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사무처 레터]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퀴어들!

지역

[사무처 레터]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퀴어들!

익명 (미확인) | 금, 2018/08/17- 11:39

“사무처 레터”는 우리모임 회원 여러분께 드리는 사무처 구성원들의 편지입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퀴어들!

장길완 간사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안녕하세요 민변 회원여러분, 사무처에서 상근하고 있는 장길완 간사입니다.

제가 뉴스레터로는 처음 인사드리는데요, 항상 사무처 공간에서 얼굴 맞대며 반갑게 인사드렸었는데, 이렇게 글로 인사드리니까 참 쑥스럽고 그렇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무슨 이야기로 활동 소식과 인사를 드릴까 하다가,,,! 제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 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퀴어-앨라이, 그리고 혐오세력 모두에게 공평한(?) 무더위가 있었던 지난달 7월 14일 서울광장에서의 서울퀴퍼 참가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드려요)

민변은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소수자인권위원회,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주관하는 부스를 운영하였고, 회장님 총장님 위원장님을 포함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함께했습니다. 광장에 도착하고 입구를 통해 들어갈 때부터, 장장 8시간 동안 6 색깔 무지개를 질릴 정도로 봤는데요, 저기도 무지개, 여기도 무지개, 민변 깃발도 무지개, 그래서 오히려 무채색이 눈에 띌 정도의 벅찬 분위기였습니다. 당일 민변 부스에서도 퀴퍼의 전통에 맞춰 형형색색의 무지개 굿즈들을 쌓아놓고 후원금을 모금했고, 만약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된다면 어떤 조항이 들어가면 좋을지? 퀴어-앨라이들의 의견을 받았습니다.

포스트잇을 두 통이나 쓸 정도로 많은 분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시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민변이 결합할 활동이 정말 많다고 느꼈습니다.

민변 프라이드 플래그 정말 이쁘죠? 디자인은 박한희 회원께서, 기수는 김동현 위원장이 해주셨습니다. 금손!

김-치- 사진만 찍으면 어색한 변호사들… 신나는 그 날의 기운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행진 트럭을 운영했고, 올해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한국여성민우회, 장애여성공감 등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부스와 난민인권센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민주노총 등 사회운동단체들의 부스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각 단체들의 부스에서 파는 굿즈가 너무 이뻐서 정신없이 업어 오다보니 다음 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지갑 눈 닫아…)

올해 서울퀴퍼에서는 더욱 페미니스트-퀴어와의 연대를, 사회적 소수자들 간의 연대를 두드러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로 위치 지어 지는 이들의 인권은 분리되어 생각될 수도, 분리되어 보장받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여성으로 위치 지어지는 불평등,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장애가 ‘장애’로 배치되는 불평등, 난민-이주민을 ‘잠재적 위협’으로 상상하는 불평등, 성소수자가 일상에서 지워지고, 존재를 부정당하게 되는 불평등한 현실 등, 사회적 소수자가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고, 차별을 경험하는 것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고, 공적/사적의 영역에 상관없이 경험하는 것이며,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는 교차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여성과 남성, 두 가지의 성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 두 가지의 성별만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두 개의 성별 중 ‘여성’이라는 범주가 만들어지고, 그 범주에 위치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불평등과 폭력의 문제는, 성별이분법이라는 문법 하에 퀴어가 경험하는 차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차이가 절대 공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간극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러한 차이를 기반으로 한 소수자들의 연대가 결국 교차적인 구조적 차별을 없애고, 서로 서로의 불평등한 위치를 바꿔나갈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특정한 관계(이성애), 특정한 성적 실천(여성성, 남성성에 맞춘 젠더롤), 특정한 몸(지정성별과 ‘동일한’ 몸)만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정상’의 위치를 점유하는 이들만이 1등 시민으로 존재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들은 올해 서울퀴퍼에서 더 두드러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참여한 많은 이들이 혐오세력에 기죽지 않고, 광장에 모인 다양한 서로의 존재들을 축하하고 자긍심을 북돋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물론 혐오세력은 날씨가 엄청났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째 계속 시청광장 일대에서 동성애 축제를 반대한다고 외쳤습니다. (퀴퍼에는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등 보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데 말이죠..?)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시청광장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즈음부터 한 차례도 빠짐없이 혐오세력이 방문(?)해주었습니다. 시청광장은 아마 회원 여러분에게 익숙한 공간이실 텐데요, 그 공간 자체가 시민들이 광장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민주주의를 열어가기 위해 모였던 공간이고, 610 민주항쟁부터 최근의 촛불집회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곳이니까요. 이렇게 역사적인 공간인 시청광장에서, 그간 성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가로지르는 퀴어들이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차별과 낙인을 넘어 다양한 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고 자신을 드러내는 서울퀴퍼가 개최되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혐오세력은 공적 공간에 저렇게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축제하는 게 너무 싫을 텐데, 어쩌겠어요, 저희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요.

