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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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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익명 (미확인) | 금, 2018/08/24- 11:45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서울예술대학 소유의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를 위탁 운영해왔다. 지난 1월 서울예술대학교가 계약 종료를 요청하면서 드라마센터의 소유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1962년 4월12일,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9번지에 ‘드라마센터’가 개관했다. 200평 규모에 객석 473석을 갖춘 연극 전용 극장으로, 원형극장을 응용한 개방형 객석이 특징이었다. 개관 당시 상영됐던 ‘대한뉴스’ 제361호에 따르면 ‘무대는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배우가 객석의 상하 사방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는 입체적 다양성 모델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점점 연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끔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창설자인 유치진 연출가를 비롯해 국내외 인사들이 참여해 오색 테이프를 끊었다. 개막작은 셰익스피어의 <햄리트>였고, 이를 관람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에 ‘10만 환’을 전달하고 특별명예회원이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로 불린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현대식 공연장으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할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2009년부터 서울시가 서울예술대학 소유의 극장을 연 10억원에 임대해 10년째 위탁 운영해오고 있다. 최근 연극계에서 이 극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1월, 서울예대가 서울시와의 계약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부터다. 연극인들은 임대형 공공극장으로 입지를 굳혀온 드라마센터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꾸리고 지난 4월부터 세 차례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연극단체 43개와 연극인 544명은 드라마센터가 과연 ‘누구의 극장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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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9번지에 위치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윤성희

비상대책회의 소속 연극인들은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법인등기부, 국유재산 매각 서류 등을 입수하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드라마센터의 건립과 유지 과정에서 정부의 각종 부정·편법·특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드라마센터의 설립 과정은 주로 유치진의 자서전과 평전 등을 통해 알려져왔다. ‘불하받은 땅과 록펠러 재단의 지원, 그리고 유치진의 사재를 털어 극장이 지어졌다’는 게 연극계의 통설이었다.

김숙현 연극평론가에 따르면 드라마센터의 건립은 한국 연극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연극 전용 무대나 시설이 없던 1960년대 초 연극 활동에 새로운 활로를 마련해준 극장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컸다. 그만큼 연극인들의 기대도 높았다. 설립을 이끈 건 한국 연극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유치진이다. 생전 그는 “후진성을 극복하여 우리 민족연극을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어서” 드라마센터를 짓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세대 연극평론가인 유민영은 드라마센터가 ‘세계 극장의 역사를 압축한 초현대식 극장’이라며 건립 하나만으로도 연극사에 남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유학했던 유치진은 1930년대 신극 운동을 주도한 극예술연구회의 일원이었고, 친일 연극으로 평가받는 국민연극을 주도하기도 했다. 1956년,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세계 연극 시찰에 나선 그는 한국에 소극장을 짓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록펠러 재단은 극장 부지가 있어야 하며 법인으로만 기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유치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자택 등을 팔아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하고 당시 허정 과도정부로부터 예장동 8번지를 불하(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받는다. 비상대책회의가 찾은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한국연극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민족연극 수립과 그 앙양을 위한 연구와 창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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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인들은 ‘임대형 공공극장’인 드라마센터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비상대책회의를 꾸렸다. ⓒ뉴시스

토지대장이 말하는 ‘예장동 8번지’

드라마센터가 들어섰던 예장동 8번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자리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으로 이전한 뒤에는 국립과학관으로 쓰였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집결지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식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이곳 토지대장의 첫 소유권자는 국가(國)였다. 광복 이후 국가의 귀속재산(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된 일본인 소유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연극연구소에 유상대부(값을 받고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는 일)가 고려되다가 매각으로 결정이 났다.

이번에 발견된 당시의 ‘국유재산 매매 계약서(1960년 9월28일)’를 보면 국가는 이 땅을 유치진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에 수의계약(경쟁계약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 방식으로 매각했다. 당시 재정법에 따르면 중앙 관서의 장이 매매 계약을 할 경우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공익법인 등에게는 예외를 두었는데, 특혜가 아니라면 드라마센터의 공익적 목적을 인정한 셈이다.

