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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모두 이기는 남북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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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모두 이기는 남북평화의 길

익명 (미확인) | 목, 2019/01/10- 11:50

사회운동을 하다 보면 반드시 생각해야만 하는 개념이 진보와 보수다.

나는 예술인이지만 평화운동가를 자임하며 활동한지도 오래되어서 이 참에 진보와 보수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야겠다. 그래야 앞으로 ‘유라시아 평화의 길’ 평화운동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를 건설해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생각해도 ‘평화의 길 찾기’에 분명한 길이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화의 길을 찾아가려면 세 가지의 문이 열려야 한다. 남남간 상호적대시를 하고 있는 제도의 개선, 경제양극화를 해소하는 경제개혁, 이질성에 대한 문화적 다양성 이해의 3가지 문을 여는 것이다. 적대성, 양극화, 이질성의 문을 열어야만 하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 않으나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길목을 막고 선 남남갈등의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국민 여론이 7~80%가 동의하는 정도의 평화의 길로 대세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민주국가의 보편적 가치가 방향이 되는 길이라면 1차적으로 대세를 만든다. 성숙한 민주국가를 만들어가는 길이 평화통일로 가는 첫 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국가 내에서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자기입장을 분명히 하며 공정한 정치 개임을 벌려야 한다.

칼럼_190110
<3.1아리랑> 유화 50호, 2012년 김봉준 작.

 

우선 국가론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니 들여다보자. “사회 전체의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강제적인 제도로서의 국가는 플라톤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생명력을 가지는 유기체로 파악한 이래 홉스 ·루소 등의 사회계약에 의한 국가론을 거쳐 헤겔의 절대정신이 발현된 최고의 조직체로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가에 대한 규정은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계급적 지배를 은폐하려는 관념론으로 비판되었고, 이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의 국가론은 국가를 철저히 계급지배의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두산 백과사전의 국가론>

 

현대국가들은 여러 국가론에 정합하든 안 하든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국가형태 여부로 국가의 정당성을 판가름한다. 민의는 자유로운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결사 집회의 자유 아래 선거로 반영되고 시스템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분립으로 형성된다면 대체로 민주국가라고 부른다. 국가 시스템도 정치권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고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익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어서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국가에서 ‘민주국가’를 정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고 누가 정치권력을 민주선거로 획득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된다. 그러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와 선거의 공정성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한국이 남남 갈등이 심한 것은 민주주의 기초가 아직도 취약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증표다. 공정한 정치 개임을 펼치지 않는다면 정치적 아젠다는 민의를 대변하지도 못한다. 소수파든 다수파든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정당으로 모아지려면 시민사회의 여론 형성에서부터 공정한 여론조성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론조성 과정을 왜곡시키면 여기서부터 남남갈등이 생긴다. 한국사회는 여론조성 과정의 왜곡으로 아직도 해묵은 남남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누적시켜 왔다. ‘전두환 복권시도’, ‘사법적폐’, ‘의회의 후진성’, ‘가짜 뉴스 언론’ ‘태극기 집회들’ 등등 합리적 논의가 불가능한 극우적 세력이 자본권력과 함께한다. 여기에 파생한 문화권력도 만만치 않다. 정상적인 진보와 보수의 선의의 경쟁과 합의가 너무나 안된다.

 

우선 진보와 보수를 정상적인 상태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보수는 시장자유와 국가안보 평화, 그리고 경제성장과 후생복리의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를 구상한다. 진보는 보다 평등한 복지,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인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를 구상한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나 공통된 가치로 생태보존, 사회안전, 정의가 있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 강조점이 다르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다르게 정해지고 국가 구상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대략 우리가 진보든 보수든 생각하는 정상적 민주국가관은 이상 일곱 가지 가치를 갖춘다. 자유, 평화, 인권, 복지, 안전, 생태보존, 정의의 나라다. 이 일곱 가지 중에서 몇 가지 가치를 위해 몇 가지 가치는 희생 되어도 된다는 방식의 지배력을 국가가 배타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국가가 아니다.

최소국가론이든, 계급적 국가론이든, 홉스 루소의 사회계약 국가론이든 간에 일리는 있으나 충분치 않다. 계급국가주의는 명백히 실패했고, 최소국가론은 약자와 다수의 인권과 복지를 방기하며, 사회계약 국가론은 미완의 국가론이다. 오늘날에는 생태 인권 복지 등 시민권과 문화정체성이 다른 국가들을 볼 때 일반론으로는 부족하다. 현대에서 국가는 적어도 위의 일곱 가지 가치 요소를 지녀 민주국가의 면모를 갖추어야 탈국가주의를 피할 수 있다. 국가 지배세력의 엉터리 국가주의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써온 제국주의 국가와 독재국가는 평화세계와 민주국가 건설에 장애가 되는 게 현실이다.