아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예 프라이드 플래그를 건물에 걸어놓았습니다. 국가 기관이 축제에 참여하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는 모습들은, 한국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퀴어 시민들에게 용기와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시발점으로 많은 국가기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퀴어들의 불평등한 위치에 주목하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퀴어 이슈가 사소한 문제이자 사적인 일이라 여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 문제는 그간 우리 사회가 응답했어야 하는 일이고, 국가와 공동체가 성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바꿔 나가야할 책임이 있는 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공적/사적 영역, 두 가지의 영역이 완벽하게 분리되어서 이야기되기도 어렵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여기고, 그렇기에 사소한 것으로 얘기되는 퀴어 운동은 오히려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누군가를 사회 구성원에서 탈락시키고, 그렇게 해야만 운영되는 사회이며, 탈락된 이들의 안위와 사람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구성원으로서 탈락된 이들이 이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고, 삶의 풍경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나가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 질문하고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공적인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미약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퍼레이드에 참여한 퀴어-앨라이들에게 환영과 지지의 메세지를 던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축제가 끝난 지는 이제 한 달이 넘었네요. (한 달 만에 이 글을 쓰려고 하니 기억이 가물가물 했습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 사회를 두 번째로 맡아 진행하며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보니, 문득 3년 전에 공개 커밍아웃하고 퀴어 운동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3년 전에, 당시 제가 활동하던 공간에서 커밍아웃 했고, 이후로 지금까지 오픈 게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커밍아웃이 항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주 저를 이성애자일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물어보는 질문을 하며, 제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게이라고 말하며 “모든 게이는 다 장길완 같을 것이다,“ 라고 넘겨 짓는 타자화의 경험도 있었으며(이성애자가 어떤 언행을 한다고 해서, 그게 곧 바로 이성애자들은 다 저럴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성차별과 성별이분법을 해체하고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의 말들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가 맺는 친밀한 관계들은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인정’받을 길이 없어, 앞으로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앞서네요. 이런 것들은 제가 커밍아웃했어도, 대체로 ‘안전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해야 하고, ‘1등 시민’이었으면 증명 받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질문’받고 하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주변의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경험하는 성별 정정과 정체성에 맞는 젠더 표현을 하는 것의 난관과 트랜지션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레즈비언 친구들이 가부장제-성차별 사회에서 이성애-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계속 마주하는 어떤 식의 압박 등 우리가 삶에서 겪는 수많은 난관들을 함께 마주칠 때, 언제쯤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까? 를 질문하며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결국 시청광장을 점유하며 일 년의 몇 안 되는 하루를 무지개로 물들이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 가면 넘어설 수 있는 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퇴진으로 촉발된 ‘촛불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데요, 촛불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제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권을 보장받는 일, 사법 농단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지금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개혁해나가야 하는 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언제나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를 바꾸고, 권력과 위계로부터 발생하는 성폭력을 추방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 시스템을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촛불 이후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바꿔나가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촛불이 끝난 이후에도,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성소수자가 감내하고, 싸워 나가야 하는 ‘일상’에서의 차별은 여전히 유효하게 잔존하는 지금, 저도 그렇고, 많은 퀴어 운동가들도 그렇고, 그리고 민변도 그렇고 해야 할 활동이 참 많습니다. 민변은 계속해서 성소수자 존재를, 성소수자의 존재와 퀴어-인식론을 법에 기입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군형법 92조의 6 폐지 활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참여, 각 지자체의 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한 활동, 성별이분법적 인식에 기반한 문화재청 한복가이드라인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하는 등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민변 회원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에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제 이만 이렇게 장황하고 긴 글을 끝내며! 축제에 참여해서 고생한 민변의 회원들과 상근자들께도 감사 인사드리고, 아직 축제를 못 오신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열릴 다른 지역(ex. 부산, 인천, 제주 등)의 퀴어문화축제와 내년에 있을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함께 참여하고, 퀴어들의 끼를 흠뻑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은 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이래요! 대박)

