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핸드폰 증가 수로 북한의 체제전환을 예측한다?

지역

핸드폰 증가 수로 북한의 체제전환을 예측한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12/28- 14:49

스스로 대국(전략국가)이라 칭하던 미국이 참으로 ‘쪼잔’하게 됐다. 불러도 대답 없는 조선(북)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희망사항만 담긴 2019년도 1월, 혹은 2월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그렇게 기정사실화하고 싶으니 말이다.

 

전략은 없고, 그렇게 희망만 있다. 그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전략적 발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냥 내년 1월, 혹은 2월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만을 바라고, 기정사실화한다. 상대방인 조선(북)은 ‘떡 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똥줄이 그렇게 타고만 있다.

 

사실 그 전략적 발상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자신들 스스로가 약속했던 대북제재 해제와 종전선언 약속이행이라는 그 전제조건을 보다 ‘분명하게’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대도 그럴 생각대신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서는 미국인의 조선여행금지를 완화하겠다고 한 것이라든지, 비건(대북정책 특별대표)을 한국에 보내서는 자신들의 대북정책 통제장치인 워킹그룹에서 마치 선심이나 서듯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제재를 ‘(예외)면제’해주겠다고 제법 생색을 낸 것이라든지, 12월 22일(현지시각)보도를 통해서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전주에 UN에서 ‘북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연설을 준비했으나 취소했다는 그것을 근거로 조선(북)에게 마치 대화의 조건을 마련하는 시그널이 되었다는 등 비본질적인 접근으로 마치 본질적인 제약조건-대북제재 해제와 종선선언이 마련된 냥 호들갑을 떤 것이다. 더불어 여기에 부화뇌동된 청와대와 여권, 대북전문가들과 지식인들도 그 정도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건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으므로(미국이 그렇게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북이 응답해야 된다는 조언들을 늘어놓는다. 청와대도 내심 이런 분위기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안이한 정세판단이고, 조선(북)을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는 사실이다.

본질은 누누이 말하지만, 그런 꼼수로는 조선(북)을 절대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가 없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약속해놓았으면 이를 지키겠다는 그런 이행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 즉 북을 정상국가(혹은, ‘전략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불량국가, 깡패국가, 언젠가는 무너질 국가정도로 상정해놓고 그렇게 요리하려 든다면 조선(북)은 절대 그러한 미국의 의도에 말려들지도 않을뿐더러 더는 대화상대로도 취급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본질은 이렇듯 조선(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태도와 그런 태도에도 끽소리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여권, 청와대와 대북전문가들의 인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해서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그런 꼼수로는 절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려지지 않는 다는 사실, 그것만은 확실하고 이는 곧 미국이 동시행동과 비례성의 등가교환문제를 ‘많은 것을 받고, 조금 생색내는 것으로는’도저히 성립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데 있다.

칼럼_181228(2)

다시말해 철저하게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대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라는 그 원칙적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신뢰성 있게 풀어가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문재인 정부에게도 4월 판문점선언에서 확인한대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미국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대북제제 해제와 종전선언 약속이행을 위해-미국을 설득해야 함을 안내해주고 있다. 즉, 12월 답방무산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보낸 분명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캐치하고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해서 참모들은 엉뚱한 보고를 통해 다른 판단을 하게끔 대통령의 귀와 눈을 닫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께서 본질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볼 수 있도록 조성된 정세국면을 제대로 보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정도해놓고 본 주제와 관련된 글로 들어가 보면 2018년 상반기 어느 날이 소환된다. 부산에서 진행된 남북·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강연회가 그것인데 당시 이 행사는 민족사적 관심과 세기적 변화 동인이 관련되어있으니 당연히 가장 핫한 뉴스일 수밖에 없었다. 내심 대북전문가들이 무슨 말들을 쏟아낼까 싶어 참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시기에 맞게 사람들도 참 많이 모였다.

결론은 실망 그 자체였다. 당시 드러난 현상 그 자체, 즉 남북·북미관계 분위기만을 반영하듯 발표자 대부분은 장밋빛 환상만 쏟아냈다. 비례해서 문 대통령(정부)에 대한 칭찬 일변도였다. 약간 불편했다. 문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본인들이 지금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문재인 정부의 전도사가 되어서야만 했을까? 그것도 정부 공식행사라면 모르겠으나, 민간학술행사에서 문비어천가만 남발한다? 참으로 좋지 않은 풍경이었고, 비(非)지식인적 모습이었다.

