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지역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익명 (미확인) | 화, 2018/09/04- 13:04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답사 동행기]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용산은 오랜 시간 ‘남의 땅’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전 주인’이었던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산은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과 함께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기념공원으로 만들자는 방안을 밝혔다. 지난 8월 29일에는 숙명여대를 사이에 두고 효창공원 건너편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0904-4

▲ 일제 식민통치의 흔적이 남겨진 용산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 ⓒ 김경준

지난 1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개관 후 첫 행보로 용산에 얽힌 일제 침략의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짚어보는 ‘특별답사’를 진행했다. 답사에는 3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뜻 깊은 이번 답사에 기자도 동행했다.

0904-5

▲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특별답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김경준

일제에 의해 ‘군사기지’가 된 용산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은 ‘군사기지’였다. 용산의 군사기지화는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제는 이곳을 군용철도인 경의선의 분기점으로 설정한 뒤, 각종 군용시설물을 설치했다.

용산에는 제20사단 제39여단 보병 제78연대·기병 제28연대·야포병 제26연대·제40여단 보병 제79연대 등 일본군 4개 연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1908년 10월에는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설치됐다.

▲ 용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벌이는 일본군대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후 상주군 편제로 바뀌면서 1918년 6월부터는 ‘조선군사령부’로 개칭됐다. 조선군 사령관은 한반도 전역에 배치된 일본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조선총독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조선총독에 부임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2대 조선총독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9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용산우체국 옆으로 200미터가량 곧게 뻗은 도로의 끝에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기지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레 청사가 멸실됐다고 한다. 청사는 없어졌어도 당시의 흔적을 증명하는 콘크리트 벙커 건물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상태라 단단한 출입문으로 막혀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0904-7

▲ 용산에 있던 조선군사령부 청사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0904-8

▲ 과거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던 자리엔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 평택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이곳의 출입구는 굳게 닫혀있다. ⓒ 김경준

코앞에 그 흔적이 있지만,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현장해설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실망하는 답사단원들에게 “그래도 과거에는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이 근처도 못 오게 했었다”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선군사령부 건너편에는 조선총독관저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총독 관저하면 남산 왜성대 부근에 있었던 통감 관저나 조선총독부 뒤편 경무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용산에도 또 다른 총독 관저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역대 조선총독 그 누구도 집무 혹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지관리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시내와 멀리 떨어져 업무상 불편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연회를 위한 공간 혹은 일본 황족 및 서양 귀빈을 위한 숙소로 드문드문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총독 관저는 한국전쟁 당시 반파되면서 철거됐다. 총독 관저가 있던 터 역시 미군기지 안에 있어 그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쇼핑객·여행객으로 분주한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사연

답사단이 용산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광장은 주말을 맞아 쇼핑객과 관광객 그리고 먼 길 떠나는 열차 승객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이곳 역시 알고 보면 한 많고 사연 많은 공간이다.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일본군 병력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정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 역시 이곳에서 그리운 고국 땅, 가족과 눈물의 작별을 해야만 했다.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용산역 광장에 모여 열차를 타고 군함도,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로 끌려갔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8월에는 용산역 광장 한 켠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답사단 일행이 노동자상을 둘러싸고 광장에 얽힌 구슬픈 사연을 듣는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도 관심 갖고 노동자상 옆의 안내 문구를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0904-9

▲ 2017년 8월에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역 광장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장으로 끌려가기 위해 집결했던 장소였다. ⓒ 김경준

0904-10

▲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단원들의 모습 ⓒ 김경준

철도노동 순직자들을 위한 위령제의 진실

철도 건설과 함께 용산을 철도 행정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던 일제는 용산역을 중심으로 철도관리국, 철도병원, 철도구락부, 철도원양성소 등 철도 관련 시설을 대거 조성했다.

용산역 맞은 편에 있는 낡은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용산 철도병원’이다. 철도공사 도중 다친 노동자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지어진 이 병원은 해방 후 중앙대학교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중앙대병원이 흑석동으로 이전하면서 빈 건물로 남게 됐다. 답사에 참여한 한 시민의 입에서 “만날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궁금했었는데…” 하는 읊조림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0904-11

▲ 1928년에 세워진 “용산철도병원”. 해방 후 중앙대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현재는 주인 없는 빈 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 김경준

이순우 연구원은 “이 건물은 2008년에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으니 철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계속 빈 건물로 방치할 수는 없을 테고, 옛 서울역사 건물처럼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용산역에서 이촌역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철도선형과 서빙고로 도로가 만들어낸 원뿔 모양의 지형이 나타난다. 과거 이곳엔 ‘용산철도공원’이 있었다. 일제는 1915년 철도공원 안에 철도순직자조혼비(鐵道殉職者弔魂碑)를 세우고 매년 순직한 철도노동자들을 위한 조혼제(위령제)를 지냈다.

현재 이 비석은 존재하지 않지만, 위령제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이 연구원은 “유족들 입장에서야 가족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위령제를 지내는 전통이 일제 때부터 시작돼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0904-12

▲ 과거 철도공원이 있었던 자리 ⓒ 김경준

0904-13

▲ 용산철도공원이 있던 자리에서 “철도순직자조혼비” 사진을 소개하는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김경준

개성에 있던 비석은 왜 용산으로 왔을까

용산역 뒤편에 있는 철도회관 입구에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비석이 있다.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건립된 연복사 오층불탑의 건립 내력을 담은 비석이다.

본래 이 비석의 소재지는 경기도 개성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일제에 의해 용산의 철도구락부 구역으로 옮겨졌다. 이후 이 비석은 한동안 학계에서 소재불명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2년 우연히 길을 가다 이 비석을 발견한 한 시민이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0904-14

▲ 용산역사 뒷편 철도회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연복사탑중창비” ⓒ 김경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비석이 긴 세월 동안 소재불명이었다는 사실도 우습지만,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나 엉뚱한 곳에서 방치돼야만 했던 비석의 신세도 처량하기만 했다. 일제에 의한 우리 문화재 수난사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생태공원보다는 역사공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올해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과거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이 연병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이라며 경축식을 용산에서 거행하는 까닭을 밝혔다. 그리고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같은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라고 천명했다.

미군기지 자리에 도심 속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에 이견을 제시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용산을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메시지가 없었던 점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0904-15

▲ KT 용산지사 뒷편에 위치한 서울교 원불교당. 일제강점기 당시 이 자리엔 용광서(龍光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침략전쟁을 수행하다 죽은 전몰장병의 유골을 안치했던 사찰이었다. ⓒ 김경준

0904-16

▲ 남영삼거리 앞에 위치한 구 경룡관(京龍館) 터. 1921년에 세워진 경룡관은 일본인 전용극장이었다. 일제 말기에 성남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해방 이후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2003년에 폐관했다. ⓒ 김경준

용산은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생태공원 조성에 앞서 용산에 깃든 치욕의 역사를 기념하는 역사공원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다짐하는 뜻에서 미군이 떠나간 바로 그 자리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건 어떨까. 식민통치의 본산이나 다름 없던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운 이유가 그렇듯이 말이다.

<2018-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이 곳은 일제 강점기 동안 식민통치에 활용된 시설물이다.(중략)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친일잔재 청산 활동의 결과로 이 송정신사가 일제 식민지 잔재물임을 밝힌다”

광주시는 13일 일제 신사인 광산구 송정공원 금선사에서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에 대한 단죄문 제막식을 개최했다.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이번 단죄문 제막식은 지난해 8월 광주공원 사적비군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제막식이 열린 송정공원 금선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 당시 내선일체 강조 등 조선인의 정신개조를 위해 일본이 1941년 조성한 신사로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건물이다.

이번에 설치된 단죄문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친일 인사의 행적 등이 기록됐다.

시는 올해 △원효사 송화식 부도비ㆍ부도탑 △너릿재 유아숲 공원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시비 △사직공원 인근 양파정에 걸린 정봉현ㆍ여규형ㆍ남기윤ㆍ정윤수 현판 △세하동 습향각에 설치된 신철균ㆍ남계룡 현판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회관 지하동굴 △송정공원 내에 잔존하고 있는 참계 신목 참도 석등룡기단, 대옹전 앞 계단, 신주사무소, 배전, 나무아미타불 등 6곳 21개 잔재물에 단죄문을 설치했다.

시는 단죄문 설치를 계기로 과거 대한민국 100년을 돌이켜 보고, 미래 대한민국 100년을 준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사 건물인 송정공원 금선사 등의 잔재물에 단죄문을 설치한 데 이어 내년부터는 사유지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물에 대해 소유주와 협의를 거쳐 청산작업을 이어가겠다”며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위대한 여정에 150만 광주시민이 함께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구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3> 한국일보 

☞기사원문: 광주 송정공원 금선사에 단죄문 설치 

※관련기사 

연합뉴스: 광주 송정공원 일제 신사 ‘금선사’에 단죄문 설치 

뉴시스: 광주 송정공원 친일 잔재물에 ‘단죄문 제막’ 

국민일보: 광주 송정공원 금선사에 친일 잔재 청산 단죄문

목, 2020/08/13- 23:54
1
0

경기교육청의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올해 89개 학교 참여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욱일기가 연상되는 교표(학교를 상징하는 그림)를 개교 90년 만에 바꾸는 등 광복절을 앞두고 경기도 내 학교들의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눈길을 끈다.

