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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백성이 이명박 氏의 第一審 선고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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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백성이 이명박 氏의 第一審 선고를 보며

익명 (미확인) | 토, 2018/10/06- 17:10

愚民見李明博氏第一審宣告

 

平生亨運盡(평생형운진)

猝地作囚人(졸지작수인)

面壁逢仙境(면벽봉선경)

如夢十五春(여몽십오춘)

 

못난 백성이 이명박 氏의 第一審 선고를 보며

 

평생 순조롭던 運도 다했으니

졸지에 囚人이 되고 말았도다

壁과 마주하면 仙境 만나리니

十五年 세월 꿈과도 같으리다.

 

<時調로 改譯>

 

평생 亨運 다하니 졸지에 囚人 됐도다

壁을 마주 대하면 神仙 경지 만나리니

十五年 긴긴 그 세월 꿈과도 같으리다.

 

*愚民: 우맹(愚氓).  어리석은  백성  *第一審: 소송에서  제일 次로  받는 심리(審理)

*亨運:  순조로운 運數  *猝地: 갑작스러운  판국  *囚人: 감옥에  갇힌  사람.  옥수

(獄囚) *面壁: 壁을 마주 대하고 좌선함. 또는 그런 일 *仙境: 神仙이 산다는 곳.

선계(仙界). 선향(仙鄕).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018.10.6, 이우식 지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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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1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사진=tbs 공혜림 기자>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은 현 정부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비판의 뿌리도 ‘친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8주년을 앞두고 t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친일은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파시즘 철학”이라며 “적폐청산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파시즘적인 철학을 가진 자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다”며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임헌영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

–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공식적으로 펴낸 지 오는 8일 8주년을 맞습니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가 과거사 청산의 일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일파 청산에 관대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8년에 걸쳐서 친일인명사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 18년 동안의 온갖 연구 축적을 모아서 낸 것이 친일인명사전인데, 이것을 2009년에 저희가 냈습니다. 이 사전을 낸 지가 벌써 8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이 사전을 내고 나니까 국민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성원으로 이런 사전을 냈습니다, 약속 지켰습니다’ 하고 신고식을, 쉽게 말하면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모 여자대학교 강당을 다 빌려서 계약을 해놨는데 하루 전에 못한다고 장소를 못빌려준다고, 대여 못해준다고 취소 통보가 왔어요. 할 수 없이 거기서 못하고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출판 기념회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친일인명사전을 대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열렬한 환영을 한 데도 불구하고 권력층, 집권세력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냉대하는 구나, 출판 기념회 장소까지도 강제 취소시켜서 못하게 하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친일인명사전입니다.

– 기자: 18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 임헌영: 거의 한 100여건의 각종 소송들이 있었고. 그 많은 소송을 1건도 우리가 진 게 없어요. 다 이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고. 특히 가장 고비를 겪었던 것은 인쇄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사전에 들어가 있다고, 박지만씨가 발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그땐 정말 우리도 위기를 느꼈어요. 그랬는데 아무리 권력의 압력이 있어도 결국은 재판장에서 친일파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우리 사전에 실린 기사를 보고 판결 나서 바로 발행할 수 있었던 거죠.

– 기자: 왜 박지만씨가 소송 냈을 때 가장 큰 위기를 느끼셨습니까. 

= 임헌영:  인쇄도 다 해놓은 상태에서 내놓을 판인데. 박지만씨가 가처분 신청 내면 만약에 받아들여지면 다 찍어놓은 책을 못 내는 거예요. 정권도 이명박 정권 때니까 굉장히 위기를 느꼈죠. 다만 우리는 학술적으로 박정희가 썻던 혈서, 우리가 찾았잖습니까. 일본에 있는 국회 도서관에서 우리 연구원이 찾아서. 누구도 아무리 박정희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도 그걸 보고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죽하면 우리가 이겼겠어요, 재판에서.

