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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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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익명 (미확인) | 수, 2019/01/02- 15:32

식민지 비망록 42

‘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터
– 메가타 재정고문의 관사는 왜 청파동 연화봉 언덕에 자리했나?

 

이순우 책임연구원

 

지난여름 92세의 나이로 숨진 김종필(金鍾泌, 1926~2018)의 죽음은 잠시 기억 속에 잠겨있던 이른바 ‘삼김시대(三金時代)’에 관한 회상을 불러 일으켰다. 김대중(金大中, 1924~2009)과 김영삼(金泳三, 1927~2015), 그리고 김종필, 이들 세 사람은 굳이 이름 석 자를 적지 않더라도 각각 DJ, YS, JP라는 애칭만으로 통용되기도 했고, 그들의 위상은 동교동(東橋洞)이니 상도동(上道洞)이니 청구동(靑丘洞)이니 하는 동네 이름조차도 자신들의 대명사로 치부될 정도였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말이 난 김에 이들이 살았던 동네의 지명유래가 궁금하여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더니 나름 흥미로운 내용들이 포착된다. 먼저 동교동은 예로부터 서울도성에서 양화진나루로 가는 대로에 걸쳐 있던 세교(細橋, 잔다리)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지명이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성부 연희면 일대가 고양군(高陽郡)으로 편입되면서 종전의 세교리 일계(一契)와 세교리 이계(二契)가 각각 서세교리(西細橋里)와 동세교리(東細橋里)로 바뀌었고, 다시 1936년 4월 1일에 이곳이 경성부로 재편입되는 과정에서 서교정(西橋町)과 동교정(東橋町)으로 명칭이 축약되었다가 해방 이후 오늘날의 서교동과 동교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상도동에 대해서는 1911년 4월 27일에 경기도 고시 제9호에 의해 시흥군 동면 상도리와 성도화리(成道化里)를 합쳐 새로운 ‘상도리’로 설정한 내용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 <1872년 지방도(규장각 소장자료)>에 포함된 「시흥현 지도(始興縣 地圖)」에 ‘상도리’ 라는 표시가 이미 들어 있는 점에 비춰 보아, 정확한 지명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조선시대 이래로 오래도록 사용한 지명이라는 사실은 명쾌하게 파악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청구동의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좀 더 복잡 미묘하다. 우선 이곳은 앞서 두 동네에 비해 연륜이 아주 짧은 것이 특징이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6호 ‘지방자치법에 의한 서울시 동 설치 조례’에 따라 새로운 동제(洞制)가 실시될 때 “신당동(新堂洞) 308-2를 기점으로 374-20을 경유 346-98에 이르는 도로 동북방의 지역과 신당동 308-2에서 금호동에 이르는 도로 이남의 지역”이 ‘청구동’으로 설정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역은 1970년 5월 18일에 이르러 법정동(法定洞)과 행정동(行政洞) 명칭을 일치시키기 위해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 ‘동장 정원 및 명칭과 관할구역 변경조례’가 제정되면서 ‘신당 제4동’으로 환원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청구동 자체로 보면 존속기간은 의외로 15년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5.16 쿠데타를 통해 중앙정보부장과 공화당 의장 등 군사정권의 권력자로 득세한 김종필에 대한 근황을 알리는 신문기사마다 거듭 “청구동 자택”이라는 수식어가 곁들여 등장하다보니 순식간에 이 동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유명세 탓인지 법률적이건 행정적이건 청구동이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관행적으로’ 청구동으로 부르는 상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이곳을 청구동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동아일보> 1946년 3월 31일자에는 「일본색 학교명(日本色 學校名), 시(市)에서 전면적으로 일소(一掃)」라는 제목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앵구(櫻ケ丘, 사쿠라가오카)의 대체어로 등장한 ‘청구’의 초기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시청 학무과(學務課)에서는 일본 색채를 일소하여 시내 국민학교 명칭을 다음과 같이 변경
하고 4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되었다.
▲ 일출(日出) → 일신(日新) ▲ 앵정(櫻井) → 영희(永禧) ▲ 앵구(櫻丘) → 청구(靑邱)
▲ 서부남자(西部男子) → 태평(太平) ▲ 북부남자(北部男子) → 소의(昭義) ▲ 죽첨(竹添)
→ 금화(金華) ▲ 마장(馬場) → 동명(東明) ▲ 삼판(三坂) → 삼광(三光) ▲ 금정(錦町)
→ 금양(錦陽) ▲ 원정(元町) → 남정(南汀) ▲ 북아현(北阿峴) → 북성(北星) ▲ 서공덕(
西孔德) → 덕창(德昌)

