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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역습을 막아내다 – ‘친일’ 소송의 종결자 김경현 회원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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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역습을 막아내다 – ‘친일’ 소송의 종결자 김경현 회원 ①

익명 (미확인) | 목, 2018/09/06- 17:29

인터뷰 조세열 상임이사 / 정리 박광종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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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현 회원은 7월 25일 연구소를 방문해 촛불시위 기간 틈틈히 수집한 촛불과 사위용품, 유인물 등 총 37점의 자료를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김경현 선생은 연구소 초창기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열성회원이자 친일문제 연구자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역저 ????일제강점기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로2005년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임종국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위원회가 종료된 뒤에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으로 위원회 관련 소송업무를 전담했다. 최근 후작 이해승 후손이 제기한 위헌소송이 합헌으로 결정남에 따라 29건의 친일 관련 소송에서 전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터뷰는 7월 25일 연구소 법인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문 : <민족사랑> 8월호 회원탐방 인터뷰이는 제1회 임종국상 수상자인 김경현 회원입니다. 김경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늘 김경현 회원이 촛불시민혁명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했습니다. 과거에도 연구소에 자료를 기증하셨는데 어떤 것이었나요?

답 : 예전에 제가 소속되어 있는 경남근현대사연구회 차원에서 일문판 〈부산일보〉(복사본) 전량을 기증했고, 개인적으로는 한일과거사 관련 비디오 테이프 등 영상기록물과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펴낸 전시물 도록 및 제주4.3 관련 간행물 등을 기증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기증한 것은 현장에서 제가 직접 수집한 1차 자료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문 : 촛불집회가 열리는 동안 줄곧 이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답 : 제 근무처가 광화문 옆에 있습니다. 퇴근 후에 광화문 광장 화단이나 길모퉁이에 떨어져 있는 전단지나 촛불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수집했습니다. 또한 주말에도 꼭 시위현장에 참석하여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문 : 역사학자로서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료 수집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두었습니까?

답 : 수집은 제 오래된 습관입니다. 중학생 때 광주항쟁의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는 탄피를 모았습니다.

문 : 5.18 광주항쟁 때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고 했는데, 탄피를 모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려주십시오.

답 : 1980년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저는 새벽마다 〈중앙일보〉를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5.18 항쟁이 일어날 무렵 〈중앙일보〉 상무지국에서 받은 호외뭉치를 자전거에 싣고 달리며 제 손으로 두 차례나 이틀 연속 호외를 뿌려댔습니다. 하나는 5월 17일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인데 소요조종자로 김대중, 리영희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는 내용이었고, 부정축재자로 구속된 자는 그 헤드라인에 김종필, 이후락 등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두환 군부의 5.17쿠데타가 시작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이튿날인 5월 18일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엄포고령이었습니다. 이는 곧 계엄에 저항하는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 뒤 신문이 반입되지 않아 광주가 봉쇄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 두 장의 호외는 지금도 광주의 부모님 집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고, 한편으로 그 당시의 〈중앙일보〉 수금장부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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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탄핵을 선고하던 날, 광화문광장에서

 

5.18 당시 계엄군과 시민군이 대치 상태에서 총격전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철모르는 제 또래들은 탄피를 주워서 속칭 ‘짤짤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탄피는 주로 공수부대의 무차별적인 총격이 많았던 금남로와 계엄군의 부분확보작전이 있었던 국군통합병원 근처에서 많이 주웠습니다. 1980년 5월 22일 오후 6시 계엄군(20사단)의 국군통합병원 확보작전 당시 탄피를 줍기 위해 그 현장에 나갔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통합병원과 가까운 내방동에 있었거든요. 국군통합병원을 사이에 두고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이 벌어져 시민들이 많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날은 짧은 총격전이었지만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8명이 즉사했습니다. 그런데 사망자는 계엄군이나 시민군이 아닌 동네주민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집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거나 총격전을 구경하다가 저격으로 총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학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총격전이 벌어지자 저는 살기 위해 하수구 공사를 위해 만들어놓은 거푸집 안으로 피신했습니됐습니다. 저보다도 군인이 더 깜짝 놀라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계엄군이 임시분초로 사용하던 한 이층양옥집으로 끌려갔는데 그곳에는 한 여학생이 팔을 잡고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국군통합병원작전 당시 창문으로 총격전을 구경하다가 저격을 받아 팔에 총상을 입은 것입니다. 저를 붙잡은 계엄군은 제 몸을 수색해서 서너 개의 탄피를 발견하고는 “폭도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마구 다그쳤습니다. 저는 벌벌 떨면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친구들과 ‘짤짤이’ 하려고 모은 탄피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폭도라면 실탄을 갖고 있지 탄피를 갖고 있겠느냐며 울먹이자 계엄군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매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날 밤 그 병사는 날이 어두워 위험하다며 저를 계엄군이 사용하던 임시분초에서 묵게 하고 다음날 내보내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집에 돌아오니 난리가 났더군요. 동네사람들이 간밤에 총격으로 죽어간 것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살아돌아온 저를 붙잡고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부터 저의 수집벽이 남달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집벽 때문에 대학생 때 또 한 번 맞아죽을 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80년대 중반 대학(경상대 사회학과)에 들어가서는 수집벽 때문에 학내에 암약하는 학원프락치로 오인받은 것입니다. 매년 5월이 오면 당시 학내에는 광주항쟁이나 민주화 관련 대자보가 많이 붙어 있었고 캠퍼스에는 독재타도를 외치는 유인물이 흩날렸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대자보 내용을 수첩에 베끼고 각종 유인물을 수집했습니다. 어느 날 총학생회 학생들이 제가 의심스럽다며 이야기를 좀 하자며 총학생회 사무실로 끌고 갔습니다. 제 가방에서 유인물이 나오고 수첩에 대자보 내용과 학내 시위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프락치로 오인한 겁니다. 꼼짝없이 학원프락치로 몰려 맞아죽게 생겼는데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같은 학과 선배(총대의원회 대의원)가 저를 알아보고 제가 사회학과 학생인 것을 보증해주어 겨우 풀려났습니다. 이러한 수집벽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나중에는 일제시기 진주지역의 인명록에 등재할 인명 3천4백여 명의 행적을 수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인명록 때문에 이번에는 경찰서에 출두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수집벽이 아닐 수 없지요.