그럼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자주 뵙겠습니다!

덧붙여,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연인원 몇 만 명이 오는 서울퀴어퍼레이드, 그리고 한국퀴어영화제를 주최하고 주관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사회노동 단체들이 그렇듯… 항상 사람과! 돈이 충분치 않다고 합니다.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서울퀴퍼 조직위 후원도 해주시고,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들의 역동적이고 끼발랄한 활동들에도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릴게요. 이제 진짜 안녕!

 

2018. 8. 17.

The post [사무처 레터]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퀴어들!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 (1) 시리아 난민이 말하는 게임 – ‘Bury me, my love’ 리뷰>

-조덕상 회원

코로나-19가 유행하는 힘든 시절이지만 다들 안녕하세요. 주제넘지만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민변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2011년부터 계속된 전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시리아 주민들과 난민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기억해주세요. 그들에게 뭔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2차례에 걸쳐 연재할 리뷰는 시리아 전쟁1) 을 다룬 미디어 작품을 접하고 쓰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The Pixel Hunt, Figs, ARTE France가 공동제작한 ‘Bury me, my love’ 라는 인디게임에 대해, 그 다음 편은 와드 알카팁 감독이 제작한 ‘사마에게(For Sama)’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각각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지만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비극과 거기서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코로나-19로 우울해진 여러분께 더 심한 무력감을 드릴까봐 안타깝기도 합니다.

몇 달 전 소위 ‘게임불감증’에 걸려 있던 시절 정말 우연히 검색 중에 ‘bury me, my love’ 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날 묻어줘요. 내 사랑.’ 어찌 보면 조금 섬뜩한 느낌의 표현인데 무슨 뜻인가 검색해보니 시리아의 일상적인 인사말을 영어로 번역한 말이랍니다.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조심해요, 나보다 먼저 죽는 건 생각하지도 말아요.’ (Be careful. Don’t even think of dying before I do.)라는 뜻이랍니다. 당신이 죽는 걸 보느니 내가 먼저 죽겠다는 것이겠죠. 이런 절절한 인사말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게임일까 더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전쟁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Bury me, my love’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게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Majd(매지드)라는 이름의 시리아인 남성이 되고, 그 신부인 Nour(노어)와 스마트폰 메신저 어플을 사용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전부입니다. 외국에서 많이 쓰는 Whatsapp Messenger 어플 이름을 따서 이런 종류의 게임을 왓츠앱 게임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이 메시지를 직접 쳐서 입력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메시지가 입력되다가 그때그때 주어진 선택지가 나왔을 때 고르면 그 선택지에 따라서 다시 인물들의 대화가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 마켓에서 유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게임(3,900원~4,600원)인데,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고 영어로 플레이 가능합니다. 2017년 10월 26일에 발매된 이 게임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한국어 리뷰가 거의 검색되지 않습니다), 인디게임 쪽에서는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2)


