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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도쿄 촛불행동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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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도쿄 촛불행동을 다녀와서

익명 (미확인) | 목, 2018/09/27- 15:59

지난 8월 11일, 일본 도쿄의 한국YMCA에서는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반대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2018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행사가 열렸다.
연구소가 ‘야스쿠니신사 반대공동행동’의 한국 사무국이고 올해로 13년째 열리는 행사인 만큼 연구소에서도 여러 상근자가 유족들을 모시고 참가했다. 먼저 다녀온 연구소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이 끊이질 않았는데, ‘하마터면 우익들이 휘두르는 흉기에 맞을 뻔 했다.’ ‘확 잡아 챌 수도 있으니 일행들과 꼭 붙어 있어야 한다.’ 등등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출국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가지말까’라는 부끄러운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보고 싶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외치고 있다고!
촛불행동에 참가하기 위해 8월 10일 오전 김포공항에 모였다. 강제동원 피해를 당한 유족분들을 직접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스쿠니신사의 무단합사를 취소시키고 한일 간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싶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걱정 안하려고 했으나 긴장한 모습이 보였는지 유족분들께서 별거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다독여주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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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조금 넘는 비행 후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물리적으로 이렇게 가까운 나라인데 심리적인 거리감이 너무나도 먼 일본이 낯설게 느껴졌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마침 택시기사분이 재일동포였다. 일본의 연휴 첫날이었기 때문에 고속도로에 차가 막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재일동포들이 일본 내에서 어떤 핍박과 차별을 받고 힘들게 살고 계시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일본에 왜 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니 진심으로 고마워하셨고 촛불행동의 의미에 동감해주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응원해주는 분을 만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짐을 풀고 야스쿠니소송을 도와주시는 일본 변호단과 사전 회의가 있었다. 2007년에 시작된 소송에서 원고들은 ‘야스쿠니신사에 무단합사 된 피해자의 이름을 야스쿠니신사의 신전에 있는 영새부에서 삭제할 것,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신문에 사죄문을 게재할 것, 합사당한 희생자들의 유골소재를 조사하여 유족에게 전달할 것’ 등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극히 간단하고 정상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송은 10년째 진행 중이다. 일본정부의 태도를 보니 일본의 과거사 반성은 멀고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함께해주는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이 매우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음날에는 도쿄 한국YMCA에서 ‘메이지 150년과 야스쿠니, 그리고 개헌’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행사 시작 시간은 오후 2시었지만 아침부터 행사장 주위로 일본경찰 수십 명이 경비를 서는 등 긴장감이 흘렀다. 다카하시 데츠야 도쿄대 교수,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다양한 의견을 발표했다. 학술발표 후에는 야스쿠니신사에 아버지가 합사되어 있는 이명구 어르신이 단상 위에 올랐다. 떨리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본인의 이야기를 발표하시는 내용을 들으니 유족 분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오셨는지 느껴지며 마음이 저려왔다. 그 발표를 들으면서도 ‘내가 유족들의 아픔을 절반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심포지엄을 마치고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저녁7시, 드디어 도쿄촛불행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도쿄 한국YMCA에서부터 야스쿠니 신사 근처까지 4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촛불대신 야광 손목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야스쿠니 한따이!(야스쿠니 반대)’ ‘아베와 야메로!(아베는 그만둬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니 우익들의 노골적인 반대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상상한 우익들은 나이 많은 윗세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당혹스러웠다. 확성기를 들고 큰 소리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본어를 몰라 알아듣진 못했으나 표정을 보니 욕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다행히 작년에 비해 경찰 인력이 2~3배 많아지고, 행진 경로 쪽으로는 아에 ‘일본우익’들의 방송차량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일본 땅에 우리의 염원이 울러 퍼질 수 있도록 더욱 크게 소리 지르며 걸어갔다. 우익들 중 몇몇이 이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뛰어들려 하면서 몇 차례 아슬아슬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마지막 집결지인 힌카공원에 도착했다. 안전하게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긴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혼자 야스쿠니신사에 다녀왔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큰 도리이(鳥居)를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의 광복절, 일본에게는 패전일인, 8월 15일을 앞둔 주말이었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혹은 혼자 온 참배객들이 많았다. 야스쿠니신사 배전에 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벅찬 표정이었다. 우리에게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고난의 상징이지만 어떤 일본인들은 그 곳을 신성하고 소중한 곳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 이 사람들은 자신들 또한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였고 야만스러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는 것일까. 침략전쟁에 이용했던 전투기와 어린아이들의 자살공격 훈련을 재현해서 자랑스레 전시해둔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또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곳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강제합사 피해자분들을 꼭 한국으로 모셔오겠다고.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무단합사철폐’와 유골봉환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촛불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다희 사무국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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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7-2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군함도’의 모든 것이 담긴 ‘군함도’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이 14일 밤 9시 채널CGV를 통해 방송된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0717-24

