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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위] 언론위원회 횔동소식 – 공영방송 KBS를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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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위] 언론위원회 횔동소식 – 공영방송 KBS를 고민하며

익명 (미확인) | 금, 2018/11/16- 09:43

 

공영방송 KBS를 고민하며
– KBS 시청자위원회 활동 –

박준모 변호사

1. 퀴즈 & 혐오

다음 중 ‘사실’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① 동성애는 에이즈를 퍼뜨리는 주범이다.
② 외국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던 목사가 차별금지법 때문에 잡혀갔다.

 

정답은 ‘둘 다’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사실이 아닌 거짓인데, 공중파TV에서 생방송 그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 시청자에게 송출되었습니다. 지난 10월 ‘엄경철의 심야토론’에서 ‘동성애’가 주제로 편성되어 소위 혐오표현이 패널의 입을 거쳐 공영방송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셈입니다.

이 프로그램 방송 후, 언론연대는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 제작진에 △ 누군가의 존재·인권을 부정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는지 △ KBS는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어떤 기준으로 패널 선정 등을 접근하는지 △ 팩트 체크나 허위·차별 발언 제지가 없었는데, 토론에서 사회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 KBS는 내부 ‘공정성 가이드라인’ 에서 정한대로 출연자의 의도·신분 등을 얼마나 확인했는지 등을 공개 질의(<미디어오늘> 2018. 11. 9.자 보도)하였으며, 그 밖에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2. 새로운 시청자위원회 활동

지난 11월 시청자위원회 월례 회의에서도 언론연대 등의 비판에 호응하여 심야토론에서의 성소수자 혐오표현 문제, 팩트 체크 등의 부실 문제, 근본적으로는 제작진의 인권감수성 및 젠더의식 부재 문제 등을 지적하고 오는 12월 월례 회의까지 KBS 제작본부 측의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위원회 보고를 요구하였습니다. 방송 외부에서의 비판과 견제를 ‘내부화’하는 제도적 도구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간단히 추가로 설명해드리면, 지난 9월 출범한 제29기 KBS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상 의무 법정기구로(저도 민변의 추천을 받아 제29기 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방송 편성 및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직접적 견제와 감시를 위해 위원회의 의견을 제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회의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식적으로 ‘KBS 정상화’를 기치로 재출범한 2018년, 시청자위원회 역시 ‘무지개 위원회’란 표어 아래 구성원 다양화를 추구하며 언론·노동·경제·여성·소비자·장애인 등 여러 분야에서 위원을 선정하여 내부 비판과 견제를 시작했습니다.

3. 시청자위원회의 변화

그러면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이번 시청자위원회부터 매월마다 열리는 회의는 페이스북 라이브와 KBS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녹화까지 됩니다. 비록 구독자는 소수지만, KBS 사장단 이하 임원진 및 제작진이 회의에 출석해서 답변하도록 하여 책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겠지요.

또한 기존의 시청자위원회가 관제/어용 위원회라는 비판과 성찰을 거쳐, 시청자위원회 차원의 ‘성찰과 연대 TF’를 구성하고 공영방송의 책무, 전국 각지에 소재한 지역 시청자위원회 및 언론 시민단체들과의 연대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특히 지난 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북’과 같은 혐오표현 등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를 배척한 판결을 선고한 일련의 상황 하에서, 시청자위원회 등을 통한 감시와 견제 기능에 보다 주목할 수도 있을 겁니다.

