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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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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익명 (미확인) | 수, 2018/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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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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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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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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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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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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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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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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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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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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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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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 등 항의… 현충원 측 “곧 철거”

▲ 장군 2묘역 주변에 설치된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 표지판 ⓒ 정성일

국립대전현충원에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장군의 묘소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관련 단체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충원 측은 “찾는 사람이 많아 표지판을 설치했다”며 “조속히 철거하겠다”고 답했다.

대전현충원에서 개인 묘소 표지판이 설치되는 일은 매우 드물며 서울 동작현충원의 경우 전직 대통령 등에 한해 안내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는 등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때문에 지난해 현충원 안장 때도 적절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참가자들 ⓒ 정성일

5일 오전 고 조문기 애국지사 13주기 추도식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지부장 박해룡) 회원 등이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추도식을 끝낸 참석자들은 백선엽 이장을 요구하기 위해 장군 2묘역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 표지판을 발견, “개인 특혜 소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립묘지법 개정을 논의한다고 하는데 대전현충원 원장은 백선엽 묘지 안내판을 세우는 게 적절한가”라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한 뒤 대전현충원 원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본관으로 이동했다. 이에 대전현충원 관리 책임자는 “오늘 중으로 표지판을 철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참가자들은 “내일 와서 확인하겠다”며 약속 이행을 당부했다.

정성일(jsichj) 기자

<2021-02-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 설치한 대전현충원 ‘뭇매’

토, 2021/0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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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방문객 감소로 철거” 방문자수도 공개… 민족문제연구소 “핵심은 친일파 안장”

▲ 장군 2묘역 주변에 설치된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 표지판 ⓒ 정성일

‘국립대전현충원 경내에 있던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 묘소 안내판이 일부 친여단체 항의로 철거됐다.’

<조선일보>가 ‘친여단체 입김 한번에 뽑혀버린 백선엽 안내판’이라는 제목을 붙여 8일자 조간 1면에 보도한 내용 중 일부다.

<조선>은 해당 기사에서 “지난 5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 20여 명은 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된 백 장군 묘소 바로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백 장군을 이장(移葬)하라고 주장했다”면서 “현충원은 당일 바로 안내판을 뽑아냈다”라고 적었다. <조선>은 “현 정부 들어 백 장군 폄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백 장군이 현충원에 안장된 후 더불어민주당과 친문·좌파 일부는 백 장군 파묘(破墓)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백 장군 안장 1개월 뒤부터 ‘친일 파묘법’을 본격 추진했다. 보훈처는 홈페이지의 백 장군 정보란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조선>의 보도대로라면, ‘친여단체’로 분류된 민족문제연구소의 항의 때문에 대전현충원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가 고 백선엽 장군의 안내판을 철거했다고 추론된다.

<조선>의 보도는 사실일까?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은 크게 달랐다.

보훈처 “백선엽 장군 안내판, 2월에 철거하려 했다”

▲ 백선엽씨가 2003년 3월 1일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보훈처는 9일 저녁 <오마이뉴스>에 “백선엽 장군 묘는 작년(2020년) 12월부터 방문객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어, 올해 2월 중 철거 예정이었다”면서 “지난 2월 5일에 민족문제연구소의 항의도 있었지만, 최근 방문객 감소로 철거가 예정되어 철거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보훈처는 백선엽 장군 묘소 월별 방문통계를 첨부했다. 보훈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0년) 7월 15일 백 장군 안장 후 일평균 148.2명이 방문했다. 8월에는 49명, 9월 46.4명, 10월 48.8명, 11월 43.4명, 12월 16.9명, 지난 1월에는 13.6명이 방문했다.

돌아보면 고 백선엽 장군은 지난해 7월 사망 후 현충원 안장 당시부터 큰 논란이 됐다. 백 장군은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2009년 정부 기구인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면서 백 장군의 친일행적과 관련해 A4용지 16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공식기록으로 남겼다. 현충원 홈페이지에도 백선엽 장군 관련 안장 정보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자’라는 사실이 적시됐다.

2009년 정부는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이 등재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백수의 나이로 사망한 백선엽 장군은 명백한 친일행위에도 불구하고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후 사망한 사람’ 및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사람으로서 사망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 555번 무덤에 안장됐다.

