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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이 제시하는 21세기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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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이 제시하는 21세기의 존재론

익명 (미확인) | 월, 2018/10/08- 15:48

현대과학이 발견한 자연법칙중에서 존재론과 우주론으로 연결되는 내용을 찾아 본다면 아무래도 물리영역에 대해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및 복잡계이론 그리고 마음에 관하여는 인지과학으로 압축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존재론을 모색하기전에 오늘날까지 인류문명의 토대가 되어온 서구의 존재론부터 먼저 검토해보겠습니다!

서구의 존재론은 그리스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철학에서 출발하여 플라톤을 거쳐 이후 기독교신학과 근대철학에서 활짝 만개한 실체론substance ontology이라할 것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becoming의 철학과는 상반되는 존재being의 철학을 구축하였는데 그 핵심은 사유와 존재는 일치하기에 오직 사유할 수있는 것만 존재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오로지 언어logos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언어의 특성을 살펴보면 언어는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능력이 없으며 단지 실재들의 정태적인 공통점을 추출하여 이들을 존재의 고유한 속성,본질인양 추상적으로 관념화함으로써 존재를 명사적,형용사로만 설명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단순 명료하게 해석할 수 있다라는 유용성때문에 존재를 실체로 규정하는 실체론이 서구의 존재론으로 내려오게된 것입니다.

칼럼_181008

하여 실체론이 서구의 존재론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어가면서 실체는 플라톤의 이데아, 기독교의 신, 근대의 주체, 현대의 표상성으로 이름만 바꾼채 오늘날까지 인류 대다수의 존재론으로 확장되어 자리매김하면서 인간의 사고 및 행동양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편 실체론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존재를 생성의 과정이 아닌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게되는데 실체란 제1원인자로부터 시작하여 선행원인자로부터 존재근거 및 작용인, 목적인을 부여받으며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닌채 자기원인자self cause로 규정되는 존재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모든 존재는 선행원인자로부터 존재근거와 작용인 및 목적인을 선형 인과론linear causality에 따라 일방적으로 부여받게 되는 즉, 선형인과율을 특징으로 하기에 역사를 선행원인이 제시하는 목적을 향해 단선적으로 이끄는 결정론을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실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존재를 고정불변의 동일자인 실체로 보기때문에 그 속성상 실체들은 서로 내재적인 생성관계가 없는 독립된 존재들로 실재할 수 밖에 없으므로 각 실체들은 서로 등가적인 존재가 아니라 에너지를 섭취Input하는 자와 에너지를 제공Output하는 자의 지배-피지배의 계서적 관계를 기본 질서구조로 가질 수 밖에 없으며, 특히 가치론적 측면에서는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가치마저 지배적 실체로 간주하고 타자의 가치를 피지배적 실체로 간주하는 이분법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의 가치는 지배적 가치를 거부하는 실체로 보기에 이들은 반드시 변증법적으로 지양aufheben 즉, 배제, 제거, 박멸 시켜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과 위, 선과 악, 미와 추를 이분법적인 실체로 간주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선에 반대되는 악은 절대적 실체이기에 반드시 박멸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실체론은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로스가 네오 플라토니스트이자 당대의 지성인 히파티야를 악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며 흔적도 없이 죽인 사례나 중세의 마녀사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실체론적 존재론은 근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을 주체적 실체로 간주하여 자연을 인간의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결국 인간도 생존의 위기에 처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하였으며, 또한 이성마저 실체로 간주하여 세계를 이성과 야만으로 이분화시키면서 서구의 식민주의를 정당화시켜 결국 제국주의를 거쳐 인류를 참화속으로 몰아넣은 세계대전까지 초래하게 되었음은 물론 감성을 가진 자연을 이성의 하위에 두게 되면서 결국 자연은 인간을 위한 대상에 불과하다는 실체론은 결국 환경파괴의 이론적 앞잡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실체론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표상성Vorstellung을 실체로 간주하여 강자들이 제시하는 담론Discourse,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마치 진리를 구현한 실체인양 포장하여 유포, 강제시킴으로써 인간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을 원자적으로 분절화시켜 개인을 자본에 노예적으로 복무하는 노동자부품으로, 자본이 만든 상품을 무조건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수동적 소비자로 길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대까지 이어지는 서구의 실체론을 대체하는 존재론은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요?

하여 필자를 이를 찾기위해 무엇보다 현대과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양자역학의 정통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재는 실체의 단일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는 이중적 속성이 중첩되어 있는 실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소립자는 서로 병립할 수없는 파동성과 입자성이 중첩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실체론에 의하면 존재는 단일 속성을 가져야하는데 양자역학은 서로 모순된 속성이 동시에 중첩되어 있다고 보고있으므로 기존 실체론 관점에서는 절대로 설명이 불가하다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칩에 서로 병립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0과 1이 동시에 중첩하여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런 원리를 응용한 양자암호와 양자컴퓨터가 조만간 실현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닐스 보아도 자신의 상보성이론에서 존재는 반드시 2가지 상보량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 또한 존재는 하나의 속성만 가지고 있다고 보는 실체론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존재의 속성,즉 물리량은 반드시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2가지 상보량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존재는 상보량으로 이루어졌기에 하나인 위치를 알면 반드시 다른 량인 운동량을 알 수가 없기에 존재의 모든 속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찰자가 보고자하는 물리량외에는 알 수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이론은 어떤 존재는 선행원인자로부터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관찰에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보게되면 결국 우주의 모든 존재는 서로 상호 인과적으로 생성을 이루며 우주를 같이 창조해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론에 의하면 비실재성과 비국소성이 존재의 속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존재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며 또한 우주는 비분리되어있기에 전일적인 하나Holistic One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주는 끊임없이 생성을 도모하는 과정이기때문에 실체는 존재할 수가 없으며 나아가 우주의 모든 구성요소는 서로 원인으로 또는 조건으로 생성에 참여하기 때문에 서로 불가분하게 내재적으로 연결되어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양자역학은 실재는 단일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실체론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한편 아인쉬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관찰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즉 시공간과 관찰자의 운동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찰자의 시간과 공간이 바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는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서로 실재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끝없이 변해가는 생성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물질의 분포에 의해 결정되며 물질은 시공간에의해 새로 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하면 존재는 상호 인과작용의 과정이자 그 산물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습니다! 즉, 상대성 이론은 단순인과로 이루어진 실체론이 진실이 아니라 현대과학의 상호인과와 복잡인과(연기법)로 이루어지는 생성론이 새로운 존재론이라는 것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최근에 각광을 받는 복잡계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열린계open system 는 항상 자기조직화 과정을 밟고있는데 일단 계의 내부에서 내적 요동과 외적 섭동에 의해 되새김feed back이 시작되면 계는 그러한 되새김을 통해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이 극에 달하게 되며 이후 임계점critical point에 도달하게되면 그 직후 새로운 질서를 창발하던가 아니면 카오스로 사라져 버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우주질서는 내부 구성요소들의 자기조직화를 하는 되새김과 임계점의 창발emmeregence과정의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주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상호 생성작용의 결과 특히,창발의 산물이자 영속적인 창발의 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계의 창발이론과 유사한 이론으로 엔트로피 이론의 대가인 일리야 프리고진의 산일구조이론이 있습니다!)

결국 복잡계이론도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즉 영속적인 생성의 과정이라고 보여줍니다! 이에따라 현대물리학자인 스몰린Smolin은 존재는 무엇이라는 것은 없고 단지 빨리 변하는 과정과 느리게 변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 ( 필자의 철학적 스승인 화이트 헤드도 존재는 명사,형용사가 아니라 다만 부사,동사일뿐이라며 그의 과정철학에서 스몰린과 같은 관점을 갈파하였습니다!) 결국 현대과학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은 존재가 실체가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즉 생성의 과정이라고 보기에 필자는 21세기의 존재론을 생성론(달리 표현하여 과정론 또는 사건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생성론에 의하면 존재라함은 시공간의 조건속에서 인과적 사건들의 연속적인 과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과적 사건에 개입하고있는 구성요소들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라는 입니다! 나아가 우주의 생성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있기에 모든 구성요소들은 공생자이며 따라서 생성론은 수평적 상호적 공생질서를 반드시 전제한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구성요소들 모두 138억년에 이르는 우주 생성의 산물이자 영속적인 생성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서구의 실체론에 의거하여 구축되어온 현대의 사고체계,즉 존재론과 우주론을 폐기하고는 것은 물론 현대의 사회체제와 규범및 제도가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적 방안을 구축하는 시도를 이제는 생성론의 관점에서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자본주의체제의 내적 모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은 물론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대응책을 새로운 존재론에 기반하여 심도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존재는 모순된 속성이 이중적으로 중첩되어 있듯이 인간이라는 개체도 독립성을 욕망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귀소성도 희구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는 개체와 공동체를 이분적인 실체로 분열, 대립시키면서 어느 한 쪽으로 배치시키며 그 자리에 머물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인간 또한 서로 모순된 속성을 동시에 구유하는 것이 본래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간을 원자적으로 분절시키고 형식적 민주주의는 개체의 가치를 충분히 발현시키기 보다는 집단에의 순응과 종속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이분법적인 모순의 희생물이 되기 전에 생성론적 관점에서 중도적 대안(개체의 독립성과 공동체의 귀속성을 중도적으로 승화시킨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제시하여 상생의 세계를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한편 현대물리학자인 볼프강 파울리는 존재는 정신과 물질의 상보량으로 이루어져있기에 정신과 물질의 중도적 태도를 취할때만이 진정한 본성의 발현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보적 중첩성을 인간에게 적용해본다면 과연 정신을 배제하고 오로지 물질만 추구하는 화폐적인 삶이 존재의 본성에 부합하는지도 깊이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아가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보게되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제1원인자 되어 신제국을 건설하기위한 헤게모니 다툼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사고도 아직도 인간이 실체론적 존재론을 벗어나지 못하기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러한 계서적인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체론에서 생성론으로 21세기의 존재론을 지구적인 차원에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결국 생성론에 기초하여 개체로서의 자유와 평등은 물론 공동체에로의 참여와 책임을 병존적으로 추구할 수있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ㅡ실체론에서 생성론으로!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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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받지 못하고, 흥미도 없고,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데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며, 이성을 따르기 보다는 열정에 이끌리거나 자기중심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시민이라는 이미지는 수 세기에 걸쳐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항상 함께 따라다녔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정치 생활에서 여러 시민 집단들이 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역량이 없는 평균적 시민이라는 이미지는 항상 통치자들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처음에는 이를 핑계로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직접 참여 요청을 반대하는 핑계로 쓰고 있다.

여전히 이 ‘무능’이라는 단어는 레퍼렌덤 권리의 확대를 말할 때 종종 튀어나온다. 대개 평균적인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복잡한 현안들”에 대해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주제는 수십 년간 보통 선거권의 발달에 걸림돌이 되었고, 나중에는 여성 참정권의 발목을 잡았으며, 그 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투표권을 제한하는데 악용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집단이 한 때 차별을 받다가 투표권을 획득해낼 때마다 그 이슈는 사라졌다.

오늘날 이 주제로 도전을 받는 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와 보편 선거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직접 참여권의 확대이다. 다시 말해, 평균적인 사람들이 법률을 평가하고 다듬고 저지하고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 여전히 “정부의 전문가들, 바로 이상적인 후견인들이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갖추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무엇일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직접 참여를 반대한다(로버트 달Robert Dahl, 민주주의에 대해Sulla democrazia, 2000). 또한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행위는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결정하는 데 그리 성숙하지 못하고, 조작이나 착취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언론 보도에 좌우되어 특정 정당에 투표하는 평균적인 시민의 모습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국민의 권리 강화는 전혀 정치적 후퇴가 아니다

19-20세기에 무능함이라는 주제는 민주주의 체제에 맞서면서, 무엇보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나 일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몇몇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여성 투표권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시민들이 이 시대의 정치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평가하기에는 무능하다는 인식이 현재 레퍼렌덤 권리 행사를 논할 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에 비추어 그러한 논란은 근거가 없다. 만일 그랬다면 레퍼렌덤 도구를 완벽히 갖춘 민주주의 국가인 스위스는 벌써 자멸했을 것이다. 1800년대 전반에 벌써 레퍼렌덤 법조항을 도입한 후 스위스는 이기적 이익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좁은 시야에 갇혀 실패한 법안이 수도 없이 쏟아질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 스위스의 개혁주의자들은 남성 유권자 선거 덕분에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의 중심 사상은 국민과 “더불어” 통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통치에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보통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고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능력이 없었다. 이 논란은 계속해서 순전히 대의적인 의회 체제를 합리화시켰다.
스위스에서는 그러한 체제가 1869년까지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 국가들 대부분에 여전히 그런 체제가 통용된다. 몇몇 학자들은 스위스의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 대다수의 인식 불능cognitive incapacity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박살이 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안정적인 민주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21세기 초,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결정 시 더 많은 참여 요청이 제기되었다. 유럽 각국의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지적 능력 부족이라는 평가가 들어맞는 교육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순전히 대의적인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레퍼렌덤 투표 결과가 한 사회의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이며 연대적인 발전에 큰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환기시키려 한다. 어떤 여론 조사에서는 국민발안을 통해 사형제가 다시 도입될 수도 있으며, 정치적 난민법을 거의 적용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석유 소비세나 자동차세 등의 세금이 삭감되리라고 예측했다. 스위스에서 직접 민주주의 법 시행이 확정되고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논쟁은 한 세기 반에 걸친 민주주의 체제의 발전과 대중의 학교 교육 및 온갖 정보 전달 매체의 파급에 따른 평균적인 시민의 정치력 향상을 간과하는 듯하다.

그 외 몇몇 산업 국가들에서도 전에 없이 문화, 기술 및 교육 조건이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한정된 일부 사람들만이 정치적 문제를 이끌어가도록 교육을 받거나 소명을 지녔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더구나 보통 시민들에 비해 정치적 현안을 더 잘 판단할 능력이 있는 정치 엘리트가 있다고 추정할 이유도 없다. 선거와 정당 내에서 쌓은 정치적 이력이 자동으로 보통 시민으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앞선 정치적 지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는 전문 정치인이 아닌 보통 시민들이 정치적 현안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치적 성숙도를 평가하는 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 계급은 그에 속하지 않는 보통 시민들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엘리트라는 이미지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주요 레퍼렌덤 법률 조항들이 보완된 민주적 체제에서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는 대의적인 체제와 확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정치인들이건 시민들이건 정치적 결정에 개입할 자유와 기회가 있다. 물론 행동할 기회 면에서는 다르다.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서로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만난다.

 

정치적 결정을 독점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역량 부족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논지이다. 시민들이 단일 정치 현안에 대해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자신들을 위해 결정을 내리도록 입후보한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한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 단지 한 사람의 도덕적, 지적 완전무결함이나 그의 역량과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플랜도 전체적으로 알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여러 정당과 후보들을 선별할 능력이 있지만 구체적인 정치 현안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서로 모순된 이야기이다.

이러한 비판은 은연중 정치인에 대한 거의 신화에 가까운 지도자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뛰어나게 지적이고 지극히 견문이 넓으며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현명한 정치가, 이를테면 어느 행정 조직의 수장과 대학 교수를 완벽히 결합해 놓은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가 공동선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념하는 전문가로서 어느 누구보다 국가 통치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들을 더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게 맡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민주적 사고의 주적主敵이었다. 보통 선거권을 얻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이 이어졌던 시대에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정당성을 얻곤 했다. 로버트 달은 전문가들의 말을 이렇게 비꼬아 비유한다.

“여러분처럼 우리 또한 인간의 타고난 평등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헌신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어떻게 그것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훨씬 더 적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독점적인 통치권을 보장해 준다면,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 공동선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익도 똑같이 고려할 것입니다”(. 로버트 달, 2000년)

이는 정치적 인물의 선택을 좌우하거나 투표권을 제한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논점이었다. 오늘날 대의적 민주주의 안에서 시민들은 단순히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위임하지만, 결정은 정치인들만이 한다. 오늘날의 이탈리아처럼 레퍼렌덤 권리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레퍼렌덤 투표가 매우 드문 상태에서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인들은 모든 종류의 수단을 독점한다. 거의 모든 주요 현안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과 정치적 의제를 정하기 위한 수단 및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할 금전적 재원을 활용하는 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그들의 독점적인 수단 점유는 정치인과 시민들 사이의 권력 불균형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아직까지 이 불균형은 두 가지 주요 논점으로 정당화되고 있는데, 선거라는 민주적 합법화 행위와 정치적 인물의 전문가적 능력이다. 민주적 선거를 통한 합법화라는 본질에 흠잡을 데가 없다면(오늘날 선출되기 위해 시행 중인 선거 시스템에 대해 할 얘기가 많겠지만), 정치적 능력의 습득을 오로지 의회 활동에만 연결시키는 무의식적인 연상 작용은 매우 의심가는 구석이 많다.

 

민주주의와 전문가 정치

보통 시민은 엘리트 정치인에 비해 무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우는 데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전문가들도 한몫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산업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과학적 엘리트들도 항상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민주적 대의 기관의 조정력 및 입법 능력에 도전한다. 우리 사회처럼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사회에서는 종종 자신의 안녕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구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결정에 대한 최후의 통제력을 양도하는 것과 다르다. 전자는 정부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엘리트 집단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법률과 정치적 결정을 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누가 혹은 어떤 단체가 한 나라나 지역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내리는 결정에서 최종 발언을 해야 하느냐에 달려 있다!” (로버트 달, 2000년). 이제 민주국가의 통치는 물리나 화학, 혹은 극단적인 경우 의학 같은 과학이 아니다.

“한편으로 실제로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개인적인 것이건 정부 차원에서건 윤리적 판단을 의미하며, 이런 판단은 대개 ‘과학적’ 판단이 아니다. 게다가 항상 활용 수단에 대해 확신할 수 없고, 갈등의 여지도 크다. 곧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 혹은 방법의 바람직함, 실용성, 수용성과 그 결과로 나올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로 버트 달, 2000년)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심부름꾼으로, 곧 특정 임무를 지니고 봉사하기 위해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통치자로 봉사할 자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버트 달을 비롯하여 가장 권위 있는 정치학자나 우리 시대 민주주의 학자들 중 누군가가 그들을 선택하라고 강요 할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어떤 논점을 “과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전문적이지 못한 것으로 깍아 내림으로써 선출된 기관의 합법성을 부인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이 함께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닌 법규를 정할 때 그 합법성을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 정치expertcracy”에 대한 토론은 지난 정부나 주, 현 정부에서 다양한 자문을 받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급함에 따라 더욱 뜨거워졌다. 전문가들의 자격이나 역량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더라도, 그들을 선택하여 받는 자문의 종류, 조건 등이 종종 그리 투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이나 관련된 이익 집단에 의해 결정되는 위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의 역할이 남용되지 않으려면, 정치적 엘리트들 편에서 결정 과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목적을 위해 가장 유용한 수단의 하나는 발안권과 레퍼렌덤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정치”는 투명성을 요구하고, 전문가들 자체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역할을 요청하는 시민들 자체의 역할을 강화시킴으로써 균형을 찾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적법한 전문가들과 레퍼렌덤의 시민 발안자들은 물론 시민 유권자들 사이에 적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행사하는 많은 공공 발안에 대한 재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지만, 과학적 지식과 기술자와 전문가의 견해를 활용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전문가 정치”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여, 정치적 결정을 하는 사람들과 지식과 학위를 갖춘 정당한 전문가 자격으로 조언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 사이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짓는 것이다.

잘 제도화된 레퍼렌덤 권리 체제에서 전문가들은, 그저 엘리트 정치인들만 설득하면 되는 순전히 대의적 체제에 비해 자신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스위스의 투표를 보면 유권자들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혹은 그에 반대하여 어떤 편견을 지니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대개 전문가적 식별이나 순전히 학문적인 추론과는 상관없이 기술적 기준과 조정 평가를 결합하여 신중하게 투표한다. 스위스에서 국민들은 최종 분석에서 전문가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면, 자유 시민들의 자주적 결정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자주적 결정력은 스위스 시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개념이다.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정치 기구에 선출된 이들의 전반적 책임 제한이나 수정 없이도 극소수 정치인들의 손에 결정이 독점되는 관행은 대폭 무너졌다. 무능한 시민상은 사라지고, 능동적이고 관심이 크며 더욱 책임감 있고 정치적으로 더욱 유능하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시민상으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정치인 상도 바뀌었다. 소수의 다른 정치인들이나 로비스트 만을 상대하여 고차원의 결정을 함께 내리던 이미지에서, 좀 더 지상의 현실로 내려와 “보통 시민들”과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정치인들은 이 과정을 권력이나 지위의 상실이 아니라 공감력과 인류애를 더욱 확대시킬 기회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피지배자subject에서 주의 깊고 역량 있는 시민으로

“행하면서 배운다”는 경구가 있다. 입법부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입법 절차에서 발휘됨으로써 가장 잘 드러나고 습득될 수 있듯이 직접 민주주의에서 레퍼렌덤과 발안 절차들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 정치적 능력을 키워 준다. 이런 맥락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공교육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결정적인 도구들을 갖추게 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투표권을 지닌 이들의 숫자가 점차 확대되면서 보통 선거권에 이르는 수단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46년 보통 선거권이 도입되어 민주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모두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정치 생활 참여가 선거인 투표로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주로 보통 시민들을 정치
적 결정에 참여시키고 “교육할” 수 있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스위스에서 제도상 보장된 레퍼렌덤 권리는 시민들에게 정부나 정당에 좌우되지 않는 결정 권력을 부여한다. 시민들은 능동적으로 국가 운영이나 사회 발전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훨씬 더 정치적 현안을 주시할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이를 위한 공교육 및 정치적 양성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된다. 취리히 대학의 정치학자 마티아스 벤츠와 알로이즈 슈튜처는 이 점에서 참여권을 더 많이 누리는 시민들일수록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정보 전달을 더 잘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마티아스 벤츠Mattias Benz, 알로이즈 슈튜처Alois Stutzer, ‘유권자들은 정치에서 더 발언권이 클수록 정보를 더 잘 전달받고 있는가? Are voters better informed when they have a larger say in politics?, “공공 선택Public Choice”에서 119번 (2004), 31~59쪽).

시민들은 목표에 도달하려면 자치적으로 공동의 협력방식을 찾아야 한다. 국민발안이나 레퍼렌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원의 서명 모음과 의사전달 역량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조직력을 개발하고, 어떻게 캠페인을 벌이고, 어떻게 자원(금전적, 물리적, 인간적)을 마련하며,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고 공공 토론을 조직하며, 어떻게 동맹을 결성하고 괜찮은 절충안을 찾으며, 어떻게 정치 권력을 다룰지를 배운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레퍼런뎀 캠페인의 준비와 실행 하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탈리아 헌법 또한 시민들의 참여 증진을 규정하며, 이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인정한다(이탈리아 헌법 제118조). 점차 정치적 헌신을 고무하는 방식이 강화되면서 무능력한 시민이라는 신화도 사라지고, 시민들 사이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올바른 메커니즘이 자리잡는다. 그러나 그러한 메커니즘은 시민들의 헌신이 있을 때, 다시 말해, 시민들의 헌신과 표가 글자 그대로 “결정적”인 요인일 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에서 공공 교육 기관들의 영향력이 약하여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의 유효성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시민들이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고 함양할 수 있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관심을 유지하고 방심하지 않으며 정보를 갖춘 시민들을 전제로 하며, 모든 국민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결정할 권리를 독점하는 계몽된 소수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엘리트적 개념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잘 발달된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최후의 발언권은 늘 온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9/09/2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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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원칙의 준수

이번 호에도 계속해서 일대일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논하도록 한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로 사회주의국가 하에서의 ‘국가자본주의 정책’이 해외 인프라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업의 효율성이나 투자된 자본의 안정성 등을 보장할 수 없다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큰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라 할지라도 필경 한 나라의 경제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과거 소련의 제3세계권에 대한 대외원조가 실패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것은 무상원조 중심의 정책지원금의 성격이 강하였는데, ‘효율성’ 혹은 시장원리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갈수록 소련 경제에 큰 부담이 되어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역시 제3세계권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 같은 방식의 지원을 적지 않게 수행하였다. 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중국 경제에 더욱 짐이 되었던 아픈 경험이 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중국정부는 ‘시장원리의 중시를 일대일로의 사업추진에 있어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운다. 이는 일대일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세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와 관련한 강령적 문건이라 할 수 있는 <비전과 전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시장의 작동을 견지한다. 시장의 법칙과 국제적으로 통상적인 규칙을 따르고, 자원 배치에 있어서의 시장의 결정적인 역할과 다양한 기업의 주체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역할을 잘 발휘토록 한다.”

또한 바이두(Baidu)의 인터넷 사전 (百度百科)에서는 이하의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곁들어져 있다.