매각 금액은 ‘6174만8000환’이었다. 계약금으로 10%를 지불하고 잔액을 1개월 이내 납부한다는 게 계약 조건이었다. 당시 발행된 입금증명서에 따르면 계약금을 납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약서에는 지정한 기일 내에 잔금을 납부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잔액 납부는 기간 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계약은 유지되었다. 계약서를 쓴 직후 유치진은 ‘불하대금 분납 청원의 건’이란 문서를 관재국에 보냈다. ‘우리나라 유일한 연극실험무대와 연극도서관과 연극아카데미를 포함한 연극센터를 축조케 됨이 문화민족의 일대 성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금을 10~15년으로 분납하게 해달라고 한다. 재무부 장관의 승인 아래 납부 기한이 5년으로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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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센터가 들어선 주소의 토지대장과 1960년 정부와 한국연극연구소가 체결한 국유재산 매매계약서. ⓒ조시현 제공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했고 그해 유치진은 같은 토지에 대해 국유재산 무상대부(무상으로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는 일)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장이 재단에 보낸 공문을 보면 ‘계약금을 납부치 안(않)은 이유로 해약조치 할 수 있으나 연극 연구의 공익성과 록페라 재단 등의 원조 사실에 조감하여 별첨과 같이 재무부 장관에게 이송하였으니 조속 계약금을 납부토록 조처하여 주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입금 증명서에도 쓰여 있던 계약금을 실은 내지 않았던 것이다. 비상대책회의는 이를 근거로 매매 당시 계약금 미납에도 불구하고 허위 입금증명서가 발행됐으며 해당 토지를 점용할 수 있도록 행정부가 편의를 봐주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매각 과정에 관여했던 정부 인사 일부가 한국연극연구소의 이사가 되기도 했다.

대금 납부를 미루는 동안 하급 공무원들이 독촉 공문을 보냈지만 한국연극연구소는 ‘연극 진흥 및 민족문화 향상이라는 공익적 국가 문화기관으로서의 명분’을 내세워 납부 연기를 요청했다. 납부 지연이 길어질수록 드라마센터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늘어났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드라마센터 의자 기부 운동에 참여했고, 개관 공연에 참석하는 등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대금 납기일이 10년까지 연장되었다. 건립 과정에서 정부의 알선으로 은행 융자까지 이뤄졌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치진은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예그린악단 연습장으로 드라마센터를 사용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대출받은 은행 빚을 갚아주게 된 사연을 언급하기도 한다. 애초 극장 부지로 사용할 수 없는 국유재산을 내준 데다, 대금을 납부할 재력이 없음에도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특히 10년에 걸친 완납은 그사이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특혜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62년 개관한 드라마센터는 1963년 1월 경영 부진을 이유로 폐관하게 된다. 이후 재정난 해소를 위해 예식장, 영화관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사이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는 1964년 2년제 초급대학 과정인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대)로 승격되고 유치진이 이사장과 교장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연극연구소는 이사회를 열고 드라마센터를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 (현 동랑예술원)에 기부했다. 드라마센터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이 된 것이다. ‘한국 연극의 발전을 위해’ 불하받은 땅과 건물이 학교법인의 재산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상대책회의에 합류해 드라마센터에 대한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토 중인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연극학교의 설립은 표면적으로는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지만, 드라마센터의 설립 과정을 봤을 때 연극인들에게는 공공극장의 상실이자 국유재산 위에 지어진 극장의 사유화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국세청의 매도증서에 따르면 토지 대금을 완납하게 된 건 계약서를 쓴 10년 뒤인 1970년이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그보다 뒤인 1978년에 이루어진다. 건물은 1962년에 완공되는데 건물이 들어선 땅은 1978년에 가서야 학교로 넘겨진 셈이다. 1963년 재단법인이 학교법인으로 드라마센터 건물을 기증할 때 대지는 아직 재단 소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상대책회의는 애초 기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드라마센터를 짓는 데 들어간 건립 비용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아카이브에 보관된 아시아재단 서류를 통해 드라마센터의 건립 과정에 투입된 공적 자금에 대해 분석한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유치진의 환율 계산이 서류와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치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 당시 미화 1달러는 130원이었으므로 록펠러 재단에서 보내준 돈이라는 것은 고작 585만원(약 4만500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또 1만 달러는 기자재로 보내주었으므로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보내온 돈은 모두 5만5000달러. 즉 한화로 715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센터의 총 건립 비용은 대략 15만 달러이고 그중 9만7400달러가 미국 (록펠러 재단, 아시아재단, 한미재단 등)의 지원금이다. 차액 5만2600달러가 한국 현지 자금 조달 비용이라면 한국연극연구소가 밝힌 출연금 ‘2000만 환’의 환율은 130원이 아니라 380원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그 경우 미국의 지원금 규모는 더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각종 부정·편법·특혜로 세워져