 

국가를 계급적 지배에 두려는 국가론은 한 물 갔다. 7가지 공동선을 가치로 하는 국가가 정상국가이며 이 7가지 공동선을 반영한다면 어떤 국가형태든 인정된다. 시민의 자유로운 교류와 연대로 세계인은 자기가 사는 사회를 민주국가로 앞당기고, 세계평화시민으로 나가려는 노력이 정보공유의 세계화로 앞당겨 지고 있다.

여기에 인류가 이룩한 민주국가의 7가지 가치에 하나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종족의 문화이다. 종족마다 오랜 전통 속에서 형성해온 언어, 통과의례문화, 전통풍속 등 원형문화의 가치다. 또는 어머니문화로 상징되는 밈(meme) 문화다. 이것들은 인류족이 오랫동안 생태지리 속에서 적층하여 온 삶의 지혜와 생활양식이다. 이것은 민주국가의 7가지 가치에서 처음엔 배치되기도 하고 부합하기도 하고 충돌도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가치와 개성적 문화가치는 상호 보완하며 풍요로운 인류평화와 박애의 문화를 형성하는 자기 정체성의 기초다. 각자 지구촌마다 인류생태적 토양 아래 7가지 가치는 자기 나름들의 심층문화 솥단지(아키타입과 밈) 속에서 잉태하여 평화문명으로 키워져 형성될 것이다. 우리도 그 산통을 겪어 왔다. 민주가치를 소화하고 포태하는 심층문화는 평화와 사랑의 신성한 힘이다. 한국의 문화정체성의 뿌리는 동학파(개벽파)로 명명할만하다. 해양세력의 개화파나, 수구주의 벽사파의 갈등 속에서 동학파는 좌절했다. 100년전 3.1혁명으로 민중은 다시 개혁의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현실적으론 좌절하고 망명정부로 계승한다. 왕정복귀의 부정으로 벽사파는 소멸하고(친일파로 이동), 식민지 속에서 국내 개화파는 친일파가 되고 해외 개화파는 훗날 친미파로 돌아온다. 중심을 잃은 국가론은 분단과 6.25 전쟁으로 더욱 수렁에 빠져서 독재정권으로 비정상적 국가형태를 유지하다가 기나긴 민주화 혁명을 만들어간다. 중심을 잃은 나라는 늘 혼란스러웠고 미완의 혁명이지만 거의 평화적으로 민주국가의 가치를 하나하나 쟁취하며 오늘에 이른다. 민중(시민)은 스스로 자기 중심을 잡아가며 7가지 민주국가가치를 찾아가고 있고 그 중심에 정체성 있는 문화의 힘이 작동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남북통일의 대상이다. 그것도 평화통일이다. 한국부터 남남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고 민주국가로 정리해야 하겠다. 조선인민공화국은 계급독재로 사회주의 건설을 하려 하였지만 실패해왔다. 북은 서방세계가 말하는 다원주의 민주국가로 급격한 이행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럴만한 경제력도 없고 역사적 성장도 없다.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일당독재로 이루고, 수령 세습화로까지 더 나가며 김일성 왕국을 만들었다. 여기에 갑자기 7가지 국가가치를 한꺼번에 이루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은 남과 국가정체성뿐만 아니라 문화정체성이 다르다. 동질성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이질성부터 이해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다면 모를가. 급변사태로 북에서 정변이 일어나 스스로 붕괴하지 않는 한 먼저 공격하여 타도 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진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계질서는 물론 동아시아와 남북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났다.

 

그러니 변화를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변화하기를 남은 기다리고 도와준다. 평화시민운동이 이점을 명백히 하자. 비핵화와 제재 해소가 행동대 행동으로 마무리되고 북미수교 되는 과정을 남은 방해하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북미수교가 결열 되더라도 북이 말하는 ‘새로운 길’은 있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러북남미일의 다자간 평화협정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평화의 길은 반드시 북미수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한국이 국익차원에서 유리하다면 지속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해양세력의 전초기지처럼 성장했으니, 한미군사동맹은 국가차원에서 상호필요성이 있다면 철수가 능사는 아니다. 한미간 군사동맹은 경제협력과 한국의 경제 의존성과 국제질서의 안정적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북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해왔고 남은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에 의존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본다면 다자간 평화협정의 길이 보다 안전 할 것이다. 북은 그냥 죽는 길을 택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북이 북미 단독협상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반드시 유리하지 만도 않다.   

