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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무역전쟁, 최후의 승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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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무역전쟁, 최후의 승자는 누구?

익명 (미확인) | 화, 2018/11/06- 11:26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의 앞날을 여전히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 7월과 8월 500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이래, 최근에는 중국 하이테크기업인 푸젠진화(福建晋华)에 대해 미국 반도체회사의 경쟁력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출제한 조치를 내렸다. 그전 처음 종싱통신(ZET)을 제제할 때만 해도 나름의 복잡한 형식상의 절차를 밟았지만, 이제는 중국에 대한 ‘기술봉쇄’를 위해서라면 아무 때나 자국기업에 거래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는 태도이다.

중국의 강경한 태도 역시 변함이 없다. 얼마 전 10월 31일 열린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는 기존 경제정책기조의 유지를 재확인하였다. “안정 속의 발전 추구”(稳中求进), “높은 질량위주 발전의 굳건한 추진”(坚定不移推动高质量发展) 등이 그것이다. 최근 중미 무역전쟁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정부의 일관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두 강대국의 싸움은 이제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최근 한국 코스피지수가 연일 폭락하면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을 실감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월 한 달 새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20% 이상 빠지면서, 근래 들어 최대의 낙폭을 기록하였다. 2000선 방어가 위태로워진 것은 물론이요, 한국경제를 둘러싼 사방팔방의 각종 악재들을 고려 할 때 앞으로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칼럼_181106 KORUS NEWS
(사진: KORUS NEWS)

이렇듯 애초 예상과는 달리 진행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사람들도 세기적인 두 초강대국 간의 무역전쟁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특수전쟁’의 끝은 어디이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갈수록 궁금해지게 된다. 곧 싸움을 끝낼 듯 초기에 승기를 잡고 기세등등해 하던 미국도, 최근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의 폭락사태가 보여주듯 자기가 먼저 걸어 간 싸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되었다. 사실 이 같은 사태는 일찍부터 예측되었던 바이다. 오늘날의 글로벌경제하에서 세계의 모든 국가는 서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황에서 홀로 초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의 경험담을 꺼내고 싶다. 필자는 금년 여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싸움에서 중국이 질 수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중국경제는 얼마간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경제성장을 이끄는 삼두마차가 모두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우선 미국과의 무역분쟁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외무역과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1~5월 상품수출입은 6,498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지만, 서비스무역 적자가 6,887억 달러에 달함으로써 경상수지적자 폭은 389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수출입 분야의 위축과 함께 심리적인 충격도 켜서 주식시장이 연일 폭락하고 (상해종합지수 3500선→2700선), 환율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인민폐 절하가 지속되었다.(달러당 6.25위엔→6.7위엔) 또 그동안 ‘신상태(新常态)’ 하에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 큰 몫을 해왔던 소비 증가폭도 한풀 꺾여 ‘피로’ 현상을 보여주었다. 소비품 소매매출액 증가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금년 5월에는 10.7%에서 8.5%로 다소 내려갔다. 임금인상율 하락, 부동산가격 상승 억제, 주식시장 불황 등 가계소득 향상을 뒷받침 해 줄 만한 요소들이 하나 같이 불안하거나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강도 높은 ‘반부패’ 투쟁의 지속으로 기존에 ‘공금’을 이용한 간부들의 소비향락도 대폭 줄어들었으며, 이 부분도 일정 소비열기를 식히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이러한 경제지표 자체보다도, 이처럼 다소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중국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이 여전히 그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2015년부터 본격화된 철강·시멘트·아연 등의 과잉생산부문에 대한 구조조정과 기업 ‘부채 줄이기’ 작업이 여전히 꾸준히 진행 중에 있었다. 특히 후자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었는데,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재무상에 있어 과도한 부채에 대한 ‘채무의 주식 전환(债转股)’ 작업이 활발하였다.

경제의 하방압력이 커지고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중국정부가 이렇다 할 부양정책이나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 정책을 수정하는 조처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 중국경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라 보여 진다. 예컨대 예전에는 일단 경기가 위축될 조짐이 나타나면 중국정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어느 정도 늦추면서 이 부분의 열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정책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이리하여 지가상승→지방정부의 재정소득 증대→정부투자확대를 통한 일련의 경기진작 사이클의 재가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같은 정책 변화의 조짐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주식시장에서도 당시 3000선을 사수하기 위해 ‘국가대표팀’이 출동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상해주가지수가 2700선까지 힘없이 밀릴 때까지 이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인 주가 부양 조짐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중국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일각에선 지난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에 온자바오 정부가 ‘4조 위엔’의 화폐를 쏟았던 부양정책의 후유증을 연관시킨다. 그 때문에 다시 정부가 그러한 인위적인 케인스식 정책을 쉽게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필자의 해석은 좀 다르다. 비록 작금의 중국 경기가 얼마간 어렵고 국내외적인 불확실성도 증가하였지만, 그러나 기존의 정책방향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작금의 어려움은 구조조정을 완수하기 위한 정상적인 진통을 겪는 과정에 불과하며, 이러한 고비를 넘겨야만 (길게 잡아 2~3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각오와 나름의 자신감의 발로라고 보여 진다. 만약 필자의 이러한 판단이 맞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현 무역전의 형세를 다시 바라보아야만 한다. 즉 중국이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다는 국내 대다수 언론보도와는 달리, 미국과의 무역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자기 페이스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이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주지 않고 있다는 점을 그 무엇보다도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금번 중미 간 무역전쟁은 결국 ‘무승부’로 끝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같은 형식의 이면에는 내용상으로 중국의 승리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중국이 양보한 것은 별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 전력을 비교한다면, 미국이 비록 금융부문에서는 앞서간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단기간에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 중국의 이 방면에 있어서의 수비가 허약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튼튼한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와 아직 덜 개방되고 국가의 강한 통제 하에 놓여 있는 금융시장은 국제 투기자본의 활동을 크게 제약시킨다. 그들은 지금으로써는 주로 해외시장을 통해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방식으로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미연준위의 금리인상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의 취약한 미국의 경제성장 기조와 천문학적인 국가부채 규모는, 만약 미연준위가 무리하게 금리인상을 추진할 경우 먼저 미국 자신을 압박하고 쓰러트리게 만들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올해 3% 성장률을 달성한 뒤 내년에는 곧바로 하락세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미국경제의 체질이 많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트럼프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지지층의 분열과 불만으로 인해 이 싸움을 오래 끌고 갈수가 없다. 물론 이 경우 트럼프는 최소한의 체면을 살리려 할 것이며, 중국 역시 적절한 타협과 현상 유지가 목표이기 때문에 트럼프를 막다른 궁지에 몰면서 완벽한 승리를 추구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약간의 위안화절상 (무역전쟁 본격화 이전의 1달러=6.2위엔을 크게 넘지 않는 선)이나, 이전에 합의 했던 중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구매확대 조치 등을 이행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결국 불똥은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자력만으로는 자국 경쟁력의 완전한 회복과 충분한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중국이 호락호락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이 다른 동맹국들에게 전가하게 될 ‘분담금’은 반대급부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중간선거 이후 비록 트럼프정부가 중미 간의 무역전에서 한발 물러선다 할지라도, 특정 분야의 개별 국가를 지목한 무역분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즉, 미국의 실리 챙기기작업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 주요 대상국은 대미 흑자국가 중에서도 약소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바로 그 같은 케이스에 속하며, 필자가 중미 무역전쟁의 후폭풍을 계속해서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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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건드린 뇌관캘리포니아는 국가이고 싶어!