 

이 기사에 따르면, 일제가 패망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9월 새학기를 앞두고 그들이 이 땅에 남겨놓은 학교 시설 가운데 일본 색채가 농후한 명칭을 바로 잡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앵구 공립국민학교(櫻丘公立國民學校, 신당동 331번지; 1937년 9월 1일 앵구소학교로 개교)의 ‘앵구’에 앞 글자 하나만을 살짝 바꿔 ‘청구(靑丘)’로 개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가령 ‘일출(히노데)’이 ‘일신’으로 되고, ‘삼판(미사카)’이 ‘삼광’으로 되고, ‘금정(니시키쵸)’이 ‘금양’으로 된 것처럼 공연히 한 글자를 흔적 삼아 남겨두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완전한 일제잔재청산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앵구’라는 것은 원래 동양척식(東洋拓殖)의 직계 자회사인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朝鮮都市經營株式會社, 1931년 10월 7일 설립)가 경성부 외곽 신당리(新堂里) 지역에 개설하여 1932년 8월에 분양을 개시한 신흥주택단지에 처음 부여된 명칭이었다. 이러한 명명 자체가 일본인들이 매우 선호하는 ‘작명법’에 따른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왼쪽) 경성전기에서 제작한 ‘경성전차 및 버스안내도’에는 장충단 박문사 지역에서 성벽 동쪽으로 신흥주택지인 ‘앵구’ 정류장으로 버스 운행 노선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뻗어가는 경성전기>, 1937)(오른쪽) <경성일보> 1932년 8월 21일자에 수록된 동양척식 자회사인 조선도시경영의 ‘앵구주택지 분양광고’이다. 여기에 나오는 ‘앵구’가 곧 해방 이후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청구동’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는 셈이다.

 

이 당시에 경성부의 확장과 더불어 이른바 ‘문화주택(文化住宅)’으로 크게 붐을 이뤄 조성될 때마다 교외 지역의 주택지에는 대개 무슨 장(莊)이라거나 무슨 대(臺)라거나 하는 식의 이름이 붙여졌다. 예를 들어 연희장(延喜莊), 금화장(金華莊), 동명장(東明莊), 동산장(東山莊), 흥인장(興仁莊), 명수대(明水臺), 법덕대(法德臺), 신정대(神井臺), 쌍룡대(雙龍臺), 어대대(御代の台, 미요노다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이보다 일본풍이 훨씬 더 노골적인 것이 ‘앵구’의 사례처럼 무슨 구(丘, 언덕)라고 붙이는 방식이다. 지금은 거의 옛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한때 청파동의 들머리에 남아 있던 ‘녹구(綠ケ丘, 미도리가오카)’라는 지명도 이것과 완전히 동일한 맥락에서 창안된 명칭이었다. 이곳에 관한 흔적은 우선 ????경성일보???? 1930년 10월 5일자에 수록된 ‘한정 고상 이상적(閑靜 高尙 理想的) 신주택지 분양’ 광고에 그 단서가 포착된다.

 

1. 본주택 분양지는 민자작가 별저(閔子爵家 別邸)로서 소유했던 장소이며 경성시 중에 있어서 주택지로는 절대로 다른 곳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이상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으로써 금회 양수하여 경영하게 된 것입니다.
2. 위치와 교통 : 청엽정 1정목에 있으며 약도(略圖)에 보이는 것과 같이 전차(電車) 오카자키쵸(岡崎町) 정류장에서 경성역저탄장(京城驛貯炭場) 앞의 다리를 건너 똑바로 50칸(間) 내외이며, 이 거리는 겨우 도보로 3분 사이에 주택지의 입구에 도달하며, 자동차의 출입이 자유롭고 전차도 실로 가까워서 정말로 교통이 편리합니다.
3. 지세(地勢) : 이곳은 서북으로 구릉을 끼고 동남을 향해 경사져 있습니다. 구역 내 도처에 송림과 기타 수목이 많고 한정 고상하며 자연의 풍치는 이곳의 자랑입니다.
4. 조망(眺望) : 전면으로는 경성역, 남산의 취록(翠綠), 조선신궁을 우러러보며, 언덕 위의 송림을 유원지로 설비하였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경성부청, 총독부, 창경원 방향을 비롯하여 성내(城內) 전 시가지를 조망하며, 남쪽으로는 용산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한 남산을 손짓하여 부를 만큼 가까이 두어 감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5. 기후와 위생 : 배면(背面) 즉, 서북에 구릉을 끼고 있으므로 바람을 막아주며, 아침 해가 일찍부터 빛나고 종일 햇빛이 차단되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겨울철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난방의 필요가 없을 만큼 햇살을 누릴 수 있고, 여름에는 동남의 부드러운 바람을 받아 더위를 잊게 되어 위생상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6. 시설 : 주택지 내의 도로, 배수, 돌축대, 기타의 공사는 모두 유감이 없으며, 다리가 있는 곳에서 똑바로 지내(地內)로 통하는 도로도 넓혀져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민자작’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장관(李王職長官)을 지낸 민병석(閔丙奭, 1858~1940)자작을 말한다. 그는 1908년 6월에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에 임용되어 경술국치 당시에도 그 자리에 머물면서 이른바 ‘합병조약’의 가결에 동의한 경술국적(庚戌國賊)의 1인으로 지탄을 받는 인물이다. 1910년 12월 30일에 공포된 황실령 제34호 「이왕직 관제」에 따라 이듬해 2월 1일 궁내부대신에서 그대로 이왕직장관으로 전환 임명된 이후 1919년 10월까지 장기간 재임하였다. 나중에 그는 중추원 고문(1925.7), 조선귀족회 회장(1939.7), 중추원 부의장(1939.10) 등을 지내면서 한 평생 친일귀족의 길을 오롯이 걷다가 삶을 마감했다.

