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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정율성’ 보도, 독립운동을 폄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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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정율성’ 보도, 독립운동을 폄훼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8/17- 18:47

[김종성의 뉴스 팩트체크] 독립투사의 딸 초청한 주중대사관,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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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주중 한국대사관 광복절 행사에… 6.25때 중공군 정율성 딸도 초청’ 기사. ⓒ조선일보 PDF

지난 15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독립투사 정율성의 딸인 정소제(75)씨가 초청된 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경축식에는 임시정부 비서였던 김동진의 딸과,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본명 장지락)의 아들도 초청됐다.

16일자 <조선일보>는 베이징 특파원 명의의 기사에서 정소제씨 초청 대목에만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주중 한국대사관 광복절 행사에… ‘6·25 때 중공군’ 정율성 딸도 초청”이란 제목 아래 정율성이 중국공산당원으로 가입했고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해 김일성에게 바쳤”으며 “6·25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해 서울까지 내려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주중대사관이 대단히 불순한 인물의 딸을 초청한 듯한 인상을 풍긴 것이다.

정율성은 나라 잃은 지 4년 뒤인 1914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오늘날 광주광역시에 정율성로라는 도로명이 있다. 또 해마다 10월에 사흘간 ‘정율성 국제음악제도 광주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광주 남구에 있는 정율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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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남구 양림동 휴먼시아 아파트 입구 정율성로(路)에 광주 출신의 중국 혁명 음악가 정율성 선생의 흉상이 조성됐다. 2009년 7월 15일, 흉상 조성을 축하하는 제막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단순히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광주 사람들이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해도 부족함 없는 인물이지만, 국가가 하지 않으므로 고향 사람들이라도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여는 취지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의 문화광장 코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면서도 중국에서의 항일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으로 중국 3대 음악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의 삶과 음악성을 재조명해 업적을 기리고…(하략)”

항일투쟁과 음악적 성과로 중국 3대 음악인으로 추앙받는 점이 정율성 국제음악제 개최의 결정적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대표작 <연안송>이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오늘날 그의 중국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중앙대 국악대학장 및 한국음악학회장 등을 역임한 고 노동은 교수가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항일음악 330곡집>은 이렇게 설명한다.

“<연안송>은 중국의 마오쩌둥(모택동)과 저우언라이(주은래)·주더(주덕) 등이 이끌었던 항일혁명의 성지 옌안을 찬양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중국인들에게 대표적인 항일가이자 서정적인 가곡으로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연안송> 외에 <중국인민해방군가>도 정율성이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그의 작품이다. 이렇게 바로 옆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인 작곡가가 정작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국제적 음악가라는 사실은 물론 열혈 독립투사였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운전자가 바로 옆에 있는 차량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딴 데 정신이 팔려 시야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에 대한 우리의 시야 역시 그렇게 좁아져 있기 때문에 정율성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율성의 기본 이력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이 그를 ‘6·25 때 중공군’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6·25 때 중공군’이라는 프로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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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음악 300곡>에 수록된 <연안송> 악보. ⓒ김종성

율성(律成): 오선지로 독립운동을 하다

정율성은 1914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부은이다. 율성(律成)은 ‘음율이 성취되다’라는 어의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 지은 이름이다. 개명에 얽힌 이야기가 역사학자 이이화가 쓴 <천재 음악가 정율성>에 소개돼 있다.

“그의 아버지는 단순한 농부가 아닌 지식인이었다. 음악에 열중하는 어린 아들을 보고, 예전에는 외적을 물리칠 적에 북과 나팔로 사기를 돋우었던 일을 상기하며 우리에게 군가가 없다는 한탄을 들려주었다. 이에 그는 깊이 느낀 바가 있었고 또 그런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때 ‘음악을 이룬다’는 뜻을 지닌 율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 제92권에 실린 글 중에서

정율성은 외적을 물리칠 때 북과 나팔로 아군의 사기를 돋우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항일 음악가가 돼 나라를 독립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음악을 통한 항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성가대가 교회 예배나 전도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선지로 하는 독립운동도 총으로 하는 독립운동 못지 않게 중요했다. 정율성은 오선지로 하는 독립운동만 한 게 아니라 총으로 하는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다만 오선지에 좀 더 비중을 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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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음악 300곡>에 수록된 정율성 사진. ⓒ김종성

정율성은 19세 때인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첫째형 정남근, 둘째형 정인제, 셋째형 정의근처럼 독립투사가 될 목적이었다. 열혈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독립운동단체 사무를 보면서 음악공부를 병행했다. 그 뒤 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서도 활동하고 뤼신예술학원에서 음악도 가르쳤다.

1941년부터는 화북조선청년연합회나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돼 항일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해방 뒤에는 북한에 가서 음악을 가르치며 인민군협주단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는 중국 국적을 취득해 중국인민지원군이 된 뒤 전선 위문활동을 펼쳤다. 1951년 4월 중국으로 돌아간 뒤 작곡 활동에 전념하다가 197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렇게 독립투사 출신의 음악가로 일생을 마감했다.