생각해봤다. 사랑의 색깔이 그렇게 문비어천가 밖에 없었을까? 하고 말이다.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봤으나 역시 ‘그건 아니’였다. 즉, 참된 지식인의 진짜사랑이 ‘비판적’에 있어야 함을 망각한 그 결과가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지식인들조차도 관료들이 볼 수 없는, 즉 박제화된 보고서와 시스템, 그리고 정부정책 틀 안에서만 바라보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또는 권력의 속성상 최고 권력자가 듣고만 싶은 것만 전달하려는 출세주의자들의 준동도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둔 자각 속에서만 자기역할이 찾아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조조선시대에도 그러하질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당연히 정부 밖의 대북전문가라면 정부가 볼 수 없는 그런 시각과 내용을 비판적으로 조언하고 코멘트 해줬어야 했던 것이다. 앵무새처럼 정부정책을 그대로 해설해주고 더 첨언해준다면 그건 지식인도, 대북전문가라고도 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 정도 역할을 하기위해 그 고급스러운 정보·지식을 습득하고, 불편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선(북)의 속내를 읽어내고자 하는 노력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 전문가의 책무는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는 더더욱 그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다른’ 전령사 역할들을 하는 것이 학자들이고, 전문가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하나, 심지어 촛불시민혁명이 들어선 이 마당에도 조선(북)을 제대로 보려 하는 학자와 대북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재적 접근을 포기하고, 오직 외재적 접근만으로 조선(북)의 그 마음을 헤아려 보려한다. 그러니 남북교류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의 상대방, 파트너로만 조선(북)이 보일 뿐이다. 철저한 도구적 관점과 기능주의적 접근방식만 있고, 그것도 희망적 사고방식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조선(북)은 호응해 나오겠지…’그 정도의 대한민국 중심주의적 발상뿐이다. 조선(북)의 관점에서 그 정세국면과 그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악해주려 하지 않는다. 기껏 파악해주더라도 경제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조선(북)은 그렇게 밖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런 진단과, 말만 되풀이 되고 있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정부와 여권관계자들, 언론과 대북전문가들 거의 대부분은 내년(2019) 초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을 기정사실화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세국면 하에서는 전문가는 다른 분석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내년 초’는 위에서 확인받듯이 미국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말해주어야 하고, 그 희망사항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조선(북)이 응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라는 제1차 정상회담 합의정신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동시행동·단계별 해결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안내하고, 이 과정에서 또 대한민국은 정부 스스로가 규정한 지렛대 역할(혹은, 운전자 역할)로 판문점선언에 맞게-‘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정신에 기초해‘종전선언’과 ‘대북제제 해제’를 미국에게 건의(설득)하고, 그걸 해결하기 노력해야만 제4차 남북정상회담도 열린다는 것을 정부에게 건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기능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 지금의 국면 하에 맞는 지식인(대북 전문가)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자신들의 기능과 역할은 놓아두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반드시 ‘북핵’비핵화 로드맵이 짜져야한다는 둥(그것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의제는 무엇이 되어야 하고, 보다 확실한 비핵화 답변을 들어야 한다는 등 그런 의견 제시만 있으니 정말 무책임 한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진도를 내기위한 방도를 제시하기 보다는 그냥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얘기정도를 남발하는 것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북전문가가 될 수가 없다.

