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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최초의 정치 테러인 현준혁 암살과 백의사(白衣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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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최초의 정치 테러인 현준혁 암살과 백의사(白衣社)

익명 (미확인) | 목, 2018/09/06- 17:39

박광종 선임연구원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새 국가 건설을 위해 민족주의 계열의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일제 강점기에서 사회주의운동을 벌였던 인물들이 각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인물은 함경남도의 오기섭 주영하, 함경북도의 김채룡, 평양북도의 백용구 김인직, 황해도의 김덕영 송봉욱 등이었다.
개천 출신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던 현준혁(1904~1945)은 1945년 8월 17일 평양에 도착하여 그 지역의 활동가인 김용범, 이주연과 함께 조선공산당 평안남도지구위원회 결성을 주도하고 최고 책임자인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만식이 건국준비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자와의 연합전선 조직인 인민정치위원회를 결성하자 이에 합류하여 부위원장을 맡았다.
1945년 8월 25일 소련군 선발대가 평양에 들어왔고, 이튿날 치스챠코프를 비롯한 소련군 수뇌부가 평양에 도착했다. 조만식과 현준혁은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을 대표하여 치스챠스코프 대장을 찾아가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의 성격에 대해 물었으나 의미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8월 29일 두 사람은 소련군 25군의 정치위원 레베데프 소장을 만나 각각 소련군이 온 목적과 평양 정세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고 앞으로 협력하자고 합의하였다.
이 무렵 평양 인민정치위원회 내부에서는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 분파별로 소련군과의 관계 설정과 정국 현안에 대한 시각 차이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운명의 그날인 1945년 9월 3일, 조만식과 현준혁은 일제 트럭을 타고 평양시 교외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커브길에서 17,8세로 보이는 적위대 차림을 한 청년이 트럭에 올라타 현준혁의 가슴에 권총을 발사하여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조만식의 증언)
며칠 후 조만식이 장의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을 거행하였고, <인민신보> 9월5일, <매일신보> 9월16일, <해방일보> 10월3일자등에 현준혁의 장례기사와 조사(弔詞)가 실렸다.현재 현준혁은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고, 그가 태어난 개천군 북면 용등리를 ‘준혁리’로 명명하여 기리고 있다.
해방 후 보름 만에 정치 테러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현준혁의 죽음은 이후 해방 격동기에 벌어진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 암살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벌어진 사회주의자의 암살이라는 점에서 그의 죽음은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조명받지 못했다. 다음에서 현준혁의 일제시기 활동과 그의 암살과 연관된 백의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현준혁의 생애와 활동

평안남도 개천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개천군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그후 서울로 올라와 1922년 협성학교를 거쳐 1923년 4월 중동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924년 3월 졸업했다. 4월 연희전문학교 본과에 입학했고 1925년 2월 전문학교 입학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했다. 1926년 5월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여 1929년 3월 졸업했다. 학창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신문배달, 가정교사 등으로 학비를 조달했고, 연희전문학교 때부터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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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5월, 대구사범학교(경북도립사범학교였다가 1929년 4월에 교명이 바뀜) 교사로 발령받고 영어, 한문, 교육사를 담당했다. 현준혁은 영어와 한문을 주로 가르쳤지만 한글과 민족 교육에도 열심이었다. 수업시간에 광주학생사건이나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꺼내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현준혁은 1930년 2학년에 들어가서는 우제동 학생 등 5명을 조직책으로 뽑아 ‘조선민족의 해방과 무산농민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서적 독서회인 사회과학연구회를 만들었다. 사회주의 서적은 오사카에 살고 있던 대구사범 자퇴생에게서 자비를 들여 비밀리에 입수하였다. 이를 독서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어 기숙사에서 소등 후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손전등을 켜서 읽도록 하였다.
현준혁은 1931년 11월 1기생 신현필 등 학생 몇 명과 함께 구속되었다. 수사가 확대되어 1기생 중에서만 27명이나 잡혀갔다. 현 교사와 다섯 명의 조직책은 구속 기소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풀려나왔으나 전원 퇴학당했다.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최초의 사범학교 적화사건으로 불리며 일간지에 대서특필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1932년 12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해방 직후 현준혁은 구속 당시의 심정을 친구한테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네, 평생의 원한을 풀었으니. 연전 대구사범에 있을 적에 학생들과 같이 수갑을 차고 송국되던 날, 외아들을 가진 과부 어머니가 원망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고로 나의 가슴은 터질 듯하였네. 언젠가 저 원한을 풀어주겠소! 말을 못하고 나 혼자 입술을 깨물어 맹서하였더니, 인제는 내가 일일이 변명을 안 하더라도 그 어머니들이 곧잘 이해할 터이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사회과학연구회 사건으로 교직에서 해직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1933년 개천과 영변 일대에서 적색농민조합 준비활동을 지도했다. 1934년 9월 부산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종사했고 1935년 무렵 평남 개천협동조합을 좌익소비조합으로 전환시켰다. 1935년 6월 일본경찰에 다시 검거되었다. 좌익소비조합을 만들고, 지하층 노동자들에게 적화사상을 고취하고자 개천 천동철광, 봉천탄광, 자작탄광 그리고 영변 용등탄광 등지에다 각 1명씩 동지를 두어 지하운동을 벌이는 한편, 경성에 이광진을 파견하여 적색 팸플릿을 발행하고 노동대중의 적화 교과서로 사용하려고 했다는 혐의였다. 1936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현준혁은 1945년 8월 서울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국내 사회주의자들과 회합을 갖고 조선공산당 창당에 힘썼고 모종의 사명을 띠고 8월 17일 평양으로 향했다.

