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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역습을 막아내다 ‘친일’ 소송의 종결자 김경현 회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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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역습을 막아내다 ‘친일’ 소송의 종결자 김경현 회원 ②

익명 (미확인) | 목, 2018/09/27- 15:09

[인터뷰]

인터뷰 조세열 상임이사 / 정리 박광종 선임연구원

 

김경현 선생은 연구소 초창기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열성회원이자 친일문제 연구자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역저 <일제강점기인명록Ⅰ-진주지역관공리・유력자>로 2005년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임종국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위원회가 종료된 뒤에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으로 위원회 관련 소송업무를 전담했다. 최근 후작 이해승 후손이 제기한 위헌소송이 합헌으로 결정남에 따라 29건의 친일 관련 소송에서 전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터뷰는 7월 25일 연구소 법인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문 : 부부 회원이고 가족이 식민지역사박물관 발기인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답 : 아내와 함께 회원에 가입한 것은 2001년 8월입니다. 저와 아내, 작은딸(대학교 3년)은 식민지역사박물관 발기인 모금에도 참여했는데 남에게 강요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큰딸(대학교 4년)은 아직 결심이 서지 않은 모양입니다. 일단 “지켜보겠다”고 했으니, 아마 큰딸도 민족문제연구소의 가치와 역사박물관 설립취지에 동감한다면 조만간 참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 : 연구소를 언제부터 알게 되었습니까?

답 : 1992년부터 자료 조사 때문에 연구소에 가끔 연락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1993년 경희대 부근 세탁소 2층에 위치한 연구소 사무실에 찾아갔습니다. 당시 김봉우 소장을 비롯해 상근자 서너 명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임종국 선생이 기록한 1만3천여 장의 친일파 행적을 손수 기록한 인명카드를 비롯해 총독부 관보와 일제시기 신문 영인본 등 소장 자료를 그때 처음 보고 매우 감격스러웠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상근자들이 직접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밥을 짓고 국과 반찬을 만들어 함께 식사했습니다. 비록 차린 것이 많지 않았지만 고등어찌개는 정말 맛있었고 서로 간의 정이 느껴지는 정겨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연구소 사람들은 풍찬노숙하며 역사전쟁을 주도하는 전사들이었고 한솥밥을 먹는 한식구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렵긴 했지만 일심동체라는 동지적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문 : 2000년 『명석면사』 출간 보도를 보고 지역사 연구의 획기적인 성과란 걸 직감했습니다. 당시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때여서 지역 친일파 연구에 천착하던 김경현 회원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석면사』는 어떻게 해서 집필하게 되었습니까?

