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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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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익명 (미확인) | 수, 2018/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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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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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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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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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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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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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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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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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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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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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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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의 솔직한 대화를 하자고 한 그 슬로건을 폐지시키고 국민들과 소통하자고 합니다.

 

 

블로그 총방문자 4,107,166 명을 돌파하면서 네티즌 여러분들께 고합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7710

 

 

독립운동가의 묘지 표지석을 보고도 국가보훈처는 불인정을 하는가?

 

▲ 홍덕문 선생의 묘비를 살펴보는 일행

 

 

▲ 소요산 입구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 비각

 

동두천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중 고문으로 출소 직후 사망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천 신북면 계류리에서 발견됐다. 홍덕문 선생은 구한말 애국지사로 본명은 병준, 본관은 남양이며, 홍복영의 아들로 1864년(고종1년) 10월 1일 동두천시 걸산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000여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形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이런 선생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 1975년 동두천 노인회가 독립유공자추모회를 결성해 시민의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고, 1991년에는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이 건립되었다. 현재 비각은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서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홍덕문 선생의 묘지에 대한 사료가 없어 33년간 방치된 채 무연고 묘로 전락해 갔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20일 김정자 시의원, 이명수 향토학자, 동두천문화원 이계홍 사무국장 등과 함께 포천 신북면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찾아 나섰다. 이계홍 사무국장에 따르면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함된 임야가 경매에 의해 소유자가 변경되었고 해당 소유자가 사업장을 확장하려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순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판단이 들어 부랴부랴 묘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

 
물어물어 찾아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는 관리가 전혀 안된 듯 잡초와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또렷한 비문이 없다면 도저히 누구의 묘지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을 정도로 세월의 풍파를 홀로 맞이하고 있었다.
향토학자 이명수 씨는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속히 이장해야 하는데, 선생의 직계후손들이 거의남아 있지 않아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에서 이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후손된 도리를 망각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정자 시의원은 “이번에 묘지이장은 물론 홍덕문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홍덕문 선생의 얼을 되살리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기 위해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 애향단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덕문 선생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동두천시와 사회단체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천군에 거주하는 이희빈 씨는 홍덕문 선생과 대고모부(고모할아버지) 관계로, 홍덕문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매번 자료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희빈 씨는 “보훈처가 요구하는 증거를 찾으려면 국가기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가보훈처가 요구하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한편, 이장과 관련해 남양 홍씨 종문인 홍운섭 의원은 “근 시일 내에 종문회에 묘지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알리고 종문회 차원의 도움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으며, 비각 세우기를 주관했던 애향동지회 김승희 회장은 “애향동지회 측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 내부 중지를 모아 홍덕문 선생 유해를 동두천시로 이장하는데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뜻을 피력해 동두천시로의 유해 이장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홍승철기자([email protected])

 

 

양주.동두천신문& yangju.newsk.com 콘덴츠,정보 전재할 경우 출처를 명기하여 주십시오
Copyright by yangju.newsk.com

 

 

현충일 추념식 동영상입니다.

http://asx.kbs.co.kr/player.html?title=특집&url=1TV$20100606$special20100606_01_00_00_m&type=201&chkdate=20100607003324&kind=300_2week

 

위애서처럼 언론에서는 아니 국가에서는 이렇게 현충일이라고 추념식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추념사를 하셨는데

아래의 내용들은 어찌하여 그렇게 내동댕이 치고 계신지? 이 글을 보시는 전국민들께서 객관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이래도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가 있는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아 래 ———————

 

 

언제까지 이 치욕의 역사를 그렇게 방관만 하고 계시렵니까?

 

또다시 이 땅에서 이렇게 국회에 이렇게 일장기 걸리는 모습을 보시려고 그러십니까?

 

이 민족의 그 처절했던 과거를 잊으면 결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짜 유공자를 배출해 온 국가 보훈처
http://blog.daum.net/56dhyoon/15846428

윤덕호 감독 님께서
‘ 동두천시 명예가 걸린 독립투사 홍병준(덕문) 선생
서훈을 정부에서 인정하게 하는 일 ‘ 이라고 하시면서
과거의 그 오욕의 역사를 재조명하시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행여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이 억울한 사연을 꼬오옥 인지하시고
아래 동영상을 한 번 보십시오!
동영상 자료를 올립니다!