다시말해 지금의 남·북, 북·미 정세국면에서 가장 큰 장애가 조선(북)의 약속 불이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 있고, 그런 미국을 판문점선언 정신-‘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설득해내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에 있음을 건의하고, 그렇게 조언하고 직언하는 역할을 정부밖에 있는 대북전문가가 취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건만 해도 그렇다. 연내답방과 관련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렸다’고 그렇게 인식하는 대통령께 “대통령님,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연내 답방은 오히려 대통령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버티는 미국으로부터 ‘제재해제’와 ‘종전선언’을 확약 받는데 성의를 다하고, 이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을 이끌어 내셔야만 합니다.”그렇게 조언하고 직언하는 참모와 대북전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민족공조는 철저하게 구동존이(求同存异)의 원칙과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 만약 그런 인식을 확고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민족)공조가 강화되면 될수록 오히려 정부는 정부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조선(북)체제와 그 경제작동방식을 자본주의식으로 체제전환과 흡수통합이 가능하다는 인식으로 확장이 이어지고, 종국에는 그 공조마저도 파탄될 수밖에 없다는, 즉 뿌리 깊은 대한민국체제중심의 우월주의로는 절대 남북관계 개선마저도 힘들다는 사실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공존·공영·공리의 이념에 따라 차이를 인정하고 통 크게 하나 되는 그런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모든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그러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보다 동질성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진리를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조선(북)을 그냥 교류협력의 파트너, 또는 문재인 정부가 취하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성공조건만으로 조선(북)을 활용하려 들고, 그런 인식정도로 남북경협을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이용하려 들겠다는 그런 시각으로는 절대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경협도, 신경제지도도 완성될 수가 없다.

그런 우려는 여기에서 그쳐지지 않는다. 조선(북)이 지금 핸드폰 가입자 수가 5백만 시대를 넘었고, 장마당 수도 증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작 이를 두고 대북전문가들이나 정부에서조차도 조선(북)체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결정적 징표 운운할 정도이니 이는 절대 정상적인 인식이지 않다. 비례해서 제대로 된 남북관계 개선도 바랄 수 없다.

(장마당의 증가도 중요하지만,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는 품목 등이 중국산에서 북한산으로 채워진다든지, 그렇게 중국까지 가세하여 국제적인 제재가 작동되고 있었지만, 품목수도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는 장마당에 의한 자본주의적 지표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북한식 사회주의제도를 보완하는 ‘개건’적 실리사회주의경제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측면도 분명 있는 것이다.)

칼럼_181228

이유는 간단하다. 이 인식에는 조선(북)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고 물질 문명화되면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동경도 높아지기 때문에 반드시 조선(북)은 체제전환을 할 수 밖에 없고, 또 좀 더 깊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교류협력의 결과가 조선(북)체제의 전환과 흡수통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제 아무리 백번양보 해 위 요인들을 해석해 위의 변화-핸드폰 가입자 수와 장마당의 증대가 조선(북)이 변화하고 있다는 한 요인과 동기는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변화가 조선(북)체제 전환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렇게 단정 지어야 할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데 있다. 오히려 역으로 보자면 장마당 활성화는 내각의 정책과 당의 통제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이고, 핸드폰 수 증가는 사회주의 발전노선이 정상궤도로 진입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현상을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인식이라는 그 한 방향으로만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참으로 몰이해적 조선(북)인식하기에 다름 아니게 되었다. 철저한 희망적 인식의 한 단면이고, 조선(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대한민국 대북전문가들의 한 민낯에 다름 아니다. 즉, 조선(북)을 조선(북) 자신이 설정한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존중하고 이해해주기 보다는 언젠가는 자본주의체제에 백기항복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체제전환을 할 것이라는 그런 기대와 희망만 녹여져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고-그 희망적 사고를 한 꺼풀 벗겨내고 조금만 더 사회과학과 그 이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상과 철학에 이 문제를 접근시켜 보고자 한다면 핸드폰 가입자 증가수와 자본주의적 지표의 증가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정상적인 사회주의 발전노선을 따라가고 있다는 그런 인식을 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못살아야 한다는 사회과학 이론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그럼으로 이 문제는 사회주의체제에서 핸드폰 증가는 체제후퇴로서의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사회주의체제에 더 근접하고 접근해가고 있는 그들의 노력과, 지극히 정상적인 궤도를 따라 돌고 있는 그들의 국가정책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주의체제하에서의 물질문명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말이다.