극우테러의 기획자 염동진

현준혁 암살이 누구의 소행인가를 놓고 1945년 9월 사건 직후부터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그 중의 하나가 소련군의 음모설이다.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그 정적이 될 수 있는 현준혁을 미리 제거하고자 소련군 정치사령부가 현준혁 암살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한편 당시 동평양경찰서의 서장이었던 유기선은 현준혁이 우익의 백색테러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현준혁 계열과 적위대를 관할하던 장시우 계열의 갈등으로 적위대원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하지만 2002년 1월 20일 MBC에서 방영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46회 비밀결사 – 백의사〉에서의 백근옥(백관옥의 형)의 증언과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하여 2002년 1월 공개한 〈실리보고서(해방 후 한국 주둔 미군 971 CIC 파견대 소속 조지 E. 실리 소령이 김구 암살 후 보고한 ‘김구-암살 관련 배경 정보’)〉를 통해서 우익테러단체인 백의사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이뿐 아니라 백의사가 해방 공간에서 좌우를 막론한 요인 암살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1946년 9월 김일성·김책·강양욱 암살기도, 1947년 7월 몽양 여운형 암살 등을 백의사 단원들이 직접 실행했으며 송진우·장덕수 등 우익인사 암살에도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것이다.
백의사의 실체를 파악하기에 앞서 먼저 백의사의 총사령 염동진(본명 廉應澤)에 대해 알아보자. 염동진은 1909년 2월 14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염도열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중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4월 선린상업학교 본과에 입학하여 1931년 3월 졸업했다. 졸업 후 파주에 머물다 상해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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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기록에 의하면 염동진은 1934년 3월 낙양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35년 4월 졸업한 것으로 나타난다. 낙양군관학교는 1934년 2월 중국 하남성 낙양 소재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내에 설치·운영되었던 한인특별반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중국중앙육군 군관학교 낙양분교 제2총대 제4대대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였고, 1년간의 단기과정이었다. 이 한인특별반은 윤봉길의 의거 직후 중국 국민당이 김구와 김원봉을 지원하기 위한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염동진은 낙양군관학교 졸업 후, 지청천이 남경에 세운 신한독립당 외교부 부장으로 잠시 맡았다. 이후 백의사 단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요춘택이란 이름으로 변성명하고 중국군 남경 헌병사령부 우편물 검사처에서 일하다가 국민당 비밀첩보조직인 남의사(藍衣社)에 들어갔다. 1937년 중일전쟁 후 국민당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에서 일했다. 염동진은 조사통계국 소속으로 첩보공작을 위해 만주에 밀파됐다가 관동군 헌병대에 체포된 후 관동군 정보기관의 첩보원이 되었다.1