 

본 동영상 자료는 민족반역자 처단협회의 도움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1461

 

 

 

 

그 언제나 밝고 명랑한 국민들의 웃음과 희망을 보게 될려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경기북부일보 기사내용입니다.

http://www.kgbnews.kr/sub_read.html?uid=3518

 

 

동두천문화원에서는 지난 10일 10:30 구한말 애국지사인 홍덕문 묘(포천 신북면)를 화장하여 소요산입구 지사각에 안장하고 중요무형문화제104호 새남굿 주관으로 위령제를 지냈다.

홍덕문선생은 1864년 동두천 걸산동에서 출생, 구한말의 애국지사로 자는 덕문(德文),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복영(福永)의 아들로 일제시대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형독(刑毒)으로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한 애국지사 홍덕문선생의 빛난 얼을 되새겨 의열(義烈)의 감(感)을 후세에 지표로 삼기 위하여 시민의 성금으로 추모비를 동두천상봉암동 산32-1번지 세웠으며, 홍덕문 추모비는 1986.4. 28 동두천시 향토유적지 제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출처:동두천시청<콘덴츠는 해당기관의 홍보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Copyright ⓒ 경기북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blog.daum.net/hblee9362/11304072

 

 

 

 

http://blog.daum.net/hblee9362/11304073

 

 
http://blog.daum.net/hblee9362/11304074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위령제를 지낸다 천도제를 지낸다 하면서
행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렇게
이 분의 독립운동사실을 불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요산 관광 안내도에 홍덕문 선생 추모비 안내

동두천시 노인회에서 노인들께서 직접 목격하신 분들이 성금으로 세운 추모비 입니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그 분의 넋을 기리고자 사비를 털어 세운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등 파기시켜 버렸는지 기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데다가 감추었는지 알 수도 없는 기록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목격자의 진술을 무척 심도있게 다루면서 어떻게 그 때 목격하시고 그 고문을 당하시고 그렇게 결국 돌아가시게 된 그 분의 모습을 보신 분들이 그렇게 국가에 상정을 하였어도 아니라고 들어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니라고 우기는데 현충일을 맞이 한다고 행사를 기념한다고 공휴일로 지정하여 숭고한 애국애족을 기리자!

고, 하면서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의 비문도 거짓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동북공정을 하여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고구려의 옛 땅도 우리나라의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생각으로는 도저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동두천시 사적자료입니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적자료로 보관하고 있는 역사가 허위란 말입니까? 만약에 허위라면 이렇게 기록하고 관리해서는 아니될 것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에게 ” 거짓말 하라! ” 고, 가르치는 꼴이 될 것이니까요!

지금이라도 꼭 밝히십시오! 그 오욕의 역사를 말입니다!

그 일가붙이들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하다못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던 그 때에 그래도 이 민족의 등불이 되겟다고 그 일본의 만행을 보다못해그렇게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다가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던 댓가가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데도 아니라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동두천시에서는 향토문화유적 제 3 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유적이 국가보훈처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런데 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 분께서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기록하여 자랑하는 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버젓이 내세워서 붙여놓고 여기를 보라는 듯이 경기도 동두천시민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닌가 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동두천시민들께서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분의 독립운동 사실을 꼭 밝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요산 역에 광장에 그렇게 광고를 하실 수 없지요!

그 분의 집안과 일가붙이들은 일본놈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하였는데도

국가에서는 인정은 고사하고 그 분의 명예마져 회복시키려 하지 않는데

왜? 광고를 하면서 동두천시 자랑을 하십니까?

 

삼일절은 태극기가 부끄러운 국경일입니다.
홍덕문선생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추모서명을 받습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3119

토, 2018/01/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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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에필로그

수, 2017/10/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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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취소되어야 한다>
김종필이 죽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수를 누리다 갔다.  법적 단죄도, 역사의 단죄도 없이 편히 살다 고이 눈을 감았다.  이 나라와 국민에게 지은 죄악이 얼만데, 그 죗값을 한 푼도 치루지 않고 갔다.  그래서 애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을 단 한명도 단죄하지 못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위에 두텁디 두터운 한 켜의 부끄러운 역사가 또 쌓인다.

김종필의 죄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으나, 그는 4.19 민주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으며 이 나라에 군사독재라는 포악한 괴물을 풀어 온 나라를 수십년 피맺힌 고통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포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으로서 공작정치, 정보정치를 펴며 지식인, 학생 등 각계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 탄압하며 불구로 만들거나 저승으로 보냈던 장본인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품격도 자존도 흥정대상으로 삼았던 용서받지 못할 자이다.

그와 박정희로 인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맹아기부터 훼손되고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해 아직도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반민주 세력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구부러지고 더러워지고 퇴행했는가?

