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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참여연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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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참여연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 발표

익명 (미확인) | 화, 2018/10/30- 11:06

참여연대, 「삼바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 발표

금감원의 삼바 재감리 및 증선위 심의(10/31)에 맞춰 남은 쟁점 정리

에피스를 초기부터 관계회사로 보건 아니건 상관없이
실질지배력 변동없는 한, 2015년 장부에 4.5조원 이익 반영은 불가능

에피스가 2012년부터 관계회사였을 경우 장부 전체 새로 써야

 

1. 취지와 목적

  • 오늘(10/30)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 김경율 회계사)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에 대한 재감리 결과를 논의하기 위해 내일(10/31) 개최되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 맞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이하 “제2차 Q&A”)를 발표함. 
  • 이번에 제2차 Q&A를 발간하게 된 목적은 2018.5.24.에 발표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Q&A」(https://bit.ly/2zezdYn) 이후 핵심 쟁점으로 등장한 삼바의 2012년 이후 회계 처리와 2015년 회계 기준 변경의 적정성과 관련하여 ▲복잡한 회계 용어와 개념으로 포장된 쟁점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가 2012년부터 관계회사였다면 채택했어야 할 회계처리 방식을 설명하고, ▲삼바가 실제로 채택한 회계처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임. 

 

2. 제2차 Q&A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음. 

  1. 종속회사와 관계회사는 어떤 개념이고, 어떻게 구분하는가?
  2. 연결과 지분법의 회계처리는 어떻게 하는가?
  3. 연결에서 지분법으로, 지분법에서 연결로 바뀔 때의 회계처리는?
  4. 처음부터 계속 종속회사(연결로 회계처리)였는데, 종속회사가 상장에 성공해서 지분가치가 10배 증가한 경우의 회계처리는?
  5. 처음부터 계속 관계회사(지분법으로 회계처리)였는데, 관계회사가 상장에 성공해서 지분가치가 10배 증가한 경우의 회계처리는?
  6. 에피스가 2012년부터 삼바의 관계회사였다면 채택했어야 할 회계처리 방법은?
  7. 삼바가 처음에는 에피스를 종속회사라고 착각하여 연결로 회계처리하다가 뒤늦게 관계회사임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올바른 정정 처리 방법은?
  8. 삼바가 실제로 채택한 회계처리의 문제점은?

 

3. 제2차 Q&A의 주요 결론은 다음과 같음.

  • 2015년에 삼바는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판단을 변경할 사유가 없었음.
  • 따라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할 이유가 없었고, 과거부터 일관된 회계처리 방식을 고수할 경우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계상하는 것은 불가능함.
  • 설사 2012년부터 관계회사였다는 점을 뒤늦게 인지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적절한 회계처리는 과거 장부를 소급 정정하여 지분법으로 일관되게 회계처리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도 대규모의 평가이익은 발생하지 않음.
  • 즉 어떠한 경우에도 지배력 판단에 변경이 없는 한, 삼바가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계상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음

 

▣ 붙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

 

※ 약어(略語) 정리: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바, 삼성바이오에피스 → 에피스

 

 

1. 종속회사와 관계회사는 어떤 개념이고 어떻게 구분하는가?

  • 종속회사 : 어떤 회사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그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통제할 수 있을 때(이것을 회계적으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함), 의사결정을 통제당하는 회사. 
    • 예를 들어 지분율이 50%를 초과하면 일반적으로 종속회사로 분류하고 연결로 회계처리함.
       
  • 관계회사 : 어떤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회사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영향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회사. 
    • 예를 들어 지분율이 20% 이상이나 50% 이하이면 일반적으로 관계회사로 분류하고 지분법으로 회계처리함.
       
  •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는 공정가치로 회계처리함.

    종속회사 관계회사 구분
     

2. 연결과 지분법의 회계처리는 어떻게 하는가?

  • 연결 : 두 재무제표를 합산함. 이 때, 외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부분은 비지배지분으로 표시함. 
    •  예를 들어 A회사가 B회사 주식 60%를 보유하고 있고 B회사가 100의 이익을 실현하는 경우, 두 회사의 장부를 하나로 합친 다음에, 외부주주들이 보유하는 지분에 상응하는 40(= 100 × 40%) 만큼을 비지배지분이익으로 차감한 후, A회사 장부에 60만큼의 이익을 반영함.  
       
  • 지분법 : 피투자회사의 순자산가액 변동을 반영함. 
    • 예를 들어, A회사가 B회사 주식 30%를 보유하고 있는데, B가 100의 이익을 실현하면, A회사 장부에서 B 주식의 가치는 30(100 × 30%) 만큼 증가함.
       
  • 공통점 : 연결과 지분법은 피투자회사의 순자산가액의 변동(위의 예에서 100)이 투자회사 지분율(60% 또는 30%)만큼 투자회사 장부에 반영(60 또는 30)된다는 점에서 동일함. 연결과 지분법에 있어 그 주식의 공정가치가 아닌 순자산가액을 기준으로 회계처리는 하는 이유는, 주식의 보유목적이 다르기 때문임. 주식시장에서 매각하려고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가치가 아니라 순자산가치가 중요한 정보임.
     
  • 차이점 : 투자회사의 장부에 지분법은 “지분법 투자주식”이라는 한 줄로 표시되고, 연결에서는 피투자회사의 자산과 부채가 모두 표시된다는 점이 다름. 그래서 지분법을 ‘한 줄로 된 연결’이라고 표현하기도 함.
    • 여기서 “줄”이란 영어의 “line”을 의미함. 장부에서 줄은 “계정(account)”이므로, “한 줄로 된 연결”이란 곧 “하나의 계정으로 된 연결”이라는 뜻도 가짐. 
       

3. 연결에서 지분법으로, 지분법에서 연결로 바뀔 때의 회계처리는?

  •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가 상실하거나, 지배력이 없다가 지배력을 획득하면 회계처리 방법을 연결 → 지분법 또는 지분법 → 연결로 변경해야 함. 
     
  • 연결과 지분법이 피투자회사의 순자산가액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방법이므로 두 회계처리 방법간의 전환은 단순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음. 
     
  • 그러나, 현행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에서는 연결과 지분법 사이의 회계처리 변경시, 마치 기존 주식을 매각했다가 전체를 재매입하는 것과 비슷하게 회계처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음. 이 때 가상적인 매입과 재매입이 이루어지는 가격은 그 시점의 공정가치로 하도록 규정함. 

    주식의 추가 매입 또는 매각에 의해 지배력이 변동하는 경우 회계처리 예제
     
  • 이 때 유의할 점은, 공정가치 평가는 변경 시점에서만 1회 할 뿐이지, 그 후에도 계속 공정가치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님. 회계처리 방식이 변경된 이후에는 변경된 방법으로 일관되게 지분법 또는 연결로 회계처리 해야 함.
    • 즉, 분류 변경 이후에 공정가치가 변동되더라도 이를 반영하지 않음 간혹 ‘연결=장부가액, 지분법=공정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임. 연결이건 지분법이건 회계처리를 일관되게 하는 한, 공정가치의 변동을 수시로 반영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음 .
       

4. 처음부터 계속 종속회사(연결로 회계처리)인데, 종속회사가 상장에 성공해서 지분가치가 10배 증가한 경우의 회계처리는?

 

  • A회사가 B회사의 주식 60%를 보유하고 있고, B회사의 순자산이 1,000이이서 A회사 장부에 B회사가 600(1,000 × 60%)으로 반영되어 있는 상황에서, B회사가 상장에 성공하여 시가총액이 10,000이 되는 경우
     
  • 이 경우에도 A회사 장부에 B회사는 그대로 600으로 회계처리함.
     
  • 왜냐하면, B회사는 상장과 무관하게 계속 A회사의 종속회사이고, 지배력에 변동이 없으므로, 일관되게 연결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데, 연결 회계처리에서는 공정가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임.
     
  • 즉, A회사가 보유한 B회사 주식의 공정가치는 상장을 통해 당초보다 10배 증가한 6,000이 되었으나, 장부상 가치는 600으로 불변인 것임. 

 

5. 처음부터 계속 관계회사(지분법으로 회계처리)인데, 관계회사가 상장에 성공해서 지분가치가 10배 증가한 경우의 회계처리는?

 

  • A회사가 B회사의 주식 30%를 보유하고 있고, B회사의 순자산이 1,000이이서 A회사 장부에 B주식이 300(1,000 × 30%)으로 반영되어 있는 상황에서, B회사가 상장에 성공하여 시가총액이 10,000이 된다면
     
  • 이 경우에도 A회사 장부에 B주식 가치는 그대로 300으로 불변함.
     
  • 왜냐 하면, 앞의 경우와 동일하게 B회사는 상장과 관계없이 계속 A회사의 관계회사이고 지배력에 변동이 없으므로, 일관되게 지분법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데, 지분법 회계처리에서는 공정가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임. 
     
  • 즉, B회사 주식의 공정가치 상승과 관계없이, 장부 가치는 300으로 불변함. 

 

6. 에피스가 2012년부터 삼바의 관계회사였다면 채택했어야 할 회계처리는?

 

  • 에피스는 2012년부터 일관되게 지분법으로 회계처리해야 함. 
     
  • 지분법 회계처리에서는 공정가치를 반영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에피스가 설령 상장에 성공하여 공정가치가 급등해도, 순자산가액으로 회계처리함.

 

7. 삼바가 처음에는 에피스를 종속회사라고 착각하여 연결로 회계처리하다가 뒤늦게 관계회사임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올바른 정정 처리 방식은?

 

  • 만일 삼바가 2014년까지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회계처리하다가 2015년에 뒤늦게 그동안의 회계처리가 오류였음을 알게 되었다면
     
  • 기존 장부를 소급해서 정정하여 처음부터 지분법으로 회계처리 해야 함. 
     