<매일신보> 1940년 8월 10일자에는 이왕직장관을 지낸 친일귀족 민병석의 부고광고가 실려 있다.

 

역대 이왕직장관 임면 연혁

<경성일보> 1930년 10월 5일자에 처음 수록된 ‘청엽정 1정목 22번지’ 주택지 분양광고이다. 민병석 별장 터에 조성된 이 주택지는 이듬해부터 구역확장과 더불어 ‘녹구(미도리가오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것으로 나타난다.

 

위의 광고문안은 바로 그가 소유했던 ‘청엽정(靑葉町, 아오바쵸) 1정목’ 즉, 지금의 ‘청파동 1가’ 22번지 일대의 별저(別邸) 터가 주택지로 변신하여 1구좌당 100평(坪) 내외의 크기로 분양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년가량이 지나 ????경성일보???? 1931년 8월 27일자에 수록된 새로운 광고문안을 보면, ‘녹구(미도리가오카) 신주택지 제1호지’라는 명칭과 더불어 전체면적이 약 3만 평으로 커져 있고, 주택지경영사무소의 소재지도 종래의 ‘청엽정 1정목 22번지’에서 ‘청엽정 1정목 1번지’로 변경된 사실이 눈에 띈다.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 (1929)에 나타난 민병석 별장 터(청엽정 1정목 22번지)의 위치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그 후면 언덕에 자리한 1번지, 2번지, 8번지, 20번지 등을 일괄한 것이 ‘녹구(미도리가오카, 청엽정 1정목 1번지로 지번통합) 주택지’다.

 

<경성부관내지적목록>에 수록된 해당 토지의 소유관계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민병석의 별장 터만을 대상으로 했다가 점차 그 주변에 있던 민병석과 민형기(閔亨基) 등 민씨 일가 소유지 일체를 포괄하여 ‘청엽정 1정목 1번지’로 지번을 통합한 대규모 주택지로 변모된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등장한 ‘미도리가오카’ 주택지는 ‘앵구(사쿠라가오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래지 않아 버스정류장의 명칭에도 등장할 정도로 이 일대의 대표 지명으로 크게 부각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미도리가오카’ 주택지(청파동 1가 1번지)의 원 소유주 관계 현황

경성전기에서 제작한 ‘경성전차 및 버스안내도’에는 경성역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버스노선에 ‘녹구(미도리가오카)’ 정류장의 위치가 잘 표시되어 있다. (<뻗어가는 경성전기>, 1937)

 

(왼쪽)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 터 일대에 조성된 ‘녹구(미도리가오카)’ 주택지의 전경이다. (<뻗어가는 경성전기>, 1937) (오른쪽) 옛 녹구(미도리가오카) 주택지인 ‘청파동 1가 1번지’ 구역에는 지금도 일제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돌축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925년 을축대홍수(乙丑大洪水) 당시 용산 한강변에 포진한 철도국관사가 막대한 침수피해를 입게 되자 이를 근원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고지대로 관사를 이축하려는 계획이 추진된 바 있었는데, 이때 바로 이 민병석 별장 터가 그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매일신보???? 1925년 9월 13일자에 수록된 「철도국관사(鐵道局官舍) 지대확정(地垈確定), 민병석 씨의 소유지대로」 제하의 기사가 남아 있다.