“2017년 5월 <‘일대일로’ 국제협력고위급포럼 원탁정상회의 공동발표문>에서 ‘일대일로’ 건설의 기본원칙을 강조하였는데, 그중 시장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즉 시장의 역할과 기업주체의 지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정부가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정부 구매절차가 개방, 투명, 비차별적이도록 한다. 일대일로 건설의 핵심 주체와 지탱 역량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기본적 방법은 시장원리에 따르고, 시장화 작동방식을 통해 참여 각국의 이익 추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정부는 그 안에서 플랫폼의 구축, 시스템 창설, 정책적 인도 등과 같은 방향성과 서비스 기능을 수행한다.”

생산력발전을 자신의 중요 사명으로 삼는 사회주의로서는 결코 ‘등가교환’ 법칙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원리’를 무시할 수가 없다. 아무리 취지가 훌륭하더라도 스스로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사업은 지속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등가교환’ 법칙이 현 생산력 수준에선 인류사회 발전에 유리하며 사회주의 생산력 발전에도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그간의 경험을 통하여 충분히 밝혀진 바이다. 또한 당대의 국제질서가 ‘시장경제’의 기초위에 서 있다는 현실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효율’이 일대일로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사업선정을 잘하여 충분히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그 수익성 역시도 잘 따져 보아야만 한다.

시장원칙의 적용과 관련하여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비교우위론인데, 일대일로는 이에 입각한 상호교류를 강조한다. 예컨대,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보유하고 있는 생산요소가 천부적으로 다르고, 비교우위 차이가 뚜렷하며, 상호보완성이 강하다. 어떤 나라는 에너지 자원은 풍부하지만 개발력은 부족하고, 노동력은 넉넉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도 있다. 또 시장 공간이 넓지만 산업기반이 빈약한 나라도 있고, 인프라 건설 수요는 왕성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이고, 외환보유액이 세계 1위이며, 인프라 건설 경험이 많고, 장비제조 능력이 뛰어나고, 품질과 가성비가 좋아서 자금·기술·인재·관리 등에서 종합적인 이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과 다른 일대일로 참여 측이 산업상의 연계와 우위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바이두)

사실 세계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발전 잠재력을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충분히 발휘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세계경제가 부딪치고 있는 불균형과 경제위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간 무엇이 이 같은 비교우위론의 실현을 막아왔던 것일까? 그것은 국제독점자본에 의한 패권적인 국제질서이며, 자본주의 하에서 필연적인 ‘독점’ 논리 때문이다. 패권과 독점은 상호호혜 보다는 일방적 지배를 추구한다. 이제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과 같은 국제협력의 이니셔티브를 쥐게 됨으로써 비교우위론이 좀 더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 스스로가 패권질서에 대해 공개적으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미국 등 패권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으로부터 받는 포위망 때문에 평화적 공존공영을 실현할 국제질서를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또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역시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전 세계 1/5의 인구, 경제력과 기술 및 자금, 그리고 자체 성공적인 경제개발 경험, 개발도상국 인프라 구축에의 장기 투자를 감당 할 ‘국가자본주의 정책’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며, 이는 또한 비교우위론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 측의 강점이기도 하다.

일대일로는 그 추진 전략의 세부 측면에서도 ‘합리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일대일로가 그간의 국제협력의 역사적 경험과 함께, 관련된 분야의 이론적 성과를 자신의 전략수립에 있어 충분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전략을 위한 이론적 기초와 기본원칙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리 중에서 특히 세계역사에 관한 이론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여 진다(이하 관련 내용은 “ ‘일대일로’ 전략이 제출된 배후의 비밀”(“ ‘一带一路’战略提出的背后秘密”),九派新闻, 2016년02월28일에서 인용). 예컨대 일대일로 전략은 先 경제 後 정치의 협력단계 원칙, 先 중앙아시아·러시아 後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중동·아프리카, 마지막 유럽의 지정학적 추진 원칙을 적용한다. 경제적 측면에선 先 경쟁적 분야 後 자연독점적 분야, 마지막으로 공공재 분야로의 산업체진 원칙(产业递进原则)을 적용한다.

이들 각각의 원칙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먼저 ‘선 경제, 후 정치’의 협력원칙을 보자면, 이는 앞서의 마샬플랜과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마샬플랜은 국제협력에 있어 정치를 앞세움으로써 편 가르기와 이념대결, 불공정과 불공평을 가져왔다. 정치는 아무래도 이데올로기적 색체가 강하고 현실 역량을 중시하며, 어떠한 생산적 활동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를 꺾어야 내가 이기는 식의 ‘제로섬’ 게임이기 쉽다. 경제는 이에 반해 ‘중립적’이고 새로운 잉여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호호혜’와 ‘상호공영’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경제와 정치는 긴밀한 연관을 갖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선후 관계는 현실에서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일대일로는 경제를 바탕으로 정치 관계의 진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 시킬 수 있게 된다.

지역별로의 선후관계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먼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5개국처럼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또 전통적으로 친밀하며 이해가 일치하는,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과 국가를 우선시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차츰 지리적으로도 멀고, 이념적으로나 발전수준에 있어 중국과는 일정 거리가 있는 나라로 확대해 나간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서유럽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맨 마지막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도 단일 패권질서를 추구하는 미국과는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 역시 일대일로 사업에서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일대일로가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이며 실용적이고 안정성을 갖춘 전략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경제 분야에 있어 ‘선 경쟁분야, 후 독점분야’ 원칙은 일대일로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립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이 같은 정상적인 시장논리의 작동에 기초한 경제협력만이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자연독점적 분야나 공공재로 갈수록 시장논리 보다는 공공이익과 같은 비시장적 논리, 등가교환 보다는 무상원조와 같은 일방적 관계가 강조된다. 때문에 비록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과거 소련의 원조가 실패한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갈 수가 없다. 따라서 먼저 정상적인 경제관계의 기초를 마련한 위에서 차츰 공공재와 같은 ‘특수영역’으로 진출한다면, 이는 지속성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높은 협력을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이렇듯 시장원칙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냉혹한 신자유주의와 똑 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양자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시장지상주의를 강조함에 비해 일대일로는 ‘호혜, 공영’을 표방한다. 실제 위 <비전과 전망>에서 보듯 ‘국가’의 적절한 역할에 대한 강조는 확실히 시장원리에 대한 보완이라 할 수 있으며, 일대일로가 무정부적인 시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서구와 국내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채무함정’ 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 스리랑카, 미얀마(버마), 파키스탄, 몰디부 등 일대일로 선상의 일부 국가들에 있어 연이어 부채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이들 언론들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관련 개발도상국에 무리한 대출을 해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일부러 빚더미에 앉혀 그걸 빌미로 이들 국가의 항구나 도로 등에 대한 중국의 半 영구적 통제권을 획득할 목적에서 그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사실상 과거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정책을 쓸 때 즐겨 쓰던 ‘조차지’와 비슷하다는 것인데,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우선 논리상 다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일부 프로젝트의 특허경영권과 한 나라 전체의 채무위험을 결부시키고 있다. 어떤 개별 프로젝트나 기업이 직면하는 리스크와 국가채무 위험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둘째, 개별 국가에서 출현한 문제를 일대일로 선상의 모든 국가를 포함하는 것으로 상승시키며, 또 이들 국가들 스스로 오랫동안 누적된 복잡한 채무문제를 간단하게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탓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일대일로’가 직면한 것은 ‘채무함정’ 인가 ‘여론함정’ 인가?”, (“一带一路面对的是‘债务陷阱’还是‘舆论陷阱’?”),《财经》杂志, 2018年12月10日).

먼저 아프리카의 예를 들어 보자. 세계은행의 통계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중국 채무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며, 특히 그들이 떠안고 있는 전체 외채에 대비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5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의 대중국 채무는 전체 외채의 단지 10%만을 차지하였다. 비록 케냐·앙골라·지부티의 대중국 채무가 다소 높긴 하지만, 이들 채무는 재조정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미국 싱크탱크인 ‘글로벌발전연구센터’의 <정책적 각도에서 바라본 ‘일대일로’ 창의의 채무영향> 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일찍이 많은 일대일로 선상 국가들의 채무에 대해 일정정도 채무를 경감하거나 재조정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위 《财经》杂志에서 소개된 내용임). 그리고 이들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부채가 많은 것은 역사적 원인이 있다. 세계은행 통계로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20년간의 짧은 기간에 개도국 채무가 3000억 달러에서 1조5천억 달러로 5배 증가하였다.

각국별로 보자면, 화제가 되고 있는 파키스탄 채무위기의 경우, 미국 ‘글로벌발전연구센터’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파키스탄의 외채총액은 약 580억 달러이다. 그중에서 중-파 쌍방 간의 채무는 약 10%이며, 나머지는 국제금융기구와의 다자간 채무이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에 따르면, 중-파 간 일대일로 협력사업(CPEC) 틀 내 22개 프로젝트 중 18개는 중국 측의 직접투자이거나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며, 단지 4개만이 중국의 우대 대출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파키스탄의 채무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파키스탄은 1947년 독립 후로 여러 차례 IMF의 원조를 받았다. 이 나라의 주요 채무는 대부분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 후에 형성된 것으로 일대일로 때문에 급증한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은 매년 이들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IMF가 2016년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종결 짓고 거기에다 트럼프가 원조를 취소하는 바람에 파키스탄의 국제 지불능력 부족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 파키스탄 정부는 IMF에 120억 불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지난 1980년대 말 이래 파키스탄의 13번 째 IMF에 대한 지원 요청에 속한다.

스리랑카의 경우를 보면, 10년 전 항구를 짓기 시작할 때와 금융위기 이후의 시장상황의 변화가 달라진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문제가 된 한반토타항은 인도양의 주항로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요지에 위치하며 2007년에 짓기 시작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상운송 경기가 매우 좋았기에 인도양 해운량이 부단히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중국으로서도 인도양에 중간 기착항이 필요하였는데 이에 따라 양국은 항구 건설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세계적으로 소비와 원자재 수요의 급격한 하락 때문에 국제 해운업의 대 침체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한반토타항 프로젝트는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으며, 중국은 자국 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경험을 살려서 이 항구의 부도처리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채무의 주식 전환’(债转股) 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는 순전히 합리적인 시장처리 방식이라 볼 수 있으며, 이것을 가지고 소위 ‘채무외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여 진다(이상은 위 《财经》의 북경대교수 왕쉬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더불어 이 잡지에서 언급한 몰디부의 부채문제를 소개하자면, 중국의 몰디부에서의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는 중-몰 친선대교인데 현재 이미 개통된 상태이다. 이 대교는 관광업을 경제적 지주로 삼는 몰디부에 있어선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요 섬 간의 교통왕래를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수도인 말리의 경제생활권의 발전을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문제와 관련하여 보면, 대교의 건설비용이 몰디부에 대해 그리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12.6억 위엔의 총 투자액 중 91.8%가 중국 측이 부담한 것이며, 그중에는 45.6%의 중국정부 무상원조와 46.2%의 우대 대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몰디부의 자체 자금은 겨우 총투자의 8.2%만을 차지한다. 살레 대통령이 말한 “몰디부 국고를 다 비웠다”고 하는 것은 몰디부의 채무 증가액을 분명 과장한 측면이 있다고 보여 진다).

다른 케이스도 내용은 비슷하다. 소위 ‘채무함정’과 관련된 보도는 대부분 일대일로의 의미를 축소하고 폄훼하려는 미국과 서구 언론의 의도가 많이 작용한다. 거기에 더해 피투자국인 개도국 내의 복잡한 정치상황이나 기회주의적 태도도 한 몫 거드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이 같은 국제여론을 빌려 대중국 채무를 단기에서 장기로, 장기에서 무상으로 자국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장원칙’에 관하여 살펴보았듯이 일대일로는 ‘효율성’을 중시한다. 관련된 프로젝트는 인프라 간의 상호 연결이든 산업·에너지 프로젝트이든지 모두 과학적인 타당성 연구를 거치고 엄격한 대출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와 연구는 모두 자본금 비율에 대한 요구, 자산부채비율에 대한 구속, 자본보상(투자수익)과 관련한 것들이다. 이런 기준에 미달할 경우 그 프로젝트는 통과되지 못하며, 이리하여 최종 선정된 프로젝트들은 대체로 경제성장과 민생의 개선을 촉진시킬 수 있는 ‘유효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이들 개도국들은 비록 부채가 증가하더라도 자산 증가는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되어 채무위기가 쉽게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해 부채위기가 실제로 발생한 사례는 거의 없다. 설령 그런 조짐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간의 선례에 비추어 중국정부가 적극적인 부채조정에 나섬으로써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화, 2019/09/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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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향촌진흥 정책에 있어서, 거대한 국가의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 엘리트와 외부 자본이 결탁하여, 개발의 수익을 전유하는 문제는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도 진행중인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양쪽 모두 이러한 문제가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불러 일으켰고, 사회적 안정도 상당한 수준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중국의 거장 지아쟝커는 이러한 농촌과 지역의 문제를 소재로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다수 제작하여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끌었는데, 이를테면 천주정天注定(2014)에서 중국 농촌의 비참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본문에도 언급된 주로, 2차 산업, 즉 공업화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들이다. 이제, 3차산업 혹은 1, 2, 3차 산업이 융합된 6차산업의 진흥을 목표로 삼는 향촌진흥 정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마을주민들의 이익분배에 대한 권리를 설명함에 있어, 주민들이 오랜 기간 형성하고 보존해온, 자연과 인문공간이라는 제3자 불가침의 ‘공간자원’ 개념이 제시되는 것은 상당히 흥미있는 지점이다. 한국에서 이미 오랜 기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현상이 토지와 부동산에 대한 사유권 주장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설명하는 논거로도 일부 사용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董筱丹 DONG xiaodan  刘亚慧 LIU yahui 唐溧 TANG li 温铁军 WEN tiejun

[개요]

농촌공간은 자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일차산업으로서의 농업에 활용됐고, 그 경제가치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6차산업화’의 관점에서 보면, 산업발전에 따라서 그 경제가치가 명확해질뿐더러 계속 증가한다. 이는 향촌산업을 발전시키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하지만 가격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농촌개발수익을 대규모로 독점한다. 이는 일종의 새로운 ‘음성적 수탈’이다. 이러한 현상이 현재 많은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기에, 학계와 정책설계/제안자들이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제도혁신을 통해서, 농촌집체조직이 농촌공간자원의 활용에 우선권을 갖도록 해야 하고, 효율이 높은 개발의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농촌의 자연과 인문자원은 풍부한 생태문명의 다원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농촌은 중화문명의 유구한 역사의 담지자로서 기능해왔다. 향촌진흥전략과 뒤이어 발표된 중앙1호문건이 농촌의 1,2,3차 산업융합, 즉 6차산업을 언급했는데, 그 주요한 실행의 장은, 각종 자연과 인문,역사라는 천혜의 유산을 담고 있는 공간자원이다. 6차산업의 경제성장동력은 각종 공간자원을 다양한 산업의 관점에서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전환함으로써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적시에 새로운 제도 개혁을 실행하고, 향촌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수탈과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소농과 현대농업이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촉진할 수도 있다. 하나의 정책으로 다양한 효익을 얻기 위해 중앙정부는 신시대 향촌진흥과 전면적인 빈곤퇴치전략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 북부의 밀밭 <출처: 원문>

 

1. 농촌공간자원의 3차산업 이용은 1,2,3차 산업의 융합, 즉 6차산업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농촌은 생산, 생활, 생태가 삼위일체로 만나는 복합공간이다. 이를 ‘삼생합일三生合一’로 칭할 수 있다. 과거의 농업정책은 실제로 농촌에서 주로 일차산업으로서의 농업활동공간을 보장해왔다. 그래서, 유명한 관광지를 제외하고, 농촌의 토지, 햇볕, 공기, 물, 산림, 기온 등의 입체적 공간자원은 모두 농업생산중심으로만 고려되고, 그 경제가치도 농산업생산물에 의해 그 시장가치가 결정됐다. 즉, 1차산업의 가격구조를 갖게 됐다. 예를 들면, 어떤 농지는 산에 의해 가로 막혀, 다른 품종의 꽃가루의 영향을 덜받기 때문에, 육종기지로 사용되는 것에 적합하다. 이에 따라서, 이 토지의 임대료가 그 지역의 다른 곳보다 높게 설정이 됐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떤 산악지역이 해발 고도가 높아서 기온이 낮으면, 병충해 발생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러면 고랭지 무공해 채소로 가격이 조금 높게 매겨진다. 따라서, 이 농지는 같은 조건의 보통 농지에 비해서 높은 지가를 갖게 된다.

대도시에서는 질병의 만연이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매우 빨리 진행되므로, 도시 공간자원의 희소성이 매일매일 증가한다. 농촌의 ‘자연 그대로의’ 풍광과 동식물이 생장하고 형성하는 ‘생명의 풍경’을 접하면서, 갈수록 생명의 생존공간이 줄어드는 도시민들은 깨닫게 된다. 농촌의 자연공간과, 문화풍습 등의 인문공간은 사람들에게 1차산업 이상의 더 크고, 더 직접적인 소비 효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여행, 휴식, 교육, 웰빙 등의 서비스 기능을 갖추고 있고, 이것은 새로운 6차산업 개발의 경제 가치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창밖으로 달을 완상할 수 있는 것,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광오염과 대기오염 탓에 이제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전히 오염되지 않은 청정 공간 자원을 지닌 농촌으로 여행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여행사업에는 농촌게스트하우스 운영이나 아이들을 위한 자연교육 프로그램 개설 등 다양한 활동 형태가 있다.

그러나 다시 관건은 6차산업의 가격결정구조이다; 이런 활동은 모두 시민의 소비능력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그러므로 공간이 있다면 6차산업의 수익에 따라서 가격을 정하는 조건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농촌에서는 적극적으로 6차산업 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지점은 과거 1차산업에 사용되던 자연공간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1차산업영역은 명백하게 가치가 드러나는 인문공간자원을 꼭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2차산업단계를 건너뛰면서, 직접 중산층 시민그룹을 대면해서 3차산업을 개발해야 한다. ‘다섯가지 씻김 五洗’슬로건이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다. “청산녹수가 눈을 씻어주고, 신선한 공기가 폐를 씻어주고, 계곡물과 맑은 샘물이 피를 맑게 해주고, 건강한 유기농 생산품이 위를 씻어주고, 향토전통문화가 마음을 정화시킨다”.

거시경제관점으로 볼 때, 농산품이나 공산품의 총생산량이 모두 과잉인 상황에서, 1차산업과 2차산업의 수익은 공히 낮을 수 밖에 없지만, 농촌경제의 3차산업은 다양화한 생태자원과 결합함으로써 생산품과 서비스면에서 차별성을 확보한다. 풍부한 생태공간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개발되지 않은 농촌일수록 도시소비자들의 선호대상이 될 것이다. 즉, 낙후됐던 지역이 오히려 이런 면을 천우신조로 삼아‘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고, 직접 상당히 높은 6차산업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농촌공간자원의 저수익 1, 2차산업을 3차산업으로 전환하여 거대한 부가가치창출을 이룩할 수 있다.

이는 시진핑의 새로운 발전관이 강조하는 ‘청산녹수青山綠水가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라는 구호의 진정한 의미이기도하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농촌의 풍광 <출처: 원문>

이는, 이후 상당히 오랜기간, 마울주민들의 주요한 수익증대영역이 될 것이며, 농촌공급 개혁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2. 농촌공간자원소유자의 위상은 나쁘지 않다. 다만 가격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6차산업수익을 ‘음성적으로 수탈’당하는 것이다

현재 각종 자본의 농촌진입과 투자가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 거론되는 사례가 상당한 대표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Z촌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전통농업마을이다. 2010년 농업구조조정에 따라서, 3천여마지기의 토지에 자두를 심고, 1,600여 마지기에 감귤을 심었다. 2016년 마을의 8명의 리더들이 200마지기의 임야를 저당잡혀서, 대출을 받았다. 향촌여행사를 설립하고, Z촌에 풍부한 과실수를 이용하여, 꽃구경, 과일따기, 각종 오락과 여흥, 식음료 등 여행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2017년 성공적으로 국가공인 3성급 여행지로 인정받게 됐다. 2016년 7월 첫 손님을 받은 이래, 불과 반년만에, 이용 여행객수는 10만명을 넘어 섰고, 2018년 4월에 이르기까지, 연인원 50만명이 방문하여 1,200만위안의 수입을 실현했다.

조사에 의하면, 마을 농촌가구의 수입은 확실히 증가했고, 가장 주요한 수입증가채널은 관광객들의 과수원 과일따기활동이다. 이렇게 판매하는 과일은 근(500그램)당 가격이 시장가에 비해 1~2위안 정도 높고, 동시에 농가는 수확, 수송, 유통 등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밖에도 전체 마을 2천여명 중에 30여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자원수익분배의 불균형 문제가 있다. 관광 경관 조성의 관점에서 볼 때, 여행사는 자기가 직접 경영권을 확보한 2~3백마지기의 토지는, 주로 일반 오락 및 식당공간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박의 실제적 자연 경관을 조성하는 주체는 2천여가구의 마을주민이다. 하지만 수익분배차원에서 볼 때, 여행사가 매년 마을에서 거두는 영업이익은 350만위안위안, 정부의 각종 보조금을 합치면 430만위안에 이른다. 농가는 이러한 관광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과수재배면적이 여행사 사용 면적의 15배정도인데 농가가 여기서 거두는 수입전체를 다합쳐도 여행사 수입의 2배가 채 안된다 (약7백만위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 마을주민중 4.3% 정도가 토지를 여행사에 장기임대해서, 여행산업이 창출하는 향후 수익을 얻지 못한다; 93.87%의 마을주민은 도시민들의 과일따기 참여로 여행 총수입의 52.68%를 획득하고; 1.47%의 마을 주민들은 총수익의 8.93%를 획득한다; 8명의 여행사 투자자는 전체 주민 중 0.4%에 불과한데, 이들이 얻는 수익은 38.49%에 이른다. 즉, 이를 지니계수로 따지면 0.48이 돼 매우 심한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제도함정론자’들은 소유권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지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한 문제도 아니고, 해결책도 비교적 간단하다.

첫째, 농촌토지는 집체에 소유권이 있고, 농촌공간(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지표상하의 일정범위의 일반적 공간이다. 국가가 특별히 규정한 국가소유의 항공공간이나 지하자원이 매장된 지하공간등은 포함하지 않는다)은 농촌토지와 밀접하게 연겯되어 있다. 즉 자연공간과 인류가 생산, 생활을 통해서 형성한 인문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이 독특한 자연과 사람들의 삶의 무늬는 이 공간에 살았던 여러 세대가 생산과 생활을 통해 보존하고 전승해온 것이고, 법리적으로 외부의 제3자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토지의 상하범위가 현행법률체계에서 명확히 표현되지는 않지만 부동산개발산업의 관행적 정의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토지는 지표와 그 상하 일정 범위내의 공간에 해당한다”, “토지의 범위는 삼위입체이다” – 이와 같이 농촌의 실제 상황이든 도시의 실천 경험이든, 농촌 공간자원의 소유권주체가 확립되어 있지 않지만, 공간자원은 토지의 일부분이고 농촌토지는 모두 마을집체 (행정촌이든 자연촌락이든)와 마을 주민들에게 소유권이 나누어 귀속된다. 그래서 토지와 마찬가지로 소유권, 책임수익권, 경영권의 중층적 권리관계를 갖는다.

문제는 농촌공간의 가격결정권에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간의 가격결정문제가 도시와 개발도상농촌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간을 활용한 수익’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방법이며 (심지어 거리의 공공공간조차도 점용되어 임대수익원이 되고는 한다, 그래서 도시의 낙후된 서민주거지역에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서 지어지다 못해서, 길위로 연결된 공간조차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공간가격결정 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부동산 가격은 층, 방향, 통풍, 건물외관, 용적률 등 공간자원의 다양한 면모에 의해서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농촌 공간가격결정에 실패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다. 사회적 시각으로 보면, 농촌은 관계중심사회이다. 각 농가의 택지외에, 대부분의 공간자원은 공유지의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고도의 공공속성 공간자원을 단독으로 분리해서 가격을 매기거나 거래할 수 없다; 현실적 요구로 보면, 1차산업화조건하의 농업 총수익은 높지 않고 공간자원은 토지에 대한 부속성이 크다, 공간자원만 단독으로 가치로 매기는 제도로 전환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전통 농촌에서, 공간자원가격결정은 일반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간가격결정의 실패과정에서, 대량으로 농촌으로 내려온 자본은 농촌의 공간자원을 이용해 3차산업수준의 수익을 얻으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외부투자자들은 농민들에게 토지장기임대에 대한 지대만을 지불하는데, 이 지대는 1차산업의 농업수익수준에서 결정되게 된다. 이는 1차산업에서 3차산업으로 전환하면서 거두는 막대한 수익이 대부분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농촌마을의 풍광 <출처: 원문>

하지만, 청산녹수와 같은 자연자원이 희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산과 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마을사람들은 과거에도 2차산업에 사용된 자원자본을 통해 창출된 개발의 단기이익을 획득한 적이 없다. 이를테면 산을 무너뜨려 광산을 만들고, 강을 파내서 모래를 채취하고, 넓은 토지에 단일종 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과정에서 얻은 수익 배분에서 이들은 늘 소외되어 왔다. 수백년 역사의 인문자원은 수백년 수천년간 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이 지켜온 자원임에도 말이다.