영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1838~1922) 자작(子爵)은 1887년에 쓴 <미연방(The American Commonwealth)>에서, 캘리포니아는 “많은 측면에서 전체 연맹 중에서 가장 월등하고, 그 어떤 주 보다 세계에서 홀로 우둑 설 수 있는 위대한 나라의 성격을 지녔기에 내가 기꺼이 거주하고픈 주”라고 썼다.

그런 존재감과 자신감에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 19 이후 캘리포니아가 미심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지사인 뉴섬(Gavin Newsom)의 입에서 미합중국주의자라면 귀에 거슬릴만한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주’(state)가 아닌 ‘국’(nation)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뇐다. 그의 표현으로는 ‘캘리포니아국’(California nation-state)이다. 원래부터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있는 뉴섬 주지사가 코로나 이후 무능하고 무책임한 트럼프의 코로나 대처에 열불이 나서 트럼프에게 더 날을 세우려 그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주지사가 저런 말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에 많은 매체가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뉴섬 지사는 4월 13일 자신의 발언은 세계 5위의 경제와 미국의 20여개 주를 합한 수 보다 많은 인구를 지닌 캘리포니아의 “규모와 범위”를 감안해 한 발언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한 발 물러섰다.(“Is California a Nation-State?,” New York Times, April 14, 2020).

그러나 바로 그 규모와 범위에 있어 존재감을 갖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한 발언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만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것을 필두로 해서 불길한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는 미국이기에 그렇다. 그 불길한 조짐이란 바로 분열이다.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분열된 모습이 현재의 미국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미국을 ‘미분열국’(The Un-united States of America)로 부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이참에 갈라서자

2001년부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지난 4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다. “코로나로 한 가지 분명해 진 사실: 이참에 갈라서자”(“Column: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made one thing perfectly clear: It’s time to split the country,” Los Angeles Times, April 22, 2020). 글의 요지는 간단하다. 코로나사태가 터지고 미국이 민낯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지도자(트럼프를 가리킴)와 미국인들이 즐비하다. 그걸 계속해서 보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더는 못 버티겠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젠 때가 된 것 같다. 연방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 50개 주를 성향에 따라 3개 또는 2개로 나누자. 3개의 국가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이 이름 지으면 될 것 같단다. ‘미국우선공화국’(The Republic of America First: 트럼프의 외교정책 노선 “미국우선주의”를 빗댄 것), ‘신과 총의 연방’(The Commonwealth of God and Guns: 보수주의자들을 지칭한 것), 나머지 하나는 ‘오합지졸연합피난처’(The Federated Sanctuary of Huddled Masses: 구심점 없는 진보주의자들을 일컬음)로 맨 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수도가 위치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어쩌면 저렇게 이름을 그럴 듯하게 지었을까. 그러면서 당장 3개로 나누는 것이 어려우면 이른바 ‘레드스테이트’(공화당지지우세 주)와 ‘블루스테이트’(민주당지지우세 주)로라도 나뉘었으면 좋겠다며 이참에 확실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자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변죽을 울리고 슬쩍 빠졌던 그 “캘리포니아국”를 아예 공식화하자며 칼럼을 맺는다. 미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서 따로 살자는 것이다.

전례 없이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진영으로 나뉜 미국. 그래서 이 진영에 속한 주들끼리 따로 분리하자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작금의 미국이다. <애틀랜틱>

유력 매체의 사설이 저렇게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미국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신물이 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쿨’하게 갈라서자는 말이 나올 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마스크가 가른 미국 정치 지형

1768년, 필라델피아의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 존 디킨슨(John Dickinson, 1732~1808)이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by uniting we stand, by dividing we fall)이다. 그 뒤 독립운동의 웅변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그 말을 인용해 유명한 연설을 한 뒤, 경구가 되다시피 한 저 문구는 250여년이 지난 지금 거꾸로 사용될 정도로 색이 바래버렸다. 왜냐하면 이제는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Divided we stand, united we fall)라는 말이 더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갈라지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제목을 단 <뉴욕메거진> 기사

그 정도로 지금 미국은 절망적으로 분열되었다. 물론 미국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소위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이니만큼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정치색이 달라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고 싸우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디킨슨이 남긴 저 말처럼 통합해서 위기의 고비를 넘기곤 하였다. 그러나 앞서 내가 여러 번 지적했다시피 이번엔 양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선을 끼고 크게 3번의 거대한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186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노예제의 장래를 두고 싸웠다. 그것은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1932년 대선에서는 대공황의 대처방안을 놓고 진영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80년 대선에서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두고 진영간의 심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2020년 대선이다. 이번엔 무엇을 놓고 진영간 대립이 벌어지고 있을까? 힌트는 코로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대번에 답을 댈 수 있었을 것이다. 답은 마스크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앞서, 어떤 이들은 코로나 사태와 조지 플로이드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오는 걸 보면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진영 간의 극심한 대립)가 깨진 것 아니냐는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정치매체 <더힐>이 그런 분석을 냈다. 전통적인 트럼프 지지층인 백인 가톨릭교도들의 지지가 지난 3월엔 60%였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37%로 떨어진 것을 두고 코로나가 혹시나 정치적 양극화라는 거대한 빙산에 금을 가게 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그러나 내가 볼 때 이런 진단은 섣부른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렇다. 정치 진영 간의 골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깊이 패어있었다. 즉 하루 이틀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확실히 갈라서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란 말이 계속해서 나왔던 게 저간의 미국의 사정이다.(“Divided We Stand: The country is hopelessly split. So why not make it official and break up?” New York Magazine, Nov. 14, 2018). 양쪽 진영끼리의 증오와 반목도 소외와 허탈을 느낄 정도로 극해 달해 있었다.(“Estranged in America: Both Sides Feel Lost and Left Out,” New York Times, Oct. 4, 2018).