문 : <진주인명록>에 대해서는 다시 질문드리기로 하고, 김경현 회원은 전남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김무성 의원의 선친 김용주가 설립한 학교인가요?

답 : 네, 맞습니다. 전남고는 제 모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난 김용주는 해방 후 일제의 적산을 불하받아 임동에 있던 전남방직공장을 인수한 뒤 1966년 방직공장 옆에 중고등학교도 설립해서 사학을 운영했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전남고입니다. 남녀공학이 아닌데도 전남고에는 여자학급이 있었는데 바로 방직공장에서 주경야독하는 여공들을 위한 특별학급이 전남고 부설학급으로 방직공장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립학교시절의 전남고는 광주시내 소재 고교 중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띠었는데, 이를테면 학생들이 유신시대를 상징하는 획일적인 교복과 교모 착용을 거부했습니다. 즉 일제 순사모 같은 학생모와 호크를 채우는 교복을 착용하지 않고 스마트한 중절모를 쓰고 여학생 교복처럼 카라가 달린 교복을 입었습니다. 당시 이런 교모와 교복은 오직 전남고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교복 자율화가 시행될 때까지 이 교모와 교복을 착용하고 다녔지요.
또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자 선배들이 제일 먼저 교문을 박차고 나가 시위에 동참하고 시민군으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남고 학생 중에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전남고와 같이 있던 부설 전남중에서는 중학생이 총탄에 희생되었습니다. 또 전남고 영어 선생님의 부인이 희생당했는데 퇴근하는 남편을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만삭의 임산부였다는 사실입니다. 동료교사의 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독일어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는데, 광주항쟁이 끝난 직후 〈전남매일신문〉에 광주항쟁추모시 ‘아아, 광주(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게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부분은 삭제되어 게재)했다가 보안대(현 기무사의 기무부대)에 체포되었고 그 길로 전남고에서도 강제해직되고 말았습니다. 김용주의 사학재단이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아니면 어떤 비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광주항쟁이 진압된 이듬해인 1981년 전남고와 전남중이 전격적으로 국가에 헌납되어 공립학교가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전남고는 광주항쟁을 진압한 계엄군과 군사법원이 있던 옛 보병학교자리인 상무대로 교사를 이전했습니다. 물론 제가 입학했을 때는 전남고가 방직공장 옆에 있을 때였지만 공립으로 전환된 까닭에 김용주나 사학재단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김용주 동상이나 송덕비를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김용주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것을 기념한 기증비가 교문 수위실 건너편 화단에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전남고는 김준태 시인 뿐만 아니라 노래 ‘직녀에게’로 유명한 문병란 시인이나 시 ‘봄비’로 유명한 이수복 시인 등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있어서 문학적인 감성을 형성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분들 중 제가 직접 배웠던 영어교사 이수복 시인의 ‘봄비’가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어 매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존경하는 전남고 선배로는 헌법재판소 김이수 재판관 등이 있습니다.

문 : 5.18과 관련해서 1982년 3월 부산에서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반미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이와 관련한 일화를 말씀해 주십시오.

답 :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부산이 아니라 광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죠. 5.18 항쟁이 무자비하게 짓밟 히고 난 직후 그해 겨울 광주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 12월 광주시 황금동에 있던 미문화원에 불을 지르는 방화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미문화원이 있던 황금동은 광주의 돈이 몰리는 번화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윤락가로 유명한 황금동 집창촌도 있었습니다. 물론 황금동에는 일제 때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하는 회관도 자리 잡고 있어 저도 중고생일 때 회관 안에 있던 도서관에 자주 갔었습니다. 이처럼 황금동은 민족감정이나 자본과 탐욕 등이 엉켜있는 등 온갖 모순들이 응축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반미운동의 단초가 열립니다. 시민들이 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이유는 5.18의 진상규명과 전두환의 쿠데타와 학살을 묵인・방조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전두환에 의한 5.18 광주학살이 미국정부의 묵인 또는 방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광주항쟁 당시에 일반인들은 설마 자유우방국인 미국이 쿠데타와 학살을 묵인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광주가 무력 진압된 후 광주시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컸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5.18 이후 처음 일어난 반미운동사건이었고, 문화원이 폐쇄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인 1982년에도 광주 미문화원에 다시 불이 붙는 2차 방화사건이 일어났고, 1985년에는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광주 미문화원에 대한 공격은 부산과 서울에 있던 미문화원 방화 및 점거사건으로 번지는 등 반미운동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군부세력의 폭거와 미국의 방조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은 문부식, 김현장 등에 의해 이루어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김현장은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지켜보고 문부식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저는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그 발단이 광주 미문화원방화사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이와 관련해 5.18 현장에 있었던 저로서는 미국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광주학생운동기념회관에 가다가 백골단과 전경대에 의해 삼엄하게 둘러싸인 미문화원 앞을 지나치면서 문득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고 광주학살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즉시 광주 미문화원에 5.18 학살을 방조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미국이 묵인, 방조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소책자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소책자로 만들어 보내야 할 만큼 저처럼 미문화원에 항의 편지를 보낸 시민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문 : 최근에야 광주학살 진행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진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이 우리 현대사에 나쁜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합니다. 화제를 바꾸어 전라도 광주에서 장성하여 어떻게 경상도 진주로 유학을 갔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답 : 우리 집안의 본적은 대구지만 현재 부모님은 광주에 살고 계십니다. 저는 외가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살다가 광주에서 자랐는데, 결혼 후 경남 진주에서 살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전국구 시민입니다. 아버지는 대구 반야월에 있는 K2 비행장에서 공군문관(군무원)으로 근무하다가 60년대 말 광주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에 스카우트되어 제가 4살 되던 해 대구에서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요. 이후 저는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나오고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전라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지만 반대로 부모님은 경상도 사람이라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역차별을 당하셨지요. 앞서 말했듯이 고등학생 때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저는 가출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복학해 고3 대학입시 때 아버지가 “재수는 안 되고 학비가 싼 국립대만 보내주겠다”고 말하시는 겁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되어 지방 국립대를 알아보았습니다. 부산대에 재학중인 외사촌 형님이 진주에 있는 국립대를 소개해 경상대 사회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사회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나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학생운동을 하면서 이른바 ‘의식화교육’으로 인해 자신이 진짜로 전공해야 할 학문은 첫째가 철학이고 둘째가 경제학이고 셋째가 사회학이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그중 사회학이 가장 수월하게 보여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과정까지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원 때의 전공은 사회사인데, 역사학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경상대라는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경상대의 전신인 진주농과대학은 1948년에 진주에서 개교한 유서깊은 대학입니다. 이후 진주농대에 농학계열 이외의 학과가 많이 설치되면서 교명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여러 차례 문교부에 ‘경남대’로 교명을 바꾸겠다고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마산시에 있던 사립대학인 마산대학은 1971년 ‘경남대’로 교명 변경을 인가받았습니다.
결국 1972년 진주농대는 당시 지방국립대에 붙었던 도명을 붙이지 못하고 경상도의 국립대라는 애매한 뜻으로 ‘경상대(慶尙大)’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 때문에 한자가 아닌 한글이나 발음만 들으면 경상대가 일개 대학의 단과대인 경상대(經商大)나 상경대(商經大) 정도로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해 경상대 동문들은 교명변경을 숙원사업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경남대는 단과대학으로 경상대학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산대가 경남대로 교명을 바꾸어 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박정희정권의 실세였던 ‘피스톨박’ 박종규의 입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교명변경 당시 박종규는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고 있으면서 마산대학 이사장도 맡고 있었던 것이지요. 비록 진주농대가 경상대로 교명이 바뀌었지만 교가는 여전히 진주농대 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이기 때문입니다.