답 : 1987년 6월항쟁 이후 1988년 민주화 이행기가 도래하면서 국민주주모금으로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자 진주시민사회에서도 지역권력과 토호세력에 대항하는 지역신문 창간을 서둘렀습니다. 1991년 진주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시민주주로 <진주신문>을 창간했는데(이 신문은 2009년 등록이 말소될 때까지 18년간 진주지역의 참언론으로 역할했음), 이때 <진주신문> 발행인이던 시인 박노정 선생의 배려로 대학 졸업반인 4학년 때 수습기자로 입사했습니다. 나름 민완 기자로서 취재 업무에 재미를 느껴갈 무렵 1997년 IMF사태(국제구제금융신청)가 터져 신문사가 폐업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남아있는 신문사 후배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퇴직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때마침 그때 저는 1998년 진주문화원에서 <진주이야기 100선>이란 책을 냈는데 그 책을본 당시 진주시의회 손태기 의원이 자신의 선거구였던 명석면의 역사책 집필을 의뢰해 왔습니다. 저는 단순한 지리지나 ‘내고장 전통’류 같은 ‘면지’가 아닌 면단위 역사책인 ‘면사’를 집필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손의원이 이에 동의하자 저도 흔쾌히 집필에 찬성했습니다.
<명석면사>를 집필하기 위해 문헌조사와 병행하여 많은 면민들을 탐방하고 취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친일 부역과 강제징용, 해방직후 좌우대립, 6.25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팩트’와 저널리즘 시각에서 면사를 집필했습니다. 원고를 탈고한 후 편찬위원회에 보이니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좌우대립시 누가 누굴 죽인 것까지 공동체 촌락에서 매우 민감한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져 있었고 일제 면협의원과 면직원, 경방단, 순사, 각종 친일부역자와 우익청년단, 남로당원 및 빨치산까지 다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편찬위원회에서는 문제 인사들의 이름을 복표(□□)로 처리하고 민감한 내용을 줄이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저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생겨났습니다. 진주에는 3대 토착성씨가 있었는데 진양 하씨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과거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하순봉 의원이 바로 진양 하씨로 진주 출신입니다. 하씨 문중에서 문제를 삼은 것은 명석면 출신의 하판락입니다. 하판락은 경남에서 유명한 악질 고등계 형사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 고문하여 반민특위에 기소된 인물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실렸고나중에국가기구에서도 하판락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친일파 중의 친일파를 하씨 문중에서는 완전히 빼지 않으면 <명석면사>를 출간할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하판락이 고등계 형사를 지냈지만 해방 후 면민들에게 취직 알선 등 좋은 일도 했다면서, 면사가 면민의 화합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오히려 면민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며 반대 이유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저로서는 면사에서 하판락을 제외한다면 집필을 포기하겠다고 강조하며 편찬위원회에 사표까지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명석면사>에는 미관말직이라도 일제의 관공리라면 학교소사까지 조사해 실었는데 정작 고등계 형사를 뺀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주위 인사들이 <명석면사> 출간의 역사적의미를 생각해 하판락의 이력을 빼더라도 면사를 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력히 조언했습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하판락의 이력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지웠는데 인쇄 직전에 하판락의 친일 경력이 하씨 문중의 요구에 의해 빠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을 넣으므로써 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즉 삭제된 부분에 괄호를 치고 “(반민특위에 체포된 명석면 관련인물에 대해서는 면사편찬추진위의 결정에 따라 전체내용을 모두 삭제함)”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문 : 친일파의 변명•변호 논리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군요. 김경현 회원은 위암 장지연 명예훼손사건 등 몇 차례 필화사건으로 소송을 겪습니다. 그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첫 번째 소송은 <진주신문> 기자로 있을 때 토호세력과 벌어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입니다. 1993년 남강댐 보강공사와 관련한 수몰지역 측량비리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 비리에 경남 사천군의원(이 자는 후에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되자 사천시의회 의장까지 지냄)이 연루되었음을 폭로한 것입니다.
이때 박노정 시인이 <진주신문> 발행인이라는 이유로 사천군의원으로부터 저와 함께 고소를 당했습니다. 두 사람은 진주지검에 불구속 기소되었는데, 검찰은 죄질이 불량하다고 하며 취재기자와 발행인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고, 1심(진주지원) 재판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즉각 불복하고 항소했는데 창원지방법원에서 진행된 2심에서는 취재의 정당성과 보도의 공익성을 어느정도 인정하여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벌금형도 용납할 수 없어 단돈 10원도 낼 수 없다고 하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기 위해 혼자 서울에 올라왔는데 덕수궁 뒤쪽 일제 때의 고등법원 건물(현 서울시립미술관)이 당시 대법원 청사여서 그곳에다 접수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소송의 결과가 앞으로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생각하니 까닭모를 서글품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법원에서 원심이 파기되었고, 창원지법에 되돌아온 환송재판에서 저와 발행인은 무죄를 최종적으로 판결받았습니다.
