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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배부른 위선자’라 욕 먹어도…‘난민 차별 반대’ 계속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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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배부른 위선자’라 욕 먹어도…‘난민 차별 반대’ 계속해야죠”

익명 (미확인) | 월, 2018/11/19- 10:12

아프리카로 6번째 난민캠프 활동 떠나는 정우성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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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우성은 난민캠프를 방문할 때 마다 각각의 사연들을 들으며 편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난민법 개악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지난달 말 배우 정우성(45)은 <한겨레> 인터뷰 약속을 잡고 며칠 뒤 조심스레 서명지 하나를 기자에게 보내왔다. “난민에 대한 가짜 뉴스가 일파만파 퍼진 가운데 난민법이 개악되는 것을 막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난민 심사제도를 운용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호소가 담긴 서명지였다.

“개념 배우”에서 “배부른 위선자”로…. 배우 정우성을 향한 대중의 여론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데는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의 소신에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지난 2017년 12월, 방송에 출연해 “미얀마 로힝야족 등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을 때, 대중은 그를 칭송했다. 2018년 6월 난민의 날, 그가 인스타그램에 “#난민과 함께 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 관련 유엔난민기구의 입장’을 올렸을 때, 대중은 그를 비난했다.

[정우성 인터뷰 동영상]

똑같은 ‘난민 문제’를 두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여론에 몸을 싣게 된 배우 정우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6번째 난민캠프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행을 앞둔 그를 지난 1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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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인터뷰 시작 전, 커피를 권하자 그는 챙겨 온 텀블러를 꺼내 놓았다. ‘노(NO) 플라스틱 챌린지’(환경을 위해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에 참여 중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작은 활동들에 동참하다 보니 개인의 삶도 조금씩 바뀌더라”고 말했다.

온 나라를 들끓게 한 제주 예멘 난민 문제는 지난 10월 정부가 339명에 대한 ‘인도적 체류허가’ 결정을 내리면서 잠깐의 ‘시간 벌기’에 들어갔다. “환영”과 “반대”의 틈새로 “난민지위 인정이라는 전향적 태도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의견도 흘러나왔다.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난민은 아직 먼 이야기고, 우리 국민이 먼저라는 의견도 많은데…. 그나마 최소한의 보호조치는 내려진 거니까요. 정부가 비겁한 것 아니냐고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예멘 난민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유니세프 등 국제 구호단체에는 흔쾌히 기부하면서도 난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정우성은 이에 대해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난민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려는 가짜뉴스는 비판하되, 난민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의 순수한 걱정마저 매도하면 안 되겠죠. ‘누군가를 돕는 건 괜찮은데, 내 생활 터전까지 내주라는 거냐’는 게 일반인들 시각이거든요. 관점을 바로잡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서로의 관점을 설득하는 데 격앙될 필요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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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그는 얼마전 김어준의 <다스뵈이더>에 출연해서도 <한겨레>가 보도한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드러내며 “가짜뉴스를 만드는 ‘작전세력’의 존재를 감지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예멘 난민 문제가 터지면서 댓글을 열심히 읽었어요. 친선대사 활동을 하니 왜 반대하는지, 밖에 나가 어떤 온도로 대응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죠. 그런데 댓글이 패턴화돼 있더라고요. 악플 다는 사람들 계정을 추적해보면 다른 게시물은 전혀 없고 이 문제에 대해서만 비슷한 악플을 단다거나, 계정은 다른데 댓글은 찍어낸 듯 유사하다던가…. 일반 사람이 가진 우려의 목소리를 자극하고 선동하는 거죠.”

그 비난과 악플의 과녁 정중앙에는 정우성이 있었다. 데뷔 25년 동안 ‘깨끗한 이미지’를 지켜온 그이기에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는 일도 많지 않았을까. “전혀요. 제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요. 욕보다는 칭찬이 더 무서운 법이죠. 칭찬은 기대치를 높이니 무서운데, 욕은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그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부자 동네에서 시시티브이에 둘러싸인 당신이 난민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 아니냐”는 논리도 등장했다. “제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없는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나 물질에 여유 있는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해야죠.”