‘군함도’ 무비멘터리는 딸과 함께 군함도에 오게 된 악단장 ‘이강옥’ 역 황정민의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촬영 현장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품에 임한 배우들의 진솔한 이야기, 전에 없던 초대형 규모의 세트 제작 과정이 모두 담겨 있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치열한 촬영 현장 속에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촬영에 함께한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의 모습은 이들의 완벽한 호흡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1945년 군함도의 내부와 외부를 고스란히 재현해 영화의 비주얼을 완성한 제작진의 노력과 이러한 세트 제작 과정을 담아내 눈길을 끈다.

류승완 감독은 “촬영장이 너무 리얼해 어느 장소에서 촬영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의 강제 징용이 있었던 숨겨진 역사를 모티브로 류승완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낸 이야기이며, 파워풀한 캐스팅이 더해진 2017년 최고 기대작으로 오는 7월 26일 개봉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mail protected]

<2017-07-14> 마이데일리

☞기사원문: ‘군함도’ 오늘(14일) 채널CGV서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 방송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군함도’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 방송 채널CGV서 방송

☞서울경제: ‘군함도의 모든 것’ 오늘(14일) 채널CGV 무비멘터리 방송

☞이슈데일리: ‘군함도’ 오늘(14일) 무비멘터리 방송…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월, 2017/07/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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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음악-표지-앞

▲ 양장, 724쪽. 75,000원 / 노동은 편저. 민족문제연구소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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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2▲ 노동은(1946~2016)

목원대학교 교수·음악대학장, 중앙대학교 교수·국악대학장, 한국음악학회 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음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6년 12월 2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한국 근현대 음악 관련 30여 권의 단행본과 400여 편의 논문을 남겼으며 항일음악과 친일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쌓았다. 1996년 단재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선정되었고, 2005년 정율성국제음악제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음악기학」·「가정성과 직관성」·「만주음악연구」·「제국의 음악가 현제명」 등을 발표했고, 『한국근대음악사』, 『경기음악』(京畿音樂)1·2, 『지영희평전』등의 저서를 펴냈다.

♦ 330곡의 연대별수록 곡 수
⓵ 1860∼1900년대 : 83곡
⓶ 1910년대 : 68곡
⓷ 1920년대 : 72곡
⓸ 1930년대 : 63곡
⓹ 1940년대 : 44곡

1. 『항일음악 330곡집』 발간의 의의

항일의 현장에는 국내외 어느 곳이든 항일음악이 있었고, 우리 민족은 항일노래를 함께 부르며 굳건하게 단결했다. 항일음악은 일제침략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노래를 가리키며, 시기적으로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이 노골화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음악이다. 항일음악의 장르는 가요뿐만 아니라 가곡 동요 가극(한유한의 ????아리랑???? 등) 무용(유희 등) 등에 걸쳐 있으며, 군가 혁명가 투쟁가 애국가 계몽가 망향가 추도가 등 여러 형태로 보급됐다.

