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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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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익명 (미확인) | 수, 2018/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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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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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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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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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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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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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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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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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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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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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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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유족회 등이 지난 2일 경기도의회 소녀상 앞에서 램자이어 하버드 로스쿨 교수의 논문 폐기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용덕 기자 [email protected]
정병호 | 교수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미국 하버드대의 램자이어가 “위안부는 계약 매춘부”라고 주장해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 후원으로 석좌교수가 된 그의 노골적인 역사 왜곡 논문을 반박하느라 애쓰고 있는 해외 학자들이 있다. 군사독재 시대부터 촛불혁명까지 한국 민주화와 인권을 지원하며 국제사회의 병풍이 되어준 70~80대 원로 교수들도 참여했다.

그런 해외 학자들에게 “외부인은 논할 자격이 없다”고 경고한 이른바 ‘친일’ 한국 학자들이 있다.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나치의 강제노동 같은 인류에 대한 범죄는 시효도 국경도 없는 것이다. 인류 모두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편과 가해자 편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시하고 가해권력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정치다. 수많은 희생 위에 겨우 자리 잡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모독이다. “권력에 맞서서 싸워보지도 못한 것들이!” 돌아가신 리영희 교수의 추상같은 일갈이 그립다.

국적을 가지고 자격을 논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1910년 ‘한일합방’에 앞장서서 일제의 귀족 작위와 토지를 받은 ‘매국노’를 완곡하게 표현해서 ‘친일파’라고 했다. 1965년 ‘한일협정’도 대한민국 정부가 한 일이다. 일본군 출신 독재자가 시민들의 반대를 군사계엄령으로 누르고 조약을 체결하면서 받은 돈을 피해자들 모르게 돌려썼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도 그의 딸이 대통령이었던 대한민국 정부가 했다. 10만명 이상의 피해 여성의 피눈물을 단돈 백억원으로 갈음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친일’의 면면한 계보는 이어져왔다. 제국주의 권력과 그 조력자들이 맺은 사기성 농후한 협약도 국제간의 약속이라고 존중해야 하나?

‘친일’은 역사가 아니라 늘 현실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유린하며 시위를 하는 그들에게서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 피자를 먹으며 야유하던 모습과 비슷한 역겨운 가학성이 보인다. 미국과 일본으로 다니며 ‘위안부는 가짜다, 강제노동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그들. 왜 그렇게 집요하게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가?

최근 나는 해방 후 스스로 가해권력이 된 ‘친일파’ 역사의 한 단면을 되짚어볼 기회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오키나와 전투를 준비하면서 무기를 나르고 참호를 파는 인력으로 긴급하게 조선의 장정들을 끌고 갔다. 주로 경상북도 각 마을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동원됐다. 일본인 대신 조선인 순사와 면서기, 군청 직원, 지역 유지들이 이들을 잡아서 훈시하고 격려하면서 전장으로 보냈다. 도망치고 저항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은 가족들 때문에 억지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키나와로 끌려간 조선인 군부들은 마소처럼 부림을 당하며 전장에 내몰려 죽고 처형까지 당했다. 패전 후 일본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은 일본 군인의 이름을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 기리면서 희생된 조선인은 몇천, 몇만명인지 규모조차 밝히지 않았다. 어느 마을 누구까지 지목해서 끌고 갔던 일본은 조선인 강제연행 기록을 은폐하고 피해자들의 진술은 부정하고 있다.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해방된 지 1년이 지나서야 고향에 돌아왔다. 참혹한 전장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친일 경찰과 관리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을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정 편에 서서 새로운 권력이 된 그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강제연행 피해자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탄압했다.

일제의 반인도적 범죄 피해자들을 숨죽이고 살게 했던 대한민국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처세와 출세를 위해 ‘친일’했던 사람들은 해방 후 보신을 위해 ‘반공’에 앞장서며 가해 행위를 정당화했다. 냉전 대립과 전쟁을 겪으며 일본군 출신 장교들은 군사독재 권력이 됐다. 국가를 대표해서 식민피해 보상금을 협상하고 그 돈을 전용한 그들은 또다시 피해자들을 침묵시키는 가해자가 됐다.