 

때가 아니면 기다리고 서로 상생의 길을 찾아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동학파 홍익인간이고 接化群生 사상이다. 급변사태보다 점진적 변화를 바란다. 세계에서 완전한 정상국가의 모델은 없다.  21C세계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다.

북은 평화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보다 정상적인 국가형태를 갖추어 갈 것이다. 남쪽이 그것을 도와야 할 것이고 때로는 자문하고 보호도 해야 할 것이다. 북도 4.27선언 이후 이미 새로운 평화국가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남북갈등을 조장하며 분단을 유지해서 이득을 보아온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면 인내와 비폭력의 남북평화시대가 한 세대 이상 거쳐야 할 지도 모른다. 150년을 기다려온 개벽세상인데 200년인들 못 기다리겠는가. 남이나 북이나 국가폭력과 체제억압으로 희생된 민중의 넋을 생각하면 더 이상 싸우지 말아야 한다. 저 시베리아에 아직도 살아 있는 교포 고려인을 만나면 늘 하는 말이다. 조국분단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동포들 목소리다. “제발 남북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평화통일 하기를 바란다.”

 

7 가지 민주국가가치는 어머니 배속에서 거듭 나듯 자기 문화 속에서 숙성해서 시민적 깨달음 (성불, 뉴빙, 무아, 모심, 신명 등 등)으로 현대 인류는 평화의 세계를 찾아 왔다. 본성적 문화는 ‘어머니 문화’이다. 사랑과 평화를 본성적 문화속에서 키워서 일곱 가지 민주가치를 자기문화화 해왔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도 생산적이고 자기 정체성을 가진 창발적 민주문화가 틀림 없다. 이것을 나는 ‘隆平문화’라고 부른다. 평화가 드높은 격조를 갖춘 평화주의이다. 촛불혁명은 150년 개벽과 혁명의 좌절 속에서 성찰하며 깨달음으로 자라고 자라난 평화혁명이다. 이전에 그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명예혁명이고 21세기 평화문명을 예감하게 한다. 누구는 “평화세계는 요원하다.” “언제나 올지 모르는 개꿈”이라 말한다. 제국의 힘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한미동맹으로 북진통일하고 만주까지 우리가 접수할 기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전쟁으로 승리해서 평화를 정당화하려는 낡은 평화론이 아니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도 6.25가 보여주듯이 국제전으로 간다. 상대는 무기력한 폐멸 국가인가. 이런 주장은 갈등과 전쟁을 부추기는 잔악한 반평화주의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에서 어느 쪽에도 빌붙지 않고 영세중립국으로 가는, 동이문화의 弘益人間 理化世界 接化群生의 사상을 이어 중심 있는 평화의 길을 찾을 것이다.  이 길이 서로 싸우지 않고 모두 이기는 평화의 길이다. ‘어머니’가 말씀에 평화의 이치가 있다. “남북 군인 모두 어머니 자식이다. 더 이상 싸우지 마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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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와 논의를 해주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의 안지영 박사님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은 북한영화전공자인 안지영 박사님과 농민의 직업세습과 영화를 주제로 한 공동논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영화관련 글에 안지영 박사님의 커멘트를 가져온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벼꽃(2015)의 주제의식: 형식주의에 빠진 간부층을 비판하고 열성당원이 해야 할 일을 제시

작업반장으로 대표되는 낡은 농촌관료층의 농장관리행태를 비판하고, 선동원의 벼꽃 리더십을 중심으로 새로이 농장원들이 식량증산을 위해 하나로 뭉쳐가는 과정을 제시

2012년에 6.28 조치로 농업개혁의 모양을 구체화하기 시작였지만 개혁의 진전은 더뎠다. 2013년에는 외부관측자들에게는 거의 농업개혁이 중단되는게 아닌가 할 정도인 상황이었으나, 2021년 현재 안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로는 관료들과의 타협 속에서 기득권은 인정되면서 농장은 계속 포전담당책임제가 형태를 달리하면서 실시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영상 2> 벼꽃의 타이틀 롤. <출처: 유튜브 영상>