4. 공영방송 KBS를 고민하며

KBS 정상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임원진 등 구성원의 인적 적폐는 청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철밥통 공영방송의 구태의연한 ‘의식적’ 적폐에 대한 대응은 어떠한지 의문이기도 하죠.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의 급성장과 대비되는 공중파 TV의 뚜렷한 쇠퇴(?) 경향과 ‘잃어버린 9년’의 후과가 겹쳐 나타나는 모양새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속에서 미미하지만(또한 부끄럽지만) 저도 민변의 추천(그리고 언론위원회 여러 위원 분들의 배려)을 받아 시청자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KBS 시청자위원회와 민변 언론위원회 간의 구조적 연대 방안을 모색하고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고민과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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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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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2018. 11. 11. 아침, 제3차 낙동강 현장기행 시민조사단과 함께 영풍 석포제련소로 출발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 영풍그룹 계열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함께 국내 아연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철제품 부식방지 도금용으로 주로 쓰이는 아연은 한국에서 자급 가능한 몇 안 되는 비철금속이라고 한다.
석포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다가설수록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가 짙어졌고 인적은 드물었다. 석포 초입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차고 맑아보였으나 아래쪽에는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석포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아직 큰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쭉, 아니 자식들을 먹일 동안이라도 모른 체 해달라고 하는 듯 했다. 허나 그곳엔 진짜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것은 희뿌연 무언가를 쉼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희뿌연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낸 산은 시뻘건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맨살을 드러낸 산을 감싼 낙동강은 휴게소에서 본 그 낙동강이 아니었다. 48년이나 아팠던 낙동강은 더운 숨을 내쉬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우리를 나무라는 듯했다.

「김무락 변호사(대구지부 사무차장)의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후기」

2018. 11. 11. 제3차 낙동강 기행 중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는 1,300만 영남인의 상수원인 낙동강의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석포제련소가 야기하는 식수원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낙동강을 따라 영남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 대구지부에서는 법률대응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김무락, 박경찬, 백수범, 성상희, 이유정, 정재형, 최지연 변호사)

1970년 영풍이 봉화군 석포면에 제련소를 준공, 가동하여 온 이래 50년 가까이 누적되어 온 환경오염의 문제는 석포면이 위치한 지역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석포면 인근 주민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6월에 와서야 시민들이 석포제련소부지 내 토양이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국민권익위에 신고를 하였고, 2015. 3. 토양정밀조사결과 석포제련소 부지 내 6만여 ㎡의 토양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의 최대 414배 초과하는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봉화군이 1,2공장 부지의 오염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주식회사 영풍(이하 ㈜ 영풍)은 토양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봉화군에 토양정화기간을 2년 연장해 줄 것을 신청하였고, 봉화군이 거부하자 2017. 5. ㈜영풍은 봉화군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행정소송에서 1, 2심은 ㈜영풍이 승소하였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심이 진행중입니다.

2018년 2월 시민들이 ㈜영풍의 폐수 70만톤 무단방류 사실을 신고하였고, 관계기관의 합동점검 결과 7가지 불법행위가 적발되어 2018. 4. 5. 경상북도가 조업정지 20일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영풍은 이에 불복하여 경상북도지사를 상대로 조업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하였다가 기각되었는데도 다시 대구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1심이 계속중이고, 2019. 4. 3. 법률대응단에서는 봉화주민 4명, 안동주민 2명으로 피고 보조참가인을 모집하여 보조참가신청서를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피고 보조참가인 소송대리인에 대구지부 회원 19명이 연명에 동참하였습니다.

 

▷ 민변 대구지부 주최 토론회

2018. 11. 14. 민변 대구지부와 영풍 석포제련소 공동대책위원회는 ‘낙동강 최상류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한 식수원 오염 실태와 법률대응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백수범 변호사는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행위에 대한 법률대응 방안을 차분히 설명하였고, 토론자로 참여한 최지연 변호사는 백수범 변호사의 법률대응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정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회에는 정재형 변호사(토론사회), 김무락 변호사(전체 사회), 오랜 기간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를 다뤄 온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이상식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대표, 신기선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참여하였습니다.

 

▷ 2018. 11. 30. KBS 추적60분

“낙동강 미스터리, 48년 영풍공화국의 진실”방영

2018. 12. 18.~19. 1박 2일간 봉화 승부리를 방문한 백수범, 김무락 변호사

 

 

2019. 3. 14. 영풍공대위와 법률대응단 합동회의 및 대구민변과의 간담회

 

▷ 법률대응 진행상황

토지정화명령 건은 법률검토를 거쳐 봉화군과 대법원에 법률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하며 현 상황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추가 대응방법을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3공장 불법건축물의 합법화 과정, 2, 3공장 폐수 무단방류와 관련하여서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형사고발과 감사청구 등의 법률대응을 하기 위해 검토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소송 관련하여서는 우선 소수의 원고라도 모집하여 시범소송으로서 영풍 석포제련소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법률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 1차 모금 마무리하였습니다. 개인과 단체 합하여 101명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2천여만원입니다. 모집된 성금은 원고들이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없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호사보수를 포함한 각종 법률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쌓여 다행히도 최근 여러 방면의 환경이 진전되어 가고 있으니 이 불씨를 잘 살려가면 머지 않아 문제해결의 적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변 대구지부는 그동안 애써오신 영풍제련소 공대위와 봉화대책위 및 활동가 분들과 협력하여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에 함께 대응해 나아기로 하였습니다. 대구지부의 활동에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대구지부 근황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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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4/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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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

 

변호사님 민변에는 최근에 가입을 하셨죠?

