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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후기]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 / 조미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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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후기]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 / 조미연 변호사

익명 (미확인) | 금, 2018/12/28- 17:32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

2018년을 떠나보내며, 민변 송년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의 동행기 나눔

조미연 변호사

 

2018 민변 송년회는 수년간 단골무대였던 서초와 교대부근 행사 장소에서 벗어나 학동역 헤리츠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작은 생소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무리는 여느 때와 같이 정겨웠다고 자부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제7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쯤이면 신입이라고 소개하기 겸연쩍을 만큼 민변과 함께한 추억이 벌써 한아름인 신입변호사이자 신입회원 조미연이라고 합니다.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의 시작과 끝에 대한 소감을 글로 남기게 되어 스스로도 참 감회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올해 합격 이후 상반기 신입환영회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시간 민변과 동고동락하였습니다. 신입환영회 후기를 작성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송년회 소감이라니…. 이 글과 함께 한해를 정리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번 송년회의 시작은 10월 24일 수요일 오후1시 사무처 회원팀 회의에서 비롯하였습니다. 회원과 조직에 관심이 많은 저는 격주에 한 번씩 열리는 회원팀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와인과 함께하는 신입회원환영회’, 최영도변호사님 유작 기념행사, 영화 1991, 봄 상영회, 정기대의원회, 회원 월례회 등 수많은 행사개최를 앞두고 이날 우리는 송년회 날짜를 12월 17일 월요일로 확정했습니다. 이후 네 차례의 회의를 더 거쳐 송년회 준비가 이루어졌고 행사 장소와 사회자 섭외부터 송년회 컨셉, 프로그램, 홍보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가면서 회원팀을 비롯한 사무처사람들의 일손이 더해졌습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탄생한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이라는 설렘주의보 타이틀, 회원팀장님의 ‘회원들에게 기왕이면 더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열의와 기가 막힌 우연의 조합으로 탄생한 학동역 헤리츠 행사장소, 발군의 실력으로 좋은 행사 진행의 예를 보여준 신하나, 양성우 변호사님의 사회까지…. 물론 빛나는 센스로 훌륭한 행사영상을 만들어준 허진선 간사님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지요. 행사 준비팀의 일원이어서 그런지 부족한 점보다 좋은 점을 유독 많이 기억하는 것은 회원님들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어지간하면 풍문으로 많이 퍼져있을 행사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왠지 빼놓으면 아쉬울 것 같습니다. 학동역 헤리츠는 언제나 민변의 일당백을 자처하는 이현아 차장님의 검색으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습니다. 지난 송년회 음식이 아쉬웠다는 많은 평가에 음식이 맛있다는 후기를 중심으로 답사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무슨 인연일까요? 헤리츠 관계자분의 민변 행사개최에 대한 열렬한 호감이 우릴 반겼습니다. 대학시절 학생들의 학교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민변 변호사님의 도움을 기억하며 항상 민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면서요. 이런 우연과 인연의 만남으로 우리는 작년 송년회와 동일한 비용으로 더 좋은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도움을 주셨다는 변호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 드리고 민변의 소소한 복에 저도 덩달아 즐거웠습니다.

어느새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송년회 당일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니…. 사실 저는 행사장 입구에서 간사님들과 입장하는 회원들을 본의 아니게? 함께 맞이하고 당일 회원공연 합창단의 일원으로 비상구에서 연습하느라 정작 본식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행사영상 상영, 가입 10주년 회원 감사패 증정, 신입회원 소개, 퀴즈 등의 순서는 알고 있지만 무대 위에 서서 조명으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하나와 한결같이를 부르고 내려와 연달아 맥주를 급히 들이켰던 기억 이전에는 007음악과 함께 등장한 사회자들의 모습과 신하나 이종훈 변호사님의 신나는 한결같이 율동만이 떠오릅니다. 미쳐 공연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민망하지만 용기 내어 영상 링크를 올립니다. 아! 유독 눈에 띄는 초록초록 스웨터를 입었던 장범식 변호사님의 모습도 잊을 수 없겠네요. 예쁘게 봐주세요.

https://youtu.be/sVi3fcHSLrc

이렇게 10명이 넘는 변호사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였던 합창공연 이후 류신환 회원팀장님의 매끄러운 사회로 구석구석에 자리하는 선배님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모 선배님께서 혹시 합창공연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라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라는 말씀이 참 유쾌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정연순 전 회장님을 모 탁구장에 가면 볼 수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구요.

 

이후 다양한 게임과 퀴즈가 진행되었는데 소위 테이블 합심퀴즈(오신 분들은 아실겁니다)를 통해 상품에 대한 다양한 열정 발휘 장면을 목격한 것과 넘어지면서까지 휴지를 불어 올렸던 곽예람 변호사님, 어린 시절 사진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추론하는 퀴즈에서 한때 톰 보이 어린이모델로 날렸던 최용근 변호사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누구지? 라고 갸우뚱하였으나 옆자리를 돌아보자마자 사진 속 귀여운 어린이와 같은 웃는 얼굴이 보여 놀랐던 위은진 변호사님 등 적다보니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송년회를 마치고 늦은 시각까지 뒤풀이에서 함께했던 분들과의 기억을 합치면 사실 지면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가볍게 써내려가며 공유하고자 했던 소감이 더 길어지면 민폐겠죠?

