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지역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익명 (미확인) | 화, 2018/09/04- 13:04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답사 동행기]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용산은 오랜 시간 ‘남의 땅’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전 주인’이었던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산은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과 함께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기념공원으로 만들자는 방안을 밝혔다. 지난 8월 29일에는 숙명여대를 사이에 두고 효창공원 건너편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0904-4

▲ 일제 식민통치의 흔적이 남겨진 용산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 ⓒ 김경준

지난 1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개관 후 첫 행보로 용산에 얽힌 일제 침략의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짚어보는 ‘특별답사’를 진행했다. 답사에는 3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뜻 깊은 이번 답사에 기자도 동행했다.

0904-5

▲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특별답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김경준

일제에 의해 ‘군사기지’가 된 용산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은 ‘군사기지’였다. 용산의 군사기지화는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제는 이곳을 군용철도인 경의선의 분기점으로 설정한 뒤, 각종 군용시설물을 설치했다.

용산에는 제20사단 제39여단 보병 제78연대·기병 제28연대·야포병 제26연대·제40여단 보병 제79연대 등 일본군 4개 연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1908년 10월에는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설치됐다.

▲ 용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벌이는 일본군대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후 상주군 편제로 바뀌면서 1918년 6월부터는 ‘조선군사령부’로 개칭됐다. 조선군 사령관은 한반도 전역에 배치된 일본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조선총독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조선총독에 부임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2대 조선총독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9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용산우체국 옆으로 200미터가량 곧게 뻗은 도로의 끝에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기지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레 청사가 멸실됐다고 한다. 청사는 없어졌어도 당시의 흔적을 증명하는 콘크리트 벙커 건물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상태라 단단한 출입문으로 막혀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0904-7

▲ 용산에 있던 조선군사령부 청사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0904-8

▲ 과거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던 자리엔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 평택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이곳의 출입구는 굳게 닫혀있다. ⓒ 김경준

코앞에 그 흔적이 있지만,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현장해설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실망하는 답사단원들에게 “그래도 과거에는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이 근처도 못 오게 했었다”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선군사령부 건너편에는 조선총독관저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총독 관저하면 남산 왜성대 부근에 있었던 통감 관저나 조선총독부 뒤편 경무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용산에도 또 다른 총독 관저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역대 조선총독 그 누구도 집무 혹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지관리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시내와 멀리 떨어져 업무상 불편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연회를 위한 공간 혹은 일본 황족 및 서양 귀빈을 위한 숙소로 드문드문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총독 관저는 한국전쟁 당시 반파되면서 철거됐다. 총독 관저가 있던 터 역시 미군기지 안에 있어 그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쇼핑객·여행객으로 분주한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사연

답사단이 용산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광장은 주말을 맞아 쇼핑객과 관광객 그리고 먼 길 떠나는 열차 승객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이곳 역시 알고 보면 한 많고 사연 많은 공간이다.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일본군 병력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정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 역시 이곳에서 그리운 고국 땅, 가족과 눈물의 작별을 해야만 했다.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용산역 광장에 모여 열차를 타고 군함도,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로 끌려갔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8월에는 용산역 광장 한 켠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답사단 일행이 노동자상을 둘러싸고 광장에 얽힌 구슬픈 사연을 듣는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도 관심 갖고 노동자상 옆의 안내 문구를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0904-9

▲ 2017년 8월에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역 광장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장으로 끌려가기 위해 집결했던 장소였다. ⓒ 김경준

0904-10

▲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단원들의 모습 ⓒ 김경준

철도노동 순직자들을 위한 위령제의 진실

철도 건설과 함께 용산을 철도 행정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던 일제는 용산역을 중심으로 철도관리국, 철도병원, 철도구락부, 철도원양성소 등 철도 관련 시설을 대거 조성했다.

