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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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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익명 (미확인) | 금, 2018/08/24- 11:45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서울예술대학 소유의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를 위탁 운영해왔다. 지난 1월 서울예술대학교가 계약 종료를 요청하면서 드라마센터의 소유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1962년 4월12일,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9번지에 ‘드라마센터’가 개관했다. 200평 규모에 객석 473석을 갖춘 연극 전용 극장으로, 원형극장을 응용한 개방형 객석이 특징이었다. 개관 당시 상영됐던 ‘대한뉴스’ 제361호에 따르면 ‘무대는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배우가 객석의 상하 사방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는 입체적 다양성 모델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점점 연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끔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창설자인 유치진 연출가를 비롯해 국내외 인사들이 참여해 오색 테이프를 끊었다. 개막작은 셰익스피어의 <햄리트>였고, 이를 관람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에 ‘10만 환’을 전달하고 특별명예회원이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로 불린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현대식 공연장으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할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2009년부터 서울시가 서울예술대학 소유의 극장을 연 10억원에 임대해 10년째 위탁 운영해오고 있다. 최근 연극계에서 이 극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1월, 서울예대가 서울시와의 계약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부터다. 연극인들은 임대형 공공극장으로 입지를 굳혀온 드라마센터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꾸리고 지난 4월부터 세 차례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연극단체 43개와 연극인 544명은 드라마센터가 과연 ‘누구의 극장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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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9번지에 위치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윤성희

비상대책회의 소속 연극인들은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법인등기부, 국유재산 매각 서류 등을 입수하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드라마센터의 건립과 유지 과정에서 정부의 각종 부정·편법·특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드라마센터의 설립 과정은 주로 유치진의 자서전과 평전 등을 통해 알려져왔다. ‘불하받은 땅과 록펠러 재단의 지원, 그리고 유치진의 사재를 털어 극장이 지어졌다’는 게 연극계의 통설이었다.

김숙현 연극평론가에 따르면 드라마센터의 건립은 한국 연극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연극 전용 무대나 시설이 없던 1960년대 초 연극 활동에 새로운 활로를 마련해준 극장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컸다. 그만큼 연극인들의 기대도 높았다. 설립을 이끈 건 한국 연극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유치진이다. 생전 그는 “후진성을 극복하여 우리 민족연극을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어서” 드라마센터를 짓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세대 연극평론가인 유민영은 드라마센터가 ‘세계 극장의 역사를 압축한 초현대식 극장’이라며 건립 하나만으로도 연극사에 남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유학했던 유치진은 1930년대 신극 운동을 주도한 극예술연구회의 일원이었고, 친일 연극으로 평가받는 국민연극을 주도하기도 했다. 1956년,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세계 연극 시찰에 나선 그는 한국에 소극장을 짓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록펠러 재단은 극장 부지가 있어야 하며 법인으로만 기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유치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자택 등을 팔아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하고 당시 허정 과도정부로부터 예장동 8번지를 불하(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받는다. 비상대책회의가 찾은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한국연극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민족연극 수립과 그 앙양을 위한 연구와 창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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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인들은 ‘임대형 공공극장’인 드라마센터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비상대책회의를 꾸렸다. ⓒ뉴시스

토지대장이 말하는 ‘예장동 8번지’

드라마센터가 들어섰던 예장동 8번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자리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으로 이전한 뒤에는 국립과학관으로 쓰였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집결지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식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이곳 토지대장의 첫 소유권자는 국가(國)였다. 광복 이후 국가의 귀속재산(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된 일본인 소유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연극연구소에 유상대부(값을 받고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는 일)가 고려되다가 매각으로 결정이 났다.

이번에 발견된 당시의 ‘국유재산 매매 계약서(1960년 9월28일)’를 보면 국가는 이 땅을 유치진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에 수의계약(경쟁계약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 방식으로 매각했다. 당시 재정법에 따르면 중앙 관서의 장이 매매 계약을 할 경우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공익법인 등에게는 예외를 두었는데, 특혜가 아니라면 드라마센터의 공익적 목적을 인정한 셈이다.