다시 말해서, 공업화시대에도 마을주민들은 청산녹수, 문물유적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뤄왔고, 엄청나게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 왔다. 생태문명의 시대에, 농민들이 여전히 이러한 자연자본의 수익을 분배 받을 수 없다면, 그래서 외부인들에게만 수익이 돌아간다면, 더 이상 이러한 공간자원의 지속가능성을 기약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향촌이 적합한 방식과 비율로 공간의 3차산업화 부가가치를 거두게 해야 한다. 농촌공간의 권리주체를 회복해야 한다. 정당한 소유권자가 수익을 거두게 함으로써 향촌진흥전략 목표의 중요한 내용을 실현할 수 있다.

 

3. 농촌집체조직이 향촌공간자원의 가격결정 주체가 되어야 한다

도시화와 그 반대인 귀농귀촌의 양방향 흐름이 동시 진행되고 상황에서, 농촌공간은 가면 갈수록 독립적인 자원속성을 갖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농촌의 공간자원은 각 농가소유와 농촌집체소유의 공유지로 나뉜다. 그렇다면, 실제 개발과 이용을 위해ㅅ 어느 쪽이 주체가 되어야 할까?

시진핑 총서기가 제안한 ‘소농경제장기화’, ‘집체경제발전’, ‘소농과 현대농업의 결합 메커니즘개발’등의 지도사상에 따르면 소농경제는 오로지 집체경제를 활용함으로써만 현대화와 향촌진흥을 실현할 수 있고, 빈곤을 전면적으로 구축하는 등의 전략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20세기 80년대 농촌에서 토지책임운영제를 실시한 이래, 농촌의 재산세 등 체제개혁은‘탈조직화’라는 흐름을 타고 있다. 농촌집체경제발전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 한가지는 거래수단과 조직을 실현할 구조가 결핍된 조건하에서 집체조직과 집체성원간의 거래 원가가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다. 이 모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농촌의 홍수방제, 수리와 도로 건설 등 사업이 모두 이 문제의 영향으로 지장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가토지의 예상수익이 높아질수록. 혹은 농가의 기본생계상관도가 높아질수록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어려워진다. 만일 제대로 제도 설계를 할 수 있는 ‘스마트한 능력’이 없다면, 토지장기임대를 강행하는 것은 대량의 거래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갈등이 전체 사회안정을 해치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보면, 농촌공간자원은 오래동안 경제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다. 심지어는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대다수의 경우, 무상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개발주체 입장에서는 여전히 거래원가가 낮은 편이다. 비교적 손쉽게 수익을 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행의 난이도로 보건데, 공간자원의 3차산업화 개발이 농촌집체경제의 주요한 성장기반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 일부 지역의 실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농가식당과 같은 각 농가의 분산된 경영방식은 대부분 공간자원의 저효율 사용으로 귀결되고만다. 또, 일단 한번 틀이 짜여지면 업그레이드나 조정이 매우 어렵다. 반대로, 마을 공유지 공간의 공공사용개념은 자원을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공간자원의 이용가치를 극대화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이는 공간자원의 통합성과 배타성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촌토지책임경영제가 장기적으로 불변이라는 조건하에서, 농촌의 자연과 인문공간자원의 가격결정 주체는 집체조직이어야만 한다. 이것은 농촌집체경제를 발전시키고 규모를 확보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기초위에 농민의 수입을 늘리고 농촌에서 빈곤을 전면 퇴치하는 주요한 경로가 생긴다. 농촌집체조직위주로, 제도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또, 이를 통해서, 향촌공간의 다양화를 진행시키는데 있어, 다층적으로 다양한 산업이 융합되고, 합리적인 수익 분배가 진행될 수 있다. 농촌집체화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의 금융시장 (삼급시장)과의 연동, 생태문명시스템개혁과 향촌진흥전략의 결합이 종합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

삼급시장의 구조와 설명에 대해서는 다른 문헌을 (http://thetomorrow.kr/archives/9643) 참고하기 바란다. 간단한 도식은 다음과 같다.

삽급시장 제도의 구조 <출처: 원문>

 

4. 결론

다시 정리하자면, 본 논문의 주요한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촌의 공간은 자원의 속성을 갖는다. 그 경제가치가 과거에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6차산업구조하에서는 잘 드러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증대된다.

둘째, 공간자원의 적정한 가격결정에 실패함으로써, 대량의 농촌공간의 개발수익을 소수의 투자자가 독점하게 된다. 이를 일종의 새로운 형태의 음성적 수탈로 볼 수 있다. 학계와 정책 개발자들은 이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셋째, 제도개혁을 통해서, 농촌집체조직은 농촌공간자원의 내부 최적화를 이룬 후, 대외협력개발의 주체가 된다.

 

보충설명:

본 논문에서 다루는 공간자원은 극단적형태의 비가시자원이다. 하지만 6차산업화의 배경하에서는, 상술한 분석도 농촌 대다수 유형자원의 활용에 사용가능하다. 공간자원외에도 농촌6차산업화 과정에서 자원수익의 음석적 수탈은 산과 숲, 물, 토지 등의 다양한 자원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으며 그래서 이 과정에서의 보편성과 엄정함이 더욱 요구된다. 

 

원문링크

https://mp.weixin.qq.com/s/Dazk5XODMfvAai1Dtzthxg

 

수, 2019/09/2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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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컨설턴트 혹은 브로커, 싱어가 쏘아올린 신호탄

가진 자들의 돈 놀이 분탕질로 변질된 미국의 대입시에 대해 더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 회에 소개했던 ‘504 플랜’이 정작 보통의 미국 일반 시민들에게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입시컨설턴트이자 브로커인 싱어(William Singer) 때문이다. 그는 지난 3월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역사상 최대의 대입시 부정 사태의 주범이다. 싱어는 고객 중 하나인 코네티컷 주의 한 변호사에게 로스앤젤레스의 정신과의사 한 명을 콕 찍어주며 딸을 보내 ‘504 플랜’을 위한 진단을 받으라고 했다. 물론 학습장애 진단 받는 동안은 딸이 “멍청하게” 보여야한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해서 학습장애 판정을 받은 변호사 딸은 수능 시험을 별도의 공간에서 추가시간을 갖고 치렀을 뿐만 아니라 싱어가 고용한 시험 감독관이 틀린 답안지를 즉각적으로 수정해주었다. 연방수사국(FBI)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싱어는 발각을 우려한 의뢰인에게 “모든 부유층이 다 그렇게 진단서를 사고 있다”며, “입시 판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걱정할 것 없다며 안심시켰다.

미국 최대 입시부정사태의 주범 싱어 <출처: 보스톤글로브/게티이미지>

 

싱어, 가진 자들에게 옆문을 열어주다

그러나, 이건(504 플랜) 약과다. 소위 일류대학의 체육코치를 매수해,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여학생을 축구 특기자로 예일대학에 들여보내는 데 부모가 싱어에게 지불한 돈은 무려 1백 2십만 달러(약 14억 원)이다. 그깟 예일대가 뭐라고. 코치에게 돌아간 뇌물은 4십만 달러(약 5억 원). 이를 포함해 FBI가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싱어가 일류대 체육코치, 입학사정관 을 동원해 유명 연예인과 변호사, 기업대표 등 부유층을 상대로 벌인 입시부정에 기소된 사람은 50여 명, 뇌물 액은 총 2천5백만 달러(약 298억 원)이다. 입시부정이란 부정은 총망라 했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 출신의 학원 강사가 수능을 대리로 치게 하거나 시험 감독관이 답안지를 바꿔치게 함으로써 높은 성적을 얻는데 7만5천 달러(9천만 원)를 받았다. 증빙자료 서류 위조는 애교다. 그러나 이번에 기소된 것은 싱어가 벌인 입시부정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61건의 부정입학을 저질렀다고 싱어가 시인했기 때문이다. 의뢰자들에게 많게는 6백5십만 달러(약 78억 원)까지 받아 확실하게 일류대학에 꽂아 넣었다. 실로 제국(가진 자)들의 돈지랄로 썩은 내가 진동하는 미국 대학입시다. FBI의 조사과정에서 싱어가 한 말이 난장판이 된 미국의 입시 운동장의 실태를 완벽하게 드러낸다.

“자기의 실력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굳이 ‘정문’(front door)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면, 일반고 보다 더 나은 학교 출신이기에, 그리고 기부금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뒷구멍’(back door) 입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뒷구멍도 입학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확실한 입학을 보장받길 원하는 사람들이 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내가 새로 뚫은 ‘옆문’(side door)이다”(뉴욕타임스).

 

뒷구멍: 자사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체가 괴리가 있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안전제일’을 써 붙인 공사장엔 안전이 없다. 보스턴 북쪽으로 약 40 킬로미터 떨어진 앤도버란 곳에 필립스 아카데미(Philips Academy Andover)라는 자사고가 있다. “우리는 학생의 성취, 능력, 인성, 그리고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학생을 뽑는다. 그래서 들어온 학생들은 우리가 끝까지 보살필 것을 보장 한다” 학교 홈페이지에 떡 하니 박아놓은 슬로건이다. 나아가 이들은 요즘 누구 때문에 유명해진 ‘블라인드’라는 단어가 들어간 “need-blind admission” 입학 정책을 쓴다고 홈페이지 첫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공지해 놓고 있다. 그것은 “장학금이 필요하단(need) 사람도 마다하지 않겠다(blind)”는, 즉 부모의 재력과는 상관없이 신입생을 뽑겠다는 것을 가리킨다.

과연 그럴까? 이 학교 등록금이 얼마인지 알면 그 답이 나온다. 기숙학생의 경우 연 57,800 달러(약 7천만 원), 아닌 경우가 44,800 달러(약 5천4백만 원)이다. 재학생 중 47%가 장학금조로 보조를 받는다지만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에 버금가는 이런 명문 자사고는 일반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한 학급에 고작 13명, 400여 개의 각종 프로그램을 돌리는 이 학교에 약 1천1백 명이 재학 중이다. 졸업생 중에는 부시(Bush) 부자(父子) 대통령 등과 같은 명사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등록금 비싼 이 학교에 왜 부자들이 몰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거기에 가야 그들 자식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싱어가 말한 ‘뒷구멍’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매우 길다.

미국의 유명 자사고,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교정 전경 <출처: 학교 홈페이지>

 

WASP패권

미국의 고등학교는 대입을 위한 준비기관, 일종의 입시학원으로 전락하지 않는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고등학교가 대학의 전단계로 간주되지 않는 그 나름의 독립된 교육기관으로 인식되어왔던 것이다. 학벌사회가 아니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상류층(제국)은 서민이야 그러든 말든, 뭔가 우월한 존재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 구미를 맞추어 준 것이 바로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학들이다. 일명 아이비리그 학교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그 학교들에 신입생을 대거 공급해 준 곳이 바로 앞서 언급된 필립스 아카데미와 같은 자사고이다. 이들은 아이비리그처럼 ‘8개학교연합’(Eight Schools Association)을 결성해 여전히 아이비리그 절대 공급처(feeder schools)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학교는 ‘대입준비기관(프렙스쿨)’(college-preparatory)을 표방했다. 즉 일반 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을 보내기 위해 더 나은 수월성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비리그 중 특히 ‘빅3’라 불리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대학은 이들 학교에서 대거 학생들을 뽑았다. 1930년대엔 예일대의 신입생 3분의 1이 이 8개교 출신들이었다. 그 결과는? ‘WASP패권(ascendancy)’이다. 백인(White), 영국계(Anglo Saxon), 개신교(Protestant) 출신의 상류층의 패권이다. 말하자면 당시의 미국의 제국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아이비리그이고, 거기에 대거 WASP출신의 상류층을 입학시키기 위한 합법을 가장한 대입시스템이 바로 자사고이다. 수월성 교육이란 미명하에, 그러나 속내는 가진 자들이 패권을 영속시키기 위해 만들고 이용한 것이 바로 자사고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이미지 세탁을 위해 백인이외의 사람들도 간간이 받아들이곤 있으나 여전히 이런 유명 자사고는 제국질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WASP보다는 가진 자들로 방점이 옮겨갔을 뿐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유례가 없는 학벌사회로 향하고 있는 이 때, 이들 유명 자사고에 대한 영향력과 수요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흉내 낸 프렙스쿨들이 우후죽순 전국적으로 성업 중이다.

심지어 일류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입시컨설턴트 자문은 필수, 게다가 자사고를 가야한다는 팁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정도가 되었으니 학벌사회로의 변모가 얼마나 진척 되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유에스에이투데이). 마켓워치에 따르면 현재 아이비리그의 최대 공급처 100개교 중 94개교가 이런 자사고들이다. 그런데 이것의 요체를 바로 인식해야한다. 그것은 싱어가 말한 ‘뒷구멍’이다. 이런 뒷구멍은 오직 가진 자들의 전용문이다. 또 다른 전용문인 기부입학은 여기서 더 이상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Jared Kushner)가 하버드대에 2백5십만 달러(약 30억 원)의 기부금을 내고 들어갔다는 것만 살짝 흘리고 넘어가겠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뒷구멍 입학이 가능한 것은 미국 입시제도 자체의 불투명성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식사랑이란 이름의 불(), 그리고 부와 지위의 대물림입시의 구멍투성이 불투명성

다시 말하지만, 싱어가 말한 옆문과 뒷구멍은 과연 누가 누릴 수 있는가? 가진 자들이다. 일반서민들의 삶과는 괴리된 부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미국의 대입시는 애초부터 이들을 위해 만들어져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 됐고, 그 기울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가팔라지고 있다. 가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저 밑바닥에서 몇 명을 끼워줄 뿐. 극소수의 가진 자들만이 저런 뒷구멍을 통해 슬쩍 입학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웬만한 살만한 자들이라면 너도나도 이런 제국질(뒷구멍과 심지어는 옆문까지 이용한)에 가담하려 드는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이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2009년에 각종 입시부정이 난무한 것에 대해 상세히 보고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참조).

그리고 이 모든 게 표준 시험 하나로 측정하지 않는 불투명한 입시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에 의한 정성평가의 구멍, 그 틈새를 갖고 벌어지는 만화경이다. 그 최대 수혜자는 가진 자들이며, 수혜에서 빗겨난 이들은 ‘빽(?)’도 없고 돈도 없는 자들이다. 그러면 이것이 한 세대로 끝나는가? 결코 아니다. 그 구멍 난 입시는 세대를 이어서 봉사한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한 계층의 이동, 즉 사회이동은 불가능한 사회가 된다. 세습사회의 출현이다(이에 대해서는 후에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SKY캐슬, 드라마는 감상하면서 분노하지 않는.

위에서 보듯 미국의 입시는 애초부터 구멍을 용인하는데서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니다. 입시에 있어 단 1건의 부정 사례도 나오면 안 되는 형편과 구조다. 그런 면에서 공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어느 시점부터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시를 빼고서는 왜 내가 대학에 붙고 떨어졌는지를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국적 불명의 입시컨설턴트와 입학사정관이 새 직종으로 떠오르고 논술이네 자소서네 경시네 봉사네 독서이력이네 추천서네(대부분이 거짓투성이다), 아이들이 학과 공부도 따라가기 힘든데 저런 걸들로 동분서주하게 만들었다(그러니 거짓투성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하는 스펙공화국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라. 아무나 그런 구멍을 이용할 수는 없는 것.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없는 것들이 고개를 내밀 수 있는가? 구멍을 이용해 소위 일류대에 자식을 집어넣을 수 있는 자들은 고액의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범접할 수 없는 스펙(고도의 마사지를 통해 만들어진 거짓)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부와 지위를 가진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돈도 근본도 없는 것들은 그저 일반고나 다녀라.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테니 너희는 너희 길을 가라. 세상이 원래 그런 것!” 상류층의 속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라. 과장해 말하면 온 나라가 대학가기 위해 혈안이 된 우리나라에서 프렙스쿨이 아닌 곳이 특성화고 빼고 어디 있었는가? 그런데 어디서 난데없이 수월성 교육이란 미명하에 특목고와 자사고가 튀어나왔는가? 학력고사 하나면 깔끔하게 해결되던 대입이 어쩌다 수시 등으로 불투명하게 변질되었는가? 이런 의문이 들면 당연히 분노가 일어나야 할 터.

 

교육부 관리와 얼치기 교육학자들의 짬짜미현실을 이기는 이상은 없다

온갖 거짓투성이로 범벅된 수시를 도입하고 기존의 프렙스쿨에 옥상옥 격인 또 다른 프렙스쿨 자사고와 특목고를 올린 것은 교육부 관리와 교육학자들이다. 그들은 획일화된 표준점수로만 선발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이상론에 빠져 눈을 돌린 곳이 미국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 과연 이상적인가? 제국들의 현실적 이기심과 탐욕을 이상이 이길 방법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상으로 미국의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승리는 결국 가진 자와 명망가들의 몫. 그들이 강력한 그들만의 연줄과 부를 갖고 미국의 제국들과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요약하면 입시의 불투명성 가운데 승자는 사교육 시장, 특목고와 자사고, 그것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가진 자들이다(대부분의 교육부 관리와 교육학자들은 여기에 속한다). 소위 일류대가 자사고와 특목고에서 대거 선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자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류대학에 발 들여놓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애처로움이란… 어떨 땐 척박한 일반고에서조차 일류대에 한두 명 보내기 위해 저지르는 반교육적 불법이 스스럼없이 자행되는 이 처절함. 교육 현장에 더 이상 교육이 없는 가증스러움!

 

아이들은 몰모트가 아니다!: 공정과 정의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차악을 택해야

이런 입시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상 그것을 충분히 이용할 처지에 있는 자가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바보로 취급받는 이 부조리함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우리의 아이들은 그 알량한 지식을 갖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을 짜버리려는(겉으론 이상에 맞추었다하지만, 세상에 대한 탐욕에 절어 자행한) 교육부 관리와 교육학자들의 몰모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감히 제안한다. 1980년대 치르던 학력고사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횟수가 문제라면 학력고사를 여러 번 치르게 하면 된다. 그러나 최종 도달해야 할 목표는 아예 무시험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너무나 이상적이라면 일단은 학력고사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위해 차라리 차악을 채택하자. 모든 특목고, 자사고는 폐지해야 한다. 옥상옥은 허락하지 말자. 서열화 된 대학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자. 그러려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방법은 딱 하나. 법인화된 서울대학을 다시 국립으로 전환시키고(굳이 그런 절차 안 밟아도 된다. 형식만 법인이지 정부지원은 그대로이니) 지방의 국립대학과 통합해 운영하고 동일 졸업장 주면 된다. 이를테면 전부 서울대 졸업장 주면 된다. 그렇다면 유명 사립대가 서울대 자리로 간다고? 천만에 말씀, 그것들도 무늬만 사립대학이지 엄청난 정부지원금 받는다. 그것을 끊어 버린다면 사립대도 통합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이 들면 때가 묻고 더러워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한창일 나이 10~20대에 물불 안 가리며 이상을 추구할 기회를 청소년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구엔 정의라는 개념도 포함시켜 줘야 한다. 어차피 공정과 정의는 이 타락한 속세에서는 완전히 실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개념조차 품지 못한 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빼앗는 것은 아닌가? 작금의 벌어지는 입시와 관련된 만화경을 보며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든 기성세대는 반성하고 반성해야 한다. 공정과 정의에 도달 못한다 해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더더군다나 공정과 정의를 밥 먹듯 주창했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참고>

“[동아쟁론]자기소개서 대필로 도마 오른 입학사정관제”, 동아일보, 2012. 8. 24.

김광기, “[경향시평]내신·수능 위주 입시 단순화를”, 경향신문, 2013. 3. 25.

김광기, “<16>미국에선 수능 오류가 없다고요?: [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동아일보, 2014. 11. 27.

“고려고 상위권 학생에 시험문제 유출 의혹.. 징계 요구,” 파이낸셜뉴스, 2019. 9. 24.

“주요 15개 대학 입시, 학생부교과는 6%뿐,” 한겨레신문, 2019. 9. 23.

“조국 딸 10년 전 입시 문제로… 된서리 맞는 ‘학종’”, 한겨레신문, 2019. 8. 28.

김광기,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서울: 동아시아, 2011).

“Actress, Business Leaders and Other Wealthy Parents Charged in U.S. College Entry Fraud,” New York Times, March 12, 2019.

Frank Bruni, “Bribes to Get Into Yale and Stanford? What Else Is New?,” The New York Times, March 13, 2019

“College admissions scam rekindles scrutiny of Kushner’s Harvard acceptance, $2.5M pledge”, USA Today, March 12, 2019

“Panel To Investigate Admissions At U. Of Illinois,” New York Times, June 11, 2009.

How VIPs Lobbied Schools: Duncan’s Office Tracked Politicians and Others, Chicago Tribune, March 23, 2010.

“In Chicao, Obama Aid Had V.I.P. List For Schools,” New York Times, March 23, 2010.

“Here’s What It Really Takes To Get Into The Ivy League These Days”, USA Today, April 26, 2017.

William S. Dietrich II, “The WASP ascendancy,”Pittsburgh Quarterly, Winter 2010.

“Education: Exeter’s 150th,” Time, June 15, 1931.

“College Cheating Ringleader Says He Helped More Than 750 Families With Admissions Scheme,” NBCNews, March 13, 2919.

“Ivy League’s Proving Grounds,” MarketWatch, August 26, 2002.

Lieberman, Joseph I. and Michael D’Orso, In Praise of Public Life, (New York, NY: Simon & Schuster, 2000).

Golden Daniel, The Price of Admission: How America’s Ruling Class Buys Its Way into Elite Colleges and Who Gets Left Outside the Gates, (New York, NY: Broadway Books, 2007).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금, 2019/09/2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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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도에 대하여 언급을 하게되면 단지 불교적 관점만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대단히 관념화된 종교적 개념으로만 이해하기 쉽습니다.

중도는 불교적으로 양 극단(생과사, 고와락, 생과멸, 유와무 등)에 치우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기에 진리는 단지 양 극단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으므로 진리인 일체법이 있기도하고 없기도하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이미지>

따라서 성철스님께서도 중도를 적극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아시고 중도는 ‘쌍차쌍조’라고만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세계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연기적 사건들의 생성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초월적 불변의 실체로서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중도라할 것이며 이러한 사상을 완성한 철학이 용수의 중관사상이라할 것입니다.

그는 ‘중론’에서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단멸하지도 않으며 동일하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라고 설파하면서 연기는 곧 공이자 가명(공 또한 공이므로 가명이다)이고 또한 중도를 뜻하는 것이라고 ‘공가중 삼제설’을 주창함으로써 중도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를 부연설명하면 색은 실체가 아니라 공한 과정으로서 가립된 존재에 불과하기에 특정한 색을 실체로 바라보는 자세를 버리고 전체를 관조하고 수용하는 태도인 중도를 따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교적 의미외에 과학적으로 중도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해석에 의하면 ‘입자의 상태는 파동함수에 의해 결정되며 파동함수의 제곱값은 입자가 존재할 확률밀도이다’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존재의 모든 정보를 담고있는 것을 쉬뢰딩거의  파동함수라고 부르는데 이 함수에는 존재가 선택할 수있는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으나 관찰자는 이중에서 단 하나만을 선택하여 현실태를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찰자는 결코 존재 전체를 파악하거나 실현할 수가 없으며 단지 가능태중 하나만을 발현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결국 타자에대한 인간의 파악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에 불과할뿐 코끼리 자체를 볼 수없다는 근원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은 제한적이며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으므로, 즉 인간 모두는 자신들이 파동함수의 일부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진리 자체는 결코 획득할 수없는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모든 것은 절대 실체가 아니고 단지 변하는 과정일뿐이라는 생성론의 입장에 의하면 영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모두 담을 수있는 표현방법이 없기때문에, 즉 언어의 한계때문에 존재의 시공간적인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만 잠정적이고 가립된 양태만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파동함수이론과 생성론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인식은 존재의 부분만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원초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식을 오랜세월 지배해온 서구의 실체론적 관점에 따르면 강자의 관점을 마치 진리인양 실체화시켜서 변증법이라는 미명하에 약자의 관점을 억압하고 배제시키는 태도를 지속할 수 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도적 자세를 어떻게 상정하여야 할까요?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것은 바로  중도라할  것입니다. 즉, 중도는 인간이 만든 아상(확장  또는 목적지향형)을 여위고 존재의 정보를 모두 담지하는 파동함수 자체를 보는 것(생성과정지향형)이라할 것으로 오늘날 미국과 북한과의 오랜 갈등을 풀기위해서는 미국에의해  왜곡되어온 과거의 역사를 타파하고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게함으로써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하고 먁자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생의 동반자로 한 몸의 유기체를  생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한과 북한, 미국과 북한은 자신들의 관점이 진리이고 선이라는 실체론적 관점을 버리고 상생과 공존을 향한 도정의 동반자로서 공통분모를 확장하고 각자의 극단적 입장을 차단하는 쌍차쌍조하는 자세가 전제가 되어야할 것임에도 작금의 상황을 보면 미국은 실체론의 관점에  의거하여 종래의 지배-복종의 계서적 구조를 구축하려는 모습이 역력히 보이며 나아가 선악의 이분법 관점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자신들이 행한 북한에대한 무시, 봉쇄, 제거, 붕괴 전략의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을 외면한채 무조건 악의 화신으로만 치부하는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움마저 느낍니다.