용산역 맞은 편에 있는 낡은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용산 철도병원’이다. 철도공사 도중 다친 노동자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지어진 이 병원은 해방 후 중앙대학교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중앙대병원이 흑석동으로 이전하면서 빈 건물로 남게 됐다. 답사에 참여한 한 시민의 입에서 “만날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궁금했었는데…” 하는 읊조림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0904-11

▲ 1928년에 세워진 “용산철도병원”. 해방 후 중앙대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현재는 주인 없는 빈 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 김경준

이순우 연구원은 “이 건물은 2008년에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으니 철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계속 빈 건물로 방치할 수는 없을 테고, 옛 서울역사 건물처럼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용산역에서 이촌역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철도선형과 서빙고로 도로가 만들어낸 원뿔 모양의 지형이 나타난다. 과거 이곳엔 ‘용산철도공원’이 있었다. 일제는 1915년 철도공원 안에 철도순직자조혼비(鐵道殉職者弔魂碑)를 세우고 매년 순직한 철도노동자들을 위한 조혼제(위령제)를 지냈다.

현재 이 비석은 존재하지 않지만, 위령제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이 연구원은 “유족들 입장에서야 가족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위령제를 지내는 전통이 일제 때부터 시작돼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0904-12

▲ 과거 철도공원이 있었던 자리 ⓒ 김경준

0904-13

▲ 용산철도공원이 있던 자리에서 “철도순직자조혼비” 사진을 소개하는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김경준

개성에 있던 비석은 왜 용산으로 왔을까

용산역 뒤편에 있는 철도회관 입구에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비석이 있다.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건립된 연복사 오층불탑의 건립 내력을 담은 비석이다.

본래 이 비석의 소재지는 경기도 개성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일제에 의해 용산의 철도구락부 구역으로 옮겨졌다. 이후 이 비석은 한동안 학계에서 소재불명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2년 우연히 길을 가다 이 비석을 발견한 한 시민이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0904-14

▲ 용산역사 뒷편 철도회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연복사탑중창비” ⓒ 김경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비석이 긴 세월 동안 소재불명이었다는 사실도 우습지만,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나 엉뚱한 곳에서 방치돼야만 했던 비석의 신세도 처량하기만 했다. 일제에 의한 우리 문화재 수난사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생태공원보다는 역사공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올해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과거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이 연병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이라며 경축식을 용산에서 거행하는 까닭을 밝혔다. 그리고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같은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라고 천명했다.

미군기지 자리에 도심 속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에 이견을 제시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용산을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메시지가 없었던 점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0904-15

▲ KT 용산지사 뒷편에 위치한 서울교 원불교당. 일제강점기 당시 이 자리엔 용광서(龍光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침략전쟁을 수행하다 죽은 전몰장병의 유골을 안치했던 사찰이었다. ⓒ 김경준

0904-16

▲ 남영삼거리 앞에 위치한 구 경룡관(京龍館) 터. 1921년에 세워진 경룡관은 일본인 전용극장이었다. 일제 말기에 성남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해방 이후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2003년에 폐관했다. ⓒ 김경준

용산은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생태공원 조성에 앞서 용산에 깃든 치욕의 역사를 기념하는 역사공원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다짐하는 뜻에서 미군이 떠나간 바로 그 자리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건 어떨까. 식민통치의 본산이나 다름 없던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운 이유가 그렇듯이 말이다.