아니요, 2007년에 가입했습니다. (웃음)

[, 초장부터 이런 실수를보통 기본적인 사항을 다 숙지하고 가는데, 변호사님과의 친분 때문에 중요한 체크를 빠뜨렸습니다.]

 

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이 2018년 봄이어서 막연히 그때라고 생각했어요.

그 즈음이 제가 교육부 TF 일을 끝내고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가 슬슬 민변에 다시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온 것이 17년 9월이었어요.

제가 민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됐다고 느끼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공무원일 때는 점심 모임이나 위원회 회의 같은 민변 모임에 나가기가 어려웠고요, 그래서 시간이 맞는 총회나 연말 송년회 정도에만 참석을 할 수 있었어요.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는 더욱 참석이 힘들었지요.

작년부터 개업을 하면서 사무실도 민변에 가까워지고 하니까, 시간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자주 참석하려고 해요. 노는 모임에 특히요.

 

민변에 가입할 때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연수원 수료를 2007년에 했어요. 수료하고 취업된 후 바로 가입했던 것 같아요. 2007년 5월쯤이었나…

민변 변호사님들하고 연을 맺은 건 91년도였어요. 유현석, 김창국, 박연철, 이석태 변호사님께서 도움을 주신 일이 있어서 민변을 알게 되었죠. 당시 변호사님들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셨고 굉장히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법대에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응시할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을 때라, 나도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입할 때 추천인이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정연순 변호사님이셨을 것도 같고… 그때 정연순 변호사님이 국가인권위에 계셨을 때니까, 김진 변호사가 했나? 잘 모르겠네요

위원회는 여성위, 교육위, 노동위 순서로 가입했어요. 여성인권위원회는 여성변호사로서 민변에 들어오면 당연히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입했었고, 교육청소년위원회는 제가 교육청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까 이용우 변호사가 같이 일하자고 해서 들어갔죠. 노동위원회는 올해 2월에 김진 변호사 송별회하는 술자리에서 김진 변호사가 ‘노동위에 들어오라’고 가입 권유를 했고, ‘알았다’하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작년에 오사카 노변단 교류회 참석도 했고, 노동위 들어가서 노동 관련 일을 배우고 싶기도 했어요)

변호사님께서는 연수원 마치고 송무를 바로 하실 생각은 없으셨던 건가요?

연수원 나왔을 때 제 나이가 서른일곱이었어요. 당연히 여기저기 지원을 했죠. 용납할 수 없는 사무실을 제외하고요. 어디서든 송무를 해 볼 생각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 나이대의 여성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사무실이 거의 없었어요. 흔하지 않았지요. 연수원 수료하고 두어 달 동안은 취직이 안 돼서 고민을 했어요. 그렇다고 아무 회사, 기관이나 가고 싶은 생각은 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그때 마침 인권위에 결원이 생겨서 지원을 한거죠.

제가 인권위에서 나온 게 11년 6월이니까, 4년 2개월 정도 일했네요. 퇴직하고서는 1년 가까이 쉬었고, 12년 5월부터 16년 7월까지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일을 했어요. 그리고 17년도 10월부터 18년 2월까지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TF에서 일했습니다.

 

변호사가 인권위에서 하는 업무에는 어떤 것들인가요?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송무를 하기도 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들어갈 때를 생각해보면 인권위에서 변호사를 꼭 배치하는 몇몇 부서가 있었어요. 결정문 작성할 때 검토를 하기 위해 상임위원실에 한 명, 조사국에도 변호사를 배치했고요. 법무감사실에도 변호사를 배치했는데, 송무, 질의회신, 법규제개정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요. 인권상담센터에도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인권위 시스템이 그랬어요. 저같은 경우는 정책 업무도 했고, 조사과에도 있었고 상임위원실, 법무에도 있었어요. 교육 쪽 말고 인권위에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는 제법 많이 경험했습니다.

