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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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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익명 (미확인) | 수, 2018/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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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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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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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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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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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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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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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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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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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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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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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제67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185점 보내와
6월 18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7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보성문화>, <새전남>, <월간호남> 등 전라도 지역에서 발행한 잡지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기금전달식 후 자료 기증 잇달아
▪ 기타무라 메구미 씨, 제7차 일본 교류관계의 소장자료 전달
지난 6월 9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기금전달식에서 기타무라 메구미 씨가 교류단체와 개인의 소장자료를 전달받아 6월 9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일본역사사진첩>(1914), <황족화보>(1930)등 총 5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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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카와 마사키(재한군인군속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씨가 2003년 재한군인군속 추가 제소에서 사용한 플래카드, 2009년 군군재판 도쿄고등법원 판결 후 지원하는 모임이 받은 플래카드 2점을 기증했다.

야마모토 나오요시(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씨가 <계간전쟁책임연구>, 군인군속재판관련자료등책자와문서, 현수막을기증했다.

야스다 치세 씨가 <아시아태평양전쟁한국인희생자보상청구사건소송>(1992)을기증했다.

평화교육연구위원회에서 <新潟県内における韓國·朝鮮人の足跡をたどる>(2010), <平和教育委員會資料シリーズ 第2集 新聞などに見る新潟県内韓國朝鮮人の足跡>(2006) 도서 3권을 기증했다.

야노 히데키(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씨가 활동했던 자료 모음인 플로피디스크, 카드, 명함 파일 등 다량의 자료와 지난 2018 남북정상회담 후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 등을 기증했다.

히구치 유이치(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공동대표) 씨가 6월 18일 「용산시가도」(1929)를 기증했다. 이 지도는 용산 일본군기지와 용산역 및 주변의 철도기지 등이 표시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번 호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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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도시코 씨가 2014년 6월 27일 기증에 이어 <일본의 전사>등 강제동원관련도서31권과 ‘일본정부와 피해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라’에서 찍은 사진 등을 기증했다.

 

▪ 3월 24일 김삼웅 지도위원이 1962년 발행한 『동경재판』(전3권)을 기증했다. ‘동경재판’은 극동군사재판소가 제2차 세계대전 중 극동지역의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하였던 재판으로 정식명칭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이다. 이 책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내용을 기록한 책으로 조일신문법정기자단에서 작성했다. 동경재판 당시 법정사진과 함께 재판의 모든 과정을 담은 유일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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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이덕문 회원이 지난해에 이어 소장자료를 기증했다. <제13회숙명여자대학교졸업앨범>(1964)등 도서 3권이다.

▪ 6월 14일 호시카와 가즈에(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 씨가 아베 반대 표찰 1점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수, 2018/08/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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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와 청년시대여행이 공동 주관하는 ‘일제 강제동원과 야스쿠니신사-촛불원정대 특강’이 7월 4일부터 매주 목요일 민족문제연구소 강연장과 ‘청년협동조합 몽땅’의 사무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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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강으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올해 8월 도쿄에서 열리는 ‘야스쿠니의 어둠에 평화의 촛불을’ 공동행동 참가자를 대상으로 마련된 것으로, 현지 행사에 앞서 참가자들이 한일관계와 야스쿠니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동북아 평화공존의 방안을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준비되었다.
1강에서 김진영 선임연구원은 일제식민지배의 특징과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였다. 이와 함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례와 한일 양국정부의 대응을 통해 강제동원 문제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았다. 2강에서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은 야스쿠니신사의 역사를 바탕으로 ‘천황제’와 야스쿠니 이데올로기의 작동원리, 그 허상과 야만성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현 일본사회의 사상적 근원, 우경화의 연원을 설명하여 강좌 참가자들과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7월 19일 3강에는 영화 ‘안녕사요나라’ 상영회와 주인공인 이희자 ‘보추협’ 공동대표의 강연이 준비되어 있고, 7월 26일 4강에는 촛불행동 설명회와 참가자 전체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 김진영 선임연구원

수, 2018/08/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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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반민특위 설립 70주년을 맞아 6월 20일 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아들인 김정륙 회원(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1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김정륙 회원은 당시 서울 충무로에 있던 반민특위 위원장 관사로 이승만 대통령이 찾아와 김상덕 위원장을 회유한 이야기, 김상덕 위원장이 6·25 직후 납북된 과정과 그 후 비참했던 가정사 등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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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를 마친 후 김정륙 회원은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인장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 인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국무위원 시절 그리고 반민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사용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이다. 김정륙 회원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마련된 2층 전시실에 인장을 직접 진열했다.
김정륙 회원은 아버지의 유품을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에 기증하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며 소중하게 보관해 달라고 당부했다.

