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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다61381 손해배상(기) 사건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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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다61381 손해배상(기) 사건 보도자료

익명 (미확인) | 화, 2018/10/30- 14:38

[다운로드] [보도자료]

대법원 공보관실(02-3480-1451)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소영)은 2018. 10. 30.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가 원고들(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시켰음(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건 핵심쟁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임.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7명)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음.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이미 2012. 5. 24. 선고된 환송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1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2가 있고,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이 있으며,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음.

1. 사안의 내용

▣ 원고들은 1941년~1943년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임

▣ 2005. 1.경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었고 원고들은 2005. 2.경 일본 기업인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함

▣ 제1, 2심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하였으나,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환송판결)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였음

▣ 환송후 제2심은 환송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가 원고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고, 위자료 금액을 1억 원씩으로 정하였음

▣ 피고가 이에 불복하여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음


2. 대법원의 판단

가. 사건의 주요 쟁점

▣ ① 원고1, 2에 대한 일본 법원 판결의 효력과 기판력 (상고이유 1점)
원고1, 2는 이 사건 소 제기에 앞서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일본 법원에서 패소 확정되었음
이러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외국법원 판결의 승인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됨

▣ ②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상고이유 2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이 운영하던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하였는데,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가 피고(신일철주금)에게 승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됨

▣ ③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핵심 쟁점) (상고이유 3점)

▣ ④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할 수 있는지 (상고이유 4점)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다투었음

▣ 우선 대법원은 위 ①, ②, ④ 쟁점에 관해서, 환송판결 및 환송 후 제2심판결과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의 판결은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위 ①쟁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으며(위 ②쟁점),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위 ④쟁점)고 판단하였음

▣ 위 ③쟁점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대법관 사이에 견해가 갈렸음
청구권협정은 전문(前文)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라고 정하였음. 제1조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하였고, 이어서 제2조 1.에서 “…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정하였음. 제2조 3.에서는 “…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정하였음.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서는 “…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라고 하였음

이러한 청구권협정 등의 해석상, 1) 원고들이 주장하는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2) 포함되었다면 그에 따른 효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즉 권리 자체가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만이 소멸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체법상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인지 등이 이 사건의 쟁점임

나. 다수의견(7명) :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음

▣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임(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 아님) ☞ 이는 아래와 같은 환송 후 제2심판결의 사실인정에 기초한 것임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음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음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해야 했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외출이 제한되고 상시 감시를 받아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음

▣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음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음
▪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개최된 제1차 한일회담에서 이른바 ‘8개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음. 위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또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음.
▪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간 청구권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
▪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음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음
▪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발표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도, 정부가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책임이 ‘도의적 책임’에 불과하다는 것임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환송 후 제2심에서 피고가 협상 과정에 관한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였으나, 그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결론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음
▪ 1961. 5.경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측이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한 사실, 1961. 12.경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측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3억 6,400만 달러(약 30%)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한 것으로 산정(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 기준)’한 사실 등을 알 수 있음
▪ 그러나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님
▪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실제로 당시에는 일본측의 반발로 협상이 타결되지도 않았음
▪ 위와 같이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음.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 것이라고는 보기는 어려움

다. 별개의견1 (1명) : 이미 환송판결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음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임)

▣ 환송판결의 기속력(상급법원의 판단에 하급법원이 따라야 하는 것)은 환송 후 제2심뿐만 아니라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임

▣ 환송 후 제2심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 등에 의하여 환송판결의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겼다면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 것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렇게 볼 만한 사정이 없음

▣ 재상고심이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기속력이 미치고, ‘환송판결에 명백한 법리오해가 있어 반드시 이를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환송판결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아니한 채 종전 대법원판결이 취한 견해와 상반된 입장을 취한 때’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함

이 사건의 경우 환송판결에 위와 같은 예외적인 사정이 없으므로, 환송판결과 같은 결론을 취할 수밖에 없음

라. 별개의견2 (3명)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함. 다만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함. 따라서 원고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임)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

청구권협정 및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8개 항목’ 제5항에서 규정한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 포함됨이 분명한데, ‘기타 청구권’에는 원고들 주장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함
대한민국은 1961. 5.경 협상 과정에서 ‘생존자,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군인․군속을 포함한 피징용자 전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까지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음. 1961. 12.경에도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보상금을 3억 6,400만 달러로 산정하고 이를 포함하여 8개 항목에 대한 총 보상금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
▪ 1961. 5.경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이 위 요구액은 국가로서 청구하는 것이고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일본은 구체적인 징용․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여 협상에 난항을 겪었음
▪ 이에 일본은 증명의 곤란함 등을 이유로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대한민국은 순변제 및 무상조 등 2개 명목으로 금원을 수령하되 구체적인 금액은 항목별로 구분하지 않고 총액만을 표시하는 방법을 다시 제안하였음
▪ 이후 구체적인 조정 과정을 거쳐 1965. 6. 22.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제1조에서는 경제협력자금의 지원에 관하여 정하고 제2조에서는 권리관계의 해결에 관하여 정하였음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대한민국이 각종 보상입법을 통해 보상조치를 취한 것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됨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임