<2018-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한 입으로 두말하는 교육부,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1. 지난 7월 27일(목)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후속 조치 발표’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통해, ‘역사과 교육과정 집필기준을 개정하고 검정 역사교과서를 2020년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이번 조치가, 과거 교육부가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보도자료> 어디에도 교육부가 과거 박근혜정부에서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다는 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2. 교육부는 이번 조치가 “다양성이 보장되고 질이 높은 역사교과서를 학교에 보급하여 교육의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는 과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2015년 10월 12일, 교육부는 “검정제의 가장 큰 취지인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균형성, 전문성,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고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약칭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학계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우수한 전문가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균형 있고 질 높은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랬던 교육부가 이번에는 “학계, 현장 등 의견 수렴”운운하며, 검정교과서야말로 ‘다양성이 보장되고 질이 높은 역사교과서’라며 한 입으로 두 말하니, 교육부의 놀라운 변신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3. 우리는 교육부가 지난 2년 내내 “이념적 편향성”이라는 색깔론을 들이밀며 역사학계와 역사교사를 공격하였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교육부는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일관된 국정교과서 반대 입장을 묵살하고는 마치 군사작전을 펴듯이 비밀리에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맛에 맞는 국정교과서를 개발하는 데만 매달려 왔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 교육부가 새 정부 들어 ‘검정 역사교과서 적용시한을 2020년으로 늦추는 것’으로 과거의 잘못을 면책 받으려 하고 있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바람이다. 교육부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국정교과서 정책 입안자는 누구인지, 홍보비와 집필료 등 예비비 지출내역은 얼마인지 등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밝히고,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저지른 각종 편법과 불법에 대해 책임을 지는 등 자기성찰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4. 국정교과서는 촛불민심이 선정한 “박근혜 체제가 낳은 6대 적폐” 가운데 하나이다. 촛불 동력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사흘 만에 교육 분야 첫 번째 업무 지시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약속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정부 각 부처마다 ‘적폐청산 TF’를 꾸려 지난날의 폐단을 일소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직전까지 온갖 꼼수와 편법으로 국정역사교과서를 밀어붙이던 교육부는 아직까지 적폐청산을 위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하겠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국민주권시대에 맞도록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마피아’에 대한 인적청산부터 해야 한다.

5.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의 적폐이다. 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대선 기간 중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국정 역사교과서 완전 폐기와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 전문성 보장을 위해, 학계와 정치권이 합의한 내용은 △초등 교과서를 포함하여 국정 역사교과서 제도 완전 폐지 △현재 졸속으로 진행 중인 검정교과서 작업 전면 중단 △친일-독재-냉전의 정당화에 바탕을 둔 <2015교육과정> 전면 개정 △바람직한 미래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기구(전담 위원회 등) 신설 등이다. 이제 촛불민심을 동력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상 문재인 정부는 역사교육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약속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출발이기도 하다.


2017년 8월 1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화, 2017/08/01- 17:31
83
0

0523-2

[바로듣기]

[팟캐스트 ‘역적’ 11화 – 1부 뉴라이트 역사쿠데타 “박정희 신화의 허구 2탄”]
[팟캐스트 ‘역적’ 10화 – 2부「이게 실화냐?」”강제동원 피해보상 더 이상 시간이 없다”]
[팟캐스트 ‘역적’ 10화 – 1부 뉴라이트 역사쿠데타 “박정희 신화의 허구”]
[팟캐스트 ‘역적’ 9화 – 2부 「이게 실화냐?」”몽양 서거 70주년과 몽양기념관 운영문제”]
[팟캐스트 ‘역적’ 9화 – 1부 뉴라이트 역사쿠데타 “건국절의 숨은 음모”]
[팟캐스트 ‘역적’ 8화 – 2부 「이게 실화냐?」 “연구소 단독-이준열사 집터 발굴”]
[팟캐스트 ‘역적’ 8화 – 1부 뉴라이트 역사쿠데타 “이승만 국부론”]
[팟캐스트 ‘역적’ 7화 – 2부「이게 실화냐?」 “군함도의 진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팟캐스트 ‘역적’ 7화 – 1부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식민지 근대화론”]
[팟캐스트 ‘역적’ 6화 – 2부 「이게 실화냐?」”박정희 기념우표 논란”]
[팟캐스트 ‘역적’ 6화 – 1부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1편 “뉴라이트의 등장”]
[팟캐스트 ‘역적’ 5화 – 2부 「이게 실화냐?」 대전현충원 적폐청산리그”
[팟캐스트 ‘역적’ 5화 – 1부 “수구의 위기 3편 – 친일인명사전과 과거사 청산”
[팟캐스트 ‘역적’ 4화 – 2부 「이게 실화냐?」 “고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 고법 판결_일제 침략전쟁 동조 글 게재만 친일행위 인정”]
[팟캐스트 ‘역적’ 4화 – 1부 “수구의 위기 2편”]
[팟캐스트 ‘역적’ 3화 – 2부 「이게 실화냐?」 “6월항쟁 30주년 특집, 함세웅 신부에게 듣는다”]
[팟캐스트 ‘역적’ 3화 – 1부 “수구의 위기 1편”]
[팟캐스트 ‘역적’ 2화 – 2부 「이게 실화냐?」 “동아일보 설립 김성수 친일 맞다. 대법원 인정 판결!”]
[팟캐스트 ‘역적’ 2화 – 1부 “대한민국 수구의 장수비결은?”]