(여기서부터는 내용 누설이 조금 있습니다.)매지드와 노어는 시리아의 홈즈(Homs)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부부입니다. 시리아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자 노어는 터키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유럽(구체적으로는 독일)으로 망명하기 위해 홀몸으로 떠나고, 매지드는 노모가 있어 일단 노어가 유럽에서 정착에 성공하면 그때 따라가기로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먼저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 노어와 계속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그녀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될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 선택을 돕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노어는 여행을 더 안전하게 이어갈 수도 있고, 잘못 되면 노어가 사망하거나 외국에서 체포되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축적되면서 노어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찾아왔을 때 ‘아니 무슨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쓴대?’ 했던 이들에게는 참으로 비현실적인 게임이겠습니다. 하하… 노어는 계속 여러 나라를 이동하면서 현지 유심을 사거나 와이파이를 잡아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므로 남편인 매지드와는 오로지 데이터를 사용하는 문자메시지와 사진으로만 소통한다는 게 게임의 기본 설정입니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사치품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필수품입니다. 스마트폰에서 노어의 목소리는 여행이 끝날 때 보내는 음성메시지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영어로 매우 생생하게 말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살려줘. 망했어. 체포됐어. 저는 대충 이 정도만 알아들었습니다 ㅠ).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하는 게임 장면. 오른쪽 사진 배경에 난민을 적대하는 내용의 낙서가 보입니다.

(https://thepin.ch/knowledge/mQTgT/dilute-game-review-24) 참고

 

이런 무거운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노어와 매지드의 대화는 시종일관 그렇게 어둡거나 촉박하지만은 않습니다. 노어는 때로는 여행을 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을 썰렁한 아재 개그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노어에게 매지드는 이모티콘을 보내 응수하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힘들어하는 노어에게 매지드는 힘을 내라며 셀카를 찍어 보내주기도 하고요, 노어는 여행 중 인상적인 풍경이나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셀카로 찍어 알리기도 합니다. 언어의 장벽만 넘는다면 오랜 연인이나 부부끼리 느끼는 다정함과 친근함, 때로 노어와 바로 연락이 안 될 때(게임의 흐름에 따라 1-2일씩 연락이 두절되기도 합니다.)매지드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기는 하나, 메신저 대화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저도 해냈습니다, 여러분. 하하…

그런 대화 안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 공습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사력을 다해 치료하는 시리아 현지 의료인들, 시리아 난민들을 선의로 돕는 유니세프 활동가들과 돈을 받고 시리아 난민들의 망명을 돕는 수많은 브로커들, 시리아 난민을 체포해 그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거나 장벽을 세우는 등 난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각국 정부와 난민들을 돕거나 공격하는 각국의 시민들 등 시리아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Bury me, my love” is a fictional story inspired by real people and events.]라는 안내문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시리아의 알레포(Aleppo)와 홈즈라는 도시에서 발생했던 독재정권의 잔혹한 공격과 시민들의 탈출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도망가다 배가 뒤집혀 사망하는 보트 피플의 이야기로 흐르기도 하고, 터키에 설치된 난민 캠프에서 벌어지는 여성과 아동들에 대한 각종 성폭력과 착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겨우 벗어나더라도 노어는 유럽에서 네오나치와 같이 난민을 배척하는 이들을 만나 위협을 받거나, 도와주는 척 하면서 사기나 성폭행을 시도하는 악당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을 메신저에서 계속 지켜봐야 하는 매지드의 심정은 어떨까요.

플레이 중 노어가 찍어 보내주는 다양한 사진들(게임 제작자가 편집, 발췌한 이미지 모음)

(출처 : https://twvideo01.ubm-us.net/o1/vault/gdc2018/presentations/Maurin_Flore...)

이 게임이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개발자들이 실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시리아 전쟁 뉴스를 보고 막연히 아이디어를 떠올린 게 아니라, 2015년에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실제로 탈출하여 독일까지 망명하는 데 성공한 시리아인 Dana(다나)의 사연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다나의 이야기는 프랑스 르몽드의 기자 Lucie Soullier(루시 솔리에)가 작성한 르포 기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3) Pixel Hunt사의 CEO인 Florent Maurin(플로랑 모랭)은 기자 출신 프랑스인 게임 개발자로 위 르포 기사에서 큰 감흥을 받고는 루시 솔리에를 직접 만나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독일에 살고 있는 다나와 메신저로 대화하거나 시리아 난민 캠프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게임 속 메시지와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4)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장면들 중에는 실제 다나가 찍은 사진에서 따온 것들이 많습니다.