드라마센터의 공공성을 둘러싼 사유화 논란은 건립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1966년, 그러한 논란을 의식한 유치진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관절 그 건물이 사복을 채울 만한 건더기가 됩니까? (중략) 드라마센터가 우리 연극 중흥의 모체가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과 달리 드라마센터는 대학의 자산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은 규모를 확장해갔다. 1989년, 정진수 등 연극인들이 사유물로 전락한 드라마센터를 연극 공연장으로 개방,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극인들은 애초 서울예대와 남산예술센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센터의 사회 환원을 요구했지만 국유재산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입수한 후 질문 상대를 국가로 확장하고 있다. 드라마센터의 주인을 찾는 일은 ‘한국 연극의 아버지 유치진’이라는 연극사를 넘어서는 일이자,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김숙현 평론가는 “지금껏 연극계가 드라마센터라고 하면 자동으로 ‘유치진이 사재를 털어 지은 극장’이고 그의 업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열정까지 포함한 사재라 하더라도 록펠러 재단과 정부의 자금 및 특혜, 국민 성금에다 의자까지 기증을 받았다. 그걸 종잣돈 삼아 학교 재산을 불렸다. 공적 자산을 사유화한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말했다. 총장의 비리 의혹으로 지난 3월 교육부 조사를 받기도 한 서울예대는 드라마센터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상대책회의는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드라마센터의 문제점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연극제 등을 기획하고 있다.

<2018-08-22> 시사IN 

☞기사원문: 드라마센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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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식 공연에 ‘친일파’ 조두남 작곡 ‘선구자’ 준비
작사가 윤해영도 친일 행적…연습 중 지적 받고 제외

▲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1일 오전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민주종각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기념 민주의 종 타종식’에 참석해 이은방 시의회의장, 장휘국 시교육감, 독립유공자 유족, 시민 등과 함께 타종을 하고 있다./광주광역시 제공

제99주년 3·1절을 맞아 광주시가 진행한 민주의 종 타종행사 기념공연에 ‘친일노래’가 불려질뻔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습 도중 문제제기를 받고 본 공연에선 제외했으나 행사를 준비한 광주시의 역사의식 부재를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광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광주시청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 후 5·18민주광장에서 민주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윤장현 시장, 이은방 광주시의회 의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여했다.

“3·1절 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시민대통합을 이루자”는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가 자칫하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할뻔 했다.

‘일’은 행사 준비 과정에서 터졌다.

광주나비는 이날 낮 12시 5·18민주광장에서 3·1절 99주년을 기념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11차 광주 수요시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타종식은 이 행사 10분 전인 오전 11시50분 진행이 됐는데, 수요시위 참석을 위해 5·18민주광장을 지나가던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이 기념공연 연습 과정을 보게 됐다.

공연자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김순흥 지부장의 귀를 의심케 했다. ‘친일가요’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곡 ‘선구자’를 부르고 있던 것이었다.

이 곡은 작사자와 작곡가 모두 친일행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다 노래 자체도 ‘친일가요’로 알려져있다.

작곡가 조두남은 일본 중심의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한 ‘만주작곡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선구자’ 노랫말을 쓴 윤해영 역시 논쟁은 있지만 ‘친일작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순흥 지부장은 현장에서 바로 이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10년이 넘도록 (선구자가)친일 음악이라고 지적해 왔는데, 광주시는 그것도 모르고 3·1절이라는 중요한 날에 기념공연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같은 지적에 광주시는 부랴부랴 공연 계획을 수정, 본공연에선 ‘선구자’를 빼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함’은 남는다.

김순흥 지부장이 현장을 보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타종식에 앞서 ‘선구자’가 3·1절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불려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김순흥 교수님의 지적을 받고 혼란서러워 본 공연에선 ‘선구자’를 빼기로 했다”며 “이 노래 자체는 독립군의 기상을 표현하는 곡으로 알려져있고, 많이 불려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곡가 등의 행적이 특별히 문제가 된다는 것은 몰랐다”며 “공연을 준비한 기획사 쪽에서도 그렇게만 알고 ‘선구자’를 선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누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노래를 만든 사람들의 배경까지는 검증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며 “이와 관련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순흥 지부장은 시가 지적에 따라 ‘선구자’를 공연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선 “다행이다”면서도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특히 “‘선구자’는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노래가 아니다”며 “말을 타고 달리는 일본군을 부러워하는 내용이다”고 꼬집었다.