[팟캐스트 ‘역적’ 1화 – 2부. 이게 실화냐? “적폐청산 1호 국정교과서 폐지 선언”]
[팟캐스트 ‘역적’ 1화 – 1부. “우리시대 진보, 보수, 수구는 누구인가?”]


0523-1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팟캐스트 ‘역적’ 11화 – 1부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박정희 신화의 허구 2탄”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은희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됩니다!

화, 2017/08/01- 20:06
219
0

wp-content/uploads/2017/08/201707.pdf

수, 2017/08/02- 16:13
88
0

[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706-1

수, 2017/08/02- 16:02
78
0

미국한테만 가면 전부다 맛탱이가 가버리네

다 팔아묵고 왔네

참나…

목, 2017/08/03- 21:03
209
0

군함도, 일제강제노역 내용에 관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증폭되니, 민문연 홈페이지 해킹당했네요.

내가 가입,참여하면 무슨 사이트이든 해킹피해, 회원정보유출되길래 민문연 홈피 가입안했는데,

가입안해도 해킹피해 보는구만.

 

아무튼, 시민역사관( 식민지역사관 ) 후원하였고,  발기인 신청했습니다.

 

– 음악, 영화, 사랑, 책, 예술, 문화, 역사 를 좋아하는 단순한 한민족인 –   Mrrkgpy 7 

 

그 이석훈 맞음.  사실 돈도 없고, 여자 못사귄지 16년이 다 되어가면서도

아무튼, 나중에 내 손자 보여줄려고 발기인 신청했습니다.

 

PS – 자유게시판이라서 그런지 글 적는 뉴라이트부류 쓰레기들도 정말 많네요.

 

목, 2017/08/03- 22:14
184
0


[성명] [다운로드]


한국 외교부의 어깃장에 강력 항의한다.


중앙일보 2017년 8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11월 외교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부정적 견해들을 인용한 의견서(이하 외교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과 상관없이 일본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외교부 의견서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어 피해자들과 피해 회복을 위해 싸워온 시민단체로서는 분노와 함께 절망감을 떨칠 수 없다. 지난 5년간 피해자들은 대법원이 최종 확정판결을 내리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 사이 피해 당사자 원고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확정판결이 이렇게까지 늘어진 데는 일본기업의 지연 전술이 있었다. 그러나 항간에는 한국정부가 방해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다는 강한 의혹도 돌았다. 그런데 이번 보도로 그것이 의혹이 아니라 사실임이 확인됐다. 그동안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나 이제 그걸 수정해야겠다.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일을 방해했다고.

외교부 의견서를 보면서 지난 2002년 외교부가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거부하면서 내세운 ‘악명 높은’ 답변이 떠오른다. 문서를 공개했을 때 한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답변을 받아보고서 우리는 한국 외교부가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본 외무성 한국지부가 아닌가 착각했다. 외교부 의견서 역시 같은 기조에 서있다. 불리하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서라도 자국 피해자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자 국가의 의무 아닌가.

