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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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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익명 (미확인) | 금, 2018/08/24- 11:45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서울예술대학 소유의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를 위탁 운영해왔다. 지난 1월 서울예술대학교가 계약 종료를 요청하면서 드라마센터의 소유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1962년 4월12일,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9번지에 ‘드라마센터’가 개관했다. 200평 규모에 객석 473석을 갖춘 연극 전용 극장으로, 원형극장을 응용한 개방형 객석이 특징이었다. 개관 당시 상영됐던 ‘대한뉴스’ 제361호에 따르면 ‘무대는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배우가 객석의 상하 사방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는 입체적 다양성 모델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점점 연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끔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창설자인 유치진 연출가를 비롯해 국내외 인사들이 참여해 오색 테이프를 끊었다. 개막작은 셰익스피어의 <햄리트>였고, 이를 관람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에 ‘10만 환’을 전달하고 특별명예회원이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로 불린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현대식 공연장으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할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2009년부터 서울시가 서울예술대학 소유의 극장을 연 10억원에 임대해 10년째 위탁 운영해오고 있다. 최근 연극계에서 이 극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1월, 서울예대가 서울시와의 계약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부터다. 연극인들은 임대형 공공극장으로 입지를 굳혀온 드라마센터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꾸리고 지난 4월부터 세 차례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연극단체 43개와 연극인 544명은 드라마센터가 과연 ‘누구의 극장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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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9번지에 위치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윤성희

비상대책회의 소속 연극인들은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법인등기부, 국유재산 매각 서류 등을 입수하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드라마센터의 건립과 유지 과정에서 정부의 각종 부정·편법·특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드라마센터의 설립 과정은 주로 유치진의 자서전과 평전 등을 통해 알려져왔다. ‘불하받은 땅과 록펠러 재단의 지원, 그리고 유치진의 사재를 털어 극장이 지어졌다’는 게 연극계의 통설이었다.

김숙현 연극평론가에 따르면 드라마센터의 건립은 한국 연극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연극 전용 무대나 시설이 없던 1960년대 초 연극 활동에 새로운 활로를 마련해준 극장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컸다. 그만큼 연극인들의 기대도 높았다. 설립을 이끈 건 한국 연극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유치진이다. 생전 그는 “후진성을 극복하여 우리 민족연극을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어서” 드라마센터를 짓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세대 연극평론가인 유민영은 드라마센터가 ‘세계 극장의 역사를 압축한 초현대식 극장’이라며 건립 하나만으로도 연극사에 남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유학했던 유치진은 1930년대 신극 운동을 주도한 극예술연구회의 일원이었고, 친일 연극으로 평가받는 국민연극을 주도하기도 했다. 1956년,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세계 연극 시찰에 나선 그는 한국에 소극장을 짓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록펠러 재단은 극장 부지가 있어야 하며 법인으로만 기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유치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자택 등을 팔아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하고 당시 허정 과도정부로부터 예장동 8번지를 불하(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받는다. 비상대책회의가 찾은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한국연극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민족연극 수립과 그 앙양을 위한 연구와 창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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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인들은 ‘임대형 공공극장’인 드라마센터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비상대책회의를 꾸렸다. ⓒ뉴시스

토지대장이 말하는 ‘예장동 8번지’

드라마센터가 들어섰던 예장동 8번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자리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으로 이전한 뒤에는 국립과학관으로 쓰였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집결지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식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이곳 토지대장의 첫 소유권자는 국가(國)였다. 광복 이후 국가의 귀속재산(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된 일본인 소유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연극연구소에 유상대부(값을 받고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는 일)가 고려되다가 매각으로 결정이 났다.

이번에 발견된 당시의 ‘국유재산 매매 계약서(1960년 9월28일)’를 보면 국가는 이 땅을 유치진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에 수의계약(경쟁계약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 방식으로 매각했다. 당시 재정법에 따르면 중앙 관서의 장이 매매 계약을 할 경우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공익법인 등에게는 예외를 두었는데, 특혜가 아니라면 드라마센터의 공익적 목적을 인정한 셈이다.

