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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474호]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가능케 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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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474호]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가능케 한 힘

익명 (미확인) | 월, 2018/10/08- 10:54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가능케 한 힘

2018 아시아인권옹호자 포럼을 다녀와서

 

이미현 참여연대 정책기획실 선임간사

 

또 다시 쓰나미 악몽이다.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사망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2004년 말 발생한 역대 최악의 쓰나미가 떠오른다. 지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국제기구와 주변 국가들, 시민들도 수색과 복구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긴박한 상황에 국경을 넘어 전해오는 도움의 손길과 관심은 아픔을 이겨내는 큰 힘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처참한 상황에 절망하는 피해자들을 일으키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저항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자연재해에만 사람들의 도움이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상황에도 사람들은 나선다.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닐지라도 함께 분노하고 행동을 한다. 2014년 3월 한 인권운동가가 갑자기 테러금지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정부가 꺼려하는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에 나섰다는 이유였다. 그의 가족은 그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스리랑카의 인권운동가 루키 페르난도(Ruki Fernando) 이야기다.

 

국제사회는 즉각 2년 전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2012년 라오스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솜바스 솜폰(Sombath Somphone)은 비엔티엔 길 한복판에서 경찰에 납치되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그때도 솜바스 솜폰의 구명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있었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또 다시 동료 활동가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전 세계 인권단체들과 운동가들은 절박하고 긴박한 마음으로 행동에 나섰다.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을 받아 스리랑카 정부에 전달했다. 루키 페르난도의 체포 사실이 알려진 지 이틀 만에 한국에서도 31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압박을 받은 스리랑카 정부는 3일 만에 루키 페르난도를 석방했다. 국경을 넘는 연대의 승리였다.

 

평화로운 촛불집회가 가능하기까지

 

한국 시민사회가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도 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졌다. 그러자 많은 국제기구, 인권단체들이 정부의 폭압적인 대응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사회가 표한 심각한 우려와 한국 인권시민단체의 호소는 결국 2016년 1월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방한으로 이어졌다.

 

특별보고관은 방한 조사를 마치고 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심각한 우려와 권고를 발표했다. 특히 "경찰이 집회신고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교통방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집회를 불허하는 것은 평화적 집회를 보호해야하는 국제인권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리를 보호해야 할 법원이 권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한 우려는 이후 약 5개월 뒤 발표된 최종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담겼다. 경찰의 물대포와 차벽 사용이 오히려 집회 때 긴장을 높일 수 있다는 점, 물대포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거나 특정인을 겨냥하는 점, 불법 집회를 주도했다고 처벌하는 것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등도 언급됐다. 이것이 2016년 10월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기 4개월 전이었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는 평화적으로 열릴 수 있었다. 물대포는 없었고 차벽은 차츰 줄어들었다. 경찰의 행진 불허는 법원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기까지는 분명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평화 집회'에 대한 열망, 집회를 주최한 측의 준비와 노력이 물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나는 2015년 말부터 국내외 인권시민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했던 평화로운 집회에 대한 요구 역시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 꼽고 싶다. 한국 정부는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제기되는 평화적 집회와 시위 보장의 압박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대는 이렇게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18 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

 

한국에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민주주의의 후퇴가 있을 때마다 함께 분노하고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었던 아시아 지역의 인권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9월 26일부터 3일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human rights defenders forum)이 그것이다.

 

2018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

<2018년 9월26일~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 ⓒ참여사회연구소>

 

 