경기도교육청은 13일 도내 89개 학교가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는 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함께 학교 안 일제 잔재를 찾아보고 개선 방법 등을 논의해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작곡가, 작사가가 만든 교가나, 교표, 교목 등이 청산 대상이 된다.

구령대나 조회대와 같은 구조물, 반장·부반장, 명찰, 선도부, 수학여행과 같은 일본식 용어들도 변경이나 순화 대상이다.

프로젝트 첫해인 작년엔 20여개의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가 바로 잡혔다.

올해엔 89개 학교가 참여해 청산 대상을 검토 중이다.

특히, 1930년 개교한 화성 정남초등학교는 지난 1년간의 내부 논의 과정을 거쳐 올 3월 1일 자로 교표를 새롭게 바꿨다.

정남초의 과거 교표는 욱일기(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기로 사용한 깃발)가 연상되는 그림이 그려진 부채모양이었는데, 한 학부모의 문제 제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동문은 교표 변경 필요성에 공감했고, 교표에 담을 가치와 디자인 등을 다 함께 고민했다.

화성 정남초의 과거 교표(좌)와 새롭게 바뀐 교표(우)[경기도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 결과 새롭게 탄생한 교표는 푸른 지구본 모양을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열정과 협력을 흰색과 붉은색이 합쳐진 하트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개교 90년 만의 변화였다.

정남초 우자영 교무부장은 “교표는 학교 홈페이지, 안내장 등 곳곳에서 사용하는 학교의 상징 중 하나인데, 전범기가 연상되는 그림이어서 교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스스로 교표를 바꿨다는 점에서 학교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포대명초등학교도 벚꽃 안에 욱일기가 연상되는 그림이 그려진 교표를 교화인 개나리꽃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김포대명초의 과거 교포(좌)와 새롭게 바뀐 교포(우) [경기도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성 공도중과 수원 삼일공업고는 친일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공도중은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동문 및 지역 주민들에게 가사 공모를 내 학교 공동체가 참여하는 교가를 만들 계획이다.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박태준 사무관은 “일제 잔재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잔재를 찾아내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숙의하는 과정 자체가 역사교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일제 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사 이해를 통해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도내 7개 교육지원청의 독립운동사교육지원협의회를 중심으로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 지원, 지역에 특화한 교육자료 개발 등 생활 속 역사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email protected]

<2020-08-13> 연합뉴스 

☞기사원문: “이거 욱일기 아냐?”…교표·교가 바꾸는 학교들

금, 2020/08/14- 02:16
0
0

[서평]

용서받지 못할 자, ‘밀정’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조세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2019년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의 새 장을 연 역사적 사변을 기념하는 열기가 한 해 내내 지속되었다. 학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관점의 수많은 성과를 내놓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았던 노작이 KBS 탐사보도부가 제작 방영한 〈밀정〉 2부작 다큐멘터리였다.

제작팀은 1년 여간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 밀정을 추적했다. 8개월간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밀정 혐의자 895명을 특정했다. 여기에는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상상조차 힘든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밀정〉 2부작은 새롭게 찾아낸 밀정 혐의자 가운데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되어 있는 사람들을 집중 추적해 그들의 이상행적을 고발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지 중 한 명이었던 우덕순,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참모 이정,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던 김규흥,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던 김재영 등이 그들이었다. 제작팀은 새롭게 찾아낸 밀정 관계 자료들을 학계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하여 공신력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역사 다큐멘터리의 전형성을 탈피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완성도를 높여, 이른바 2040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밀정이라는 생소하고도 무거운 소재를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학계에서도 그동안 연구자들의 심층 탐구가 부족했던 밀정이라는 주제를 공영방송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전문가를 방불케 하는 방대한 사료조사와 치밀한 검증, 여기에 추적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겠다는 열정이 결합해 근래 보기 힘들었던 수작을 탄생시켰다. 탐사저널리즘의 전범을 개척한 제작진에 각계는 ‘임종국상’을 비롯한 무려 10여개가 넘는 상을 수여함으로써 이들의 노고에 응답하였다.

▲ 지은이: 이재석, 이세중, 강민아 외 |출판사: 지식너머 |값 16,000원 |260쪽 |신국판(142×220mm) |ISBN 9791165791667

충격적인 내용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 〈밀정〉이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책으로 거듭났다.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대중적인 역사 읽기를 지향하고 있다. 취재 이면의 비화가 흥미로우면서도 정교한 추적과정이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밀정! 이들은 단순한 매국노나 부역자가 아니었다. 항일 대오 속에 잠입해 독립운동을 내부로부터 파탄시키려 한 가장 악질적인 민족반역자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최일선에서 보위하고 있던 경무국에까지 밀정이 침투하고 있었으며,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일제에 보고되는 형편이었다. 책을 읽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동가숙 서가식’하는 신산한 삶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책에는 〈밀정〉 2부작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발굴하여 ‘KBS 뉴스9’ 톱뉴스로 보도해 3·1운동의 숨은 주역들을 집중 조명한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 취재기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경주 최부잣집’에서 발굴된 사료를 분석하여 경주 지역 국채보상운동과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심층 보도한 사례 등 지난 한 해 KBS 탐사보도부의 빛나는 활약상도 소개하고 있다.

무릇 역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감추고 싶은 치부일수도 있지만 밀정이라는 ‘어둠의 자식’들이 있었기에 독립투사들의 헌신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 책이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오욕의 역사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한편으로, 일제의 간교한 분열 책동 속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대다수 독립투사들을 다시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밀정들이 해방 이후 어떻게 변신해 갔는지 밝히는 후속작업도 기대해 본다.


[책소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한 편의 탐사보도가 언론과 학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바로 KBS 탐사보도부의 다큐멘터리 〈밀정〉이다. 2부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그간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항일운동의 가장 어두운 지점, ‘밀정(密偵)’의 실체를 규명했고, 같은 해 친일청산과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할 〈임종국상〉을 비롯해 〈한국기자상〉 〈방송기자대상〉 등 10여 개의 관련 상을 수상하며 탐사보도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호의 저변에는 ‘밀정’이란 단어가 가진 어두운 무게가 자리한다. 밀정은 단순히 동족을 배신한 ‘괘씸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제의 피라미드식 지휘체계 맨 아랫단에서 실핏줄처럼 곳곳에 뻗어나가 작동하며 일제국주의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존재들이다. 이들의 암약 속에 거사는 실패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체포되었으며 독립군은 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일본군 100명보다 밀정 하나가 더 무섭다.’ 독립운동 진영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 말은 그들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짧고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일본외무성과 방위성의 자료실에 보관된 기밀보고서와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밀정〉 취재진이 입수한 5만 장의 문서들에 남겨진 밀고의 기록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00주년을 넘긴 지금도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임시정부 초창기 멤버들의 사진, 3ㆍ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의 계보도(밀정에 의해 작성되어 일제의 수배명단으로 쓰였을 이 체계적이고 상세한 명단에는 각계의 항일운동 핵심인물과 그 관계도는 물론 아직도 우리가 찾지 못한 숨은 영웅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도 이번 밀정 추적을 통해 발견되었다. 또, 안중근의 동지, 김좌진의 측근, 김구의 부하 등 그 손길이 미치는 범위 또한 실로 두려울 정도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밀정은 20여 명, 취재를 통해 밝혀진 밀정 혐의자는 895명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한 기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밀정은 친일파와 다르다.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했으며 지금까지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친일파들과 달리 암약했던 밀정들은 그들이 항일운동에 미친 그 치명적인 여파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더불어 거의 아무런 청산의 과정 없이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밀정은 20여 명. 하지만 KBS 탐사보도부가 취재를 통해 추적한 밀정 혐의자는 895에 달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독립을 향한 염원이 동지의 얼굴을 한, 혹은 자신이 지켜야 할 민족의 얼굴을 한 밀정들의 손으로 일제에 넘겨졌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남긴 배신의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들이다.

다큐멘터리 〈밀정〉이 그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발굴의 기록이다. 제한된 방송시간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자세한 자료 분석,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 생생한 취재 과정과 적들의 기록으로부터 우리 내부의 적을 추적해야 했던 기자들의 소회가 더해져 있어 단순한 문자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차례

1장 축제의 시간에 돌아본 우리의 그늘
2장 임시정부의 얼굴 누가 빼돌렸나
3장 항일운동의 또 다른 서술자 밀정
4장 안중근의 동지, 그가 걸어간 다른 길
5장 김좌진 최측근이 밀고한 배신의 기록
6장 얼굴 없는 밀정이 기록한 만주벌 호랑이
7장 김원봉을 밀고한 부하, 그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8장 임시정부의 비자금줄 경주 최부잣집
9장 식민지 권력자가 내린 지령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10장 김구를 잡아라, 특종공작에 동원된 밀정들
11장 3·1운동 계보도, 휘발된 사람들을 찾아서
12장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 밀정

이 책의 저자

이재석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KBS 보도본부에 입사, <군 댓글공작 최초 실명 폭로>, <국정원 4대강 반대 민간인 불법 사찰> 등 다양한 주제의 탐사보도를 해왔다. 다수의 특종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정희, 독도를 덮다》(2016)가 있다.