그 후손들이 다 자기 조상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 사전에 들어가면 안 된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고 소송 걸었는데 우리가 친일했던 거 다 해명해주고 다 해결됐죠. 실제로 후손들 중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고,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해당자가 대단히 억울한 측면들도 참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민족사적인 전기를 볼 때,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과거사 청산해야 하고 우리 정치 개혁을 위해서도 이건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이다. 이래서 우리도 참 냉험하게도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만 가지고 한 것이 친일인명사전이었습니다.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거고 후손들이 여기 와서 처음에는 분노해서 왔다가 나중에는 차근히 우리 취지를 설명 듣고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연구소 후원을 해주거나 회원이 된 분들도 있어요. 이게 정말 우리 민족사를 위해 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후손들로서는 우리 조상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이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옳았다, 그땐 다 친일했다, 친일이 뭐가 나쁘냐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은 대단히 곤란하고.

– 기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란 말씀이네요. 

= 임헌영: 이 사전을 보시면 저는 이게 쉽게 말하면 광복 8.15 이후에 우리나라 학문 연구의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 학문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권력은 아주 나쁘게 온갖 독재자와 쿠테타를 거쳐 갔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를 축적해왔습니다. 그 많은 축적돼온 학문 연구를 우리가 다 종합한 겁니다. 우리가 뭘 새롭게 연구한 게 아니고 그동안 나온 신문, 잡지, 논문, 학술지에 실린 각종 조사들, 기록들, 증언들 다 종합해서 객관적으로 그대로 썼습니다. 우리 사전 서술하는 방법이 ‘친일한 사람들 이렇게 해서 나빴다’ 이런 구절은 하나도 없어요. 행위 자체를 아주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냉철하게 그야말로 냉철한 하드보일드라는 냉철한 문장으로 딱딱 객관적인 기사체처럼 역사에서 말하는 기전체처럼 그대로 쓴 겁니다. 8.15 이후에 산 분들은 이후 행적까지도 그대로 써줬어요. 후손들도 자기 조상이 그렇게 활동한 건 전혀 몰랐을 거예요. 이력서가 가장 자세하게 나온 겁니다. 8.15 이후 자기의 업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다 써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사전 나온 뒤에는 이걸로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기자: 정치적인 색깔로 보는 분들도. 

= 임헌영: 많았죠.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단 말이예요. 정치, 사회, 군부, 경찰, 사법, 입법, 재벌, 종교계, 교육계까지도 모든 기관에 그런 분들이 지배했단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볼 때는 이게 정치적으로 집권세력이었다가 민주화라는 게 불과 11년밖에 안 됩니다. 고작 민주화라는 시절을 보낸 게 4.19 뒤에 1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11년밖에 안 됐잖아요. 그 11년 동안에 있다가 친일 후손들이 또 집권해서 옹호해온 것 아닙니까. 국정교과서까지 만들고 추태를 보여주다 물러났지만. 그런 속에서 그 분들은 이걸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연구소는 어떤 정파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일파 청산에 찬성해주고 지지하고 도와주면 그건 우리 연구소 편이 되고.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비판하면 8.15 이후 제2의 친일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자: 후손뿐 아니라 정치적 압박도. 

= 임헌영:  많았고. 우리는 일체 모든 연좌제를 반대합니다. 조상이 친일파였어도 후손이 훌륭한 정치가면 정치가로서 봐줘야지. 우리 연구소에서는 그 조상의 후손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절대 공개 안 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었을 때 판단 요청이 오면 그 정치가 때문이 아니고 친일을 한 당사자의 행적은 판가름해주는 거죠. 후손에게 피해가 가기 위해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를 올바르게 판단해주는 역할만 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 기자: 학술적인 활동을 정치적으로 본 이유는 뭘까요. 

= 임헌영:  자기 조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죠. 친일을. 자기 조상만 친일파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니까 엉뚱한 사람들도 이 사람도 친일파다, 이렇게 함께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지용 시인이 그랬죠. 친일 후손 중에는 정지용 시인도 친일했다, 왜 사전에 안 넣었느냐, 이거 정치적이다. 어거지를 쓴 거예요. 정지용은. 여러모로 검토하거든요. 친일파가 아닌 사람을 넣은 건 한 명도 없습니다. 사전을 처음 만들 때 집필진들에게나 친일파를 선정하거나 심의할 때 제가 했던 말이 ‘여기 여러분들이 친일파를 선정해서 실을 때 우리 할아버지라고 생각해라. 나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생각해 달라. 만약 내 할아버지가 여기 들어가면 기분 좋겠나. 나쁠 거다. 되도록 적게,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 아무리 잘 봐줘도 이건 아무리 봐도 친일파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들만 소수로 해서 뽑아라’. 엄선한 겁니다.