북한에서 개혁은 2012~2015년에 추진되었는데, 2015년에 제작된 유일한 예술영화이다.【8】 당연히 이 시나리오는 많은 영화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해 당의 수많은 검토를 거쳐 선정되었을 것이다. 농장에는 청년 동팔, 미경이, 비료를 연구하여 인정받고자 하는 광민이, 시장적인 마인드를 지닌 선화 등 각자의 욕망을 지닌 다양한 인물들이 농장공동체를 구성한다. 선동원 정임은 농사에 의욕을 잃은 농장원들과 신세대들의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모아 쌀로 사회주의를 지키자는 당의 목표로 이끌어가는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벼꽃(2015)의 인물과 줄거리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선동원 정임이다. 마치 붉은 선동원 리신자를 모델로 삼은 듯한 정임은 전국분조평가에서 제 1작업반을 우수분조로 이끈 열성적인 선동원이다. 그러나, 명예를 버리고 제일 뒤떨어지는 제3작업반의 선동원으로 스스로 배치를 원한다. 제3작업반에는 농장일보다 개인의 실리를 앞세워 과수생산에만 열을 올리는 비사회주의적인 선화, 장기간의 식물성 농약개발연구에도 별 성과가 없어 엉터리박사라 무시당하는 광민, 축구에 푹 빠져 작업반 꼴찌를 하는 청년 동팔이가 속해 있다. 정임은 이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집단노동에 충성을 다하고 쌀로 사회주의를 지키고 분조장과 분조원의 임무를 다하자고 선동하는 정임과 대립되는 인물은 기존 농업운영체계의 간부들과 선화와 같은 부정인물들이다. 특히 작업반장은 분조의 집단노동을 빠지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일을 하는 선화의 뒷배를 봐주는 역할을 하는 부정적 인물이다. 둘 사이에는 모종의 돈거래가 존재한다. 분조장은 이도 저도 아닌 무력한 존재이다. 당비서는 농사짓는 아바이로 이 모든 것을 알지만 묵묵히 지켜보는 인물로 그려진다.

선동원 정임은 혼자 동분서주하면서 농장원들의 생산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헌신을 통해 농장원들의 마음을 사게 된다. 정임은 선화의 다친 아들에게 급히 수혈을 해주고 동팔에게는 축구와 관련한 책을 구해주고 그의 뛰어난 축구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마련하여 미경과의 연인관계를 인정받도록 미경의 아버지 작업반장을 설득한다. 비료를 연구하느라 가짜 박사라는 비웃음을 사는 광민에게도 연구에 적합한 실험환경을 마련해주어 비료발명을 성공시킨다. 정임은 그 소식을 별거 중이던 광민의 아내에게 전해 아내는 딸과 함께 집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해체위기에 내몰렸던 광민의 가정도 다시 회복된다. 농장은 이같은 농장원 한명 한명에 대한 돌봄과 노력을 다하는 정임의 헌신을 밑걸음으로 해서 분조원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을 통해 변화해간다. 마침내 영화는 제 3작업반은 우수분조로 표창장을 받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기존 농장운영 방식과 기득권을 상징하던 작업반장조차 이제는 정임이 벼꽃과 같은 사람이라며 칭찬한다. 모든 사람들의 축복과 함께 동팔과 미경이 결혼하며 이를 통해 젊은 처녀 총각이 농사에 마음을 정착한다.

 

벼꽃 리더십: 천리마 시대 붉은 선동원【9】의 후신

일견 벼꽃의 선동원 정임은 천리마 시대에 리현리의 천리마영웅인 리신자의 분신이 소환한 것으로 보인다. 천리마시대에 리현리에서 활동했던 리신자는 붉은 선동원이라는 영화와 연극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업적으로 갓 22살의 나이에 관리위원장으로까지 고속승진했고, 평양 농업국 경영위원장까지 올라갔다. 2021년 현재 북한 당국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소환하고 있다. 반면 2021년에 새로 소환되는 선동원은 모든 농장원들을 섬기고 그들을 알아주되 자신은 죽이는 벼꽃같은 존재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천리마정신은 집단주의를 향한 인간개조운동이자 생산량 증대운동이었다. 전체를 위한 하나가 어떻게 하나의 씨앗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전체를 위할 수 있고 그러한 노력이 전체 인민들의 정신을 각성시키고 당시 대중을 격동시켜 생산의 열기에 나서게 한 대중운동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의 천리마운동시기가 당시 감동적이었다고 할지라도 50년 전의 영광을 다시 불러낸다고 해서 과연 대중들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할 수 있을까? 주인공 정임은 천리마 시대의 붉은 선동원을 소환한 캐릭터로 유명한 공훈 배우 윤수경이 주역인 선동원을 연기하였다. 북한당국의 속내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먼저, 농업개혁이 농촌관료와 농장원, 그 외 관련자들에 의해 가능한 부드러운 방식으로 원만하게 진행되길 바랐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벼꽃 이미지를 농촌사회의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완화하는 온건하고 통합적인 리더십으로 내세운 것이다.