▣ 위와 같이 포함은 되지만,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 내에서 소멸하여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임

‘외교적 보호권’이란‘자국민이 외국에서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은 경우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 등을 통하여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

청구권협정에는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에서 나아가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음
 ▪ 국가와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근대법의 원리는 국제법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권리의 ‘포기’는 그 권리자의 의사를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원칙에 의할 때,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대신 포기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더욱 엄격하게 보아야
 ▪ 청구권협정에서는 ‘포기(waive)’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있음

당시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음이 분명함

▪ 일본은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하였음. 이러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음

마. 반대의견 (2명) :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됨.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원고들이 일본 국민인 피고를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됨 ⇒ 파기환송 의견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별개의견2와 같음

▣ 하지만 별개의견2처럼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음.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가 소멸되거나 포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함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된다고 보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음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보기 어려움.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 주체는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그의 국적국이며 개인의 청구권 유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음
▪ 청구권협정 제2조 1.에서 규정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문언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체약국 사이에서는 물론 그 국민들 사이에서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부합함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양 체약국은 물론 그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함

청구권협정 체결 과정이나 체결 이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임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였고, 청구권자금의 분배는 전적으로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였음
국제법상 전후 배상문제 등과 관련하여 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국가간 조약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일괄처리협정’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조약 형식임
대한민국은 청구권보상법, 2007년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제정하여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함. 실제 피해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는 사실은 청구권협정의 효력을 해석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음 


청구권협정 제2조의 문언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됨
– 청구권협정에서는 명시적인 포기(waive) 표현이 없음. 개인청구권이 실체법적으로 완전히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보기 어려움. 제2조 3.에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음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함. 청구권협정으로 인하여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함.

대한민국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음

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2명) :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함

▣ 청구권협정의 문맥, 청구권협정의 목적 등에 비추어 청구권협정의 문언에 나타난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할 경우,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려움

▣ 교섭 기록과 체결 시의 여러 사정 등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이 달라지지 않음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과 그 포기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고 있지 않은데도 명시적 근거 없이 이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음


3. 판결의 의의

▣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2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환송판결을 선고하였음

▣ 이후 위 판결에 대하여 학계 등에서 그 찬반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있었고,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포함되었다고 볼 경우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되는 것인지 등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음

▣ 본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피고의 다른 상고이유 주장도 배척함으로써, 피고가 원고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최종적으로 확정시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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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상 필립보 몬시뇰
(서울=연합뉴스)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원로사목)이 25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2020.4.25 [천주교 인천교구 제공]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원로사목)이 25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가톨릭계에 따르면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9년 사제로 서품했다. 194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과 폐결핵 투병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1963년 뒤늦게 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갔다.

그는 반평생을 민주화·사회 운동 현장에 있었다. 1977년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 구속됐다.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민문연 이사장 때인 2009년 당시 임헌영 민문연 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을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바쳤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부여하는 칭호다. 그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ㅍ그를 두고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이면서도 지역 선교와 신앙 교육 등 사목활동에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몬시뇰은 2018년 12월 회고록 ‘따뜻한 동행’을 펴냈다. 사제가 되기까지 과정을 비롯해 현대사 한복판에서 겪은 일들을 담았다.

2년여 투병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25일 오전 0시 5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빈소는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장지는 인천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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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5>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주화·사회운동’ 헌신 김병상 몬시뇰 선종

※참고기사

☞한겨레: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2018.12.17)

☞한겨레: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병상 신부 (2008.09.09)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유신독재 반대 민주화운동에 앞장
동일방직사태 굴업도핵폐기장 등 마다않고 사회정의 실천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질곡의 현대사에서 사회 정의와 민주화운동을 실천하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병상 몬시뇰 원로사목이 25일 새벽 0시 5분 향년 88세 일기로 선종했다.

고 김병상 신부는 천주교 인천교구를 비롯한 각 교회 본당이 펼치고 있는 자선운동과 사회복지사업 등의 선교운동을 일군 분이자, 인천 민주화운동의 큰 숲이며 어른이다. 동일방직대책위와 굴업도핵폐기처리장 대책위에 등 김 신부는 시민과 노동자와 함께했다.

고 김병상 몬시뇰

김병상 신부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은 천주교에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원로 신부에게 교황청이 공로를 인정해 내리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김 몬시뇰은 1932년 충남 공주 교우촌 요골공소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몬시뇰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1948년 서울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와중에 폐결핵에 걸려 53년 7월 신학교를 그만뒀다. 그 뒤 병마를 극복하고 1961년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다시 1963년 33세 때 서울가톨릭신학대에 입학했다.

그는 1969년 12월 13일 비교적 늦은 나이인 38세 때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소신학교 때 전쟁과 피난생활을 겪고 병마와 싸우느라 늦깍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은퇴할 때까지 37년 동안 사제생활하며 기독교 복음과 사회선교, 사회정의 실천에 앞장섰다.