 

인권위원회 업무라고 하면 막연하게 보람도 있고 재밌도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퇴직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하시게 되셨나요?

제가 들어갈 때의 인권위와 나올 때의 인권위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2008년 쯤 이명박 정권 때 제일 먼저 시도했던 것이 ‘인권위 없애기’였어요. 그게 여의치 않으니까, 정부에서 인권위의 소속을 변경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원래 인권위는 정부 부처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걸 대통령 산하로 두느냐 마느냐 하는 작업이 진행되다가 그것도 잘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인권위의 힘을 빼는 나머지 방법은 결국 기구 축소, 구체적으로는 정원 축소가 있지요.

제일 먼저 별정직과 계약직부터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약직 공무원은 통상 최초 2년 계약 기간이 지나면 3년을 재계약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공고를 내어 다시 5년을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본인이 원하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인권위 내에서 처음 5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은 경우는 제가 알기로 없었어요. 실제로 대부분 그 사람들이 일을 다들 정말 잘했으니까요. 2010년 말이었어요. 5년 계약이 끝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인권위에서 그분들과 재계약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내부에서 직원들이 당연히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러다가 당시 노조 부지부장이었던 분이 2년 계약이 끝나고, 3년 추가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분에 대해서 추가 계약을 하지 않고 내쫓아버렸어요. 참고 있던 직원들이 그때는 ‘더 이상 이건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고,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같이 했어요.

그러자 1인 시위한 사람들을 감사하더라고요. 저는 감사를 거부했습니다. 감사를 받을 수가 없다고 했던 것이, 감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재계약 대상자들의 인사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감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시 제가 조사국에 있었는데, 국장님이 다른 사람에게라도 감사를 받으라고 했는데, 저는 잘못한 게 없다고,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 이후 직장내에서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 같이 일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유학, 육아휴직 등을 이유로 회사를 나와 뿔뿔이 흩어져 있고, 남아있는 동료들도 각자가 다들 힘든 상황이라 서로 연대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어요.

입사해서 만난 제 남편은 이미 회사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간 상태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저희 엄마가 돌아가신지 1년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간병 등으로 몸도 많이 안 좋아진 상태였어요. 내가 여기 더 있으면 정말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럼 퇴직 후에 1년 정도 쉬셨다고 말씀하신 때가, 요양 목적도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남편이 전북교육청에 자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해서 먼저 내려갔어요. 전북교육청에 교육감이 새로 취임하고 감사팀을 새로 만드는데 조사경력 있는 사람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을 한거죠. 감사과가 1, 2, 3팀, 그리고 법무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4팀을 새로 만들면서 외부인력으로 채우기로 했어요. 남편이 먼저 들어갔고, 저는 좀 쉬다가 2012넌 5월에 학교폭력 담당으로 변호사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서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있어서, 대대적으로 학폭법이 개정되고, 교육부에서 교육청별로 특별교부금을 지원해서 학교폭력과 교권을 담당하는 변호사를 채용하도록 했습니다. 신분은 공무원은 아니고, 근기법 적용되는 기간제 근로자였어요. 그렇게 2년 3개월을 일했고, 그 이후 2년은 임기제 공무원인 인권옹호관(학생인권교육센터장)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전주에서 생활은 가족과도 함께 있고, 더 좋으셨겠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은 굉장히 좋았어요. 전주가 생활 여건이 좋은 도시예요. 편안하고.

근데 일을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 있었어요. 지역적인 차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성에 관한 의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당황해서 그냥 넘어가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금 상황과 제 의식 사이에 괴리감도 커지고, 어느 정도 지나니 제 의식이나 생각이 고인 물이 되어 썩어간다는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부분들에 대해 지적하면, 오히려 그런 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미처 인터뷰에 담지는 못했지만, 정말? 아직도? 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또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텃세(?)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변호사여서 이 정도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16년 7월 교육청에서 재계약이 안되고, 17년 가을 서울에 올라와서 개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 또 마침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TF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이것도 지금 아니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을 한거죠.