이는 조금만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생각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가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는가 안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역사발전단계로서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해낸 체제라 했을 때 사회주의체제는 자본주의체제보다 더 잘살고 문명한 사회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사회이론으로서 그렇다는 말이고, 오히려 기간 사회주의국가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더 문제였기에-우리가 그런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안하고와는 상관없이 앞으로는 사회주의가 더 많은 물질문명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그런 인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선(북)에서 핸드폰 가입자 수 증가는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가능성 지표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체제가 가난하지 않고, 과학적 물질문명혜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지극히 정상적인 체제로서의 물질문명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분석해줘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핸드폰 가입자 수 증대가 자본주의체제로의 체제전환이라는 억지논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실제 핸드폰 가입자 수 증대는 조선(북)이 자신들이 설정한 사회과학적 이론에 부합하는 사회주의체제로 진입하고, 그 건강성이 증명되고 있다는 가설을 성립시켜 조선(북)은 원래대로 사회주의체제가 더 많은 물질문명혜택을 누려야 하고(아니, 더 누려야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핸드폰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것이 그들이 설정한 이론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설명해내어야 할 것은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그렇지 못했던 이유와 근거를 설명해내어 국민들이 불필요한 오독과 오해를 하지 않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대북전문가라는 사람들은 … 핸드폰 사용자 수 증가가 왜 자본주의체제를 동경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고, 체제이탈의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 이론적 불구자가 되어야 하는지가 지금 이 촛불정부 하에서도 되풀이 되어야만 할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궤변도 그런 궤변이 없는데 말이다. 지독한 희망적 사고이고, 이런 것들로 자꾸 환상을 가지게 되면 종국에는 조선(북)에서 인민생활향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폭동이 일어난다는 것과 같은 주의·주장을 남발되게 되고, 그런 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국민들은 또 그렇게 잘못된 인식으로 조선(북)을 이해해 가야만 한다. 악순환의 되돌이표는 그렇게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제발 부탁드린다. 조선(북)체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고무 찬양하는 것과는 하등 인연이 없음을 직시해내자. 적대적 공존과 체제경쟁을 해야 했던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GNP와 GDI가 수십배 차이가 나지 않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 진실과 팩트에 눈을 감아야만 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체제의 건강성에 대해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물론 조선(북)도 인민생활향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선(북)체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성’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민생활향상이 제 아무리 당면과제라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의 문제를 훼손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조선(북)의 정신도 같이 제대로 봐줘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그러한 인식으로 계속 조선(북)을 봤더라면 조선(북)은 열 백번도 더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고, 폭동이 일어나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지금 조선(북)이 2020년까지 달성하기로 된 제5개년 국가발전전략의 그 성과가 미흡하더라도 김정은 체제가 휘청거리거나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런 판단과 진단은 틀 릴 수밖에 없으며, 또 김정은 정권은 이유 불문 미국과, 대한민국과 자신들에게 불리한 비핵화를 하면서까지 대화와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그런 망상은 정말 북을 몰라도 정말 모르는 인식의 한 파편밖에 되지 않음을 자각해낼 수가 있어서 그렇다.

조선(북)은 그렇게 자신들이 설정한 인민생활향상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여 폭동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국가이다. (흘려온) 시간도 충분히 이를 증명해준다. 분단이후 60여 년간 그들은 늘 그런 상황 하에서도 폭동대신, 자주와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해왔다. 그렇기에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듯이 마찬가지로 이는 2020년도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식민지 민중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저버리지 않는 한, 또 그런 인민적 동의가 철회되지 않는 한 말이다.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앞선 원칙은 조선(북) 스스로가 택한‘자주’를 지켜내겠다는 철학이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제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다 하더라도 자주의 문제와 바꾸지 않겠다는 그 조선(북)의 입장과 태도를 보지 않는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조선(북)사회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과 같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자꾸 희망적 사고로만 보려한 결과가 지금까지 보려고만 했던 그런 조선(북)의 모습이라면 이제는 그런 망상에서 좀 벗어날 때가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어났더라면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할 때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폭동이 일어났어야 했고, ‘아랍의 봄’때도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북)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가 설계한 그 사회주의 궤도 따라 나아가고만 있다. 그런 조선(북)을 이제는 보자.

해서 결론은 핸드폰 가입자 증대가 사회변화의 한 지표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 어떤 대북전문가가 말한 것과 같이 그 지표의 변화가 체제전환과 같은 그런 지표의 변화로 진단하는 것은 체제이탈자수(탈북민)로 체제전환을 예측하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이고 이론적 오류임을 간파해내자. 그 반대편, 물질문명국가로서 사회주의국가체제가 더 잘 작동시키기 위한 그들의 국가정책으로 봐주고 이해하자. 그래야만 맞는 해석이고, 그렇게 해석이 맞아야만 제대로 된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음을 명심하자.