1 염동진이 관동군 밀정 노릇을 했다는 증언은 있으나 구체적인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측 자료인 <日寇關東憲兵隊在吉林省的組織槪況>(吉林省革命委員會淸査敵僞檔案辦公室編, 1965.7.10) 186쪽에 관동군 통화(通化)헌병대 본부 밀정으로 ‘廉應澤’이 나온다. 만일 이자가 염동진과 동일인이라면 염동진의 친일 전력을 확인하는 최초의 문헌이라 할 수 있다. ‘廉應澤’ 항목의 전문을 번역해 싣는다. “염응택(廉應澤) : 통화헌병대 본부 밀정. 1940년 6월부터 1944년 3월까지 일찍이 우리 동북지하당과 항일연군의 조직정황과 교통연락망, 식량과 탄약 등 정황 및 통화지구 중국인과 조선인의 시국 인식에 대해 비밀리에 정찰하였다. 또한 관할구 내 철광, 오도강과 이도강 지구에서 노동자의 사상동태를 비밀리에 조사했을 뿐 아니라 해당 지구의 우리 지구당 구성원의 활동을 추적하였다. 특무비로 34차에 걸쳐 총 2,481위안(圓)을 받았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그는 1943년경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일본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를 나온 최성률과 결혼했다.
염동진은 평양 기림리 영명사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절의 주지는 박고봉이었고 그의 주위에는 민족주의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던 중 1944년 8월 여운형이 건국동맹을 조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좌익 세력이 해방 후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놔둘 수 없다고 판단한 박고봉과 염동진은 건국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단체인 대동단(大同團)을 결성했으며 박고봉의 추천으로 백관옥, 선우봉, 박진양 등이 합류했다.
해방 후 대동단이 첫 번째 벌인 일이 바로 현준혁 암살이었다. 이들에 의하면 북한 내에 있는 공산주의자의 대표격인 현준혁을 통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을 제지하려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응징 차원에서 백관옥을 비롯해 선우봉 박진양 등 대동단원이 그를 제거한 것이다. 수사당국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박고봉을 제외한 관련자들이 1945년 9월~11월 사이에 월남했다.

백의사의 테러 활동과 쇠락

소련 당국의 추적을 피해 38선을 넘은 염동진은 1945년 10월 서울 낙원동에서 대동단을 모태로 우익테러단체를 결성하고 국민당의 남의사를 차용해 백의사라 이름 지었다. 백의사 총사령에 오른 염동진은 서울 궁정동에 있는 적산가옥을 입수하여 본부로 삼았다.
백의사의 초기 조직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총사령      염동진                               부사령 박경구(함남, 국민방위군 부사령관)
고문         유진산(신민당 총재), 백창섭
조직국장   안병석(노총 조직부장)          정보국장 김명욱         집행국장 한승규
비서실장   백관옥(평양)                      훈련국장 선우봉         총무국장 정병모