<조선일보> 논리의 문제점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주중대사관이 정율성의 딸을 초청한 것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하나는 그가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동진 지사와 김산은 정부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으나, 정율성은 아니다.” – <조선일보> 기사 중

이제껏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예우하지 않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제대로 대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누가 독립운동을 했는지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서훈을 받았든 안 받았든,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율성이 정부의 서훈을 받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서훈을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정율성은 아니다”라는 <조선일보> 기사의 표현을 “정율성에게도 서훈을 줘야 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독자들이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제기한 두 번째 문제점은 그가 북한 정권에 협력했다는 점이다. 해방 후 6년간 북한에 머물며 정치적 음악 활동에 종사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독립운동이 사상보다 상위에 있다는 엄중한 사실이다.

독립운동에는 사회주의자도 가담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가담했다. 이런 분들이 상호 경쟁하면서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민족의 독립을 최상위의 가치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독립 쟁취가 우리 민족의 공통 관심사였다는 점은, 서로 다른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진 불교·기독교·천도교·유교 교인들이 독립운동에 다 함께 동참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또 해방 뒤에 남으로 갔든 북으로 갔든,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부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절반 밖에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한민족 구성원과 모든 독립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을 받을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관할을 받고 싶어도 대한민국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왜 대한민국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냐?”고 물을 게 아니라, 대한민국정부 스스로 “왜 그분들을 모시지 못했나?”라고 자문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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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에 있는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 비석. ⓒ 위키백과

그리고 북으로 간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남으로 온 독립운동가 역시 북한 입장에서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게 된다. 백범 김구가 남으로 온 독립운동가라 하여, 또 <백범일지>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하여, 북한 정부가 김구를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우습고 모순된 일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북에서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남한 사람들은 부당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으로 갔다 해서 독립운동가를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똑같은 부당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으로 왔든 북으로 갔든,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다. 그런 사유를 갖고 독립운동가를 차별해서는 안된다. 사상과 종교는 물론이고 거주지를 갖고도 독립운동가를 차별해서는 안된다. 모든 유형의 독립운동가들을 다 받들고 존경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합과 탕평을 이루는 출발점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남이냐 북이냐 하는 거주지를 갖고 독립운동가를 차별하게 되면, 지금 진행중인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운동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그런 일로 분란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서 존경하는 분들을 북에서도 존경해주고, 북에서 존경하는 분들을 남에서도 존경해줘야 남과 북이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독립운동은 사상보다 위에 있다

독립운동이 사상·종교·거주지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점은 헌법 조문만 봐도 알 수 있다. 헌법 전문(서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했다. 3·1운동으로 상징되는 독립운동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 정신의 실천자들이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운동에 두고 있으므로, 이 이념에 입각해 독립운동을 한 정율성 같은 분들을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예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분들을 차별할 권리가 대한민국 정부한테는 없다. 주중대사관도 마찬가지다. 주중대사관에게는 정율성의 딸을 초청자 명단에서 뺄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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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 부르는 애국지사 후손들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15일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김산의 아들 고영광 선생(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정율성 선생의 딸 정소제(왼쪽 두번째) 여사가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독립운동을 사상의 상위에 놓지 않고, 거꾸로 사상을 독립운동의 상위에 놓은 사람들이 이제껏 저질러온 잘못들을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친일청산을 훼방하고 지연시킨 점이다.

해방 직후에 반민특위의 친일청산이 무산된 것은 이승만 정권이 친일청산을 공산주의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입장에서는 독립운동보다 사상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잘못을 앞으로도 답습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과 친일청산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는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의 시대정신이 그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촛불혁명 때 우리 국민들은 사상을 독립운동의 상위에 놓는 구세력 핵심부를 청와대에서 끌어내 감옥으로 보냈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구세력은 독립운동이나 친일청산보다는 자신들의 낡은 이념을 최상위로 평가했다. 그들은 우리 국민들이 넓은 시야로 역사와 세상을 보는 것을 방해했다. 우리 국민들이 넓은 시야로 ‘운전’하는 것을 훼방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그들을 쫓아냈다. 그 겨울의 별빛 아래서, 마치 악귀를 쫓듯 촛불을 들고 그들을 쫓아냈다. 그런 마당에 <조선일보>가 ‘악귀들’의 행태를 답습하며 그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율성은 헌법으로 봐도 문제없고, 촛불 정신으로 봐도 문제없는, 명실상부한 독립투사다.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법제도로 봐도 이 분은 틀림없는 열혈 독립투사다. 그분의 딸을 공식 행사에 초청하는 것은 그래서 문제없는 일이다.

정율성 같은 훌륭한 독립투사를 허무맹랑하게 색깔론을 덧씌워 소개하는 일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는 일이다. 북과 나팔로 외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살리고자 애쓰신 분을 ‘6·25 때 중공군’으로 소개한 <조선일보>는 팩트를 제대로 보지 못한 보도를 자행했다.

<2018-08-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조선일보의 ‘정율성’ 보도, 독립운동을 폄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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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 Q8.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져야할 자세(마지막 질문)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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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 Q7. 북한이 선택할 비핵화 모델은?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금, 2018/06/1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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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ㆍ8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9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평화나비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이용수할머니 사진손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과 한일 합의를 파기할 것을 촉구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문혜정)는 강일출 할머니 등 12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1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이나 10억엔의 성격이 불분명한 점 등 부족한 게 많은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그런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내용, 합의로 인해 원고들 개인의 일본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외교적 행위는 국가 간 관계에서 폭넓은 재량권이 허용되는 영역인 점을 고려해 피고가 원고들 주장처럼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28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일본 측의 피해자 지원금 10억엔(한화 약 111억원) 출연을 골자로 하는 합의에 대해 “이 문제(위안부)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강 할머니 등은 2016년 8월 “일본 정부가 법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국가가 피해자들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위안부 합의를 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며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본과 더 이상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해 합의해 배상청구권 및 재산권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2018-06-1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위안부 합의’ 반발한 피해 할머니들 패소…법원 “국가, 손해배상 책임없어”