‘선구자’는 윤해영의 ‘용정의 노래’라는 시에 곡을 붙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노랫말 중 “말 달리는 선구자”가 만주벌판을 누빈 독립투사를 연상케한다고 해 독립군의 기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김 지부장의 지적이다.

김 지부장은 “기획사가 선곡을 했더라도 타종식 자체는 광주시가 주관한 행사가 아니었나? ‘친일음악’이라는 것도 모르고 준비한 것 자체가 문제다”며 “반성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3-01> 광주드림

☞기사원문: 광주시 3·1절 기념행사서 친일노래 불려질뻔

토, 2018/03/0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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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일제시대에 만든 일본 신사는 국내에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고흥 소록도에 남아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최근 철거와 보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99번째 3·1절을 맞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보도에 박승현 기잡니다.

【 기자 】
지난 1935년 건립된
고흥 소록도 내 일본 신사입니다.

당시 일제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전국 천개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신사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존치하자는 쪽은 소록도 신사는 이미 원래 기능을 잃었고
일제 침략의 흔적인 만큼
교육자료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소록도 신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역사를 극복함으로서 후세에 좋은 교육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반면 철거해야 한다는 쪽은
신사는 단순 시설물이 아닌
일제의 정신적 의미가 담겨 있어
역사 청산과 함께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 노성태 / 향토 사학자
– “일본 군국주의 정신의 상징터 거든요. 따라서 저희들이 남겨놓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보존이냐 철거냐 논란이 커지고 있는
소록도 신사.

이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kbc 박승현입니다.

<2018-03-01> KBC광주방송

☞기사원문: 국내 유일 ‘日 신사’ 존폐 논란

토, 2018/03/0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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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때미꼬?

민중이지팡이!

글카고

저울사들

칼사들…..동창핸….아나나?

갑장낼보재이,,,,,도미징친구차말로친구

渡美증칭구!

우짜건노 옷사이피고밥사미고잠재구고

 

…..&&&&그마드리  漢다카는데,

 

 

토, 2018/03/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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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국장 !

심재욱님!

호빵사부야!

삼월 열나흩날 이란다.

물요일?

사대강물은 우리핵고 댕길때처럼,

운재 돌아올란지,

꼴초야!

화면좀보자!

시계방울아!

상판대기 운재 배줄래…

경상고5기의 삼월십사일  사대강물요일이….

월, 2018/03/0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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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시즌2 #9-2 미당문학상 이야기 (맹문재 시인과 함께)

화, 2018/03/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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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노&방 팀장&조 작가의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

그 첫번째 에피소드 의열단 두번째 이야기!!

화, 2018/03/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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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미투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제 아내가 거의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몇 년전부터 오랜시간 정신과 상담을 받아오던 중이었습니다. 20대 청춘을 여 군으로 삶을 보내다가 전역한 아내입니다.

실제 아내가 보냈던 군 생활은 본인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계급사회고 그러다보니 상명하복은 기본인데 그렇게 강한 생활에서 많은 불만들이 있었고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문제가 발생하여 심적인 상처가 깊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심리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심각할 정도로 병적인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도대체 왜그러는지 정말 남편에게도 말못할 일이 있는 건지…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정말…원통하고 화가나서 미칠 지경입니다.

군 내부에서 계급사회의 권력구조를 이용한 일상적인 성희롱, 성추행과 성폭력 만연하다는 사실…그리고 제 아내 역시 그러한 상황에 피해자로 노출이 되어있었다는 사실…

20대 젊은 나이를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한몸 바쳐보겠다는 아내의 애국심은 그렇게 군대 안에서의 만연한 성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동기들과 어려운 얘기를 나눠봐도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 상황들…오롯이 지켜만보는 수많은 방관자들 속에서 아내의 삶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고…이런 일들이 결국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사실…

개인이 대응해서 해결하기에 너무 큰 군대라는 조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길은 보이지 않고…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MeToo운동이 꼭 군 조직에서도 만들어지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군대 안에서의 미투운동을 응원하며…저희 가족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군(軍)의 성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군대 안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계급이 낮은 여군을 상대로 한 상급 지휘자의 성폭력 사건 상당수가 공개되지 않은 채 묻힐 것으로 보고 있다.