문 : 진주 경상대에 진학하여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부인을 어떻게 만났나요.

답 : 당시 경남 거창에서 유학온 진주 교대생이었던 제 아내를 대학 1학년 때 하숙집 친구의 소개로 진주우체국 건너편 다방에서 처음 만났고, 졸업 후 결혼해 2녀를 두고 지금까지 운명적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 너무 이야기에 몰두해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높다란 흰색담장에서 총기로 무장한 경교대와 맞닥뜨렸는데 바로 진주교도소(1989년 시내에서 외곽으로 이전함)임을 알고 황급히 되돌아 간 일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총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거든요. 2005년 제가 서울에 올라온 뒤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지금은 서로가 바빠 월말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나 요즘 말하는 ‘졸혼’은 절대로 아닙니다. 여전히 지금의 아내가 30여 년 전의 애인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문 : 진주는 예로부터 추로지향(鄒魯之鄕: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곳)이라 일컬어졌고 양반의 고장이었으며 조선시대에 경상우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울러 진주민란, 형평운동에서 보듯이 민중의 저항의식이 대단한 지역이었죠. 진주의 지역적 특색을 말씀해주십시오.

답 : 중학교 때 진주로 수학여행을 왔습니다. 그때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순절한 남강 촉석루 밑 의암에서 느꼈던 비장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경상대에 입학한 후 진주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했습니다. 조선시대 진주목사, 경상우병마절도사, 경남관찰사의 소재지였고 1925년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 직전까지 경남 행정・문화・교육의 중심지로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고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방 후 왜색불교를 없애고자 불교정화운동을 일으킨 청담스님이 진주출신이고, 한국 최고의 선승으로 일컫는 성철스님도 일제 때 진주고보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진주정신’을 낳게 한 것은 저항의 역사도 있지만 그 토양으로서 ‘진주문화’도 있다고 봅니다.
진주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규남이 부른 ‘진주라 천리길’(1941년)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노랫말에서 나오듯이 흔히 서울에서 진주까지의 거리가 천리(420km)라고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천리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진주가 중앙정부와 멀리 떨어진 독자적인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진주에는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가 많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문화적으로 진주에는 기생문화와 유흥문화가 발달해 진주검무를 비롯해 진주포구락무, 진주한량무, 진주교방굿거리 등이 무형문화재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예인들을 낳았는데, 몇 사람을 들면, ????친일인명사전????에오르긴했지만일각에서불세출의‘가요의황제’로추앙하는‘남인수’를비롯해‘산유화’와 ‘산장의 여인’ 등을 작곡한 작곡가 ‘이재호’, ‘대머리 총각’과 ‘곡예사의 첫사랑’ 등을 작곡한 ‘정민섭’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전통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최초의 종합예술제가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진주에서 처음 열렸는데, 바로 개천예술제의 전신인 영남예술제가 그것입니다.

