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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묻는 두 개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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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묻는 두 개의 영화

익명 (미확인) | 화, 2018/11/13- 11:16

 

지난 20여년간 이른바 ‘먼저 온 통일’라고 불리워온 북한출신 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선행 통일경험은 오늘날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야반도주하다시피 떠났던 탈북민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16년 통일연구원 탈북민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16.2%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다큐멘터리영화 ‘북도 남도 아닌’ 탈남하여 유럽으로 간 탈북인들이 본 한국사회에 대해 담담하지만 솔직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단지 ‘부적응’하거나, ‘선진국 복지를 찾아’, 단순히 ‘차별 때문에’ 대한민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지속적인 감시, 탈북자라는 낙인과 배제 등으로 한국사회에 희망이 없기에 떠났다고 말한다. 2017년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는 탈북인들 역시 탈북자라는 낙인 그리고 배제로 마치 유리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최중호 감독에게 썼다는 쪽지,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예요?‘라는 질문은 곧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평화이행기를 앞둔 우리에게 되물어지고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2016과 2017년에 잇달아 개봉된 두 개의 다큐영화는 탈북민 연구를 십 수년간 해온 나로서는 부끄럽고 놀랍도록 우리 사회 탈북민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잡아낸 영화이다. 뉴스타파 최승호감독의 ‘자백’과 최중호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워왔던 탈북민들이 경험한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뒷모습과 한국사회의 민낯을 담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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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감독의 ‘자백’ 영화(왼)와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오) (사진: 영화 ‘자백’ 포스터 엣나인, 북한인권국제영화제)

한국에 온 탈북민들에게 국가권력은 야누스와 같은 존재였다. 탈북인들에게 국가는 국내취약계층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의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였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다. 입국시에는 6개월까지(현재는 3개월로 줄임) 구금이 허용되는 국정원에서 전쟁포로보다 열악한 ‘간첩 골라내기’ 실험장에 놓여 북한 내부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간첩으로 조작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지난 10여년간 국가권력에 의해 국정원 댓글사건, 반 세월호집회 알바시위 등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를 수행하도록 그들은 동원되었으며, 집단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숙박교육을 거쳐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신변보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감시상황에 놓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 북한을 떠났던 식량난민의 일부가 한국에 입국하면서 국내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주민의 대한민국 입국이 연 1,0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시기는 2001년부터이다. 그 이후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수는 2008년에 2,91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점점 감소하여 2018년 9월 말 현재 입국자 수는 808명에 불과하다. 향후에도 이 정도의 감소세가 지속된다면 북한이탈주민 입국은 10년 내아니 5년 내로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된다.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의 감소 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 개선, 김정은정권이 탈북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은 북한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주된 요인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척박한 정착여건 역시 북한출신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중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주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우면서 이질적인 탈북주민들과 남한주민과 어울려 사는 과정 그 자체가 일종의 ‘통일실험’이자 ‘사람의 통일’이라고 미화되었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은 아름답지도 녹록하지도 않았다. ‘먼저 온 통일’이 대한민국에서 겪은 선행 통일경험은 무엇이며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되짚어보자.

 

북도 남도 아닌세상을 찾아 나선 이명준의 후예들

 

김일성수행 기자출신의 엘리트 이수근은 귀순직후 1967년 4월 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는 ‘사색의 자유’마저 없다”고 말했다. 북한 탈출직후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한이 바로 지옥이다” 라고 말했던 이수근은 다시 한국을 탈출하려다 공항에서 잡혀 위장귀순으로 몰리게 된다. 그는 “남쪽도 틀렸다. 자유도 없고, 독재이고 해서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살려고 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최인훈이 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이수근이 꿈꾸었던 세상은 “북도 남도 아닌” 세상이었다.

그러면, 49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한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탈북인들이 오늘날 겪는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신예 최중호 감독은 북도 남도 아닌 유럽으로 떠난 오늘날 이명준들이나 이수근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갓 설흔의 싱싱한 감성으로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북도 남도 아닌’에서 비추어주는 탈북민 인권현실은 49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럽 현지에서 탈남한 탈북인을 만나 가진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민들이 겪었던 삶과 그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육성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국에 5년간 정착했다 영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새동네지 편집인 최승철 씨 등 한국에 정착했다 해외로 나간 이들과 2018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김 씨 등이 지적하는 탈북인의 현실은 다음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감시, 사회의 낙인과 차별, 분리와 배제,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

 

탈남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라고 말하는가?