『항일음악 330곡집』일제침략기 국내와 만주 및 중국 관내, 러시아의 원동, 하와이와 미국 본토, 멕시코 지역 등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노래(악보)를 집대성하고, 연대별로 구분한 최초의 항일노래집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 국내외에서 부른 항일가 100여 곡을 새로이 발굴해 수록하였으며, 기존에 알려진 노래를 망라하여 총 330곡을 악보로 복원했다. 작사자와 작곡자의 실명 여부, 가사 원문과 출전, 원곡과 출전, 노래의 성격과 유래, 원곡과의 관계, 보급된 지역, 그 밖의 음악적인 특성 등을 밝힌 점도 특기할 만하다.

 

2. 세계적인 명곡을 활용

항일음악은 국내외 항일 현장에서 가사와 곡조를 창작하여 부른 노래도 있지만 다수는 기존 악곡을 개사하거나 편곡해 활용했다. 기존 악곡은 국내 창가나 민요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많이 선택했다.

국내의 민요를 차용한 노래로는 「광복군 아리랑」 1(아리랑), 「미나리타령」(도라지), 「광복군 석탄가」(사발가), 「광복군 아리랑」 2(밀양아리랑) 등이 있으며, 창작 민요곡으로는 「기쁨의 아리랑」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서양 곡조로는 하이든의 「황제찬가」, 베토벤의 「이 어두운 무덤에」(In Questa Tombao Squra),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의 아리아,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 중 「로만체」(Romanze), 미국의 스티븐 포스터의 「스와니강」, 「켄터키 옛집」, 미국에서 포스터와 쌍벽을 이룬 작곡가 헨리 워크의 「조지아행진곡」(Marching Through Georgia), 「파수꾼이여! 종을 울려라」(Ring the Bell, Watchman) 등을 항일가로 개사하여 불렀다. 특히 진취적이고 용맹한 느낌을 주는 조지아행진곡의 곡조는 경성2, 국문창립기념, 만세가, 구주전장 한인군가, 나라보전, 독립군가1, 보국, 신흥무관학교 교가, 작대, 어린이날 노래, 조선의 자랑등 다수의 항일가와 계몽가로 개사되어 널리 불렸다.

「조지아행진곡」 못지않게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많이 부른 외국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오랜 옛날부터 old long since)이다. 해방 직후까지 “동해물과∼”로 부르는 대표적인 애국가 곡조로 사용되었으며 우리 근현대사에서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한 노래라 할 수 있다. 독립을 희원하는 「애국가」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찬송가로도, 때로는 ‘졸업가’, ‘망년가’ 등 이별을 노래하는 송가로 불린 감상적인 노래였다. 1900년대 전후로 부른 무궁화가」·애국가」·전씨 애국가, 1910년대의 앞 뫼의 칡같이, 1920년대의 신년축하가조선소년군 단가, 1930년대의 주일학교 교가이 모두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쓰고 있다.

또 많이 차용된 곡조는 아일랜드 민요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 「아! 목동아」(대니 보이 Danny Boy), 독일 민요 「전나무」(O Tanenbaum), 중국 민요 「모리화」 등이다. 특히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나의 사랑 한반도, 도산선생 추도가, 사랑하는 자유등으로 개사되어 불렸다.

심지어 적국인 일본의 창가와 군가도 이용했다. 오오노 우메와카(多梅稚) 작곡의 철도창가용진가1, 용진가3, 운동1, 운동2, 전쟁과 우리, 조상을 위해, 학도권면가, 혁명군행진곡으로, 나가이 켄시(永井建子)의 소남공(小楠公)메데가1로, 코야마 사쿠노스케(小山作之助)의 일본해군소년군가로, 세토구찌 토오키찌(瀬戸口藤吉)의 군함행진곡조선물산장려가2, 카미나가 료오게쯔(神長瞭月)하이카라 부시(ハイカラ)용진가2, 조국산수가, 승전가, 대감자 혁명가, 유격대행진곡으로 개사해 사용했다.