 

용산 한강통 부근에 있는 철도국관사에는 매년 여름만 되어 비가 오기 시작하면 전기 관사에 대개 물이 들어 이에 대한 피해와 곤란이 막심하므로 그전부터 철도 당국자들은 전기 관사 이전 문제로 고려를 하여 오던 중 요전 대홍수 때에는 더욱 물난리를 당하였으므로 이번에는 단연코 이전키로 결정이 되어 그간 관사 신축지를 선정하기에 매우 고심을 하던 중 시내 청엽정(靑葉町) 1정목 22번지 자작 민병석 씨의 소유로 있는 대지(垈地) 1만 8천여 평을 사기로 내정을 하고 목하 철도국 당국자는 민자작에게 교섭중이라는데 전기 집터가 원만히 결정만 되면 금년 가을 내로 신축에 착수할 터이라더라.

 

이 당시 철도국관사가 실제로 이전지로 확정한 곳은 효창원 구역이었다. 이에 따라 이왕직 소유지와 국유지였던 금정(錦町, 지금의 효창동) 4번지, 6번지 및 199번지(옛 만리창 터) 일대에는 1926년과 1928년 시기에 용산에 있던 철도국관사 200여 호가 옮겨와 이곳에 건설된 바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가 당초 예정한 대로 민병석의 별장 터에 철도국관사가 들어섰더라면 우리가 아는 청파동 일대는 훨씬 더 별스러운 풍경을 자아내는 공간으로 변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민병석의 별장 터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은 이곳이 바로 러일전쟁시기 일본의 국권침탈이 가속화하던 때 재정고문(財政顧問)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 1853~1926)의 처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1904년 8월 22일에 맺은 「제1차 한일협
약(협정서)」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추천하는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서 한국정부에 용빙(傭聘)하고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할 것”이라고 정해진 바 있었다. 이때 일본 대장성 메가타 주세국장(主稅局長)이 파견되어 그해 10월 15일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으로 용빙계약이 이뤄졌고, 1905년 9월에는 실무기관으로 정부재정고문본부(政府財政顧問本部)가 설치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태에서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의 결과로 통감부 관제가 공포되면서 “한국정부의 용빙에 관계된 것을 감독”하는 권한이 통감에게 주어졌고, 나아가 1907년 3월 5일에는 「통감부 재정감사청 관제(統監府 財政監査廳 官制)」가 제정되어 한국재정고문은 재정감사장관이 되는 동시에 재정고문본부는 형식상 통감부 편제로 흡수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재정고문의 자리에 올라 경제침탈에 앞장선 메가타 다네타로의 모습을 담은 동상이다. 이 조형물은 1929년 10월 탑골공원에 처음 제막되었다가 1935년 9월 조선금융조합연합회(지금의 농협중앙회) 앞뜰로 옮겨졌고, 다시 1943년 8월 금속물 공출로 사라진다. (<男爵目賀田種太郞>, 1938)

 

그러나 헤이그특사파견과 고종퇴위사건의 여파로 1907년 7월 24일에 체결이 강요된 「한일신협약(정미조약)」에 포함된 “(제7조) 1904년 8월 22일 조인한 한일협약 제1항(재정고문관련)은 이를 폐지할 것”이라는 구절에 따라 재정고문이 폐관(廢官)되자 당연직 기구였던 재정감사청도 연계되어 설치 이후 반년 남짓 만에 존속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이에 따라 메가다 재정고문이 물러나고, 이른바 ‘차관정치(次官政治)’가 개시되면서 신설된 통감부 참여관의 신분으로 아라이 겐타로(荒井賢太郞, 1863~1938)가 1907년 9월 7일 한국정부 탁지부차관(度支部次官)으로 임명되어 그의 역할을 승계하였다.
메가타 다네타로가 재정고문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이른바 ‘재정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정부재정과 황실재정을 분리한다는 명분으로 황실재산의 국유화가 시도되었고, 또한 ‘화폐정리사업’의 실시로 일본화폐의 유통이 허용되고 일본제일은행으로 하여금 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차지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징세제도의 개편과 토지에 대한 기초조사 등 다양한 경제침탈이 노골화하면서 장차 식민지배가 용이하도록 기반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이러한 일들을 벌인 당사자인 메가타가 거처했던 곳이 바로 청파동 연화봉 언덕에 자리한 민병석의 별장 터였던 것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따르면 당초에 메가타 재정고문의 관사는 독일공사관(獨逸公使館, 남창동 8번지)을 사들여 이를 사용할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 1904년 11월 9일자에 수록된 「고문 관사」 제하의 기사는 “탁지고문관 메가타 씨의 관사는 아직 확정치는 못하였으되 위선(爲先) 남문 밖 연화봉 민판서 산정으로 택정하였다더라”는 소식을 알려주고 있다. 훨씬 나중에 이곳이 남산과 용산 일대의 전망이 빼어난 신흥주택지로 변신하는 바람에 그러한 흔적이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이곳이 한때 재정고문이라는 이름의 일본인 관리가 터를 잡고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집어삼킬 궁리를 하던 국권침탈의 핵심 배후공간이었다는 점은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될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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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시즌2 #6-1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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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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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2/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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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4번째 요청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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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련 예산 없어…상황 진척되지 않아

