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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도 난데없이 연합군포로수용소가 만들어진 까닭은? – 청파동 신광여고 자리에 있던 ‘조선부로수용소’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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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도 난데없이 연합군포로수용소가 만들어진 까닭은? – 청파동 신광여고 자리에 있던 ‘조선부로수용소’의 내력

익명 (미확인) | 금, 2018/09/07- 10:00

식민지 비망록 38

이순우 책임연구원

흔히 ‘포로수용소’라고 하면 단연코 한국전쟁 당시의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시기인 일제강점기에도 이 땅에 포로수용소가 엄연히 존재했으며, 더구나 그 위치가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는 점은 다소간 이색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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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연합군포로수용소 터에 들어선 신광여자고등학교(청파동 3가 100번지)의 현재 모습. 사진의 한가운데 보이는 벽돌형 건물이 원래 포로수용소 막사가 있던 자리이다

 

지하철 1호선 남영역이나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내려 굴다리를 통해 경부선 철길의 서편 청파동 방향으로 나가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신광여자고등학교(청파동 3가 100번지; 1946년 8월 17일에 신광여자기예초급중학교로 설립 인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자리다. 정식 명칭으로는 ‘조선부로수용소(朝鮮俘虜收容所, 1942년 7월 5일 개설)’이며, ‘부로’는 ‘포로’와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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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2년 2월 16일자에 전면 보도된 ‘싱가포르 함락’ 관련 내용이다. 이 당시 무조건 항복에 따라 다수의 영국군과 호주군이 포로가 되면서 이것이 식민지 조선에도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전투현장도 아니고 일본 본토도 아닌 곳에 난데없이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직접적인 계기는 이른바 ‘싱가포르 함락’이었다. 태평양전쟁의 확전 초기 단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이 말레이반도를 거쳐 1942년 2월 15일에 싱가포르 지역을 장악하였고, 이때 10만여 명에 달하는 연합군 병력이 대거 포로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 1942년 2월 20일자에 수록된 「오늘은 포로수용소, 소남도(昭南島, 쇼난토) 동방 ‘쟝기’ 요새시찰기」 제하의 현지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함락 직후 포로수용소로 변한 ‘창이요새’에 이미 영국 본토군 1만 3천 명과 호주군 1만 5천 명이 이곳에 억류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나오는 ‘소남도’는 “소화(昭和, 쇼와) 시대에 획득한 남쪽 섬”이라는 뜻을 담아 일본식으로 작명한 ‘싱가포르’의 새 지명이다.
이 당시 일본군은 이른바 ‘남방전선(南方前線)’에서 포로의 숫자가 20여 만 명 남짓으로 급증하게 되자 1942년 1월 14일에 일본 가가와현(香川縣)에 선통사(善通寺, 젠츠우지) 포로수용소를 개설하여 적국 고위장교 위주로 이곳에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상하이와 홍콩에도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였다. 또한 일본 오사카와 도쿄, 그리고 조선, 대만(臺灣, 타이완), 태(泰, 타이), 마래(馬來, 말레이), 비도(比島, 필리핀), 과와(瓜哇, 자바), 보르네오 등지에도 속속 포로수용소가 추가되었다.
그런데 조선에도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데에는 단순히 과다한 연합군 포로의 인력을 분산하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여기에도 일본제국의 남다른 저의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선 1942년 2월 28일에 조선군참모장 다카하시 타이라(高橋坦, 육군소장)가 육군차관 기무라 헤이타로(木村兵太郞, 육군중장)에게 보낸 ‘포로수용’에 관한 전문(電文) 내용을 보면, “반도인(半島人, 조선인)의 영미숭경관념(英米崇敬觀念)을 일소하고 필승의 신념을 확립시키기 위해 매우 유효하므로 …… 영미부로(英米俘虜) 각 1천 명을 조선에 수용하고 싶다”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1942년 3월 23일에 조선군사령관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 육군대장)가 육군대신 도죠 히데키(東條英機, 육군대장)에게 보낸 ‘조선군부로수용계획(朝鮮軍俘虜收容計畫)’ 제하의 전문에는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설치목적이 노골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를테면 “미영인 부로(米英人 俘虜)를 조선 내에 수용하여 조선인에 대해 제국의 실력을 현실로 인식시키고자 함과 동시에 의연히 조선인 대부분이 내심 갖고 있는 구미숭배관념(歐美崇拜觀念)을 불식하기 위한 사상선전공작의 재료로 제공하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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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성(陸軍省)에서 1942년 7월 5일부로 조선부로수용소가 경성부 청엽정 3정목(청파동 3가) 100번지에 설치되었음을 알리는 내용이 『일본제국관보』 1942년 11월 4일자 휘보(彙報)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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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창이수용소에서 옮겨온 연합군 포로들이 ‘조선부로수용소 본소’인 옛 이와무라제사소 공장터에 당도하는 장면을 담은 보도사진. (『통보』 제126호, 1942년 10월 15일자)

