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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권의 ‘민족일보’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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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권의 ‘민족일보’ 탄압

익명 (미확인) | 수, 2019/01/02- 15:03

임헌영 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

– 편집부 : 임헌영 소장이 경향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2017년 10월 12일부터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을 연재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광복 이후 정치, 경제, 사회, 언론, 교육, 종교, 문화예술, 노동, 학술 등 모든 분야에 걸친 필화사건을 다룬다. 이중 일부를 ????민족사랑????에 전재한다.

4월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 혁명정신으로 탄생한 언론에 ‘철퇴’

1961년 8월 11일 혁명재판소에서 열린 민족일보 사건 변론 공판 모습.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이 피고인석 왼쪽에 앉아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4월혁명의 왕자는 제2공화국 집권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이 왕자는 4월혁명의 공주격인 참 언론 ‘민족일보’를 학대했다. 서로 앙숙이던 이 4월혁명의 오누이는 5·16쿠데타에 의해 둘 다 참살당해 버렸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비극이 탄생된 것이다.
제2공화국은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 순리로는 장면부통령(4월 23일 사임)이 27일 이승만 퇴진 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썩은 국회를 해산하고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른 후 개헌했어야 됐건만 덜컥 개헌을 서둘렀다. 그러자 고정훈은 “오욕 국회를 해산하지 않고 내각책임제로 개헌하는 등의 방향으로 나아가면 수년 안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예언(남재희, <진보열전>, 메디치, 2016)했고, 그건 적중했다.

허정 과도내각은 “허세를 버리고 실질적 반공태세 강화”와 미국의 반공 교두보로서 일본을 적극 협력자로 만드는 전제조건인 대일외교 개선책 등을 시정방침으로 들면서 혁명정신을 탈색시켰다. 장면 내각(1960.8.23)도 여기서 오십보백보였다. 이승만·허정의 정치이념 그대로였던 제2공화국은 국민들의 혁명 여망을 실현할 의향도 투지도 없었다.
정치적 갈등을 4월혁명 정신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이승만과 똑같이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이라는 2대 악법으로 돌파하려다가 범국민적 저항을 자초했다. 여기에다 교원노조와 통일문제 등에 직면하자 보수정당으로서의 대처 능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민족일보’는 4월혁명 정신의 유일한 정통 언론으로 1961년 2월 13일 창간, 지령 92호까지 발간했으나 5·16쿠데타에 의하여 학살당했다. 이 신문은 우리 민족의 생존전략을 가장 적확하게 진단, 그 처방전까지 내린 민족사의 이정표였다.

 

2공화국의 민족일보 탄압

1961년 12월 21일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의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2공화국은 1961년 1월 25일 민족일보사가 설립되자 바로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민주당 김준섭 의원은 “진보당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조봉암의 비서로서 다년간 활약한 이영근이 5년형을 선고받은 뒤 일본으로 밀항해 ‘통일조선신문’을 경영했는데, 4·19혁명 후 그로부터 수억 원이 국내로 들어왔으며, 그 자금이 특정 정파 정치활동과 일간신문 창간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창간 준비 중인 일간신문과 관련되어 있다”고 윤길중 의원을 겨냥했다. 이에 윤길중은 신문발행을 준비 중인 조용수는 민단에서 활약한 청년으로 재일동포 북송 반대운동에 앞장섰다고 해명했다(정진석, <민족일보와 혁신계 언론 필화사건>). 이승만이 조작한 조봉암 사건을 4월혁명을 겪고도 이 정도로 인식 했다는 사실은 민주당의 불행을 예견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자 “허무맹랑한 망발”이라고 민족일보 회장 서상일과 사장 조용수 명의 해명광고가 나왔고, 창간자금은 거류민단과 그 주변 양심적 기업가들한테 받았다고 밝혔다(원희복, <조용수와 민족일보>).
‘민족일보’는 서울신문에서 제작했는데, 정헌주 국무원 사무처장은 서울신문에 제작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3월 2일 오후 5시 제작을 중단당한 민족일보는 3일간 정간했다. 제작처를 산업경제신문사로 옮겨낸(3월 6일) 1면에다 “제2공화국 언론자유 탄압 제1호, 절대자유 보장하겠다던 장 내각 집권 반년 만에 국민기본권 유린”이란 항의 기사를 실었다.
국회 법사위가 3월 9일 부당성을 추궁하자 정헌주는 “특수지 성격을 띤 민족일보에 대한 인쇄를 중단한 조치는 정부의 기본방침”이라고 강변했다.
두 번째 탄압은 대일 반입 금지조치였다. 도쿄지사로 250부를 수출하려 하자 서울세관은 재무부 장관 지시로 국무원에서 신문수출 승인을 얻도록 되었다고 했고, 국무원은 재일동포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불허했다(김민환, <민족일보 연구>, 나남출판). 민족일보는 당대 최고의 논설로 유명했는데, 논설작성용 원고지에는 “이 고지(稿紙)엔 계도성 높은 민족일보의 논설만을 쓴다”라는 구절이 박혀 있었다