물론 코로나로 트럼프 선호도가 약간 떨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5%로 정권 초기의 44%에 비하면 변함이 없다. 오히려 코로나가 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보여주는 조사도 존재한다. 이번에 양쪽을 가르는 것은 마스크에 대한 것이다. 카이저재단(Kaiser Family Foundation)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5월 현재 민주당지지자 89%가 집밖에서 마스크를 착용했고 공화당지지는 58%만 착용했다.(“Trump’s mockery of wearing masks divides Republicans,” Washington Post, May 27, 2020; “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How face masks are dividing America,” The Telegraph, June 12, 2020; “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어떻게 마스크가 미국을 갈랐는가?’란 제목의 <텔레그래프>기사

어쨌든, 코로나 이전이든 이후든 분열된 정치적 지형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내가 볼 때 이러한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면 됐지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격화되고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이를 두고 여론조사기관 시빅사이언스(CivicScience)의 존 딕(John Dick)은 “정치적 종족주의”(political tribalism)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치적 종족주의야말로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거의 다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라고 분석한다(“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한 마디로 ‘정치적 종족주의’는 미국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열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끝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등장을 하고, 성공회 교회 앞에서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성경을 들고 사진 찍고 오는 장면을 대중에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히 종족화 된 정치지형에서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위의 일환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항의 시위가 남부연합을 역사에서 지우는 역사 전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고수하려 했던 남부연합의 대통령과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Third Confederate statue toppled by protesters in Richmond in recent weeks,” Washington Post, June 17, 2020; “Confederate statues: In 2020, a renewed battle in America’s enduring Civil War,”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남부연합군의 깃발인 연합기도 퇴출될 운명에 놓여있다.(“Will the Black Lives Matter movement finally put an end to Confederate flags and statues?” USA Today, June 12, 2020). 미 해병대는 부대 내에서 연합기의 게양을 금지했다.(“U.S. Marine Corps Issues Ban on Confederate Battle Flags,” New York Times, June 6, 2020). 미 육군도 모든 부대 내에서 금지하는 명령을 발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은 남북연합의 지도자 이름을 딴 미군기지 10 군데의 명칭을 변경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Army reverses course, will consider renaming bases named for Confederate leaders,” Politico, June 8, 2020).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남북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저렇게 남부 연합기가 사라지고, 남부연합군의 지도자와 병사들의 동상과 상징물들이 철거되고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환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들도(이런 이들에게 요샛말로 ‘샤이’ 자를 붙여야하나? 물론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KKK단 같은 극력백인우월주의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적지 않게 있다. 그러니 연합기가 퇴출되고 동상들이 쓰러트려진다고 해서 미국인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동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것은 그런 이들의 대표자인 트럼프가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미군 기지의 명칭 변경의사를 표명하기 무섭게 단박에 제동을 건 것을 보면 확실해 진다.(“Trump won’t rename Army posts that honor Confederates. Here’s why they’re named after traitors.” Washington Post, June 11, 2020; “Trump Might Go Down In History As The Last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경찰을 몰아낸 시애틀의 자치구(CHAZ) <출처: 복스>

심지어 현대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자치구(autonomous zone: 카즈‘CHAZ’라고 불림)를 선포한 곳도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이다. 이들은 경찰을 몰아내고 경찰서를 점거한 뒤 현판을 “시애틀경찰서”(Seattle Police Dept.)에서 “시애틀민중서”(Seattle People Dept.)로 바꿨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그 내부는 그렇게 무질서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약간의 긴장감은 돌고 있지만 대체로 축제 분위기란다.(“Community, Not Anarchy, Inside Seattle’s Protest Zone,” Bloomberg, June 17, 2020; “Seattle’s newly police-free neighborhood, explained,” Vox, June 16, 2020). 분열의 끝에 이런 일종의 해방구까지 등장했고 해당지역의 주지사와 시장은 이들의 역성을 들고 있으니 실로 난세는 난세다.(“Trump claims ‘radical left’ has ‘taken over’ Seattle as he spends birthday at golf club,” The Guardian, June 14, 2020; “Capitol Hill Autonomous Zone becomes political flashpoint, as Durkan rebukes Trump’s message to ‘take back’ city,” Seattle Times, June 11, 2020).

 

분열 중인 미국

이런 분열은 단지 정치적, 인종적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열과 갈등은 코로나 이전부터 점증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을 크게 공간적으로 나누어 볼 때, 레드스테이트와 블루스테이트로 분할해 볼 수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그런데 이런 지형적 분류는 솔직히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현재의 미국의 지역적 갈등 양상과 지형은 보다 더 복잡하다. 그리고 복잡성은 최근 수십여 년에 걸쳐 더욱 현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적·지리적인 분열과 갈등의 양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파편화의 편재성이다. 분열과 갈등은 미국 전 지역에 고루 편재해 있다. 심지어 동일 지역 내에서조차 그러하다. 같은 주내에서도 농촌과 도시 지역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도시 외곽인 농촌지역 내에서도 지역 간에 양극화 현상이 보인다. 반목과 시기의 정서가 팽배하다.(“One County Thrives. The Next One Over Struggles. Economists Take Note,” New York Times, June 29, 2018). 또한 도시들 간에도 양극화가 진행 중에 있고(“In Superstar Cities, the Rich Get Richer, and They Get Amazon,” New York Times, Nov. 7, 2018), 같은 도시 내에서조차도 분열과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As Bloomberg’s New York Prospered, Inequality Flourished Too,” New York Times, Nov. 9, 2019). 가히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란 유령이 미국을 집어 삼킨 것처럼 보일만큼, 그렇게 미국은 현재 분열 중이다.