일제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친일’은 냉전 이념의 그늘에 가려진 회복되지 않은 정의의 문제다. 수십년 전 역사상 저질러진 폭력에 직접 책임이 없다고 해도 그 행위의 결과로 얻은 이익을 누리는 경우 간접적으로 과거 범죄에 연루된 ‘사후종범’이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와 눈물 위에서 누리고 있는 지위와 특권의 근원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가해 역사를 덮기 위해 지금도 가학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는 친일파는 현재진행형 가해자다. 죄과를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1-03-03> 한겨레

☞기사원문: [정병호의 기억과 미래] 친일파, 현재진행형 가해자

목, 2021/03/0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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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3/0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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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가 발간한 가볍고도 무거운 역사책 ‘한 시대 다른 삶’

글을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이 두 권의 책에 등장하는 스무 명의 인물 중에 태어나 처음 들어본 이름이 무려 네 명이나 된다. 명색이 20년 넘게 아이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쳐온 현직 교사로서 면구하기 짝이 없다.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주로 가르쳐왔고, ‘현대사 전문가’라는 상찬까지 들으며 십수 년 동안 여기저기 대중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아이들도 수강생들도 그런 나를 현대사와 관련된 박사 학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줄로 안다.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

가령, 신석구와 한형석. 신석구 선생은 3.1 운동 당시 기독교를 대표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시고, 한형석 선생은 1940년대 광복군 선전대에서 활약한 항일 음악가다. 해방 후 친일 청산 노력이 물거품 되면서 지금껏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친일파들이야 그렇다 해도, 독립운동가의 생애는커녕 이름조차 낯설어하는 내가 과연 한국사 교사 맞나 반성하게 된다.

솔직히 일독을 권유받았을 때, 마치 감수자라도 되는 양 스스로 거들먹거렸다. 수업 교재나 교양 도서로서 어디 하자는 없는지 찾아 훈수를 두려는 거만한 태도로 책을 폈다. 내용을 살펴보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권한 것도 그래서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거다.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두툼한 세 권의 <친일인명사전>보다 불과 두세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이 두 권의 책이 친일 청산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친일인명사전>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을 먼저 읽은 한 아이의 소감이다. 이심전심. 스스로 박학다식하다고 능력 있는 교사는 아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데 능숙한 이라야 제대로 된 교사다. 책이라고 다를까.

언제까지 친일청산 타령? 이 책으로 답합니다

▲ <한 시대 다른 삶> 1, 2권의 표지와 목차 ⓒ 서부원

이 책은 ‘웹툰 북’, 곧 만화책이다. 노파심에서 한마디 얹자면, 만화책이라고 우습게 보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다. 앞서 고백한 대로, 한국사 교사조차 부끄럽게 만든 책이다. 형식은 가볍지만 내용은 묵직하다. 가독성이 뛰어난 데다 교훈적이기까지 하단 이야기다.

말 그대로 술술 읽힌다. 역사 공부에 젬병인 아이들조차 단숨에 읽어낼 만큼 쉽고 재미있다. 한 아이는 주말 아침 식사 후 읽기 시작해 점심 먹기 전에 두 권을 다 읽었단다. 시험에 출제된다면야 이름과 생몰년, 업적, 저서 등을 암기하느라 페이지를 넘기는 게 만만치 않겠지만, 그럴 부담이 없어 다 읽고 나면 고스란히 ‘엑기스’가 남는 책이다.

역사에 흥미가 없는 이라도 일단 첫 장을 넘기게 되면 끝까지 읽게 되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내용이야 일관된 주제지만, 만화를 그린 화가가 여럿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곧, 만화를 감상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 책은 두 권이 아니라 열 권을 읽는 셈이 된다.

그림도, 글씨체도, 배치도 각각 다르다 보니, 읽는 데 지루할 틈이 없다. 만화와 캐리커처에 관심이 많다는 한 아이는 책을 읽다가 메모장을 꺼내 그림을 따라 그려봤다고 했다. 그는 이 두 권의 책이 ‘만화의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책의 미덕은 단연 ‘대조’에 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면면을 시대순이나 가나다순으로 단순히 나열한 책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런 책들은 독서를 통한 교육적 효과도 미미할 뿐더러 굳이 따로 공들여 제작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한 시대 다른 삶,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 이 책의 표제다. 동시대를 살았고, 같은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지만, 서로 가는 길이 극명하게 달랐던 두 인물의 생애를 넘나들며 비교하려는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책의 제목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학교의 수업에서든, 학교 밖 대중 강연에서든, 인물의 ‘대조’는 일제강점기를 설명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이다. 친일파의 행적만 나열하게 되면, 설령 천인공노할 만행일지라도 이내 지루해 한다. 그러고는 몇몇은 심드렁한 얼굴로 전가의 보도처럼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먹고 살려면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이 위대하고 존경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당시 친일 행위를 두고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단죄와 응징 운운하는 건 지나치다고 봐요.”

