고 대신 방어해 주셨습니다.  그 큰 방패막이 앞에서 운영위원장인 저는 늘 무기력했습니다.

2015년 내내 계속되는 집행부의 비민주적 행태와 정관 규정 무시, 전횡 등 비위의 진원지인 조세열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한 운영위원회의 문제제기(사무총장/국장 사퇴 징계요구)에 대해 임소장님은 끝까지 반대하시다 결국 조총장 징계보류, 방국장 징계 (사무국장 사퇴)에  동의를 하셨고, 그에 따라 2016년 6월 2분기 운영위원회 석상에서 두 사람이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임소장님의 집행부 두 상근자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의 하일라이트는 단연 그후 운영위원장단과의 약속을 깨고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한 징계(사퇴)는커녕, 오히려 직제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기획실을 만들어 1인 ‘기획실장’으로 발령을 낸 일입니다.

그에 대해 조세열 사무총장은 “직원 하나 없는 기획실장으로 발령낸 것을 갖고 뭘 그러느냐?”며 강변을 하면서 실제로는 사무국 일을 보게 했습니다.

방학진 하나를 감싸기 위해, 소장님이 먼저 제안함으로써 운영위원장단 대표 2명과 외부에서 이틀동안 만나가며 어렵사리 만들어낸 합의를 깨고, 저를 비롯한 운영위원장단의 뒤통수를 친 것입니다.

연구소 주요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2016년 8월 ‘집행위원회’에 앞서 안건을 사전에 달라는 운영위원장의 요구는 방학진 사무국장에게 묵살 당했는데, 당일 날 회의자리에서 배포된 안건 1호를 보니  “방학진 면 사무국장, 임 기획실장” 이라는 기가 막힌  인사발령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임소장님으로부터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저는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6월 운영위원회 이후 방국장 후임 선임이 늦어지고, 발령 소식도 없고, 조세열 총장에게 물어도 어물어물 넘어가고, 결정적으로, 집행위 안건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담당 방국장이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안 보내준 것, 회의 당일 날 시작 바로 전에 회의자료를 배포한 것, 모두 이미 짠 시나리오였습니다.

임소장님은 그러면서 운영위원장인 제가 뭐라 항의할까봐 먼저 “누가 뭐라 하든 이대로 시행하겠다”고 선수를 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얘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그때 잘하시던 말씀이 “조세열, 방학진이 없으면 민족문제연구소 망한다” 였습니다.

임소장님과 합의문을 만들 때도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한 ‘징계 사퇴’란 용어가 시민사회 쪽에 알려지면 연구소가 망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셔서 합의문에는 번호만 매기고 여백으로 남기면서, 운영위 발표 때는 “1번 사항은 합의상 발표를 생략하겠다”고 했습니다.

몇 번이나 그런 임소장님의 말씀과 행동 앞에서 운영위원장으로서의 저의 조총장과 방국장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는 늘 가로막히곤 했습니다.

집행부의 비위와 전횡에 맞서 전국의 회원의 대표로서, 운영위원장으로서의 직분을 다하려 했던 저는 소위 우리 사회의 ‘원로’ 앞에서, 그 권위에 눌려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2019. 1. 10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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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학교 친일잔재 청산 전수조사 나선 경상남도교육청

-대부분 가이즈카 향나무…이토 히로부미가 대구에 처음 심어
-경남교육청에 심어진 향나무 뽑아내고 소나무로 교체
-교체 강제할 순 없지만 교체 적극 권장할 계획
-친일 음악가 조두남, 창원에만 7개 학교 교가 제작
-일장기 모양의 학교건물도 남아있어
-일본 식민주의 사관 넘어 향나무 뽑는 실천부터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 이일만 장학관

◇김효영> 여러분이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요. 교가는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흔히 친일파로 분류하는 음악가가 만든 교가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교육기관 곳곳에 친일 잔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지시로, 경남교육청에서는 전수조사가 실시가 되고 있습니다.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전수조사를 맡고 계신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의 이일만 장학관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안녕하세요?