‘미국 원조’ 본질 파헤친 민족일보

이 신문은 대외적으로는 미·일 관계에서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남북분단 문제는 안보 차원에서 민족 공생의 경제공동체로 전환하는 인식의 혁명을 이룩했다.
이 신문은 제2공화국을 혁명정권이 아니라고 비판했는데, 특히 2대 악법(반공법과 데모규제법제정) 반대에 적극적이었다.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2대 악법 반대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곳은 대구였다. 대구역전 광장에는 4·19 이후 최대인 3만여 시민이 운집(1961.3.25)했다.
학생들은 “이승만이는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막대한 돈을 들여 해외를 돌아다니며 잘 쓰고 왔으며 장면은 뒤를 이어 2대 악법을 내걸었으니 이들의 결혼을 축하한다”며 이완용 주례로 위장 결혼식을 연기했다. 장면과 조재천(법무장관)의 위장 장례식을 거행한 이들은 서울의 대학생들이 너무 미온적이라며 독려차 상경까지 했다(박태순·김동춘, <1960년대의 사회운동>, 까치).
민족일보는 “미국 국내경제의 필요에 의해 창안된 것”이 원조로, 그것은 “미국의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논설 ‘미국의 대한 경제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 1961.3.18)으로 풀이했다.
“자국 과잉상품을 원조 명목으로 제공함으로써 과잉상품을 처리함은 물론 앞으로의 시장 확보를 꾀하고, 나아가 타국 내정에까지 간섭할 기회를 장악하여 1석 3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김민환, <민족일보 연구>, 나남)는 입장이었다.
미국의 세계지배를 위한 원조이기에 한국군 병력은 60만 명을 유지하면서 군사·경제적 지배권은 내놓지 않으려는 것이 한미경제협정 체결(1961.2.8)이라며 “문제된 조항을 책임지고 수정하든지 그렇지 못한다면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장면 내각을 비판했다(‘미국의 대한 경제원조정책의 본질을 분석함’).
이에 장면이 “야당에 편승한 공산당의 음모”라고 반박하자, “독재자로부터 이적행위를 한다는 낙인을 몇 번씩이나 받고, 국제공산당과 관련 있다고 몰리기까지 하던 그가 집권 반년 만에 너무나 빠르게 독재자의 행실을 닮아가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장총리의 망언을 묵과할 수없다’, 1961.2.16)고 되받았다.
자립경제를 위해 원조보다 남북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민족일보’는 한·미·일 관계를 “일본제국주의를 부활시켜 아세아의 공장이요, 헌병으로서 미국의 기득권익의 청지기로 삼아 (동북아 방위에 적극 참여시키는 대신에) 그 반대급부 조건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을 관리케 하려는 기본구상을 한 지가 오래되었다”(‘미국의 대한 경제원조정책의 본질을 분석함’)고 보았다. 미국이 주선하던 한·일국교 정상화조차 “미·일·한 군사동맹체제를 구축하는 한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한·일 관계는 정상화되어야 하지만 “일본의 옹졸함”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5·16쿠데타 세력은 민족일보 간부 13명을 연행(1961.5.18)했고, 이튿날 신문은 폐간됐다. 12월 21일 목요일 4시가 지난 시각. 조용수는 “민족을 위해서 좀 더 일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다. 신문사를 운영하느라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교수대에서 사라졌다.
“억울한 죽음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어서 모질게 버틴 것인지, 가장 긴 18분이 걸렸다”(김환균, <아름다운 민족주의, 조용수>).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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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을 위한 소송 건 > 이북의 고위 여성정치인을 정부 통일 연구기관의 고위연구자가 국가의 중앙 뉴스 에이전시에서 명예훼손

 

 

늘 진보적이고 올바른 정의 실현의 선두에 서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정상회담을 중계하던 YTN 뉴스채널에서 정부 통일연구원의 고위급 연구자가 크게 상식과 법을 파괴 했습니다.

 

 

여기 한 2분 쯤에서 이북의 고위 여성정치인에게 얼굴ㅇㅇ 이라고 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법과 여론 등으로 심판 할 수 있을런지요?

 

요즘 같은 미투와 통일 열풍 속에 지금 막 뜨고 있는 아이돌 여자멤버에게도 얼 굴 ㅇㅇ 이라고 못 할텐데 말입니다..

민주당의 추 미 애 의원에게 얼 굴 마 담 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 통일 연구기관의 고위연구자가 국가의 중앙 뉴스 에이전시에서 발언한 것이니 반드시 크게 이슈화 되어서, 엄벌해야 합니다.

 

꼭 검토해 주시고 심판의 물고를 열어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통일연구원에서 세금으로 월급을 받을 고위직원이 그런 반통일적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게 용서 하기 힘든 사안 인 듯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이나 협력 가능한 사안인지 검토를 부탁 드릴 수 있을런지요?

 

고맙습니다

일, 2018/04/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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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월 25일자 게시물에서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극단의 표현을 써가며 싸우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저의 고민을 밝히고,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시작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구의 잘못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조 총장님께 전화로 문의하고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주장을 상세히 알아봐야 했고, 그래서 총장님께 여인철 전 위원장 등을 통해서도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와중에 운영위원회가 입장을 밝혔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게시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문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청했습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위 두 가지 요청은 작금의 사태를 파악하는 극히 일부의 사항이고, 제가 궁금해 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 게시물을 통해 다시 밝혔습니다.