 

지금은 송무를 하시는 거죠.

그쵸.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하고 있진 않아요. 개업 초반에는 아무래도 일이 많이 없잖아요. 개업하고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성북구 인권위원 활동이었어요. 경력이 있어서인지, 여기저기서 소개를 많이 해주셔서인지 위원회 위원 제의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배워보고 싶어서 먼저 지원한 곳들도 있고요. 그렇게 일을 늘려가다 보니 지금은 참석해야 하는 위원회가 너무 많아져서 정리하는 중입니다. 얼마 전에는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하게 되었는데, 어휴, 그거 되게 힘들더라고요. 사전에 안건을 다 검토해서 의견서도 내야 하고요, 회의도 네 시간 걸렸는데 다른 위원님들이 그거면 빨리 끝난 편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작년에 친한 언니가 하는 말이, ‘너 초반에 일 없다고 이것저것 다 받으면 나중에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는데…(웃음) 진짜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정리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엔 회의가 4개가 있네요.

일 하면서 많이 배우는 경우도 있어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방심위 실무자분들께서 일을 워낙 잘 처리해주셔서 가서 회의에 가서도 부담이 많이 없기도 하고요.

 

재판 수임을 일부러 좀 가리시는 면도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은 돈을 벌어야 할 시기라 가릴 처지는 아닌데… 막상 이 일을 맡아야 되나 하고 생각을 해보면, 힘들겠다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라, 합이 안 맞는다 싶으면 수임을 거절하기도 해요. 많지는 않은데, 그런 적이 약간 있었죠. 아직 배가 덜 고픈 건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제가 비교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잘 참는 편인 것 같은데, 정신적 스트레스에는 너무 취약해요. 정신적으로 공격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하느니, 아예 시작을 안 하는거죠. 여가 시간을 보낼 때에는 머리를 안 쓰는 일을 선호해요. 예를 들어 제가 야구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이건 일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서 좋아하는 면이 꽤 커요. 남편이 제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에이전시 같은 업무를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요즈음 변호사님들중 하는 분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에이전시 일을 하게 되면, 야구는 더 이상 오락이 아니라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했지요.

 

변호사님을 민변 모임에서는 자주 뵐 수 있는 건, 변호사님께 민변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가요?

네, 그렇죠. 제가 역량이 좀 되면 가고 싶은 모든 모임을 다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것하고 별도로 민변 모임이 요즈음은 아주 조금 부담이 되는 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모임에 나가서 같이 어울리고 노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다보니 민변 모임에서 어떤 사업에 대해서 함께 협업을 하게 되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데, 역량도 부족하고 아직 그럴 상황이 못 되는 것 같아서 조금 고민스러워요.

민변이 맘 편하고 좋은 이유는 계산하지 않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에요. 지난 신입회원 설명회 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게 참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가 되게 많이 다르지만, 큰 그림에서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또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물론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필요한 사심 없이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동료들이란 점이 참 좋지요. 그런 편안함에 끌려서 민변에 가는 것 같아요.

 

2018.10. 민변 회원월례회에서.

 

계속 공직에 계셨으니, 변호사님 해 오셨던 일 중에 지금 하고 계신 일이 가장 (경력상으로는) 짧은 일이겠어요.

그렇죠. 월말과 월초에 쌓여가는 정산금과 마이너스액을 보면서 역시 고정된 월급이 좋다면서 후회를 하다가도, 국정감사 시즌이 딱 되는 순간, 친구들이 SNS에 국감, 행감 이야기를 올리는 걸 보는 순간 아, 그쪽엔 이게 있었지, 하면서 위안하죠. (웃음)

 

오랫동안 조직(?)에서 일하다가, 이제 혼자 일을 하시는 게 낯설지는 않으신가요?

조직에서 일할 때는 결재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이 같이 업무를 보잖아요. 이게 단점이면서 장점이지요. 물론 상급자가 이상한 지시를 하면 굉장히 피곤해지지만 그래도 결재 라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변호사는 순간순간 혼자 결정해야 하고, 내가 내린 판단과 결정이 과연 맞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고충이 있지요. 이 일이 제가 전에 했던 것과 연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니까 사전 지식이 충분하다고 할 수도 없고요.

