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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개강! 파우스트 읽기, 포스트-시네마, 아시아 페미니즘, 현대미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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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개강! 파우스트 읽기, 포스트-시네마, 아시아 페미니즘, 현대미술, 인문학!

익명 (미확인) | 금, 2018/12/21- 23:41

 

 

[인문교양] 삶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 인문학이 던지는 여덟 가지 물음

강사 이인
개강 2019년 1월 5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3:0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인생은 길고 깁니다. 오래 산 것 같은데도 아직도 살아갈 날이 까마득합니다. 물론 언제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지요. ^^; 그래도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과거에 환희와 고통이 번갈아가며 찾아왔듯, 우리의 미래도 기쁨과 절망이 쉴 새 없이 찾아오리라고.
그냥 하루하루를 덤덤하게 맞이해도 괜찮지만, 2019년을 맞아 우리 인생을 통틀어 새로이 사유해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삶이란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인생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자 안간힘을 쓸 때 조금씩 얻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진단할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미래를 예상하면서 준비할 수 있는 건 마음의 채비를 한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족해지지 않을까요?
인문학 사유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우르고자 합니다. 생애의 중요한 순간을 인문학의 지혜로 헤아리고자 합니다. 인문학과 함께 하는 우리의 새해가 아찔한 모험이고, 아늑한 고통이며, 아름다운 신비가 되길!

1강 존 보울비 ― 아기에겐 애착이 필요해요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보울비는 애착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새로이 설명합니다. 인간은 애착을 통해 성장하고 세상에 애착을 갖게 되지요, 어릴 때 엄마를 비롯한 사람들과 애착을 맺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도 타인들과 관계 맺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금 사랑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맺어온 애착 관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2강 주디스 리치 해리스 ―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육아에 부담을 느낍니다. 육아 자체도 힘들지만,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과 미래가 좌우된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원망합니다. 미국의 행동유전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인간의 사회화와 성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아니라 또래집단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내세웁니다.

3강 에바 일루즈 ― 자본주의 아래 현대의 성과 사랑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낭만이 상품화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살핍니다. 우리는 낭만의 신화에 도취되어 상대를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더라도, 이미 그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데이트하면서 상대의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을 파악하고 있지요. 순수한 낭만 어린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사치품을 통해서만 낭만을 느끼게 된 현대인의 사랑방식을 조망합니다.

4강 캐서린 하킴 ―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매력 자본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인간의 매력자본을 탐구하지요. 우리가 운동하고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이유도 매력자본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캐서린 하킴은 남성의 성적결핍을 지적하면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매력자본을 한껏 이용해서 더 나은 거래를 하라고 권하네요.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캐서린 하킴의 이론을 같이 논의합니다.

5강 조너선 하이트 ― 내 안의 코끼리를 길들이기
우리는 남의 티끌은 탐정처럼 찾아내지만, 나의 허물 앞에선 소경이 되어버리죠. 또한 나의 의지와 다짐은 욕망과 습관이란 코끼리들의 거친 발아래 모래성처럼 부셔집니다. 미국의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고전연구와 최신과학을 융합하면서 인간의 성장과정과 행복을 깊게 연구하네요. 내 안의 코끼리를 만나러 생각의 모험을 떠납니다.

6강 조슈아 그린 ―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대립을 경험합니다. 너는 너가 옳다고 여기고 나는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이지요. 미국의 실험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은 집단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책으로 공리주의를 제시합니다. 조슈아 그린이 보기에 공리주의는 세계화된 시대에 집단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지요. 공리주의를 탐구합니다.

7강 찰스 테일러 ― 내가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결정적 질문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자기 자신만으로는 ‘나’가 될 수 없다고 울림 있게 외칩니다. 자아는 언어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로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대화 속에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인간은 근본의 가치와 접촉하려는 강렬한 욕구를 갖지요. 삶의 중심이 되는 지고선 앞에 서서 인생의 방향을 잡아 나가게 되는 우리의 인생을 톺습니다.

8강 마거릿 크룩섕크 ― 나이 듦을 새롭게 공부하다
캐나다의 노년학자 마거릿 크룩섕크는 늙음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리는 노인을 질병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면서 노화를 두려워하며 젊은 척하는데, 사실 많은 노인들이 건강합니다. 노인은 병원신세를 지고 약물을 과다복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깨어 있는 노년을 맞기 위해서 나이 듦을 새롭게 공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참고문헌
1강 존 보울비, 『애착』, 김창대 옮김, 나남출판, 2009
2강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최수근 옮김, 이김, 2017
3강 에바 일루즈,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박형신, 권오헌 옮김, 이학사, 2014
4강 캐서린 하킴, 『매력 자본』, 이현주 옮김, 민음사, 2013
5강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4
6강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시공사, 2017
7강 찰스 테일러, 『자아의 원천들』, 권기돈, 하주영 옮김, 새물결, 2015
8강 마거릿 크룩섕크, 『나이 듦을 배우다』, 이경미 옮김, 동녘, 2016

강사소개
당당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살고 있고,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빛에 눈멀지 않고 그늘에 눈 돌리지 않는 아늑하게 아름다운 지성이 되고 싶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왜 이러는지 사유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인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을지 고민한다.
지금까지 『우리, 대한미국』,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등의 책을 썼고, 여성에 대한 책이 출간예정이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https://www.instagram.com/philowriter/

 

 

[아시아페미니즘] 차이, 교차성의 정치학 그리고 아시아 페미니즘

강사 최형미
개강 2019년 1월 16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지난 50년간 여성운동은 사회를 격렬하게 바꾸었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더 이상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정의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정치 노동 그리고 문화부분에서 이원론적 위계를 거부하는 문화적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서구 페미니즘만 아(하)는 것은 반만 아는 것이다. 많은 아시아 여성들은 식민차별, 빈곤, 계급차별 성차별 등 교차적 억압아래 놓여있고, 서구여성과 다른 억압경험을 한다. 아시아 여성들은 세계의 하녀, 우편신부, 수출 공단의 여공 그리고 관광지의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간다. 가난의 공포, 독재와 제국주의에 협업에 의한 착취 그리고 민족주의의 폭력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누가 적인지 그 경계조차 모호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많은 아시아 여성들은 복잡한 삶 속에 해방의 정치를 고민했다. 이 강좌는 그러한 상황에서 저항의 물결로 등장한 아시아 여성운동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아시아 여성운동에서 핵심적 개념을 돌출하고 아시아 여성들의 입장에서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1강 국가와 성정치: 인도네시아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몰락
2강 교차성의 정치학 :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을 이끈 어머니 운동
3강 새로운 세계관: 에코페미니즘 : ‘따라잡기 페미니즘에서 공존하기 페미니즘으로’ 인도의 칩코운동
4강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업의 식량주권? 인도여성들의 식량주권운동
5강 에그로 페미니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가촉 천민여성운동과 호명의 정치학
6강 노동과 인권 : 아시아 여성노동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세계 자본주의 (방글라데시)
7강 이성애 정상담론에 저항하는 아시아 성소수자 운동
8강 정치에 이용되는 아시아 여성인권: 중동 분쟁 그 너머

주교재
장필화 외(2017), 『글로컬 시대 아시아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한울
장필화 외(2015),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
장필화 외(2016), 『우리들의 목소리 2』, 이화여자대학교

참고문헌
1강
사스키아 위어링가(2017), “아시아 국가 건설과 성 정치”. 『글로컬 시대 아시아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한울
정현백(2001),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페미니즘 연구, (1), 9-52.

2강
최형미(2018), “인도네시아 어머니 운동, ‘수아라 이부 쁘들리(Suara Ibi Peduli)’에 나타난 교차성의 정치학에 관한 연구” 여성학 논집 35집 1호.

3강
이상화(2011), 여성과 환경에 대한 여성주의 지식생산에 있어 서구 에코페미니즘의 적용가능성. 한국여성철학, 16, 109-140
최형미(2017), “에코페미니스트의 행복 혁명-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아시아 여성연구. 56권

4강
하유 디아 패트리아(2015), “생물 다양성으로 식량 주권을 지키는 인도네시아 여성들”,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김경학(2014), “인도 ‘나브다냐’(Navdanya) 종자주권 운동에 관한 연구”, 남아시아연구, 20(1), 1-31.

5강
베다나야기 푸슈파라지(2015), “에그로 페미니즘: 인도 달리트 여성들의 희망”,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자야 시리바스타바(2016), “정의를 추구하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달리트 여성” 『우리들의 목소리 2』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6강
샤미마 악테르(2015), “여성의류 노동자들의 끝없는 불행: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참사”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박진영(2008), “여성노동운동의 아시아 연대”. 페미니즘 연구, 8(1), 19-229.
피퍼 커스터스(2015), 『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서문 그린비

7강
카니스 수비아니타(2015), “인도네시아 인권과 성소수자 운동”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웨이팅팅(2016), “레즈비언 눈으로 본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우리들의 목소리 2』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8강
구준권(2003), [특집/이라크전쟁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 미국의 일방주의와 이라크전쟁. 실천문학, 58-77.
김영희(2002), 아프가니스탄 여성: 이미지와 현실. 창작과비평, 30(3), 135-152.
최형미의 아시아 여성운동가 인터뷰 중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활동가 기사 (여성신문)

강사소개
여성학박사

 

 

[문학] 괴테의 『파우스트』 읽기

강사 장민성
개강 2019년 1월 10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파우스트: 네가 향락으로 날 미혹시킬 수 있으면
그것이 곧 나의 마지막 날이 되게 하자!
내기를 하자!
메피스토: 좋습니다!
파우스트: 자, 그럼 약속을 하자!
내가 어느 순간을 향하여
‘머물러다오! 너무나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네가 날 결박해도 좋다.
그때 나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땐 조종이 울려도 될 것이며
너는 종살이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시계가 멈추고, 시침은 떨어질 것이니,
나의 일생은 그것으로 끝나리라!(1696-1706)

파우스트: 그렇다! 이 뜻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도다.
그 순간을 향해 나는 말할 수 있으리,
“이대로 머물러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세상에서 내 삶의 흔적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11573-84)
메피스토: 이 영원한 창조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창조된 모든 것은 무(無) 속으로 끌려가기 마련이거늘!(11598-99)

1강에서 7강까지는, 근대의 시작에서부터 근대의 너머를 고민한 괴테가, 20대 청년 시절에 구상하여 죽음에 이르는 시간까지 그의 온 삶을 다 바쳐 창작한 『파우스트』를, 세밀하게 읽고, 괴테라는 거인의 어깨를 빌어 근대를 탐사하며 나아가 근대를 넘어선 세계를 들여다보는 황홀한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8강에서는 현대의 파우스트라 할 수 있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통해 합리성의 위기가 가져온 파시즘의 문제, 문명과 야만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볼 예정입니다.

1강 파우스트 1부-1
2강 파우스트 1부-2
3강 파우스트 2부 1막
4강 파우스트 2부 2막
5강 파우스트 2부 3막
6강 파우스트 2부 4막
7강 파우스트 2부 5막
8강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텍스트를 읽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강의를 진행하는지라 가능한한 『파우스트』는 김수용 번역의 책세상 본을, 『파우스트 박사』는 임홍배, 박병덕 번역의 민음사 본을 준비해 오시기 바랍니다.

