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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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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익명 (미확인) | 수, 2019/01/02- 15:32

식민지 비망록 42

‘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 메가타 재정고문의 관사는 왜 청파동 연화봉 언덕에 자리했나?

 

이순우 책임연구원

 

지난여름 92세의 나이로 숨진 김종필(金鍾泌, 1926~2018)의 죽음은 잠시 기억 속에 잠겨있던 이른바 ‘삼김시대(三金時代)’에 관한 회상을 불러 일으켰다. 김대중(金大中, 1924~2009)과 김영삼(金泳三, 1927~2015), 그리고 김종필, 이들 세 사람은 굳이 이름 석 자를 적지 않더라도 각각 DJ, YS, JP라는 애칭만으로 통용되기도 했고, 그들의 위상은 동교동(東橋洞)이니 상도동(上道洞)이니 청구동(靑丘洞)이니 하는 동네 이름조차도 자신들의 대명사로 치부될 정도였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말이 난 김에 이들이 살았던 동네의 지명유래가 궁금하여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더니 나름 흥미로운 내용들이 포착된다. 먼저 동교동은 예로부터 서울도성에서 양화진나루로 가는 대로에 걸쳐 있던 세교(細橋, 잔다리)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지명이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성부 연희면 일대가 고양군(高陽郡)으로 편입되면서 종전의 세교리 일계(一契)와 세교리 이계(二契)가 각각 서세교리(西細橋里)와 동세교리(東細橋里)로 바뀌었고, 다시 1936년 4월 1일에 이곳이 경성부로 재편입되는 과정에서 서교정(西橋町)과 동교정(東橋町)으로 명칭이 축약되었다가 해방 이후 오늘날의 서교동과 동교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상도동에 대해서는 1911년 4월 27일에 경기도 고시 제9호에 의해 시흥군 동면 상도리와 성도화리(成道化里)를 합쳐 새로운 ‘상도리’로 설정한 내용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 <1872년 지방도(규장각 소장자료)>에 포함된 「시흥현 지도(始興縣 地圖)」에 ‘상도리’ 라는 표시가 이미 들어 있는 점에 비춰 보아, 정확한 지명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조선시대 이래로 오래도록 사용한 지명이라는 사실은 명쾌하게 파악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청구동의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좀 더 복잡 미묘하다. 우선 이곳은 앞서 두 동네에 비해 연륜이 아주 짧은 것이 특징이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6호 ‘지방자치법에 의한 서울시 동 설치 조례’에 따라 새로운 동제(洞制)가 실시될 때 “신당동(新堂洞) 308-2를 기점으로 374-20을 경유 346-98에 이르는 도로 동북방의 지역과 신당동 308-2에서 금호동에 이르는 도로 이남의 지역”이 ‘청구동’으로 설정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역은 1970년 5월 18일에 이르러 법정동(法定洞)과 행정동(行政洞) 명칭을 일치시키기 위해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 ‘동장 정원 및 명칭과 관할구역 변경조례’가 제정되면서 ‘신당 제4동’으로 환원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청구동 자체로 보면 존속기간은 의외로 15년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5.16 쿠데타를 통해 중앙정보부장과 공화당 의장 등 군사정권의 권력자로 득세한 김종필에 대한 근황을 알리는 신문기사마다 거듭 “청구동 자택”이라는 수식어가 곁들여 등장하다보니 순식간에 이 동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유명세 탓인지 법률적이건 행정적이건 청구동이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관행적으로’ 청구동으로 부르는 상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이곳을 청구동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동아일보> 1946년 3월 31일자에는 「일본색 학교명(日本色 學校名), 시(市)에서 전면적으로 일소(一掃)」라는 제목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앵구(櫻ケ丘, 사쿠라가오카)의 대체어로 등장한 ‘청구’의 초기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시청 학무과(學務課)에서는 일본 색채를 일소하여 시내 국민학교 명칭을 다음과 같이 변경
하고 4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되었다.
▲ 일출(日出) → 일신(日新) ▲ 앵정(櫻井) → 영희(永禧) ▲ 앵구(櫻丘) → 청구(靑邱)
▲ 서부남자(西部男子) → 태평(太平) ▲ 북부남자(北部男子) → 소의(昭義) ▲ 죽첨(竹添)
→ 금화(金華) ▲ 마장(馬場) → 동명(東明) ▲ 삼판(三坂) → 삼광(三光) ▲ 금정(錦町)
→ 금양(錦陽) ▲ 원정(元町) → 남정(南汀) ▲ 북아현(北阿峴) → 북성(北星) ▲ 서공덕(
西孔德) → 덕창(德昌)

