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지역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익명 (미확인) | 화, 2018/09/04- 13:04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답사 동행기]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용산은 오랜 시간 ‘남의 땅’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전 주인’이었던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산은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과 함께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기념공원으로 만들자는 방안을 밝혔다. 지난 8월 29일에는 숙명여대를 사이에 두고 효창공원 건너편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0904-4

▲ 일제 식민통치의 흔적이 남겨진 용산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 ⓒ 김경준

지난 1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개관 후 첫 행보로 용산에 얽힌 일제 침략의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짚어보는 ‘특별답사’를 진행했다. 답사에는 3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뜻 깊은 이번 답사에 기자도 동행했다.

0904-5

▲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특별답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김경준

일제에 의해 ‘군사기지’가 된 용산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은 ‘군사기지’였다. 용산의 군사기지화는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제는 이곳을 군용철도인 경의선의 분기점으로 설정한 뒤, 각종 군용시설물을 설치했다.

용산에는 제20사단 제39여단 보병 제78연대·기병 제28연대·야포병 제26연대·제40여단 보병 제79연대 등 일본군 4개 연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1908년 10월에는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설치됐다.

▲ 용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벌이는 일본군대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후 상주군 편제로 바뀌면서 1918년 6월부터는 ‘조선군사령부’로 개칭됐다. 조선군 사령관은 한반도 전역에 배치된 일본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조선총독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조선총독에 부임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2대 조선총독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9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용산우체국 옆으로 200미터가량 곧게 뻗은 도로의 끝에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기지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레 청사가 멸실됐다고 한다. 청사는 없어졌어도 당시의 흔적을 증명하는 콘크리트 벙커 건물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상태라 단단한 출입문으로 막혀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0904-7

▲ 용산에 있던 조선군사령부 청사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0904-8

▲ 과거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던 자리엔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 평택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이곳의 출입구는 굳게 닫혀있다. ⓒ 김경준

코앞에 그 흔적이 있지만,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현장해설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실망하는 답사단원들에게 “그래도 과거에는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이 근처도 못 오게 했었다”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선군사령부 건너편에는 조선총독관저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총독 관저하면 남산 왜성대 부근에 있었던 통감 관저나 조선총독부 뒤편 경무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용산에도 또 다른 총독 관저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역대 조선총독 그 누구도 집무 혹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지관리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시내와 멀리 떨어져 업무상 불편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연회를 위한 공간 혹은 일본 황족 및 서양 귀빈을 위한 숙소로 드문드문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총독 관저는 한국전쟁 당시 반파되면서 철거됐다. 총독 관저가 있던 터 역시 미군기지 안에 있어 그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쇼핑객·여행객으로 분주한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사연

답사단이 용산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광장은 주말을 맞아 쇼핑객과 관광객 그리고 먼 길 떠나는 열차 승객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이곳 역시 알고 보면 한 많고 사연 많은 공간이다.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일본군 병력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정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 역시 이곳에서 그리운 고국 땅, 가족과 눈물의 작별을 해야만 했다.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용산역 광장에 모여 열차를 타고 군함도,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로 끌려갔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8월에는 용산역 광장 한 켠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답사단 일행이 노동자상을 둘러싸고 광장에 얽힌 구슬픈 사연을 듣는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도 관심 갖고 노동자상 옆의 안내 문구를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0904-9

▲ 2017년 8월에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역 광장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장으로 끌려가기 위해 집결했던 장소였다. ⓒ 김경준

0904-10

▲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단원들의 모습 ⓒ 김경준

철도노동 순직자들을 위한 위령제의 진실

철도 건설과 함께 용산을 철도 행정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던 일제는 용산역을 중심으로 철도관리국, 철도병원, 철도구락부, 철도원양성소 등 철도 관련 시설을 대거 조성했다.

용산역 맞은 편에 있는 낡은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용산 철도병원’이다. 철도공사 도중 다친 노동자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지어진 이 병원은 해방 후 중앙대학교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중앙대병원이 흑석동으로 이전하면서 빈 건물로 남게 됐다. 답사에 참여한 한 시민의 입에서 “만날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궁금했었는데…” 하는 읊조림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0904-11

▲ 1928년에 세워진 “용산철도병원”. 해방 후 중앙대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현재는 주인 없는 빈 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 김경준

이순우 연구원은 “이 건물은 2008년에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으니 철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계속 빈 건물로 방치할 수는 없을 테고, 옛 서울역사 건물처럼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용산역에서 이촌역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철도선형과 서빙고로 도로가 만들어낸 원뿔 모양의 지형이 나타난다. 과거 이곳엔 ‘용산철도공원’이 있었다. 일제는 1915년 철도공원 안에 철도순직자조혼비(鐵道殉職者弔魂碑)를 세우고 매년 순직한 철도노동자들을 위한 조혼제(위령제)를 지냈다.