 

통일뉴스, 2018년 12월 25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작년 9.13대책 이후 거래량이 급감하고 일부 랜드마크 단지 위주로 가격도 급락했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올 여름 완연히 기운을 차린 듯한 모양새를 보이자 향후 서울 아파트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거의 모든 미디어들과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은 지금이 바닥이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먼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가격은 인구총량 및 생산가능인구의 변화, 도시화 정도, 산업구조의 변화 등의 요소, 각종 거시경제(금리, 환율, 경제성장률, 1인당 실질구매력, 실업률 등)지표, 수급 등의 요소에 의해 중장기적으로 규정된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정책- 공급(공급량-공급유형과 로케이션 등, 분양방식-원가공개, 후분양제, 청약제도, 실질주택보급율 등)정책, 수요(세제-취득세, 보유세 및 양도세 등)정책, 금융(주택담보대출-LTV 및 DTI- 관리)정책,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주거복지 정책, 개발이익환수장치(개발부담금, 재건축 규제 등)정책 등-도 부동산 가격에 중단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즉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장,중,단기적으로 허다하며, 경중과 선후가 있지만 지극히 복잡하다.

위에서 열거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에 호재는 찾기 어렵다. 인구 등의 장기요인, 성장률 등 거시 지표 등은 향후 서울 아파트 가격을 암울하게 만드는 요소이고, 서울에 신규로 공급되는 아파트 총량도 2024년까지는 충분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서울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강하게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격 상승에 친화적인 정책도 아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유일한 호재는 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인데, 이마저도 대출 관리가 엄격하게 되고 있는 점, 기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다는 건 경제주체들의 체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호재라고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올 4월 이후 8월까지 거래량 상승을 동반한 전고점 회복을 보인 끼닭은 무엇일까? 부동산가격 상승을 주구장창 주장하는 미디어,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들,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의 여론조작과 그에 현혹된 시장참여자들의 가격상승기대감이 주범이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미디어, 자칭,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은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다주택자들이 투기목적으로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는 한 서울 아파트 수급이 문제 될리 없다)부족하니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화폐개혁을 하면 서울 아파트 가치가 더 올라갈거라고 주장하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하면 신규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갈 거라고 주장하고, 기준금리 인하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3기 신도시 토지보상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기승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론인 셈이다. 견강부회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서울 아파트 시장은 대세하락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장,중, 단기 요인들이 거의 모두 가격하락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 2014년 가을부터 시작된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세로 말미암아 강남과 마용성은 고사하고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의 신규 아파트 가격조차 평당 3천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가격 피로도가 극심하다는 점, 가격에 선행하는 지표인 거래량이 작년 8월을 정점으로 확연히 꺾였다는 점(올 8월 이후의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은 거래량이 줄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장세인데, 이는 대세하락의 초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 반대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바닥이었던 2013년 같은 경우는 거래량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장이었는데, 이는 대세상승의 초입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등이 그 근거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는 사실, 서울 아파트도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시장을 지켜볼 때지 시장에 뛰어들 때가 아니다.

목, 2019/11/07- 20:35
1
0

종부세 강화법안이 미통당의 몽니와 패악으로 20대 국회를 통과 못하고 사실상 주저앉았다. 종부세 강화 법안이 무산되자 시장에선 즉각 매물을 거둬드리는 소유자가 등장했다.

 

확실한 신호를 줘야 부동산이 제자리 찾을 것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할 일이 차고 넘치지만 무엇보다 먼저 처리할 게 종부세 강화 법안의 처리다. 시장참가자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줘야 부동산 시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시장참가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부의 신호는 보유세에 대한 태도다.

기실 2012~2013년 대바닥을 찍고 2014년부터 상승하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 가파르게 상승한 데에는 시장참여자들의 광기를 제어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 탓이 컸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는 시장안정 대책의 축차적 투입으로 인한 정책효과의 감소에서도 기인하지만, 보유세에 대한 극히 미온적인 태도 탓이 결정적이었다.

보유세 강화만큼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정책수단도 찾기 힘든데 문재인 정부는 한사코 이를 회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와 같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장장 6년 간의 상승랠리를 구가했다. 이는 역대 최장기간 상승기록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4년 9월 4억 6186만원에 불과(?)했던 서울아파트 매매중위가격은 올 4월 8억 3666만원을 찍었다. 무려 80%가 상승한 것이다.