민족문제연구소 “백선엽 같은 인물이 현충원에 안장된 것 자체가 문제”

▲ 6.25전쟁 당시 백선엽 소장 ⓒ NARA / 박도

<조선일보>에 의해 ‘친여단체’로 분류된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조선일보>는 지금의 여당이 정권을 잡기 전부터 우리를 ‘친야 재야단체’라고 불렀다”면서 “자기들(조선)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부르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 실장은 “<조선일보> 보도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백선엽 안내판 철거가 아니라 현충원이라는 공간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 같은 인물이 안장됐다는 사실”이라면서 “이러한 소모적인 논란은 제거돼야 한다. 그 방법은 국립묘지법 개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여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권칠승, 전용기 의원 등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 중 안장대상 심의위원회에서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결정된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제고해야 한다”면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등에 특별한 논의 없이 계류된 상태다.

현재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 두 곳에는 백선엽 장군 이외에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등 총 12명이 안장돼 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해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해당 기자가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답을 듣지 못했다.

▲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2020년 7월 1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종훈 기자

<2021-02-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조선 ‘백선엽 안내판’ 보도에… 보훈처·민족문제연구소 ‘반박’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국립대전현충원,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 철거 

☞오마이뉴스: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 설치한 대전현충원 ‘뭇매’

수, 2021/02/1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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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00~19:30)
■ 방송일 : 2021년 2월 17일 (수요일)
■ 대담 : 함세웅 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면승부] 함세웅 “개성공단 재개 강력히 주장하면 미국도 이끌려올 것”
– 백기완 선생, 무종교인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종교적 가치를 지닌 분
– 개성공단, 겨레가 뜻을 모아 실천한다면 미국도 이끌려 올 것
– 사회 혐오 갈등, 언론이 편가르기 자제하고 각성해야

◇ 이동형 앵커(이하 이동형)> 매주 수요일, 원로의 혜안을 통해 정치사회 이슈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항일독립선양단체연합회장과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계신 함세웅 신부 전화로 연결합니다. 신부님, 나와계십니까?

◆ 함세웅 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하 함세웅)>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먼저 지난 월요일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통일운동가와 사회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하셨던 백기완 선생이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는데요.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인과 신부님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 함세웅> 네. 1974년 긴급조치 1호, 2호, 3호서 박정희 유신독재 때. 백기완 선생님하고 장준하 선생님이 처음에 구속되셨잖아요. 100만인 서명운동 하시느라고. 그러면서 그해 4월에 민주항쟁 사건 나고. 또 7월에 지학순 주교님이 구속돼셨어요. 저희들 우리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하면서 이분들의 석방운동을 위해서 저희들이 명동과 각 성당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또 가족들과 함께 구명운동을 했었는데. 그걸 계기로 백선생님을 옥중에 계실 때 저희들이 만나보게 된거죠. 그 다음에 석방되셨잖아요? 그래서 석방되신 다음에 먼 발치에서 뵀다가 저희들 사제들 모임에도 함께 오시고. 또 격려해주시고. 또 감사의 뜻도 표현해주시고 그러시면서 함께 저희들이 백선생님 모시면서 민주화와 인권. 남북의 평화공정을 위해서 노력했었어요. 대단하신 분이죠. 저희들 많은 격려도 받고 가르침도 받고. 선생님은 종교를 갖고계시지 않으셨는데. 가톨릭을 많이 비판하셨어요. 그래도 저희들이 민족과 함께 하는 인권운동에 대해서 늘 격려해주셨던 마음 한결같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때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만들어진겁니까?

◆ 함세웅> 네.

◇ 이동형> 안타깝게도 오늘 또 정경모 선생 별세 소식이 들려가지고.

◆ 함세웅> 네. 저도 아침에 보고 하루종일 기도했어요. 백선생님과 정경모 선생님 두분을 기억하면서 정경모 선생님은 제가 또 동경에 갔을 때. 직접 가서 찾아 뵙고. 저희들이 또 모시면서 감사의 뜻도 표현해드렸어요. 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꼭 한번 조국에 오시기를 바라셨는데 여의치 않아서 늘 저희들이 정경모 선생님과 부인과 아드님. 또 자녀들게 역사적 빚을 진 것이 되겠죠.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저희들 모두를 위한. 민족을 위한 전달자되시리라 확신하면서 기도 올립니다.