 

이 기사에 따르면, 일제가 패망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9월 새학기를 앞두고 그들이 이 땅에 남겨놓은 학교 시설 가운데 일본 색채가 농후한 명칭을 바로 잡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앵구 공립국민학교(櫻丘公立國民學校, 신당동 331번지; 1937년 9월 1일 앵구소학교로 개교)의 ‘앵구’에 앞 글자 하나만을 살짝 바꿔 ‘청구(靑丘)’로 개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가령 ‘일출(히노데)’이 ‘일신’으로 되고, ‘삼판(미사카)’이 ‘삼광’으로 되고, ‘금정(니시키쵸)’이 ‘금양’으로 된 것처럼 공연히 한 글자를 흔적 삼아 남겨두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완전한 일제잔재청산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앵구’라는 것은 원래 동양척식(東洋拓殖)의 직계 자회사인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朝鮮都市經營株式會社, 1931년 10월 7일 설립)가 경성부 외곽 신당리(新堂里) 지역에 개설하여 1932년 8월에 분양을 개시한 신흥주택단지에 처음 부여된 명칭이었다. 이러한 명명 자체가 일본인들이 매우 선호하는 ‘작명법’에 따른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왼쪽) 경성전기에서 제작한 ‘경성전차 및 버스안내도’에는 장충단 박문사 지역에서 성벽 동쪽으로 신흥주택지인 ‘앵구’ 정류장으로 버스 운행 노선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뻗어가는 경성전기>, 1937)(오른쪽) <경성일보> 1932년 8월 21일자에 수록된 동양척식 자회사인 조선도시경영의 ‘앵구주택지 분양광고’이다. 여기에 나오는 ‘앵구’가 곧 해방 이후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청구동’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는 셈이다.

 

이 당시에 경성부의 확장과 더불어 이른바 ‘문화주택(文化住宅)’으로 크게 붐을 이뤄 조성될 때마다 교외 지역의 주택지에는 대개 무슨 장(莊)이라거나 무슨 대(臺)라거나 하는 식의 이름이 붙여졌다. 예를 들어 연희장(延喜莊), 금화장(金華莊), 동명장(東明莊), 동산장(東山莊), 흥인장(興仁莊), 명수대(明水臺), 법덕대(法德臺), 신정대(神井臺), 쌍룡대(雙龍臺), 어대대(御代の台, 미요노다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이보다 일본풍이 훨씬 더 노골적인 것이 ‘앵구’의 사례처럼 무슨 구(丘, 언덕)라고 붙이는 방식이다. 지금은 거의 옛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한때 청파동의 들머리에 남아 있던 ‘녹구(綠ケ丘, 미도리가오카)’라는 지명도 이것과 완전히 동일한 맥락에서 창안된 명칭이었다. 이곳에 관한 흔적은 우선 ????경성일보???? 1930년 10월 5일자에 수록된 ‘한정 고상 이상적(閑靜 高尙 理想的) 신주택지 분양’ 광고에 그 단서가 포착된다.

 