매각 금액은 ‘6174만8000환’이었다. 계약금으로 10%를 지불하고 잔액을 1개월 이내 납부한다는 게 계약 조건이었다. 당시 발행된 입금증명서에 따르면 계약금을 납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약서에는 지정한 기일 내에 잔금을 납부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잔액 납부는 기간 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계약은 유지되었다. 계약서를 쓴 직후 유치진은 ‘불하대금 분납 청원의 건’이란 문서를 관재국에 보냈다. ‘우리나라 유일한 연극실험무대와 연극도서관과 연극아카데미를 포함한 연극센터를 축조케 됨이 문화민족의 일대 성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금을 10~15년으로 분납하게 해달라고 한다. 재무부 장관의 승인 아래 납부 기한이 5년으로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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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센터가 들어선 주소의 토지대장과 1960년 정부와 한국연극연구소가 체결한 국유재산 매매계약서. ⓒ조시현 제공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했고 그해 유치진은 같은 토지에 대해 국유재산 무상대부(무상으로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는 일)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장이 재단에 보낸 공문을 보면 ‘계약금을 납부치 안(않)은 이유로 해약조치 할 수 있으나 연극 연구의 공익성과 록페라 재단 등의 원조 사실에 조감하여 별첨과 같이 재무부 장관에게 이송하였으니 조속 계약금을 납부토록 조처하여 주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입금 증명서에도 쓰여 있던 계약금을 실은 내지 않았던 것이다. 비상대책회의는 이를 근거로 매매 당시 계약금 미납에도 불구하고 허위 입금증명서가 발행됐으며 해당 토지를 점용할 수 있도록 행정부가 편의를 봐주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매각 과정에 관여했던 정부 인사 일부가 한국연극연구소의 이사가 되기도 했다.

대금 납부를 미루는 동안 하급 공무원들이 독촉 공문을 보냈지만 한국연극연구소는 ‘연극 진흥 및 민족문화 향상이라는 공익적 국가 문화기관으로서의 명분’을 내세워 납부 연기를 요청했다. 납부 지연이 길어질수록 드라마센터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늘어났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 의자 기부 운동에 참여했고, 개관 공연에 참석하는 등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대금 납기일이 10년까지 연장되었다. 건립 과정에서 정부의 알선으로 은행 융자까지 이뤄졌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치진은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예그린악단 연습장으로 드라마센터를 사용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대출받은 은행 빚을 갚아주게 된 사연을 언급하기도 한다. 애초 극장 부지로 사용할 수 없는 국유재산을 내준 데다, 대금을 납부할 재력이 없음에도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특히 10년에 걸친 완납은 그사이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특혜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62년 개관한 드라마센터는 1963년 1월 경영 부진을 이유로 폐관하게 된다. 이후 재정난 해소를 위해 예식장, 영화관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사이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는 1964년 2년제 초급대학 과정인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대)로 승격되고 유치진이 이사장과 교장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연극연구소는 이사회를 열고 드라마센터를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 (현 동랑예술원)에 기부했다. 드라마센터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이 된 것이다. ‘한국 연극의 발전을 위해’ 불하받은 땅과 건물이 학교법인의 재산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상대책회의에 합류해 드라마센터에 대한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토 중인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연극학교의 설립은 표면적으로는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지만, 드라마센터의 설립 과정을 봤을 때 연극인들에게는 공공극장의 상실이자 국유재산 위에 지어진 극장의 사유화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국세청의 매도증서에 따르면 토지 대금을 완납하게 된 건 계약서를 쓴 10년 뒤인 1970년이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그보다 뒤인 1978년에 이루어진다. 건물은 1962년에 완공되는데 건물이 들어선 땅은 1978년에 가서야 학교로 넘겨진 셈이다. 1963년 재단법인이 학교법인으로 드라마센터 건물을 기증할 때 대지는 아직 재단 소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상대책회의는 애초 기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드라마센터를 짓는 데 들어간 건립 비용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아카이브에 보관된 아시아재단 서류를 통해 드라마센터의 건립 과정에 투입된 공적 자금에 대해 분석한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유치진의 환율 계산이 서류와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치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 당시 미화 1달러는 130원이었으므로 록펠러 재단에서 보내준 돈이라는 것은 고작 585만원(약 4만500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또 1만 달러는 기자재로 보내주었으므로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보내온 돈은 모두 5만5000달러. 즉 한화로 715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센터의 총 건립 비용은 대략 15만 달러이고 그중 9만7400달러가 미국 (록펠러 재단, 아시아재단, 한미재단 등)의 지원금이다. 차액 5만2600달러가 한국 현지 자금 조달 비용이라면 한국연극연구소가 밝힌 출연금 ‘2000만 환’의 환율은 130원이 아니라 380원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그 경우 미국의 지원금 규모는 더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각종 부정·편법·특혜로 세워져