교재
1-7강 『파우스트 ― 한 편의 비극 1,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책세상 문고 세계문학 035, 책세상.
8강 『파우스트 박사 1, 2』, 토마스 만, 임홍배·박병덕 옮김, 세계문학전집 244권 245권, 민음사.

참고서적
『괴테의 파우스트 1 / 비극적 형식에 대한 성찰』, 데이비드 E. 웰버리, 이강진 옮김, 에디투스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 김수용, 책세상
『괴테가 탐사한 근대』, 임홍배, 창비
『파우스트의 현대적 이해』, 요한네스 베르트람, 유창국 옮김, 경남대학교 출판부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 승계호, 석자용 옮김, 반니
『근대 개인주의의 신화』, 이언 와트, 강유나 옮김, 문학동네
『현대성의 경험 ―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버린다』, 마샬 버만, 윤호병·이만식 옮김, 현대미학사
『근대의 서사시』, 프랑코 모레티, 조형준 옮김, 새물결

『괴테 자서전 나의 인생 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관우 옮김, 우물이 있는 집
『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 장희창 옮김, 민음사
『괴테 예술작품 같은 삶』, 뤼디거 자프란스키, 호모포에티카 옮김, 휴북스
『괴테 ― 생애와 시대』, R. 프리덴탈, 곽복록 옮김, 평민사 (절판)

강사소개
독립연구자,
다지원(다중지성의 정원)과 예술학교 AC에서 철학 및 문학 강의를, 노동자인문학아카데미에서 한국현대사 강의를 하고 있다.
[홍명희의 임꺽정],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독서 아틀라스], [토론과 논쟁 아틀라스] 등에 대한 책들을 집필하고 있다.

 

 

[영화] 포스트-시네마 입문 : 디지털 시네마의 등장과 영화적 경험의 변화

강사 이도훈
개강 2019년 1월 16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30 (6강, 120,000원)

강좌취지
이 강의는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나타난 영화 문화의 변화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둔다. 포스트-시네마란 영화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서 도입된 용어로, 그것은 필름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나타난 일련의 변화들과 관련이 있다. 특히 디지털화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식으로건 영화를 만들고 소비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영화는 물질적 지지체를 잃은 채 소형화되고, 압축되고, 축소되고 있으며, 더 이상 한 자리에 고착되기보다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포스트 시네마 시대에 나타난 일련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작금의 영화의 정체성과 그것의 위상을 재검토하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이다.

1강 포스트가 어쩌라구? : 영화의 죽음과 지표성의 위기
2강 영화의 이중 탄생 :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영화의 장소감 상실
3강 포스트 프로덕션 : 리믹스, 리액션, 리메이크
4강 소형화된 영화 : 축소된 카메라와 모바일 시네마
5강 온라인 플랫폼 시대의 영화 : 일회성과 반복성의 대립
6강 포스트 시네마적 상상 : 임철민 감독의 <프리즈마>와 <야광>을 중심으로

참고문헌
*강의는 당일에 강사가 준비해온 강의 자료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정헌 역, 『디지털 영화 미학』,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레프 마노비치, 서정신 역, 『뉴미디어의 언어』,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마셜 매클루언, 김상호 역,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
조슈아 메이로위츠, 김병선 역, 『장소감의 상실 Ⅰ: 전자 미디어가 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니꼴라 부리요, 정연심 외 역, 『포스트 프로덕션』, 그레파이트온핑크, 2016.
데이비드 건켈, 문순표 외 역, 『리믹솔로지에 대하여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미학』, 포스트카드, 2018.
히토 슈타이얼, 김실비 역, 『스크린의 추방자들』, 워크룸 프레스, 2018.
André Gaudreault and Philippe Marion, The End of Cinema? : A Medium in Crisis in the Digital Ag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5.
Erika Balsom, Exhibiting Cinema in Contemporary Art, Amsterdam,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13.
Erika Balsom, After Uniqueness : A History of Film and Video Art in Circulati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7.
Francesco Casetti, The Lumiére Galaxy: Seven Key Words for the Cinema to Com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5.
Paolo Cherchi Usai, The Death of Cinema : History, Cultural Memory and the Digital Dark Age,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2001.

강사소개
영상학과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저서로 『21세기 독립영화』(공저), 논문으로 「공간 재생산과 정서상실」, 「안소니만의 초서부극과 서부극의 퇴장」, 「한국 독립영화와 빈곤의 연대기」, 「거리 영화의 전사」, 「사유하는 영화, 에세이영화」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대테러전쟁주식회사』(공역)가 있다. 현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 영상비평 전문 계간지 《오큘로》 편집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예술사회학] 사회학자가 보는 현대미술

강사 신현진
개강 2019년 1월 8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현대미술과 사회학에 입문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예술도 우리가 사는 사회, 세계와 무관하지 않고 사회학자들은 현대미술에 조심스럽게 혹은 대놓고 일침을 가합니다. 네 명의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들의 세계관과 예술관을 이해해보는 시간으로 이들 각자의 이론과 이를 기준자로 사용해 현대미술 사례를 분석해보는 시간을 각각 2회차를 할애해 살펴봅니다.

1강-2강 랑시에르가 보는 현대미술
랑시에르의 세계관, 그의 논리를 먼저 살펴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는 어떻게 구조 지어지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계속가능하게 하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지. 그는 그것이 감성의 정치라고 합니다. 이를 기준자로 보았을 때 과연 예술은 온전한 과정을 거쳐 왔는지. 만약 온전하지 않다면 그가 꿈꾸는 세계는 어떤 정치가 작동하는지 그리고 현대미술은 이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해법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그가 말하는 결정 불가능한 예술, 생각에 잠긴 이미지란 무엇인지 그것이 사회 참여적 예술, 비판적 예술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인지…. 그가 제시한 작품과 미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3강-4강 바디우가 보는 현대 미술
포스트모던, 프로이드 이후의 사회에 진리가 있을까? 철학자의 임무는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일까? 신-플라톤 주의자라고 불리는 바디우의 세계관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라는 주체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현대주체의 존재방식, 특히 예술가와 철학자의 존재 방식으로 봅니다. 그가 보는 현대미술은 정치, 사랑, 과학과 함께 진리를 만들어낼 잠재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예술이 진리는 만들어낼 잠재성은 미학도 아니고 반미학도 아니고 비-미학에 있습니다. 비 미학은 무엇인지 이전의 예술 도식과의 차이는 무엇이고 현대미술에서는 어떤 작업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5강-6강 랏자라또가 보는 현대 미술
‘비물질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포디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인지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안에서 우리의 삶은 24시간 사회적 노동에 포섭된 상황입니다. 예술가는 그럼 다른 상황인 것인지? 정신노동자이자, 미래의 문화를 제시하던 정신노동자였던 예술인 집단의 위상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횡포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네그리와 하트와 유사하게 랏자라또에게도 이러한 상황은 주체적인 현대적 인간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하고 문화민주주의로 보이는 상황도 연출됩니다. 예술의 민주주의가 야기한 딜레마를 가진 오늘날 랏자라또는 사건의 정치를 제안합니다. 그의 사건은 바디우의 진리가 만들어지는 순간과 연결될지도 모릅니다.

7강-8강 니클라스 루만이 보는 현대미술
사회 이론에서 인간은 필요 없다? 인지 생물학, 사이버네틱스에 체계이론을 결합한 루만의 사회이론은 그가 현대적 주체를 다루는 방식으로 해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인본주의적 심지어 인류세로 구분되는 현대사회를 파악하는 방식은 소통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소통만을 대상으로 세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빅데이터와 어떻게 다를지, 인간의지는 여기에 어떻게 작용할지, 그러나 여론이나 선호도의 합이 인류가 의존하는 시스템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예술의 소통을 바라보아도 예술이 작동해온 시스템이 구분됩니다. 이때 예술계와 예술 체계는 동일한 것일까요?

참고문헌
1강-2강 :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미학 안의 불편함』, 『해방된 관객』

3강-4강 :
바디우의 『비미학』, 제이슨 바커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

5강-6강 :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비물질노동과 다중』, 『사건의 정치』, 『정치 실험』

7강-8강 :
프란시스코 바렐라&움베르토 마뚜라나 『앎의 나무』, 니클라스 루만의 『예술체계이론』, 게오르그 크네어&아민 낫세이의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 프란시스 할살

강사소개
예술학 박사. 이후 권위를 뺀 미술비평의 내용을 담은 소설을 쓰겠다는 밀리언셀러 소설가 지망생. 혹은 한량.

 

 

다중지성의 정원 http://daziwon.com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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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르네입니다!
7월 말에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북콘서트를 다녀왔었는데요(블로그에 후기가 있어요~), 그 때 에코페미니즘의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고  ‘더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9월 2일에 <2016 에코페미니즘학교 : 그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가 개강했답니다!!

2016 에코페미니즘학교의 포스터와 기본 정보

9월 2일 금요일, 영등포 하자센터에 모인 30명 남짓한 학생들

에코페미니즘 학교의 문을 연 첫 번째 강의는 김신효정 여성학 강사님의 <에코페미니즘 이론과 쟁점 : 불평등과 혐오> 입니다.  강사님은 간단한 질문 하나로 강의를 시작했는데요,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에코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짧은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첫 번째 질문에는 1/3가량 손을 들었으나 두 번째 질문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에코페미니스트는 뭔가 더 특별해야 하고, 페미니즘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강의답게 이번 시간에는 에코페미니즘의 전반적인 것을 다루었는데요, 크게 4가지의 흐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못 오신 분들을 위해 김신효정 강사님이 각 주제에서 어떤 내용을 다루었는지 간략하게 요약해보았어요!

I.  한국사회의 간략한 흐름 청년빈곤, 여성빈곤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어떤 세상/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한 문장으로 말하면 죽도록 일하다가 죽거나 운이 나쁘면 죽는 나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청년 빈곤과 여성 빈곤(우리나라는 성별임금격차가 OECD 1위인 곳이다)의 원인이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Ⅱ. 에코페미니즘이란?
이러한 현재 사회에서 우리가 에코페미니즘을 외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에코페미니즘이 뭐길래? 에코페미니즘도 다양한 n개의 정의가 있다.

– ‘페미니즘에서 더 나아가 자연, 생태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

– ‘젠더로서의 남성과 여성, 중심부와 주변부 등의 관계에 중점을 두던 페미니즘 논의에서 비인간생명체, 자연과의 관계로 논의를 확장하는 것’.

– ‘가부장제, 자본주의, 발전주의, 계급, 화폐경제 등 불평등을 유지시켜온 패러다임과 지배체제에 대한 전복’.

페미니즘은 그 동안 타자화 되어왔던 여성, 인종, 장애인,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하지만 이는 매우 다양한 페미니즘의 공통분모일 뿐, 페미니즘은 관점으로서 하나가 아니다.
난 이런 페미니즘의 미완성과 다양성이 정말 좋다. 