다나가 찍은 카페에서의 사진과 게임 속 노어의 사진 비교 예시

노어는 여행을 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양한 선택이 필요한 상황을 만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느끼는 감정을 매우 진솔하게 표현합니다. 진솔하다는 것이 늘 노어가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나와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그러했듯, 노어는 사실을 그대로 말할 때도 있지만, 매지드가 걱정할까봐 메시지를 치다가 지우는 등 망설이거나 소위 ‘하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기분이 너무 좋을 때는 매지드를 골려주려고 돈을 잃어버렸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노어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플레이어는 2개의 선택지에서 힘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선택지들은 가끔 따뜻한 위로와 냉정한 조언 사이에 있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노어가 바로 도망가야 하는가 머물러야 하는가와 같은 매우 급박하거나 어떤 걸 선택해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이라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실시간은 아니라서 충분히 고민해보실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에서 바로 느껴지는 아쉬운 점은 중간에 원하는 지점에서 세이브(저장)/로드(불러오기)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이미 봤던 대사를 빠르게 넘기는 스킵(Skip)기능도 없다는 특징입니다. ‘아니 무슨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 저런 기능이 없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플레이한 유저들이 많이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PC 버전에서는 조금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다가 플레이어가 원치 않는 결말(Bad Ending)을 불러오는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을 때, 일반적인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미리 특정 지점을 저장해두었다가 그 지점을 다시 로드해서 시작하게 해줍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여러 번 플레이하게 하면서 원하는 엔딩을 쉽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죠.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우선 엔딩을 보기 전까지 세이브는 가장 최근의 선택지점에서만 강제로 이루어지고, 한 번 엔딩을 보면 게임을 원하는 지점에서 시작할 수 없고 무조건 여행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다시 시작하면 이미 봤던 대화를 스킵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시 봐야 합니다. 이 게임의 엔딩은 19개가 있다고 하니, 그 엔딩을 다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며 마땅한 공략도 찾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중에 5개 정도밖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Dana의 실제 이야기에 맞춰진 진(眞)엔딩은 독일에 도착하는 것인데, 저는 아직도 어떤 길로 가야 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직접 플레이하면서 마주했던 선택의 순간들. 이것 이외에도 정말 다양합니다.

 

왜 굳이 이렇게 불편하고 게임의 재미를 반감할 수 있는 방식을 취했을까요. 플로랑 모랭은 게임의 기획 의도를 ‘Exploring Helplessness’라고 요약합니다. 다나를 비롯한 시리아 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가족, 연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많이 느꼈던 감정은 기쁨과 행복 이상으로 ‘무기력함’이었다고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혹시 걱정할까봐 자신의 처지를 모두 드러낼 수는 없는 데서 오는 미안함, 전쟁 상황에서 겪는 친지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이 도망쳐온 자신의 처지에서 느껴지는 무력함 등등. 개발사는 플레이어가 이 게임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Dana는 운좋게 해피 엔딩을 맞았지만,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플레이어의 편의가 아닌 실제 삶에서 존재하는 불편함과 고통을 중심으로 게임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게임을 하시게 된다면 이유 있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인생은 늘 1번뿐이니까요.

플로랑 모랭은 이 게임 말고도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아이티 대지진, 파푸아뉴기니 부정선거 등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한 게임을 제작해 언론사에 제공한 바 있습니다. ‘게임은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현실을 잘 묘사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에 따른 것이지요. 그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시리아 난민들와 계속 접촉했고 그동안 난민에 대해 내가 알던 것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미디어에서 어떤 무리, 집단으로만 흔히 묘사되는 난민이 아닌, 우리와 같이 하나하나 모두 다르고 개성적인 주체로서의 난민을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스마트폰을 통해서 기쁨, 슬픔, 유머를 나누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 예맨 난민을 갑자기 만났던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했던 건 저런 상식이 아니었을까요.

