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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속 향촌의 자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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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속 향촌의 자치운동

익명 (미확인) | 목, 2018/10/04- 11:06

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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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칼럼_181004(4)통일뉴스
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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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8강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산미증식계획 ① 
강사 :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화, 2017/07/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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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일시 후원]

(주)경향신문사 33만원 (주)위드고 107만2125원 구미연 10만원 박정미 5만원 아세아문화사 12만원 우리민족 1만원 장선화 1만원 정현구 1만원 최윤정 1만원 한국수자원공사 420만원 해피빈 32만6500원 홍성원 1만원 황수진 100만원 황원섭 1만원 황인홍 5만원

●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명단에 누락되신 분은 사무국(02-2139-0406)으로 전화주시면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수, 2017/07/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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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老假僧問

 

夢虎終成犬(몽호종성견)

望鸞燕雀來(망난연작래)

再思如妄物(재사여망물)

自嘆白頭孩(자탄백두해)

 

늙은 땡추중의 물음에 답하다

 

범을 꿈꿨는데 마침내 개가 되었고

鸞鳥 바랐는데 제비와 참새가 오니

듭 생각하여도 마치 妄物과 같아

머리 허연 애임을 스스로 탄식하오.

 

<時調로 改譯>

 

범 되기를 꿈꿨는데 마침내 개가 되었고

鸞鳥 오길 바랐는데 제비와 참새가 오니

내 마치 妄物과 같아 白頭孩를 自嘆하오.

 

*答問: 물음에 대답함 *假僧: 가짜  승려. 땡추. 땡추중  *終成: 마침내 이루어짐

*鸞: 난조(鸞鳥).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모양은 닭과 비슷하나  깃은

붉은빛에  다섯 가지  색채가 섞여  있으며, 소리는 오음(五音)과 같다고 한다

*燕雀: 제비와 참새를 아울러 이르는  말. 량이 좁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再思: 여러모로 헤아려 보고 다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妄物:

망령되이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사람 *白頭: 백수(白首). 허옇게 센 머리.

 

<2017.7.19, 이우식 지음>

수, 2017/07/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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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夜飮與鄕友

 

笑噱無窮話(소갹무궁화)

歸兒忘老年(귀아망노년)

餘生如此樂(여생여차락)

每日上遊船(매일상유선)

 

여름밤에 고향 벗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껄껄껄 웃으면서 끝도 없는 이야기

아이로 돌아가서 老年도 다 잊었네

앞으로 남은 삶도 이리 즐긴다면야

매일매일 저 놀잇배에 오르는 거라.

 

<時調로 改譯>

 

웃으며 끝없는 얘기 어린 때로 돌아가네

앞으로 남은 그 삶도 이렇게 즐긴다면야

얼씨구! 매일매일을 遊船에 오르는 거라.

 

*夏夜: 여름밤  *夜飮: 밤에 술을 마심 *鄕友: 고향 친구. 고향이  같은 사람

*笑噱: 껄껄 웃음 *老年: 나이가 들어 늙은 때. 또는 늙은 나이 *餘生: 여년

(餘年).  여령(餘齡).  잔년(殘年).  남은 생애 *如此: 이러함  *遊船: 놀잇배.

 

<2017.7.20, 이우식 지음>

목, 2017/07/2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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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善辯假僧輩

 

閉口期成佛(폐구기성불)

能當守自尊(능당수자존)

眞僧何處在(진승하처재)

每寺滿人豚(매사만인돈)

 

말 잘하는 땡추중들에게 告함

 

閉口하면 成佛을 기약할 것이며

自尊을 지킴도 능히 감당하리라

참다운 스님일랑 어디에 계신고

절마다 사람 돼지로 가득하구나.

 

<時調로 改譯>

 

閉口하면 佛이 되며 自尊도 지키리라

참다운 스님일랑 어디 계신단 말인고

절마다 사람 돼지로 가득 들어찼구나.

 

*善辯: 능변(能辯).  능언(能言).  말을  능숙하게  잘함. 또는 그    *假僧:

가짜  승려.  땡추.  땡추중  *閉口: 입을  다묾  *能當: 능히 감당함 *自尊: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킴.  자기를  높여  잘난 체함 *眞僧: 진심으로

마음을  닦고  계행(戒行)을    지키는  참다운  승려.  ≒진실승(眞實僧).