염동진은 은밀히 백의사 단원을 모집하였다. 단원들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염동진을 통해서만 점조직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백의사 단원 수는 비밀에 부쳐졌는데 전성기 때는 3만여 명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한편 백의사 단원을 한국 사회의 각계각층, 즉 경찰이나 국방경비대는 물론 노동총연맹에까지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정국을 자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나가려 하였다.
백의사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첫째 반공·반북을 기치로 한 대북테러, 암살활동이었다. 이는 1946년 3월에 집중되었으며 신익희가 조직한 정치공작대와 연계하에 이루어졌다. 신익희의 정치공작대는 주기적으로 행동대원을 북한지역에 파견하였는데 북한지역의 지도자 및 정당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임정을 지지하는 우익조직을 구성하는 것, 주요한 공공기관의 건물을 방화, 소각하고 민심을 혼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백의사 결사대는 3월 1일 평양역 앞 광장의 3·1절 기념행사에 참가한 김일성을 노리고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김일성은 재빨리 피하였고, 소련군 노비첸코 중위가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딴 곳으로 되잡아 던지려다 그의 손에서 폭발했다.
1946년 3월 3일과 5일에 최용건의 집을 습격했으나 실패했다. 3월 9일 김책의 집을 습격했으나 실패, 3월 11일에는 강양욱의 집을 습격, 그의 아들·딸과 식모·경비보초 등을 죽이고 말았다.
둘째 남한 내에서의 반공테러, 암살활동이었다. 실리 보고서에 따르면 “장덕수와 여운형의 암살범들도 이 비밀조직(백의사)의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여운형을 암살하는 데 쓰인 45구경 권총은 바로 염동진이 암살범들에게 건넨 것이고, 백의사 부사령 박경구는 염동진의 지시로 여운형을 암살했다고 하였다.
셋째 백의사가 미군 방첩대(CIC)와의 연계하에 벌인 대북 첩보·정보수집활동을 벌인 것이다. CIC 교관들이 비밀리에 파견되어 백의사 첩보대의 훈련을 도와주었다. 백의사 첩보대원들은 폭파술, 적진 침투와 탈출방법, 산악돌파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유격 훈련을 받았다. 1946년 5월 초순 첩보대가 이북으로 잠입하여 주둔 부대의 배치 상황과 병력수, 그리고 소련으로부터의 무기 반입 현황을 알아냈다. 이러한 대북 첩보·정보수집활동은 1946년에 시작해서 1948년까지 지속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정치 사회적 혼란이 가라앉자 테러집단인 백의사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대부분의 단원은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고 남아 있던 100여 명의 단원은 대한민국 육군의 첩보부대와 맥아더사령부가 만든 KLO부대에 흡수되었다.
염동진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지인들이 피난을 권유하였으나 스스로 거부하고, 서울에 남았다가 북한군에게 붙잡혀 행방불명되었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제20권에 실린 〈염동진〉이란 시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였다.

모자 벗은 머리에서 / 포마드 냄새가 진했다 / 냉혈인간 / 그의 말은 칼끝 / 그의 생각은 찰나였다 / 그의 하루하루는 / 누구를 죽이는 일 / 누구를 없애버리는 일이었다 / 단독정부가 들어선 뒤 / 홀연 사라졌다 / 그러나 그의 극우 테러는 백주에 호열자로 퍼져나갔다.(발췌)

[참고문헌]
나일부, 「해방 후 보름 만에 아깝게도 쓰러진 우리들의 지도자 현준혁의 내력」,<신천지> 1946년 10월호.
강만길·성대경,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1996,창작과비평사
정병준, 「백범 김구 암살 배경과 백의사」, <韓國史硏究>128(2005,3)
이완범, 「백의사와 KLO의 활동을 통해서 본 남한 대북 정보활동의 원류(1945~1953)」, <국가정보연구>제3권1호(2010)
카프, 「잊혀진 역사인물, 현준혁 암살사건을 다시 생각해본다」(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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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酒貪色友

 

糟糠情久久(조강정구구)

妓女愛由錢(기녀애유전)

盡信其言約(진신기언약)

嗚呼賣石田(오호매석전)

 

술 좋아하고 女色 탐내는 벗

 

조강지처 情이란 오래가는 것이나

妓女의 사랑은 돈에서 비롯되는데

그 말약속일랑 신뢰하기를 다하여

오호! 저 돌밭도 그만 팔아 버렸네.

 

<時調로 改譯>

 

조강지처와 달리 妓女 사랑 곧 돈인데

그 거짓된 언약 따위 신뢰하길 다하여

오호라! 돌밭마저도 그만 팔아 버렸네.

 

*好酒:  술을  좋아함  *貪色:  호색(好色).  女色을  몹시  좋아함  *糟糠:  지게미와

쌀겨라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이르는 말. 조강

지처(糟糠之妻) *久久: 기간이 *言約: 말로 약속함. 그런 약속 *石田: 돌밭.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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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후의 결전 1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 여운형 편

화, 2018/07/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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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憲節(제헌절)

 

孩童嘲國法(해동조국법)

守此作愚人(수차작우인)

重罪逢輕罰(중죄봉경벌)

行刑遂不均(행형수불균)

 

제헌절에

 

저 어린아이도 나라의 법을 조롱

이를 지키면 어리석은 이가 되네

무거운 죄도 가벼운 벌을 만나니

刑의 집행이 마침내 고르지 않네.

 

<時調로 改譯>

 

아이도 國法 조롱 지키면 바보 된다네

매우 무거운 죄도 가벼운 벌을 만나니

마침내 그 刑의 집행 고르지 아니하네.

