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과 그리고 전세계와 무역전면전을 시작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 사람, 관세에만 집착하는 관세맨(Tariff Man)은 무식하고, 변덕스러운 데다가 망상에 젖어있다.
왜 이 모든 것을 한 사람 때문이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2016년 미국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 , 이제 대중이 세계화에 격렬히 반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것에 비해 지난 2년여 간의 반발은 규모도 작고 피상적 이었다.
도날드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국제협정 탈퇴위협을 지지하는 두터운 지지층은 대체 어디 있나? 큰 기업들은 무역전쟁 전망만 나와도 질색한다.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트럼프 방식의 무역보호주의는 혜택층인 노동계조차 결집 시키지 못했다.
그 와중에 해외무역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계속 무역을 비판하는 자들은 확고한 정책신념보다는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덕스런 편견을 고수하는 듯하다. 실제로 2016년 대선기간, 자칭 공화당인 트럼프 지지파는 무역협정에 찬성했다가 반대했다가, 트럼프가 무역협상을 하는 듯 하자 다시 찬성하며 갈팡질팡했다. (사실 미국은 언제나 동아시아 구가들과 무역전쟁 중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강력한 지지층도 없는데 우리는 왜 무역전쟁 직전까지 치달은 것인가? 한마디로 미국의 무역법 탓이다.
과거 미국의회는 관세법안에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혜택을 가득 집어넣었고, 이는 미국의 경제와 외교 모두에 파괴적 영향을 끼쳤다. 이에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다른 국가와의 무역협상은 행정부가 담당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의회가 투표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후 세계무역기구WTO를 탄생시키며 글로벌 협상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의 무역정책 입안자들은 이윽고 위기 시에는 이러한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유사시 외부의 압박을 완화할 방도가 필요했고, 무역법을 통해 특정 상황에서 새로운 입법절차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여기서 특정상황이란 주로 국가안보를 보호하거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항하거나, 급격한 해외경쟁에 직면한 산업에 조정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무역법은 부패하고 무책임한 의회의 해악을 억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무역에 관한 상당한 재량권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지난80여 년간 문제없이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이 부패하고 무책임한 경우는 생각을 못했다. 현재 무역전쟁을 일으키려고 안달이 난 것은 트럼프 하나인 듯 하지만, 그가 무역에 대해 사실상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트럼프는 이 권한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걸까? 협상을 시도하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역시장에서 그는 그저 대책없는 반항아다.
그는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고 선언하면서도 관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관세는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다. 관세는 미국의소비자에게부과되는세금이다.
거래를 할 때 트럼프는 본질이 아니라 그저 “승리”를 선포할 수 있는 지에만 신경을 쓰는 듯 하다. 그는NAFTA를 대신할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 출범을 주장해왔으나, 실제 들여다 보면 기존의 NAFTA를 아주 조금 수정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간 수많은 영역에서 드러난 그의 국제외교적 무능력이 무역협상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주에는 중국과 광범위한 무역합의를 도출했다고 밝혔지만, 곧이어J.P. Morgan은 고객보고서를 통해 트럼프의 주장은 “완전히 날조되었거나 심각하게 과장된 것”이라고 평했다.
금주 초 투자자들의 깨달음과 함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앞서 말했듯, 기업은 진심으로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한가지 분명히 해두자. 중국은 세계경제의 훌륭한 참여자는 확실히 아니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부정행위를 일삼고 있으며, 중국기업들은 기술을 빼내어 간다. 그러므로 무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이는 중국의 부정행위로 고통받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실행되어야 하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역정책의 기본도 모르고, 공격적으로 모두를 들쑤시며 (캐나다산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해 국가안보 를보호한다? 진심인가?), 미팅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차 정직하게 말할 수 없는 자와 누가 한 배를 타겠는가.
불행하게도 그런 자가 지금 미국의 수장이고, 그가 자제하도록 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세계무역의 미래는 도날드 트럼프의 의식흐름에 달려있는 셈이니 참으로 불편한 노릇이다.
빅터 차가 북한에 대한 이른바 ‘코피(bloody nose)’ 타격에 관해 우려를 표명한 것 때문에 주한 미국 대사 내정이 철회됐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빅터 차(Victor Cha)가 트럼프 백악관과의 논의에서, 북한에 대한 이른바 “코피(bloody nose)” 타격에 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그 결과 주한 미국 대사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사설이 한국 주류 언론을 도배하여 왔다.
그러나 지극히 기본적인 조사만 해 보아도 이런 설명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드러난다. 또한 빅터 차가 세련되고 신망 높은 북한 전문가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우선 그는 지난 1년간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미국이 먼저 도발 당하지 않더라도 북한을 (핵무기를 포함하여) 공격할 수 있다고 트럼프가 공언하고, 자신의 외교 방식에 따라 여러 조치를 취하면서 국무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대다수 고위 외교관의 사직 혹은 해고를 불러왔던 지난 1년간 말이다. 또한 그는 트럼프가 내뱉은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발언과 법무부 권한의 불법적 행사에 관해서도 침묵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도록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의 중대성을 따져보도록 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여타 대사직도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상 동아시아와 세계 주요국의 대사직은 채워졌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거의 매주 북한을 언급하며 이를 가장 중요한 안보 이슈라고 말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례함이 명백하다.
대사를 임명하지 않았음은 물론 상원 외교위원회의 지명 절차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모욕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불가사의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모독 행위에 침묵하고 있다. 한국 주권을 소리 높여 옹호해야 할 보수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보를 공격한다.
에드윈 모건(Edwin Morgan)을 워싱턴으로 돌려보낸 이래, 한국에 미국 대사가 이렇게 오랜 기간 부재했던 적이 없었다.
잠깐! 에드윈 모건이 누구인가?
이전에 미국 대사의 교체가 이렇게까지 지연되었던 경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합병되는 상황을 외면하고 엘리후 루트(Elihu Root) 국무장관에게 명령하여 1905년 11월 24일 에드윈 모건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철수하여 미국으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이다. 이후 차기 미국 대사로 한국에 부임한 사람은 존 무치오(John Muccio)였다. 그로부터 45년 후의 일이다!
이번에는 한국이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미국과의 관계는 명백하게 격하되었다. 한국을 참으로 정중한 방식으로 박대하고,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며, 심지어는 한국이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미국의 안보정책을 따르라고 요구까지 하는데도 충실한 동맹국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되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코리아 패싱”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번드르르한 언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대사직을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빅터 차를 외면한 배후는 무엇인가?
빅터 차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 담당 디렉터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을 많이 알렸다.
이 상황에 대한 가장 섬뜩한 설명은 군부의 어떤 파벌이, 누가 어떤 생각을 하건, 군사 충돌을 강제하려고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이 절차를 공개적인 논의에 부쳐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것이 불가피한 결론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설명은 트럼프를 반대하는 행정부 안의 누군가가, 트럼프에게서 물러나도록 할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빅터 차에게 전달했고 이에 따라 후보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전체의 군사화 추세
큰 틀에서 보자면, 빅터 차의 지명 실패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민간 통제가 끝났음을 의미하며, 이는 연방정부 전체의 군사화라는 커다란 추세의 일부이다.
실제로 외교의 군사화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및 여타 지역에서 상당 기간 진행되어 왔다. 중동 주요국의 미국 대사들이 연회에 사용할 새우를 튀길지 아니면 삶을지를 제외하고는 발언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트럼프 내각과 연방정부에 임명된 전례 없이 많은 숫자의 전직 군인을 통해서 군사화 과정이 최고점에 이르렀음을 목도하고 있다. 예컨대 연방정부의 경우 육군 장군 출신의 마크 인치(Mark Inch)가 연방교도국(Federal Bureau of Prisons)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11월 미국 최고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장으로 해병대 장군 출신의 존 알렌(John Allen)이 임명된 것을 보라. 브루킹스연구소의 전임 소장은 스트로브 탤벗(Strobe Talbott)으로, 그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유능한 민간인이었다. 탤벗의 전임 소장은 유능한 외교관이었던 마이클 아마코스트(Michael Armacost)였다.
빅터 차가 민간의 통제를 옹호한다거나, 미국 헌법과 유엔 헌장을 존중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다수의 불법행위를 거리낌 없이 외면했고, 그 당시부터 북한이 합의를 붕괴시킨 주요 원인 제공자라는 소설을 퍼뜨렸다.
“있을 수 없는 국가 : 북한의 과거와 미래(The Impossible State: North Korea, Past and Future)” 등 빅터 차의 저서들은 북한이 다른 어떤 곳의 어떤 국가와도 다르다고 시사하면서 북한에 관한 공상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노골적으로 환원주의적 관점은 아닐지라도 재미있는 공상과학소설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다.
더욱이 지난 15년에 걸친 빅터 차의 승승장구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위상 하락과 분리할 수 없다.
이 연구소는 한때 국제관계 분야에서 지극히 유용한 정보의 제공자였지만, 이후 국가 기능과 외교 및 안보의 민영화를 관리 감독하는 컨설팅 회사로 축소되었다.
12년 전에는 필자 같은 아웃사이더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발표자로 초대되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연구소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었다.
미국 외교정책의 두 거물이 상호작용 함으로써 균형이 이루어졌다.
한편에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있었다. 키신저는 외교와 안보를 사기업화 함으로써 거대한 부를 일군 인물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를 활용하여 자신의 키신저 협회(Kissinger and Associates)로 계약을 빨아들였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냉소적인 정치인 중 하나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친분을 통해 권력, 돈, 더 많은 돈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헨리 키신저(왼쪽)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이제 국가 기능과 외교 및 안보의 민영화를 관리 감독하는 컨설팅 회사로 축소돼버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분명 개방적이었지만, 자신을 학자이자 공복으로 여겼고 부나 좇는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필자가 글을 통해 브레진스키를 옹호할 때면, 일단의 사람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대실패를 설계한 사람이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응징했던 완고한 냉전의 선봉장으로 브레진스키를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였다.
브레진스키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필자의 경험은 대단히 다른 것이었다. 브레진스키가 정치적 핍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굳이 나서는 일을 여러 차례 목격했고, 이란과의 전쟁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보았다.
안보정책에서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관한 필자의 제안에 대해 브레진스키가 여러 차례 세세한 내용의 답장을 써 보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또한 진지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다가서려고 했다.
브레진스키가 병든 이후 그리고 작년에 작고한 이후,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엄청난 추락을 경험했다. 군사 분야 계약자들과 외국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점차 주도하게 되었다. 나아가 연방정부의 안보 및 외교 기능이 이른바 사실상 정치 컨설팅회사의 외주에 점차 의존하게 되었다.
필자는 가끔, 쏟아지는 정책적 혼선의 와중에 트럼프가 부상하게 된 요인이 상당 부분 브레진스키의 사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빅터 차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낳은 인물이고, 아마도 그는 키신저의 지원이야말로 자신이 지닌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제도적 기초는 너무나도 부패한 상태이고, 분파들 사이의 충돌(FBI와 CIA의 충돌이 되었건, 백인 민족주의자들과 국제주의자들의 충돌이 되었건)이 점점 심각해져 이제는 심지어 빅터 차와 같은 인물도 쫓겨나고 있는 판이다.
이는 술집에서의 싸움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난투에 휩쓸린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여전히 싸움질을 하고 있는 이들은 가장 거칠고도 비열한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결정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가정하는 것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빅터 차는, 만일 자신이 대사직을 차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는 현명치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행위들을 그냥 현명한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여전히 충성스럽고 가장 민감한 결정에 관해 조언하는 군부와 지역 정치의 분파들은 아직도 깊은 외국인 혐오에 빠져 있다.
이들 중에서, 미국에 대한 궁극적 위협이 멕시코인들이 아니라 아시아인과 유대인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WP 미국, ‘북한과 전제 조건 없이 직접대화 가능’ -文 ‘북에 비핵화 구체적 조치 요구할 것’으로 돌파구 마련 -미국 강력 제재, 북 핵, 미사일 실험 대응 악순환 우려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막혔던 남북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김정은 북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하는 등 화해무드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북과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직접대화에 나설 수 ...