김 몬시뇰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있어 본당사목과 사회사목을 균형 있게 이끌어온 사제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교회 밖에서 더욱 폭넓게 알려졌다. 그는 교구 총대리로 재직하던 1977년 유신체제에 맞서다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김 몬시뇰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때부터 그는 천주교 인천교구가 실천했던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됐다. 앞서 얘기한대로 1977년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76년~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장을 맡아 노동자를 보호했다.

김 몬시뇰은 특히 1989년~95년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를 지낼 때 같은 기간 인천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함께 창립한 ‘목요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인천시민운동의 초석을 마련했다.

김 몬시뇰은 목요회 회장으로 굴업도핵폐기물처리장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굴업도핵폐기물처리장을 백지화 했다. 당시 대책위는 인천 지역 재야단체와 학생단체, 주민단체가 대거 결합한 지역 전선 운동기구였다.

그 이후에도 김 몬시뇰은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와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이어갔다. 김 몬시뇰은 2004년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대리를 맡아 활동하다가 2006년 11월 사목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2008년~13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참여하며 교회 안팎의 현장에서 기도와 사회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 뒤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요양시설에서 머물다 2020년 4월 25일 새벽 선종했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주관하는 김병상 몬시뇰의 장례일정은 아래와 같다. 분향소는 인천 중구 답동 천주교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이며, 장지는 서구 하늘의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장례일정] 
– 분향소 : 천주교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인천시 동구 박문로 1, 032-765-6961)
 
–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 대중교통편: 제물포 북부역에서 송림동(동화동성당)방향으로 도보 10분, 차로 3분

– 입관예절 : 4월 26일(주일) 오후 2시 (국제성모병원 장례예식장 입관실)
– 입관 후 미사: 4월 26일(주일) 오후 3시 (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 출관예절: 4월 27일(월요일) 오전 8시 30분 (국제성모병원 장례예식장 예식실)
– 장례미사: 4월 27일(월요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
– 삼우미사: 4월 29일(수요일) 오전 11시 (하늘의 문 묘역 성직자 묘역)
– 장 지: 인천 서구 하늘의문 묘원 성직자 묘역

<2020-04-25> 인천투데이

☞기사원문: 민주화운동 큰 숲 천주교 인천교구 김병상 몬시뇰 선종

토, 2020/04/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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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KBS 1TV 4월 28일 화요일 밤 10시 00분

역사저널 그날
262회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 – 반민특위

온 국민의 염원, 친일파 청산
해방 직후 국민들의 염원, 친일파 청산. 그 염원에 답하고자 1948년 10월 제헌헌법에 의거해 국가기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 반민특위는 출범 초반부터 강력한 추진력을 보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검거된 거물급 친일파
온 국민의 주목 속에서 가장 먼저 검거된 친일파는? 조선 제1의 실업가 박흥식.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 화신백화점의 소유주이자, 일제에 전쟁 물자를 기부한 전형적인 식민지 기업가이다. 이후 악질 중의 악질로 꼽히는 친일 경찰 노덕술, 대중에게 영향력이 컸던 문인 이광수 등이 차례로 검거된다. 하지만 그들 중 반성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 심지어 이광수는 일제강점기에 살아있던 모든 사람이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는데…

 

반민특위를 둘러싼 음모
반민특위는 출범 전부터 강력한 반대세력과 싸워야만 했다. 반민특위 출범 전 열린 대규모 반공 시위에서는 친일파를 척결하려는 이들은 모두 ‘공산주의자’임을 주장하며 반민특위 활동을 반대한다. 또한 반민특위 요원 암살 모의 사건이 발각되기도 하고, 친일 경찰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하며 일전불사를 선언한다.
결정적으로 반민특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6.6사건이라 불리는 ‘반민특위 습격사건’. 수십 명의 무장 경찰이 반민족행위자 조사 서류를 압수하고 반민특위 요원들을 납치하는데…

반민특위 방해공작의 배후는?
관제시위, 반민특위 요원 암살 모의, 납치, 국회 프락치 사건 등 반민특위는 수많은 방해공작을 받는다. 그런데 이들을 지지하는 배후가 있었으니,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반민특위 소속의) 특별경찰대를 해산시키라고 경찰에게 명령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또한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을 만나 반민특위 조사 선상에 있는 핵심 인물들에 대한 조사 중단, 면죄를 강력히 요구한다. 결국 무기력해진 반민특위의 요원들은 전원 사임서를 제출한다.

이루지 못한 꿈
반민특위가 취급한 친일 혐의 688건 중 반민 재판에 회부된 인물은 단 41명. 그중 실형을 받은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난다. 그리고 1951년 반민족행위 처벌법은 폐지되고 ‘친일’을 언급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바뀐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4월 2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반민특위’에서 살펴본다.