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478건이던 군내 내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4년 649건, 2015년 668건, 2016년에는 871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6월 말 기준 442건으로 전년 수치를 웃돌았다. 군 별로는 육군이 전체 성범죄 발생 건수 3108건 가운데 77%인 2408건을 차지했고, 이어 해군 367건(12%), 공군 232건(7%), 국방부 직할부대 101건(3%)의 순이었다.

지난달 28일에는 군인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전 육군 사단장(소장)이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로 원심판결이 확정됐고, 영관급 장교인 B 중령은 부서 회식 자리에서 부하 여군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아 보직해임됐다.

하지만 아직도 계급이 높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3년간 여군 상대 군대 내 성폭력 사건 대부분은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등 미온적 처벌만 내려지거나 부적절한 법 조항이 적용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직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성범죄 가해 군인 189명 가운데 징역형은 9명뿐이었다. 집행유예 22명, 기소유예 16명, 벌금 12명, 혐의 없음 11명, 선고유예 9명, 무죄 3명 등이었고 나머지는 재판 중이거나 가해자 전역으로 일반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 여군의 58%는 부사관이었고 대령 이상 장성급은 한 명도 없었다.

김학용 의원은 “사회 전반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계급사회인 군 내부에서는 여군이 현직 지휘관을 성범죄로 고발하기는 어려운 시스템”이라며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해주고 군내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을 강화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email protected]

화, 2018/03/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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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1

화, 2018/03/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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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정치인들(일부)

이사진을  봄시로

나의 칠팔년과

나의 중딩년…

ㄴㅏ의 초딩…칠공70

홍지팡이와박목탁에게!

가리느까?

가로노까?

퐁로사실을

동시다발적으로

ㅇㅣ바구하는 일부 자매들의

의도성 의문이 간다.

남한전국적으로  파문이 되는것과,    미혼여성미혼남성”””            홀로여성홀로남성”””

물론, 박목탁홍지팡!             …………………………….니도 그런생각이  들더나?

일부여성 즉+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는  겨레여동생은

ㅇㅕ태마리엄따!

나의성고백은 초딩에게.”””

ㅊㅜㄹ산과  남성

출산과 여성

아이와남성

아이와 여성 …….                      $%# 세계여성의날도  이서야 된다면  세계남성의날도 이서야

성사회학  입장에서본  전반적  일부성남성의 위기와 일부 성여성의  인과관계를  우째볼건지,?

“”””분단재벌성장남성여성피해노동자본종속미국일본중국남한북한비정규정규””””””저출산과성문제?

…..거둘절미해서….   (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스타인들과 관계된,

오늘여성들의 일부들도  당시에  왜?   원치않는 성침핼 당했다고,  박목탁들과  홍지팡들에게  이바구  안핸는지…… 필잔또…. 어느곳에 이력서를  넣고,  봄비  오훈…..실장님국장님도    ….엄꼬!

목, 2018/03/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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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와독자관객은

봄비다.

성사회학의 남한조국은 또다른  시돌 해야지 않는지,

목, 2018/03/0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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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의 새로운 파일럿방송 “역전다방; 의열단 3편”
목, 2018/03/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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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원위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군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이니 어떻게 문제 해결이 되겠나. 3년동안 군대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문제의 가해자는 200명 정도이고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10명이 안되는 상황이다.

대학시절 꽤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가 초창기 ROTC 지원을 했다.
당시에 여성 ROTC 지원자에세 많은 혜택도 있었고, 여자친구가 평소에도 유난히 활동적이고 단체생활에서도 리더로 역할을 잘해내는 장점이 있어서 나 역시도 많은 응원을 했었다.

그렇게 군생활도 대학생활도 잘해내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부터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평소와는 다르게 밝은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나에게 어렵게 털어 논 내용은 정말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의 상관이었던 작자는 회식자리나 식사자리에서 은근슬쩍 스킨쉽을 시도하기를 수차례 진행을 했었고, 나름 우회적으로 거절과 거부의 의사를 밝힌 여자친구의 의사표현을 묵살하며 더러운 짓을 계속하다가 심지어는 군생활을 오래 잘 해내기 위한 훈련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대학시절의 거의 대부분과 장교로 임관을 해서도 그렇고 대한민국 군인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여자친구를 제대로 보살펴줬던 나 역시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군대라는 조직이 가지는 특성은 성폭력문제가 기생하여 독버섯처럼 퍼지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지금 같은 솜방망이식 처벌은 우리나라 군대문화를 바꿔내기엔 너무 부족한게 현실이다.

하루빨리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가해자들이 처벌받기를 기도해본다.

금, 2018/03/0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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