에코페미니즘은 기존의 여성은 집과 부엌, 출산을 버리고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하고 동일한 임금을 요구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비판하며 자본 중심의 발전과 개발의 흐름 속에서 젠더와 관계없이 임금노동에 매여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Ⅲ. 에코페미니즘이 갖는 이미지

‘에코페미니즘’하면, 뭔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야 할 것 같고 다소 촌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제주도의 이효리처럼은 살고 싶지만, 시골 할머니처럼 살기는 싫은 뭔가 모순적인 이미지의 에코페미니즘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강사님은 이효리와 할머니 사이에 있는 여러가지 모순적인 차이 (연령, 계급, 노동의 목적 등)를 모두 포용하는 것이 에코페미니즘 그 자체라고 하셨다. (맞게 이해한….거겠죠?ㅎ)

Ⅳ. 에코페미니즘과 발전
에코페미니즘은 착취의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자연이라는 가치를 전복하고, 돌봄노동을 집안에 국한시키지 않고 공적영역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주장한다. 또한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기존의 화폐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을 벗어나 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한 페미니즘을 모색하고자 한다.

더 많은 돈 대신 더 나은 삶을 위한 실험과 실천의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의 목표이다. 강사님은 자신이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할 때 동료에게 들었던 인상 깊었던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대기업이나 큰 사회구조를 정복시킬 순 없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공간을 확장하고 그 공간들을 연결해나가면 된다”.

이번 에코페미니즘 학교의 이름처럼, 그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됩니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투쟁과 저항의, 서로 뺏고 쟁취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고 즐겁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2016 에코페미니즘학교 김신효정 님의 강의 中

 다음주의 2번째 강의후기도 기대해주세요 >-<


에코페미니즘학교 서포터즈 아르네님의 에코페미니즘학교 1강 후기입니다.
현장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신 아르네님께 감사드려요 🙂

뿐만 아니라 정말 꼼꼼히 정리하신 당일 강의 기록과 토론 기록도 공유해주셨어요!
학교에 못 오셔서 아쉬웠던 분, 당일 함께 있었지만 정리가 필요한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래 블로그 링크로 들어가시면 후기 하단 아르네님이 공유해주신 강의 기록 pdf 파일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kwen808/220805412864

월, 2016/09/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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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 […]
화, 2016/10/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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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의 여성주의 소모임 4곳(노동당 여성위원회,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이 7월 31일 느닷없이 〈노동자 연대〉 최미진 기자가 쓴 책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책갈피)을 “출판 중지하고 수거”하라며 SNS에서 연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이 2015년 민주노총 전 울산본부장 ‘성폭력’ 혐의 사건을 “관련자들의 동의도 없이 공론화”할 뿐 아니라 민주노총 내에서 내린 결정을 “뒤집고” 있고, 이것이 “피해자”에 대한 “가해”라는 것이다. 둘째, 노동자연대가 그 “피해자”에게 2012년부터 6년째 “가해와 공격”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연서명 제안자들의 아전인수격 해석과 달리, 이 책은 성폭력 피해자의 편에서 피해 여성들이 잘 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출판됐다. 지나친 성폭력 개념 확장과 피해자 중심주의의 주관주의가 낳는 난점을 지적한 부분과 해당 사례 역시 이런 취지 속에 자리매김돼 있다.

둘째, 민주노총 전 울산본부장 사건은 이미 공론화된 사건이다. 민주노총은 공식 입장 발표뿐 아니라, 사건 처리 보고토론회까지 개최했고 그 보고서를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그 후 (당사자가 아닌) 검찰이 민주노총을 흠집 내려고 전 울산본부장을 강간 혐의로 기소했으나 놀랍게도 1·2심 재판 모두에서 무죄로 뒤집어진 사실 역시 언론에 널리 공개됐다.

책의 필자는 이처럼 이미 공론화됐을 뿐 아니라 그 정치적 파장이 남다른 이 사건이 반성폭력 운동에 주는 교훈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개진한 것이다. 그 견해가 민주노총 중앙기구의 판단과 다르다고 해서 책 출판 중단 요구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중앙기구의 판단은 그 누구도 이견을 제기해선 안 되는 성역이 아니기 때문이다.(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의 마녀사냥과 책임 회피’를 참고하시오).

셋째, 노동자연대가 6년째 “(성폭력) 가해와 공격”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이들이 언급하는 사건은 “성폭력 사건”도 아니고 “노동자연대”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연대가 피해호소인(이하 H)에 의해 일방적 비방을 당해 온 사건이다. 이것은 논란이 된 최초 사건의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노동자연대의 입증, 그리고 H를 지지하려고 모였던 지지 모임조차 H를 믿지 못해 뿔뿔이 흩어진 사실 등을 통해 드러났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노동자연대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를 바로잡습니다’를 참고하시오.) 이처럼 지난 6년간 H 주장의 신뢰성이 실추돼 지지 모임의 여성주의자들조차 H를 떠나간 사실을 연서명 제안자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H와 연서명 제안자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성폭력 2차가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 자체가 ‘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 개념이 얼마나 독단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결국 진정한 문제는 연서명 제안자들의 비민주적 독단성이다. 즉, 합당한 근거도 없이 출판된 책을 폐기 처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이 책 출판 중단의 이유로 내세운 점들은 여성운동 내에서 이미 입증된 내용이기는커녕 모두 책의 내용을 읽어 봐야만 판단할 수 있는 쟁점들이다. 따라서 진정 민주적이고 페미니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식은 책 폐기 선동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 제시다. 노동자연대는 이런 이견과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누구든 이런 민주적 토론과 논쟁, 무엇보다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왜 올바른지 입증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문제가 있는 책이라면 독자들 스스로가 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연서명 제안자들은 자신들만이 최종적 심판자인 듯이 군림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읽어서도 스스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판단 능력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이다. 결국 이런 행태는 운동 내 토론과 논쟁을 위축시켜 차별 반대 운동이 진정으로 급진적이고 대중적으로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또한 이런 행태는 과격한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논쟁을 통한 입증에 자신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연서명 제안자들이 노동자연대의 연중 최대 행사인 ‘맑시즘’이 끝난 직후 단체 상근자 대부분이 휴가를 떠난 시기를 택한 것이나, 주로 개인의 SNS라는 수단을 통해서 서명을 퍼뜨리고 있는 것도 당당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연서명 제안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반성폭력 운동이나 페미니즘의 대변인인 양 노동자연대를 단죄하려 든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사뭇 다르다. 특히, 연서명 제안자들이 지지하는 여성주의의 한 노선은 최근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가령, 연서명 제안자들이 지지하는 “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 개념에 의존한 반성폭력 운동 노선은 최근 페미니즘 내에서도 여러 비판적 문제제기에 봉착해 있다.

또한 연서명 제안단체의 하나인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추구해 온 ‘남 대 여’의 여성주의 노선도 최근 당 안팎에서 여러 의구심을 낳고 있는 듯하다. 가령, 이들은 남성들 내의 엄연한 계급 차이를 희석시키고 남성 노동자들이나 활동가들을 보수정당 정치인들과 싸잡아 성차별적 ‘아재’ 취급하며 이들이 마치 성차별의 온상이거나 공범인 양 주장해 왔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올해 초에도 노동당의 당명에서 ‘노동’을 빼는 당명 개정을 주장하며 특히 남성 조직노동자들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하지만 최근 노동당명 개정은 당 내에서조차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해 철회된 바 있다.

노동자연대는 이처럼 남성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잠재적 성폭력범이나 정치의식이 낮은 ‘아재’로 싸잡아 취급하는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을 성별로 분열시켜 성차별의 뿌리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울 능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고 비판해 왔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시점에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개념을 비판적으로 다룬 책의 출판 중단을 요구하는 연서명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연서명 제안자들이 페미니즘의 대변자처럼 행세하는 것과 달리, 이들이 추구하는 남 대 여 구도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러 페미니즘 중 한 갈래일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종다양한 페미니즘’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조차 다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여성해방을 위한 사상과 운동’이라는 넓은 의미의 페미니즘 안에는 노동자연대가 지지하는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도 한 조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연서명 제안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마치 도그마로 여기며 페미니즘 내의 이견을 억누르려 해선 안 된다. 어느 페미니즘이 여성 차별의 현실을 더 잘 설명하고 여성해방의 전망을 더 잘 제시하는지는 토론과 실천에서 입증할 영역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이야말로 여성 차별을 계급과 연관시킴으로써 여성 차별의 근원을 더 잘 설명하고 해방의 전망도 더 잘 제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여성 차별은 단지 남성 개개인의 태도나 의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를 위한 메커니즘과 깊이 관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과 남성 노동계급이 함께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함으로써만 여성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노동자연대의 여성해방 전망에 이견이 있다면 얼마든지 열어 놓고 토론해 볼 수 있다. 연서명 제안자들은 특정 페미니즘의 특정 개념을 도덕 규범으로 만들며 토론과 논쟁을 가로막기보다, 서로의 주장을 투명하고 진솔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여성 차별에 맞서서는 함께 협력할 줄도 알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말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에서 적용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런 개방적인 태도가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7년 8월 5일
노동자연대

토, 2017/08/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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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신청서

한국여성재단과 유한킴벌리가 후원하고 전남대 여성연구소가 주관하는 2017년 유한킴벌리-전남대 NGO여성활동가 리더십과정  수강생 모집 안내입니다.
광주·전남에서 활동하시는 여성활동가와 함께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을 기르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과정으로 많은 참여와 관심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웹자보를 통해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월, 2017/09/0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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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4_몸다양탕

2017.12.14 외모왜뭐 몸다양탕_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복합예술문화공간 행화탕

연말 회원분들과, 또 외모?왜뭐!를 외치고 싶은 많은 분들과 함께 한 따듯한 외모왜뭐 몸다양탕!
아현동의 재개발 속에서 공간을 지키고 있는 복합예술문화공간 행화탕에서 함께 했습니다.

행화탕은 1958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입니다.
2007년 문을 닫은 후, 2016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외모왜뭐 몸다양탕은 행화탕의 탈의실 / 탕 공간을 활용해 이뤄졌는데요.
과거 탈의실로 사용되었던 카페 공간부터 함께 볼까요?

20171214_몸다양탕_인물

일단 접수대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 이름도 체크하구요:)
익숙한 얼굴서부터 오늘 처음 여성환경연대와 마주한 분들까지! 모두모두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20171214_몸다양탕

접수대 바로 옆으로 오면 이렇게 하면 기분이 조크등요
몸다양탕에서만큼은 새로운 이름으로! 내가 기분좋아지는 일, 아끼는 몸의 한 부분 등등 내가 짓고싶은 애칭을 만드는 시간. 열심히 성평등수행평가 도 풀어보고, 100점맞으신 분께는 선물을!

“불감증의 옳은 말은?”
“자궁의 옳은 말은?”
“미망인은 뭐라고 해야 하나요?”
“폐경은 또 뭐람.”
– 전오르가즘, 포궁, 고 00의 부인, 완경 이라는 성평등 단어

20171214_몸다양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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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계속되는 쑥찜질방 : 부스
이퀼리브리엄 / 버자이너빅토리 / 언니네마당/ 사이다제작소 / 66100 이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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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북적북적이던 탈의실!