매각 금액은 ‘6174만8000환’이었다. 계약금으로 10%를 지불하고 잔액을 1개월 이내 납부한다는 게 계약 조건이었다. 당시 발행된 입금증명서에 따르면 계약금을 납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약서에는 지정한 기일 내에 잔금을 납부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잔액 납부는 기간 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계약은 유지되었다. 계약서를 쓴 직후 유치진은 ‘불하대금 분납 청원의 건’이란 문서를 관재국에 보냈다. ‘우리나라 유일한 연극실험무대와 연극도서관과 연극아카데미를 포함한 연극센터를 축조케 됨이 문화민족의 일대 성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금을 10~15년으로 분납하게 해달라고 한다. 재무부 장관의 승인 아래 납부 기한이 5년으로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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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센터가 들어선 주소의 토지대장과 1960년 정부와 한국연극연구소가 체결한 국유재산 매매계약서. ⓒ조시현 제공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했고 그해 유치진은 같은 토지에 대해 국유재산 무상대부(무상으로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는 일)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장이 재단에 보낸 공문을 보면 ‘계약금을 납부치 안(않)은 이유로 해약조치 할 수 있으나 연극 연구의 공익성과 록페라 재단 등의 원조 사실에 조감하여 별첨과 같이 재무부 장관에게 이송하였으니 조속 계약금을 납부토록 조처하여 주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입금 증명서에도 쓰여 있던 계약금을 실은 내지 않았던 것이다. 비상대책회의는 이를 근거로 매매 당시 계약금 미납에도 불구하고 허위 입금증명서가 발행됐으며 해당 토지를 점용할 수 있도록 행정부가 편의를 봐주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매각 과정에 관여했던 정부 인사 일부가 한국연극연구소의 이사가 되기도 했다.

대금 납부를 미루는 동안 하급 공무원들이 독촉 공문을 보냈지만 한국연극연구소는 ‘연극 진흥 및 민족문화 향상이라는 공익적 국가 문화기관으로서의 명분’을 내세워 납부 연기를 요청했다. 납부 지연이 길어질수록 드라마센터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늘어났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 의자 기부 운동에 참여했고, 개관 공연에 참석하는 등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대금 납기일이 10년까지 연장되었다. 건립 과정에서 정부의 알선으로 은행 융자까지 이뤄졌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치진은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예그린악단 연습장으로 드라마센터를 사용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대출받은 은행 빚을 갚아주게 된 사연을 언급하기도 한다. 애초 극장 부지로 사용할 수 없는 국유재산을 내준 데다, 대금을 납부할 재력이 없음에도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특히 10년에 걸친 완납은 그사이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특혜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62년 개관한 드라마센터는 1963년 1월 경영 부진을 이유로 폐관하게 된다. 이후 재정난 해소를 위해 예식장, 영화관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사이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는 1964년 2년제 초급대학 과정인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대)로 승격되고 유치진이 이사장과 교장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연극연구소는 이사회를 열고 드라마센터를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 (현 동랑예술원)에 기부했다. 드라마센터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이 된 것이다. ‘한국 연극의 발전을 위해’ 불하받은 땅과 건물이 학교법인의 재산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상대책회의에 합류해 드라마센터에 대한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토 중인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연극학교의 설립은 표면적으로는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지만, 드라마센터의 설립 과정을 봤을 때 연극인들에게는 공공극장의 상실이자 국유재산 위에 지어진 극장의 사유화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국세청의 매도증서에 따르면 토지 대금을 완납하게 된 건 계약서를 쓴 10년 뒤인 1970년이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그보다 뒤인 1978년에 이루어진다. 건물은 1962년에 완공되는데 건물이 들어선 땅은 1978년에 가서야 학교로 넘겨진 셈이다. 1963년 재단법인이 학교법인으로 드라마센터 건물을 기증할 때 대지는 아직 재단 소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상대책회의는 애초 기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드라마센터를 짓는 데 들어간 건립 비용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아카이브에 보관된 아시아재단 서류를 통해 드라마센터의 건립 과정에 투입된 공적 자금에 대해 분석한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유치진의 환율 계산이 서류와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치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 당시 미화 1달러는 130원이었으므로 록펠러 재단에서 보내준 돈이라는 것은 고작 585만원(약 4만500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또 1만 달러는 기자재로 보내주었으므로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보내온 돈은 모두 5만5000달러. 즉 한화로 715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센터의 총 건립 비용은 대략 15만 달러이고 그중 9만7400달러가 미국 (록펠러 재단, 아시아재단, 한미재단 등)의 지원금이다. 차액 5만2600달러가 한국 현지 자금 조달 비용이라면 한국연극연구소가 밝힌 출연금 ‘2000만 환’의 환율은 130원이 아니라 380원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그 경우 미국의 지원금 규모는 더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각종 부정·편법·특혜로 세워져