피해 할머니 12명, 정부 상대 12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정부가 불법 행위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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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하루 앞둔 2015년 12월 27일 오후 경기 광주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강일출(맨 오른쪽)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015년 한일 합의를 체결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문혜정)는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쪽이 부담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법적 책임’ 인정 부분, 일본 정부가 건넨 10억엔의 성격 등 불분명하고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사건 합의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내용을 살펴봤을 때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 외교적 행위는 국가 간 폭넓은 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인 점을 고려했을 때도 정부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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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된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상희 변호사(가운데)가 법정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email protected]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과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한일합의)’를 맺으면서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합의에 포함시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를 포함해 12명의 피해 할머니들은 2016년 8월 “정부가 피해자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더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취지로 합의를 맺어 일본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무력화시켰다”며 정부를 상대로 1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피해 할머니들은 2015년 한일합의는 “정부는 일본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당한 국민이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2011년 헌법재판소 판단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2016년 당시 소송에 참여했던 12명의 피해 할머니 중 3명은 세상을 떠났다. 피해 할머니를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뒤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변호사는 취재진에 “법원 판단은 2015년 한일합의의 적법성을 결국 인정한 것 아닌가” 반문하며 “한일합의에 대해 위법성이 인정돼야만 한국정부가 이를 전제로 계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할 텐데 이 판결이 외교부에 어떤 메시지를 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할머니들에게는 한국 정부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결과가 나와 할머니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고한솔 기자 [email protected]

<2018-06-15> 한겨레
☞기사원문: 법원 “한일 위안부 합의,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 없다”

※관련기사

☞뉴시스: 법원 “한·일 위안부 합의,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 없다”

☞뉴스1: ‘헌재결정 이행 않은’ 국가상대 손배소 위안부 할머니 패소

금, 2018/06/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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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 다큐멘터리 1부가 나오고 나서

많은 사람들의 알고 있지 못했던 근대 민족의 역사를 다시 보고 사실을 알게 됨으로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많은 노고가 있었습니다.

한동안 친일부정세력의 압력과 외압에 시달려 다음 후속작의 등장이 불투명 하였으나

이제 점점 다시 시기가 다가오는 듯 합니다.

친일부정세력의 압력에는 아랑곳 않고 기존의 의도한 단 한 컷의 수정과 검열이 없는

민족근대사의 사실과 진실을 담은 백년전쟁 2부의 조속한 개봉을 염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일, 2018/06/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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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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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사계절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이건 진담이라고//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가기로 결심했다구/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주장하는 일이라고//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그야 하는 수 없지/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

문익환 목사가 1989년 새해를 맞아 쓴 ‘잠꼬대 아닌 잠꼬대’는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평양에 가겠다는 문 목사의 포부는 많은 이들에게 분단의 선을 넘는 꿈을 꾸게 했다. 하지만 이 시를 본 어떤 이들도 문 목사가 이런 포부와 다짐을 실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문 목사는 1989년 3월 북한을 방문해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분단의 장벽을 맨몸으로 깼다. 당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 목사는 “나는 말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가슴과 눈으로 하는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한편이 이기고 한편이 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길을 찾아 왔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문 목사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뜨겁게 포옹을 하며 “분단 50년을 넘기지 맙시다. 그것은 민족의 치욕”이라며 절절한 음성으로 호소했다. ‘방북’이라는 말보다는 ‘밀입북’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그 시절 분단의 장벽을 넘은 문 목사의 발걸음은 시대를 뛰어넘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이후 커지고 커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어두웠던 남북 관계를 넘어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을 비롯한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엔 문 목사의 용기 있는 첫걸음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오랜 어둠을 이기고 한반도에 평화가 다시 찾아온 올해는 문 목사 탄생 100주년(6월1일)을 맞이하는 해이다. 문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잠꼬대 아닌 잠꼬대’ 등 문 목사가 쓴 시들을 모아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란 제목의 시집이 출간됐다. 이 시집엔 문 목사가 생전에 펴낸 ‘새삼스런 하루’(1973), ‘꿈을 비는 마음’(1978),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1984), ‘두 하늘 한 하늘’(1989), ‘옥중일기’(1991), 다섯 권의 시집과 신문에 발표한 시들 가운데서 고른 70편의 시가 실려 있다.

1부는 시인으로서 면모가 돋보이는 시들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비롯해, 가족에 대한 애틋함, 존재론적 상념 등 개인적 삶의 편린을 담았다. 2부는 ‘전태일’,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동주야’ 등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들과 역사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모았다. 3부는 남북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과 통일에 대한 열망을 바라는 시들로 가득하다. 3대에 걸쳐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한 문 목사네 가족사는 곧 우리나라 근대사이자 현대사이고, 민족운동의 축소판이다. 4부는 종교인으로서 시대와 사회에 대해 느끼는 고뇌를 담은 시들로 민중과 민족의 아픔을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은 문 문사에 대해 “일흔여섯 생애 중 여섯 차례에 걸쳐 11년 2개월을 옥중에서 보냈던 우리 민족의 겸허한 심부름꾼”이고, “우리 시대의 어른이자, 한반도라는 광야를 떠돈 예언자며, 어둡고 거친 파도 넘실대는 동서남 3해의 민족사의 등대이고, 설움 많은 민중의 동무이자,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에 맞서는 전선의 척후병”이었다고 말했다. 이 시집엔 이렇게 온몸으로 역사를 살아온 문 목사의 생애와 신앙이 알알이 박혀있다.