◇김효영> 특별히 전수조사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서 우리 교육청 차원에서 일제 잔재 청산과 우리 얼 살리기 교육사업을 전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해서 한 번 실시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돼서 2년간에 걸쳐서 실시를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조금 전에 제가 교가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교가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학교들에서는 가보면 교장실에 역대 교장들 사진이 걸려 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김효영> 네.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거기에 보면 일본인들의 사진도 그대로 걸려 있기도 하고, 사진이 없는 학교라도 명패 정도라도 이렇게 걸려 있는 그런 학교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가 1910년에 한일합방을 시키고 난 뒤 모든 학교를 군대화하는 형태로 이뤄지면서 교원들에게도 제복을 입혔고 학생들에게까지 교복을 입혀서 통치가 이뤄지다보니까 아마도 교장들의 사진에서도 제복을 입은 것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효영> 경남교육청은 향나무를 뽑았던데, 친일 잔재란 이유로. 학교 교목도 친일잔재로 볼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교목 같은 경우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즈카 향나무는 일본이 원산지로 돼 있고, 나사 모양으로 뒤틀려서 자란다고 해서 나사백이라고도 하고, 한자로 표기하면 패총으로 표기가 됩니다.

◇김효영> 패총.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조개무덤. 일제 강점기에 학교나 관공서에 많이 심어졌고, 100여 년 전인 1909년 1월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순종 황제와 함께 대구 달성공원을 찾아 기념식수로 처음 심었다고 전해지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지난 3월 1일에 우리 도교육청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가이즈카 향나무를 뽑아내고 우리 소나무로 바꿔 심었습니다.

◇김효영> 사실 그런 향나무가 관공서에 많지 않나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고 표현을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김효영> 거의 다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그렇습니다.

◇김효영> 이번 전수조사에 가이즈카 향나무도 포함이 되고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당연히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학교에 특히 향나무를 교목으로 하고 있는 학교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교체를 하라마라 강제성을 둘 수는 없지만, 적극적으로 교체를 할 수 있도록 권장을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우리가 흔히 보는 향나무는 대부분 가이즈카 향나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대부분 나무들이 보면 둥근 모양으로 돼 있는, 우리가 흔히 향나무 하면 떠오르는 그 나무들 거의 대부분이 가이즈카 향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나무 이야기를 했고요. 그 다음에 앞서 말씀 드렸던 교가 문제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작사가나 작곡가 중에 친일 인물로 분류할만한 사람들의 작품이 많이 있습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저희들은 곳곳에 산재한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친일 작곡가, 작사가의 개념이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규정짓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들이 친일인명사전이라든지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 파악을 했을 때, 오래된 역사들을 갖고 있는 학교들에 대해서는 특정인에 의해서 작사, 작곡된 교가들이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김효영> 장학관님께서는 상당히 조심해서 말씀하시고 계신데, 제가 대신해서 좀 말씀을 드리자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친일 작곡가로 분류되는 사람이 조두남인데요.
이 조두남씨가 창원에 있는 학교 7개 학교의 교가를 작곡을 했습니다.
창원의 성호초등학교, 온천초등학교, 완월초등학교, 합포초등학교, 내서중학교, 경상고등학교, 무학여고. 이렇게 7개의 교가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창원대학교 교가도 조두남씨가 작곡을 했던 겁니다. 참고하시면 되겠고요.
창원 지역만 제가 예를 들었습니만, 창원만 그렇지는 않겠죠?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다른 지역에 대한 부분은 지금 현재 조사 중이기 때문에 5월 정도 되면 전수조사 결과가 집계가 될 것으로 저희들은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서 말씀하셨던 조두남 같은 경우는 그때 당시에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여러 학교에서 조두남 작사, 작곡의 교가가 있지 않나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효영> 나무나 교가 말고, 또 어떤게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학교 담부터 시작해서 화단 모양 이런 것에서도 일제 잔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함안의 모 학교 같은 경우에는 운동장 바로 옆에 건물이 하나 있거든요. 그걸 위에서 쳐다보면 일장기 비슷하게 된 그런 오래된 건물이 하나 지금도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이렇게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무관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무관심’이라는 표현 자체가, 있어 왔던 것에 대한 익숙함. 그래서 문제의식을 가지기 보다는 있어왔으니까 그대로 가는 그런 형태가 지금의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합니다.