두 번째 소송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을때 일어났지요. 장지연사건의 발단은 <경향신문>이 2005년 3월 연구소에서 발간한 <일제강점기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의 출간소식을 전하면서, 저자인 제가 그 인명록에서 장지연의 명백한 친일 행적을 밝혀냈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고 장지연 후손이 저한테 ‘허위사실유포’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청량리경찰서(지금의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출두일인 2005년 6월 10일자에 맞춰 <경남도민일보>에 ‘신(新)시일야방성대곡’이란 칼럼을 발표하고, 장지연의 친일행적을 비꼬면서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는 속았다. 우리 4천만 겨레여, 친일의 망령으로 노예된 겨레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왕검 이래 5천년 가까운 민족정신이 위암 선생의 친일의혹으로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망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진상규명으로 민족정기를 다시 회복할 것인가. 정말 원통하지만 상징 조작된 위암 선생을 단상에서 끌어내리고 진정한 항일언론인 상을 다시 세우자. 겨레여! 겨레여!”라고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청량리경찰서에는 당시 방학진 사무국장(현 기획실장)과 함께 출두했습니다. 방 사무국장은 조사담당경찰관에게 실실 웃으면서 저를 가리키며 조사할 때 때리지 말라고 거듭 말했는데 조서를 작성하던 그 경사가 황당해 하며 방국장을 황급히 밖으로 내보냈던 해프닝이 기억납니다. 담당경찰은 친일 행위가 사실이라더라도 이를 언론매체를 통해 공포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그렇다면 장지연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국민이 받게 된 명예훼손은 누가 보상하는가”라고 주장하며, 입증자료로 <경남일보> 주필 당시 메이지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신문사의 천장절 기념행사 관련 기사를 비롯해 하세가와 총독 부임 때 장지연이 이를 축하하며 <매일신보>에 발표한 한시 등 1차 사료와 강명관 부산대 교수의 관련 연구 성과물을 제출했습니다. 그해 11월 서울 북부지검으로부터 장지연 명예훼손에 대한 혐의가 없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제게 제기되었던 필화사건으로 첫 번째 소송은 무죄로 끝났고 두 번째 소송은 무혐의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앞으로 제 생애에 소송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보니 제가 직업적으로 소송을 수행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문 : 소송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듣기로 하고, 김경현 회원은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를 저술하여 제1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가 되셨습니다. 출간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임종국상 수상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진주인명록>은 <명석면사>를 집필할 때 조사된 지역의 인물들을확인하기위한용도로 처음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일제시기를 중심으로 진주지역에서 활동한 관공리와 유력자 3,400여 명의 인적사항을 모아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진주지역 친일파인명록’으로 이름을 붙였으나 출간하는 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언을 좇아 <일제강점기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로 제목을 바꾸었습니다.사실일제의관공리나식민지배의 유력자로 행세했다고 모두 친일파라고 규정할 수 없는 현실도 작용했습니다. 이 책에는 학교 소사까지 다 들어가 있었거든요.
또 제목에 ‘인명록Ⅰ’이라고 로마자를 붙인 것은 <진주인명록>과 같은 지역 인명록이 계속 발간되기를 지역연구자들에게 촉구하는 의미에서 붙였지만 이후 유사한 작업성과가 나왔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막지하게 작업을 한기억만 남아있는데, 마지막 교열작업 때는 아예 서울로 와서 2004년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청량리에 있던 연구소 인근의 떡전사거리 근처에서 2개월 가량 여관에 묵으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지금 저와 인터뷰하는 조세열 상임이사님과 이를 녹취하는 박광종 선생님 등 연구소 식구들과 함께 밤이 깊도록 친일청산을 토론했던 기억이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연구소 초창기에 임종국 선생의 인명카드를 보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명석면사>와 <진주인명록>을쓰 는데 큰힘이되었습니다.사실 제가 임종국상 초대 수상자가 되리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너무나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 5월 대통령 소속 국가기구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가 발족되자 그해 7월에 위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임종국상을 수상함으로써 반민규명위에서 대단한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친일인물에 대한 조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임종국상을 받은지도 벌써 13년이나 흘렀는데도 여전히 이 상의 취지에 맞게 살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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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왼쪽부터 윤경로(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전기호(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장), 이기형(시인), 임정택(임종국선생 자제), 정병화(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김시업(심산사상연구회장), 박중기(4·9통일평화재단 이사), 이건(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앞줄 왼쪽부터 김영만(열린사회희망연대 의장, 사회운동부문 수상자), 정길화(MBC방송 PD, 언론부문 수상자), 김경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 학술부문 수상자), 조문기(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이이화(임종국상 심사위원), 이만열(임종국상 심사위원장), 주섭일(임종국상 심사위원), 함세웅(임종국상 심사위원)