정부에 불법 체포를 당해 국제사회가 석방촉구 운동에 나섰던 스리랑카의 루키 페르난도, 지난 수년간 공정한 선거를 위한 개혁을 외치다 정부의 압수수색, 보복기소로 고통을 받았던 말레이시아 인권운동가 마리아 친 압둘라(Maria Chin Abdullah)도 함께 했다. 그녀는 2016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한국을 방문하려다 자국의 출국금지 조치로 방한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61년만의 정권 교체로 출국금지가 풀리고 이번 포럼에도 올 수 있었다. 다만 더 이상 인권운동가가 아닌 정치인의 자격이었다. 그녀는 지난 기간 탄압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거개혁 운동 버르시(Bersih)가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발표하러 포럼을 찾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포럼은 인권옹호자들이 처한 위험과 이를 극복한 경험을 공유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활동의 다양한 사례를 서로 배우는 자리다.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아시아 담당관도 참석해 각국 인권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혐오 세력에게 온오프라인에서 공격을 받는 여성활동가들의 이야기는 다수의 참가자들에게 연대와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 참가자로서 참여연대는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의 경험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야간임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집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참가자들이 궁금해 했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과연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 극단주의와 근본주의, 민족주의의 범람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을 위해 인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포럼 기간 내내 비슷한 질문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2박 3일 동안 토론의 끝마다 강조되었던 결론은 비슷하다. 변화는 결국 온다. 시민사회가 깨어 있고 다른 세력과의 연대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힘이고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거다. 서로의 경험과 실패에서 배우고,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이번 포럼과 같은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경험으로부터 민주주의는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국경을 넘는 연대가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긴 노정에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준다는 것도 알았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전진했다고 해서 아시아 다른 지역 인권옹호자들과의 연대에 소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한 지금 우리가 경험한 한 걸음의 진전이 여전히 민주주의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 각국에, 그리고 난민, 소수자 혐오라는 우리 사회 또 다른 난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2016년 그 날 (75) 몇 차례 군수와의 협상시도가 실패했다. 군수가 계속 회피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군수에 대한 압박의 수준을 높였다. 12:30 군수와 친분이 있다는 제3부지를 찬성한 사람을 만나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15:00 이강태 신부와 만나 협상내용을 협의했다. 21:30 군수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날 투쟁위원회 측에서 이강태 신부, 김성혜 교무, 김충환 위원장, 이수인 전 기획팀장, 이재동 부위원장이 참석했고, 군수 측에서는 김항곤 군수, 김세환 부군수, 권도기 기획감사실장, 최종관 총무과장, 이재복 노인회장, 조익현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성주경찰서 김강현 정보과장이 배석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졌다. 317일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성주 평화나비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창환의 시, “대한민국 성주사람 오추옥”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영영 썩지 않을, 서러운 이름 하나 넙죽 받아 안고 저물어갔다. 아! 징그러운 이 땅. 14:00 백남기 농민, 돌아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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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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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앞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한미연합연습과 북 핵실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월, 2017/09/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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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전문 그룹 민주시민들을 위한 모임에 일제를 찬양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김정은을 자신의 동료라며 우기며 인신공격을 만행하는 쓰레기들의 집합소입니다. 군복압는 불법 어린 젖먹이, 과대망상 대인관계 문제자, 인터넷상에서 인신공격하다가 경찰에 입건된 놈들까지 별종들이 모인곳입니다. 다름아닌 제가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 그룹이 우리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그룹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바로 가입해서 공격합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적폐를 청산합시다!
월, 2017/09/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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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사드배치 반대론자를 중심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에 의구심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25일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드특위는 사실상 사드배치 반대입장을 가진 의원들의 모임
월, 2017/09/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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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 성주촛불 440일 with CameraFi Live
월, 2017/09/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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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으로부터 경찰 개혁의 방향에 대해 들었습니다. #국가폭력 #백남기 #쌍용자동차 #강정 #용산참사 #밀양 #가톨릭교회
월, 2017/09/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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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고 무기 팔아먹은 나라. 우리나라에 주둔하여 전시작전권도 가져가고 안돌려주는 나라. 기업 투자하라고 무기 사라고 사드 배치하라고 명령하는 나라. 식민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좋다는 호갱님들의 나라 우리나라. ≪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 미국-1 ≫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호전적(好戰的)인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하는 나라도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해 왔다. 첫째, 미국은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2016년 현재까지 240년 가운데 무려 219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는 8.8%인 21년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전 세계 150개 이상의 지역에서 약 250개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가운데 200개 이상의 전쟁이 미국에 의해서 일어났다. 참고로 20세기에만 약 1억9000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셋째, 미국은 2016년 세계 각지에 약 1000곳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일본에 5만2000명, 한국에 2만5000명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8만 명 이상, 독일에 3만7000명, 이탈리아에 1만2000명 등 유럽에 6만 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 멕시코 : 원주민 학살의 역사 > 멕시코와의 전쟁을 전후로 미국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백만 명 이상 죽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개척'일지라도 원주민들에겐 참담하고 끔찍한 학살이었다. 역사는 대개 승자가 쓰기 마련이며 패자의 기록보다는 승자의 기록이 퍼지고 오래 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미국의 '서부 개척'이라는 승자의 용어를 쓰려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이라는 승자의 용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며 '한반도 침략'이라는 패자의 입장을 주장하려면, 미국의 잔인함을 비판하며 '원주민 학살'이라는 패자의 처지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 스페인 : 선민의식과 조선에 대한 배신 >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1895년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쿠바에 투자한 미국인들의 보호를 명목으로 1898년 쿠바에 해군 함정을 보냈다. 곧 이 함정이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되자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겼다. 전리품으로 거의 모든 스페인 식민지를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지도자들이 내세운 게 선민의식이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인종이 기독교 문화와 그를 기반으로 발전된 서양 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미개한 유색인종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도리요, 의무라고까지 주장했다. 