이세중
2014년 KBS 보도본부에 입사해 주로 사회부와 탐사보도부에서 취재했다. <삼성물산 국가 상대 100억 사기 의혹>, <교도소 독방 거래> 등 다수의 고발 보도를 선보였다. <밀정 2부작>으로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강민아
1990년생. 2014년 KBS <시사기획 창> 취재작가로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 6부작>(삼성언론상)에 참여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를 제작했다. TBS 제작본부 PD로 재직 중이다.

목, 2020/08/13- 19:51
1
0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송영길,안민석,이상민 의원실 등 공동주최로 열린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 고 백선엽 장군 등 친일파 묘비 모형들이 전시돼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친일 인사를 국립묘지에서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준비하는 한편, 오는 15일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여론 띄우기에도 돌입했다.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해 13일 국회에서 열린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페탱 장군,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등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해외 인사들의 사례를 들며 친일파 ‘파묘(강제이장)’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김홍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일부개정안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 행위자 등을 국립현충원 등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달 타계한 고 백선엽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여당 일각에서 ‘친일파 파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백 장군은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돼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백 장군은 6·25 전쟁의 영웅”이라며 “여권에서 국론 분열에 앞장선다”라며 파묘에 반대한다.

이날 공청회를 주최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친일 인사 강제이장을 위한)국립묘지법 개정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정신적 가치를 재확립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국립묘지 안장을 엄격히 심사하고 사후에도 재평가를 통해 안장 자격을 박탈하는 해외 사례들을 소개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전 총통이 대표적이다.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마드리드의 국립묘지인 ‘전몰자의 계곡’에 묻혔다. 34년이 지난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프랑코의 시신을 파내 가족묘지로 옮겨 묻었다. 시신 이장을 주도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번 결정으로 국가의 공적인 장소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도덕적 모욕에 종말을 고했다”라고 자평했다.

프랑스는 사회 유명 인사를 국립묘지인 ‘팡테온’에 안장하기 전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최소 10년 이상 유예기간을 두고 사망자의 정치적 공과를 검증한다. 프랑스 혁명가 미라보가 ‘배신 행위’가 드러나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는 미라보가 사망한 뒤 그를 팡테온에 안장했다. 하지만 훗날 공개된 자료에서 미라보가 혁명 중에 루이 16세 측과 밀통한 사실이 드러났고 프랑스 정부는 그의 유해를 팡테온에서 끌어낸 바 있다.

한때 프랑스의 ‘국부’로 칭송받았던 앙리 필리프 페텡 원수는 안장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페텡 원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공로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에 항복하고 이후 괴뢰정부인 ‘비시 내각’ 수반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레지스탕스 명단을 나치에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부역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대서양의 외딴 섬에서 복역하다가 사망한다. 프랑스군 최고 계급인 원수까지 지냈으나 팡테온은 물론이고 유명 장군들이 묻히는 ‘앵발리드 묘역’에도 안장되지 못한다.

김 전 관장은 “더 이상 독립운동가와 일본군 출신들이 같은 장소에 잠들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국가의 상징적인 추모 위령시설에 부역 인사들을 안치하는 비정의가 지속되지 않도록 국회가 국립묘지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3> 경향신문 

☞기사원문: “나치 부역자는 국립묘지 얼씬도 못 해” 여당, 백선엽 등 ‘친일 파묘법’ 박차

금, 2020/08/14- 19:28
0
0

구로중, 친일인명사전 등재 작곡가 만든 교가 바꿔
“유치원 명칭도 일제 잔재 유아학교로 바꿔야”

제75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태극기 마당에 게양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뉴스1 © News1

“여기 구로에서 우리는 꿈을 꾸네. 여기 구로에서 우리는 빛을 비추네. 우리가 꿈꿀 때 세상은 변해가네. 우리의 희망은 영원히 빛나리”

1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구로구 구로중학교는 지난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교가를 바꿨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교내 일제 잔재 청산을 논의하면서 내려진 결정이다.

이전 교가는 동요 ‘섬집 아기’와 군가 ‘진짜 사나이’ 등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이흥렬이 썼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음악단체에서 활동하는 등 친일행적을 보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일제 잔재 청산뿐 아니라 이전 교가가 현재 학생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교가 변경 이유로 꼽혔다. 1978년도 개교 당시 제작된 교가가 ‘요즘 세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가를 바꾸고 1년여가 지난 가운데 김삼현 구로중 교장은 “교가를 바꾼 뒤 학생들도 신선하고 새롭다고 얘기를 했다”면서 “자연스럽게 친일 잔재를 청산하면서 아이들 정서에 맞게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교가 제작에는 학생·학부모·교직원 등 학교구성원 모두가 참여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가사를 만들고 학부모도 참여하는 등 동문을 포함해 모두가 동의해 개정에 무리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졸업식이 취소되면서 올해 졸업생들이 새로운 교가를 부르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1학년 학생들도 아직 새 교가를 같이 부르지 못하고 있다.

김 교장은 “친일 잔재 청산 차원에서 서울 소재 다른 학교도 교가를 바꾸려는 곳이 많은 걸로 아는데 추진이 안 되는 거 같다”면서 “학교구성원 간 이해관계도 걸려 있어서 교가 교체가 쉽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교가 교체 이외에 교육계에서는 올해도 교내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일제 잔재인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은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유치원은 독일어 ‘kindergarten’을 일본식으로 번역한 표현이다”면서 “일제강점기 명칭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기본법과 유아교육법에서도 유치원이 학교임을 규정하고 있다”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유아교육을 책임질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설 수 있도록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명칭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한때 학교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 순화를 위해 입법활동에 나선 바 있다. 지난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 11명이 나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초·중·고교에서 사용되는 ‘교감’이라는 명칭을 ‘부교장’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장 명칭 자체가 일제 잔재이고 교장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교감이라는 직위를 좁게 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신현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정책본부장은 “교감은 교장이 없을 때 학교 업무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부교장으로 확실히 명칭을 변경해 책임과 권한도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단위 학교에서 잘못된 관행이나 교내 상징, 언어 등이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다”면서 “그런 것들을 순화하는 작업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해 ‘서울학교 내 친일잔재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서울시교육청에 친일 잔재와 관련된 전수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전교조 서울지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작사나 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학교가 113개교라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7명의 동상·기념관이 있는 학교(대학 포함)도 적지 않았다.

김홍태 전교조 서울지부 대변인은 “단순히 교가만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정이나 학사운영상에서 여러 일제 잔재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면서 “이것과 관련해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당국에서도 교실 내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정책 의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2020-08-15> 뉴스1 

☞기사원문: 구로중이 교가 바꾼 이유는?…여전한 학교 일제 잔재 ‘청산’ 가속

월, 2020/08/17- 02:25
0
0

독립운동가 잡던 이와 독립운동가가 같은 묘역에?
친일파 묘, 최소한 친일 행적 푯말이라도 세워야
친일귀족 이해승 변호사, 사법농단 주역 대법관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8월 14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국민대 특임교수)
■ 출연자 : 이준식(독립기념관장)

◇ 정관용> 내일이 15일 광복 75주년 되는 날입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 심각한 상황이죠. 그래서 이 광복절 맞아 특별한 분을 모셨어요. 친일파 재산 환수에서도 활약을 하셨고 지금 독립기념관장을 맡고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준식> 네.

◇ 정관용> 관람객들 코로나 때문에 혹시 차단된 거 아닌가요, 독립기념관.

◆ 이준식> 저희도 한참 코로나19가 극성일 때는 한 70일 동안 휴가냈다가요. 6월 초부터 다시 문을 열었고 지금 현재로는 예년의 날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한 70~80%에서 아니면 40~50% 이렇게 예년의 관람객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 정관용> 물론 인원 제한은 하겠죠.

◆ 이준식> 전시관은 인원 제한을 합니다.

◇ 정관용> 거리두기도 하고. 내일 광복절 기념식 혹시 여기서 여기세 하나요.

◆ 이준식> 충청남도와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경축식을 갖습니다.

◇ 정관용> 정부기념식을 지난해에는 독립기념관이.

◆ 이준식> 지난해에는 정부 경축식을 가졌는데 올해는 정부 경축식을 서울에서 갖는 걸로 알고 있고요.

◇ 정관용> 다 축소해야 되니까 그렇죠.

◆ 이준식> 그래도 이번 경축식은 독립기념관하고 충청남도도 규모를 200명 정도로 할 예정입니다.

◇ 정관용> 그래야죠. 독립기념관으로서 75주년의 광복절 어떤 의미가 제일 크다고 보십니까?

◆ 이준식> 해마다 광복절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데요. 특히 5월 광복절은 우리가 의미가 더 각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작년 광복절만 하더라도 일본의 경제침략 때문에 굉장히 좀 시끌시끌했는데 그때 일부에서는 우리가 일본한테 무릎을 꿇는 게 차라리 낫다 그게 우리가 살길이다. 우리는 일본하고 맞서서 이길 방법이 없다.

◇ 정관용> 일부 언론에서 그런 목소리를.