1. 본주택 분양지는 민자작가 별저(閔子爵家 別邸)로서 소유했던 장소이며 경성시 중에 있어서 주택지로는 절대로 다른 곳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이상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으로써 금회 양수하여 경영하게 된 것입니다.
2. 위치와 교통 : 청엽정 1정목에 있으며 약도(略圖)에 보이는 것과 같이 전차(電車) 오카자키쵸(岡崎町) 정류장에서 경성역저탄장(京城驛貯炭場) 앞의 다리를 건너 똑바로 50칸(間) 내외이며, 이 거리는 겨우 도보로 3분 사이에 주택지의 입구에 도달하며, 자동차의 출입이 자유롭고 전차도 실로 가까워서 정말로 교통이 편리합니다.
3. 지세(地勢) : 이곳은 서북으로 구릉을 끼고 동남을 향해 경사져 있습니다. 구역 내 도처에 송림과 기타 수목이 많고 한정 고상하며 자연의 풍치는 이곳의 자랑입니다.
4. 조망(眺望) : 전면으로는 경성역, 남산의 취록(翠綠), 조선신궁을 우러러보며, 언덕 위의 송림을 유원지로 설비하였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경성부청, 총독부, 창경원 방향을 비롯하여 성내(城內) 전 시가지를 조망하며, 남쪽으로는 용산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한 남산을 손짓하여 부를 만큼 가까이 두어 감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5. 기후와 위생 : 배면(背面) 즉, 서북에 구릉을 끼고 있으므로 바람을 막아주며, 아침 해가 일찍부터 빛나고 종일 햇빛이 차단되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겨울철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난방의 필요가 없을 만큼 햇살을 누릴 수 있고, 여름에는 동남의 부드러운 바람을 받아 더위를 잊게 되어 위생상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6. 시설 : 주택지 내의 도로, 배수, 돌축대, 기타의 공사는 모두 유감이 없으며, 다리가 있는 곳에서 똑바로 지내(地內)로 통하는 도로도 넓혀져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민자작’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장관(李王職長官)을 지낸 민병석(閔丙奭, 1858~1940)자작을 말한다. 그는 1908년 6월에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에 임용되어 경술국치 당시에도 그 자리에 머물면서 이른바 ‘합병조약’의 가결에 동의한 경술국적(庚戌國賊)의 1인으로 지탄을 받는 인물이다. 1910년 12월 30일에 공포된 황실령 제34호 「이왕직 관제」에 따라 이듬해 2월 1일 궁내부대신에서 그대로 이왕직장관으로 전환 임명된 이후 1919년 10월까지 장기간 재임하였다. 나중에 그는 중추원 고문(1925.7), 조선귀족회 회장(1939.7), 중추원 부의장(1939.10) 등을 지내면서 한 평생 친일귀족의 길을 오롯이 걷다가 삶을 마감했다.

<매일신보> 1940년 8월 10일자에는 이왕직장관을 지낸 친일귀족 민병석의 부고광고가 실려 있다.

 

역대 이왕직장관 임면 연혁

<경성일보> 1930년 10월 5일자에 처음 수록된 ‘청엽정 1정목 22번지’ 주택지 분양광고이다. 민병석 별장 터에 조성된 이 주택지는 이듬해부터 구역확장과 더불어 ‘녹구(미도리가오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것으로 나타난다.

 

위의 광고문안은 바로 그가 소유했던 ‘청엽정(靑葉町, 아오바쵸) 1정목’ 즉, 지금의 ‘청파동 1가’ 22번지 일대의 별저(別邸) 터가 주택지로 변신하여 1구좌당 100평(坪) 내외의 크기로 분양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년가량이 지나 ????경성일보???? 1931년 8월 27일자에 수록된 새로운 광고문안을 보면, ‘녹구(미도리가오카) 신주택지 제1호지’라는 명칭과 더불어 전체면적이 약 3만 평으로 커져 있고, 주택지경영사무소의 소재지도 종래의 ‘청엽정 1정목 22번지’에서 ‘청엽정 1정목 1번지’로 변경된 사실이 눈에 띈다.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 (1929)에 나타난 민병석 별장 터(청엽정 1정목 22번지)의 위치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그 후면 언덕에 자리한 1번지, 2번지, 8번지, 20번지 등을 일괄한 것이 ‘녹구(미도리가오카, 청엽정 1정목 1번지로 지번통합) 주택지’다.

 

<경성부관내지적목록>에 수록된 해당 토지의 소유관계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민병석의 별장 터만을 대상으로 했다가 점차 그 주변에 있던 민병석과 민형기(閔亨基) 등 민씨 일가 소유지 일체를 포괄하여 ‘청엽정 1정목 1번지’로 지번을 통합한 대규모 주택지로 변모된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등장한 ‘미도리가오카’ 주택지는 ‘앵구(사쿠라가오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래지 않아 버스정류장의 명칭에도 등장할 정도로 이 일대의 대표 지명으로 크게 부각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미도리가오카’ 주택지(청파동 1가 1번지)의 원 소유주 관계 현황

경성전기에서 제작한 ‘경성전차 및 버스안내도’에는 경성역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버스노선에 ‘녹구(미도리가오카)’ 정류장의 위치가 잘 표시되어 있다. (<뻗어가는 경성전기>, 1937)

 

(왼쪽)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 터 일대에 조성된 ‘녹구(미도리가오카)’ 주택지의 전경이다. (<뻗어가는 경성전기>, 1937) (오른쪽) 옛 녹구(미도리가오카) 주택지인 ‘청파동 1가 1번지’ 구역에는 지금도 일제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돌축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925년 을축대홍수(乙丑大洪水) 당시 용산 한강변에 포진한 철도국관사가 막대한 침수피해를 입게 되자 이를 근원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고지대로 관사를 이축하려는 계획이 추진된 바 있었는데, 이때 바로 이 민병석 별장 터가 그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매일신보???? 1925년 9월 13일자에 수록된 「철도국관사(鐵道局官舍) 지대확정(地垈確定), 민병석 씨의 소유지대로」 제하의 기사가 남아 있다.