“전쟁의 세계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2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백년포럼에 초청된 미셸 초서도프스키 교수의 발제문을 소개한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 경제학 교수로, <빈곤의 세계화>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초서도프스키 교수는 “1953년 정전협정은 휴전협정이지 평화협정이 아니다“면서 “일시적 휴전인 정전협정은 반드시 백지화 되어야 하며 남북 간의 포괄적인 양자 평화협정이 맺어져야 한다”고 말했다.(다른백년 편집자)
서론
“화염과 분노”는 도널드 트럼프가 만든 용어가 아니다. 미국의 군사 독트린에 깊숙이 뿌리를 둔 개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의 군사 개입을 성격지어 왔다.
백악관을 거쳐 간 전임자들과 트럼프가 다른 점은 그의 정치적 언사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위험한 기로에 서 있다. 외교정책 상의 계산착오는 상상도 하지 못 할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실수”가 세계사의 진행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제기한 바, 즉 핵무기가 “평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허구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외교정책 상의 미친 짓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위 정책 결정자들은 그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어쩌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첫 번째 선제 핵 공격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1월이 커다란 전환점이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통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과 직접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평화를 지향한다던 그의 미사여구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군사 위협의 남발로 대체되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은 남북대화를 훼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언론에 보도되는 최근의 상황 전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내의 강력한 군사정보 파벌이” 동계 올림픽이 진행되는 와중 혹은 직후에 “북한에 대한 선제 군사타격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이 “코피(bloody nose)” 공격이라고 명명한 이 작전은 북한의 미사일 시설에 대한 재래 무기 공격 혹은 저강도 소형 전술 핵무기 공격으로 구성된다.
핵무기가 즉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공격 첫날 남한에서 발생할 사망자 숫자만 수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 충돌은 중국과 러시아 등 핵무장 국가들을 순식간에 끌어들일 수 있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B61-12 스마트 전술 소형 핵폭탄. 워싱턴이 “코피(bloody nose)” 공격이라고 명명한 작전은 북한의 미사일 시설에 대해 소형 전술 핵무기 공격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 고위층과 안보 및 정보기관에서 현재 논의되고 숙고되며 준비되고 있는 바가 바로 이러한 무모하고 야만적인 행동이다. 더욱 구체화된 계획이 알려지면서, 최고위급의 군사 및 외교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두려움과 반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피터 시먼즈,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코피’ 타격을 고려하고 있다.” wsws.org, 2018년 2월 6일)
트럼프의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는 북한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보여준다. 첫 번째 선제 핵 타격 독트린은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 공식화되었지만,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핵무기 프로그램과 연계되는 2018년 보고서는 핵무기를 지닌 국가 및 핵무기가 없는 국가에 대한 선제 타격에 활용할 수 있는 “보다 편리한” 저강도 소형 핵무기 개발에 집중한다.
“보다 편리한” 핵무기란 이른바 미니누크라고 불리는 소형 핵무기(B61-11, B61-12)와 관련되는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3에서 12배에 이르는 폭발력을 지닌다. 이들“보다 편리한” 핵무기란 핵탄두를 장착한 벙커 버스터로, 펜타곤과 계약한 기업들의 “과학적 견해”에 따르면 “폭발이 지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주변 민간인들에게 무해하다”고 한다.
동계 올림픽 초반에 미국과 한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이 구상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합동군사훈련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실재한다. 미국의 군사 및 정보기관 내에 이른바 “코피” 전략으로 나아가자는 압력이 존재한다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핵태세검토보고서에도 담겨 있는데, 이는 연막일 뿐이다. 미국은 지난 67년 동안 핵무기로 한반도 민중을 위협하여 왔다.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한 한반도 비핵화란 오로지 북한을 향한 것이다. 미국이 축적하여 온 대규모 핵전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핵무기를 금지하고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가기 위하여 법적 구속력이 있는 수단”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 소집을 규정한 유엔 결의안(L.41)에 의거하여 표결이 이루어진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 북한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강도 소형 핵무기
북한과 이란 양국을 상대로 하는 “코피” 전략의 옵션으로 고려되는 것이, 더욱 편리한 중재자로서의 벙커 버스터 미니누크이다. 미국의 군사 및 정보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위협이 북한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펜타곤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상대로 저강도 소형 핵무기를 시험해볼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중대한 군사작전에서 가까운 동맹국이 미국을 도와 행동하도록 시도하여 왔다.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행동에 미국이 홀로 나서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또 하나 위태로운 것은, 남한의 군사력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펜타곤의 지휘 아래에 두는 한미공동방위협력협정이다.
남한의 군사훈련 참여 거부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한미공동방위협력협정의 폐기가 대단히 중요하다. 남한이 군사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외교채널의 실패
우리는 55년 전인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을 기억한다.
1962년 10월이 오늘의 현실과 구별되는 점은, 양측의 지도자였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와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S. Khrushchev)가 핵무기에 의한 대량 학살의 위험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핵전쟁의 위험에 관하여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있으며, 민간인 대량학살의 회피에 관심을 두고 있지도 않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인 “로켓 맨”이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의 완전한 파괴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10월의 미사일 위기가 오늘의 현실과 구별되는 점들
■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핵전쟁의 결과에 관하여 최소한의 희미한 관념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 냉전 시기의 핵무기 독트린은 완전히 달랐다. 워싱턴과 모스크바 모두 상호확증파괴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날 펜타곤은, 히로시마 원자탄의 최소 1/3에서 6배의 폭발력을 지닌 전술 핵무기를 “지하에서 폭발한다는 이유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무기로 분류한다. ■ 외교 채널들이 붕괴하였다. ■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작된, 1조 2천억 달러를 상회하는 핵무기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이런 끔찍한 프로젝트에 추가 예산을 할당하였다. ■ 오늘날의 열핵탄은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100배 이상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미국과 러시아 모두 수천 개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남북한이 올림픽과 동시에 건설적 대화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 및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의미 있는 대화도 시작했다. 사드의 남한 배치가 북한이 아니라 주로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을 중국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인가?
대부분의 미국인은, 북한이 1950년대에 미국이 주도한 폭격으로 인구의 30%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세계 평화에 대한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평가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미국의 군사 소식통 역시 북한 인구의 20%가 세 차례에 걸친 집중 폭격 시기에 사망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폭탄을 투하하는 유엔군 폭격기들(연합뉴스 자료 사진)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장군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북한의 78개 도시와 수천 개의 마을을 파괴하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민간인을 죽인 후에 …… 3년여에 걸친 기간 동안 우리는 북한 인구의 20%를 대대적으로 죽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에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지 않은 가족이 없었다.
미국은 북한 인구의 30%를 죽인 사실에 관하여 사과한 적이 없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주요 주제는, 자국이 주도한 전쟁의 피해자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에 대한 배상도 전혀 없었다. 국제 사회는 한반도 민중에 대한 미국의 전쟁 범죄 이슈를 다룬 적이 전혀 없다. 한국 전쟁에서의 잔학 행위는 베트남 민중에 대한 미국의 전쟁을 준비하는 장이 되었다.
워싱턴은 반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북한을 정치적 고립으로 몰아넣었다. 나아가 미국이 뒷받침했던 평양에 대한 제재는 북한 경제의 와해가 그 목적이었다.
선전선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군사공격의 희생자였던 북한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 채, 전쟁 도발에 실패한 “깡패 국가”,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국가”,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되었다. 판에 박힌 이런 비난이 미국과 서유럽 언론의 일치된 견해가 되었고, 아무도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거짓이 진실이 되었다. 북한은 위협의 대명사가 되고, 미국은 이제 침략자가 아니라 “희생자”이다.
역사의 맥락 : 핵전쟁, 누가 침략자인가?
미군 문서에서 확인되듯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난 67년 동안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렸다.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파견한 중국의 인민자원군은 미국의 침략에 맞서는 북한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중국이 행동으로 보여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연대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지 불과 몇 개월 후의 일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 모두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는 특히 북한군과 함께 싸우기 위해 파견되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에 대항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고 파괴하려는 냉전 시기 미국의 거대한 군사 목표의 일부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펜타곤이 주요 도시 지역에 대한 조직적인 핵 공격을 통해 소련을 폭파시키는 계획을 고려했다”는 1945년 9월 15일자 기밀문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66개의 “전략” 표적 목록에는 소련의 주요 도시가 모두 포함되었다. 아래의 표는 표적이 된 각각의 도시를 면적과 해당 도시 지역의 주민을 전멸시키는 데 필요한 핵폭탄의 개수로 분류한다.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타슈켄트, 키에프, 하르코프, 오데사 등 규모가 큰 각각의 도시에는 6개의 핵무기가 사용될 예정이었다. “소련을 지도에서 지우기” 위해서 총 204개의 폭탄이 필요할 것으로 펜타곤은 추산했다. 핵 공격의 표적은 66개의 주요 도시였다. 이와 같이 끔찍한 군사 목표의 개요를 담은 문서가 발간된 것은 1945년 9월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1945년 8월 6일과 9일)이 있은 지 불과 한 달 후였고, (1947년) 냉전이 시작되기 2년 전이었다.
히로시마 독트린의 북한 적용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 독트린은, 대부분 민간인을 대상으로 했던 1945년 8월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 이후 확립되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히로시마 독트린”에서 핵 공격의 전략 목표는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낳는 사건”의 격발이다. 이 목표는 군사 침략을 수단으로 한 나라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세계는 첫 번째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군사기지에 떨어졌음에 주목할 것이다. 첫 번째 공격에서 가능한 한 민간인들을 죽이지 않기를 우리가 원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9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첫 번째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은 1945년 8월 6일이며, 두 번째가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은 트루먼이 라디오 연설을 했던 날과 같은 날인 8월 9일이다.]
미국의 반인권 범죄에 인간의 얼굴을 덧씌우려는 미국 정치의 미친 짓에는 긴 역사가 존재한다. 1945년 8월 9일에 했던 그 라디오 연설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에 관련하여 신이 미국 편이라고 결론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의 방식으로 그리고 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그것(핵무기)을 사용하도록 인도하셨을 것이다.”
트루먼에 따르면 이렇다. 신은 미국 편이고, 언제 폭탄을 사용할지는 신이 정할 것이다.
“그것(핵무기)이 적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왔다는 점에 대하여 신에게 감사한다. 신의 방식으로 그리고 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그것(핵무기)을 사용하도록 인도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히로시마에서 나온 트루먼 독트린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배치를 위한 무대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은 핵탄두의 남한 배치를 시작했다. 의정부와 안양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는 계획이 1956년에 이미 논의되었다.
남한에 핵탄두를 반입하려는 미국의 결정은, 교전의 당사자가 한반도에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금지한 1953년 정전협정 13항(d)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탄두의 실제 배치는 한국 전쟁이 끝난 후 4년 반이 지난 1958년 1월에 시작되었다. 미국의 핵탄두 남한 배치는 공식적으로 33년간 지속되었다. 배치된 핵무기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소련을 표적으로 삼았다.
남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미국의 핵탄두 배치와 동시에 그리고 미국과의 조율 속에, 남한은 1970년대 초반 자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미국이 서울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분열성 물질을 생산하기 이전인 1975년 4월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서명”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야기다.(다니엘 A. 핑크스턴, “남한의 핵 실험,” CNS Research Story, 9 November 2004, http://cns.miis.edu.)
남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1970년대 초반 처음부터 미국의 감독 하에 시작되었고,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미국의 핵무기 배치의 일부로서 진행되었다.
서방측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비난하고 있지만, 남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이슈가 된 적은 전혀 없다. 남한이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 국가로 지칭된 적도 없다.
남한의 자체 핵무기 프로그램은 1978년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지만, 미국은 핵무기 사용과 관련하여 남한의 전문 과학 인력을 양성하고 남한 군대를 훈련시켰다. 한미연합사령부에 관한 협약에 따라, 남한의 모든 작전 단위는 미군 장성이 이끄는 연합사령부의 명령을 따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군의 모든 군사 시설과 기지가 사실상 한미연합 시설이라는 의미이다.
미국 본토 및 전략 잠수함으로부터의 북한 핵 공격 계획
공식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1991년 12월 남한으로부터 핵무기를 철수했다. 남한으로부터의 핵무기 철수는 북한에 대한 핵전쟁 위협을 어떤 식으로든 전혀 바꾸지 않았다. 사실은 정반대로, 남한의 핵무기 철수는 핵탄두 전개에 관한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맞물려 있다. 북한의 주요 도시들은, 남한의 군사 시설이 아니라 미국 본토와 전략 잠수함에 배치된 핵탄두의 표적이 될 것이었다.