<2020-04-28> KBS 

☞기사원문: 역사저널 그날 262회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 – 반민특위

화, 2020/04/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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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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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의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해당 도서는 제목과 같이 정치 권력을 ‘몹시 꾸짖는’ 주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질곡을 그들의 글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일제 식민지와 6·25동란, 분단 현실과 군사쿠데타를 거치며 우리 시대 문학은 무엇을 보고 어디에 펜촉을 향하고 있는가 저자는 준엄하게 묻는다.

1편 이호철
냉전 시대의 고정관념 허물기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했다. 1950년 6·25전쟁에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울진까지 내려와 국군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고 12월에 월남해 부산에 도착했다. 이후 부산에서 부두 노동자, 제면소 조수, 미군 부대 경비원 등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 갔다. 이 시절 실향민으로서 남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삶의 척박함과 치열한 생존 의식은 그의 소설의 원체험으로 자리하게 된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수, 2020/04/2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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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상임이사 조세열

4월 25일 평생을 민주화와 인권증진에 오롯이 바친 김병상 몬시뇰께서 하느님 곁으로 떠나가셨다. 1977년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굴업도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인천시민모임’ 상임대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등을 맡아 한국사회 곳곳의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를 보듬은 진정한 목자의 삶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는 뒤늦게 인연을 맺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기조로 삼을 것이라던 세간의 예측을 비웃듯, 철저하게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특히 통일 분야와 과거사 관련 문제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과거사 청산의 제일선에 서있는 민족문제연구소로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오를 정비하고 반동 국면에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만 했다. 먼저 2대 이사장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별세 이후 공석으로 있던 이사장직에 연구소의 위상에 걸맞은 어른을 모셔 구심을 세워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신부님께서 “인품으로나 신념으로나 이 중책을 감당할 수 있는 훌륭한 분이 계신다”고 귀띔을 해주셨다. 그 분이 바로 김병상 신부님이셨다.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께서 주선한 자리에서 김병상 신부님은 “도움이 된다면 역할을 다 하겠다”고 흔쾌히 어려운 책임을 맡아 주셨다.

2008년 10월 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그는 “연구소 출범과 함께 내걸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매진하겠다. 이는 거대한 역사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단초이며 발판”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병상 신부님은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완수함으로써 이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 후 2013년 지병으로 이사장직을 사임하실 때까지 참으로 중요한 순간에 민족문제연구소는 물론 전체 역사정의 실천운동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주셨다.

▲ 친일인명사전을 백범선생께 헌정하고 나서 기념촬영하는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이명박 정부의 역사왜곡과 시민운동 탄압이 노골화하고 있던 시기에도, 김병상 신부님께서 꿋꿋하게 버팀목이 되어주셨기에 민족문제연구소는 변함없이 가열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강제병합공동행동,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사업 등을 시작하고 기초를 놓은 것이 그 보기이다. 또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발족하여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개악 저지 투쟁을 전개하고 역사다큐 ‘백년전쟁’을 제작하는 등 수구세력의 역사변조에 전면 대응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김병상 신부님은 종교가 현실을 떠나 존재할 수는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친일문제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사회문제들이 친일 청산 문제와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뿌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하느님과 맘몬을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일이나 오늘의 사회 문제나 다 맘몬을 선택한 결과이다. 회개해 하느님을 선택하는 길, 그게 친일 청산이고 오늘의 사회 문제에서 진짜 벗어나는 길이다.”

가톨릭 교회가 일제침략기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친일인명사전』에 교단의 주요 인사들이 수록된 점을 비난하는 데 대해서도, 교회의 호교론적 변명을 비판하면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일갈하셨다.

불의와 부정에는 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셨지만 실제 우리가 뵌 김병상 신부님은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 몸에 배인 온화한 분이었다. 당신께서 “민주화운동과 사목에 기여한 바 없이 대접만 받아 부끄럽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후진들에게도 항상 ‘앞선 자의 오만’을 경계하셨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김병상 신부님은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셨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소중한 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후배 성직자들에게 형으로 불릴 정도로 소탈하고 격의 없는 분이기도 하였지만, 우리 연구소 식구들에게는 한 결 같이 인자한 할아버지요 아버지처럼 대해 주셨다. 두 손을 잡아주시던 그 분의 따뜻한 눈길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회고록 『따뜻한 동행』에서도 드러나듯 신부님은 정의로우면서도 포용하는 사회를 지향하셨다. 늘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한 따뜻한 동행자셨다. 이제 신부님께서 남기신 뜻을 실천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생전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사회와 역사 정의 실현의 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늘에서도 지켜보시고 저희들이 불의에 맞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함없이 이끌어 주십시오,

목, 2020/04/3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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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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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뉴스 

☞뉴스1: 북한에서 대동강 숭어국, 꼭 맛보고 오세요 (19.9.29)

저자 이지상은 대륙에 평화가 있다고 믿었다. 평화를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도전이고, 그것이 시베리아 안내자가 된 이유였다.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북한 전쟁에 대한 공포, 양 체제의 반목으로 인한 대립, 분단에서 기인한 각종 불완전 요소가 상재하는 상태에서 대륙과의 소통은 궁극적 평화의 길에 이를 수 없다고 믿었다.

