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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역습을 막아내다 – ‘친일’ 소송의 종결자 김경현 회원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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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역습을 막아내다 – ‘친일’ 소송의 종결자 김경현 회원 ①

익명 (미확인) | 목, 2018/09/06- 17:29

인터뷰 조세열 상임이사 / 정리 박광종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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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현 회원은 7월 25일 연구소를 방문해 촛불시위 기간 틈틈히 수집한 촛불과 사위용품, 유인물 등 총 37점의 자료를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김경현 선생은 연구소 초창기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열성회원이자 친일문제 연구자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역저 ????일제강점기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로2005년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임종국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위원회가 종료된 뒤에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으로 위원회 관련 소송업무를 전담했다. 최근 후작 이해승 후손이 제기한 위헌소송이 합헌으로 결정남에 따라 29건의 친일 관련 소송에서 전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터뷰는 7월 25일 연구소 법인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문 : <민족사랑> 8월호 회원탐방 인터뷰이는 제1회 임종국상 수상자인 김경현 회원입니다. 김경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늘 김경현 회원이 촛불시민혁명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했습니다. 과거에도 연구소에 자료를 기증하셨는데 어떤 것이었나요?

답 : 예전에 제가 소속되어 있는 경남근현대사연구회 차원에서 일문판 〈부산일보〉(복사본) 전량을 기증했고, 개인적으로는 한일과거사 관련 비디오 테이프 등 영상기록물과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펴낸 전시물 도록 및 제주4.3 관련 간행물 등을 기증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기증한 것은 현장에서 제가 직접 수집한 1차 자료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문 : 촛불집회가 열리는 동안 줄곧 이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답 : 제 근무처가 광화문 옆에 있습니다. 퇴근 후에 광화문 광장 화단이나 길모퉁이에 떨어져 있는 전단지나 촛불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수집했습니다. 또한 주말에도 꼭 시위현장에 참석하여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문 : 역사학자로서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료 수집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두었습니까?

답 : 수집은 제 오래된 습관입니다. 중학생 때 광주항쟁의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는 탄피를 모았습니다.

문 : 5.18 광주항쟁 때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고 했는데, 탄피를 모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려주십시오.

답 : 1980년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저는 새벽마다 〈중앙일보〉를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5.18 항쟁이 일어날 무렵 〈중앙일보〉 상무지국에서 받은 호외뭉치를 자전거에 싣고 달리며 제 손으로 두 차례나 이틀 연속 호외를 뿌려댔습니다. 하나는 5월 17일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인데 소요조종자로 김대중, 리영희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는 내용이었고, 부정축재자로 구속된 자는 그 헤드라인에 김종필, 이후락 등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두환 군부의 5.17쿠데타가 시작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이튿날인 5월 18일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엄포고령이었습니다. 이는 곧 계엄에 저항하는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 뒤 신문이 반입되지 않아 광주가 봉쇄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 두 장의 호외는 지금도 광주의 부모님 집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고, 한편으로 그 당시의 〈중앙일보〉 수금장부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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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탄핵을 선고하던 날, 광화문광장에서

 

5.18 당시 계엄군과 시민군이 대치 상태에서 총격전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철모르는 제 또래들은 탄피를 주워서 속칭 ‘짤짤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탄피는 주로 공수부대의 무차별적인 총격이 많았던 금남로와 계엄군의 부분확보작전이 있었던 국군통합병원 근처에서 많이 주웠습니다. 1980년 5월 22일 오후 6시 계엄군(20사단)의 국군통합병원 확보작전 당시 탄피를 줍기 위해 그 현장에 나갔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통합병원과 가까운 내방동에 있었거든요. 국군통합병원을 사이에 두고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이 벌어져 시민들이 많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날은 짧은 총격전이었지만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8명이 즉사했습니다. 그런데 사망자는 계엄군이나 시민군이 아닌 동네주민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집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거나 총격전을 구경하다가 저격으로 총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학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총격전이 벌어지자 저는 살기 위해 하수구 공사를 위해 만들어놓은 거푸집 안으로 피신했습니됐습니다. 저보다도 군인이 더 깜짝 놀라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계엄군이 임시분초로 사용하던 한 이층양옥집으로 끌려갔는데 그곳에는 한 여학생이 팔을 잡고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국군통합병원작전 당시 창문으로 총격전을 구경하다가 저격을 받아 팔에 총상을 입은 것입니다. 저를 붙잡은 계엄군은 제 몸을 수색해서 서너 개의 탄피를 발견하고는 “폭도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마구 다그쳤습니다. 저는 벌벌 떨면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친구들과 ‘짤짤이’ 하려고 모은 탄피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폭도라면 실탄을 갖고 있지 탄피를 갖고 있겠느냐며 울먹이자 계엄군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매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날 밤 그 병사는 날이 어두워 위험하다며 저를 계엄군이 사용하던 임시분초에서 묵게 하고 다음날 내보내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집에 돌아오니 난리가 났더군요. 동네사람들이 간밤에 총격으로 죽어간 것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살아돌아온 저를 붙잡고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부터 저의 수집벽이 남달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집벽 때문에 대학생 때 또 한 번 맞아죽을 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80년대 중반 대학(경상대 사회학과)에 들어가서는 수집벽 때문에 학내에 암약하는 학원프락치로 오인받은 것입니다. 매년 5월이 오면 당시 학내에는 광주항쟁이나 민주화 관련 대자보가 많이 붙어 있었고 캠퍼스에는 독재타도를 외치는 유인물이 흩날렸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대자보 내용을 수첩에 베끼고 각종 유인물을 수집했습니다. 어느 날 총학생회 학생들이 제가 의심스럽다며 이야기를 좀 하자며 총학생회 사무실로 끌고 갔습니다. 제 가방에서 유인물이 나오고 수첩에 대자보 내용과 학내 시위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프락치로 오인한 겁니다. 꼼짝없이 학원프락치로 몰려 맞아죽게 생겼는데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같은 학과 선배(총대의원회 대의원)가 저를 알아보고 제가 사회학과 학생인 것을 보증해주어 겨우 풀려났습니다. 이러한 수집벽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나중에는 일제시기 진주지역의 인명록에 등재할 인명 3천4백여 명의 행적을 수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인명록 때문에 이번에는 경찰서에 출두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수집벽이 아닐 수 없지요.

문 : <진주인명록>에 대해서는 다시 질문드리기로 하고, 김경현 회원은 전남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김무성 의원의 선친 김용주가 설립한 학교인가요?

답 : 네, 맞습니다. 전남고는 제 모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난 김용주는 해방 후 일제의 적산을 불하받아 임동에 있던 전남방직공장을 인수한 뒤 1966년 방직공장 옆에 중고등학교도 설립해서 사학을 운영했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전남고입니다. 남녀공학이 아닌데도 전남고에는 여자학급이 있었는데 바로 방직공장에서 주경야독하는 여공들을 위한 특별학급이 전남고 부설학급으로 방직공장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립학교시절의 전남고는 광주시내 소재 고교 중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띠었는데, 이를테면 학생들이 유신시대를 상징하는 획일적인 교복과 교모 착용을 거부했습니다. 즉 일제 순사모 같은 학생모와 호크를 채우는 교복을 착용하지 않고 스마트한 중절모를 쓰고 여학생 교복처럼 카라가 달린 교복을 입었습니다. 당시 이런 교모와 교복은 오직 전남고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교복 자율화가 시행될 때까지 이 교모와 교복을 착용하고 다녔지요.
또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자 선배들이 제일 먼저 교문을 박차고 나가 시위에 동참하고 시민군으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남고 학생 중에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전남고와 같이 있던 부설 전남중에서는 중학생이 총탄에 희생되었습니다. 또 전남고 영어 선생님의 부인이 희생당했는데 퇴근하는 남편을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만삭의 임산부였다는 사실입니다. 동료교사의 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독일어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는데, 광주항쟁이 끝난 직후 〈전남매일신문〉에 광주항쟁추모시 ‘아아, 광주(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게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부분은 삭제되어 게재)했다가 보안대(현 기무사의 기무부대)에 체포되었고 그 길로 전남고에서도 강제해직되고 말았습니다. 김용주의 사학재단이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아니면 어떤 비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광주항쟁이 진압된 이듬해인 1981년 전남고와 전남중이 전격적으로 국가에 헌납되어 공립학교가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전남고는 광주항쟁을 진압한 계엄군과 군사법원이 있던 옛 보병학교자리인 상무대로 교사를 이전했습니다. 물론 제가 입학했을 때는 전남고가 방직공장 옆에 있을 때였지만 공립으로 전환된 까닭에 김용주나 사학재단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김용주 동상이나 송덕비를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김용주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것을 기념한 기증비가 교문 수위실 건너편 화단에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전남고는 김준태 시인 뿐만 아니라 노래 ‘직녀에게’로 유명한 문병란 시인이나 시 ‘봄비’로 유명한 이수복 시인 등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있어서 문학적인 감성을 형성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분들 중 제가 직접 배웠던 영어교사 이수복 시인의 ‘봄비’가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어 매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존경하는 전남고 선배로는 헌법재판소 김이수 재판관 등이 있습니다.