이번 송년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그 속의 따뜻함, 즐거움이 충분히 전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때의 자리를 돌아보면 웃음이 먼저 나서 내년에는 더 많은, 아직 만나 뵙지 못한 분들과 자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의 사자성어인데요. 저는 올해 민변과 좋은 기회에 함께할 수 있어 참 기뻤습니다.
민변 회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년 민변 송년회 사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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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님과의 만남

- 이정선 회원

 

 영화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당시 14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위 사실을 접하고 미성년 아이들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기도,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여 이를 토대로 한 영화라는 소개만으로 도 선뜻 이 영화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저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느껴지는 죄책감과 가슴 저릿한 묵직함으로 한동안 힘들었고, 이러한 느낌이 채 가시기 전에 민변에서 주최한 이 영화의 감독님이신 이수진 감독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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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수진 감독님을 뵙기 전까지는 죄송스럽게도 당연히 여성 감독님이실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민변 대회의실에 등장하신 이수진 감독님께서는 멋진 훈남 감독님이셨습니다.^^ 2013년 최고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인 만큼 많은 변호사님들과 참석자분들의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님께서는 이번 모임이 영화 <한공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자리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공주>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연기한 한공주는 마치 그 순간, 그 시간에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죄책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공주를 못 본 척하며 자신의 아들(동윤)만 데리고 나오는 동윤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내 아들의 탄원서는 써 주지 않느냐며 공주가 꼬셔서 내 아들 인생을 망쳤다고 악다구니 쓰는 가해자 어머니의 모습에서, 웃는 얼굴로 가장 잔인하게 공주에게 탄원서를 받아가던 동윤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소름끼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랬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과 두려움, 죄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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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무엇보다 기존 성폭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과는 달리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상황을 한층 깊이있는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 잘못이 없는데요’라는 영화 포스터 문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공주가 가해자들을 피해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화 내내 2차 피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건 당시보다 사건 이후에 미성년자인 공주가 얼마나 힘들게 그 시간을 혼자 견디는 지를 보여줍니다. 돈 몇 푼에 딸에게 탄원서작성을 종용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삶에 흠이 생길까 딸의 상처를 들여다 볼 마음조차 없는 어머니를 둔 공주는 결국 고스란히 혼자 그 아픔을 짊어집니다. <한공주>는 가족도, 법도, 사회도 지켜주지 못한, 아니 지켜주지 않고 외면한 공주의 상황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운데, 이런 감정이 영화를 통해 너무 잘 전달되어 오히려 더 아픈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대해 이수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연출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공주가 왜 수영을 배우는지, 공주는 왜 후드티를 입었는지, 산부인과에서 공주는 왜 아무런 말없이 불편한 상황을 넘겼는지 등등. 감독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 주셨고, 결국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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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감독님께 이 영화를 대체 몇 번이나 보셨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후유증이 큰 영화를 볼때마다 갖게 되는 순수한 호기심인데, 저는 과연 이런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들은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고통을 감수하실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수진 감독님께는 ‘셀 수 없이’ 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수 없이 마주하며 만들어 주신 영화 <한공주>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했던 많은 순간들을 반성하며, 실제로나 영화속에서나 법과 사회가, 우리가 외면한 공주에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2004년이 아닌 2015년 현재에도 ‘우리’는 공주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한공주>가 아닌 <공주>라고 조금 더 당당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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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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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주전남지부입니다. 최근까지 우리 지부 사무처와 각 단이 주도하여 진행한 사업과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사무처

 

가. 지부 임시총회 – 신입회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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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는 우리 지부 임시총회가 4월과 6월 두 번 있었습니다. 신입회원 가입 승인을 위해서인데요. 4월에는 장효인 변호사 (변시 4회) 가, 그리고 6월에는 이광원 변호사 (변시 5회) 가 가입 승인을 받아 우리 지부 회원의 수는 48명으로 늘었습니다. 가입을 축하드리며,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나.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의 만남 (201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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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우리 지부 회원들과의 만남 행사가 2016. 4. 20. (수) 진행되었습니다. 김종률 사무처장은 본인이 쓴 곡들을 정리해 출시한 ‘님을 위한 행진곡’ 앨범을 참석한 지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드리기도 했습니다.

 

다. 5·18 민중항쟁 36주년 기념 망월동 합동참배 (201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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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중항쟁 36주년을 맞아 망월동 합동참배를 망월동 제3묘원 (구묘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구묘역은 항쟁 당시 사망한 사람들이 최초로 안장되었던 상징적 장소라는 점, 비록 신묘역으로 이장되었으나 가묘가 된 광주 희생자들의 묘역도 그들을 기리기 위해 아직 관리되고 있는 점, 5·18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산화하신 민족민주열사들이 안장된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 참배는 5·18 희생자들과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 참배한 회원들이 5월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참배 이후에는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품이 안치된 비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라.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지부 공부모임 (201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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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5·18은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너무 일상화되거나 박제화되어 어쩌면 너무 멀리 잊혀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에서 다시금 5·18을 이해해보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공부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5·16부터 서울의 봄까지 배경”에 대해 우리 지부 정다은 변호사가 발제를, “5·18 직전 ‘서울의 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김정희 변호사가 발제를, “5·17부터 항쟁기간 전투와 해방구 기간”에 대해 정채웅 변호사가 발제를, “5·18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박상희 간사가 발제를 진행하고 이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항쟁 당시 고3이었던 정채웅 변호사의 생생한 설명은 공부모임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2. 공익소송기획단

가. 농업법 연구회 – “뭣이 중헌디? 농업법 연구회가 중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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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적으로 광주, 전남지역은 농어촌 지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농민인구가 적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지역에 산재한 폭넓은 농업의 법적인 문제 – 예컨대 생산에서부터 식품가공, 재해, 농약 피해, FTA 분쟁, 농산물 유통 분쟁, 농가부채 문제 등 – 이 존재하지만, 이 분야를 표방하고 활동하는 변호사 그룹이 없으며 농업법을 전공하는 학자도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전문성을 갖추고 이를 표방하며 새로운 시장개척 및 공익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우리 지부에서 ‘농업법 연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농업법 연구회에 함께하는 지부 회원은 총 9명입니다.