 

*孩童: 어린아이 *愚人:  어리석은  사람  *重罪: 무거운  죄. ≒중벽(重辟)  *輕罰:

가벼운 *行刑: 자유형(自由刑)의 집행 방법 사형수의 수용, 노역장 유치,

미결(未決)  수용(收容)  따위의  절차를 통틀어 이르는 말 *不均:  고르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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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腐儒凌蔑訓民正音乃詰問

 

識字驕頑甚(식자교완심)

如無眼下人(여무안하인)

正音恒愛用(정음항애용)

但說漢文眞(단설한문진)

 

어떤 썩은 선비가 훈민정음을 능멸하기에 따져 묻다

 

글줄깨나 안다고 驕頑함 심하니

꼭 눈 아래 사람 없는 것 같구려

훈민정음 언제나 즐겨 쓰시면서

오직 漢文만 참되다고 말씀하네.

 

<時調로 改譯>

 

글 안다고 驕頑하니 眼下無人 같구려

우리글 훈민정음 언제나 즐겨 쓰면서

漢文만 오직 眞書라 그렇게 말씀하네.

 

*腐儒: 생각이 낡고 완고하여 쓸모없는 선비 *凌蔑: 업신여기어 깔봄. ≒능답

(陵踏). 능모(凌侮)  *詰問: 트집을  잡아서 따져  물음 *識字: 글이나 글자를 앎.

그런  지식  *驕頑: 교만하고  완고함  *愛用: 즐겨  씀 *眞書:  예전에,  우리글을

諺文이라고 낮춘 데에 상대하여 진짜  글이란 뜻으로 ‘漢文’을 높여 이르던 말.

 

<2018.7.18, 이우식 지음>

수, 2018/07/1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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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株老松(일주노송)

 

我師非孔孟(아사비공맹)

不好佛耶蘇(불호불야소)

一樹窓前立(일수창전립)

恒從免大愚(항종면대우)

 

한 그루 늙은 솔

 

내 스승은 공자도 맹자도 아니며

부처, 예수도 좋아하지 않는다오

한 그루 늙은 솔, 窓 앞에 섰는데

늘 따르니 큰 어리석음 면하겠소.

 

<時調로 改譯>

 

내 스승 孔孟 아니며 부처, 예수도 싫소

한 그루 늙은 소나무 窓 앞에 서 있는데

사계절 언제나 따르니 大愚를 면하겠소.

 

*孔孟: 孔子와 孟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 *不好: 좋아하지 아니함. 또는 미워함.
상황이나 형세 따위가 안 좋음 *耶蘇: ‘예수’의 音譯語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8, 이우식 지음>

수, 2018/07/1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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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里逢舊友

 

不變其情理(불변기정리)

離鄕四十年(이향사십년)

請君携濁酒(청군휴탁주)

同覓舊淸川(동멱구청천)

 

고향에서 옛 벗을 만나

 

그 인정과 도리 변하지 않았구려

고향을 떠난 지도 어느덧 四十年

벗님께 청하는 바 막걸리 들고서

옛적의 맑은 시내 함께 찾아가세.

 

<時調로 改譯>

 

그 情理 불변이구려 고향 떠나 四十年

벗님께 내 청하는 바 막걸리를 들고서

옛적의 맑은 시냇물 함께 찾아도 보세.

 

*鄕里: 고향(故鄕). 鄕村 *舊友: 옛 친구. 또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 구붕(舊朋)

*情理: 인정과 도리 *離鄕: 출향(出鄕). 고향을 떠남 *淸川: 맑은 물이 흐르는 강.

 

<2018.7.19, 이우식 지음>

목, 2018/07/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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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訓民正音專用論者問

 

吾邦依漢字(오방의한자)

歷史五千年(역사오천년)

不學非輕事(불학비경사)

孩童渡險川(해동도험천)

 

한글 專用論者의 물음에 답함

 

우리나라 漢字에 기댔던 바

그 역사 무려 五千年이라오

不學함 가벼운 일 아니거니

어린애가 험한 내를 건너네.

 

<時調로 改譯>

 

漢字에 기댄 그 역사 五千年이 됐다오

그걸 아니 배움은 가벼운 일 아니거니

어쩌랴! 어린아이가 험한 내를 건너네.