둘째 특징은, 대체로 그런 분열이 정치색과 맞물리는 경향이 더욱 더 짙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농간의 분열을 보자. 도농간의 분열은 사실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그 강도가 더 세며,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도표>를 보면,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이 갈수록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지지로 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농촌지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가 서로 엇비슷하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008년 이후 공화당지지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더욱 뚜렷해지는 도농 간 정치색. 도시 지역은 갈수록 공화당 지지가, 농촌 지역은 민주당 지지가 강해지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분열 뒤에 숨은 으스스한 그림자, 불평등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분열이 이렇게 극대화되고 극력해지는가? 나는 그 기저에 불평등의 심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은 앞서 언급했듯 여러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사는 ‘도가니’다. 그만큼 이질적 사회다. 그런데 그런 이질적 요소를 통합시키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 1902~1979)는 이것을 “가치의 일반화”(value generalization)라고 말했다. 그것은 상이한 여러 가치들을 뭉뚱그리고 한데 아우르는 상위의 가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인종과 성별 보다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더 우위에 두는 가치를 말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한국계, 일본계, 독일계 등의 다양한 민족적 배경의 범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뉴욕커(뉴욕시민), 보스터니언(보스턴시민)이 더 상위의 범주와 개념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 아우르는 일반화된 가치를 지닌 포괄적 개념과 범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미국시민이다. 미국인들은 이 포괄적이고 일반화된 개념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자기의 민족적 배경은 희생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각자의 민족적 뿌리를 고집하지 않고 희생하면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메리칸드림’이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희생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미국인들에게 팽배하다. 그 명확한 증거가 바로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러니 통합과는 거리가 먼 분열된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 1%(제국)에게만 가능한 아메리칸드림. 나머지는 아메리칸드림이 뭔지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 놓인 것이 바로 분열의 주된 동력이다. 그러니 그 애지중지 간직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시민임을 내팽개쳐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미국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2007년(금융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감안한 재산의 변동 추이. 하위 90%는 2007년 보다 더 가난하다. 상승곡선을 탄 것은 상위 10%로 그들의 승승장구는 곧 불평등의 심화를 의미한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향후 관전 포인트

여기서 주의할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상식과는 달리 어떤 사람이 처한 위치와 정치적 선호의 대칭이 안 맞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잘 사는 이가 보수, 못 사는 이가 진보, 이런 식이 아니라 거꾸로 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남좌파가 있고 오히려 저소득층에서 보수성향인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의 양상, 반목과 갈등의 고조, 불만과 좌절의 급증은 불평등의 심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의 원인이 모두 상대편 진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그릇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열 뒤에 따를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집단 내에서 갈등이 고조될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전쟁이다. 내부 또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남북전쟁이라는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룬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극심한 분열의 최후 승리자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열의 당사자들은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처절한 피해자가 될 뿐이다. 그럼 일반 대중(국민)들이 서로 분열하면서 반목하고 증오하며 갈등하는 사이 그 뒤에서 웃을 이들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이 극심한 불평등을 유발한 자들이며, 이러한 분열(단순한 시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을 뒤에서 교묘히 기획, 조정, 부추기는 자들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은 겉으론 이런 모든 일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화살을 저런 분열을 통해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곤 자신들의 탐욕을 마음껏 충족한다. 나는 그들을 제국이라 부른다. 그들의 철칙이 있다. 이름하여,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그런 제국엔 월가가 우두머리로 군림한다. 그런 월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6월 8일자 사설의 제목은 “적들은 미국을 약하고 분열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작금의 시위는 미국이 지속하는 강점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였다.(“Enemies See a Weak and Divided U.S.: But they’re wrong. The protests showed some of America’s enduring strengths.” Wall Street Journal, June 8, 2020). 미국의 시위를 그저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문제로만 축소 왜곡하며 동시에 장점으로 추겨 세우고, 적에 대한 경고도 날리는 애국으로 살짝 분칠을 한 이 사설. 나는 여기서 제국들이 현재 미국의 분열을 관망하는 태도를 본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유체이탈화법의 태도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범과 그 하수인들이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는 양 유체이탈화법을 쓰고 있는데서 나는 그들의 간악무도함을 본다. 그 말할 수 없는 가증스러움을….

 

참고자료

James Bryce, The American Commonwealth(New York, NY: MacMillan and Co., 1889). 2nd edition, pp.385-408.

“As Bloomberg’s New York Prospered, Inequality Flourished Too,” New York Times, Nov. 9, 2019.

“The Seattle Secessionists,” Wall Street Journal, June 11, 2020.

“Trump claims ‘radical left’ has ‘taken over’ Seattle as he spends birthday at golf club,” The Guardian, June 14, 2020.

“Community, Not Anarchy, Inside Seattle’s Protest Zone,” Bloomberg, June 17, 2020.

“Seattle’s newly police-free neighborhood, explained,” Vox, June 16, 2020.

“Army reverses course, will consider renaming bases named for Confederate leaders,” Politico, June 8, 2020.

“Trump won’t rename Army posts that honor Confederates. Here’s why they’re named after traitors.” Washington Post, June 11, 2020.

“Will the Black Lives Matter movement finally put an end to Confederate flags and statues?” USA Today, June 12, 2020.

“U.S. Marine Corps Issues Ban on Confederate Battle Flags,” New York Times, June 6, 2020.

“Third Confederate statue toppled by protesters in Richmond in recent weeks,” Washington Post, June 17, 2020.

“Trump’s mockery of wearing masks divides Republicans,” Washington Post, May 27, 2020.

“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Is California a Nation-State?,” New York Times, April 14, 2020.

“George Washington Statue Vandalized in Chicago’s Washington Park,” NBC5ChicagoNews, June 14, 2020.

“Column: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made one thing perfectly clear: It’s time to split the country,” Los Angeles Times, April 22, 2020.

“Divided We Stand: The country is hopelessly split. So why not make it official and break up?” New York Magazine, Nov. 14, 2018.

“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How face masks are dividing America,” The Telegraph, June 12, 2020.

“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Capitol Hill Autonomous Zone becomes political flashpoint, as Durkan rebukes Trump’s message to ‘take back’ city,” Seattle Times, June 11, 2020.

“Confederate statues: In 2020, a renewed battle in America’s enduring Civil War,”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Trump Might Go Down In History As The Last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Across the Wide, Growing American Divide,” National Review, May 21, 2020.

“Estranged in America: Both Sides Feel Lost and Left Out,” New York Times, Oct. 4, 2018.

“Enemies See a Weak and Divided U.S.: But they’re wrong. The protests showed some of America’s enduring strengths.” Wall Street Journal, June 8, 2020.

“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One County Thrives. The Next One Over Struggles. Economists Take Note,” New York Times, June 29, 2018.