– 기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가요. 

= 임헌영: 편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위원장이 학자들이죠, 국사학자들. 그 밑에 필진들은 200여명. 몇십명이 각 분야별로. 수십명의 편찬위원들이 각 분야별로 다 나눠서 수십 차례 회의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합동 심사를 해서. 그 다음에는 제1차 수록 예상자 명단을 국민들에게 다 알려줬어요. 그러면서 이의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친일 안 했고 독립운동 했다는 자료를 가지고 오라, 그러면 우리가 참고하겠다 해서 공고했죠. 한참 지난 뒤에 제2차 확정 명단을 또 발표했어요. 또 언제든지 이의 있으면 제기해 달라. 그동안에 각종 고소, 이의 제기를 한 게 100여건 됐다고 봐요. 그게 해결된 마당에서 책을 펴낸 겁니다.

사전이 나온 뒤에는 일체 말이 없어요. 그 전에 소송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해결됐지요. 오직 행위자의 팩트 자체만 가지고 학술적인 측면에서 넣었거든요. 그 참고 자료를 각자 각자 한 사람마다 다 넣어줬습니다. 이런 사전은 없어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사람 하나마다 참고자료를 다 넣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심지어는 우리나라 자료, 일본, 중국 자료 다 뒤졌거든요. 오죽하면 국가기관에서, 교육부니 법원이니 문제가 생기면 우리한테 자문해서 우리가 판단해 주거든요.

– 기자: 친일이란 역사가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 임헌영: 몇 십 년 전 일을 지금 들춰서 뭐하느냐.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큼 자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세력이 오랫동안 집권한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말하면 인종 편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존중합니다. 인디언 추장들도 자기 종족을 하나라도 죽이면 추장이 안 돼요. 우리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없어요. 아무리 후진국이라도 이러지 않아요. 독재자, 군부 독재, 쿠테타 온갖 걸 식민지 이후에 겪어왔는데. 그 원인이 뭐냐 하다가 우리가 친일인명사전 만든다 하니까 옛날 거 아니냐 하다가, 그 사람들 명단을 보니까 우리가 그렇게 쿠테타, 독재, 부정부패에, 도둑이 큰 소리 치고 그걸 잡으러 가는 경찰들이 벌벌 피신해 가는, 독립운동가들이 되레 피신해가지고. 이 거꾸로 된, 착한 사람이 피해 받고 나쁜 사람이. 그 원인이 뭐냐. 온갖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단 말이예요. 뭐든지 그 뿌리를 캐면 친일인명사전하고 다 연결된다.

유명한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동학군은 독립운동가를 낳고 독립운동가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쟁이를 낳고. 친일파는 독재자를 낳고 독재자는 재벌을 낳고 재벌은 많은 사장을 낳고.’ 삼대째 가난하게 산다고 소설에 그렇게 딱 나와요. 물론 그런 식으로 두부 자르듯이 그런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뿌리가 친일이고. 우리나라 걱정보다 미국 걱정을 더 하는 사람들. 어떻게 성조기를 드록 시위합니까, 태극기도 아까운데. 그것도 정말 친일파적인 발상이다.

– 기자: 과거 친일 가치관이 아직. 

= 임헌영: 아직도 미완이라고 보고 있고. 우리나라는 특히 나쁜 사람들이 상대편을 공격할 때 종북 좌파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집권했잖아요. 자기 밑에 친일파들 배치해서 집권해서 독재하다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반공이었거든요. 자기 반대하는 건 빨갱이로 몰았단 말이예요. 친일인명사전이 나온다는데 ‘북한 사람 안 넣었다’. 너무나 무식한 소리입니다. 북한 사람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했던 시인도 들어가 있어요. 남북 가릴 것 없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 소위 민족을 팔아 먹었다, 그런 사람은 이데올로기, 남북에도 관계 없고 돈 많든 없든 종교에도 관계 없이. 오직 그겁니다, 민족과 조국이 어려웠을 때 배신했느냐 안 했느냐. 거기에 딱 초점 맞춰서 판단했습니다.