거칠게 말해서, 이 질문의 요지는 두 가지다. 당시 일제에 저항하지 않고 굴복한 이들은 친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과, 대체 언제까지 친일을 우려먹을 것이냐는 비판이다. 전형적인 물타기이자 ‘물귀신’ 전략이지만, 일일이 대응하기가 여간 힘든 지점이기도 하다.

반론하다 보면 자칫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정부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고 하면, 당장 선정 기준을 문제 삼거나 좌우 이념 대립의 결과물이라며 논점을 흐리고, 정치적 흥정의 산물로 폄훼하기 일쑤다.

언성이 높아지면서, 김일성과 박정희, 현재 북한과 남한의 경제력 등을 비교하는 지경에 이르고, ‘빨갱이’와 친일파 중에 누가 더 나쁘냐는 황당무계한 질문에 답하라며 생떼를 쓴다. 이는 비단 어르신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엔 친일파보다 ‘빨갱이’가 더 싫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알다시피, 해방 후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6.25 전쟁을 겪었으며, 친일파 박정희를 비롯한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지면서 수십 년 동안 친일 청산은 입에 담지조차 못했다. 이는 나 몰라라 하고 아직도 친일 청산 타령이냐고 묻는 건 파렴치한 짓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떠들어댄다.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어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사건 직후 유가족과 시민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수년 동안 묵살해놓고선,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며 욕지거리해대는 이들과 친일파들의 행태는 빼다 박은 듯 닮았다. 그들을 상대하노라면,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이럴 때 들어맞는 표현인 듯싶을 때가 많다.

친일파의 후손들이나 그들에 기대어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이 이 책을 읽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포획된 청소년들과 장삼이사들에겐 이 책이 그들의 물타기식 질문에 대한 가장 적확한 답변이 될 것이다. 일일이 반론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 책을 소개하기만 하면 된다.

두루 읽히고 싶은 책

▲ 2권 말미, 독립운동가 한형석과 친일 음악가 현제명의 삶을 대조한 부분. ⓒ 서부원

책의 구성을 잠깐 소개한다. 각 권당 220여 쪽 분량으로, 본문 뒤에 책에 등장하는 친일파들이 참여한 일제 협력단체들을 덧붙여놓은 것이 독특하다. 이는 그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가장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공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본문은 두 권을 합해 열 꼭지다. 종교와 교육, 역사, 언론, 군사, 문학, 음악 등 분야별로 엇갈린 삶을 산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다. 친일파의 비루한 삶이 독립운동가의 위대한 삶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대조’의 힘이다.

가장 인상적인 두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독자라면 대부분 공감할 테지만, 2권의 ‘광야의 지사’ 이육사와 ‘해바라기 시인’ 서정주를 비교하는 꼭지일 것이다. 30쪽으로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인 데다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울림은 자못 크다.

이내 울림은 분노로, 분노는 다짐으로 승화된다. 11년 터울인 두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거물’이다. 시 <청포도>와 <국화 옆에서>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생애는 위대함과 비루함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서정주는 채 마흔 해를 넘기지 못한 이육사의 두 배도 넘게 살았다. 그것도 여든다섯의 삶 내내 부와 권력, 명예를 누렸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 권력자가 숱하게 바뀌는 와중에도 그는 권력의 주변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굴종과 아부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서정주는 자신의 친일에 대한 비난을 이렇게 다섯 글자로 반박했다. 시대에 무모하게 맞서기보다 현실에 체념하며 살아간 것일 뿐이라는 의미다. 달리 말한다면, 비록 존경받을 깜냥은 못 돼도 그렇다고 민족반역자라며 치도곤당할 일도 아니라는 변명이다.

그렇게 그는 <이승만 전기>를 썼고, 베트남 파병을 옹호하는 시를 박정희 정권에 상납했으며, 광주 학살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에 빌붙어 ‘단군 이래 최고의 미소를 가진 인물’이라며 그의 ’56회 탄신일’에 축시를 바쳤다. 그런데도 그가 사망했을 때, 유력 정치인과 문화계 인사 등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친일 청산이 백년하청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육사의 위대한 삶은 말하기 전에 옷깃부터 여미게 만든다.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이자 저항 시인으로서 그의 삶은 서정주와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송구할 따름이다. 그의 시신과 유품을 거둔 아내 이병희 지사와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 여사의 신산했던 삶은, 친일 청산은커녕 망각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매서운 죽비다.

이육사가 딸의 이름을 옥비(沃非)로 지은 연유는 슬프다 못해 서럽다. 부귀영화를 꿈꾸지 말고 검소하게 살라는 것. 해방 후 친일파가 득세한 현실에서 그의 아내도 딸도 이육사의 이름을 함부로 내세울 수 없었으니, 이름은 그대로 예언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서정주의 두 아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현재 미국에서 의사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지난 겨울방학 때 올해 수업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역사 달력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기억하자는 취지였다. 서둘다 보니 오탈자와 잘못된 내용이 많았는데, 이 책이 모자란 부분을 훌륭히 메워줄 듯하다.