시인의 말을 대신해 수록한 첫 시집 후기를 보면 문익환이 시인으로서 길을 걷게 된 경위가 자세히 나와 있다. 1968년부터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책임위원으로 있으면서 성서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에 힘쓰던 그는 시가 거의 40%인 구약성서를 30여 년 연구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귀중한 소득은 나 자신의 모습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일이오. 구리거울에 비춰 보던 흐릿한 나의 모습을 바람 한 점 없는 숲 속 호수에서 쨋쨋이 보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나 자신의 모습을 찾고 보니, 갈증 같은 것이 생기더군. 나의 모습을 나보다 훨씬 민감한 이 땅의 시인들의 거울에 다시 비춰 보고 싶어지더란 말이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한국 현대사와 분단의 아픔, 통일의 열망을 문익환 시인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불과 30여 년 전엔 ‘잠꼬대 아닌 잠꼬대’였던 통일과 평화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 다시 꺼내 읽는 문 목사의 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힘이 되고 있다.

<2018-06-18>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새책]“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통일 시대에 다시 읽는 늦봄 문익환

월, 2018/06/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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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나쁜 합의’인가?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6·12 싱가포르 1차 조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정리한 센토사 합의를 두고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완승”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만남 자체로 큰 성과이며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종식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핵폐기의 방식과 시한 등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얼핏 전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CVID에 집착하여 공동성명을 ‘나쁜 합의’로 단정하는 것은 이번 회담의 역사적 함의와 과거 사례와의 차별성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미간의 극한 대립은 냉전구도와 한국전쟁의 후유증에서 비롯한 바 크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일관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다. 그것은 남한이 1990년 소련과, 1992년 중국과 수교한 반면, 미·일과 북한의 관계 수립은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서도 쉽게 드러난다. 한·미·일 대 북·중·러,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결이라는 전통적 관점으로는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한 지점이어서 미국 군산복합체의 배후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센토사 합의에는 이러한 비대칭적 구도를 해소하고 정상적인 관계로 전환한다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합의문만을 보더라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북한은 핵이라는 유형의 자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데 그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억류 미국인들을 석방하였으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도 약속했다. 미국은 전면전을 가정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으로 이에 화답한 모양새다. 사실상 단계별 동시적 행동원칙에 입각한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의 조치가 구체적이고 종국적인 데 비해 미국은 비전만 제시하고 언제든 원상복구가 가능한 대응만 하고 있는 형국으로 읽힌다. 평화협정 체결과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국교 정상화 등 정작 북한이 원하는 것은 모두 전제가 있는 후순위의 과제일 뿐이라는 점에서 결코 기울어진 협상은 아니었다고 봐야 옳다.

미국과 일본의 국민 여론은 다수가 북한과의 대화를 찬성하면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여기에는 지난날의 시행착오와 오랜 불신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낙관적인 요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우선 북·미 정상의 강력한 해결 의지와 상호간의 신뢰가 있으며, 남·북·미 간 다양한 대화 채널이 열려 있고, 협상과정에서 신속하고 선제적인 조치가 뒤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체제상 최고지도자가 공공연하게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정책을 철회하기도 쉽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핵보유와 경제발전의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불가피한 선택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완전한 비핵화’는 이미 ‘불가역적’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본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북미 간 교섭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신뢰의 부족이었다. 평화를 목표로 협상을 하면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표현대로 ‘도발적인’ 군사훈련을 지속한다는 것은 국제외교의 행동규범에도 어긋난다. 이율배반적이며 명분도 서지 않는 일이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의 필요보다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군다나 주한미군은 북미 간에 진행되고 있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오른 적이 없는 주제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철저히 미국 우선주의와 실용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는 동맹도 우방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보수적 분석가들의 ‘가치동맹’이라든지 ‘혈맹’을 무시한다는 따위의 고식적 표현이 더욱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는 근대 외세의 개입으로 결국 망국에 이르는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다. 좋은 전쟁이 있을 수 없듯이 항상 이득이 되는 선량한 외국군도 있을 수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루어지고 평화체제가 굳건해진다면 외국군이 굳이 주둔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때 가서는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완충지대 나아가 중립지대로 기능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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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연합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물론 한반도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대응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변수가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는 마련되었으며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 또 해리스 주한 미 대사 내정자의 “한반도의 전반적인 풍경이 달라졌다”는 말이 수사에 그치는 표현만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퇴행하지 않도록 운전자 조정자에서 한 걸음 더해 설계자 또는 촉진자의 역할을 적극적이고 선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70년 만에 얻은 절호의 기회를 전력을 다해 살려나가야 한다. 앞장서서 청사진을 제시하고 북한과 미국을 견인해야 한다. CVID든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든 결국은 CVIP(완전하고 가시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번영)를 위한 것일 게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핵심 관건은 군사와 경제 그리고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다자안전보장체제를 구축하는 일일 것이며 일차적 목표는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창설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정치권에도 주문하고 싶다. 7회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보수 야권은 이제라도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세 변화에 조응해야 한다. 국회의 판문점 선언 비준과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 지지결의안 채택은 그 첫걸음이다. 그렇게 해야 미국 의회에도 무어라 주문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018-06-18> 프레시안

☞기사원문: 국회의 ‘北美정상선언’ 지지결의안이 필요하다

월, 2018/06/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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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장에 오류가 있거나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며 반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주장은 공익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설립 근거인 민법, 공익법인법 그리고 우리 연구소의 헌법과 같은(법률적 효력이 있는) 정관에 따라서 해석되고 판단되어야 합니다.