0209-2

▲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 한국인 유골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상황을 진척시켰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도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시민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 곁으로’의 활동가인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가 태평양전쟁에 군인·군속으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한국인 유골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2014년 이후 네번째다. 유골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최소 2만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법’을 만들어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몰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상을 ‘우리 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한정해 한반도 출신을 배제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 유골도 찾으라는 요구를 계속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는 유골에 대해 디엔에이(DNA) 감정과 함께 안정동위체 감정을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안정동위체 감정은 방사기원동위원소를 활용해 유골 주인이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신원 확인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라뿐 아니라 출신 지역까지 가려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필리핀에서 수집한 유골 중 일본군 유골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정동위체 검사 도입 연구비를 내년 예산에 500만엔을 책정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원호국 사무과장 요시다 가즈로는 “안정동위체 감정은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안정동위체 검사를 한국인 유골 구별에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회의원들도 “‘일본인 유골은 일본인 품에, 한국인 유골은 한국인 가족 품에’가 맞다”고 말했지만, 요시다 과장은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 제안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 예산도 책정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일본 정부에 오키나와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유족 유전자 자료를 줄 테니 일본이 한국인 유골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며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유골 발굴에 참여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골 반환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관련 유족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50명을 했는데 사업비 2천만원은 사할린 유골 반환 사업에서 절약한 예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8-02-08>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인 유골 반환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

금, 2018/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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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대통령이 우리 최고의 무역흑자국인데 사드로 무역마찰중인 중국을 방문 힘든 외교협상 끝에

우리헌법에도 민족간 전쟁을 만들수있는 행위는 불법이라 명시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적시해놓았듯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큰성과를 받아왔고 대중무역도 원상태로 돌아가며

 

이명박그네가 망쳐논 남북관계를 다시 평화적 한반도로 바꿔놓고있는데 친일매국노 후예당인 한국당등 야당이

사사건건 트집잡고

북한역시 핵무기는 미국견제용이지 한국공격용이 아니라고 밝혀도 올림픽까지 북풍조작 안보팔며 이념조작하는데

 

요번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로 평화통일을 이룬 독일이 자기들 하키팀 출전못하더라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의 평화통일위한 한국의 남북단일팀 결성위해 양보한것인데도

친일매국노가 만든 한국당등 친일파가 변신한 가짜우익 가짜보수들이라 평화통일 방해위한 반국가 반민족 매국행위하는것으로

 

자기민족을 아끼는 민족주의와 자기국가를 최고로 사랑하고 타국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진짜 우익보수정신인데

친일파가 변신한것들이라 일본에 충성하다 미국에 충성하며 미국일본편들어 조국강제분단을 돕고 애국국민을 학살한것으로

 

우릴침략해 36년간 우리민족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아녀자 수십만명을 위안부로 끌고가 학살했으며

강제동원과 엄청난 우리재산 약탈하고도 피해배상도 않하고 진정한 사과도 없이 우리땅인 독도를 넘보듯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이 세계에도 로비하여 독도를 일본땅이라 동해를 일본해라고 세계인을 속이는것이며

미국과 짜고 올림픽주관사인 미국NBC가 한국을 일본식민지로 근대화됐다고 세계에 거짓방송케하듯이

한국내 뉴라이트에게 간첩처럼 지원금주며 매국노를 양성해 일베나 뉴라이트교수나 선생 또 정치언론인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그것들이 일본침략을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미화한 역사책도 만들고

미국 역시 북한이나 중국등지서 죄짓고 도망온 탈북자등 돈주면 동원되는 가짜보수들에게 돈주고 냉전조작시키니

미국일본서 돈받고 냉전조작과 데모하는 것들도 미국 일본 간첩혐의로 처벌해야할것인데 그 간첩같은 매국노들이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잘한짓이라고 거짓말하며 평등한 동맹관계가 아닌데도 한미동맹이 최고라고 떠들고있지만