지금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숫자가 그 당시 전 국민 2천만명으로 쳐도 소수입니다. 반대파들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 조상이 대단한 친일파인 사람들은 뼛속까지 반대하는 거죠. 친일 옹호하고 우리를 빨갱이로 몰려고 작정한 분도 있고. 또 뭔지 잘 모르고 세상 그렇게 다 살았는데 그게 나쁘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방관자예요.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가 하는 행위가 뭔지 아는 똑똑한 사람들, 사회 지도급 인사, 판단력까지 가진 사람이 자기 행동으로 자기 하나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와 명예와 권세, 실세를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 우리가 넣은 거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교장, 면장, 우리 명단에서 다 뺐어요. 우리도 논쟁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생계형 친일, 먹고 살기 위해서 했는데 뭐 나쁘냐. 그런 사람들은 친일 행위를 안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계형 친일이란 말은 성립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친일파로 안 봅니다. 혹시 이 방송 들으신 분들은 전해주세요. 우리가 한 것을 우리가 앞으로 더 잘 살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평화 통일해서 우리 민족이 자주롭게 잘 살기 위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적인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 한 거지. 잘 사는 사람들 괜히 배 아파서 한 게 아닙니다.

– 기자: 요즘 ‘적폐 청산’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 임헌영: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입니다. 그걸 해결되면 상당수가 바뀌고. 그래야 정치가들이나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잘 사나 연구해야지. 결국 친일파 가치 철학. 사대 외세 의존하는 가치 철학이 그대로 유전되어서 유전만 되는 게 아니라 더 악랄한 수법으로 퍼져서 지금 그런 상황 아닙니까. 적폐청산 1호죠, 아니죠 0호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친일청산은 항상 먼저. 친일파는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입니다. 파시즘 철학입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싫어합니다. 절대 평등을 안 해요. 자기 가족한테도 자기가 어른이고 우리 가족은 내 부하. 직장에서도 파쇼적이고.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절대 민주주의를 싫어하죠. 그런 철학으로. 전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평화를 좋아하는. 가짜 간첩 만들고 탄압하고 이래야 자기들은권세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단 말이예요. 호혜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싫어 한단 말이예요. 그런 철학은 21세기 UN이 정한 세계시민에 위배돼죠. 아주 못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적폐청산을 그야말로 마약에 박근혜 정권이 그대로 있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지금 그 밝혀지는 세계 인류에서 볼 수 없었던 죄악입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최대 과제가 촛불 시민들이 바라는 적폐 청산입니다. 어떤 분들은 또 일부 권세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인 보복이다. 그야말로 파시즘적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적폐청산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8·15 이후 첫 기회입니다. 항상 해야 하는데 못했어요. 4·19 이후에도 적폐청산 못했기 때문에 5·16 일어난 거고요. 근대 우리 민족사에 장애물이었던 국민 복지의 장애물, 평화통일의 장애물, 모든 부정부패, 권력 남용 다 들어가는 거죠. 독재 찬양도. 지금은 국정원에서 돈 대서 시민단체들이 전부 그게 독재 옹호하는 거잖아요.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임헌영: 사전이 나온지 8년을 맞았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8년 동안 만질정도 나갔어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게 웬만한 가정마다 비치서로 집안 비치서로 집안 한 권 있어야 하고. 모든 학교, 기관, 하나씩 들어가야 해요. 다 가지고 기본 가치관 자체를 파시즘적 철학을,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없고 이 생각 가져야 합니다. 친일파라는 개념과 그 사람들이 저지른 작태, 범죄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잘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서서 압력행사하려고 하니까 민주주의가 불안하죠. 그런 것만 인식하면 ‘아, 이런 게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지금은요. 친일한 분들은 100% 돌아가셨습니다. 후손들은 아무 죄가 없어요. 자기 조상의 행위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 이렇게 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자꾸 옹호하려는 데서 파시즘적 생각을 부활시키려고. 그러니까 독재정권 자꾸 옹호해서 마찰이 일어나는 거죠 . 진짜 소수거든요. 지금 거의 청산됐다고 보고. 소수가…. 유럽이나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실현했던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구시대적 파시즘적 많은 편이예요.