 

*專用: 남과 공동으로 쓰지 아니하고 혼자서만 씀.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이 씀.
특정한 목적으로 일정한 부문에만 限해 씀. 오직 한 가지만을 씀 *孩童: 어린애.

 

<2018.7.19, 이우식 지음>

목, 2018/07/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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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신고된 정관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정관을 비공개하는 단체가 있다는 말은 머리털 나고 처음입니다.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을 비공개하는 단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총회전에 연구소 소개 메뉴에 정관이 있었는데, 두 개의 정관 문제가 나오자 메류를 삭제했습니다.

정관 메뉴를 복원하고 정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목, 2018/07/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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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無職老友得多錢秘方

 

本是嫌勞動(본시혐노동)

如何作牧師(여하작목사)

多方能語戱(다방능어희)

衆庶見誣欺(중서견무기)

 

無職인 老友에게 많은 돈을 얻는 秘方을 권하다

 

본디 일하기를 싫어하니

목사님이 되면 어떻겠나

多方面에 말장난 능하니

뭇사람 속임을 당하리라.

 

<時調로 改譯>

 

본디 일을 싫어하니 목사님 어떻겠나

여러 방면에 대하여 말장난 능숙하니

마침내 많은 이들이 속임을 당하리라.

 

*秘方: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하는 방법. ≒비법(祕法).  자기만 알고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특효의  藥方文 *本是: 본디 *多方: 여러 방면. 여러 방향 *語戱:

말을 재미 삼아 하는 *衆庶: 뭇사람 *見: 여기에선 ‘당하다’의 *誣欺: 속임.

 

<2018.7.20, 이우식 지음>

금, 2018/07/2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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忘暑(망서)

 

忽開三國志(홀개삼국지)

別界固如斯(별계고여사)

到處逢英傑(도처봉영걸)

憂邦擧酒巵(우방거주치)

 

더위 잊기

 

문득 삼국지를 펼치니

별계란 진정 이러하네

 도처에서 英傑을 만나

憂國하며 술잔을 든다.

 

<時調로 改譯>

 

삼국지를 펼치니 별계 진정 이러하네

사방의 가는 곳마다 영웅호걸을 만나

나라를 걱정하면서 함께 술잔을 든다.

 

*別界:   세계란  뜻으로,  특별한 세계를 이름 *如斯: 이러함  *到處: 이르

는 곳  *英傑: 영웅호걸. 또는  영특하고  용기와 기상이 뛰어남 *酒巵: 술잔.

 

<2018.7.21, 이우식 지음>

토, 2018/07/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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炎威携酒覓詩朋

 

炎威君莫嘆(염위군막탄)

忍苦易於冬(인고이어동)

樹下淸風至(수하청풍지)

投毫覓與儂(투호멱여농)

 

무더위에 술을 지니고서 詩의 벗님을 찾다

 

그대 무척 덥다고 한숨짓지 말게

괴로움 참아 내기 겨울보다 쉽네

나무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르니

붓 내던지고 나와 함께 찾아가세.

 

<時調로 改譯>

 

한숨일랑 짓지 말게 겨울보다 참기 쉽네

푸르른 나무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르니

그대는 붓 내던지고 나와 함께 찾아가세.

 

*炎威: 복중(伏中)의 아주 심한 더위. 또는 기세(氣勢) *携酒: 술을  몸에 지니

다님 *詩朋: 함께 詩를 짓는  벗. 시반(詩伴).  시우(詩友) *忍苦: 괴로움을 참음

*樹下: 나무의  아래나  *淸風: 부드럽고 맑은 바람 *儂: 나. 자기. 我의 속어.

 

<2018.7.22, 이우식 지음>

일, 2018/07/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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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金正恩(문김정은)

 

愛民君莫道(애민군막도)

豚笑犬嚬眉(돈소견빈미)

善政連三代(선정연삼대)

何如不救飢(하여불구기)

 

김정은에게 묻는다

 

그대는 인민 사랑 말씀하지 말게

돼지 비웃고 개는 눈살 찌푸리네

잘 다스리는 정치 三代 이었건만

어찌 굶주림 구제 아직 못하는고.