겨울날,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던 탕 공간도 엿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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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채식지향 먹거리 뜨끈한 호박죽과 올망졸망 주먹밥, 목욕탕에 어울리는 고구마!와 시큼새큼 감귤까지:)  일회용품은 노노! 뻥튀기에 담고, 다회용 접시와 컵으로! 지구와 몸을 모두 생각한 알찬 구성에 다들 맛나게 즐겨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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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탕 온탕 : 지구정화 벼룩시장
탕에서 가장 북적였던 코너! 세상에 이렇게 쓸모있는 옷이 가득! 외모다양성, 몸다양성을 고려한 다양한 옷 대방출!  입장하시는 분들 모두 교환권을 통해 입어보고, 대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맘에 드는 옷들을 골라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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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게 브라를 벗어던져보는 냉탕: 브라보관소 와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도 센스있게 함께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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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다양탕에서 외치고 쭈욱 함께 지켜나갈 외모왜뭐 선언과 페미니즘 선언,
윤정애 작가와 사이다제작소, 그리고 창작집단 3355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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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바디 드로잉 모두모두 집중해 지금까지 잘 생각해보지 못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내 몸 그리기에도 열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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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푸는 폭포탕 에서는 공연이 펼쳐졌는데요. 배우 김혜성님의 마이바디 모놀로그
하루 종일 외모지적질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공연
“역시 바깥은 위험해! 내 방이 제일 편해” 로 끝나는 몸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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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끈한 불한증막 : 토크쇼 목’여탕토크 “신경쓰지 마사지” 에서는 여러 게스트와 함께
입이트이는외모왜뭐 / 나의외모왜뭐레시피 함께 했습니다.

“남자들은 노브라가 디폴트 값인데 여자들은 브라를 하는 것이 디폴트 값이다.
여성에게 ‘예스브라’가 이상해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 김지양(플러스사이즈모델)

“노브라가 아니라 브라 한 사람을 ‘유브라’라고 불러야 한다.”
– 하놀(사이다제작소)

“”왜 브라 안해? 가슴 처진 것 같아~
가슴이 늘어져 있고, 짝짝인 게 어찌보면 당연한데 늘 팽팽하고 균형이 맞는 가슴을 요구받고는 하죠.”
-임은주(<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 저자)

“머리 기르면 예쁘겠다. 가슴 어딨냐?”
이럴 때는 남성을 대상화해보세요.
“머리 좀 빠진 것 같은데 괜찮냐? 난 손이 예쁜 남자가 좋드라.”
혹은 여러 명 중 한 남자의 외모만 콕 찍어 칭찬해보세요.
-최지은(<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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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후끈하게 떠들고, 즐기고, 대들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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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나고, 건강하고, 즐겁게! 누렸던 외모왜뭐 몸다양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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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외모? 왜뭐! 를 외치며 내년에 다시 만나요~

화, 2017/12/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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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불의 문자들』 출간 기념 저자 조지 카펜치스와의 만남

9월 30일 일요일 저녁 7시 

★ 참가신청 : http://bit.ly/bloodandfire

< 프로그램 >

19:00~19:50 조지 카펜치스의 강연
19:50~20:00 휴식
20:00~ 자유로운 질의응답과 토론


일시 2018.09.30.(일) 저녁 7시

장소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오시는 길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8길 9-13 (서교동 464-56) http://bit.ly/dzwvisit

 

 

▶ 갈무리 도서를 구입하시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전국대형 서점>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북스리브로
서울지역 서점> 고려대구내서점 그날이오면 풀무질 더북소사이어티 레드북스 산책자
지방 서점> [광주] 책과생활 [부산]부산도서 영광도서 책방숲 [부천] 경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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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갈무리, 피와 불의 문자들, 조지 카펜치스, 서창현, 노동, 기계, 화폐, 자본주의, 4차 산업혁명, 아우또노미아, 자율주의, 안또니오 네그리, 미드나잇 노츠 콜렉티브, 실비아 페데리치, 셀마 제임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노동거부, 계급투쟁, 파업, 사회운동, 여성주의, 튜링 기계, 맑스, 가사노동, 엔트로피, 인지자본주의, 기계론, 인클로저, 금융위기, 재생산

 

일, 2018/09/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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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불의 문자들
In Letters of Blood and Fire

 

 

노동, 기계, 화폐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노동, 기술, 화폐의 양상들을 맑스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피와 불의 문자들을 다시 불러오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지은이  조지 카펜치스  |  옮긴이  서창현  |  정가  27,000원  |  쪽수  480쪽
출판일  2018년 8월 16일  |  판형  신국판 변형 (145*210)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Mens, 아우또노미아총서 62
ISBN  978-89-6195-183-8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8023141
도서분류  1. 정치학 2. 경제학 3. 철학 4. 문화비평 5. 사회운동 6. 정치사상

 

 

시의적절하게 출판된 조지 카펜치스의 이 책은 지난 30년간의 자본의 변형에 대한 날카롭고도 단호한 분석을 제공해 주고,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고전적 작품들을 재독해한다. 그것들은 가치 투쟁의 전선(前線)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부단한 경계심을 일깨워준다.
맛시모 데 안젤리스, 『역사의 시작』의 저자, 웹저널 『공통인들』의 편집자

조지 카펜치스는, 1960년대의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 1970년대 유럽 자율주의 운동에 이르는, 1980년대 석유 호황기 나이지리아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1990년대 사빠띠스따의 엔꾸엔뜨로[대륙간회의]에 이르는, 가사노동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공통장들을 위한 프레카리아트의 투쟁에 이르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정치 철학자다. 우리 시대의 역사가인 카펜치스는 20세기의 정치적 지혜를 21세기로 가지고 온다. 여기에 우리 시대에 딱 맞는 자본주의 비판과 프롤레타리아트 이론이 있다.
피터 라인보우, 『마그나카르타 선언』의 저자, 『히드라』의 공저자

 

 

『피와 불의 문자들』 간략한 소개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16세기에 공통의 것이었던 토지, 숲, 물로부터 내쫓기 위해 사용된 ‘피와 불의 문자들’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카펜치스는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 연대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정보 테크놀로지, 비물질적 생산, 금융화, 세계화가 자본주의의 폭력적 기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를 개시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의 시기는 사회경제적 새로움의 단계를 보여주기는커녕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대한 피와 불로의 회귀의 시대를 보여준다.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쟁과 위기의 주제들은 이 책을 관통하며, 저자는 그것들에 특별한 강조점을 둔다. 이 책은 자본이 세계적 규모로 폭력을 영속화하고 비참함을 증식하는 특수한 방법이 무엇인지 상세히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관심사를 설명하기 위해 맑스의 사유를 주의 깊게 다시 읽고 해석한다. 원래 지난 30년 동안 반자본주의 운동을 둘러싼 논쟁들에 기여하기 위해 쓰인 이 책은 카펜치스의 저작들을 공통의 미래로 이행하는 이 시기의 투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피와 불의 문자들』 출간의 의미

 

조지 카펜치스와 『피와 불의 문자들』

조지 카펜치스는 1945년 그리스 남부 라코니아 지역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미국 서던메인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리학 전공으로 학업을 시작한 그는 역사와 과학철학으로 연구의 초점을 바꾸어 프린스턴 대학에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머스 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에서 대학원 공부를 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 투쟁이 활발했었는데, 카펜치스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구상하면서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 이론과 실천의 융합을 좀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면서 카펜치스는 경제학에서 ‘대항강의’를 개설할 필요성으로 인해 맑스의 『자본론』 등 ‘대항경제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렇게 카펜치스는 연구자, 활동가, 교수, 투사로 1960년대부터 미국의 다양한 사회운동에 결합해온 실천가이면서 물리학, 경제학, 역사, 철학에 두루 정통한 학자이다. 카펜치스의 이러한 풍부한 연구 배경과 사회적 활동은 『피와 불의 문자들』의 모든 페이지에 담긴 날카롭고도 깊이 있는 통찰들에서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미 『탈정치의 정치학』(갈무리, 2014),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갈무리, 2012) 같은 책을 통해서 카펜치스가 쓴 몇 편의 논문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었다.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In Letters of Blood and Fire)은 국내에 번역되는 그의 첫 번째 단독 저서이다. 이 책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카펜치스가 쓴 글들을 일관된 체계로 엮은 선집으로 영어판은 2013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을 집필한 30년간의 시기를 카펜치스는 ‘에너지’ 위기에서 ‘금융’ 위기에 이르는 부단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시기였다고 진단하는데, 실제로 이 시기 많은 논평가들은 자본주의가 끝났다는 선언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곤 했다.

‘에너지’ 위기를 ‘노동/에너지 위기’로 불러야 한다

카펜치스의 독특한 관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미디어나 정책 결정자, 주류 경제학자들의 통상적인 서술에 대한 그의 비판적 개입에서 잘 드러난다. 예컨대 석유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나 하강으로 표현되었던 ‘에너지’ 위기라는 용어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카펜치스는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사람들이 ‘에너지’나 ‘금융’ 같은 추상적인 표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체계에 대한 다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카펜치스는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노동/에너지 위기와 종말론」에서 ‘에너지 위기’를 ‘노동/에너지 위기’로 바꿔 부름으로써 예컨대 1980년대의 위기가 ‘에너지’를 둘러싼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의 위기였다는 것, 그리고 그 통제를 회복하기 위해 에너지 상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당시 문제로 되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미드나잇 노츠 콜렉티브>(Midnight Notes Collective)와 조지 카펜치스

조지 카펜치스가 창립 멤버로서 함께하며 30년간 잡지 발행 등의 활동을 해온 <미드나잇 노츠 콜렉티브>는 1979년에 보스턴과 뉴욕에서 창립되었다. 이 연구자/사회운동 집단은 자신들의 기획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하였다 : “<미드나잇 노츠> = 사회운동들 + 노동계급 범주들”. 이 집단에 영향을 미친 주된 이론가 집단을 살펴보는 것은 카펜치스의 사상과 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집단은 국내에 『집안의 노동자』(갈무리, 2017)로 잘 알려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캘리번과 마녀』의 저자 실비아 페데리치와 셀마 제임스 같은 여성주의 이론가, 활동가 등이 개진한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국제 캠페인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또 마리오 뜨론띠, 페루치오 감비노, 세르지오 볼로냐나 『제국』(세종서적, 2001)의 공저자로 유명한 안또니오 네그리 같은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적 사상가들과 활동가들의 맑스주의 확장도 받아들였다. 또한, 17~18세기의 계급투쟁을 연구했던 E. P. 톰슨과 그의 동료 역사가들의 영향도 받았다. 카펜치스는 이러한 이론적 흐름들에 영향을 받은 연구자이자 활동가다.

만물 속에 ‘노동거부’가 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 「노동과 노동거부」에서는 카펜치스가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갖게 된 ‘노동거부’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개진된다. 카펜치스에 따르면 통념과는 달리 노동이라는 다층적인 인간 활동은 대부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임금을 받는 것만이 노동일까? 아니다. 카펜치스에 따르면 보이지 않고 인식되지 않는 노동이 훨씬 많다. 예컨대 가사노동이 그러하다. 또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노예나 감옥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노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카펜치스는 노동을 ‘다양체’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펜치스는 노동에 대한 자신의 관점 변화가, 몇백 년 전 만류인력 개념이 많은 사람에게 가한 충격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쓴다. “사과의 낙하와 달의 운동이 단일한 힘으로 설명되었던 것처럼” 카펜치스는 “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에 대한 대응의 징후들을” 일상적으로, 모든 곳에서, 모든 사물에서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 세계 전체에 노동거부가 새겨져 있어서 예컨대 노동거부의 가시적인 폭발인 ‘파업’은 노동거부의 유일한 사례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수많은 미시적인 거부들의 결과”라는 것이다. 1부에 실린 글들은 노동과 노동거부에 대한 이러한 통찰들을 담고 있다.