드라마센터의 공공성을 둘러싼 사유화 논란은 건립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1966년, 그러한 논란을 의식한 유치진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관절 그 건물이 사복을 채울 만한 건더기가 됩니까? (중략) 드라마센터가 우리 연극 중흥의 모체가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과 달리 드라마센터는 대학의 자산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은 규모를 확장해갔다. 1989년, 정진수 등 연극인들이 사유물로 전락한 드라마센터를 연극 공연장으로 개방,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극인들은 애초 서울예대와 남산예술센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센터의 사회 환원을 요구했지만 국유재산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입수한 후 질문 상대를 국가로 확장하고 있다. 드라마센터의 주인을 찾는 일은 ‘한국 연극의 아버지 유치진’이라는 연극사를 넘어서는 일이자,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김숙현 평론가는 “지금껏 연극계가 드라마센터라고 하면 자동으로 ‘유치진이 사재를 털어 지은 극장’이고 그의 업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열정까지 포함한 사재라 하더라도 록펠러 재단과 정부의 자금 및 특혜, 국민 성금에다 의자까지 기증을 받았다. 그걸 종잣돈 삼아 학교 재산을 불렸다. 공적 자산을 사유화한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말했다. 총장의 비리 의혹으로 지난 3월 교육부 조사를 받기도 한 서울예대는 드라마센터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상대책회의는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드라마센터의 문제점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연극제 등을 기획하고 있다.

<2018-08-22> 시사IN 

☞기사원문: 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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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告訓民正音專用主張輩

 

何由嫌漢字(하유혐한자)

滿國半文盲(만국반문맹)

曲解先王意(곡해선왕의)

衆言罪不輕(중언죄불경)

 

한글 專用을 주장하는 무리에게 告함

 

무슨 이유로 漢字를 싫어하나

半文盲者들이 이 나라에 가득

世宗 대왕님 뜻을 曲解했으니

罪 무겁다고 뭇사람이 말한다.

 

<時調로 改譯>

 

왜 漢字 싫어하나 半文盲이 나라 가득

어진 世宗 대왕님 그 뜻을 曲解했으니

당신들 罪 무겁다고 많은 이가 말한다.

 

*文盲: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줄을  모름.  또는 그런  사람  *曲解:  사실

옳지 아니하게 해석(解釋)함. 또는 그런 해석. 남의 말이나 행동을 본뜻과는

달리 좋지 아니하게 이해함. 또는 그러한 이해(理解) *先王: 선대(先代)의 임금.