◆ 이준식> 그런 목소리를 냈죠. 거기 동조하는 일부 국민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1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보면 그런 얘기가 모두 헛소리가 됐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위기가, 경제위기도 잘 극복하고. 특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의 국격이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게 입증이 됐습니다. 저희 세대나 아니면 저희 윗세대만 하더라도 일본을 따라잡아야 된다 또는 일본을 이겨야 된다는 것이 일종의 꿈 같은 얘기였는데 지금은 그 꿈이 현실이 돼서 사실상 일본을 따라잡고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을 뛰어 넘었다. 그 길이라는 말이 정말 통하는 그런 2020년이 됐다 그래서 올 광복절은 특히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가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본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어떤 해보다 의미 있는 광복절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일본의 경제보복, 경제침략 그로 인한 우리 경제의 피해 별로 없다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경제의 소재 부품 장비 산업에 있어서의 경쟁력은 더 커졌다는 겁니다.

◆ 이준식>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됐다라고 이렇게 평가를 하더라고요.

◇ 정관용> 반면 일본 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더 크다.

◆ 이준식> 일본은 오히려 관련 산업 분야가 오히려 침체되고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고요.

◇ 정관용> 그리고 지금 현재도 현안이 있지 않습니까? 대법원 판결에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이제 일본 측 자산에 대한 압류 이런 것들을 가고 있고 공시송달 좀 어려운 얘기입니다마는 거기까지 이루어졌단 말이에요. 공시송달이 이뤄졌다는 얘기는 상대 측이 서류를 수령하지 않더라도 법률상.

◆ 이준식> 효력을 갖는 거죠.

◇ 정관용> 서류를 받은 걸로 간주하겠다. 이제부터는 시기적으로 그쪽에서 다시 항소를 하기는 했습니다마는 현금화할 수 있는 과정이 다 담겨지고 있는 거잖아요.

◆ 이준식> 그러니까 강제집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죠.◇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그거를 하게 되면 일본 정부는 가만히 안 있겠다는 상황인데 이준식 관장 보시기에 어떻게 합니까? 법대로 그냥 가야 돼요? 아니면 뭔가 지금 협상을 통해서 풀어보려고 했는데 협상이 안 되죠, 지금.

◆ 이준식> 제일 좋은 건 협상을 통해서 푸는 거죠. 그런데 워낙 일본 측의 태도가 완강하기 때문에 지금 일본 측이 협상을 안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사실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한 협상은 없다고 사실상 선언을 한 셈이어서 지금 협상이라는 게 별로 의미가 없는 그런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19세기 말 20세기 이후 제국주의 국가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배 하거나 점령했을 때 그리고 식민지배나 점령이 끝났을 때 그런 잘못된 과거 역사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 정관용> 당연하죠.

◆ 이준식> 그런데 일본은.

◇ 정관용> 독일이 대표적이고요.

◆ 이준식> 일본은 유일하게 반성하지도 않고 사죄하지도 않은 나라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반성하고 사죄하라고 하라면 우리가 뭐를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라고 하느냐. 우리는 반성할 것도 없고 사죄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끊임없이 노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고 그러면 법률적으로 강제집행 단계로 가야 되는 게 옳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준식> 원칙적으로는 이게 결국 어쨌거나 삼권분립이 이뤄진 나라인데요. 법원에서 그렇게 판단했는데 정부나 또는 시민사회가 그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건 또 이것도 이상합니다.

◇ 정관용> 말이 안 되죠.

◆ 이준식>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사법부의 판단은 아무 의미는 없는 걸로 되는데 적어도 민주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라고 한다면 사법부의 판단은 또 사법부의 판단대로 존중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극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잘 타협점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굳이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다면 한국으로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어찌 보면.

◆ 이준식> 달리 방법이 없는 거죠.

◇ 정관용> 지금 일본 내에서는 아베 정권은 이제 곧 무너진다, 정권이 바뀔 거다. 이런 얘기가 많잖아요.

◆ 이준식> 지금 아마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렇게 되면 혹시 새로운 어떤 계기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점은 어떻게 보세요?

◆ 이준식> 지금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 중의 1명은 한국과 대화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의원이라 그러니까 만약 그 사람이 차기 총리가 된다면 대화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거겠죠.

◇ 정관용> 대화를 통한 해법. 한번 미리 가상적으로 해 본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요?

◆ 이준식> 저는 가장 중요한 게 기본적인 출발점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진솔하게 사죄하고 우리가 그다음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책임을 지겠다라는 입장을 보이는 게 한국과 일본 사이의 실타래처럼 꼬인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거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걸 안 하니까.

◆ 이준식> 그거를 안 해서 문제인 거죠.

◇ 정관용> 인졍, 사죄, 반성 이걸 안 하니까 다른 편법들이 거론되는 거 아니에요.

◆ 이준식> 우리가 거창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거든요. 기본은 반성하라. 반성의 바탕에서 사죄하라. 그리고 사죄한 다음에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라. 그거인데 일단 반성을 안 하니까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일본, 지금 아베 정부가 있는 한은 그냥 냉각기가 계속되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입장에서도. 일본 내부의 정권의 변화 이런 것들과 맞물려서 조금 새로운 대화의 물꼬를 터야 되겠다 그 정도 말씀 듣고. 우리 내부에서의 친일청산 관련돼서는 지금 두 가지의 화두가 떠올라 있습니다. 하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 재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돼 있는지 그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이제 국립묘지법 개정 관련된 논란이 또 하나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짧게짧게 하나하나 짚어보면 우리 이준식 관장께서 바로 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하셨잖아요. 어디까지 활동이 됐었죠, 그때. 2006년에 출범해서 2010년에 문을 닫았는데요. 4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 법에 정한 특별법에 정한 친일반민족행위가 남긴 재산. 그 후손이 상속한 재산을 찾아서 재산이라고 그러면 주로 부동산입니다.

◇ 정관용> 토지죠, 토지.

◆ 이준식> 토지하고 임야입니다. 토지하고 임야를 찾아서 국가에 귀속시키는 조치를 취했고요.

◇ 정관용> 몇 권이나 했습니까, 그때.

◆ 이준식> 당시에 시가로 한 3000억 원 정도 했습니다.

◇ 정관용> 모두 합해서 3000억 원?

◆ 이준식> 시가로요.

◇ 정관용> 생각보다 많지 않네요.

◆ 이준식> 많지 않죠. 왜냐하면 해방 직후에 했으면 그 규모가 덕 컸을 텐데 해방되고 난 다음에 거의 60년 이상 지난 시점에 했기 때문에. 그리고 특별법을 만들면서 국회에서 친일파가 남긴 재산을 국가 귀속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거래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하다. 했습니다. 거래 안정이 뭐냐 하면 지난 시간 동안 이미 거래가 이루어진 친일파는 친일재산이 아닌 거라고 본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친일파의 후손이 그 재산을 처분해서 다른 형태로 재산을 변화시켰다고 하더라도 그 변형 재산에 대해서는 친일재산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특별법에 규정을 해 놨기 때문에 거기 친일파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3000억 원 정도 규모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친일 후손 명의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그런 거죠.

◆ 이준식> 네.

◇ 정관용> 그런데 국가귀속 조치에 불복해서 소송들을 하더라고요.

◆ 이준식> 거의 대부분 소송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 소송에서의 정부가 대부분 이기죠? 이기기는.

◆ 이준식> 거의 대부분 이겼습니다.

◇ 정관용> 이 특별법에 의해서 우리가 되니까. 법적 근거가 있으니까. 그런데 지난해인가 친일파 이해승 유산반환소송은 정부가 패소했다면서요?

◆ 이준식> 원래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시 1심에서는 국가가 승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친일재산이 맞다. 국가 귀속이 옳은 결정이다라고 했는데 친일재산조사위원회 활동이 끝난 다음에 2심에서 이게 뒤집어졌습니다. 뒤집어진 이유는 이해승이 친일파라고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이해승이 소유한 재산도 친일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게 뭐냐 하면 특별법에 병합의 공으로 귀속 작위를 받은 자를 친일파로 규정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한일 병합의 공을 세워서 귀족 작위를 받은 자는.

◇ 정관용>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

◆ 이준식> 귀족 작위를 받은 자는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친일파다 이렇게 규정을 해 놨는데. 2심 재판부가 그걸 교묘하게 비틀어서 해석을 했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요?

◆ 이준식> 귀족 중에는 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그냥 작위를 받은 자도 있다. 그러니까.

◇ 정관용> 그냥 작위를 왜 줘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유튜브 라이브 캡쳐)

◆ 이준식>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걸 나중에 이제 입법 부. 전문 법조계에서는 입법 부작위라고 하더라고요.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일종의 수사적인 표현으로 귀족 작위를 받은 자는 다 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거라는 의미로 집어넣었는데 법원에서 그거를 그러면 작위를 받은 자 중에는 병합의 은공으로 받은 자도 있고 그렇지 않게 작위를 받은 자도 있다. 그리고 이해승은 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본 겁니다.◇ 정관용> 그쪽 변호인이 제출한 무슨 근거가 있을 거 아니에요?

◆ 이준식> 그런 논리를 편 거죠.

◇ 정관용> 병합에 공 세운 바 없다. 그냥 작위를 주더라.

◆ 이준식> 그냥. 그러니까 그냥 작위를 받은 거다.

◇ 정관용> 왜요? 그냥 왜요?

◆ 이준식> 그러니까 전주 이씨 종친이라고 그냥 작위를 받은 거다.

◇ 정관용> 그냥 그 논리를.

◆ 이준식> 그 논리를 법원이 그냥 받아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나중에 국회에서 문제가 되니까.