좀더 부연 설명하면 북한을 쌍차하려만  하지말고 쌍조하려는 균형적이고 중도적인 관점이 왜 보이지 않는지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종국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는 미국의 일방적인 비핵화전략의 일환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남북의 내재적 모순을 극복하는 계기를 만듦과 동시에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진행되어야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으로하여금 최근의 북미 대화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무조건 복무하게하는 관점이 아니라 도리어 한반도평화를 구축하는게 주목적이라는 것을 천명하고 따라서  이를 위해 미국과 북한이 쌍차하고 쌍조하도록 중재자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할 중도의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 국내 정치현실을 바라보면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을 진리의 실체인양 절대화시키며 상대방을 적으로만 설정하는 실체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중도의 생성론에 의하면 보수든 진보든 결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없는 존재론적인 합생체이기에 서로 합생을 도모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결국 모든 정치세력 또한 생성의 동반자이기에 중도적 자세를 가지않는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결코 극복할 수가 없다할 것입니다. 근자에는 검찰 개혁문제로 진보진영마저 서로 극단적 대결양상을 보이는데 이 또한 오랜세월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면서 몸에 벤 적과아의 이분법적 실체론의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서로 상생의 대안을 고민하는 중도적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사회는 생명, 재산, 자유와 같은 실체적 기본권을 넘어서서 기회균등과 과정의 공정등의 절차적 정의를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로  내세우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대적 화두로 앞당겼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차이가 차별로 신분화되어 버리는 한국사회의 모순, 즉 남북모순, 지역모순, 세대모순, 학벌모순, 계급모순, 자산불평등 등이 신분화되는 모순을 근본적으로 혁파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실상을 파악하여 공존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쌍차쌍조하기를!

화, 2019/10/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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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절차는 두 기둥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대리인들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권한을 주는 것으로, 이는 국회나 지방의회의 통제 기능이나 반대의 거부권 기능과 나란히 있는 일종의 통제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대의 기구에 법률안이나 계획을 제출하여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정치인들이 제시한 법제안을 거부하면, 그것을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가지 도구는 확정적 레퍼렌덤과 국민발안권인데 4장과 5장에서는 이에 대해 다룬다.

국민발안권과 레퍼렌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속장치 및 제동 장치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권력층의 정치인들이 사회적인 주요 현안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의향이 없을 때, 발안권은 가속 장치 역할을 한다. 반대로 레퍼렌덤은 정치인들이 어떤 문제를 국민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비상 제동장치를 제공한다. 발안권의 경우, 시민들은 정치권에서 어떤 문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박차를 가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레퍼렌덤의 경우,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들이 “소통하도록riferire(영어로 refer, 곧 ‘관계를 맺고 소통하다’는 의미를 지니며, referendum의 어원이기도 하다─역자 주)”, 곧 어떤 현안에 대해 그들을 대표인으로 세운 이들이 관심을 갖게끔 알리도록 압박을 가한다.

 

“레퍼렌덤”인가
“레퍼렌덤 관련 투표referendary vote”인가?

국제정치적인 논의에서나 정치학에서 “레퍼렘덤”이라 할 때는 항상 레퍼렌덤의 두 가지 주요 도구 (실행결정권과 투표권) 중 하나를 일컫는다. 곧 국회에서 승인된 어떤 규정이 시행에 들어가기 전에 저지하는 것과 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레퍼렌덤”이라는 용어는 어원 상 두 번째 정치 권한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레퍼렌덤 관련 투표(이하 ‘레퍼렌덤 투표”─역자)를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목적으로, 혹은 어떤 정부 차원에서 투표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늘 모두 레퍼렌덤이라고 한다. 일상어에서 이 단어는 투표의 도구와 절차와 행위 모두를 가리킨다.

이탈리아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레퍼렌덤 투표가 있는 국민발안권은 아직 없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제안형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어떤 정치 세력은 그렇게 주장했다). 해외에서 그런 레퍼렌덤 투표는 늘 “국민발안”(스위스)이나 “발안initiative”(미국)이라고 정의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레퍼렌덤 도구이나 투표 모두 레퍼렌덤이라고 하는데, 그 때문에 용어에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이탈리아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형태이다. 이 레퍼렌덤의 권한은 이미 존재하는 법률이나 규정을 폐지할 수 있는데, 그것을 새로운 법률로 대체하거나 이후에 시민들이 정책을 다듬어 제안하는 과정은 없다. 결국 이는 국민발안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곧 어떤 법률의 도입이 아니라 폐지를 위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시민 직접 참여의 두 가지 주요 형태 중의 하나인 확정적 레퍼렌덤과 확실히 구분하기 위하여 투표 행위를 “레퍼렌덤 투표”라고 부른다.

 

시민들의 거부권 행사 권한

“권력은 통제가 필요하다.” 레퍼렌덤을 위한 정치적 권리가 마련된 주요 동기가 이것이다.

새로운 법률은 주권자인 시민에게 알리고 그들이 해당 법률을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세기에 스위스 시민들은 입법 과정에서 자신들이 최종 발언권을 지닐 것을 요구했다. 최소 인원수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선출된 기관에서 승인한 어떤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실시할 권리를 요청한 것이다. 오늘날 이탈리아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거부권 행사 권한을 발효시킬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곧 공화국의 대통령뿐이다. 때로 이 권한은 비상 브레이크에 비견된다. 이 권한으로 시민들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법률을 저지할 수 있다. 확정적 레퍼렌덤이 스위스인들이 가장 많이 행사하는 레퍼렌덤 권한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는 1848년 모든 헌법적 법률에, 1874년 모든 연방법에 도입되었다. 스위스 국민들 중 일부가 연방의회나 칸톤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을 막고자 할 때는 레퍼렌덤을 국민 동의의 시험대로 삼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으로 시민들은 법률 혹은 선출된 기관들이 내리는 행정 명령에 대해서건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 이 도구는 시민들의 손에 대의 기관들을 통제할 진정한 권력을 쥐어 준다. 시민들은 그렇게 단지 선거 때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특정 결정에 개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법을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의 경우, 시민들의 요구가 없이도 국민투표가 개시된다. 대신 선택적 레퍼렌덤은 시민들이 요청해야 한다. 다시 말해 최소 인원수 이상의 발안자들이 정식으로 레퍼렌덤 요청을 제출하고, 짧은 시일내로 필요한 지지 서명을 모아야 한다. 모든 법률에는 주권자가 자신들의 레퍼렌덤 권한을 행사하지 않거나 그것을 요청할 기한(스위스에서는 칸톤에 따라 30~90일)이 경과되지 않을 경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곧 아무도 레퍼렌덤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법이 발효된다.

좁은 의미에서 레퍼렌덤(투표 행위가 아님)은 일종의 동의의 시험대이다. 정치적 대리인들이 바라는 법이나 심의가 시민들의 전반의 동의를 고려에 넣을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때로 시민들이 선출한 정치 대리인들(국회, 주 의회, 기초자치단체 코뮤네 의회)의 결정은 공공연히 국민 대다수의 뜻과 다르다. 시민들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는 법을 채택하는 것은 결국 민주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하다면 그 법률이 발효되기 이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지나치게 장기간 입법 기구를 방해하지 않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입법 의회 쪽에서 어떤 법률를 승인한 후, 시민들(발안 위원회)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투표(혹은 거부권)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최소 인원수의 서명을 모아 국회에서 방금 기각된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 요청을 지원할 수 있다.

그 최소 인원수의 서명에 도달하면, 그 법률은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만일 그 법률이 동의의 시험대를 통과하면 발효되고, 통과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의회로 되돌아 간다. 이후 의회에서 바라는 법률이 국민들의 저지를 받았다면, 법률안은 다시 입법자들에게 되돌아 간다.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으니, 입법자들은 그것을 포기하거나, 더욱 적절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통제 도구를 선택적 확정 레퍼렌덤(협의의 레퍼렌덤)이라고 한다. ‘선택적’이란 것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최고법(헌법)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서명을 모아 요청하지 않더라도 레퍼렌덤 시행이 규정되어, 확정적 레퍼렌덤이 의무적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보통 헌법의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인 개정의 경우, 곧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수정하는 경우, 이와 같은 레퍼렌덤이 규정되어 있다. 이런 경우 시민들은 반드시, 그리고 법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토 재정비나 주요 법적 권한이 국제 조직(예를 들어, 유엔 같은 조직)에 양도될 때 의무적 레퍼렌덤을 실시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스위스와 달리, 국가적 법률이건 지방법이건 정규법 실행에 관한 레퍼렌덤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협의적 레퍼렌덤이 훨씬 오랜 세월 활용된 레퍼렌덤 권리인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도 그럴 것이 오직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사회에 해로울 수 있는 법률이 발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규법의 “비상 브레이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시민들의 이 “자기방어권”은 국회의원 2/3 이상의 승인을 받지 못한 헌법 개정에 대해서만 존재한다(헌법 제138조). 2001년과 2006년, 2016년, 시민들은 헌법의 개정법들을 확정하거나 거부하기 위한 투표 요청을 받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로디(전직 수상)의 개혁을 통과시켰지만(2001년), 베를루스코니의 개혁안은 기각했으며(2006년), 2016년 12월 렌치 정부가 추진한 개혁안 또한 기각했다. 이런 방식의 레퍼렌덤 투표에는 어떤 종류의 참여 정족수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항상 법적효력을 지닌다.

다양한 의무적 레퍼렌덤과 선택적 레퍼렌덤 및 국민발안 등은 잘 작동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두 가지 주요 기둥이다. 다른 도구들은 자문형 레퍼렌덤과 국민발안의 법률 제안이라는 기초적 도구들을 보완한다. 이탈리아에서 일반법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레퍼렌덤 형태인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은 결국 하나의 법률을 폐지하기 위한 국민발안에 불과하다. 레퍼렌덤은 늘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반면, 정치적 결정의 과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그 밖의 참여 민주주의 형태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결정적 중요성이 훨씬 떨어진다.

 

투표에 부칠 법률에 따른 확정적 레퍼렌덤 종류

이탈리아의 법률 제도는 단순히 국회의 과반수 이상으로 승인된 헌법 개정의 경우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선택적 확정 레퍼렌덤(이탈리아 헌법 제138조)을 시행한다.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의 “정부 구성 법률들”에 대한 확정적 레퍼렌덤. 여러 현provincia 의회 소속 의원들의 1/5 혹은 유권자의 1/50의 요청에 따라 선거 제도와 직접 민주주의에 관한 주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을 실시할 수 있다. 알토아디제 주에서 2014년 2월 9일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적용”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 시행되었다.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의 여러 기초자치단체 의회에서 당 기초자치단체 법령을 개정할 경우 거주 시민들이 확정적 레퍼렌덤을 요청할 수 있다. 2015년 발효된 기초자치단체 법령 관련 단일 문서는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권의 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으며, 몇몇 기초자치단체 (말레스, 아나우니아)에서는 그 권한을 당 의회의 승인을 받은 다른 모든 조례들에까지 확장시켰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국가적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해서나 주의 일반법 혹은 주 법령regional statutes에 대해서도 확정적 레퍼렌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에는(제123조) 주의 행정 명령 관련 법률 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권리가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사후事後 레퍼렌덤의 한 형태로서, 주 차원의 모든 레퍼렌덤이 대부분 그렇듯이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어떻게 투표하는가? 국민 레퍼렌덤에서는 대개 아직 투표소에서 투표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나 독일 등 여러 나라와 미연방 여러 주에서는 일반 우편을 통한 투표 또한 허용함으로써 시민들 대다수가 우편시스템을 활용하여 투표한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개 레퍼렌덤투표로는 다음의 방법들이 있다.

▪총회(강당에서 거수 투표나 투표함에 비밀 투표)

▪투표함(투표하는 일요일)

▪우편 투표(우편시스템을 이용)

▪전자 투표(인터넷)

▪마지막 3가지 형태(투표함, 우편, 인터넷)의 혼합형

스위스에서 단 두 칸톤(주)들만이 아직도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스위스의 칸톤 차원 주민 총회─역자 주)”를 실시한다. 이는 주 단위로 열리는 모든 시민들의 연례 총회로서 입법 기능이 있으며, 거수로 법률과 추정 예산안을 승인한다. 그러나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의 70%에서는 기초자치단체 단위 집회에 참석한 모든 주민들의 투표(열린 투표나 비밀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어쨌든 레퍼렌덤 투표에서 스위스 사람들 대다수가 아직 우편으로 투표한다. 또한 2015년부터 해외 거주 스위스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자로 투표할 권리를 갖는다. 이 권한은 2019년에는 모든 스위스 시민들에게로 확대될 터인데, 이 해부터 스위스인들은 세 가지 투표 방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그 외에도 전통적인 “란츠게마인데”(단 두 칸톤에서)와 결정을 위한 시 총회(작은 기초자치단체에서)에 직접 참여한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월, 2019/10/0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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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회에 걸쳐 일대일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살펴보았다. 필자가 분석한 대로 만약 이 같은 가능성이 실제로 현실화 된다면, 이는 당연히 미국이 주도하는 현 국제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번 호에는 이 문제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자.

먼저, 냉전체제를 빌려 미국이 자신이 주도하는 패권적 국제질서를 완성하였듯이, 일대일로는 신 국제질서 수립에 있어 ‘냉전체제’와 같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배경내지 시대정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게 됨을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계적 규모에서의 일대일로사업의 추진은 국제질서의 중심 주제를 ‘정치와 이데올로기’로부터 ‘경제와 건설’로 확실히 전환시키는데 있어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탄생은 반드시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자신의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된다. 냉전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국제문제의 가장 주요한 이슈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종전 후 전쟁으로 파괴된 기존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서유럽 각국 내의 계급투쟁이 격화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냉전체제는 우선 각국의 일국 내 계급투쟁을 국제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격상시킨 후, 다시 이를 군사집단화한 양대 진영 간의 대립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통해 성립하였다. 이 같은 냉전체제의 형성은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성립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은 무엇인가? 그것은 앞서 ‘주요모순’과 관련하여 지적하였듯이(일대일로―지속가능성(1)참조),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균형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세계 대다수 국가가 장기간 경제 불황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세계경제의 불균형과 만성적 경제위기에 대해 마땅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세계 각국에게 있어, 나름의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일대일로는 광범위한 개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의 지지와 참여를 유발하는 강한 동기를 갖는다. 이미 122개국에 이르는 일대일로 협정에 서명한 국가 수가 이점을 말해준다. 이렇게 되면 일대일로 사업이 지속성을 갖고 발전해 갈수록 경제문제가 정치와 이데올로기 문제를 밀쳐내고 국제사회의 중심 이슈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수립된 것이었다. 냉전이 처음 시작될 무렵 그러하였으며, 19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아직 그 같은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관계가 경제와 건설을 중심으로 확고히 변화될 경우에는 미국 중심의 이러한 패권적 국제질서는 해체의 운명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먼저 이념적 측면에서 그러하다. 일대일로는 앞서 소개한 바대로 ‘평등, 호혜, 평화공존’을 기본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건설이라는 그 기본 성격과 관련이 있다. 즉 일대일로는 지속적인 상호 경제발전과 협력가능성에 유념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한편으론 시장법칙과 비교우위론을 강조하면서도, 또한 약자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함께 어울리도록 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미국이 이끄는 현 패권질서는 불평등, 일방성, 내정 간섭 등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는 후자의 정치적 성향 그리고 그것이 발 딛고 있는 국제독점자본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일대일로는 이념적으로 지금의 미국 중심 패권질서의 그것과 극명하게 대립되며, 이에 따라 후자를 우선 이념적으로 해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으로, 현 정치·군사 동맹체계의 해체와 관련하여서도 그러하다. 이것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떠받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일대일로의 주 사업인 ‘경제건설’은 처음에는 이러한 미국의 동맹체계와 부자연스러운 병존 시기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차츰 그것들을 내부적으로 해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예컨대 한미일 동맹체계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일대일로 사업의 진일보한 발전에 따라 그것은 내부적인 이완작용을 경험하면서 차츰 성격이 변모하게 될 것이며, 결국은 무력화되어 해체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동참의사를 표시하였다. 이에 따라 일정기간 두 나라는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서 일대일로에서의 경제협력과 한미일 군사동맹이 병존하는 국면을 추구하겠지만,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한중일 삼국 간의 경제협력이 깊어질수록 사실상 한미일 군사동맹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미 기존에 일방적으로 미국에 쏠려있던 일본의 태도가 최근 바뀌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아베정권은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를 진척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중미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중립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경제위주의 일대일로는 미국의 동맹국들로 하여금 ‘정경분리’라는 과도기적 혼란 상태에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냉전시대의 유물인 군사안보적인 배타적 동맹체계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을 더욱 노정시킴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동맹체계를 무력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미국 패권질서의 해체과정이란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요소의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대일로는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다음 몇 가지를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국가역량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그간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의 역사를 보자면 모두 ‘전략적 핵심 국가’ 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였으며, 그 기초위에서 다른 동맹관계 등을 통해 외연이 확장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냉전체제에 있어 미소관계이다. 마찬가지로 현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의 해체와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상대인 중국의 성장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일대일로는 안팎으로 중국 국가역량의 지속적 강화를 보장해준다. 즉, 대내적으로는 자체 그간 40년간의 중국 개혁개방의 새로운 차원의 발전이며 종합적인 청사진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에너지자원과 국제 무역통로의 다변화를 통해 미국과 서구 동맹세력의 전략적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이상 제2회, “일대일로 연혁과 취지” 참조)

둘째,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추진하는 주도 국가는 반드시 그 영향력을 지역적 차원을 넘어서서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일대일로는 중국의 영향력이 주변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컨대 그 포괄범위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제도, 남미 등 거의 전 세계에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해결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추진 주체 중 하나인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참여국의 각종 항구시설의 장기적인 이용 권리의 확보, ‘상하이 협력기구’, ‘50+1’(중국-아프리카국가 협력기구) , ‘10+1’(중국-동남아국가 협력테이블), ‘16+1’(중국-중동부유럽국가 협력기구), 브릭스 등을 통해 이 같은 ‘영향력 확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다. 물로 여기서 ‘상하이 협력기구’나 ‘브릭스’는 일대일로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일대일로 전략이 추진된 이후 이들 기구들은 이 전략 속에서 재배치되고 새롭게 의미 지워지면서 일대일로 사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추진 주체들은 유엔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을 통해 이 ‘영향력 확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일대일로의 평등과 호혜에 입각한 경제교류는 개도국에 대한 기간산업, 교육, 산업분야의 투자를 불러 일으켜 개도국의 경제발전의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이리하여 이들의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며, 이는 서구와 미국 패권질서에 분명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 GDP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주는데, 이와 함께 세계 다른 지역 특히 개발도상국가와의 성장속도에 있어서의 차이가 커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컨대 2000년 세계와 개발도상국가의 GDP성장률은 각기 미국의 1.24배와 1.5배 이었는데, 2007년에 이르러선 1.69배와 2.48배로 확대되었다. 미국 GDP의 성장률과 세계 평균수준과의 차이가 커짐에 따라,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아래 표는 신흥경제권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증가 추세를 잘 말해준다. 2015년에 이미 50%를 넘어섰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증가추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현재 국제관계에 있어 주요 국가 간의 역관계에 심각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국제질서의 큰 변화가 예견된다는 사실이다. 2013년 이후 일대일로 사업의 본격화로 개도국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그들 국가의 낙후된 인프라가 점차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개도국들의 경제성장 속도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며 미국 경제의 상대적 축소는 가속화 될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일대일로 사업의 발전은 현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을 가져오게 된다.

목, 2019/10/1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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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발안의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폴리스에 뿌리를 둔다. 폴리스에서 투표권이 있는 모든 시민들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새로운 법안을 제안할 수 있었다. 현재 여러 헌법에 이 권한이 존재하지만, 시민들이 낸 제안을 국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다른 시민들이 낸 제안에 대해 투표할 권리 또한 갖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국민발안, 혹은 단순히 “발안”은 확정적 레퍼렌덤과 나란히 직접 민주주의의 두 번째 기둥을 이룬다.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국민발안권은 1891년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 외에도 미연방 주의 거의 절반 가량에 이 권리가 현존한다. 국민발안권은 대의민주주의에서 모든 입법 권한이 대의원들에게 위임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제안권을 되돌려 줘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대의 기구에서 시급한 현안을 직시하지 않고 절박한 문제에 대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지 못하거나 그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한 법을 발효시킨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거의 모든 정치적 권한을 선출된 대의원들에게 위임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이 위임한 의원들이 재직 기간 중에 누리는 무한정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개입 도구가 필요하다.

국민 혹인 시민들의 입법 발안은 이탈리아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다. 이탈리아 헌법 제71조 2항에 따르면, 입법 발안권은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있다. 국민발안으로 평범한 시민들도 주도권을 발휘하여, 법률 제안이나 적어도 하나의 법안을 위한 지침의 초안 작성 작업을 할 수 있으며, 나중에 그 법안은 국회에서 명확한 법률로 제안될 것이다. 이후 일정 인원의 시민들이 각자 서명으로 그 제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나면, 그것을 대의 기관에 제출할 수 있다. 필요한 서명인 숫자가 채워져 제안서를 국회에 전달했으면, 이를 일정한 기한 내에 다루어야 하는 것이 의무로 정해져 있다. 그 제안이 국회의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현행법에서는 어쨌든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가지 못한다.

국민발안권 덕분에 정치 권력은 (법률 제안과 요청과 관련하여) 정치 계급에게만 귀속되지 않고 시민들에게도 귀속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 국민입법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 레퍼렌덤과 더불어 통제권으로서 국민발안권은 “직접 민주주의의 쌍두마차”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국회와 시민들 외에도 각 주 또한 입법 발안권을 갖는다. 어쨌든 이 경우에도 늘 선출된 정치인들이 그 권리를 행사한다. 각 주나 시민들의 법률 제안을 의회가 기각하는 경우 레퍼렌텀 투표를 요청할 권리가 없다.

국민발안권은 시민들을 입법자로서 행동하게 한다. 이 권리로 시민들은 방치된 정치 현안에 대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개혁을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도 있다. 스위스 법에서 국민발안권은 오직 헌법이나 칸톤 법령만을 개정할 수 있다. 10만 명의 시민들이 서명으로 그 발안을 지지해야 한다. 발안이 국회나 칸톤의회에서 퇴짜를 맞는다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직접 표현할 권리를 갖는다.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한 발안이라도 여전히 유효하다. 새로운 논점이 정치 의제로 제안되어 모두가 그에 대해 토론하게 되고, 결국 국회는 이에 반응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레퍼렌덤 투표는 긴 공공 토론과 그에 따른 제안의 발안자들과 대의기구 정치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협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의회나 주 의회, 기초자치단체 의회는 잘 법제화된 직접 민주주의 절차에서 항상 토론과 의견을 피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시민들이 국민발안권을 이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는 어떤 대의기구(국회 등)가 시민들이 내놓은 제안에 대해 해당 기구 의원 과반수 이상의 승인을 얻는 방식을 통해 대의기구 자체의 대응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의회와 발안위원회 간의 일종의 협상 단계로 넘어간다. 만일 타협안에 이르지 못하면, 시민 제안이나 의회의 반대 제안 모두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간다. 대체 제안이라는 착상은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에도 시행할 수 있는데, 이를 “건설적인 레퍼렌덤constructive referendum”이라고 한다. 의회가 원하는 법률에 대한 거부권 행사 요청에 대해 시민들은 대안적인 법제안을 덧붙여서 모든 이들이 이를 투표로 결정하게 할 수 있다.

특별 법령이 있는 두 주(발레 다오스타와 트렌티노 알또 아디제 자치주)를 제외하고 이탈리아에는 국민투표(사전事前 레퍼렌덤)에 부치는 국민발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국민발안의 법제안(이탈리아 헌법 제71조 2항)에 대해 특정 기한 내에 이 제안들을 다루어야 할 의무가 없고, 레퍼렌덤 투표 제안 권한이 없으니, 실질적으로 국민발안 제도가 무용지물이다.