 

이러한 방침에 따라 1942년 8월 16일 싱가포르 창이수용소에서 출발한 1천 명에 달하는 영국군 포로(호주군 100여 명 포함)가 3천 톤급 수송선 복해환(福海丸, 후쿠카이마루)을 타고 1942년 9월 24일에 부산항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왔고, 그 다음날인 9월 25일 경부철도를 통해 용산역에 당도하여 삼각지와 용산경찰서 앞을 지나 최종 목적지인 ‘조선부로수용소 본소(本所)’에 안착하였다. 이 가운데 일부 포로들은 영등포역에서 분할되어 상인천역을 경유하여 인천에 있는 ‘조선부로수용소 분소(分所)’에 배치되었다.
연합군 포로수용소로 설정된 곳은 원래 이와무라제사소(岩村製絲所)의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서울과 평양의 신학교 건물과 같은 곳을 포로수용소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포로라는 처지에 이러한 시설조차도 과분하다는 이유로 폐공장을 개보수하여 사용하는 쪽으로 결정이 번복되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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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로수용소 출신 호주군 병사 존 윌킨슨(John D. Wilkinson)이 남긴 『조선포로수용소에 관한 스케치(Sketches of a POW in Korea)』 (1945)에 수록된 ‘경성 캠프 약도’. 포로수용소 막사로 사용된 4층짜리 벽돌건물은 이와무라제사소의 공장 건물을 개축한 것으로 지난 2011년 1월까지 잔존하였으나, 학교 건물신축공사 관계로 철거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포로라는 처지에 이러한 시설조차도 과분하다는 이유로 폐공장을 개보수하여 사용하는 쪽으로 결정이 번복되었다고 알려진다.
조선총독부 식산국이 편찬하고 조선공업협회가 해마다 발행하는 <조선공장명부(朝鮮工場名簿)>라는 자료를 취합하면, 이 자리가 제사공장으로 사용된 것은 1930년에 가베상회(可部商會, 1927년 1월 창립)가 처음인 듯하다. 그러나 이 회사가 경영난으로 이내 부도 처리되면서 1932년 이후 미쓰이물산(三井物産) 계열의 동양제사 경성지장(東洋製絲 京城支場)으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이와무라제사소(1934년 10월 창립)로 탈바꿈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사의 설립자는 함북 회령에 있는 유선탄광(遊仙炭鑛)의 주인 이와무라 쵸이치(岩村長市)인데, 이러한 탓인지 이 공간은 토목건축청부업과 목재제재업 등을 영위하는 이와무라구미(岩村組)의 경성출장소로도 함께 사용되었다. 그 후 이와무라제사소는 1940년 1월에 이르러 서울지역을 벗어나 원재료(누에고치) 조달이 용이한 강원도 춘천지역으로 공장을 옮겨감에 따라 이 자리는 빈 건물로 변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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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8년 6월 1일자에는 서울 청파동에 있던 이와무라제사공장이 원재료인 누에고치가 풍부하게 확보되는 강원도 춘천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는 보도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잠깐 눈여겨 볼 대목은 포로수용소의 입지여건이다. 보통 포로수용소라고 하면 다수의 군중과 격리된 오지를 선택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도시의 외곽지역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조선포로수용소는 이들의 모습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도심지 인접지역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직접적인 접촉은 금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 연합군 포로들의 존재를 통해 일본제국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조선사람들에게 “서양사람들도 알고 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식의 관념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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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함락 1주년’을 맞이하여 조선군사령부가 영국군 포로장교들을 강제동원하여 벌인 좌담회 내용이 『매일신보』 1943년 2월 15일자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황군(일본군)의 기동력이 빠른 데에 놀랐다”거나 “신속 과감한 기습에는 견디지 못했다”는 식의 굴욕적인 발언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전쟁수행을 위한 생산력 확충에 일조하도록 하겠다는 계략도 깔려 있었다. 실제로 이들 연합군포로들이 노역의 대상자로 적극 활용된 사례는 1943년 9월 함경남도 함흥에 흥남 캠프가 새로 설치되어 경성과 인천에서 선별된 230명의 포로들이 이곳에 재배치된 사실에서도 잘 확인된다. 