◇ 이동형> 말씀하신 것처럼 정경모 선생도 끝내는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눈을 감으셨는데. 이렇게 민주화 운동 하셨던 분들. 또 통일운동의 별들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사라져가는 모습 보면 신부님 같은 동지로서. 또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굉장히 아프시겠어요?

◆ 함세웅> 네. 후배로서 마음이 아픈데. 우리 선배 세대들의 아름다운 삶과 노력. 저희들이 본받으면서 더 열심히 해야되겠다. 생각이 되고. 저도 언젠가 세상을 떠날텐데. 동지들과 후배들이 그 뜻을 이어서 간다면. 물론 선배들 가시고 저희들이 가지만, 그 뜻은 아름답게 후손들에게 전달되야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살아갑니다.

◇ 이동형> 백기완 선생이 이야기했던 노나메기 세상이란게 무엇인가요?

◆ 함세웅> 아주 아름다운 삶인데. 함께 일하고. 함께 잘살고. 또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이룩하자. 라는 말씀인데.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 말씀과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사실 백기완 선생님은 무종교인이라고 본인이 말씀하셨는데. 이런 기성종교에 속하지 않으셨지만, 백선생님의 마음속에, 양심 안에 아름다운 인간성이 있어요. 그 인간성이 종교의 뿌리와 씨앗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백선생님이 주창하셨던 이러한 내용이나. 사셨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가르침. 노나메기는 바로 성서의 핵심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우리 겨레가 같이 나누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 이동형> 네. 알겠습니다. 백기완, 정경모 선생의 그런 뜻을 계속해서 기리도록 하고요. 다른 주제 여쭤보겠습니다. 지난 9일 개성공단 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 출범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함신부님도 상임대표로 참석을 하셨습니다. 개성공단이 재개해야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함세웅> 개성공단은 남북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나라. 미국, UN등에서 동의하고 지지한 결과였어요. 따라서 어느 한 정치인, 한 정치집단의 판단으로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큰 내용을 한사람에 의해서. 또는 한 정치집단에 의해서 문 닫아진게 매우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죠.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즉시 재개해야된다고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함께 추진했습니다.

◇ 이동형>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었는데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든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 함세웅> 그게 참 안타까운데.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뜻은 아무리 고귀하다 하더라도. 또 주변분들과 함께. 또 가장 문제는 미국이 동의해줘야 되는데. 미국의 동의받기가 쉽지 않았던거 같아요.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저희 겨레가 힘을 모아서. 뜻을 모아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미국도 국제적인 힘에 의해서 또 우리 염원에 의해서 동의하지 않을까. 이끌려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사실 개성공단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이거든요. 이미 문 닫은건 한 정치인에 의해서 결정이 된건데. 우리가 지금 열면 되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 이게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 그냥 열면 되는 거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도하고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 이동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측 자산이 훼손되거나 고장날 가능성도 있고. 또 우리 입주한 기업들의 손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 쌓이는거 아니겠습니까?

◆ 함세웅> 그렇죠.

◇ 이동형> 알겠습니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고요. 여야로 정치권은 나뉘어서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고. 서로 혐오와 갈등과 분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게 있겠습니까?

◆ 함세웅> 오늘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재의 수요일이라고. 이마에 죄를 받으면서 회개를 다짐하면서 부활을 향한 첫날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각자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가르침. 내가 잘할 때 나에게 뿐 아니라 우리 가정과 부모님께 연관이 되잖아요. 내가 잘못하면 결국 부모님께 욕이 되는 건데. 정치인들 각자 이 부분을 생각해주시면서 내가 정치를 잘하고. 또 좋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효도고. 또 나라를 위한 공동선을 위한 봉사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되는데. 조금 말씀이나 행동이 너무 어떤 때는 험해요. 이런 것들은 결국 자신의 인격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부모의 인격도 훼손하고. 가정의 인격도 훼손한다는 점을 생각해주시면서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책임있는 정치인의 언행을 하셨으면 좋겠다.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시작하셨을 때 각자의 꿈이 있었을 거예요. 그 꿈을 아름답게 잘 실천해주기 바라면서. 정말 우리 겨레 모두에게. 또 인민 모두에게 큰 희망을 주는 언행을 하셨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호소합니다.