아마도… 현실에 따라서…. 편의상….. 관례상….  어쩔수 없이…… 등의 모호한 주장에 기초한 반론은 사절합니다.

지난번 총회에서와 같이 멀쩡한 회원을 회원이 아니라며 발언을 방해했던 몰상식한 일부 회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러한 몰상식한 주장이 제기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현재 우리 연구소는 정관이 두 개입니다.
지난 총회 전에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정관(이하 신고용 정관)이 하나이고
총회에서 의결되었으나 등록관청에 신고 및 허가를 얻지 않은 정관(이하 운영정관)이 또 하나입니다.

두 개의 정관 가운데 어떤 것이 법률적 효력을 갖을까요?

정관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 제.개정되어야 하고 등록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거나 등록관청에 신고하지 않고 허가를 얻지 않으면 법률적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2016년 전남동부지부 사건(?)에서 민사소송이 제기되었고, 이때 연구소에서는 <신고용 정관>(소을제1호증)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고용 정관>을 법률적 요건을 갖춘 정관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저는 연구소 홈페이지를 봤습니다.
연구소 소개에 “정관”이라는 메뉴가 있었고, 여기에는 2017년 12월에 개정된 정관이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12월 정관개정?????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연구소 총회는 매년 2월 또는 3월에 총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정관이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의 등록 관청인 서울시 교육청에 신고되고 허가가 되었는지…
신고가 되었다면 언제 신고가 되었는지, 허가를 얻었다면 어떻게 허가가 이루어졌는지… 등은 서울시교육청에 따로 문의토록 하겠습니다.)

위 사실을 근거로 볼때 2016년에 법원에 제출한 <신고용 정관>이 법률적으로 유효한 유일한 정관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제 부터 <신고용 정관>을 근거로 현재 운영위원회와 지부의 문제를 밝히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신고용 정관>은 제1장 총칙, 제2장 회원, 제3장 임원, 제4장 총회, 제5장 이사회, 제6장 재산 및 회계, 제7장 보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정관에 운영위원회와 지부를 정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운용중인 운영위원회와 지부는 설치 근거가 없고, 지역의 회원 일부가 지부장을 사칭하고 그 지부장들이 운영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연구소의 운영에 관여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회와 집행부는 이러한 지부와 운영위원회를 공식기구로 인정하고, 우리 연구소의 주요 의제를 보고하고 의결을 구했습니다.
심지어 지난 총회에서는 이민우 회원이 운영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정관(정관으로서 효력이 없는) 개정안을 보고하고, 총회 의장은 이를 안건으로 상정하여 표결에 부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며칠후에는 전국 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그 비용을 우리 연구소에서 부담할 예정입니다.

현재 운영위원회와 지부는 설치 근거가 없고 그저 일부 회원의 모임일 뿐입니다.
만약, 일부 회원들이 지부장, 운영위원을 자임하고 운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연구소  운영에 관여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사회와 집행부에 요구합니다.
운영위원회의 부존재를 공식화하고 예정된 운영위원회를  취소하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모든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토론회를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화, 2018/06/1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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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김정은 위원장의 원대한 구상으로 움직인다.

 

시진핑도 푸틴도 북한을 적극 지지하는 모습에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베에겐 철추를 내리듯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보이며 호통쳤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에 세계를 주름잡는 강국들의 지도자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을 바라보는 간절한 눈빛에서부터 부드러운 손짓과 걸음걸이로 이어지는 태도에서 우리는 집강아지가 주인을 만나 섬기는 모습을 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협상의 달인, 미치광이 전략, 자본에 철저히 길들여진 쇼맨쉽의 달인 트럼프가 직접 만나 본 김정은 위원장의 힘은 만나기만 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로운 심장의 핵이 있는 것은 아닐까?

 

국제질서에서 전 세계가 북한을 중심으로 정치되고 있음을 세상사람 모두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부류의 홍럼프와 같은 인간 오작품들도 그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은 그것을 전광석화 같이 알아차리는 본능이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직접 보고 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 통해서 한반도가 들썩이고 있다. 역시나 세기의 만남인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을 통해 전 세계가 들썩이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다 안다.

 

단순히 반짝하는 신드롬의 현상을 넘어서, 원래부터 있어온 위대한 사람의 진가를 확인한 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현상이 앞으로 계속 펼쳐질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난 문재인 대통령의 변화가 이를 반증한다. 트럼프 조자 온순한 집강아지로 길들이는 장면이 이를 반증한다.

 

앞으로 변화될 세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 부강번영하는 우리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미래를 보기 위해서 한반도의 진보적 민중들은 누구하나 빠짐 없이 김정은 위원장을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화, 2018/06/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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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식민정권에서 벗어나야 문재인 정부는 성공한다.