 

미국지시가 있어도 한미일 삼국군사동맹을 반대한다는 역사적인 문대통령의 발언으로 중국도 감동시켜 한중관계가 좋아지는데

야당대표란것이 아베에게 찾아가 머리조아리며 굴욕적 위안부나 군사협정을 일본편드는 친일파 변신 더러운것들로

요번 일본의 내정간섭이나 한반도기에 독도표기 항의와 미국NBC 망언방송에 조용하고 북한단일팀이나 북한응원단 흠집잡기에 혈안이며

뉴라이트 이명박그네에 충성하던 친일파가 만든 조중동과 문화와 연합 경제신문등등 쓰레기언론과 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과거 미국옆 쿠바가 쏘련미사일기지를 설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돼었는데도

박근혜가 전쟁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탄두를 한국인 죽어도 한국상공서 터트린다고 사드미사일기지를 한국에 들여와

중국이 사드 레이다로 중국 감시와 미사일로 중국을 폭격할수있다고 반대하고 러시아도 반대해

 

전쟁시 중국 러시아가 폭격 일순위가 사드기지라했고 무역거래와 관광객 끊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것도 문통이 해결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가짜우익 보수당과 종편과 신문이 문대통령 까대기에 총력기울이며

이명박 똘마니인 간철수는 본색을 드러내며 보수당과 통합한다고 호남을 배반하며 이명박 지시로 문대통령을 비난하듯이
이명박그네가 감옥안가려고 마지막 발악으로 세금도둑질한 돈풀어 한국당등에 정치자금주니

정치보복이라 선동하며  세금도둑을 편드는 더러운 정치꾼들이며

이것들이 평화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며 미국의 선제공격론을 부추기고 있지만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핵무기말고도 휴전선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공격으로  6.25때도 삼백만명이 숨졌지만

지금은 수천만명이 숨지거나 멸망할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반국가 반민족 매국노들이란걸 잘나타내준 작태이므로
이에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과 요즘 북한핵사태와 애국애족심이 투철한 외국과 다르게 미국 일본에 충성하는 한국의 가짜우익 가짜보수들과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보다는 남북간 이간질시키며 친일파가 만든 한국당등 수구세력이용 냉전조장하는 이유도 집중 조명해보자

 

1994년 제네바에서 영변핵발전소로 핵무기 만들수있다하여 가동중단 대신 미국일본이 중유발전소 지어주고 중유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이 영변핵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핑계를 대고 제네바협정을 깨트린후 북한에 선제공격 위협하여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짓고 핵무기만들게 유도한게 음흉한 미국과 일본으로

북한핵만드니 미국은 한반도서 전쟁날것처럼 위협하며 한국에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많이 팔아먹었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인 한국주둔비용도 더뜯어갔으며 서해미군기지와 일본서 쫏겨나는 해군기지도 우리세금으로 짓고
일본은 전범국가라 군대도 못갖고 전쟁도 할수없는 나라인데 미국과 짜고 북한핵 핑계대고 침략할수있게 바꾸는중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 짜고 구상중인 한미일 삼국 연합군사동맹이 과거에 비슷한 매국적인 전략협상이 있었는데

박정희가 1963년 불법쿠테타 성공후 일본가서 만주총통으로 직속상관이었던 전범 기시 수상에게 경례하며

우리땅이던 독도 앞바다를 일본요구대로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최악질 매국노로

당시 미군과 일본군 또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지금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 박정희 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자국보호란 핑계로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이렇게 한국인 생명 무시하는 미국이 1905년에도 일본에게 조선을 식민지만드는데 적극 협조한 더러운 미국으로
해방후 독일처럼 전범일본을 갈라야하는데 731부대 살상무기정보를 준 살인마 731부대장도 전범처리 않하듯이

일본이 조선등지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를 뇌물로 미국에주고 부탁 일왕도 전범처리않고 조선을 일본대신 강제분단시켜

당시 독립군과 애국국민과 제주도민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이승만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후
정부와 군경 요직에 기용 강제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와 애국국민과 제주도민

또 독립군을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 암살과 학살한것인데 사실은 조국분단 반대자들이 진짜 우익 보수인데

 

미국과 일본과 매국노들땜 강제분단되어 분단때문에 300만명이 숨진 6.25비극과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것으로

일본은 6.25전쟁때 전쟁물자 판매로 엄청난 소득올려 지금도 남북간 전쟁을 부추기는것이며
미국은 우리세금으로 한국주둔 미국세력 확장하고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비싸게 팔아먹듯이 한국에 엄청난 피해준것으로