 

용산 한강통 부근에 있는 철도국관사에는 매년 여름만 되어 비가 오기 시작하면 전기 관사에 대개 물이 들어 이에 대한 피해와 곤란이 막심하므로 그전부터 철도 당국자들은 전기 관사 이전 문제로 고려를 하여 오던 중 요전 대홍수 때에는 더욱 물난리를 당하였으므로 이번에는 단연코 이전키로 결정이 되어 그간 관사 신축지를 선정하기에 매우 고심을 하던 중 시내 청엽정(靑葉町) 1정목 22번지 자작 민병석 씨의 소유로 있는 대지(垈地) 1만 8천여 평을 사기로 내정을 하고 목하 철도국 당국자는 민자작에게 교섭중이라는데 전기 집터가 원만히 결정만 되면 금년 가을 내로 신축에 착수할 터이라더라.

 

이 당시 철도국관사가 실제로 이전지로 확정한 곳은 효창원 구역이었다. 이에 따라 이왕직 소유지와 국유지였던 금정(錦町, 지금의 효창동) 4번지, 6번지 및 199번지(옛 만리창 터) 일대에는 1926년과 1928년 시기에 용산에 있던 철도국관사 200여 호가 옮겨와 이곳에 건설된 바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가 당초 예정한 대로 민병석의 별장 터에 철도국관사가 들어섰더라면 우리가 아는 청파동 일대는 훨씬 더 별스러운 풍경을 자아내는 공간으로 변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민병석의 별장 터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은 이곳이 바로 러일전쟁시기 일본의 국권침탈이 가속화하던 때 재정고문(財政顧問)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 1853~1926)의 처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1904년 8월 22일에 맺은 「제1차 한일협
약(협정서)」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추천하는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서 한국정부에 용빙(傭聘)하고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할 것”이라고 정해진 바 있었다. 이때 일본 대장성 메가타 주세국장(主稅局長)이 파견되어 그해 10월 15일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으로 용빙계약이 이뤄졌고, 1905년 9월에는 실무기관으로 정부재정고문본부(政府財政顧問本部)가 설치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태에서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의 결과로 통감부 관제가 공포되면서 “한국정부의 용빙에 관계된 것을 감독”하는 권한이 통감에게 주어졌고, 나아가 1907년 3월 5일에는 「통감부 재정감사청 관제(統監府 財政監査廳 官制)」가 제정되어 한국재정고문은 재정감사장관이 되는 동시에 재정고문본부는 형식상 통감부 편제로 흡수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재정고문의 자리에 올라 경제침탈에 앞장선 메가타 다네타로의 모습을 담은 동상이다. 이 조형물은 1929년 10월 탑골공원에 처음 제막되었다가 1935년 9월 조선금융조합연합회(지금의 농협중앙회) 앞뜰로 옮겨졌고, 다시 1943년 8월 금속물 공출로 사라진다. (<男爵目賀田種太郞>, 1938)

 

그러나 헤이그특사파견과 고종퇴위사건의 여파로 1907년 7월 24일에 체결이 강요된 「한일신협약(정미조약)」에 포함된 “(제7조) 1904년 8월 22일 조인한 한일협약 제1항(재정고문관련)은 이를 폐지할 것”이라는 구절에 따라 재정고문이 폐관(廢官)되자 당연직 기구였던 재정감사청도 연계되어 설치 이후 반년 남짓 만에 존속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이에 따라 메가다 재정고문이 물러나고, 이른바 ‘차관정치(次官政治)’가 개시되면서 신설된 통감부 참여관의 신분으로 아라이 겐타로(荒井賢太郞, 1863~1938)가 1907년 9월 7일 한국정부 탁지부차관(度支部次官)으로 임명되어 그의 역할을 승계하였다.
메가타 다네타로가 재정고문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이른바 ‘재정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정부재정과 황실재정을 분리한다는 명분으로 황실재산의 국유화가 시도되었고, 또한 ‘화폐정리사업’의 실시로 일본화폐의 유통이 허용되고 일본제일은행으로 하여금 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차지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징세제도의 개편과 토지에 대한 기초조사 등 다양한 경제침탈이 노골화하면서 장차 식민지배가 용이하도록 기반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이러한 일들을 벌인 당사자인 메가타가 거처했던 곳이 바로 청파동 연화봉 언덕에 자리한 민병석의 별장 터였던 것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따르면 당초에 메가타 재정고문의 관사는 독일공사관(獨逸公使館, 남창동 8번지)을 사들여 이를 사용할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 1904년 11월 9일자에 수록된 「고문 관사」 제하의 기사는 “탁지고문관 메가타 씨의 관사는 아직 확정치는 못하였으되 위선(爲先) 남문 밖 연화봉 민판서 산정으로 택정하였다더라”는 소식을 알려주고 있다. 훨씬 나중에 이곳이 남산과 용산 일대의 전망이 빼어난 신흥주택지로 변신하는 바람에 그러한 흔적이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이곳이 한때 재정고문이라는 이름의 일본인 관리가 터를 잡고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집어삼킬 궁리를 하던 국권침탈의 핵심 배후공간이었다는 점은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될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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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訓民正音專用主張輩