 

한국을 떠난 탈북민들이 보는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국가권력이 입맛에 따라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이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탈북민을 가두어 놓는 사회이고 낙인을 찍어서 감시하는 사회이다.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에서 보듯이 국가권력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하지만 막상 위험에 부딪히면 정작 보호받지 못한다. 모든 탈북민들이 잠재간첩으로 의심받고 때로 간첩으로 조작되며 궁극적으로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회이다.

 

값싸고 충성스럽게: 국가권력이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

 

유럽에서 망명을 신청한 최승철씨는 한국에서 경험한 국가권력의 관제시위 동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탈북자들이 원해서 데모를 하는게 아니고 데모 같은 거 가면 돈 줘요. 보수단체에서 돈 줘요. 거기 가면 뭐 주니? 한국사회가 나쁜 게 뭐냐면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 있어. 관변단체, 국가에서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는 거야. 행사 동원하면 돈 주니까. 대표적인 관변단체, 그 다음에 통진당 반대한다.. 교통비로 2만원씩. 그 다음에 탈북자들 댓글 알바 잘해. 자. 이제부터 무슨 사건 생겼으니까. 부화뇌동으로 탈북자들 희동시켜 놨으니까.

 

이같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그간 jtbc언론보도에서 밝혀진 바와 같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아니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반대파를 음해하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범죄행위에 탈북민들이 연루되거나 시민적인 공감대가 큰 사안을 반대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동원되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사건 등의 반대집회의 경우에는 5개월 동안 39회에 걸쳐 연인원 1,259명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동원시 탈북인 1인당 2~3만원의 수당이 제공되었다. 한 탈북인은 하나원에서 나온 직후에 다른 탈북자를 통해 국정원 댓글을 달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받은 돈은 한 달에 5만원이었다. 그들이 동원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사람이라면 고액을 받고서도 꺼려했을 더러운 일들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알고 적은 돈으로 하는 저렴하고 어리숙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의 가장 근본적이고 무거운 책임은 국가권력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리벽에 갇히다: 분리하고 배제하는 한국사회

 

내가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등장인물은 한국 거주 7년차의 한 탈북남성이다. 영상은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비추고, 그는 자신들이 유리벽에 갇혀 있다고 절규한다. 그는 탈북민이 유리벽에 갇혀있는 현실이야말로 10만명당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한국 사람보다 몇 배나 높은 자살율을 초래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은 유리벽 속에 살아. 숨 막히게 숨 못 쉬게 유리벽 속에 가둬놨거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우리를 유리벽 속에 탈북자들을 가둬 놨거든. 그래서 한 유리창 깨고 나가면 또 유리창이 있어.”

 

그가 말하는 유리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안기관의 감시에서 한국사회의 배제 나아가 분단체제까지를 포괄한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자살관련 데이터로도 증명되는데 사망자자가 많았던 2015년 상반기에는 사망자 대비 자살률이 한때 15.2%에 달했다(원혜영 의원실, 통일부자료).

 

낙인찍는 사회, 감시하는 국가

 

탈북민들은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한다. 동정하거나 얕보거나. 혹은 양쪽 다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최승철씨는 사업실패이후 회의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친구가 “너 여기(한국) 와서 아무리 해봤자 너는 탈북자 아니냐? 거긴 진짜 다르다”는 말에 영국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탈북여성도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내고 살아도 자신들이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동조한다.

 

북한사람들은 불쌍해요. 한국에서도 편견이죠. 왜 여기 와서 절망감을 느끼는가. 외형적으로 누가 죽이는 사람 없어. 이 사람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 내고 살아도. 한국에 오니까 자유스럽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더라구요.(국내 거주, 40대 탈북여성)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계속 따라붙는 국가 공안기관들의 감시는 그들에게 말 못할 고통이다. 한 탈북민은 어느 정도 보안기간이 끝나면 그 탈북자라는 멍에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늘 자신의 뒤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격이라는 것이다. 보안기간은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탈북민들은 수년은 물론 십년이 넘어도 계속 경찰이나 기무사가 연락하고 체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유럽으로 떠난 한 군인출신의 한 탈북자는 그는 ‘감시’라고 할 정도의 관심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그가 한국을 떠나는 한 이유가 되었다.