 

문 : 연구소에서도 제1회 임종국상 시상이라 수상자 선정에 꽤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김경현 회원을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진주인명록』이 지역 연구의 모범이 되고 신진 연구자의 감투정신을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반민규명위에서 친일진상규명조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곳에서의 활동을 말씀해 주십시오.

답 : 당시 반민규명위는 60년 만에 부활한 ‘반민특위’라고 하여 사회 각계에서 반민규명위의 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연구자들이 강만길 초대 위원장을 중심으로 민족사적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성심성의껏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해 진상조사활동을 벌였습니다. 위원회가 활동을 마칠 때까지 총 1,006명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했습니다.
제가 맡은 분야는 경찰, 밀정이었습니다. 사법기관이 작성하는 조서처럼 증거주의와 문서주의에 입각하여 일제 문헌자료와 당시 발행된 신문・잡지 등을 뒤져 친일행적을 입증했으며. 계급이 낮더라도 항일독립운동가를 체포・살상한 고등계 형사 및 사회적 파급력과 영향력이 큰 사건에 관여했다면 가장 낮은 계급의 순사보나 헌병보조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습니다. 이를테면 3.1운동 당시 수원 제암리 학살에 적극 관여한 조희창이란 순사보의 경우 일본에 출장가 공문서관에서 찾은 것이 이력서 한 장밖에 없어서 구체적인 행위를 입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제암리 학살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유력한 증거로 채택함으로써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반민규명위 활동 당시 관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가 미비했고 한정된 조사 기간 등으로 인해 미진한 부분이 많아 친일 진상 조사가 완전히 이뤄지지는 못했습니다. 친일 경찰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제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끝까지 추적할 생각입니다.

문 : 그 각오가 엄중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반민규명위가 해산되고 행정안전부에 남아 위원회의 송무업무를 맡아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번에 보고서 보유편 발간으로 위원회 업무는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그간 수십 차례 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소송에서 2차례의 부분 패소 외에는 전승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홍난파, 이해승, 김성수, 방응모 등 지난한 상대와 치열한 법정 투쟁을 벌였는데 그 당시의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위원회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4년 6개월 만에 끝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사람의 유족들이 결정취소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송은 주로 위원회 말기인 2009년부터 쏟아졌지만 이미 중추원 참의 조진태를 비롯해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형 이재면과 그 아들 이준용, 철종의 친아버지 전계대원군의 고손 이해승 등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고, 나아가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 음악가 홍난파, 총독부 판사 김세완 등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 취소 소송도 잇따라 밀려 들어왔습니다. 당시 위원회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몰려오는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2대 위원장이던 성대경 위원장이 각 부서 팀장을 소집하여 논의한 결과, 법무팀을 따로 구성할 시간도 인력도 어려워 소송수행은 각 조사팀장이 담당한 분야에서 맡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위원회 말기에 조사3팀장을 맡고 있던 제가 조사3팀에서 결정한 기타단체의 이재면・이준용과 경제의 조진태・김연수 등에 대해 소송을 직접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위원회가 종료된 후 청산절차가 진행되는 3개월 동안에도 소송수행자가 계속 필요했습니다. 특히 홍난파사건을 심리하던 법원이 유족의 효력정지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홍난파가 반민규명위 보고서 인쇄중에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상황이었고, 또한 윤보선 대통령의 아버지 윤치소 중추원 참의에 대한 친일결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도 들어오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원회 사무처의 요청으로 저는 위원회 청산기간에 다른 조사팀의 소송과 헌법소송까지 모두 맡게 되었고, 청산기간이 끝난 후 소송이 행정안전부로 이관되자 저도 역시 행안부로 넘어가 지금까지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며 계속 소송업무를 전담해 왔던 것입니다.
위원회가 해산되고 소송이 행안부로 넘어갈 무렵, 그때까지 제기된 친일 관련 소송은 20여 건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용직으로 있으면서 준비서면만 써주고 공무원이 아니어서 변론석에 앉지 못하고 방청석에 앉아 메모만 받아적다가 나중에는 법정에서 직접 변론하기 위해 계약직 전문위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어쩌다가 공무원이 되었다는 ‘어공’이 된 셈이죠. 그런데 한때 제가 일용직으로 있다는 말을 들은 위원회의 한 지인이 ‘연구자 망신 그만시키고 당장 그만 두라’고 하는 등 핀잔도 들었으나 4년여 동안 위원회가 거둔 성과를 무산시켜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그 일을 다시 맡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행정소송 23건과 헌법소송 6건(이중 1건은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총 29건의 소송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소송 당사자의 면면을 보면 이들이 한국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인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조선귀족회장 이해승,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 경성방직 사장 김연수, 금융계 현준호, 음악계 홍난파, 문학계 김동인 등입니다.
이중에 이해승 사건은 2009년 취소소송이 제기된 이래 2010년 1심에서 쌍방간에 일부 패소해 각기 항소했고 2014년 2심에서 우리쪽이 승소하자 상대방의 상고로 2016년 3심이 선고되었는데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우리가 최종 승소했습니다. 이해승 사건은 확정종결될 때까지 7년여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이해승의 친일재산과 관련된 송사가 법무부와 국가보훈처에서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친일행위결정과 관련한 소송이 행안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심지어 행정소송을 넘어 소유권이전이나 부당이득 반환청구 등 민사소송까지 진행되면서 국가와 후손간에 법리다툼과 입증공방이 한층 더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특히 이해승 후손이 법원(당시 재판장 박병대)의 법률해석에 따라 친일의 대가가 없다는 이유로 시가 3백억원대의 친일재산을 되찾아가는 일이 일어나자 사회적 공분에 휩싸이면서 국회가 관련 특별법을 개정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또한 친일재산조사법과 반민규명법에 대한 헌법소원으로 인해 관련 사건진행이 장기간 표류했는데, 이해승 사건을 진행하는 각 심급 법원은 ‘한일합병의 공’을 삭제한 개정된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시비를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 변론기일을 지정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이해승 관련 소송은 모두 국가승소로 귀결되었고 개정법률 이후 진행된 친일재산 관련 소송도 모두 승소해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김성수와 방응모 사건의 경우도 이해승 못지않게 장시간 끌었던 지난했던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거대 메이저언론사의 설립자나 사주였던 관계로 이들의 변론은 막강한 변호인단으로부터 조력을 받았는데 저는 변호사 선임없이 오직 혼자 법정에서 항변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김성수와 방응모측의 변호인들은 김성수와 방응모의 친일행위를 입증하는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등에 대해 총독부기관지 또는 일본측 신문이란 점을 들어 조작・날조・왜곡・도용되었다는 주장을 끈질기게 제기했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오직 제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곳은 학계뿐이 없었습니다. 특히 친일문제에 있어 독보적인 자료와 연구성과를 갖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 때문에 바쁜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집요하게 괴롭힌 것 같아 지금도 송구합니다. 이때 소송을 진행하면서 법원에 낼 준비서면이나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의견서에 대한 법률적 자문은 위원회의 율사출신 위원이던 박연철 변호사를 비롯해 연구소의 고문변호사였던 이민석 변호사와 제 사건을 지휘하는 서울고검의 공익법무관 및 정부법무공단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밖에 개별사건과 관련해 위원회에서 조서를 썼던 조사관들과 위원회 안팎의 여러 선생님들의 지원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은 김성수와 방응모 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문 : 김성수와 방응모 관련 소송에서 부분 패소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은 유효한 것이죠