우리 연구소는 지금 이제 새로운 사옥을 사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돈이 많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20억을 빚지고 갑니다. 지금 이 사무실은 너무 좁고 강좌도 할 수 없고. 교통 좋은 데로 가서 강좌도 열고. 식민지 역사 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거든요. 큰 기부를 해주시길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공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7-11-06> tbs

☞기사원문: [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수, 2017/11/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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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네책방 아저씨, 풀벌레 일꾼, 은종복 회원 면담기

김진영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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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책방 ‘풀무질’ 대표 은종복 회원을 만났다.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전날 밤 은회원의 새 책(????책방풀무질:동네서점아저씨은종복의25년 분투기????,한티재,2018)을읽고약속장소를서점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를 조정하기 위해 전화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을 조정하다 결국 서점에서 만나 은회원의 어머님께서 싸주신 저녁 도시락을 함께 먹기로 했다.
은회원은 서울 명륜동에서 25년째 ‘인문사회과학 책방-풀무질’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이라는 마을공동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동네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살 맛 나는 곳이 되고 마을이 살아야 마을사람들도 서로 웃고 떠드는 정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서점에 갔을 때도 달님, 토끼님과 주민 한분이 계셔, 서점 한 쪽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공동체 사람들은 ‘덧이름’을 쓴다). 책에 둘러싸여 처음 만난 사람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면담은 책방 계단 아래에 움푹 들어간 작은 공간에 마주앉아서 진행했다.
은회원이 책방을 지킨 긴 세월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지만 우선 어린 시절 모습이 궁금했다. 부모님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종복 회원은 1965년 서울 휘경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경북 군위군 출신이다. 두 분은 1958년 무작정 서울로 오셨는데 “서울에 가면 머슴처럼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 왔다고 해서 쉽게 삶이 달라졌을까, 당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많은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도시 빈민의 삶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처음 정착한 곳이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이었다. 중랑천 뚝방길 판잣집에 살며 두 분 모두 평생 쉼 없는 노동으로 삶을 꾸려오셨다.

 

문 : 선생님 책을 읽어보면 심성이 곱다고 할까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 바깥에 있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 배려가 느껴집니다.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할까요?

답 : 사실 어머니는 저를 딸처럼 키우셨어요. 저희가 아들 사형제인데 셋째는 딸이기를 바라셨거든요. 막내가 몸이 안 좋아서 제가 어머니와 대청마루 앉아 타래실을 감기도 하고 감자 껍질을 벗기기도 했어요. 집안일은 제가 맡아서 했습니다. 감자껍질을 깎는 게 아니라 벗기는 거라 손이 빨개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저는 아침잠이 많지 않은데 새벽부터 일어나 중랑천 가에 키우던 호박을 따오기도 하고 닭장서 달걀을 꺼내오기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혼자 움직이며 생명을 대하던 경험이 “풀잎 하나, 벌레 하나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 질문이 “세상을 밝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자연히 어릴 때부터 그런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은회원이 처음 서점 일을 시작한 것이 1993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날짜가 만우절이기도 했지만 평소 술과 투쟁, 글쓰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책방 일을 한다니 주변 사람 중에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을 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풀무질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아니고 그냥 책을 팔고 이윤을 남기는 곳이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작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했겠죠. 이 책방이 그런 가치가 있는 곳이었고 하면 할수록 ‘내가 이걸 지켜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방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유인물도 구할 수 있었고, 교보, 영풍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회와 공동체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대학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은회원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판매’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고, 책방은 몇 차례 폐점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책방 ‘풀무질’의 이름으로 달마다 돈을 내는 곳은 서른 군데, 50만 원이 넘는다.

아껴쓰고, 나눠쓰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자기가 만족한 후에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베풀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고… 연구소도 그렇죠? 저야 잘 모르지만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씩 후원하는 힘으로 운영하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문 : 살다보면 골목이나 놀이터 같은 생활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은회원은 대학가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답 : 돌이켜 보면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학생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 세상을 바꾸려는 ‘척’ 했던 학생, 신념을 갖고 투쟁에 전념하는 학생. 그 중에 저는 두 번째 부류에 가까웠습니다. 학교는 빠지지 않았지만 매일 데모하고 글을 쓰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투쟁에 전념하고 앞에 나서는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기본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사회 변혁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4·3, 4·19, 5·18이 되면 미리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일단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습니다. 여학생들도요. 예비역들은 군복을 입고 왔구요. 이런 날은 보통 재학생 중 반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서 도로로 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지금과는 시대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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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오른쪽 첫 번째가 은종복 회원

 