◇ 이동형> 네.

◆ 함세웅> 그리고 이 기회에 언론도 서로 싸우면서. 독자들을 편을 갈라서 자극하는 기사를 싣고있는데. 언론이면서 자제해야될뿐만 아니라. 기사내용이나 정치인들이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한국사회 미래가 참 암담해보이는데. 우리 각자에게 언론인 개개인은 물론, 각자에게 희망을 주는. 또 아름다운 삶을 주는 그러한 식의 기사를 만들어내고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말씀. 언론의 각성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 이동형> 정치권과 언론의 각성을 요구하셨고. 70년대 신부님이 민주화운동 하셨을때는 독재정권 하에 있었으니까. 당시에 재야인사들. 야당인사들 시민단체, 종교인사들이 합심해서 독재정권과 싸웠단 말입니다? 근데 그때와 지금과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

◆ 함세웅> 제 생각에는 그 시대에는 조금 단순화된 사회같아요. 박정희의 독재정권은 불의하다는 것을 온 겨레가 전부 다 아셨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민주주의. 인권을 실현하자는데 모두 다 공감하셨어요. 그리고 우리가 지적하는 대척점이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87년. 이른바 부분적이긴 합니다만 6월 항쟁 이후에 민주화가 실현되면서 사회가 다원화가 됐어요. 그래서 시민단체들도 많이 파생되었고. 주장도 여러갈래가 있고. 또 우리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데. 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의견을 공동선. 나만 좋지 말고 함께 좋아하는 공동선의 가치를 확인해야되는데. 시민단체나 주장하는 각 영역에서 공동선의 가치. 공유의 가치를 조금은 놓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아쉬움이 있는데. 저는 함께 이익이 되는. 함께 보탬이 되는. 함께 좋은 그러한 공동선. 커먼굿. 이것의 가치를 우리가 늘 놓치면 안되겠다. 특별히 일제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목숨 바치면서 헌신하셨던 순국선열들의 마음. 또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하셨던 그분들의 마음. 또 평화공존을 위해서 애쓰셨던 마음. 이런 내용들을 함께 늘 되새겨서 상생의 아름다운 문화를 일으키면 참 좋을거 같아요.

◇ 이동형> 알겠습니다. 신부님. 오늘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 함세웅> 네. 고맙습니다.

◇ 이동형>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함세웅 신부였습니다.

<2021-02-17> YTN 

☞기사원문: [정면승부]함세웅 “개성공단 재개 강력히 주장하면 미국도 이끌려올 것”

목, 2021/02/1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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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민주화 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향년 89세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백기완(향년 89세)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노제와 영결식이 19일 엄수된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백 소장의 발인은 이날 오전 8시께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다.

오전 8시 30분부터는 백 소장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대학로 소나무길을 돌며 노제가 열린다.

상임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해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 5명이 백 소장을 기리며 조사를 낭독한다.

운구 행렬은 대학로에서 노제를 마치고 오전 9시 30분께 이화사거리, 종로 5가, 종각역 사거리,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한다. 종각역 사거리에서는 거리굿도 연다.

오전 11시께 서울광장에 도착하면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이 초를 밝히며 영결식을 시작한다.

백 소장의 약력 보고를 마친 뒤 문정현 신부가 조사하고 서정숙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이 진혼무를 한다. 송경동 시인은 조시를 읽고, 가수 정태춘은 조가를 부른다.

이어 백 소장의 동생인 백인순씨가 유족 대표로 인사하고 양규헌 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위원장이 호상 인사한다.

이후 운구행렬은 경기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하고 오후 2시께 하관식에 이어 평토제가 진행된다.

이날 장례 절차가 끝나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비롯한 국내·외 40여 개 시민분향소들은 조문을 멈추고 해산할 예정이다.

장례위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의 경우 시차가 있겠지만 영결식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시민분향은 대부분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2021-02-18> 연합뉴스 

☞기사원문: 내일 백기완 선생 마지막 배웅…서울광장서 영결식

금, 2021/02/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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