 

何由嫌漢字(하유혐한자)

滿國半文盲(만국반문맹)

曲解先王意(곡해선왕의)

衆言罪不輕(중언죄불경)

 

한글 專用을 주장하는 무리에게 告함

 

무슨 이유로 漢字를 싫어하나

半文盲者들이 이 나라에 가득

世宗 대왕님 뜻을 曲解했으니

罪 무겁다고 뭇사람이 말한다.

 

<時調로 改譯>

 

왜 漢字 싫어하나 半文盲이 나라 가득

어진 世宗 대왕님 그 뜻을 曲解했으니

당신들 罪 무겁다고 많은 이가 말한다.

 

*文盲: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줄을  모름.  또는 그런  사람  *曲解:  사실

옳지 아니하게 해석(解釋)함. 또는 그런 해석. 남의 말이나 행동을 본뜻과는

달리 좋지 아니하게 이해함. 또는 그러한 이해(理解) *先王: 선대(先代)의 임금.

선군(先君). 또는 옛날의 어진 임금 *重言: 많은 사람의 말 *不輕: 가볍지 않음.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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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자본주의가 잠식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남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 사상으로 이북과의 대결과 반목이 강요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친일 잔존 세력들이 친미주의자로 둔갑하여 정치, 군사, 경제, 정보기관, 문화예술, 학계 등 곳곳으로 침투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하는 분단적폐 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미국을 고무찬양, 숭배하고 분단을 유지시켜 미국의 배를 불리는 민족반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삶과 행동이 분단적폐의 효과를 내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지 조차 인식 못하는 가련한 삶을 사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전 세계가 전변하고 있고, 이남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바로 이북에 대한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평가와 판단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니 인권이니 떠들어대던 분단적폐들의 목소리를 일소시키는 생생한 장면들이 최근 전 세계로, 이남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4. 27 판문점 선언의 과정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과정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왜곡과 편견이 없이 이북 사회를 아주 조금이나마 경험한 것의 결과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 넘치며 예의바른 배려에서 느껴지는 겸손한 언행, 연출과 조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머감각과 진중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언제나 이북의 인민들과 이남의 민중들 그리고 미국민들, 세계인류까지 생각하는 원대한 구상에 대한 과감한 결단력을 우리는 본 것이다.

 

10만명이 집단체조를 하면서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아리랑’ 공연이 어떻게 가능한가? ICBM과 SLBM이 단 한번에 성공해내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과 정이 넘치는 곳, 국가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을 위해 멸사복무하겠단 마음으로 헌신하는 곳, 불의와 부정의 그리고 민족배반 행위에 대해서는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민족 자부심과 양심이 바로선 곳, 자신의 이름은 드러내기보단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하는 곳이 바로 이북 사회의 진짜 모습이다.

 

이런 사회가 최고지도자로부터 전당 전인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똘똘뭉쳐진 사회가 바로 이북인 것이다.

 

이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지금껏 있어온 편견을 걷어치우자. 이것은 바로 분단적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분단의 장막을 씌워둔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며 우러러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가를 몰라본다면 우리는 아마 친미를 일삼는 분단적폐세력들의 손아귀(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게)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중대한 변화로 가득한 한반도에서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명심하자.

세상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이북의 ‘혼연일체, 일심단결’에 있다는 것을 알자.

 

이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의 힘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면, 이남에서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으로부터 자주로운 나라로 거듭나자.

 

이것이 평화이자 번영이며 통일이다!

