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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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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익명 (미확인) | 월, 2018/10/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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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28일 더불어민주당 이규희(왼쪽 첫번째) 의원과 준비위원회 관계자 등이 현장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8.10.29. (사진=뉴시스 독자 제공) [email protected]

【천안·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천안시의 발굴 동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는 지난 28일 오전 매장지로 추정되는 직산 관아 일원에서 위령제를 진행했다.

이날 위령제 앞서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규희 국회의원(천안갑)과 육종영 천안시의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정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진행하며 유해 발굴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길 준비위원회장은 29일 “11월 초 아산지역에서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충북대 발굴단의 현장답사 진행에 이어 천안시의회에 가칭 ‘천안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준비위원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천안시 직산읍 인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여 구에 달하는 매장 추정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지역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신청된 사건은 없고, 부역 혐의 희생 사건으로 신청된 사건 7건이 있다.

이 중 당시 직산면사무소(직산관아)와 관련해 지서장의 지시로 “200여 명의 부역 혐의자들을 금광구덩이에 죽이고 묻고 했다는 참고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 준비위의 설명이다.

▲ 【천안=뉴시스】이종익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가 23일 오전 천안시청 브리핑실에서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현황 전수조사와 발굴조사 시행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3. [email protected]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조례가 제정될 경우 보수와 진보 측의 찬반 의견 대립으로 난항도 우려된다.

경기 고양시의 경우 금정굴 사건과 관련해 전국에서 처음 조례안이 만들어져 2011년부터 6차례나 시의회에서 발의됐지만, 보수 단체와 정당 반발로 맞서다가 7년이 지난 올 9월 제정됐다.

육종영 시의원은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해 평화와 인권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만간 관련자료를 정리해 조례안 초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면 조례 절차에 따라 후속조치를 이어가겠다. 하지만 현재 일부 단체에서 반대 여론이 감지되고 있어 민감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천안과 인접한 아산지역에서는 지난 3월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어린이 80여 구를 포함해 208명의 유해가 수습됐다.

[email protected]

<2018-10-29> 뉴시스

☞기사원문: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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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민주연구원 국립현충원 이장 추진
“친일인사와 함께 모실 수 없다” 반대 거세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열사 7위선열의 사당인 의열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제공)2017.3.25/뉴스1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복무하며 독립투사 소탕에 앞장섰던 김창룡(1902~1956)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다. 바로 맞은편 묘역에는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모친 곽낙원 여사(1858~1939)와 장남 김인(1917~1945)이 잠들어 있다. 친일논란 대상인데다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는 인물과 독립투사의 유족이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김구 선생의 묘소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한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효창공원에 안장된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8월15일 광복절에 효창공원을 직접 찾아 참배해 임정 법통을 강조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는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된 인물 중에는 서울에 7명, 대전에 4명이 묻혔다. 이 때문에 친일인사의 이장을 위해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여당이 임시정부 주석을 예우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건 일리가 있다”면서도 “김창룡을 비롯해 친일인사들이 국립현충원에 남아있는데 그곳에 백범을 모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박 실장은 “역사적폐 청산 차원에서도 친일독재를 반대한 민족인사를 반민족인사와 함께 모신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이장 반대의사를 밝혔다.

김구 선생은 생전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효창공원 독립운동 동지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겼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 외에도 항일투쟁 중 순국한 윤봉길(1908~1932), 이봉창(1901~1932), 백정기(1896~1934) 3의사의 묘소와 유해를 찾지못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가묘도 설치됐다. 이동녕(1869~1940), 조성환(1875~1948), 차이석(1881~1945)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의 묘소도 있다. 이는 모두 김구 선생이 해방 후 직접 조성해 의미가 크다.

이장보다는 현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게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합당한 예우라는 지적도 있다. 친일인사가 섞여있는 현충원보다 독립투사들만으로 조성된 효창공원이 역사적 성지로서 더욱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출입이 제한되고 일부 부지가 훼손되는 등 굴곡진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효창공원은 국립묘지가 아닌 사적과 근린공원의 법적 지위로 용산구가 관리 중이다.