다나가 시리아에서 독일까지 이동했던 루트

플로랑 모랭은 이 게임으로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달함으로써 난민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플레이어들이 느끼고 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이 게임이 여러 가지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소개해드릴 ‘사마에게’ 라는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어주었고,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시리아 전쟁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게 해주었으니까요.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다가 겨우 독립했지만 잇따른 군부 쿠데타로 혼란을 겪다가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와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1965-)가 무려 60년이 넘는 철권통치를 일삼은 나라, 2011년부터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지만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정부, 그 내전에 개입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미국과 러시아, 터키, 레바논, 이스라엘과 같은 강대국들의 이야기까지… 알면 알수록 해답이 보이지 않는 참혹한 현실이 아직도 그대로인데,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시리아입니다.

코로나-19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선거판. 우울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이곳에 살아내고 있는 여러분께 감히 이 불편한 게임을 해보시길 적극 권합니다. 이 게임을 통해 여러분은 시리아에서 터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스마트폰으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목숨을 건 여행이지요. 이 게임을 통해 긴장감과 서글픔이 함께 하는 노어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충분히 지지하고 연대해주지 못했던,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깨울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게임에서 느껴지는 그 무력감과 분노가 여러분들을 조금은 따뜻하게 해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지루한 글에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에서 만났던 가장 따뜻했던 장면들과 가장 행복했던 엔딩(왜 그런지는 직접 해보세요^^)

 


1)흔히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과의 분쟁으로 시작되었기에 ‘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몇 년 전부터 단순 내전을 초월한 국제 분쟁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김재명,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하는 교양 57 – 시리아 전쟁’(2018), pp. 88-89. 참고.

2)①수상 내역 – Developper Choice Award at Indiecade EU 2017 / the Best Meaningful Play Award at the IMGA / the first prize at the Google Play Indie Game Contest 2018

②수상 후보 내역 – nominated at the GDC, Game Awards, BAFTAs and Webby Awards

3)르몽드 2015년 12월 18일자 기사 참고. 이 기사에는 Dana가 가족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주고 받았던 메시지와 사진이 메신저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안타깝게도 프랑스어로만 서비스되고 있음)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visuel/2015/12/18/dans-le-telephone...)

4)게임 개발 스토리는 아래 영상 링크에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스토리 : https://www.youtube.com/watch?v=4-uQgqW09CE) 또한 플로랑 모랭은 2018년 GDC(Game Developer Conference)에서 30분 가량 게임의 제작 과정과 구성 원리를 자세하게 발표한 바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yDzsSvFZhJ8)

The post [회원기고] 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1) 시리아 난민이 말하는 게임 – Bury me, my love 리뷰 / 조덕상 회원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20/03/27- 00:31
2
0

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2) 무엇이 정의인가(What‘s Justice?) – “사마에게(For Sama)” 리뷰