‘기차의 꽁무니에 걸터앉아 나도 평화가 되어 대륙의 어디든 따라가고 싶’어서 북한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북한의 안내자가 된다면, 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기준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나와 기차로 동행하는 도반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주제를 중심으로 골랐고 공부했다.’

수십 권에 달하는 북한 관련 책들과 기사, 방송,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과 탈북민들의 인터뷰를 섭렵했고, 북한의 생활상과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 북한의 노래와 소설, 시, 인문서적을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런 노력과 열정, 그리움에 자신의 바람(Hope)까지 더해 저자는 북한의 구석구석, 소박한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지상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가수, 시민활동가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 민족음악인 협회 연주 분과장을 지냈고 여러 드라마, 연극, 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1998년 1집 ‘사람이 사는 마을’, 2000년 2집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2002년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2006년 4집 ‘기억과 상상’ 2016년 5집 ‘그리움과 연애하다’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2010년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2014년 ‘스파시바, 시베리아’를 출간했다. 시노래 운동 ‘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 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 있으며 성공회대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월, 2020/05/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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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4일 본사서 시상식

제21회 의암대상 수상자에 심철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과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장이 선정됐다.의암대상심사위원회는 최근 강원도청에서 심사위를 열어 학술부문에 심철기 학예실장을,공로부문에 이학주 원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철기 학예실장은 국가보훈처 연구원,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연세대 연구교수,독립기념관 연구원 등으로 일하면서 류인석 선생을 비롯한 한말의병운동 연구에 업적을 남겼다.지역사회 의병운동 동향 등을 정리,연속성을 밝히고 재판기록과 당대 신문을 통해 일제의 의병탄압과 계몽운동세력의 의병 인식 등 의병운동의 다양성을 실체적으로 파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학주 원장은 강원대 강사,광주예술대학교 전임강사 등을 역임하며 ‘조선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 등 의암 류인석 선생 관련 저술·논문·집필 학술 연구를 이어온 것 뿐 아니라 강연과 각종 전시회 등을 통해 류인석 선생을 비롯한 한말의병의 활동과 정신을 확산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시상식은 내달 4일 강원도민일보사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금 각 1000만원이 수여된다.

김진형 기자 [email protected]

<2020-04-27> 강원도민일보 

☞기사원문: 제21회 의암대상 수상자에 심철기·이학주씨

월, 2020/05/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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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가짜 독립운동가’ 고발한 김세걸 선생을 보내드리며

▲ 김세걸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는 “카메라”였다. 늘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행사사진 촬영을 도맡았다. ⓒ 김경준

7일 오후 독립운동가 김진성(1914~1961) 선생의 장남 김세걸 선생(72)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어쩌다 독립운동 관련 행사장에서 마주칠 때면 늘 건강한 모습으로 손을 내미는 선생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SNS로 소통하고 영문과 중문으로 된 해외 원서들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선생이기에 급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황망할 따름이었다.

2년 전 가을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선생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김낙용·김병식·김관보·김정수)의 실체를 고발해 그들의 서훈 취소를 끌어냈다. 무려 20년에 걸쳐 국가보훈처와 줄다리기 한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관련기사: 20년 만에 밝혀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의 진실 http://omn.kr/180fq).

감정이 북받쳐올랐던 선생과의 첫 만남

독립운동가였던 부친에 대한 기억,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반주 화면에 등장한 현충원 묘역 영상에서 부친의 이름을 새긴 묘비명을 발견하고 느꼈던 황당함, 한국으로 건너와 문제의 무덤이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일을 회고하는 선생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정작 선생의 목소리를 기록하던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선생이 20년 동안 겪은 고초를 감히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선생은 중국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편안한 삶이 보장된 신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1997년 조국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돌아온 선생에게 조국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를 제기하는 선생에게 보훈처 공무원들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해주고 귀화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느냐’며 핀잔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일을 몰랐던 내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인터뷰 말미에 선생은 힘주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이상 안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올바른 해결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재 현충원에 가짜 독립유공자로 밝혀진 이들이 66기나 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방치할 겁니까. 이런 건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합니다.”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181번 묘) ⓒ 김경준

선생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선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짜 독립운동가로 밝혀진 김정수의 묘역을 강제 이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선생은 보훈처로부터 “유족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파묘할 법적 권한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사가 나간 지 2년이 흐른 지금도 김정수는 여전히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선생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가짜 독립운동가가 현충원에서 파헤쳐지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것이다.

더욱 아쉽고 원통한 것은 이제야말로 선생의 꿈이 실현될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광복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들을 강제 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친일파 강제이장에 대한 찬·반 설문’에서도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지역구 후보자 73.1%가 찬성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서 강제 이장을 허용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친일파뿐만 아니라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 난 묘역의 강제 이장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떠난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애달프다. 빈소를 찾아 선생의 영정 앞에 향을 사르며 다짐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반드시 현충원에서 친일파와 가짜 독립운동가들을 끌어내겠다고.