  • 이 경우 지분법 회계처리에는 공정가치 변동을 반영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회계처리의 오류를 시정하더라도 대규모 평가이익은 발생할 수 없음.  

 

8. 삼바가 실제로 한 회계처리의 문제점은?

 

  • 삼바는 에피스가 2014년까지 종속회사였다가 2015년에 갑자기 지배력을 상실했고, 그 시점에서의 지분의 공정가치가 4조 8천억 원이라고 회계처리함. 
     
  • 지배력 상실했다고 주장한 시점에서의 에피스 장부가액이 3천억 원이었기 때문에, 공정가치와 장부가액의 차이 4조 5천억 원을 종속회사주식처분이익으로 인식하였음. 이 금액은 2014년 삼바의 자본 총계 6천억 원의 7배를 초과하는 금액임.
     
  • 전년도 자기자본의 7배를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이익을 잡으려면, ① 2014년까지는 종속회사가 확실했으며, ② 2015년에 갑자기 지배력을 상실하여 관계회사가 되었어야 하고, ③ 2015년 시점의 공정가치가 매우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 측정되었어야 함. 이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자기자본의 7배를 초과하는 이익은 절대로 생길 수 없음.
     
  • 그러나 삼바는 바이오젠과의 콜옵션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고의로 누락한 후, 2015년에 가공의 지배력 변경 사유를 만들어 낸 것임.
     

결국 2015년에 ▲종속회사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첫 번째 요건이 충족되지 않고, ▲지배력의 변동도 없는 것이므로 두 번째 요건도 충족되지 않으므로 4조 5천억 원의 이익은 발생하지 않게 됨
 

  • 또한 안진회계법인의 평가보고서를 입수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4조 8천억 원의 평가는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자료를 받지 못하여 검증을 수행하지 못한 ▲매우 부실한 평가였으므로 세 번째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역시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장부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함.
     
  • 지배력 변경 사유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바는 에피스를 2012년부터 일관되게 관계회사로 간주하고 회계처리 했어야 함.
     
  • 그런데 만일 2012년부터 계속하여 관계회사였다면, 이때는 장부를 소급하여 정정하고 지분법에 의해 회계처리 해야 하므로, 이 경우에도 역시 2015년에 대규모의 평가이익이 발생할 수 없음.
     
  •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2015년에 지배력 판단을 변경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삼바는 어떠한 경우에도 4조 5천억원의 이익을 장부에 계상하는 것이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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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콩.콩.콩.

박열음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박열음

 

그녀가 우리 집 산타가 된 이야기다. 

몇 해 전 겨울,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 겸 공방 ‘마음은 콩밭’에서 벙어리장갑 두 켤레를 샀다. 정성스레 포장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트리 밑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누가 보아도 손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벙어리장갑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엄마가 만드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산타는 있다! 엥? 얘들아, 내가 산타는 없다고 이실직고했잖아….

일 년 전, 아이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커밍아웃을 당했던 우리 집 산타는, 그렇게 다시 부활했다.

 

카페통인의 그녀 

우리의 산타가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설마, 굴뚝을 타다 떨어진 건 아니죠? 

“작년 10월, 카페통인으로 출근하는 길에 다쳤어요. 25일에 다쳤는데, 29일이 결혼식이었답니다.”

 

종종 카페통인에 들러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왜 나는 그녀의 결혼 소식을 까맣게 몰랐을까. 아니, 그보다 아픈 다리를 하고 대체 결혼식을 어떻게 치렀을까. 지난 이야기를 붙잡고 뒤늦게 걱정이 태산이다. 

“깁스하고 결혼식 했어요. 예식장에서 한 결혼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죠. 지금은 목발을 짚진 않는데 아직 완치가 안 되어서 보호대를 차고 다녀요.”

 

아픈 다리 때문에 결혼식 이후에도 그녀는 카페통인에 복직하지 못했다. 계약직으로 있던 터라 계약 만료일과 동시에 사직했다고. 그러나 카페통인에서 일하기 전부터 그녀는 참여연대와 인연이 깊다. 

“느티나무의 강의 때문에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우쿨렐레 수업을 시작으로 사진 수업, 드로잉 수업도 듣고. 그러면서 수강생들하고 ‘그림자’라는 드로잉 소모임도 만들었죠. 지금도 인사동에서 ‘그림자’ 전시회 중이에요. 모임을 시작한 지도 거의 7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러니까 그녀는, 참여연대의 회원이었다가 카페통인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종의 내부자가 되었다가 다시 회원이 된, 조금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내부자는 아니고 약간 주변인 같은 처지였는데 그래도 회원이었을 때랑은 많이 다르긴 하죠. 내부 사정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고. 다사다난하더라고요, 여기도 사람들이 꾸려가는 조직이니까. 활동가들의 고충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촛불정국 때는 간사님들이 애쓰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엄청 감동을 받아서 회비 증액하겠다고 장담도 하고 그랬는데, 아직 실천을 못 하고 있네요.”

 

촛불혁명이 한창이던 지난겨울. 그녀는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집회에 나갔다. 그러다 한번은 주말에 카페통인 근무를 맡게 되면서 광장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카페통인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무척 많이 만났어요. 친구들한테도 집회에 오면 카페통인에 들르라고 막 연락도 하고 그랬죠. 카페 앞 계단에 커다란 보온 물통 갖다 놓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물 한잔을 나눠주고, 화장실도 개방하고. 여기서도 이렇게 우리가 같이 호흡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막 감정이 벅차오르더라고요.”

 

집회가 있던 날, 나도 카페통인에 잠깐 들렀던 적이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했던 그때, 카페를 지키고 있던 간사의 한 마디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집회가 있는 날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요. 몰려드는 시민들에게 집중해야 해서요.”

평소 즐기는 ‘따자’(따뜻한 자몽차)를 마시지 못해 못내 아쉬웠지만, 역시 참여연대의 ‘클라스’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양쪽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던 날이었다. 서촌의 다른 카페들과 카페통인과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은, 그래서 하지 않았다. 

 

장갑

낡은 스웨터를 재활용해서 만든 ‘마음은 콩밭’의 벙어리장갑 ⓒ호모아줌마데스

 

노조

그녀가 참여연대노동조합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한 그림 ⓒ참여연대노동조합

 

갈팡질팡 중입니다 

예전에 그녀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모녀가 회원인 것도 드문데 모녀를 모두 인터뷰하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듯하다.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어머니, 그 밑에서 그녀는 갖가지 색깔의 물감, 붓, 종이, 가위들에 둘러싸인 채 유년기를 보냈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녀가 미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결국 정치외교학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터졌는데, 학교 선배의 동생이 효순이였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정부여고 선후배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어요.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미군부대 앞으로 몰려가 항의시위를 했고 그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죠.”

 

당시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월드컵 경기 때문에 시위에 갈 수 없다던 친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깟 공놀이가 뭐가 중요하냐!

“억울한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나니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 생기더라고요. 시사고발프로그램의 피디 같은, 진상을 밝히고 보도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죠. 그래서 정치학 공부를 하고 복수전공으로 언론학을 선택했어요.”

 

그러나 그녀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은 정치, 언론 이런 것들과는 상관이 없다. 언론사 인턴, 대형서점 문구 코너의 MD(merchandiser,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에 대한 책임자)를 거치며 그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일은, ‘손작업활동가’이다. 

“MD로 일한 곳이 대기업이다 보니 이윤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를 조장하고, 물건을 제작해 납품하는 창작자나 제작자들에게 본의 아니게 갑질을 해야 하는 처지였어요. 그런 게 심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한편으론 소규모 창작자들의 작업에 자꾸 관심이 가고 그래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마음먹게 되었죠.”

 

몇 해 전까지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카페 겸 대안예술공간 ‘마음은 콩밭’을 운영했다. 그 아늑했던 공간은 문을 닫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마음은 콩밭’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창작물들을 생산, 유통하고 있다. 스카프나 가방 등 패브릭 소품을 만들고 바느질, 천연염색, 드로잉 등의 소규모 강의도 진행한다. 때로는 직접생산자들만이 판매자로 참여할 수 있는 ‘파머스 마켓(마르쉐)’에 창작물들을 가지고 나가 팔기도 한다.

“수익은 당연히 적고요. 그래서 카페통인에서 일을 했던 거예요. 돌아보면 후회는 없는데 그렇다고 지금 이 작업이 저한테 딱 맞는 옷이라 생각하지도 않아요.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할까,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죠.”

 

사람의 손과 오후의 햇살

“기본적으로는 지구환경을 덜 해치면서 쓸모가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근데, 마음 한편엔 쓸모는 없지만 예쁘고 귀여운 것들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죠. 요즘 사람들은 ‘효용’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모든 걸 규정하려 들잖아요. 사회적 약자나 반려동물들은 그런 기준에서 보면 무용한 존재들이 되는 거고. 그런 생각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어요.”

 

손작업의 특성상 작업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소량생산이다 보니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효율 면에서 보면 ‘손작업’은 무용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손작업’을 해나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녀가 이런저런 색깔의 옷감들을 가지고 어느 오후 내내 조몰락거리며 만들어냈을 작은 소품들.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람의 손과 오후의 햇살이 함께 빚어낸 따뜻한 위안과 평화로움은 결코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다. 