“In Superstar Cities, the Rich Get Richer, and They Get Amazon,” New York Times, Nov. 7, 2018.

“Watch 4 Decades of Inequality Drive American Cities Apart,” New York Times, Dec. 2, 2019.

목, 2020/07/23-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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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지나간 곳엔 시체가 즐비하다. 흔히 사모펀드를 기업사냥꾼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것도 모자라 사냥한 후에는 기업을 완전히 시체로 만들어 버리고 장사를 지낸다. 그래서 나는 사모펀드를 ‘기업장의사’라 부른다. 사모펀드가 어떤 식으로 기업의 흡혈귀와 장의사 노릇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예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예다. 경상북도 영덕으로 가보자.

사모펀드가 기업장의사임을 즉시적으로 보여주는 뉴욕타임스 기사. “어떻게 사모펀드가 신발소매업 체인점 페이리스(Payless)를 장사 지냈는가”란 기사 제목이다.

 

경북 영덕주민들 두 번 울린 사모펀드

경상북도 영덕에 가면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뒤에 지역주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있다. 이 풍력발전공사를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가 이른바 “먹튀”(먹고 튄다는 속어)를 했기 때문이다. 호주계 사모펀드 맥쿼리PE가 영덕풍력발전공사를 인수한 것은 2011년, 200억 원을 들여 유니슨 등으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2019년 삼천리그룹의 삼탄에 매각했다. 7년간 맥쿼리가 소유주로 있는 동안 올린 수익은 630억 원. 그러나 현재 회사는 자본잠식상태다. 깡통회사란 뜻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8년 한 해만 보더라도 영덕풍력발전은 한 해 동안 약 81억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약 19억3천만 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자비용으로 45억 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렇게 7년간 맥쿼리에 이자비용(전환사채 차입에 대한)으로 지출한 것이 총 319억 원이다. 결국 모든 것을 계상하면 결손금 117억 원이 자본총액 40억 원을 초과해서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것이다. 빚밖에 남는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멕쿼리는 2013년 영덕 근처의 영양풍력발전공사까지 인수했다가 작년 영덕풍력발전까지 한데 묶어 삼탄에 1천9백억 원을 주고 매각했다. 이로써 수백억 원의 매각 수익에 이자, 거기에 7년 동안 올린 수익을 쏙 빼먹고 튄 것이다. 영덕군이 올린 수입은 부지 대부료로 매년 331만 원 받은 것이 전부. 각종 기반시설 지원 등에 군민 혈세가 들어간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며 기대한 일자리는 고작 7명이다.

그럼 이게 다일까?

새 인수자 삼탄 역시 사모펀드와 은행을 끼고 영덕 및 영양풍력발전공사를 차입매수 했다. 각각 192억 원과 854억 원을 30년간 대출로 연리 12%의 이자를 내도록 했다. 해서 영덕과 영양풍력발전공사는 연간 각각 23억 원, 102억 원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익을 내봤자 아무 소용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될 것이다. 영업을 할수록 손해만 쌓인다. 더 못 버티고 곧 문을 닫을 것이다.(『영남경제』, 2019. 9. 5; 2019, 9. 6; 2019, 9. 18).

 

기업흡혈귀와 장의사 사모펀드의 기업 고사 방식

다른 나라(미국) 이야기를 먼저 하면 관심이 덜 할 것 같아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이것을 보면 사모펀드가 왜 기업장의사와 기업흡혈귀란 명칭이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사모펀드는 경영상태가 안 좋은 회사를 좋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들고 회사를 싼 값에 매입하거나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한다. 이 뒤에 따라오는 명분들은 수익을 내는 튼실한 회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 하겠다는 것이다. 매입 대상 업체는 둘 중 하나다. 상장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해 상장을 폐지해 나중에 재상장해 매각 수익을 얻거나, 비상장사를 사서 상장사와 합병하는 우회상장을 통해 가치를 높여 매각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공통된 것은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사냥의 대상이다.

둘째, 그러나 그 명분은 말만 그럴 뿐, 회사의 구성원이나 회사 자체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나 소유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등을 강행한다. 그렇게 해서 장부상으론 이전 보다 괜찮은 회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즉 회사의 정상화나 건실화 등이 목표가 아니고 오로지 산 것 보다는 비싼 값에 매각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목표다.

셋째, 회사를 매입할 때 절대로 자기의 돈으로만 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빌려 매수한다. 즉 차입매수(leverage buyouts)를 한다. 그 빚과 이자는 고스란히 회사에 떠넘긴다. 그러나 알맹이(수익)는 철저히 주주들과 소유주의 몫이다. 그러면 회사엔 뭐가 남는가. 계속해서 손실만 쌓이고 고사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사정이 안 좋은 회사에 도움은커녕 설상가상으로 빨대를 꽂은 격이다.

넷째, 이렇게 부채더미를 쌓고 있는 회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가? 부채에 대한 파생금융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이하 CLO)을 발행한다. 부채를 담보로 해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노리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험분산, 나머지 하나는 수수료로 인한 수익창출이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사를 하다가 실제로 위험이 닥쳐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그 위험을 떠안아 주니까. 구제금융으로. 이들이 그 때 내세우는 명분은 대마불사다. 자신들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노나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잘 나갈 땐 그 열매를 온전히 자신들의 몫으로, 위기가 닥쳐 망할 땐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혈세로 대신 메워준다.

코로나19가 악성 회사채를 가지고 무모한 노름을 하고 있는 월가(사모펀드)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기사를 낸 뉴요커

CLO는 2008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월가에서 써먹던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의 사촌 격으로 작동 원리는 똑 같다. CDO는 대형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업체로부터 받은 불량채권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고 동시에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써먹었던 일종의 대출에 대한 보험 상품으로 우량과 불량대출을 섞어서 위험이 없는 것처럼 살짝 분칠해 파는 것이다.(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2012). 본질 면에서 CDO와 똑같은 CLO는 대형금융회사나 사모펀드 자체가 발행, 관리 및 판매한다. 그렇게 거짓되게 위험을 분산한 것처럼 보이게 한 후 투자자를 모아 수수료까지 챙긴다. 그러나 위험은 인위적으로 희석되어 가려졌을 뿐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망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이 들고 나올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대마불사론이다. 2008년 월가가 써먹던 수법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finance-driven capitalism)의 실상이다.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카니의 경고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전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2019년 1월 영국 하원에 나와 전 세계적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회사부채(corporate debt)의 폭증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는 코로나 때도 아니고 트럼프가 “나(미국)홀로 잘나가!”하면서 경제의 호황을 자랑하던 때다. 카니는 파행적인 회사부채 시장을 2008년 금융위기 때에 견주어 경고했다. 회사부채 시장에서의 이른바 “약식대출”(covenant lite loans: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검사)를 생략한 채 이루어지는 대출)의 만연이 “서브프라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채권인수’(no doc underwriting)라는 의미에서 그 때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증언했다. 2019년 1월 현재 차입대출의 85%가 약식대출이다(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급증하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대출을 2008년 금융위기에 견주어 경고하고 있는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커니 <출처: 타임스/로이터스>

