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되는 의료민영화] ① 의료기기의 규제 완화 (上)
비단 이슈어 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코발트가 포함된 인공관절로 고관절 치환 수술을 받은 환자가 경련, 발작, 정신장애 등의 증상을 겪은 사례도 있었다. 한 의사가 이들의 혈중 코발트 농도가 정상인의 100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고관절을 다른 재료로 교체하고 나서야 증상은 사라졌다. 인공관절에 사용된 코발트가 중금속 중독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재료는 미국에서 여전히 1000만 명 넘는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코발트 인공관절은 이른바 ’510(k) 방식’으로 FDA를 통과했다. 새 의료기기가 시중에 이미 나온 기기와 ‘상당히 유사’하다면 무조건 허가받는, 기업 로비로 만들어진 제도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98%의 의료기기가 510(k) 방식으로 통과된다. 기존에 나온 의료기기에 문제가 발생해 리콜되어도, 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허가된 기기들은 쉽게 퇴출되지 않았다.
검증 안 된 ‘혁신’ 의료기기?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 정부도 최근 의료기기 규제완화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기기 허가 절차를 대폭 줄여 신기술 의료기기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혁신성장’ 과제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신의료기술평가’를 무력화하려 한다.
신의료기술평가란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행위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절차다. 2007년에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16년까지 총 1800건의 의료행위가 평가됐는데, 연구결과가 부족하거나 안전성·유효성 미달로 퇴출된 것이 700건(약 40%)에 이른다. 만약 이러한 절차가 없었다면 국민들은 안전하지 않거나 효과가 없는 수많은 의료기기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ROSA SPINE(로사) 척추 로봇수술은 신의료기술평가의 역할을 보여준 분명한 예다. 로사는 미국에서 510(k)로 도입돼 한국에 건너왔다. 하지만 2016년에 한국의 신의료기술평가 위원회는 로사를 퇴출시켰다. 기존 척추수술과 비교해 방사선 노출량이 많고 수술 소요시간이 길다는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듬해인 2017년 로사 제조사는 로봇 팔이 오작동을 일으켜 수술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긴급 리콜을 결정했다. 또 같은 기술을 이용한 로사 뇌수술의 경우엔 오작동이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로사는 미국에서 허가됐다는 이유로 한국에 들어왔으나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가 제대로 걸러냈던 것이다. 만약 신의료기술평가가 없었다면 환자들은 비싼 가격에 긴 수술 시간 때문에 합병증 위험이 높은 치료를 받게 됐을 것이다.
“기업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혁신, 혁신, 혁신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혁신이란, 새로운 무언가가 나왔을 때 그것의 장단점을 검증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 혁신이에요. 검증이 안 된 거라면 그건 혁신이나 개발이 아니라 그냥 모르는 거에요.” (‘첨단 의학의 덫’, 데버라 코헨 박사, 영국 의학 학술지 부편집장)
* (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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