이들은 흥남에 있는 조선질소비료 공장에서 일하도록 강요되었고, 이 인원은 추후 보충되어 총계 350명으로 증원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니는 연합군 포로들의 일상생활은 어떠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의 부록으로 간행되던 ????통보(通報)???? 제129호(1942년 12월 1일자)에 수록된 「현지보고(12) 조선부로수용소」라는 제목의 탐방기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22쪽)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단벌옷의 나그네 차림으로, 풀이 죽어 정신없이 일동(一同)이 조선으로 보내져 온 것은 가을이 아직은 옅은 9월말이었다. 그리고 이곳 경성 청엽정(靑葉町, 청파동)의 ‘조선부로수용소’에서 그들의 제2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전부 남방(南方) ○○작전에서 살아남아, 시시각각으로 압박해오는 황군(皇軍, 일본군)의 포위철환(包圍鐵環) 아래 온갖 계책이 소진되어 죽음의 문턱을 앞두고 항복에 따라 목숨을 유지하게 된 광영의 ― 그 광영은 이미 낡고 또한 공허한 것이지만 ― 영국군인, 호주군인이다. 그로부터 2개월, 그 가을도 급격히 떨어져 저물어 어느 새 그 사이에는 흰 눈이 온 것을 보았다.
(23쪽) 그 면면은 영국병사, 호주병사 외에 프랑스병사, 카나다병사도 각 1명씩이 섞여 있고, 최고령은 카쥬 중좌(中佐)의 58세부터 최연소는 20세까지이다. 점심에는 빵을 먹고, 아침과 저녁은 일본식(日本食)인데, 이미 미소시루(味噌汁, 된장국)와 다꽝(澤庵, 단무지)의 맛에도 익숙해졌다. 소내(所內)는 장교를 제하고 10개 반으로 나뉘어져, 아침에는 7시에 기상하고 취침은 9시, 정연한 규율생활을 한다. 2개월 사이에 아침저녁 점호의 인원보고만큼은 완전히 일본어로 할 수 있게끔 되었다.
(24쪽) 아침 8시반, 그들은 희희낙락하게 대오를 갖춰, 교대로 황국총후(皇國銃後)의 생산작업에 참가하고자 수용소를 출발한다. 경성에는 시내 수개 소에 그들의 작업장이 있다. 각 곳의 작업장에서 그들은 묵묵히 작업에 힘쓰고 있다.
(25쪽)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 반도 동포가 부로황화(俘虜皇化)의 최일선에 있다. 이곳 작업장에는, 이날, 지난 6월에 모집에 응했던 임헌직(林憲直, 충남), 기본진원(杞本鎭月, 충남), 이부창인(李阜昌仁, 전남 제주도)의 세 사람이 있으며, 그들의 지도와 감시로서 정전(征戰)의 고귀한 일익(一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말미에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일본제국이 조선인 청년들을 포로감시원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역시 이른바 ‘싱가포르 함락’ 직후의 일이다. ????매일신보???? 1942년 5월 23일에 수록된 「반도인 청년의 광영, 미영인 포로감시원에 대량 채용」 제하의 기사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반도인으로 하여금 명실이 같은 황국신민으로서 대동아공영권의 지도자가 되게 하고자 명후년부터 징병제도를 실시한다는 발표에 조선산천이 기쁨과 감격에 가득 차 있는 때 22일에도 다시 대동아전쟁의 혁혁한 전과에 의하여 남방 각지에 포로가 되어 있는 미국, 영국 사람을 감시하는 무거운 임무를 조선 청년에게 맡기기로 결정하였다는 공표가 있어 반도청년의 기쁨을 절정까지 폭발시키고 있다. 육군당국에서 이와 같이 중요한 일을 반도청년에가 맡기게 된 것은 그들이 황국신민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결과로서 조선의 큰 영예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 걸음 나아가 생각할 때 포로를 감시한다는 것은 거만하기 짝이 없어 동양 사람은 사람으로 알지 않든 미국과 영국 사람을 지킨다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실로 그들로 하여금 반도인의 일본국민으로서의 우수함을 인식케 하여 마음으로부터 일본제국에 대하여 존경하는 정신을 갖게 하는데 있는 만큼 그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며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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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3년 3월 1일자에 수록된 「조선에 온 부로(포로)」 개봉안내 광고문. 안석영(安夕影)이 감독 편집한(조선군사령부 지도, 조선영화 제작 배급) 이 영화는 연합군 포로와 더불어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활약을 담고 있는데, “귀축미영의 초라해진 패잔의 생생한 모습을 보라”는 선전문구만으로도 제작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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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포로감시원 모집에 관한 구라시게 조선군 보도부장의 담화를 담고 있는 『매일신보』 1942년 5월 24일자 보도내용.