오늘날의 이중 잣대
한편에서 북한이 핵 위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터키 등 비(非) 보유국 5개 나라에는 미국이 제조하고 각국이 지휘하는 B61-11 전술 핵무기가 존재한다.
이들 5개국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는 4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그 지휘 권한을 지니고 있는 네덜란드나 벨기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10개의 핵무기를 지닌 북한을 서방 세계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칭하는 상황과 비교해보라.
미국 군사 침략의 희생자이지만 아무도 이를 언급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쟁을 도발하려고 안달하는, 미국 본토와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끊임없이 묘사되어 왔다. 판에 박힌 이런 비난이 언론의 일치된 견해가 되어 버렸다.
유럽 각국에 배치된 미군 핵무기의 숫자.
핵전쟁의 위협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부터 나온다
또한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과 잠재적 공격 행위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거대한 동아시아 군사 전략의 일부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미국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완충 국가로 간주한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방위협력협정으로) 남한 군사력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와 중국을 위협하는 것이다. 남북통일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더욱이 워싱턴의 의도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을 이간함으로써 동남아시아와 극동아시아를 지속적인 군사 충돌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서구 식민주의와 미국 군사 침략의 희생 국가들이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광범위한 인권 범죄가 자행되어 왔지만, 이들 국가가 오늘날 미국의 군사 동맹국이라는 점은 슬픈 아이러니다.
이들 지역, 미국, 그리고 서방 국가들의 민중 모두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 안보에 위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의 양자 평화협정을 위하여
1953년 정전협정
1953년의 정전협정 속에서, 교전의 일방 당사자인 미국은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한에 대한 전쟁 위협을 일관되게 지속해 왔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미국은 여전히 전시 조직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언론과 국제사회가 무심코 간과하고 있지만, 미국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북한을 겨냥하는 핵무기를 적극 배치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이른바 사드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 전쟁 중이다. 1953년 7월 서명되었고, 법적으로는 교전의 당사자인 북한과 중국 인민지원군 및 미국 사이의 “일시적 휴전”인 정전협정은 반드시 백지화되어야만 한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과의 평화 협상을 일관되게 거부하여 왔다. 남한에의 군대 주둔을 유지하고, 남과 북의 관계 정상화와 협력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현 단계에서 해결책은 남과 북이 평화 협상을 거부하는 미국을 무시하고, 양자 평화조약을 교섭하는 일이다.
남북 평화조약을 통하여 한반도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작전지휘권의 폐지가 필요하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작전지휘권의 폐지를 “2020년대 중반까지” 연기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충돌이 벌어질 경우” 남한의 모든 군사력이,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펜타곤이 임명한 미군 장성의 지휘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60만 명의 한국군을 자국 통제 하에 두고 있다. 한미 연합사령부 구조와 작전지휘권 협약의 폐기 없이, 남한이 적절한 주권 회복을 이룰 수 없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1978년 한미 연합사령부가 창설되었다. (군사독재자이자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이었다. 사실상, 이른바 유엔의 지휘라는 명칭만 변경된 것이다.
“한국 전쟁 이래, 미국의 4성 장군이 남한과 미군의 전시 ‘작전지휘권’을 갖는다는 데에 동맹국들이 합의해 왔다. …… 1978년 이전에는 유엔의 지휘권을 통해 실현되었다. 1978년 이후 한미연합사령부 구조가 되었다.” (브루킹스 연구소)
더욱이 1953년의 (법적으로는 일시적인 휴전을 의미하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2014년의) 작전지휘권 재협의에 기초하는 미군 장성의 지휘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 없이 기능 중이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 일방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바는 남북 간의 포괄적인 양자 평화협정이다. 이는 1953년 정전협정의 실질적 폐기로 이어질 것이다. (정전협정 하에서 만연해 온) 미국과 북한의 “전쟁 상태”를 “우회”하고 이를 남북의 포괄적인 양자 평화협정 서명으로 무효화시키는 방안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협력과 상호교류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제안하는 서울과 평양 간의 포괄적인 평화협정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1953년 정전협상 서명 당사자의 평화협정 조인 실패를 적극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 우호조약을 합법적으로 공식화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양자 간의 합의는 워싱턴의 거부를 사실상 우회하게 된다. 이는 또한 외국의 개입, 특히 평화협정의 조건에 대한 워싱턴의 지시 없이, 한반도에 평화의 기초를 수립한다. 남한에서 미군의 철수와 작전지휘권 협약의 폐지도 함께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군사 기지의 건설 등 작전지휘권 협약 하에서 행해지고 있는 남한 군사화의 목적도, 큰 틀에서 보자면,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하는 군용 발사장으로 한반도를 이용하려는 것임이 지적되어야만 하겠다. 작전지휘권 협약 하에서는, “전쟁이 벌어질 경우” 남한 군사력 전부가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군의 지휘 아래 동원되게 된다.
워싱턴은 남한과 북한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 간의 정치적 분열 창출에도 열중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한의 미군 군사시설들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위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역설이다. 남북한의 양자 협약을 기반으로 규정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영구 평화를 위해, 미군 철수를 포함하는 정전협정과 작전지휘권의 폐지가 요구됨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남북의 양자 평화회담의 방향키를, 외부 세력의 참여나 간섭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에 부과된 경제제재의 해제는 물론 미 점령군의 철수에 관한 논의가 회담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미군의 배제와 점령군 28,500명의 철수는 남북의 양자 평화조약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통일과 향후 나아갈 길 : 오직 하나의 코리아가 존재한다.
오직 하나의 국가 코리아가 존재한다. 워싱턴은 통일을 반대하는데, 이는 통일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산업과 군사 측면에서 경쟁 세력이자 (선진 기술과 과학 역량을 지닌) 국민 국가의 출현이며, 이 국민국가는 스스로의 주권을 주장하고 워싱턴의 참견 없이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무역관계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외교 및 군사 계획가들이 미군의 남한 주둔 유지를 조건으로 “통일”에 관한 그들의 시나리오를 이미 작성해두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와 유사하게, 워싱턴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외국 투자자들”을 침투시켜 북한 경제를 약탈하는 것이다.
워싱턴의 목표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용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2000년 출간된 네오콘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a New American Century, PNAC)”는 “한반도 통일 이후의 시나리오”에서 (현재 28,500명 수준의) 주한미군을 증강해야 하며 미군 주둔 지역이 북한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통일 한국에서 확대 배치된 미국 주둔군은 이른바 “북한 지역의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통일에 따라서 한반도 주둔 미군의 감축과 역할 변경이 요구될 수도 있지만, 변화된 상황은 미군의 임무 종료가 아니라 미군 임무의 변화 그리고 변화되고 있는 기술적 현실을 실제로 반영할 것이다. 더욱이 통일 이후에 관한 현실적 시나리오를 모두 보더라도,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상당 정도의 안정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 이후 한국에 주둔할 미군의 정확한 규모와 구성에 관하여 추측하는 일이 시기상조일 수는 있지만,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미국의 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전략 목표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빨라도 지나치지 않다.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역량의 어떠한 감축도 현재로서는 현명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과 북한의 대규모 포격 역량을 효과적으로 제한하기 위해서 특히 그러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혹은 한반도의 통일과 함께, 현재 주둔 중인 단위의 구성과 인력 수준은 등락을 거듭할 것이지만, 아시아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에서 미군의 주둔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새로운 세기를 위한 미국의 방어, 전략, 군사력과 자원의 재구축,” 18페이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체결할 것을 촉구하는 한국 시민들의 시위 장면.
워싱턴의 의도는 두말할 필요 없이 명백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과의 전쟁이 한반도 전체를 휘감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워싱턴은 남한을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상황은 북한과 남한 모두를 향한 것이다.
이는 1945년 9월 이후 미국의 군사 점령 아래 있었던 남한을 위협한다. 한반도의 지형을 보았을 때,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에 남한도 어쩔 수 없이 휩쓸리게 된다. 미국의 군사 계획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해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한, 미국과 남한은 “동맹”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해야만 한다.
“진정한 동맹”이란 외부의 간섭과 공격에 대항하고, 대화를 통해 남북한을 통일하고 재결합하는 일이다.
미국은 한반도 전체를 상대로 하는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양자 “평화 협정”의 조건을 명확하게 하는 합의에 서명할 수 있도록, 남북 간 양자 대화를 확대해야만 한다. 이러한 합의를 통하여 미국의 한국 주둔을 배제하고 28,500명의 주한 미군 철수를 위한 장이 마련될 것이다.
나아가 양자 평화 협상에 의하여, 한국군을 미국의 지휘 아래 두는 한미 작전지휘권 합의는 폐기되어야만 한다. 이후 한국군 전체가 한국의 작전지휘권 아래로 북귀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자 협의는 향후 남북 간의 경제와 기술 및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의 심화된 협력을 추구해야만 한다.
작전지휘권 협약을 통한 미국의 배후조종이 없다면, 대화가 전쟁 위험을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작전지휘권 협약의 폐기이다.
남북통일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리라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무역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남북한의 과학기술 역량 통합 속에 8천만의 인구를 지닌 통일 한국이 강력하고 독립적이며 주권을 지닌 경제 강국이자 무역 국가로 변모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분단된 한국은 미국의 지정학적, 경제적 이익에 복무할 뿐이다.
NYT, 트럼프 北 대화 제안 거부 힘들 것 -北, 군사 위협 없어지고 체재안전 보장 시 핵무기 가질 이유 없어 -日 방위상 겐세이 ‘北 협상 관심을 경계해야’ -文 올림픽 이용 남북관계 및 북미 충돌 방지 개선 노력 남북 정상회담과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 의사를 밝힌 대북 특사의 방북 내용이 발표되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로 쏠리고 ...
리베라시옹, 북미 화해무드에도 문 대통령 역할 컸다 -남북 정상회담 결정이 북미 회담으로 이어져 -야당 반대에도 “대화와 압박의 투 트랙” 원칙 -트럼프 역시 남북관계 진전 외면 어려웠을 것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최근 북한의 입장이 급변하면서 북미간 화해무드가 조성된 데는 애초부터 대화를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보도했다. 루이 팔리지아노 기자는 지난 9일자 인터넷판에 ‘대화의 달인, ...
“이렇게 잘 나가도 되는 거예요?” 요즘 전화나 sns를 통해 받는 질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곧 한다더니(3월 6일 평양 발 뉴스), 이제 북미 정상회담도 목전에 왔다(3월 9일 워싱턴 발 뉴스). 질문에 붙는 말이 있다. “갑자기 너무 잘 풀리니까 어쩐지 불안하네요 …” 뒤에 붙은 무언, 침묵이 꽤 심각하게 들렸다.
믿기지가 않아서였겠다. 작년 하반기 내내 북미 간에 오간 그 험악하고 아슬아슬했던 막말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뿐인가. 평화의 물꼬가 트이는가 싶었던 평창 올림픽 기간에도 펜스 부통령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 대표단에 대해 ‘투명인간’ 취급과 ‘코피(bloody nose) 전략’ 으름장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수 있나. 그렇다 보니 왠지, 뭔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난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자신을 가집시다”라고 답한다. 분명히 기분 좋게 웃을 일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이따 밝히기로 하고, 우선 놀랄 일 하나를 더 들어보자. 지난 토요일(3월10일) 조선일보는 “트럼프는 북한과 수교하고 김정은은 핵 폐기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인용할 만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로 북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나서고 북한 체제 안전은 유엔과 한·미·북·중·러 등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안전보장 체제로 푸는 것이다. 북이 핵만 버리면 이 세계에 북을 공격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경우 대북 제재 해제와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단기간에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김정은이 핵을 버리고 미·북 수교와 제재 해제를 얻는 것이 살길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
그 동안 모든 문제에 대해 북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조선일보고, 그 사설이다. 그 조선일보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를 주장하고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북한 체제 안전보장”을 말하다니! 상전벽해로다! 가히 ‘역사적인 사설’이라 치하해주고 싶다.
물론 북이 궁극적으로 핵폐기를 결단할 정도의 확실한 체제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는 북미, 미중 관계의 장기적 안정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남북 양국 간 두터운 신뢰에 기초한 평화공존체제, 즉 한반도 양국체제의 정착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그 길로 가는 첫 고리가 대한민국이 주도하여 성사시키는 북미·북일 수교다.