“난민 향한 ‘우리 안의 이중성’
가짜뉴스는 비판하되

일반인의 걱정 매도하면 안돼

정부 ‘예멘 난민 결정’ 가장 현실적

난민 가짜뉴스 ‘작전세력’ 느껴
댓글 악플만 반복 패턴화

보통사람의 우려 목소리 선동

자꾸 불합리한 게 보이는데…
소방관 챌린지, 4·3동백꽃 배지…
사회적 목소리를 내며

나이 잘 먹어가고 잘 살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 아닐까요?”

그는 “인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엔난민기구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만났을 때도 이런 공감대를 나눴다고 전했다. “졸리도 저도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로 인권을 선택한 거고, 그게 난민 문제와 직결된 거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여지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내 인권이 우선돼야 한다는 말에는 언젠가 상황에 따라 내 인권도 차별받을 수 있다는 의미까지 담겨있는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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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만났을 때도, 앞서 네팔·남수단·레바논·이라크·방글라데시의 난민 캠프를 방문했을 때도 “(난민은) 나와 다르거나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들은 전쟁 같이 특수한 환경이나 사정 때문에 난민이 됐어요. 자꾸 예멘 난민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데, 아랍 쪽 정서로는 집안의 가장인 남성이 밖으로 나가 위험에 처한 가족이 머물 곳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임무예요.”

안온한 ‘스타의 길’을 두고 고생을 자처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을 듯 싶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쪽 제안을 받고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캠프를 방문할 때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내가 얻어오는 것이 더 많다는 걸 느끼면서 더 큰 관심이 생겼어요. 특별한 계기를 찾으려 하면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어요. 사소한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 그 느슨한 고리를 잡고라도 실천해야죠.”

사실, 그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촛불 정국이었던 2016년 11월 영화 <아수라> 행사에 참석해 “박근혜 나와”를 외쳤고, 2017년 12월 파업 중이던 <한국방송>(KBS) 노조원들에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며 지지를 보냈다. “10대 때부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도권 밖에 있다 보니 자꾸 불합리함이 보였어요. 그런데 배우가 되고 삶이 안정되니 개인적인 삶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내 안의 불씨가 사라진 느낌이었죠. 그러다 40대로 넘어오며 기성세대로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됐죠. 다음 세대를 위해 나는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에 관한 개인적 고민이 돌출된 것 아닐까 해요.”

난민 문제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일부 대중은 “촛불을 이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거나 “배우면 배우답게 영화나 찍으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정권 바뀌면 어쩔거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촛불을) 이용했다고 바라보면 어쩔 수 없죠. 다만, 그때라도 한 게 다행이고 중요한 것 아닌가요? 다음 정권이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을 탄압하면 정당하지 않은 사회로 되돌아가는 건데, 그럼 더욱 저항해야죠.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라며 내버려두는 순간, 나라가 사달이 나는 거, 우리 모두 직접 경험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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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적극적인 정우성이기에 활동 반경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이스버킷챌린지, 소방관 GO챌린지, 제주 4·3 동백꽃 배지 캠페인, 노플라스틱 챌린지, 입양문화 개선 캠페인까지…. “들어오는 부탁을 잘 거절 못 해요. 하하하. 제가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잘 살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사방으로 뻗어가는 그의 관심사의 끝에는 결국 ‘역사’가 자리한다. 최근 친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을 꼽았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다 연결되잖아요. 친일세력이 친독재세력이 되고, 그들이 보수세력인 척 물타기 해서 정치권에 들어오고…. 역사교육이 정말 중요해요. 정치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망가지는 걸 보면서 심리적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이렇게 가다보면 ‘결국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만 고민하게 되겠죠. 역사를 공부하면 정치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개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공감대가 생기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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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섯번째 난민캠프행을 앞둔 정우성을 ”난민에 대한 관점을 바로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진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2018-11-19> 한겨레 

☞기사원문: 정우성 “‘배부른 위선자’라 욕 먹어도…‘난민 차별 반대’ 계속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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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3/2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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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와독자관객은

봄비다.