내 문제라면 내 결정에 나만 책임지면 되는데, 재판은 남의 인생이 걸려 있으니 더 부담스럽지요. 특히나 이혼 같은 가사사건의 경우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서 늘 신경이 쓰입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노동쪽이나 가사사건에서 모르는 점이 생기면, 그 분야를 잘 아는 변호사님께 물어봅니다. 솔직히 저는 물어보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도 남한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알아서 최대한 혼자 이리저리해보다가 마지막에 묻는 스타일이에요. 아무래도 연차로는 적지 않은 연차여서 묻는 일이 자존심 상할 때도 있지요, 솔직히.

 

다시 변호사 초임 때로 돌아간다면, 송무를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공직에 가실 것 같으세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기관에 가기로 했으면 그 기관에 계속 있거나, 나중에 퇴직하고 관련 업무를 변호사로서 계속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둘 다 아니었거든요. (웃음) 전에 일했던 기관들에서 사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 자문요청이야 들어오지만요. 지금은 서울에서 개업했으니 제가 만약 수도권에 있는 기관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겠지만, 저는 지방에 있었으니까요.

연수원을 나오면서 개업을 같이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때는 되게 겁을 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겁낼 일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몰랐죠. 제일 좋은 건 고용변호사로 배우고 일하면서 차곡차곡 업무역량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마도 저는 고용변호사로 일하는 것을 못 버텼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업무강도가 워낙 세니까요… 다시 돌아가서 그 상황이 된다면, 지금은 다 아니까, 개업을 그렇게 겁내진 않았어도 괜찮았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건 아직 변호사의 주 업무는 송무잖아요. 가급적이면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많이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개업을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저희 때랑은 상황이 너무 달라서, 그걸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난번에 한 신입변호사님에게 개업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뭐, 저도 그랬는데요.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선배변호사님에게 어떻게 돈을 버시냐고 여쭈었더니, 먹고 살 만큼은 번다고 하시더라구요. 의뢰인이 다른 의뢰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요즘의 개업은 예전과 또 상황이 많이 다르니까요. 무어라 말하기 쉽지 않네요.

 

민변 후배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시간 날 때마다 부담 없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참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업무가 많이 부과될 일은 없으니까요. 물론 여건이 되면 일도 같이 하면 되는 것이고요. 아시는 것처럼 제가 노는 자리는 안 빠지잖아요. (웃음)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야 나중에 일할 때도 서먹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고용변호사로 일해본 것이 아니라, 요즘 고용변호사님들이 얼마나 바쁠지 가늠은 안가지만요. 그래도 잠깐이라도 짬 내서 서로 얼굴을 익혀놔야지 서먹해지면 어느 순간 참석하고 싶어도 쉽지 않게 되는 때가 와요. 같이 일을 하건, 같이 놀건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연대와 신뢰니까요. 처음에는 부담 갖지 말고 자주자주 나오면 어느 순간 관계도, 신뢰도 넓혀지고 민변이 편하고 좋아지는 때가 올 거예요.

 

무뚝뚝한 표정에서 이따금 터지는 유머에 정신 못차리는 인터뷰어 사진으로 당시 인터뷰 분위기를 전하며, 인터뷰글을 마무리 합니다. ^^

The post [회원 인터뷰] 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수, 2019/11/2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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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언론위원회가 최근 집중 논의 중인 이슈를 하나 전하고 회원님들의 도움을 요청 드립니다.

‘흉악범 얼굴 공개’ 문제입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얼굴, 실명 등 신상 정보가 경찰에 의해 공개돼 언론에 자주 등장했는데요. 공개가 되는 경우와 되지 않는 경우(예를 들어 ‘수락산 등산객 살인’ 피의자는 전자, ‘사패산 등산객 살인’ 피의자는 후자였습니다.) 사이의 구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비판은 물론 나아가 “시국 상황 등에 따라 국민들의 현안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이에 경찰은 관련 지침을 개정해 신상 공개 결정을 기존처럼 경찰서가 아니라 지방경찰청이 맡는 등 운용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가 헌법상 무죄 추정 원칙, 이중처벌 금지 원칙 등에 위배되므로 법률적 근거가 되고 있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 제1항,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 제1항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유력합니다. 언론위원회는 위 법률 규정 등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송과 같은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위 대응을 위해서는 우선 신상 정보 공개로 인한 피해자(강력범죄 피의자)들 중 대응 의사를 지닌 당사자를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위 이슈에 대해 관심과 의견 있으신 회원님들께서는 언론위원회 소속 여부를 떠나 언제든 언론위원회로 연락하고 논의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변호인을 맡는 등으로 신상 정보 공개 피해자들과 직·간접적 접촉 경험이 있으신 회원님들께서는 꼭 관련 정보를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월, 2016/06/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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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회원 여러분~ 소수자인권위원회입니다. 작년 10월에 뉴스레터를 통해서 활동 소식을 전해드린 이후 5개월 만에 인사드리네요. 작년 하반기와 올 해 소수자위가 주요하게 활동했던 소식들 전달해드릴게요.