◇ 정관용> 법 개정했죠, 그래서?

◆ 이준식> 법을 개정했죠. 그래서 병합의 공이라는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면 개정된 법에 의해서 다시 국가 귀속 조치를 하기 위해서 다시 소송을 제기했는데 국회에서의 법을 개정하면서 이상한 부칙 조항을 집어넣었습니다.

◇ 정관용> 또 뭐예요?

◆ 이준식> 확정 판결이 난 건에 대해서는 이 특별법의 개정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 정관용> 그거 뭐 딱 이해승 소송을 염두에 둔.

◆ 이준식> 봐주기, 봐주기, 봐주기 부칙조항이죠.

◇ 정관용> 그런 부칙이네요.

◆ 이준식> 그러니까 다른 건은 거의 다 국가가 승소했고요. 이해승 건만 패배했는데 결국은 이해승 건을 봐주기 위해서 그걸 집어넣은 거로밖에 해석이 안 되는 거죠.

◇ 정관용> 어떤 사람이에요, 이해승?

◆ 이준식> 이해승은 전주 이씨 종친이고요. 후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귀족 가운데서도 굉장히 높은 작위를 받았고요. 상당히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조선귀족회라고 귀족들의 단체 회장도 하고. 친일 행적을 한 건 맞습니다. 법원이 뭐라고 변명을 했느냐 하면 귀족 작위를 받고 난 다음에 친일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공으로 귀족 작위를 받은 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재산을 취득한 게 친일의 대가로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

◇ 정관용> 이제 그런데 그 논리를 대법원도 인정했어요?

◆ 이준식> 대법원에서는 이상한 결정을 했습니다. 1심에서는 국가 결정이 맞고 2심에서는 국가 결정이 잘못됐다고 하면 판결이 엇갈린 거 아닙니까? 그럼 대법원에서 판단을 해야 되는데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위라는 거를 결정했습니다.

◇ 정관용> 무슨 말이죠?

◆ 이준식> 심리불속행위라는 건 뭐냐 하면 쉽게 얘기해서 2심 판결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굳이 대법원에서 따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저희는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몇몇 법조계분들한테 물어봤더니 말이 안 된다. 1심하고 2심 판결이 엇갈리면 대법원에서 판단을 해야지. 2심 결정이 났다고 해서 2심 결정이 났다고 해서 2심 결정이 맞다고 하면 대법원이 왜 존재하느냐, 이런.

◇ 정관용> 대부분의 소송에서는 국가 정부가 이겼는데 유독 이 재판만 이렇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세요?

◆ 이준식> 저는 그 이해승 후손이 아주 좋은 변호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제일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써서. 2심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2심 재판부의 재판장이 나중에 사법비리.

◇ 정관용> 사법농단.

◆ 이준식> 사법농단의 주역으로 꼽힌 박병대 대법관입니다. 그러니까 2심 판결에서 이해승 후손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한 다음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법관이 됐죠.

◇ 정관용> 변호인들은 어디 어느 로펌이었어요.

◆ 이준식>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로펌입니다.

◇ 정관용> 김앤장. 심지어는 일본 기업까지 대리하시는 데니까 뭐. 이제 이해승의 후손이 무슨 호텔을 갖고 있다.

◆ 이준식> 예전에 스위스 그랜드호텔이라고 불렀던. 상당히 큰 호텔이죠. 이해승 후손은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이미 많은 토지를 갖고 있었고요. 그 토지를 처분해서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다음 국립묘지법 개정 논의가 지금 나오고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부 공식기구에서 친일 행적 조사가 다 끝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립묘지에 묘역 옆에 친일 행적을 푯말이든 뭐든 이렇게 표시하든지 그게 싫으면 파가든지. 이렇게 하자라는 법 개정안이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준식> 예전에는 파묘를 주장했죠. 그러다가 요즘은 파묘도 한 방법이지만 정 후손들이 파묘를 못하겠다고 하면 그 옆에다가 친일행적을 적어놓는 판을 따로 세우자. 부끄러워서라도 이장을 하지 않겠느냐. 그러던 이 문제가 이제 국회에서 법 개정 논의로 막 불붙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백선엽 장군이 이제 사망을 했고 그러면서 백선엽 장군을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이 맞느냐.

◇ 정관용> 논란이 퍼졌죠.

◆ 이준식> 커졌죠. 그런데 동작동 현충원도 그렇고 대전현충원도 그렇고 장군 묘역과 애국지사 묘역이 같이 있습니다. 현충원에는 장군 묘역만 있는 게 아니라 애국지사 묘역도 있습니다. 적어도 애국지사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국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결정한 사람과 같이 묻히는 게 굉장히 억울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외할아버지는 동작동 현충원에 어머니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계시는데요. 후손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가슴이 아픕니다. 독립운동 하신 분들이 하늘나라에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내가 친일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과 같이 같은 곳에 묻혀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한번 그런 고민을 하면 답은 쉽게 나올 것 같은데요.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 그런 얘기까지 했습니다. 정 백선엽을 현충원에 모시려면 애국지사 묘역을 차라리 옮겨라.

◇ 정관용> 네, 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독립운동 하다 돌아가신 분하고 그 독립하던 분을 잡으러 다니던 분하고 같은 묘역에 있다는.

◆ 이준식> 적대 세력을 같은 곳에 모신 겁니다.

◇ 정관용> 최소한 친일 행적 푯말이라도 세워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 거죠?

◆ 이준식> 그런 거죠.

◇ 정관용> 법 개정 될까요? 이번 국회에서는.

◆ 이준식> 저는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준식> 고맙습니다.

[email protected]

<2020-08-14> 노컷뉴스 

☞기사원문: 이준식 “친일파 묘 그대로? 애국지사 묘역을 차라리 옮겨라”

※관련기사 

☞한국일보: 독립기념관장 “애국지사, 친일파와 같이 묻힌 사실 하늘서 아신다면…”

☞머니투데이: 독립운동가 잠든 현충원, 친일파 12명이 묻혀있다

☞시사뉴스: 독립운동가 옆에 친일파가?’ 힘 실리는 ‘친일파 파묘법’

월, 2020/08/17- 00:27
0
0

아직도 끝 못 맺은 일본인 명의 토지환수 문제의 역사
역대 정부 과거사 문제 무관심과 행정력 부족도 한몫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남동 종묘 담장 옆에 위치한 일본인 토지 일부. 해당 토지는 현재 국유화 작업을 거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일제에 침탈됐던 국권을 되찾은 지 75년이 흐른 2020년.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은 이 강토에 36년 일제강점기가 남긴 토지수탈의 흔적들을 완벽하게 털어내지 못했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영토 곳곳의 등기부등본이나 토지대장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땅을 보유했던 일본인들이 버젓이 소유주로 기재돼 있다. 광복 이후 토지 문제를 정리할 때 국유화됐어야 마땅했던 ‘일본인 명의 토지’들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14일 조달청과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해방 후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인 명의 토지가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으로 환수되지 못했다. 2012년부터 조달청이 이 작업을 전담하면서 8년간 본격적인 국유화 작업이 진행됐음에도, 현재까지 환수되지 못한 일본인 명의 토지는 총 3,052필지에 달한다.

역대 정부 일본인 토지환수에 무관심

전문가들은 일본인 명의 토지를 75년 동안이나 제대로 환수하지 못한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대대적으로 이뤄진 창씨개명 때문에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분하기 어려웠고 △해방 직후에도 이런 정교한 작업을 추진할 행정력이 부족했으며 △역대 정부가 일제 잔재 청산 등 과거사 정리 문제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 토지 환수 작업을 근본적으로 꼬이게 만든 배경은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모든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려 한 창씨개명(創氏改名)이다. 1940년부터 시행된 창씨개명의 결과, 1941년 기준으로 한반도 전체 호적 428만 2,754호 중 322만 694호(81.5%)가 일본 이름을 사용했다. 이 결과 부동산 공적 장부에도 일본 이름이 쓰이게 돼, 광복 이후에도 장부만 봐서는 토지의 소유주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미군정과 초기 한국 정부는 일본식 이름으로 된 공적장부상 실소유주를 추적해 한국인과 일본인을 분리해야 했다. 한국인의 것은 한국인에게 돌려주고, 창씨개명하기 전의 이름으로 대장에 기록해야 했다. 일본인의 것은 국가에 귀속시켜야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정치적 환경에서 이런 세밀한 작업은 불가능했고, 역대 정부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었다.

친일행위에 대한 청산이 부진했던 것도 이유가 됐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한 조미은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승만 정부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탓에 친일재산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인 명의 재산은 관심사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돈 문제도 있었다. 조달청 관계자는 “정부 수립 초기 국가가 재정마련을 목적으로 공적장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귀속 재산을 처분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 일본기업, 일본기관이 소유한 토지들은 광복 후 미군정법 등에 따라 한국에 귀속됐는데, 이 때 귀속 재산은 남한 국가 재산의 80%를 차지했다. 이 귀속 재산의 일부는 농지 개혁에 분배되거나 기업에 판매됐다.