그런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영국은행 총재의 저런 경고는 개 코로도 듣지 않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수십 년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라면 높은 신용등급과 과도한 부채의 회피가 그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것은 완전히 구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주도자본주의에 편승한 뒤로는 사모펀드가 이것을 선도했다. 인수와 자사주매입을 위해 많은 대출이 이루어졌고 차입매수가 성행했다.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비금융권기업의 회사부채는 총 6조1천억 달러(7,527조 원)에서 10조1천억 달러(1경2,463조 원)로 증가했다.

회사부채는 채권발행으로도 조달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새로운 형태의 이른바 “레버리지대출”(leveraged loans)의 확산으로도 이루어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에까지 대출해준 협조융자(syndicated loan: 둘 이상의 은행이 공통의 조건으로 기업에 자금을 융자해주는 대출) 총액은 5,540억 달러(684조 원)에서 1조2천억 달러(1,481조 원)로 급증한다. 이런 레버리지대출은 앞에서 언급한 CLO를 창출하는데 사용되었다. 2019년 말까지 7천억 달러(864조 원) 상당의 CLO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빚을 놓고 그것에 대한 금융상품이 투자 상품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위험천만한 돈 놓고 돈 먹는 돈 놀이가 지금 월가에서 사모펀드 주도하에 가진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문제는 그런 돈 놀이에 말려든 기업들과 거기에 속한 종업들이 말라 죽어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백화점의 서거: 니만마커스와 JC페니

5월 초 미국의 유명 백화점체인 두 개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다.(“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두 회사는 모두 미국 백화점 업계의 대명사이다. 니만마커스는 최고급백화점이고, JC페니는 서민들을 위한 백화점이다. 두 회사의 역사는 각각 113년, 118년으로 둘 다 유서 깊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매체들은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시대에 맞는 변신에 실패를 파산신청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내가 보는 견해는 다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유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사태가 백화점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것은 도표에서 보듯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미 이들 백화점이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기저질환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 빼고는 나아진 게 없었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쇼핑몰들의 폐쇄다. “쇼핑몰의 서거 경제학과 향수”라는 제목의 2015년 뉴욕타임스 기사

그 기저질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2008년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시장만 호황이었을 뿐 나머지 부문에서는 오히려 나아진 것이 없었다. 백화점의 서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백화점과 단독 점포가 들어선 대규모 쇼핑몰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미국인들에겐 애틋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딱히 재미라고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건조한 미국식 삶 속에서 그나마 쇼핑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하교 후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던 곳 중 하나도 쇼핑몰이다. 그런 곳이 문을 닫으니 뉴욕타임스 같은 곳은 쇼핑몰의 서거가 향수를 불러온다고 제목을 달아 기사화를 했던 것이다.(“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그런 기사가 났던 것이 2015년이다. 그리곤 마침내 이제 백화점의 종언까지 고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던 백화점의 발에 살짝 걸린 돌부리와 같다. 다시 말해, 코로나가 미국 백화점 사망의 주효한 원인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 심각한 기저질환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 등이 파산보호신청을 하자 백화점의 서거를 알리는 2020년 4월 뉴욕타임스

 

기업장의사 사모펀드에 의해 이미 고사 중이던 업계

나머지 기저질환은 사모펀드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산신청의 주된 원인은 사모펀드다. 이것들의 농단으로 백화점들이 완전히 작살났다.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쇼핑으로 노선을 바꾸고 재기할 자구노력과 자생력조차 사모펀드는 완전히 압살했다. 수익이 나는 족족 배당금과 이자로 현금을 다 빼갔으니 그렇다. 어떻게? 맨 처음 우리나라 영덕풍력발전공사의 경우에서와 같이 말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 업계의 귀공자 니만마커스가 어떻게 엄청난 빚만 짊어진 채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었는지 보자. 현재 니만마커스의 부채는 50억 달러(약 6조2천억 원)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사모펀드 TPG와 워버그핀커스(Warburg Pincus)는 51억 달러(약 6조 3천억 원)로 니만마커스를 차입매수 한다. 그리곤 2013년 사모펀드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와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CPPIB)에 60억 달러(약 7조 4천억 원)를 주고 매각한다. 이들 회사는 니만마커스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2015년 기업공개(IPO)를 시도하려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니만마커스는 지난 2년 동안 50억 달러의 부채를 조정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자는 수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2018년 마지막 회계보고엔 49억 달러(약 6조5백억 원)의 수익이 있었다. 그러고도 빚이 50억 달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은 매해 나는 수익이 한 푼도 안 남기고 거의 다 주주들의 배당과 이자 지불로 빠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디스는 니만마커스의 부채를 두고 “지탱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이런 판에 온라인쇼핑으로 전환하려는 자구노력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돈이 들어가는 일종의 투자인데 말이다. 거기에 들어갈 돈들이 주주들과 소유주에게 배당금과 이자로 다 홀랑 가버리는데….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좀비기업으로

그렇다면 백화점만 그럴까? 아니다.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사정이 똑같다. 그리고 기업은 회생은커녕 시체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 예를 두 곳만 더 보자. 옷가게 제이크루(J. Crew)와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다.

먼저, 2011년 사모펀드 TPG와 레오나드그린&파트너스(Leonard Green & Parners)가 제이크루를 30억 달러(약 3조7천억 원)에 차입매수 한다. 소비자 옹호 단체인 <미국금융개혁연대>(Americans for Financial Reform)이 추산한 바, 2011년 이후 제이크루는 소유주인 사모펀드에게 배당금, 이자 및 수수료로 7억6천만 달러(약 9천4백억 원)를 지불했다. 니만마커스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쇼핑 등의 영업 전환 모색 등에 들어갈 돈은 한 푼도 없이 사모펀드가 탈탈 털어갔는데 무슨 자구노력이 가능했겠는가.(New York Times, May 14).