기계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인가?

이 책의 2부 「기계들」은 자본주의와 기계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과거 어느 때보다 각종 과학기술과 기계들에 둘러싸여 사는 모든 현대인에게 특히 미디어에 의해서 흔히 제기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기계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인가?’ 대단히 현재성을 띠는 이 질문을 둘러싸고 제출된 긍정과 부정의 다양한 입장들을 카펜치스는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카펜치스는 기계가 노동과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증기기관, 지렛대, 도르래의 시기로 돌아가서 역사적인 고찰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상품생산에 지렛대 같은 기계들이 도입되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로봇, 자기-재생산적 자동기계가 더해진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노동에 대한 욕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맑스주의와 기계에 대해서 이 책은 매우 논쟁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두 개의 주장을 하고 있다. 첫 번째는 20세기에 도입된 새로운 기계인 튜링 기계가 맑스주의의 자본주의 이론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주장이다. 물리학 전공자이면서 과학철학자, 역사가인 카펜치스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기계와 노동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카펜치스에 따르면 기계는 특정한 인간 노동을 “추상화하고 분석하고 측정한다.” 지렛대는 “덩어리를 옮기고 기계적인 힘들을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변형하는 특정한 종류의 노동”이라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또 증기기관은 “열의 운동을 모방하는 기계적인 힘으로 열에너지를 변형한다”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튜링 기계 이론은 계산 노동을 모델로 하며, “우리에게 (두뇌의) 이러한 노동을 추상화하고 분석하고 측정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실제로 튜링 기계 이론의 초기 해설서에 따르면 “컴퓨터”는 사무직 노동자였다고 한다. 카펜치스에 따르면 맑스는 지렛대 같은 단순한 기계와 증기기관에 친숙했지만, 튜링 기계처럼 현대에 더 중요한 기계들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이것이 맑스주의의 자본주의의 분석에서 중요한 공백이라고 지적한다.

둘째로 이 책은 기계가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논쟁적인 주장을 변호한다. 자동화된 공장, 로봇, 미사일, 인공지능의 시대에 기계가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니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2부에서 카펜치스는 이 질문에 응답하면서, 그에 대한 답은 ‘노동거부’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가치 창출 노동이 되기 위해서는 그 노동이 거부될 수 있다는 점이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거부될 수 없다면, 그것은 생산과정의 일부인 ‘가치 창출’이 아니라 ‘가치 이전’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카펜치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는 왜 전쟁으로 점철되는가?

3부 「위기와 전쟁」에서 카펜치스는 위기와 전쟁을 계급갈등과 연관지어 분석한다. 카펜치스에게 위기는 채무불이행이나 파산과 연관된 좁은 개념이 아니다. 카펜치스는 ‘위기’라는 말을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라는 말로 확장하고자 한다. 전쟁, 기근, 임신 거부, 기아의 증가, 빈곤 같은 사회적 문제들은 사회적 재생산에 위기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 삶을 재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 그것은 당연히 경제학의 지표로 파악되는 상품생산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 자본주의에서 부단히 반복되고 쉼 없이 계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카펜치스는 말한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조지 카펜치스 (George Caffentzis, 1945~ )

조지 카펜치스는 화폐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이자 자율주의 운동의 지도적 사상가이다. 1960년대 초 시민권 시대에 연좌운동으로 체포된 이후 무수한 운동에 참여해 왔으며, 70년대와 80년대 이후 특히 원자력 반대 운동으로 자신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이어오고 있다. 1974년 『제로워크』 잡지를 공동 편집했고, 1978년에는 <미드나잇 노츠 콜렉티브>를 공동 창설한 이후 30년 동안 이 단체의 잡지를 발간했다. 1983년부터 나이지리아 정유 센터에 인접한 칼라바르 대학의 종교철학부에서 논리학, 철학, 과학사를 가르치면서,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내재해 있는 “뉴인클로저”와 석유 정치학에 대해 연구했다. 현재 미국 서던 메인 대학에서 철학과와 상급 코스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카펜치스는 사형 제도, 재생산하는 자동 기계, 석유생산 정점, 아프리카의 지식 인클로저, 화폐 철학에 이르는 주제들에 관해 다수의 책과 논문을 썼다. 그의 저작은 반핵, 반전, 사형 반대, 대안 세계화, 사빠띠스따 옹호, 공통장의 옹호 등 일관된 주제를 다루었다. 수년간 국제반자본주의 운동에 바친 그의 독창적이고 강력한 기여는 가사노동을 위한 임금의 페미니즘적 경험들, 이탈리아 노동자주의 사상가들과 투사들의 통찰들, E. P. 톰슨과 그의 동료들의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개념들을 확장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그의 저작들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피와 불의 문자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첫 책이다. 이 밖의 저서로는 Clipped Coins, Abused Words, and Civil Government (1989); Exciting the Industry of Mankind (2013) 등이 있다. 공저로는 Midnight Oil (1992); Auroras of the Zapatistas (2001); A Thousand Flowers (2000) 등이 있다.

 

옮긴이

서창현 (Seo Chang Hyeon, 1966~ )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논문으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연구」(석사)가 있고 역서로 『있음에서 함으로』(2006), 『사빠띠스따의 진화』(2009), 『네그리의 제국 강의』(2010), 『전복적 이성』(2011), 『노동하는 영혼』(2012), 『자본과 언어』(2013), 『동물혼』(2013), 『자본과 정동』(2014), 공역서로 『서유럽 사회주의의 역사』(1995), 『사빠띠스따』(1998), 『비물질노동과 다중』(2005), 『다중』(2008),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2012) 등이 있다.

 

 

추천사

 

시의적절하게 출판된 카펜치스의 이 책은 지난 30년간의 자본의 변형에 대한 날카롭고도 단호한 분석을 제공하며, 이 시대의 관점에서 고전적 작품들을 재독해한다. 책은 가치 투쟁의 전선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부단한 경계심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우리가 현재 위기의 의미를 전복하고 이 위기를 해방을 위한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투쟁 시기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안전과 공동체의 안전에 본질적인, 그리고 거짓 신화를 위안으로 삼지 않는 경각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본의 야수는 여전히 야수이며, 우리를 사회정의와 평화로 인도해줄 과학기술이나 특권적인 노동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맛시모 데 안젤리스, 『공통인들』의 편집자, 『역사의 시작』의 저자

카펜치스는, 1960년대의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 1970년대 유럽 자율주의 운동에 이르는, 1980년대 석유 호황기 나이지리아 노동자 투쟁에서 1990년대 사빠띠스따의 엔꾸엔뜨로 [대륙간회의]에 이르는, 가사노동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공통장들을 위한 프레카리아트의 투쟁에 이르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정치철학자다. 경제학과 물리학을 두루 섭렵한 그는 화폐·시간·노동·에너지·가치 같은 근본적인 범주들을, 혁명적 맑스주의 그리고 변화하는 운동의 역학과 맺는 연관 속에서 재고찰했다. 이 시대의 역사가인 그는 20세기의 정치적 지혜를 21세기로 가져온다. 활발하면서도 집요한 논객인 그는 오만한 맑스 연구가들을 에워싸고 원무를 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사유는 더 깊어지며, 더 즐겁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그가 세계를 전복하는 지렛대는 깃털처럼 가벼우며, 그 지렛목은 주부·학생·농민·학생 들처럼 견실하다. 여기 이 시대에 걸맞은 자본주의 비판과 프롤레타리아트 이론이 있다. 그는 브루클린, 메인, 영국,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그리스, 또는 인도네시아에 정통하며, 고대의 이솝과 디오게네스, 중상주의 시대 화폐에 대한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들, 또는 미국 학계를 지배한 유럽의 다양한 근대성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역시 정통하다. ― 피터 라인보우, 『마그나카르타 선언』의 저자

이 글들은 21세기의 시초축적의 피와 불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이 야만적이고 지속적인 과정을 로봇 이코르, 실리콘 칩, 유전자 코드로 새겨진 새로운 형태의 미래주의적 강탈에 연결하는 불가피한 결합들 역시 밝혀준다. 카펜치스는 오랫동안, 이론적으로 매우 심오하고 철저하게 역사적이며, 아주 독창적이고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변화무쌍한 계급투쟁의 전선에 항상 연결된 현대 맑스주의를 창조해 왔다. 오늘날 그의 저작들은 전 세계에서 다시 폭발하는 전 지구적 봉기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 닉 다이어-위데포드, 『사이버-맑스』의 저자, 『제국의 게임』의 공저자

 

 

책 속에서 : 『피와 불의 문자들』로 쓰여지는 자본주의

 

나는 70년 이상의 인생 대부분을 계급투쟁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지내왔다. 그러나 나의 계급투쟁 개념은 적어도 세 번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 자본주의 이해에서 일어난 두 번째 개념적 혁명은 내가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을 소개한 1973~74년에 또한 시작되었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셀마 제임스, 실비아 페데리치가 그들인데, 그들은 “가사노동에 임금을” 관점을 발전시켰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10~14쪽

 

내가 보기에 계급투쟁은 대규모의 파업, 노동자 반란, 혁명적 강령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의 심장은, 결국에는 (역사책에 기록되는) 파업들, 반란들, 헌장들이 되는 노동과 노동거부 사이의 미시투쟁들(micro-struggles)이다.

― 머리말, 24쪽

 

왜냐하면 물리학은 단지 대자연에 대한 학문에 그치거나 과학기술에 응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 그 핵심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자본을 위한 궁극적인 자연이 인간 자연이라면, 과학기술의 결정적인 요소는 노동이다. 예를 들어 열역학의 제1법칙은, … 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구상을 자극했다.

― 노동/에너지 위기와 종말론, 37쪽

 

결국, (간단히 말해, 열 또는 튜링) 기계들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노동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노동의 가치 창출 역량(capacities)은 그것의 부정적 능력(capability), 즉 노동이기를 거부할 수 있는 그것의 역량 속에 존재해야 한다. 이 자기 성찰적 부정성은 맑스 이론의 극히 적은 모델들이 포착할 수 있는 노동의 현실성의 요소다.

― 왜 기계들은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가, 265쪽

 

단순 기계와 열기관이 육체노동을 위한 분명한 모델이었다면, 튜링 기계의 작동들은 정신노동으로서의 사유를 위한 모델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모델은 부르주아와 사유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다.

― 맑스, 튜링 기계 그리고 사유의 노동, 271쪽

 

전쟁이 노동계급의 창출, 양, 질의 유일한 필수조건인 것만은 아니었다. 전쟁은 노동조직의 새로운 형식을 위한 연구실, 실험장, 공장이었다. … 결국, 군대와 경찰은 노동관계의 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이고 반생산적인 노동자들을 절멸시킨다.