성사회학의 남한조국은 또다른  시돌 해야지 않는지,

목, 2018/03/0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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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친일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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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운동과 신소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이인직은 일본육군성 한국어 통역으로 임명되어 제1군 사령부에 배속되며, 1905년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 80원의 사금(賜金)을 받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이미 일본제국주의에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가 러일전쟁의 성격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갖기 위한 전쟁,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국 강점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 결정적 계기부터 기여했다는 것은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호의가 곧바로 직접적인 매국행위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늑약 등을 계기로 일제로부터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고, 문학에 있어서도 계몽주의 문학이 전개됩니다. 한국의 계몽주의 문학은 갑오개혁 이후의 창가나 신소설 등을 말하는데 이인직이 쓴 <혈의누>가 신소설로는 최초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계몽주의는 서구의 계몽주의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어찌 보면 계몽운동이 일어나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차이점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서구의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어 18세기를 풍미합니다. 계몽주의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단어인 ‘enlightenment, Aufklärung, lumières’에 볼 수 있듯이 서구의 계몽주의는 빛(light)과 관련된 말로 표현됩니다. 그 빛의 연원은 성경에서 출발합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가 그것입니다. 즉 빛은 그것이 생김을 통해 무질서한 혼돈의 카오스(chaos)가 질서정연한 코스모스(cosmos)로 변화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계몽주의에서 이 빛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성(reason)’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이성에 의해 우주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고, 무한히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성을 통해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펼치는 철학운동이었습니다.
계몽주의의 핵심적 가치들은 이성, 기계론적 과학, 보편주의, 진보, 개인주의, 관용, 자유주의, 사유재산, 세속주의 등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근대주의의 총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민족주의’까지 연관됩니다, 좀 복잡한 문제라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르네상스부터 시작하여 계몽주의, 19세기 사회진화론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상적 흐름들을 설명해야겠지만 이 정도에서 갈음하겠습니다. 결과론적으로 계몽주의는 교회와 절대왕권으로부터의 ‘자유주의’ 확산을 가져왔으며 세계 3대 시민혁명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렇게 보면 ‘계몽주의’라는 번역은 ‘enlightenment’라는 단어로 보나 내용적으로 보나 뭔가 부족한 번역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물론 서구의 계몽사상가는 ‘계몽’을 위해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설 수단을 개발했으며 소설, 연극, 풍자시, 심지어 포르노그래피까지 동원하여 기성 세계와 가치관을 비웃고 공격했습니다만 핵심이 ‘계몽’ 그 자체에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그에 반해 한국의 계몽주의는 서구의 근대화를 쫓아가기 위한 계몽이었습니다. 근대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반영으로서 근대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중국적 세계질서가 깨지고 서구의 근대적 국제질서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을 의미합니다. 화이(華夷)사상에 입각해서 야만, 오랑캐로 상징되던 서양이 아니라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의 반영이었습니다. 개화, 자강 등의 단어가 이를 상징하는데 그래서 한국의 계몽주의․계몽운동은 개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특히 1904년 이후의 계몽주의·계몽운동은 일제 침략에 대한 구국운동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는 그 자체로 혼란입니다. 또한 역사적 배경이 서로 완전히 다른 서구사상 즉, 18세기 계몽주의의 뒤를 이은 19세기 ‘사회진화론’까지 동시에 혼재되는 양상이 이 혼란을 증명합니다. 서구에서 2세기에 걸친 사상적 흐름이 10여 년 정도의 기간에 왜곡된 형태로 압축되어 전개된 것은 제국주의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억지로 근대로 진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인직은 일본에서 귀국한 후 1906년 2월 국민신보 주필을 거쳐 1906년 6월 만세보 주필을 역임하면서 1906년 7월부터 <혈(血)의누(淚)>를 만세보에 연재합니다.이후 <귀(鬼)의성(聲)>(1906.10)을이어서 연재한 다음 1908년 유일서관에서 <치악산(雉岳山)>과 <은세계(銀世界)>를 출간합니다.

 

양반을 보면 대포로 놓아서 무찔러 죽여 씨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 거죽으로 따르고 (귀의 성)

우리나라 일은 깊은 잠 어지러운 꿈과 같아 불러도 아니 깨이고 몽둥이로 때려도 아니 깨이는 터이라. 어느 때든지 하늘이 뒤집히도록 천변이 나고 벼락불이 뚝뚝 떨어지기 전에는 저 꿈 깨기가 어려우리라 싶은 것도 옥남의 생각이라(은세계)

 