문 : 5.18과 관련해서 1982년 3월 부산에서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반미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이와 관련한 일화를 말씀해 주십시오.

답 :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부산이 아니라 광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죠. 5.18 항쟁이 무자비하게 짓밟 히고 난 직후 그해 겨울 광주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 12월 광주시 황금동에 있던 미문화원에 불을 지르는 방화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미문화원이 있던 황금동은 광주의 돈이 몰리는 번화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윤락가로 유명한 황금동 집창촌도 있었습니다. 물론 황금동에는 일제 때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하는 회관도 자리 잡고 있어 저도 중고생일 때 회관 안에 있던 도서관에 자주 갔었습니다. 이처럼 황금동은 민족감정이나 자본과 탐욕 등이 엉켜있는 등 온갖 모순들이 응축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반미운동의 단초가 열립니다. 시민들이 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이유는 5.18의 진상규명과 전두환의 쿠데타와 학살을 묵인・방조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전두환에 의한 5.18 광주학살이 미국정부의 묵인 또는 방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광주항쟁 당시에 일반인들은 설마 자유우방국인 미국이 쿠데타와 학살을 묵인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광주가 무력 진압된 후 광주시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컸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5.18 이후 처음 일어난 반미운동사건이었고, 문화원이 폐쇄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인 1982년에도 광주 미문화원에 다시 불이 붙는 2차 방화사건이 일어났고, 1985년에는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광주 미문화원에 대한 공격은 부산과 서울에 있던 미문화원 방화 및 점거사건으로 번지는 등 반미운동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군부세력의 폭거와 미국의 방조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은 문부식, 김현장 등에 의해 이루어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김현장은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지켜보고 문부식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저는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그 발단이 광주 미문화원방화사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이와 관련해 5.18 현장에 있었던 저로서는 미국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광주학생운동기념회관에 가다가 백골단과 전경대에 의해 삼엄하게 둘러싸인 미문화원 앞을 지나치면서 문득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고 광주학살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즉시 광주 미문화원에 5.18 학살을 방조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미국이 묵인, 방조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소책자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소책자로 만들어 보내야 할 만큼 저처럼 미문화원에 항의 편지를 보낸 시민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문 : 최근에야 광주학살 진행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진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이 우리 현대사에 나쁜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합니다. 화제를 바꾸어 전라도 광주에서 장성하여 어떻게 경상도 진주로 유학을 갔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답 : 우리 집안의 본적은 대구지만 현재 부모님은 광주에 살고 계십니다. 저는 외가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살다가 광주에서 자랐는데, 결혼 후 경남 진주에서 살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전국구 시민입니다. 아버지는 대구 반야월에 있는 K2 비행장에서 공군문관(군무원)으로 근무하다가 60년대 말 광주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에 스카우트되어 제가 4살 되던 해 대구에서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요. 이후 저는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나오고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전라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지만 반대로 부모님은 경상도 사람이라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역차별을 당하셨지요. 앞서 말했듯이 고등학생 때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저는 가출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복학해 고3 대학입시 때 아버지가 “재수는 안 되고 학비가 싼 국립대만 보내주겠다”고 말하시는 겁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되어 지방 국립대를 알아보았습니다. 부산대에 재학중인 외사촌 형님이 진주에 있는 국립대를 소개해 경상대 사회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사회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나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학생운동을 하면서 이른바 ‘의식화교육’으로 인해 자신이 진짜로 전공해야 할 학문은 첫째가 철학이고 둘째가 경제학이고 셋째가 사회학이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그중 사회학이 가장 수월하게 보여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과정까지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원 때의 전공은 사회사인데, 역사학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경상대라는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경상대의 전신인 진주농과대학은 1948년에 진주에서 개교한 유서깊은 대학입니다. 이후 진주농대에 농학계열 이외의 학과가 많이 설치되면서 교명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여러 차례 문교부에 ‘경남대’로 교명을 바꾸겠다고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마산시에 있던 사립대학인 마산대학은 1971년 ‘경남대’로 교명 변경을 인가받았습니다.
결국 1972년 진주농대는 당시 지방국립대에 붙었던 도명을 붙이지 못하고 경상도의 국립대라는 애매한 뜻으로 ‘경상대(慶尙大)’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 때문에 한자가 아닌 한글이나 발음만 들으면 경상대가 일개 대학의 단과대인 경상대(經商大)나 상경대(商經大) 정도로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해 경상대 동문들은 교명변경을 숙원사업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경남대는 단과대학으로 경상대학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산대가 경남대로 교명을 바꾸어 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박정희정권의 실세였던 ‘피스톨박’ 박종규의 입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교명변경 당시 박종규는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고 있으면서 마산대학 이사장도 맡고 있었던 것이지요. 비록 진주농대가 경상대로 교명이 바뀌었지만 교가는 여전히 진주농대 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이기 때문입니다.

문 : 진주 경상대에 진학하여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부인을 어떻게 만났나요.

답 : 당시 경남 거창에서 유학온 진주 교대생이었던 제 아내를 대학 1학년 때 하숙집 친구의 소개로 진주우체국 건너편 다방에서 처음 만났고, 졸업 후 결혼해 2녀를 두고 지금까지 운명적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 너무 이야기에 몰두해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높다란 흰색담장에서 총기로 무장한 경교대와 맞닥뜨렸는데 바로 진주교도소(1989년 시내에서 외곽으로 이전함)임을 알고 황급히 되돌아 간 일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총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거든요. 2005년 제가 서울에 올라온 뒤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지금은 서로가 바빠 월말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나 요즘 말하는 ‘졸혼’은 절대로 아닙니다. 여전히 지금의 아내가 30여 년 전의 애인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문 : 진주는 예로부터 추로지향(鄒魯之鄕: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곳)이라 일컬어졌고 양반의 고장이었으며 조선시대에 경상우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울러 진주민란, 형평운동에서 보듯이 민중의 저항의식이 대단한 지역이었죠. 진주의 지역적 특색을 말씀해주십시오.

답 : 중학교 때 진주로 수학여행을 왔습니다. 그때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순절한 남강 촉석루 밑 의암에서 느꼈던 비장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경상대에 입학한 후 진주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했습니다. 조선시대 진주목사, 경상우병마절도사, 경남관찰사의 소재지였고 1925년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 직전까지 경남 행정・문화・교육의 중심지로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고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방 후 왜색불교를 없애고자 불교정화운동을 일으킨 청담스님이 진주출신이고, 한국 최고의 선승으로 일컫는 성철스님도 일제 때 진주고보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진주정신’을 낳게 한 것은 저항의 역사도 있지만 그 토양으로서 ‘진주문화’도 있다고 봅니다.
진주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규남이 부른 ‘진주라 천리길’(1941년)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노랫말에서 나오듯이 흔히 서울에서 진주까지의 거리가 천리(420km)라고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천리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진주가 중앙정부와 멀리 떨어진 독자적인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진주에는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가 많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문화적으로 진주에는 기생문화와 유흥문화가 발달해 진주검무를 비롯해 진주포구락무, 진주한량무, 진주교방굿거리 등이 무형문화재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예인들을 낳았는데, 몇 사람을 들면, ????친일인명사전????에오르긴했지만일각에서불세출의‘가요의황제’로추앙하는‘남인수’를비롯해‘산유화’와 ‘산장의 여인’ 등을 작곡한 작곡가 ‘이재호’, ‘대머리 총각’과 ‘곡예사의 첫사랑’ 등을 작곡한 ‘정민섭’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전통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최초의 종합예술제가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진주에서 처음 열렸는데, 바로 개천예술제의 전신인 영남예술제가 그것입니다.