현재 이 비석은 존재하지 않지만, 위령제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이 연구원은 “유족들 입장에서야 가족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위령제를 지내는 전통이 일제 때부터 시작돼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0904-12

▲ 과거 철도공원이 있었던 자리 ⓒ 김경준

0904-13

▲ 용산철도공원이 있던 자리에서 “철도순직자조혼비” 사진을 소개하는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김경준

개성에 있던 비석은 왜 용산으로 왔을까

용산역 뒤편에 있는 철도회관 입구에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비석이 있다.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건립된 연복사 오층불탑의 건립 내력을 담은 비석이다.

본래 이 비석의 소재지는 경기도 개성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일제에 의해 용산의 철도구락부 구역으로 옮겨졌다. 이후 이 비석은 한동안 학계에서 소재불명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2년 우연히 길을 가다 이 비석을 발견한 한 시민이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0904-14

▲ 용산역사 뒷편 철도회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연복사탑중창비” ⓒ 김경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비석이 긴 세월 동안 소재불명이었다는 사실도 우습지만,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나 엉뚱한 곳에서 방치돼야만 했던 비석의 신세도 처량하기만 했다. 일제에 의한 우리 문화재 수난사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생태공원보다는 역사공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올해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과거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이 연병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이라며 경축식을 용산에서 거행하는 까닭을 밝혔다. 그리고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같은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라고 천명했다.

미군기지 자리에 도심 속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에 이견을 제시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용산을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메시지가 없었던 점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0904-15

▲ KT 용산지사 뒷편에 위치한 서울교 원불교당. 일제강점기 당시 이 자리엔 용광서(龍光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침략전쟁을 수행하다 죽은 전몰장병의 유골을 안치했던 사찰이었다. ⓒ 김경준

0904-16

▲ 남영삼거리 앞에 위치한 구 경룡관(京龍館) 터. 1921년에 세워진 경룡관은 일본인 전용극장이었다. 일제 말기에 성남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해방 이후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2003년에 폐관했다. ⓒ 김경준

용산은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생태공원 조성에 앞서 용산에 깃든 치욕의 역사를 기념하는 역사공원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다짐하는 뜻에서 미군이 떠나간 바로 그 자리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건 어떨까. 식민통치의 본산이나 다름 없던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운 이유가 그렇듯이 말이다.

<2018-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누구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목, 2018/03/15- 20:47
135
0

북의 핵이 없었다면 과연 평창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민족의 핵이다

남과 북의 함께하는 핵의 위력이 바로 평화의 평창이었던 것이다

 

 

목, 2018/03/15- 19:59
121
0

게임인재단x민족문제연구소x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0316-2

▲ 게임인재단, 민족문제연구소,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이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를 위한 협약식을 했다.

게임인재단이 역사 연구 기관과 손잡고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에 나선다.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각 기관은 이번 협약으로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게임을 활용해 역사 인식을 높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역사를 친숙한 형태로 알려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교육에만 초점을 맞춘 게임에서 벗어나 재미와 몰입도를 갖춘 형태로 역사를 쉽게 알리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각 기관은 게임과 역사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각종 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게임인재단은 2013년 게임 업계 종사자를 주축으로 문화 산업으로서 게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주도하는 등 한일 과거사 청산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온 역사 연구 단체다. 두 단체의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끌어낼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게임인재단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게임이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보다 크고 넓은 그릇이 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게임이 양적인 성장을 넘어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그동안 영화 <암살>, 드라마 <각시탈>,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등 주로 영상 영역이 역사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라며 “이번 협약은 게임과 역사가 만나 역사 대중화의 지평을 넓히는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03-16> 블로터닷넷

뉴스1: 민문연 “게임으로 우리 역사 대중화 나선다”

☞기사원문: 게임인재단-민족문제연구소, 게임 통한 역사 대중화 나선다

※관련기사

☞아이뉴스24뉴스: 게임 활용해 우리 역사 알린다

연합뉴스: “게임으로 역사 알리자”…게임인재단, 민족문제硏 등과 협약

일간스포츠: 게임으로 우리 역사 알린다…게임인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등과 공동 사업

NSP통신: 게임, 대중 문화 넘어 시대적 역할과 메시지 담는다

금, 2018/03/16- 18:42
67
0

목탁들과지팡이

그리고나

그리고 군산복합체와

임마뉴앨 일러스틴의 종속

주변국의중심국의

상호적쌍방성과 주변국의 일부유명인사와 일부유명여성들속의  원룸남성원룸여성

그들의 다수

그들의소수

미투들을 위한………………실업

변명……………………오보

변론………………비보

반론………………달요일의

 

월, 2018/03/19- 07:15
72
0

0319-17

▲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0319-15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좌측부터), 정석원 게임인재단 사무국장, 신용옥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상임이사