답 : 네. 그렇습니다. 김성수의 경우 학병・지원병・징병・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했고, 일본제국주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국민정동연맹 및 국민총력연맹 등) 간부로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는 것은 인정되었으나 사회・문화 기관 및 단체를 통해 일제의 내선융화나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했다는 것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방응모의 경우는 자신이 운영하던 잡지 〈조광〉에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글을 게재하여 전쟁을 선전・선동한 점만 인정되고 일제에 군수품을 납품한 ‘조선항공공업’의 발기인・감사를 지내고 조선총독부 외곽단체 간부로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받지 못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패소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패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친일행적이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판결이 아니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들의 행위는 위원회의 결정대로 친일반민족행위로 유지된 것입니다.

문 : 방응모의 경우는 1심, 2심, 3심 판결이 다 달랐는데 특히 한 가지 법호만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가장 미약했습니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뒷거래가 연일 폭로되고 있는데 〈조선일보〉와의 유착관계도 혐의가 짙어 보입니다. 대법원의 부분 패소 결정도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하여 은밀한 거래가 있었지 않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반민규명위 소송의 마무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답 :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가 요즘 불거지면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조선일보〉가 사주 방응모에게 적용된 친일행위결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법원과 뒷거래한 사실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응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파기환송으로 귀결되고 환송된 고법에서 일부 행위에 대한 판결이 달라졌지만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은 방응모가 저지른 행위를 모두 친일반민족행위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엄연히 역사와 증거가 살아있는한 어떠한 사법농단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방응모와 김성수는 가장 논란이 많았고 그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달라진 점도 있었으나 이들의 행위는 친일반민족행위가 분명하다고 인정되었으며, 다른 사건들도 모두 위원회의 결정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6건의 헌법소송은 모두 반민규명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났는데, 올해 마지막으로 있었던 이해승과 관련한 헌법소송은 개정된 반민규명법의 법률조항도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끝나면서 반민규명위 소송은 행정소송이든 헌법소송이든 모두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친일반민족행위결정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한편 이번에 그 결과를 정리했는데 방응모와 김성수에 대한 각 심급 판결문을 비롯해 법원의 효력정지결정으로 보고서에 등재되지 못한 홍난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서를 다시 실은 보고서 보유편을 발간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사법적 판단으로 일부 변경된 부분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끝으로 위원회가 남긴 마지막 업무와 후속조치를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문 : 김경현 회원은 29건의 반민규명위 관련 소송에서 전승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치하 드립니다. 끝으로 연구소와 108주년 국치일인 8월 29일 개관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관련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저는 연구소 초창기부터 관계했기 때문에 연구소 안팎의 어려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현재의 연구소가 정말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했고 조직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연구소 초창기에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일하는 사람들 간에 억척스러움과 아울러 정겨움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소가 초창기의 열정과 현재의 시스템을 잘 엮어 운영하고자 한다면 ‘임종국정신’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임종국선생이 없는 연구소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요. 모든 일에 있어서 진실은 빛을 드러낸다는 운명의 힘을 믿고 그 운명을 엮는 사람을 중하게 여기고 사람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어 나간다면 시스템도 조직도 사람도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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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인천낚싯배 15희생제물, 대통령 중국방문수모, 충북제천 29희생제물에 대한 섭리적 해설과 호토용사상회일(虎兎龍蛇相會日)의 결실은 정신문명발동에 의한 지구촌 통일임을 무술년(戊戌年)을 맞이하여 밝히고자 합니다.