― 운동을 동결하기 그리고 맑스주의적 전쟁론, 355쪽

 

노동계급 대부분의 역사에서,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이러한 능력은, 임금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지위와 무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통장들이나 공유재의 현존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임금투쟁”이 오랜 공통장들을 보존하고 새로운 공통장들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금융위기에 대한 메모, 395쪽

 

가사노동의 비가시성은 모든 자본주의적 삶의 비밀을 은폐한다. 사회적 잉여의 원천 ― 비임금노동 ― 은 박탈되고 자연화되고 체제의 주변부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그것의 생산자들이 더욱 쉽게 통제되고 착취될 수 있다. 맑스는 19세기 유럽의 임금 소득 프롤레타리아의 경우에서 이러한 현상을 인식했다.

―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개념에 대하여, 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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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09/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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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기쁨]

세상의 평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한살림하는 기쁨 I 한살림운동의 가치-사회운동 ④

 

 

 

한살림선언을 좀 더 쉽게 정리한 ‘한살림운동의 지향’은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나부터 시작합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일이 요원하고 힘들다고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온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깨달은 ‘나’부터 시작하자는 말이지요. 나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바뀌고 그 일이 동심원을 이루며 점점 멀리 퍼져 나가게 하자는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건배사가 “스마일!”이라지요. ‘스쳐도 웃도, 마주쳐도 웃고, 일부러 웃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한다면 모두가 미소 짓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한살림의 사회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대신 누군가가 밥상, 농업, 생명, 지역을 살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사실, 한살림은 그 시작부터 사회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한살림을 시작하면서’라는 첫 발신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책임지자고 했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너무나 낯선 가치관이었지만 우리는 꾸준히 호혜의 정신으로 한살림을 해 왔습니다. 호혜는 ‘주고받기’, 되돌아올 도덕적인 의무가 전제된 교환을 말합니다. 이 말은 대갚음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받아야 주는 것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우애가 바탕이 되어 서로 형편을 살피는 따스한 마음이 깔린 교환입니다. ‘받고 주기’가 아니라는 거지요. 서양의 말도 ‘take and give’ 가 아니라 ‘give and take’인 것을 보면 서로 돕고 살아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공동체에서는 자연스럽게 호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우리가 두레와 품앗이, 계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함께 살았듯이 오늘날도 그런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지역 화폐를 발행해서 지역 차원의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하기도 하고 중고품을 교환하는 온·오프라인의 시장, 벼룩시장과 바자회, 재래시장 등을 통해서 말이지요.

 

호혜란 쌍방의 관계를 넘어 순환을 통해 완성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생명과 생활을 주고받는 것에서 그친다면 닫혀있는, 한살림만의 호혜는 잘 되겠지만,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요. 옆으로, 뒤로, 교차하면서 주고받기를 해야 공동체 전체로 퍼져나가 점점 온 세상이 우애와 우정의 그물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한살림이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한 생산지 지원에 나서고 네팔의 지진 피해, 후쿠시마의 원전 피해에 힘을 모으고, 인도의 불가촉천민 지원에 나서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역의 방과 후 교실을 지원하거나 운영하고 돌봄에 대해 꾸준히 준비해서 하나둘 이루어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얼마 전 시리아의 난민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세계인 가슴을 울렸지요. 시리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천사 같은 아이의 주검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애도와 한탄, 참회의 마음이 유럽의 난민 정책에 영향을 미쳐 제도를 바꿨고, 우리에게도 곁에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을 보면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이라는 것이 새삼 절실히 느껴집니다. 그 그물망 어디에선가 떨림이 있으면 나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생태적 감수성이라 하지요. 나로부터 시작된 떨림, 곧 행동의 변화가 조금씩 퍼져 나가면 사회적인 확산이 되겠지요. 내가 먼저 평화가 되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평화를 이룰 가장 분명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지요.

 

공동체 회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살림이 조합원이 늘어나는 것을 반기는 이유는 함께하면 즐겁고 쉽게 사회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모시고 잘 살리자는 마음이 후손에게 덜 부끄러운 어른이 가져야 할 바탕이라는 생각,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습니다.

 

그 동안 먼저 살림의 기쁨을 누린 사람으로서 그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요? 이웃과 세상, 후손을 향한 따듯한 실천이 세상을 조금씩 밝히는 것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90년 한살림을 시작하여 한살림연합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한살림 곳곳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월, 2015/12/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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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4대강령 생명존중 / 생태순환형 사회의 건설 / 비폭력 평화의 실현 / 녹색자치의 실현 녹색연합은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기...
금, 2017/12/2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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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용어에 대하여

설 연휴 잘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번 편지에서도 많은 문제제기를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쓸 내용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논의의 범위가 방대해서 제 생각을 다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저는 ‘한국사상사’라는 제한된 문맥에서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개벽’이라는 자생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근대’라는 번역어를 빌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세계 근대’나 ‘동아시아 근대’가 아닌 ‘한국 근대’라고 한 것이고요. 부제를 “개화에서 개벽으로”라고 했던 것은 종래에 개화 중심으로 근대를 생각했던 관점에서 개벽 중심으로 근대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분들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중국’이나 ‘세계’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근대’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근대의 대상도 사상이나 철학보다는 ‘체제’(관료제)나 ‘시스템’(자본주의)과 같은 제도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고요. 반면에 저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한국사상사를 서술하는 범주로서 ‘근대’라는 개념을 빌려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실학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고, 동학이라는 새로운 ‘학’에 주목하였던 것입니다.

실학담론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실학담론을 주창한 1930년대의 조선학운동가들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지금과 ‘가까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 사상가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벽파와 문제의식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요. 다만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조선학운동가들이 유학이라는 틀을 유지한 채로, 즉 유학 안에서 새로운 시대를 찾고자 했다면, 개벽파는 말 그대로 유학을 개벽해서, 유학과는 다른 ‘학’을 창조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똑같이 유학을 사상자원으로 활용하고는 있지만 개벽파의 경우에는 ‘학’ 자체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조선유학 500년이 끝나는 하나의 사상적 전환점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저는 ‘근대’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한된 범위에서 ‘근대’라는 개념을 쓰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처럼 동아시아사나 세계사와 같은 거시적 시각에서 ‘근대’를 논하는 분들에게는 혼란스럽고 납득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왜 굳이 그런 혼란스런 ‘근대’ 개념을 고집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벽’의 사상적 획기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근대’라는 용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곧바로 ‘개벽’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우리에게 ‘개벽’은 낯설고 ‘근대’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익숙한 용어로 낯선 용어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벽에 담긴 사상적 획기성으로 말하면 사실 ‘근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근대’는 고대나 중세와 같은 단계적 시대구분론에서 나온 개념인데 반해, 개벽은 ‘개벽 전’과 ‘개벽 후’로 양분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이전과 이후로 나누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사상사는 크게 동학 이전과 동학 이후로 양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사상의 ‘작’입니다. 개화파는 중국으로부터의 탈피는 했을지언정 여전히 ‘술’의 관행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876년 강화도조약, 개항을 시발로 삼는 ‘개화기’라는 시대구분”을 탓하시면서 “1860년 동학 창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개벽기’라는 시대인식을 바로 세워야겠다”고 설파하신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동학에서 시작되는 한국사상의 ‘근대기’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개벽기’와 상응합니다.

이와 같이 ‘한국’ 근대의 기점을 동학으로 잡는 것은 저의 개인적인 한국사상사 서술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코 이 구분이 다른 나라나 인류 문명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과는 다른 한국사상사 서술방식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최제우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최한기도 근대를 준비한 사상가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기’ 개념을 중심으로 서양의 천문학과 정치체제 등을 수용하여 ‘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최한기 기학의 선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홍대용도, 『의산문답』을 보면, 서양의 천문학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적인 유불도 삼교와 성인의 권위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한기처럼 새로운 학문체계를 수립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흔적이 뚜렷합니다. 이 두 사람만 보아도 확실히 조선후기는 뭔가 새로운 사상의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아직 저의 역량이 부족해서 이런 사상가들을 본격적으로 논의에 포함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학과 동학이 동시대에 나왔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김태창선생님께서 “앞으로 한국철학의 과제는 기학과 동학을 융합‧접목시켜 새로운 ‘학’을 만드는 일이다”고 하셨다고 들었는데, 탁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이야말로 21세기 한국에 필요한 새로운 ‘개벽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근대’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실천적인 관심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인들은 ‘근대’라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편지에서 소개한 중국인 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근대화’되지 못해서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을 부정하면서 서구를 추종하고, 한편으로는 일본을 도덕적으로 미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근대화를 평가하는 상반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철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노자는 노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근대는 근대로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근대로 상처받은 영혼을 근대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동학을 비롯한 개벽파를 ‘자생적 근대’나 ‘토착적 근대’로 규정하는 이유입니다.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비어 있는 ‘전통’과 ‘현대’의 사이를 ‘개벽’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유학중심)-근대(개벽중심)-현대(서학중심)”의 구도로 한국사상사를 나름대로 균형있게 서술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이러한 저의 문제의식(‘치유로서의 개벽근대’)에 공감해 준 서평이 하나 나왔는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박지영(인전) 교무님이 쓰신 「근대의 재발견으로 개벽종교를 치유하다」(『개벽종교』 80호)입니다. 저보다도 제 마음을 더 잘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개벽사상’과 종래의 ‘탈식민주의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종래의 탈식민주의론은 또 하나의 ‘술(述)’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상을 빌려다가 거기에 기대어서 자신이 처한 사상적 곤경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선생님이 맑시즘 역시 개화좌파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중심주의에 갇히거나 그냥 공부로 끝날 뿐입니다.

반면에 개벽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습니다. 최근에 유상용선생님이 “개벽은 나로부터 세계를 보는 눈을 여는 것”이라고 했는데, 탁월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편협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에 빠진 것도 아닙니다. 유학과 서학을 시야에 넣으면서 ‘한울’이라고 하는 세계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개벽 이전에도,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상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홍대용이나 최한기는 예외라고 하고). 물론 개벽이 사상적으로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학과 동학의 관계

유학과 동학의 관계는 저로서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동학은 거의 대부분 유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 왔습니다. 확실히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유학자였고, 이 점은 증산교의 교조로 알려져 있는 강증산이나 대종교를 창시한 홍암 나철, 그리고 원불교를 이론화한 정산 송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증산은 동학을 평가하면서 “유학을 버리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하였고, 실제로 동학 통문(通文)에는 ‘도유(道儒)’라는 표현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전봉준과 같은 동학접주의 대부분이 서당 훈장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의 탄압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겠고요.

그런 점에서는 분명 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동학과 개벽파는 유학이나 불교와 같은 전통사상의 자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학’을 ‘개신유학’이나 ‘급진유학’ 또는 ‘민중불교’라고 하지 않고, ‘동학’이나 ‘증산교’ 또는 ‘원불교’라고 새로운 이름을 붙였던 이유는 ‘학’의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전통을 자산으로 삼고는 있지만, 그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학’을 만든 것입니다. 최제우가 ‘다시 개벽’을 주창하거나 강증산이 ‘묵은 하늘’을 뜯어고치자고 한 것은 이런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학’이 나오게 된 이유는 종래의 유학적 세계관으로는 더 이상 시대적 전환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이 제가 동학을 말할 때 유학과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도 유학 경전을 버리고 독자적인 경전을 만든 이상 이미 유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유학을 유학이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시서(詩書)』라는 경전을 신봉하는 것인데 – 마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경』을 신봉하듯이요 – 동학교도들은 『시서』나 『논맹』이 아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경전으로 받들었습니다. 물론 교양으로는 유교경전도 공부했을 수 있습니다만, 농민들이 사서삼경이나 성리학 문헌을 공부한 경우는 드물었다고 생각됩니다. 전봉준과 같이 유학자의 신분에서 동학에 입도한 경우라면 당연히 유교경전은 기본소양이었겠지만요 -.