이인직의 신소설은 평가가 엇갈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위의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반봉건사상은 192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사회주의 문학운동가 임화조차 경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낡은 사회기구의 부패상이나 몰락과정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있는 계층적인 제 모순과 사회적인 제 갈등이 투쟁의 높이에까지 고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즉 봉건적인 학정 하에 신음하는 인민의 참을 수 없는 상태와 더불어 그들의 반항심과 그것이 유발하는 행위가 부패한 구기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취급되고 있다. 이 점은 범백의 신소설 중 <은세계>를 가지고 최고봉을 삼지 아니할 수 없다.(임화, 「개설 신문학사」, <조선일보> 1940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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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글에서도 이인직이 일관되게 봉건의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표현했듯이 “이인직에게 글쓰기는 봉건체제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한기형, <한국근대소설사의 시각>,1999)이라는지적은일면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글이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로 일관된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혈의누>와 <귀의성>의경우제목에서부터 일본의 영향을 드러냅니다. <혈의누>와 <귀의성>는우리말로‘피눈물’과‘귀신소리’인데한문혹은 한국어는 이렇게 복합명사를 간단히 붙여 쓴 명사의 나열로 표기하여 앞의 명사가 뒤에 오는 명사의 재료 또는 구성요소임을 나타내는 게 일반적입니다. ‘피의 눈물’과 같은 방식으로 ‘~의(の)’를 체언의 뒤에 관형격 조사를 붙여 복합명사를 표현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血의淚>와 <鬼의聲>은일반적으로 <血淚>와 <鬼聲>이라고 간단히 표현합니다. 이런 식으로 관형격 조사를 붙이는 방식은 石の橋(돌다리), 竹の子(죽순) 등처럼 일본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합명사의 표현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인직이 10년간 일본생활을 했던 습관이든 아니면 의도적이었든 최초의 신소설이 일본어투의 제목을 달고 계몽주의를 표방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인직의 신소설은 대부분 한국의 후진성에 대비한 문명개화의 당위성과 이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물론 이인직뿐만 아니라 신소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문명개화’ 사상 전파의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계몽이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인가 입니다.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같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 같은 마음이요.(혈의누)

 

만일 우리나라가 칠십년 전에 개혁이 되어서 해삼위(海蔘威)에 아라사 사람이 저러한 근거지를 잡기 전에 우리나라가 먼저 착수하였을 것이요, 만일 오십년 전에 개혁이 되었다면 해삼위는 아라사 사람에게 양도하였으나, 청국 만주는 우리나라 세력 범위 안에 들었을 것이오.
만일 사십년 전에 개혁이 되었으면 우리나라 육해군의 확장이 아직 일본만 못하나, 또한 당당한 문명국이 되었을 것이오. 만일 삼십년 전에 개혁이 되었으면 삼십년 동안에 중등 강국은 되었을지라. 남으로 일본과 동맹국이 되고 북으로 아라사 세력이 뻗어 나오는 것을 틀어막고 서로 청국의 내버리는 유리(遺利)를 취하여 장차 대륙에 전진의 길을 열어서 불과 기년에 또한 일등 강국을 기약하였을 것이오.(은세계)

 

일본의 아시아연대론에 기초한 「삼진연방(三陣聯邦)」을 비롯해 이인직은 소설을 비롯해 여타의 저작을 통해 일관되게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인직의 계몽운동은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본, 즉 일본의 세계관에 입각한 계몽사상이라고. 그가 가진 이런 사상과 관점은 그의 논설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경술국치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 3부에 계속

김덕영 선임연구원

화, 2018/01/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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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국치 108주년 맞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

오랜 준비 끝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108주년 국치일인 8월 29일 드디어 문을 연다. 2011년 2월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이화)가 출범한 지 8년만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전시와 교육을 통해,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간에 걸친 일제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고발하는 한편, 세계사상 유례없이 치열하고 지속적이었던 항일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알려나가는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 식민지배의 부정적 유산인 일제잔재와 분단독재체제의 폐해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거사청산운동의 과정도 생동감 있게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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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발기인 명판 –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 ⓒ 식민지역사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은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상임대표 이희자) 등 시민단체와 독립운동계 학계가 중심이 되어 순수하게 민간에서 추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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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전경 ⓒ 식민지역사박물관