 

이와 함께 이 당시 포로감시원의 채용대상으로는 21세에서 30세 사이의 국민학교 졸업자로 정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두 달 가량의 훈련과 더불어 군속(軍屬)의 신분으로 현지에 파견한다는 방침이 공표되었다. 다만, 이때 함경남북과 평안남북을 포함하는 서북선 지방 거주자는 인력동원대상에서 특별히 배제하였는데, 이 지역은 지하자원개발을 위한 생산력 확충에 많은 사람이 소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당시 조선군 보도부장 구라시게는 “특히 특별지원병을 지망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은 자나 장래의 비약을 기하여 구미인(歐米人)을 연구하려는 열의를 가진 청년은 절호한 이 기회이므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희망하는 바이다”라는 취지로 포로감시원 지원 모집을 부추긴 바 있었다. 이때 수천 명에 달하는 조선인 청년들이 포로감시원으로 선발되어 동남아 일대의 포로수용소로 배치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애꿎게도’ 일본의 패망 이후 포로학대와 가혹행위를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사형 판결을 받거나 징역형에 처해진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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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2/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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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4번째 요청서 제출
일본 정부 “한국 정부 구체적 제안 있으면” 일관
한국 관련 예산 없어…상황 진척되지 않아

0209-2

▲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 한국인 유골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상황을 진척시켰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도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시민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 곁으로’의 활동가인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가 태평양전쟁에 군인·군속으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한국인 유골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2014년 이후 네번째다. 유골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최소 2만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법’을 만들어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몰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상을 ‘우리 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한정해 한반도 출신을 배제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 유골도 찾으라는 요구를 계속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는 유골에 대해 디엔에이(DNA) 감정과 함께 안정동위체 감정을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안정동위체 감정은 방사기원동위원소를 활용해 유골 주인이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신원 확인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라뿐 아니라 출신 지역까지 가려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필리핀에서 수집한 유골 중 일본군 유골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정동위체 검사 도입 연구비를 내년 예산에 500만엔을 책정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원호국 사무과장 요시다 가즈로는 “안정동위체 감정은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안정동위체 검사를 한국인 유골 구별에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회의원들도 “‘일본인 유골은 일본인 품에, 한국인 유골은 한국인 가족 품에’가 맞다”고 말했지만, 요시다 과장은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 제안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 예산도 책정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일본 정부에 오키나와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유족 유전자 자료를 줄 테니 일본이 한국인 유골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며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유골 발굴에 참여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골 반환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관련 유족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50명을 했는데 사업비 2천만원은 사할린 유골 반환 사업에서 절약한 예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8-02-08>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인 유골 반환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