지금은 사회가 다변화되고 ‘문화식민지’가 되면서 전선이 혼재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이라는 극복해야 할 분명한 상대가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대상도, 명분도 뚜렷했다는 점이 지금과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문 : 지금 학생들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답 : 10여 년 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대학로 CGV가 바로 옆이니까 학생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추천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학생 중에 그 영화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는 1980년 광주의 모습 중 일부를 압축한 것인데도 학생들은 군인이 시민들을 학살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어요. 지금 학생들은 1980년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학교에서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야 광주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만큼 학생들도 스스로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불과 얼마 전의 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죠.
또 한 가지, 지금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1학년 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취직하기가 어려워요. 이름난 회사에 들어가려면 자기 소개서를 100번은 써야 해요. 참담하죠. 우리 때는 데모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연애도 했지만 취직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주어진 환경이 달라요.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해요. 자기 책임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예전처럼 책을 외상으로 사거나 돈을 빌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문 : 최근 급격히 한반도 정세가 변화하고 있는 데 대한 소감을 물었다.

답 : 제 첫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에 눈먼 세상을 없애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탐욕에 젖어서 세상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을 바랍니다. 저도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 크게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제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되는 면도 있습니다. 차츰 다른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되겠지만, 경제이야기만 하다보면 한반도 북녘을 또 다른 식민지로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긴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텐데, 남쪽도 북쪽도 민의가 반영된 정당성 있는 국가권력이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급격한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화가 진전되고 평화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면 국가보안법 문제나 주한미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남북문제가 미국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아픈 부분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로 의지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쪽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을 반대하고, 남쪽이든 북쪽이든 군대가 없는 꿈같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입니다만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겁박하지 않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면서, 평등한 입장에서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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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나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세상에서 동네 작은 책방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 : 지금 상태라면 풀무질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작은 책방들은 모두 버텨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에서 작은 책방이 살아나려면 일등주의, 학력중심주의, 경제지상주의 이 세 가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은 기회균등이라고 하며 힘이 있건, 돈이 많건, 약하건, 장애가 있건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경쟁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 다른 것을 갖고 태어나죠. 그래서 사람은 신 앞에서 그 자체로 소중하고 모두가 평등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모조리 일등주의에 매몰되어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고, 서로 경쟁하며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일등주의 때문에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남보다 이름난 학교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정말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병들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 욕심을 부추기는 경제지상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 권정생 선생님은 “사람들이 밥하나 국 하나 반찬 두, 세 개면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어느 날부터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으려 하다 보니 다른 나라 아이들의 목숨 줄을 조이게 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맛있고, 더 좋은 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고르게 가난하게 살려고 하면 다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다르게 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경제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회원은 “자본주의 체제가 지구를 망가트리고 결국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르게 살아야 하고 경제성장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날 때부터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문 :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로 한다면 저는 따라서 살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답 : 그래서 마을책방의 역할, 지역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렇게 최근 몇 백년간 인류는 전례 없는 엄청난 양의 자원을 소비하며 지구를 망가트리고 있어요. 그 전까지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서 소비하며 살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서로 돌보고 필요한 것을 나누며 함께 사는 방식으로 산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절박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공동체적인 생활방식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책방 풀무질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일등주의, 학력주의, 경제지상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터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방 풀무질에서 책읽기 모임, 밥상공동체, 돈 없이 사는 세상,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을 꾸려가고 있고 이런 활동이 결국은 우리 공동체와 책방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수익이 있어야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 텐데 실제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은회원은 손전화로 통장 잔액을 보여주며, “내일은 풀무질 문을 닫을지도 몰라요. 하하하하~” 크게 웃었다. 전화기에는 조금 전까지 얼마 남아 있던 통장 잔액이 ‘0’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함께 밥을 먹고 조합을 운영하고 활동하는 것은 책방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여기 오는 사람들이 도와주고 책을 많이 구입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책방의 주 매출은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수험생들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 중 열에 아홉은 가까운 곳에서 싸고 빠르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책방에 오지, 풀무질의 생각에 공감해서 오는 것은 아니에요. 최근에 거대 기업들이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면서 재정상황이 훨씬 더 어려졌구요.
따지고 보면 제가 책방 풀무질을 25년이나 한 것은 기적에 가까워요. 지금도 빚이 많고 한 달 이자도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책방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힘이 큽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서점에 들어서면서 ‘풀벌레 아저씨 오늘 할 일 없어요?’라고 먼저 묻고 함께 일을 합니다. 서로 돌봐주는 이런 마음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죠. 이런 마음이 이 책방을 유지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이나 대표라고 하지 않고 ‘일꾼’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내가 풀무질의 소중한 정신을 망가트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해요. 언젠가 우리사회에 큰 변화가 필요할 때 ‘이렇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회원이 1993년 처음 책방을 시작하고 3, 4년 정도는 한 달에 50만원씩 적금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4월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면서 700~800만원의 빚을 졌다. 그 후에는 점점 인터넷 책방이 들어서면서 제대로 수익이 난 적이 없었다. 최근 4~5년 동안은 ‘하루 살았네’라고 하면서 산다고 한다. 하루씩 살아가니 오히려 더 얼굴이 환해지고 삶에 힘을 느낀다고 한다.
하루살이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었다. 은회원이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도 책방 풀무질을 계속하는 것은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책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세대가 태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알고 싶은 것을 검색해서 바로바로 확인하고 정보는 빛의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이책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은회원은 니체의 말을 인용해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살던 대로 살고, 남들이 사는 것을 따라 살아요. 타고난 자신의 모양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게 되면 약자, 소수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는 병들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이 상상하고, 자신을 찾는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대인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보다 많이 걸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늘과 바람과 땅, 풀과 들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도록 더 많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회원들과 청춘들에게 2권씩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100권을 고르라면 쉬울 텐데 두 권만 고르라니 더 어렵다’고 하면서도 바로 네 권을 추천했다. 우리 회원들에게는 권정생의 산문집 ????우리들의하느님????(녹색평론사)과존 로크의????통치론????(까치글방)을,청춘들에게는 리영희, 임헌영의 ????대화-한지식인의삶과사상????(한길사)과님 웨일스,김산의????아리랑????(동녘)을 추천했다.
책을 읽는 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방을 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헌책방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일하는 사람과 살가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거꾸로였다. 은종복 회원과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면 좋은 사람이었다.
새로 사람을 사귀면 그만큼 마음을 내어주어야 한다. 제 혼자 살기도 바쁜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고 싶어 점점 사람들을 사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있는가? 은회원은 원래 사람들은 서로 사귀고 돌봐주며 살아야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책방 문을 나서면서 행복을 위해 끝까지 간직해야 할 다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월, 2018/05/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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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정치인들(일부)