 

그 밖의 시민들의 직접 참여 권리들

다양한 헌법 체제에서는 여러 부차적 권리들로 말미암아 시민들은 정치 기구를 상대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가끔 자문형 레퍼렌덤을 시행하는데, 한 기관이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여론 조사와 비슷한 참여권의 한 형태이지만 인구 표본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묻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시민들의 여러 입장이 잘 드러난다.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나라에서는 그러한 “자문형 레퍼렌덤”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은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권리가 허락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청하는 것으로 국한된다면, 레퍼렌덤이나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저 여론 조사나 심의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두 가지 주요 도구─입법 국민발안(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법안, 곧 “국민 입법” 안)과 레퍼렌덤(어떤 법률에 대해 사전 통제 투표나 법률 발효 조건으로서의 투표)─외에도 정치 권력에 대해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고 시민들을 심의 행위로 이끌지도 않지만 보완 기능을 하는 다른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이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1) 자문형 국민 레퍼렌덤: 투표권을 지닌 모든 이들의 국민투표로서 법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자문적 여론 조사와 다름없다. 이런 종류의 투표는 시민들이나 선출된 기관 주도로 특정 주제에 대한 여론의 향방을 부각시킬 수 있다. 투표 결과는 대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지배적인 국민 여론의 시각과 방향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다. 스위스와 미국 및 독일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레퍼렌덤 도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이 없다.

2) 국민발안의 법제안(국민투표 없이): 이는 주 의회나 현provincia(이탈리아의 주 단위 하부의 지방 행정 단위─역자 주) 의회에서나(일정 인원수의 서명으로) 혹은 의회에서(5만 명의 서명으로) 시민들이 작성한 법안을 투표에 부칠 기회이다. 정치 기구 편에서 승인할 의무가 없으며, 입법 의회 쪽에서 논의의 결과가 어떻건 레퍼렌덤에 대한 회부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국민 입법 발안과는 다르다.

3) 청원은 시민들이 특정 정치 기구에 하는 공식적인 질의 요청으로서, 해당 정치 기구는 일정 기간 안에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4) 정치 직위 소환권: 좁은 의미에서 이 절차는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에 속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민들이 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정치적 권리 보장 도구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연방의 몇몇 주와 스위스의 몇몇 칸톤 그리고 최근에는 루마니아(2007년)와 베네주엘라(2005년)는 최소 인원수의 시민 서명을 모은 후 국민들의 결정을 통해 선출된 정치인의 직위(대통령, 주지사, 장관)를 박탈할 기회를 유권자들에게 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레퍼렌덤 권리는 늘 법의 틀 안에서나, 행정 기관에서 결정된 행정 조례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정 정치적 현안이나 프로젝트에 관련된 결정을 가리킨다.

 

직접 민주주의, 소수자들 및 기본권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투표한다. 유권자의 과반수가 결정하며, 패배한 측은 투표함에서 나온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독재”인가? 직접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두 종류의 소수자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어느 레퍼렌덤 제안의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이 소수자가 된다. 국민투표에서는 국회에서의 다른 모든 투표가 그렇듯이 지지나 반대 모두 소수 의견이 될 수 있다. 곧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누구나 한 번은 승자가, 다음 번에는 패자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구조적인” 소수, 곧 종교적, 민족-언어적 소수나 성적 성향에 따른 소수, 장애를 지닌 소수자들이 있다. 바뀔 수 없거나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사회적 특질에 따라 규정되는 소수자들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종종 특정 보호시스템과 특질에 따른 차별 금지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는 헌법 제6조에 입각하여 인정된 종교적 소수자로서 발데제 복음교회 신자들과 이슬람교 신자들이 있으며, 13개의 언어적 소수자들이 있다. 그러나 살충제를 사용하는 농부들과 견주犬主, 오프로드 오토바이족이나 흡연자들 같이 “인정된 소수자”는 없다.

국민발안의 모든 법률을 제안할 때는 구조적 소수자들이 향후에 잠재적으로 겪을 수 있는 기본권이나 반차별법 침해 가능성을 조사한다. 어떤 국민 제안의 승인을 투표에 부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파기 법정Court of Cassation(일종의 최고재판소─역자 주)이나 주의 경우 주 위원회가 코무네의 경우 보장위원회가 담당한다. 레퍼렌덤 투표 이후에도 그 결과는 직접 관련자들이 제기하여 헌법재판소에서 논의할 수 있다. 향후 헌법과 양립할 수 없는 조항들은 발안자들과 국회 사이의 협상 과정에서 기각될 수 있다. 그 어떤 경우에든 헌법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인권과 근본적 자유에 관한 관행에 따라 보호받는 권리들에 기반한 법리는 레퍼렌덤 투표로도 손상될 수 없다.

스위스에서 실시된 소수자들(종교, 민족, 성적 성향, 외국인 등)에 관한 레퍼렌덤 투표의 숫자도 이를 증명한다. 1866년에서 2003년 사이 577건의 연방 차원의 투표가 등록되었다. 사안들 중 단 7건만 종교적 소수자들의 권리에 관한 것이었고, 3건은 외국인들과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이들의 인권에 대한 것이었다. 더욱이 단 한 차례의 투표가 동성 커플을 인정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요건대, 150년 간 “구조적” 소수자들에 대해 45건의 연방 투표가 등록되었다. 다시 말해, 시행된 전체 투표의 8%가 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모든 투표가 관련 소수자들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동성 부부의 혼인 등록을 도입한 스위스의 연방법은 유권자들이 승인한 것이다. 확정적 레퍼렌덤에 관해서는, 연방의회나 칸톤의회가 스위스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개선안의 42%가 논쟁을 불러일으켜 나중에 유권자들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러나 이는 곧 그런 내용을 담은 연방법의 58%에 대해 시민들의 논란이 없었고, 그러므로 시민들은 외국인들의 권리를 위한 개혁에 동의했음을 보여준다.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해 있었던 45건 투표의 대부분이 레퍼렌덤이었다. 곧 국회에서 선포한 어떤 법령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시민들이 소수민들의 인권을 악화시키는 제안을 하는 국민발안은 매우 드물다. 1866년에서 2014년까지 150년 동안 소수민에 대해 적대적인 국민발안은 20건 미만이었으며, 이 발안 중 단4건 만이 승인되었다.

▪1893년 유태인 및 이슬람교도의 학살을 금지하기 위한 국민발안
▪2009년 이슬람교 사원의 첨탑 건설에 반대하는 국민발안
▪2010년 외국인 범죄자들의 추방을 위한 국민발안
▪2014년 “집단 이민”에 반대하는 국민발안

그밖에 소수자들에 관한 국민발안은 스위스 국민들에 의해 모두 기각되었다. 예를 들어, 안전이 보장된 제3국 출신자들을 정치적 망명 요청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UDCUnione di Centro(중도파 연합)의 발안이 그렇다. 전 국민 중 외국인의 비율을 18%로 제한하려는 2000년 이민 법령을 위한 UDC의 법률 제안에도 같은 결과가 뒤따랐는데, 유권자의 단 36%가 이 국민발안을 승인했다. 오늘날 스위스에서는 2백만명 이상의 거주민들이 외국인들이다(2017년 외국인 비율 25%). 이들 중 15.4%는 외국인들 가운데서 가장 큰 그룹을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이다. 이 제한 비율은 이탈리아의 제한율보다 2.5배가 더 높으며, 유럽연합 평균보다는 4배가 더 높다.

스위스 시민들은 직접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여 그 틀 안에서 시민들이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 유일하게 제한된 것은 헌법과 관련된 사항이다. 그러나 스위스에는 헌법과 양립할 수 없는 국민발안 레퍼렌덤 사안에 대해 가부를 깨끗이 결정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발안의 주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하며, 직접민주주의의 실행에서 국민이 주권을 갖는다.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종종, 만일 시민들에게 막중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 결정하도록 한다면 끔직한 일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며 두려워 한다. 그러한 가설의 실례로 2016년 영국에서 있은 브렉시트Brexit에 대한 레퍼렌덤을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이전에 여러 나라에서 있었던 국가의 유럽연합 가입에 관한 레퍼렌덤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는 한편으로 시민들을 정보도 갖추지 못하고 포퓰리즘의 슬로건에 선동되는 “조종당하기 쉬운 사람들”로 여기고, 다른 한편으로 의회는 늘 소수민들의 권리를 의식하고 있는 계몽된 현인들의 장소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의회의 현실은 이와 달리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이런저런 종류의 소수자들을 희생하여 결정을 승인한 예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이건 정치적 대의원이건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할 권리가 있다. 결국 시민들이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해도 어쨌든 그들은 기본권과 최고 법률의 보호를 받는 소수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 레퍼렌덤으로 비준된 모든 결정은 국회에서 승인된 법률과 마찬가지로 헌법이나 해당 국가에서 비준된 국제법 및 유럽 인권선언과 양립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탈리아 헌법 제3조 1항과 제6조는 모든 소수자 차별과 인종이나 언어, 종교, 성별 및 정치적 신념에 따른 차별을 금한다. 인권에 대한 유럽 협정과 유럽 사법재판소의 판례법 또한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한다. 대개 모든 서구 민주주의 헌법은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며, 인종, 종교, 성별, 사회적 신분, 성적 경향, 정치적 신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

미국에서는 국민발안에서 나온 여러 법규가 연방 헌법에 위배되어 시행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의 “14번 제안(proposition 14)”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법안은 유색 인종에게 불이익을 주는 부동산 주인의 손을 들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유권자들의 승인을 얻은 그 제안은 미국 최고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또 다른 이들은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참여 정족수를 제안한다. 소그룹이나 급진 정당은 극단적인 레퍼렌덤 사안을 위해 그들의 추종자와 호감을 갖는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관심 없이 집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스위스와 미국의 체험에 따르면 소수자 관련 사안들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는 평균 이상의 참여율을 나타낸다. 지지자들의 동원은 반대자들의 행동을 자극한다. 최상의 보호책은 높은 수준의 열린 정치 토론을 하는 시민 사회이다. 이런 올바르고 평화로운 정치적 대질confrontation 문화는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촉진된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모두의 의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진지하고 평온한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목, 2019/10/2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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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820년대 이후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유럽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뒷마당’으로 전락할 처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미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 선언으로 북미 이남의 아메리카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을 확보했으며, 20세기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라틴아메리카는 없었다. 쿠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의 신식민지가 되는 과정이 독립과 함께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며,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카메라를 보며 ‘한국식(?)’ 인사를 하는 쿠바의 발랄한 청소년들의 모습(2018. 07).

쿠바의 독립은 1898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으니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셈이다. 1860년대 이미 세계 설탕 공급량의 3분의 1을 생산하며 미국과의 교역이 확대되고 있었고, 주요 교역국이 이제는 스페인이 아닌 미국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은행가들은 쿠바의 독립전쟁이 한참이던 19세기 말 전쟁의 혼란을 틈타 설탕 밭을 모조리 사들이며, 철, 니켈, 망간 등과 같은 광업 산업까지 매점, 쿠바 경제를 장악해갔다.

이로써 섬의 경제를 독점한 미국에게 이제 스페인을 아메리카에서 몰아내는 일은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기실 쿠바의 독립은 미국이 스페인을 상대로 치른 미서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완성되었으니, 카리브해 섬의 독립은 이제 미국의 ‘승인’을 필요로 했다. 독립 직후 제정된 쿠바 헌법에는 이른바 “플랫 수정안”을 추가하며, 이제 미국은 쿠바 공화국을 내정간섭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보장받았고, 신식민지의 시대를 열었다.

쿠바 경제를 장악한 미국 자본가들은 섬의 토착 지배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착취경제를 이식해 나갔다. 수출 단일 작물인 설탕 산업은 미국의 독점자본과 국내의 소수 매판 자본가들과 대토지 소유자들, 그리고 군부독재 정권과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며 쿠바 민중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미르의 지적처럼 신식민지 쿠바에서 미국 자본의 이익을 보장함과 동시에 쿠바의 소수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는 소위 ‘계급적 동맹’을 이룬 경우였다.

미국의 반식민지 상태에서 쿠바 민족주의는 고조되었으며, 단일 작물 수출경제에 기반을 두는 대형 플랜테이션 경제는 다수의 빈곤한 노동계급을 양산하며 농촌사회를 붕괴시키고, 도시는 급격하게 슬럼화되었다. 반면에 아바나는 수천의 미국인들과 부유한 쿠바 소수 기득권층을 위한 요트 클럽과 같은 폐쇄적인 사교 시설들로 넘쳐났다. 당시 쿠바 전체 인구의 3% 미만이 수도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2/3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였고 그마저도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 같은 다수의 빈곤과 극단적인 불평등이 1959년 쿠바 혁명이 반제국주의적인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는 직접적인 배경이다. 계급적 요구를 담은 쿠바 혁명의 급진적인 사회개혁운동은 쿠바 민중들을 수탈하는 토착 지배세력과 계급적 동맹을 맺은 미국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며, 반제국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1959년 혁명은 당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던 미국의 지배와 토착 지배계급의 수탈에 응답한 쿠바인들의 저항이었고 그들의 자주적 선택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쿠바 사회주의에 대한 갑론을박은 뜨겁다.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 운동은 소위 노동계급 중심의 이론에 익숙한 서구 중심의 마르크스적 혁명 공식에 빗대어 비판을 받아왔다. 19세기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서유럽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등장한 사회주의 운동 이론이 20세기 쿠바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서 그대로 유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이론은 현실을 지배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론과 현실을 가능하게 했던 구체적 현실들이 이제는 거꾸로 이론의 ‘노예’가 되고 있다고 일갈한 베네수엘라 인류학자 사노하(Sanoja)의 지적은 새겨 볼 만하다. 특정한 사상이나 철학이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심지어 그 현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이는 19세기 이후 유럽 자본주의 발전으로 나타난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현실이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의 현실적 토대가 되었다면, 약 100년 후 쿠바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정치적 조건은 유럽의 그것과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바 혁명은 반자본주의적이고 동시에 민족주의적이었다. 민족과 계급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였고, 피델의 주장처럼 “1959년 혁명은 역사적으로 고착된 쿠바인들에 대한 착취와 횡포의 역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바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소위 21세기 현존하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 말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끝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사회주의가 더는 설 자리가 없는 듯했다. 동구권 국가들과 동맹을 이루고 있던 쿠바의 미래도 이와 함께 불투명해 보였음은 물론이다.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도 역사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시대였다.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그 정점을 찍기 시작하는 19세기 이후부터 줄곧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많은 이들에게 실천과 행동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반면, ‘자유’와 ‘시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자본주의 질서는 마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유일한 체제라는 공식을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체의 활동들은 ‘자유’를 부정하는 불경한 일로 매도되었으며, 동시에 사회주의는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쿠바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 인식의 기저에 흐르는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 예로, 쿠바 보건의료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쿠바 사회가 억압적인 사회주의 체제라서 가능했다거나, 국제의료활동은 쿠바 정부의 내정실패와 인권유린 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 등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과연 쿠바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적 독재정치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는 체제일까. 우선 체제의 정치적 성격을 논하기에 앞서, 쿠바의 독특한 보건의료시스템을 통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동체적 가치와 합의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 같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쿠바의 보건정책의 핵심은 무상의료라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제공되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은 보편적 권리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쿠바의 의료서비스는 지급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혜택받는 상품이 아니며, 모든 쿠바 국민은 이를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권리”로서 받아들인다. 즉 개인만의 권리가 아니라 동등한 “모두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같은 명제가 함의하는 바는 현재 쿠바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권리와 의료 불평등의 최소화를 추구한 전략으로써 쿠바의 보건의료는 지역사회의학 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 모델의 주요 목적은 지역사회 공동체의 건강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들의 책임의식과 참여, 수동적인 수혜자가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이자 기획자로 주민들의 역량을 높이는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보건모델은 개인과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형성될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과 같은 보건 의료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었으니, 이 모델이 쿠바 지역사회를 개인이 아닌 “이웃 사회”가 만들어지는 기제로 작용했을지, 혹은 그 역으로 쿠바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이 이 같은 의료시스템을 안착시킬 수 있었던 사회적 자본이었을지에 대한 인과관계는 조금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쿠바의 지역사회는 여전히 이웃 간의 정이 훈훈했던 과거 우리 시대의 많은 일상과 닮았다는 점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보건의료정책이 높은 의료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묘책의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대목이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쿠바의 지역사회에서 보건의료의 일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면 어떨까 한다.

화, 2019/10/2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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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자본주의는 그 발전도상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중소제조업 현장의 목소리는 대부분이 죽는 소리들이다. 원청/하청관계, 부품제조와 제품생산을 막론하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장기적 불황 상황에서 쉬운 분야는 아무데도 없다. 하지만 최저임금, 52시간 노동에 대처하는 방식에 이 정부의 산업정책은 없다. 소위 ‘4차산업혁명’,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산업의 독립… 단선적이고 대기업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GDP 기여 비중이 30%가 넘는 유일한 산업국가이고 고용에서도 20%를 넘는 몇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특히 고용과 관련하여 중소제조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 비교대상인 독일,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무 대책없이 산업현장을 내버려두어 중소제조업의 살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고용의 기반도 무너지고 전체 산업의 기반이 망가져 버릴 것이다. 중소제조업은 지금 기로에 있고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도 기로에 있다.

이는 노동자집단의 미래와도 관련된 문제이다. 최대 30%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해내는 구조적인 문제를 내버려 놓고서는 30시간대의 주간노동과 동일노동/동일임금으로 가는 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중소제조기업의 경영주 입장에서 보자면, 전체적인 불황 국면에서 살아남을 방도는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비중을 줄이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자동화 시도나 설비의 증설은 대단한 모험이기는 해도 물량은 줄어드는데 단가압박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막판에 몰려 살아남는 방법을 구하는 노력이라도 해 보아야지 않을까? 더욱이 Industry 4.0 – 자율주행 바람과 자율공장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에 중소제조업 경영주들이 어떻게 바람에 맞설 수 있겠는가?

 

2. 한국 중소제조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리먼사태와 이명박/강만수 체제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 대비 중소제조업의 임금비율은 100대 30으로 고착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생산성과 임금의 틀을 깨뜨리는 방법은 오로지 중소제조업의 생산성의 향상 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은 생산성대비 결코 낮지 않다. 다만 이것이 환률의 인위적인 조정을 통해 대기업에 쌓인 부를 사회적으로 순환시키지 않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분배해서 벌어진 일이다.(그 과정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협력업체, 하청중소제조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중소제조업은 그 적은 돈에 걸맞게 낮은 생산성, 낮은 임금에 적응해야 했다. 단순직 위주, 단순공정만 하청받는 방식, 외국인 노동자…

하지만 지금 외부로부터의 충격, 최저임금, 52시간 노동, 그리고 Industry 4.0과 스마트공장에 대처하여 중소제조업은 변화의 조짐들을 보이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화, 아니면 품질과 관련하여 규모를 키우거나 망하거나…

이 변화의 조짐이 제대로 방향을 타려면 2차업체까지 대기업 대비 70%선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숙련화된 노동의 조직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과정,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의 도출(규모, 업종 조정, 교육, 노동), 예산의 확보 등은 만만치 않다.

 

3. 구조조정은 어떻게 하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합의된다면 이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에 (1) 규모의 조정 (2) 업종의 조정 (3) 노동, 교육의 조정 (4) 산업생태계 구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1) 규모의 조정은 기술적 자본적으로 취약한 제조기업은 집단화를 유도하되 그렇지 않으면 자연도태되거나 병합되도록 조치해야 한다. 더 이상 10명 미만의 소규모 기업이 중소기업의 주류를 이루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2) 업종면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제조업에 대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기계설계와 제작, 로봇산업, 금형산업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3) 노동인력의 재편이 시급하다. 기계제작/제품설계(CAD/CAM/CAE)와 산업디자인, 기술기반의 제조업이 가능토록 하는 엔지니어의 양성, 스마트제조에 적응하는 생산관리, 품질관리 전문가들을 키워내는 교육/재교육 시스템이 당장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대학, 대학교, 특수고등학교 등을 연계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산업 교육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노동인력을 재교육시키는 보다 과감한 정책, 생활비 보조를 포함하고 취업도 주선하는 인력재배치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4) 제조산업의 특정분야들은 스스로 시장의 요구에 맞춰 생겨나고 발전하고 소멸하기도 하지만, 후발인 까닭에 진입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더욱이 기술, 숙련이 요구되는 분야, 중소중견업체가 중심이 되는 업종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진흥정책이다. 일정기간동안 시장을 만들고, 기술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중소제조업의 규모와 업종, 노동재편 모두가 진흥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현재의 기술연구관련 정책들은 전면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다른 산업국가들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게 현장과 연관이 없는 여러 연구소들, 진흥조직들이 세금, 정부 R&D 자금을 축내고 있다. 이들은 산업연관성이 없다면 문을 닫던지 아니면 산업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기술연구단체로 탈태환골 하여야 할 것이다.

 

본 연구보고서는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정의정책연구소의 정책연구비 지원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수, 2019/10/3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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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번에 헛소리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터져 나올 것이다. 지금도 물론 전 세계에서 비행기가 미국의 도시를 향해 뜨고 있고 건물들이 멀쩡히 건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그러나 마천루 빌딩과 사람만 있다고 그게 정말 도시일까? 여기선 적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전통적 의미의 도시를 말한다.

기능성과 효율성에 기반 한 쾌적한 주거환경, 양질의 그리고 다수의 일자리, 문화적 풍요 등이 시골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쭉쭉 끌어들이는 도시의 매력이다. 그것이 바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도시의 현대성이다. 물론 필자가 여기서 거론한 것은 이른바 현대 도시의 좋은 측면들만 과도하게 부각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 도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측면들도 분명 갖고 있기에 그렇다. 이를테면 끈끈한 정에 기초한 인간미의 상실(흔히 비정함으로 묘사된다)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과도한 익명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위에서 언급한 전통적 도시의 좋은 측면은 물론 나쁜 측면조차도 모두 사람들을 현대 도시로 꼬여 들게 했다는 사실이다. 현대 과학 문명의 기술과 문화를 동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웃의 눈과 과도한 간섭으로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에겐 현대 도시가 갖는 익명성과 비정함이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혜택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그런 전통(전형)적 의미의 현대적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 현대 도시가 지닌 장점과 단점으로 무장해 사람들을 유인하기는커녕 점점 더 사람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이제 미국의 몇몇 대도시는 거주자들은 물론 관광객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어 더 이상 방문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덧정을 떼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를 살피기 위해선 다음을 살펴봐야 한다.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한 마디로 도시다운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새로 생기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하면 필자가 왜 도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는지를 납득할 수 있다.

 

웨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빼고 고급 식당에서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전통적인 미국 도시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고급 식당에서 그런 종업원들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샌프란시스코의 고급식당들이다. 종업원이 없는 대신 모든 일을 손수 손님들이 해야 한다. 컵과 물을 포함해 심지어 와인까지도 카운터에 가서 직접 가져 와야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급 식당에서 ‘셀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고급 식당이라면 으레 식탁 옆에서 주문도 받고 손님 옆에 식사시간 동안 시종 대기하면서 와인을 따라 주는 등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종업원이 있어야 하나 그들이 싹 사라져 버렸다. 어쩌다 이런 일이?

뉴욕타임스(San Francisco Restaurants Can’t Afford Waiters. So They’ve Putting Diners to Work, NYT, June 25, 2018)는 그 이유로 임대료와 인건비의 상승을 들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주거비가 터무니없이 올라 종업원들이 하릴없이 도시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똥 더미로 뒤덮여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그렇다면 어느 정도나 엉망이 되었으면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까지 하겠는가?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잠깐 다른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으로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필자가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언젠가 하와이에서 한 교민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왜 그렇게 똥냄새가 나는지 그것 때문에 질색이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쳐간 장소를 흔히 냄새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떠나온 고향조차 냄새로 진하게 기억한다. 새로이 접하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고 맡은 공항 화장실의 소독내로 미국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냄새로 고국을 기억하는 그녀를 마냥 탓하기는 어렵다. 똥냄새가 난다는데 어찌하랴.

거의 삼십여 년이 다 되가는 이 시점에도 그 말이 기억나는 것 보면 필자에겐 당시에 무척이나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똥냄새라는 말이 하수도가 지나는 골목의 정화조에서 나는 실제 악취를 가리킨 것인지, 혹은 부유한 나라 미국에 살고 있던 교포가 당시에 못 사는 나라 모국에 대한 칙칙한 인상에서 유래한 비유였는지는 그 때나 지금이나 확실하지 않다. 늘 똥냄새만 맡고 살다 막 미국에 건너 온 어리바리 신참내기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당시의 필자로서는 미국에 오래 산 이들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거니 하고 그리 크게 괘념치 않고 넘어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크게 역전되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것도 미국 서부 여행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이들이라면 똥냄새가 다가 아니라 아예 천지에 밟히는 똥 때문에 아연실색을 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그 똥은 개똥이 아니고 사람 똥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어떤 곳인가? 금문교와 짙푸른 태평양, 골든게이트 공원, 버클리대학과 스탠포드대학 등이 소재한 이른바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품 도시가 아닌가. 도시 남쪽 외곽엔 인텔, 야후, 애플 등의 회사들이 밀집한 그 유명한 실리콘밸리를 품은 최첨단 기술 도시이다. 그런 샌프란시스코가 지금 똥 더미로 뒤덮여지고 있다. 그것도 사람 똥으로 말이다.