문 : 진주의 고유한 전통과 독자성이 느껴집니다. 진주민란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고위 중앙관료 출신이 참여하는 등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진주의 저항정신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답 :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의 하나로 진주대첩을 꼽습니다. 1차 진주성 전투(1592년 11월)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관민을 모아 격렬히 항전하여 일본군은 퇴각하고 김시민 목사는 총탄에 맞아 순국합니다. 한편 임진왜란 끝 무렵 2차 진주성 전투(1593년 7월)가 벌어지는데 일본군의 총공세로 함락됩니다. 이때 논개도 순절합니다. 이와 같이 진주처럼 외세의 침략에 신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민관군이 합심해 처절하게 저항했던 곳도 드뭅니다.
그러나 조선말 진주지역 토호세력의 수탈이 극심했고 진주민란은 그 대표적인 민중의 저항입니다. 진주민란은 진주의 병마절도사와 토호세력의 착취로 일어났는데 향반출신인 류계춘이 주동이 되어 농민항쟁을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또한 갑오농민전쟁이 한창일 때는 농민군이 진주성을 함락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을미의병 때는 유생들이 일어나 의병이 크게 봉기했던 곳의 하나가 진주입니다. 이러한 저항의 역사 때문인지 대한제국 시기에는 진주의 민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진주에서 최초의 한글(국한문 혼용) 지방신문이 탄생합니다. 1909년 진주에서 경남의 유지들이 〈경남일보〉를 창간했던 것입니다. 이때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썼다가 〈황성신문〉 사장에서 쫓겨난 위암 장지연이 〈경남일보〉 주필로 초빙되어 진주에 옵니다.
더구나 천민의 대명사이던 백정을 해방하기 위한 인권운동이 처음 벌어진 곳도 진주입니다. 1923년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사회적으로 이중차별을 받던 백정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해 형평운동을 주도한 한 선각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는 백정이 아닌 양반출신이었던 강상호였다는 점에서 진주의 진보성과 민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6.10 만세운동을 이끈 제2차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가 바로 진주의 사회운동가 강달영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고,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시발점이 진주의 소년운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볼 때 진주가 예사롭지 않은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주에 깃든 저항의 의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다음호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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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거수기, 꼭두각시 지부장들의 죄를 묻는다.
민문연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과 ‘백년전쟁’은 어느 특정인의 업적도 아니고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도 없다. 오롯이 수많은 회원과 시민의 성금 5천원, 만원 정성을 모아 이뤄낸 20년 염원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사무국 방학진에 의해 만들어진 몇몇 지부장 (소위 ‘방학진 키즈’)들은 그 빛나는 결과물들이 마치 집행부 몇 사람의 업적인 양 그들을 숭배하고 있다.

설령 친일인명사전과 백년전쟁 등 여러 성과물들에 그들의 열정이 더해졌다 하여도 그들의 부정행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자고로 시민단체 제1의 덕목은 올바른 도덕성이며 또한 민주주의를 향한 드높은 가치여야 한다.  그럼에도 민족문제연구소 현 집행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몇 사람은 초심을 잃고 그 덕목을 상실한지 오래다.

여기에는 집행부 핵심 몇몇의 부정한 행위에 눈 감고 있는 현 운영위원장 이민우 이하, 집행부에 의해 선임된 꼭두각시 지부장들의 부화뇌동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를 유린한 왜놈들보다 그에 부역한 반민족 친일파의 죄를 더 용서 할 수 없듯이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수뇌부의 부정한 행위를 목격하고도 감싸며 부화뇌동하는, 집행부 거수기가 되어있는 꼭두각시 지부장들의 죄를 더 크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집행부의 들러리, 거수기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장 이민우와 들러리 지부장들은 답하라!

회원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운영하는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비민주적 부정행위와 회원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에 대해 저항하기는커녕 방조내지 동조하는 것에 대해 진정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전 강남서초 지부장 정 한봄
9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토, 2018/06/2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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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시오! 

1.

10대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3월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운영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적어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이민우 운영위원장의 태도는 도저히 전체 회원의 대표의 태도라고 볼 수 없이 반 회원적이며,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회원들이 궁금해 하며 질의하는 사안에 대해 단 한번도 답을 한 적이 없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위원장이다 

이민우 위원장은 과연 연구소의 주인이 회원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운영위원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3. 24 ‘유신정관으로의 정관개정. 글쓴이가 왜 유신정관이라고 명명했는지는 이미 발표한 성명서 등에서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유신정관으로의 개악으로 말미암아 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은 추락했으며, 따라서 운영위원회가 대표하는 회원들의 권한(‘회원주권’) 또한 추락한 상태이다. 이것이 운영위원회에서 스스로 한 일이다 

이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 게 성가시고 마뜩치 않았던 집행부가 오랜 세월 갈망하던 상황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에서는 공히 정관개정을 감수했다는 조모 교수의 말을 빌려, “법률상 요건에 맞게 한 것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한다. 법률이 그러니 어쩌겠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설령 그것이 맞다 해도, 그러면 운영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처럼 치욕스럽게 집행부 밑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해야 했는지, 주인인 회원의 권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심사숙고해 보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얼 했는가? “법이 그렇다니 그냥 순순히 집행부 요구대로 회원배가 운동이나 해서 돈이나 걷어주고, 집행부 밑에 지원기구로 들어가자한 건가? 지금 딱 그 짝이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 아니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이사회(집행부)이다.”  

모든 것은 이제 주인인 회원(운영위원회)에게 묻지 않고도, 아니, 이미 회원은 주인이 아니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집행부 의도대로 이사회에서 뚝딱 결정하면 그만이다. 운영위원회가 아무런 실권이 없(어졌)으니 집행부 세상이 됐다 

이제 회원은 돈 내는 기계일 뿐이다. 돈은 내되, 아무런 권한이 없으니 주인일 수 없다. 그것이 이번 정관개정이 말해주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반 회원적, 반주인적 결정을 내리면서도 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오히려 그 잘못된 결정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조직적이라고, 연구소 음해세력이라며 돌팔매에 험담/흑색선전 공격이다. 심지어 제명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준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언제 연구소의 수준이 이렇게 급전직하했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와 지부장의 모임인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인데…  

이 엄청난 일을 이민우의 10대 운영위원회가 이뤄냈다. “회원이 주인이다라는, 연구소 창립 이래 면면히 흐르던 회원 주권정신을 하루아침에 반납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10대 운영위원회고 이민우 운영위원장이다. 젊은 날 사무국장을 지낸 친정에 대한 보은인가 

내일 운영위원회 워크샵을 12일로 연다는데, 무얼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기 바란다 

이민우 운영위원장 스스로가 집행부의 보조’, ‘지원기구로 만든 운영위원회가 어떻게 하면 집행부를 위해 더 잘 봉사할 수 있는지 여러 운영위원들과 함께 머리를 짜내보기 바란다 집행부 사무국장 출신답게. ㅎ ㅎ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3. 또 한가지, 지난 5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이사회를 다녀와서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이 체면 봐주지 말고, 속 끓이지 말고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 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3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토, 2018/06/23-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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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고려박물관회원들, 독립기념관 등 3.1운동 유적지 답사

“내년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일본인에게 3·1만세운동 정신을 알리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유관순 기념관과 생가, 독립기념관,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돌아보면서 내년 전시에 대한 구상과 해당 기관의 자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72) 이사장은 이번 방한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어제(21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을 방문한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 14명은 무더운 날씨 속에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 현장을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길에 올랐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일제침략 시 만행의 현장과 기억 공간을 둘러보며 “조상들이 저지른 침략”에 대해 무한한 참회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통역 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기자는, 가는 곳마다 메모 노트를 꺼내 꼼꼼하게 적어가면서 “참혹하고 잔인했던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려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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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생가 유관순 생가에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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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기념관, 만세운동 당시를 재현한 방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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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의병 전시실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일본인들에게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 알릴 것”

이번에 방한한 일본인들은 고려박물관 내 조선여성사연구소 회원들로, 이들은 특별히 내년에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3·1운동 100돌 전시 준비위원회’를 꾸렸으며 전시기획을 위한 사전답사의 목적으로 방한한 것이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지난 27년간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건물을 빌리고 자원봉사로 고려박물관을 꾸려오면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일본 사회에 고발하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이다.