• 편집부

수, 2018/08/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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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물 1층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 기금전달식’이 열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이하 잇는 모임)이 건립기금 1억 345만 원을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에 전달했다. 식민주의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이야말로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침략,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일본 시민과 단체로부터 모은 기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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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금전달식에는 잇는 모임에서 서승 공동대표, 안자코 유카 공동대표,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등 총 19명이 참석했고, 연구소 측에서는 이이화 시민역사관건립위원장,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이민우 운영위원장 등 약 60명이 참석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들도 함께 했다.
기금전달식에 이어 2층 전시실에서 자료기증식이 진행되었다. 잇는 모임은 그동안 기금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과 전후보상운동의 전개과정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모아왔는데, 이날은 ‘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 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후루카와 마사키 씨가 커다란 현수막을 기증했다. “야스쿠니 합사를 하지 마라!! 유골을 돌려 달라!!”라는 구호가 힘찬 글씨체로 적혀 있는 이 현수막은 2003년 군인군속재판 추가제소 당시 일본 법원 앞에서 피해자들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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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는 모임 참가자들은 기금전달식에 앞서 효창원과 백범김구기념관, 남산 권역을 답사했으며, 6·10민주항쟁 31주년이 되는 날에는 남영동 옛 대공분실을 견학했다. 그들은 일제와 국가폭력으로 짓밟힌 역사가 켜켜이 쌓인 용산과 남산 일대를 답사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의의를 다시금 확인했다.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은 일본 시민들에게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알리고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 노기 카오리 선임연구원

수, 2018/08/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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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음)와 육군사관학교(교장 정진경 중장)가 공동주최한 이날 기념식은 처음으로 육사에서 열렸는데 이는 육사가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학교라는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육사는 지난 해 12월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특별 학술회의를 열었고, 올해 3월 1일에는 육사 교정에 독립전쟁 영웅 5인(이회영,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의 흉상을 제막하는 등 우리 국군의 뿌리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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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임원, 유족, 시민 등 60여 명이 참석한 기념식에는 1,100여 명의 육사생도 전원이 연병장에 도열했다. 주동욱 경희민주동문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 준비위원장이 신흥무관학교 경과보고를 했고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기념사를 했다. 윤경로 상임대표는 기념사에서 “신흥무관학교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육사 생도들이 배우기를 원했는데 쉽지 않았지만 촛불시민들의 덕분으로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기념식을 육사에서 열 수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을 마친 후에는 육사 생도들의 분열식이 거행되었다. 이어서 독립전쟁 특별전시회를 관람 후 육사 생도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을지강당에서 공연된 항일음악회 관람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날 기념식에는 윤경로 상임대표를 비롯해 이항증 공동대표, 정철승 조직위원장, 김용호 행사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독립운동가 유족으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차영조 선생 그리고 김순흥, 권위상, 김희원 운영위원 등이 함께 했다.

• 편집부

수, 2018/08/0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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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增稅(부자증세)

 

衆庶號增稅(중서호증세)

人君不欲聽(인군불욕청)

何由初約遠(하유초약원)

請願若雷霆(청원약뇌정)

 

富者에 대한 增稅

 

썩 많은 이들이 增稅 부르짖는데

나라님은 당최 들으려 하지 않네

무슨 연유로 첫 약속 멀어졌나요

請하고 願함이 천둥과 벼락 같네.

 

<時調로 改譯>

 

많은 이 부르짖는데 나라님 듣지 않네

그 무슨 까닭으로 첫 약속 멀어졌나요

請하고 願하는 바가 천둥과 벼락 같네.

 

*增稅: 세금의 액수를 늘리거나 세율을 높임. ≒복상(卜相) *衆庶: 뭇사람 *人君:

임금. 나라님 *初約: 처음에 약속 *請願: 일이 이루어지도록 청하고 원함 *雷霆:

뇌정벽력(雷霆霹靂).  천둥과 벼락이 격렬(激烈)하게 침. 또는 그런 천둥과 벼락.