 

똥 지도’(poop map), 그리고 똥 순찰대’(poop patrol)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샌프란시스코에 새로 생겨난 기상천외한 것들이 있다. 바로 ‘똥 지도’와 ‘똥 순찰대’이다. ‘똥 지도’는 도시 내에서 발견된 똥들이 있던 자리를 시 당국이 찍어 만든 지도다(웹사이트 이름은 OpenTheBooks.com). ‘똥 순찰대’는 그 똥들을 수거하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신종 직종의 종사자들이다. 마약사범 같은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순찰대는 들어봤어도 세상에 ‘똥 순찰대’라니. 절대 농담이 아니다(It’s no laughing matter — SF forming Poop Patrol to keep sidewalks clean. San Francisco Chronicle, August 14, 2018). 그들의 공식 명칭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 똥 관련 소식을 처음 접한 이래로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똥 발견 건수의 지속적인 증가다. 다음의 지도와 막대그래프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시당국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OpenTheBooks.com에서 보여주는 도심 ‘똥 지도’(poop map); 고동색이 똥 발견 장소이다. 신고가 들어온 곳에 좌표를 찍어 지도를 만든 것.

‘똥 지도’는 지금 거의 샌프란시스코 전역을 똥색으로 뒤덮고 있는데 5~6년 전만 하더라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도의 바탕색이 보이는 정도였으니까(사실 그것조차도 충격적이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러나 지금은? 독자들이 보는 바와 같다. 빈틈이 없다. 막대그래프는 과거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똥 발견 적발 건수를 연도별로 측정해 놓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 공공사업부(Dept. of Public Works)가 집계한 공식 통계치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다고 볼 수 없는, 매우 믿을만한 것이다. 실제는 저 수치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모든 똥을 ‘똥 순찰대’가 치우는 것은 아니니까.

2011~2018년 까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간 똥 발견 건수 증가 추이를 보여주는 막대그래프 <출처: 샌프란시스코 시, OpentheBooks.com>

막대그래프를 보면, 2011년엔 5,500건에 달했던 똥 적발 건수가 2018년에는 5배가 넘는 28,000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지속적인 증가세는 특히 2016년과 2018년에 각기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올해의 통계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지만 필자가 볼 때는 그 증가세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줄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나중에 밝히겠다.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의 새 시장 런던 브리드(London Breed)는 “자신이 어렸을 적 길거리에서 보았던 똥에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똥을 지금 샌프란시스코 길거리에서 보고 있다”고 NBC뉴스 인터뷰에서 한탄했다(SF Mayor: “There’s More Feces … Than I’ve Ever Seen”, NBCNews). 또한 그녀가 “살아오면서 목격한 가장 최악 중에 하나가 바로 최근 세상에서 부유하기로 이름난 도시,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쌓여만 가는 사람 똥 더미”라고 고백했다(San Francisco human feces map shows waste blanketing the California city, FoxNews). Fox뉴스 보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시 공공사업부가 사람 똥을 치우기 위해 2019년 책정한 예산은 약 750,000 달러(약 8억 7천만 원)이다. 그리고 ‘똥 순찰대’의 활동은 2019년 4월에나 시작됐으니 2011년부터 이 아름다운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이란 팝송 가사에서 보듯 향기로운 꽃냄새 대신 똥냄새로 뒤덮였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보면 사람이 살 곳이 전혀 못 된다. 똥 더미와 똥냄새에 특별한 기호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지금 미국에서 도시다운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여야만 하는 엄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똥 순찰대’(poop patrol)가 보도의 똥을 수거하고 그 처지하고 있다. <출처: San Francisco Chronicle>

샌프란시스코 ‘똥 순찰대’(poop patrol)가 보도의 똥을 수거하고 있다. <출처: Getty Image>

 

3세계로 전락한 로스앤젤레스

그런데, 이건 약과다.

영화 조커엔 고담시티의 암울한 사회경제적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쓰레기 더미 속 쥐가 들끓고 노숙자들이 즐비한 도시의 모습이…. 이런 영화의 비현실적 이야기가 현실이라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것도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캘리포니아의 다른 도시 로스앤젤레스로 가보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지금 로스앤젤레스 비현실적인 실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는 수천 명의 노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길거리의 인도는 제 3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의 텐트와 임시방편으로 만든 판자대기 거처들로 뒤덮여 사라지고 있고,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의 발병이 뉴스가 되며 쥐새끼 군단은 노숙자들과 이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을 종횡무진 들락거리며 병들을 옮기고 있다. 지금이 도대체 몇 세기인가? 가장 부유한 국가―그것도 세계에서 나 홀로 경제가 가장 탄탄하다고 소문난 미국의―의 가장 큰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과연 지금이 21세기가 맞는가? 아니면 누군가 달력을 되돌려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가 있는 것일까?”(Column: Rats at the police station, filth on L.A. streets — scenes from the collapse of a city that’s lost control”, Los Angeles Times).

쓰레기더미로 뒤덮인 로스앤젤레스(LA) <출처: Los Angeles Times>

미국 대도시의 제 3세계로의 전락에 대해선 한두 개의 언론이 보도하는 게 아니다(예, Los Angeles’ homeless crisis reaching third world country levels, local residents say”, FoxNews). 로스앤젤레스의 가장 극빈 지역인 ‘스키드 로우’(skid row)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베일스 목사(Andy Bales)같은 이는 구호활동 중 살파 먹는 박테리아에 감염 돼 한쪽 다리를 잘랐다. 그 정도로 도시 환경이 최악이다.

2019년 9월 현재, 로스앤젤레스 시의 노숙자는 44,000명에 이르고 이들이 길거리에서 먹고, 생활하고, 버리고, 싸질러대는 쓰레기와 용변으로 도시 전체가 쥐 떼로 들끓고, 흑사병 같은 중세의 역병이 돌고 있다. 쓰레기는 온 천지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콜레라와 문둥병의 귀환도 내다보며 공포에 떨고 있다고 포브스지가 보도하고 있을 정도니 미국 대도시의 제 3세계로의 전락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닌 이미 엄연한 현실이다(Why California Keeps Making Homelessness Worse,” Forbes ;Mountains of trash in LA could cause bubonic plague outbreak: expert”, New York Post).

필자가 현지의 지인을 통해 취재해 본 결과, 11월 현재 쓰레기 처지는 노숙자들을 고용해 치우고 있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A 경찰서에 쥐 떼들이 출몰해 경찰관이 장티푸스가 걸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 동안 손 놓고 방치하고 있던 쓰레기 처치가 시작되었다니 시쳇말로 얼마나 “웃픈”(웃기면서 슬픈) 이야기인가. 반면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노숙자는 여전히 계속해서 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미국의 도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답은 제국질이다. 제국의 배불리는 방식이 미국에서 살만한 도시다운 도시를 사라지게 한 원흉이다. 다음엔 그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자세히 해 보기로 한다.

 

<참고문헌>

“SF Mayor: ‘There’s More Feces … Than I’ve Ever Seen’”, NBCNews, July 13, 2018.

“It’s no laughing matter — SF forming Poop Patrol to keep sidewalks clean”, San Francisco Chronicle, August 14, 2018.

“San Francisco Restaurants Can’t Afford Waiters. So They’re Putting Diners to Work”, New York Times, June 25, 2018.

“San Francisco human feces map shows waste blanketing the California city By Greg Norman”, FoxNews, April 23, 2019.

“People are pooping more than ever on the streets of San Francisco”, Business Insider, April. 19. 2019.

“California homeless crisis: San Francisco tackles costly waste problem with ‘poop patrol”, FoxNews, August 20, 2019.

“Inside Los Angeles’ Skid Row, the epicenter of the homeless crisis”, FoxNews, July, 16 2019.

“Los Angeles’ homeless crisis reaching third world country levels, local residents say”, FoxNews, June 19, 2019.

“Why California Keeps Making Homelessness Worse,” Forbes, Sep. 12, 2019.

“Column: Rats at the police station, filth on L.A. streets — scenes from the collapse of a city that’s lost control”, Los Angeles Times, June 1, 2019.

“Mountains of trash in LA could cause bubonic plague outbreak: expert”, New York Post, May 22, 2019

금, 2019/11/0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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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중국 공산당 정부는 권위주의 체제답게, 전통적으로 치안을 비롯한 사회안전관리를 각별히 중시한다. 향촌진흥 정책을 국가의 안전관리 관점에서 해석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 건의를 하는 것은, 효율적이고 좋은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도시화, 공업화, 금융화 등이 야기한 다양한 생산 과잉 문제, 특히 화폐를 비롯한 재화의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농촌을 활용하고 농민에게 이익을 돌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금융정책 제안은, 불평등 문제를 함께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일거 양득인 동시에, 사회안전관리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큰 난제는, bottom-up 방식의 개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농민의 자주적 조직, 즉, 협동조합과 같은 마을집체경제조직의 활성화와 대표성 강화이다. 그런데, 요는 농촌 엘리트와 청년들이 빠져나간 농촌에서 이런 조직을 농민 스스로 만들어 내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상당한 규모를 만들어낸 유사한 성공 사례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 결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NGO, 원농민, 신농민 등의 협치가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정부의 사회 안전관리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면,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즉, 감시와 통제 정책인데, 저비용의 기술발전에 힘입어, 중국 정부는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사상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 겪은 일인데, 역자가 즐겨 찾는 도시 근교의 생태농장이 한 곳 있다. 이곳에 가면 하루, 이틀 머물다가 오기도 하는데, 최근, 친구인 농장주가 “차대접을 받았다”고 하면서, 농장에 외부인이 머무는 것에 예전보다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식 완곡어법인데, 경찰이나 공안정보기관(国保)에 호출 당해서 조사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유인즉슨, 농장에 자원봉사자로 와있던 한 예술가가, 정부를 비판하는 짤막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적발되어, 이 예술가뿐 아니라, 농장주와 직원까지 관리책임을 물어,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 논문이나, 앞서 번역된 일련의 논문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향촌진흥 정책 실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현지 농민조직의 결성이고, 향촌의 생태와 문화자원을 활용한 산업 융합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자원을 활용하고 상품화시킨다거나, 금융수단이나 시장,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농민조직이 만들어지려면, 상당한 지적 자본을 가진 도시 출신 인사들의 참여가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이런 인사들의 경우, 정치적으로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실제 정책의 실행과정에서, 현장에서 이와 유사한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틀을 전환하기 위해, 기층민중의 사회의식, 정치의식을 제고하거나, 질문하는 태도가 필수인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육성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이러한 의식과 사상을 통제해야 하는 딜레머는 중국 사회의 향후 발전 경로에 있어,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저자: 董筱丹 동샤오단 马黎 마리 杨璐璐양루루  温铁军 원톄쥔

 

시진핑 주석은 2014년 4월15일 국가안전위원회 제1차회의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국가안전에 관한 형세변화의 새로운 특징, 새로운 경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반드시 총체적 국가안전관을 견지해야 하며, 중국의 특수한 국가안전 시스템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본고를 통해, 시진핑의 종합적 국가안전관을 지도사상으로 삼아, 국가안전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비용전가간의 상관성을 분석하고,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농촌기층, 삼자간의 관계를 연구하고, 이러한 기초위에 적용가능한 정책을 건의하고자 한다.

 

1. 국제발전비교관점에서 , 국가종합안전현상의 두가지 기본판단

(1) 현대세계체제에서 선진국의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용전가는 개발도상국이 떠안게 되는 리스크의 주요한 근본원인이다

이마뉴엘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은 전체 세계체제가 기본 분석의 배경이 되는 관점을 수립할 것을 강조한다. 이 체제내에서 소수의 국가가 핵심국을 이루고, 다수의 국가는 부속국가가 된다. 핵심국가가 점유하는 전세계의 제도수익의 한축은 전지구자본화의 거대한 비용을 핵심국가에서 주변국가로 전가함으로써 거두는 것이다. 이는 개발도상국이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리스크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이후, 금융화가 내포하는 불평등 기제는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으며, 금융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따라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여전히 서방국가의 식민화 시기에 형성된 단일한 경제체제와 제도의 언어속에 사는 가운데, 전지구적 위기하에 선진국들은 정상시장교역의 틀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무리없이 비용을 전가하고 있으며, 이의 주요한 채널은, 개발도상국의 주요수출품 가격하락이 가져오는 심각한 경제침체와 재정적자, 그리고 식량 등 필수품가격의 대폭 상승, 인플레이션의 심화, 개발도상국 정부수반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위협 및 강제 퇴임요구 등이다. 이집트, 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의 국가가 좋은 예가 된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가치측면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해답’으로 여겨지고, 도구적 측면으로는, 조직과 제도혁신을 통해 어려움에 대처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비전통적 안전영역에서의 도전이 개발도상국의 주요 리스크가 된다.

국제 통화로써의 미국 달러의 가치는 석유와 같은 자원의 결제 통화 지위를 통해 유지된다. <출처 원문>

구체적으로 중국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자: 2008년 금융위기는, 2009년 전세계 경제위기를 불러왔고, 중국도 크게 영향을 받아, 수출량이 급락했다. 그후,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양적완화정책 영향하에서, 중국은 한쪽으로는 원재료 수입 가격의 대폭 상승,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의 위축으로, 실물경제 측면에서 엄청난 불경기에 직면했다. 2013년 이후로는 ‘뉴노멀’로 진입하여, 양적완화에 따른 외국의 저금리 자금이 중국으로 유입됐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민폐를 대량으로 발행해야 했는데, 결국 금융버블이 발생하게 된다. 2015년 증권시장에 위기가 닥치고, 최근에는 미달러의 금리상승과 미중무역전쟁때문에, 대량의 자금이 중국을 이탈함에 따라서, 자본시장의 불안정과 실물경제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

 

(2) 개발도상국 현대화 과정에 잠재한 내생적 리스크의 끊임없는 현실화, 국가-사회대립과 갈등 심화, 중국의 경우‘중앙-지방-기층간의 ‘삼원패러독스’ 현상이 나타나다

2차대전후 식민지상태를 벗어나 독립한 개발도상국가들은 보편적으로 산업화 목표를 추구하게 되지만, 리스크 대응능력은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부족하다. 울리히 벡과 앤서니 기든스는 공업사회와 현대사회의 시스템내에 잠재한 대량의 리스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인지하고 있다.   “각종 부정적 결과는 산업화, 기술발전, 경제발전 과정의 극단화에 따라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국가 거버넌스 측면에서 보게 되면, 현대리스크사회는 국가기구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고, 끊임없이 사회 거버넌스의 비용을 상승시킨다. 이를테면, 가장 현대화한 국가인 미국은 ‘감옥국가’로 불리곤 하는데, 80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국가의 통제를 받고, 죄수들이 계속 증가하며, 전세계 여성수인 (성년과 미성년 모두 포함)의 3분의 1이 미국에 있으며, 10명의 아동중 한명은 부모중 최소한 한명이 재소자로 복역중이다. 2008년 월스트리트 금융위기가 촉발한 유럽채권위기및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국가의 정치위기와 시위사태는, 금융경제의 버블 붕괴뿐 아니라, 서구사회식 현대 정치체제가 요구하는 고비용이 누적되어 국가 부채를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인 동시에, 각종 불평등과 격차가 존재하고’  따라서 상당한 갈등을 내포한 국가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 리스크의 도전에 대응하는 동시에 산업화가 심화시키는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며, 국제와 국내, 전통산업부문과 현대금융부문, 전통적인 위험과 비전통적인 위험 등 여러 방면의 안전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국제와 국내,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단체와 개인등 다양한 차원의 관계가 이러한 문제의 복잡성을 심화한다.

과도한 금융화와 그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지는 게임 <출처 원문>

금융이 주도역량이 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기층사회 사이에 출현하는 새로운 ‘삼원三元패러독스’는 금융 글로벌라이제이션조건하의 국가 리스크를 더 심화시킨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정부가 국가안전관리의 최종책임을 져야 하지만, 중앙정부가 국가종합안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생태문명건설로 국가전략을 전환하는 가운데, 이익집단과 지방정부의 방해로 실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특히, 국가의 정치권력이 실물경제와 산업으로부터 이탈하게 된다.  즉, 국제적으로 연결된 금융자본이 주요 모순을 주도하는 국면이 벌어진다.

갈수록 기업화하는 지방정부는 지속적으로 GDP성과에 목을 매고 친자본적인 개발주의 방식으로 운용이 되어, 현실감각 없이, 즉 수익과 비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자본을 유치하고, 도시화를 추구하며, 토지의 대규모 수용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의 기층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뿐 아니라, 심각한 재정적자를 낳게 된다. 지방정부 채권을 발행하면서, 금융시스템으로 문제를 전가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융리스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동시에 대규모 식량안전 문제와 생태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낳게 된다.

기층사회는 식품안전, 금융불안정, 환경파괴 문제를 겪게 되고, 이때 중앙정부는 전체국민의 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익집단이 이를 방해하고, 과도하게 분산된 생산경영주체와 소비자간의 거래 원가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문제때문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어렵게 된다.

역사를 비교해 볼 때, 근대사회가 추구하는 공업화가 시작된 이래, 중국은 농촌에서 약취한 잉여를 통해 시초자본을 축적하면서, 중앙-지방-기층 삼자가 동시에 만족할만한 충분한 이익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삼원三元패러독스’라고 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공업화 중기 단계에 진입하였으나 ‘삼원패러독스’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서 더욱 복잡한 관계로 착종되고 있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 경제성장의 주요한 드라이버는 공업에서 도시화에 수반한 산업과 금융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동시에 금융은 실물에서 이탈하여 거품을 키우고 있는데, ‘삼원패러독스’가 심화되고, 동시에 리스크가 누적됨에 따라, 회색코뿔소와 블랙스완 사이에서 ‘민스키 모멘트’가 다가올 확률, 빈도와 그 예상되는 파국의 크기가 증가하고 있다.

 

2. 국가의 종합안전체계 수립을 위한 전략적 사고

중국이 갈수록 위험사회로 변모함에 따라서, 종합적 안전관리에 대한 도전도 날로 거세진다. ‘삼원패러독스’에 어찌 대응할 것인가도 갈수록 긴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본고는 다음 두가지의 전략적 사고를 제안한다.

 

 (1) 국가의 종합안전전략체계수립에 있어 그 중점을 향촌에 둔다. 

현재 중국이 첩첩이 직면한 내외적 중대 도전 과제에 있어, 국가의 종합안전관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대 기초는 여전히 농촌에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각 민족국가들이 참여하는 전지구적 금융경쟁 와중에, 하나의 중요한 대결지점이 되는 금융의 영역이다. 금융에 대한 통제권은 주권국가의 기본 도구이다. 국가정권이 신용체계에 대하여 권한을 부여 받고 신용을 확장함으로써, (성장을 통해) 국내경제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수단이다. 그러나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국내자산의 화폐화 정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실물산업이 필요로 하는 자원과 요소원가를 높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진 원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투자가 외부로 향하고, 국내 산업 공동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핵심국가가 화폐를 발행하여 전세계로 비용을 전가하는 와중에  그 밖의 국가들은 피해를 입게 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국제금융경쟁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에 있어서도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중국은 농촌을 이용해서 화폐 발행 때문에 높아진 전체적 제도원가를 낮출 수 있다. 

국가간 사례를 비교해보면, 중국은 ‘개발함정’에 빠지지 않은 세계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가이다.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신중국 건국후 70년의 과정을 거치며, 중국은 역대 수차례 위기가 발생할 때마 ‘연착륙’이 가능했는데, 이때마다 농촌을 적절히 활용했다. 토지개혁과 농촌의 조직화 건설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토지 개혁은 농촌내부의 계급착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줬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문명을 핵심정신으로 삼는 농촌의 개혁은,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흡수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고, 국가의 농촌 기층에 대한 동원능력을 제고했다. 그리하여, 자본에 동기화하여 리스크가 심화하는 도시와 차별화를 이뤄왔다. 그러므로, 향촌은 자신이 가진 자연 자원과 소농이 가진 노동력을 원가를 고려하지 않고 투입할 수 있다. 외부로 자신이 생산한 식량을 보내는 등, 대량의 물자와 대량의 잉여를 유출할뿐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는) 스폰지 시스템’의 특징도 갖는다. 이런 식으로 대량의 리스크 – 즉, 과다발행된 화폐를 흡수하고 인플레이션도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 있다. 도시에서 과잉 생산한 공업제품을 소비해 줄 수도 있다. 또, 수천만명에 달하는 도시의 대량 실업인구를 직접 흡수해서, 사회불안 요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 신중국70년의 역사과정에서, 농촌은 국가 차원에서 이와 같이 화폐, 자산, 노동력 pool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농민은 도시로 건너가 농민공으로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중국의 산업과 도시를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출처 원문>

현재, 향촌은 다시 한번 과잉 발행된 화폐를 흡수하는 화폐 pool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1950년대초 악성인플레이션에 대응을 해줬던 것이 첫번째 사례이다) . 신시대중국의 발전 결과로 생성된 부족,  불평등의 모순은 향촌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향촌은 화폐화 정도와 시장의 발전이 불충분하다. 자원성 자산의 가격도 제대로 매겨져 있지 않다.

농촌의 자원, 토지, 생산제품, 상업적 서비스등의 가격이 도시보다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다. 만일 국가의 화폐발행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농촌으로 향할 수 있다면, 금융도구의 장점을 잘 살려, 농민이 화폐 발행의 이점을 누리게 하고, 동시에 원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낮출 수도 있다.

<<국가향촌진흥전략계획(2018-2022년)>>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소강사회와 사회주의 현대화강국의 전면 건설에 있어, 가장 큰 난관도 가장 중요한 임무도 농촌에 있다. 가장 폭넓고, 가장 깊은 기초가 농촌에 있다. 가장 큰 잠재력과 가장 큰 사후영향력도 농촌에 있다.

 

 (2) ‘중앙정부’와 ‘마을’이 협력하여 경제를 살린다 

이론적으로 살피면, 중국 근대화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양대 ‘비교우위’는 ‘강력한 중앙 정부’과 ‘마을 조직’이다. ‘정부’는 기본민생영역에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이용한 적극적인 거버넌스 작용으로 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촉진한다. 동시에 지방 정부의 지나친 기업화를 단속한다. 지방채의 재융자(refinancing)를 통해서 금융제도를 혁신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신용의 차별화를 실현한다. 결과적으로 지방정부의 ‘친자본’ 성향을 ‘친민생’과 ‘생태문명’등의 방향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지방의 다원화 거버넌스 혁신과 전환구조의 업그레이드를 실현한다. 즉 ‘마을조직’은 ‘생태문명’이라는 시대정신하에 국가신용을 이용한 역사적 부흥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소농의 기본적 생계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객관적인 요구를 견지할 수 있다.

정책설계를 함에 있어, 향토중국의 기초 건설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현縣급 지역경제전략하에서 국가의 신용 투자를 ‘읍면화’ (townizaiton, ‘도시화’에 대비하여, 농촌의 읍과 면단위를 발전시키는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을 의미한다.) 진행 과정의 ‘무위험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중소기업이 읍면지역에 둥지를 틀게할 수 있다. 그러면, 외지로 나간 농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취업을 할 수 있다. 농업의 1, 2, 3차산업의 융합과 생태농업, 친환경 자원절약형 농업의 발전을 통해 사회자원에 대한 통합적 개발을 진행하고, 다기능, 다원화된 사회자본으로의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외부 리스크의 내부화 처리’의 연착륙 기제를 수립한다. ‘대중창업과 만인혁신’을 격려함으로써 농촌조직혁신과 제도혁신의 정책을 지지하고 확립한다.

거버넌스 구조상, 정치, 경제, 사회 삼자결합의 기초건설을 통해 기층거버넌스 구조를 조정한다. 현향촌縣鄉村의 삼단 계층 각각 종합거버넌스의 건설체계 수립을 위해 노력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외부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bottom-up’으로 농민과 농촌의 조직화 수준을 높이고, 동시에 문화교육, 사회연계, 윤리적 통합등 다양한 사회문화영역의 메커니즘 혁신을 통하여, 내부집체행동능력을 배양하고, 프로젝트 자원분배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향촌 엘리트층의 자원 농단’을 약화시키고, 농민협력조직의 ‘약자중심성과 구빈역량’을 높인다. 정부공공자원이 공공성을 실현하도록 하고, 보편 복지 효과를 성취하게 한다.