 

“근데 그게 다 감시거든. 어디로 이제 가고 하는거 다 보고하라는 거야. 자기는 보호차원에서 그렇게 한데, 말은 그런데 감시차원이지. 그런 것들.”

 

신변보호경찰관은 공식적으로 말하는 보호의 이유는 북한의 테러 등 탈북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상에서 탈북여성은 다음과 같이 신변보호의 본질을 간파한다. ‘감시’이지 보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우리 진짜 살아가면서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거나 우리 살아가는데서 이 사람들이 도움을 주거나 그런 것은 없어.”

 

 

영화 자백에 나타난 국정원식 정치: 간첩이 필요한 대한민국

 

2017년 12월 박주민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합동신문시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 설명회에 참석한 한 탈북민은 ‘국정원 앞의 탈북민은 마치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은 운명이다’ 라고 말했다. 필요에 따라 국가기관이 횟감으로도 매운탕꺼리로도 골라 쓰는 게 탈북자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 ‘자백’에서 유우성의 여동생 유가려가 합동신문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오빠를 간첩으로 고발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심리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녀는 170일동안이나 고립된채 독방에서 수감된 채 합동신문을 거치면서 오빠인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간첩이나 위장탈북인을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행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탈북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폭력과 감시를 당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수사관에게 순응하고 굴복하며 심지어 감사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영화감독 최중호는 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청소년에게 이같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명확하다. 현행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률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의 지위는 입국후 5년간으로 한정되어 있어 2013년도 입국자부터 2017년까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는 6,731명이다. 탈북자는 5년까지만 탈북자이다. 그러나 법은 국가의 안보라는 현실 앞에 언제나 가볍게 무시된다. 통일부는 탈북민 3만2천명을 호명하여 이들을 별도의 분리된 정착지원체계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나는 이 두 개의 영화가 그려낸 탈북민의 현실에 깊이 공감한다. 이같은 현실은 가장 앞섰다는 탈북민 정착지원정책의 뒤에 숨어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민낯이라고 본다. 분단체제 국가권력이 언제까지 탈북민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일반사회에서 격리하여 별도로 관리할 것인가? 국정원 합동신문 6개월(2018년부터 3개월로 단축), 통일부 하나원 3개월 이어지는 각종 적응교육과 제2 하나원으로 불러들여 행하는 직업훈련 등. 별도의 교육, 별도의 행정체계, 별도의 취업지원체계. 분리는 통합을 역행한다. 새로운 전달체계는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필요로 한다. 별도의 분리체계가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지도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단지 두 개의 국가의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체제의 희생자들을 사회로 통합시켜 내는 일이며 남한 내의 통합과 평화에서 시작되어야(김동춘, 2013)”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단체제의 경계인들에게 어느 편인지 더 이상 묻지도 말고 분리하지도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아닌 평화로운 세상. 탈북자라는 이유로 낙인찍거나 배제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감시하지 않으며 간첩으로 만들지도 않는 사회, 노동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 평화체제는 일부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을 인정하고 통합하는 포용국가의 건설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물었던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이 질문은 “탈북민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 사회를 끌어가는 어른들에게 다시 되물어져야 한다. 이 질문은 탈북민을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시민 모두를 위한 질문이다. 우리 안의 국정원식 정치와 분단체제의 뒤틀린 모습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이 정상국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에서 꼭 풀어가야 할 질문일 것이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Spy Nation)’. 뉴스타파. (정재홍 극본. 2016. 106분 다큐멘터리)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Why I Left Koreas)’ (최중호 극본. 2017. 90분 다큐멘터리)