 

“손작업을 해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적은 수입을 가지고 언제까지 이 일을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특히 저처럼 손작업과 관련한 공부를 한 적이 없거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원을 받기도 힘든 현실이에요.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공간과 장비가 절실한데, 공공작업실을 이용하려면 너무 많은 증빙서류와 결과물들을 요구하거든요. 학력, 전공, 경력 등과 상관없이 공공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작업을 위해 한쪽에 모아놓은 옷감과 조각 천들. 하나의 색도 아니고 하나의 질감도 아니고 하나의 패턴도 아닌, 그 색색의 자유로움을 그녀는 닮았다.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고, 이거 하다 보면 또 저게 하고 싶고. 뭐 하나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도 많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삶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추 같은 게 필요했던 거 같아요. 남편이 저한테는 그런 존재죠.”

 

서른을 몇 해 넘겼을 때,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이제는 결혼생활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날아가는 풍선과도 같은 그녀를 힘껏 잡아준 남자와 작년 가을, 작은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들이 시를 써주고 꽃장식을 맡아주었으며 사회를 봐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분명 오후 햇살의 따사로움으로 가득했을 거라고, 나는 상상했다. 

 

“결혼하기 전, 알랭 드 보통이 쓴 결혼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그 글에 상당히 공감이 가기도 했고, 일단 전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남편에겐 우애가 깊고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건강한 자존감이 있어요. 제 친구 중에 나이도 어린데 일찍부터 독립해서 야무지게 생활해나가는 녀석이 있거든요. 한번은 제가 너는 스물한 살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야무지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가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러는 거예요. 부럽기도 하고, 거기까진 힘들더라도 밖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평안함이 느껴지는,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1년 정도 이어진 낭만적 연애 기간이 끝나고 이제 그녀에겐 ‘그 후의 일상’만이 남았다. 비슷한 패턴으로 무한반복 되는 일상. 그 단조로운 조각들을 가지고 평범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것들을 만들어갈 그녀의 오후를 상상해 본다. 

 

콩.콩.콩.

“저를 정의하자면, 눈은 높은데 노력은 안 하는 스타일로 적어주세요. 그리고 너무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마음은 콩밭’이란 브랜드가 제 정체성인 거 같아요. 마음이 늘 콩밭에 가 있죠. 하나에 집중해야 그 분야에서 성과도 내고 돈도 벌고 그럴 건데, 너무 분산돼 있다 보니 경험은 많은데 깊이가 얕아요.”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둔 서랍을 연다. 뒤적뒤적, 밑바닥에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맞지 않는 벙어리장갑 두 켤레가 놓여 있다. 장갑이기 전에는 누군가의 등짝을 따뜻이 감싸주었을 두툼한 스웨터였다. 이것저것 하고픈 게 많은 그녀 덕분에 그 낡은 털실뭉치는 다시 누군가의 시린 손끝을 덮을 수 있었다. 그녀가 뿌린 무수한 콩알들. 그 중 하나가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 왔고, 산타는 다시 부활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무수한 콩들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노란 바늘땀으로 수놓인 앙증맞은 토끼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장갑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녀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만들고 있다.  

 

수, 2018/02/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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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했던 동학언니, 
스물두 살 이소사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감독

독립장편 다큐멘터리 <국가에 대한 예의>를 만들었다.

 

 

혁명을 새겨 넣은 기념탑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의 마지막 인터뷰 촬영 장소는 정읍의 이팝나무 숲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심은 이팝나무 숲이 두르고 있던 곳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처음으로 격퇴했던 황토현 전적지로, 그 숲길을 따라 비스듬히 난 오르막길을 돌아 걸으면 동학혁명기념탑이 버티고 있는 언덕 꼭대기에 닿을 수 있었다. 1991년 강경대 공권력 타살 사건에 맞서 최초 분신한 박승희의 병상을 지켰던 선배이자 시인인 인터뷰이는 탑의 주위를 함께 돌며 그 유래를 일러주었다.

 

1963년, 이 탑이 세워지던 날 대선을 앞두고 남부의 지지를 기반 삼으며 호남의 지지가 간절했던 유력 후보가 이 자리에 섰다. 자신의 아버지가 동학접주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동학란이라 불리던 갑오년의 일들을 동학혁명이라 고쳐 새겼다 했다. 덕분인지 그는 대선에서 1.5%의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는 그로부터 2년 전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명을 몰고 한강을 건넜던 군사혁명위원장 박정희였다. 

 

역사란 기억을 새기는 동시에, 또 다른 기억을 누락하는 기록 과정이기도 하다. 동학교도와 함께 갑오혁명의 또 다른 주체인 농민의 이름은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엉망인 나라를 고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인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덧댈 보(輔)’가 기념탑에는 ‘지킬 보(保)’로 바뀌어 새겨졌다는 이야기가 뒤를 따랐다. 

 

동학기념탑

정읍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동학혁명기념탑. 동학농민혁명의 구호였던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이 새겨져 있다. 

 

거괴와 천녀로 불린 동학농민혁명가, 이소사

당도해야 할 시대가 오지 않았던 조선 말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백성을 수탈하는 부패한 관료에 맞서 ‘제폭구민’의 기치를 들었던 1차 봉기와는 달리,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빌린 외세를 척결하고자 ‘보국안민’의 기치를 들고 일어섰던 2차 봉기 때엔 조선의 조정이 휴전 협정을 어기고, 일본군만이 아니라 청나라까지 연합하여 동학농민군을 공격했다.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동학군은 한반도의 남서쪽으로 밀려 장흥의 동학군과 합류하여 3만이 넘는 대오를 이뤘다. 패배가 자명한 전투의 끝자락에 장흥 일대를 점령하고, 장흥부사 박헌양 등 장졸 96명을 전사케 한 장녕성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둔다. 일본군 대대장 남소사랑(南小四郞)이 쓴 토벌기록인 ‘동학당정토약기’ 중에는 이 전투에서 “부사의 목을 내친 사람이 여인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소사라는 그녀의 이름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정부 토벌군이었던 이두황의 ‘우선봉일기’였다. 이두황이 1895년 1월 남소사랑에게 보낸 편지에는 거괴(巨魁) 체포자 이소사가 소모관에게 허벅지 살을 베이는 문초를 당해 살이 썩어 문드러지고 숨을 헐떡이는 지경에 이르러 위태하므로 나주로 호송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다음 해 나주에 있는 일본군 감옥에서 심문 직전 옥사한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에 관한 당시의 모든 기록은 그녀를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들에 의해 남겨졌다. 당시 일제의 신문이었던 <국민신문> 1895년 3월 5일 자에는 “동학당에 여장부가 있다. 동학당의 무리 중 한 명의 미인이 있는데 나이는 꽃다운 22세로 용모는 빼어나기가 경성지색(傾城之色)이라 하고 이름은 이소사라 한다. 오랫동안 동학도로 활동하였으며 장흥부가 불타고 함락될 때 그녀는 말 위에서 지휘를 했다고 한다.”라고 적혀있다. 

이소사

동학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하고 민회를 소집하여 오지 않았던 다른 세상을 꿈꿨었지만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보름이 넘도록 최후의 항전을 한 뒤 무참한 살육 끝에 혁명의 막을 내렸다. 최근 발견된 일본병사 쿠스노키의 『종군일지』의 기록에 의하면 장흥의 건산이라는 산등성이를 눈처럼 하얗게 가득 채운 동학농민군들에 대한 묘사가 있다. 무명옷으로 겨울 추위를 버텨가며 지는 싸움에 임하고자 했던 그들과 이소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조일신문> 1895년 4월 7일 자에는 이소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가 있다. “장흥 부근의 동학도 무리에는 한 명의 여자가 있는데 추천으로 수령이 됐다. 우리 병사가 잡아서 심문을 했는데 완전히 미치광이가 됐다. 동학도가 귀신을 이야기하고 신을 말하는 것을 이용하여 천사 혹은 천녀라 칭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선동했다” 이소사가 죽기 직전까지 했던 말을 동학의 21자 주문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소사라는 호명조차도 이름이 아니라 남편이 있는 여인을 높여 일컫는 호칭으로 해석될 뿐이다. 그러나 봉건질서를 베어버리고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순간을 버티고 있었던 여인의 존재는 동학농민혁명 124년, 임시정부수립 99년째를 마주하는 지금 우리 역사에 대한 더 집요한 기억과 기록을 꿈꾸게 한다.  

 

 

 

수, 2018/02/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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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3·8’을 맞이하여 

 

글. 류진희 성균관대 강사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소녀들』, 『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다.

 

남과 북, 서로 다른 3.8의 의미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975년 UN 공식기념일로 지정되어, 세계 170개국에서 이날을 축하한다. 작년부터 나 역시 지인들에게 생일 대신 이날에 장미꽃을 달라고 했다. 최근 몇 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떠들썩하게 통과하며, 새삼 ‘지금-여기’ 여성으로서의 삶을 서로 격려하는 날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성의 날은 세계적으로 110주년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어 올해 제34회를 맞이한다. 민족 · 민주 · 민중, 민주화, 평화, 성평등 등 해마다 시의적절한 이슈를 제기하며, 연인원 천 명이 넘게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일상의 차원에서 이날의 의미를 되짚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어버이날에 맘먹고 카네이션을 사고 안부전화를 하며, 밸런타인데이에 장난스레 초콜릿을 건네는 정도만큼의 실천이 없는 것이다.

 

반면 한반도의 또 다른 한쪽에서 ‘국제부녀절’은 공휴일이다. 하루 종일 관련 행사가 떠들썩하게 중계되며, 작업장에 따라 반나절의 휴식도 보장된다. 북한에서 이날은 1946년 남녀평등법 제정 이후 기념하기 시작해, 이번 2018년에 108주년을 맞는다. 이러한 차이는 세계여성의 날과 국제부녀절이 각기 다른 연원을 지목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은 1908년 미국의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했던 대대적인 시위를 이날의 유래로 꼽는다. 한편 북한은 1910년 사회주의 제2인터내셔널에서 여성혁명가 클라라 제트킨 등이 제안한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을 그 시초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3월 8일은 모두는 동등한 선거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시발점이 된 3월 8일 여성들의 페트로그라드 거리 시위 이후, 이제 ‘3 · 8’은 하층계급과 여성, 나아가 피억압 민족의 해방까지를 아우르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국제부인데이’나 ‘무산(無産)부인의 날’의 어떤 기념행사도 금지되고 관련 기사도 검열되기 일쑤였다. 