문 : 진주의 고유한 전통과 독자성이 느껴집니다. 진주민란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고위 중앙관료 출신이 참여하는 등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진주의 저항정신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답 :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의 하나로 진주대첩을 꼽습니다. 1차 진주성 전투(1592년 11월)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관민을 모아 격렬히 항전하여 일본군은 퇴각하고 김시민 목사는 총탄에 맞아 순국합니다. 한편 임진왜란 끝 무렵 2차 진주성 전투(1593년 7월)가 벌어지는데 일본군의 총공세로 함락됩니다. 이때 논개도 순절합니다. 이와 같이 진주처럼 외세의 침략에 신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민관군이 합심해 처절하게 저항했던 곳도 드뭅니다.
그러나 조선말 진주지역 토호세력의 수탈이 극심했고 진주민란은 그 대표적인 민중의 저항입니다. 진주민란은 진주의 병마절도사와 토호세력의 착취로 일어났는데 향반출신인 류계춘이 주동이 되어 농민항쟁을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또한 갑오농민전쟁이 한창일 때는 농민군이 진주성을 함락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을미의병 때는 유생들이 일어나 의병이 크게 봉기했던 곳의 하나가 진주입니다. 이러한 저항의 역사 때문인지 대한제국 시기에는 진주의 민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진주에서 최초의 한글(국한문 혼용) 지방신문이 탄생합니다. 1909년 진주에서 경남의 유지들이 〈경남일보〉를 창간했던 것입니다. 이때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썼다가 〈황성신문〉 사장에서 쫓겨난 위암 장지연이 〈경남일보〉 주필로 초빙되어 진주에 옵니다.
더구나 천민의 대명사이던 백정을 해방하기 위한 인권운동이 처음 벌어진 곳도 진주입니다. 1923년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사회적으로 이중차별을 받던 백정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해 형평운동을 주도한 한 선각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는 백정이 아닌 양반출신이었던 강상호였다는 점에서 진주의 진보성과 민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6.10 만세운동을 이끈 제2차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가 바로 진주의 사회운동가 강달영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고,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시발점이 진주의 소년운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볼 때 진주가 예사롭지 않은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주에 깃든 저항의 의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다음호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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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근현대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사 부분을 담당한 집필진은 현대사 전공자 없이 대부분 법학과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교과서 발표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은 현직 대학교수 12명과 중고등학교 교사 6명을 포함해 모두 31명으로 구성됐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논란이 됐던 근현대사 집필진에 현직 역사교수의 참여가 극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근대 3명 현대 6명의 집필진 가운데 역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한상도 건대 사학과 교수(근대) 1명 뿐이었다.

한상도 건대 교수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주로 연구한 근대사 전공자로 현 국사편찬위원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지난해 11월 뉴스타파가 근현대사 전공 현직교수 7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당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3명 가운데 1명이었다.(관련기사: 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3명뿐)

특히 현대사 집필진 6명의 경우는 법학 전공 1명, 정치학 전공 2명, 경제학 전공 2명, 전쟁사 전공 1명 등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사 전공자는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참여했다는 교육부의 설명과 달리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가 대거 집필진에 포함됐다.

현대사 집필진 가운데 김명섭 교수와 나종남 교수, 세계사를 맡은 이주영 교수는 뉴라이트 인사들로 구성된 현대사학회 회원이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현대)는 지난해 11월 ‘근현대사는 역사학자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문화일보 칼럼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면서 5.16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세계사)는 기존 검정교과서가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고 북한 교과서를 베끼는 등 편향됐다고 주장했던 인물이고,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조선)은 대표적인 교학사 역사교과서 필진으로 강원대 사학과 교수 6명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교과서 반대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현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하는 민주평통자문위 수석부의장의 신분으로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고 난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님을 위해 기도하자’는 글을 SNS에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집필진 가운데 최성락,손승철, 한상도,유호열, 정경희 등 5명은 현 18대 국사편찬위원이다.

국사편찬위는 지난 3월 기존 위원 16명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편찬위원 9명을 배제하고 찬성 인사들을 새로 편찬위원으로 위촉했는데 한상도, 유호열, 정경희 등 3명이 이때 새로 합류한 인사들이다.

분야 성명 전공 현직 직함
선사/고대 신형식 사학 이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최성락 고고학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
선사/고대 서영수 동양사 단국대 명예교수
선사/고대 윤명철 사학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고려 박용운 사학 고대 명예교수
고려 이재범 사학 전 경기대사학과 교수
고려 고혜령 사학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조선 손승철 사학 강원대 사학과 교수
조선 이상태 사학 국제문화대학원 대학 석좌교수
조선 신명호 사학 부경대 사학과 교수
근대 한상도 사학 건국대 사학과 교수
근대 이민원 한국학 동아역사연구소 소장
근대 김권정 사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현대 최대권 법학 서울대 명예교수
현대 유호열 정치학 고대 북한학과 교수
현대 김승욱 경제학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현대 김낙년 경제학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 김명섭 정치학 연대 정외과 교수
현대 나종남 사학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
세계사 이주영 사회학 건대 명예교수
세계사 허승일 서양사학 서울대 명예교수
세계사 정경희 동양문화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윤영인 일본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세계사 연민수 사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현장교원(선사/고대) 우장문 사학 경기 대지중 수석교사
현장교원(고려) 김주석 사학 대구 청구고 교사
현장교원(고려) 유경래 역사교육 경기 대평고 교사
현장교원(근대) 정일화 역사교육 전 강원 평창고 수석교사
현장교원(근대) 최인섭 역사교육 충남 부성중 교장
현장교원(근대/현대) 황정현 역사교육 충남 온양한올중 교사
현장교원(세계사) 황진상 역사교육 서울 광운전자고 교사
월, 2016/11/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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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아이들, 한뼘 더 성장하다"
 

샤론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샤론 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서대문형무소. 한여름 무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 왁자지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울려 퍼졌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10여명 남짓한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6월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운동 역사를 배워가는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보다 생생한 독립운동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광복절 즈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프로젝트 초기만 해도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던 아이들은 불과 두 달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삼점일절에서 ‘31독립운동 역사와 거리를 좁히다

 

 

“191931일 파고다 공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칩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 명이었는데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200만 명이었다고 해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친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랍니다.”

독립운동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운동이었어요.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모두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죠. 그걸 지키려고 애썼던 분들이 계셨고, 총칼로 싸우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각오하고 활동한 분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쓱 지나가며 곁눈질하는 것과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서대문형무소가 초행도 아니고, 독립운동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음에도 서대문형무소 도슨트(전시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윤명희 선생의 설명을 들으니 알고 있던 사실조차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사전 자료조사를 통해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니, 중학교 1학년이면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설명을 듣고도 생각은 오히려 더 깊고 넓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설명을 들으면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독립 운동가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후손들을 위한 그분들의 희생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여성 감옥이 따로 있었다는 건 자료조사 하면서 알고 있었는데, 임산부 독립 운동가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임신한 몸으로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기저귀도 구할 수 없는 감옥 안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저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인데 그 모든 것을 독립을 위해 견뎌내신 분들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아이들 스스로 배움과 깨달음 이어가는 역사탐험 프로젝트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샤론지역아동센터는 초중생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프로젝트 수업이다.