금, 2018/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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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대통령이 우리 최고의 무역흑자국인데 사드로 무역마찰중인 중국을 방문 힘든 외교협상 끝에

우리헌법에도 민족간 전쟁을 만들수있는 행위는 불법이라 명시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적시해놓았듯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큰성과를 받아왔고 대중무역도 원상태로 돌아가며

 

이명박그네가 망쳐논 남북관계를 다시 평화적 한반도로 바꿔놓고있는데 친일매국노 후예당인 한국당등 야당이

사사건건 트집잡고

북한역시 핵무기는 미국견제용이지 한국공격용이 아니라고 밝혀도 올림픽까지 북풍조작 안보팔며 이념조작하는데

 

요번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로 평화통일을 이룬 독일이 자기들 하키팀 출전못하더라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의 평화통일위한 한국의 남북단일팀 결성위해 양보한것인데도

친일매국노가 만든 한국당등 친일파가 변신한 가짜우익 가짜보수들이라 평화통일 방해위한 반국가 반민족 매국행위하는것으로

 

자기민족을 아끼는 민족주의와 자기국가를 최고로 사랑하고 타국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진짜 우익보수정신인데

친일파가 변신한것들이라 일본에 충성하다 미국에 충성하며 미국일본편들어 조국강제분단을 돕고 애국국민을 학살한것으로

 

우릴침략해 36년간 우리민족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아녀자 수십만명을 위안부로 끌고가 학살했으며

강제동원과 엄청난 우리재산 약탈하고도 피해배상도 않하고 진정한 사과도 없이 우리땅인 독도를 넘보듯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이 세계에도 로비하여 독도를 일본땅이라 동해를 일본해라고 세계인을 속이는것이며

미국과 짜고 올림픽주관사인 미국NBC가 한국을 일본식민지로 근대화됐다고 세계에 거짓방송케하듯이

한국내 뉴라이트에게 간첩처럼 지원금주며 매국노를 양성해 일베나 뉴라이트교수나 선생 또 정치언론인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그것들이 일본침략을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미화한 역사책도 만들고

미국 역시 북한이나 중국등지서 죄짓고 도망온 탈북자등 돈주면 동원되는 가짜보수들에게 돈주고 냉전조작시키니

미국일본서 돈받고 냉전조작과 데모하는 것들도 미국 일본 간첩혐의로 처벌해야할것인데 그 간첩같은 매국노들이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잘한짓이라고 거짓말하며 평등한 동맹관계가 아닌데도 한미동맹이 최고라고 떠들고있지만

 

미국지시가 있어도 한미일 삼국군사동맹을 반대한다는 역사적인 문대통령의 발언으로 중국도 감동시켜 한중관계가 좋아지는데

야당대표란것이 아베에게 찾아가 머리조아리며 굴욕적 위안부나 군사협정을 일본편드는 친일파 변신 더러운것들로

요번 일본의 내정간섭이나 한반도기에 독도표기 항의와 미국NBC 망언방송에 조용하고 북한단일팀이나 북한응원단 흠집잡기에 혈안이며

뉴라이트 이명박그네에 충성하던 친일파가 만든 조중동과 문화와 연합 경제신문등등 쓰레기언론과 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과거 미국옆 쿠바가 쏘련미사일기지를 설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돼었는데도

박근혜가 전쟁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탄두를 한국인 죽어도 한국상공서 터트린다고 사드미사일기지를 한국에 들여와

중국이 사드 레이다로 중국 감시와 미사일로 중국을 폭격할수있다고 반대하고 러시아도 반대해

 

전쟁시 중국 러시아가 폭격 일순위가 사드기지라했고 무역거래와 관광객 끊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것도 문통이 해결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가짜우익 보수당과 종편과 신문이 문대통령 까대기에 총력기울이며