선군(先君). 또는 옛날의 어진 임금 *重言: 많은 사람의 말 *不輕: 가볍지 않음.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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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자본주의가 잠식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남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 사상으로 이북과의 대결과 반목이 강요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친일 잔존 세력들이 친미주의자로 둔갑하여 정치, 군사, 경제, 정보기관, 문화예술, 학계 등 곳곳으로 침투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하는 분단적폐 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미국을 고무찬양, 숭배하고 분단을 유지시켜 미국의 배를 불리는 민족반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삶과 행동이 분단적폐의 효과를 내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지 조차 인식 못하는 가련한 삶을 사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전 세계가 전변하고 있고, 이남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바로 이북에 대한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평가와 판단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니 인권이니 떠들어대던 분단적폐들의 목소리를 일소시키는 생생한 장면들이 최근 전 세계로, 이남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4. 27 판문점 선언의 과정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과정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왜곡과 편견이 없이 이북 사회를 아주 조금이나마 경험한 것의 결과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 넘치며 예의바른 배려에서 느껴지는 겸손한 언행, 연출과 조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머감각과 진중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언제나 이북의 인민들과 이남의 민중들 그리고 미국민들, 세계인류까지 생각하는 원대한 구상에 대한 과감한 결단력을 우리는 본 것이다.

 

10만명이 집단체조를 하면서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아리랑’ 공연이 어떻게 가능한가? ICBM과 SLBM이 단 한번에 성공해내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과 정이 넘치는 곳, 국가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을 위해 멸사복무하겠단 마음으로 헌신하는 곳, 불의와 부정의 그리고 민족배반 행위에 대해서는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민족 자부심과 양심이 바로선 곳, 자신의 이름은 드러내기보단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하는 곳이 바로 이북 사회의 진짜 모습이다.

 

이런 사회가 최고지도자로부터 전당 전인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똘똘뭉쳐진 사회가 바로 이북인 것이다.

 

이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지금껏 있어온 편견을 걷어치우자. 이것은 바로 분단적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분단의 장막을 씌워둔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며 우러러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가를 몰라본다면 우리는 아마 친미를 일삼는 분단적폐세력들의 손아귀(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게)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중대한 변화로 가득한 한반도에서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명심하자.

세상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이북의 ‘혼연일체, 일심단결’에 있다는 것을 알자.

 

이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의 힘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면, 이남에서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으로부터 자주로운 나라로 거듭나자.

 

이것이 평화이자 번영이며 통일이다!

 

 

토, 2018/07/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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悖鄕(패향)

 

小人懷大志(소인회대지)

癡者說儒經(치자설유경)

逆竪云忠孝(역수운충효)

狂夫促覺醒(광부촉각성)

 

風紀 문란한 고을

 

도량 좁은 사람이 大志를 품었고

어리석은 者가 儒家의 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 충효 운운하고

미친 사내 정신 차리길 재촉하네.

 

<時調로 改譯>

 

小人이 大志 품고 癡者가 儒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이 충과 효 운운하고

오호라! 미친 사내가 각성을 재촉하네.

 

*悖鄕: 못된  사람들이  살아 風紀가  고약한  시골.  인륜에  어그러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풍기가  문란한  고을 *大志: 마음에 품은 큰 뜻. ≒홍지(鴻志) *癡者:

치인(癡人).  치한(癡漢).  어리석고  못난 사람  *儒經: 유서(儒書). 유가서(儒家

書).  유가(儒家)에서  쓰는,  유학(儒學)에  관한  *逆竪: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고약한  사람  *狂夫: 미친 사내 *覺醒: 깨어 정신을 차림. 醒覺. 깨달아 앎.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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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告韓國古典飜譯院

 

或此難於作(혹차난어작)

衆人語不輕(중인어불경)

村儒嘲誤譯(촌유조오역)

盡力免苛評(진력면가평)

 

한국고전번역원에 삼가 아룀

 

或 이것은 짓기보다도 더 어려워

많은 이들이 가볍지 않다 말하네

시골 사는 선비 誤譯을 조롱하니

힘을 다해 가혹한 비평 면하소서.

 

<時調로 改譯>

 

或 짓기보다 어려워 가볍지 아니하네

시골에 사는 선비가 誤譯을 조롱하니

모쪼록 힘을 다하여 혹평을 면하소서.