이사진을  봄시로

나의 칠팔년과

나의 중딩년…

ㄴㅏ의 초딩…칠공70

홍지팡이와박목탁에게!

가리느까?

가로노까?

퐁로사실을

동시다발적으로

ㅇㅣ바구하는 일부 자매들의

의도성 의문이 간다.

남한전국적으로  파문이 되는것과,    미혼여성미혼남성”””            홀로여성홀로남성”””

물론, 박목탁홍지팡!             …………………………….니도 그런생각이  들더나?

일부여성 즉+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는  겨레여동생은

ㅇㅕ태마리엄따!

나의성고백은 초딩에게.”””

ㅊㅜㄹ산과  남성

출산과 여성

아이와남성

아이와 여성 …….                      $%# 세계여성의날도  이서야 된다면  세계남성의날도 이서야

성사회학  입장에서본  전반적  일부성남성의 위기와 일부 성여성의  인과관계를  우째볼건지,?

“”””분단재벌성장남성여성피해노동자본종속미국일본중국남한북한비정규정규””””””저출산과성문제?

…..거둘절미해서….   (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스타인들과 관계된,

오늘여성들의 일부들도  당시에  왜?   원치않는 성침핼 당했다고,  박목탁들과  홍지팡들에게  이바구  안핸는지…… 필잔또…. 어느곳에 이력서를  넣고,  봄비  오훈…..실장님국장님도    ….엄꼬!