 

3. 정책건의: 조직혁신과 제도혁신을 통해서, 향촌5대진흥 (산업, 인재, 문화, 생태, 조직) 촉진하고, 지방경제의 전환을 도모한다

소농경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기본적인 상황하에서, 중앙에서 투입하는 신용에 의한 레버리지를 통해 ‘삼원패러독스’를 해결해야 한다. 농촌집체경제조직으로서 향촌이 정부 및 외부공상업자본을 상대하고 거래하는 주체가 되게함으로써, 향촌대외거래의 통합성을 강화한다. 향촌자원의 3차산업화와 통합적개발을 촉진하여, 지방경제의 전환을 가져 온다.

농기계를 사용하는 중국 농촌의 모습 <출처 원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층부 설계를 강화한다. ‘상하의 결합’을 촉진하고, 지방정부의 업무패턴을 바꿔야 한다. 농민의 주체적 지위를 제고하고 육성해야 한다. ‘농촌이 도시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성공의 경험과 사례를 많이 알려야 한다. 정부와 농촌이 상대하는 직접 채널 (농민이 기업을 통해서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중앙과 지방은 재정과 금융의 레버리지를 강화하여 농민과 기층을 지원해야 한다. 집체경제조직이 금융도매업무를 맡을 수 있는 기본단위가 돼야 한다.

둘째, 외부경영주체와 농민의 분산거래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향촌발전 잠재력의 가장 큰 부분은 향촌의 자연과 인문자원을 활용하는 1, 2, 3차 산업융합에 있다. 이러한 자원의 통합성과 불가분성 때문에, 향촌의 농촌집체경제조직이 대표가 되어, 마을의 통합적 자산에 대해서 전체자원의 가격을 결정하고 외부의 상공업자본과 대등하게 담판을 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상공업 자본이 향촌으로 찾아와, 통합 자원이 아닌 단일 자원에 대한 거래를 개별 농가와 진행할 때, 왕왕 향촌자원이 수탈당거나, 혹은 헐값에 넘겨져서 개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셋째, 마을내부에서, 농촌집체경제조직이 주가 되어 거버넌스와 발전의 기초틀을 만들게 한다. 소농경제가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기본적인 국가의 상황하에서, 필수적으로 집체경제조직이 교량이 되어 소농과 현대농업의 접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향촌내부의 자원통합과 마을조직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마을조직의 내부자원과 요소의 내부 일차 시장을 육성하여 집체경제의 기초를 강화한다. 이를 위해서, 중앙과 지방 정부로부터의 재정투입이 각각 레버리지가 되도록 해야 하고, 농민은 수중의 자원에 대한 일차가격 결정권을 집체에 넘겨서 통일적으로 경영하게 함으로써 마을조직집체의 대외가격협상능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집체와 농가사이의 상호작용관계와 이익관계를 강화할 수도 있다. 집체의 농가에 대한 협상지위도 높여서, 마을조직 내부의 비공식적인 제도와 질서를 내부화하여 활용하고, 마을조직 사무를 저비용으로 처리하는 이점을 살릴 수도 있고, 마을조직의 거버넌스도 개선한다. 사회조직과 문화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농촌의 저비용 거버넌스 경험을 발굴 소개한다.

넷째, 현縣급에서 향鄉을 단위로 해서 자본시장의 조작 메커니즘을 도입해서, 향촌이 직접 융자 플랫폼을 건립함으로써, 향촌개발의 융자원가를 낮추고, 사회자금을 흡수하고, 경제거품의 리스크를 낮춘다. ‘탈산업화’의 거대 경제 국면하에서, 지방정부는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자본을 유인하고, 이러한 자본을 활용하여 지역사업을 진흥할 것을 희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개발을 위주로 하는 ‘읍면화’와 금융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국, 사회의 잉여가 금융업과 부동산개발에 의해 점유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토지와 노동력 원가가 상승하는, 악성순환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향촌경제 내부에 직접 자본시장을 수립하여, 지방이 실물산업을 지지할 수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스템육성을 촉진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금융이 ‘실물을 벗어난 거품경제’로 변화하는 추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기와 같은 네가지 시책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귀납된다:

“중앙정부의 신용이 레버리지가 되게 하고, 지방정부의 자본으로 플랫폼을 만들고, 기층의 집체조직이 통합을 수행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산업이 융합돼 개발되게 한다”. 이는 마을집체경제조직이 중심이 되는 ‘3급시장’(http://thetomorrow.kr/archives/9643)으로 귀결된다.

벼를 수확하는 중국농민들 <출처 원문>

이러한 제도설계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상호 지도하도록 격려함으로써, 80년대이래 각지역 향촌에서 시행되어온 실천을 혁신하도록 한다. 중앙정부는 신용을 확장하고, 지방경제는 업그레이드되고, 농촌과 도시가 새로운 융합을 추진하고, 향촌을 전면적으로 진흥하는 등, 다방면의 내재된 요구를 종합적으로 실현한다., ‘중앙의 하향’과 ‘지방의 하향’이 유기적인 협력하에 이루어지고, ‘중앙-지방-기층’간의 ‘삼원패러독스’를 약화시키고, 국가종합안전관리의 향토 기초를 다져서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에 의거한, 문제 대응능력과 현실개입능력이 강화된, 국가종합안전전략 시스템을 만들어 나간다.

 

원문링크: https://mp.weixin.qq.com/s/ubEhbgn483YYbterbE9Jqw

화, 2019/11/12-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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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가 당면한 문제는 중소제조기업 환경을 둘러싼 체질개선, 구조조정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그 자본의 성격에서 참으로 다국적적이다. 주요 대기업의 50~60%의 주식이 외국자본의 소유이며 특히 간판기업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한국의 대기업은 주주이익실현에 열심이고 외국투자자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생산성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하이닉스의 1인당 매출액이 8억 정도인 것을 필두로 전자, 화학, 자동차, 제약, 화장품 등의 기업들이 여느 세계적 기업들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반면, 중소제조기업은 순수한 국내자본이면서 우리나라 고용을 떠받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낮으며, 그에 따라 임금수준도 낮다. 우리나라 전체 자본주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며 전통적으로 정부 등으로부터의 지원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어 왔고 스스로는 취약한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고용인원 50명 미만, 매출 50억 미만의 소규모 제조업은 현재 최저임금, 노동시간 문제와 함께 생사의 갈림길에 있고, 매출 500억 미만 업체들도 업종과 기술지원, 하청관계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우리 기층 대중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중소제조업의 갈 길과 결을 같이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부의 산업정책, 더욱이 중소기업 정책에서 생산성의 문제, 노동인력의 개발문제 등은 등한시되고 있다. 이제부터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 생산적인 변신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그 방도를 찾아보도록 한다.

 

1. 한국 자본주의가 당면한 문제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 상황의 간단히 정리해 보면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1) 선진자본주의 사회로 진입, 산업화, 산업혁명을 완수하려는 단계

2) 동시대적인 요구로 기술 트랜드, Industry 4.0을 맞이한 상황

첫째, 한국 자본주의는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제조업 국가로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성장을 이룩했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 이상의 나라로서는 유사이래 7번째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가 되었다. 1750년대 영국을 필두로, 1840~50년대 미국과 프랑스, 1890년대 독일, 1900년대 이태리와 일본이 이룬 대업을 우리가 이루어낸 것이다. 러시아가 탈락하고, 스페인과 브라질이 이루지 못한 길을 우리가 지난 50년(특히 87년 이후 최근 30년)에 걸쳐서 달성한 것이다. 단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전체 사회시스템이 자본주의화 한 것이다. 스페인과 남부이탈리아의 경우, 소득수준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농업국가, 지주 중심의 봉건적 요소들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국가들이며 아일랜드 같은 나라는 산업이라고는 없고 단지 농업, 관광에 얹어서 외부로부터 심어진 금융업으로는 그 나라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며 정치세력을 보면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이들 나라는 모두 산업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부가가치 대비 제조업 비중에서 세계 최고인 30%대를 달리는 유일한 나라이며 활동인구 대비 비중에서는 인구 5천만 넘는 나라들 중에서 세계 1위 (혹은 대만 – 인구 2천4백만 – 에 이어 두 번째)이며 독일과 일본이 뒤이어 20%대에 남아있는 나라들이다. (참고로 인구가 적어도 산업혁명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나라로는 네덜란드를 필두로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정도가 전부이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자본주의도 세계의 선진 제조업이 닥친 Industry 4.0의 쓰나미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현대자동차는 새로 출시한 모델의 신차에 자율주행 Level 2.0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21년에는 4.0을 도입할 예정이다. 2.0은 시스템이 감가속과 조향을 담당하는 부분자율주행이고 4.0은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치 않는 고등자율주행이다. 이러한 자율주행이 생산제조현장에 도입되는 것이 스마트공장, Industry 4.0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현장은 일반적인 자동화, Industry 2.0 수준, Taylorism 수준을 채 넘어서지도 못하고 있다. 대기업조차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Data들을 충분히 모으지도 못하고, 모아도 사용할 엄두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아래로부터 빨라져서 매출 50억 미만 업체에서조차 단순인력을 현장에서 몰아내는 자동화의 욕구는 엄청나고 300억 업체 정도에서는 공정개선과 생산관리능력에 대해서 관제와 AI를 이용하여 품질데이터 분석을 하겠다는 요구들이 솟구쳐 올라오고 있다.

자동화, 관리, 관제, 분석(AI), 제어 ; 스마트 공장의 요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자동차에서 전기전자장치 부품(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40%이나 이는 5년 10년 후면 80%선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제조업의 현장, 공장도 전자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스마트공장, Industry 4.0은 도전이자 기회이다. Catch-up 방법이 Open Source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공장이 일반화되고 혹은 되려면 노동력의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숙련 중심에서 숙련중심으로 바뀌는데, 3가지 영역, 즉 제품설계 직종, 생산관리 등 관리직종, 설비 등 유지보수와 보안직종 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현재 10명 이상 고용 67000개, 218만(2016년 중기부 통계)을 고용하는 중소제조업이 개수로는 1/3이하로 줄고 규모로는 100억 매출의 중소기업과 1000억 매출의 중견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업종도 단순가공, 단일공정 중심의 하청구조에서 자기부품, 자기기술에 의한 중간부품 생산체계, 나아가서 금형, 기계제작, 자동화 설비, 장비 제작 등 고부가 제품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로 이어져야 한다.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10%수준이며 영국은 7%에 못 미친다. 역사 속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자본증식을 하는 것을 무조건 선호한다. 영국 자본주의가 혁신을 피해 식민지경영에 몰두할 때 미국과 독일이 그를 추월하였지만, 제조업을 피해서 경쟁력을 상실하여 국가적으로는 몰락할 때 몰락하더라도 개별 자본은 본능적으로 최대한 위험을 회피하려고 한다. 실로 제조업은 다른 어떤 분야의 산업보다 (증권화하기 전에는) 투자와 수익창출까지 오래 걸리고 특히 불황에 대해서 아주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고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랜덤요소가 너무 커서 자본가 입장에서는 피곤도가 제일 높다. 그리고 자본의 규모가 커서 독과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라면 확률적 고려, 분산을 통한 위험회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자본은 생산현장을 피하고 싶어하고, 간접화, 증권화로 한사코 멀어지려고 한다. 유통과 서비스업이나 금융업으로 제조업을 지배하려고들 한다. 하지만 추적자 입장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제조업에 투입된 자본은 시장이 확대되어 브레이크 이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발생하는 폭발적 이윤의 발생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순간이 제조업에 투자된 자본이 여타 상업, 유통, 금융업에 투입된 자본을 압도하는 지점이 된다. 창업과 약진, 항상 새로운 도전의 의미에서, 제조업은 최고로 창조적인 첨단의 시스템으로 무장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제조업에서의 압도적 우위는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우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독일이 Industry 4.0에 국가적 명운을 거는 것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산업은 산업혁명을 완수해야 하고, 특히 Industry 4.0 시대에 스마트공장을 적용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 일시적인 국산화 주장에 편성한 것이 아니라 소재, 부품, 장비와 나아가서 기계설계, 공정설계, 제작이 실제로 가능하려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대기업의 1인당 매출액 평균은 3.5~4.0억원인데 반해 1차기업(중견기업) 2.5억 정도이다. 대략 70%수준이다. 반면 2차, 3차기업(매출 50억미만)의 매출 1억 정도이다. 이것이 최저임금, 52시간 문제에서 중소기업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의 기저이다. 해결방법은 최종하청기업인 2차 기업 수준에서 2.5억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도록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단순한 매출상승 문제가 아니다. 규모와 업종, 노동력 모두가 걸려 있는 문제이다. (즉 구조조정의 방향은 규모조정, 업종조정, 노동인력조정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중소제조기업이 직면한 문제 중에는 생산성의 향상 뿐아니라 하청구조의 개선, 기술의 확보, 자동화 로봇화 등이며 이의 해결 방안으로 집단화/협업 방안과 업종의 전환 혹은 고도화 (소재부품, 장비와 설비, 제품설계/공정설계/디자인 능력, 바이오화학, 전산, 산업공학 등의 문제)를 이루어야 한다. 노동자 집단은 이 과정에서 교육/재교육을 통해서 숙련화를 달성하고 노동시간단축,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이루어야 한다.

 

2. 구조조정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누가 추동하는가

이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왜 이제까지는 진척이 거의 없었는가? 우리나라 대기업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를 원할까? 심지어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소득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외국자본의 지분이 과반이 넘는 상황에서 이들의 이익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리고 충분히 성과를 내고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현재 GDP 1인당 3만에서도 잘 벌어 주고 있는데 굳이 4만, 5만불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오른다고 해서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면, 이 나라의 개별기업들은 미국이나 독일을 빰칠 정도로 세계 최고도의 기술을 가진 초호화판 첨단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나스닥 상장기업이 세계 3번째로 많은 등, 기업들의 기술수준으로만 따지자면 국민소득이 7~8만불은 당연할 듯하지만 이스라엘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나은 4만 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PPP는 우리나라보다 못한 3만 불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스라엘의 인구는 8백만 밖에 되지 않고 내수(노동자의 소비)로 자본주의 발전이 좌우될 상황은 절대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결정짓는 요소 중 인당 생산하는 부가가치, 매출액, 생산성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들은 가능성이고 필연은 노동시장이다. 이스라엘은 규모가 작은 경제이며 노동시장을 적극적으로 자본이 조절하고 있다.

임금을 낮추기 위한 자본주의의 노력, 사회적 생활비용과 임금의 요구수준이 올라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노력은 사실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알고보면 실로 눈물겹다. 예전 이명박/강만수 시절의 인위적인 환율조절도 우리나라 대기업 대 중견기업 대 중소기업 임금 비율을 현재의 100 대 70 대 30으로 만든 극적인 장치 중의 하나였다. 이런 억지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하고 막아야 한다. 심지어 자본의 입장에서조차 이런 방식으로 우리나라 자본주의 유지되기에는 위험하고 그로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30/100(동일한 산업내의 최고임금 대비 최저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고 사회의 바닥을 묶어두는 것이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최하인 사회를 만든다. 이런 막가파식 소득불균형 옹호정책은 비정규직 문제, 택배기사도 자영업이 되고 편의점주도 자영업자가 되어 자영업자 창업/도산을 권유하는 사회, 대기업 노동조합의 일탈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가져온 것이다.

영국은 대처 수상 집권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숙련노동자 억압정책, 숙련노동이 필요한 산업을 경시하는 정책을 진행한 결과, 지금은 스위스의 하청산업 국가로 전락하고, 2류의 제조업국가가 되고 말았다. 단순노동을 선호하는 자본을 국가가 지원하고 최대한 오랫동안 저임금을 잔존시키는 정책을 진행해 왔는데 이는 사실 자본의 몰락을 가져온 설탕물 정책이다. 당장은 이윤을 만들어 주지만 닥쳐오는 변화에 느리고 기술에 둔감하고 심지어 노동억압을 통해서 저임금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 등이 모두 당뇨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결국 역사가 주는 교훈에 따른다면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은 업종변환, 자동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있으며, 노동자 집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당장 숙련된, 특히 제품설계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가진 고급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혹은 대기업이 일본문제, 혹은 보호주의 기조 하에서 중소기업 군의 정비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소재와 부품 나아가서 장비와 설비, 설계능력을 갖춘 산업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언제까지 얼마만큼이나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와 반도체 대기업들의 절박함은 우물에서 숭늉을 바라는 절실함 정도이지 솥에 불을 때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연 이들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을 통털어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시행하는 것을 찬성하겠는가? 너무 나아갔지만 중소제조업의 체질개선, 구조조정은 그 방향에서 생산성의 향상을 포함하고 있다. 결코 소용되는 기술의 변화와 노동인력의 재편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속생각은 대기업노동자 대비 소기업노동자의 생산성 격차와 임금격차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앞서 말했듯이 글로벌 환경 속에서 현재의 3만불 국민소득 체계, 즉 단순하청기업에 낮은 생산성의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특별히 중소제조업에서의 변화를 원할 이유가 없다. 이대로가 더 좋으니까!

하지만 중소제조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최저임금, 52시간 노동이 올려치고, 세계적 불황과 국내소비시장 위축이 내리 누르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자동화를 해야 하고, 단순노동 중심의 생산구조를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쳐야한다. 인력을 줄이는 방도를 찾고 있다. 공장 문을 닫든지 아니면 자본재를 투입하고 SQ기준에 맞추고, 단가를 스스로 낮추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하지만 저임금에 기반을 둔 단순하청 혹은 자체 기술에 기초한 제품이 없는 까닭에 원청에 억매여 끌려가는 업체들로서는 이러한 노력들이 절대로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업종조정, 공정조정, 노동 조정, 원하청 관계조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의 노동자들은 대기업 대비 30%의 임금을 받고 젊음을 불사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노동은 주로 외국인들이나 결혼 후 여성인력에 의존한다. 전 사회적으로 대기업 대비 70~75% 정도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시행되면, 당연히 기계가공 노동자 등 블루컬러 숙련공이 사무직이나 공무원과 맞먹는 수입을 가지는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목수와 배관공이 의사와 수입이 다르지 않다는 덴마크 같은 나라까지는 아니라도) 그렇게 되면 자살률도 낮아지고 출산율도 올라가고 교육지옥도 없어지는 우리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한국 자본주의 자체가 숙련노동력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에서부터 가능해 진다. 업종에서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설비와 기계제작, 금형제작 등의 영역으로 진행되고 노동도 제품설계와 디자인, 공정설계와 정밀가공, 생산관리와 유지보수에 종사하는 최소 전문대학/대학 졸업자로 구성되는 숙련공의 노동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

자본은 항상 쉬운 길을 가려하고, 그 결과 전체 사회의 경제수준과 노동의 질은 자본의 의지에 묶여 혁신의 길을 가지 않는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산업성장의 가도를 달렸었다. 출발부터 우리와는 달리 자기자본을 충분히 가졌었고 화교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세계시장도 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만의 제조업 생산성은 우리나라보다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폭스콘을 비롯한 대만 자본들은 쉬운 돈벌이를 찾아 중국으로 물밀 듯 몰려갔고 대만 경제의 활력은 예전만 하지 못하다. 1인당 GDP가 2만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자본주의는, 지금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였다. 중소제조기업과 노동자들 모두는 변화의 격랑 속에 들어와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결절점, 산업혁명의 막바지이자 세계 자본주의 기술의 결절점, Industry 4.0의 시작시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중요한 시기를 제대로 헤쳐 나가는 길은 중소제조기업 종사자들과 노동자 그리고 국민대중의 요구에 기반을 둔 산업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화, 2019/11/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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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촛불혁명은 기득권에 포획되어 박제화된 현행의 형식적 민주 제도와 절차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성찰과 새로운 좌표’라는 주제를 마감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어온 칼럼은 촛불시민 혁명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그 동안 시장과 공공의 영역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여온 기존의 경제론을 시민의 영역, 좀더 구체적으로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나름 학습의 과정이었다. 20장에 걸쳐 담아낸 고민의 내용들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조그만 도움이 되길 간절히 희망하면서 이제 글을 마친다.


2016/7 년간에 있었던 촛불시민혁명의 의미가 단순히 정권교체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킨 수준에 머물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마땅히 2017년 기준으로 근현대 과정에서 형성된 현재의 한국사회 온갖 모습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시민들의 깨우침과 요구가 광장에서 한데 어우러진 일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지난 120여 년의 세월 속에 기미년 만세혁명이 구한말 이후 민족역량을 모아내어 항일 해방투쟁 역량의 저수지를 이루고, 80년 광주항쟁이 해방 이후 30여 년간 냉전구조와 군사적 억압체제를 온 몸으로 거부하며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였듯이, 촛불혁명 역시 기득권에 포획되어 박제화된 현행의 형식적 민주 제도와 절차의 한계를 뛰어 넘어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어온 필자의 칼럼은 촛불시민 혁명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그 동안 시장과 공공의 영역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여온 기존의 경제론을 시민의 영역, 좀더 구체적으로 위에 언급한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나름 학습의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시작하면서 사회적 경제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의 과정과 이를 실현하는 정책수단으로 ‘제3섹터 경제’라는 이름에서 출발하였으나, 곧바로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스탈린식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완벽하게 실패한 이후, 대안으로 평가되어 현재까지 진행되어온 사회적 경제 영역은 유의미한 확장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기존의 시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보완과 장식적 수준에 머문다는 현실을 확인하면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이 찾아낸 것이 ‘시민경제론’이었다.

본문 11장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되기 10여 년 전에 이탈리아 나폴리 대학의 제노베스 교수에 의해 제기된 이론으로 상호관계 속에 형성되는 유기적 사회에 방점을 두었던 시민경제의 개념은 불행하게도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발호와 이와 쌍생적으로 결합하여 나타난 양적 효율중심의 공리주의, 사적 소유권의 보호라는 미명으로 공공성을 희생시킨 단자적 자유주의, 상호적응의 진화론을 양육강식 논리로 타락시킨 자본의 논리, 이에 더하여 데카르트의 이원론 및 뉴턴의 기계적인 과학철학 등이 중첩되면서,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에게 잊혀져 있다가 2008년 월가의 실패 이후 비로소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해법으로 다시 재조명을 받게 된다.

시민경제론의 바탕에는 르네상스에서 재발견한 인본주의적 바탕과 그리스 로마 시기의 공화적 정치체제에 더하여 상업주의 이전에 물들지 않은 초기 기독교 원형의 이웃애가 중심에 자리를 자리잡고 있다. 한 예가 제 17장 ‘인간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소개한 중세 수도원이 주관하였던 ‘Monte di Pieta’ 라는 모성적 대출기관이다.

유태계 상인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고리대금업에 의해 인간성이 몰락되어가는 것에 대응하여, 수도원 관할의 영내에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무이자로 필요한 생활 자금을 제공하였던 배경에는, 첫째 예수가 가르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하였고, 둘째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도록 지원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공동체 내 한 사람의 고통을 모두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함께 일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구휼의 정신이 있었다. 이는 제6장에서 소개한 ‘한국 역사 속의 향약정신’과 너무나도 일치한다 (환난상휼,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시민경제론에 대해서 필자 나름대로 되풀이 설명하자면 시민사회에서 형성되는 관계성과 상호성의 결합으로서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적인 인간人間에 기초하며, 역동적 시장의 효율공공 영역의 규칙시민연대적 사회라는 매개를 통하여 물적 기반을 제공하는 경제활동에 인간적 삶에 대한 내용과 가치를 우선하면서 각자 역량개발과 자기실현적 사회로 전환하는 동시에, 공동체적 생태공간을 파괴하는 무제한적 생산에서 탈피하여 지속이 가능한 공유와 배분중심 사회로 이동하는 구상이다.

한국사회의 전향적 미래좌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습을 예건데 위에 소개한 시민경제라는 잣대에 견주어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천민적 성공과 출세의 논리만이 활기를 치는 세상이 되었다. 진보를 논하는 사람들조차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면 진보는 설 땅이 없다는 식의 망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공과 출세논리가 만들어내는 신기루의 행선지는 극도로 불안한 사회의 전면화이다. 성공과 출세의 논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일반시민들의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끝없이 탐욕스런 개개인 욕망의 재생산구조이다.

이웃보다 남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해지는 그래서 대한민국은 이재용 같은 부류의 종족들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10%도 아닌 5% 아니 단 0.1 % 종족을 위해 정치도 법률도 언론도 교육도 존재해야 하는 사회로 재편되고 있다.

죽도록 달리지 않으면 불행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외발자전거 신세가 현재 우리 사회가 그려내는 성공하고 출세한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재무적 성과라는 가면 속에 끊임없이 부동산 중독 등 지대추구와 투기를 일삼아야 하고, 남들이 넘볼 수 없는 특권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식들을 허망한 사교육이란 감옥(참다운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에 가둔다.

동시에 시장의 논리라는 설명으로 효율성의 미명 하에 천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일상의 빈곤에 갇혀있고 4백만이 넘는 극빈층이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으며, 공동체의 행복을 실현하기에 매우 충분한 GDP 3만 불을 넘어선 국가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최저임금의 적정한 인상조차도 거부하는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고 있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불안 요인들을 개개인이 개별화해서 해결하려 하면 야만적 정글의 생존경쟁 법칙이 침투하여 작동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자연스런 법칙과 현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조건이 오히려 발전과 효율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달콤한 교언일 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불안 요인들을 함께 대처하고 더불어 해결하려는 상생적 노력들이 형성되고 실현되어야만, 불안은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에게 가능성과 의미 그리고 행복으로 가는 통로가 제공될 것이다.