<다른백년>이 출범 이후 줄곧 주장해 온 바다. 이제 조선일보조차 <다른백년>의 합리적 주장에 공감하게 된 것이라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부디 일회성 주장으로 그치지 말고, 조선일보의 사시(社是)로 확정해주기 바란다.
조선일보의 이 입장이 평지돌출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그 동안 ‘한반도 양국체제’는 이미 1991년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에서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음을 밝혀왔다. 그때 한국이 러시아,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도 그런 취지에서 채택되었고, 그 정신에서 92년에는 ‘한반도비핵화(남북)공동선언’도 나왔다. 합리적 보수라면 당연히 이 취지를 이어 받아야 한다.
이제 조선일보까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대열에 나섰으니 “지금 세계에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베와 홍준표 딱 두 사람뿐”이라는 모 정치인의 재치있는 코멘트는 정곡을 찌른 말이다. 여러 나라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자기나라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단지 북미 간,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평화의 문제임을 온 세계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세계적 경사에 진심으로 일익을 맡고 싶은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아베씨와 홍씨도 속 보이는 쪼잔한 짓을 그만하고 세계적 경사를 환영하는 세계인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미지: 연합뉴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불안한 이유는 사태의 흐름을 짧은 시각, 짧은 기억 속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작년 북에서 수폭 규모의 6차 핵실험을 하고, 그 전후로 연이어 ICBM 실험을 감행했을 때, 그리고 미국에서는 정말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위협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북·미를 향해 대화와 평화를 내세우고 요지부동 밀고나갈 수 있었던 힘, 그 지속성, 일관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거꾸로, 지금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작년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면 대대적인 반북·종북 소동이 정말이지 요란하게 벌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박근혜가 그토록 꿈꾸었던 제2의 유신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과 같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은커녕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평창 올림픽의 정상적 개최조차 불투명했을 것이다. 이미 그 때 한반도는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전화(戰禍)에 말려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정부 외교 저력의 원천은 촛불혁명
지난 1년여 대한민국 외교는 바른 방향으로 잘 왔다.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갈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된다. 좀 돌아가더라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왜 어떻게 그렇듯 ‘물가에 선 나무처럼’ 흔들림 없을 수 있었던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밀고가는, 밀어주는, 거대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위대한 힘이다.
큰 문제일수록 큰 변화를 못 읽을 수 있다. 촛불혁명의 실체적 존재감은 시종 지지부진하다 실패로 끝난 6자회담 5년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국제관계상 당시와 지금은 여러 기본 변수들에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 대한민국 촛불혁명의 동력이라는 새 변수다. 북의 핵과 발사체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새 정부가 기존의 미국 대외정책 패턴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보려고 한다는 점도 물론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그 변화들은 그 동안 트럼프-김정은 충돌에서 보아 왔듯 긍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직 대한민국 민의의 가히 혁명적 변화, 그리고 그러한 민의를 충실히 받드는 새 정부의 출범만이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킬 힘으로 작용했다.
정상회담은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정상회담은 상징적 큰 합의 정도가 나오면 된다. 북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미리 재 뿌리기’ 식의 추측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94년 북핵 위기 시 김일성과 카터가 만났을 때, 김일성 자신이 그런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북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유훈(遺訓)이란 신성한 것이다. 북미든 남북이든 상호 불신과 의혹을 남길 요구를 들고 나올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남북·북미 관계가 정상화됨으로써 생기는 장기적 이점에 당사자 모두가 집중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집중해야 할 점은 남북 평화관계를 장기적 구조로 굳히는 데 있다. 남북 간의 깊고 두터운 신뢰의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 간 신뢰에 균열이 가면 북미·북일 수교는 물 건너간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깊고 두터운 신뢰’의 핵심은 무엇일까? 남북 상호의 주권과 존재를 확실히 인정해주는 데 있다. 바로 양국체제다. 양국체제만이 남과 북 주권의 존립을 장기적·안정적으로 보장해준다. 실은 미국의 북 체제보장보다 더 실질적인 요점이다. 양국체제가 확실히 굳혀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북도 북미·북일 대화에 보다 큰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나설 것이다.
남북 평화관계 굳히기와 양국체제
한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니 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 북방정책 시 잠깐 반짝했을 때를 빼곤 도대체 제대로 존재했던 적이 없었던, 한국 외교가 갑자기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다. 이어질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세 나라 정상이 올 노벨 평화상의 공동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1년간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줄곧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견지했던 쪽은 오직 대한민국 정부였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즐거운 변화 속에서 필자는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생각해본다. 필경 이 말에 물음표를 다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팍스(Pax)라니? 그건 힘에 의한 평화, 초강대국, 제국들이나 하는 폭력적 평화 아닌가? 우리 코리아가 그런 식의 팍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부터가 그러했다. 그 계열의 팍스 브리태니카,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다 그러했다. 모두 힘과 정복을 전제한 평화였다. 제국에겐 평화였으되 약소국엔 지극히 괴로운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팍스였기도 하였다.
동양에도 팍스가 있었다. 세계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팍스는 바로 몽골 대제국 시대,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였다. 몽골제국만이 아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의 중화제국, 팍스 시니카(Pax Sinica) 역시 그렇다. 한때 일본도 제국을 꿈꾸었으니 팍스 자포니카(Japoinca)였다 부를 수도 있다. 그런 동쪽의 팍스 역시 힘과 정복을 전제한 평화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럼에도 팍스의 주체가 되었던 나라들, 그리고 그 후예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이 인류문명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복속해야 했던 나라들에서는 사정이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한반도 발 세계평화, 한반도가 주도하여 이룩해가는 세계평화, ‘팍스 코리아나’를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시선 뉴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팍스 코리아나’가 더욱 특별하다. 우선 기존의 모든 팍스가 그랬던 것처럼 ‘팍스 코리아나’도 분명 세계평화를 만들어낸다. 지금 남북·북미 정상회담부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양국이 평화공존체제를 이루어, 미중, 중일 간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간다면, 이것이 바로 팍스 코리아나의 진면목일 것이다. 한반도 발 세계평화, 한반도가 주도하여 이룩해가는 세계평화다. 더구나 폭력의 절대적 반대명제인 촛불혁명, 즉 순수한 평화의 힘, 위력으로 말이다.
또 하나 ‘팍스 코리아나’가 특별한 것은, 그 ‘팍스’는 코리아 내부의 깊은 폭력적 분열과 적대의 상처를 성숙하게 이겨낸 팍스일 것이기 때문이다. ‘팍스 코리아나’의 시작은 한반도 양국체제다. 한반도 양국체제란 상호 서로를 부정하고 적대하면서 처절한 전쟁을 벌였던 남과 북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내부에서 고난 속에서 싹튼 성숙한 평화의 힘이 세계평화의 밀알이 된다.
한국전쟁(Korean War)은 힘 대 힘의 극한 상황, 극도의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2차대전 이후 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과연 힘 대 힘을 신봉하다 또 다시 세계 3차대전의 불쏘시개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오직 평화의 위력으로 세계평화의 선도자가 될 것인가.
기존의 제국 중심의 팍스(Pax)의 세계사에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진정으로 평화로운 팍스의 시대가 가능한가.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바로 이곳, 코리아에서 열어갈 길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이 길을 필자는 ‘팍스 코리아나’라 부르고 싶다.
2017년 일년 내내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필자의 화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었다. 북미 양국의 지도자간에 오고 가는 말폭탄의 수준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위의 단어, 즉 사태가 극점에 이르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평화를 향해 전개되는 절묘하고 긴박한 상황에 대하여 노련한 사회 원로는 문대통령에게 ‘신이 역사 속을 지나는 순간,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매번 배움과 성찰의 글을 올려 주는 북한 전문가 인제대 김연철 교수는 ‘설레이는 희망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이중적 변주의 위험을 암시한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철부지들의 조급함이 설치는 가운데, 배달민족의 소망인 한반도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e for Peace process))이 마치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듯 착각하는 글들이 난무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날이 선 칼끝 위에서 춤을 추는 위험한 곡예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라는 저술 속에서 하늘이 기회를 내렸을 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재앙이 뒤따른다는 말씀을 주셨다. 지금부터 정신을 다시 바짝 차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 사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비록 쌍방의 체제와 권력을 강고히 하기 위해 악용되었던 1972년 7.4 공동성명에서 비롯하여 6,15 선언과 10.4 합의로 이루어지는 연장선상에서 공히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상호 불간섭과 공존공영하는 원칙을 수십 년 간 유지해 온 셈이다. 다만 지난 9년간 어리석고 사악한 이명박근혜의 반민족적 수구집단에 의해 남북간의 갈등이 조장되고 대화가 단절되고, 이전의 김대중 정부 시절에 애써 시작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협력사업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고 새로운 계기가 주어지면 오히려 지난 9년간의 뼈아픈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보다 확실한 신뢰관계 속에서 전면적인 협력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이미지:연합뉴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가능한 모든 인도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엔 제재의 근본 취지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전쟁물자에 전용될 수 있는 통상과 거래를 금지하고자 한 것일 뿐, 같은 유엔 내 인권 부처에서는 북한을 위해 1억불이상의 지원금을 모금하면서 인도적 조치는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각종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과 의료시설의 태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한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천만 명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에 있으며, 특히 십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아사 직전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다. 4월말 이루어질 남북 정상회담은 전세계인들을 향한 동아시아 역내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확고부동한 선언이어야 하며, 회담 이후에는 즉각적으로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 더불어 유엔 제재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의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 위기해결과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장애는 남북간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전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 내부의 혼선과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 지점에 현실적인 어려움과 심각성이 있다. 미국인들보다 미국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중앙대 이혜정 교수는 3월21일자 프레시안 기고문 ‘(한미)동맹파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를 통해서 미국 내 복잡하게 얽힌 내막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아래의 글을 통해서 이를 보다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국 주류사회의 흐름과 분위기이다.
‘미국의 주류사회는 한반도에서 이루지고 있는 평화의 흐름에 불안을 느낀다(Liberals, Conservatives Worry About Korean Peace Threat)’는 미국내 진보인사의 기고문이 상징하듯이, 대부분 미국인들에게는 북한은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제법을 어기고 합의를 해놓고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비밀리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하여 온 불량국가, 거짓말투성이의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 주류 언론들조차 지난 20여 년 동안 북미간에 진행되어 온 비핵 협상의 과정이 북한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로 악용되어 온 것으로 보도하면서 북한을 결코 정상적인 국가간 일대일의 대화상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연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국무장관 출신이자 지난 대통령선거 경쟁상대였던 힐러러는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하는 트럼프의 외교적 미숙함을 비난하면서 경험과 전문성의 결여(lack of dossier & experts)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정치상황이 11월 초 예정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거나 또는 가까운 시일 내 트럼프가 탄핵을 당하는 모습으로 급반전하면, 미국 주류 정치인들이 트럼프에 의해 이루어진 북미정상회담의 주도적 성과를 손쉽게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차기 대선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 개혁파 정치인사들은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를 첨언하면, 1994년 제네바협정 이래 북미간 비핵화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시한 측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 자신이었다. 이는 미국 내 양심적이며 소신이 있는 진보적 학자들과 합의과정에 실제 참여하였던 책임있는 인사들이 고백하고 인정하는 분명한 팩트이다. 협상과정에 임했던 미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기만적이었으며 ‘수 년 내에 예상되는 북한붕괴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과는 다르게, 반드시 붕괴되었어야 하는 북한정권이 1995-1998년간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최소 수십만 내지 최대 이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통과 희생 위에서 재기한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내 보수집단입장이다.
공화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집단에게는 북한은 냉전구조의 마지막 연장으로서 상징 조작의 대상이다. 국방예산을 증액하고자 하는 구실과 근거로 북한은 언제나 호전적인 집단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각색되어야 했고, 태평양 너머로 대 중국과 대 러시아의 봉쇄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전략의 핑계로 활용되어 왔다. 격대로 집권한 부시 부자 정권 기간 동안에는 북한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 나오는 악의 제국, 악의 축으로 존재하여야만 했고, 이는 마치 전래의 신화처럼 보수 집단 내에 확고한 신념으로 굳혀져 왔다. 트럼프가 지난해에 발언한 ‘분노의 화염(fury & fire)’ ‘확실한 파괴(totally destroy)’ 그리고 최근에 검토되었다는 코피전략과 비핵국가에게도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Mini-Nuke 개념 뒤에는 항상 이들 호전적 집단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며, 영어로 표시된 위의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여전히 유효한 옵션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언제라도 핑계와 기회가 주어지면 북한에게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집단들이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조석지변하는 트럼프의 변덕에 이들이 항시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더구나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급격히 퇴조하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그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주적으로 명백히 명시하면서 신냉전체제의 도래를 암시했다. 한편에서는 외교적 통상적 분야에서 이미 이들과 전면적 상황으로 돌입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시절 몇 년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유지를 위해 작동하였던 6자회의 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증할 수 있는 하나의 구도, 기존의 틀이 사라진 셈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인사들의면면이다.