그나마 이건 약과다. 신축아파트로 눈을 돌리면 정말 쇼킹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서초의 랜드마크 신축 아파트가 평당 1억원을 돌파했다느니 하는 소식은 그들만의 리그로 여기면 된다 싶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다. 마포의 랜드마크 신축 아파트가 전용 84제곱미터 기준으로 15억원을 넘고 영등포와 중구의 랜드마크 신축 아파트가 13억원을 넘는다. 교통이 그리 좋지 않은 뉴타운의 신축아파트가 전용 84제곱미터 기준으로 12억 내외이며, 변두리로 불러도 좋을 로케이션의 신축 아파트도 10억원 내외를 호가한다.

시간을 거슬러서 2014년 10월로 가보자.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고 불러도 좋을 한강변 서초 아크로리버파크가 2회차 분양을 했을 때로 말이다. 당시 아크로리버파크의 평당 분양가는 5천만원이었는데 이는 당시까지 역대 최고가였다. 이 분양가가 현재 마포의 대장 아파트 매매가격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불과 6년만에 ‘서울 아파트값의 강남화’가 진행된 것이다.

부동산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대오각성해야

부동산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는 무주택자들에게 악몽을 선사한 정부, 꿈과 희망을 앗아간 정부다. 반면 문재인 정부 아래서 서울에 신축 아파트(전용 84제곱미터 기준)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최소한 10억원대 부자로 비상했다. 투기에 가담하지 않은 무주택자들은 너무나 가난해진 반면 주택을 소유한 이들은 가치의 생산에 아무 기여도 없이 천문학적 부를 거머쥔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해선 정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맹성해야 옳다.

각설하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결자해지의 각오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서울 아파트값을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수준으로 돌리겠다는 목표를 천명하고 이를 달성할 정책수단들을 투사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종부세 강화임은 긴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에게 경제는 곧 부동산임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화, 2020/05/12- 23:12
1
0

문재인 정부가 6.17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에 붙은 이상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 주요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들이 신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풍선효과 탓에 파주나 김포 등에 위치한 아파트들도 투기의 대상이 돼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6년 연속 대세상승을 이어와 6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격대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쇼크가 실물경제에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처를 입히는 중이다. 오를만큼 오른데다 미증유의 역병사태 탓에 실물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휘청대는 와중에도 서울 아파트 시장이 재차 꿈틀대는 이 기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 아파트값에 직접적이고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보다 기존 재고주택의 출회량

서울 아파트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수다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영향이 큰 요인은 기존 재고주택(신규 공급이 아니다)의 매물 출회량이다. 문재인 정부가 4번의 큰 부동산 대책들(2017년 8.2대책, 2018년 9.13대책, 2019년 12.16대책, 올해 6.17대책)을 연이어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기존 주택을 가진 사람들(특히 다주택자)이 자신들이 소유한 주택을 팔지 않고, 도리어 기존 재고주택 매매시장에 신규로 구매자들이 계속 유입되기 때문이다.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는데 구매자들은 많으니 거래가 될 때마다 가격이 계속 치솟는 것이다. 그럼 기존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왜 주택을 팔지 않는 것이며, 할 말을 잃게 많들 정도로 비싼 주택을 추격매수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주택을 사려고 아우성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적어도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부동산대책들은 나름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내리누르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그 대책들마저 취임 초기에 일괄투사된 것이 아니고 시차를 두고 축차적으로 투사되다 보니 시장을 내리누르는 건 고사하고, 기존 주택재고시장에 신규 구매자가 유입되는 걸 차단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재고주택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을 가해야 한다. 즉 다주택자들이 투매의 선두에 서고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조건의 1주택자들이 투매의 뒤에 서는 상황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게 만들 4종 정책패키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다주택자들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릴 1주택자들이 주택을 들고 가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다주택자들과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린 1주택자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을 4종 정책세트는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1주택자 양도세 감면 폐지+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강화+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전면적이고도 소급적인 폐지’다.