친일문제 전문가 정운현씨는 “효창공원은 역사성이 있고 백범기념관도 함께 운영 중이라는 가치도 있다. 백범도 땅속에서 이장을 원치않을 것”이라며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예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nevermind@

<2018-03-01> 뉴스1

☞기사원문: “백범도 친일파와 묻히기 원치 않아”…효창공원 묘소이장 논란

토, 2018/03/0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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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오는 8월 29일은 한일합병조약문이 발표된 경술국치일입니다.

이날, 서울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개관합니다.

그동안 시민들의 성금으로 개관이 추진됐는데, 식민지 시대 민중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개관에 앞서서 이지수 기자가 미리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빛바랜 종이에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이 한 자 한 자 적혀 있습니다.

“부모님께오서 양 내외가 걱정없이 사시고 아들도 잘 지내며…”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외준 씨가 전쟁터에서 부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편지 옆에는 전쟁터에 끌려가 시베리아에 억류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규철 씨의 수기가 전시돼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전쟁터로 가야만 하나. 일본을 위해서 죽고싶지 않다…”

벽면 한쪽에는 순사 임명장, 조선총독부 관료 임명장 등 친일파들의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모두 식민지 시기를 겪었던 민중과 후손들이 수십 년 동안 간직했다가 기증한 물건들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나 항일운동가들의 유족들이 활동하면서 모은 자료는 물론, 일본 시민들이 보내온 것도 적지 않습니다.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대표]
“내가 활동을 하면서 나도 나이가 먹어가잖아요. (기록들이) 재탄생을 하게 돼서 나는 정말 30년의 활동이 허무하지 않았고…”

전시된 물건만 4백여 점, 서고에 보관된 기록물까지 합하면 7만 점 가까이 됩니다.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
“식민지배의 실상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가 거기에는 일상적인 민중의 삶도 있고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난 2007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기 시작해 11년 만에 시민 5천여 명의 기증품과 기금 35억 원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박물관은 오는 29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MBC뉴스 이지수입니다.

<2018-08-14> MBC

☞기사원문: ‘경술국치’ 기록한다..식민지 역사박물관 개관

※관련기사

☞ 경향신문: 일제강점기 역사박물관, 시민 모금으로 ‘첫 개관’

☞ KBS: “치욕도 역사” 시민이 세운 ‘식민지 박물관’ 첫 공개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이끈 이이화 건립위원장 인터뷰 이 위원장
“식민지 시대 아픈 역사 고스란히 알릴 것…청소년 위한 토론장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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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이이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촬영 성서호]

 

(파주=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3·1 운동 때 발표한 독립선언서의 원본을 확보했습니다.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이들의 편지나 일기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이이화(82)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은 광복절을 맞아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물관을 소개하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사 대중화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 사학자인 이 위원장은 처음 건립위원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고령을 이유로 자리를 고사했지만, 오는 29일 박물관의 정식 개관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공적 자금의 도움 없이 시민들의 모금과 자료 기증으로 마련된 박물관은 특히, 여러 박물관 중 가장 많은 기증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돈을 주고 사 와도 자료를 못 구하는 마당에 국가 예산도 안 받고 어떻게 꾸릴지 걱정이 컸다”며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호응을 받았고, 여러 곳에서 자료를 희사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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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의 칙유 [민족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그는 “전시 자료 7만 점 정도를 모았는데 국내외 통틀어 7개 정도밖에 없다는 3·1 운동 독립선언서 원본도 있다”며 “강제 징용된 일본군에서 몸에 두르던 ‘무운장구'(武運長久)라고 적힌 띠는 물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의 자료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 “한국의 통치권을 예전부터 친하고 믿고 의지하고 우러르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께 양여한다”는 내용의 순종 칙유(勅諭·임금의 말씀을 적은 포고문)와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포고문 등 국치의 아픔을 담은 사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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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민족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나라를 팔고 귀족이 된 조선 고위층들이 1910년 11월 부부동반으로 일본을 관광하던 당시의 흑백사진 등을 담은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이나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을 감시·탄압했던 경찰들의 자료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 민초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1940년 육군지원병에 끌려갔다가 전쟁터에서 소식이 끊겼던 임용택 씨의 사진부터 1945년 징집된 뒤 관동군 자폭특수대에서 훈련받은 이규철 씨의 육필일기 등은 당시 민중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강제 동원됐던 피해자들의 유족이 직접 기증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의의를 해방 후 7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디딤돌’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해방 이후 경제 발전상에만 집중했지,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이번에 개관할 박물관은 식민지 시절의 아픔을 똑바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지향점은 과거를 반성하고, 진실을 밝히고 화해하는 것”이라며 “일본과 친일파들이 반성하도록 하고 이후 화해하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초대 박물관장 제안을 손사래 치며 거부한 그는 앞으로 박물관이 ‘살아있는’ 곳이 되길 바랐다.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는 학습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해방이라고 식민지의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닌 만큼 자꾸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는 국민이,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알게 해야 한다”며 “기본 성격은 박물관이지만, 참신한 방법으로 식민지 역사를 알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경술국치 108주년을 맞은 이달 29일 문을 연다. 2007년 준비위원회 발족 이후 약 11년 만으로, 공적 자금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일반시민 성금과 자료 기증으로 마련됐다.