 

2) 농업법 연구회는 총 3차례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세 차례 모임에서는 먼저 농업법 연구회의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민변 활동의 취지와 그 맥을 같이 해야 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공부와 연구에 중심을 두며, 지속가능한 농촌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농민들이 현실적으로 처한 문제에 대한 송무에 기본 방향을 두었습니다. 이에 따라 먼저 ‘한국농업법의 과제’ 라는 논문을 읽고 기초적인 스터디를 진행한 후 최근 지역 또는 전국적인 농업 관련 이슈에 대해 브리핑하고,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오는 7. 22. (금) 에는 본부 송기호 변호사님을 초청하여, 『“맛있는 식품법 혁명” 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 주요 공익소송사건

 

1) 한전 직접활선공법 관련 공익소송

 직접활선공법은 ‘살아있는 전선(活線)’을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만지면서 작업하는 노후전선 교체 기술 가운데 하나로 2001년 한전이 도입하였습니다. 작업 노동자들은 절연고무장갑만 끼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활선은 무려 22,900v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2014년 한전의 발표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직접활선공법으로 인한 사망자는 13명이나, 건설노조 측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대략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부상자 역시 2014년 공식 보고된 수가 140명이나 그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이 입은 부상의 정도 또한 심하여 부상 입은 노동자 대다수가 심각한 화상 및 팔, 다리 절단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는 이 공법으로 인한 백혈병 발병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6. 10. 한전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활선공법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되는 전형적인 산업재해 사건이며, 피해 규모에 비추어 보아도 대단히 심각한 사안에 해당되기에 우리 지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지역 건설노조, 학계 등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소식은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남영전구 수은유출 관련 피해 근로자 공익소송

 전구 및 램프제조를 업으로 하는 (주) 남영전구가 형광등 등에 들어가는 수은 사용이 2020년부터 금지됨에 따라 2015. 3. 부터 생산라인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20여 명의 노동자가 수은 유출로 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병명도 모르는 채 병원을 전전했고, 2015. 10. 경에야 수은중독 사실이 밝혀져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2015. 10. 이후부터 받았고, 그 전 6개월 동안의 치료비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둘째, 피해자 20명 가운데 9명은 수은중독 후유증으로 인해 현재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소변이나 혈액 속의 수은 잔류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산재처럼 후유장애가 유형화되지 않았으며, 기존의 의학적인 산재 신청방법으로는 후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입니다.

하여 우리 지부에서는 광주지역 피해자 6명을 대리하여 관련 사건에 대한 공익소송팀을 꾸려 이에 대응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다. 각종 성명 발표

 1) 한국전력공사는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직접활선공법을 즉각 폐기하라 (2016. 6. 15.)

앞서 적은 한전의 직접활선공법 문제 관련해 우리 지부와 본부 노동위원회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2)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 촉구 공동성명 (2016. 6. 26.)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에 함께 연명하였습니다.

 

3. 법률구조단

 가. 소송자료 DB 구축, 법률구조 사업의 지원, 법률구조 당직제 진행

 법률구조단에서는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법률구조사업을 위하여 우리 지부에서 진행했던 사건에 대한 소송자료 DB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이거나 지부에 요청한 법률구조 사업에 대한 지원을 수행하고 평일 회원 2인이 순번제로 법률구조 당직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 주요 법률구조 사건 경과

1) 故 진도경찰관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취소소송 승소 (2014구합73098)

2014. 4. 16. 발생한 세월호 사고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전남 진도경찰서 경찰공무원 김** 가 세월호 사고 이후 계속된 업무상 과로와 사고 관련해 지속된 업무상 스트레스로 2014. 6. 26. 투신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망인의 아내인 원고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망인의 사망이 공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청구에 대해 부지급 결정 처분을 내려, 이에 대해 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진행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2016. 6. 23.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2)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관련하여 (1) 2016가단51086 (안**) 사건의 경우 2016. 5. 17. 원고에게 6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2) 2015가소73649 (나**) 사건의 경우 2016. 5. 9. 원고에게 1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4. 회원사업단

가. 제29차 민변 정기총회 참석 (2016. 5. 28. ~ 29.)

 제29차 민변 정기총회에 우리 지부 회원 17명, 가족을 포함 총 3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우리 지부에서는 지부 공익소송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 변호사가 모범회원을 수상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나. 회원사업단 주최 제2차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예정 (2016. 7. 15.)

 회원사업단에서 주최한 첫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이상갑 변호사) 이후 두 번째 선배변호사와의 대화를 2016. 7. 15. (금) 진행합니다. 초청 변호사로 우리 지부 제7대 지부장을 역임한 임선숙 변호사 (연수원 28기) 를 모시고 선·후배 변호사들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다. 지부 여름 야유회 예정 (2016. 7. 23.)

 

우리 지부 여름 야유회가 2016. 7. 23. (토) 진행됩니다.

 

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

금, 2016/07/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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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

- 민변 노동위원회 1년차의 1년 이지영 변호사(변시 4회)

 

2015년을 되돌아보니 그 시작도 마무리도 민변 노동위원회와 함께였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법전원 게시판에서 민변 노동위 노동법실무교육 안내를 보고 눈이 번쩍 띄어 바로 신청, 3월 한 달 동안 부산과 서울을 오고 가며 민변 선배 변호사들의 열강을 들으면서 민변이라는 조직, 사무실 공간, 무엇보다 민변 사람들과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4월은 노동위원회 수요모임 참석과 그 전날 변시 합격 발표로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던 제주도에서의 민변 노동위원회 전체 모임이 기억납니다. 전체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회원들의 소회. 그 진지함과 자기 다짐에 ‘노동위원회에 잘 들어왔구나’ 생각했습니다. 4월 18일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에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뜻하지 않게(?) 집회 대오 선두에서 싸우며 민변 변호사로서 집회에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운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 경험했던 연행자 접견.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분들에게 경찰 조사 방법을 말씀드리니 한결 안도하시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독 연행자가 많았던 집회 이후 민변에서 모든 연행자를 파악하고 접견은 하는지 혹시 빠진 곳은 없는지 혼자 걱정했으나, 너무나 일사분란하게 대응하는 민변 조직을 보면서 신입 회원으로 건방지게(?) 괜한 걱정을 했구나 라며 부끄러웠던 기억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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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모임의 노동판례분석을 담당하게 되어 2주마다 한 번씩 노동판례를 읽고 정리하면서 2015년 한국사회의 노동판례 흐름을, 2015년 인권보고대회 발표를 위해 개별적 노사관계를 정리하면서 2015년 한 해 동안의 노동이슈를 일별하면서 어느덧 밥벌이 일(?)에만 매몰되고 있었던 제가 끊임없이 노동문제를 접하고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으로서의 민변 노동위원회 활동!

일상에 치이고 지쳐 헤매지 않게 끊임없이 과제를 내주는 것에 이어 송년회 모임에 2015년 신입모범회원 상까지 주셔서, 올 한 해는 민변에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뜻 깊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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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게 2016년도 다짐을 해 봅니다. (밥벌이) 일과 (민변 노동위) 활동의 양립을 위해,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나의 궤도’를 항해할 수 있게, 무엇보다 성실히, 꾸준하게!