이들은 “침략의 역사는 없다”고 잡아떼고 있는 아베 정권에 맞서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각종 전시와 강연 등을 27년간 지속해왔다.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과거 침략의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일본인들에게 “3·1만세 운동 정신”을 알리려는 기획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3·1만세운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내년 100돌을 맞아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알릴 생각입니다. 또한 3·1만세운동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행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한국의 3·1만세운동 정신의 현대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방한 목적대로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3·1만세운동 유적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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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박물관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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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 이윤옥

이들은 유관순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아우내 장터의 함성을 떠올리며 순대국밥을 함께 먹었으며,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을 둘러보던 날은 토속 음식인 청국장 등을 먹으며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악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이들은 3일째 마지막 일정인 제암리교회 답사를 마치고 상경하여 한국외대 세미나실에서 기자로부터 3·1만세운동과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의를 늦은 시각까지 듣는 열의를 보였다.

이번 3·1만세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뒤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씨는 “제암리교회 양민 학살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특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년 전시 때 한국의 유관기관의 자료를 협조 받아 제대로 된 3·1만세운동의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아오야기 준이치(青柳純一)씨는 “저는 독립기념관 뒤뜰에 전시 중인 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종말과 그들이 저지른 잔혹사에 참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 아베 정권은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저 개인이라도 한국인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 보면서 참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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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암리교회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을 둘러 본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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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건물 독립기념관 야외공원에는 해체한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철통같았던 조선통치를 기억하며 그 악행에 대한 사죄를 했다. ⓒ 이윤옥

이번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방한 일정에는 박미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사의 숨은 노력이 컸으며 아울러 <신한국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등 여러명의 한국인들이 3박 4일 일정에 동행하여 한일 사이 우정을 쌓았다. 특히 수원박물관 이동근 학예연구사와 독립기념관 윤소영 선임연구위원,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 등의 친절한 응대와 향후 적극적인 협조 의사에 대해 고려박물관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이사장은 회원들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기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내년 3·1만세운동 100돌 기념사업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많은 단체 등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의 순수한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일에 우리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이사장 하라다 교오코)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 28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자는 2014년(1월~3월)과 2016년(11월~2017년 2월), 2회에 걸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과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 등을 했다.

*고려박물관은 도쿄 신오쿠보 한국수퍼 ‘광장’ 맞은편에 있으며 전화는 03-5272-3510이다. 이곳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일본인 회원들도 거의 한국어가 가능하다.


글: 이윤옥(koya26) 편집: 박혜경(jdishkys)

<2018-06-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만세운동 100돌 전시’ 위해 한국 찾은 일본인들

토, 2018/06/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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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혹했던 시절 독립을 꿈꾸며 항일운동을 하셨던 선조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습니다.

일, 2018/06/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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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 주권정신을 무너뜨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 

1.

10대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3월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운영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이민우 운영위원장의 태도는 도저히 전체 회원의 대표의 태도라고 볼 수 없이 반 회원적이며,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회원들이 궁금해 하며 질의하는 사안에 대해 단 한 번도 답을 한 적이 없는데, 운영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회원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이민우 위원장은 과연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회원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운영위원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임기 중에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3. 24 ‘유신정관으로의 정관개정. 본인이 왜 유신정관이라고 명명했는지는 이미 324일에 발표한 성명서 등에서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유신정관으로의 개악으로 말미암아 운영위원회뿐만 아니라 지부(회원)의 역할과 위상 또한 추락했으며, 따라서 운영위원회가 대표하는 회원들의 권한(‘회원주권’) 또한 부존재 상태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에서는 정관개정을 법률적으로 감수했다는 법학자 조 모 씨의 말을 빌려, “법률상 요건에 맞게 한 것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한다 

법이 그러니 어쩌겠냐?”는 논리인 것 같은데, 백보를 양보해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러면 그 오랜 세월동안 회원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운영위원회의 ()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처럼 치욕스럽게 집행부의 지원기구로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했어야 했는지, 주인이어야 할 회원의 빼앗긴 권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다른 방도는 없는지 등에 대해 깊이 심사숙고해 보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얼 했는가? “법이 그렇다니 그냥 순순히 집행부 요구대로 회원배가 운동이나 해서 돈이나 걷어주고, 집행부 밑으로 들어가자한 건가? 지금 딱 그 짝이다 

이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집행부 핵심 상근자들이 오랜 세월 갈망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민우 위원장은 집행부 사무국장 출신 운영위원장으로서 그런 집행부의 오랜 ‘숙원사업’을 대신해서 이루어주고 싶었나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 아니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이사회(집행부)”이다 

모든 것은 이제 주인인 회원(운영위원회)에게 묻지 않고도, 아니, 회원은 이미 주인이 아니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집행부 의도대로 이사회에서 뚝딱 결정하면 그만이다. 운영위원회가 아무런 실권이 없(어졌)으니 견제없는 집행부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회원은 돈 내는 기계일 뿐이다. 돈은 내되,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것이 이번 정관개정이 말해주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전국의 회원들은 이 상황을 용인할 것인가 

그런 반 회원적, 반 주인적 결정을 내리고도 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라고 집행부와 운영위원회는 되뇌고 있으니, 이건 너무 뻔뻔하고 무책임한 거 아닌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운영위원 총사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원들이 깨어있다면 이민우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운영위원들은 당장이라도 탄핵당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고도 오히려 그 잘못된 결정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 조직적이라거니, 연구소 음해세력이라거니 돌팔매질에 험담/헐뜯기 공격중이다. 나는 심지어 제명까지 당했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험담과 헐뜯기 공격 수준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언급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 말을 퍼뜨리고 있다. 언제 연구소의 수준이 이렇게 추락했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의 조직인 집행부와, 전국의 지부장들의 조직인 운영위원회인데…  

그렇게 운영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스스로 추락시키고 회원이 주인이라는, 연구소 창립 이래 면면히 흐르던 회원 주권정신을 회원들의 동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반납하는 위업(?)을 이룬 이민우 운영위원장과 10대 운영위원회, 그리고 특히 (단순히 법적 감수를 맡은 조 모 교수를 제외하고) 김재운 부장을 비롯한 규정개정소위 위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에 죄인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이제 남은 수순은 존재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운영위원회의 해체나 단순 후원회로의 전환, 또는 운영위원회가 이사회 기능을 대체하는 것, 아니면 회원에 의한 집행부/운영위원회 탄핵의 길 외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민우 운영위원장, 그리고 집행부 숙원사업인 유신정관으로의 개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집행부를 운영위원회라는 족쇄로부터의 대리 해방시킨 김재운 지부장, 두 사람은 젊은 날을 사무국장으로 보낸 친정에 대한 보은을 이제 다했는가? 민족문제연구소에 남아 할 일이 더 있는가 

(본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든 어디에든 올려주길 바란다. )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3.

또 한가지, 지난 5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이사회를 다녀와서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꼭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 체면 봐주지 말고, 속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월, 2018/06/2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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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初 ‘산업유산’ 日보고서 논의…결의문 초안, 정보센터 엉뚱한곳 건립 지적 없어
日 시민단체 회원국들에 자국 비판 ‘의견서’…”군국주의 찬미하는 역사인식”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이 ‘군함도'(端島·하시마)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유네스코(UNESCO)에 제출했던 ‘꼼수’ 보고서가 제대로 된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졌다.

2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는 24일 개막해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제42차 회의에서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제출했던 ‘보전상황 보고서’에 대해 논의한다.