0319-16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좌측부터), 정석원 게임인재단 사무국장, 신용옥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상임이사

0319-14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좌측부터), 정석원 게임인재단 사무국장, 신용옥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상임이사

0319-12

▲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0319-13

▲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0319-11

▲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월, 2018/03/19- 14:57
15
0

오경환 서울시의원, 청원서 의회 안건으로 올려

▲ 지난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에서 친박단체 회원과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충돌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기념도서관 내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서울시의회 오경환 의원(더불어민주당, 마포4)은 19일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기념도서관 내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에 대한 청원서를 받아 서울시의회 안건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역사화해’ 차원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행정안전부가 200여억원을 지원했고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시유지 무상지원을 밝혔다. 여기에 기념재단이 모금한 500억원이 더해져 박정희기념도서관은 2010년 첫 삽을 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시유지인 이 땅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고, 부지 내 동상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어 왔다.

박정희 동상설립 신고는 지난 1월31일 서울시에 접수됐다. 공공미술위원회는 2개월 이내인 오는 31일 이 전에 심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헌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명시하고 있는 한 박정희는 청산의 대상이 될지언정 기념의 대상을 될 수 없다”며 “박정희 동상을 서울시민의 땅에 세우겠다는 준동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0320-2

▲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오경환 의원(마포4) © News1

민족문제연구소가 청원서를 직접 서울시로 제출하면 단순민원 처리 된다. 하지만 시의회에 제출함에 따라 오경환 의원이 소개 의원으로 대표 발의에 나섰다. 본회의 의결 후 서울시 집행부로 보내면 이와 관련한 답변을 제출해야 한다.

오 의원은 “박정희 동상 건립문제는 법적·행정적 문제와 정서적으로 찬반여론이 얽혀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박정희 동상은 상암동과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동상건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2018-03-20> 뉴스1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제출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제출

☞오마이뉴스: 서울시, 박정희 동상 건립 ‘적절성’ 따진다

경향신문: 오경환 서울시의원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접수”

 

화, 2018/03/20- 13:39
77
0

새봄을 맞아 광주시 퇴촌면에 자리 잡고 있는

푸른숲 발도로프 학교의 방문의 날 행사를 (3월 30일 오후 4시 ~ 5시 30분) 합니다.

푸른숲 학교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장소는 학교 (경기도 광주시 산수로 870-87)(퇴촌면 원당리 348-19) 푸른자리 1학년 교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학교 게시판 http://www.gforest.or.kr/xe/board_noti/305965 을 참고해 주세요.

오시는길 :

대중교통이용시
광주
판교, 이매역에서 경강선 이용 경기광주역 하차 후 38-42, 38-43 버스 이용 원당리 하차(소요시간 25분)
(6:30, 7:20, 9:20, 11:05, 11:30, 13:05, 13:30, 14:00, 15:35, 16:10, 18:00, 19:00, 21:15)

서울/하남
1) 2호선 강변역에서 13-2번 버스를 타고 “퇴촌사거리” 하차 후(약 80분), 미래마트 앞에서 “원당리”행 버스를 타고 원당리에서 하차(소요시간 10분)
2) 2호선 강변역에서 1113번 또는 1113-1 좌석버스를 타고(약 40분), 광주경안 IC나 파라다이스 아파트(구시청) 앞에서 하차 택시를 이용하시면 약 15분 소요

화, 2018/03/20- 14:10
22
0

[보도자료] [다운로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유골, 한일 정부가 책임져야”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131구, 창고로 보낼 수 없습니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문제에 대한 일본시민사회의 노력에
한일 정부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근본적으로 양국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0321-1

1.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유족들이 제사도 올리지 못하며 유골을 찾아다니고 있고, 일본과 한국 양국정부가 이를 2005년부터 조사한다고 하였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2. 이런 가운데 일본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곤죠인 사찰’의 유골131구가, 유족을 찾지 못한 채 임의로 처리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해방 이후 배를 마련해 귀향길에 나섰던 조선인들이 태풍 등으로 인해 조난을 당했고, 이 유해가 이키 섬과 스시마 섬의 해안으로 떠밀려와 매장되었습니다. 1976년 이키 섬과 1983년 스시마 섬에서 유해가 발굴되었고, 이 유골 131구가 현재 ‘곤죠인 사찰’에 모셔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곤죠인 측에서 더 이상 희생자들의 유해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고 이 유해들을 옮길 마땅한 곳을 3월 30일까지 찾지 못할 경우에는 후생노동성 창고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유골은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더욱 어려워질 뿐더러, 유족을 찾게 되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곤죠인 사찰에 더 이상 유골을 모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키섬의 ‘텐토쿠지’에 유골을 다시 모시겠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4. 이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이 유골에 대해 일본정부가 임의로 처리하지 말고 일본 시민사회의 요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정부도 일본정부에 이런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교섭해야 합니다.