드라마센터의 공공성을 둘러싼 사유화 논란은 건립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1966년, 그러한 논란을 의식한 유치진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관절 그 건물이 사복을 채울 만한 건더기가 됩니까? (중략) 드라마센터가 우리 연극 중흥의 모체가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과 달리 드라마센터는 대학의 자산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은 규모를 확장해갔다. 1989년, 정진수 등 연극인들이 사유물로 전락한 드라마센터를 연극 공연장으로 개방,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극인들은 애초 서울예대와 남산예술센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센터의 사회 환원을 요구했지만 국유재산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입수한 후 질문 상대를 국가로 확장하고 있다. 드라마센터의 주인을 찾는 일은 ‘한국 연극의 아버지 유치진’이라는 연극사를 넘어서는 일이자,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김숙현 평론가는 “지금껏 연극계가 드라마센터라고 하면 자동으로 ‘유치진이 사재를 털어 지은 극장’이고 그의 업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열정까지 포함한 사재라 하더라도 록펠러 재단과 정부의 자금 및 특혜, 국민 성금에다 의자까지 기증을 받았다. 그걸 종잣돈 삼아 학교 재산을 불렸다. 공적 자산을 사유화한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말했다. 총장의 비리 의혹으로 지난 3월 교육부 조사를 받기도 한 서울예대는 드라마센터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상대책회의는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드라마센터의 문제점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연극제 등을 기획하고 있다.

<2018-08-22> 시사IN 

☞기사원문: 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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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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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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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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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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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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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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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6/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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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등 반민족·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대회

“반민족주의자 김창룡의 묘를 몰아내자!”
“친일청산하고 민족통일 이뤄내자!”
“국회는 국립묘지법을 신속히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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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현충원 묘지 현충원 묘지 앞 ⓒ 송혜림

6일 10시, 대전국립묘지 현충교에선 뜨거운 열기를 잊은 듯한 힘찬 구호가 울려퍼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이 묻혀진 현충원에 ‘친일파’라니, 과연 무슨 일일까.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김창룡과 5.18 민주항쟁을 진압한 책임자들이 순국열사들과 함께 현충원에 묻혀있다고 문제를 제기 했다.

이번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대회’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평화재향군인회, 대전충청 5.18민주유공자회 등 시민단체 주최로 현충교에서 진행되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묵념하기 위해 찾는 현충원,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날 행사는 가두 판넬 전시와 홍보물 배포, 성명서 낭독과 파묘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되었다.

현충원의 장군묘역은 반민족 사범들의 안식처인가” 울분의 성명서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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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교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든 모습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가 열린 와중,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임재근

오전 9시, 가두 판넬 전시 및 홍보물 배포로 시작한 행사는 본격적으로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의 대회사와 촉구 발언이 이어지고, 대회 참가자들의 성명서 낭독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성명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으로 구석구석 이 땅의 적폐를 청산중에 있으며, 오래된 민족의 적폐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새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곳 국립묘지는 과거의 적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여전히 ‘국립묘지법’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 국립묘지는 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영혼의 안식처가 아니던가…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해방 후에는 이승만 비호 아래 양민학살에 앞섰고, 민족 지도자이신 김구 선생님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김창룡이 ‘국립 묘지법’의 비호 아래 이 곳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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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서를 낭독중인 이순옥 부위원장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 <국립묘지법 개정과 친일파 묘 이전 촉구대회> 성명서를 낭독중이다. ⓒ 임재근

