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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강기훈 유서대필은 사법공동체가 만든 블랙코미디" (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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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강기훈 유서대필은 사법공동체가 만든 블랙코미디" (181029)

익명 (미확인) | 목, 2018/11/08- 11:51
"'1987'로 우리가 승리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요. 그 결과가 '1991'이거든요. 1987년보다 1991년 시위에 나선 인원이 더 많았고, 11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87년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승리를 입에 올리는 것은 기만이죠." 1987년 승리의 함성은 양 김의 분열과 삼당 합당을 거치면서 사그라지고 만다. 1991년 봄 젊은이와 노동자들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며 다시 거리로 나서지만, 국가와 기득권의 벽은 높고 공고하기만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몸을 던져 불의에 항거하는 길을 택한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자 피 끓는 청춘의 연쇄 분신이 이어진다. http://www.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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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은 또 “이 사건은 ‘과거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정립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사법부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짚었다. 법원이 10여년간 시간을 끌며 판단을 번복하는 탓에 이씨는 9차례 재판을 치르며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특히 대법원은 애초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놓고 3년여 만인 2014년 ‘위자료 과다’를 이유로 판단을 재차 뒤집었다. 당시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국가배상금을 줄이기 위해 금액까지 판단하며 무리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1383.html#csidxd85…
목, 2017/09/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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