 

*衆人: 뭇사람 *不輕: 가볍지 않음 *村儒: 시골에 사는  선비  *誤譯: 잘못 번역함. 

또는 잘못된 번역 *盡力: 있는 힘을 다함. 또는 낼 수 있는 모든 힘. 갈력(竭力).

사력(肆力). 기력(盡其力) *苛評: 가혹(苛酷)하게 비평함. 또는 그러한 비평.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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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局(정국)

 

萬猫逢一虎(만묘봉일호)

魄散作悲鳴(백산작비명)

左右無人物(좌우무인물)

當然雜輩爭(당연잡배쟁)

 

정치계의 형편

 

수많은 괭이들, 한 마리 범 만나면

놀라 넋 잃고 비명을 막 지를 텐데

좌우를 돌아봐도 인물이란 없으니

잡된 무리끼리 다툼일랑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수많은 고양이들이 한 마리 범을 만나면

놀라서 넋을 잃고는 비명을 지를 터인데

좌우로 인물 없으니 雜輩 다툼 마땅하다.

 

*魄散: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悲鳴: 슬피 욺. 또는 그런 울음소리 *雜輩: 잡된 무리.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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賢問愚答(현문우답)

 

敎堂聽說敎(교당청설교)

牧者辱耶蘇(목자욕야소)

訪寺逢僧衆(방사봉승중)

方知佛大愚(방지불대우)

 

똑똑한 물음에 못난 대답

 

예배당에서 설교를 들어 보니

목사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며

절간을 찾아가 중들을 만나니

부처의 大愚 바야흐로 알겠다.

 

<時調로 改譯>

 

목사의 설교 들으니 예수를 욕보이며

절간을 찾아가서 스님들을 만나 보니

부처의 큰 어리석음 바야흐로 알겠다.

 

*賢問愚答: 현명한 물음에 대한 어리석은 대답 *敎堂: 종교 단체 信者들이 모여

예배나 布敎를 하는 집 *說敎: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 또는 그러한 설명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僧衆: 여러 승려. 승려의 무리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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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전시자료 14

제국 홍보의 소품, 시정기념엽서 시리즈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매년 10월 1일이면 이른바 시정기념엽서(始政記念葉書, 1920년부터는 5주년 단위)를 발행했다. 조선총독부가 출범하여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를 처음 펼친 날이 바로 10월 1일이었으므로 이를 기념하려는 목적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 고급 엽서들은 조선의 문화 유산이나 자연풍광을 비롯해 조선 각 지방의 산업 발달 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디자인 소재로 삼았다.
‘시정기념’이란 말에 걸맞게 이 엽서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넘어 총독부의 선정(善政)에 의해 미개한 조선이 비약적으로 문명개화했다고 내외에 선전하는 홍보수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실제 매년 발행된 기념엽서는 대부분 조선 전 분야가 일제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묘사 하거나, 낙후된 과거 모습과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여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디자인되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환영한 것처럼 디자인한 후안무치한 엽서들도 있다. 의도적인 상징 조작과 합성을 통해 그들은 조선인의 실상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낙토(樂土) 식민지’를 이미지로 창출한 것이다.
통신우편수단으로 각광을 받던 이 엽서를 상용하면서 조선인들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정기념엽서는 통신수단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제국의 홍보수단이자 민족적 자각과 저항을 잠재우려는 ‘움직이는 마취제’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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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삼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하는 신공황후 그림

2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일장기를 든 소녀를 둘러싸고 일본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노는 장면. 뒤쪽에 일본과 한국의 상징인 벚나무와 오얏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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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정1주년기념 : 배경에 인삼이 개화한 모양 도안. 백운동 식림 1년과 4년 비교 사진 배치