그래서 얼마전 양심적인 주한미국대사 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이

 

전쟁나서 폐허로 약소국이 안돼고 한국이 독일처럼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되면

미국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책임을 물을것이며 친일매국노 박정희 이용해 침략배상을 제대로 않한 일본이
침략배상까지 독일처럼 철저히 배상할까봐 죽어라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더러운 미국 일본이고
60억불 부정축재한 박정희와 박근혜 서방인 최태민과 수십조 도둑질한 최순실 박근혜와

수백조원 나라돈 날리고 수십조 뇌물받은 이명박도
뉴라이트 소속이라 미국 일본 편들어 남북간 냉전만드는것으로 남북간 자유왕래와 교류를 막으려고 금강산 관광도 깨고

[이상한 관광객 한명이 잠자는 밤중에 경계선 철책을 넘어 사살됨] 업주들 이익 엄청 발생하는 개성공단도 깨고

휴전선이 불확실해 마찰이 잦아 안전위해 만든 서해평화 어업협정도 깨트린것이다

 

(박정희 불법집권기간은 저개발 아시아가 선진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이 다발전할때인데도

당시 장면정부가 경제개발계획 세워놓은걸 설계도 보고서 따라했으며 기업과 짜고 근로자 최저임금으로 착취후

경제살려야할 세금 60억불 박정희가 도둑질해 당시 북한 필리핀 싱가폴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등등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경제 훨씬못살린거 세계경제발전도표에 다 나와있으며

 

박정희가 60억불 도둑질해 스위스계좌로 빼돌린건 기업서 돈뜯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대신 아들이 미국 프레이져 국회청문회가서 증언했듯이

 

만주서 독립군들 많이 죽인죄로 해방후 처형이 무서워 도망다니던 박정희는 이승만이 일본장교 모집하자 국군에 입대후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맡아 간첩질하였고 나중에 체포되자 조사관이었던 만주 일본장교 매국노인 백선엽에게

군대내 공산조직과 자기형 친구까지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였고 백선엽이 목숨살려주고 군대 복직까지 시켜

 

조카에게 마음준 김종필시켜 불법쿠테타 계획후 본인은 실패하면 튀려고 육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변장후 기다리다

쿠테타 성공했다는 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로 덕분에 백선엽이 인천서 박정희믿고 불법을 마구 저질렀고

박근혜는 자기멋대로 북한방문해 김일성 김정일을 칭송과 선물바치고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생가에도 묵념한 진짜 빨갱이 가족이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해 전국민이 일본을 비난하고 성토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을 비난하였고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지시로 일본함정을 내쫏앗으며

 

또 세계경제인들이 한국방문하였을때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가 참석한후 한국경제발전을 망치려고 경제인들에게

“한국의 좌파정권에 경제협력이나 한국에 투자하지말라”고 이념조작하며 어이없는 매국발언까지한 가짜보수 진짜 매국노들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등 한국당 전신이 세금도둑질과 외국에 빚을 엄청만들어 IMF만든걸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살렸듯이

현재도 이명박그네가 나라빚 엄청만들고 정경유착 세금도둑질로 망쳐논 한국경제를 살리려하는데

마치 문재인정권이 경제망친것처럼 트집잡으며 사사건건 시비걸고 유언비어퍼트리며 발목잡는것이다 )

 

화, 2018/02/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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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솔직히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북한에서 보내오는 진심이다.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북한에 대한 나름의 편견과 오해가 많이 있는데, 정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관료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하기로 한 것은 꼭 하고, 할 말 안 할말 꼭꼭 다 하고, 속이 시원하다.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강대국한테는 깨갱하는게 다반산데
북한은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들이 속이 시원할 정도로 국민들의 긍지를 높여주는 것 같다.

이런 면은 문재인 대통령님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적폐놈들 땜시롱 어렵겠는 부분도 있겠는데, 가끔 실망할때가 많이 있으니!)

북한에선 이미 남한의 평창올림픽을 마치 자신의 행사인듯 온갖정성과 진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언론보도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심지어 종편이나 조중동 쓰레기 언론에서도 그런 상황이 보인다.

우리도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에 많이 많이 참가하면 어떨까?
북한에서 이번에 300명이 덜 왔는데, 우리는 300명이상 방북을 하면 정말 보기 좋겠다!

이번처럼 찌질하게 비용문제 처리 같은 얘기는 안나오게…(아휴 쪽팔려…독도 표기도 못하면서…)

아무튼 인정할 것은 인정~!! 김정은 위원장 겁나 멋찌다~!!

