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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강기훈 유서대필은 사법공동체가 만든 블랙코미디" (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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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강기훈 유서대필은 사법공동체가 만든 블랙코미디" (181029)

익명 (미확인) | 목, 2018/11/08- 11:51
"'1987'로 우리가 승리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요. 그 결과가 '1991'이거든요. 1987년보다 1991년 시위에 나선 인원이 더 많았고, 11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87년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승리를 입에 올리는 것은 기만이죠." 1987년 승리의 함성은 양 김의 분열과 삼당 합당을 거치면서 사그라지고 만다. 1991년 봄 젊은이와 노동자들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며 다시 거리로 나서지만, 국가와 기득권의 벽은 높고 공고하기만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몸을 던져 불의에 항거하는 길을 택한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자 피 끓는 청춘의 연쇄 분신이 이어진다. http://www.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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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8365.html"한때 대구는 강화도 출신의 진보 후보 조봉암에게 무려 72.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던 지역이었다. 그러던 대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심층 분석해봤다."
월, 2017/02/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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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놈이 경찰대학 시험을 봤는데 필기는 수석으로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서 나 때문에 떨어졌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더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들의 말이 끝나고 나서 그는 아무 말 없이 아귀찜 그릇을 박박 긁었다. 밥도 국물도 생선살도 없는 그 그릇을 긁고 또 긁었다. 이대로 숟가락을 놓아버리면 아들과 더 이상 밥상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그 심정으로 그는 말없이 그릇만 긁었다. 그렇게 떠난 아들은 얼마 후 한강에서 투신하여 벽제의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84581
금, 2017/12/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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