 

3. 항일가를 창작한 작사가와 작곡가

『항일음악 330곡집』에 두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작사가는 안창호(安昌浩), 김인식(金仁湜), 이범석(李範奭), 김여제(金與濟), 이정호(李正浩), 이두산(李斗山), 이용준(李容俊), 김창만(金昌滿), 김학규(金學奎), 신덕영(申悳泳), 이해평(李海平) 이다. 특히 안창호거국행, 격검가, 만나생각, 모란봉가, 소년남자가, 심주가, 애국가1, 학도가2, 한반도, 혈성대1 다수의 항일가를 작사해 계몽가로서 음악의 효용성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두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작곡가는 이상준(李尙俊), 이성식(李聖植), 김인식(金仁湜), 이정호(李正浩), 이두산(李斗山), 정율성(鄭律成), 한유한(韓悠韓, 한형석韓亨錫) 으로 이들은 초창기 한국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소속의 한유한은 광복군이 가장 많이 불렀던 광복군 제2지대가」·국기가압록강행진곡」·여명의 노래」·우리나라 어머니」·조국행진곡등을 비롯하여 오페라 ????아리랑????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정율성은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루쉰(魯迅)예술학원 음악학부를 다녔으며, 연안송·연수요를 비롯하여 팔로군 대합창을 창작하는 한편 루쉰예술학원에서 성악을 가르쳤다. 1942년 옌안(延安)을 떠나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고 조국 향해 나가자」 「혁명가등을 창작했다.

 

4. 참고  

1) 국내 작곡가의 창작곡

작곡가 대표곡 (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이성식 「격검가」(4), 「학도가」 2(75), 「복수회포」(108, 학도가 편곡), 「독립가」 3(99), 「소년건국가」(110), 「체육」(138), 「창검가」(323)
이상준 「거국행」(1), 「소년남자가」(38), 「의무」(61), 「해」(79), 「깊이 생각」(90), 「우리의 옛 역사」(122), 「제국역사」(129), 「결사전가」 1(154), 「광복군가」 2(289)
이두산 「선봉대」(247), 「광복군가」 1(288)
이정호 「혁명가」 2(277),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321)
한유한 「광복군 제2지대가」(293), 「국기가」 2(294), 「신출발」(303), 「압록강행진곡」(305), 「여명의 노래」(307), 「우리나라 어머니」(309), 「조국행진곡」(315), 「황하강변의 달」(329), 「흘러가는 저 구름」(330)


2)
항일가를 작사하고 독창한 성악가

성악가 대표곡(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이용준 「나라 찾으려면」(298) : 베를리오즈, Opera 벤베누토 첼리니, 1막 로만체
「이동녕선생 추도가」(311) : 베토벤,「이 어두운 무덤에」


3)
연대별 대표적인 항일가

연대 대표곡(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1860~1910 「거국행」(1), 「격검가」(4), 「대한혼가」(19), 「무궁화가」 2(29)=「애국가」 4(48), 「새야새야 파랑새야」(36), 「소년남자가」(38), 「애국가」 2(46), 「정신가」(70), 「한반도」 2(77), 「혈성대」 1(81)
1910년대 「국민」 1(86), 「국치일노래」(88), 「내 고향을 이별하고」(93), *독립가4(100), 「신흥무관학교 교가」(112), 「연해주빨찌산가」(117), 「작대」(128), 「피묻은 옷」(140), 「혁명가의 노래」(145), 「효순」(151)
1920년대 「단심가」(169), 「독립군가」 2(170), 「두만강」(172), 「부여의 민족아!」(184), 「31 소년가」(187), 「십진가」(191), 「전기가」(204), 「추도가」 1(214), *태평양가(216), 「혼을 위로하노라」(220)
1930년대 「도산선생 추도가」(235), 「민족해방가」(240), 「선봉대」(247), 「우리 영광 끝 없네」(254), 「자유의 기」(257), 「조선의 노래」 3(264), 「최후의 결전」 1(268), 「혁명가」 2(277), 「혁명객의 아리랑타령」(281), 「혁명군가」 1(282)
1940년대 「광복군가」 1(288), 「광복군 아리랑」 2(292), *기쁨의 아리랑(297), 「압록강행진곡」(305), 「조국행진곡」(315), 「조선의용군 추도가」(320),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321), 「진군가」(322), 「창검가」(323), 「혁명군가」 2(326)