<영상 3> <분조장의 임무>카드를 분조장에게 전하는 선동원 정임. <출처: 유튜브 영상 “벼꽃”>

그러나, 2015년 당시 격동기 농업개혁기 농장사회에서 들끓는 농촌공동체를 구심이 되어 끌어가는 리더십으로는 무기력해 보였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자신의 이익을 창출해가고 작업반장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다른 농장원들의 질시와 선망을 받는 선화라는 인물이다.

<영상 4> 붉은 선동원 리신자를 형상화한 예술영화. <출처: 조선중앙TV 특집 천리마시대의 녀성영웅들- 붉은 선동원 리신자 유튜브 영상>【10】

<영상 5> 영화 벼꽃: 비닐하우스 딸기소출을 계산하는데 골몰한 농장원 선화. <출처: 영화 ‘벼꽃’의 선화, 유튜브>

“뭐니뭐니 해도 지금 계절엔 딸기가 확실히 나아!” 주택의 온실에서 수확한 딸기가 얼마나 소득이 될지를 소형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계산에 골몰한 모습을 담았다. 김소영(2019)에 의하면 농장원들의 개인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비닐하우스 딸기를 도시의 상층들에게 공급 된다.【11】

농장원 선화는 집단농사에는 슬슬 빠지면서 자신의 텃밭에서 재배하는 딸기에 더 열을 올힌다. 작업반장은 이같은 선화의 뒤를 봐주고 교류하는 관계이다. 선화는 농장원이지만 자신의 주택 텃밭에 온실을 설치하여 딸기와 수박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는 일을 한다. 선화가 재배하는 딸기는 그림과 같은 경로를 거쳐 도시 상층에게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에서 선화는 시장화와 개인주의에 물든 농촌의 새로운 계층을 대변하며, 작업반장이 선화가 집단노력 동원에 빠지는 것을 노골적으로 봐주는 장면은 농촌관료와 농촌 시장행위자들의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음을 암시한다. 북한영화의 체제선전 속성상 이런 비사회주의 행위장면을 담아냈다는 점, 영화에서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주의 행위에 대해 어떤 인과응보 처리없이 지나친다는 점도 의외의 지점으로 관전 포인트이다. 동팔 등의 다른 농장원들은 선화를 뒤에서 비난하면서도 마치 그녀를 선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처럼 영화는 선화라는 농촌 시장화를 대변하는 인물에 대해 시종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연애와 축구에만 열을 올리고 농사일은 슬슬 빠지는 신세대 전형적 인물인 동팔은 연모하던 처녀 미경과 결혼에 성공하면서 농사일에 마음을 주는 결말로 끝난다.

 

분배순위에서 밀린 농민들의 절박한 식량사정은 배제

영화 벼꽃(2015)은 개인 농사를 지어 시장에 파는 선화나 나 자유주의 분자 동팔과 같은 현실적인 인물을 담아내는 등 현실에 근접하려는 여러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영화가 과거에 인민대중들에게 가졌던 호소력을 잃어버렸다. 이는 시장화 현실은 물론 김정은 정권에서 시도한 개혁이나 농장의 현실을 영화가 전혀 담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서 시도한 개혁의 속내나 군량미로 대부분의 식량을 빼앗기고 굶주리는 농민들의 절박한 현실은 철저히 배제된다. 과거 구시대 천리마 노력영웅들은 언제나 앞장서 놀라운 생산능력은 물론, 분조원 개개인의 욕구나 형편을 마치 형제처럼 돌보는 따스한 폭넓은 인품의 소유자들이었다. 정임의 벼꽃 리더십은 형태 면에서는 이런 천리마노력영웅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그러나 왜 오늘날은 호소력을 얻지 못하는가?

이는 시대적 배경 변화가 영화에서 도려내고 천리마정신만 강조되는데 그 이유가 있다. 2010년 이후 시장화와 계층의 분화가 진행되면서 시장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행위자들이 등장하고 농촌관료층들이 기득권층으로 고착화되었다. 무엇보다 고난의 행군 이래 농촌의 농민들은 군대나 특수기관 등의 군량미 우선원칙에 밀려 농민들은 분배순위에서 ‘군-> 기업소-> 농민’의 순위를 차지하게 되었고(그림 2 참조), 농민의 희생에 기초한 분배구조의 문제로 생산의욕을 상실하였다.