빈소를 나오면서 헛헛한 마음에 차영조 선생(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후손)께 전화를 드렸다. ‘영원한 동지’를 잃은 선생의 목소리에도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는 나의 위로에 선생께서는 내게 이렇게 당부했다.

“가신 분은 가신 분이고 남은 우리가 뜻을 잘 이어받아 나갑시다.”

선생의 영면을 기원하며, 남은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 “영원한 동지” 차영조 선생(차리석 선생 후손)과 김세걸 선생(김진성 선생 후손) ⓒ 김경준

덧붙이는 글 | 고인: 김세걸 (향년 72세 / 독립유공자유족회 상임이사)
빈소: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 2020년 5월 10일 오전 9시
장지: 서울시립승화원
상주: 처 안보의, 아들 김해남, 김해응

<2020-05-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현충원의 가짜 독립운동가들 꼭 끌어내겠습니다

화, 2020/05/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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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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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뉴스 ☞뉴스1: [새로나온책] 명시 (19.9.29)

노동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근현대사 속 그늘에 가려진 인물들을 조명하는 데 힘써온 안재성의 장편소설.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며 항일 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생애를 소설로 재현해낸 작품으로, 조국 해방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꾼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안재성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성트로이카』, 『황금이삭』, 『연안행』, 『사랑의 조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명시』 등의 장편소설과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실종 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윤한봉』 등의 평전, 『한국노동운동사』, 『청계 내 청춘』, 『타오르는 광산』 등의 노동운동 관련 책,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등의 역사책을 펴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화, 2020/05/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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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문당한 선량한 철학자 스피노자와는 대화도 식사도 금지인 데다 2미터 이상 떨어져야만 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은 전 인류에게 이와 똑같은 ‘고슴도치의 법칙’이란 굴레를 씌워버렸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방역복을 착용해야만 외출이 가능한 재앙으로 번질까 두렵다.

이 유령 같은 괴질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한국은 실로 2차 대전 이후 시민혁명을 가장 많이 치른 민족적 긍지를 높여주고 있다. 이 다행스러운 흐름에 견인차 역할을 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다른 한편에 이 해괴한 바이러스는 ‘욕망하는 기계’인 돈벌레(黃金虫)로 인간을 변신시킨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지닌 온갖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 주어 선진국일수록 더 허둥대는 꼴불견을 노정시켰다.

특히 지구 전체를 파멸시킬 가공할 무장력을 과시하는 미국과 그 찰떡 공모자인 일본의 대응책은 국민의 생명 보호가 기본인 국가의 책무를 포기한 무방비에 가깝다. 그런데도 트럼프와 아베는 자신의 지도력에 도취하여 황홀한 나르시시즘의 포로가 되어있는 형국이다. 온 지구인들이 부러워했던 나라가 고작 저런 실체였는데 그간 우리가 속아온 건가, 아니면 코로나19 이전에는 훌륭한 국가체제였으나 이 괴질로 순식간에 변질된 걸까.

미 백악관 코로나19 데스크포스(TF)가 3월 31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최대 24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공식 예측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매우 고통스러운 2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뉴시스/AP
아베 총리의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있는 마스크 2020.04.07.ⓒ뉴시스/AP

세계 최대의 자기 나라 도시에서는 시신이 썩은 고목처럼 뒹구는 데도 RC-135W정찰기를 한반도에 보내는 한편 B-1B 폭격기는 남중국해를 맴도는 등의 긴장 조성에 더욱 열심인 걸 보면 동아시아에 행여나 평화가 깃들까 조바심 내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19를 아예 중국과 한국 때리기로 삼고자 작심한 듯이 사사건건 생트집을 잡아 물어뜯는 트럼프와 아베의 블랙코미디는 마치 국내의 일베나 태극기 부대 혹은 제1야당과 너무나 닮았다. 동맹은커녕 인간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거기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까지 나서서 장단을 맞춰 노골적인 인종차별 감성을 부추겨 KKK단이 부활하나 싶어 모골이 송연해진다. 더욱 공포스러운 건 그걸 다루는 언론의 태도다. 그 전 같으면 이런 비이성적인 조치를 질타하는 논조가 빗발쳐야 하건만 조용하기만 하다.