4)
최초공개 항일가 104

곡번호 곡명 작사자 작곡자
  1860~1900년대
4 격검가 안창호 이성식
37 생욕사영가 정재홍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59 우덕순의노래 우덕순 요한 B. 크래머
65 전씨 애국가 전명운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75 학도가 2 안창호 이성식
  1910년대
84 개천절가 (미상) 헨리 S. 톰슨
85 구주전장 한인군가 (미상) 헨리 C. 워크
86 국민 1 (미상) 카를 빌헬름
88 국치일노래 (미상) 스티븐 C. 포스터
91 나라보전 (미상) 헨리 C. 워크
92 나라의 한 아버지들 (미상) 독일민요(전나무)
94 다시 산 태극기 (미상) 윌리암 H. 돈
98 독립가 2 (미상) 퍼시 몬트로즈
99 독립가 3 이성식 찰스 록하르트
100 독립가 4 (미상) 헨리 C. 워크
102 동반도 옛집 곽임대 스티븐 C. 포스터
104 만주들 장백산인 지암피에트로 토놀리
109 3·1절가 (미상) 로버트 로우리
114 앞 뫼의 칡같이 (미상)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115 어천절가 (미상) (미상)
116 역행가 강영소 루이스 하트소우
120 옥야삼천리 (미상) 요한 C. 린크
122 우리의 옛 역사 (미상) 이상준 원곡
126 자유로 죽고 살아라 기산 아서 F. M. 커스턴스
139 태극기가 창해소년 필립 필립스
140 피묻은 옷 어느 배우 스티븐 C. 포스터
142 학도권면가 (미상) 오오노 우메와카
145 혁명가의 노래 (미상) (미상)
147 협사가 (미상) (미상)
149 환영가 1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에드워드 F. 림볼트
150 환영가 2 (미상) 조지 F. 루트
  1920년대  
153 거기 정순이 쉬는데 동해수부 헤르만 뢰어
157 경성감옥가 (미상) (미상)
158 경축가 2 (미상) 존 B. 다익스
159 고대 은암 시므온 B. 마쉬
160 고향 동원 제임스 L. 몰로이
161 고향 떠나는 길 (미상) (미상)
162 고향생각 (미상) (미상)
168 내 나라 동해수부 토머스 à 베킷
170 독립군가 2  (미상)  (미상)
172 두만강 동원 제임스 I. 러셀
182 반도가(꽃동산반도) 김태연 윌리엄 스테프
184 부여의 민족아! 김창만 루제 드 릴
185 불속에 김창만 빅터 허버트
186 산지조종 태백산 문양목 한국민요(산염불)
192 애국의 피 (미상) 로버트 로우리
194 어머님 생각 (미상) (미상)
198 을지문덕 (미상) (미상)
201 자유의 노래 1 이정대 정사인
204 전기가 (미상) (미상)
205 조선독립가 (미상) (미상)
208 조선반도 (미상) (미상)
209 조선산수가 (미상) 카미나가 료오게쯔
211 조선의 노래 1 (미상) (미상)
213 천도교 청년당가 이광수 (미상)
216 태평양가 동원농부 아브라함 F. 프랑켄슈타인
220 혼을 위로 하노라 김창만 조지 F. 루트
221 흥사단 나아가 이광수 로버트 로우리
222 흥사단 너도나도 김여제 (미상)
223 흥사단 단가 김여제 헨델
  1930년대  
225 고향이별가 (미상) (미상)
226 국민회가 성우 헨리 C. 워크
227 국치가 이화용 토머스 헤이스팅스
228 근화낙원 (미상) 다이엘 D. 에밋
230 기러기 (미상) (미상)
231 나의 사랑 한반도 (미상)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33 대감자 혁명가 (미상) <카미나가 료오게쯔
234 대장간 박세영 맹오영
235 도산선생 추도가 주요한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39 묵경 한인청년가 황보영주 조지 F. 루트
240 민족해방가 (미상) (미상)
243 사랑하는 자유 (미상)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44 3‧1기념가 1 이세창 에드워드 F. 림볼트
245 3‧1기념가 2 (미상) 아더 S. 설리반
248 선현추도가 (미상) 아일랜드민요(아 목동아)
249 송구영신 대암생 찰스 H. 가브리엘
253 우리나라 한석원 (미상)
256 응원가 (미상) 헨리 C. 워크
257 자유의 기 (미상) (미상)
258 전쟁과 우리 김준 오오노 우메와카
259 정숙추도가 죽혈 (미상)
270 추도가 3 유진태 헨리 W. 베이커
271 충의열사 추도가 대암생 조셉 P. 웹스터
274 한양감옥 (미상) 태인수
276 혁명가 1 (미상) (미상)
278 혁명가 3 (미상) (미상)
280 혁명가 5 (미상) (미상)
282 혁명군가 1 (미상) (미상)
283 혁명군의 노래 (미상) (미상)
  1940년대
289 광복군가 2 (미상) 이상준 원곡
295 군도를 높이 들고 (미상) (미상)
296 군민도라지 (미상) 한국민요(도라지타령)
297 기쁨의 아리랑 (미상) (미상)
298 나라 찾으려면 이용준 H. 베를리오즈
299 무궁화 (미상) (미상)
302 승리의 깃발 배항진 장춘성
310 우리는 조선의 전사 (미상) (미상)
311 이동녕선생 추도가 이용준 루드비히 판 베토벤
313 전가 (미상) (미상)
321 중국의 광활한 대지위에 이정호 이정호
322 진군가 (미상) (미상)
323 창검가 (미상) 이성식
324 처의 명상 (미상) (미상)
326 혁명군가 2 안정송 로버트 로우리