연합뉴스가 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위원회 사무국이 마련한 ‘결의문’ 초안에는 한국 정부와 한일 시민단체들이 지적한 이 보고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빠져있었다.

강제징용 관련 역사를 소개하는 정보센터를 현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에 설립하겠다는 ‘꼼수’나 강제성을 삭제한 표현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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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의 꼼수…”군함도서 조선인 강제노역 없었다 ‘증언’공개 검토” (CG) [연합뉴스TV 제공]

대신 초안은 ‘역사적인 문서 등에 대한 더 많은 조사’를 ‘요청 사항’으로 제시했고 정보센터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장려’ 사항으로 “(유산)시설의 전체 역사에 대한 해석 작업을 할 때 최선의 국제관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논의 과정에서 초안의 내용이 바뀔 수는 있지만, 그대로 통과되면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시 약속했던 후속조치를 향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명분으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에는 의장국 바레인과 부의장국 중국, 브라질, 스페인, 짐바브웨, 아제르바이잔 등 21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속해 있다. 회원국이었던 한국은 작년 12월1일부로 임기가 종료됐다. 이번 회의에서 메이지 유산 관련 안건은 다음달 초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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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섬’ 군함도 기록사진…목포 김대중기념관서 전시
(목포=연합뉴스) 전남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강제노역 실상을 기록한 이재갑 작가의 사진을 내년 3월 30일까지 전시한다. 사진은 이 작가가 기록한 군함도의 모습. 2017.12.26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던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은 하시마 탄광과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등 조선인들이 강제노동한 현장 7곳을 포함한 23개 산업 시설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정보센터 건립 등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런 약속과 달리 ‘보전상황 보고서’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군함도가 있는 규슈(九州) 지역이 아니라 1천㎞ 이상 떨어진 도쿄(東京)에 설치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한국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또한 보고서에서 강제노동 조선인에 대해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 전과 중, 후에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하며 유산 등재 당시 한일 양국 정부가 합의한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빼기도 했다.

이 보고서가 위원회에 제출됐을 때 우리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하며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강제 노역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를 성실히, 그리고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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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보고서가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별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지자 양심적인 일본 시민단체들은 최근 회의 개막을 앞두고 회원국들에 성명서를 배포하며 보고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어서 주목된다.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지난 20일 “일본 정부는 보고서는 위원회가 강제노동을 비롯한 ‘역사의 전모’를 밝히도록 권고한 것에 대해 충실한 이행 계획을 담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회원국들에 보냈다.

이들 단체는 “보고서는 강제 노역 피해자를 산업을 지원한 사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도쿄에 세계유산정보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은 도쿄가 세계유산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과 관련이 없어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군국주의의 역사를 찬미하는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던 곳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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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제출했던 ‘보전상황 보고서’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초안. 파란색 네모 부분이 강제 징용 관련 부분에 대한 요구 사항이다. 이 초안은 ‘역사적인 문서 등에 대한 더 많은 조사’를 ‘요청 사항’으로 제시했고 정보센터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장려’ 사항으로 “(유산)시설의 전체 역사에 대한 해석 작업을 할 때 최선의 국제관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email protected]

<2018-06-25> 연합뉴스

☞기사원문: 군함도 日 ‘꼼수’ 보고서 수용 우려…세계유산위 초안 지적 빠져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한일시민단체, 일본정부의 ‘메이지산업유산 보전보고서’에 대한 공동의견서 제출에 대한 보도 협조 요청.

☞SBS: 군함도 일본 ‘꼼수’ 보고서 수용 우려…세계유산위 초안 지적 빠져

☞서울경제: 군함도 日 ‘꼼수’ 보고서 수용 우려…조선인 등의 강제노동 문제 다시 도마 위

☞연합뉴스: 韓日,군함도 조선인 강제징용·노역 인정 둘러싼 2차외교전 개막

월, 2018/06/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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嘆政府追敍國民勳章無窮花章于故金鍾泌

 

堂誰罵倒(일당수매도)

同類滿朝家(동류만조가)

愛國皆虛語(애국개허어)

生成敗爛芽(생성패란아)

 

정부에서 故김종필에게 국민 훈장 無窮花章을 追敍함을 탄식함

 

이완용을 뉘 욕하며 나무라나

같은 무리가 朝廷에 가득하네

애국을 부르짖지만 다 헛소리

썩어 문드러짐의 싹이 생겼네.

 

<時調로 改譯>

 

이완용 뉘 욕하나 같은 무리 朝廷 가득

나라 사랑 떠들지만 다 실속 없는 빈말

오호라! 저 敗爛의 싹 생겨나고 말았네.

 

*追敍: 죽은 뒤에 官等을 올리거나 勳章  따위를  줌 *國民勳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功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나라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의  다섯

등급이  있다  *一堂:  이완용의    *李完用:  조선  高宗  때의  친일파(1858~1926). 

字는 경덕(敬德). 號는 일당(一堂). 1910년에 총리대신으로 정부의 전권 위원이

되어 韓日倂合條約을 체결하는 등 민족을 반역하였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伯爵

을 받고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 *罵倒: 심하게 욕하며 나무람  *同類:

같은 무리 *朝家: 조정(朝廷) *虛語: 虛言. 실속 없는 빈말 *敗爛: 썩어 문드러짐.

 

<2018.6.25, 이우식 지음>

월, 2018/06/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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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2) 

 

이민우 운영위원장, 지난 514일부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답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촉구하면서, 어제(6. 25) 올린 글에서 두번째로 언급한 중대한 내용에 대한 질문을 아래와 같이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라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유가 무언가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화, 2018/06/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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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취소되어야 한다>
김종필이 죽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수를 누리다 갔다.  법적 단죄도, 역사의 단죄도 없이 편히 살다 고이 눈을 감았다.  이 나라와 국민에게 지은 죄악이 얼만데, 그 죗값을 한 푼도 치루지 않고 갔다.  그래서 애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을 단 한명도 단죄하지 못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위에 두텁디 두터운 한 켜의 부끄러운 역사가 또 쌓인다.

김종필의 죄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으나, 그는 4.19 민주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으며 이 나라에 군사독재라는 포악한 괴물을 풀어 온 나라를 수십년 피맺힌 고통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포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으로서 공작정치, 정보정치를 펴며 지식인, 학생 등 각계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 탄압하며 불구로 만들거나 저승으로 보냈던 장본인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품격도 자존도 흥정대상으로 삼았던 용서받지 못할 자이다.

그와 박정희로 인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맹아기부터 훼손되고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해 아직도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반민주 세력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구부러지고 더러워지고 퇴행했는가?

그런 자의 죽음을 슬퍼한다면 살아가며 슬퍼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정부가 그런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돈다.  ‘국민’훈장이라니?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자는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더구나 민간인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이라니?  나라꽃 ‘무궁화’가 그에게 어울리는가?

일각에서는 ‘족적’과 ‘예우’를 말하는 모양이나 ‘족적’도 어떤 족적인지가 중요하고 예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고통속에 몰아넣은 그의 족적을 기려 예우를 하려면 차라리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며 살다간 이름 없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족적을 기리고 예우하라.

우리 ‘국민’에게는 죽으면 모든 죄를 사해주려는 DNA가 있는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도 사후에 면죄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세상 사람이 본다면 굳이 선행을 하며 살려고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니 살아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한국인의 율법’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친일청산도 못했는데 반민주 청산도 못한다면 어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사거와 함께 그의 죄명이 다시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무한 스크롤 되는 마당에 그런 자에게 최고의 훈장을 준다는 건 과거에 그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키려 목숨 걸고 투쟁했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국민을, 그리고 역사를 얕보는 행위다.  거기에 ‘촛불’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부디 한평생 ‘허업’을 좇으며 살았던 한명의 기회주의적 정치인의 사거에 정치적 저울질을 함으로써 이 정권의 정체성이 무언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그리고 역사의식이 어떤지 의심받을 짓 하지 말고,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들이 이 정권에 무엇을 원했는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서, 한눈팔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라.  ‘촛불’의 명령대로 강단있게 가라.