시민들의 의견

2016년 그 날 (75) 몇 차례 군수와의 협상시도가 실패했다. 군수가 계속 회피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군수에 대한 압박의 수준을 높였다. 12:30 군수와 친분이 있다는 제3부지를 찬성한 사람을 만나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15:00 이강태 신부와 만나 협상내용을 협의했다. 21:30 군수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날 투쟁위원회 측에서 이강태 신부, 김성혜 교무, 김충환 위원장, 이수인 전 기획팀장, 이재동 부위원장이 참석했고, 군수 측에서는 김항곤 군수, 김세환 부군수, 권도기 기획감사실장, 최종관 총무과장, 이재복 노인회장, 조익현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성주경찰서 김강현 정보과장이 배석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졌다. 317일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성주 평화나비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창환의 시, “대한민국 성주사람 오추옥”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영영 썩지 않을, 서러운 이름 하나 넙죽 받아 안고 저물어갔다. 아! 징그러운 이 땅. 14:00 백남기 농민, 돌아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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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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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앞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한미연합연습과 북 핵실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월, 2017/09/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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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전문 그룹 민주시민들을 위한 모임에 일제를 찬양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김정은을 자신의 동료라며 우기며 인신공격을 만행하는 쓰레기들의 집합소입니다. 군복압는 불법 어린 젖먹이, 과대망상 대인관계 문제자, 인터넷상에서 인신공격하다가 경찰에 입건된 놈들까지 별종들이 모인곳입니다. 다름아닌 제가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 그룹이 우리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그룹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바로 가입해서 공격합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적폐를 청산합시다!
월, 2017/09/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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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사드배치 반대론자를 중심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에 의구심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25일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드특위는 사실상 사드배치 반대입장을 가진 의원들의 모임
월, 2017/09/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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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 성주촛불 440일 with CameraFi Live
월, 2017/09/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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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으로부터 경찰 개혁의 방향에 대해 들었습니다. #국가폭력 #백남기 #쌍용자동차 #강정 #용산참사 #밀양 #가톨릭교회
월, 2017/09/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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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고 무기 팔아먹은 나라. 우리나라에 주둔하여 전시작전권도 가져가고 안돌려주는 나라. 기업 투자하라고 무기 사라고 사드 배치하라고 명령하는 나라. 식민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좋다는 호갱님들의 나라 우리나라. ≪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 미국-1 ≫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호전적(好戰的)인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하는 나라도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해 왔다. 첫째, 미국은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2016년 현재까지 240년 가운데 무려 219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는 8.8%인 21년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전 세계 150개 이상의 지역에서 약 250개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가운데 200개 이상의 전쟁이 미국에 의해서 일어났다. 참고로 20세기에만 약 1억9000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셋째, 미국은 2016년 세계 각지에 약 1000곳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일본에 5만2000명, 한국에 2만5000명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8만 명 이상, 독일에 3만7000명, 이탈리아에 1만2000명 등 유럽에 6만 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 멕시코 : 원주민 학살의 역사 > 멕시코와의 전쟁을 전후로 미국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백만 명 이상 죽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개척'일지라도 원주민들에겐 참담하고 끔찍한 학살이었다. 역사는 대개 승자가 쓰기 마련이며 패자의 기록보다는 승자의 기록이 퍼지고 오래 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미국의 '서부 개척'이라는 승자의 용어를 쓰려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이라는 승자의 용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며 '한반도 침략'이라는 패자의 입장을 주장하려면, 미국의 잔인함을 비판하며 '원주민 학살'이라는 패자의 처지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 스페인 : 선민의식과 조선에 대한 배신 >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1895년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쿠바에 투자한 미국인들의 보호를 명목으로 1898년 쿠바에 해군 함정을 보냈다. 곧 이 함정이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되자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겼다. 전리품으로 거의 모든 스페인 식민지를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지도자들이 내세운 게 선민의식이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인종이 기독교 문화와 그를 기반으로 발전된 서양 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미개한 유색인종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도리요, 의무라고까지 주장했다. 참고로, 1898년 쿠바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함정의 폭발은 무려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스페인군의 기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해외로 확장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1905년 태프트-가쓰라 비밀 협정을 맺었다. 태프트 미군 장관이 식민지 필리핀 시찰에 앞서 일본의 가쓰라 총리를 만났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양해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맺자, 서양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1882년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던 미국은 가장 먼저 조선을 떠났다. < 일본 : 고립주의와 중립주의에서 국제주의로 > 1935년 히틀러의 독일은 군비 증강에 착수하고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한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동원령을 내리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중립법을 제정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교전국에 대한 융자와 전쟁 물자의 판매까지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1940년 곤경에 처한 영국이 협력을 요청하자 미국은 중립법을 피하고 무기 대여법을 통해 영국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미국도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며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1945년 7월 인류 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8월 일본에 터뜨림으로써 전쟁을 끝냈다. 