 

역사는 바야흐로 조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전 세계 민중들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한반도 남녘은 주한미군 군사의 주둔으로 미제로부터 장악되어 있다. 촛불국민들이 그토록 바라는 적폐청산의 완성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제의 새로운 한반도 지배전략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시대의 조건에 맞게 집요할 정도로 남녘사회에 침투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성조기부대 집회와 탈북단체들의 대북적대적인 반민족적 삐라살포 등의 행태이다.

 

이것은 CIA를 미롯한 미제의 정보기관과 그들과 결탁한 군수자본 집단의 철저한 지지지원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한반도 정세가 조선의 절대적인 위력 속에 좌우되는 요즘엔 아예 대놓고 반동세력들이 발악하고 있다.

 

성조기 집회와 탈북단체들의 누구의 자금으로 운영되는지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바로 북녘을 자유롭게 한다는 둥, 북녘의 인권을 운운하는 그 배후가 너무 뻔한 미제의 2중대 3중대가 그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남녘에 철저히 또아리를 틀고서 이같은 시대의 반역행위를 보장하는 것이 미제의 군대 주한미군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사실은 뻔히 알면서도 우물쭈물거리며 앞에서는 판문점선언에 손을 잡고 뒤에서는 미제놈들의 치마폭에 싸여 갈팡질팡하는 꼴이 아주 가관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기 정권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똑바로 알아야한다. 부정부패, 반민족행위, 종북공세로부터 환멸을 느낀 남녘의 민중들이 부족하더라도 내세워준 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다. 이러한 민심을 읽지 못하고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맞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로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제와 민족번영의 문제를 대한다면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과 달라질 것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전체 조선민중들이 원하는 속도에 맞는 태도로 국정에 임하라!

 

간악한 친일잔당 세력과 검은머리 미제놈들의 썩어빠진 혀끝을 모조리 도려내고 오직 한반도 전체 조선민중들 앞에서 진실하게 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전 세계를 아우르며 심지어는 트럼프 같은 작자도 세계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새시대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하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판문점선언에서 국민들 앞에 보여준 감동을 기억하라. 그리고 조미수뇌상봉이 과연 어떤 힘에 의해서 좌우되었는지 알아보라. 보통국가, 보통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문재인 정부는 정신을 바로잡고, 민족반역 간신배들을 철저히 제거하여 0.001%의 전쟁 위협과 민족적대 행위 앞에 위대한 우리민족의 편에 서야한다.

 

 

화, 2018/06/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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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한강 역사·문화를 찾아서

2018 한강 역사탐방 역사 해설가 모집

 

모집기간 : 2018.06.05.() ~ 2018.06.25.()

접 수 처 : 한강역사탐방 운영사무국

지 원 서 : 신청서 등 관련 서식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 http://hangang.seoul.go.kr/archives/49704 )

접수방법 : 이메일, 등기우편 접수 중 택 1

이메일 :[email protected]

주 소 :[06695]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69-12 (방배동) 봉황빌딩 2

한강역사탐방 운영사무국 담당자 앞

등기우편접수는 접수마감일 18:00까지 도착분에 한함

지원자격 : 19세 이상 세부 지원자격 및 우대조건은 홈페이지 참조

문 의 : 한강역사탐방 운영사무국 070-7791-2759

 

수, 2018/06/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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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비하인드 히스토리 6회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목, 2018/06/2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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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기념사업회 윤경로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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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신흥무관학교는 지난 10일 설립 107년을 맞았다. 올 기념식은 예년과 달랐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것이다. 지난 8일 서울 태릉 육사 화랑연병장에서 생도 1100여 명이 107돌을 기념하기 위한 분열 의식을 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 참석자들을 향해 충성 구호도 외쳤다. 육사 강당에선 항일 음악 발표회도 있었다.

1911년 6월 10일 만주 서간도에 세워진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까지 2천여 명의 항일 투사를 길러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중심이었다. 지청천 이범석 김경천 장군은 교관을 지냈다.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 일가의 가산이 학교 설립에 쓰인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꾸려진 사업회를 이끄는 윤경로 대표를 18일 서울 소공동 한 식당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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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육사에서 열린 기념식 뒤 사업회 쪽 참석자와 생도 대표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업회를 만들고 가장 먼저 추진한 게 육사의 뿌리 찾기였죠. 육사 연혁을 보면 미군정이 만든 군사영어학교가 전신입니다. 친일파가 많은 학교였어요.” 사업회는 애초 신흥무관학교 100돌 기념사업을 치르기 위해 만들었다. “2011년 육사에 공문을 보내 숱한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가 육사의 뿌리란 걸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고 기념식도 육사에서 하자고 제안했죠. 답이 없더군요.”

6년이 흐른 뒤 기류가 바뀌었다. “지난해 8·15 행사 뒤 육사 쪽에서 만나자고 했죠. 김완태 당시 육사 교장과 두 번 만났어요. (정진경 현 교장은 지난 5월 부임) 김 교장이 그래요. ‘난 육사 교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는다. 소신껏 하겠다’고요.” 김 전 교장은 사업회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12월 육사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 학술대회를 열었다. 올 3월 1일엔 학교 안에 홍범도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세웠다. 생도들이 군사훈련 때 쓴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 그리고 기념식이 육사 교정에서 열렸다.