 

※ 참조
『항일음악 330곡집』에 수록된 항일음악 중 5곡의 공연영상을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영상보기 클릭). 이 5곡은 지난 2011년 11월 열린 ‘항일음악회’(주최: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주관: 항일음악회조직위원회·민족문제연구소, 후원: 국가보훈처)에서 공연한 20여 곡 중 선별한 노래입니다. 당시 노동은 교수가 항일음악회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지휘하였습니다.

▶ 항일음악회 연주 노래

048-애국가 4, 작사 한국인 공동, 작곡 스코틀랜드 민요, 1900년대
048_애국가4

305-압록강행진곡, 작사 박영만, 작곡 한유한, 1940년대

305_압록강행진곡

목, 2017/08/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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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역사교과서공익감사청구_모집

국정교과서 국민감사청구 청구인단 참여하기 http://bit.ly/2fl5lTO

월, 2017/08/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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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S 피해자 입니다.

사건 이 후 왜 이리도 이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친일파 적폐와 김성훈의 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통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말과 글로써 백성을 기만했다.
2. 국가와 백성을 상대로 사기를 저질렀다.
3.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아직도 잘먹고 잘산다.
4. 지식층 권력층과 규합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고 있다.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사기 피해자들은)매일같이 피빨리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는 확고 합니다. 그것이 친일파 적폐이든 사회 전반의 적폐이든…
다만, 피해자 구제는 요원합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의 파산 변호를 맡으신 변호사님…
변호는 자유입니다.
다만, 이 사회가 아직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니까요.
또한, 이번 변호를 통해 얻은 금전도 자유입니다.
다만, 친일파의 더러운 돈과 김상훈의 돈이 다르지 않음을 피해자들은 아니까요.

부디, 파산을 통해 1/n 구제가 합리적이라는 논리에 현옥되지 마시고, 또한 적폐의 우두 머리인 김성훈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지 마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다시한번 생각하시고, 백성들과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변호를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수, 2017/12/0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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