<그림 1> 농산물 수확후 농산물 처리흐름도

이같이 북한 농민들의 억울한 현실이나 농가 가계는 외면한 채 수령님의 뜻만 주장하는한, 영화 속 선동원 정임이 농장원에게 보여주는 헌신과 보살핌, 진정성의 리더십은 무기력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능력과 인품으로 대중을 감화하고자 하는 희생적 벼꽃 리더십만으로는 농촌사회나 농민들의 근본적인 생존문제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국가의 일방적 메시지 전달과 길잃은 조선영화의 향방

과거에는 영화에 대해 안목이 높고 열정적이었던 김정일에 힘입어 북한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영화에서 일부나마 드러내기도 하였다.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 “한 여학생의 일기” 등에서는 인민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최고권력자의 비호가 사라진 현재, 영화는 좀더 조심스러워졌다. 분조의 주인이나 벼꽃에서 몇몇 농장간부들, 즉 분조장이나 작업반장 등과 같은 말단간부의 무기력한 태도를 온건하게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모든 일을 수령님 뜻에 따라 하는 영화의 문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필자가 면담한 결과에 의하면 포전담당책임제이후 농민의 식량문제는 오히려 절실해졌다.【12】 분배의 순위에서 농민에게 정권기관이나 군량미 등이 분배순위에서 우선되고 농민 자신의 분배는 하위로 밀리기 때문인데 그 문제는 다음에 다루고자 한다.

농민 자신의 절실한 고민 예를 들어 ‘농민들이 어떻게 먹고 사느냐?’의 질문은 여전히 영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됨은 물론, 개혁시기 포전담당제를 둘러싼 갈등이나 현실의 구조적 문제는 은폐된다.

기층 노동자인 농장원의 식량문제는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으며, 분배의 정의는 세워지지 않는다. 농촌사회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지역별 포전담당책임제의 적용이라는 미명 하에 농촌관료들의 힘은 여전히 견고하며 이들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된다. 포전담당책임제 하에서 이제 비료와 영농자금, 노력을 댈 수 있는 부유한 가구는 더 많은 토지를 받아 더 많은 수확을 얻게 된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먹을 식량도 없는 현실에서 절망한다. 이러한 와중에서 수확물 분배의 권한을 대행하는 작업반장 등의 농촌관료들과 이들과 유착된 농장원들의 권력은 더 커진다. 포전담당책임제가 농촌 양극화의 문을 연 것이다.

한 평양의 명문대학 출신 청년은 과거 대중들의 마음을 샀고 감동을 주었던 북한영화가 이제는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13】 조선영화와 현실간의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그러기에 기층대중들은 영화에 갈수록 무관심해지고 있다. 농민이 ‘식량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분조의 주인’ 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본령은 체제 선전이 아니라 현실에 토대를 둘 때 살아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해주고 있다.

 

(예술영화) 분조의 주인(2012)

평양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제작진/연출, 공훈예술가 전종팔 ; 촬영, 공훈예술가 류승철 ; 미술, 최영식 ; 작곡, 전봉덕 ; 연주, 평양영화음악록음소 ; 후원, 평양시 순안구역 택암협동농장

연주자와 배역진/김은향(소영 역), 한용팔(강삼 역), 리성광(문일 역), 리웅관(기사장 역)

 

(예술영화) 벼꽃(2015)

정임-공훈배우 윤수경, 선화(중학교 동창, 딱친구)-김경애, 광민(초순아버지)-김성철, 반장-한성훈, 동팔-김룡만, 초순어머니(미용사)-박윤

영화문학-김송림, 김서휘, 연출- 선우훈

책임연출-백현구, 촬영-심영학, 정복남, 미술-김학철, 작곡-허준모,

1부 연출-윤창수, 1부 촬영-권형철, 분장-변애경, 리향희, 편집-최옥별

후원-황해남도 신천군인민위원회

<끝>

 

【8】 이영애. “김정은 집권이후 예술영화에 나타난 갈등에 관한 연구: 2015년 발표된 벼꽃의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 23(4). 2018.12.

【9】 붉은 선동원, 북한에서 ‘천리마 시기’를 배경으로 협동농장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이다.962년 조백령의 영화문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민청원 선동원 선자를 주인공으로 천리마 작업반과 농업혁명화를 이야기한다. 민청원 선동원인 선자는 남강을 사이에 둔 이웃 청룡리는 매년 풍년을 맞는데 비해 자기 마을은 사람들이 땅만 탓하면서 패배감에 젖어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6.25전쟁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장사를 해 생계를 유지하던 복선은 농사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여 자기 포전을 돌보지 않고, 영애와의 결혼 문제로 선자를 오해한 관필 역시 평양에 가 공장에 취직할 궁리만 한다. 관필의 아버지 진오는 원래 농사꾼이지만 새로운 방식의 협동 농사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공명심 때문에 나선다는 사람들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선자는 복선, 관필, 진오를 작업반의 일원으로 만들어 결국 청룡리 만큼 잘 사는 농촌마을로 만든다. ‘천리마 시기’ 농촌에서 협동농장을 만들며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을 보여주며 청산리 농법을 보여준 영화로 평가받는다. 동명의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 1961년 국립연극단이 제작한 연극은 인민상계관작품상을 받았다. 2006년에 영화배우 김윤홍이 각색하여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10】 지난 2018년 11월에는 조선중앙tv에서는 그 손녀가 농촌에 선동원으로 들어가 리신자의 뒤를 계승하여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하였다.