 

빵과장미

1908년 3월 8일, 루트리스 광장에 모인 1만 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We want bread but roses too”를 외치며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했다.

 

근대성에 도전한 집단적 여성들의 ‘국제부인데이’ 

그렇기에 1946년 해방 후 첫 ‘국제부인데이’는 좌우할 것 없이 여성단체들이 공통으로 기념했다. 단 하루가 아니라 3월 1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부녀해방투쟁기념주간으로 선포됐다. 민족해방에 이어 “우리(여성)는 완전한 해방을 위하여 한 번 더 돌진하자”는 다짐이 강조됐기 때문이었다. 강조컨대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근대성 자체에 도전하는 집단적 존재로서 여성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하층계급 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과의 연대가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과 전쟁, 그리고 분단과 냉전체제 하 한국에서 이 맥락은 희미해졌다. 반공아시아 초남성적 개발독재 정권에서 아예 사회주의적 근 기원을 가진 여성의 날은 삭제됐다. 대신에 5월 8일 어머니의 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애초 전쟁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들이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이날에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전통적인 효 사상을 강조하며 지정되어, 1973년에는 아예 노인공경을 아우르는 효행의 미덕을 강조하는 어버이날로 확대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에서 어머니의 날은 없고, 다시 세계여성의 날이 있다. 

 

이제, 다시 서로에게 장미꽃을 건네야 할 때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떠한 ‘3 · 8’을 맞을 수 있을까.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전개를 배경으로, 배타적인 혐오와 차별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다시 세계여성의 날이 주목되는데, 이는 작년 SNS 페이스북에서 최다 언급된 화제이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혼인평등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도 소리 높여 주장되는데, 작년 한국은 다른 풍경에 맞닥트렸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탄핵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장미대선에 승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성애가 ‘종북(縱北)’ 대신으로 종주먹을 대며 반대해야 하거나, ‘나중에’ 다뤄야할 이슈가 된 것이다. 

 

이제 2018년,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backlash)가 감지되고, 종종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른 소수자를 향한 혐오발화가 전략적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올해 ‘3 · 8’은 더욱 모든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주장했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수년간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주관해온 여성단체연합의 최근 성명을 인용하자면, 민주주의는 성평등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다”. 다시 또, ‘3 · 8’을 맞이하여, 우리 서로에게 장미꽃을 건네자. 

 

장미

 

수, 2018/02/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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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복이

혼자 살다가 짝꿍과 살다가 아기까지 셋이 사는 이 생활이 어리둥절한 만화가입니다.

 

이럴줄몰랐지019_01이럴줄몰랐지019_02

수, 2018/02/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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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학교가 문을 열고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는 때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3월이면 개학과 개강 등으로 1월 못지않게 새로운 기분이 든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고, 더욱이 학교에 다니는 자녀도 없지만, 이맘때면 출근길에 지나는 학교 정문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러려니 하고 지났던 일들이 (어른이 된 내가 이해하는) 사회라는 구조 속에 놓여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지금 학생들은 어떤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라날까. 문득 나는 어쩌다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품고 있다는 그 교육을, 현장과 현실에서 한참 멀어져 사건, 정책, 결과로만 접하게 됐지 궁금해졌다. 과연 오늘날 교육은 어떻게 달라졌고 또 무엇이 여전할지, ‘스스로 교육’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학교는 한 번도 민주적인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은 『학교 내부자들』이다. 제목에서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지만, 학교 내 관리자 역할을 맡는 현직 교감의 고백과 반성이라는 대목에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교감이야말로 학교 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바꿔나갈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아닌가. 절실한 과제와 확실한 해결책을 함께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

 

“많은 사람은 학교가 가장 민주적인 곳이고, 학교가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고, 민주적인 학교 교육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는 그동안 한 번도 민주적인 적이 없었다. 학교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고 교실은 교사의 왕국이었다. 민주적이지 못한 교장에게서 민주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교사들은 교실에서조차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못했다.”

 

‘부끄러운 관리자’라는 고백과 ‘비민주적인 학교’라는 자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학교 바깥의 교육 주체인 교육청으로까지 이어진다. 교육청의 지원 아닌 지시를 지적하며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구체적이면서도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관리자가 아닌 지원자로서 교감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는 교감뿐 아니라 교육의 주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태도이자, 학교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관점이 아닌가 한다. 

 

학교내부자들

● 학교 내부자들_민주적인 학교를 위하여 / 박순걸 지음 / 에듀니티

 

대학 안에 개혁을 이끌 주체가 없다

초, 중등교육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고등교육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모든 교육이 대학 입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대학은 그야말로 한국 교육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최근 외부에서 논의되는 대학의 문제는 시장과 자본의 대학 침투다. 대기업이 대학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학의 구조와 교육의 내용까지 기업의 논리로 바꿔버렸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오지만, 대기업이 들어와 대학에 투자가 늘어났고 그 덕분에 대학평가가 높아져 입시에서 주목도가 올라갔다는 반론은, 늘 비판을 잠재우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전진할 따름이다.

 

한국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김정인 교수의 『대학과 권력』은 오늘의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밝힌다.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대학정책과 운영을 중심에 두고 대학교육에서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주목하는 이 책은, “대학-국가-시장의 공고한 연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대학 상품화의 현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은 이러한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대학 안에 개혁을 이끌 주체가 없”다고 지적하며, 대학교육 개혁과 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책 방향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데, 여기서도 핵심은 개혁의 주체와 동력이다. 이 책에서 반복하여 보여주듯 “대학의 위기는 대학이 외풍에 밀려다니며 자기 방향성을 잃어버린 100년의 궤적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학과권력

● 대학과 권력_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방법은 쏟아지는데 목적과 방향이 없다

교육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교육 개혁의 방향을 이야기할 때면 늘 외국 사례가 등장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주인공은 핀란드였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핀란드 교육은 언뜻 보아도 경쟁 일변도의 한국 교육에 꼭 필요한 이야기 같다. 그런데 숱하게 쏟아진 핀란드 교육 이야기 가운데 어떤 부분이 한국 교육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현실에 적용되었는지는 (내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비교교육학 박사 김선의 『교육의 차이』는 그 이전에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해 주는 독일, 배려하는 교양인으로 성장시키는 영국, 도전하는 창조적 리더를 키우는 미국,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싱가포르, 그리고 앞서 언급한 핀란드까지 다섯 나라의 교육을 소개한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논의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은 각 나라의 교육이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 그리고 현실적 필요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나라마다 필요한 인재의 모습이 다르니, 그에 따라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설계하고, 그것이 실현될 구체적인 정책을 세워 실현하게 된 결과가 각 나라 교육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물론 교육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여러 나라의 교육에는 기회, 토론, 자유,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선 한국이 원하는, 한국에 적합한 인재상이 무엇이고 그에 적합한 교육이 어떤 모습인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이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으로서 교육을 인식하게 하는가? 지금 나의 모습이 아직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제라도 시작해보자. 3월, 개학이니 말이다. 

 

교육의차이

● 교육의 차이 / 김선 지음 / 혜화동

 

 

수, 2018/02/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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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지상의 삶Das Irdische Leben>, 배고픈 어린이와 어머니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된 노래다. 

 

1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옥수수를 딴단다.

2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타작을 한단다.

3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빵을 굽는단다.

4절 빵이 구워졌을 때 아이는 죽어서 관에 누워 있었다. 

 

말러 <지상의 삶>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ahler Irdische Leben Ludwig를 검색하세요.

 

 

우리네 ‘지상의 삶’은 늘 이런 걸까? 굶주린 아이들뿐 아니다. 형제복지원 희생자 한종선 · 최승우 씨가 겨우내 국회 앞 농성을 벌였지만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외노조의 굴레를 풀어달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단식농성도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113명의 선배 언론인 중 29명이 세상을 떠났고, 살아계신 분들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촛불 1년을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전혀 정의롭지 않다. 

 

<지상의 삶>의 노랫말을 쓴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1788~1866는 마흔다섯 살 되던 1833년 두 아이를 잃었다. 그는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 한 편씩 시를 썼고, 2년 동안 눈물처럼 고인 시(詩) 428편을 묶어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펴냈다. 죽음과 이별에 대해 남달리 민감했던 말러는 이 시들에 깊이 공감했고, 이 중 다섯 편을 골라 연가곡을 만들었다. 태양 아래 정의는 없는 걸까? 죄 많은 나는 여전히 눈을 들어 빛을 바라보는데, 어째서 순결한 아이는 먼저 눈을 감았을까? 자책과 회한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돌이킬 수 없다. 이게 꿈일 뿐이라고 상상해 보지만 소용없다. 

 

아이들은 잠깐 놀러 나갔을 뿐이야. 나는 생각하곤 하지, 곧 돌아올 거라고. 햇살 화창하니 걱정하지 말자, 아이들은 잠깐 산책을 간 거야. 저 언덕 너머 잠시 여행 중이야.

-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말러는 19살 연하의 아름다운 알마와 결혼하고 빈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이 될 무렵인 1901년~1904년 사이에 이 연가곡을 작곡했다. 하필 가장 행복한 시기에 이렇게 어두운 곡을 썼을까? 알마는 남편이 이 곡을 쓰는 걸 불길하게 여겼는데, 이 곡이 예언이라도 한 듯, 1907년 큰딸 마리아 안나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은 말러 자신의 죽음이기도 했다. 말러는 뤼케르트의 시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에 선율을 붙였다.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이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네.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사실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 나는 이 세상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한 평화를 누리고 있네.