최근 미국무장관의 교체, 그나마 트럼프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던 매티스 국방장관의 발언권 후퇴, 테러범에 대한 잔인한 고문과 전쟁범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여성인사의 중앙정보국장 발탁,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을 극단적 호전주의자이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던 전 유엔대사 볼턴으로 교체하는 등 일련의 백악관 인사의 변동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반영한다. 한국정부와 언론들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정상회담의 진행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속을 가늠할 수 없는 호전적 인물들의 가연성(可燃性)을 그저 눈가림으로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준비작업 과정부터 잘 작동하고 있다는 서훈과 폼페이오 라인이 회담의 성공적 진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안이한 기대는 오히려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고, 만약의 악화되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 변동 상황. 예측 불가능성과 함께 강경파들이 늘고 있는 것이 북미회담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이미 이란 핵합의를 무력화하고 파기하는 수순으로 들어간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기고를 통해서 이러한 인사변동의 성격을 ‘시온주의자와 극우호전주의자로 채워진 완결적 구조(has closed the grip of WH inner group with Zionists & Neoconservatives)’ 라고 평했듯이, 더 이상 트럼프 주위에는 보수이나마 합리적인 논리와 판단을 구사할 수 있는 인사들이 모두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대체로 이들 인사들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취할 입장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시대역행적 패권의 전략구도에 북한이 투항해 들어오는 것을 요구하면서 당연히 그러한 방향으로 북한을 고강도로 압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은 북미정상 회담 이후에 전개되는 예상경로에 관한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중앙일보 기고를 통해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40%, 성사가 되더라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확률을 40%, 합의에 이르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가능성이 18% 라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혜정 교수도 정상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이런 경우에도 전쟁을 회피하고 불편하지만 ‘핵억제의 평화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소망하건대, 트럼프가 여하간의 여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평화를 향한 프로세스에 합의를 한다면, 다음의 문제는 이러한 합의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실천으로 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확실하고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치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대선과정에서 벌어진 러시아 게이트와 폐북을 통한 데이터 누출, 전 중앙정보국장 해임과정의 적절성 여부, 특별검사인 뮬러 등과의 극한적 반목, 공화당내에서조차 누적되는 피로감, 백악관 내의 측근참모들 사이 그리고 가족들과 권력투쟁설에 더하여, 최근에 봇물 터지듯 등장한 여러 여성들과의 성스캔들 등 트럼프의 장래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며, 설령 탄핵을 면한다 하더라도 향후 그의 주도하에 결정된 정책을 책임 있게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가 이후 연방의회의 다수를 장악한 공화당 보수집단들에 의해 지연되고 무력화가 된 사례가 있듯이, 어렵게 합의에 이른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이 실행단계에 들어가기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예상된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이를 이미 염두에 두었다는 모양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미 삼자 정상회담을 추가로 제안하였다. 합의된 내용의 실행을 분명히 강제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의 서보혁 교수는 과거처럼 선언(announcement)과 합의(agreement) 만으로는 실행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제법 수준의 조약(treaty) 또는 이에 준하는 강제적 조항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6자회의 구조는 미중과 미러 간 점증하는 갈등으로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정부가 움직이고 있듯이 한중, 한러, 한일 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을 동시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의 회담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의 개별적 2자 또는 3자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에서 깊이 협의했음직한 주제로 평양에 신속하게 미국의 임시대사관을 개설하여 양국 관계정상화 과정에 비가역적인 속도를 보태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유럽연합도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유엔 역시 모든 역할과 지원을 다할 것을 공언하고 있는 현재, 유엔이 중심이 되어 가칭 세계(또는 한반도)특별평화위원회를 사무총장 직할로 편성하고 이의 위상과 기능을 안보리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요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평화위원회의 구성에는 안보리를 입맛대로 좌지우지 하는 주요 패권 국가들인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을 배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반도 상황의 향후 전개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기대 또는 신뢰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다만 선제공격 등 예상되는 극단적 위험행위를 막아야 하는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관점과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북한을 이제 대한민국은 당당한 형제적 주권국가로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흐름 속에 민족적 사명과 동포애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 당국은 북한의 붕괴론을 포기하고 동시에 군사적 협박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북한 핵무장의 구실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예의와 책무로 반드시 실행하여야 하는 사항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재미교포들은 미국 내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와 함께 손잡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일차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는 국제적 여론 작업에 불을 힘껏 댕겨야 한다.
달러는 국제 금융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국제 금융거래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루어진다. 달러는 궁극의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통화이다. 그러나 미국 달러의 패권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종말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종종 약한 달러를 요구했다. 분명 이는, 그의 주장처럼,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자국 통화를 절하함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말이란 하찮은 것이며, 트럼프의 그러한 언사 자체가 달러의 향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달러 지위의 실질적인 훼손은 보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국 국가재정의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제도적인 견고함을 서서히 갉아먹는 정책들로부터 나온다.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 대란의 시기가 오면, 공황 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은 미국 채권 시장으로 몰려든다.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 국채 및 기업 채권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의 이러한 위상을 설명하는 데는 보다 미묘하고 더욱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신뢰다. 중대한 금융 관련 의사결정을 동반하는 통화와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출입을 살펴보면, 겉보기에는 냉담하고 감정에 좌우되지 않을 것 같은 의사결정에서도 신뢰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유지하는 제도에는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견제와 균형으로 작동하는 민주정부 시스템이 포함된다. 이는 정치의 직접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앙은행과 독립된 사법부가 관장하는 법의 지배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정부 부채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과 트럼프가 조장하는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지위가 강고한 것은 바로 미국 제도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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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강고함이 일시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제 금융거래는 달러 표시를 기본으로 하고 달러로 결재되며 때로는 미국 금융기관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솔한 재정정책이 변동성을 높이고 달러의 가치를 침식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이 믿게 되면, 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현재도 여타 통화의 거래비용 감소 그리고 중국의 위안화 등 신흥 시장 통화의 부상은 국가 간 거래의 통화 표시와 결재수단으로서 달러의 역할을 이미 잠식 중이다. 중국과 남한은 “국제거래통화”로서의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통화를 사용하여 거래한다. 원유와 여타 상품 등 사실상 모든 계약을 달러로 표시한다는 논리는 쇠퇴하고 있다. 다른 힘들이 작동하는 것이다. 트럼프 통치 하의 미국은 무역과 군사 및 여타 합의에서 점점 더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된다. 미국의 국제적 신뢰가 손상되었고, 또한 트럼프가 다른 국가들을 통제하는 무기로 달러를 휘두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왔다. 그 결과 여타 국가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거치지 않는, 그들만의 결재 시스템과 채널을 구축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배적인 교환수단으로서 지위가 쇠퇴한다고 하더라도, 달러는 여전히 여타 통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전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타국 중앙은행들을 비롯한 외국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포기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제도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그러나 이를 당연하게 여기다가는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될 지도 모른다. 과거 미국 정치 시스템이 심각한 불안에 빠졌을 때, 독립적인 사법부가 뒷받침하는 자유언론이 잘못을 시정하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공화당이 다수파인 의회의 방조 속에, 트럼프는 이 모든 제도들을 공격하고 있다. 달러 패권은 단지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미국 제도의 지속성과 그 활력에 달려 있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서서히 약화시키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제도들이다.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마저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는 단호하며, 분노로 가득한 지도자이다. 자신이 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화염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전혀 없다. 합당한 존경을 받지 못 한다거나 충분한 제물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그는 심지어 세상의 종말에도 서슴지 않고 덤빌 것이 분명하다. 한편 트럼프는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에게, 권력과 막대한 부가 보장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보상할 수도 있다.
이번 달에 트럼프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이전에는 갈등과 불화 외에 아무 것도 없던 곳에 평화를 창조하며 미소 지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파괴자로서의 트럼프는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빠질 것임을 공언하면서 세계를 파멸로 한 걸음 다가서게 하고 있다.
대단히 위선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기이하게도 두 얼굴의 지도자에게는 일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합의는, 이란이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핵을 가질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부유한 국가인 이란은 원하기만 하면 상당량의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란은 지금까지 현행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준수하여 왔지만, 트럼프는 이를 “끔찍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뜯어 고칠” 수 있다고 실제로 믿는다. 이는 상당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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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핵무기 보유국 북한은 자국의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반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평화협정 그리고 미국이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맞바꾸는 조건에서 말이다.
미국의 약속?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미국이 이란에게 했던 이전의 공약들 그리고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워싱턴의 약속이란 그들이 트위터에 적은 140글자의 가치도 없다. 북한이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달 도널드 트럼프는, 최후의 억제 수단이었던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한 나라를 설득할 참이다. 핵 없는 국가로서의 새 출발을 허용하면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를 폐기하여 전쟁으로 향하는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으로 노벨 평화상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기성이 농후하고, 행정적으로 서툴며, 점점 성추행자임이 드러나는 미국 대통령의 동네 깡패 짓을 생각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더 이상 나아가지는 말자.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최고의 지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면서도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트럼프가 나타났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두 얼굴의 접근법을 가지고 말이다.
전쟁과 평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는 두 얼굴을 지녔다. 한 쪽 얼굴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또 하나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한다. 야누스는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를 관장하는 신이었는데, 이는 그가 전쟁과 평화를 책임지기도 했다는 의미였다. 플루타르크는 야누스에 관하여 이렇게 저술했다.
야누스는 로마에 신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양쪽으로 여닫는 문이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이 문을 전쟁의 문이라고 불렀다. 평화가 찾아올 때면 문이 닫히지만, 전쟁 중에는 신전이 항상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는 어려웠고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로마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주변 야만국들과의 충돌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거의 언제나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평화란 실제로 대단히 어려운 법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력 충돌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올바른 접근법을 우리가 채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강대국 중 가장 호전적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펜타곤이라고도 알려진 제국의 수도, 그 신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슬픈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분명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시기의 전쟁을 맹렬하게 비난하면서도 이슬람국가와 이란, 북한, 중국, 멕시코 등 다양한 적국들에게는 번개를 내리치듯 말 폭탄을 쏟아냈다. 미국이 해외에서 벌이는 모험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기습공격은 얼빠진 반 제국주의자들의 갈채와 실망한 일부 네오콘의 비판을 불러왔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트럼프는 막대한 군사예산과 더욱 강화된 드론 전쟁 그리고 전 방위적인 패권을 추구하는, 더욱 전통적인 안보정책을 신봉하여 왔다.
트럼프가 일반적으로 견지하는 호전적인 태도에 비추어, 북한은 기이한 예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애초부터 트럼프가 전임자들과 동일한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평양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높였고, 중국을 설득하여 이전 동맹국의 팔을 비틀도록 설득했으며,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지칭하며 무절제한 단어를 쏟아냈다.
그러더니, 자신의 울음 때문에 해가 떴다고 믿는 수탉처럼, 트럼프는 2018년 벽두에 일어난 북한에서의 반전이 온전히 자신의 공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정은이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상 미국의 행동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북한 내부의 상황(핵 프로그램의 진전과 정치권력의 공고화)과 2017년 취임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트럼프의 자기기만과 트럼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착각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우울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예컨대 간섭주의에 반대한다는 켄터키 상원의원 랜드 폴(Rand Paul)을 생각해보자.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식과 관련하여 요란스럽지만 모호한 발언을 내놓은 이후, 폴 상원의원은 마이크 폼페이오의 국무장관 지명을 지지하는 데 동의했다. (사실상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해 엄청난 숫자의 권력자들을 펜타곤에 보내왔다.)
트럼프를 가지고 놀면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트럼프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일련의 사람들 중 가장 최근의 인물이 폴 상원의원이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아직까지는 그저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충동적인 결정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에게는, 노벨상 수상이 트럼프로 하여금 한반도 통일을 영원히 지지하게 만들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있다.