5. 근본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양국정부가 유골봉환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DNA조사, 봉환사업 등에 대해 양국정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6.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유골봉환문제가 강제동원 문제 진상규명에 관련된 역사문제이며, 또한 한일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 그리고 희생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위한 인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이후에도 한국 시민사회는 물론 일본시민사회와 연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곤죠인 사찰유골) 대응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

○ 주최 :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 민족문제연구소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 평화디딤돌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일시 : 2018. 03. 22.(목) 오전 11:00

장소 : 일본대사관 앞 (트윈트리 타워)

○ 담당 :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김영환 / 010-8402-1718 / [email protected] 
이하나 (겨레하나 정책국장) / 010-6584-2121 / [email protected]

○ 세부내용

▲곤죠인 사찰 유골문제에 대한 상황 공유와 경과 보고
곤죠인 사찰 131구 유골에 대한 상황, 일본 시민사회의 요구 등에 대한 상황 공유

▲유족, 대학생, 노동, 종교계 등 시민사회 각계 발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에 대해 일본대사관, 외교부에 요구사항 전달
일본대사관에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외교부 면담을 추진합니다
 


< 별첨 >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사항

○ 일본정부에 대한 요구사항
1. 당면 현안으로서 곤죠인(金乗院)에 안치되었던 한국인 유골을 3월 말에 임의로 처리하지 말고, 일본 종교단체와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이키 섬(壱岐島)의 텐토쿠지(天徳時)에 모시고자 하는 뜻을 존중하여 처리하라.

2. 일본정부는 1938년 이후 군인.군속 등으로 끌려가 사망한 한국인 유골 조사와 봉환사업을 하루 빨리 실시하고,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들의 DNA 정보를 수집하라.
 
3. 일본정부는 일제시기 강제동원 되어 사망한 한국인 노동자 유골에 대해서도, 봉환 책임을 강제동원 관련 기업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직접 조사와 봉환사업에 나서라.

○ 한국정부에 대한 요구사항

1. 당면 현안인 곤죠인 한국인 유골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임의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외교적 교섭을 즉각 실행하라.
 
2. 한국정부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조사와 봉환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하루빨리 일본정부와 교섭에 나서라.

3. 유골문제에 관해 한국정부가 교섭한다면 일본정부가 응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2년간 교섭하지 않은 무책임에 대해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죄하라.

4. 강제노동 피해 배상 관련한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를 후속조치 마련과 유죠은행에 보관 중인 한국인 강제노동 피해자 저금통장 반환, 유네스코 산업유산과 강제노동 문제, 유골 조사와 봉환 문제 등 강제동원 문제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룰 정부 내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라.
 

2018년 3월 22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 평화디딤돌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수, 2018/03/21- 18:50
26
0

 

2018년2분학기

 

다중지성의 정원 강좌

 

[페미니즘] 남성들의 국가에서 살아남기 : 미투의 정치학
https://goo.gl/EmaHe6
강의> 최형미> 2018. 4. 4일부터 매주 수 저녁 7:30 (7강, 122,500원)

미투운동은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는 반성폭력운동일 뿐 아니라 여성들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성적 시민권’ 회복운동이다. 여성운동 안에서 성해방운동,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과 그것의 이론적 배경을 살펴본다.

[정치학] 개념의 재사유를 통한 페미니즘 이론의 확장
https://goo.gl/SZrSwm
강의> 김미덕> 2018. 4. 5일부터 매주 목 저녁 7:30 (6강, 105,000원)

페미니즘이 사회정의·인권 논의와 호환되는 것을 전제로, 흔히 사용하고 짐작되지만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회자되는 몇 개념 즉 가부장제, 피억압과 특권, 무지와 앎, 지식과 지혜, 지식과 글쓰기, 정체성 정치를 살피고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 이론을 재사유하고 확장하고자 한다.

[인문교양] 페미니즘의 다양한 목소리 : 시몬 드 보부아르에서 버틀러, 벨 훅스까지
https://goo.gl/YWtLzS
강의> 이인> 2018. 4. 2일부터 매주 월 저녁 7:30 (8강, 140,000원)

여성 안에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듯 페미니즘 안에서도 수많은 논쟁과 대립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수많은 사상가들 가운데 같이 생각해 볼 만한 여덟 사람을 꼽았습니다. 강의 가운데 다른 사상가들도 소환되어 생각들이 부딪히며 불꽃이 튈 것입니다.

[문화비평] ‘세계의 끝’과 문화비평의 (불)가능성 ― ‘혐오의 시대’의 정치적·미학적 상상과 그 임계들
https://goo.gl/ceUjba
강의> 오혜진> 2018. 4. 6일부터 매주 금 저녁 7:30 (5강, 87,500원)

이 시대 문화비평은 ‘혐오의 상식화’ 혹은 ‘상식에 대한 혐오’에 끊임없이 도전함으로써만 겨우 가능하다. 이 강좌에서는 최근 제출된 문화재현물들과 관련 비평을 통해 그간 한국사회에서 시도돼온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의 성격을 점검할 것이다.