윤 대표는 작년 8월 14일 애국지사·유족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점심을 먹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초청 행사였다. “문 대통령이 사업회 활동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세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육사 모체를 친일파가 우글거렸던 군사영어학교로 하는 건 잘못이다, 자존심의 문제라고요. 국군의 날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은 10월 1일이 아니라 광복군 설립일인 4월 27일이어야 한다고도 했죠. 탑골공원 정화사업의 필요성도 말했죠.” 대통령은 2주 뒤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지난 8일 육사서 107돌 기념식
작년엔 신흥 조명 학술대회도
육사 새정부 들어 사업회안 수용
“친일파 학교가 육사 전신은 잘못
신흥무관학교가 육사 뿌리 돼야
독립운동 전공자 교수 채용을”

한성대 총장을 지낸 윤 대표는 경실련 창립 멤버이다. 2003년부터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도 맡고 있다. 고려대에서 강만길 교수 지도로 ‘105인 사건’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땄다. 2012년 한성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사업회 설립 때 우당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군 장성 중심으로 하자고 했죠. 하지만 내부 토론을 거쳐 유족과 학계 중심으로 하는 게 맞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첫해 중국 답사 때는 예비역 장성 13명이 참가했어요.”

그는 신흥무관학교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데는 ‘분단 현실에 갇힌 독립운동 연구’ 탓이 크다고 했다. “(신흥 출신) 변영태는 남한 초대 외무장관을 했지만 김원봉 등은 북으로 갔어요. 이런 사정으로 연구가 제대로 안 되었죠. (분단의 제약으로) 남에서 한국 독립운동 연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위주로만 했어요. 극복이 필요합니다.” 학교 터에 표지석을 세우려 했지만 중국 당국의 허락을 받지 못했단다. “터를 가보니 다 옥수수밭이고 유적지를 찾기 어려웠어요.”

그는 “사업회의 문제 제기가 이제 공론화된 것”이라며 앞으로 학교를 한국군의 뿌리로 정립하려는 노력을 차근차근해나가겠다고 했다. “육사에 연혁 수정을 요구해야죠. 제 생각으로는 대한제국의 장교 양성기관인 군사무관학교에서 출발해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광복군 양성 학교로 내려오는 게 바람직합니다. 공사와 해사도 함께해야죠.” 덧붙였다. “육사 교수진에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교수가 없어요. 독립운동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려면 전임 교수가 필요하죠.”

육사 생도들 반응? “학술대회 때 생도들과 함께 식사했어요. 대부분 신흥무관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해요. 100년 전 나라가 어려울 때 선배들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게 감동적이다, 자긍심이 생긴다고 했죠.” 그는 학교를 알리는데 영화나 연극 같은 문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겠단 얘기도 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주인공인 영화 <암살>로 학교가 많이 알려졌어요. 배우 조진웅씨는 사업회 홍보 대사이죠. 우당기념사업회에서 뮤지컬도 만들어 몇 번 공연했어요.”

그는 15년째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9년 사전이 나온 뒤 사자 명예 훼손 등을 이유로 8번 소송이 있었지만 다 우리가 이겼어요. 있는 사실 만을 썼기 때문이죠. 서훈 심사 때 사전을 참고한다고 해요.” 개정 작업? “보완이 필요해요. 빠진 사람이 있는지 면밀히 보고 있어요. 지방이나 해외 친일파는 책 출간 때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거든요.” 편찬위원장 자리에 자긍심 못지 않게 책임감도 크단다. “공인 아닌 공인이죠. 이런저런 공직 제안도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18-06-21> 한겨레

☞기사원문: “독립군 산실 ‘신흥무관학교’ 육사 생도들 자랑스러워해”

금, 2018/06/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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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회원) 알고 있었던 민문연》

( 임소장은 응답하라)

내가(회원) 낸 회비는 모두 민문연으로 내었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도 민문연으로 내었으며그 돈으로 친일인명사전도 발간했고 식민지역사박물관도 세우고 빌딩도 우리가(민문연)이 매입 한 줄 알았으며 총회에서 임소장이 23억 빚을 회원들이 갚아 달라고 말한 것에도 이의 없이 들었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모든 것을 다 잘해 이렇게 컸구나 뿌듯했다그런데 지금 제기되고 았는 내용을 보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허상이었다

민문연(사단법인) 하나인 줄 알았는데 관계도 애매한 단체가 몇개나 되고 역사관 기금도, 빌딩구입도 민문연과는 별개요 권리도 전무하다 우리가 낸 회비는 민문연 인건비 경비 등으로도 빠듯하여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에 돈을 보태주고 자시고 할 능력도 없다 만일 민문연 돈이 그 재단법인에 넘어 갔다면 큰 회계적 범법이다 식민지박물관도 기금을 기부한 것이라 면 회원(민문연)과는 별개다(조승현 교수)

여기서 생기는 의문

1.구입한 빌딩은 우리 것도 아니고 우리 돈으로 산 것도 아니라는데(권리등기에는 민문연 이름 없음) 왜 소장은 총회에서 빌딩구입시 빚 낸 23억원을 우리 회원이 갚아주셔야 한다고 했을까 (조승현교수 말이 맞다면 소장은 당연히 옳지 않다)

2.우리와 전혀 별개라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의 통합 경과보고와 사업계획을 왜 민문연 총회보고서에 버젓이 올려 놓았나(p46, p67)(이것 역시 조교수 말이 옳다면 소장은 월권행위요 회원을 기만한 처사 아닌가 )