 

<2018.8.1, 이우식 지음>

목, 2018/08/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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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통일의 집’ 방문기

최인담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사

 

안녕하세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 저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최인담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연구소가 강북구의 요청으로 기념관을 위탁운영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2016년 개관 이래 제가 이곳에서 일한지 어느덧 2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강북구에 문익환 목사의 사택으로 알려진 통일의 집이 있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근무하게 된 김에 빠른 시일 내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통일의 집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의 집이 공사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박물관으로 새 단장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박물관 건립과 운영을 위해 사단법인 통일의 집에서도 박물관 운영을 위해 연구소에 조언을 구하고자 기념관으로 연락을 준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기념관 위탁 운영 과정을 상세히 전달해드리고자 연구소로 직접 연결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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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다시금 ‘통일’이라는 말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 날이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이죠. 아직도 그날 아침 사무실의 분위기가 생각납니다. 다섯 명의 직원들은 지금 이 순간이 훗날 오래도록 기념할 역사적 순간임을 직감했었는지 각자 앞에 놓인 모니터에 시선을 떼지 못했어요.
군사분계선에 선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어느 새 악수를 나누는 모습으로, 또 악수를 나누는가 싶더니 어느새 김정은 위원장이 천진한 모습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팔을 잡아끌며 야트막한 방지턱을 넘는 모습으로 장면이 바뀌더군요. 군사분계선이 마음속에 그린 상상의 것이었나, 이렇게 넘을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싶어 울컥했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실감나지 않던 정상회담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로 사회의 많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실감해요.
그리고 지난 6월이었습니다. 통일의 집이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관람객을 맞아들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박원순 서울시장과 배우 문성근 씨가 손님을 맞이하는 사진도 몇 편의 기사를 통해 접했지요. 그로부터 며칠 뒤 강북구청의 담당 주무관이 기념관을 직접 방문했어요. 주무관은 통일교육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강북구청과 서로 만나기로 했대요. 이를 발판삼아 강북구가 ‘통일’을 주제로 근현대사기념관과 연계하여 역사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이래 통일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는 수강생들이 기념관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공유한 적은 없었거든요. 또 기념관에 전시 해설을 요청하신 적이 있지만 통일교육원의 교육프로그램의 주제와 맞지 않아 지속적으로 교류가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강북구와 근현대사기념관과 통일교육원이 서로 연계하여 통일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그간 근현대사기념관은 기념관 인근에 있는 애국자시 16기의 묘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살려 시민들과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었어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도보로 10분 이내 갈 수 있는 초대 제헌국회 부의장 신익희 선생 묘역, 1세대 검사 이준 열사 묘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묘역, 초대 국군이라 할 수 있는 광복군 합동 묘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묘역을 1시간 시간 코스로 둘러볼 수 있는 ‘초대初代길’은 근현대사기념관을 찾는 중고등학교 학급 단위의 단체관람객에게 매우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념관 설립 단계부터 민족문제연구소는 통일교육원과 국립4·19민주묘지 그리고 통일의 집을 염두하고 기념관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량으로 통일의 염원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2016년 8월, 광복 71년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소중한 모금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의 회비로 후원한 독립민주기념비가 세워질 당시 기념비의 의의는 독립과 민주 그리고 통일을 기념하고 염원하는 조형물을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었어요. 지난 10년간 냉각된 남북의 분위기에도 통일이라는 염원을 잊지 않은 연구소의 바람도 근현대사기념관의 전시와 독립민주기념비에 고스란히 녹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저에게 통일의 집 방문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하셨어요. 아, 이제는 정말 통일의 집 방문을 미룰 수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7월, 여름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습니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통일의 집까지 걸어가는 데는 작은 골목 사이 최단거리로 1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국립4·19민주묘지 앞을 거쳐 큰 길로 간다면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통일의 집 앞 골목까지 이정표가 있었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아서 50m 정도 지나치기도 했지만 이내 훤한 대문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박물관과 만날 수 있었어요.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익환 통일의 집 개관전이 열린다는 커다란 플래카드도 볼 수 있었어요. 반쪽 문이 열린 대문으로 총총 계단을 올라가니 소담한 정원이 펼쳐지더라고요. 뒤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펼쳐진 빨간 벽돌집은 문익환 목사와 가족이 1970년부터 살던 집이라고 합니다.
1994년 문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 박용길 선생님께서 ‘통일의 집’이라는 현판을 걸고 일반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고 해요.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성금으로 집을 복원하였으며 2018년 6월 1일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어요. 지금은 문익환 목사가 남긴 유품과 글, 서한 등 귀중한 근현대사의 자료를 보존하고 평화와 통일을 꿈꾸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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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기 전에 안내판을 꼼꼼히 읽고 화단을 한번 둘러보며 숨을 가다듬었고 있노라니,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문익환 목사 댁을 방문한 손님이 된 기분을 느꼈어요. 문영금 통일의 집 관장님은 문을 열고 친히 슬리퍼를 내어주시며 손님을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시라며 관람객을 배려해 주셨어요.
거실로 들어서자 “너른마당”이라는 글자가 적힌 액자가 눈에 띄었어요. 문익환 목사의 글처럼 오래 된 피아노와 문익환 목사의 사진과 그림이 벽에 걸렸으며, 문익환 목사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들이 거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아담한 거실에 둘러앉아 벗과 덕담을 나누는 어떤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관람객을 배려한 작은 의자와 방석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들방에서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문익환 목사의 생애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윤동주, 장준하와 같은 역사 속 인물들과 교류하며 보편적인 말과 진실함으로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으며, 김일성 위원장과 포옹하는 장면이 나지막하면서도 힘 있는 육성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그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해방의 혼돈을 거친 젊은 청년이 종교에 헌신하면서도 민주화운동의 거목이 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유물은 박용길 선생님이 모아놓은 남편의 수인번호였어요. 생애 중 10여 년 이상을 춥고 고달픈 곳에서 투쟁해 왔는지를 알 수 있었지요.
다음으로 기도방은 한가운데 자그마한 탁자가 놓여있었어요. 이곳에 앉아 기도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다음으로 안방으로 가는 복도를 두고 널찍하고도 깔끔한 화장실이 사용한 흔적 그대로 남아있었어요. 복도 벽면에는 문익환 목사의 청년시절, 신학자의 삶, 수감생활, 방북의 과정을 지도와 연표, 사진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패널이 있었어요. 좁은 집을 전시실로 알차게 활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방으로 들어서니 붉은 벽돌이 노출된 천장 일부가 눈에 띄었어요. 관장님께서 함께 둘러보시며 원래 복도에서 끝나는 집을 안방 방향으로 집을 증축하면서 가려져있던 굴뚝을 이번에 노출시켰다고 하셨어요. 마당이 훤히 보이는 안방은 문익환 목사의 자필 편지, 성서 연구 노트가 가지런히 진열장에 정리되어 있었어요. 생전에 그가 읽던 책은 성서부터 역사서, 시집 등이 벽면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박물관을 둘러보고 문영금 관장님과 너른마당에 앉아 담소를 나눴어요. 관장님께서 제게 전시를 어떻게 보셨는지 물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원래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통일의 집을 개방했을 때는 아버지의 유품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물건들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도록 배치하셨대요. 그러다 박물관으로 단장하면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바꾸다보니 배치할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이 공간은 문익환 목사가 살았던 집을 고스란히 복원하고 그 안에 그의 생애와 그 시대의 치열함이 녹아있는 유물들이 놓여있어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 얼마든지 특별전을 개최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소장 자료를 가지고 계시니 그것을 활용할 수 있으면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아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를 약속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은 이때, 박물관에 걸린 ‘남누리 북누리 한누리 되도록’ 이라는 글처럼 통일을 향한 염원이 한데 모여 천천히 평화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 2018/08/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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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최후의 결전3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민족주의 진영”