그리고 무력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주범이자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여 처벌받은 범법자 안현태와, 5.18 민주항쟁 당시 진압군 측 주요 책임자인 유학성, 소준열이 이곳에 버젓히 편하게 잠자고 있다. 이런 자들의 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국립묘지에 대한 모독이자, 우리 국민을 욕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짓이자, 이 곳에 고이 잠들어 계시는 순국선열과과 애국지사를 능멸하는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더불어 이해 관계자들에 주장하는 바를 밝혔다. 우선 김창룡과 안현태 등의 유족에는 “그들의 묘가 현충원에 있는 한 국민에게 조롱받을 것”이라며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묘를 이장”하길 요구했다. 또 국회위원들에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개정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길” 촉구했다.

더불어 현충원 유족들과 국민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우리 호국영령 들은 반민족 반민주 인사들과 한자리에 묻혀 맘이 편하실리 없다. 유족과 국민들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들을 국립현충원에서 몰아내도록 여론을 만들자”라며 친일파 파묘에 힘을 보태주길 호소했다.

추모의 장에 친일파 흔적은 없어져라… 파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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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파묘 퍼포먼스 김창룡의 묘 앞에서 파묘 퍼모먼스를 대회 참가자들이 이행하고 있다. ⓒ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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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룡 묘 앞에 놓인 피켓들 김창료 묘 앞에 참가들이 준비한 피켓들이 놓여져 있다. ⓒ 송혜림

‘민족의 반역자 김창룡 묘 파가라!’라고 적힌 커다란 삽이 등장했다. 대회 참가자들이 삽에 이어진 끈을 잡고 영차영차 잡아당기자, 마치 무덤을 파내는 듯한 파묘 장면이 연출된다. 현충원 장군묘역에 위치한 육군중장 김창룡의 묘에서는 위와 같은 파묘 퍼포먼스와 묘 이전을 촉구하고 국립묘지법을 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

김창룡,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이들이 이렇게도 분노하는걸까. 1920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출생한 그는 1940년에 일본 관동군 헌병교습소에서 근무하다가 일본 중지군의 아마카스사단 파견헌병대에 배속되었다. 중국공산단 거물 왕진리를 체포하는데 큰 공을 세운 그는 이후 다수의 항일조직을 적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월남 이후 국방경비대 내부 좌익숙청을 벌이며 육군 방첩대장이 된 김창룡은 1949년 ‘김구암살사건’에서 사건 당일 범인 안두희를 특무대 영창으로 이감, 특별 배려하며 배후 은폐에 가담했다. 6.25 전쟁 이후 김창룡은 특무부대장으로 부임 후 정치적목적과 성과주의로 상당한 공안사건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암살당한 그의 장례식은 최초의 국군장으로 안양의 사설 묘역에서 치뤄졌으나, 1988년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현충원에 이장되었다.

애국지사 조문기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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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원에 이장된 조문기 묘 앞에서 대회 참가들이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송혜림

친일파의 묘에서 퍼모먼스를 이행한 참가자들은 고 조문기 열사의 묘로 이동했다. 조문기 열사는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대한애국 청년당을 개설하고 국내 항일운동을 주도해왔다. ‘친일청산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라는 구호아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노력을 기하다 2006년 파킨스병으로 사망했다.