그래서 이들에게 ‘유학’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천도교인인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대표님에게 “당신은 유학자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마 “아니다”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그냥 “천도교인이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원불교 성직자도 마찬가지고요(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학을 배척하거나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런데 ‘개신유학’이나 ‘급진유학’이라고 규정해 버리면 여전히 유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주자학이나 양명학을 신유학이라고 하듯이요. 그래서 제가 이 표현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산교가 선도(仙道)를 개벽하고, 원불교가 불교를 개벽한 것처럼, 동학이 유학을 개벽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입니다. 유교에서 중시하는 제사를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제사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큰 불경죄를 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벽’으로 상징되는 성인이나 조상보다 ‘나’를 더 존귀한 존재로 설정하고 있으니까요. 동학이 당시의 유학자들에게 ‘사교’로 지목당하고 최제우나 최시형이 처형당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유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명분(名分), 즉 예적(禮的) 질서를 무너뜨렸으니까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동학은 ‘개신유학’이라고 하기보다는 ‘개벽유학’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원불교를 ‘개벽불교’라고 부를 수 있듯이요. 요즘에 저는 원불교를 ‘동학불교’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개벽/동학’과 ‘불교’를 다 알아야 이해될 수 있는 사상체계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동학도 개벽과 유학을 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사상체계라는 뜻에서 ‘개벽유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신’이나 ‘급진’은 하나의 독립된 사상체계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새롭거나 과격하다는 수식어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개벽’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상조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개벽유학’은 ‘개벽’이라는 사상과 ‘유학’이라는 사상의 합성어를 의미합니다. 마치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이 한편으로는 최제우를 개벽의 선지자로 존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을 주체로 한다고 말하였듯이 말입니다. 아일랜드의 젊은 한국학자인 캐빈 콜리는 정약용의 사상체계를 ‘개신유학’이라고 하지 않고 ‘기독유학’(그리스도교+유교)이라고 규정하였는데, 이것도 비슷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개신유학’이라고 하면 사상적 아이덴티티가 ‘유학’ 하나로 한정되지만, ‘개벽유학’ 또는 ‘기독유학’이라고 하면 사상적 아이덴티티가 두 개로 늘어납니다. 이 중에서 ‘유학’을 강조하면 유학과의 연속성이 강조되고, ‘개벽’이나 ‘기독(교)’을 강조하면 유학과의 단절성이 강조됩니다(물론 정약용의 사상은 유학적 요소가 그리스도교적 요소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동학에는 두 측면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동학이 유학의 연속선상에서 논의된 측면이 강했다면, 저는 단절성을 강조해서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고요.

아울러 어떤 A라는 사상을 만들기 위해서 B라는 사상자원을 활용했다고 해서, 새로 만들어진 A라는 사상을 반드시 B라는 사상 계열로 분류해야 하는 필연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자원으로만 활용할 뿐, 내용 자체는 전혀 다른 사상체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동학과 서학의 문제

제 생각에 동학은 단지 서학의 도전에 대한 대응일뿐만 아니라 전통적 세계관의 붕괴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였습니다. 최제우는 『동경대전』에서 “인의예지는 성인의 가르침이지만 수심정기는 내가 새롭게 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학뿐만 아니라 분명히 유학도 의식하고 있습니다. 동학이 유학도 아니고 서학도 아닌 제3의 길을 갔다고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동학의 ‘동’에는 ‘서’에 대한 ‘동’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동’의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이러한 ‘용례’는 일찍이 신라시대의 최치원에게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최영성교수님의 선행연구에 의하면, 최치원은 신라는 ‘동국(東國)’이고 중국은 ‘서국(西國)’이라고 하면서, 신라인을 ‘동인(東人)’이라고 하고, 한반도를 ‘동방(東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에 고려시대든 조선시대든, 한반도에 사는 지식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할 때에는 ‘동방’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동인, 동국, 동방은 모두 서세동점이 시작되기 이전의 개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학’은 ‘동양학’이 아니라 ‘한국학’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어떤 분들은 동학은 서학, 즉 천주교의 영향으로 탄생했다고들 말합니다. 『동경대전』에 나오는 ‘천주’나 ‘상제’ 개념을 예로 들면서요. 주로 그리스도교신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의 주장이라고 생각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학은 서학의 ‘자극’을 받아서 탄생했다고 할 수는 있어도,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로는 ‘상제’나 ‘천주’라고 쓰고 있지만 한글로는 ‘하늘님’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 ‘하늘님’은 전통적인 한국인의 하늘신앙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상제나 천주는 그것을 한자로 표현하기 위해서 빌린 말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천주교의 신관이 이런 토착적인 하늘신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하고, 동학도 마찬가지로 그런 토착적 신관 위에서 성립한 신종교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학의 자극을 받았을 수는 있는데,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다산 정약용이 서학적 신관을 수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부족하지만 ‘근대’와 ‘유학’의 문제에 대해 제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기하신 문제의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벽학의 모색

 마지막 부분에 제시해 주신 “술이 아닌 작의 필요성,” “개벽기에 대한 시대인식,” “밖보다는 안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개벽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개벽문화와 개벽학을 만드는 일이라고 보고요. 지난주부터 페이스북에 『개벽일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개벽에 대해서 남에게 들은 이야기나 자신이 생각한 단상 등을 글로 남겨두고 있는데, 이것이 죽을 때까지 쌓이면 개벽학의 얼개가 대충 짜여질지 모르겠습니다.

“개벽기에 대한 시대인식”은 삼일운동의 사상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삼일운동’하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것 역시 개화의 시선으로만 사태를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삼일독립선언서」의 사상적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개척정신(“자가의 신운명 개척”), 도덕주의와 시대전환 의식(“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온다”) 등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요소들이야말로 개벽사상의 특징이었습니다. 개화파들은 쓸 수 없는 문장입니다. 이 개벽정신이 바로 삼일운동의 내적인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외적인 요인이었다고 한다면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삼일운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독립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독립은 물론이고 사상적 독립까지 아우르는 ‘독립’ 말입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독립한 상황이지만 사상적 독립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사상적 독립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이 개벽의 자세입니다. 삼일운동에서 만개했는데, 아쉽게도 해방 이후로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깨어있어야 하겠지요.

선생님과 하자센터의 김현아 선생님이 기획해 주신 ‘개벽학당’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저로서는 10대 후반의 젊은이들과 함께 한국사상과 개벽정신을 얘기할 수 있는 첫 번째 자리이자 시험의 무대입니다. 아울러 원광대학에서도 박맹수총장님이 중심이 되어 개벽의 일꾼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사회를 이끌어 갔듯이, 한국사회도 개벽의 일꾼들이 진취적이고 창조적으로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개벽이 이처럼 하나의 사회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개벽학’이라는 체계적인 ‘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언문」으로는 아무래도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단발적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주자학이 동아시아를 700년 이상 이끌어 갔듯이, 그에 상응할만한 개벽학이 요청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민주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개벽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금, 2019/02/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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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학교 1강

나는 왜 일해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립은 가능한 걸까?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까? 나의 몸과 자연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여성과 생태 사이 머물고 있는 고민을 나누며 서로의 배움이 되어주는 특별한 학교가 드.디.어. 열렸습니다. 이 학교에는 명 강사도, 해법을 내려줄 전문가도 없습니다. 그래서 과연 사람들이 올까? ‘에코페미니즘’으로 화두를 던지면 어던 사람들이 올까? 날씨가 꼬물꼬물해서 괜찮을까 두근반세근반 하고 있었는데… 비 바람을 뚫고 신청해주신 분들이 거의 모두 오셨습니다!!! 망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과 직면한 고민들을 에코페미니즘과 어떤 접점에서 가져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데 큰 감격을 느끼며!!

에코페미니즘 학교 1강에코페미니즘 학교 1강

어색한 만남을 손뜨개로 풀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서먹서먹한 시간, 털실을 만지작 거리며 서로 뜨개질 하는 법을 알려주며 고민의 실타래도 술술 풀리기를 바랍니다.

# 발화1. <20년 동안 에코페미니즘을 온 몸으로 고민한 언니 이야기>

에코페미니즘 학교 1강

위장취업과 여성학, 꿈꾸는지렁이들의모임과 여성환경연대

예전에 미싱사로 일을 했었다. 93년도 (소위 위장취업으로 불리는 형태로) 공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야근도 많았고, 값싼 임금으로 말 잘 듣는 미혼 여성에게 고되게 일을 시키는 장면들을 보면서 노동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젠더의 입장에서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성학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전에 맑시즘이 새로운 창을 열어준 것처럼, 페미니즘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들이 개인적인 결핍이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함께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환경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페미니즘과 생태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이어 ‘꿈꾸는지렁이들의모임’을 결성하게 되었고 에코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2003년부터 여성환경연대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깊숙하게’

올릭픽 구호처럼 들리지만 이 구호가 근대적 패러다임, 그리고 화학물질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화학물질은 무엇보다 더 빠르게, 우리의 몸 속 깊숙하게 침투한다. 여성환경연대 활동을 전개하면서 화학물질을 매개로 소비사회와 속도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다. 요즘의 나의 화두는 밀양이다. 이미 송전탑 건설과 시운전이 시작된 밀양은 단순히 실패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전까지 사람들은 내가 사용하는 전기와 송전탑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 기생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드물것이다. 밀양의 할매들을 보면서 ‘돌보는 자’이기에 할 수 있는 부패된 시스템에 대한 ‘전복의 힘’을 느꼈다.

우리에게 필요한 풍요는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상품화 된 욕구 뿐 아니라, 상품화 되지 않은 욕구도 있다. 결국 풍요롭고 싶다는 욕구가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고,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예술가, 농부, 전업주부 등의 노동은 임노동은 아니지만 사회에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노동을 무가치적이라고 평가하는 자본주의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의 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위계적인 이원론을 파괴하는 것이다. 나아가 생계적인 관점을 사회적으로 바꾸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이 아닐까. 단순히 생태계를 보호하는 에콜로지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고, 소비주의에 휘말리지 않고 무엇을 기준으로 평등해질 것인가 학교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 발화2. <우리는 왜, 지금, 여기서 에코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가?>

에코페미니즘 학교 1강

왜?? 에코페미니즘?

환경과 여성 이슈 양쪽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이 두 활동에 교집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는데, 나의 역할은 전형적인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일이었다. 동시에 그 공간은 신부에게 최적화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에어컨이나 난방이 빵빵한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경과 여성을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었던 것 같다.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 불공평한 관행으로 항상 강요당하는 모든 생명들. 벼랑 끝에 내몰린 청춘들, 동물들. 생태 파괴의 원인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골칫거리를 만드는 인간들이 대체 누구인가 들여다볼수록 너무나도 부조리한 인간세상의 생태계와 땔래야 땔 수 없다는 것임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환경운동에서 쓰이는 언어에 대해서도 고민스럽다. 예를 들면 ‘어머니 설악산’과 같은 표현은 따뜻한 이미지를 줌과 동시에 모성애를 강요당하는 것 같은 불편함이 공존한다.