트럼프가 아무런 조건 없이 지지하는 유일한 단 하나는 트럼프 자신밖에 없다. 대통령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거짓 신을 이런 식으로 달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란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뮌헨 협정의 교훈
이란이 핵무기를 향해 치닫지 않도록 차단하는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트럼프에게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이들 명단의 맨 위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떠난 전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있다. 전임 국가안보국 및 중앙정보국 책임자였던 마이클 헤이든(Michael Hayden)과 공화당 출신으로 전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리처드 루거(Richard Lugar)를 비롯하여 52명의 국가안보 최고 전문가들이 보낸 서한이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보다 최근에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자신의 전설적인 카리스마가 통하는지 보려고 워싱턴을 찾았다. 이는 트럼프를 구슬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이란의 구미에 맞도록 협상을 “타결”시키려는 분별없는 유럽판 유화전략의 일부였다. 일찍이 틸러슨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이란과의 현행 합의에 담긴 “우려 사항”을 지적하는 “실무단”을 조직하고, 이란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시도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마크롱은 “새로운 협약”을 꺼내들었다. 이는 유럽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마크롱의 일부 동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2017년 5월 25일, 미 대통령 트럼프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 AFP PHOTO / Mandel NGAN
그런데 이틀 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그리고 마크롱이 “새로운 합의가 다룰 이슈들”에 관하여 미국과 “긴밀하게”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유럽은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1938년 뮌헨 조약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아무 생각도 없는 트럼프의 방식과 좀 더 마음이 통하는 인물이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그는 이스라엘 총리로 재임하는 기간 내내 이란과의 전쟁을 독려하는 북을 두드려왔다. 이번 주 네타냐후는 방송을 통해,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글쎄, 그건 2007년쯤 뉴스 아니던가? 어쩌면 네타냐후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증거를 잔뜩 들고서 다음 방송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네타냐후와 함께 보는 지난 10년”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데 네타냐후의 “폭로” 시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란과의 핵합의를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서 결정타를 날리려는 트럼프 편에 서서, 프랑스와 독일이 그들의 몫을 했고 이제는 이스라엘이 그 뒤를 이었던 것이다.
트럼프를 진정시키려는 시도가 대단히 안 좋은 생각임을 사람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 것인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바싹 불타버린, 수많은 행정부 관료들을 생각해보라. 이처럼 불나방 같은 행동은 자신의 도덕적 잣대마저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가오는 충돌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상이 가져올 최선의 결과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트럼프가 내버려두는 것이다. 북한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군사전략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펜타곤에서 찾기는 힘들다. 어쩌면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인 트럼프도, 김정은과의 그럭저럭 성공적인 회담이 끝난 다음에는, 북한에 관해 까맣게 잊을 수도 있다. 북한이 더 이상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란에 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상황을 빨리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은 시리아에 주둔하는 이란 군사력에 제한되어 왔다. 폼페이오와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이란의 정권교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이란과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이란 자체를 “손보는 것”이라고 트럼프가 믿는 것 같다.
파괴자 트럼프는 2015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쟁에 정말로 능하다. 나는 특정한 방식의 전쟁을 좋아한다. 그러나 오직 이길 수 있을 때만 전쟁을 벌인다.”
이란과의 전쟁은 사실상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란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중국이 그들의 동맹국을 지원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미국 편에 설 공산이 크다. 이 충돌은 적어도 중동 전체를 화염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이 불길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옮겨 붙을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세계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란이 핵무기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상황이 이란 핵합의 와해의 더 나은 결과일 수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도널드 트럼프도 핵무기 보유국 이란과 비핵화협약을 타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점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북한과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제(5/2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서한을 통해 6월 12일로 예정되어 있던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한미정상회담과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직후였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과 전 세계가 보내는 지지에 명백히 역행하는 무례한 행위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미국의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를 규탄하며, 미국이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회담 취소의 이유로 들었지만, 미국 역시 ‘리비아 방식’, ‘선 핵 포기 후 보상’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북한을 자극해왔다. 북미 간의 적대적인 수사는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정상회담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두 팔 벌려 환영했던 한반도의 주민들은 최근의 한미연합공중훈련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 그리고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깊은 실망을 느낀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의 힘을 확인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이룩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대화와 협상뿐이라고 믿는다.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북한 관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6월12일 싱가포르 회담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였고, 특히 북미정상회담에 실무책임을 지고 추진했던 정의용 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시키기 하루 전날까지 성사 가능성을 99.9% 라는 자신을 피력하면서 0.01%의 실패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까지 하였다.
반면에 ‘다른백년’은 온라인 칼럼을 통하여 지난 수 개월간 지속적으로 즉흥적인 북미회담의 가능성에 회의를 품고 낙관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3월24일자 – 북미정상회담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4월27일자 – Kim-Trump 회담은 어음거래다, 5월22일자 – 김정은 위원장 얼굴에 흙을 뿌리지 마라 등).
이젠 역으로 필자는 6월의 정상간 만남이 무산이 된 현시점이 문재인 정부의 의지 여하에 따라 비로소 북미간의 관계가 제대로 개선되고 정상화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예측의 근거를 제시하기 전에 우선 무산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무산 배경
우선,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의욕을 앞세운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1987-88년 근저로 김일성 주석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북미간 정상회담을 희망하며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과 대미수교를 제안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같은 입장과 제안을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여 왔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물꼬가 트인 남북의 화해 분위기 속에 북한은 위의 제안을 희망을 섞어 되풀이 한 셈이다.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조셉 윤이 CNN과 인터뷰한 내용을 참조하여 보면, 사실 북한 측은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예전처럼 남한의 평양방문단에게 던져 본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핵무력 완성에 따라 경제와 산업발전에 전력을 다해야 할 북한의 입장에서는 UN을 지렛대 삼아 미국이 강요하는 외교경제적 제재와 압박을 완화시키고, 산업화와 사회기반시설에 필요한 초기자본(seed capital)을 어떠한 형태로도 형성해야 할 내부적 긴박성이 있었으리라 점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과대 포장하여 백악관에 던진 셈이다. 북미간의 핵심은 평화체제의 구축이고 북한이 당당하게 국제사회에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실장 등은 마치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 북한이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된 것처럼 아부하고 모든 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실수를 하였다. 더하여 지난 십 수년간 북한과 중국간의 불편한 관계가 마치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미리 예단하고 이번 기회에 북한을 한미일 동맹에 더하여 중국봉쇄전략에 편입할 수 있다는 상상의 시나리오를 미국에게 던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에 대하여 장사꾼 트럼프는 자신을 부동산 재벌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이끈 자기중심적 계산과 자기과시적 승부사의 장점을 발휘하여 북한의 희망이 섞인 제안을 덥석 잡아 역제안 하는 방식으로 수용하게 이른다. 오바마가 하지 못한 일(All but Obama)을 내가 해낸다는 일종의 병리적 심리와 정치적 궁지에 몰린 입장에서 탈출용 대형 이벤트가 절실했던 그로서는 북미회담을 구원의 돌파구로 판단했거나 또는 게임 패를 던지듯이 활용한 측면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그리고 진보적 언론으로 평가되는 CNN과 NYT 등 미국 주류 사회가 정작 이러한 결정에 대단히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물론 네오콘 등에 의해 조작된 내용이지만 지난 60여 년간 북한을 보는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반드시 망해야 하는 독재정권(regime collapse), 근거가 없이 호전적인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는 권력을 교체시켜야 하는 대상(regime change), 인권의 무풍지대로 국제적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는 불량국가(rogue state) 등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어, 이들에게는 힘과 패권으로 국제질서를 책임져야 할 미국의 대통령이 사전적 합의와 양보 없이 북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북 정상이 함께 연출한 판문점의 극적인 이벤트 장면과 선행적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북측의 선언 등이 미국의 여론을 일부 순화시키기는 했으나, 트럼프 자신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이 실패로 끝날 경우 돌아올 엄청난 비난과 후폭풍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평화협정과 북미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네오콘 및 미 군수산업에게는 재앙을 의미한다. 단순히 남한의 군사력 증강을 핑계로 팔아먹는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판매를 별도로 치더라도,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의 역할과 위상을 조정하고, 수천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하는 미태평양 사령부의 조직 전체를 새롭게 검토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마음대로 조작하고 주물러 왔던 악의 축 나라를 한 순간에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여 외교적 관계를 수립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상황이 분명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매파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지시로 한편에서는 미소를 짓고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뛰어 다녔지만, 실제로 뒤에서는 남한과 북한까지 미국의 영향권에 강하게 구속시키기 위하여 6월 전역하는 미 태평양 사령관 해리 해리스 제독을 주한대사로 미리 내정하기도 했다. 구제불능인 악질적 네오콘의 중심축인 펜스 부통령과 볼턴 등이 던진 일련 발언들은 즉흥적이거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연막작전 수준의 발언이 아니라, 네오콘과 군수산업의 이해를 대변하여 북미회담을 훼방하고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의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역제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북한에 대한 진정성이 한 축을 이루기는 했지만, 미국과 역사적 담판을 짓기 위해서는 반대편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에 국제적인 연대와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더구나 이를 계기로 저강도 전쟁행위인 UN제재를 무력화하고 북한사회를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조건인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비핵화를 추진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현실적이고 탁월한 선택이다.
중국 역시 역내의 안보불안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북한에게 비핵화 과정으로의 진입을 조건으로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북한 동해안 라인에 철도 사업을 착수한 러시아 역시 한반도를 통하여 철로와 육로 그리고 에너지 공급라인이 남한을 거쳐 일본까지 연결된다면, 경제제재를 포함한 미국과 격한 대립 중에 있으며 에너지 가격 및 판로의 불안정을 겪는 입장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것을 지지하고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의 바둑판을 흔든 것은 명백하게 미국,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기질의 그에게 당장 승부의 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정치적 궁지에 몰려 있는 그에게는 11월 중간선거라는 피할 수 없는 일정표가 던져져 있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판문점회담과 선언이 불확실한 북미정상회담보다 열배, 백배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주장하여 왔다.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눈치나 살피며 미국의 지시에 따른 대리운전의 역할을 마감해야 한다. UN의 제재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명분은 북한에게 더 이상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지 말고 협상의 자리에 나오라는 충고를 겸한 강요이다. 북한은 이에 선제적으로 호응하여 국제사회를 향해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장면을 공개하였고, 북미정상회담에 성실히 임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아 왔다.
앞으로 전개될 과정의 길라잡이 역할과 책임은 다시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졌다고 판단한다. UN내 원조부처가 요청해서가 아니라 남한 정부가 동포애적으로 판단해서 인도적인 사안부터 시작하여 신속하게 식량과 의약품을 대거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대규모 의료진을 북한에 파견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조업을 신속히 재개하되, 당장 현금거래를 문제 삼으면 물물교환으로 대체하면 된다. 중기적으로는 UN 제재를 중단시키는 외교노력에 힘을 경주해야 한다. 제재결의를 풀어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주도하여 동포국가인 북한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기구들과 연합하여 가능한 모든 영역의 지원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먼 훗날 이루어질 통일로 나가는 첫걸음이자 초석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한반도라는 공간에 대한 역사의 주역으로 남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타개하고 주도해 나가면, 중국도 러시아도 주변국가들도 호응해올 것이고 UN 역시 반가운 속내를 드러내며 반걸음으로 따라올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다시 미국이지만 당사자인 트럼프는 아직 문을 잠그지 않았다. 6월 24일자 CNN 분석기사 중 몇 귀절을 인용해 본다.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지만, 김정은과 대화를 나눈 것은 훌륭했다. 언제가는 그와 만나기를 매우 기대한다. 한편 억류되었던 포로들을 석방해 가족들과 함께하도록 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 정말 멋진 제스츄어였고 높이 평가한다.” 트럼프 서신중에
I felt a wonderful dialogue was building up between you and me, and ultimately, it is only that dialogue that matters. Some day, I look very much forward to meeting you. In the meantime, I want to thank you for the release of the hostages who are now home with their families. That was a beautiful gesture and was very much appreciated.”
회담을 취소하기 전에도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표현은 약간 혼란스럽다. 정상회담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긴 했다. 좀 지켜보아야 한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아니면 나중에 성사될 수도 있다”고 그는 이번 주초에 언급했다. “당신들은 거래를 결코 이해 못하지, 나는 경험이 아주 많거든. 당신들은 정말 모를 거야, 회담은 6월12일 열리지 않을 수도 있어”.