[철학] 20세기 유럽대륙철학의 흐름: 현상학, 실존주의, 구조주의를 중심으로
https://goo.gl/zs7FXB
강의> 김동규> 2018. 4. 2일부터 매주 월 저녁 7:30 (8강, 140,000원)

20세기 유럽대륙의 철학이 체계에 현실을 짜 맞추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다차원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호흡하는 가운데 다양한 사유의 향연을 보여 주었다는 맥락에서, 현상학, 실존주의, 구조주의라는 흐름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철학] 저자와 나, 그리고 텍스트 사이에서 : 해석학 입문
https://goo.gl/zTUPYG
강의> 윤동민> 2018. 4. 18일부터 매주 수 저녁 7:30 (6강, 105,000원)

오늘날 소통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것은 그 대상이 타자든 텍스트이든 나 자신이든, 사실상 ‘이해’가 오늘날 가장 만연한 문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하이데거, 가다머 등의 글을 통해 타인과의 의사소통, 텍스트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의 문제를 풀어본다.

[철학] 단테의 『신곡』 읽기
https://goo.gl/8ac8iS
강의> 장민성> 2018. 4. 19일부터 매주 목 저녁 7:30 (8강, 140,000원)

『신곡』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도, 오늘의 현실에서도, 살아 숨쉬는 현재성을 가지고 있는 고전이다. 『신곡』의 지옥편을 8회에 걸쳐서, 세밀하게 읽고 분석하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철학]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강독 세미나 (화 2:30, 강사 이석규)
https://goo.gl/w1d6jx
강의> 이석규> 2018. 4. 3일부터 매주 화 오후 2:30 (8강, 140,000원)

“전체성과 무한”은 무엇인가. 이는 나치 제국의 광기와 아우슈비츠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며 메타포이며 현실의 관념인 동시에 관념의 현실이다. 타자는 아우슈비츠의 희생자인 동시에 신의 얼굴이며 형이상학이다. 이는 무한이며 우리는 이것을 인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예술사회학] 현대미술과 사회이론
https://goo.gl/dK322r
강의> 신현진 > 2018. 4. 7일부터 매주 토 오후 4:00 (4강, 70,000원)

자본이 심미화하고 예술이 자본화하는 시대, 예술은 종말을 고하는 것인가? 기업가적인 예술인의 마음, (시장)민주주의로 예술이 운용되는 것이 가능한가? 공동사회의 구축을 위해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미술을 사회이론과 연결해 설명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 에세이영화 : 영화의 경계를 가로지르기
https://goo.gl/CSJcuA
강의> 이도훈 > 2018. 4. 10일부터 매주 화 저녁 7:30 (7강, 122,500원)

기원을 문학적 에세이에 두는 에세이영화는 다양한 영화적 장르의 횡단, 연출자의 주관적 사유의 표출, 공적인 영역에 개입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에세이영화의 지향점이 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넘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구축하는 데 있음을 밝히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이다.

[서예] 한글서예 / 한문서예
https://goo.gl/kexgXN
강의> 선림(禪林) 박찬순 > 2018. 1. 21일부터 매주 일 저녁 7시 (10강, 150,000원)

한글/한문서예의 기본획을 잘 습득하여 기틀을 잡습니다. 수강회원 개개인에 대한 맞춤 지도가 이루어지며 사군자(문인화)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공모전 · 전시회 등 서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며 삶의 질을 높여 나갑니다.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철학미학] 생명과 혁명 세미나 : 세계의 그물망 그리고 생명
https://goo.gl/JsFnSA
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 『블록체인 혁명』 >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 공동길잡이 (문의 : 02-325-2102)
“세계의 그물망 그리고 생명”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일요일, ‘블록체인 기술’ 기획 세미나를 시작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인터넷 이후,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생명과 혁명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철학미학] 삶과 예술 세미나 : 나는 그리면서 존재한다
https://goo.gl/zF4xgp
들뢰즈, 『감각의 논리』 > 길잡이 손보미 010-9975-1656 > 매주 금요일 저녁 7:30
“회화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라고 말하는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이 포착한 힘들을 읽어내어 신체의 원초적 감각과 리듬들을 자신의 언어로 변주한다. 그의 독특한 개념들이 베이컨의 그림을 만나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책, [감각의 논리]와 함께 세 번째 여정을 떠난다.