 

<2017.7.21, 이우식 지음>

금, 2017/07/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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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某老儒之白日場壯元漢詩後

 

有肉何無骨(유육하무골)

村鷄伴鳳凰(촌계반봉황)

不如投紙筆(불여투지필)

可測每空忙(가측매공망)

 

어떤 老선비의 백일장 장원 漢詩를 읽고 나서

 

살은 있건만 어째서 뼈는 없으며

村에 사는 닭이 봉황과 짝하였나

紙筆을 탁 던져 버림만 못하리니

늘 공연히 바빴음을 가히 알겠다.

 

<時調로 改譯>

 

왜 有肉無骨이며 촌닭이 鳳과 짝했나 

종이와 붓 따위를 내던짐만 못하리니

공연히 늘 바빴음을 가히 헤아리겠다.

 

*老儒: 늙은 선비. 또는 늙고 학덕이 높은 학자 *無骨: 뼈가 없음. 체계가

  있지  않고 어지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글 *村鷄: 촌닭 *紙筆: 종이

와 붓을 아울러 이르는 말 *空忙: 공연히 바쁨. 일없이 바쁨.

 

<2017.7.22, 이우식 지음>

토, 2017/07/22- 07:02
182
0

盛夏夕暮忽詠

 

盡日終無事(진일종무사)

歸林二鳥鳴(귀림이조명)

方知其意重(방지기의중)

忽詠我心驚(홀영아심경)

 

한여름 해가 질 무렵에 문득 詩를 읊다

 

하루 종일 마침내 아무 일 없었는데

숲으로 돌아가며 새 두 마리가 우네

가볍지 않은 그 뜻 이제사 알겠느니

내 가슴 두근거림 문득 읊어도 본다.

 

<時調로 改譯>

 

종일 無事했는데 歸林하며 二鳥 우네

그 뜻의 무거움을 바야흐로 알겠느니

가슴의 두근거림을 문득 읊어도 본다.

 

*盛夏: 한여름 *夕暮: 해 질 무렵 *盡日: 온종일 *心驚: 가슴이 두근거림.

 

<2017.7.23, 이우식 지음>

일, 2017/07/2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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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基督者(권기독자)

 

牧者貪財色(목자탐재색)

耶蘇淚滿襟(야소루만금)

獻錢非善事(헌전비선사)

宜改信徒心(의개신도심)

 

기독교인에게 권함

 

牧者가 재물과 女色에 욕심내니

예수의 눈물이 옷깃에 가득하다

돈 바치는 것 썩 좋은 일 아니니

信徒의 마음일랑 마땅히 고치라.

 

<時調로 改譯>

 

牧者가 財色 탐하니 예수가 우는도다

돈 따위 바치는 것 썩 좋은 일 아니니

信徒의 그 마음일랑 마땅히 고칠지라.

 

*基督者: 기독교인  *財色: 재물과  여색(女色)을  아울러  이름. ≒화색(貨色)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善事: 착한 일. 좋은 일. 또는 윗사람을 잘

섬김. 또는 신령과 부처에게 공양함.

 

<2017.7.23, 이우식 지음>

일, 2017/07/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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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투브를 통해 프레이저 보고서를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고 몰랏던걸 많이 알게 됏습니다

근데 2는 검색을 해보니 아직 영상이 없는거 같더라구요.

부탁드리겟습니다 (__)

일, 2017/07/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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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으로도 어느 쪽으로 통일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평화통일 가능성은 생각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는가 하면, 심지어는 평화통일론이 이적론(利敵論)으로 간주되어 조봉암 같은 이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변하기 마련이어서 7·4 남북공동성명, 6·15 남북공동성명 등을 통해 평화통일론이 겨우 정착되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같이 어렵사리 정착되어 가는 평화통일론의 역사 위에서 특별히 생각나는 선인을 들라 하면 역시 몽양 여운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0723-1

▲ 강만길 | 고려대 명예교수

일제강점기 해외에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들어와서 언론활동 등을 하던 그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민족해방이 다가옴을 알아차리고 만주군관학교 졸업생 박승환(朴承煥) 등을 중심으로 비밀조직을 만들어 중국에서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무정(武丁)부대와 연계하여 국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함으로써 해방 후 민족사회의 위지를 높이려 노력했다. 그러고는 1944년에 건국동맹, 그리고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해방에 대비하고, 종전되자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신국가 건설을 준비했다. 인민공화국이라 했지만 그 수반에는 이승만을 지명했다.