목, 2018/03/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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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으로 두말하는 교육부,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1. 지난 7월 27일(목)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후속 조치 발표’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통해, ‘역사과 교육과정 집필기준을 개정하고 검정 역사교과서를 2020년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이번 조치가, 과거 교육부가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보도자료> 어디에도 교육부가 과거 박근혜정부에서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다는 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2. 교육부는 이번 조치가 “다양성이 보장되고 질이 높은 역사교과서를 학교에 보급하여 교육의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는 과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2015년 10월 12일, 교육부는 “검정제의 가장 큰 취지인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균형성, 전문성,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고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약칭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학계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우수한 전문가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균형 있고 질 높은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랬던 교육부가 이번에는 “학계, 현장 등 의견 수렴”운운하며, 검정교과서야말로 ‘다양성이 보장되고 질이 높은 역사교과서’라며 한 입으로 두 말하니, 교육부의 놀라운 변신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3. 우리는 교육부가 지난 2년 내내 “이념적 편향성”이라는 색깔론을 들이밀며 역사학계와 역사교사를 공격하였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교육부는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일관된 국정교과서 반대 입장을 묵살하고는 마치 군사작전을 펴듯이 비밀리에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맛에 맞는 국정교과서를 개발하는 데만 매달려 왔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 교육부가 새 정부 들어 ‘검정 역사교과서 적용시한을 2020년으로 늦추는 것’으로 과거의 잘못을 면책 받으려 하고 있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바람이다. 교육부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국정교과서 정책 입안자는 누구인지, 홍보비와 집필료 등 예비비 지출내역은 얼마인지 등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밝히고,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저지른 각종 편법과 불법에 대해 책임을 지는 등 자기성찰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4. 국정교과서는 촛불민심이 선정한 “박근혜 체제가 낳은 6대 적폐” 가운데 하나이다. 촛불 동력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사흘 만에 교육 분야 첫 번째 업무 지시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약속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정부 각 부처마다 ‘적폐청산 TF’를 꾸려 지난날의 폐단을 일소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직전까지 온갖 꼼수와 편법으로 국정역사교과서를 밀어붙이던 교육부는 아직까지 적폐청산을 위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하겠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국민주권시대에 맞도록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마피아’에 대한 인적청산부터 해야 한다.

5.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의 적폐이다. 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대선 기간 중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국정 역사교과서 완전 폐기와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 전문성 보장을 위해, 학계와 정치권이 합의한 내용은 △초등 교과서를 포함하여 국정 역사교과서 제도 완전 폐지 △현재 졸속으로 진행 중인 검정교과서 작업 전면 중단 △친일-독재-냉전의 정당화에 바탕을 둔 <2015교육과정> 전면 개정 △바람직한 미래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기구(전담 위원회 등) 신설 등이다. 이제 촛불민심을 동력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상 문재인 정부는 역사교육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약속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출발이기도 하다.


2017년 8월 1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화, 2017/08/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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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와 근현대사기념관은 서울시와 강북구,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3·1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 후원으로 12월 18일 서울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항일음악회-다시 부르는 독립의 노래’를 열었다. 좌석(670석)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부득이 계단까지 좌석을 마련하여 800여 명이 관람했다. 이번 음악회에는 장사익・노브레인 등 출연진 자신의 히트곡 외에 ‘광복군 아리랑’ ‘안중근 옥중가’ ‘압록강행진곡’ ‘앞으로 행진곡’ ‘목동가’ 등 항일음악 11곡이 연주됐다. ‘망국의 한’ ‘독립의 꿈’ ‘아이들은 자라고’ ‘해방의 노래’ 등 국권 피탈부터 독립까지 한국근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항일음악회는 지난 8월 연구소가 기획하고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항일음악 330곡집????에 담긴 곡에 대한 해설도 프로그램북에 충실히 담아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장사익과 오단해, 인디밴드 노브레인, 국립전통예술고교 두레소리 합창단, ‘기쁨의 아리랑’ 뮤지컬 공연단, 강북구립여성합창단 등이 출연했으며 특별히 지난해 광복절 경축식에 ‘올드 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를 불러 화제가 된 여성광복군 오희옥 여사(92)가 무대에 올라 ‘안중근 옥중가’ 가사를 낭독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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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회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2011년 11월 개최한 항일음악회(총감독 노동은)에 이어 연구소가 주최한 두 번째 항일음악회다. 앞으로 연구소는 항일음악을 학교와 군대에 보급해 널리 불릴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이 음악회에는 고 노동은 교수의 큰아들인 노관우 씨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연구소 팟캐스트 ‘역적’ 노기환 MC와 김초롱 MBC 아나운서가 사회를 담당했으며, 송복남・황동욱 회원이 영상 제작, 장이근 회원이 사진 촬영, 손재호 회원이 오희옥 여사의 차량이동을 맡아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 방학진 기획실장

목, 2018/01/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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