 

지금 이 땅에서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를 자기 노래로 느끼는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좌절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간다. 말러는 <지상의 삶>과 대비되는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도 작곡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곡은 어린이가 상상하는 천상의 행복을 소프라노가 노래한다.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니 세속의 것은 필요치 않네. 만물은 평온하고 우리는 천사의 삶을 누리네. 우리가 뛰며 춤추고 노래하니 하늘에서 베드로가 지켜보네. 

 

말러 교향곡의 엄청난 규모에 질린 분들은 이 <천상의 삶>이 피날레로 들어간 4번 G장조를 먼저 들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부드럽고 유순하다. 연주시간도 비교적 짧고(55분!) 오케스트라 규모도 작은 편이다. 

 

말러 교향곡 4번 G장조

지휘 게오르크 숄티 / 연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ahler 4 Solti Chicago를 검색하세요.

 

 

1901년, 말러는 결혼을 앞둔 알마에게 이 곡의 1악장 주제를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링크 00:13). 알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곡이 하이든과 뭐가 달라요?” 말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요.” 하이든의 교향곡을 별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는 분이라면 말러 교향곡 4번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1901년 뮌헨에서 초연했을 때 청중들은 말러가 이 단순하고 유쾌한 음악으로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장난스런 방울 소리와 하이든 풍의 주제 선율에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라는 중얼거림이 나왔다. 특히 피날레 <천상의 삶>은 충격적이었다(링크 46:12). “교향곡은 뭔가 거창한 피날레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하찮은 피날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밝혔듯, 이 곡은 심한 산고 끝에 탄생한 진지한 작품이다. 말러는 이 곡에서 ‘영원한 현재로서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아주 파란 하늘을 연상해 보자. 하늘ㄹ은 가끔 어두워지거나 유령이 나올 듯 소름 끼치게 변하기도 하지만 천국 그 자체는 결코 어두워지지 않으며, 언제나 푸르게 빛난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천상의 삶’을 묘사한 이 교향곡에서 깊은 고통과 어두움을 보여주는 대목들은 ‘지상의 삶’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말러알마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지휘자 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연인, 알마 

 

수, 2018/02/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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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스페인인 듯, 아닌 듯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고, 현재 ‘채널예스’에서 <남녀, 여행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날씨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파고든다. 한 달씩 머무는 여행을 통해 그 지역 날씨, 지형, 생활 방식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 바람과 비가 많은 북쪽의 바스크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 특유의 활기찬 DNA보다 근면 성실함이 몸에 밴 듯싶다. 스페인 내에서도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곳도 바스크이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과일이 떨어지는 축복 받은 태양이 없으니 부지런히 일할 수밖에! 그래서 오래전부터 바스크의 주도(主都), 빌바오는 조선, 철강 산업 등 공업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작은 도시 빌바오만의 투박한 매력

빌바오를 소개할 때 ‘모더니즘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서유럽의 어떤 세련됨이 이곳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만의 투박함과 정겨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빌바오의 첫인상은 쌀쌀맞을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들이다. 눈이 마주치면 ‘올라Ola부터 외치던 버릇이 무색해지게 상점 외에는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도 많고 자리를 양보해도, 문을 열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깨를 부딪쳐도, 길을 방해해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안 한다. 종민은 경상도 어디에 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태도가 투박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 투박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겉으로 살살거리는 친절함만 없을 뿐 말을 걸어오는 현지인들은 어느 도시보다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혹자는 어느 도시를 가리켜 ‘반나절이면 다 보는 도시’, ‘하루면 끝나는 도시’라는 표현을 쓴다. 안타깝게 ‘빌바오’도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선 그런 불명예를 안고 있는 도시인가 보다. 기껏해야 올드 시티를 돌아다니거나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보는 게 전부인 걸 보면 말이다. 천천히 동네를 거닐면서 시내 그리고 범위를 근교까지 확장시키는 달팽이 여행법을 선호하는 우리도 생각보다 작은 도시 규모에 당황했다. 

 

가까이 보아야 더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빌바오 구석구석 바스크인의 섬세한 손길이 닿는 건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내부에 들어서면 차가운 무채색의 콘크리트 벽이 승객들을 맞이한다. 유럽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오줌 냄새도, 뉴욕 지하철의 상징과도 같은 큰 쥐도, 하다못해 어지러운 광고판도 없다. 빌바오의 첫인상과 닮아 있는 깔끔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바스크인의 세련되고 모던한 감각임을 눈치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람도 건축물도 빌바오의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 가까이 보면 감흥이 덜 하나 멀리서 보면 속뜻을 품고 있다. 바스크의 지형도 비슷하다. 가까이 보면 대서양과 면한 항구 도시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들이 바다를 이용해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에 힘쓴 역사보다 산에서 목축을 하고 땅을 일구며 산촌 사람으로서 살아간 세월이 훨씬 길다. 그래서인지 해산물만큼이나 많이 먹는 음식이 출레타(chuleta)①라고 하는 구운 고기 요리다. 

 

지하철

 

산으로 막혀 있던 바스크는 나름의 언어로 자신들만의 고립된 세상을 만들었고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갈 길 가겠소’라는 뚝심 혹은 고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성격을 지니게 된 듯하다. 가까이 보면 무뚝뚝하고 멀리서 보면 속정이 깊은 바스크인의 성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만나다 

이렇게 고립된 세상에 독일 나치군이 폭격을 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게르니카,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작은 강줄기가 바다로 흐르는 평화로운 바스크 마을 중 하나이다.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군을 지원하던 독일 콘도르 군단이 게르니카를 폭격한다. 1,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사망한 이 비극적인 참상을 전해 들은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그리는데 우리에게는 이 작품으로 유명하다. 비록 모조품이라도 실제 참상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마주한 그림이라 더 참혹하게 다가온다. 

 

프랑코 군이 하필 게르니카를 지목한 건, 그곳이 바스크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스페인 정부로부터 독립을 외치고 고집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픔을 간직한 곳의 사람들은 그 아픔이 치유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게 된다. 가까이 보이는 바스크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에 상처는 어디까지 아물었을까? 

 

게르니카

 


① 많은 바스크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아사도가 바스크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질이나 굽는 방식이 흡사하다.

수, 2018/02/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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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영하 20도의 한파 속에도 어김없이 1319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날 수요시위는 특별히 참여연대가 주축이 되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평화군축센터와 청년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 자원활동가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얼어붙지 않습니다. 일본과 한국 정부는 지금 당장 한일 위안부합의를 폐기하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현장

 

수, 2018/02/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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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참여연대, 날아라 민주주의
이달의 참여연대

박근용, 안진걸 전 공동사무처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박정은 신임 사무처장이 보고 드립니다 

 

오랜만에 활동보고로 인사드립니다. 참여연대에서 1월과 2월은 총회를 준비하면서, 지난해 활동을 돌아보고 올해 추진할 사업들을 세우는 기간입니다. 외부 행사와 일정이 최소화되는 시간이지요. 하지만 지난해 박근혜 탄핵 촛불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올해 연초부터 참여연대는 숨 가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참여연대 활동의 키워드는 #이명박 #이재용 #공수처 #평창평화올림픽 #채용비리 #주거급여 #파리바게뜨 #최저임금 #공익활동가학교 #개헌 #총회준비 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속히 수사하라

다스

또 한 분의 전직 대통령의 불법, 비리행위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진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다스 실소유주 문제가 핵심 문제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12월 이명박 등을 고발한 참여연대는 이명박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지난 11년간 검찰과 특검의 부실수사 문제를 지적하는 이슈리포트를 최근 발표했습니다.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제기되는 각종 비리와 불법 의혹들이 제대로 규명되도록 촉구할 것입니다. 

 

반면, 최근 검찰은 UAE와 비밀군사협정을 체결한 이명박 등의 중대한 헌법 위반행위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한다고 참여연대에 통보해왔습니다. 지난달 참여연대가 시민 고발인 1,382명과 함께 이 전 대통령과 김태영 전 국방장관을 고발했는데, 검찰이 단 한 차례의 고발인 조사도 없이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곧바로 서울고등법원에 공소 제기 결정을 구하는 재정신청을 했습니다. 

 

최저임금보다 중소상공인을 괴롭히는 것

올해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가 인상되면서, 기업과 보수언론들이 영세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세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문제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함께한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오히려 높은 수준의 카드수수료, 가맹점·대리점 본사의 높은 로열티와 물품 폭리, 폭등하는 상가임대료와 건물주의 횡포 등이 부담스럽고 어려운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중소상공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재벌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근절,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수익배분구조 개선, 임대료 폭등 방지 등을 위한 정책과 입법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활동할 것입니다. 

 

법관 사찰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고발하다

고발

앞서 1월 참여연대는 시민 1,080명과 함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법관 사찰’ 문건 책임자들을 직권남용죄 위반으로 고발한 바 있습니다. ‘법관 사찰’ 문건의 존재는 사법행정권을 가진 법원행정처가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으로, 참여연대는 이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거취약계층 보호 못 하는 주거급여 실태와 개선 방향 제시

주거급여

지난해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현행 주거급여로는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참여연대는 주거급여의 현황과 개선방안을 담은 이슈리포트를 발표하여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수급가구의 주거급여가 월평균 임차료(2016년 기준 20.2만 원)에 훨씬 못 미치고, 월평균 급여액이 5만 원 이하인 가구가 전체의 13.8%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주거비 부담이 가장 높은 1급지(서울)의 경우, 임차가구의 33%가 최저주거면적에 미달할 정도로 주거취약계층이 마주한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수준의 주거급여가 되기 위해서는 기준임대료 상향과 법률에 최소한의 급여 보장 수준 반영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시했습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한 활동은 올해 더 활발히 이어갑니다. 