화, 2018/02/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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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네~외세는 물러가라~

화, 2018/02/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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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우리민족 역사에 우리가 이렇게 강대한적이 있었던가!!
북한에서 온갖 모진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핵무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게 사용된다는 것을 평창올림픽을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북한에서 핵무력은 남한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진정성 있게 생각된다.

실제 아베와 펜스가 평창에서 꼼짝을 못하는 모습에서
주권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지만 정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남과북이 하나로 뭉치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대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만들어낸 핵무력이 우리민족의 핵으로 될 수 있게
남과 북이 계속해서 힘을 합치길 소원해본다.

왜적을 목숨으로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지켜냈던 수많은 선조들과 이름난 이순신장군 을지문덕장군 강감찬 장군들도 하늘에서나마 크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화, 2018/02/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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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징병 찬양 글 쓰고 징병제 감사대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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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 김성수. [사진 위키피디아]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지 56년만이다.

이는 대법원이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위가 인정되면서, 정부는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취소해야 하는 상훈법에 따라 국가보훈처 요청으로 서훈 취소 절차를 밟아 이날 서훈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인촌의 서훈이 취소되면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은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하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김재호 사장과 인촌기념회 등은 2010년 “인촌의 활동에 관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일제가 조직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강제 동원된 것일 뿐”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1, 2심은 “오로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친일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2018-02-13> 뷰스앤뉴스

기사원문: ‘친일’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서훈 박탈

※관련기사

☞한겨레: ‘친일행위’ 동아일보 김성수, 건국공로훈장 서훈 박탈

☞뉴스1: ‘친일행위’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훈장 박탈

☞경향신문: 인촌 김성수, 서훈 56년 만에 박탈

☞한국일보: 인촌 김성수 훈장 56년 만에 박탈

☞서울경제: ‘친일 행위 인정’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

※참고기사

한겨레21: 김성수 서훈은 치탈될 것인가 (2005.07.01)

화, 2018/02/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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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화성=연합뉴스) 경기 화성시는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만든 독립운동 자료집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자료집. 2018.2.12 [화성시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28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집은 화성시가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콘텐츠발굴 사업에 의해 만든 것으로, , 시로부터 위탁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3년부터 3년간 화성지역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11명을 인터뷰해 4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송산 지역 3.1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홍면옥 선생의 후손 고(故) 홍진후씨, 오산노농학원 적화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른 변기재 선생의 후손 변주현·변순용씨, 장안·우정지역 3.1운동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파괴와 가와바다 순사 처단에 앞장섰던 차경규 선생의 후손 차진모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홍면옥 선생의 출옥기념 사진, 변기재 선생의 친필엽서 등 독립운동 자료 사진도 다수 발굴됐다.

화성시는 자료집을 전국 국공립대학의 도서관·박물관·연구소, 화성시 관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화성지역 독립운동 인물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인터뷰 자료로 2권의 자료집을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날 접견실에서 자료집에 참여한 후손들과 안소헌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노고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그분들의 공훈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 자료집 발간

※관련기사

☞세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신문: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아시아투데이: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 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뉴스통신: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아시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화, 2018/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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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수원시

연화장

측백실

전달자호영

총무국장 심재욱

수원시 영통구 하동 25

자료사진은 경남민언련

사랑의하모니!

수, 2018/02/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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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에 위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출마자들이 친일세력 후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데…

알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목, 2018/02/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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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임실호국원으로 이사가심을   위로 드림니다.

이수미!

김인순!

명곡을  생각하며,

총동문화체육대회에서는

ㄴㅓ의 입상  볼수 익게째.

(너거한테신세만지고   마산의료원의  그국장동상 오마이 한테도  몬디다 바따.)

 

 

일, 2018/02/18-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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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어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2일 간에는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제2학살지에 대한 4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8명의 유해와 안경, 탄두, 버클 등 3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네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산86-1번지에서 제5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5차 발굴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발굴조사 예정지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폐금광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인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최소 3명의 유해와 M1탄피 1점, 단추 등 유품을 발견하였다.

이번 5차 발굴조사지역인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없이 희생되었고, 특히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한 2014년경부터 많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의 위령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되어 왔다. 특히 이번 5차 발굴조사 예정지인 아산시 역시 2015년에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아산시 예산으로 진행되어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2016년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20대 국회는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심사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

【붙임】제5차 유해발굴조사(충남 아산시 배방읍) 자료집. 끝.

월, 2018/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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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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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2/1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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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youtu.be/UaxKw9Ndq34

화, 2018/0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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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hfv…

화, 2018/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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