Trump made on North Korea sounded like a bit of a jumble. The summit was going to be historic and no one other than Trump could have made it happen … or maybe it won’t happen at all. We’ll see! “If it doesn’t happen, maybe it will happen later,” Trump said earlier this week. “You never know about deals. … I’ve made a lot of deals. You never really know. It may not work out for June 12.”
취소를 결정한 이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서신과 그의 공개적인 발언들을 놓고 보면, 역사를 만드느냐 아니면 나쁜 거래를 받아들이느냐는 갈림길에서 그가 선택을 강요 받는다면 전자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표현대로 하자면 “채널을 고정시켜 !”. 정상회담의 취소는 분명히 퇴각이지만, 종결이 아니라 감질나게 하는 예고편인 셈이다
In the battle between making history and avoiding a bad deal, it would appear — from both Trump’s letter to Kim and his past public statements — that he favors the former, if and when he is forced to choose. Which means, in Trump’s own vernacular, stay tuned! This is a setback, quite clearly. But Trump seems to be signaling that this may well not be the season finale but rather just a mid-season twist.
트럼프는 애매모호한 여운과 혼란을 남겼다.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후속편의 내용을 트럼프나 네오콘의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의 주인인 배달민족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함께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게 진정한 역사를 만들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허버트 맥매스터를 경질하고 존 볼턴을 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앉혔을 때 사설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존 볼턴은 공공연히 “북한에 대한 선제 폭격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당하다”고 외치는 강경파 중의 초강경파다. 미국이 힘으로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해야 한다고 믿는 ‘네오콘’의 핵심으로 꼽혀 왔다. 북·미 정상회담을 두 달여 앞두고 이런 인사를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자리에 앉혔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임명 직후 그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얘기했던 것은 다 지나간 일”이라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적었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일까.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밝혔을 때 볼턴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볼턴 보좌관 그룹이 대북 정책을 두고 의견차를 보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이를 두고 “네오콘의 승리”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정상회담 취소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던 북·미 간의 상호 비방 역시 볼턴이 출발점이었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북한 핵무기를 테네시주로 가져가야 한다”며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다. 그에 대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1부상은 담화문에서 “지난 기간 조미(북·미) 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었다”며 격분을 토로했다. 김 부상은 볼턴을 세 차례나 언급했고 “조미수뇌회담 재고려”까지 꺼내들었다. 여기에 펜스 부통령의 도발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비난이 이어지면서 북·미 정상회담은 수렁에 빠지는 듯했다.
다행히 북한이 김계관 명의 담화문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재차 표명한 2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6월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언제든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지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반도의 운명이다. 당장에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미국 일방주의 외교의 전형
볼턴은 1948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방관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는데 주로 노동계급 이웃들 틈에서 자랐다고 한다. 소년 시절부터 보수주의에 매료됐던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여 1964년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선거 캠프에서 일하기도 했다. 예일대에 진학한 그는 1970년 최우수 등급(숨마 쿰 라우데)으로 졸업한다. 이어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 법무박사(JD) 학위를 받는다.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1969년 볼턴은 베트남전 징병 추첨에서 징집 대상으로 뽑힌다. 그러나 그는 징집 명령이 떨어지기 전 메릴랜드 주방위군으로 입대한다. 당시에는 월남전 파병을 기피하기 위해 주방위군에 지원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훗날 “나는 동남아의 논바닥에서 죽기 싫었다. 베트남전은 이미 패배했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전쟁광’으로 꼽히는 그가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며 아직까지도 비난받는 대목이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볼턴은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를 거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공화당 정권에서 활동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 측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하면서 플로리다 주 개표 논란에 대응하며 맹활약했다. 이 공로로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2001~2005년)을 맡았다. 이때 이라크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보를 퍼뜨렸다. 미국 정보기관이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유포한 것이다. 이 주장은 나중에 허위로 밝혀졌지만 볼턴은 이후에도 이라크전은 옳았다고 계속 주장했다.
괄괄한 성격에 무자비한 관료적 승부 기질을 가진 볼턴은 국무부 내부에서도 분란을 일으켰다. 정당한 지적을 하는 부하 직원을 파면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딕 체니 부통령 등 실력자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용해서 하고 싶은 일을 관철하는 등 독선적 행동을 일삼았다. 때문에 상관이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수석 참모회의에서도 배제했다. 훗날 볼턴의 유엔 대사 지명에 이뤄졌을 때 공화당 의원들은 파월 전 장관에게 그의 자질을 물었다. 파월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정책 사안에서도 같이 일하기 벅찬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볼턴은 결국 유엔 대사 지명에서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하고 휴회기간을 통해 변칙 임명됐다.
볼턴은 북한과 악연이 깊다. 북·미 제네바 합의가 붕괴되고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북한과 미국은 경수로 발전소, 중유 제공과 핵개발 포기를 맞바꾸는 제네바 합의를 맺는다. 제네바 합의는 2002년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 과정에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격 파기된다. 이 사실은 <USA투데이>에 실리면서 기정사실화됐는데, 이 정보를 볼턴 쪽에서 유출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때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제네바 합의 파기를 위해 볼턴만큼 열심히 한 사람이 없었다”(뉴욕타임스)는 건 사실이다.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도 볼턴과 무관치 않다. 북한을 겨냥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입안한 것도 볼턴이다. 2003년 볼턴은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북한을 지옥 같은 악몽의 나라로 만든 폭군”이라고 말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인간쓰레기며 흡혈귀”라는 비난을 받았다. 북한은 2003년 제1차 6자회담을 앞두고 볼턴이 미국의 수석대표로 나오면 상종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볼턴은 결국 협상장에 나올 수 없었다. 볼턴은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 유엔 대사로 있으면서 북한을 완전 봉쇄하는 대북 제재안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유엔 대사를 지냈지만 정작 볼턴은 유엔을 ‘회색지대’ 정도로 폄하하며 ‘미국 일방주의’ 외교의 전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힘을 통한 국제문제 해결만이 가능하며, 미국의 외교정책이 유엔이나 국제협약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란 핵문제는 폭격이나 정권교체로만 해결 가능하다” “전쟁을 해서라도 중국을 주저앉혀야 한다”는 발언에서 그의 극단성이 느껴진다. 폭스뉴스 해설자로 활동하고 우파 성향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이슬람 혐오 음모론을 펴고 반이슬람 단체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사진: 중앙일보
볼턴을 임명한 트럼프의 속내는?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런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 앉혔을까. 더구나 볼턴 임명 전 주에는 역시 온건파로 불리는 렉스 틸러슨을 해임하고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에 지명하기도 했다.
볼턴은 트럼프 정부 출범 당시부터 국무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지만 트럼프가 그의 ‘콧수염’을 싫어했기 때문에 기용하지 않았다는 설이 나왔다. 물론 부시 행정부 시절 고위관리를 지낸 이들 상당수가 임명에 반대한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고집스러워 보이는 콧수염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볼턴 기용이 북한에 대한 ‘경고’라고 말한다. 볼턴을 배경에 세워놓는 것만으로도 북한으로서는 인상을 쓰고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는 “만약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이 실패할 경우 볼턴은 즉각 이를 북한을 공격할 근거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 대통령이 국무부와 국방부를 포함한 모든 국가안보 기관의 견해를 고루 듣고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 한편으로 대통령의 명령을 각 기관에 전달하기도 한다. 존 볼턴은 임명 직후 인터뷰에서 “내 역할을 정직한 중재자로 본다”고 말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다. 역대 국가안보보좌관들은 막강한 비공식적인 힘을 행사했다. 존 볼턴이라면 더욱이 믿기 어렵다.
다만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갑작스러운 회담 취소 선언이 보여주듯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 외에 아무도 알기 어렵다. 볼턴의 방식이라면 ‘선 비핵화 후 보상’이 맞겠지만 트럼프는 단계적 해법도 수용할 수 있다고 나오고 있고 북한도 “트럼프 방식을 은근히 기대했다”고 맞장구친 상태다. 오히려 볼턴이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울 경우 단명한 트럼프 정부의 다른 인사들처럼 되기에 십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 북미 정상회담 중지 발표 이후, 일본의 반응 -스가 관방장관, 일본만이 트럼프 결단 지지 -아베 총리, 북미 회담 전에 방미, 미일 정상회담 -고노 외상, 앞으로도 압력 지속, 변한 것 없어 -다시 분주해진 아베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중지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다음 날 러시아 방문 중이던 아베 총리는 6월 12일에 개최 예정이었던 회담이 중지된 ...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는 물론 “미국시민”이라 불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동의를 구하기도 전에 이란 핵협정을 무단 탈퇴하고, 곧이어 고성능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경의 예루살렘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잔혹 살해 행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자, 많은 이들은 우리가 마침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방정부가 윤리적 기준을 가진 직원들을 사실상 쫓아내는 것을 보면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를 비난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미국에는 근본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제도적 붕괴가 진행 중이다. 트럼프를 에워싸고 이 상황을 좌지우지 중인 무리는 불구덩이에 몰려드는 불나방처럼 어처구니 없는 극단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어디를 봐도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극심한 기후변화의 미래, 핵전쟁, 심지어는 자기 자식들의 미래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정신병자들에 가깝다. 이들은 엄청나게 부유하거나 또는 그렇게 부유한 자들을 위해 일하며, 미국과 소위 국제사회의 유대를 끊기 위한 최후의 단계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왔다.
이들이 즐겁게 파멸로 나아가는 길을 따라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또다른 세계전쟁을 촉발하기 위한 정신나간 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제3차 세계 대전 때는 뭘로 싸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4차 세계 대전 때는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싸울 것 같다.” 오늘날 사용가능한 무기들과 기후변화로 인해 눈 앞에 다가온 재앙을 생각해보면, 아인슈타인은 낙관주의자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2018년 5월 24은 전환점이 되는 날이었다. 어떻게 명나라 후기에 제도들이 붕괴하면서 내부로부터 강력한 정치 주체가 무력화되었는지를 설명한 레이 황(Ray Hwang)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 일어난 일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할 것 없지만 그 결과는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5월 24일, 두가지 사건이 발생했는데, 많은 한국인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또는 암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하고 포르노에 빠져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아픈 진실 추구에 주목하는 자들에게는 이 날 일어난 두 사건은 그 영향력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다소 경박한 편지를 보내 약간의 시간을 벌었고, 언론은 이를 두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런데 트럼프가 직접 서명한 이 편지는 보통 편지가 아니었다. 이 편지는 이제 미국의 대통령은 전세계에 미국을 대변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의회와 전문가는 물론 그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는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라는 선언문이었다. 그는 그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정치적 악몽이 마치 일시적인 오해인 척 구는 미국인이 놀랍도록 많다.
언론은 이 편지가 복잡한 협상의 한 단계일 뿐, 협상의 끝은 아니라고 했다. 이 편지가 협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낙관해도 좋다는 논리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편지가 북한과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미국 언론이 이런 긍정적 해석을 의도적으로 조장했다는 해석이 더욱 일리가 있다.
북미정상회담을 몇 주 또는 몇 달 미루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북한이 외신기자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현장에 초대한 바로 그 날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런 무례하고 위협적인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명백한 모욕이었다. 풍계리 행사가 완전한 비핵화는 아니지만 북한의 실행의지를 확인하고, 북한과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련의 호의적 행동의 첫 단추이다. 미국이 이 과정에 참여한다면, 비핵화로 나아가는 길도 가능할 것이다. 비확산 전문가 아무에게나 한번 물어보라. 핵무기의 파괴가 아니라 긴장완화가 첫 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이 편지는 분명 최고의 모욕이었다. 북한과 남한, 중국, 일본은 물론 북미회담을 시작하고 진정한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땀 흘린 모두에게 말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이 편지는 김정은만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전쟁 위협을 하면 미국의 경제적 및 정치적 요구에 완전히 복종하는 조건 외에는 그 무엇도 협상 대상이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낸 것이다.
5월 24일에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이 취소되었는데, 신문에 많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군사적 결정을 내리는 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갑자기 공식적으로 태평양사령부에게 하와이에서 열릴 예정인 2018년 환태평양해군합동연습(RIMPAC)에 중국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초대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다. RIMPAC은 중국군과 미국군이 함께 일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로 발전해왔다. 군사전문가들은 이 훈련을 태평양을 마주보는 가장 강력한 두 국가가 협력하기 위한 노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5월 공식적으로 중국을 RIMPAC에 초청한 바 있다.