(사진1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을 듣고 있는 소수자위 위원들)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

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는 기존에 주요하게 활동하고 있던 성소수자, 장애 인권 영역을 넘어, 올해는 새로운 소수자 인권 이슈의 발굴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새로운 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한 연례 기획강좌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2월 월례회 때는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좌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의 박상훈 활동가님이 ‘소수자인권의 시각에서 보는 HIV/AIDS 짚어보기’를 주제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타리(나영정) 활동가님이 ‘HIV/AIDS를 둘러싼 법·정책 이슈’를 주제로 강연해주셨습니다.

HIV, AIDS 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HIV는 바이러스의 이름이고 AIDS 는 질병의 이름! 이라는 것, 감염의 경로, 치료와 예방 등)를 나누고, UN AIDS 의 예방정책에 대해서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감염인에게 어떻게 과도한 인권침해가 되는지(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이 ‘추상적 위험’에 대한 형벌규정의 타당성, 과도한 감염인에 대한 취업제한 조치들의 사례 등), HIV/AIDS를 둘러싼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맥락에 의해 유통되고 조장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재소자/이주민/병역/취업 정책에서 어떻게 감염인을 배제하도록 설계되었는지 공부하는 등 자세한 논의까지 진행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4회의실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가장 많은 회원이 참여한 월례회였습니다!)

 

 

 

 

 

 

 

 

 

 

(사진2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자 타리(나영정) 활동가) 

 

 

 

 

 

 

 

 

 

 

(사진3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을 듣다가 눈 마주친 김동현 위원장) 

 

 

 

 

 

 

 

 

 

 

(사진4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자 박상훈 활동가) 

 

  • 소수자인권판례평석(가칭) 발간 작업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아동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판례평석집 발간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민변에는 노동위가 편찬하는 ‘노동판례비평‘, 여성위가 편찬하는 ‘사법정의와 여성’ 등 각급 법원의 판결과 결정을 분석하는 평석집이 발간되고 있는데요, 소수자위와 아동위도 소수자 인권의 시각에서 판례평석집을 제작해보자! 하여 의기투합하여 집필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동, SOGI(성적지향·성적정체성), 장애, 수형자, 고령자 등 영역을 선정하고, 영역별 주목하고 비평해야하는 각급 법원의 판결, 인권위 결정을 선정하여 열심히 집필 중 입니다! 6월 발간을 목표로 제작하고 있으니, 회원 여러분들께서 많이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참가 신청 및 기획운영팀 모집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5월 31일 서울 핑크닷(전야제), 6월 1일 퀴어퍼레이드 본 행사로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었습니다! 민변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소수자인권위원회, 공익인권변론센터 명의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해왔고, 작년에는 민변 무지개 깃발을 제작하여 자긍심 행진에도 참여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습니다.

그간 소수자인권위원회와 공익인권변론센터 명의로 부스 참여를 하였지만, 두 단위에 소속되지 않은 많은 회원분들도 부스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해왔기에, 올해는 민변 명의로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운영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스 기획 운영팀을 모집하고 있으니 당일 뜨겁지만 시원한(?) 태양 아래에서 부스 운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실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래요!