선생님은 큰 주제만 제시할 뿐, 그 어떤 설명도 자료도 일절 주지 않는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은 모두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 오기 전에도 자료조사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또래와 비교해 이해의 범위가 남달랐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설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거나,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시큰둥한 표정을 보면서 아직 어려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재미가 없어서 지루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고 오해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무표정이 전부였지만, 그 뒤에서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새로 알게 된 것 사이를 바삐 오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사실 저 역시 아이들 표정만 보고 걱정하던 때가 있었어요. 한번은 종일 견학만 다닌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 걸으니까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더라고요. 무리한 일정이었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설렁설렁 다닌 줄 알았는데 설명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신문기사로 정리해내는가 하면, 그날 다닌 곳들을 그림지도로 만들기도 하고, 직접 대본을 써서 종이인형극을 선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보기엔 떠들고 장난치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마음에 다 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확신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일보다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고요.”

 

최미란 샤론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2012년부터 매년 올해로 네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되고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단번에 잊게 만들만큼 아이들의 빛나는 성장을 매순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어루만지는 따뜻한 돌봄아름다운 동행 계속되길

 

샤론지역아동센터 최미란 센터장

 

샤론지역아동센터가 2010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어온 것도 아이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 덕분이다. 아름다운재단이 문화소외지역 아동청소년들에게 문화체험 활동을 지원하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에 지원해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피아노 레슨 기회를 연결한 것이다. 최미란 센터장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센터는 지역 특성상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도 많은데,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레슨을 받으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그중 한 아이는 3년간 피아노를 쳤는데 음악으로 마음의 병을 이겨냈고요.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성장했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과 더불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있는 샤론아동지역센터. 아이들을 향한 무한대의 사랑만큼 앞으로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동행도 끝없이 진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글. 권지희 | 사진. 김흥구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아동단체협의회가 파트너쉽을 맺어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아름다운재단 꿈꾸는나무기금, 성도지엘삼더기금, 아름다운영화인기금, 효주기금, 행복한쉼표기금을 기반으로 전국 문화소외지역(농어촌, 광산촌, 섬지역 등)에서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나 아동청소년 이용시설 및 양육시설에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문화예술교육, 현장탐방 등)을 지원합니다. [지원사업 자세히 보기]




 

숨요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전서영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월, 2015/09/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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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1938년 대구 수동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해 무역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확장해 가던 그는 1961년 5.16쿠데타 직후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된다. 하지만 박정희와 만나 군부 세력에 적극 협조를 약속한 뒤 감옥행을 면한다. 1966년에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서울지검에 소환돼 계획적 밀수로 폭리를 취하고 정치자금을 조성했단 혐의 등을 받았지만 법적 책임은 이병철 회장 대신 삼성의 부하 직원이 졌다.

그의 대를 이은 이건희 회장도 군사독재정권 기간 삼성을 급성장시킨다. 때로는 세금포탈 혐의로, 때로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나 비자금 조성, 로비 의혹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그가 구속 수사를 받거나 감옥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삼성 재벌 3세 이재용 부회장 역시 이번에 구속을 면했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일가에게 수백억 원 대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 등으로 이재용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19일 새벽 이를 기각한 것이다.

3대에 걸쳐 대물림되고 있는 삼성가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역사. 그리고 3대에 이르도록 단 한번도 삼성재벌 총수를 법의 심판대에 제대로 세워보지 못한 사법 시스템, 대한민국의 법은 과연 언제 ‘법 위의 삼성’ 신화를 깰 수 있을까?


리서치,구성:이보람
편집:박서영

목, 2017/01/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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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서울은 어떤 곳입니까? 고층의 빌딩과 이동하는 차량으로 가득 채워진 도로 그리고 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요?   가장...
토, 2017/06/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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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8화 – 1부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3편 – 이승만 국부론” 

팟빵 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7/07/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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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本命與老友

 

能長人本命(능장인본명)

老幼語錢財(노유어전재)

乏加多病(약핍가다병)

閻羅促急來(염라촉급래)

 

老友와 타고난 命을 논하다

 

사람 타고난 命, 늘일 수 있다며

노인도 어린애도 돈을 말하는데

만약 가난에다 질병까지 많다면

염라대왕 빨리 오라 재촉하겠지.

 

<時調로 改譯>

 

本命도 늘인다며 老幼가 돈 말하는데

만약에 가난한 데다 질병까지 많다면

오호라! 염라대왕이 急來 재촉하겠지.

 

*本命: 자기가 타고난 *老友: 늙은  벗. 나이 든 벗. 늘그막에 사귄 벗.

사귄 지  오랜  벗 *老幼: 늙은이와 어린아이를 아울러 이름. 기몽(耆蒙)

*錢財: 돈  *多病: 몸에 病이  많거나 잦음 *閻羅: 염마(閻魔). 염라대왕.

 

<2017.7.11, 이우식 지음>

화, 2017/07/1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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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霖(장림)

 

霖茅屋漏(장림모옥루)

空器各歌聲(공기각가성)

興氣焉無酒(흥기언무주)

貧儒覓巨觥(빈유멱거굉)

 

긴 장마

 

긴 장맛비로 오두막에 비가 새니

빈 그릇들 제각기 노래하는 소리

흥겨운 기분에 어찌 술이 없으랴

가난한 선비는 큰 술잔 찾는다네.

 

<時調로 改譯>

 

오두막 비가 새니 빈 그릇들 노랫소리

흥겨운 기분인데 그 어찌 술이 없으랴

마침내 가난한 선비 큰 술잔 찾는다네.