이미 보낸 초대장을 갑자기 백지화 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중국이 성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싱가포르 회담을 트럼프가 취소한 바로 그날에? 이런 행동은 중국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라고 밖에는 해석하기 어렵다. 중국이나 미국의 일반적인 시민은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사계획을 맡은 자들에게 이런 결정이 몹시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십년간 이어질 악감정을 유발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고가 아니라, 트럼프의 생각이라는 데 있다.
동시에 중동에서도 군사대립의 추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전쟁 위험이 조금씩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는 뉴욕타임즈에 보도된 내용 중 뭘 믿어야 할 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미국 특공대원들이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시리아에서 충돌을 위해 첫 걸음을 뗐음은 분명하다.
이들의 작전은 모호해서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군인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의 미국 군대가 사실상 민간하청업자에게 고용된 용병이고, 책임이 없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환경에서 소규모 총격전 하나가 미국의 지휘 계통을 (또는 러시아의 지휘 계통을) 타고 올라가 전술핵무기 또는 다른 무기의 사용을 명령하는 상황으로 쉽게 치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자동화된 군대에서는 세계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는 그런 행동 하나가 대통령의 인가 없이도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게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위험한 행위도 전쟁 욕망을 채우기에는 불충분하다.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이라는 극단적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학살되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점차 이것이 냉혈한 정치적 술책이었던 듯 보인다. 이 시위대가 누군가를 위협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린 아이들이 총격을 당하는 모습에 전세계가, 특히 미국이 아니라 중동이 공포에 떨었다.
셈법은 간단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런 잔학행위로 이슬람 단체를 자극하면 결국 이슬람 군대가 이스라엘 내의 또는 이스라엘 바깥의 이스라엘인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공격은 그 공격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에 대한 개전의 명목으로 사용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공격을 시작한 자들을 이란과 연결 지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에 따라 이스라엘은 아마도 미국과 함께 이란에 바로 폭탄을 투하할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 (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뉴스를 잘 보지도 않고, 본다 해도 가장 형편없는 뉴스 보도에만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위에 언급한 모욕이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나 중국 또는 이란의 다음 반응은 주류 언론에 의해 기이할 만큼 공격적인 행동으로 묘사될 것이다.
지식인의 몽유병
이는 역사를 따라 몽유병에 걸려버린 지식층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은 (독일어로는 Die Schlafwandler) 오스트리아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의 장편소설 제목이다. 이 소설에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그리고 전쟁 이후의 암울한 시절, 유럽의 문화질서가 붕괴되던 당시의 세 명의 가상 인물들의 삶을 통해 당시 독일 지식층 사이에 퍼진 기이한 정신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하고, 직장에서도 능숙히 일하지만 마치 몽유병자처럼 가장 중요한 경제사회적 붕괴의 신호에는 완전히 둔감한 상태로 살았다.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굳이 알지 않고도 사회를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크리스토퍼 클락(Christopher Clark)은 이 제목을 차용해 2012년 자신의 책 “몽유병 환자들: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으로 향했나(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를 발간하였다. 이 책은 문학이 아니라 역사책으로 클락은 아무도 원치 않았던, 파괴적 전쟁으로 유럽국가들을 몰고간 정책과 경제원칙들을 설명한다.
클락은 긴장이 고조되자 유능한 외교관과 정치인들은 점점 더 기발한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긴장의 고조를 미룰 수 있었을 뿐, 무기 제조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나 정치인들이 직면하는 감정적 호소를 해결할 수 없었다.
트럼프의 싱가포르 회담 취소 직후 김정은과 문재인이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만난 것에서 바로 그러한 위험이 감지된다. 이것은 탁월한 외교적 조치였으나 미군 내 중국과의 전쟁을 부추기는 분파의 압력이 증대되고 있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클락의 책과 1914년에 대한 다른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종적인 교훈은 비밀외교의 중대성이다. 당시 모든 유럽국가들이 비밀외교와 군사조약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그물망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반대파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럴듯한 문서를 얼마든지 만들어냈다.
이 비밀 군사조약은 다양한 국가들이 상호 협력을 하는 방식을 좌우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대공(Archduke Ferdinand)의 암살이 기폭제가 되어, 오직 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진 이런 조약이 군사행동의 방향을 좌우했다.
보통 시민에게는 국가들이 하나 둘 집단 자살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듯 보이는 이 과정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적 투명성을 강조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시금 우리는 파국으로 치닫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시아 그리고 전세계는 수많은 고위급 군 당국자 회의를 통해 정보공유나 미사일방어 협력, 또는 기타 군대 간 협력을 논의해왔다. 뉴스에 등장하는 소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각종 기밀 협약은 분쟁 발생 시 각 당사자가 무엇을 할 것인지 수많은 규칙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정보공유” 협약들 중 상당 수는 사악한 첩보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고, 미사일 방어 협약은 미사일을 멈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협약들은 그보다는 위기 발생 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할 지 알릴 것인가를 규정하는 기밀협약인 것이다. 왜 이런 협약들이 비밀이어야 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긴 잠에서 깨어나 평화를 향해 긍정적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여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첫걸음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든 부정의 군중 심리를 탈피해,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인간 본성을 마주하는 것이다.
편집 주: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rules-based order in agreement 가 아니라 일방적인 power-based order 방식이다. 북한 문제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분인 미국 조지아 대학교 박한식 명예교수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협상에서의 미국 일방주의에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기사는 미국의 이란 핵 협상의 일방적 파기로 야기되는 복잡한 국제정세의 전개에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여 준다. 남북미의 향후 행보에 매우 소중한 참조가 되길 바란다.
미국은 동맹국들 없이도 세계를 관리할 수 있을까?
핵에 대한 이란의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어렵사리 성사시킨 국제합의에서 발을 빼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이다.
미국의 힘을 일방적으로 휘두르겠다는 아이디어는, 국가안보보좌관에 새로 임명된 존 볼턴의 오래된 생각이다. 2000년 볼턴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지금 유엔 안보리를 다시 만든다면, 상임이사국을 단 하나만 두겠다. 세계 권력분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금 볼턴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국제협력을 무시하는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란 핵 합의로부터 탈퇴하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프랑스와 독일 및 영국 지도자들이 몸소 전달한 호소를 거절했다. 이란 핵 합의에 관한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 일방주의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심각한 사례일 뿐이다.
지난해 6월 트럼프는 또 하나의 중대한 국제협약으로부터 미국을 철수시켰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바로 그 다음 주, 미국은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 모두가 줄기차게 반대했던 행동이었다. 또한 트럼프는 국제무역 시스템을 공격하는 중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 등 핵심 동맹국들에게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다.
이들 정책은 단순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아니다. 점점 더 “미국 고립주의(America Alone)”로 보인다. 이란 핵 합의 서명국 모두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반대했다(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찬성했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무역과 기후변화에 관한 트럼프의 접근법 역시 주요 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미국의 일방주의는 중동 지역에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여타의 더 광범한 지역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과의 비밀회담을 이끌었던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은, 이란이 미국의 탈퇴에 반드시 맞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장 위기를 촉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도의 원심분리기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식의 비교적 덜 도발적인 조치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비교적 조심스런 이란의 대응마저도,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요구하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및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이란에 대한 압력 수위를 조금씩 높이는 수단이라고, 그래서 더 많은 양보를 강제하는 수단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볼턴과 같은 트럼프의 핵심 보좌관들은, 이란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궁극적인 목표 아래, 진정으로 전쟁을 원하고 있을 수도 있다. 2015년 이란에 관한 언론 기고문에서 볼턴은 “오로지 군사행동을 통해서만 ……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이란 핵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트럼프의 결정은 서방의 동맹 내부에 심대한 균열을 가져왔다.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 결정으로 미국은 프랑스 및 독일과 갈라섰다. 그러나 당시에는 영국과 스페인, 네덜란드와 폴란드 등 이라크 문제를 두고 여전히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유럽 동맹국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란과 관련해서는, 미국을 확실하게 지지하는 유럽 국가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소리 없는 분노가 유럽에서 들려온다.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기만 한다면, 이란 핵 합의를 지속할 수 있지 않겠냐는 논의가 유럽에서 벌어져 왔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에어버스나 토탈 등의 기업들에게 미국과 이란 시장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제할 수 있다.
사진: 한국일보
미국의 경제 권력이란, 단순히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를 훨씬 넘어선다. 이란과 거래를 지속하는 유럽 기업가가 미국을 여행하다 체포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가능하다.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은행이 미국 금융시스템으로부터 퇴출되고 심지어는 기소되거나 엄청난 벌금을 얻어맞을 수도 있다.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화요일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독일 기업들은 즉시 그 활동을 종료해야만 한다.”
이 모든 상황은 미국 달러가 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전임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엄청난 특권”이라고 표현했던 달러의 역할 말이다. 미국이 적대 국가들은 물론 동맹국들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에 버금가는 달러의 힘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가 지니는 파괴력과 미국 사법 시스템이 미치는 광범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가 있다. 미국은 최근, 푸틴 정부와 밀접한 러시아 과두세력의 일원 올레그 데리파스카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겼다. 유럽 경제계와 금융권은 데리파스카가 대표로 있는 세계2위의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과의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위협 때문이다.
심지어는 세계축구협회 피파의 몇몇 임원들 역시 미국 달러가 지니는 국제적인 힘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2015년 스위스에서 체포되었고 미국으로 인도되어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미국 은행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들의 법률적 약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중심 역할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건 미국 행정부는 경제라는 대단히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너무 자주 사용하면, 이 무기가 지니는 힘도 약화된다.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미국을 우회하는 대안 국제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여 달러 이외의 통화를 사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제는 유럽 역시 이러한 노력에 매력을 느낀다. 특히 유로의 국제 역할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유로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새로운 통화이며, 중국의 위안화는 모든 통화와의 환전이 어렵고, 러시아 루블은 아직 도전장을 내밀 처지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 이외 지역에서 유로로 거래하는 기업들조차도 잠재적으로는 미국 시장에서의 퇴출이라는 위협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세계 경제계가 달러 사용 중지를 선언하면서도 희희낙락하고 미국 시장을 외면할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었다. 이러한 달러의 영향력 때문에,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일방주의를 휘두를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크다고 트럼프가 믿을 수도 있겠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 혹은 파리기후협정 탈퇴가 용인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릴 수 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결국 유럽의 동맹국들은 미국 달러에 의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반복해서 상기시켰듯이 미국의 군사 보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유럽이 스스로의 방위를 위해 “보다 노력”해야 하고 유로의 통합력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논의가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책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믿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적, 실질적 통합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아직은 어떠한 시도도 점진적일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 역시 유사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와 철강에 대한 관세 위협에 일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의 회담을 계획하는 트럼프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동경에게는 미국의 안전보장을 손쉽게 대체할 대안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치러야 할 대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가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을 자국의 전략적 경쟁 상대라고 지목해 왔는데, 미국이 이들 국가와 비교하여 지니는 차별성은 동맹국들과의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대단히 중요한 자산을 제공한다. 해외 군사기지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탕이다. 동맹국들과의 정보 공유는 미국이 테러 위협을 봉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마음 맞는 파트너란 법과 무역의 표준을 확립하는 데 요긴하다. 무엇보다 이들 동맹국은 미국이 자국의 힘을 행사하려고 할 경우 정통성을 제공한다.
미국이 모든 도전에 군사력이나 경제제재로 맞설 수는 없는 일이다. 평상시에 미국은 “규칙에 입각한 국제질서”에 의존한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동맹국들이 구축한 법과 제도의 네트워크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맞서, 미국은 국제법에 호소했고 유엔 등에서 여타 국가의 지지를 동원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규칙에 입각한 질서가 그 기능을 발휘하려면, 때로는 미국 역시 그 규칙에 제약받을 용의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세계무역기구의 달갑지 않은 결정을 받아들인다거나, 미국에게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란 핵 합의 조항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볼턴 등의 보좌관들은 이러한 제약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 대신 힘을 바탕으로 하는 질서로 이동하려는 시도이다. 미국이 규칙을 정하고 여타 국가들은 이에 따르도록 강제되는 질서다. 한동안은 이런 질서가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중동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행동할 의지가 확고한지 시험하려는 경쟁자를 초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훨씬 더 위험한 세계로 이끄는 비결이 되겠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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