국제관계라는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문제는 형세가 불리하거나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피해자를 위해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느냐이다. 피해자들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정 안되면 하는 척이라도 해라. 그게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외교부는 무엇을 했나.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유골 조사와 봉환 문제를 비롯해서 노동자의 통장 반환 문제, 야스쿠니문제 등을 두고 일본정부와 씨름을 할 때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배상 판결까지 부정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인가. “이게 나라냐”라는 비난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놓고 외교부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국가에 의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이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모든 국가가 지켜야할 국제법의 한 원칙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위안부 피해자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피해자들에게 적용되며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자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외교적으로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이번 외교부 의견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책임회피에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교부가 지고의 가치라고 여기고 있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 역시 인권과 정의에 기초하여 재검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음하며 절규하는 피해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하에서 이들이 어떠한 경위로 동원되어 비인간적인 조건하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이 끝난 다음 어떤 과정을 거쳐 귀국했으며, 돌아가신 경우 사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유골이라도 수습해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모두 일본 정부에게 있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이러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진지하게 과거를 성찰하고 성실하게 진실을 규명해 이들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데 있다. 형식적인 법 논리를 들이대며 궁색하게 잘못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을 변명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법을 말하곤 있지만 힘의 논리만이 정의라는 법과 인권을 부정하는 인식과 다를 바 없다. 잘못된 시대, 잘못된 정부에 의해 잘못된 합의가 피해자들의 삶을 또다시 유린한다고 한다면 이를 바로 잡는 일은 이 시대에 바로 오늘 제대로 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비판의 화살이 국정을 농단한 주범들에게만 겨냥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아이히만’들에게도 그 화살이 겨눠져 있다. 외교부라고 여기서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외교부의 아이히만들이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이 없는 한, 한국 외교의 미래는 없다. 변화는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묻는다. 한국 외교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며, 관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이제 당신들이 답변할 차례다.


2017년 8월 4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금, 2017/08/04- 13:41
239
0








금, 2017/08/04- 18:28
92
0





금, 2017/08/04- 19:43
116
0






금, 2017/08/04- 19:18
130
0

지난 7월 4일 도쿄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주최로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의 의의를 다시금 확인하고 향후 지속적인 활동을 다짐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번 집회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지가 용산으로 확정된 후 처음으로 갖는 집회로 연구소에서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김영환 대외협력팀장, 강동민 자료팀장, 노기카오리 선임연구원 그리고 교육홍보실 오경아 영상팀원이 참여했다.

16

이날 집회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행사로 준비되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해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희자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의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강동민 자료팀장이 그동안의 활동 경과와 건립지 개요, 향후 계획을 보고하자 참가자들은 감동과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이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와 과거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일 시민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매개로 더욱 깊은 교류를 추진해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이 집회를 개최할 때마다 사회를 보는 이가 있다. 대학생 시절부터 이 활동에 참여해온 다나카 유키 씨다. 이날도 사회를 맡은 그는 “오늘 집회는 앞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일본에서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개관 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소감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미 모금 목표액 500만 엔(약 5,080만 원)을 달성했지만 이날을 계기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자는 것이 이 집회의 취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집회에 처음 참가한 와카타니 마사키 씨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또 열정적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려는 우리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거액의 건립기금을 쾌척하고 귀중한 자료도 기증했다. 이렇게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 이 모임은 앞으로도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활동을 추진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 노기 카오리 선임연구원

월, 2017/08/07- 11:53
41
0

[앵커]

광복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요.

광복 80주년까지 4년 남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생존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철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영관 애국지사.

어느덧 올해 98살이지만 또렷한 말투에선 자긍심이 넘칩니다.

1944년, 만 20살에 경성사범대를 다니다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부대를 탈출해 가까스로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를 마중을 왔더라고요. 저는 그 태극기를 보고 하염없이 그냥 눈물 흘리고 감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구나.’]

그로부터 2년 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여생은 후대에 올곧은 저항 정신을 남기는 데 쏟자고 다짐하고 기념사업회를 세워 일하고 있지만, 갈수록 독립의 정신이 흐려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지사로서의 삶 역시 쓸쓸히 잊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역사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또 역사적 사실, 역사적 팩트를 잊어버리면, 외면하면 똑같은 일이 또 되풀이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잊지 말고….]

김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생존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애국지사의 두상과 손발의 형상을 남기는 겁니다.

[김서경 / 작가 : 기록물을 모은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언제 어떻게 발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계신 분들을, 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가 기록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것 같아서….]

첫 번째 주인공은 김영관 지사.

단순히 외관뿐 아니라 일생의 이야기와 품고 있는 생각들까지 모두 사료에 담을 계획입니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운성 / 작가 : 모든 애환과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 고통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을 같이 한번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광복 80주년까지 4년도 남지 않은 지금.