[철학미학] 정동(affect)과 정서(affection) 세미나 : 집단주체성(군중, 대중, 다중, 민중)의 이론
https://goo.gl/kYhKpV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 공동길잡이 (문의 02-325-2102) > 격주 월요일 저녁 7:30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 지난 세기의 이성주의와 인식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감성, 감정, 정감, 정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왔습니다. 정동과 관련된 문제의식과 개념을 공유하면서 타르드, 비르노, 들뢰즈, 시몽동 등의 핵심문헌을 살피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는지 생각하면서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정치철학] 정치철학 고전 읽기 세미나
https://goo.gl/8kFqdh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 공동길잡이 (문의 02-325-2102) > 격주 토요일 오후 4시
칸트의 『영구 평화론』, 헤겔의 『법철학』, 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레닌의 『국가와 혁명』, 『그람시의 옥중수고』 등 정치철학의 고전들을 함께 읽으며 현대 정치철학과 나아가 정치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다집니다.

[철학미학] 들뢰즈와의 마주침 세미나
https://goo.gl/4gQfCr
들뢰즈·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 공동길잡이 (문의 : 이정섭 010-5497-7582)
20세기 철학의 위대한 성취,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과타리가 68혁명 이후의 현재적 상황을 반성적으로 사유한 끝에 내놓은 정치철학서인 『안티 오이디푸스』를 함께 공부합니다.

[정치철학] 푸코 세미나 : 파레시아 읽기
https://goo.gl/JMRJq8
푸코, 『주체의 해석학』 > 매주 화요일 저녁 7:30 > 길잡이 박영대 010-3517-2216
푸코의 ‘자기배려’와 ‘파레시아’를 중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 진정한 자기를 되찾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더 큰 상실감을 가져오는 힐링이나 소비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기술을 익히고자 합니다. 함께 즐겁게 공부할 분들을 기다립니다.

[문학예술] 시 읽기 모임
https://goo.gl/SQs2uu
길잡이 표광소 010-5752-3406 >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시는 마음에 어떤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 내고, 이 세상을 뚜렷이 비추어 내려고 단어를 사용하는 어떤 특별한 방법입니다. 시는 지금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더 먼 세계를 보는 안목을 넓혀도 줍니다. 시 읽기 모임은 시인 5천여 명이 생존하는 대한민국의 시간과 공간에 살며 1주일에 1시간 남짓 시를 향유하는 보람과 활기의 공유지입니다.

[철학미학] 미디어 이론 세미나 : 매체(Medium)를 넘어서
https://goo.gl/BzMkv6
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 > 길잡이 권유진 010-3038-6435 >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본 세미나는 맥루언, 하이데거, 프리드리히 키틀러, 스탠리 카벨, 아즈마 히로키 등 동서양 이론가들이 미디어, 그리고 더 넓게는 매개(mediation)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문학예술] 일본근현대문학 세미나
https://goo.gl/UZE18E
히가시야마 아키라, 『류』 > 길잡이 권유진 010-3038-6435 >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일본근현대문학 단편 및 장편 소설을 원문으로 읽는 세미나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준이치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을 포함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원문으로 읽습니다. 일본어 중상급 이상이신 분들의 정기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정치철학] 페미니즘 세미나 : #MeToo #WithYou에 부쳐
https://goo.gl/93Eypw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 길잡이 유연주 010-3121-4628 > 매주 화요일 저녁 7:30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브라운밀러는 강간이 한낱 정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범죄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2018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중지성의 정원 https://goo.gl/uquyKn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email protected]

T. 02-325-2102

메일링 신청 >> http://bit.ly/17Vi6Wi

태그 : 다중지성의 정원, 철학, 정치경제, 정치학, 인문교양, 페미니즘, 문학, 서예, 세미나, 생명과 혁명, 삶과 예술, 정동, 정서, 다중, 정치철학, 고전, 들뢰즈, 푸코, 시 읽기, 미디어 이론

 

수, 2018/03/21- 22:09
74
0

일부검찰저울사와………세종이 미짱가?

일부경찰저울사…………………….한마는백성

함마와한마……………………사임당이미짱고?

동상  밍바기는 우째대노?…..나르는 동까스  대뿌따,….90900 아이가?

미투마투….나는 아즉도

고마해라…..

담당자님  장고가  엄슬낌미더,

……..아이고

고노메  술탓인지

너트타신지….   (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희비는  농협은행에  낭가”

나께예…………파리론지815지

창녕남지홍옥

목, 2018/03/22- 03:27
95
0

wp-content/uploads/2018/03/201803.pdf

목, 2018/03/22- 17:48
73
0

[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803-1

목, 2018/03/22- 17:46
112
0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

집행부의 회원주권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치는 정관개정 시도를 막아주십시오.

전국의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동지 여러분, 오늘 저는 분노에 찬 심정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일부 핵심 상근자들과 운영위원회가 결탁하여 내린, 전국의 회원을 무시하고 격하시키는 결정을 규탄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집행부 상근자입니까?