일단 도서관에 비치해 돌려 읽게 할 계획이다. 아울러, 원작이 웹툰이니만큼 주소를 링크해 수시로 읽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코로나가 물러난다면, 국립 현충원과 독립운동가의 생가, 유적지 등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답사하고 싶다.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일 성싶다.

끝으로, 책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와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온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비매품이지만 어떻게든 보급이 되어, 특히 청소년들에게 두루 읽혔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지금껏 이렇게 ‘가볍고도 무거운’ 역사책은 보질 못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https://minjok21.kr)

사족. 기획부터 출판까지 짧은 시간에 해낸 탓인지, 오타가 몇 개 보이는 게 ‘옥에 티’다. 대개 맞춤법이 틀렸거나 한자의 음이 잘못된 것이다. 1권의 38쪽과 127쪽에 각각 하나씩 있고, 2권의 72쪽에도 보인다. 또, 웹툰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군데군데 글씨가 작아 어르신들의 경우라면 돋보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민족문제연구소의 정기 간행물인 <민족사랑>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서부원(ernesto)

<2021-03-09> 오마이뉴스

☞ 기사원문: 한국사 교사조차 부끄럽게 만든 책, 추천합니다

수, 2021/03/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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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주]

[앵커]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기획보도, 세 번째 순서입니다.

친일인사의 부끄러운 행적을 사실대로 밝히고 반성의 기회로 삼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인데요.

여전히 그들을 미화하거나 역사를 왜곡한 사례가 적지 않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등비행사로 이름을 떨치고, 조선 최초 항공사와 해방 후 첫 민간항공사를 세운 신용욱.

일본군에 비행기를 납품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반민특위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두 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고향 마을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지고, 고창군 블로그에는 찬양 일색의 글이 실렸는데, 이번 친일잔재 보고서에 역사 왜곡 사례로 지적되자 해당 글은 삭제됐습니다.

명실을 다 같이 추호도 다름이 없는 ‘닛본징’이 되어야 한다.

일제의 기세가 치솟던 1942년, 채만식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은 글입니다.

해방 후 소설 ‘민족의 죄인’을 통한 참회에도 씻을 수 없는 친일 행적.

보고서는 지난해 군산시가 블로그에 실은 채만식 관련 글은 역사 왜곡과 축소 사례로 지적했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과 도서관, 또 다른 친일 작가인 서정주의 호를 딴 고창의 미당시문학관 등의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군산시 관계자/음성변조 : “이 자료를 받은지 얼마 안 되서요. 구체적 논의는 아직 안 된 상태인데. 포럼이나 워크샵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려 노력하고 있었고요.”]

보고서에 미처 실리지 않은 친일인사도 적지 않습니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로 제헌의회 국회의원까지 지낸 배헌 선생.

윤치호의 주도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친일단체 배영동지회 이리 부회장을 맡았고, 전쟁 협력 조직인 조선임전보국단에서 활동했으며, 일제의 식민통치 하부 조직으로 운영된 이리 읍회의원을 10년 넘게 지낸 사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재호/민족문제연구소 : “있는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 해방 이후 친일과 독재로 점철되며 그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했잖아요.”]

왜곡과 미화를 걷어내고 부끄러운 역사의 민낯을 마주하는 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걸음입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신재복

<2021-03-10> KBS 

☞기사원문: [친일잔재 청산 기획]③ 왜곡과 미화로…숨겨진 부역의 조각들 

※관련기사 

KBS: [친일잔재 청산 기획]② 청산 언제쯤?…일상 곳곳에 ‘일제 흔적’  

KBS: [친일잔재 청산 기획]① 전북 첫 친일잔재 전수조사..친일파 118명의 ‘굴레’

목, 2021/03/1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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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으로 YTN 라디오와 경기도가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올해 10편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꾸준히 제작, 방송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우원식 국회의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심산 김창숙 손녀 김 주)

☞ 10편 : 광복군아리랑(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장병화)

☞ 9편 : 앞으로행진곡(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우당 이회영 손자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정남기)

☞ 5편 : 격검가(동암 차리석 아들 차영조)

☞ 4편 : 압록강행진곡(광복군 김영관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석주 이상룡 증손자 이항증)

☞ 2편 : 안중근옥중가(함세웅신부)

☞ 1편 : 국치추념가(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목, 2021/03/1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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