2018. 6. 25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김범태,  여인철

(어제 제가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입니다)

화, 2018/06/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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邦之羞辱(방지수욕)

 

忘置邦羞辱(망치방수욕)

民無奮發心(민무분발심)

唯私唯利己(유사유이기)

嘆此拙儒吟(탄차졸유음)

 

나라의 수치와 모욕

 

나라 수치와 모욕 까맣게 잊으니

백성에겐 분발하는 맘 따위 없네

오로지 私에 또 오로지 이기심뿐

이를 탄식하며 못난 선비 읊는다.

 

<時調로 改譯>

 

수치, 모욕 잊으니 분발의 그 맘 없네

오직 사사로움에 또 오로지 이기심뿐

이것을 탄식하면서 못난 선비 읊는다.

 

*羞辱: 부끄럽고 욕됨 *忘置: 망각(妄却). 亡失.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 *奮發心:

마음과 힘을 다해 떨쳐 일어나려는 마음 *利己: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함.

 

<2018년 6월, 이우식 지음>

화, 2018/06/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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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정치공작의 달인이며  박정희 독재정권때부터 쭉 2인자로 권력휘두르며 국민탄압하고

부정축재로 어마어마하게 우리세금 도둑질한 김종필이 죽었고

매국노 김종필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할것같다는 국가보훈처 소식을 접한뒤

벌은 못줄망정 상을주면 누가 나라위해 애국을 할것인지 한심하여 훈장수여 반대로 이글을 올린다
요사이 일본이 고등학교 책까지 독도를 자기네땅이라 올리는 역사왜곡에 우리정부서 강력항의했다는데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를 일본이 이렇게 역사왜곡하며 우기게 된것은

1965년 일본뇌물받은 매국적이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있어
서울시에 친일매국노며 살인독재하며 부정축재자인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

우리세금으로 동상을 세우자는 바보같은 의견과 매국노 동상은 절대 않된다는 의견이 대립

찬반회의를 열기로 했다는데 이는 친일매국노가 불법쿠테타로 대통령까지 해먹은것도 국가망신 치욕으로
일정때 자신의 출세위해 일왕에게 진충보국 견마지로 라고 일본의 개나 말이되어 일본에 충성하겠다고 혈서쓰고

일본장교 입대후 만주서 우리 독립군 토벌때는 제일먼저 앞장서서 독립군 죽였다던 악질매국노 다까끼 마사오
불법쿠테타 성공후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앞바다를 일본이 요구한대로

1965년 친일매국노인 일본면장 아들인 김종필시켜 한일협정서에

독도부근 바다를 동해나 영해에서 고의로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조카사위 김종필과 박정희였고

박정희는 대신 일본서 6600만불을 뇌물로 받은것이 미국CIA 보고서에 기록되어있으며

역시 김종필도 일본정부 뇌물전달자로 박정희의 만주일본군 장교 군대동료인 세지마 류조와 접촉을 자주하였고
당시 한일간 독도분쟁으로 국민감정이 들끓자 미국에 독도를 폭파해 없애달라고 부탁한 박정희와 김종필이었으며

그래서 미국이 독도를 공군폭격연습장으로 이용 암반덩어리인 독도에 엄청난 큰 금이 가게 만든것으로

일본은 만약 한국땅이라면 한국정부가 왜 미국에 부탁해 독도를 폭파해달라고 부탁했겠냐고 분쟁빌미를 제공한것이었으며
1999년 제2한일어업협정도 DJP연합정부때 실세총리인 자민련 김종필이

제2한일어업협정을 일본에 손해보게는 협정하지말라는 평민당 김대중대통령의 만류와

굴욕적인 한일협정 당사자라고 어업인들이 김종필을 제2한일어업협정 책임자로 나서는걸 반대한다는데도

김종필이 고집부리며 자민련소속 김선길을 해수부장관 앉힌뒤

어업선은 고기잡는선이지 국경선이 아니라고 김대중과 국민을 속이고
일본의 독도침략 주장에 유리하게 독도까지 일본어업선을 그은 제2한일어업협정맺은 친일매국노 집안으로

매국노와 맺은 어업협정을 무효화시키고 박정희에게 뇌물준 한일협정도 뇌물공여 불법이므로 무효인것이며
박정희는 일본침략배상도 다른나라에 비해 말도않돼는 싸구려로 하곤 그돈마저도 횡령해 정치자금으로 사용

이백만명 정도 끌려가 수십만명 학살당한 강제징용과 이십만명 끌려가 성범죄 숨기려고 다 학살하고

삼백여명만 운좋게 살아돌아온 위안부할머님과 전국서 쌀과 금괴등 엄청난 재물을 약탈당하고도

피해자들 피해배상 한푼도 못받았고 위안부할머님들 눈물나게 만든 더러운 매국노 박정희부녀와 가족들이며
쿠테타 집권후 1963년 만주일본군 총통으로 박정희 직속상관이던 기시를 찾아가 일본을 위해 충성하겠다 경례하며

기시의 명령대로 미군과 일본군 또 박정희가 장악한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박정희도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일본서 금괴등 뇌물받아 독일처럼 갈라야할 일본대신 조선을 가르고 한국인 생명을 완전 무시한 더러운 미국이였고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얼마전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독도침략처럼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태생이 기회주의자인 박정희는 해방후 친일매국노를 처벌하자 집에 못오고 신분숨긴채 떠돌다

이승만이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하는 미국을 편들자 독립군과 애국지사 애국국민이 조국분단 반대하니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 정부요직과 군경찰 간부로 기용하고 친일파가 만든 서북청년단 동원해
조국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지사와 독립군과 4.3사태 제주도민등 애국국민을 암살과 학살할때
박정희도 군입대후엔 공산당 간부인 친형 박상희지시로 비밀리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맏아 간첩질도 하였고

나중 여순반란사건 공산당 책임자로 검거되자 만주일본장교 출신으로 같이 독립군 죽이던 조사관 백선엽과 김창룡에게

자기형 친구와 군대내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여 같은 일본장교라 봐주고 국군에 복직까지 시켜줘
나중에 조카사위 김종필 동기들시켜 쿠테타 벌일때도 실패하면 튀려고

용산국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술먹다 성공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였고

쿠테타 성공후에 백선엽을 특별대우하여 백선엽이 인천서 인천대통령이란 별칭으로 불법으로 권력휘둘렀고

남의 땅까지 헐값주고 강제로 빼앗아 선인학원 재단차려 학사비리로 부정축재하였으며
또 박정희 재임기간은 저개발 동양이 선진국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 모두 발전할때인데도

기업과 짜고 최저임금 최고노동시간으로 근로자 착취하게하고 월급 올려달래도 빨-갱이로 몰아 감옥가두며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후 나라경제 살려야할 이익금중 세금낼돈을 국가정보원장 이후락시켜 기업서 모금하여

경제살려야할 세금낼돈 60억불을 스위스은행에 숨겨논 박정희로

그래서 경제못살려 당시 아시아 동양서 최저수준 경제못살리곤 많이살렷다고 국민속인것으로
기회주의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도 장면정부가 세운 계회표보고 따라했지만

경제살려야할 세금을 도둑질로 경제못살리자 마침 북한이 한국보다 훨씬잘살자

북한의 천리마운동을 본따서 새마을운동도 만들어 노력하는척한 기회주의자로

[박정희 죽은뒤 미프레이져 청문회서 이후락 아들 증언과 박정희집권 당시 세계 경제발전도표 아시아순위 참조]
무소불위 권력휘둘러 윤정희등 연애인들 다부르고 김삼화란 유부녀 강간에

안양예고 고등학생까지 반강제로 데려와 겁탈하고 우리세금으로 입막음하다가

22살 여대생끼고 놀던날 부하총에 즉결 처형된 매국노 박정희였고
또 월남참전용사들 목숨값과 독일파견 간호사월급에서도 일부 횡령한돈과

기업서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돈으로 청와대 금고서 나온 금은보화와 외화 채권등 트럭 몇차 분량과