 


민변 노동위에서의 1년

 

- 심재섭 회원

2014년 5월경 민변 가입원서를 쓰면서, 큰 고민 없이 노동위원회를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노동위인지는 지금도 명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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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생 신분으로 가끔 출석했던 수요모임이나 월례회만으로는 민변에서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다른 분들은 어떤 계기로 민변에 들어오는 것인지, 누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라도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다가, 작년 1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첫 해의 목표는 명료했습니다. 어차피 달리 바쁜 일도 없으니, 혹시라도 누가 시키면 어디든 참석해서 도대체 노동위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기회가 너무 빨리 왔습니다. 변호사로 처음 참석한 수요모임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얼떨결에 ‘공감대’에서 주최하는 오체투지행진 관련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 사실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는 친구들과 밤에 만나 놀기나 했지, 낮에 같이 집회에 나간 적은 손에 꼽습니다. 집회, 투쟁, 회의, 민가까지도 저에게는 어색한 일이었고, 그다지 내키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연대회의라는 것도 막연히 겁이 났습니다. 오체투지는 뉴스로만 접했던 제가 회의에 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고 와야 하는지 무얼 알았겠습니까. 하릴없이 저를 지탱하는 두 가지 신념, ‘난 대한민국 평균은 된다.’, ‘내가 못하면 시킨 사람 잘못이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일단 참석은 했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제게 묻지 않았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라, 자리만 채우면 되는 거였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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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노동법률가대회’도 있었습니다. 아마 수요모임 끝나고 지나가는 말로 이현아 간사님께서 ‘변호사님, 오실 거죠?’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늘 그랬지만, 간사님께서 하라시면, 일정이 안 되는 경우 말고는 대답은 ‘Yes’였습니다. 아는 변호사님들도 많지 않아 어색할 자리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딱 예상한 만큼만 어색하게 앉아서 5개 법률가 단체의 발언을 듣고, 사진을 찍고 뒤풀이 전에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세월호 관련 집회 대응과 관련한 모임에 참석하여 몇 분의 변호도 했고, 알바노조 분들과 만날 기회도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덜컥 마이크를 쥐어 주셔서 무어라 발언도 했지만,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결석한 수요모임에서 동양시멘트 진상조사단을 꾸린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역시 이현아 간사님께서 텔레그램으로 참여를 권유해 주셔서 알았습니다. 금요일 하루 태백에 바람 좀 쐬러 다녀올 겸 편하게 내려갔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논평이나 기사, 재판 자료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특별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 앞에 덜컥, 크고 중요한 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일 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석할 수 있었고, 고사리손이라도 보태면서 실제로 뉴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냥 살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일들에 얄팍하게나마 조금씩 몸을 적시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변호사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더군요. 어떻게 노동위 변호사가 되는 것인지를 알았으니, 이젠 아는 대로 살아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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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변호사님께서 수서경찰서에 체포되셨을 때, 아마 그때가 노동위 오길 잘 했다고 확신했던 날이었습니다. 새벽 2시 즈음에 나오신 권변호사님과 함께 20여 명의 동료들이 수서경찰서 앞에서 모여 동지가를 불렀었지요. 저는 물론 모르는 노래에 입만 뻥긋거렸지만, 이들 사이에 계속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처음 수요모임에서 아무와도 안부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던 때가 있었고, 4월 제주에서의 노동위 모임에선 몇 명의 동료 변호사님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으며, 지금은 적어도 노동위의 어떤 모임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노동위에 느리지만 조금씩 스며들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저는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 어떻게 좋은 변호사가 되는지 알아도 그렇게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옆에 계시는 멋진 동료 분들이 있고 이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면 그래도 앞으로는 더 괜찮은 변호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목, 2016/01/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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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