【11】김소영, “북한 농업부문의 시장화:협동농장과 ‘장마당’을 중심으로”, KDI북한 경제리뷰 2019.10.p. 61.

【12】 “김일성 때 같으면 그래도 암행어사 식으로 현실적으로 농장에 내려와서 37제로 70%는 농민이 먹고 30%는 국가에 바쳐라. 지금은 아예 반대로 된 거잖아요. 말이 37제지 어떤 사람들은 100% 다 바쳐도 수매곡이 안 돼요. 이런 식으로 갔다가는… 제가 살고 있는 그 농장 사람들은 몇 년도 못 버틸 것 같아요, 진짜. 획기적인 게 없이 그런 상태로 그냥 유지가 된다면 진짜 막 몇 년을 못 넘길 것 같아요.” 2021.4.25.일 필자면담, 2017년 탈북 농장원.

【13】 필자면담, 2021년 6월 16일, 2019년 탈북.

 

김화순

화, 2021/09/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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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개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므로 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는 기본 원인은 외적인 객관적 조건보다는 민중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혁을 성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그 무엇보다 민중이 어떤 이유 때문에 개혁에 소극적인가 혹은 개혁에 반대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민중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밝히고 기본소득이 그것을 없애는데 기여함으로써 개혁을 뒷받침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기본소득

민중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고통이다. <풍요중독사회>를 비롯한 저서들을 통해서 줄기차게 강조해왔듯이 한국인들은 심각한 수준의 생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말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 불안은 돈과 관련된 근심걱정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그 결과 돈에 대한 병적인 욕망을 강제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위협하는 생존 불안은 그 자체로서 끔찍한 고통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생존 불안이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 등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한국 젊은이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절규하며 취직준비에만 골몰하고 자그마한 돈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소위 영끌투자를 하는 반면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이들에게 ‘사회 개혁’이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심각한 생존 불안은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한다. 생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은 정치가 어찌 되든, 나라가 어찌 되든, 지구촌이 어찌 되든 간에 일단은 자기부터 살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생존 불안과 민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비례관계에 있다. 민중은 기본소득 – 최소한 최저생계비를 상회하는 수준의 기본소득 – 을 통해 심각한 생존 불안에서 해방되면 자연히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즉 생존 불안을 크게 줄여주는 기본소득은 민중이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고립과 무저항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 명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1대 99의 사회라는 말이 웅변하듯,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심각한 불평등 사회 속에서 여전히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민중의 저항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다. 왜 민중은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거의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어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마을 공동체 등 각종 공동체가 존재했다.

민중이 공동체, 집단으로 묶여서 살아가는 경우에는 억압과 착취를 받으면 반드시 저항을 한다 –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 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농촌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한다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분노할 것이다. 그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을 사람들은 농민봉기에 떨쳐나설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마을 사람들이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면 어떨까?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 장면을 보면서 더 겁을 먹고 더 무력해질 수도 있다. 물론 폭행과 착취를 당한 당사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개인적 분노에 그칠 뿐 마을 사람들 모두의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분노감정이 건강하게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노감정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게 될 것이고 그것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타인을 학대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명제에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전제조건은 민중이 흩어져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온갖 학대, 갑질,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데도 저항을 잘 하지 못하고 개혁에 미온적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전멸했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민중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될 뿐 저항을 하지 못하며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개혁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민중이 하나로 단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와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을 단합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을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음으로써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을 촉진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단결하려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발견하기가 어렵고 많은 경우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민주노총이 개혁적인 부동산정책을 주장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중에 주택보유자도 있고 무주택자도 있어서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주택보유자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무주택자를 하나로 묶기는 힘들다. 물론 한국인들은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은 그것을 당면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정도가 아니므로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은 현실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힘들다. 반면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웃과 사회 나아가 기본소득을 추진하거나 실시하는 정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호적 태도와 친사회적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이웃과 사회가 자기한테 피해를 주면 주지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웃을 경쟁대상으로 간주하여 경계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며 사회에 등을 돌린 채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정부에게 뜯기기만 할뿐 받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금저항 심리가 강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부터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차 어떤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한국은 미래로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까지 이웃, 사회, 국가는 생존 불안으로 신음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외면해왔다. 즉 한국인들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 경험, 위기에 빠진 자신을 도와주는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활동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줌으로써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고 친사회적인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식개혁과 기본소득