4 시정1주년기념 : 한강 철교, 죽도 등대, 광량만 염전, 인천 수도 수원지 사진 삽입

5 시정2주년기념 : 구식 서당과 신식 학교 비교 사진. 일본 다이쇼천황 상중이라는 이유로 검은색 바탕 사용

6 시정3주년기념 : 부산 제1잔교와 연락선, 부산우편국, 부산정거장 사진 삽입

7 시정4주년기념 : 일본인 농업이민 주택과 근대식 논농사 사진과 조선인의 재래식 관개 및 제초 방식 그림 대비

8 시정4주년기념 : 조선호텔과 진남포 축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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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정5주년기념 : 경성우편국 신축청사 전경

10 시정5주년기념 :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니와 목포항의 면화 집
하 장면 사진과 관련 통계

11 시정6주년기념 : 전북 임익수리조합과 평북 태천관개 사업 관련 사진 배치, 여백에는 수차와 흰닭을 그림

12 시정6주년기념 : 동아연초공장과 조선피혁공장 사진, 배경에 담배꽃, 담뱃대 등을 그림

13 시정7주년기념 : 하세가와 총독의 초상을 도라지꽃으로 감싸고, 그 아래 용산총독관저는 국화, 월계수와 총독부 상징인 오동나무꽃으로 꾸밈

14 시정8주년기념 : 황해도 겸이포 미쓰비시제철소 전경과 용광로 등의 사진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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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시정8주년기념 : 대정수리조합 취수구과 수로 사진. 해당지역 지도를 바탕으로 구성

16 시정9주년기념 : 동해 횡단항로를 사용하는 선박 다테가미마루(立神丸), 청진항에서 일본으로 보내지는 콩과 성진항에서 일본으로 실려가는 소 사진 실림. 배경은 동해 횡단항로도

17 시정9주년기념 : 은사수산경성제사장(恩賜授産京城製絲場)과 총독부제생원 맹아교육 장면. 뽕잎, 누에, 국화와 오동나무꽃을 배경으로 그림

18 시정10주년기념 : 평북 신의주 조선제지회사와 평남 승호리 오노다세멘트제조주식회사 평양지사 공장 전경

19 시정10주년기념 : 한강 인도교를 배경으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의 초상 배치

20 시정15주년기념 : 이왕가 수견식(收繭式)과 누에고치 모양의 테두리 안에 경성제사장 사진 삽입

월, 2018/07/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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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有名牧師

 

莫語從神意(막어종신의)

衆知幾度違(중지기도위)

平生貪貨色(평생탐화색)

不愧仰天祈(불괴앙천기)

 

이름난 목사에게 띄우는 글

 

神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지 말게

몇 번이나 어겼는지 뭇사람 아네

한평생 돈과 또 女色 탐했으면서

부끄러워 않고 하늘 우러러 비네.

 

<時調로 改譯>

 

神意일랑 말 말게 뭇사람이 어김 아네

돈과 또 女色 따위 한평생 탐했으면서

부끄럼 하나도 없이 하늘 우러러 비네.

 

*神意: 神의 뜻 *貨色: 재색(財色). 재물과 여색(女色) *仰天: 하늘을 우러러봄.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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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自稱莊老道通者

 

問汝知莊老(문여지장로)

焉輕孔孟言(언경공맹언)

危人危己者(위인위기자)

閉口速歸源(폐구속귀원)

 

스스로 莊子와 老子에 도통했다고 일컫는 者를 비웃다

 

네게 묻노니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子와 孟子의 말씀 어찌 깔보나

타인과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者

입 닫고 빨리 근원으로 돌아가라.

 

<時調로 改譯>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孟 말씀 왜 깔보나

타인과 또한 자신을 썩 위태롭게 하는 者

신속히 그 입 꽉 닫고 근원으로 돌아가라.