 

 

토, 2018/07/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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悖鄕(패향)

 

小人懷大志(소인회대지)

癡者說儒經(치자설유경)

逆竪云忠孝(역수운충효)

狂夫促覺醒(광부촉각성)

 

風紀 문란한 고을

 

도량 좁은 사람이 大志를 품었고

어리석은 者가 儒家의 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 충효 운운하고

미친 사내 정신 차리길 재촉하네.

 

<時調로 改譯>

 

小人이 大志 품고 癡者가 儒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이 충과 효 운운하고

오호라! 미친 사내가 각성을 재촉하네.

 

*悖鄕: 못된  사람들이  살아 風紀가  고약한  시골.  인륜에  어그러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풍기가  문란한  고을 *大志: 마음에 품은 큰 뜻. ≒홍지(鴻志) *癡者:

치인(癡人).  치한(癡漢).  어리석고  못난 사람  *儒經: 유서(儒書). 유가서(儒家

書).  유가(儒家)에서  쓰는,  유학(儒學)에  관한  *逆竪: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고약한  사람  *狂夫: 미친 사내 *覺醒: 깨어 정신을 차림. 醒覺. 깨달아 앎.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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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告韓國古典飜譯院

 

或此難於作(혹차난어작)

衆人語不輕(중인어불경)

村儒嘲誤譯(촌유조오역)

盡力免苛評(진력면가평)

 

한국고전번역원에 삼가 아룀

 

或 이것은 짓기보다도 더 어려워

많은 이들이 가볍지 않다 말하네

시골 사는 선비 誤譯을 조롱하니

힘을 다해 가혹한 비평 면하소서.

 

<時調로 改譯>

 

或 짓기보다 어려워 가볍지 아니하네

시골에 사는 선비가 誤譯을 조롱하니

모쪼록 힘을 다하여 혹평을 면하소서.

 

*衆人: 뭇사람 *不輕: 가볍지 않음 *村儒: 시골에 사는  선비  *誤譯: 잘못 번역함. 

또는 잘못된 번역 *盡力: 있는 힘을 다함. 또는 낼 수 있는 모든 힘. 갈력(竭力).

사력(肆力). 기력(盡其力) *苛評: 가혹(苛酷)하게 비평함. 또는 그러한 비평.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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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局(정국)

 

萬猫逢一虎(만묘봉일호)

魄散作悲鳴(백산작비명)

左右無人物(좌우무인물)

當然雜輩爭(당연잡배쟁)

 

정치계의 형편

 

수많은 괭이들, 한 마리 범 만나면

놀라 넋 잃고 비명을 막 지를 텐데

좌우를 돌아봐도 인물이란 없으니

잡된 무리끼리 다툼일랑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수많은 고양이들이 한 마리 범을 만나면

놀라서 넋을 잃고는 비명을 지를 터인데

좌우로 인물 없으니 雜輩 다툼 마땅하다.

 

*魄散: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悲鳴: 슬피 욺. 또는 그런 울음소리 *雜輩: 잡된 무리.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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賢問愚答(현문우답)

 

敎堂聽說敎(교당청설교)

牧者辱耶蘇(목자욕야소)

訪寺逢僧衆(방사봉승중)

方知佛大愚(방지불대우)

 

똑똑한 물음에 못난 대답

 

예배당에서 설교를 들어 보니

목사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며

절간을 찾아가 중들을 만나니

부처의 大愚 바야흐로 알겠다.

 

<時調로 改譯>

 

목사의 설교 들으니 예수를 욕보이며

절간을 찾아가서 스님들을 만나 보니

부처의 큰 어리석음 바야흐로 알겠다.

 

*賢問愚答: 현명한 물음에 대한 어리석은 대답 *敎堂: 종교 단체 信者들이 모여

예배나 布敎를 하는 집 *說敎: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 또는 그러한 설명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僧衆: 여러 승려. 승려의 무리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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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전시자료 14

제국 홍보의 소품, 시정기념엽서 시리즈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매년 10월 1일이면 이른바 시정기념엽서(始政記念葉書, 1920년부터는 5주년 단위)를 발행했다. 조선총독부가 출범하여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를 처음 펼친 날이 바로 10월 1일이었으므로 이를 기념하려는 목적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 고급 엽서들은 조선의 문화 유산이나 자연풍광을 비롯해 조선 각 지방의 산업 발달 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디자인 소재로 삼았다.
‘시정기념’이란 말에 걸맞게 이 엽서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넘어 총독부의 선정(善政)에 의해 미개한 조선이 비약적으로 문명개화했다고 내외에 선전하는 홍보수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실제 매년 발행된 기념엽서는 대부분 조선 전 분야가 일제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묘사 하거나, 낙후된 과거 모습과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여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디자인되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환영한 것처럼 디자인한 후안무치한 엽서들도 있다. 의도적인 상징 조작과 합성을 통해 그들은 조선인의 실상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낙토(樂土) 식민지’를 이미지로 창출한 것이다.
통신우편수단으로 각광을 받던 이 엽서를 상용하면서 조선인들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정기념엽서는 통신수단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제국의 홍보수단이자 민족적 자각과 저항을 잠재우려는 ‘움직이는 마취제’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053