최근 일본의 WTO제소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 국회에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7월 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지난 5월 21일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관련,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재 조치를 둘러싼 각종 쟁점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함에 따라 장하나 의원실과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차일드세이브, 한국YWCA연합회, 한살림서울 주최로 진행되었다. 장하나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이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서영교 의원의 인사말과 함께 시작됐다. 토론장에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가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관련된 첨예한 사안임을 증명하듯,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49" align="alignnone" width="3163"]ⓒ이연희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국회의원(좌),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 우)  ⓒ이연희[/caption] 이날 토론회의 골자가 된 사안은 내용인 즉,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원전 오염수 유출 등 방사능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됨에 따라 2013년 9월, ①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②방사능이 미량이라도 검출될 경우에는 스트론튬 등 기타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하며, ③세슘 기준을 기존 370Bq/kg에서 100Bq/kg로 강화하는 내용의 임시특별조치를 시행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 양이 연간 8만여t에 달했지만 특별조치 시행 후인 지난해에는 3만t 전후로 수입량이 급감했다. 그러자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식품·동식물 위생검역(SPS) 위원회 등에서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WTO제소 근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평가 등 관련된 쟁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이 《일본 식품의 방사능오염과 한국 식품수입정책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첫 발제를 맡았다. 김혜정 위원장은 발제를 통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2013년 9.6특별조치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 우리 정부 당국은 일본산 식품 수입에 대한 제한조치가 없었다”라고 지적하며, “9.6조치 이후 방사능식품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 되었지만, 한국정부는 일본이 WTO에 제소하기 이전부터 ‘잠정적인 조치’라며 수입금지조치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53" align="alignnone" width="2829"]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 발제를 맡은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caption] 이어 김혜정 위원장은 “일본에서는 세슘이 불검출 된 사례가 많다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일본의 세슘 기준치(kg 당 100Bq)의 절반인 50Bq 이하 검출량에 대해선 불검출로 공표하는 일본의 방사능오염 식품 정책 ‘스크리닝 법’에 대해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자체적인 조사 없이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와 정보에 의존하여 수입해제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WTO 제소 움직임에 대비한 민간 중심의 전문가위원회의 일본 현지조사도 일본 정부의 안내에 따라 단 2차례만 샘플 검사를 시행했으며 검사내용과 결과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후쿠시마 오염 실태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으로 발제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노주희 변호사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일본의 WTO협정 위반 제소와 관련, 일본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한국이 시행하고 있는 규제조치의 근거인 세계무역기구(WTO)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이하 'SPS 협정’)에서 정의한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 조치’)임을 설명했다. 우선 SPS 조치와 관련, 한국은 방사성 물질 오염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조치에 관한 국제표준이 없다고 보고, 예외조항으로서 예방원칙에 근거한 잠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잠정조치가 허용되는 기준은 제한적으로,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잠정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위험평가를 통한 과학적 증명이라는 요건을 포함하여 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는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무역제한만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비례원칙, 위험평가를 수반한 과학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원칙과,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일관성 유지원칙, 다른 회원국이 회원국의 SPS 조치가 관련 국제표준에 근거하지 않거나, 그러한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을 요구할 때에 해명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해명 제공 의무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가 수반된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잠정적 예방조치’의 경우에는 위에서 다루고 있는 엄격한 요건에서 면제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예방원칙에 근거한 잠정조치를 정당화 하는 데 실패하고, 이러한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지 않은 또는 사안의 속성상 그렇게 대비하기 어려웠던 한국 정부로서는 WTO 분쟁에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노주희 변호사의 판단이다. 노주희 변호사는 “SPS 규정과 관련, WTO에 제소된 사안들에 대한 판례는 거의 다 피소국이 패소하거나 타협하여 결론지어졌다”고 말하며, “한국 정부에 대해 일본이 강력하게 나오는 것은 전세계적인 일본산 수산물 규제 정책에 방어막을 깨려는 목적”으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와 최대한의 전문적 자료 수집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caption id="attachment_151950" align="alignnone" width="960"] ⓒ이연희 ⓒ이연희[/caption] 발제에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사실사과의 이수두 과장,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 차일드세이브의 최경숙 대표, 한살림서울 식생활위원회 박준경 위원장, 토론회의 제목이 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잠정적 수입금지 조치의 쟁점과 정책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작성한 국회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정민정 조사관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수두 과장은 “식약처는 특별규제 이후 강화된 조치로 안전한 검역체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며, “정부는 규제를 해제한다고 공식적으로 공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수두 과장의 발언 이후, 최경숙 대표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고 4년 동안 시민 스스로가 감시센터를 설립하고 평범한 주부들이 방사능 지식인이 되어 애쓰는 동안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부처에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박준경 위원장은 “한살림과 같은 생협 등에서는 후쿠시마 이후 방사성물질 자주기준을 마련하여 식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안전한 먹거리 문제는 생협단체만 노력해야할 것이 아니다”라며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부처의 역할에 대하여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이어 정민정 조사관은 조사연구서와 발언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대만·중국·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도 이미 한국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한국 내에서 방사능 피해자가 발생한다 해도 피해자가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등 근거를 들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의 국제법적 정당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적발되고 있는 일본산 수산물 원산지 위장이나 허위표기 등을 막기 위해 검역 절차와 유통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객관적 위험평가를 위해 필요한 추가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WTO 제소에 동요되지 않는 장기적 식품안전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며 정부당국에 정책적 과제를 제시했다. 토론이 끝난 후에도 참석한 시민들과 패널들은 질의응답을 통하여 ‘방사능이라는 말 자체가 언어폭력’, ‘일본 사람들도 안심하고 먹는데 왜 우리가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언행을 보인 이재기 위원장 등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위원회의 부적절한 인사구성과, 정부부처의 책임 방기 등에 대해 질타하는 등 이날 토론회는 청문회를 방불케하는 날카로운 질의와 참석자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마무리 되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48" align="alignnone" width="640"]ⓒ이연희 ⓒ이연희[/caption]  
금, 2015/07/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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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이슈로 뜨겁다. 동성애와 동성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5월 동성애자 군인들은 군형법 추행죄로 대거 잡혀갔고, 이번 10월 제주퀴어문화축제와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지자체로부터 미풍양속이란 이유로 장소가 불허됐다.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포함해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은 10년째 캐비닛 안에 잠겨있다. 성 소수자와 전혀 친근해 보이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남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이자, 민변 6개월 차인 새내기 박한희 변호사를 민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차게 대화를 이어가지만, 수줍은 웃음이 돋보이는 ‘트랜스젠더 여성’ 박한희 변호사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최은빈 : 국내에서는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로서, 혹시 남다른 고충이나 보람이 있으신가요.

박한희 :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하리수씨 같은 연예인이나, 유흥업, 예체능 등이 대표가 됐어요. 변호사라는 전문직 또는 사무직에서는 대표가 안 됐고요. 그런데 제 기사는 그게 화제가 됐던 것 같아요. 페북에 알려지면서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한 친구는 기사를 보고 트랜스젠더도 변호사가 할 수 있다고 부모님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고 하더라고요. 퀴어문화축제에 갔을 때도 젊은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와서 기사를 보고 감동 받아서 주변에 얘기하고 다닌다고 하고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내가 한 선택이 어쨌든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제가 한 선택도 나이가 많은 분들로부터 롤 모델을 받았던 거잖아요. “저도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끼면서 보람이 된 것 같아요.

고충은 사실 이게 최초이자 지금은 혼자잖아요. 그래서 “저로서 과잉대표 되지 않을까?” 그런 부담이 있는 거 같아요. 이거는 꼭 트랜스젠더 변호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나가도 트랜스젠더를 실제를 본 사람이라고 질문을 하면 거의 손 드는 사람이 없어요. 한두 명 정도. 그 사람들은 살면서 제가 실제로 눈앞에 처음 보는 트랜스젠더인거에요.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나라는 존재 행동 하나하나가 트랜스젠더 전체의 문제로 해석되지 않겠냐는 조심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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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얀 : 성 소수자로서 사회에서 약자성을 깨닫고, 이것을 극복한 과정이 궁금해요.