송기인 초대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2년간의 급여 2억 원 전액을 통장 째로 기탁한 것이 본격적으로 건립에 착수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초등학생들의 개미모금에서 사회 지도층의 기부에 이르기까지 성금이 이어졌으며, 개관을 앞둔 현재 4,500여 명의 발기인을 비롯해 1만여 명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약 16억 5천만 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강만길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 전기호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등이 큰 액수의 성금을 기탁하였으며 고인이 된 김창국 전 친일재산조사위원장도 생전에 여러 차례 성금을 보내왔다. 한상권 덕성여대 총장직무대행과 양보경 성신여대 총장 부부는 1차 성금에 이어 첫 급여 전액을 “역사적폐 청산에 써 달라”며 전달해 왔다.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강제동원피해자 유족들이 대거 건립운동에 동참하였으며, 미주와 중국 일본 각지의 동포사회도 모금에 적극 참여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과일본을잇는모임’을 결성하고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모아 지난 6월 방한해 전달식을 가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들어서는 건물 매입과 리모델링, 전시 설비에는 총 60억 원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민모금과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가 출연한 재원을 합해도 아직 20억 원 정도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당분간 모금 운동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모금의 성과에 이어 주목해야 할 점은 상당수의 전시자료를 독립운동가 후손, 강제동원피해자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기증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일본 시민사회가 펼친 자료 기증운동도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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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현판 ⓒ 식민지역사박물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에 걸쳐 총 6천점이 넘는 자료를 정리해 보내온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낸 차리석 선생, 문화부장을 지낸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건국동맹의 채충식 선생, 부민관폭파의거의 주역 조문기 선생의 유품도 후손들이 기증해 왔다.

강제동원피해자들이 남긴 유품들에는 유족들의 한이 서려있다. 희생자의 원혼이 담긴 유골함과 청춘만장이라 불린 장행기에는 비극의 한국근대사가 오롯이 담겨있으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절규가 느껴진다.

강만길 선생의 남북교류 자료, 윤정옥 선생의 일본군‘위안부’ 관련자료, 고 성대경 선생의 의병 관련 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이돈명 변호사와 한승헌 변호사의 법조 관계 자료, 전기호 선생의 강제동원 관련 자료, 이이화 선생의 동학 관련 자료, 임헌영 선생의 재판 관련 자료, 윤경로 선생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 등도 눈에 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자료 기증은 열풍에 가까웠지만, 도쿄지회 조영숙 회원의 자이니치 관련 자료, 미국 이덕문 회원과 독일 원병호 회원의 민주화운동 자료 등 해외 회원들의 호응도 두드러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일본을잇는모임’에서도 다수의 자료를 수집해 보내왔다. 즈시 미노루 선생이 방대한 ‘침략신사’ 컬렉션을 기증하였으며, 기타무라 메구미 씨 등이 개별적으로 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다. 도쿄고려박물관 일본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재한군인군속재판을지원하는모임 오키나와한의비모임 등 과거사 관련 단체들도 조직적으로 자료기증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 선생의 유품에서 시작하여 『친일인명사전』편찬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자료를 포함 무려 7만 여점의 유물과 약 5만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극히 일부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아카이브로 구축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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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설전시관 내부 ⓒ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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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설전시관 내부 ⓒ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전시관은 4부로 구성되었는데 가치를 따지기 힘든 소중한 유물과 자료들도 공개된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니시키에, 출처와 경위가 분명한 삼일독립선언서 초판본, 남경대학살 일본군 선봉부대 일장기, 동학 의병 관련 자료, 을사오적 등 거물 친일파의 훈장 등 유품,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포스터 엽서 등 선전자료, 일기 책자 등 문헌자료, 문서 지도 사진 등 희귀한 자료가 그 보기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소장자료들을 활용하여 전시는 물론 출판 영상제작 등 교육교재 개발에도 주력하는 한편,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역사문화강좌를 개설하고 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서는 한편으로 인권말살의 상징인 중앙정보부와 대공분실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개관식은 8월 29일 오후 3시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 인근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강당에서, 현판 제막은 박물관 입구에서 4시 30분에 진행되며 다양한 기념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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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순]

개관기념 답사(13:30∼14:30)
효창원 독립운동 선열 묘역

식전 축하공연(15:00∼15:30)