작가들은 그사이 지사 한 분이라도 더 만나 한 마디라도 더 생생하게 남기겠다는 목표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YTN 김철희입니다.

YTN 김철희 ([email protected])

<2021-09-22> YTN

☞기사원문: “더 늦기 전에”…생존 독립운동가 손발까지 영원히 남긴다

수, 2021/09/22- 22:43
3
0

연구소가 강북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근현대사기념관이 여름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사 강좌를 열었다.
최근 ‘암살’, ‘밀정’ 그리고 ‘군함도’와 같이 우리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
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한 장면들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을 가질 법하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청소년이 영화를 통해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질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영화로 배우는 일제강점기’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개설하였다.
이번 강좌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연구소 상근자들이 직접 강사로 나섰다. 조한성 선임연구원,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 김승은 자료실장, 노기 카오리 선임연구원이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강좌를 진행되었으며, ‘밀정’, ‘암살’, ‘안녕, 사요나라’, ‘군함도’를 차례로 다루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사요나라’를 다루는 강좌에서는 강제동원 피해 유족인 이희자 여사(태평앙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와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를 직접 느끼고, 역사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수강신청은 7월 10일부터 24일까지 기념관 홈페이지에서 강좌 별로 20명을 선착순 접수하였다. 무료로 진행되는 강좌이며 출석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과 여름휴가가 변수로 떠올랐으나, 기념관 인근에 위치한 신일중학교 교사의 권유로 평소 역사에 흥미를 가진 3학년 학생 6명이 전 강좌를 참여하였고, 1강 20명, 2강 24명, 3강 25명, 마지막 강좌는 수강생의 학부형까지동석한 까닭에 29명으로 수강 정원을 훌쩍 넘겼다.

12
마지막 강좌를 마친 청소년들은 ‘전체 역사를 기억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강사의 질문에 각자의 다짐과 응원을 담은 메시지를 작성해 희망나무를 꾸몄다. 제일 인상 깊은 강좌로 제3강 ‘안녕, 사요나라’를 꼽으며 일본의 강제 징용 피해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모든 강좌를 빠짐없이 들은 청소년 17명에게는 수료증을 발급했다.
현재 근현대사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저항과 협력의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주제로 개관1주년 기념 기획전 ‘한 시대 다른 삶’을 준비 중이다. 또한 기념관 인근 묘역에 잠든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한 시민강좌와 독립민주시민학교 강좌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 최인담 학예사

월, 2017/08/07- 11:44
98
0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의거’ 72주년을 맞아 연구소는 광복회 화성시지회(지회장 안소헌)와 서울특별시의회(의장 양준욱)의 후원으로 7월 2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다.

11

기념식에 앞서 이준 열사 집터 등 북촌 일대에서 ‘친일의 길, 항일의 길’이라는 주제로 회원, 시민 등 약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답사를 진행했다. 이번 답사는 권시용 연구원이 안내를 맡아 이상재 집터, 여운형 집터, 김성수 옛집, 한용운 옛집, 진단학회 사무소 터, 손병희 집터, 이병도 집터, 한상룡 옛집, 윤보선 가옥, 정독도서관, 윤덕영, 윤택영 집터 등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의거 7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함세웅 이사장과 안소헌 지회장, 임헌영 소장 등이 부민관 폭파의거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의거 70주년을 맞아 재현한 연극 ‘정의의 폭탄’을 녹화한 16분 분량의 요약 영상을 상영하여 참가자들은 부민관 폭파 의거와 의거의 주역인 유만수, 강윤국, 조문기 세 분 독립투사의 삶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역사의 현장인 경성 부민관은 1935년 건립되어 여러 차례 명칭과 용도가 바뀌었으며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현재까지 서울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서울시의회 양준욱 의장과 사무처의 지원으로 본 회의장을 기념식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기념식 마지막 순서에서 영화 〈군함도〉 개봉을 맞아 배우 송중기 팬연합이 모금한 식민지역사박물관 기금(500만원) 전달식이 진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 편집부

월, 2017/08/07- 11:41
14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