추모사를 발언한 박해룡은 “이승만 정권 하에 단독정부와 독재를 반대한 조문기는 민주화 투쟁과 통일 운동을 이어나갔다. 현대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했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데 함께 했다.”라며 “승리의 영광없이 고난밖에 없던 가시밭길을 걸어오셨다. 그러나 현재 남북회담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 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시대에 발맞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친일파들을 청산하고 몰아내는 데 힘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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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곽낙원의 묘와 김 인의 묘 앞 단체촬영 김구 어머니 곽낙원의 묘와 김구 아들 김 인의 묘 앞에서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송혜림

또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의 묘 앞에서는 “민주화를 갈망했던 아들이 부당하게 세상을 뜬지 70년이 되었다. 여전히 국내 곳곳에는 친일의 잔재가 남아있다.”라며 “요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김구와 김구 어머니가 그토록 꿈꾸시던 통일을 앞두고 있다. 조속하게 친일과 유신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노력하겠다. 양심 민주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연대하며 만들어가겠겠다”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 인사 중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으로 총 63명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가슴아픈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의 하나로 이들 묘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어져 왔으나, 현행 법에 제정된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 째 미뤄져 왔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민족사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어 현충원의 진정한 존재가치가 바로잡히길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2018-06-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현충원에 드리워진 그림자, 친일파의 묘?

목, 2018/06/0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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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어린이 책을 좌편향이라며 낙인찍은 정황이 보인다. <시사IN>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전태일이 위인으로 소개’돼 있어 ‘도서 선택에 신중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요하게 ‘좌편향’을 문제 삼았다. 기존 검인정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며, “99.9% 전국 고등학교의 절대다수가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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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오른쪽)과 안종범 경제수석이 청와대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좌편향’ 낙인찍기 집착은 교과서만이 아니었다. <시사IN>은 박근혜 정부가 기존 어린이 교양도서도 좌편향이라며 낙인찍은 문건을 입수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다. 여기에는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지시사항에 대한 이행 및 대책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같은 내용이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51권 곳곳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를 추진하던 2015년 11월23일, 이병기 실장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아래 <그림 1-1> 참조). “당분간 ‘집필진 명단 미공개’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해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고, 명단 보안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교문수석).”

이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누가 참여하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아 ‘복면 집필진’이라는 비판을 샀다. 정부 입맛대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과정을 불투명하게 하고, 집필진의 비전문성을 숨기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실장은 계속해서 집필진 비공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바로 다음 이어진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 문건 내용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 교양도서의 이념 편향성, 특히 위인전집에 있어 대상 위인 선정의 좌편향성이 매우 심각한데 이러한 도서가 교양도서로 출판되도록 놔둔 교육부/문체부에 문제가 있음. 행정조치에 앞서 이러한 실상을 학부모들이 정확히 알도록 해 도서 선택에 신중하도록 유도할 필요 *전태일, 레닌, 호찌민, 모택동, 체 게바라 등을 위인으로 소개.”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기록된 지시사항

같은 날(2015년 11월23일) 쓰인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5. 역사 교양도서(아래 <그림 1-2> 참조)’라고만 쓰인 단어에 위와 같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 등을 다룬 도서는 ‘좌편향’이 심하다며 어린이가 읽지 못하게 정부 부처가 민간 출판에도 개입하라는 초법적인 주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지역 중·고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할 계획이었다. 이 또한 편향이라고 몰아세웠다.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관련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아래 <그림 2-1> 그림 참조). “친일인명사전이라는 용어가 자꾸 회자되지 않도록 하고, ‘학교가 특정 편향 단체의 출판을 지원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점을 적극 알려나갈 것(교문수석).” 같은 날 작성된 2016년 2월14일 안종범 전 수석은 청와대 티타임 메모를 남겼다. 1번부터 7번까지 기록한 내용의 다섯 번째가 ‘친일인명사전?(아래 <그림 2-2> 참조)’이다. 0608-4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4389명이 이름을 올렸다. 2008년 박지만씨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으면 안 된다”라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은 학문적 의견 표명에 가깝고 발간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국정화를 ‘이념 전쟁’으로 인식한 박근혜 정부는 비판세력을 제어할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했다. 2015년 9월30일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교과서 국정화 성공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세력을 제어할 정교한 추진 전략과 디테일한 상황 진전 계획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함…. ※이러한 대국민 홍보 강화를 위해 KBS, EBS 등 매체를 잘 활용할 필요(위 <그림 3-1> 참조)”.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안종범 전 수석에게 국정화 홍보전에 나서라는 주문을 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2015년 9월20일자 VIP 메모에 ‘1. 국정교과서, 부모들 마음 움직여야, 조갑제 대한민국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김일성 보천보 전투 X, 조선 MBC 한경 매경, 시민단체 부모단체(위 <그림 3-2> 참조)’로 기록되어 있다.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을 위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활용하라는 취지다.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리고 시행하는 데 관여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기 전 비서실장, 안종범 전 경제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은 현재 모두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이들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고, 국정교과서 관련 직권남용 등 혐의는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2018-06-05> 시사인