박한희 : 저도 못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고, 무기력한 것도 많았어요. 남들과 다르다고 정체화한 건 중학생 때 13~14살 때였는데, 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한 28살부터였나 싶어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존재고, 이렇게밖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게 길었어요. 그에 따라 고충도 많았죠. 회사도 다녔지만,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중간에 다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바뀐 계기는 “더 이상 이렇게는 살기는 싫다”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제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건 29~30살 넘어가는 로스쿨 겨울방학이었는데,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서 의미가 있을까? 계속 숨기고, 감추고, 피해 다녀야 하나?”라는 억울함이 있었죠. 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내가 개인적으로 잘못한 건 사실상 없는데 왜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는 데는 나만의 결정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도움들이 있었어요. 두 명 정도가 있는데, 한 명은 저보다 6살 많은 트랜스젠더 언니에요. 그 언니는 남자로 회사에 입사해서, 회사에서 커밍아웃했어요. 휴직하고 수술을 받고 성별정정을 해서 여자로 복직했고요. 지금도 그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 언니를 지금까지 안 건 벌써 10년 정도 되는데, 그분을 알면서 저도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 커밍아웃하는 것과 회사 안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건 난이도가 천지 차이거든요.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해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지 않겠구나”를 느꼈어요.

다른 하나는, 로스쿨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법조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과연 나 같은 성 소수자가 받아들여질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때 상담을 했던 분이 희망법의 한가람 변호사님이었어요. 저는 희망법에 상담 메일을 보냈고, 한가람 변호사님이 저한테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변호사님은 자신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주변 동성애자 친구들과 후배들도 많이 있지만, 다 커밍아웃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있다고 얘기해줬어요. 오히려 운동하면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줬죠. 그때의 대화가 지금 제가 희망법에서 하는 일이기도 해요. 성 소수자를 위해 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죠.

류태광 : 대한민국에서 MTF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여쭙고 싶어요.

박한희 :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MTF 트랜스젠더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운동적으로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말을 요즘 쓰고 있어요. MTF이라는 말 자체가 기정성별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안 쓰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많았어요.

그리고 사실 차별은 되게 개별적이에요. 똑같은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차별은 개개인에 따라 상황이 어떤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트랜지션(성별 이행)을 얼마나 했는지, 수술은 했는지, 성별정정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이런 차별을 겪는다’를 나를 기준으로 일반화할 수 없어요. 일단 제 기준으로는 저는 수술을 하지 않았고, 할 생각이 없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한국체계 내에서는 법성별을 바꿀 수 없는 상태고, 법적 성별은 남성이고 주민등록번호도 1번이에요. 지금으로서는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신분증적 차별인 것 같아요. 신분증을 내세울 때, 내가 어디에 뭘 적어야 할 때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은행을 간다든지, 병원을 간다든지, 인터넷에 무엇을 가입할 때도 남성이라고 적어야 가입이 되니까요. 주민등록증은 항상 갖고 다녀야 뭘 할 수 있잖아요. 번호도 항상 입력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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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다는 게 법적인 차별에서 큰 것 같고요. 특히 저는 다행히 하는 일 자체가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이게 취업이랑 연관이 되거든요. 취업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성별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취업이 많이 안 돼요. 자기가 여성적으로 보이지만 법정 성별이 남성이니까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면접에서 떨어지고, “당신은 왜 주민등록번호가 이래요?” 라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정규직 이런 곳은 사실상 취업하기가 아주 어렵고요, 서류에서부터 떨어지거나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실제로 붙은 다음에 알게 되어서 해고를 당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으로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용이 불안정해요. 또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판단하는 게 성별인 것 같아요. 가령 “남자야?, 여자야?”, “재 그거 아니야 그거?” 등. 제가 생각하기에 한 3~4개월에 한 번씩 겪는 것 같아요. 되게 비일비재한 것 같아요.

류태광 : 방금도 언급됐지만, ‘성 정체성’은 외관상 드러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박탈당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자연히 빈곤에 더욱 취약할 것 같고요. 트랜스젠더와 빈곤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한희 : 실제로 2014년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성 소수자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거든요, 전체적인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실제 트랜스젠더 집단의 평균소득이 가장 낮게 나왔어요. 일본에서도 성소수자 직장 환경 실태 조사를 하는데 항상 트랜스젠더 집단이 가장 수입이 낮고 이직률이 높고 근속기간이 짧은 것으로 나와요.

이게 악순환인데 우리나라는 수술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돈을 벌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했으니까 성별정정이 안돼요. 그래서 취업을 못 해요. 취업을 못 하니까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해요. 그러니까 취업을 못 해요. 이게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20대의 10년을 거의 돈 모으는 데에 쓰게 되죠. 비정규직이나 공장 일 하거나 알바하면서 모아야 하니까 5~6년, 길게는 10년, 이렇게 걸려서 그 일 하나만 하는 경우도 많고요.

트랜스젠더와 빈곤은 되게 복합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당연하고, 불필요하게 이력서에서 성별 표시를 안 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굳이 사람이 살면서 법적으로 성별이 요구되는 직장도 있겠지만 그게 꼭 필요하지 않은 직장도 있잖아요. 성별정정 요건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죠.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빈곤이나 취업, 노동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경원 :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요건과 관련해 법률이든지 판례든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지금 현재로선.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요건으로 허가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그보다 엄격하면 허가를 안 해주는 나라고요. 대법원의 경우 성별정정은 위에서 허가해주는 거고, 허가해주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판단 기준을 굉장히 엄격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가장 큰 틀은 이게 권리라는 걸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법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권리, 거기서 도출되는 게 내가 나의 성별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다른 사람과 차이 없이 내가 원하는 성별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요. 세계 인권 선언에서도 그렇고 우리 헌법에서도 반영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걸 권리라고 생각하고 출발하면 의문이 되는 거죠. “그러면 이게 내 권리인데,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이것도 수술하고, 저것도 수술하고, 이것도 고쳐야 해? 이게 정말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정당한 요건이야?“