먼저 특례와 공제를 대거 없앤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을 최대한 신속히 발표해야 한다. 예컨대 현재 실효세율 0.16%에 불과한 보유세 실효세율을 10년 내 1%수준까지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싶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혁명적으로 높이기 위해선 보유세의 과표가 되는 공시가격의 현실화, 과세기준과 구간의 획기적 강화, 세율의 대폭 상향 등이 망라되어야 한다. 혹시 조세 저항이 우려되면 기본소득과 결합시켜도 좋을 것이다. 빠져 나갈 구멍이 거의 없게 설계된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는 기존 주택 소유자들과 주택 구매희망자들의 기대수익률을 큰 폭으로 떨어뜨려 기존 주택 소유자들은 주택 매도를, 주택 구매희망자들은 매수 의사 철회를 각각 결심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의 기본원리에도 정면으로 반하고 투기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혜택을 폐지하여야 한다.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는 똘똘한 1채를 비롯해 온갖 부작용의 온상이다. 이제는 실수요 1주택자라는 신화와 작별해야 한다. 1주택자라도 가격에 상응하는 보유비용을 응당 부담해야 하고,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당연히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아울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지금 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향유하는 양도차익은 최악성의 불로소득이다. 이런 최악성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차익의 대부분을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환수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 다만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강화를 앞두고 5개월 남짓의 유예기간을 줘서 다주택자들이 시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정도의 정책적 배려는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조세회피처와 투기의 소굴 역할을 하는 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전면적이고도 소급적으로 철회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자, 만약에 이 4종 정책패키지가 발표되고 추진된다고 가정해 보자. 다주택자들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1주택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응당 보유 매물을 시장에 급매로 던지고 시장을 빠져나가려 아우성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보유세 고지서가 날아오고, 5개월이 지나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강화가 시행되며, 1주택자도 양도차익을 온전히 사유화할 수 없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대부분이 소급적으로 폐지될 판에 어떤 간 큰 소유자들이 소유 주택을 들고 가겠다고 마음을 먹을 것인가? 시세차익은 고사하고 손해를 볼 마당에 말이다.

시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다주택자들과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린 1주택자들이 던진 매물들이 눈사태처럼 시장에 출회되면 추격매수세는 눈 녹듯 사라지고, 투매가 투매를 부르는 시장이 펼쳐질 것이다. 시장의 기조는 완전히 바뀌고 대세하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투기꾼을 쫓을 것이 아니라 투기꾼이 발붙일 공간을 없애야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투기꾼들을 쫓아왔다. 그리고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는 유능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은 투기꾼을 쫒는 것이 아니라 투기꾼이 발 붙일 공간을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파르티잔들을 소탕하는 최고의 방법은 파르티잔들을 직접 토벌하는 것이 아니라 파르티잔들이 운신할 촌락을 소개하고 양도를 끊으며 동선을 차단하는 것이다. 성벽을 굳게 지키고 곡식이 자라는 들을 태우면(堅壁淸野) 파르티잔들은 스스로 시들어 없어진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총선 압승을 통해 서울 아파트 시장에 매물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게 만들 4종 정책패키지를 입법화하고 추진할 힘을 지녔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의지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가 서울 아파트 시장을 확실히 하향안정화시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몫이다. 서울 아파트 시장을 못잡으면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월, 2020/07/13- 22:34
1
0

상기의 사진들은 14년 전인 2006년에 북측의 초대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일부 기업들의 입주가 시작한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전문적으로 준비된 사진들이 아니지만 당시의 환경과 분위기를 전달해주고 있다. 비록 미국이 지원을 포기했지만, 남북 당국이 협력하여 개성산업단지GIC를 착수하여 진행해온 점은 매우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개성이 폐쇄된 오늘 GIC를 둘러싼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이는 124개의 업체와 5만 4천명의 북한 노동자와 700여명의 남한 관리자들이 함께 일해온 역사적 현장이다.

미국이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선회한 탓에, GIC가 준공되어 가동을 시작한 이래 워싱턴은 이에 대해 적정한 평가를 내린 바 없다. 1994년 제네바 일반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조지 W. 부시 정권이 2001년에 들어서면서 이를 무시하였다. 2015년에 발생한 이란과 맺은 핵협정의 파기에 대한 비극적이고 전초적인 사건이었다. 2001년과 2015년 당시 동일한 인물들이 개입하였는데, 그 중의 한 인사가 바로 존 볼턴이다.