◇김효영> 그냥 옛날부터 있어 왔으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그것이 일제 잔재였는지에 대한 고민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김효영> 다른 일반적인 공간이 아니라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그래로 둬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하신 거군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그렇습니다. 특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면서 더욱 더 우리 도교육청에서는 우리 얼에 대한, 그리고 나라사랑 교육을 심어주고자 하는 교육감님의 뜻에 따라서 저희들이 그 부분에 대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효영> 전수조사를 한 다음에는 외부 전문기관의 도움도 받으시는거죠?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우선 전수조사가 끝이 나고 나면, 20명 안팎의 TF팀을 꾸리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TF팀을 꾸려서 전수 조사된 내용을 충분히 분석을 하고 이 결과를 가지고 민족문제연구소나 다른 대학 등 전문기관에 의뢰도 하고 도움을 받아서 운영을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친일잔재 청산작업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이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호숫가에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서 물결이 파장이 일어서 변화가 나타나듯이, 이 일을 계기로 해서 그 동안 무심코 넘겼던 일제의 잔재라든지 어떤 흔적들,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습관들까지도 바꿀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일제의 잔재를 깨끗하게 없애버린다는 것 보다는, 지금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고, 이러한 것을 어떻게 현 시점에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정표의 기회가 분명히 일제잔재 청산 정책의 기본 취지라고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적어도 알고는 있자는 겁니다. 기억하자는 것이고. 끝으로 한 말씀 하시고 오늘 인터뷰는 마치겠습니다.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본 사업은 지난 100년간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함께 살아온 일본 식민주의 사관의 결과로서 이 100주년을 넘어 온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사명감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작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청도 교목이나 교가 하나 바꾸는 것을 넘어서 인류의 보편적 이상인 민주, 평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세계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김효영> 조사결과는 다음달에 나온다고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5월 즈음 전수조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효영> 결과가 나오면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고맙습니다.

[email protected]

<2019-04-18> 노컷뉴스 

☞기사원문: “학교 향나무,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

토, 2019/04/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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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성 교육위원

3·1혁명 100주년 기념 특별강좌와 답사가 연구소 교육장 5층에서 3월 2일(토) 오후 3시에 시작되었다. 이번 강좌와 답사는 매주 토요일 4회(3강좌+1답사)에 걸쳐 진행되었다.

1회차 강좌 〈만세열전 – 그들이 만세를 부른 이유〉는 조한성 선임연구원이, 2회차 강좌 〈“가만히 있으라”– 삼일혁명과 친일세력〉은 박수현 사무처장이, 3회차 강좌 〈3·1혁명100년, 다시 혁명을 이야기하
다〉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각각 담당하였다. 4회차 답사는 〈100년 전 그날, 만세의 현장 – 종로, 북촌 일대〉로 권시용 선임연구원이 진행하였다. 강좌참가자에게는 조한성 선임연구원의 역저 ????만세열전????이 저자의 사인을 담아 증정되었다.
이번 강좌에서는 무명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3·1혁명의 숨은 주인공들의 이야기, 일제와 손잡고 만세시위를 막고 독립불능론, 내선일체론 등을 내세웠던 친일파의 망동,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을 만든 3·1혁명의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답사는 3·1혁명 만세시위의 현장이었던 보신각, 경성재판소터, 보성사터, 천도교 중앙총부터, 승동교회 등을 탐방하였다.
연구소 이전 후 소내 교육장에선 처음 갖는 시민역사강좌(유료)임에도 회원과 일반참가자 20여 명이 참여하였다. 특히 가족 단위로 강좌를 수강한 경우가 눈에 띠었는데, 어느 회원은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 모두가 참여하여 주말을 뜻깊게 보내는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구소·박물관 회원뿐 아니라 일반 참가자들도 이번 강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연구소 활동에 격려를 보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차후 시민역사강좌와 답사를 정례화하여 시민들의 역사의식 함양에 기여하고 아울러 연구소와 박물관 홍보에도 활용하고자 한다.

금, 2019/03/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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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자 유진오의 생가터와 추모비가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입니다. 이를 철회하려고 하남시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친일부역자의 생가터와 추모비를 철회시키려고 하는데 힘이 되어주실 수 있는 분들은 힘이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 2019/04/0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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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4

[바로듣기]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목, 2019/04/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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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선융화의 상징으로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최초 외교관으로 발탁

일제가 어떻게 친일파를 양성했으며, 지식인은 어떤 과정으로

친일파가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툽과 팟빵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월, 2019/04/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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