결국, 프레임을 먼저 바꾸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애썼으니까 위에서 허가해주는 게 아니라, ‘너희 권리를 제한할 건데 이런 거로 제한하는 게 정당화될까‘라고 고민해야 하죠. 그래서 국제적인 추세는 최근에 아르헨티나 덴마크 몰타 등 6개 나라는 아무 조건이 없어요. 일종의 신고에요. 내가 ’성별을 바꿉니다‘라고 신고를 하면 ’바꿔줄게‘ 이런 식이에요. 가령 덴마크 같은 경우는 성별을 바꾼다고 하면 6개월 정도 숙련 기간을 둬요. 아일랜드는 이런 숙련 기간도 없어요. 아마 동성혼이 점차 늘어나는 것처럼 자기 결정권에 기반을 둔 성별정정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가 결정해서 하는 성별정정. 그쪽으로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우리도 언젠가는 한번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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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 외과 수술 자체가 되게 위험하고 평균 수명도 확 줄어든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이렇게 법이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박한희 : 수술이 되게 위험하진 않아요. 수명이 확 떨어지지도 않고요. 트랜스젠더 오해 중의 하나가 ‘오래 못 산다’가 있는데, 모든 외과수술이 당연히 위험성이 있고 신체적 부담도 있지만 죽는 수술은 아니잖아요. 그것과 비슷하죠. 그렇지만 국가가 그런 수술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돼요. 우리 헌법은 신체의 자유와 운전성을 보장하는데 내 신체를 국가가 훼손하겠다는 거죠. 네가 너처럼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너한테 수술을 강제해서 너의 신체를 훼손하겠다는 거니까요. 사실상 국가가 외과수술을 강요하는 거예요. 이게 생식기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옛날에 우생학적 절차처럼 국가가 불임수술을 강제하는 것과 같죠. 실제로 작년에 스웨덴 판결에서 트랜스젠더 수술 여건을 없애는 동시에 그동안 수술을 받았던 트랜스젠더에게 국가 배상을 해줬어요.

김민주 : 비교법적으로, 비교사회학적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성별정정과 관련해 특히 모자란 점이 어떤 지점이라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우리나라가 가장 특히 모자란 점은 이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요건인데, 우리나라는 미성년자가 성별정정을 못해요.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해요. 사실 이건 법적으로도 말이 안 돼요. 성인의 법률 행위가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행위죠. 심지어 법원에 따라서 이건 판사 재량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곳은 10년 전에 이혼한 아버지의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해요. 다행히 최근 몇몇 법원들은 사유서를 제출하면 대체는 해줘요. 사람에 따라서 수술을 위한 돈은 사실 모으면 돼요. 그러나 부모님의 설득은 자기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부모님이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로 허가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요건 자체가 있는 건 정말 이상해요. 이건 정말 한국만 있거든요. 일본도 없는데 이게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최은빈 :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위해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하신건가요?

박한희 : 사실 변호사는 성 소수자 인권운동을 위해서 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법조인이 된 건 좀 두루뭉술해요. 들으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회사 다니기가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삼성엔지니어링 건설회사를 2년 다녔는데, 거기 규율이 되게 심하거든요. 항상 양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해요. 머리가 귀만 덮어도 선배가 지나가면서 “한희씨 머리 좀 잘라야겠는데? 미용실 좀 갔다 오지.” 이래요. 저는 그런 것들이 되게 싫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로스쿨이나 의전을 생각했어요. 전문직을 가지면 좀 자유롭잖아요. 그러면서 나 같은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뭘까, 전문직이면서 동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뭘까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의사는 정신과 의사를 생각했고, 변호사는 법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의전과 로스쿨을 놓고 비교를 했는데, 의대를 다니는 친구가 의대는 규율이 빡세다 하더라고요. 의대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머리도 못 기르고, 슬리퍼도 금지하고, 반바지도 못 입게 하고요. 그래서 의대는 가면 안 되겠다, 회사랑 다를 바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로스쿨을 가자고 선택했어요. 당시에는 운동적인 차원까지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단지 내가 변호사를 직업으로 가지면, 사무실을 차렸을 때 어떤 형태로든 성 소수자 의뢰인에게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정도였죠. 제가 이렇게 직접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던 것 같아요.

류태광 : 6개월은 짧으면 짧은 기간인데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소송을 수행하셨다면 소송이 있을까요?

박한희 : 제가 처음 희망법에 들어와서 했던 게 기지국 수사에 대한 위헌 소송이에요. ‘통신비밀 보호법 제13조’ 또 ‘기지국 수사’라고, 소위 말하는 검찰이나 경찰이 사건 현장 인근에 일어난 모든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수사가 있어요. 이게 희망법에서 2013년 첫 헌법소송을 했던 건데, 사실상 헌재에서 계속 묶어두고 있다가 이번에 공개변론을 열었어요. 제가 들어온 7월에요. 주심은 한가람 변호사님이었는데, 변호사님이 이거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 간지 일주일 됐는데, 헌법 소원 변론 요지서를 써오라고 했어요. 정말… 변시할때도 그런 건 안 쓰거든요. (일동웃음) 헌법재판소 변론 요지서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써오라고 해서 써와서, 첨삭 받고 고치고 고쳐서, 어떻게 했어요. 성 소수자 인권은 저도 알고 있고 활동하면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건 정보 인권적인 내용이니까 개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7월이면 대통령을 탄핵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인데, 말로만 듣던, 그 대법정에 공개변론을 하러 간 거예요, 제가. 저는 아직 수습이니까 방청석에 앉아 있었지만, 어쨌든 2개월 만에 거기 간 거니까, 엄청 떨렸죠. 그래서 가족들한테 전화하니까 너 벌써 거기 가냐고 하더라고요. (일동웃음) 왜냐하면 헌법 소송은 안 하면 정말 안하거든요. 본인이 의도하지 않으면 안 하게 되니까요.

류태광 : 정치, 경제, 언론 등 산적한 적폐가 많기 때문에 성 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는 주장도 일각에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주장에 하시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박한희 : 성 소수자 인권이라는 게 마치 성 소수자만 챙기는 것 같지만, 어떤 인권이 하나의 인권으로 분리 돼서 떼놓고 단계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인권은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차별도 사회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죠. 소수자 인권이 말하는 건 결국 차별이에요, 사회적인 차별. 사회적으로 누군가가 차별을 받고 있는데, 여기에 왜 나중이 있고 지금이 있죠? 오히려 그게 가장 큰 적폐가 아닌가. 권력적 차별이나 경제적 차별, 노동 차별 등이 다 복합해서 일어난 게 이전 정권의 문제였는데, 그 차별이라는 적폐를 무시한 상태에서 사회적 경제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겠느냐 싶어요. 사실 그건 당연히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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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 법조인으로서 성 소수자 인권 실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성 소수자 운동 전체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저번 제네바 UPR(Universal Periodic Review)에 가서 얘기한 건데, 일차적으로는 군형법 추행죄죠. 우리나라는 징집국가로써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고 그 군대 문화의 영향이 사회 전체에 미치고 있기 때문에 군형법 추행죄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사회적 조항이에요. 군형법이 지금은 처벌하고 있지만, 처벌을 안 한다고 해도 성 소수자는 언제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고, 이등 시민이 될 수 있는 상징적인 조항이기 때문에 이거는 무조건 없애야 할 조항이에요.