개관식(15:30∼16:30)
사회: 노기환
∘개식선언
∘내빈소개
∘국민의례
∘경과보고 : 윤경로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
∘기념사 : 이이화 건립위원회 위원장
∘발기인 대표 인사 : 송기인 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축사 Ⅰ : 안민석 국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위원장
∘축사 Ⅱ :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축하 영상 : 박원순 서울특별시 시장 /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
∘공로패·감사장 수여 : 이이화 건립위원회 위원장
∘폐식인사 :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공지사항 안내
-기념촬영

현판 제막식(16:30∼16:30)

개관 부대행사(16:30∼18:00)
1층 ‘임종국’ 드로잉, 그라피티, 캘리그라피
2층 상설 전시관 전시해설
5층 영상 상영, 책 나눔 행사
옥상 전망대 : 남산·용산 일대 식민지시대 유적해설

임시연락처 : 02-969-0226 민족문제연구소

첨부자료 (다운로드)
1. 개관식 초청장
2. 식민지역사박물관 리플릿
3. <민족사랑〉식민지역사박물관 특집호

월, 2018/08/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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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방향·업체 선정까지 청와대 주도로 집행 
당시 청와대·교육부 직원 등 10여명 수사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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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교과서 홍보물로 제작한 카드뉴스의 하나. (교육부 제공) © News1

박근혜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편성한 예비비 44억원 중 절반이 넘은 25억원을 홍보비로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가 홍보 방향과 업체 선정 등을 주도하면서 제작단가 등을 부풀린 정황도 드러났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21일 ‘예비비 집행내역 조사’ 결과 홍보비가 과다하게 집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정교과서 예비비 배정부터 이례적이었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행정예고한 2015년 10월12일 기획재정부에 예비비를 요청했고 다음달 바로 예산 배정을 통보받았다. 당시 교육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비서관에 따르면, 장·차관이 사전에 청와대를 통해 기재부와 조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비비 편성도 기형적이었다. 예비비 43억8700만원은 역사교과서 개발을 위해 긴급 편성한 예산이다. 절반이 훨씬 넘은 24억8500만원(56.6%)이 홍보비로 편성됐다. 정작 국정교과서 개발비로는 40.1%인 17억6000만원만 편성했다.

진상조사위가 홍보비를 우선 살펴본 결과 홍보 예산의 대부분은 청와대 주도로 집행됐다. 홍보비의 51.6%인 12억8000만원은 관련 규정을 위반하며 청와대가 주도해 집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는 사후 행정 처리에만 협조했다. 나머지 12억원(48.4%)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집행됐다.

당시 교육부 담당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홍보 방향과 업체를 제안하면 이 제안대로 교육부 실무팀에서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보영상물 제작업체 선정과 지상파 3사 송출 계약 등도 사전에 청와대가 조율해 놓은 대로 진행됐다.

홍보비 집행과정에서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 의혹도 드러났다. 홍보영상 제작과 송출 계약은 당초 지상파 1개사가 제작과 송출을 맡는 것으로 계약했지만 교육부도 모르게 지상파와 A광고대행사가 계약을 맺어 A사가 홍보영상을 제작했다.

A사는 다른 지상파 방송까지 홍보영상을 송출하면서 송출료 중 10~12%를 받는 이면계약을 체결했다. 또 A사는 B사(제작총괄)와 C사(촬영)로 재하청을 주면서 제작비가 약 5000만원 추가되는 등 제작단가가 부풀려진 정황도 확인했다.

인터넷 베너 광고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오모 비서관이 추천한 업체에 9000만원을 주고 제작했다. 카드뉴스 등은 새누리당 출신의 당시 교육부 정책보좌관이 알선한 업체를 통해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중단가보다 상당히 부풀려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됐다.

진상조사위는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 의혹에 연루된 당시 청와대 직원과 교육부 직원 등 10여명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진상조사위는 “홍보비 부당집행 과정을 보면 사전에 계획해 일부를 빼돌린 정황이 있다”며 “조사과정에서 고용노동부 등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는 진술이 있어 확대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형진 기자 jinny@

<2017-11-21> 뉴스1

☞기사원문: 국정교과서 예비비 44억 중 25억 홍보비로 지출…청와대가 주도

※관련기사

☞이투데이: 국정교과서 예산 44억 중 25억 홍보비… 청와대 주도 불법 집행

화, 2017/11/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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