친일재산조사위 해체되며 동력 떨어져

물론 이후 정부에서도 일본인 명의 재산을 국유화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졌다. 정부는 1985년 ‘1차 국유재산 권리보전조치’를 시작으로 누락된 일본인 명의 재산을 추적해 국유화했지만, 당시 조치는 일본인 명의 재산만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2006년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는 이전 정부 조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과거 조사에서는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4글자 이름만이 포함됐는데, 재산조사위는 3글자 이름 중 일부도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여기에 더해 재산조사위는 ‘일제강점기 재조선 일본인명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며, 일본인 재산 조사를 위한 핵심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일제시대 자료 1,028건을 통해 일본인 이름 26만9,595개를 파악함에 따라, 이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확인 절차가 명확한 근거에 따라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산조사위는 활동기간 연장이 불허되면서, 이 조사는 4년 만에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홍경선 전 재산조사위 전문위원은 “아직 일본인명 DB 제작을 위해 확인해야 했던 자료가 남아있는 등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이 중단돼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후 일본인 명의 재산 추적은 2012년부터 기획재정부의 위임을 받은 조달청이 전담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전문가들 “범정부차원 조사기구 필요”

현재 조사에도 한계는 있다. 지난해 5월 감사원은 특별감사를 통해 조달청이 △일본인명DB 검색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았고 △과거 재산조사위가 일본인 명의 재산으로 확정한 3,520필지를 조사하지 않고 방치했으며 △소유권 반환소송이 필요한 은닉의심재산 34필지에 대해 검토조차 하지 않고 소송을 보류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일을 특정 정부기관에만 맡길 게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포함된 범정부 차원의 조사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위원은 “법률적 기술적 문제들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체계적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도 “공적장부 일본 이름 지우기 사업을 하기 위해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자료를 분석하는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과거사 문제는 정권을 떠나 국가적으로 관리해야 할 문제인 만큼 민관이 합동으로 구성된 상설 기구가 필수”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email protected]
신지후 기자 [email protected]
임수빈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5> 한국일보 

☞기사원문: 창씨개명 탓 한국ㆍ일본인 구분 안 돼… 일제 토지 환수 첫발부터 꼬였다

일, 2020/08/16- 16:27
0
0

[광복절 75주년 기획 – 공유지 위에 선 친일파 ②] 서정주 집과 시비, 관악구 예산으로 관리

김성수, 서정주, 조택원, 김기수, 함화진, 주요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및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상 및 시비, 기념관 등이 공유지에 수십 년째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광복 75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현장에서 이를 직접 확인했다. [편집자말]

▲ 사당역 6번 출구 뒤쪽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미당이 살던 집이 있다. ⓒ 김종훈
▲ 사당역 6번 출구 뒤쪽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미당이 살던 집이 관광명소가 돼 운영 중이다. ⓒ 김종훈
▲ 사당역 6번 출구 뒤쪽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미당이 살던 집이 관광명소가 돼 운영 중이다. ⓒ 김종훈

“서울미래유산 서정주 가옥”

서울지하철 사당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서정주의 집’ 대문 옆쪽에 붙은 표지석 내용이다. 2013년 서울시는 서정주의 집을 “시작(詩作)의 산실로 시인의 자취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장소”라면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서울을 대표하는 유산 중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유무형 자산을 보전하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프로젝트다.

관악구 역시 이에 발맞춰 서정주의 집을 “시인의 숨결과 생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미당의 주요 유품들과 저서들을 전시하고 있다”면서 관악구 홈페이지에 ‘인기명소’로 소개했다. 현재 이곳은 관악구청 재산으로 등록돼 관리 운영되고 있다.

2003년 서울시는 서정주의 집을 매입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미당 서정주의 집이 한 건축업자에 매각될 상황에 놓이자 시비 7억 5000만 원을 들여 매입했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매입은 했지만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해 서정주 집은 빈집으로 방치됐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는 시비 10억 원, 구비 2억 5000만 원을 추가로 투입해 서정주의 집에 대한 개보수를 진행했다. 대문 우측 마당에 ‘미당 서정주의 집’이라는 파란색 간판까지 올려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서정주의 집’은 2011년 정식 개관했다. 이후 기념관 형태로 서정주의 유품과 시집, 사진 등이 전시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앞서 서정주는 2009년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시를 통해 학병과 지원병, 징병을 선전하고 선동했고, 산문을 통해 문인으로서의 ‘문필보국’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바 있다.

관악구 곳곳에 남은 서정주 흔적

▲ 사당역 6번 출구에 세워진 미당 서정주의 시비 ⓒ 김종훈

서정주는 2000년 사망할 때까지 말년 30년을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관악구에는 ‘서정주의 집’을 포함해 서정주와 관련된 기념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서울 지하철 사당역 6번 출구 남현예술정원 입구에 세워진 서정주의 시비도 이 중 하나다. 지난해 1월 기존의 수경공원을 철거하고 새롭게 개장한 남현예술정원에는 서정주의 시 <신부>가 시비로 설치돼 있다. 미당의 시비 맞은편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원수의 시비 <겨울나무> 역시 설치돼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정주의 집과 더불어 관악구 인기명소로 등재된 관악산호수공원에도 서정주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1997년 12월에 조성된 관악산호수공원은 서울대학교 정문 우측, 관악산 진입로에 자리한 도시자연공원이다. 관악구는 시비 앞쪽 안내판에 “우리구에 거주하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미당 서정주님의 관악사랑 정신을 담은 시비를 세워 애향심을 표상으로 했다”라는 설명을 기재했다.

‘서정주의 집’을 포함해 시비 등을 직접 관리하는 관악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정주 시인에 대한 시민들의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면서 “서울시에서 (서정주의) 집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관악)구에서는 최소한의 예산을 투입해 운영·관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악구는 “절충안을 찾고 있다”면서 “협의를 거쳐 서정주의 (친일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안내판 등을 설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정주의 집 등 기념물을 폐기하거나 용도변경을 할 계획이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 “민원 역시 상대적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서정주가 친일파인데 친일행위를 한 사람을 기릴 필요가 무엇이냐’라고 말하지만, 다른 쪽에선 ‘시인을 시인으로 평가해야 한다’면서 미당 서정주라는 사람의 업적에 대해 말한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안내판에 미당의 친일행적 부분을 기록하면 열람하는 시민들이 판단하지 않겠냐”라고 밝혔다.

미온적인 관악구… 춘천·부천 등 2019년 서정주 시비 철거

▲ 서정주의 집에 전시된 미당 서정주 생전 모습. 전시물을 재촬영했다. ⓒ 김종훈

관악구는 서정주의 기념물 철거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서정주의 시비 등을 보유했던 일부 지자체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9년 5월 춘천시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춘천문학공원 내 자리한 서정주, 최남선 등의 시비를 철거해 땅에 묻었다. 춘천시는 시비가 있던 자리에 “이곳, 춘천문학공원에 불손하게 들어앉은 일제강점기 친일 문인들의 흔적을 이곳에 묻는다. 슬픈 역사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것이나 민족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표지석을 세웠다.

사례는 또 있다. 2019년 8월 부천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관내 서정주의 시비 3개를 포함해 주요한, 노천명 등 국가공인 친일파로 등재된 인물들의 시비를 철거했다. 당시 부천시는 “시민들로부터 친일파의 시비를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다”면서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친일파 시비를 철거했다”라고 밝혔다. 철거된 빈자리에는 정지용의 시 ‘향수’를 담은 시비를 설치했다.

2019년 11월, 충남 태안군 주민들은 서정주의 시비를 세우려던 군의 건립계획을 집단적으로 반대해 취소시켰다. 당시 건립추진위원회는 서정주가 1956년 학암포를 찾아 ‘학’이란 시를 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군비 2000만 원을 들여 학암포해수욕장 인근에 높이 2m, 폭 1m 크기의 서정주 시비 건립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태안참여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돼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진행했고, 그 결과 시비 건립은 전면적으로 취소됐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은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정주 기념물 철거는 결국 단체장의 의지 문제”라면서 “이미 서정주의 시비를 철거한 지자체가 존재한다, 당장의 철거 등이 제한된다면 객관적인 사실을 담은 안내판이라도 바로 설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관악구에 자리한 서정주의 집을 비롯해 사당역과 관악산에 세워진 시비에는 그의 친일행적과 관련된 기록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다.

<2020-08-1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세금 20억 들어간 친일파의 집… 친일 안내조차 없고

수, 2020/08/19- 03:21
0
0

안익태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작곡가 안익태를 꼬집어 “민족 반역자”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에 관한 친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축사에서 최근 광복회가 독일 정부로부터 안익태의 친일ㆍ친(親)나치 관련 자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족 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라며 작심 비판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에 이어 친나치 행적은 최근 들어 새롭게 제기된 논란이다. 지난해 책 ‘안익태 케이스’를 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독일 연방문서보관소에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안익태의 친나치 행적을 고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안익태는 1942년 9월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음악회를 지휘했다. 만주국은 일본이 만주사변 직후부터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국으로,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를 상징하는 식민지 유형의 하나다. 이때 연주된 ‘만주국 환상곡’의 피날레가 바로 애국가다.