    2018324, 이번 주 토요일 정기총회에서 정관개정안의 인준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집행부는 정관 32(운영위원회의 기능) 3기타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의결한다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총회에서 인준을 받으려 합니다

    회원을 대표하는 심의의결 기구인 운영위원회의 기능에서 일상업무에 대한 심의의결기능을 빼면 운영위원회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리고 운영위원회의 목적과 기능 등을 규정한 내규는 이미 작년 말 운영위원회(위원장 이민우)에서 개정되었습니다. 개정전 운영위원회 내규 2(목적)에서는 본회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설립취지와 사업목적에 맞게 운영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운영위원회가 연구소 운영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연구소 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개정되었습니다.  

이로써 회원의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는 심의의결하는 운영 주체에서 지원기구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연구소는 지난 27년간 전국 각지의 회원님들이 어렵사리 보내온 돈으로, 그리고 때로는 국민성금으로 지금의 번듯한 시민단체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집행부는 이제 회원들의 대표/대변기구인 운영위원회를 헌신짝 취급하고 있습니다

    운영위원회를 마치 눈엣가시 같은 성가신 존재로 취급해오던 집행부는 그렇다 치고, 거기에 반대하고 항의해야할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들러리가 되어 제 주인을 팔아먹는 결정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주인인 전국의 회원을 대표하는 기구인 운영위원회가 그저 지부회원 확대 지원이나 하는 기구입니까? 운영위원회가 회원 배가 운동이나 하고, 회비를 더 모아 집행부에게 바치는 조직입니까?

    이번 정관개정안 중에는 위의 심각한 내용 외에도 정관 32, ‘운영위원회의 기능 3에서 기타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의결 한다.”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심의 의결한다로 개정으로써 운영위원회는 연구소의 일상업무에 대한 심의의결 기구가 아니며, 소장이 주재하는 운영위원회집행부 연석회의인 집행위원회에서 집행부 의도대로 결과가 이미 나온 사안에 대해서만 운영위원회에 부의함으로써 집행부소장의 의도대로 연구소를 끌고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 되는 것입니다.

    또한 422항에 총회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라는 조항이 새로 생겼습니다. 도대체 지부에서의 회원들이 독자적인 판단이나 결정에 대해 왜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이에는 지부장 선출이나 어떤 결정 등이 집행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강제로 취소시키려는 계산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지부활동을 집행부 손아귀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이는 지부회원의 자율과 권위를 무시하는 폭거입니다.

    이외에도 이미 개정된 운영위원회의 내규를 보면 곳곳에 집행부 권한강화의 꼼수와 지부 통제의 노림수가 있습니다

    3(기능) 4임원 선출에 있어서 추천권을 갖는다추천할 수 있다바꾼 것은 이사와 감사 선출을 운영위원회의 의견은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4(구성과 임명) 1항에 선출직 운영위원을 신설하고 그 선출직 운영위원의 수는 전체 운영위원 수의 1/4을 넘지 못 한다라고 한 것도 집행부 자의적으로 운영위원을 선출해서 운영위원회에 투입하려는 꼼수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규정 곳곳에 숨어있는 이러한 꼼수와 독소조항을 통해 모든 권한은 사무총장에게 집중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조세열 사무총장은 이사회 이사이기도 합니다. 실무 책임자가 실무를 감시해야 할 이사회에도 들어가 토론도 하고 표도 행사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제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세열 사무총장 1인의 수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연구소 사유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촛불혁명이 진행 중입니다. 촛불혁명은 누구에 의한, 무엇에 대한 심판이었습니까? 주권자 국민의, 대통령이 자행한 국정농단에 대한 심판 아니었습니까? 지금 촛불정신을 계승하며 출범한 정부는 개헌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대상에 걸맞게 국민의 기본권과 국민주권을 강화하고, 지방분권, 직접민주주의제 확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문제연구소의 집행부 핵심 상근자들은 연구소판 국정농단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회원주권의 보장은커녕 폐지하거나 회원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유신 정관으로의 개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어처구니없고 엄중한 사태를 보며 이 불순한 작업을 주도한 연구소의 몇몇 인사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연구소의 실무 최고책임자 조세열 사무총장은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사퇴할 것

    2. 이민우 운영위원장과, 김재운 서울 동부지부장을 비롯한 규정개정소위원회의 멤버들은 운영위원회를 집행부의 들러리, 지원기구로 전락시킨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

그리고

3. 최수전 업무감사는 지난 10여년을 수차례나 감사로 연임해 오면서도 연구소 핵심 상근자들의 전횡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작금의 사태를 방조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

    그리고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내의 비민주적이고 공작적이며 전횡을 일삼는 적폐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이번 총회에서 감사에 입후보함을 천명합니다. (저는 14년전 카이스트의 감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초창기인 19931월에 참여하여 대전지부장 10, 그리고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3차례 그리고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한때 친일청산에 혼신의 힘을 쏟았고 연구소 회원 활동한지 26년째입니다. 