출처:모정주의사상원(母情主義思想院, http://www.moju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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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1/1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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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youtu.be/xBL-_wgdpvo

월, 2018/01/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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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i0OB93gAFg4

월, 2018/01/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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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uBK-GAbsibk

월, 2018/01/1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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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인 2만원 강정철 2만원 구미성 1만원 김광훈 1만원 김명숙 2만원 김미형 1만원 김병일 1만원 김봉천 1만원 김연태 5만원 김영화 1만원 김영회 10만원 김용범 3만원 김원석 1만원 김은정 10만원 김인규 1만원 김종광 10만원 김종철 10만원 김희정 2만원 류사영 1만원 박기석 1만원 박도훈 10만원 박동진 5만원 박정우 1만원 박중열 1만원 방승옥 2만원 부선정 1만원 설광호 2만원 성명희 1만원 신국현 2만원 신미라 1만원 심형석 1만원 안영철 5만원 양경희 1만원 양서연 1만원 양은석 10만원 양창민 1만원 엄재열 백만원 여양구 10만원 오한결 1만원 오혜림 1만원 원종형 2만원 윤현지 1만원 이경민 3만원 이광능 1만원 이상호 1만원 이성연 1만원 이성화 10만원 이은경 1만원 이진호 3만원 이창용 1만원 이효진 1만원 장수휘 10만원 장우영 1만원 장혜원 1만원 장혜주 1만원 전유진 백만원 정경식 1만원 정기용 1만원 정수진 1만원 정수진 십5만원 정승윤 1만원 정윤숙 1만원 정진솔 1만원 정천수 2만원 조규봉 5천원 조성민 3만원 조재광 2만원 조형래 1만원 조희정 30만원 채주병 1만원 최형석 5만원 황태걸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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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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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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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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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NP0n…

목, 2018/01/1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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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대통령이 우리 최고의 무역흑자국인데 사드로 무역마찰중인 중국을 방문 힘든 외교협상 끝에

우리헌법에도 민족간 전쟁을 만들수있는 행위는 불법이라 명시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적시해놓았듯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큰성과를 받아왔고 대중무역도 원상태로 돌아가며

 

이명박그네가 망쳐논 남북관계를 다시 평화적 한반도로 바꿔놓고있는데 친일매국노 후예당인 한국당등 야당이

사사건건 트집잡고

북한역시 핵무기는 미국견제용이지 한국공격용이 아니라고 밝혀도 올림픽까지 북풍조작 안보팔며 이념조작하는데

 

요번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로 평화통일을 이룬 독일이 자기들 하키팀 출전못하더라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의 평화통일위해 한국의 남북단일팀을 지원한것인데도

역시 친일매국노가 만든 한국당등 친일파가 변신한 가짜우익 가짜보수들이라 반국가 반민족 매국행위하는것으로

 

우릴침략해 36년간 우리민족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아녀자 수십만명을 위안부로 끌고가 학살했으며

강제동원과 엄청난 우리재산 약탈하고도 피해배상도 않하고 진정한 사과도 없이 독도를 넘보듯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뻔뻔한 일본에