이명박 똘마니인 간철수는 본색을 드러내며 보수당과 통합한다고 호남을 배반하며 이명박 지시로 문대통령을 비난하듯이
이명박그네가 감옥안가려고 마지막 발악으로 세금도둑질한 돈풀어 한국당등에 정치자금주니

정치보복이라 선동하며  세금도둑을 편드는 더러운 정치꾼들이며

이것들이 평화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며 미국의 선제공격론을 부추기고 있지만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핵무기말고도 휴전선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공격으로  6.25때도 삼백만명이 숨졌지만

지금은 수천만명이 숨지거나 멸망할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반국가 반민족 매국노들이란걸 잘나타내준 작태이므로
이에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과 요즘 북한핵사태와 애국애족심이 투철한 외국과 다르게 미국 일본에 충성하는 한국의 가짜우익 가짜보수들과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보다는 남북간 이간질시키며 친일파가 만든 한국당등 수구세력이용 냉전조장하는 이유도 집중 조명해보자

 

1994년 제네바에서 영변핵발전소로 핵무기 만들수있다하여 가동중단 대신 미국일본이 중유발전소 지어주고 중유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이 영변핵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핑계를 대고 제네바협정을 깨트린후 북한에 선제공격 위협하여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짓고 핵무기만들게 유도한게 음흉한 미국과 일본으로

북한핵만드니 미국은 한반도서 전쟁날것처럼 위협하며 한국에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많이 팔아먹었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인 한국주둔비용도 더뜯어갔으며 서해미군기지와 일본서 쫏겨나는 해군기지도 우리세금으로 짓고
일본은 전범국가라 군대도 못갖고 전쟁도 할수없는 나라인데 미국과 짜고 북한핵 핑계대고 침략할수있게 바꾸는중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 짜고 구상중인 한미일 삼국 연합군사동맹이 과거에 비슷한 매국적인 전략협상이 있었는데

박정희가 1963년 불법쿠테타 성공후 일본가서 만주총통으로 직속상관이었던 전범 기시 수상에게 경례하며

우리땅이던 독도 앞바다를 일본요구대로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최악질 매국노로

당시 미군과 일본군 또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지금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 박정희 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자국보호란 핑계로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이렇게 한국인 생명 무시하는 미국이 1905년에도 일본에게 조선을 식민지만드는데 적극 협조한 더러운 미국으로
해방후 독일처럼 전범일본을 갈라야하는데 731부대 살상무기정보를 준 살인마 731부대장도 전범처리 않하듯이

일본이 조선등지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를 뇌물로 미국에주고 부탁 일왕도 전범처리않고 조선을 일본대신 강제분단시켜

당시 독립군과 애국국민과 제주도민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이승만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후
정부와 군경 요직에 기용 강제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와 애국국민과 제주도민

또 독립군을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 암살과 학살한것인데 사실은 조국분단 반대자들이 진짜 우익 보수인데

 

미국과 일본과 매국노들땜 강제분단되어 분단때문에 300만명이 숨진 6.25비극과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것으로

일본은 6.25전쟁때 전쟁물자 판매로 엄청난 소득올려 지금도 남북간 전쟁을 부추기는것이며
미국은 우리세금으로 한국주둔 미국세력 확장하고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비싸게 팔아먹듯이 한국에 엄청난 피해준것으로

그래서 얼마전 양심적인 주한미국대사 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이

 

전쟁나서 폐허로 약소국이 안돼고 한국이 독일처럼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되면

미국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책임을 물을것이며 친일매국노 박정희 이용해 침략배상을 제대로 않한 일본이
침략배상까지 독일처럼 철저히 배상할까봐 죽어라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더러운 미국 일본이고
60억불 부정축재한 박정희와 박근혜 서방인 최태민과 수십조 도둑질한 최순실 박근혜와

수백조원 나라돈 날리고 수십조 뇌물받은 이명박도
뉴라이트 소속이라 미국 일본 편들어 남북간 냉전만드는것으로 남북간 자유왕래와 교류를 막으려고 금강산 관광도 깨고

[이상한 관광객 한명이 잠자는 밤중에 경계선 철책을 넘어 사살됨] 업주들 이익 엄청 발생하는 개성공단도 깨고

휴전선이 불확실해 마찰이 잦아 안전위해 만든 서해평화 어업협정도 깨트린것이다

 