해방이 38도선 획정과 미·소 양군 분할점령 상태로 오고 민족사회 내에도 좌우익 정치세력이 대립하여 민족분단의 조짐이 나타난 뒤 1946년에 들어서서 이승만 중심 세력에 의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하는 이른바 “정읍 발언”이 나오게 되자 그는 기독교 장로 출신이면서도 좌익계 독립운동 정당 조선민족혁명당의 당수요 좌우합작 중경임시정부의 부주석으로 귀국한 김규식과 함께 1946년에 민족분단을 막고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좌우합작위원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이에 대해 당시의 조선일보 사설도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어떠한 사상과 어떠한 의도하에서든지 남북통일 좌우합작이 아니고는 조선의 완전독립이 될 수 없음은 상식화한 국민의 총의이다”고 하여 적극 찬성했다. 그리고 미 군정도 당초에는 이승만 등을 도우면 다른 정치세력들의 반대로 미국 영향하의 통일임시정부 수립이 불가능할 거라 해서 좌우합작파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것이 좌우합작운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좌우합작운동이 전개되면서 좌우익 정치세력 및 합작파들에 의한 합작 조건들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미 군정청이 입법기관을 설치하고 입법위원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좌우합작운동이 마치 미 군정의 입법기관 설치를 위한 것이 되다시피 되었고 입법위원 선거 결과는 관선의원, 민선의원을 막론하고 우파세력이 대거 당선되어 좌우합작운동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방공간에서의 평화로운 남북 통일국가 수립운동으로서의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지지는 대단히 높았다.

또 한 가지 해방정국 민심의 동향을 말해주는 유의미한 자료가 있다. 1946년 8월에 미 군정청 여론국이 시행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본주의 지지가 14%, 공산주의 지지가 7%, 모른다가 8%, 사회주의 지지가 70%였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해서 조사한 것도 유의미하지만 사회주의 선호층이 절대우세했다는 결과가 주목된다. 좌우익 진영이 대립하고 민족분단의 위험이 높아져 가는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희원하는 사람들이 극우적 자본주의나 극좌적 공산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택했다고 볼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규식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을 적극적으로 걸었던 여운형은 여러 번 테러를 당하다가 결국 1947년 7월19일 마수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리고 젊은 살해범의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좌우합작위원회도 그해 12월에 해체되고 말았다. 여운형이 희원했던 평화로운 남북통일국가 수립은 그가 목숨을 바친 지 70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7-07-20> 경향신문

☞기사원문: [기고]평화통일 시대에 다시 보는 몽양 여운형

※관련기사
☞연합뉴스: “여운형은 좌우합작 추구한 평화통일 운동의 선구자”

☞한겨레: “신냉전 기류 휩싸인 한반도 ‘몽양’에게 길을 묻는다”

일, 2017/07/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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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同鄕名儒答問

 

君徐余急步(군서여급보)

老後果誰先(노후과수선)

兩者如牛蟻(양자여우의)

奚言可比肩(해언가비견)

 

고향이 같은 이름난 선비를 만나 물음에 답함

 

그대는 徐步였고 난 急步였는데

老後에는 참으로 누가 先頭인가

두 사람, 마치 소와 개미 같은데

比肩이 可하다 어찌 말씀하는가.

 

<時調로 改譯>

 

그대 徐步 난 急步 노후엔 뉘 先頭인가

두 사람 비유하면 저 소와 개미 같은데

比肩이 可하노라고 어찌 말씀하시는가.

 

*同鄕: 고향이  같음.  같은 고향 *名儒: 이름난 선비. 또는 유명한 유학자

*答問: 물음에 답함 *徐步: 천천히 걷는 걸음 *急步: 급하게 걸음. 또는

그런  걸음  *比肩: 앞서거나  뒤서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으로

낫고  못할 것이 없이 정도가 서로 비슷하게 함을 이르는 말. 병견(竝肩).