물질적 수요를 제공하는 생산체계와 동전의 다른 일면이자 경제활동의 목표이며 재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분배의 체계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중노동의 생산체계와 빨대적 중층구조로 고착된 현대판 노예체계는 지양되어야 하며, 21세기 한국사회가 확보한 물적 생산력을 소중히 유지화면서도 단세포적인 물질만능의 소비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본래적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가는 과정이자 각자에게 주어진 탁월성의 실현과정이라고 이름하고자 한다.

훌륭한 운동선수는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기록을 갱신하고, 현장 작업자는 해당 제품과 서비스에 자신의 열정을 다하며, 화가는 끊임없는 상상력을 통해 만족할 작품을 만들어 내는 등 각자 삶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 특히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사회 개개인 모두가 가능성에 도전하는 조건을 만들어가기 위해 선공후사의 노역을 다하는 사회, 다시 말해 모든 영역에서 탁월성의 실현이 가능한 21세기 한국을 지향해야 한다.

이웃과 동료를 경쟁대상으로 시기하고 끌어내려 그를 짓밟고 앞서야만 한다는 성공과 출세의 허망한 욕망체계를 끝장내고, 참되게 산다는 것 ‘참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에 가치와 의미를 느끼며 함께하는 이웃과 동료가 또 다른 내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와 더불어 삶의 축복과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은 천민적 출세주의와 0.1%의 성공신화의 담론을 단호히 배격하고 참다운 인문적 가치와 함께하는 행복을 재발견하고, 상호연대적 생산과 순환과 복지와 상태지속적 체계가 우리 사회의 중심 아젠다로 자리매김할 때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미래한국의 바람직한 모습일 뿐만 아니라, 기실 한국의 현재적 조건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실천해내야 하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글을 써가면서 미래담론에 대한 구상이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서 시민경제론으로 이동하였지만, 탐욕적이고 파괴적인 시장경제에서 탈구하는 교량의 통로로서 ‘정부에 의한 양수와 삼투막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며 강화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제13장 ‘조세개혁과 사회상속’, 제14장 ‘혁신과 전환의 로드맵’, 제15장 ‘협력과 공유의 사회’ 등에서 초보적인 생각들을 그려 보았다. 때마침 ‘21세기 자본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파리 대학의 피켓트 교수 역시 필자와 같은 생각을 담은 신작을 출간했다고 한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도전적인 주제의 칼럼을 시작하였지만 출발부터 경제론만의 한계를 절감했다. 아담 스미스 역시 일시 ‘국부론’이라는 외도를 시도하였으나 ‘도덕감성론’에서 닻을 내렸듯이, 결국은 인간 품성에 대한 탐구와 사회 및 역사를 전체로 조망하는 철학과 시대정신이라는 바탕이 없는 기능적 정책의 시행은 대증적 방편으로 사상누각처럼 잠정적이고 일시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 본연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시원적으로 고민했던 사를 푸리에와 이를 실현하려 했던 로버트 오웬, 그리고 20세기 일본 시민사회의 전설로 남아 있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인물 등을 제3장 ‘인간품성의 재발견’, 제5장 ‘형제애(우애)적 실천’ 등에서 살펴 보았고, 한국인들의 혈통 속에 흐르는 공동체적 유전인자 밈과 풍속을 제6장 ‘한국역사 속의 향약운동’에서 조명해 보았다.

또한 명백하게 한계에 도달한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문제점과 성격을 고발하고 대안을 고민해 보는 내용을 담아 제3장 ‘자유주의 비판’, 제7장 ‘사유재, 공공재 및 관계재’, 제8장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들’, 제9장 ‘자본의 탐욕에 갇혀있는 기업 비판’ 그리고 제10장 ‘시장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다시 들여다 보아도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민망스럽지만, 현실 비판의 문제제기라는 객기로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기대한다.

모든 것은 정치로 통하고 정치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현재 한국 현안의 모든 근원은 정치제도와 절차적 과정의 결함에 있으며, 이를 직업적으로 다루고 있는 정치인들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동시에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한계와 제도의 결함 뒤에 숨어 기회적 행위를 일상적 관행으로 삼아온 행정사법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하고자 제12장 ’한국사회,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제16장 ‘행정사법관료는 공복인가 관비인가’를 적어 보았다. 국회구성에 있어서 100% 연동비례제, 시민소환제 및 시민발안과 연동된 국민투표 등 직접 민주제 도입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정신이 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흐르는 물길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막을 수 없듯이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이라는 시대흐름을 기득권이란 장벽으로 역류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 제한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며, 한국 경제 규모에 걸맞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현대국가에 있어 정언적 의무사항에 해당한다. 핵심은 시행의 여부가 아니라 의지를 담아내는 해당 정책의 정합성 현실성 일관성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2장 ‘시대의 현안, 최저임금인상’과 제18장 ‘스핀햄랜드 및 노동자기금의 경험에 대한 성찰’에 담아 보았다. 반드시 해당 전문가들의 격한 논쟁이 있어야만 하는 주제들이다.

1945년 이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70여 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남북분단의 상황과 철 지난 냉전 논리 속에 갇혀 있다. 현하 한국을 마치 자신들의 속국으로 대하듯 미국 행정부는 강압으로 쥐어짠 한미워킹 그룹과 유엔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유엔사(UNC)라는 자의적 조직으로 남북 간 회해와 자유로운 왕래를 훼방하고, 한일 간 역사에 대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한미동맹이라는 미명으로 한국군대를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는 소모적 용병으로 악용하려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과연 지금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질문해야 하고 해답을 구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지정학적 그리고 지경학적 제약 조건에 대한 극복이 전제되지 않고는 시민경제론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아낸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 칼럼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지만 마지막 글인 제19장에서 ‘남북경협이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의 탈출구이다’라는 주제를 다룬 배경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칼럼의 제목이 ‘제3섹터 경제론’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레 ‘시민주권시대의 정치경제론’으로 바뀐 셈이 되었다.

멕시코의 어느 역사학자가 기록했다는 옛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제 제3섹터 경제론이란 이름으로 연재한 칼럼을 마감하고자 한다.

“중세 시기, 한 현자가 여러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채석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첫 번째 만난 사람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첫 답변은 ‘그저 열심히 돌을 자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주춧돌에 사용할 목적으로 정성껏 가다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의 답변은 이러했다, ‘주님을 모실 멋진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고, 두 번째 사람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에 만난 사람은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탁월성 실현을 위한 창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19장에 걸쳐 담아낸 고민의 학습과정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조그만 도움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두손모아.

수, 2019/11/1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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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도구들에 대해 설명했다. 국민발안은 시민들이 법률을 도입, 제안하거나 수정, 폐기할 수 있게 해 준다(제안적 레퍼렌덤이나 법률 폐기를 위한 레퍼랜덤). 입법 기구(의회나 지방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이 주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하려면 확정적 레퍼렌덤 도구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한 지방의회의 발안으로 어떤 법 제안이나 국책 사업과 관련하여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나 입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려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형 레퍼렌덤을 조직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표본을 통한 여론 조사의 결과보다는 약간 나을 것이다.

 

시행을 위해 중요한 바람직한 규정

만일 레퍼렌덤 도구의 활용과 레퍼렌덤 투표 시행을 위한 법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최고의 레퍼렌덤 도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직접 민주주의의 질은 이러한 절차 상의 구체적인 규범과, 정치의 결정 과정에서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달렸다. 각 단계마다 규정해야 할 중요한 요인들이 있는데, 그 요인들로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시킬 수도, 좌절시킬 수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12가지 절차적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1) “레퍼렌덤을 할 수 있는” 사안들: 무엇에 대해 투표할 것인가?

시민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 투표할 수 있으며, 어떤 정치적 현안들이 애초부터 직접 민주주의의 모든 절차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은 모든 정치적 현안에 대해 결정을 내릴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들이 선출한 대의원들 또한 해당 현안에 대해 결정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의회나 지방의회 등의 구성이나 해당 정치 기구의 예산 관련 법규이다. 어느 레퍼렌덤 사안에 대한 허용성은 어쨌든 헌법과 이탈리아에서 비준된 국제 협약, 지방 법령 및 자치 법령으로 한정된다. 레퍼렌덤은 항상 관련 정부 차원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의 현안들을 다뤄야 할 것이다. 공공 지출이나 세금 및 관세는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반드시 레퍼렌덤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발안 및 레퍼렌덤에서 재정 관련 현안이 가장 인기있는 사안의 하나이다(10장 참조). 그리고 종종 정부의 행정 명령이나 주 정부의 승인으로 재정, 환경,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들이 내려지므로 이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드시 레퍼렌덤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요청 기준: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하려면 얼마나 많은 지지 서명이 필요한가?

여기서 말하는 ‘요청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레퍼렌덤 발안자들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야 레퍼렌덤 권리나 국민발안권리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뜻한다. 그러한 문턱의 적정한 한도 설정을 위해 참조할 만한 기준이 있다. 가령 스위스의 칸톤 차원에서는 평균적으로 그 칸톤의 투표권을 지닌 유권자 총 숫자의 2.3%를 요구한다. 가장 문턱이 높은 곳은 5%에 이르는 티치노 칸톤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전국 차원에서 적어도 50만 명의 유권자들이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요청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이 숫자는 2018년 3월 국회의원 선거 시 전 유권자의 약 1.1%에 해당한다. 볼자노 주에서는 현재 제안적 레퍼렌덤을 시작하려면 1만 3천 명의 서명을 받도록 요청하며, 롬바르디아 주에서는 같은 요청을 위해 2만 명의 거주민 유권자들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적절한 요청 기준은 투표권을 지닌 시민의 2~5%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3) 서명 모음 방식

강연이나 직접적인 정보전달,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레퍼렌덤 절차에서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서명 모음은 동료 시민들과 접촉해 새로운 제안을 들고 그들을 설득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서명 모음은 공공장소나 회의, 모임 등의 장소에서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관련 공무원의 입회 하에 서명 공증을 받는 번거로움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서명을 받을 때 그 서명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한 복잡한 요건이 있어서 서명을 통한 시민들의 참여를 번거롭고 어렵게 만든다. 발안자들은 공무원들을 동반하는 것이 어렵고, 시민들에게는 레퍼렌덤 제안에 서명하기 위해 관청을 찾아 가야 하는 것이 어렵다. 장현에서 직접 받는 서명에 대해서는 시민들 중 누군가가 시장의 위임을 받아, 형사 책임하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기초자치단체 관청에서 서명자들의 정보를 확인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서명 모음 장소에서 자유롭게 서명을 받고, 나중에 선거 본부의 확인을 거친다. 공증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이탈리아만의 별난 관행이다.

 

4) 허용 여부의 확인

레퍼렌덤 사안에 대한 허용 여부를 검증하고, 모든 레퍼렌덤 절차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중립적인 실행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어떤 제안이 헌법과 양립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은 이 위원회의 소관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독점적인 관할권이다. 법적 허용성은 레퍼렌덤 투표 이전에 검증되어야 한다. 또한 헌법적인 양립 가능성 입증 또한 서명 모음 이전 단계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허용하여, 유권자들이 헌법에 부합하지도 않는 문제에 투표함으로써 막대한 공공 기금을 낭비하는 일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레퍼렌덤 투표 덕분에 시행되기 시작한 법령에 맞서는 법적 항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는 의회에서 승인받은 모든 국법과 지방법의 경우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이탈리아에서 검증 위원회는 대개 치안 판사magistrate로 구성되지만 반드시 판사judge로만 (magistrate는 judge 보다 관할권이 적으며, 구나 소도시 등의 특정 지역에 국한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역자 주) 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이 풍부한 그 밖의 법률 전문가에게도 이 역할을 담당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 대부분의 주에 이러한 검증 위원회 등이 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보증 자문 위원회Consulta di garanzia, 보증 위원회comitato digaranzia, 레퍼렌덤 절차위원회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그러나 취지는 허용성(및 다른 관련 의견)에 대한 판단을 정치 기구에 맡기지 않고, 정당 간의 다툼에서 독립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기구에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또한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의 허용성에 대한 판단을 서명 모음에 앞선 시점으로 옮기는 것은 틀림없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미 끝난 서명 모음에 그제서야 끼어드는 결정이 가져오는 불확실성과 혼란과 좌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서명 모음 기간과 레퍼렌덤 금지 기간

서명을 모으기 위해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는가? 레퍼렌덤 절차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명을 모을 기간이 더 길수록, 발안자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시민들을 양성하며 자신들의 목표에 시민들을 참여시킬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이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다양하다. 스위스에서는 헌법개정 국민발안의 경우 심지어 18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선거 전후에 레퍼렌덤 활동을 금지시키는 기간을 두는 것은 선거와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 민주적 투표, 곧 공동체에 중요한 사안에 대한 레퍼렌덤의 실시를 방해한다. 때로 지방법에서 선거 12개월 전부터 레퍼렌덤 활동을 금지시키는데, 이는 지나친 처사이다. 이런 법령은 선거 전 한 해 동안 시민들이 오로지 어느 칸에 체크를 해야 할지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6) 참여 정족수

어떤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1947년 이탈리아 헌법 제정 당시 헌법 조항에 국민투표 요청 유권자니 참여 정족수가 마련되었다. 이 조항에 의하면 레퍼렌덤 투표가 효력이 있으려면 투표권 보유자들의 과반수 이상이 참여해야 한다. 이는 이탈리아 레퍼렌덤의 역사에서 최악의 규정으로 1974년부터 실시된 10여 차례의 레퍼렌덤 투표를 실패로 이끈 나쁜 법령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가장 숭고한 목표 중의 하나는 시민들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활용하여 투표에 참여하도록 격려해야지 좌절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족수 규정은 정확히 직접 민주주의에 반한다.

정족수는 어떤 레퍼렌덤 제안에 대한 반대자들로 하여금 토론에 대한 정보 전달부터 투표 참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참가를 거부하도록 만든다. 정족수는 반대 정치 세력들에게 그 사안에 기권하도록 만드는 암묵적인 초대이다. 정족수와 그에 따른 거부는 결국 제안에 반대하는 “진정한 적수”가 되어 (결과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투표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방관자들, 여러 다양한 이유로 꼼짝할수 없는 이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반대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허위의 연합을 만들어 낸다. 반대로 그 어떤 선거에도 투표하지 않고 무관심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이 불참함으로써 원안의 법률은 취하되지 않는다.

정치적 현안의 성격상, 유권자들이 낸 발안의 대부분은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아니며, 늘 적지 않은 일부 국민들만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그 서명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을 것이다. 투표소에 가지 않는 시민들의 표는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시민들의 표와 마찬가지로 간주해야 한다. 이들은 곧 기권자에 불과하다. 기권을 반대표로 생각할 수는 없다. 정족수는 소수를 보호하지 않는 매커니즘이다. 정족수가 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일종의 허위의 가설로서, 정치적이지 않은 갖은 이유로 어쨌건 투표소에 가지 않는 유권자 25~30%를 사안에 반대하는 표로 간주하게 된다. 정족수 없는 레퍼렌덤 투표는 선거와 유사하게 작동한다. 곧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둔다. 스위스와 미국, 독일 바바리아 지방 및 다른 많은 나라에서 실시하는 정족수 없는 레퍼렌덤의 실례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꼭 정족수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7) 공적 책임과 정보의 공정성

민주적 체제에서 시민들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공공 기관으로부터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권리를 지녀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법률에서 공정성에 대해 규정하고 있듯이, 시민들은 공공정보 기관에 동등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 레퍼렌덤 캠페인을 통해 정치적 입장들을 제시하고, 발안자들은 사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며, 모두가 어떤 레퍼렌덤 사안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레퍼렌덤 사안들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이용 가능한 모든 형태로 공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 기관들은 이를 종이 책자나 디지털 책자로 간행해야 한다. 책자에는 투표에 부치는 제안들, 찬반 논점, 절차상의 공지 사항 및 시민들에게 유익한 그 밖의 정보들을 싣는다. 이 소책자는 시기 적절하게 투표권을 지닌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또 투표를 조직하는 기관의 사이트에 들어가 다운로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8) 대의 기구의 참여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지방의회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첫 단계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것에 대해 서로 합의점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 대화를 통해 의회의 업무와 국민발안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거나, 어쨌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발안의 경우, 발안위원회는 국회나 지방의회와의 협상에 들어가며, 대의 기구는 어떤 대안적 제안에 대해 승인하고 그것을 레퍼렌덤 투표로 가져갈 권리를 지닌다(“기관의 반대 제안 institutional counter proposal”).

 

9) 투표 방식

현재 이탈리아에서 모든 정부 차원급의 레퍼렌덤 투표는 거의 모두 오로지 투표함 투표를 통해 진행하며, 해외 거주 시민들은 예외적으로 우편으로 투표할 수 있다. 해외 거주 시민들의 우편 투표는 선거나 레퍼렌덤의 경우 모두 주 정부들에서도 동의했다. 이탈리아의 몇몇 기초 자치단체에서는 레퍼렌덤에서 모든 시민들의 우편 투표를 허용한다. 우편 투표는 스위스와 독일, 미국의 몇몇 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투표 형태이다. 미국의 오레건 주는 심지어 우편 투표만을 허용한다. 이런 형태의 투표는 시민들에게 상당한 이점이 있고, 공공 기관에 꽤 큰 비용 절감 효과를 제공한다. 앞으로 새로운 온라인 전자 투표 도구들 또한 고려될 것인데, 이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10) 자금 조달

레퍼렌덤이나 어떤 법률을 발안하고자 하는 위원회는 처음부터 항상 ‘어떻게 비용을 마련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선거를 치르는 정당들처럼, 발안하는 시민들도 서명 운동 비용을 지급받을 권리를 지닌다. 제안서 작성 시의 법률 자문, 서명 모음, 레퍼렌덤 캠페인, 정보 전달 등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며, 작은 단체들과 재원이 없는 시민들은 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선거 운동 비용 지급과 유사하게 공공 기관은 발안을 주창한 이들에게 발안이나 레퍼렌덤 제안시 발생한 비용의 일부를 보전할 의무가 있다. 공공 지원금은 원칙적으로 그에 요구되는 최소 서명 인원수에 도달하기까지 서명 모음을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11) 투명성의 의무

투명성의 의무는 다양한 이유에서 중요하다. 모든 발안 위원회는 어떤 자금으로 그들의 레퍼렌덤 발안 비용을 충당했고, 어떤 제3자에게서 재정 지원을 받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발안자이건 반대자이건 자금 조달원에 대해 투명성을 지킴으로써 모든 시민들이 그들의 후원자와 이익 당사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공공 기관이 직접 레퍼렌덤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12) 투표 결과의 적용과 보장

이 단계에서는 투표로 나타난 다수의 뜻을 존중하고, 그러므로 법적 실체를 갖추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투표함에서 나온 판단을 의회나 지방의회에서 단기간에 뒤집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국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과 마찬가지로 레퍼렌덤 투표 결과는 헌법재판소에서 투쟁을 벌일 수 있다. 정치-입법 차원에서 레퍼렌덤 결과를 보호하는 것은, 의회 다수당이 그 결과를─이미 존재하는 법의 개정이나 폐기 제안─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 현상은 이탈리아에서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레퍼렌덤의 결과는 최소 1년간 유효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결과를 적용하는 법률의 시행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질은 적용법에 따라 좌우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질은 레퍼렌덤 절차의 시행을 규정하는 법규와, 입법 기관에서 어떻게 법규를 법 제정 과정에 삽입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법규들은 또 실제로 시행중인 법으로 규정된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이 얼마나 적용 가능한지 그 유효성을 평가하는 명백한 평가 기준이다. ‘유럽의회의 권리를 통한 민주주의 유럽 위원회(베네치아 위원회)’도 “레퍼렌덤 시행 수칙code of conduct”(2007년 3월 17일)을 채택했는데, 많은 부분이 이 책에서 제안한 적용 규칙들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잘 발달한 직접 민주주의를 확보하려면 다음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일 정치적 사안을 근거 없이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이탈리아가 조인한 국제 조약이나 협약과 관련한 의무 혹은 일반적인 공동체적 권리 때문이 아니라면, 정치적 사안들을 레퍼렌덤 권리에서 배제시키지 않는다. 예산이나 의회와 지방의회 내규, 책임 면제와 사면 등을 제외하고, 레퍼렌덤을 할 수 없는 사안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레퍼렌덤 의제들은 헌법 및 해당 정부 차원의 관련 의무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레퍼렌덤 의제는 종교적, 언어적 소수자들의 기본권을 위반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최고 법률에도 정치인들의 보수나 정당의 자금, 해외 정치 문제, 현재 진행중인 행정부의 대형 프로젝트 결정을 레퍼렌덤 회부 사안에서 배제시킨다고 규정되어있지 않다.

▪독립성이 보장된 위원회

국민발안의 법 제안이나 실행적 레퍼렌덤 요청의 허용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소집된 위원회는 독립성을 지닌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모두가 꼭 판사일 필요는 없다.

▪지나치지 않은 지지 서명 인원수

레퍼렌덤 투표의 “요청 기준”이 너무나 높은 나머지 큰 단체를 통해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이 권리에 접근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보통 서명 인원수는 유권자의 2~5% 사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대개 이 숫자는 해당 의회 대의원 선출에 필요한 표 숫자를 넘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시민들에게 우호적인 서명 모음 양식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순간에 시민들의 책임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서명을 모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며, 이후 선거 관리 사무소에서 확증과 검증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지 서명은 같은 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위해 일하도록 시장이 임명한 시민이라면 누구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의회의 참여와 반대제안 권리
직접 민주주의 절차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민 제안들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의회는 일종의 “의회의 반대 제안”을 승인하여 레퍼렌덤 투표에 부칠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은 그렇게 국민 제안, 의회 반대 제안, 현상유지(두 가지 모두 아닌 것)라는 세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법으로 규정된 특별한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시민들에게 반대 제안 권리가 있다.

▪서명 모음에 적절한 기간 보장

레퍼렌덤 절차는 정보 전달과 공공 토론을 위해 충분한 기간을 두어야 한다. 정부와 행정기관은 국민발안의 경우 충분한 기간을 두고 발안자들이나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토의하며, 반대 제안을 승인하거나 자신들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입장은 어떤 입장도 갖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는 이를 위해12 ~18개월을 둔다.

▪참여 정족수를 두지 않는다

투표에 부쳐진 의제와 현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참여하여 결정한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기권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이들이 바라는 결과가 선거의 목적이 되지 않도록 한다. 투표하지 않는 이들은 동료 시민들에게 결정을 맡긴 것이다(뒤의 “정족수 반대 십계명” 참조).

▪정기 투표 및 미리 정한 투표 날짜

잠정적으로 매년 어느 날 레퍼렌덤에 투표하러 갈지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투표 공휴일”). 그런 방식으로 레퍼렌덤 투표가 선거와 중복되지 않게 한다. 지나치게 길게 레퍼렌덤 활동 금지 기간을 두지 않도록 한다(예를 들어, 하원의원이나 지방의원 선거 앞뒤로 1년). 이는 직접 참여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유권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 전달

제도적인 정보 전달과 각각 다양한 입장들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에 최대한의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모든 유권자들은 투표에 부쳐진 다양한 선택안들에 대해 관련 공공 기관에서 편찬한 공식 정보가 담긴 소책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관청이나 공공 사무소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금 조달과 비용 상환의 투명성

모든 레퍼렌덤 캠페인에서 관련자들의 자금 조달은 공적으로 알려야 한다. 누가 어떤 자금을 대었는가? 선거에서와 같이 국민발안의 주창자들은 각 서명 모음에 대한 법정 액수에 따라 비용을 환급 받을 권한이 있다. 정치 기관이 레퍼렌덤에 대한 그들의 반대 제안들을 홍보한다면, 발안의 주창자들은 그들의 캠페인에 같은 정도의 기금을 사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을 위한 법률 자문

국회의원들처럼 시민들도 공공 기관 측에서 무상으로 법률 자문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법 제안이나 레퍼렌덤 의제들을 다듬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투표 결과의 보장 조항

투표함에서 나온 결과는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투표 결과의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의회나 정부의 심의로 결과가 뒤집힐 수 없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는 존중되어야 하며, 미리 정한 최단 기간 내에 적용되어야 한다. 의회는 향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반대 제안을 표명할 권리를 여전히 지녀야 한다.

국민발안과 확정적 레퍼렌덤을 활용하여 이 법안들을 도입하고 개정하는 것이 시민들의 몫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대리인 선거를 위해서나 직접 참여권의 행사를 위해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이다. 시민들이 그들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결정하는 것을 온전히 대의원들의 자유 재량에 맡기는 것은 모순일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목, 2019/11/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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