 

미국지시가 있어도 한미일 삼국군사동맹을 반대한다는 역사적인 문대통령의 발언으로 중국도 감동시켜 한중관계가 좋아지는데

야당대표란것이 아베에게 찾아가 머리조아리며 굴욕적 위안부나 군사협정을 일본편드는 더러운것들로

이명박그네에 충성하던 친일파가 만든 조중동과 문화와 연합 경제신문등등 쓰레기언론과 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과거 미국옆 쿠바가 쏘련미사일기지를 설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돼었는데도

박근혜가 전쟁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탄두를 한국인 죽어도 한국상공서 터트린다고 사드미사일기지를 한국에 들여와

중국이 사드 레이다로 중국 감시와 미사일로 중국을 폭격할수있다고 반대하고 러시아도 반대해

 

전쟁시 중국 러시아가 폭격 일순위가 사드기지라했고 무역거래와 관광객 끊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것도 문통이 해결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가짜우익 보수당과 종편과 신문이 문대통령 까대기에 총력기울이며

이명박 똘마니인 간철수는 본색을 드러내며 보수당과 통합한다고 호남을 배반하며 문대통령을 비난하는데

 

이것들이 평화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며 미국의 선제공격론을 부추기고 있지만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핵무기말고도 휴전선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공격으로  6.25때도 삼백만명이 숨졌지만

지금은 수천만명이 숨지거나 멸망할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반국가 반민족 매국노들이란걸 잘나타내준 작태이므로

이에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과 요즘 북한핵사태와 애국애족심이 투철한 외국과 다른 한국의 가짜우익 가짜보수들을 집중 조명해보자

 

 

1994년 제네바에서 영변핵발전소로 핵무기 만들수있다하여 가동중단 대신 미국일본이 중유발전소 지어주고 중유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이 영변핵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핑계를 대고 제네바협정을 깨트린후 북한에 선제공격 위협하여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짓고 핵무기만들게 유도한게 음흉한 미국과 일본으로

북한핵만드니 미국은 한반도서 전쟁날것처럼 위협하며 한국에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많이 팔아먹었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인 한국주둔비용도 더뜯어갔으며 서해미군기지와 일본서 쫏겨나는 해군기지도 우리세금으로 짓고
일본은 전범국가라 군대도 못갖고 전쟁도 할수없는 나라인데 미국과 짜고 북한핵 핑계대고 침략할수있게 바꾸는중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 짜고 구상중인 한미일 삼국 연합군사동맹이 과거에 비슷한 매국적인 전략협상이 있었는데

박정희가 1963년 불법쿠테타 성공후 일본가서 만주총통으로 직속상관이었던 전범 기시 수상에게 경례하며

우리땅이던 독도 앞바다를 일본요구대로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최악질 매국노로

당시 미군과 일본군 또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지금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 박정희 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돕는다는 핑계로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이렇게 한국인 생명 무시하는 미국이 1905년에도 일본에게 조선을 식민지만드는데 적극 협조한 더러운 미국으로
해방후 독일처럼 전범일본을 갈라야하는데 731부대 살상무기정보를 준 살인마 731부대장도 전범처리 않하듯이

일본이 조선등 침략국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를 미국에주고 부탁 일왕도 전범처리않고 조선을 일본대신 강제분단시켜

당시 독립군과 애국국민과 제주도민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이승만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후
정부와 군경 요직에 기용

 

강제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와
애국국민과 제주도민 또 독립군을 빨갱이로 몰아 암살과 학살한것으로 이들이 진짜 우익 보수로

자기민족을 아끼는 민족주의와 자기국가를 최고로 사랑하고 타국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진짜 우익보수정신인데

친일파가 변신한것들이라 일본에 충성하다 미국에 충성하며 미국일본편들어 조국분단을 돕고 애국국민을 학살한것으로

 

미국과 일본과 매국노들땜 강제분단되어 분단때문에 300만명이 숨진 6.25비극과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것으로

일본은 6.25전쟁때 전쟁물자 판매로 엄청난 소득올려 지금도 남북간 전쟁을 부추기는것이며
미국은 우리세금으로 미국세력확장하고 미국고물무기 팔아먹듯이 한국에 엄청난 피해준것으로

그래서 얼마전 양심적인 주한미국대사 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이

 

전쟁나서 폐허로 약소국이 안돼고 한국이 독일처럼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되면