두 번째로는 입법과제로써 얘기할 수 있는 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에요. 이건 벌써 10년째 얘기되고 있지만 아직도 제정이 안 되고 있어요.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은 기본 틀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누군가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아니라는 걸 약속받고, 동시에 누군가가 누군가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틀이 깔려야지, 그때부터 최소한 구체적인 제도적 보장으로 무엇이 필요할지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평등이라는 틀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뽑자면, 과제로써 하고 싶은 건 교육. 교육부에서 만든 국가 수준의 성평등 성교육 표준안은 성 소수자 얘기가 전혀 없어요. 사실 우리는 교육부에서 만든 교육안에 대해 계속 폐지 운동을 하고 있어요. 표준안은 ‘동성애는 인권의 문제이므로 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음’이라고 앞에 써놨어요. 동성애는 인권과 사회 이런 데서 가르치지 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죠. 교육현장에서 교육이 되어야지, 그 사람들이 나중에 더 자라서 어떤 의견을 실제로 낼 수 있고, 사회적으로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김민주 :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십 년 째 공회전하고 있는데 이 제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박한희 : 되게 복합적이겠죠. 사실 처음에 가로막은 건 재계와 교회의 반대였어요. 교회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까지 아니었죠. 오히려 재계의 반대가 최종적일 거라 생각해요. 비정규직 차별 금지나 학력 차별 금지 등 지금 나오는 블라인드 채용처럼 이런 걸 하면 저항감이 있으니까요.

정부랑 국회가 의지가 없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해요. 사실 필요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부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차별이라는 게 지금 되게 복잡한 문제라서요. 사회적으로 우리가 평등이 아직 확산이 안 됐을 수도 있어요. 또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는 동의하지만, 어떤 게 정말 차별받지 않는지에 대한 의식도 필요한 거니까요. 사실 그걸 끌어올려야 하는 정부는 사회적 논란, 사회적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동력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 노동, 장애, 이주, 성 소수자, 거의 모든 분야의 114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어요. 전방위적으로 캠페인과 서명운동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대중인식 개선과 차별이 뭔지에 대한 간담회도 하고, 정부 대상으로 법안을 만드는 것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공회전하는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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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광 : 얼마 전 지자체가 제주퀴어문화축제나 퀴어여성체육대회를 위한 장소를 불허한 사건이 있었는데, 성 소수자 차별은 아직도 가시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박한희 :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오늘이 집행정지기일이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건 제가 직접 하지는 않았고요.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제가 기획단이에요. 제가 차별받은 당사자에요. (일동 웃음) 불허 통보를 받고 실제로 면담도 갔어요. 이건 지금 인권위 진정을 써서 내서 인권위 진정에 들어가 있는 상태고요. 얼마 전에 궐기대회도 했었는데, 그것도 항의하는 것이었죠. 고민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살면서 너무나 편하게 가는 체육대회가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허를 당한 것은 일상에서 차별을 잘 보여줬던 것 같아요. 체육대회는 학교 운동회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 열리거든요. 이런 것들을 좀 더 의미를 살리고 얘기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건지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일을 당하니까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내가 무슨 차별을 받는지 확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넓은 권리에서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와 닿지 않는데, ‘내가 공을 차고 싶은데 못 차게 한다.’라고 하면 피부로 느껴지니까, 좀 더 얘기할 수 있고 의미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도 있는 것 같고요.

최새얀 : 로스쿨에서도 LGBTQ를 삶으로 사는 법조인들도 많을 텐데, 미리 경험한 입장에서 예비 퀴어 법조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한희 : 할 말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로스쿨이 생기면서, 로스쿨이 LGBT퀴어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실제로 많이 가거든요. 일종의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거죠. 전문직이라는 직업적 안정성, 사무직을 가졌을 때 비해서 전문직을 가졌을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로스쿨을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도 이 법조에서 끝날 것으로 생각했어요. 로스쿨을 들어왔지만 들어와서 커밍아웃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로스쿨 들어온 이유는 그냥 커밍아웃 안 하고, 남자 변호사로 살면서 성 소수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왔어요. 실제로 저 주변에 그냥 법조인이 아닌 커뮤니티의 트랜스젠더분들도 “너 커밍아웃하면 끝난다, 너 법조계에서 대체 어떻게 커밍아웃할 것이냐, 말이 되냐“라고 했는데, 끝나진 않더라고요. 당연히 그게 항상 좋은 결과로 나온다고 볼 순 없지만, 그냥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게이 같은 경우에는 게이 법조회라고 있어요. 퍽퍽한 법조계 현실에서 게이다움을 잃지 말기 위한 게이 법조회가 있거든요. 한 오십 몇 명 있어요. 혹시 게이분이면, 거기를 가입해도 좋고. LGBT 법조회도 만들고 싶은데 아직 못 만들고 있지만, 아마 점점 만들어질 거예요. 현재 로스쿨생이나 현직 법조인을 대상으로 여름마다 ‘LGBTI 법률가대회’도 있어요. LGBTI 법률가들도 법조회의 형태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고요. 어쨌든 본인이 항상 모든 걸 드러내고 살 순 없지만, 어떻게든 숨을 틀 수 있고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 그런 것들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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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빈 :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따로 있으셨나요? 질문지에 없어서 아쉬웠던 점, 말하고 싶었던 게 있으신가요?

박한희 : 저희 희망법은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일동 웃음) 민변 회원분들 많이 후원해주세요.

월, 2017/11/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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