 

*長霖: 오래  계속되는  장마  *茅屋: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인 초라한  

*空器: 빈 그릇 *歌聲: 노랫소리 *興氣: 흥분하거나 또는 흥겨워하는

이나  기세  *貧儒:  가난한  선비 *巨觥: 뿔로  만든 커다란 술잔.  거배(巨杯).

 

<2017.7.11, 이우식 지음>

화, 2017/07/1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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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10만원 이상)·후원회원 참여
우리은행 1006-401-235747 (시민역사관건립)

시민참여
우리은행 1005-703-038353 (시민역사관)

※발기인으로 참여하시려면 아래 첨부파일의 <동의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표메일: [email protected]   팩스: 02-965-8879

클릭 다운로드

[PDF – 동의서]  l  [한글 – 동의서]  l  [워드 – 동의서] 

 

 

목, 2016/09/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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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는 친일매국노 집안으로 북한서 친일파를 처벌하자

남한으로 도망와서 만든 친일파 가족들 모임인 정치깡패단체 서북청년단 총무보다가
김구선생님이 미국에 왜 전범 독일처럼 일본을 갈라야지 죄없는 조선을 가르냐고 항의하여

 

국민여론에 쫏겨 북한서 쏘련군 철수와 미군도 철수를 할수없이 하려던때

미국앞잡이 이승만과 미국이 짜고 이승만이 조종하는 친일매국 정치깡패단체 서북청년단 총무보던 안두희를

갑자기 포병소위로 둔갑시키곤 김구선생에게 접근시킨후 김구선생을 암살 살해한지 67여년이 지나가지만

 

김구선생의 진정한 해방인 평화통일을 아직도 보지못해 안타까운 마음이고 위키리크스가 밝혔듯 우리가 통일되면

경제나 군사적 모두에서 강대국이 되는걸 반대해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 또 중국이듯이

세계의 깡패국가인 더럽고 음흉한 미국과 일본의 속내를 파헤쳐보자

 

또 북한의 3대 독재세습은 나쁘지만 우리헌법정신의 평화통일위해 남북교류로 독일처럼

6.25같은 동족살생을 피하고 교류와 협력으로 북한과도 독재없는 한민족국가로 평화통일 돼길바라며 이글을 바친다

글이 좀 길어도 우리가 현재 지구상 유일하게  타국에 강제로 분단돼어 그나라들이 냉전조장 전쟁위기 만드는데

외세에 흔들리지말고 민족간 전쟁을막아 평화교류와 대화로 평화통일시켜  한민족국가를 후손에 넘겨줘야한다

 

1905년 일외무장관 가쓰라와 미외무장관 테프트협상처럼 조선을 일본식민지만들기에 일본에 적극 협조한 미국이

2차대전때도 강건너 불구경 하다가 일본이 미국본토 공격하자 마지못해 참전 원폭투하로 승리후

일본이 조선등지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와 731부대 인체 살상무기 정보받고 독일처럼 갈라야할 전범 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할때 쏘련은 일본을 가르자했으나 원폭투하로 유엔을 장악한 미국의 힘에 밀리었고
미국앞잡이 이승만은 일정시대때 독립운동에 훼방꾼같았고[독립운동 지도부와 마찰과 독립운동가들을 돕지않고 재판등에서 오히려 나쁘게하였음]

 

미국교포들이 후원한 독립운동자금도 빼돌려 외국여자와 돌아다니며 사치낭비와

하와이 교포들의 독립운동도 불법무기소지했다고 미국에 밀고한 더러운 미국앞잡이로
독립군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처벌하려던 친일파를 경비서던 독립군을 죽이고 구출후 이승만의 군경과 내각에 기용해

조국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를 서북청년단등 정치깡패들과 친일파 군경시켜 암살하였고

강제분단 반대하던 독립군과 일반국민과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나 공비로 속이고 학살등 강제분단에 이용하였으니

당시 제주도민도 조국 강제분단에 반대했다고 친일파 서북청년단과 친일파 경찰시켜 제주도민을 학살한것이다

 

 

강제분단때문에 벌어진 6.25때도 파렴치한 이승만은 서울서 자신들만 먼저 도망가 살려고 한강다리 끊어

수많은 피난민들 숨지고 이승만 본인이 친일파라 일본으로 망명신청도 하였으나

지금 이승만 추종세력들은 아니라고 역사왜곡을 하고있으며

3.15부정선거 저질러 국민들 항의시위로 충성하던 미국으로 도망가 죽었으며

[3.15부정선거범 최인규등을 사형과 무기징역시키듯 원래 이명박과 박근혜도 부정선거 주범으로 처벌해야하는것임]

 

다시 올라가 미국과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때문에 우리 민족 삼백만명이 숨진 6.25비극을 만든 원인이 미국 일본때문으로

그래서 전주한미국대사가 미국의 강제분단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주었다고 한국인에 무릎꿇고 사죄하였으나
미국은 반성없이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허가하였듯이 한국내 친일파등 사대매국세력의 불법집권을 도우며

박근혜의 부정선거를 모른척하듯이 그불법세력들 이용해 남북냉전만들곤 미국서 퇴출 고물무기 비싸게 팔아먹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 주둔인 한국에서 미군월급과 미군주둔 경비를 한국돈으로 펑펑쓰고있으며

 

 

이명박과도 BBK미국재판서 BBK가 자신회사란 동영상등 중요증거물 배제시켜줘 명박이에게 유리하게 재판해주곤

대신 미국인 않먹는 20개월이상 미국소 국민패며 강제수입과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 수입과

서해안 미군기지 건설비 엄청바치고 미군주둔비용 엄청올려주는둥 우리세금 뇌물바쳤듯이

당시 이명박 집권때 미국대통령인 음흉한 오바마가 수백조 우리세금 낭비한 이명박과 무슨 뒷거래가 또 남았는지

요번에 한국을 특별방문 이명박과 만나 비밀얘기 하였고

 