 

이재용 집행유예 판결, 이건희의 수많은 차명계좌,

재벌 봐주기 안 된다

좌담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사법부의 낯 뜨거운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대부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하여 부도덕한 정경유착 사건이라는 본질을 외면했습니다.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과 일부 차이가 있지만, 최순실 재판부의 경우도 신동빈 롯데 회장 등에 대한 판결에 비해, 삼성에 대해서는 뇌물죄 적용을 최소화하여 마치 뇌물공여가 권력자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재용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판결의 문제점을 짚는 긴급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참여연대 웹사이트에 이재용 1심과 2심 판결문을 게재하여 시민들이 직접 판결문을 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건희 차명계좌는 과거 조준웅 삼성 특검과 금융감독원이 발견한 것과 별개로 72명의 삼성 임원 명의로 된 260개의 계좌가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캐면 캘수록 나오는 차명계좌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불어 참여연대는 그동안 과세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국세청에 대한 조사와 조속한 과세 추진, 이건희 회장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을 당국에 촉구하고 있습니다. 

 

평창 이후에도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 중단 촉구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다행히 한반도에 조성되었던 군사적 긴장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의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한국 정부의 북미 대화 촉진 의지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이후 다시 조성될 수 있는 군사적 대결 분위기를 모두들 우려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한미군사훈련과 북의 핵미사일 실험 등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전면 중단할 것과 북미간의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는 입장을 여러 시민평화단체들에게 제안해서 발표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군사행동 중단과 평화에 대한 호소를 미 행정부와 의회에 전달하고 국제 평화단체와의 공동행동에도 나설 것입니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해결 과정에서의 연대와 공조의 경험 

협약

지난 연말 논란이 되었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가 1월 11일 두 비정규직노동조합과 파리바게뜨 본사 간의 합의로 타결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연대 등이 참여해 출범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가 활동한 지 2개월 여만입니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안은 아니었지만, 본사의 책임을 담보하는 다양한 방식의 고용이 논의되었고 합의에 이르기까지 이해당사자와 여러 주체의 공조와 연대가 발휘되었습니다. 참여연대도 그 합의 도출까지의 과정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지난 연말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안이 실업급여 지급수준 인상(평균임금의 50%→60%)과 지급기간 연장(30일) 등을 담고 있는 것은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로 조정하는 것은 70% 가까운 수급자가 하한액 적용을 받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우려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에 대한 외압, 공수처가 필요한 이유

하나은행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공수처 논의는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 설치 논의를 위해 지난 연말 국회에서 통과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2월 23일부터 한 달간 법무부, 검찰청, 법원행정처 등 5개 기관 업무보고를 받겠다는 정도의 여야 합의를 이룬 상황입니다.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에 민주당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모든 수단을 다해 사개특위를 가동시켜 국회가 공수처 설치법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서명캠페인에 돌입했습니다.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최근 안미현 춘천지검 검사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과정에서의 외압을 폭로했습니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과 염동열 의원, 당시 고검장 이름 등이 등장하는 증거목록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 사건에는 당시 최종원 춘천지검장과 김수남 검찰총장도 등장합니다. 그동안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부실수사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사건입니다.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결탁으로 수사를 무마하려 한 것은 공수처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염동열, 권성동 의원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외압 여부를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강원랜드 부정채용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던 참여연대는 권성동,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부정 청탁과 총 22건의 채용비리 정황이 확인된 시중은행들에 대한 항의행동에 나섰습니다. 청년참여연대 등 여러 청년단체들은 채용비리 수사 건이 가장 많았던 KEB하나은행 앞에서 채용비리를 강력히 규탄하고, 부정 입사자 합격 취소와 피해자 구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한 합당한 처벌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보편적 아동수당 도입 촉구

결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소득 상위 10% 가구의 아동을 배제하는 아동수당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넘어서지 못하고 후퇴한 것입니다. 납세자와 수혜자를 분리하는 선별적 복지제도는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상위 10% 제외라는 것이 불러올 행정력 낭비와 사회통합 저해요소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관련하여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보육인권단체들은 정부와 국회가 지난 대선에서 약속한 대로 보편적 아동수당을 제도화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왜곡된 아동수당 도입에 책임이 있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알리는 활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1기 수료, 아카데미느티나무 봄학기 개강

수료

“평생 잊지 못할 경험”,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지 알려준 소중한 시간”, “함께하는 사람들과 앞서간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 벌써 21기를 맞이한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참가 청년들의 평가입니다. 27명의 청년들이 6주간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배웠습니다. 권력을 대항하는 운동에 필요한 도구들을 익히고, 젠더, 환경, 노동, 청년주거 관련한 직접행동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겨우내 준비한 아카데미느티나무 봄 학기가 3월부터 시작됩니다. 제주 4.3 70년을 특별기획으로 한 봄 강좌는 정치사회적 주제,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삶 등 아카데미느티나무만의 색깔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봄 강좌는 엄기호 선생님의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3/5), 주진형 선생님의 <알아두면 삶이 바뀌는 경제지식>(3/6)으로 시작합니다. 수강신청이 이미 마감된 강좌도 있다고 하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는 3월 3일, 참여연대 제24차 정기총회 개최

총회

참여연대 총회준비위원회(이하 총준위) 활동이 집중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운영위원회 각 분과에서 모신 회원 네 분을 비롯해 총 39명으로 구성된 총준위는 산하에 안건검토소위(총 5회 회의)와 임원추천소위(총 6차회의)를 두어 총회에 제출할 안건을 마련하였습니다. 안건검토소위에서는 2017년 활동평가와 2018년 사업계획을 검토하였고, 임원추천소위에는 집행위원과 운영위원, 사무처장 등 임기만료에 따른 연임과 추천 인사들을 검토했습니다. 2월 12일 3차 총준위에서는 운영위원회(2/24)와 총회(3/3)에 올릴 임원 추천안과 사업보고, 사업계획안을 확정지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졌던 헌법에 대한 연구와 토론은, 참여연대 개헌시안으로 만들어져 조만간 확정됩니다. 참여연대 개헌시안 준비과정과 내용은 특집에서 별도로 다룹니다. 

수, 2018/02/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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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봄날 아지랑이처럼 헌법 개정 논의가 슬슬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호 특집은 ‘개헌’에 대해 알아봅니다. 대통령도, 국회도 저마다의 개헌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도 당연히 개헌에 관심이 큽니다. 흔히들 헌법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떤 개헌을 원할까요? 특집 필자들은 기본권 강화, 직접민주주의 제도화, 권력구조개편 등을 새로운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민의 관점에서 만든 우리 참여연대의 헌법개정안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3월호 <통인>에서는 황미정 참여사회 편집위원이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 이어 일제강점기를 다룬 만화 『35년』을 내놓은 박시백 작가를 만났습니다. ‘친일청산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은 주범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의 반성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며, 뼈저린 반성 없이 용서는 헛일이라는 그의 역사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호모아줌마데스의 <만남>은 신혼의 박열음 회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한때 카페 겸 공방 ‘마음은 콩밭’을 운영했고, 카페통인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느티나무 소모임 활동을 해온 활기 넘치는 열심 회원입니다. 또 그는 ‘사람의 손과 오후의 햇살’이 공모하여 만들어낸 이런저런 색깔의 옷감으로, ‘쓸모없음으로 해서 쓸모가 있는’ 소품을 만드는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참, 그의 어머님도 우리 회원이고 예전에 <만남> 인터뷰에 나온 적도 있답니다. 

 

오는 3월 3일(토)에 참여연대 정기총회가 열립니다. 많이들 참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근용, 안진걸 사무처장이 박정은 신임 사무처장과 임무교대합니다. 두 분 사무처장의 그동안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박정은 사무처장의 큰 활약을 기대합니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저는 편집위원장을 그만둡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법인 스님이 새로 편집위원장 직을 맡으십니다. 인문적 소양이 깊고, 문장가이신 법인 스님께서 『참여사회』를 더 훌륭하게 만드실 것으로 믿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편집위원 분들, 박정진 표지 디자이너, <만남>의 박현아 인터뷰어, 칼럼 필자들, 이선희 팀장, 이한나 간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 여러분 덕택에 『참여사회』의 지면이 유익하고 풍성했고, 저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편집위원회를 꾸려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새봄에 건승하십시오.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김균

수, 2018/02/2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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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표지

 

특집1_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왜 지금 
헌법을 바꿔야 하나?

 

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 상임운영위원

 

 

헌법 개정 얘기를 하면 흔히 돌아오는 질문들이 있다. “헌법 중요한 거 누가 모르나? 하지만 바꿀 수 있기는 한가?”, “지금 당장 필요한 민생개혁은 뒷전으로 미루고 정치권의 이권다툼으로 정쟁만 격화되는 거 아닌가?” 대개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걱정이다. 헌법 개정을 정치권에만 맡겨둘 경우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나서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16년 겨울, 광장에서 우리 모두가 확인한 것도 바로 그것 아닌가? 