1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삼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하는 신공황후 그림

2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일장기를 든 소녀를 둘러싸고 일본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노는 장면. 뒤쪽에 일본과 한국의 상징인 벚나무와 오얏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

 

054

3 시정1주년기념 : 배경에 인삼이 개화한 모양 도안. 백운동 식림 1년과 4년 비교 사진 배치

4 시정1주년기념 : 한강 철교, 죽도 등대, 광량만 염전, 인천 수도 수원지 사진 삽입

5 시정2주년기념 : 구식 서당과 신식 학교 비교 사진. 일본 다이쇼천황 상중이라는 이유로 검은색 바탕 사용

6 시정3주년기념 : 부산 제1잔교와 연락선, 부산우편국, 부산정거장 사진 삽입

7 시정4주년기념 : 일본인 농업이민 주택과 근대식 논농사 사진과 조선인의 재래식 관개 및 제초 방식 그림 대비

8 시정4주년기념 : 조선호텔과 진남포 축항 사진

055

9 시정5주년기념 : 경성우편국 신축청사 전경

10 시정5주년기념 :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니와 목포항의 면화 집
하 장면 사진과 관련 통계

11 시정6주년기념 : 전북 임익수리조합과 평북 태천관개 사업 관련 사진 배치, 여백에는 수차와 흰닭을 그림

12 시정6주년기념 : 동아연초공장과 조선피혁공장 사진, 배경에 담배꽃, 담뱃대 등을 그림

13 시정7주년기념 : 하세가와 총독의 초상을 도라지꽃으로 감싸고, 그 아래 용산총독관저는 국화, 월계수와 총독부 상징인 오동나무꽃으로 꾸밈

14 시정8주년기념 : 황해도 겸이포 미쓰비시제철소 전경과 용광로 등의 사진 삽입

056

15 시정8주년기념 : 대정수리조합 취수구과 수로 사진. 해당지역 지도를 바탕으로 구성

16 시정9주년기념 : 동해 횡단항로를 사용하는 선박 다테가미마루(立神丸), 청진항에서 일본으로 보내지는 콩과 성진항에서 일본으로 실려가는 소 사진 실림. 배경은 동해 횡단항로도

17 시정9주년기념 : 은사수산경성제사장(恩賜授産京城製絲場)과 총독부제생원 맹아교육 장면. 뽕잎, 누에, 국화와 오동나무꽃을 배경으로 그림

18 시정10주년기념 : 평북 신의주 조선제지회사와 평남 승호리 오노다세멘트제조주식회사 평양지사 공장 전경

19 시정10주년기념 : 한강 인도교를 배경으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의 초상 배치

20 시정15주년기념 : 이왕가 수견식(收繭式)과 누에고치 모양의 테두리 안에 경성제사장 사진 삽입

월, 2018/07/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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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有名牧師

 

莫語從神意(막어종신의)

衆知幾度違(중지기도위)

平生貪貨色(평생탐화색)

不愧仰天祈(불괴앙천기)

 

이름난 목사에게 띄우는 글

 

神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지 말게

몇 번이나 어겼는지 뭇사람 아네

한평생 돈과 또 女色 탐했으면서

부끄러워 않고 하늘 우러러 비네.

 

<時調로 改譯>

 

神意일랑 말 말게 뭇사람이 어김 아네

돈과 또 女色 따위 한평생 탐했으면서

부끄럼 하나도 없이 하늘 우러러 비네.

 

*神意: 神의 뜻 *貨色: 재색(財色). 재물과 여색(女色) *仰天: 하늘을 우러러봄.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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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自稱莊老道通者

 

問汝知莊老(문여지장로)

焉輕孔孟言(언경공맹언)

危人危己者(위인위기자)

閉口速歸源(폐구속귀원)

 

스스로 莊子와 老子에 도통했다고 일컫는 者를 비웃다

 

네게 묻노니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子와 孟子의 말씀 어찌 깔보나

타인과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者

입 닫고 빨리 근원으로 돌아가라.