 

과거에도 박정희 일본군 상관 기시수상과 1963년 짜고 미군과 일본군과 박정희가 장악한 한국군과 북한을 침략

장악한후 한반도 전체를 일본식민지로 도로 만든다는 협정을 미국과 일본이 맺은 미쓰야작전으로

63년 박정희도 기시에 불려와 일본에 충성약속을 하였고

만약 6.25처럼 중국이나 쏘련이 개입해 실패하면 한반도 전체를 핵투하 생명체 못살게 초토화 시키려했으며

 

당시 기시 전수상 밑에서 충성하던 일본 관방장관이 고이즈미로 고이즈미 전수상 얘비였으며

일본사회당에 적발돼 전범국가가 타국을 침략할수없다고 일본 야당 전체 항의로 무산된 미쓰야작전으로

만약 미쓰야작전이 실행되었으면 우리민족이 엄청난 큰 불행을 또 겪었을것이며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않될 귀태 즉 악귀라고 하는것임

[미국 부르스 커밍스 교수가 미국무부 비밀문서에서 발췌]

 

 

세계에서 미국이 힘으로 파나마운하와 중동석유판매권까지 빼았듯 북한의 원자력발전소를 핵무기만든다 트집잡아

핵발전소 가동중단대신 중유발전소와 중유지원키로 제네바협정맺고는 북한이 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협정깨트리고 선제공격 위협해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건설 가동 핵무기만들게 유도한후 핑계로

한반도에 냉전만들어 미국은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팔아먹고 일본은 군사재무장을 노린것이다

 

그래서 과거 김대중 노무현정권때 유엔서 북한탄압 표결때 미국일본 잘못도있어 기권한것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짜고 한국에 배치할 사드역시 한국방어용이 아니라 일본내 미군기지와 괌을 보호키위한 배치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무기를 설사 막는다해도 한국상공서 터트려 한국인 멸종시킬 계획이며

 

중국과 러시아까지 감시할 레이더시설로 과거 쿠바에 쏘련미사일기지 배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되듯 중국 러시아가 집중타격 목표삼아 전쟁시 성주는 물론 한반도 초토화로 멸망이나 수천만명 살상될거고

또 운용중 실수하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위험물이라 그래서 다른 외국들도 사드를 자국에 설치못하게 막는것인데

 

친일매국노가 집권하여 무조건 반공주의와 숭미주의를 교육시켜 찬성하는 사대주의 일부 바보국민들도 걱정인데

중국과 러시아 폭격에 생명권과 전자파 걱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또 다시 친일매국단체인 서북청년단이 나타나

미국과 일본 이익위해 주민과 싸운다니 과연 그것들 정체가 무엇이고 지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기가막힐 노릇이며

 

 

또 독도를 일본땅으로 올리라고 일본에 충성발언한 일본인 여자에게 오사카서 태어난 반쪽일본인 이명박과 짜고

부정선거 저지른 박근혜도 마찬가지로 최순실과 세금으로 가야할 기업세금을 엄청나게 세금도둑질했듯이

우리세금 수백조원 낭비후 뇌물챙겨 수십조원 싱가폴로 빼돌리고도 떵떵거리는 이명박을 보호해주었고
지금 최악의 가뭄도 세금도둑질과 자갈모래 팔아먹으려 강바닥 깊이파 상류와 지천의 물이 빨리 빠져 물마르고 수질오염만든것이며

 

박정희가 일본요구대로 우리땅 독도앞바다를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독도분쟁 만들엇듯이 박근혜도
과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 전국민이 항의하자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에 망언 지껄인 박근혜로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명령에 일본함정 내쫏았으나
박근혜는 부정집권뒤 한국인들 반대해도 한일군사협정맺고 일본군이 수시로 독도와 바다속을 드나들어도

쉬쉬하며 용인해주고 일본인 소유 저축은행들 한국서 고금리 사채장사해도 오히려 사채업자들 유리하게

사채를 불법추심할수있게 법까지 고쳐준것이 이명박과 불법추심을 안고친 박근혜정권이며

 

외국도 수입 않하고 일본인 않먹는 후쿠시마산 핵오염된 농수산물 안전하다고 수입해

한국인 먹인 매국노 후예 박근혜와 이명박이며

일본의 조선침략을 미화하고 친일매국노 박정희의 불법쿠테타와 친일매국 행위를 감추고

박정희가 경제살렸다고 국민속이는 역사책 만들었지만

 

 

박정희 집권당시엔 발전된 서양문물을 동양이 받아들일때라 아시아 전체가 발전하였지만

최저임금 최고노동시간으로 기업과 짜고 국민들 착취하던 박정희가 경제살려야할 세금을 기업서 차떼기로 강탈해

스위스로 60억불 빼돌린걸 나중 미국청문회서 이후락아들이 증언했고 현재 최순실과 박근혜가 관리한다는 소문있으며

정경유착 원조인 박정희 집권당시 아시아에서 꼴찌수준으로 경제 못살린게 당시 세계경제발전도표에 잘 나와있고

국민들이 독재반대해도 빨갱이 월급올려달래도 기업과 짜고 빨갱이로 몰아 감옥가두었다

 

 

박정희 일본 만주군상관이었던 기시를 제일 존경한다는 외손자 아베가 침략헌법을 요번 새로 만들었듯이

이명박이 추진했던 한국인들 침략국이라 반대했던 한일군사협정을 매국노 딸 박근혜가 위안부할머님 굴욕협상처럼

아베와 무슨 뒷거래인지 한반도를 재침략할수있게 만들어 일본식민지만들려는 제2 미쓰야 침략작전인지 경계해야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이승만 정부가 6.25전쟁 직후인 6월 27일 일본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승만이나 정부각료는 이날 서울을 탈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저 인민군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달리던 시점이었다. 망명정부설이 나왔다면 아마 그 시점은 낙동강 전투에서 유엔군이 위기에 처한 8월 중순 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구 북쪽에서 인민군 2개 사단이 낙동강을 건너 방어선 북서쪽을 무너트렸다. 심한 압박을 받은 한국군 1사단과 6사단은 미 1기병사단 뒤까지 후퇴했다. 할 수 없이 워커 장군은 8군 사령부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길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자’고 주장을 했던 인물은 최악의 국방부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신성모로 추정된다.