육영재단 MBC주식 영남대학과 별도로 최태민과 최순실과 박근혜가 도둑질한것중

독일검찰이 발견한것만도 수십조로 보인다하고
뽕쟁이 박지만회사도 은행서 15조원 불법대출 돈빼돌리고

외국으로 도망간 김우중이 차려준 뇌물로 박지만 회사도 환수해야하고

그외 친인척들 부정축재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으로 금액이 엄청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조카사위 김종필은 전두환이 집권후 부정축재자로 조사할때도 엄청난 부정축재 들통났었고

한보그룹에 부정대출해주도록 은행에 압력넣고 뇌물받은 김종필로 부정대출금을 우리세금으로 메꾸었으며

또 그외 친인척들까지 백조원이넘게 한국서 세금도둑질한 패륜적인 매국노 집안으로
한보그룹 백억대 뇌물을 김종필 계좌서 발견한 함승희 검사와 김종필이 빅딜해

얼마전까지 친박단체인 함승희가 부정특혜 정선카-지노 사장보며 띵가 띵가하던 진짜 도둑들이며

진짜 최고의 악질매국노로 국립묘지에 안장도 반대하며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인 매국노 박정희묘도 국립묘지서 파내야하며

현재도 일본서 간첩처럼 돈받고 일본위해 역사왜곡과 일본침략 미화하는 뉴라이트를 일본간첩으로 처벌해야한다

 

화, 2018/06/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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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전다방(역사를 전하는 수다방)

민족주의자들의 비밀결사 흥업구락부 2편

“신간회와 친일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화, 2018/06/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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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3)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 위원장의 아래 첨부의 글,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의 내용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악의에 가득 찬 흑색선전물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번에 올린 아래 질문에 대해 아직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3.

또 한가지, 지난 5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이사회를 다녀와서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꼭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 체면 봐주지 말고, 속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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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 

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제10기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일동은 지난 324일 열린 2018년도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전후하여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 등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조직적 폭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여인철 씨는 201612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패배하여 운영위원장 연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리더십에 기인한바 컸습니다. 그간 여인철 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체면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인철 씨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건을 인터넷상에 반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총회장에서 배포함으로써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인철 씨가 수차례에 걸쳐 수정해가며 전파한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는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음해임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 개정 소위원회가 기초한 초안을 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총회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운영위원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거기에는 여인철 씨가 강변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의 결탁이니 묵계와 거래등 어떤 사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각이야말로 여인철 씨의 음모적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정관 개정과정에는 하등의 절차적 문제도 없었으며 총회와 이사회 운영위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게 상식선의 조정을 한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붙임 신구정관 대비 해설 참조 

그런데 여인철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마치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하수인이라도 된 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습니다. 운영위원들은 상근자들이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오랜 기간 연구소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의 잘못을 방관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는 보내지 않습니다. 격려와 비판 어느 한쪽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운영위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집행부는 각기 그 소임에 충실하게 연구소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 그 누구도 패권을 추구한다든지 전횡을 일삼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철 씨는 상습적으로 연구소 집행부를 박근혜 정권이나 최순실 유신체제에 비유함으로써 마치 연구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주변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독선적 행동은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나온 망발로 이사장님과 각급 기구의 구성원 모두를 허수아비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연구소는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실천하는 조직이지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보일지 몰라도 저희들이 보기에 연구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이 역사정의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철 씨는 회원들의 분별력을 흐리기 위해 회원이 주인이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명분 아래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회원들을 대변하는 투사인양 포장하면서, 현 운영위원회와 상근자들이 야합하여 회원을 무시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연구소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치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하던 2년 내내 여인철 씨가 한 일은 소장 사무총장 사무국장 등 주요 책임자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자신의 권한 강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 건립 등 시급한 현안은 도외시하고 권력 장악에만 매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본말이 전도된 회의 진행으로 운영위원회를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오죽하면 전임자들이 별 무리 없이 모두 연임한 것과 달리,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인철 씨는 자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지난 정기총회에서 감사와 현 운영위원장 그리고 다수 운영위원들의 사퇴까지 강박하는 망동을 부렸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씨가 연구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횡포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직의 체면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끝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지난 47일 긴급 임시운영위원회를 열고 여인철 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이사회에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연구소는 그간 온갖 탄압과 역경을 뚫고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며 역사전쟁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우리의 자랑이며 역사전쟁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지금 이런 연구소에 대해 여인철 씨 등과 회원도 아닌 극소수 파괴분자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음해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운영위원회는 연구소를 보위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기만적인 언설로 연구소를 와해시키려는 여인철 씨 등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백번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4. 24.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민우 운영위원장/인천지부장 권위상 부위원장 김순흥 부위원장/광주지부장

김희원 부위원장/경기동북지부장 박동규 부위원장 이순옥 부위원장

조승현 부위원장 고장오 경기군포안양지부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김방원 서울서부지부장 김재운 운영위원 김재호 전북지부장

박건 서울강서양천지부장 박종선 경기부천지부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서승의 고양파주지부장 손영주 서울강남서초지부장 송승호 제주지부장

심우일 경기안산시흥지부장 이달호 경기수원지부장 이영국 서울남서지부장

이희주 경기북부지부장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장재영 서울동부지부장

최창옥 경북북부지부장 홍석경 경기과천의왕지부장

 

화, 2018/06/2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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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수업협동조합에서

2018 여름집중수련을 진행합니다.

상세 내용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blog.naver.com/happy_tao

명상 입문자를 위한 프로그램

선 수행 기본과정 “명상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명상 안내”

마음의 원리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개개인의 상태에 맞춘 1:1 인터뷰 및 수행지도

삶에서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지속적인 자기치유법 훈련

● 기간

[제26차] 7월 29일 (일) – 8월 4일 (토) / 6박 7일

[제27차] 8월 20일 (월) – 8월 26일 (일) / 6박 7일

● 안내자 : 혜봉(명상수행학교 행복수업 교장)

● 참가비 : 36만원

청춘멘탈강화프로젝트 “청춘들의 쉼과 인생 로드맵”

인생의 기로에 놓인 청년들을 위한 자기성찰 명상 프로그램.

멘토와의 질의응답과 자기만의 꿈과 비전을 찾아가도록 안내.

‘알아차림과 쉼’을 주제로 행복수업의 명상 안내자들이 진행함.

● 기간 : 8월 13일 (월) – 8월 19일 (일) / 6박 7일

● 대상 : 20-30대 미혼 청년

● 안내자 : 박태희/무위(행복수업 명상 안내자)

● 내용 : 명상 배우기 / 나의 꿈 / 영화를 통한 알아차림 / 마음 나누기

● 참가비 : 13만2천원 (수련에 필요한 6박 7일 체류비)

행복수업협동조합

[깨어있는마음 . 깨어있는행복 . 깨어있는공동체]

– 불교의 철학을 기반으로 심리학, 인문학, 과학적 원리를 통합한 마음 수행법을 공부합니다.

– 종교, 성별, 문화를 넘어 청년, 중장년, 노년층 등 전 세대가 함께 소통하며 공감하며 활동합니다.

– 수행에서 자각한 것들을 실제 삶과 일, 관계 속에서 적용하며, 삶과 수행을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 블로그 : blog.naver.com/happy_tao

■ 카페 : cafe.naver.com/happyclassmc

■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간호대로 11-30, 2층

■ 전화 : 010-4292-3578

수, 2018/06/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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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정치공작의 달인이며  박정희 독재정권때부터 쭉 2인자로 중앙정보부 만들어 고문등 국민탄압하고

일본뇌물과 우리세금과 자민련후보 공천값등등 불법정치자금을 어마어마하게 도둑질한 김종필이 죽었고

매국노 김종필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할것같다는 국가보훈처 소식을 접한뒤

벌은 못줄망정 상을주면 누가 나라위해 애국을 할것인지 한심하여 훈장수여 반대로 이글을 올린다
요사이 일본이 고등학교 책까지 독도를 자기네땅이라 올리는 역사왜곡에 우리정부서 강력항의했다는데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를 일본이 이렇게 역사왜곡하며 우기게 된것은

1965년 일본뇌물받은 매국적이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있어
서울시에 친일매국노며 살인독재하며 부정축재자인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