 

*莊老: 장자(莊子) 노자(老子) *孔孟: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閉口: 입을 다묾.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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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里(백운리)

 

暫且望雲變(잠차망운변)

能知所以名(능지소이명)

每峯奇別界(매봉기별계)

爲客築宮城(위객축궁성)

 

흰 구름 마을에서

 

잠시 구름의 변하는 모습 보자니

이름을 붙인 까닭일랑 알 만하다

솟은 봉우리마다 썩 기이한 別界

나그네 위하여 궁궐도 쌓고 있다.

 

<時調로 改譯>

 

구름의 변모 보자니 命名 까닭 알겠다

저기 솟아난 峯마다 매우 기이한 別界

지나는 나그네 위해 궁궐도 쌓고 있다.

 

*白雲: 색깔이 흰 구름  *暫且: 잠시(暫時)  *所以: 까닭  *築城: 城을  쌓음 *宮城:

궁궐(宮闕). 궁궐을  둘러 싼 성벽. 궁장(宮牆). 금성(禁城). 봉성(鳳城). 朱闕.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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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5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 7층 한상은라운지에서 각계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최덕수 고려대 교수,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 수령자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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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대상은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수여된 17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논문으로 2월 20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9일 심사위원회에서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조재곤 동국대 교수, 장영숙 상명대 교수, 한모니까 카톨릭대 교수, 김태우 외국어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령자인 유바다 박사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그간의 국제법적 연구와 만국공법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구로서 한국사와 국제법 연구자들에게 주목받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등한시해 온 당대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까지 확보하여 분석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앞으로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법적인 지위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혜영 연구원

월, 2018/07/0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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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低賃金引上

 

如何零細業(여하영세업)

店主用人難(점주용인난)

氣盡呼妻子(기진호처자)

無能固未安(무능고미안)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

 

영세한 사업은 과연 어떻겠는가

가게 주인, 사람 쓰기 쉽지 않네

기진맥진하여 妻와 자식 부르니

무능함에 대하여 정말 미안하네.

 

<時調로 改譯>

 

영세업 어떠한가 사람 쓰기 어렵다네

기운이 떨어져서 妻와 자식을 부르니

家長의 무능에 대해 정말로 미안하네.

 

*零細: 작고 가늘어 변변하지 못함.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함 *店主:

가게 주인 *用人: 사람을 씀. 또는 그 사람 *氣盡: 기운이 다해 힘이 없어짐.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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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천도)

 

凶徒爲大富(흉도위대부)

善類豈貧寒(선류기빈한)

或者云天道(혹자운천도)

牛嘲犬馬嘆(우조견마탄)

 

하늘의 道

 

흉악한 무리는 큰 富者가 되는데

착한 무리 왜 가난하고 쓸쓸한가

어떤 者가 하늘의 道를 운운하니

소는 비웃고 개와 말은 탄식한다.

 

<時調로 改譯>

 

凶徒는 大富 되는데 善類는 빈한하네

어떤 者 하늘의 道 어쩌구저쩌구하니

마침내 소는 비웃고 犬馬는 탄식한다.

 

*凶徒: 흉당(凶黨). 사납고 흉악한 무리 *大富: 큰 富者 *善類: 착한 무리 *貧寒:

살림이 가난해 집안이 쓸쓸함 *或者: 어떤 사람 *犬馬: 개와 말을 아울러 이름.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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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錢庵住持逐客乃笑吟

 

執着奚如此(집착해여차)

無非暫借錢(무비잠차전)

紅樓恒不惜(홍루항불석)

向客放揮鞭(향객방휘편)

 

崇錢庵의 住持가 나그네를 내쫓기에 웃으며 읊다

 

집착하심이 어찌 이와도 같은고

잠시 동안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妓樓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時調로 改譯>

 

집착 어찌 이런고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아가씨 술집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가련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逐客: 손님을  푸대접하여  쫓아냄  *如此: 이러함  *無非: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暫借: 잠시 동안 빌림 *借錢: 차금(借金). 돈을 꾸어 옴. 또는 그 돈

*紅樓: 기루(妓樓). 창루(娼樓). 娼妓를 두고 영업하는 집 *不惜: 아끼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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