(박정희 불법집권기간은 저개발 아시아가 선진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이 다발전할때인데도

당시 장면정부가 경제개발계획 세워놓은걸 설계도 보고서 따라했으며 기업과 짜고 근로자 최저임금으로 착취후

경제살려야할 세금 60억불 박정희가 도둑질해 당시 북한 필리핀 싱가폴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등등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경제 훨씬못살린거 세계경제발전도표에 다 나와있으며

 

박정희가 60억불 도둑질해 스위스계좌로 빼돌린건 기업서 돈뜯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대신 아들이 미국 프레이져 국회청문회가서 증언했듯이

 

만주서 독립군들 많이 죽인죄로 해방후 처형이 무서워 도망다니던 박정희는 이승만이 일본장교 모집하자 국군에 입대후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맡아 간첩질하였고 나중에 체포되자 조사관이었던 만주 일본장교 매국노인 백선엽에게

군대내 공산조직과 자기형 친구까지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였고 백선엽이 목숨살려주고 군대 복직까지 시켜

 

조카에게 마음준 김종필시켜 불법쿠테타 계획후 본인은 실패하면 튀려고 육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변장후 기다리다

쿠테타 성공했다는 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로 덕분에 백선엽이 인천서 박정희믿고 불법을 마구 저질렀고

박근혜는 자기멋대로 북한방문해 김일성 김정일을 칭송과 선물바치고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생가에도 묵념한 진짜 빨갱이 가족이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해 전국민이 일본을 비난하고 성토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을 비난하였고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지시로 일본함정을 내쫏앗으며

 

또 세계경제인들이 한국방문하였을때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가 참석한후 한국경제발전을 망치려고 경제인들에게

“한국의 좌파정권에 경제협력이나 한국에 투자하지말라”고 이념조작하며 어이없는 매국발언까지한 가짜보수 진짜 매국노들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등 한국당 전신이 세금도둑질과 외국에 빚을 엄청만들어 IMF만든걸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살렸듯이

현재도 이명박그네가 나라빚 엄청만들고 정경유착 세금도둑질로 망쳐논 한국경제를 살리려하는데

마치 문재인정권이 경제망친것처럼 트집잡으며 사사건건 시비걸고 유언비어퍼트리며 발목잡는것이다 )

 

화, 2018/02/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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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솔직히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북한에서 보내오는 진심이다.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북한에 대한 나름의 편견과 오해가 많이 있는데, 정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관료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하기로 한 것은 꼭 하고, 할 말 안 할말 꼭꼭 다 하고, 속이 시원하다.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강대국한테는 깨갱하는게 다반산데
북한은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들이 속이 시원할 정도로 국민들의 긍지를 높여주는 것 같다.

이런 면은 문재인 대통령님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적폐놈들 땜시롱 어렵겠는 부분도 있겠는데, 가끔 실망할때가 많이 있으니!)

북한에선 이미 남한의 평창올림픽을 마치 자신의 행사인듯 온갖정성과 진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언론보도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심지어 종편이나 조중동 쓰레기 언론에서도 그런 상황이 보인다.

우리도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에 많이 많이 참가하면 어떨까?
북한에서 이번에 300명이 덜 왔는데, 우리는 300명이상 방북을 하면 정말 보기 좋겠다!

이번처럼 찌질하게 비용문제 처리 같은 얘기는 안나오게…(아휴 쪽팔려…독도 표기도 못하면서…)

아무튼 인정할 것은 인정~!! 김정은 위원장 겁나 멋찌다~!!

화, 2018/02/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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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네~외세는 물러가라~

화, 2018/02/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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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우리민족 역사에 우리가 이렇게 강대한적이 있었던가!!
북한에서 온갖 모진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핵무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게 사용된다는 것을 평창올림픽을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북한에서 핵무력은 남한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진정성 있게 생각된다.

실제 아베와 펜스가 평창에서 꼼짝을 못하는 모습에서
주권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지만 정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남과북이 하나로 뭉치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대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만들어낸 핵무력이 우리민족의 핵으로 될 수 있게
남과 북이 계속해서 힘을 합치길 소원해본다.