조덕상 회원

영화 한국어판 공식 포스터

여러분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지난 “Bury me my love” 리뷰는 잘 보셨는지요. 읽어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하하 ㅠ 조금씩 이제 밖으로 나오시기도 하고 운동도 다시 시작하시고 할 텐데. 이 리뷰가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 게임 리뷰를 읽어보신 분들은 마지막 장면에 한 소녀와 묘한 눈빛의 인형 사진을 기억하실 겁니다. 기왕 나간 김에 조금 더 내용 누설을 하자면, “Bury me my love”에서 Nour(노어)는 원래 의사였습니다(Majd(매지드)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머니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어떤 루트를 따라가보면 노어가 시리아의 알레포(Aleppo)에 머무를 때가 있는데 이 때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 학살이 일어납니다. 노어는 그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여성을 만나게 되고, 이 여성을 인근 병원에 데려갈 것이냐 무시하고 떠날 것이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 소녀가 누굴지 짐작이 가시겠죠? 그 다리를 다친 여성의 딸입니다(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죄송). 노어는 제대로 된 수술실과 도구가 없는 병원에서 매지드에게 의학서적을 메시지로 읽어달라고 하고, 그걸 바탕으로 혼자 수술을 해서 여성의 다리를 절단하고 기적처럼 그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소중한 인형을 노어에게 선물로 주고 목발을 짚은 엄마와 함께 병원을 떠납니다. 이 게임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노어의 한 이야기가 바로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화 “사마에게(For Sama)”의 내용과 매우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에게’는 포스터가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설명해주는, 시리아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한복판에 있었던 와드 알 카팁(와드) 감독 본인이 직접 찍은 5시간이 넘는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의 남편인 함자 알 카팁(함자)은 알레포에 있는 의사로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 학살이 있을 때마다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와드는 피와 살이 튀고 생사가 갈리는 그 순간들을 때로는 흔들리는 카메라로, 때로는 바짝 굳어버린 카메라로 담아냅니다. 노어의 메시지로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수술 장면을 영화에서 계속 보게 되니 말문은 막히고 입은 쩍 벌어졌습니다.

영화는 와드가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잠깐 소개하고, 2011년 알레포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바샤드 알 아사르 독재정권의 횡포에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 모로 한국의 1980년대와 닮아있는 ‘아랍의 봄’ 시대의 풍경이 나옵니다. 우리는 군부독재를 몰아냈지만, 시리아는 잘 아시는 것처럼 독재정권이 말 그대로 ‘전쟁’을 선포하며 시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레포는 시리아 북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우리의 광주처럼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의 거점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은 알레포의 주변을 포위한 후 반군보다 우월한 공군력을 내세워 알레포 시내를 무차별 공습하기에 이릅니다.

시리아 지도. 알레포는 북부의 중심 도시였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Bury me My love’의 무대가 된 Homs(홈즈), 레바논의 Damascus, Beirut가 보입니다.

이러한 독재정권의 포위와 학살로 인해 고통받던 수많은 알레포 시민들은 알레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사실 알레포를 떠나는 일 자체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군은 알레포를 탈출하는 시민들에게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와드와 함자와 그의 동료들은 알레포에 끝까지 남아 있기로 합니다. ‘떠나는건 최악의 본보기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지옥을 견뎌야 했다’는 와드의 독백은 그 자체로 진퇴양난인 시민들의 상황을 적시해줍니다. 이 영화는 2011년부터 2016년 알레포를 정부군이 완전히 함락시켜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일행이 시리아를 떠날 때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와드와 함자는 원래 교제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생사를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병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신혼 살림도 병원에 마련합니다. 사마는 그 병원에서 태어났고 그때도 폭격은 계속됩니다. 사마는 수시로 폭음과 진동을 경험하는데 그때마다 놀라거나 울기는커녕 커다란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게 일상이고 아주 가끔은 웃기도 합니다. 그걸 보는 와드가 미칠 지경이지요.

그들이 얼마든지 알레포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을 알레포와 함께 했던 이유는 와드가 사마에게 남겨준 유언과도 같은 편지에서 드러납니다. ‘(전략)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에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야, 이 영화를 너에게 바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함자, 사마, 와드 알 카팁 식구들