이 교수는 이어 일본 정보기관의 유럽 첩보망 총책이었던 에하라 고이치가 안익태의 실질적 후견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1943년 안익태가 조선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독일로부터 발부받은 제국 음악원 회원증에 ‘정치적으로 아무 하자 없음’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음에 주목했다. 나치가 자신들과 같은 편이라고 인증한 셈으로, 안익태의 유럽 활동이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와 나치 독일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안익태는 일왕을 찬양하는 음악을 만드는 등 친일 이력이 드라나면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됐다. 이에 대한 반발도 있다. 김형석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안익태 선생의 친일은 근거 없는 억지”라며 “만주환상곡 작곡과 지휘는 사실이었지만 당시 일제하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제국 음악원 회원증도 독일에서 지휘자 겸 작곡가로 일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15일 광복절 기념축사 발언을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김원웅 회장은 축사에서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부 이승만 평전’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1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이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없애버린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해방된 국가치고 반민족 행위자를 처리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김 회장의 발언을 일부 지지했다.

김 전 관장은 그러면서 “진보 보수, 좌파 우파 논리를 떠나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ㆍ1운동과 4ㆍ19 민주정신을 잇는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몰고 가는 일부 정치권의 인식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라며 김 회장의 발언을 비판한 일부 야당 인사들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와 ‘결탁했다’는 김 회장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이 일부 친일파를 기용한 것은 사실이나 친일파와 결탁해 반민특위를 무력화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친일 청산을 잘 했다는 주장도 있다. 보수 역사학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 기용해야 했기 때문에 행정 분야에 친일파가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했다”며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동원하려 했고, 불가피하게 죄악이 심한 사람들만 처벌하는 온건한 정책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진중권 전 교수는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백선엽처럼 친일을 했으나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 김원봉처럼 독립운동을 했으나 북한정권 출범에 도움을 준 이들처럼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명과 암의 이중 규정을 받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역사와 보훈의 문제를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 논의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 출신에 광주학살의 원흉들에게 부역한 전력이 있는 분이 어떻게 ‘광복회장’을 할 수가 있나”라며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친일파들은 물론이고 군부독재, 학살정권의 부역자들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 김 회장을 공격하기도 했다.

한소범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8> 한국일보 

☞기사원문: 김원웅 광복회장 발언에 재조명되는 “친일 이승만, 친나치 안익태”

※관련기사 

☞경향신문: [여적]애국가 논란

☞서울의소리: 김원웅 광복회장 광복절 기념사 동영상

화, 2020/08/18- 20:08
0
0

[오디오북] 달과 소년병

지난 7월 23일은 분단 현실을 녹여낸 명작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1936~2018년)의 2주기였다. 기일을 며칠 앞둔 7월 8일 선생의 아들 음악 칼럼니스트 최윤구 씨 부부와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했다. 2주기를 맞아 최인훈의 문학세계를 널리 알리고자 단편 「달과 소년병」을 오디오북으로 만들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독립전쟁 100년,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독립군을 소재로 한 이번 오디오북 제작은 더욱 의미가 깊다. 박정자 씨는 최인훈의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 주연을 맡은 이래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재능기부로 흔쾌히 낭독을 맡아 주었다. 녹음은 민족문제연구소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한편 문학과지성사는 7월 23일 「달과 소년병」(1983)을 표제작으로, 등단작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1959)와 「구운몽」(1962) 등 9편의 중단편을 엮어 ‘문지작가선’ 1권으로 펴냈다.


※관련기사

☞뉴시스: 문지작가선 시리즈 첫 소설, 최인훈 ‘달과 소년병’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문학과지성사가 새 소설 시리즈 ‘문지작가선’을 펴냈다. 한국 문학의 중추로서 의미있는 창작 활동을 이어온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저자 : 최인훈 ㅣ분야 : 문학 ㅣ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l 출간일 : 2019-07-23 l 판형 / 정가 : 130*207mm (597p) / 17,000원

가장 먼저 소설가 최인훈(1936~2018)이 독자를 만난다. 1주기(7월23일)를 맞아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이 나왔다.

등단작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1959)와 ‘최인훈 전집’에 미수록됐던 표제작 ‘달과 소년병'(1983),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온 중편 ‘구운몽'(1962), 작가 개인 이야기가 담긴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 제1장'(1970) 등 9편이 실렸다.

“오후 망보기를 하고 있었다. 왜군들은 진지를 다 끝내고 쉬고 있다. 야산에 자란 잡목 그늘에 누워도 있고, 천막 안에도 있고, 서너 명이 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소년은 긴장한다. 왜병들이 울타리도 없는 운동장에 들어가서 선다. 구경을 한다. 그러더니 줄다리기에 두 편으로 갈라서 끼어들어 어울린다. 흰 이가 드러나는 왜병들과 아이들 영차영차 소리, 사람들이 와르르 흔들린다. 망원경을 잡은 손이 제 손 같지 않게 흔들리는 것이다.”(‘달과 소년병’ 중)

“여자들한테 그런 멋대로의 풀이를 붙인다는 건 남자들한테도 안 좋아요. 이쪽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변히 굴겠어요. 제가 말씀해드리지요. 여자는 남자와 꼭 같이 사람입니다.”(‘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중) 597쪽, 1만7000원

화, 2020/08/18- 19:05
1
0

[광복절 75주년 기획 – 공유지 위에 선 친일파 ③] 주요한, 조택원, 김기수, 함화진

김성수, 서정주, 조택원, 김기수, 함화진, 주요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및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상 및 시비, 기념관 등이 공유지에 수십 년째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광복 75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현장에서 이를 직접 확인했다. [편집자말]

▲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위치한 주요한 시비와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 친일과 항일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기념물이 같은 공간에 세워져 있다. ⓒ 김종훈

“한글을 지킨 분들을 위해 세워진 기념탑이야.”

5일 오후 초등학교 자녀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공원을 찾은 김은혜(43)씨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그는 기념탑 앞쪽에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기’라고 명명된 안내문을 자세히 살핀 뒤 “이런 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한글을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면서 “제대로 알고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라고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조선어학회사건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한글연구를 한 학자들이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투옥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에서 불과 20m 떨어진 장소에는 전혀 다른 기념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국가공인 친일파 주요한의 시 <빗소리>가 새겨진 시비다.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로 전향했고, 이후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 전선에 보낼 징병과 학병을 뽑기 위한 연설과 강연도 매진했다. 무엇보다 조선문인협회 간사이자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활동하며 최전선에서 일본어 보급운동에 앞장섰다.

주요한의 시비 뒤쪽에는 그의 약력이 새겨져 있다.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한 그는 언론사 사장과 국회의원, 장관 등을 역임했다. 1970년 대한해운공사 사장이 됐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안중근기념사업회 등에서도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1979년 11월 27일 사망 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비 어디에도 친일행적에 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직접 관리하는 세종로공원 주요한의 시비는 1993년 세워졌다.

주요한 뿐 아니다… 국립극장 입구 조택원 춤비

▲ 서울 중구 국립극장 앞에는 국가공인 친일파 조택원의 춤비가 세워져 있다. ⓒ 김종훈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주요한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해 발표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주요한 시비에는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주요한의 시비 뿐 아니다. 서울시에는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들의 기념물이 ‘과거 이력’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자유롭게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대표적인 기념물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입구에 세워진 국가공인 친일파 조택원의 춤비다. 일제강점기 지원병과 학병 출진 축하 모임에서 공연을 한 조택원은 내선일체 주제의 무용 <부여회상곡>을 연출한 인물이다. 이런 이력 때문에 2009년 정부는 조택원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해 발표했다.

그러나 조택원의 춤비 하단 석판에는 “우리 근대무용의 선각자이며 불멸의 춤작품을 남기신 무용가”라는 내용의 음각만 새겨졌을 뿐 그 어디에도 그의 친일과 관련된 행적이 기록돼 있지 않다.

광복 후 조택원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족령이 내려지자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을 돌며 공연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물러난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고문, 한국민속무용단과 한국민속예술단 단장을 지냈다. 1974년 10월 무용가 최초로 금관훈장을 받았다. 국립극장 앞 춤비는 1996년 3월에 세워졌다.

국립국악원의 김기진·함화진 동상의 경우… 그나마 친일 안내문

▲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는 친일파 김기수와 함화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이들의 친일행적을 기록한 안내문도 마련돼 있다. ⓒ 김종훈
▲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는 친일파 김기수와 함화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이들의 친일행적을 기록한 안내문도 마련돼 있다. ⓒ 김종훈

주요한, 조택원과 달리 서울시에 존재하는 친일파 기념물 중에는 친일 행적을 함께 표기한 사례도 있다.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 설치된 김기수, 함화진 동상이다. 1994년과 1998년에 각각 세워진 두 동상은 건립될 당시엔 친일행적이 기재되지 않았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두 사람이 모두 이름을 올린 후에야 긴 논의 끝에 친일행적을 포함하는 안내문이 설치됐다.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다. 2015년 5월 국립국악원이 국악원과 우면산과의 경계지점에 원로 국악인을 기리는 ‘동상공원’을 새롭게 조성할 때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된 김기수, 함화진의 동상을 포함시켰다. 두 사람의 동상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까지 나서서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결국 국립국악원은 자체적으로 동상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사안을 논의했다. 2015년 6월 국립국악원은 김기수 함화진 동상 옆에 두 사람의 구체적인 친일행적을 적시한 안내문을 설치했다.