“이제 살짝 화가 나려고 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화가 난다는 것입니까?

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한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논쟁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예단이나 편견 없이 듣는 것입니다.
상대의 주장을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에 따라 들을 경우 상대의 말은 왜곡되어 전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1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청자는 1차 왜곡된 말을 판단하는데 당연히 왜곡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2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은 제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도 모릅니다.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다.

저는 현재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오로지 현재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월, 2018/04/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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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정관개정에 관해서도 설명했고

운영위원회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저의 주장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충분히, 더 잘 설명 못한 것은 저의 한계일 수는 있습니다.

그동안의 대화로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월, 2018/04/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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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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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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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_입헌공화국을 꿈꾸다”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2회 “파이팅은 일제 잔재인가”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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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수, 2018/05/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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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3회 “경복궁 수난사 – 조선물산공진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목, 2018/05/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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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_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목, 2018/05/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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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

1. 교육부가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을 공개하면서, 향후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자문 결과, 역사학계의 중론 등을 고려하고,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 실시 등을 거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을 상반기 중 최종 확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화 전도사’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초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자유민주주의’라고 썼던 용어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는 새 집필 기준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 이래로 역대 국정교과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라고 서술하였다.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이다. 그 해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요청함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학계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용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절차도 무시하였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회, 도덕(윤리), 정치, 경제 등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쓰는 반면 유독 역사과목에서만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과목간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발하였다.

3. 학계의 비판에 직면하자, 이명박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거로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적 이념이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헌법 전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2년 12월 27일에 7차 개정된 이른바 유신헌법에서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전문을 근거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쓸 경우, 1972년 이전의 민주주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에서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를 의미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 것이다.

4. 수구-냉전세력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이라며, 이를 사용해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현대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확대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5.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의 이념인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환원’한 것은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은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6.국정교과서 소동으로 늦춰진 새로운 역사교과서 적용년도는 2020년이다. 불과 2년도 남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제작에 부역하였던 교육부가 국민 앞에 속죄하는 길은 오류를 최소화한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수구-냉전 세력의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제작하려 했던 실패를 되새겨, 헌법이념인 독립운동-민주주의-평화통일의 가치를 담은 검정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끝>

2018년 5월 3일
역사정의실천연대

목, 2018/05/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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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공동 주최 춘계 학술대회  

대회 주제: 구술사와 공동체 아카이브: 구술, 기록, 지역의 만남

일시: 2018526() 오전 10오후 630

장소: 한국외국어대학교 Minerva Complex 지하 2층 국제회의장  

대회 일정  

9:30 ~             등록 및 개회사       사회자 : 김수영(한국구술사학회 총무이사)

9:30 ~ 10:00    축사 : 노명환(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회장)

                                  이해영(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윤택림(한국구술사학회 회장)  

10:00 ~ 12:00   1 세션 지역과 아카이브       사회자 : 김종애(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1 주제 : 지역구술기록관리의 현황과 과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발표자 : 배은희(빨간집(기록조사기획사))

                  토론자 : 정연경(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2 주제 : 지역 디지털 아카이브 경기도메모리구축과 운영

                  발표자 :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토론자 : 이호신(한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3 주제 : 지역의 정체(停滯)와 변화(變化)에 대한 주민의 기억

                    발표자 : 손동유(아카이브네트워크)

                   토론자 : 윤은하(전북대학교 대학원 기록관리학과)

13:00 ~ 15:40   2 세션 구술사와 지역사      사회자 : 안승택(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제 1 주제 : 구술사와 연극, 지역에서 만나다

                        발표자 : 김영미(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토론자 : 이하나(연세대학교 사학과)  

            제 2 주제 : 장소 기억과 기록 그리고 로컬리티: 대구 달성의 장소 아카이브와 장소성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자 : 정유진(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토론자 : 추명희(한국구술사연구소)

      3 주제 : 성남 제 1공단 빠이롯트 공장 구술채록을 통해 본 산업문화사적 의미

                        발표자 : 이정훈(전북대학교 무형문화연구소)

                      토론자 : 장미현(한국학중앙연구원)  

            제 4 주제 : 수복지역민의 반공·재건 서사와 지역사 연구   

                        발표자 : 한모니까(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토론자 : 김아람(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5:40 ~ 16:00   휴 식 

16:00 ~ 17:20   3 세션 구술과 기록 연구     사회자 : 오명진(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제 1 주제 : 대학기록관에서의 구술채록 수집 활동 

                      발표자 : 조용성(한국외대 역사기록관)

                     토론자 : 조석연(한국학지식정보센터)  

           제 2 주제 : 기록의 이면: 구술을 통해 바라본 코트라맨들의 경험

                               발표자 : 김명훈(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토론자 : 이세진(한국외대 사학과)  

17:20 ~ 18:30   종합토론      좌장 : 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월, 2018/05/2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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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4회 “망국의 굴욕, 헌상품”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5/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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