개성공단의 운용이 함께 일해온 5만4천명 북한노동자의 일상이 한국전쟁 이후 가장 인도적으로 전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외부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GIC는 매우 상징적인 사업이었으며, 남과 북이 함께 이룬 성공이었다.

미국의 경제분석가들은 GIC의 운용이 자본주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비판적이었고 이에 따라 미행정당국은 광범위하게 감시를 지속하여 왔다. 북한에 지불되는 임금에서 시작하여 남한이 제공하는 각종 지원의 내용들을 이들은 변칙으로 간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내의 몇몇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은 GIC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왔다. 만약 이들 검토가 현실로 진행되었다면, 북한 경제가 지니고 있는 투자의 위험을 보다 안정적으로 전환시켰을 것임에 분명하다. 대부분의 외국투자는 선행된 최초의 투자를 따라서 이루어진다. 이런 검토가 현실화되었다면, 투자의 규모는 점차로 확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물론 실현되지 않았다. 2001년 조지 부시가 당선되면서 투자확대의 검토는 철회되었고 GIC의 활력은 사라졌다. 남한 정부 (이명박 정권) 역시 계획대로 규모를 유지하고 확대할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던 점도 실패의 원인이었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6년 산업공단을 폐쇄하였고, 포용정책이 만들어 낸 성과물은 과거의 추억으로 남았으며 이후 강압정책으로 재개되지 못했다.

 

GIC의 미래전망

현재의 시점에서 북한과 협력하여 GIC를 새로운 경제사업의 차원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워싱턴과 서울 당국의 주요 현안이다. 분명한 것은 서울당국이 기대하는 만큼 워싱턴이 당분간 이 현안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남한 당국이 상황을 주도해야만 한다.

만약에 GIC사업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서울과 워싱턴 당국이 포용정책으로 이를 지원하려 했다면, 투자에 대한 적정한 규제의 절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해관계의 일차적 당사자인 남한은 북한과 함께 그러한 절차의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매우 합당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구가 필요한 배경에는 1980년대 말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발생한 경제적 재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당시 국제사회는 러시아를 순리에 맞게 시간을 두고 개방하면서 공공의 자산을 공공의 목적에 따라 처분하고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못된 일들을 진행하였다. 국가소유의 기금들이 소수의 조직된 권력자들에 넘겨지고 일반시민들은 사기를 당했다. 당시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외부의 행위자들(서구세력들)이 보다 적극적(전향적)으로 협력하는데 실패했다고 당시에 관계하였던 많은 이들이 증언한다.

GIC에 대한 다른 사례는 현대그룹이 남한 정부와 무관하게 사전에 북한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보였던 탐욕과 이기심이다. 미리 합의된 사항을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시하여 615 회담을 앞둔 대통령에게 선택의 여지를 봉쇄하였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기억하실 것이다. 현대그룹이 사전에 일을 진행시킨 부담으로 김대통령의 퇴로가 막힌 셈이었다. 투명한 절차로 통제하지 않으면 거대 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만들곤 한다. 이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에 북한에 투자가 다시 재개된다면, 투자가 남한에서 이루어 지던, 이웃국가 도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던, 반드시 투명성을 유지하고 최상의 금융시행과 신뢰가 담보되는 강력한 ‘투자의 절차 investment gate’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마도 우선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금융개발 공직자들이 일차적으로 기구를 조직하고 차후에 세계은행 유엔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적인 기구의 주요한 지침에 따라서 보완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물론 최종적인 결정권은 북한당국에 있지만, 상기 조직들의 지난 수십 년간 선행된 사례에서 얻은 경험들이 북한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당국 역시 절차라는 과정에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동맹이 이러한 복잡하고 상호협력을 요구하는 다자적인 사업을 구상하거나 이에 기여할 의지도 없고 그럴 능력이 없다는 점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과정도 동일하다.

GIC현안을 남북한 당사자들에게 맡기었다면, 준공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크게 확장된 공단의 사업을 자축하였을 것이고 한반도에는 비핵화가 실현되었을 것이다. 지난 20년은 남북한 지도자들이 GIC 사업에 책임을 함께 나누고 관계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규모를 확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미국 역시 자신들의 이익이 보호되고 확장된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미국에게 한국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Stephen Costello(스테판 코스텔로)

금, 2020/09/18- 23:56
1
0

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토, 2021/05/22- 20:44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