서울시 “친일파 기념물 처리기준 필요”… 김원웅 광복회장 “법안 마련할 것”

서울시는 6일 <오마이뉴스>에 “(친일파 기념물 철거 등 문제는) 지자체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기준을 마련할 확실한 법안이 필요하다, 법안에 맞춰 제도적으로 이 사안을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친일파 동상을 포함하는 기념물에 관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김원웅 광복회장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결국 관련법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이어지는 것 아니겠냐”면서 “2020년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광복회가 관련 사안을 정리해 공식적으로 서울시에 문제제기를 하겠다, 21대 국회에서 친일찬양금지법을 포함해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인물 중 서울시가 직접 관리하는 동상 및 시비는 총 4개다. 김성수, 주요한 이외에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에 마련된 김동인 문학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 마련된 노천명의 ‘사슴’ 시비 등이 있다. 전국으로 확대하면 친일파의 동상과 시비, 기념관 등 숫자는 더욱 크게 늘어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5년에 발간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에 따르면 공유지를 포함해 학교 및 군부대, 공원 등 공공시설에 설치된 국가공인 친일파 관련 기념물은 전국 22개 자치구에 34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0-08-1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과거는 나몰라’ 친일파 시비, 독립운동 기념탑 옆에 버젓이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동아일보 창업주 동상 앞 ‘친일안내문’이 만든 변화 [광복절 75주년 기획 – 공유지 위에 선 친일파 ①] 김성수 

☞오마이뉴스: 세금 20억 들어간 친일파의 집… 친일 안내조차 없고 [광복절 75주년 기획 – 공유지 위에 선 친일파 ②] 서정주 집과 시비, 관악구 예산으로 관리

수, 2020/08/19- 05:06
0
0

[앵커]

광복 75주년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조례 제정 움직임이 경남에서도 본격화 되었습니다.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상식을 미래 세대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김소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민족문제연구소가 1급 친일파로 분류한 박시춘.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나랏님의 병정 되기를….”]

일본군 병정 지원을 독려하는 ‘혈서 지원’ 등 군국 노래 13곡을 작곡했습니다.

밀양시는 지난해 사업비 100억 원을 들여, 박시춘의 업적을 기리는 가요박물관 건립하려다 지역사회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이현우/밀양시의원 : “그런 사람의 공을 기린다고 하면, 또다시 잘못된 일이 벌어질 것이고….”]

경남의 한 초등학교 안에 심겨진 교목, 왜향나무입니다.

1909년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식민통치 홍보를 위해 심은 걸 계기로 한반도 전역에 퍼졌습니다.

한 학부모 단체 조사 결과 일본이 원산지인 교목과 교화를 쓰는 학교는 경남에서만 140여 곳 친일 인사가 만든 교가를 쓰는 학교도 20곳에 달했습니다.

[전진숙/교육희망경남학부모회 회장 : “사례에서 보면 뽑아낸 사례가 나오는데, 말씀을 드렸는데도 (제거가)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광복 75주년이 넘도록 만연한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조례 제정이 추진됩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추모하거나 기념하는 사업에 경상남도 예산을 지원할 수 없도록 한 것이 핵심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을 쓸 수 없도록 했는데, 상징물에는 군사기 외에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피해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디자인이나, 일제 통치를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창작물도 포함되었습니다.

[김영진/경남도의원 : “지금까지 못했던 부분을 다음 후세대를 위해서라도 정리를 해놓아야 되지 않을까 하고 다짐합니다.”]

일제 잔재 청산 조례는 행위자 지칭 용어와 기준 등에 대한 입법 검토를 거쳐 오는 10월쯤 경남도의회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김소영입니다.

촬영기자:권경환

<2020-08-18> KBS NEWS 

☞기사원문: 광복 75년, “일제 잔재 지운다”…조례 제정 본격화

수, 2020/08/19- 19:48
0
0

<앵커>

그제(15일)가 광복 75주년이었습니다.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리고 또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요.

후손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잘하고 있는지 민경호 기자가 유서 깊은 현장들을 찾아봤습니다.

<기자>

언덕 밑, 흰옷을 입은 사람 셋이 묶여 있고 맞은편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앉아 쏴 자세로 늘어서 있습니다.

1904년 9월 일제의 철도 건설을 방해했다가 처형된 의병 김성삼, 안순서, 이춘근 열사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역사학계에서는) 굉장히 초기에 일본에 저항해서 맞서 싸우다가 총살형을 당한 의병이라고 이렇게 규정하고 있거든요. 지금 훈장이 서훈돼 있는 상태입니다.]

이 장소가 공덕리였다는 당시 기록과 사진 속 지형을 바탕으로 처형 장소로 추정한 곳은 현재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일대.

이곳이 세 의병들이 철도부설 방해 공작을 벌였던 옛 경의선 철길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선로만 남아 있는 상태인데요, 길 건너편 주택가가 높은 언덕으로 돼 있어 유력한 처형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표석은 없습니다.
1988년 서울시가 표석 설치를 추진했지만 흐지부지됐고 30년 넘는 세월이 흘러 경의선 어디에서도 세 열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해방 직후 친일 청산 기관이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 표석은 제자리를 잃었습니다.

표석이 있던 건물이 재작년 철거됐는데 철거업자가 표석을 발견해 설치 주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알려 가까스로 되찾았습니다.

[김홍재/철거업체 직원 : 그 표석이 저희가 공사할 때도 지장물 (장애물)이 됐던 거죠. 표석을 놔두게 되면 훼손될 것 같아서 민족(문제)연구소에다가 제가 전화를 해서…]

새 건물이 올라서고 있는데 표석을 어떻게 보관할지, 건물이 다 지어지면 어떻게 다시 세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군경과 시가전을 벌이다 자결한 김상옥 열사 순국지도 여전히 알아볼 수 없습니다.

5년 전 각계에서 표석 건립이 제안됐지만 진행된 것은 없습니다.

[방학진/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2015년 8월) : 1천 명의 일제 군경과 싸웠던 이 장소인데, 이 장소에는 정작 아무런 표석이 없는 거죠.]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몇 년 전에도 저희가 이 자리를 방문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서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관계기관에서 조금만 더 성의를 가졌으면 (작은 흔적이라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75번째 광복절, 일상 속에서 선열들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민경호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7> SBS NEWS 

☞기사원문: 총 든 군인 앞 열사들의 마지막…표석조차도 없다

수, 2020/08/19- 23:31
1
0

일본어투 바로쓰기 등 생활 속 친일 잔재 청산에도 나서

[수원=뉴시스]경기도의회 전경. (사진=경기도의회 제공)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경기도의회가 광복 75주년을 맞아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친일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 등 생활 속 친일 잔재 청산에 나선다.

15일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김경호(더불어민주당·가평) 친일잔재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경기도 친일 잔재 청산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조례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로 인한 경기도 친일 잔재 청산을 지원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3·1 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추진된다.

주요 내용은 ‘친일 잔재’를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로 인해 경기도에 남아 있는 반민족적인 일제의 흔적”으로 정의하고, ‘경기도 친일 잔재 청산의 지원 위원회’를 설치해 친일 잔재청산 관련 사업 추진을 지속해서 하는 것이다.

또 도지사에게 친일 잔재 청산의 지원을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할 책무를 부여한다.

김 위원장이 소속된 친일잔재청산 특별위원회는 오는 11월 4일 활동기간이 끝날 예정이지만, 6개월 연장해 생활 속 친일 잔재 청산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지난 4월에는 생활 속 ‘일본어투 용어’ 바로쓰기를 독려하고, 도의회 3층 ‘간담회의실’ 명칭을 ‘정담회의실’로 바꿨다.

특위는 최근 도가 ㈔민족문제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친일문화잔재 조사 연구용역’에서 확인한 도내 친일 잔재를 바탕으로 청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조사된 친일잔재는 ▲친일인물 257명(이흥렬, 현제명, 이광수 등 문화계 15명) ▲친일기념물(기념비·송덕비) 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 89개 ▲욱일기·일장기를 상징하는 모양의 교표 12개 등이다.

이 가운데 학생들의 역사관 정립·교육 차원에서 친일 잔재 교가·교표를 바꿔나가는 작업을 먼저 진행한다.

특위는 학생들이 친일 잔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 교가·교표를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학생들과 도의회가 합심해 친일 교가·교표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직접 바꿔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법을 고쳐서 지원하거나 바꿔야 되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 생활 속 친일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꾸는 노력을 해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8-15> 뉴시스 

☞기사원문: 광복 75주년’ 경기도의회, ‘친일 잔재 청산 조례’ 추진

목, 2020/08/20- 21:29
0
0

[서울=뉴시스]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사진 = 소명출판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제12회 임화문학예술상 수상자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선정됐다.

임화문학예술상 운영위원회와 상을 공동주관하고 후원하는 소명출판은 20일 이같이 수상자를 발표했다.

임화문학예술상은 한국 근대문학사상 독보적 존재로 꼽히는 임화의 문학적,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2008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해 제정된 상이다. 임화의 문학예술사적 업적에 갈음하는 창작, 비평, 학문 및 실천적 활동에 업적을 남긴 인사에 수여된다.

임화문학예술상 심사위원들은 연구·평론에서 임 소장의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가 상의 뜻에 걸맞는 의의와 깊이를 고루 담았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임화의 탄생일을 기념해 오는 10월10일 오후 5시30분 민족문제연구소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수상자에는 상금 1000만원과 상장 및 상패가 수여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8-20> 뉴시스 

☞기사원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제12회 임화문학예술상 수상

금, 2020/08/21- 02:40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