목, 2018/08/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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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내역사 시즌2-비하인드히스토리 9화

44년만에 무죄, 문인간첩단 조작사건과 임헌영

 

 
목, 2018/08/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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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 최후의 결전 2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공산주의 그룹과 조선독립동맹”

목, 2018/08/0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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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8회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기념관”

목, 2018/08/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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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소에 관한 허위사실을 계속 유포하는 사람(비회원)이 교육청에 정관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니, 이제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교육청 승인 정관을 ‘연구소 소개’에 게시해 놓았으니 더 이상 의미없는 정보공개 청구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목, 2018/08/0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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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관련 게시물을 진정 민족문제연구소가 쓴 글이 맞나요?
내가 알고 있는 민문연의 수준이 이정도였습니까?

의미 없는 정보공개청구?????

지난 3월 24일 총회 이전에 홈페이지에 정관이 게시되었고, 여러 회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홈페이지에서 정관을 삭제했습니다.
왜 삭제했습니까?

지도감독기관인 서울시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을때
민문연은 ‘정관은 영업상.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공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공개해야할 정관을 스스로 공개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인데,
‘영업상.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비공개해달라도 했습니다.

민문연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마저도 공개하지 않으려는 민문연의 작태에 분노가 치솟습니다.

만약, 민문연이 미리 정관을 공개했다면 정보공개청구도 없었을 것이고.
‘영업상.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추가의 정보공개청구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정보공개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홈페이지에 게시했을까요?
가슴에 손을 언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회원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의미 없는’이라고 했습니다.

점입가경, 설상가상…..
민문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봄날 눈 녹듯 사라지고 있습니다.

임종국 선생이 작금의 사태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금, 2018/08/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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