 

<時調로 改譯>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孟 말씀 왜 깔보나

타인과 또한 자신을 썩 위태롭게 하는 者

신속히 그 입 꽉 닫고 근원으로 돌아가라.

 

*莊老: 장자(莊子) 노자(老子) *孔孟: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閉口: 입을 다묾.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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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里(백운리)

 

暫且望雲變(잠차망운변)

能知所以名(능지소이명)

每峯奇別界(매봉기별계)

爲客築宮城(위객축궁성)

 

흰 구름 마을에서

 

잠시 구름의 변하는 모습 보자니

이름을 붙인 까닭일랑 알 만하다

솟은 봉우리마다 썩 기이한 別界

나그네 위하여 궁궐도 쌓고 있다.

 

<時調로 改譯>

 

구름의 변모 보자니 命名 까닭 알겠다

저기 솟아난 峯마다 매우 기이한 別界

지나는 나그네 위해 궁궐도 쌓고 있다.

 

*白雲: 색깔이 흰 구름  *暫且: 잠시(暫時)  *所以: 까닭  *築城: 城을  쌓음 *宮城:

궁궐(宮闕). 궁궐을  둘러 싼 성벽. 궁장(宮牆). 금성(禁城). 봉성(鳳城). 朱闕.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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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5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 7층 한상은라운지에서 각계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최덕수 고려대 교수,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 수령자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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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대상은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수여된 17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논문으로 2월 20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9일 심사위원회에서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조재곤 동국대 교수, 장영숙 상명대 교수, 한모니까 카톨릭대 교수, 김태우 외국어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령자인 유바다 박사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그간의 국제법적 연구와 만국공법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구로서 한국사와 국제법 연구자들에게 주목받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등한시해 온 당대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까지 확보하여 분석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앞으로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법적인 지위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혜영 연구원

월, 2018/07/0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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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低賃金引上

 

如何零細業(여하영세업)

店主用人難(점주용인난)

氣盡呼妻子(기진호처자)

無能固未安(무능고미안)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

 

영세한 사업은 과연 어떻겠는가

가게 주인, 사람 쓰기 쉽지 않네

기진맥진하여 妻와 자식 부르니

무능함에 대하여 정말 미안하네.

 

<時調로 改譯>

 

영세업 어떠한가 사람 쓰기 어렵다네

기운이 떨어져서 妻와 자식을 부르니

家長의 무능에 대해 정말로 미안하네.

 

*零細: 작고 가늘어 변변하지 못함.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함 *店主:

가게 주인 *用人: 사람을 씀. 또는 그 사람 *氣盡: 기운이 다해 힘이 없어짐.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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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천도)

 

凶徒爲大富(흉도위대부)

善類豈貧寒(선류기빈한)

或者云天道(혹자운천도)

牛嘲犬馬嘆(우조견마탄)

 

하늘의 道

 

흉악한 무리는 큰 富者가 되는데

착한 무리 왜 가난하고 쓸쓸한가

어떤 者가 하늘의 道를 운운하니

소는 비웃고 개와 말은 탄식한다.

 

<時調로 改譯>

 

凶徒는 大富 되는데 善類는 빈한하네

어떤 者 하늘의 道 어쩌구저쩌구하니

마침내 소는 비웃고 犬馬는 탄식한다.

 

*凶徒: 흉당(凶黨). 사납고 흉악한 무리 *大富: 큰 富者 *善類: 착한 무리 *貧寒:

살림이 가난해 집안이 쓸쓸함 *或者: 어떤 사람 *犬馬: 개와 말을 아울러 이름.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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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錢庵住持逐客乃笑吟

 

執着奚如此(집착해여차)

無非暫借錢(무비잠차전)

紅樓恒不惜(홍루항불석)

向客放揮鞭(향객방휘편)

 

崇錢庵의 住持가 나그네를 내쫓기에 웃으며 읊다

 

집착하심이 어찌 이와도 같은고

잠시 동안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妓樓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時調로 改譯>

 

집착 어찌 이런고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아가씨 술집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가련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逐客: 손님을  푸대접하여  쫓아냄  *如此: 이러함  *無非: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暫借: 잠시 동안 빌림 *借錢: 차금(借金). 돈을 꾸어 옴. 또는 그 돈

*紅樓: 기루(妓樓). 창루(娼樓). 娼妓를 두고 영업하는 집 *不惜: 아끼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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