 

<2017.7.24, 이우식 지음>

월, 2017/07/2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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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名刹大雄寶殿側壁上

 

滅後訛傳久(멸후와전구)

多多賣佛僧(다다매불승)

淸貧誰敢說(청빈수감설)

致富習相承(치부습상승)

 

이름난 절의 大雄寶殿 측벽 위에 쓰다

 

부처 滅後 그릇되게 傳함도 오래

부처 팔아먹는 스님 많기도 하다

맑은 가난일랑 뉘 감히 말하는고

致富의 관습 서로 이어 가는도다.

 

<時調로 改譯>

 

滅後의 訛傳도 오래 賣佛僧 많기도 하다

해맑은 가난에 대해 누가 감히 말하는고

致富의 관습 따위를 서로 이어 가는도다.

 

*名刹: 이름난 절 *大雄寶殿: 보전(寶殿). 부처를 모셔 두는 건물 *側壁: 구조물

옆에 있는 壁 *滅後: 승려가 입적한 後. 특히 석가모니의 입적 後를 이른다.

불멸후(佛滅後).  멸망    *訛傳: 사실과  다르게  전함.  오전(誤傳).  유전(謬傳).

전와(傳訛)  *多多: 썩  많음 *淸貧: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함 *敢說: 대담하게 말함 *致富: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 *相承: 서로 이어

.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차례로 계속하여 교법(敎法)을 받아서 전하는 일.

 

<2017.7.24, 이우식 지음>

월, 2017/07/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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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영상을 홍보해 주목을 끌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가 유네스코산업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중 한국인 등의 강제동원 관련 시설에 ‘역사의 전모’를 밝히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한 사항을 이행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영상이다.


그런데 이 영상에는 몇 가지 부정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영상에서는 일본 나가사키항 근처의 섬, 군함도에 강제동원되어 죽은 한국인이 120명이라 한다. 그러나 1984년 일본 시민단체가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에서 죽은 한국인은 123명이다. 여기에는 강제동원 당사자가 아닌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강제동원 시기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엄밀하게 따져 강제동원 희생자는 50여명이라 해야 맞다.


영상에 사용된 사진들도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누워서 탄을 캐는 장면은 후쿠오카 탄광에서 일하던 일본인 광부의 모습이다. 폭행을 당해 등에 상처가 나 있는 모습의 사진은 1920년대 토목노동자를 찍은 것이다. 두 사진 모두 폭력과 학대, 열악한 노동조건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진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받은 차별과 학대, 가혹한 노동조건 등 실태를 직접 보여주는 사진은 없다. 통제된 공간에서 그런 사진 자체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1920~30년대 일본 언론의 고발로 확인된 이런 사진들을 통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고, 숱한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나만 더 지적해두자. 군함도와 함께 등재된 다카시마 탄광에 한국인 4만명이 강제동원되었다는 통계가 보도되고 있다. 이건 단순 실수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 외교부가 강제동원지원위원회에 관련 정보를 요청할 때 위원회 직원이 4천명을 4만명으로 잘못 적어 보고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숫자 몇 개 사진 설명 하나 잘못되었다고 강제동원의 본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들은 오류나 실수를 공격하면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처럼 군함도의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려 한다. 아니면 피해자들의 주장에 흠집을 내 한국의 주장이 과잉된 민족 감정에 근거해 왜곡·날조된 것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국내는 모르겠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이게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문제다.


군함도를 놓고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 정부와 우익은 일제의 강제동원이 강제노동이 아니며, 군함도에서 한국인들은 차별 없이 일본인과 사이좋게 지냈으며, 한국이 엉터리 자료를 만들어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있다는 세 가지 여론전을 펼칠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 통계를 두고 벌어지는 진실 논쟁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게 있다. 그것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이 스스로 진실을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진상규명 대부분은 모두 피해자와 한·일의 시민단체가 수십년간 싸워서 얻어낸 것들이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피해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직접 일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유골조사와 봉환 문제를 협의해 해결의 물꼬를 텄지만,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초은행에 1945년 이전 일본 내에서 일했던 한국인 우편저금 통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는 모른 체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국가가 지배 국가로부터 관련 문서를 인계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새 정부가 해야 할 긴 목록 가운데 하나다. 영화 <군함도>가 개봉되었다. 무더운 여름이 더 더워질 것 같다.

<2017-07-24>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군함도의 진실 공방과 한국 정부가 할 일

월, 2017/07/2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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