여성주의와 여성운동 안에서도 ‘전체 지배체제에 대한 거부’보다는 ‘평등’의 가치를 우선순위에 둔 방식이 여전하다.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구조를 벗어나기를 원했으나 현실에서는 결국 그 틀 안에서 적소를 찾게 된다. 현존하는 체제 안에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얻는 데에 주력하게 되면서 결국은 주류화 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여성만이 가능한 구조이며 ‘평등’을 추구하면서 주류 경제에 참여하고 남성과 정치, 경제력을 나누길 요구하면서는 위계적 획일성에 빠지기 쉽다. 남성과의 ‘차이’만을 강조하는 방식의 여성운동 관념은 착취 없는 경제구조의 접점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이’가 투쟁에서의 ‘장애’가 아닌 ‘강점’으로 여겨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에코페미니즘에서 이야기하는 ‘자급’의 관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에코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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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돈이 앞서는 자본주의,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그리고 남성중심사회. 많은 사람들이 이 산봉우리 어딘가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한다. 더 오를 수 없을 것 같이 한계가 느껴져도 사람들은 더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 산을 쌓아 올라간다.

높은 산꼭대기, 그 ‘빙산의 일각’ 아래에는 지금, 여기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 어쩌면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가사노동, 돌봄 노동처럼 우리들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 데 필수적이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과 그 주체들. 최저임금노동, 아동노동과 같이 사회가 보호해주지 못하고 외면해버린 노동과 그 주체들. 그리고 그 아래엔 우리가 말한 모든 것들을 지탱해주는 토대이면서도 사람들에게서 잊혀져버린 자연.

지금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더 높고 날카롭게 다듬어 올라가기 보다는, ‘보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을 겸허하지만 용감하게 직시하려 한다. 높이 올라가는 것의 한계를 깨닫고 우리의 욕심을 떠받들고 있던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여기서?? 에코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 학교 1강

에코페미니즘 학교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려고 했던 이유는 어쩌면 이 모든 영역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매일을 살 수 밖에 없으며, 그 모든 주제를 아우르며 혼자서는 현실적·경제적으로 완전히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 큰 숙제는 의미 있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딜레마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2030세대의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우리의 고민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현재의 구조 속에서 옮음/이상/지향 속에 사고가 머무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저항할 수 있는 일들을 궁리하는데 에서부터 딜레마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모인 모두가 학교에서 각자의 삶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구조의 한계와 모순을 명확하게 발견하고, 더 일상적인 실천을 연대할 수 있기를 꿈꾼다.

# 우리들의 이야기 <이 시대/사회에서 나를 빡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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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여성에 대한 폭력, 일상에서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불편한 것들 투성이인데 불편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검열하게 되는 나 자신, 중산층의 욕망을 가진 나, 노예가 좋은데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나, 예뻐지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자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의심없이 믿는 사람들, 화가 안 나는 내 자신,인터넷에 떠도는 여성혐오, 부조리한 것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돌보는 사람이 더 힘들어지고, 돌보지 않는 사람이 더 유리해지는 현재의 모습, 점점 무능해져가는 현대인, 장시간 노동으로 자급을 시도 할 수 없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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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머리와 감정을 쓰는데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진 않나요? 오랫만에 손을 움직이고, 나를 빡치게 만드는 감정을 낯선이들에게 풀어내보는 신비로운 경험 속에서 알 수 없는 동지애(?)를 느끼게 됩니다.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고민과 이야기들, 에코페미니즘이 뭔지 나의 고민과 접점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다가올 10월 동안 매주 목요일 저녁 풀어보려 합니다. 다음시간 (10월 10일)에는 먹거리, 자급, 농사공동체를 키워드로 고민을 풀어보려 합니다. 곧 또 만나요~ 제발~

화, 2015/10/0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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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모두모임, 올해에도 어김없이 여성환경연대에 애정 갖고 지켜봐주시는 많은 회원님들을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해는 특별하게, 총회에 앞서 오전 10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비전토론회: 에코페미니즘과 나, 그리고 여성환경연대>를 열었는데요. 사회는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님, 그리고 3명의 발화자가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은희(은평구 인권센터장)_ “과연 돈이라는 것은 얼마나 있어야 하나, 진짜 내가 살기 위해 얼마나 필요할까. 주거, 그리고 국가가 독점적으로 서비스하는 분야 (전기, 전화) 등을 자립적으로 이룰 수 있을지, 국가와 시장으로 포획되버린 분야에서 적정하게 생산하며 이를 착하게 쓰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흙 묻히고 사는 삶, 근본적으로 좋은 삶,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으로 좋은 삶을 고민한다. 삶을 지탱해온 여성들이 지금의 문화와 경제수준에서 어떤 운동을 보여주어야 할까. 지속가능하려면 탈성장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현실의 저성장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에코페미니즘 운동을 할까. 이런 고민은 여전하고, 여성환경연대와 함께 나누고 싶다.”

 

김주희(초록상상 사무국장)_ “개인적으로 8년 차 활동가가 되었는데, 머리는 많이 변했는데 일상적인 생활이 그런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아주 가까운 가족들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고민이 된다. 일상의 구체적인 지점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지역으로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 중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나를 찾는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지영(여성환경연대 정책팀 활동가)_ “한나 아렌트가 노동을 3개로 분류했는데, 청년들에게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타율적인 노동이 필요한 동시에 대안적 삶을 꿈꾸는 자율노동의 흐름도 만들어지고 있다. 여성환경연대가 이런 청년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떤 에코페미니즘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된다. 에코페미니즘적 이상과 맞닿아 있는 2030 청년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언어화하고 조직할 수 있을지가 고민으로 남았다.”

 

이후에 이어진 플로어 토론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내 삶에서 에코페미니즘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나의 에코페미니즘을 찾아내고 싶다.”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동물적인 삶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사부작사부작 자리잡은 식물적인 삶을 지금, 여기서 추구하는 것, 탈성장을 부르짖다가 막상 현실에 닥친 저성장 시대에 우리마저 흔들리지 말 것, 시스템을 탈출해 돈 없이 대안적으로 기꺼이 살아내는 것, 점으로 연결된 우리가 이어지는 것. 저녁도 없고 저축도 없는 삶에 홀홀 단신 남지 않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후에 이어진 점심시간. 여성환경연대 살림꾼 최정은님이 운영하는 여성성공센터 wing에서 건강하고 든든한 점심메뉴를, 여성신문사 편집장 조혜영 회원님께서 후원해주신 맛있는 떡, 그리고 상주 신의터 농원 김갑남 회원님께서 후원해주신 무농약포도즙과 발효생강까지.. :)  짧은 점심시간이 아쉬울만큼, 건강하고 맛 좋은 음식이 가득했답니다.

그리고 이어진 총회!!

여성환경연대가 2015년에 열심히 했던 활동, 그리고 2016년에 야심차게 해나갈 활동을 공유하고 회원님들께 승인을 받았지요. 작년 한 해동안 회원님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여성환경연대 2025 비전’ 세우기 작업과 ‘지속가능보고서’ 도 공유하였고요.

모두모임 자리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여성환경연대에 질책도 칭찬도 의견도 많이많이 애정과 관심 표현해주세요.
토요일 오전과 오후 모두 시간내어, 비전토론회와 총회 자리를 빛내주신 회원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여성환경연대의 활동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나는 2016년을 꿈 꿉니다.
이 꿈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차근차근 꾸준히 활동하는 여성환경연대가 되겠습니다.
여성환경연대와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이 날 총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

모두모임 사진이 보고 싶으시다면~  https://www.flickr.com/photos/eco_kwen/albums/72157664774742612

화, 2016/02/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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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한국여성대회가 지난 3월 5일에 열렸습니다. 갑작스레 내린 빗줄기 덕분에, 오랜만에 실내에서 모였어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희망을 연결하라.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 란 주제로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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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여성대회 드레스코드 역시 여성을 상징하는 “보라색”이었어요!!

“싸구려 임금에 싸다구를 날려라”  “일하러 왔지, 니 기분 맞추러 온 거 아니거든!!” “성평등 가치 실현” 등등~  다양한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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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연결하라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

“희망을 연결하라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 구호와 함께 성평등 가치 실현 촉구, 여성폭력근절, 노동개악 중단,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성평등 국회를 주장하며 3.8 여성선언을 하였습니다.  3.8 여성선언에는 청년 대표로 여성환경연대 이아름 활동가가 발언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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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디딤돌 수상에는 자림성폭력대책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네트워크’/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운동/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분회/ 여수 유흥업소 여성사망사건 제보 여성 9명이 선정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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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된 3.8퍼레이드!!

여성환경연대도 보라색 우비와 피켓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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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몰아치던 밖으로 나가기 전에,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님을 만나서 기념 사진~^^ 그리고 시청부터 종로-광화문-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까지 피켓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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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여성도, 지구도, 일회용 물건이 아냐.

왜? 뭐! 꼭 예뻐야 돼?

내 몸은 아름답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의 몸! 여성의 삶!을 둘러싼 ‘예뻐져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시되어버린 생각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 삶을 둘러싼 성형산업, 넘쳐나는 소비재 속에서 조금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여성의 몸과 지구생태계에도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갖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나가는 것. 올 한해 여성환경연대에서는 이 주제로 캠페인을 지속해나가려 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

화, 2016/03/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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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펨포럼 캡처

 

 

 

 

 

[시민과 함께하는 에코페미니즘 기획 강좌]

불어라, 에코페미니즘 바람

 

○ 1회차

일시: 2016. 5. 26(목), 오전 10시반

강의 제목: 엄마는 괴로워 – 성과주의사회 모성 이야기

강사: 이경아(여성학자. ‘엄마는 괴로워’저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쟁시스템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각자 타고난 대로의 인간성을 실현해가는 삶을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를 경쟁 시스템에 딱 맞는 효율적인 부품으로 갈고 다듬는데 몰두하게 된다. 생산성을 강조하는 경쟁논리가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세상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2회차

일시: 2016. 6. 2(목), 오전 10시반

강의 제목: 그들이 말하지 않는 GMO의 비밀

강사: 김은진(원광대 로스쿨 교수,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 저자)

농사의 완성은 밥상. 농사가 비즈니스가 되어 버리자, 밥상을 차리는 일의 신성함도 사라지고 효율성에 밀려 하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알아야 할 GMO의 거짓과 진실, GMO 표시제의 문제점과 함께 애초에 좋은 밥상문화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어떻게 가사노동과 부엌을 공유할 것인가 이야기한다.

 

○ 장소 : 신도림 예술공간 고리 Cafe 동네:북
(1,2호선 신도림역 3번출구 방향 > 테크노마트 방향 지하연결 통로 > 헌혈의집 맞은편)

○ 수강료 : 무료

○ 신청 문자 및 문의 : 010-8007-9673, 02-722-7944

○ 주최 : 여성환경연대, 남서지부 더 초록

○ 후원 : 한국여성재단, 신도림예술공간 고리

월, 2016/05/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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