미국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책임을 물을것이며 친일매국노 박정희 이용해 침략배상을 제대로 않한 일본이
침략배상까지 독일처럼 철저히 배상할까봐 죽어라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더러운 미국 일본이고

 

강제분단에 협력한 친일매국노들이 일본대신 미국에 충성하며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잘한짓이라고 역사왜곡하며

그세력들이 만든당이 현재 한국당등 야당이며 학교에도 뉴라이트 교수와 선생들이 학생에게 왜곡된 역사가르키며

조중동등 언론도 만들어 국민속인것이며 일본은 한국내 뉴라이트에게 간첩처럼 지원금주며 매국노를 양성하고있고

그래서 그것들이 우리군의 전시작전권도 미국이 갖고 한국군을 지휘하라고하며 성조기들고 데모하는 매국노들이며
60억불 부정축재한 박정희와 박근혜 서방인 최태민 최순실과 수십조 도둑질한 박근혜와
수백조원 나라돈 날리고 수십조 뇌물받은 이명박도
뉴라이트 소속이라 미국 일본 편들어 남북간 냉전만드는것으로 남북간 자유왕래와 교류를 막으려고 금강산 관광도 깨고

[이상한 관광객 한명이 잠자는 밤중에 경계선 철책을 넘어 사살됨]

업주들 이익이 엄청 발생하는 개성공단도 깨고 휴전선이 불확실해 마찰이 잦아 안전위해 만든 서해평화 어업협정도 깨트린것인데

현재 세금도둑질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선동하며 세금도둑질한 돈풀어 한국당등에 정치자금주고 댓글알바와 데모하는데 돈주고 동원하는것이다

 

(박정희 불법집권기간은 저개발 아시아가 선진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이 다발전할때인데도

당시 장면정부가 경제개발계획 세워놓은걸 설계도 보고서 따라했으며 기업과 짜고 근로자 최저임금으로 착취후

경제살려야할 세금 60억불 박정희가 도둑질해 당시 북한 필리핀 싱가폴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등등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경제 훨씬못살린거 세계경제발전도표에 다 나와있으며

 

박정희가 60억불 도둑질해 스위스계좌로 빼돌린건 기업서 돈뜯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대신 아들이 미국 프레이져 국회청문회가서 증언했듯이

 

만주서 독립군들 많이 죽인죄로 해방후 처형이 무서워 도망다니던 박정희는 이승만이 일본장교 모집하자 국군에 입대후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맡아 간첩질하였고 나중에 체포되자 조사관이었던 만주 일본장교 매국노인 백선엽에게

군대내 공산조직과 자기형 친구까지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였고 백선엽이 목숨살려주고 군대 복직까지 시켜

 

조카에게 마음준 김종필시켜 불법쿠테타 계획후 본인은 실패하면 튀려고 육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변장후 기다리다

쿠테타 성공했다는 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로 덕분에 백선엽이 인천서 박정희믿고 불법을 마구 저질렀고

박근혜는 자기멋대로 북한방문해 김일성 김정일을 칭송과 선물바치고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생가에도 묵념한 진짜 빨갱이 가족이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해 전국민이 일본을 비난하고 성토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일본위해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을 비난하였고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지시로 일본함정을 내쫏앗으며

 

또 세계경제인들이 한국방문하였을때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가 참석한후 한국경제발전을 망치려고 경제인들에게

“한국의 좌파정권에 경제협력이나 한국에 투자하지말라”고 이념조작하며 어이없는 매국발언까지한 가짜보수 진짜 매국노들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등 한국당 전신이 세금도둑질과 외국에 빚을 엄청만들어 IMF만든걸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살렸듯이

현재도 이명박그네가 나라빚 엄청만들고 정경유착 세금도둑질로 망쳐논 한국경제를 살리려하는데

마치 문재인정권이 경제망친것처럼 트집잡으며 사사건건 시비걸고 유언비어퍼트리며 발목잡는것이다 )

 

토, 2018/01/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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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마싱령에는

우리도 가야….가야…벌씨

벌써,

가야대는데,

육일오!

기성공단!

니죽기전에 내죽기전에  가건나,   (참고정지영상은 경남민언련)

고나마  문재인 촛불정권이 이룬  마식령

정언트럼프문재인의 한반도는  정태춘박은옥이다…..망구 내말이지만,  오이로의 어미와 오일오의 아비로서,

월, 2018/01/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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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1/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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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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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2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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