    저자신도 오랫동안 집행부 핵심 상근자들과 친일청산을 위해 동고동락하였으나 23년이 되는 해에 운영위원장이 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고 맹신적으로 지지했었습니다.

   국의 회원 여러분, 연구소의 주인인 회원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치는 집행부의 오만방자한 이번 유신 정관으로의 개악 시도를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이번 토요일에 총회장에 참석해 회원주권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동지들의 동참을 고대합니다. 저는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2018. 3. 22

민족문제연구소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읍소함

목, 2018/03/22- 22:33
12
0

[기고] 3·1혁명 100년, 그 역사적 무게를 생각한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2019년은 폭압적인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선언하고 거족적인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킨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1919년의 항쟁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이상의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우리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민주공화정을 잉태시켰다. 3·1혁명 이후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으며 복벽파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신민’에서 ‘국민’으로의 전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둘째, 처음으로 여성들이 사회변혁의 전면에 나섰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남녀노유가 차이가 있을 까닭이 없었겠으나, 여성들이 대거 현실참여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 시기에 비할 때 획기적 국면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 기생·해녀·백정·광부 등 아직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분적 차별을 받던 계층이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이에 맞선 주력이 민중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천민으로 취급받던 이들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이 내포한 현상타파적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넷째, 전면적인 항일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3·1혁명을 계기로 식민지 조선의 수다한 젊은이들이 국경을 넘어 무관학교와 독립군을 찾았다. 이들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로 상징되는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사들로 거듭났다.

다섯째, 좌우세력이 통합하여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였다. 초기 임시정부가 그러하였으며 이후 부침이 있었으나 이러한 통합 지향은 일제의 패망 때까지 지속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좌우통합, 통일국가 수립의 여망으로 맥을 이어나갔다.

여섯째, 제국주의 지배하에 신음하던 피압박 민족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중국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이 독립선언에 이은 만세시위를 ‘혁명’이라 평가하였으며,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조선을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항쟁의 전개과정과 그 영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3·1정신은 민족이 당면했던 자주독립이라는 목표와 자유 민주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성격을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인 동시에 반봉건적 민주혁명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3·1항쟁이 배태하고 있던 이러한 혁명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강 정책에 반영되고 항일세력 전체의 시대정신으로 발전 확산되어 갔다는 측면에서 선언적 차원을 넘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0322-5

▲ 1944년 3·1절을 맞아 중국 서안에서 공연됐던 대형 항일 오페라 〈아리랑〉 기념사진. ‘삼일혁명절’ 표기가 선명하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소속 한유한이 대본을 쓰고 작곡한 〈아리랑〉은 해방 전까지 10여 차례 상연됐다. ⓒ민족문제연구소

1930년대 들어 항일세력의 3·1인식이 좌우를 막론하고 ‘혁명’ 또는 ‘대혁명’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일제 침략전쟁의 확대,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 등 시대적 상황이 3·1정신이 내포한 혁명성을 재평가하고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항일세력이 공유하였던 3·1정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해방 후 제헌헌법에서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으로 관철되고 있다. 또 ‘촛불’들이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도 기실 그 원천을 3·1정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재확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명과 다름없었다.

3·1항쟁이 운동인가? 혁명인가? 아니면 혁명적 운동인가? 서구 학문의 학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론의 여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항일세력이 왜 혁명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수용하였는지, 또 장기간에 걸쳐 확립된 개념이 어떻게 실종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전향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절실하다고 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처음으로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 창립을 주도하고 매년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여는 등 3·1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위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애써왔다. 올해 초에는 대통령직속정책기획위원회의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년 의의 및 기념사업 추진 방향’ 연구용역을 수임해,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사업을 기획하였으며 곧 보고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제 3·1혁명 100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자리매김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볼 때다. 여기에서 향후 전개될 기념사업을 일일이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3·1혁명의 위상 재정립만큼은 다시 강조하고 싶다. 자국사에 대한 국수주의적 과대평가도 문제이지만 스스로 폄하하는 일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치열하게 지속적으로 전개됐던 독립투쟁의 역사, 특히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 진영과 재외동포들의 정신적 지표였으며 외국에서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3·1혁명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몰가치적인 3·1절이라는 명칭도 독립선언기념일 또는 3·1혁명 기념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또 3·1정신의 요체라 할 민족대단결의 뜻을 살려 남북화해와 평화구축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공화정 수립 100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성찰하는 한편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 100년을 설계하고 전망을 세우는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촛불혁명’과 ‘3·1혁명’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그 과제는 여전히 닮은꼴이다.

<2018-03-22> 프레시안
☞기사원문: 처음으로 여성이 사회변혁 전면에 나선 이 사건!

목, 2018/03/22- 22:45
12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