 

무초 미국 대사가 1950년 6월 27일에 국무부에 타전한 전문을 읽어보자.

“신성모가 아침 7시에 나를 찾아와 대통령은 새벽 3시에 진해를 향해, 그리고 내각은 아침 7시에 남쪽 지방을 향해 특별열차를 타고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내각을 일본으로 보내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는지 여부를 내게 타진했다. 이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월, 2017/07/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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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諸牧師與僧

 

誰耶蘇孰佛(수야소숙불)

未覺兩非神(미각양비신)

不信終無礙(불신종무애)

能分別假眞(능분별가진)

 

모든 목사와 중에게 告함

 

누가 예수이며 누가 부처이던가

둘 다 神이 아닌 걸 아직 모르네

믿지 아니하니 마침내 無礙하여

거짓과 참, 분별할 수 있게 됐네.

 

<時調로 改譯>

 

예수와 佛 그 뉘인가, 둘 다 神이 아닐세

나는 믿지 아니하니 마침내 거침이 없어

참됨과 거짓일랑은 분별할 수 있게 됐네.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不信: 믿지 아니함. 또는 믿지 못함 *無礙:

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 *分別: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해 가름.

 

<2017.7.10, 이우식 지음>

월, 2017/07/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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嘆邦態(탄방태)

 

僅僅成邦態(근근성방태)

時時不禁嘆(시시불금탄)

如居無法境(여거무법경)

未久恐衰殘(미구공쇠잔)

 

나라 꼴을 탄식하다

 

겨우 나라의 꼴 이루게 되었건만

때때로 탄식일랑 禁할 수 없다네

무법천지 지경에 사는 것 같으니

오래지 않아 衰殘할까 썩 두렵네.

 

<時調로 改譯>

 

나라 꼴은 이뤘건만 때때로 탄식하네

무법천지 지경에 사는 것과도 같으니

마침내 오래지 않아 쇠잔할까 두렵네.

 

*僅僅:  겨우  *時時: 가끔.  때때로  *不禁:  하거나  말리지  아니함.  찌할

없음 *無法: 법이나 제도가 확립되지 아니하고 질서가 문란함. 도리에

긋나고 예의가  없음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衰殘: 쇠하여  힘이나

세력이 점점 약해짐.

 

<2017.7.10, 이우식 지음>

월, 2017/07/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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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美國(고미국)

 

焉非羊面虎(언비양면호)

未覺爪牙衰(미각조아쇠)

促買新兵器(촉매신병기)

諸邦起大疑(제방기대의)

 

미국에 告함

 

어찌 羊 낯짝의 범이 아니겠는가

발톱과 어금니 쇠함 아직 모르네

새 兵器를 어서 사라고 재촉하니

여러 나라가 큰 의심을 일으킨다.

 

<時調로 改譯>

 

羊 낯짝 범이 아닌가 爪牙 쇠함 모르네

새로운 兵器 따위, 어서 사라 재촉하니

오호라! 여러 나라가 큰 의심 일으킨다.

 

*爪牙: 발톱과 어금니 *兵器: 전쟁에 쓰는 기구를 통틀어 이름 *諸邦:

제국(諸國).  여러  나라  *大疑: 크게  의심함.  또는 큰 의심이나 의혹.

 

<2017.7.9, 이우식 지음>

일, 2017/07/0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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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富僧說夢

 

免罪祈三佛(면죄기삼불)

前宵現夢言(전소현몽언)

救靈眞不易(구령진불이)

速覺貨錢元(속각화전원)

 

부유한 중을 만나 꿈을 말함

 

免罪해 주십사 三佛께 빌었더니

간밤에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영혼을 구하기 참으로 어렵느니

돈이 으뜸임을 빨리 깨달을지라.

 

<時調로 改譯>

 

三佛께 免罪를 비니 간밤 現夢言하길

영혼을 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느니

금전이 으뜸이란 걸 빨리 깨달을지라.

 

*免罪: 지은 죄를  면함. 또는  면하여 줌  *三佛: 극락에 있다고 하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통틀어 이르는 말 *大勢至菩薩: 아미

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 지혜문(智慧門)을 대표해 중생을 삼악도(三惡道)

에서 지는 무상(無上)한 힘이 있다. 그 형상은 정수리에 보병(寶甁)을 이고

천관(天冠)을  썼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前宵: 전야(前夜). 어젯밤

*現夢: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러한  꿈 *救靈: 신앙

  힘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不易: 쉽지  아니함.  어려움  *貨錢: 錢貨.  돈.

 

<2017.7.9, 이우식 지음>

일, 2017/07/0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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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人君言我邦無力乃上疏

 

大韓衰弱國(대한쇠약국)

上疏我心欣(상소아심흔)

美日爲親父(미일위친부)

中俄事若君(중아사약군)

 

나라님이 우리나라는 힘이 없다고 말함을 듣고 上疏함

 

대한민국은 매우 쇠약한 나라이오니

上疏하는 저의 마음일랑 기쁘답니다

미국과 일본을 친아버지로 삼으시고

중국과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時調로 改譯>

 

우리나라 쇠약하니 제 마음 기쁘답니다

저 미국과 일본일랑 親父로 삼으시옵고

중국과 또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人君: 임금. 나라님 *我邦: 우리나라 *無力: 힘이 없음 *上疏: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 또는 그 글 *衰弱: 힘이 쇠하고 약함 *弱國: 힘 약한 나라 *親父:

친아버지 *俄: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약칭(略稱).

 

<2017.7.11, 이우식 지음>

화, 2017/07/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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