페이리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 사모펀드 골든게이트캐피탈(Golden Gate Capital)과 블룸캐피탈(Blum Capital)이 페이리스를 20억 달러에 차입매수 했다.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과거 2년 동안의 에비타(EBITDA: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기가 막힌다. 페이리스는 그 기간에 3억2,200만 달러(약 3,986억 원)의 에비타(세전이자지급전이익)를 올렸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3억5,200만 달러(약 4,357억 원), 그리고 이자로 8,300만 달러(약 1,027억 원)가 돌아가서 손실만 기록했다. 이것을 쉽게 계산하면, 회사로 1달러(약 1200 원)가 들어올 때마다, 소유자에겐 1.09달러(약 1350원)가 대출자에겐 0.26달러(약 322 원)가 돌아가게 되어서 1달러 벌 때마다 계속해서 0.35달러(433 원)의 빚이 쌓이는 꼴이다.(“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딱 그 짝이다.

뉴욕시 진보단체인 <대중민주의센터>(The Center for Popular Democracy)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파산한 소매점 체인 14개 중 10개가 사모펀드가 소유주로 밝혀졌다.(New York Times, May 14). 이렇게 기업은 시체가 되고, 사모펀드는 살이 통통 오른 승냥이와 장의사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먹거리와 시체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워런과 코르테스는 왜 코로나사태 동안 기업의 인수합병 금지를 주장 했는가?

그러니 회사들로서는 어떤 노력을 경주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가 덮쳤고 완전히 고꾸라졌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언제가 그들에겐 가장 호기인가? 바로 헐값에 기업을 살 수 있을 때다. 가지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비싸게 팔면 되니까. 이 칼럼시리즈 초반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의 철칙인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팔 기업이 사라지면 사모펀드에겐 안 좋은 시기다. 따라서 코로나19야 말로 그들에겐 최적기다. 기업사냥을 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위험과 위기는 사모펀드의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라 사모펀드가 정말로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간이다. 위험을 빙자해 고수익을 올렸으니(CLO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위기가 있어야만 장사가 되는 모순이 사모펀드가 떼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주된 동력이다. 또한 위기 시엔 파산하는 기업체가 즐비하다. 그것들을 헐값에 거머쥘 수 있으니 위기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위기는 사모펀드에겐 노다지인 셈이다. 죽어가는 회사를 기사회생 시키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은 그걸로 더 큰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사모펀드가 막강한 현금동원 능력을 가지고 기세가 등등한 사이 이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그걸 가지고 전 세계 사업들에 마수를 뻗치며 제국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이 때문에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코로나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인수합병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인수합병이 대다수는 사모펀드에 의해 벌어지기 때문이다.(“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사모펀드가 이끈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

소위 미국식 선진금융의 핵심은 전 산업부문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금융화라 한다. 그것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금융주도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선두에 현대의 제국 사모펀드가 있다.

산업자체가 이런 식으로 바뀌면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하나는 기업이 저렇게 좀비가 되고 파산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실업자가 된다. 이런 펜데믹 시기에는 영원한 실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18년 현재, 미국에서 사모펀드가 소유한 회사에 약 880만 명의 근로자가 있으며, 이 회사들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New York Times, Jan. 31, 2020).

두 번째 문제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경상도 말로 “쌔(혀)가 빠지게” 노력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 게 뻔하다. 이것은 경제와 관련한 관념과 가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세상 어디에 저런 젖과 꿀이 흐르는 장사가 있겠는가. 땀 흘려 일 안하고 남의 돈 빌려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만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득달같이 덤벼들어 하려 들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다. 경제와 노동 가치의 왜곡, 그것은 기업의 시체가 늘비해진 상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 규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월가의 대형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그 틈을 타고 제국들이 탐욕의 눈이 박힌 머리를 바짝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완화와 당국의 방치는 한국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 우리에게도 사모펀드란 이름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이윤에 이악스런 자들은 남 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사모펀드에 벌써부터 발을 담갔다. 사모펀드의 구성요건이 49명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풀어졌으며, 10%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금지하는 “10% 룰”의 제한에서도 사모펀드는 제한이 없다. 500만 원 미만의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게 문을 열어 놨다. 그리고 그 결과 이미 작년 우리나라의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2천조 원을 넘겼다. 사모펀드의 규제완화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한국경제』, 2019. 5. 1; 뉴시스1』, 2019. 10. 4;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동아일보』, 2018. 9. 28;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그리고 이 와중 어떤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어떤 이들은 소중한 노후자금까지 날리고 있다. 지금 한가하게 미국의 사모펀드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참고자료

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2012.

“영덕풍력발전 매각한 맥커리는 호주의 최대 투자금융,” 『영남경제』, 2019. 9. 5.

“경북 영덕풍력발전 외국계 사모펀드 기업사냥하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영덕군,” 『영남경제』,2019. 9. 6.

“외국계 사모펀드의 고리대금에 멍들은 영덕·영양풍력발전,” 『영남경제』, 2019. 9. 18.

“자산운용시장 2000조원 돌파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위험성↑”,” 『한국경제』, 2019. 5. 1.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 후 은행 파생상품 판매 49% 늘어,” 『뉴시스1』, 2019. 10. 4.

“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사모펀드 규제완화… 한국판 ‘엘리엇’ 생긴다,” 『동아일보』, 2018. 9. 28.

“금융위, 코로나19발 구조조정 위해 1조펀드 모은다,”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The Death of the Department Store: ‘Very Few Are Likely to Surviv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Hertz, Car Rental Pioneer, Files for Bankruptcy Protection,” New York Times, May 22,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

“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화, 2020/06/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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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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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인도 일본 그리고 미합중국은 완벽하게 중국에 대항하는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굴기하는 중국과 공존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위 Quad라고 알려진 방식의 동맹에 4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지역안보에 협력하는 위험회피hedge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법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2가지 이유로 Ouad가 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는데, 첫째는 4자가 서로 다른 지정학적 이해를 갖고 있는 취약성이며, 둘째는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이들은 잘못된 게임을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파워게임의 핵심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에 달려 있다.