과연 저런 게 인류가 피를 흘려 쟁취해온 참된 자유민주주의일까? 한국 같으면 금방 항의 촛불시위가 일어날 법한데 그 반대로 끔찍한 시취(屍臭)가 떠도는 도심 한복판에서 외출과 영업을 허용하라며 총까지 들고 시위하는 지경이니, 돈을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황금충의 나라라고 한들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미 국방부가 느닷없이 우주 비행물체를 진짜라고 공개한 것도 어쩌면 인류에게 공포심을 유발하여 지구방위대 사령부 설치를 밑밥 삼아 돈을 울궈낼 궁리는 아닌지 신경과민적 의구심마저 든다. 대선을 앞둔 터라 천문학적인 달러를 풀어대는데, 저 벌충을 필시 남의 나라에서 받아내겠지 싶어 미리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코로나19, 돈벌레로 인간을 변신시킨 신자유주의
그리고 미일 두 부자 나라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민족이 평화롭게 살려면 남북 당사자끼리가 가장 소중함을 깨달아야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넘어갔을 두 부자 나라의 민낯을 보면서 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미국이나 일본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 나라들을 모든 가치관의 상석에 놓았던 일부 우리 국민들도 돈이 없어 검사도 못(안) 받는 엉망진창 건강보험체계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거기다 미국은 이미 9.11 사태 이후 정치적 이성이 마비된 단계로 접어들었고, 일본은 한신(阪神)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원자력 발전소 사태 이후 파시즘 체제로 회귀하려는 독 묻은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판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내려오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코로나19로 실추한 권위와 경제적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인류애와 평화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진보적인 정치혁신을 감행해야 되건만 오히려 이 두 강대국은 까놓고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을 조장하여 엄청난 이득을 챙기려고 혈안이 될 공산이 더 크다. 더욱 비관적인 건 이 두 공룡국가를 변혁시킬 어떤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지도자나 정당이 바뀌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일 수밖에 없을 만큼 오랜 세습제 권력으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비전을 갖춘 정치인을 싹수부터 잘라 왔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를 담보해야 할 유엔은 무력하고, 지구의 평화를 외칠만한 러셀이나 사르트르 같은 인류의 양심과 용자도 사라져버린 이 삭막한 시대를 오히려 절호의 기회로 삼아 미일 두 나라의 전쟁상인 기질이 더욱 잔혹해지면서 염려스러운 건 만만한 ‘홍어X’ 한반도가 걸려들까 아찔하기만 하다.

아무리 돌아봐도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려면 남북 당사자끼리가 가장 소중함을 코로나19 사태는 대오각성케 해준다. 이 공감대를 남북이 공유하고 실천하지 않는 한 한반도는 미일 두 강대국의 봉으로 전락하여 계속 시달릴 것이다. 남도, 북도 진작 알고 있던 이 만고의 진리를 제발 코로나19로 재확인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대망한다.

<2020-05-07>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19 이후의 한반도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②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수, 2020/05/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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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사과문”

5월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의혹과 노조파괴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하지만 삼성 불법사찰 관련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며 비판했다.

‘삼성의 불법사찰에 대한 시민사회공동대응’(이하 공동대응)은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는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향린교회,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반올림 등이다.

지난 2월 28일 삼성전자와 삼성계열사 17곳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운동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국여성민우회, 통합진보당 등 10개 시민단체 및 정당을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임직원들의 동의 없이 후원 내용을 열람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중 향린교회는 6월 민주항쟁의 중심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공동대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문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설치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봤다.

또한, “지난 연말 선고된 삼성노조파괴사건 판결 이후, 삼성의 지속적인 불법사찰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고 피해자가 입은 유무형의 손해를 배상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수차례 삼성에게 요구해왔지만, 삼성은 여전히 그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5월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email protected]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삼성물산(구 삼성에버랜드)은 여전히 노조파괴 공범으로 나란히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노조와만 교섭을 진행하며 민주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파과 전략에 따라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에 있었던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말이 진정성 없다는 것이다.

공동대응은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뒤에 숨어 허울뿐인 사과문 발표를 반복하지 말고 진짜 사과를 하라”면서, “진정한 준법은 과거의 범죄에 대해 법대로 처벌받고 현재의 범죄를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 피해자구제대책마련 등 요구사항에 충실히 답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양대노총은 6일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 직후 관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노총은 ‘문제는 ‘실천’이다’라는 논평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들은 임단협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이고 있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한 ‘노동3권’ 중 교섭권을 도외시 하는 행위”라면서, “삼성은 노동조합 활동을 확실히 보장하라. 지금 삼성에게는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사과는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위해 불법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은 그간 ‘무노조 정책’의 핵심 피해자인 김용희, 이재용 해고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사과와 복직, 보상이 되어야 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늘 발표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루어 진 것인 바, 이후 재판에서 사법적으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오늘 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2020-05-12> 참여와혁신 

☞기사원문: 삼성 불법사찰 관련 시민사회단체, “이재용 사과, 진정성 없다”

수, 2020/05/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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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박물관서 세계기록 유산 5·18 기록물 등 전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특별전 개막식 [광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국가 기관이 최초로 주최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이 개막했다.

12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 40주년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개막식이 이날 오후 서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용섭 시장, 이소연 국가기록원장,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안병욱 한국학 중앙연구원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특별전은 국가기록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등 국가 기관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5·18 기념재단, 전남대 5·18연구소 등 광주 지역 기관이 공동 주최했다.