참고로, 1898년 쿠바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함정의 폭발은 무려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스페인군의 기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해외로 확장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1905년 태프트-가쓰라 비밀 협정을 맺었다. 태프트 미군 장관이 식민지 필리핀 시찰에 앞서 일본의 가쓰라 총리를 만났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양해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맺자, 서양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1882년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던 미국은 가장 먼저 조선을 떠났다. < 일본 : 고립주의와 중립주의에서 국제주의로 > 1935년 히틀러의 독일은 군비 증강에 착수하고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한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동원령을 내리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중립법을 제정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교전국에 대한 융자와 전쟁 물자의 판매까지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1940년 곤경에 처한 영국이 협력을 요청하자 미국은 중립법을 피하고 무기 대여법을 통해 영국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미국도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며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1945년 7월 인류 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8월 일본에 터뜨림으로써 전쟁을 끝냈다. 핵무기에 따른 조선인들의 피해도 매우 크고 끔찍했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 약 7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4만 명이 폭사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국제주의로 바뀌었다. 유럽 열강들이 두 차례 대규모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하며 쇠퇴하는 터에, 세계 제1의 국가로 솟아오른 미국이 소극적 고립, 중립주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 소련 :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와 저지 >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1이 되었는데 곧 미국에 맞서는 나라가 나타났다. 자본주의 멸망을 추구하며 세계 제2위로 오른 사회주의 소련이었다. 미국은 한반도가 그리스나 터키보다 전략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여겨, 1947년 초부터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며 물러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1947년 9월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10월 한반도 문제를 미국 외교의 뒷마당이랄 수 있는 유엔에 떠넘겼다.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국가 이익'이다.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련과 손잡고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뒤엔 연합국이던 소련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까지 우방으로 만들었다. 1947년부터 안으로는 국가안보위원회 (NSC), 중앙정보국 (CIA), 그리고 합동참모본부 등을 만들고 밖으로는 미주기구 (OAS),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등의 창설을 주도하며 소련과의 냉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 한반도 : 60여 년 지나도 끝나지 않는 전쟁 >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트루먼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했다. 그리고 남한이나 대만이 공산화하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이 합법적이고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란 성명을 발표하고, 긴급 상황이라며 의회의 동의 없이 병력을 보냈다.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1950년 9월 인천에 상륙해 서울을 되찾고 북쪽으로 진격했지만 10월 중국군이 참전함으로써 1951년 1월 후퇴했다. 1년간의 격전 끝에 1951년 7월부터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2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1953년 7월 휴전‧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그로부터 63년이 흐른 2016년 8월까지 전쟁을 쉬거나(휴전) 멈추고 있는(정전) 상태에서 완전히 끝내거나(종전)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호전적'인 북한은 줄기차게 종전-평화 협정을 요구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과 남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베트남 : 제2의 한국 전쟁 >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대한 베트남의 독립 전쟁인 제1차 베트남 전쟁은 1946년 시작되어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끝났다.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하되 2년 안에 선거를 통해 통일 국가가 되도록 한다는 내용의 제네바 협정이 맺어졌다.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남베트남에 경제 및 군사 지원을 시작했다. 선거가 실시되면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추구해온 호치민의 북베트남이 압도적으로 이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 개입을 확대하면서 북베트남 통킹만에 함정을 보내 정찰 활동을 펼쳤다. 미국 함정이 공격당하는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를 빌미로 1965년부터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벌였다. 제2차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은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971년 조작으로 밝혀졌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한 빌미로 삼았던 미국 함정의 폭발이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 것과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격렬한 반대와 저항을 받았던 범죄행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굴욕적인 전쟁이기도 했다. 이토록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나라가 남한이었다. 처음엔 미국에 간청하다시피 해서 파병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미국의 신임과 지지를 받으면서, 미국의 지원에 의한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 이라크 : 일방주의 그리고 선제공격 > 미국은 2003년 유엔의 반대와 많은 나라들의 비판을 받으며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라크를 침공했다. 네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미국처럼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많이 배치해 놓고 있는 나라는 없다. 둘째, 이라크가 9.11테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9.11 이전까지 미국만큼 테러를 많이 지원했던 나라는 없다. 셋째, 이라크가 독재를 실시하고 인권 탄압을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독재와 인권 탄압에서 이라크 못지않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에는 무기도 팔고 경제 지원도 했다. 그리고 미국처럼 독재 정권을 많이 지원한 나라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독재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수십 개의 민주화 운동이 미국의 도움에 의해 반공의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넷째,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유엔 역사상 미국만큼 유엔 결의안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없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엔을 무시하고 단독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대외 정책에 공개적으로 밝힌 나라 역시 미국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를 점령해 군사 정권을 세우려는 진짜 속셈은 반미 정권을 제거하고 석유 자원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있었다. 그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남한은 한미 동맹을 앞세우며 베트남전에 이어 또다시 병력을 보냈다. < 새로운 냉전의 시작 :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며 봉쇄해왔다. '냉전'의 정의와 개념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겠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말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10%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해왔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1996년 일본과 안보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1997년엔 일본과의 방위 협력 지침을 개정했다. 2015년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만들고,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을 끌어들여 이른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국 견제용이다. 2016년 남한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것 역시 중국 때문이다. 미국이 60여 년이 넘도록 한국 전쟁을 끝내지 않고 북한과의 평화 협정을 거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종전 협정이나 평화 협정을 맺으면 주한 미군을 계속 유지할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사의 내용을 일부 생략하여 간추린 것입니다.
화, 2017/09/2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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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 발간] 제주도 사려니숲길을 찾은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로 꼽히는 제주지역이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지역경
월, 2017/09/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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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월, 2017/09/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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