부스 기획운영팀 참여 신청 링크 : https://forms.gle/QfXUTTi5ebEuvoLQA

 

 

 

 

 

 

 

 

 

 

(사진5 : 작년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개시한 민변 프라이드 플래그) 

 

  • 인천퀴어퍼레이드 법률지원단 (인천지부, 소수자위)

작년 인천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의 조직적 방해와 폭력 행동이 있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 이후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민변 인천지부와 소수자인권위원회에 법률지원 요청을 해오셨습니다. 하여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혐오세력의 증오범죄를 방치한 인천지방경찰청과 인천동구청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진행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개별 피해자들의 고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월 24일에는 <한국사회 증오범죄 진단과 대안 : 2018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이정미의원실, 인천퀴어문화축제 비상대책위원회,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공동으로 주최하여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이루어진 증오범죄 실태를 중심으로, 나날이 혐오와 차별이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증오 범죄의 현황, 문제점 및 제도적 대안 마련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토론회 자료집 : https://lib.minbyun.or.kr/document/2331)

 

 

 

 

 

 

 

 

 

 

(사진6 : 인천퀴어문화축제 국회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 

 

  • 수용자 인권 증진모임

천주교인권위,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수자인권위원회가 모여 현재 수용자 인권 증진모임을 구성하여 해당 이슈와 논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수용자 인권 이슈는 과거 민변에서 활동하던 단위와 회원들이 있었으나, 현재 다뤄지지 않고 있던 이슈였는데요, 수용자의 과밀수용, 재사회화 권리, 최저임금 미달 노역 사례 등을 재조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단체에서 수신 받는 구금 서신 중에서 공동대응 사례를 발굴하고, 자유권 규약 심의 중 수용자 부분과 관련한 집필을 진행할 예정이니, 해당 이슈에 관심 있는 회원들은 언제든 연락 부탁드려요!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민변 명의로 참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작년 10월의 평등의 행진 이후 차별금지법의 필요성 및 발의를 목표로 많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 단체들을 방문하여 2019년 한 해의 주요 활동 계획을 공유하고, 각 단체의 사업계획과 차제연의 활동의 결합력을 논의하기 위한 ‘똑똑똑, 우리지금만나!’ 간담회도 진행 중입니다. 아 그리고 민변의 김호철 회장님이 올 해부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직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한, 어쩌면 ‘금기어’처럼 되어버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민변 회원 여러분께서도 향후 있을 다양한 활동들에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장신대 무지개사건 대리인단

작년 장신대에서 아이다호(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데이를 기념하여 ‘무지개 퍼포먼스‘를 한 학생들에 대하여 부당징계 처분을 한 일이 있었고, 위 학생들을 지원하는 대리인단이 구성되어 징계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활동 중에 있습니다.

[보도자료] 장신대 ‘무지개 사건’ 징계에 대한 무효확인소송 제기: http://minbyun.or.kr/?p=41297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장신대 뿐만이 아니라 종교를 기반으로 둔 많은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데요, 대리인단에서는 종교 학교와 차별의 문제에 대해 전반적인 자료를 보고 스터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공부 모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소수자위는 매달 3번째 수요일에 월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약물 인권 이슈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판례 모니터링 (인권위 결정례, 장애, 수형자, 북한이탈주민, SOGI, 감염인, 고령자 등)을 매달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4월 5일(금)-6일(토)에는 월례회 겸 워크숍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무려 이태원!!!인데요, 이날 아주 재밌는 워크숍이 준비되어 있으니 쭈뼛쭈뼛하시지 마시고 많이들 워크숍에 참여해주세요!

언제든 소수자위는 열려있으니 회원들께서 문을 자주 두드려주세요! 그럼 다음 소식 때 만나요! 안녕~

 

(참여 문의 : 장길완 간사 010-7750-9413, [email protected])

 

 

 

 

 

 

 

 

 

 

 

(사진7 : 2월 뒷풀이 때 – 셀카는 놓칠 수 없다) 

 

 

 

 

 

 

 

 

 

 

(사진8 : 3월 월례회 때 익숙한 뒷모습과 신입회원) 

 

 

 

 

 

 

 

 

 

 

(사진9 : 작년 12월 송년회 때 너무 친해보이는 두 사람) 

 

 

 

 

 

 

 

 

 

 

(사진10 : 열공하는 소수자위 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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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03/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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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부캐’의 소유자, 이동준 변호사를 만나다.  (부캐: ‘부(副)’와 ‘캐릭터(character)’의 합성어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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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1/02/0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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