[email protected]

<2018-08-14>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의 힘으로 세운 식민지역사박물관…살아있는 역사 될 것”

수, 2018/08/1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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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寒露寄友人

 

霜降丹楓落(상강단풍락)

還鄕與我吟(환향여아음)

爲君新釀酒(위군신양주)

共醉臥空林(공취와공림)

 

寒露를 지나 벗님에게 띄우는 글

 

서리 오고 우수수 단풍도 지면

고향에 돌아와 나와 詩를 읊세

그대 위해 새로 술도 빚었으니

함께 취해 空林에 누워도 보세.

 

<時調로 改譯>

 

霜降에 단풍도 지면 還鄕하여 詩를 읊세

그대 벗님을 위하여 새로 술도 빚었으니

둘이서 함께 취하여 空林에 누워도 보세.

 

*友人: 벗 *霜降: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

들며, 아침과 저녁의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10월

23일경이다  *還鄕: 고향(故鄕)으로  돌아옴  *釀酒: 술을 빚어서 담금. 온양(醞釀)

*空林: 나뭇잎이 떨어져 공허한 숲. 또는 인가(人家)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숲.

 

<2018.10.12, 이우식 지음>

토, 2018/10/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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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묘표가 확인됐다는 소식 어제(15일) 전해드렸는데요.

오키나와 곳곳에 조선인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의 유해가 발굴돼 국내로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유해 반환에 대한 논의도 답보 상탭니다.

윤봄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키나와 본섬의 최남단.

패전을 앞둔 일본군이 후퇴해 주둔했던 숲입니다.

미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곳인데,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설수상근무대도 이 일대에 주둔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유해 발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와 발굴 작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유해 발굴을 계속 하고 있는 건 자원봉사자 대여섯 명입니다.

[“(뭐가 나왔나요?) 손가락뼈. 아마도 이 부위인가? 손인지, 발인지 아직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발굴된 유해는 오키나와 현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는데, 대부분 DNA 확인도 못했습니다.

[구지켄 다카마츠/유해 발굴 자원봉사자 : “지금까지 발견된 유골 중에 조선인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발굴 현장 인근엔 유골 3만 5천구가 묻혔다는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전쟁 직후 농부들이 밭을 갈 때마다 유해가 쏟아져 나와, 이를 한 번에 묻고 탑을 세운 겁니다.

[오키모토 후키코/강제 동원 조선인 연구자 : “(조선인 부대가) 이곳에서 전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인들의 유골도 이 혼백의 탑 아래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미군이 일본군 포로 7천 명을 감시했다는 수용소 자리.

이 해안가엔 지금 마을이 들어섰고 포로수용소 터를 표시하는 비만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한 단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확인한 매장자 명단.

조선인으로 보이는 이름도 여럿 확인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산속부터 해안까지, 오키나와에서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조선인은 최소 7백여 명.

조선인 유해가 발굴돼 반환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정부 차원의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 “일본 정부와 유해 반환 교섭에서 어떤 내용을 요구했고, 이후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희가 수차례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적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

오키나와 외에도 소재가 파악된 한국인 유골은 2천 8백 위에 달하지만, 정부 차원의 유해 반환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KBS 뉴스 윤봄이입니다.

<2018-08-16>  KBS

☞기사원문: 오키나와 섬 곳곳 거대한 무덤…조선인 유해 반환은 ‘0건’

금, 2018/08/1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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