그런 자의 죽음을 슬퍼한다면 살아가며 슬퍼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정부가 그런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돈다.  ‘국민’훈장이라니?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자는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더구나 민간인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이라니?  나라꽃 ‘무궁화’가 그에게 어울리는가?

일각에서는 ‘족적’과 ‘예우’를 말하는 모양이나 ‘족적’도 어떤 족적인지가 중요하고 예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고통속에 몰아넣은 그의 족적을 기려 예우를 하려면 차라리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며 살다간 이름 없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족적을 기리고 예우하라.

우리 ‘국민’에게는 죽으면 모든 죄를 사해주려는 DNA가 있는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도 사후에 면죄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세상 사람이 본다면 굳이 선행을 하며 살려고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니 살아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한국인의 율법’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친일청산도 못했는데 반민주 청산도 못한다면 어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사거와 함께 그의 죄명이 다시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무한 스크롤 되는 마당에 그런 자에게 최고의 훈장을 준다는 건 과거에 그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키려 목숨 걸고 투쟁했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국민을, 그리고 역사를 얕보는 행위다.  거기에 ‘촛불’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부디 한평생 ‘허업’을 좇으며 살았던 한명의 기회주의적 정치인의 사거에 정치적 저울질을 함으로써 이 정권의 정체성이 무언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그리고 역사의식이 어떤지 의심받을 짓 하지 말고,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들이 이 정권에 무엇을 원했는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서, 한눈팔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라.  ‘촛불’의 명령대로 강단있게 가라.

2018. 6. 25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김범태,  여인철

(어제 제가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입니다)

화, 2018/06/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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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

Ids피해자입니다.

김성훈의 사기로 저희 가정은 한순간에 경제적 몰락만이 아니라

가정의 평화도 깨졌습니다. Ids사건으로 37명이 목숨을 잃으신걸로 압니다

피해자들에게 김성훈 파산은 또 하나의 깊은 절망입니다

사기꾼을보호하는 법과 사회에 솔직히 환멸까지도 느낍니다

민족연구소에서는 불의를 위해 싸워주시는 걸로 압니다

이 사건은 불의가 아니던가요

법을 모르는무지로 당하기만하는데 법을 아시는 변호사님께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주시면 안되는걸까요

파산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도 받고

희망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20여명의 투자자가 채권자라며 신청한 파산에 저는 동의한적이 없습니다

1만2천명의 피해자들의 의견을 다 수렴하시고

현재 진행중인 파산을 멈춰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김성훈 파산만큼은 막아야 피해자들이 한줄기 희망울 가지고

김성훈을 상대로 끝까지 싸워볼수 있지 않을까요?

화, 2017/12/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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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정부 위탁으로 고려대 연구팀이 작업중…2019년 완성본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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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이 소녀상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현재까지 발견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국내외 공문서와 언론 기사, 피해자들이 남긴 기록을 망라해 통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정부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4일 학계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2012년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팀(책임자 정태헌 교수)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사료 DB화 사업’을 위탁했으며 현재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각종 문서와 유물, 연구 성과, 보도된 기사 등 총 8만여 건을 조사·수집하고서 이들 자료에 유형·생산자·생산 시기·소재지·소장자 등 항목을 부여해 목록을 작성해왔다.

연구팀은 현재 자료 목록 중 중복된 것들을 추려 내고 오류를 수정하는 검수 작업을 진행 중이며, 2019년에는 완성된 DB가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들을 통합해 DB화하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가부는 DB가 완성되면 이를 웹사이트에 공개해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학술·교육 등 목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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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자료 DB를 위한 과정 (서울=연합뉴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팀(책임자 정태헌 교수)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사료 데이터베이스(DB)화 사업’을 위해 분류한 자료들의 모습. 연구팀은 8만여 건의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목록을 작성해왔다고 밝혔다. 2017.12.24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DB화가 완료되면 학술 역량 확대는 물론 교육이나 시민단체 활동 등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키워드로 검색이 가능한 DB의 특성상 필요한 자료를 찾기 쉬워지고, 정보의 종류나 출처도 빨리 파악할 수 있다.

통합 DB 구축 외에도 연구팀은 중요 공문서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키워드를 추출했으며 일부 중요 문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해석·번역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자료의 순서나 오기, 누락 등 기존 공개된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박한용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는 관련 자료를 보유한 국내외 단체와 연구자들을 꾸준히 만나 설득한 끝에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DB화라는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여러 관련 단체들과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7-12-24>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자료 한눈에…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한다

※관련기사

☞매일경제: 여가부, 일본군 위안부 자료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한다

화, 2017/12/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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