특별전은 4개 공간에서 ▲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정부 기록물 ▲ 국방부와 광주 동구청이 생산한 상황일지·통행증, 계엄군의 군복·군화·진압봉 ▲ 1980년 제작된 일본 판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 ‘광주의 피에타’ ▲ 당시 시민들이 생산한 문서 등을 선보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인 시민들의 일기, 취재 수첩, 성명서 등 실물자료는 그동안 5·18 기록관에서만 전시된 것들로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1층과 3층의 기획전시실, 역사 회랑, 역사 마당 등에서 진행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19일 제주4·3 평화기념관, 27일 5·18 기록관에서도 특별전이 개막한다.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은 “광주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소중한 자료들의 서울 전시를 통해 당시 광주시민의 눈물을 공감함으로써 광주의 역사가 올바르게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20-05-12> 연합뉴스 

☞기사원문: 국가 기관 첫 주최 5·18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개막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5·18 정신을 오롯이 담은 특별 전시회가 개막했다.국가기관이 최초로 개최하는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이 12일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관련기사 

☞위키트리: 서울에서 제주까지전국에 울려 퍼지는 5·18 민중의 함성 

☞뉴시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5·18 40주년 특별전, 서울 개막 

☞아시아경제: 5·18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서울서 개막

수, 2020/05/1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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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1부] [2부]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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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금, 2020/05/1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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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역사 청산, 올바른 문화 후손에 전달

전남 광양시가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기념비에 설치한 단죄문 [광양시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광양=뉴시스]김석훈 기자 = 전남 광양시는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비석 앞에 단죄문을 설치했다.

14일 광양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시정조정위원회 자문회의와 시의회 의원간담회를 통해 ‘유당공원 내 친일논란 비석정비’의견을 수렴했다.

시는 이어 지난 2월 문화유산보호관위원회를 열어 유당공원 내 국권침탈 협력자 친일인물 이근호와 조예석 등 비석 2기에 대해 단죄문을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단죄문에는 이들이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라고 명시했다.

이근호(1861~1923)는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으로 1902년 제5대 전라남도 관찰사 겸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를 지내 ‘관찰사이공근호청덕애민비(觀察使李公根澔淸德愛民碑)’가 건립됐으나,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앞장선 공로가 인정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일제 강점하 반민족 진상규명 위원회에서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등재된 인물이다.

조예석(1861~?)은 1902년부터 전라남도 관찰부 광양 군수로 부임하면서 ‘행군수조후예석휼민선정비(行郡守趙侯禮錫恤民善政碑)’가 건립됐지만,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관계한 조선 관리들에게 일본 정부가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다.

2009년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광양시 김복덕 문화예술과장은 “이번에 설치된 단죄문에는 해당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적시해 친일행적을 시민들과 유당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5-14> 뉴시스 

☞기사원문: 광양시, 유당공원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설치 

※관련기사 

☞연합뉴스: 광양시, 친일인사 이근호·조예석 기념비에 단죄문 

☞아시아경제: 광양시,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유당공원 내 설치 

☞한국시민기자협회: 광양시,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설치

토, 2020/05/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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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1부] [2부] [3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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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는 5개의 질문으로 5.18민주화의 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쟁점을 이야기 합니다.

1. 작년 3월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왜 다시 진상규명법이 제정된 건가?
2. 
최근에는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군인들에 의한 여성 성폭행 문제가 새롭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폭도로 매도당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이 입었던 2차 피해와 트라우마도 극심했죠? 5.18민주화운동의 피해자를 인권문제 차원에서 좀 더 광범위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는데?
3. 
이번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로 ‘5.11연구위원회’라는 게 나옵니다. 이게 무엇인가?
4. 
5.18이 ‘민주화운동’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5. 
최근 5.18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시아 곳곳에서 불리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1~2부_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10일간의 기록_5월 22일~27일까지 광주시민들이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이야기합니다.

올해는 5·18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우린 광주의 정신을 계승한 투쟁을 통해 권좌에 올랐던 학살자들을 법정에서 내란죄로 처벌 했고, 518은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으며, 폭도로 몰렸던 항쟁의 주역들은 민주주의 지킨 국가유공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전두환은 뻔뻔스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보수라고 일컫은 몇몇의 무리들은 광주를 폭동, 북한군의 개입이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일베나 보수유투버들은 희생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 방송은 40주년을 맞은 5.18을 맞아 광주의 정신은 무엇이며 특히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시도가 일어나는 현실속에서 다시 광주 518의 역사적의미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나 40년이 지난 지금 까막득한 옛날 사건 중 하나로만 알고 있은 젊은세대들에게 어떻게 그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함께 이야기기 나눌 노영기 교수는 5.18연구의 권위자로 ‘왜 국민의 군대가 국민들에게 총을 쏘았을까?’라는 질문을 안고서 한국현대사 공부를 시작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2007년까지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12·12와 5·18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검토하고 관련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금, 2020/05/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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