☞기사원문: 어린이 책에 붙인 좌편향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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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블랙리스트를 공개합니다

시사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향한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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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6/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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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방한
“남북 분단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남북 평화 무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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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북한의 피해자들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 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야노 국장이 성금 모금을 위해 만든 팸플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8.6.9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배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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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통해 탄생한 4·27 판문점 선언을 지지한다며 종전선언 이후의 남북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야노 국장은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후 한국 전쟁도 있었지만, 결국 한반도 분단의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에 있다”며 “하지만 그 사실을 일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알리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 일본은 자민·사회당이 북한 노동당과 양국 관계 정상화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재 아베 정권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베 정권은 대북 압력만 넣고 있는데 이는 북미정상회담 등 화해 과정을 방해하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베 정권의 이런 방해 공작을 막는 것이 일본 시민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야노 국장은 또 “많은 일본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만 생각하면서 일본을 피해국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일본 때문에 피해를 본 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관계가 더욱 개선되고 종전선언이 나오더라도 향후 북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야노 국장은 “현재 한일 간에도 위안부 문제나 군인·군속의 강제동원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한일 양국의 상황을 극복해서 향후 북한에 대해서는 더 발전된 해결책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공원으로 뒤바뀐 효창공원과 김구기념관, 대공분실을 참관하는 등 식민지배와 강제병합, 한국 현대사 등을 배운 뒤 1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야노 국장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열 계획”이라며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된 인권 유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과 학습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앞으로 과거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토, 2018/06/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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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서울=연합뉴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2018.6.9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9일 민족문화연구소에 식민지역사박물관 설립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여원을 기부했다.

안자코 유카 모임 공동대표와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등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민문연에서 열린 기금전달식에서 지난 2년간 일본에서 모은 성금 1억345만원을 관련 자료와 함께 전달했다.

민문연은 “한국과 일본 시민의 연대의 뜻을 모은 만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평화의 인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민문연의 식민지박물관 건립을 응원하는 취지로 지난 2015년 11월 발족했으며, 홍보 팸플릿 4만 부를 찍어 지난해 초까지 일본 전역에 배포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 설립기금 1억원 기부

※관련기사

☞헤럴드경제: 아베와 다른 일본인들…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1억원 기부

토, 2018/06/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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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하는 사관생도(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8일 오후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제107주년’기념식에서 사관생도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육사, 신흥무관학교 계승한 학교”…독립군 전통, 국군역사에 편입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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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 육사에서 처음 개최(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서 육사 군악대와 생도들이 분열의식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생도 1천100여명은 육사 화랑연병장에 집합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위한 분열의식을 했다.

8개 중대로 나뉜 육사 1~4학년 생도들과 육사 군악대는 약 15분간 절도 있는 동작으로 연병장을 돌며 연단 앞에 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들을 항해 큰 소리로 ‘충성’ 경례를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와 호국간성의 대한민국 정예장교를 양성하는 육사의 역사적 만남이었다.

이날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것은 육사가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학교라는 선언의 의미가 있다. 나아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 등 독립군의 전통이 국군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가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같은 해 10월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국군의 효시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동안 국군의 역사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과거 군 당국이 독립군의 전통을 국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1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행사를 육사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육사에는 독립군의 역사를 가르치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군 당국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9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독립군과 광복군과 관련한 역사를 국군의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육사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당시 박일송 육사 교수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효시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1911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 등의 군사교육기관은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육사의 정신적 정통성의 연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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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교내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들이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이어 올해 3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육사 교내 충무관에 설치됐다.