 

촛불광장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대한민국 헌법으로 

모든 개헌이 혁명은 아니지만 시민의 촛불항쟁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명실상부한 시민혁명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개헌이 수반돼야 한다. 4.19혁명 이후에도, 6월 항쟁 이후에도 헌법을 개정하여 국민이 요구한 권리와 변화한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국민이 뜻이 반영된 헌법 개정은 오직 이 두 차례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주권에 대한 자각과 헌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낡은 헌법을 손보는 일도 몇몇 정당과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조건이 성숙한 셈이다. 낡은 헌법을 바꿔야 한다면, 촛불광장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은 지금, 국민의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바로 지금이 헌법 개정의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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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꾸는 개헌

헌법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규정함으로써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헌법이란 결국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내 삶을 규정하는 구조들을 제도적으로 표현한 문서다. 헌법에서 ‘권리’로 인정되면, 국가는 그 추상적인 권리를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추상적으로 헌법에 담는 것과 사회보장권과 국가의 책무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권리담지자인 국민들이 의무 담지자(擔持者)인 국가에 구체적으로 청구할 권리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아동과 노인,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헌법조문을 유지하는 것과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헌법에 명문화하는 것의 차이도 분명하다.  

 

이번 개헌은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갖는 국민의 권리를 구체화하고 대폭 확대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보장받아야 할 기본 인권과 성평등을 강화하고 구체화하여 조문화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특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각종 차별을 금지하고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누구도 부당하게 배제되고 추락하지 않도록 각종 헌법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시대적 과제인 생태위기와 자연재해, 미세먼지와 먹거리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이미 현실이 된 정보사회와 탈산업사회에 대비하는 것도 헌법이 해결할 과제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할 개헌  

87년에 개정되어 30년이 흐른 현행 헌법에는 그동안 극심해져 온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저출산 고령화를 해소할 적극적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 현행 헌법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으니 헌법 탓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문제해결에 관심이 없는 한가한 소리다. 헌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헌법을 개정하여 재벌대기업의 독점과 전횡을 막을 적극적 수단, 부동산 투기를 막을 적극적 수단,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육성할 근거, 넘쳐나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을 해결할 대책, 그리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구적 수단을 헌정질서의 일부로 확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과 사회서비스에 관한 권리,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를 보장받을 권리, 건강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와 학습할 권리, 문화를 향유할 권리, 임신·출산·보육에 관한 권리와 국가의 지원 의무 등을 헌법에 구체화하여 사회적 기본권과 안전망이 온전히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낡은 정치를 바꾸는 개헌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도 개헌은 필수다. 촛불집회 이후에도 국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적폐청산도, 사회대개혁도 국회 앞에만 가면 멈춰 선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민의에 따르지 않고도 그럭저럭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과두제 정치구조,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는 국회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여 입법 활동과 행정부 견제에 전념하지 않을 때, 국민이 심판할 수단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만이 문제는 아니다. 국민이 제대로 견제하고 개입할 수 없는 정부와 사법부를 그대로 두고서는 1,700만 명이나 참여한 촛불집회로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도 쉽사리 다시 후퇴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국정농단 사태도 87년 헌법의 미비점 때문에 생겨났다. 87년 헌법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를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은 큰 성과였지만, 대통령을 ‘국가원수’니, ‘헌법의 수호자’니 하며 제왕처럼 떠받드는 국부독재 시절의 독소조항이 적지 않다.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사법부를 비롯한 다른 헌법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도 지나치게 크다. 사법부나 검찰, 국정원과 군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의 개입과 장악이 손쉬운 반면, 국민이 통제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이참에 낡은 정치구조, 오래된 특권적 관료통치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촛불의 정신은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 

촛불정신을 온전히 제도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의기구가 작동하지 않을 때 주권자가 직접 나설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회가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지 않을 때 국민이 일정 수의 서명으로 직접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발안제, 국민이 법안을 발의해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을 때 국민에게 직접 의견을 구하는 국민투표제, 나아가 부적격 정치인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국민소환제의 도입이야말로, 촛불광장의 정신을 제도화하는 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확대하고 자치권과 저항권을 강화하는 것은 촛불시민들이 당당히 요구해야 할 핵심 개헌과제라 할 수 있다. 

 

탄핵연합은 개헌연합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당장 개헌이 필요한 이유를 열거해 봤다. 이 모든 이유와 당위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굳이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개헌에 목매야 하는가’가 의심된다면 이걸 생각해보자. 

지난해 우리가 사상 유래 없이 평화롭고 압도적인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시민의 의지에 놀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일시적인 연합정치가 작동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연합이 늘 성공적으로 형성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고 압도적 시민행동이 매번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낡은 제도와 정치구조를 그대로 두고 주권자와 주민들의 ‘슬기로운’ 투표행위를 통해서 극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이 앞으로도 압도적인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리라 단정하여 다양한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는 정치구조와 조화롭게 배분된 권력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탄핵운동에 동의했던 70~80%의 국민들과 합리적 보수정치세력들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헌법 개정과 정치 개혁을 위한 연합이 재건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① 

 


졸고, “촛불혁명 연합을 개헌과 선거개혁을 위한 연합으로”, 창비주간논평. 2018. 1. 18

수, 2018/02/2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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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_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개헌

글.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주권 실현을 위한 발명품, 직접민주주의 

국정농단과 촛불집회 이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직접민주주의를 의미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집회민주주의였다. 이후 집회민주주의는 인구 규모가 작은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것이었고, 인구가 늘어나면 장소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1793년의 프랑스 혁명헌법에 의해 고전적인 집회민주주의와는 다른 표결민주주의로서 직접민주주의가 최초로 도입되었다. 직접민주주의는 이 헌법을 실질적으로 기초한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가 루소의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꽃피지 못하고 스위스에서 일상적인 정치질서로 활성화되었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 곳에 모일 필요가 없이 투표소에서 특정한 안건을 찬반투표로 결정하는 표결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장소적 한계를 극복하여 국가 규모에 상관없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에서 1830년대 자유주의적 갱생운동과 1860년대 민주화운동에 의해서 도입되었다. 먼저 칸톤 차원에서 도입되고 연방과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었다. 대의제도가 국민다수를 대표하지 못하고 금융자본과 철도자본에 포획되어 농민과 노동자, 자영업자들의 삶은 비참하였다. 대표자들이 국민다수를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에 국민이 나서서 스스로를 대표하려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1890년대 이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미국에서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를 배우려는 열풍이 일어나 스위스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책자가 성경보다 많이 팔렸다고 한다. 미국은 1900년대 초 여러 주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

 

21세기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 확대의 역사

우리나라도 국회가 국민다수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치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38개 국가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다. 20세기 민주주의 역사가 선거권확대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 확대의 역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직접민주주의제도는 전국 단위에서 실시되는 것으로는 헌법상 규정된 국민투표제도가 있다. 1954년 임의적 국민투표제도가 헌법에 도입된 적이 있었으나 유신헌법에서 폐지되었다. 지방차원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주민투표제도와 주민소환제도를 도입했지만 대상과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제도는 국민투표와 국민발안, 국민소환의 세 가지가 있다. 국민투표(Referendum)는 국회가 국민의사에 반하는 법률안이나 안건을 통과시킨 경우 그 효력을 거부(Veto)하기 위한 절차다. 이런 점에서 국민투표는 국회에 대한 비상제동장치에 해당한다. 국민투표는 임의적 국민투표와 필요적 국민투표가 있다. 임의적 국민투표는 국회가 법률을 가결하거나 결정을 한 날로부터 일정 기간 내에 일정 수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를 청구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찬반을 결정한다. 국회의 법률안 등이 국민투표에서 거부되면 그 효력을 상실한다. 필요적 국민투표는 일정한 사안에 대해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헌법이나 법률에서 직접 규정한 경우를 의미한다. 예컨대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에 해당한다. 

 

국민발안은 국회에 대한 비상가동장치

국민발안(Initiative)은 국민의사에 반하여 법률안 등을 의결하지 않는 경우에 일정 수의 국민이 서명을 받아 법률안 등을 발의하고 국민이 찬반의 표결로 의결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이 점에서 국민발안은 국회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 국민이 직접 법률안 등을 발의하여 결정하는 ‘비상가동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국민발안은 주로 법률안에 대해 이루어지므로 ‘국민입법’이라고도 한다. 예컨대 스위스에서 건국 이후 60여 년간 일당이 국회에서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여 정치를 좌우하였다.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에 국민들이 서명을 받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헌법개정안을 발안하여 국민표결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하여 1848년 건국 이후 70년간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정당이 30%대의 득표율에 머물며 일당지배체제가 끝나고 다당제체제가 정착하게 되었다.

 

국민발안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발안의 서명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설정해서는 안 되며, 국민발안에 대해서는 국민이 직접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스위스에서는 국회가 의견을 제시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결정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직접 찬반투표로 한다. 

 

우리나라는 유신헌법 이전에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 명이 헌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하여 헌법개정국민발안을 인정하였으나 국회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국민투표에 회부하도록 요건을 설정하였다. 이런 요건 하에서 국민발안은 국회에 대한 비상가동장치로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국회가 헌법개정안을 발의하지 않는 경우 국민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 데 재적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요한다면 그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발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투표권자 과반수의 투표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러한 최소투표율의 설정은 오히려 투표거부운동을 유발하여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에 스위스에서는 최소투표율을 설정하지 않고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하고 있다.

  

개헌으로 국민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길 열어야 

상향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레프렌덤(referendum)은 권력자가 국민투표를 발의하여 하향적으로 안건을 결정하는 플레비시트(plebiscite)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레프렌덤이 국민주권을 능동적으로 실질화하는 제도인 데 비해 플레비시트는 포퓰리즘에 의존하여 국민주권을 위협하고 국민을 수동적인 통치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따라서 현행 헌법 제72조가 규정하는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의 헌법개정 제안권도 마찬가지다.

 

국민소환은 국민파면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공직자의 임기 중이라도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소환을 발의하여 투표로 그 파면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무원이 주된 대상이 된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도 거론되고 있으나 오스트리아 헌법 제60조 6항에 준하여 국회에서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소환을 발의하여 국민표결로 결정하는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현행의 사법적 탄핵제도 보다 바람직하다고 본다. 