 

<時調로 改譯>

 

인민 사랑 말씀 말게 개돼지도 비웃네

잘 다스리는 정치 어언 三代 이었건만

그 어찌 굶주림 구제 아직도 못하는고.

 

*愛民:  백성을  사랑함  *莫道: ‘말하지  말라’의    *豚犬: 개돼지  *嚬眉: 눈살을

찌푸림 *善政: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리는 정치. ≒양정(良政)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孫子)의    代. ≒삼세(三世)  *何如:  어떻게.  또는  어찌.

 

<2018.7.22, 이우식 지음>

일, 2018/07/2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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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溪寺前老僧斷食

 

誰言僧職好(수언승직호)

不若彼鷄冠(불약피계관)

滿寺權謀術(만사권모술)

金堂佛痛歎(금당불통탄)

 

조계사 앞의 老스님 단식

 

중 벼슬이 좋다고 누가 말하나

저 닭의 볏만도 못한 것이니라

권모와 술책 따위 가득한 절간

金堂의 佛 또한 통탄하고 있네.

 

<時調로 改譯>

 

僧官 좋다 뉘 말하나 鷄冠만도 못하니라

권모와 술책 따위가 한가득 들어찬 절간

金堂의 부처님 또한 몹시 탄식하고 있네.

 

*僧職: 승관(僧官). 법령, 수계(授戒), 관정(灌頂) 따위의 의식이나 사원(寺院)의

운영을 맡아보는 승려의 직무 *不若: 불여(不如). ‘~만 못함’. ‘~하는 편이 나음’

*鷄冠: 계두(鷄頭).  닭의 볏.  맨드라미  *權謀: 때와 형편에 따라서 꾀하는 계략

*金堂: 절의 본당. 본존상을 모신 법당이다 *痛歎: 몹시 탄식함. 또는 그런 탄식.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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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隣儒摺扇

 

道者淸溪詠(도자청계영)

雲峯一鶴飛(운봉일학비)

何人圖畵此(하인도화차)

隱密冷風威(은밀냉풍위)

 

이웃 선비의 접부채에 쓰다

 

道人은 맑은 시내에서 詩를 읊고

雲峯에서는 한 마리 두루미 나네

어떤 사람이 이 그림을 그렸는지

차가운 바람의 그 위세 은밀하오.

 

<時調로 改譯>

 

道를 닦는 사람은 淸溪에서 詩를 읊고

구름 봉우리에선 한 마리 두루미 나네

이 그림 뉘 그렸는지 冷風威 은밀하오.

 

*摺扇:  쥘부채.  접부채.  접이부채  *淸溪: 맑고  깨끗한 시내.  청간(淸澗)  *雲峯:  여름

날에 산봉우리처럼 피어오르는 구름. 구름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 *何人: 어떤

  *圖畵: 도안과  그림. 그림을 그리는 일. 또는 그려 놓은 그림 *隱密: 숨어 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陰密 *冷風: 차가운 바람 *風威: 세게 부는 바람의 위력.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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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答與國立國語院擔當先生箕帚讀音

 

古音今可變(고음금가변)

帚字亦如斯(추자역여사)

但守焉能事(단수언능사)

村儒起大疑(촌유기대의)

 

국립 국어원의 담당 선생과 ‘箕帚’의 讀音에 대해 묻고 답하며

 

옛적 漢字音 지금 변하기도 하니

저 ‘帚’란 글자가 또한 이와 같소

오직 지키는 것만이 어찌 能事랴

시골 선비는 큰 의심을 일으키오.

 

<時調로 改譯>

 

古音은 可變이니 ‘帚’ 또한 이와 같소

오로지 고수함만이 그 어찌 能事이랴

시골에 사는 선비는 大疑를 일으키오.

 

*箕帚: 쓰레받기와  빗자루.  처첩(妻妾)이  되어  남편을  섬김.  소제(掃除)  *讀音:  한자

(漢字)의 音. 또는 글을 읽는 소리 *古音: 옛날에 쓰던 한자음(漢字音) *可變: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음. 또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을 바꾸거

라지게 있음 *如斯: 이러함 *能事: 자기에게 알맞아 잘해 낼 수 있는 일.

하는 *村儒: 시골에서 사는 선비 *大疑: 크게 의심함. 또는 큰 의심이나 의혹.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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