왜적을 목숨으로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지켜냈던 수많은 선조들과 이름난 이순신장군 을지문덕장군 강감찬 장군들도 하늘에서나마 크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화, 2018/02/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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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징병 찬양 글 쓰고 징병제 감사대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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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 김성수. [사진 위키피디아]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지 56년만이다.

이는 대법원이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위가 인정되면서, 정부는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취소해야 하는 상훈법에 따라 국가보훈처 요청으로 서훈 취소 절차를 밟아 이날 서훈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인촌의 서훈이 취소되면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은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하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김재호 사장과 인촌기념회 등은 2010년 “인촌의 활동에 관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일제가 조직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강제 동원된 것일 뿐”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1, 2심은 “오로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친일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2018-02-13> 뷰스앤뉴스

기사원문: ‘친일’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서훈 박탈

※관련기사

☞한겨레: ‘친일행위’ 동아일보 김성수, 건국공로훈장 서훈 박탈

☞뉴스1: ‘친일행위’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훈장 박탈

☞경향신문: 인촌 김성수, 서훈 56년 만에 박탈

☞한국일보: 인촌 김성수 훈장 56년 만에 박탈

☞서울경제: ‘친일 행위 인정’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

※참고기사

한겨레21: 김성수 서훈은 치탈될 것인가 (2005.07.01)

화, 2018/02/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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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화성=연합뉴스) 경기 화성시는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만든 독립운동 자료집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자료집. 2018.2.12 [화성시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28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집은 화성시가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콘텐츠발굴 사업에 의해 만든 것으로, , 시로부터 위탁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3년부터 3년간 화성지역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11명을 인터뷰해 4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송산 지역 3.1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홍면옥 선생의 후손 고(故) 홍진후씨, 오산노농학원 적화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른 변기재 선생의 후손 변주현·변순용씨, 장안·우정지역 3.1운동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파괴와 가와바다 순사 처단에 앞장섰던 차경규 선생의 후손 차진모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홍면옥 선생의 출옥기념 사진, 변기재 선생의 친필엽서 등 독립운동 자료 사진도 다수 발굴됐다.

화성시는 자료집을 전국 국공립대학의 도서관·박물관·연구소, 화성시 관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화성지역 독립운동 인물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인터뷰 자료로 2권의 자료집을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날 접견실에서 자료집에 참여한 후손들과 안소헌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노고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그분들의 공훈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 자료집 발간

※관련기사

☞세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신문: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아시아투데이: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 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뉴스통신: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아시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화, 2018/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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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수원시

연화장

측백실

전달자호영

총무국장 심재욱

수원시 영통구 하동 25

자료사진은 경남민언련

사랑의하모니!

수, 2018/02/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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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에 위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출마자들이 친일세력 후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데…

알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목, 2018/02/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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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임실호국원으로 이사가심을   위로 드림니다.

이수미!

김인순!

명곡을  생각하며,

총동문화체육대회에서는

ㄴㅓ의 입상  볼수 익게째.

(너거한테신세만지고   마산의료원의  그국장동상 오마이 한테도  몬디다 바따.)

 

 

일, 2018/02/18-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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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어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2일 간에는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제2학살지에 대한 4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8명의 유해와 안경, 탄두, 버클 등 3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네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산86-1번지에서 제5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5차 발굴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발굴조사 예정지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폐금광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인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최소 3명의 유해와 M1탄피 1점, 단추 등 유품을 발견하였다.

이번 5차 발굴조사지역인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없이 희생되었고, 특히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한 2014년경부터 많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의 위령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되어 왔다. 특히 이번 5차 발굴조사 예정지인 아산시 역시 2015년에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아산시 예산으로 진행되어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2016년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20대 국회는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심사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

【붙임】제5차 유해발굴조사(충남 아산시 배방읍) 자료집. 끝.

월, 2018/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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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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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2/1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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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youtu.be/UaxKw9Ndq34

화, 2018/0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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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hfv…

화, 2018/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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