 

헌법개정국민발안을 비롯한 직접민주주의는 국민주권과 국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개헌과제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회가 작동하지 못하면 주권자로서 국민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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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2/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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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_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민주적인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글.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이번 개헌에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권력구조 문제이다. 자유한국당은 ‘권력구조 개편 없는 개헌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재의 권력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대통령과 권력을 나누어 갖는 이원집정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이런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선거제도

‘제왕적 대통령’ 문제의 원인은 선거제도

한국의 대통령제가 자칫 ‘제왕적대통령’으로 흐를 염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상황이 그랬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대통령제라는 정부형태 자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거제도가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국회만 제대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회구성은 표심을 왜곡하는 국회구성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37.5%의 정당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의석은 300석 중 153석을 차지하여 단독과반수를 확보했다. 그래서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했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42.8%의 정당지지를 받았지만, 국회의석은 152석으로 단독과반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당시에 정당득표율로 보면 야당들이 받은 표가 더 많았다. 표심대로 하면 ‘여소야대’가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선거결과는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 자유선진당까지 합당하면서 거대여당이 탄생했다. 그 결과가 테러방지법 밀어붙이기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국회에서 단독 과반수를 차지하면 견제와 감시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국회 단독과반수를 만든 게 아니라는 데 있다. 2008년 한나라당과 2012년 새누리당의 단독과반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만들어준 결과였다. 국회의원 대부분을 지역구에서 1등 해야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로 뽑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1등을 많이 할 수 있는 거대정당이 받은 표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표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에 비례하여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를 말한다. 

 

일본의 사례가 반면교사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반드시 권력분산적인 제도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과 일본의 총리는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 지금 일본의 아베 총리만 하더라도 대통령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히려 의원내각제에서는 임기제한 없이 장기집권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의 집중현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특히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가 아니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의 사례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은 대한민국처럼, 지역구 소선거구제로 다수의 국회의원을 뽑고 일정 의석의 비례대표 의원을 덧붙이는 방식인 ‘병립형 방식’을 택하고 있다. 

 

2014년 일본 중의원 선거의 경우 475석 중 295석이 지역구이고, 180석이 비례대표였다. 대한민국의 253(지역구) : 47(비례대표)보다 비례대표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일본의 선거결과를 보면,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2014년 중의원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소속된 연립여당은 불과 46.82%의 득표를 했을 뿐인데, 전체 의석의 68% 이상을 차지했다. 그 이유는 지역구 선거에서 1등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베 총리가 독단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가능해졌다.  

 

표

이처럼 의원내각제 자체가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정당이 장기적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면, 대통령제보다 더 위험한 권력을 낳을 수도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의 원리상, 입법부와 행정부가 통째로 특정 정당에 의해 장악되고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보다 임기도 없는 ‘제왕적 총리’는 더 위험할 수 있다. 

 

개헌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설계해야 

물론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을 집중시키고 있다. 국회구성이 제대로 된다면 대통령의 인사권, 예산편성권 등에 대해 국회에 의한 통제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헌법상 주어진 권한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국무총리가 제대로 된 ‘책임총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권력구조에는 정부형태의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포괄적으로 보면 사법개혁, 지방분권, 직접민주제 도입도 권력구조를 민주화하는 데 필요한 일들이다. 지금처럼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고, 헌법재판관 3명까지 지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것도 아닌 대법원장이 헌법기관 구성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바꿔야 한다. 또한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고 있지만, 배심원들의 평결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헌법에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개헌을 한다면 국민참여재판의 근거를 헌법에 명시할 필요도 있다.

 

지방분권은 대통령의 권한도 분산시키고, 국회의 권한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물론 지방분권이 되려면 그 전제로 지역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지방선거제도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하고, 주민소환, 주민발의, 주민투표 같은 제도도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것을 전제로 한다면, 지방분권은 과도한 중앙집권국가에서 벗어나고, 각 지역의 자율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이다. 이번 개헌은 이런 주제들을 모두 아우루는 포괄적인 개헌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정부형태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일정한 합의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분산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권 안팎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되, 합의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또한 정부형태의 문제가 대통령제냐 이원집정부제냐 식으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절충형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절충점을 찾아 나가는 것도 대한민국의 민주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될 것이다. 

수, 2018/02/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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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_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기본권 개헌의
의미와 내용

 

글.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국회개헌특위 기본권분과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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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 개헌의 의미

1987년 개헌 이후 30년 만에 이루어지는 10차 개헌은 분권과 협치에 기반한 권력구조 개혁과 더불어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반영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자유와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현실 속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본권 조항의 틀과 내용도 헌법현실에 맞게 개정이 되어야 한다. 

 

헌법이 한 국가의 기본법칙이자 최고규범이긴 하나, 그 자체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헌법을 개정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이해와 이 현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에는 변화된 세계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행복을 유지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실현 방안을 담아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개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과 같다. 

표1

 

기본권 개헌, 실질적 평등 실현으로 나아가야 

기본권 개헌의 분야별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본권 장의 명칭을 현행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기본권과 의무’로 개정하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장하고,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부각해야 한다. 국가에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고, 국가라도 적법한 절차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권리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강화하기 위해 ‘생명권’을 신설해야 한다. 생명권 신설의 의미는 사형제도 폐지를 의미한다. 또한 국민은 ‘신체와 정신의 온전성’을 보호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이를 위해 고문, 강제노역 및 인신매매 금지도 규정한다. 안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위험에서 ‘안전할 권리’로 격상하여 국민이 자연재해나 전쟁 · 사고 등 위험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등권을 현실에 맞게 실현하기 위해 현행 11조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 금지’ 조항을 ‘성별, 인종, 출생, 나이, 언어, 사회적 신분, 생활방식, 종교적·철학적·정치적 신념 또는 신체적 · 정신적 장애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실질적 평등의 실현을 촉진하고 각종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국가에 차별금지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 남녀 간 평등 보장을 위하여 성평등 조항을 신설하고, 성평등 보장 영역을 ‘고용, 노동, 복지, 재정’ 등으로 명시한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아동의 권리, 노인의 권리를 신설하고, 국가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persons with disabilities)’의 실질적 평등을 위해 노력하도록 책무를 부과해야 한다. 

 

또한 자유권적 기본권의 확대를 위하여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 신설하고, 인권보장의 국제화 · 세계화 추세를 고려하여 ‘망명권’ 신설하고, 양심의 자유와 구분하여 ‘사상의 자유’를 신설한다. 언론 · 출판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로 확대·변경하고, 집회 · 결사의 자유를 별도의 조항으로 규정한다. 정보화 시대에 발맞추어 ‘정보 기본권’을 신설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가가 정보 기본권 신장과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도록 책무를 부과해야 한다. 

 

기초생활을 넘어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향유하는 사회 

이번 개헌으로 제시할 사회상은 모든 구성원이 기초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위험으로부터 해방되어 존엄과 가치를 지키면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향유하는 사회이다. 양극화, 취약계층의 보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권을 확대하고 강화할 필요 있다. 사회권은 단지 정치적 구호나 입법방침이 아닌 헌법의 명문에 의하여 규정된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가 되어야 한다. 

 

사법절차적 권리의 측면에서 아직 남아있는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을 위한 사법을 실현하기 위해 사법절차적 권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적법절차의 원리를 재판 이후 단계뿐 아니라 재판 이전 수사절차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명시하고, 적법절차 원리를 기본권 제한에 관한 원칙(현행 제37조)에도 규정한다. 또한 국민참여재판을 헌법적 차원에서 보장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번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국민주권을 실질화하고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접민주제를 확대 도입하는 것이다. 현행 72조는 대통령의 발의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국민투표 발의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고, 헌법개정 국민투표 역시 대통령과 국회의 발의, 국회의 의결에 부수되는 것으로 실질적 주권 행사는 매우 제한적이다. 직접민주제 강화를 위해 정치적 기본권으로 일반 조항에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을 명시하고, 각 정치절서의 장에 ▲국민이 법률안을 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권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폐지할 수 있는 국민투표권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권 ▲국민이 헌법을 개정을 청구할 수 있는 헌법개정국민발안권을 도입해야 하며, 직접민주제가 장식물이 되지 않도록 요건을 현실화해야 한다. 

 

헌법의 주인은 국민, 개헌의 주체는 바로 나

헌법의 주인은 국민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국민 개개인을 말한다. 국민은 곧 ‘나’이다. 헌법은 ‘나’와 내가 위임한 ‘국가권력’과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헌법이 나와는 별 관계없는 것으로 여겨진 까닭은 헌법의 주인인 ‘내’가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적인 면에서만 보면 개헌 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개헌안을 만드는 것도 국회나 대통령이고, 이에 대한 의결도 국회가 한다. 국민은 그들이 만든 개헌안에 도장 찍는 고무인에 불과했다. 국민은 헌법으로부터 소외되어 왔고, 헌법은 국민의 삶과는 무관한 타자화(他者化)된 문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와 대통령 위에 헌법이 있고 헌법 위에 국민이 있다. 국민이 참여하여 개헌이 이뤄질 때 그 헌법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우리의 것,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된다. 그래야 비로소 헌법과 현실이 별개가 아니라 나와 우리 삶을 규정하는 살아있는 최고 규범, ‘우리의 헌법’이 될 것이다. 

수, 2018/02/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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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5_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참여민주주의와 인권 실현을 위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 시안

 

정리. 이재근 정책기획실장 

 

참여연대는 2016년부터 헌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참여연대 정책위원회 산하 ‘참여연대 분권·자치·기본권 연구모임’을 구성했습니다. 총 34차례 연구모임을 통해 마련한 참여연대 헌법개정시안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특집5-이미지추가

 

개헌

개헌1

개헌2개헌3

수, 2018/02/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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