우리세금으로 동상을 세우자는 바보같은 의견과 매국노 동상은 절대 않된다는 의견이 대립

찬반회의를 열기로 했다는데 이는 친일매국노가 불법쿠테타로 대통령까지 해먹은것도 국가망신 치욕으로
일정때 자신의 출세위해 일왕에게 진충보국 견마지로 라고 일본의 개나 말이되어 일본에 충성하겠다고 혈서쓰고

일본장교 입대후 만주서 우리 독립군 토벌때는 제일먼저 앞장서서 독립군 죽였다던 악질매국노 다까끼 마사오
불법쿠테타 성공후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앞바다를 일본이 요구한대로

1965년 친일매국노인 일본면장 아들인 김종필시켜 한일협정서에

독도부근 바다를 동해나 영해에서 고의로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조카사위 김종필과 박정희였고

박정희는 대신 일본서 6600만불을 뇌물로 받은것이 미국CIA 보고서에 기록되어있으며

역시 김종필도 일본정부 뇌물전달자로 박정희의 만주일본군 장교 군대동료인 세지마 류조와 접촉을 자주하였고
당시 한일간 독도분쟁으로 우리국민감정이 들끓자 김종필이 일본외상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하자 먼저 제안했고

그후 박정희는 미국무장관 러스크에게 독도를 폭파해 없애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그래서 미국이 독도를 공군폭격연습장으로 이용 암반덩어리인 독도에 엄청난 큰 금이 가게 만든것으로

일본은 만약 한국땅이라면 한국정부가 왜 미국에 독도를 폭파해달라고 부탁했겠냐고 분쟁빌미를 제공한것이었으며

굴욕적 한일협정 반대 데모가 거세지자 김종필에 모든 책임씌우고 미국으로 도피시키곤 데모하는 한국인 탄압하였으며
1999년 제2한일어업협정도 DJP연합정부때 실세총리인 자민련 김종필이

제2한일어업협정을 일본에 손해보게는 협정하지말라는 평민당 김대중대통령의 만류와

굴욕적인 한일협정 당사자라고 어업인들이 김종필을 제2한일어업협정 책임자로 나서는걸 반대한다는데도

김종필이 고집부리며 자민련소속 김선길을 해수부장관 앉힌뒤

어업선은 고기잡는선이지 국경선이 아니라고 김대중과 국민을 속이고
일본의 독도침략 주장에 유리하게 독도까지 일본어업선을 그은 제2 한일어업협정 맺은 친일매국노 집안으로

매국노와 맺은 어업협정을 무효화시키고 박정희에게 뇌물준 한일협정도 뇌물공여 불법이므로 무효인것이며
박정희는 일본침략배상도 다른나라에 비해 말도않돼는 싸구려로 하곤 그돈마저도 횡령해 정치자금으로 사용

이백만명 정도 끌려가 수십만명 학살당한 강제징용과 이십만명 끌려가 성범죄 숨기려고 다 학살하고

삼백여명만 운좋게 살아돌아온 위안부할머님과 전국서 쌀과 금괴등 엄청난 재물을 약탈당하고도

피해자들 피해배상 한푼도 못받았고 위안부할머님들 눈물나게 만든 더러운 매국노 박정희부녀와 가족들이며
쿠테타 집권후 1963년 만주일본군 총통으로 박정희 직속상관이던 기시를 찾아가 일본을 위해 충성하겠다 경례하며

기시의 명령대로 미군과 일본군 또 박정희가 장악한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 점령후

남북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박정희도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미국은 일본이 약탈한 엄청난 금괴등 뇌물받은후 독일처럼 갈라야할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시키고

6.25같은 전쟁을 또 일으킨뒤 불리하면 핵까지 쏟아부으려던 한국인 생명을 완전 무시한 더러운 미국이였고

한국인 멸종 계획한 기시와 박정희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브루스 커밍스교수가 미국무부 비밀문서에서 열람후 발표한 사실]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얼마전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독도침략처럼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태생이 기회주의자인 박정희는 해방후 친일매국노를 처벌하자 집에 못오고 신분숨긴채 떠돌다

이승만이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하는 미국을 편들자 독립군과 애국지사 애국국민이 조국분단 반대하니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 정부요직과 군경찰 간부로 기용하고 친일파가 만든 서북청년단 동원해
조국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지사와 독립군과 4.3사태 제주도민등 애국국민을 암살과 학살할때
박정희도 군입대후엔 공산당 간부인 친형 박상희지시로 비밀리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맏아 간첩질도 하였고

여순반란사건 공산당 책임자로 검거되자 만주일본장교 출신으로 같이 독립군 죽이던 조사관 백선엽과 김창룡에게

자기형 친구와 군대내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여 같은 일본장교라 봐주고 국군에 복직까지 시켜줘
나중에 조카사위 김종필 동기들시켜 쿠테타 벌일때도 실패하면 튀려고

용산국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술먹다 성공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였고

쿠테타 성공후에 백선엽을 특별대우하여 백선엽이 인천서 인천대통령이란 별칭으로 불법으로 권력휘둘렀고

남의 땅까지 헐값주고 강제로 빼앗아 선인학원 재단차려 학사비리로 부정축재하였으며
또 박정희 재임기간은 저개발 동양이 선진국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 모두 발전할때인데도

기업과 짜고 최저임금 최고노동시간으로 근로자 착취하게하고 월급 올려달래도 빨-갱이로 몰아 감옥가두며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후 나라경제 살려야할 이익금중 세금낼돈을 국가정보원장 이후락등시켜 기업서 모금하여

경제살려야할 세금낼돈 60억불을 스위스은행에 숨겨논 박정희로

그래서 경제못살려 당시 아시아 동양서 최저수준 경제못살리곤 많이살렷다고 국민속인것으로
기회주의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도 장면정부가 세운 계회표보고 따라했지만

경제살려야할 세금을 도둑질로 경제못살리자 마침 북한이 한국보다 훨씬잘살자

북한의 천리마운동을 본따서 새마을운동도 만들어 노력하는척한 기회주의자로

[박정희 죽은뒤 미프레이져 청문회서 이후락 아들 증언과 박정희집권 당시 세계 경제발전도표 아시아순위 참조]
무소불위 권력휘둘러 윤정희등 연애인들 다부르고 김삼화란 유부녀 강간에

안양예고 고등학생까지 반강제로 데려와 겁탈하고 우리세금으로 입막음하다가

22살 여대생끼고 놀던날 부하총에 즉결 처형된 매국노 박정희였고
또 월남참전용사들 목숨값과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월급도 미리 받아써서 한국도 못나오게하고 일부 횡령한돈과

기업서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돈으로 청와대 금고서 나온 금은보화와 외화 채권등 트럭 몇차 분량과

육영재단 MBC주식 영남대학과 별도로 최태민과 최순실과 박근혜가 도둑질한것중

독일에 은닉한 부정축재금중 독일검찰이 발견한것만도 십조원 이상으로 보인다하고
뽕쟁이 박지만회사도 은행서 15조원 불법대출후 돈빼돌리고

베트남으로 도망가 호화생활하는 대우그룹 김우중이 차려준 뇌물로 박지만 회사도 환수해야하고

그외 친인척들 부정축재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으로 금액이 엄청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조카사위 김종필은 전두환이 집권후 부정축재자로 조사할때도 엄청난 부정축재 들통났었고

한보그룹에 부정대출해주도록 은행에 압력넣고 뇌물받은 김종필로 부정대출금을 우리세금으로 메꾸었으며

또 그외 친인척들까지 백조원이넘게 한국서 세금도둑질한 패륜적인 매국노 집안으로
은행돈 빼돌리고 외국으로 도망간 한보그룹 백억대 뇌물을 김종필 계좌서 발견한 함승희 검사와 김종필이 빅딜해

얼마전까지 친박단체인 함승희가 부정입사등 국영기업 정선카-지노 사장보며 띵가 띵가하던 진짜 도둑들이며

진짜 최고의 악질매국노로 국립묘지에 안장도 반대하며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인 매국노 박정희묘도 국립묘지서 파내야하며

현재도 일본서 간첩처럼 돈받고 일본위해 역사왜곡과 일본침략 미화하는 뉴라이트를 일본간첩으로 처벌해야한다

 

수, 2018/06/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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