우선 호주가 가장 취약하며 경제에 대한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다. 호주는 지난 수십 년간 불황을 모르는 안정적 번영을 자랑하여 왔는데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호주경제가 중국과 기능적으로 같은 지역에 속하여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 있다. 2018-2019년의 통계만 보아도, 호주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3% 이상을 차지하는데 반하여 미합중국은 겨우 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COVID-19에 대한 중국의 관련성 여부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요구함으로써 면전에서 중국의 따귀를 때린 호주의 행동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설사 혐의가 있더라도 이를 신중하게 비공개적이며 개별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이제 호주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처지가 되었다. 현재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호주의 대결상황에서 과연 누가 궁지에 몰릴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보는 국면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중국이 궁지에 몰리면, 아시아의 국가들이 호주의 행적을 따라 중국을 경멸할 것이고,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호주 자신도 함께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중국은 차분히 기다릴 여유가 있다. 호주의 賢者인 Hugh White가 지적하였듯이, Canberrra(호주의 행정수도)가 처한 어려움은 현실적으로 중국이 게임의 모든 패를 한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관계에서의 파워는 자신의 최소희생으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국가가 갖게 된다.

중국이 호주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호주의 현직 수상인 Scott Morrison과 동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2019년 11월, 전직 수상이었던 Paul Keating은 Quad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주 국민들을 향해 심각하게 경고한 바 있다. “광의적으로 표현하자면, Quad는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고 그는 호주의 한 전략포럼에서 지적했다. “인도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접근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중국에게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회피할hedging 것이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간의 화해분위기 역시 또 다른 증거이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봉쇄의 실행프로그램에 여전히 서명하지 않고 있다.”

비록 최근의 국경분쟁으로 인도가 중국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다른 측면에서 역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호주는 다행스럽게 주변에 매우 우호적인 동남 아시아 국가들로 둘러 쌓여 있지만, 일본의 주변에는 비우호적인 이웃들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역사적 앙금을 남아있는 한국이 있다. 일본은 이들과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때로는 긴장을 형성한다. 상대적으로 경제의 규모가 작은 러시아와 한국과 관계는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일본은 이를 관리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신형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는 관계를 상호 조정해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일본자신이 너무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군국주의 시절인 20세기 전반기를 예외로 하다면, 일본은 줄곧 강대한 중국과 항상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4개 국가들은 서로 다른 경제적 이해와 역사적 배경으로 Quad라는 동맹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점점 어려워 질 것 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전공한 Eaza Vogel은 2019년 저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중국과 일본 간의 1,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기록은 이에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기술하면서 그는 양국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깊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지만, 문명의 규모와 발생에 있어서 중국이 항상 우위를 지켜왔다고 주장한다. 양국의 관계가 지난 1,500년간 대체로 평화롭게 유지되어 왔다면, 향후 1000년의 역사도 같은 패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유명한 가극인 ‘가부끼’처럼 관계의 변화는 매우 세밀하고 조금씩 변화를 보이면서 점차적으로 긴 시간을 두고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들 양국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우호적으로 변해가지는 않을 테지만, 일본은 은밀한 방식으로 중국의 핵심적인 이익을 이해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물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앞으로 많은 현안과 사건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이를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와 중국 간에는 전혀 다른 문제들이 개입되어 있다. 오랜 문명을 지닌 대국으로 이들 양국은 수천 년을 지리적으로 이웃하여 지내왔지만,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형적 조건으로 사실상 분리되어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다. 불행하게도 현대의 기술로 인하여 히말라야가 더 이상 차단의 장벽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접경지역에서 양국의 군인들이 서로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빈번해졌다.

이러한 대면의 접촉은 대부분 충돌이라는 사건으로 발전하였는데, 2020년 6월에도 예처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후 중국에 대한 혐오감이 인도 전역에 휘몰아 쳤다. 향후 수년간 양국의 관계는 악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사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해결해줄 때가지 중국은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 1980년에는 양국 간의 경제규모가 대등하였지만, 2020년 현재에는 중국경제가 인도의 5배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들 대국의 장기적인 관계는 결국은 경제의 규모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경제가 압도하면서 냉전시대의 소비에트는 사라졌다. 참으로 우연하게, 미합중국이 2017년에 이루어진 CPTPP에 불참하면서 중국에게 의외의 선물을 안겨주었듯이, 인도는 동아시아 지역의 포괄적 경제협력기구인 RCEP의 참여를 포기하면서 중국에게 지정학적 利點을 제공하였다. 경제는 거대한 게임이 진행되는 곳이다. 미국이 CPTPP에서 발을 빼고 인도가 RCEP을 포기하면서 해당 역내의 거대한 경제의 생태시스템이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심각하게 참조할 통계자료가 있다. 2009년 당시 내국의 소비 사장 규모가 중국은 1.8조 달러이었던 반면에 미국은 4조 달러이상 이었다. 10년이 지난 2019년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중국의 규모가 6조 달러, 미국은 5,5조 달러가 되었다. 더구나 향후 10년간 중국의 수입물량은 22조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970-1980년대의 미국의 대량소비 경제가 소비에트를 몰락시켰듯이, 향후에는 중국의 엄청난 내수시장의 규모가 국제지정학의 지형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Quad동맹의 해군함대가 인도양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해도 아시아 역사의 방향을 되돌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Quad 4개 국가들이 경제적 이해와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면서 정상적인 동맹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 하나의 뚜렷한 징후가 있다: 미합중국의 가장 강고한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Quad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아시아의 미래는 Quad라는 4개의 영문자가 아닌 RCEP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1-01-27.

KISHORE MAHBUBANI

동남아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외교관으로 싱가포르 외무장관을 역임하고 유엔주재 대사를 지내면서 안보리이사회의 의장직을 2년간 맡았으며, 이후 14년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학장을 지냈다. 최근 “Has China Won”을 출간하여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수, 2021/02/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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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코로나와 대선 이후,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
흔들리는 자본주의 제국의 향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전망한다!

코로나19로 세계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의 향방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미국에게 가장 파괴적인 태풍, 퍼펙트 스톰이다. 강력한 태풍이 불면 모든 것이 날아가고 감추어졌던 흉물들이 드러나듯 코로나는 미국의 감추어졌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것이 현재의 미국을 단 한마디로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선망하던 외국인의 입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의 입에서 그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절망의 유령이 미국 전역을 휘감고 있다.

그 와중에 치러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트럼프나 바이든은 이 사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인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던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퍼펙트 스톰으로 드러난 미국의 충격적인 실상을 파헤치며, 이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의 나라가 되고 있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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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극심한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연합뉴스>

 

김광기

수, 2020/11/0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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