핵무기에 따른 조선인들의 피해도 매우 크고 끔찍했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 약 7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4만 명이 폭사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국제주의로 바뀌었다. 유럽 열강들이 두 차례 대규모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하며 쇠퇴하는 터에, 세계 제1의 국가로 솟아오른 미국이 소극적 고립, 중립주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 소련 :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와 저지 >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1이 되었는데 곧 미국에 맞서는 나라가 나타났다. 자본주의 멸망을 추구하며 세계 제2위로 오른 사회주의 소련이었다. 미국은 한반도가 그리스나 터키보다 전략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여겨, 1947년 초부터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며 물러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1947년 9월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10월 한반도 문제를 미국 외교의 뒷마당이랄 수 있는 유엔에 떠넘겼다.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국가 이익'이다.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련과 손잡고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뒤엔 연합국이던 소련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까지 우방으로 만들었다. 1947년부터 안으로는 국가안보위원회 (NSC), 중앙정보국 (CIA), 그리고 합동참모본부 등을 만들고 밖으로는 미주기구 (OAS),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등의 창설을 주도하며 소련과의 냉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 한반도 : 60여 년 지나도 끝나지 않는 전쟁 >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트루먼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했다. 그리고 남한이나 대만이 공산화하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이 합법적이고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란 성명을 발표하고, 긴급 상황이라며 의회의 동의 없이 병력을 보냈다.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1950년 9월 인천에 상륙해 서울을 되찾고 북쪽으로 진격했지만 10월 중국군이 참전함으로써 1951년 1월 후퇴했다. 1년간의 격전 끝에 1951년 7월부터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2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1953년 7월 휴전‧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그로부터 63년이 흐른 2016년 8월까지 전쟁을 쉬거나(휴전) 멈추고 있는(정전) 상태에서 완전히 끝내거나(종전)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호전적'인 북한은 줄기차게 종전-평화 협정을 요구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과 남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베트남 : 제2의 한국 전쟁 >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대한 베트남의 독립 전쟁인 제1차 베트남 전쟁은 1946년 시작되어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끝났다.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하되 2년 안에 선거를 통해 통일 국가가 되도록 한다는 내용의 제네바 협정이 맺어졌다.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남베트남에 경제 및 군사 지원을 시작했다. 선거가 실시되면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추구해온 호치민의 북베트남이 압도적으로 이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 개입을 확대하면서 북베트남 통킹만에 함정을 보내 정찰 활동을 펼쳤다. 미국 함정이 공격당하는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를 빌미로 1965년부터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벌였다. 제2차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은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971년 조작으로 밝혀졌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한 빌미로 삼았던 미국 함정의 폭발이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 것과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격렬한 반대와 저항을 받았던 범죄행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굴욕적인 전쟁이기도 했다. 이토록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나라가 남한이었다. 처음엔 미국에 간청하다시피 해서 파병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미국의 신임과 지지를 받으면서, 미국의 지원에 의한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 이라크 : 일방주의 그리고 선제공격 > 미국은 2003년 유엔의 반대와 많은 나라들의 비판을 받으며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라크를 침공했다. 네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미국처럼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많이 배치해 놓고 있는 나라는 없다. 둘째, 이라크가 9.11테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9.11 이전까지 미국만큼 테러를 많이 지원했던 나라는 없다. 셋째, 이라크가 독재를 실시하고 인권 탄압을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독재와 인권 탄압에서 이라크 못지않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에는 무기도 팔고 경제 지원도 했다. 그리고 미국처럼 독재 정권을 많이 지원한 나라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독재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수십 개의 민주화 운동이 미국의 도움에 의해 반공의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넷째,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유엔 역사상 미국만큼 유엔 결의안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없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엔을 무시하고 단독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대외 정책에 공개적으로 밝힌 나라 역시 미국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를 점령해 군사 정권을 세우려는 진짜 속셈은 반미 정권을 제거하고 석유 자원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있었다. 그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남한은 한미 동맹을 앞세우며 베트남전에 이어 또다시 병력을 보냈다. < 새로운 냉전의 시작 :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며 봉쇄해왔다. '냉전'의 정의와 개념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겠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말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10%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해왔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1996년 일본과 안보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1997년엔 일본과의 방위 협력 지침을 개정했다. 2015년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만들고,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을 끌어들여 이른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국 견제용이다. 2016년 남한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것 역시 중국 때문이다. 미국이 60여 년이 넘도록 한국 전쟁을 끝내지 않고 북한과의 평화 협정을 거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종전 협정이나 평화 협정을 맺으면 주한 미군을 계속 유지할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사의 내용을 일부 생략하여 간추린 것입니다.
화, 2017/09/2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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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 발간] 제주도 사려니숲길을 찾은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로 꼽히는 제주지역이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지역경
월, 2017/09/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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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월, 2017/09/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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