이날 신흥무관학교 기념식이 육사에서 열린 것도 군 당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로 가능했다.

기념식에는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와 육사 생도대장인 김태진 준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 1천200여명이 참가했다.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육사 생도들의 분열의식,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및 특별전시회 관람, 항일음악회 순으로 진행됐다.

항일음악회에선 ‘안중근 옥중가’, ‘기쁨의 아리랑’, ‘광복군 아리랑’, ‘압록강 행진곡’ 등 독립군이 부르던 노래들이 연주됐다.

육사 관계자는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한 학교”라고 “전쟁사 과목 중 포함됐던 독립전쟁 역사교육의 시간을 크게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오늘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국군의 뿌리는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국군 장병들이 앞으로 독립군이 불렀던 노래도 군가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8-06-08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처음 열렸다…”독립군 정신 계승”

금, 2018/06/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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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역사교육위원회’의 조속한 신설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에 부쳐-

1. 오늘(8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 및 백서 발간에 맞추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의 횡포’이자 ‘교육의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역사교육 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화 추진이 “교육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교육부장관으로서 “정부 과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새로이 되새기며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2. 지난 3월 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발표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 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국정화 사건’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국정화 사건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작당하여 자행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쿠데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발표문을 접하고, 교육부가 과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을 헌법을 유린한 중차대한 사안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 가장 심각한 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고·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 의뢰 대상에서 배제하였다는 사실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한 다음, 여당(새누리당),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총동원하여 추진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가)편찬기준 수정요구, (나)편찬심의위원 선정 개입 (다)집필진 선정 등 교과서 편찬과 내용 수정과 같은 세부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 박근혜 전 대통령임이 명약관화한데도 교육부는 그를 수사의뢰 대상에서 제외하는 납득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였다.

4. 다음 국정농단에 동조한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처벌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교육부가 청와대의 지시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가)국정화 추진과 실행 계획을 수립‧추진하였으며, (다)청와대의 국정화 논리를 홍보하고, (다)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관을 동원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하였다’고 하였다. 교육부는 청와대의 국정농단에 자발적‧적극적‧반복적으로 동조한 ‘공동정범’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화 방침을 결정할 당시 교육부 수장이었던 황우여 장관이 수사의뢰 대상에서 빠졌다. 게다가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 등 산하기관을 총동원하여 국정농단에 부역하였는데, 겨우 여섯 명의 고위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5. 교육부의 과장급 이하 중·하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면죄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국정화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삼아 견마지로를 다한 적폐세력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들이 (가)국정화 논리를 적극 개발하고 홍보하였으며 (나)검정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거짓 선동하였으며 (다)여론 조사를 빙자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정권의 ‘충견(忠犬)’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함부로 팔아넘겨도 된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6. 교육부는 <보도 자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 발표(‘18.3.28) 당시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하여 추진”하겠다면서, 구체적으로 (가)역사교육지원체제 구축 (나)역사교과서 발행관련 제도와 법규 개선 (다)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 정립 (라)역사교육 공론화 장 및 기구 마련 등을 제시하였다.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제작에 올인한 교육부가 역사교육과 관련된 이와 같은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지를 선언하고 1년이 넘었는데도, 교육부는 아직까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대신할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자유한국당이 적반하장으로 근거 없는 색깔론 공세를 퍼붓는데도 교육부는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역한 수구-냉전 세력인 교육부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어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을 정립’한다고 하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7. 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작년 4월 28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역사교육의 정치성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정책 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그 가운데 3항이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차후 신설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기구(전담 위원회 등)를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진상조사위원회도 재발방지책으로 ‘역사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역사교육 거버넌스 주관기구로 역할을 부여할 것’을 권고하였다. 교육부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면피용 재발 방지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학계와 체결한 대통령 공약이 조속히 이행되도록 노력하여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끝>

2018년 6월 8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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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253-5251

호반식당의

유뤌이십일

사대강물요일이

기다려지는구나!

월, 2018/06/1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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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6회 “을사늑약과 이토히로부미”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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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금, 2018/06/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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