반복적으로 강조하건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개혁의 성패는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의 복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립된 개인의 처지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묶여야만 개인들은 비로소 개인중심적 사고가 아닌 집단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면 나의 고통이 곧 이웃의 고통이자 세상의 고통임을 깨닫게 되고 나의 행복만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바라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우선 의식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개인으로 고립되어 살아왔기에 생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에 기초해 각개약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각자도생이 아닌 다른 방법, 집단적 힘으로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생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에게 ‘이웃과 미친 듯이 경쟁하고 싸워야만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서로 단결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라는 통찰과 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각개약진이 아닌 모두가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있으며 그것만이 살길임을 깨닫게 해주는 의식혁명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 기본소득의 실시는 한국인들의 의식개혁을 촉진함으로써 개혁의 분위기를 크게 강화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또한 개혁에 대한 민중의 자신감을 강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기보다는 각자도생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어서다. 단결된 집단의 힘은 무한대이지만 고립된 개인은 무력하다. 개인의 힘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개인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쟁에서 승리해 떼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것뿐이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개인은 무력감으로 인해 사회 개혁에 대해서는 꿈조차 꾸기 힘들다. 따라서 고립된 개인은 개혁의 청사진이 아무리 멋져도 그것을 냉소적으로 대한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개개인의 생존 불안을 없애고 공동체 복원을 촉진하여 한국인들을 무력감의 깊은 늪에서 구출해냄으로써 개혁을 힘차게 떠밀어나갈 수 있다. 고립된 개인들이 공동체로 묶이면 묶일수록 민중의 자신감은 백배해질 것이고 개혁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국민통합과 기본소득

오늘날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는 유사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영역에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꼴찌를 차지한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최악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회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과제에 나머지 사회집단이 박수를 쳐주기보다는 배 아파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지만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집단에게만 이익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찬성률이 낮은 편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 – 노동자들의 수입이 올라가면 소비를 많이 할 테니까 – 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청년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그들의 아버지뻘인 중장년층에게도 이익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이런 식으로 악화된 인간관계는 택시 기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버스 기사들은 싫어하고 노인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청년세대는 반대하게 만들 수 있다.

민중이 다종다양한 집단으로 분열되어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개혁의 추진은 불가능하다. 사회가 분열되면 국가적 개혁과제를 제기하기도 힘들고 추진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특히 어떤 개혁과제가 특정한 사회집단의 생존 불안을 자극할 경우 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감한 부동산 개혁, 토지개혁이 일부 집단의 생존 불안을 건드린다면 그들은 결사반대할 것이다. 최소한 생존 불안에서는 해방되어야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설사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전체 사회에 이익이 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고질적인 사회 분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며 개혁 추진에 유리한 사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회 개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혁의 마중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생존 불안을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평등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평등 수준이 높아져야 ‘너와 나는 다르다’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이나 일체감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위계 간 학대 현상이 근절됨으로써 연대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을 위해서도, 즉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부터 실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으로 생존 불안이 약화되어야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정치참여가 가속화되며 민중적 단합이 실현됨으로써 한국 사회가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쪽으로 거대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본소득과 인권>이라는 글에서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은 민중의 저항 의지와 권리를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강화할 것이다. 위계 관계나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해고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즉 생존 불안이다. 직장상사가 갑질을 하거나 성희롱을 해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참는 것은 해고를 당해 생존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해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생존 불안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불의에 저항할 용기를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해줄 것이다. 생존 불안에서 해방된 민중이 조직이나 직장에서 불의에 저항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조직 문화, 직장 문화, 사회 문화는 민주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어나가고 각종 조직이나 직장은 조직 구성원들을 더 우대하고 존중해주는 쪽으로 변화해나갈 것이고 그 결과 민주화, 개혁이 촉진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려면 최소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 현재 여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도지사는 기본소득의 최종목표를 1인당 월 50만 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정도로 개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 되기 위해서는 또 기본소득의 거대한 의의가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월 지급액의 목표치를 더 높이 잡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중은 그의 기본소득 정책을 지지하면서 그것의 목표치를 더 상향조정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태형

토, 2021/09/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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