3. 총회보고서에 있는 정관은 사단법인법 정관에 배치되는 내용이 많다면서 왜 지금까지 그 잘못된 정관을 민문연의 당연 정관으로 인식하도록 그대로 올려 놓아 회원들이 오해하도록 했는가?이 정도애서만 보아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틀렸다

 ●이제 임소장은 응답하라

(어느 것이 옳은지 회원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2018년 6월 22일

이기자(동부지부)(통일염원시민회의 대표)

 

금, 2018/06/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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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승빈 기자

검찰이 직권으로 청구해 진행된 1970년대 간첩조작 사건 ‘문인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필명, 본명 임준열)씨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홍기찬 부장판사는 21일 임씨의 재심 사건 선고공판을 열고 “과거 임씨의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 자백은 보안사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이번 선고와 같은 취지로 임씨에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임씨는 1974년 이호철·김우종·장병희·정을병씨 등과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문인들의 개헌지지 성명에 서명한 이후 간첩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임씨 등 피해자들은 당시 영장 없이 12일 동안 구금된 상태에서 잠 안재우기,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범죄 사실을 허위로 자백했다.

이에 따라 정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임씨 등 나머지 4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3년형을 받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지난 2009년 ‘문인간첩단 사건’이 간첩조작 사건이라고 확인하고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이후 당시 무죄 판결을 받은 정씨 외에 다른 피해자들은 이미 2011년 12월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임씨도 재심 청구를 준비하던 가운데,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직권재심은 형사판결에 재심사유가 발견된 경우 검찰이 피고인을 대신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다.

이는 앞서 지난해 8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과거 반민주적, 인권침해적 수사로 실체가 왜곡됐던 시국사건들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한 뒤 ‘직권재심 청구 TF를 구성해 재심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임씨는 이날 무죄 선고 직후 “재심 청구를 하려고 했는데 검찰 공안부에서 먼저 재심을 청구하고 법정에서 검사가 무죄를 구형했다. 세월이 바뀌니 이런 일도 있다”며 기쁘면서도 얼떨떨한 심경을 전했다.

임씨는 과거 그의 보안사에서의 가혹행위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했던 허위자백이 그대로 검찰의 기소장과 재판부의 판결문이 됐다며 억울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번 검찰의 재심청구 및 무죄 선고에 대해 “문인간첩단 사건 이후 44년 동안 간첩으로 불리우며 정상적인 인생을 살지 못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나마 박정희 정권의 간첩조작 사건이었음이 밝혀져 대단히 기쁘다. 앞으로 많은 재심을 통해 억울한 사람들이 누명을 벗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6-21>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문인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 임헌영, 44년 만에 누명 벗어

금, 2018/06/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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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소장님, 조세열 전 사무총장의 민족문제연구소에서의 현재 위치는 무엇입니까?

지난 4월 조세열씨가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본인에게는 물론 박수현 실장, 임헌영 소장님께도 전화를 드렸으나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고 문자도 드렸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426일자 본인의 임헌영 소장님과 조세열 사무총장께 여쭙습니다.” 글 참조

아마도 그때 연구소의 박OO이 연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때라 그걸 감추려 통화조차 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암튼, 연구소 홈페이지 임직원 소개에 박수현 실장이 사무총장 직무대행 역을 맡은 걸 보면 조세열 전 사무총장이 지금 사퇴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민족사랑 등 어디에도 공지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OO이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할 때도 회보에 퇴직했다며 이름을 올렸는데, 더욱 중차대한 실무 총책임자의 직책인 사무총장이 사퇴를 했는데도 아무런 공지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혹시 외부로부터의 소나기(?)를 잠시 피해보고자 꼼수로 직무배제시킨 것은 아닌가요 

임헌영 소장님, 연구소 운영을 이렇듯 불투명하게 하는 것은 회원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연구소와 재단은 특정인을 뒤 봐주기 위한, 아니면 잘못하면 사퇴하고 여기서 저기로 마음대로 옮겨다니는 은신처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전부터 그렇게 (신상)필벌하지않고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봐줘왔기 때문에 조세열 총장도 그 밑의 누구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함부로 지탄받을 행동을 하고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친일파들이 지은 죄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았다며 분개하는 우리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운영위원장이던 시절에 조세열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이 오랜 기간 큰 잘못을 저질러 운영위원회 석상에서 공식사과를 한적 있는데 (2015. 6), 임헌영 소장님은 분명 징계를 하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후에 그 약속을 깨셨습니다.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해서는 보직사퇴 시키겠다고 하시고는 “조세열과 방학진이 없으면 민족문제연구소 망한다”며 직제에도 없는 ‘기획실장’에 발령하셨지요? 

운영위원장과의 약속을 뒤집어가면서까지 두 사람을 비호하는 그런 조치를 취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벌받지 않을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이런 현상이 또 다시 발생하고 있는 거라 봅니다.   

아무튼 조총장이 지난 총회에서 연구소 상임이사로 셀프승진하면서 한가하게 외부에 기고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연구소 상임이사는 아직 회원들 회비로 월급 주는 자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소와의 관계와 정체가 불분명한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에서도 상임이사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도 회원 회비로 월급을 받을 일은 없다고 봅니다.

이점 임명호 회계감사님은 정확하게 해서 발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26일에도 임헌영 소장님과 조세열 사무총장께 여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만, 아직도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조세열 사무총장에 대한 거취를 발령 여부와 함께 민족사랑지에 분명히 공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8. 6. 22

회원 여인철

(9대 운영위원장)

금, 2018/06/2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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