이 영화를 보면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사는 아동의 비참한 삶을 그렸던 영화 ‘가버나움’이 떠올랐던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 허구의 참상이 주는 충격이 하도 극심하여 보면서 무너지는 한숨만 나올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이 영화도 비슷합니다. ‘가버나움’에서 동생과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하다가 법정에 찾아가 부모를 고소한 주인공 자인과, 이 영화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와드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이 묻는 것은 레바논과 시리아에서의 삶의 존엄이란 과연 무엇인가겠죠. 웃픈 일은 그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이 시리아의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공적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2차대전 후 강대국들의 세력 재편이 어디까지 보통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나중에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공습을 하는 사실까지 나옵니다. 시리아 전쟁의 사망자는 약 40-5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15년에 UN이 사망자 공식 집계를 포기하고 나온 숫자이므로 실제 사망자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시리아 국경 외부로 떠난 난민의 숫자는 590만 명, 시리아 안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610만 명인데 시리아 전체 인구가 약 1,800만 명이니 비극의 정도는 숫자만으로도 이미 질려버릴 지경입니다. 여기에 정부군은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는 비인도적 전쟁 범죄를 버젓이 저질렀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성이나 어린이들입니다. 의료진이 필사적으로 치료를 하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정신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계속 마주하면서도 함자와 와드는 메스와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그 병원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 있는데, 바로 한 임산부가 폭탄 파편에 맞아 병원에 실려온 일이 있었습니다. 급히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꺼냈는데 숨을 쉬지 않아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죽었구나 생각할만 했는데, CPR과 타격을 반복하자 아이의 숨길이 열리면서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 때 제가 있었던 영화관에서는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가하면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을 때 와드가 ‘인정하기 싫지만 저 아이의 부모가 부럽다. 자기 아이를 묻기 전에 죽었으니까’ 라고 독백하는 장면도,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와드에게 ‘제발 계속 찍어주세요. 이 짓을 벌인 놈들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있게!’ 라며 절규하는 장면도 눈에 선합니다.

이 영화 말고도 시리아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작품은 많이 나왔었습니다. 저는 다 보지 못해서 함부로 비교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전쟁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과 더불어,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존엄함을 비추는 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와드의 나레이션은 시리아 전쟁의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설명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에서 시작된 반정부 민주화 시위의 물결을 시작으로, 폭격을 맞은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을 새로 꾸미며 즐거워하는 함자와 동료들, 한 아이가 결국 사망하자 옆에서 오열하는 와드에게 함자가 화를 내며 ‘여기서 울지 말고 당장 나가’ 하더니, 나가버린 와드를 쫓아가 ‘네가 무너지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내가 널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 나랑 결혼해줄래?’ 라고 프로포즈하는 장면(어우~♡), 정부군이 미국의 개입으로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 사람들이 짧은 해방의 기분을 맛보는 순간 등등… 지옥 속에서도 사람다운 일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걸 놓치지 않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풍경이죠.

1초라도 있고 싶지 않은 그 알레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폭격에도 놀라지 않고 잘 웃으며 노는 사마와 아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얻습니다. 또는 와드의 이웃에 살고 있는 10세 남자아이는 이곳을 떠나고 싶냐는 질문에 부모가 떠나더라도 자기는 남고 싶다며 결국 오열하기도 합니다. 영화 중반에는 폭격을 맞아 불타버린 버스에 아이들이 모여 페인트로 예쁘게 색을 칠하기도 하고 턱없이 열악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이런 희망도 잠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병원이 폭격당하자 좌절했던 일행들은 다시 아이들과 함께 거처를 옮기며 새 병원을 임시로 건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6년 겨울 정부군이 알레포를 사실상 점령하자 와드와 이웃들은 결국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성공합니다. 영화는 와드가 아기띠로 사마를 안은 채 페허가 된 도시를 걸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크레딧에서 사람들과 남겼던 자잘한 일상적인 사진들이 알레포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마 40년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군부독재에 저항해 끝까지 싸웠던 광주 시민군 여러분의 모습이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요. 가끔은 희망이라는 단어는 저런 분들에게야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크레딧에서 나오는, 사마가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장면

영화의 크레딧 화면에서 잠깐 나오는 사진 중 가장 명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사마가 폐허 속에서 ‘여기는 알레포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요.’(This is Aleppo. What’s Justice?)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실과 책에 등장했던 그 한가한 질문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영어가 짧은 제 눈에 저 팻말은 ‘정의가 여기 어디에 있나요.’(Where is Justice here?)로, 아니 더 심하게는 ‘정의란 게 여기 대체 있긴 있나요.’(Is there on earth Justice here?)로 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우리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굳이 찾는다면 당신들이 알레포에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정의라는 한가로운 대답밖에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그냥 없다는 게 정답일까요.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와드의 가족들은 현재 영국에서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면서 여전히 시리아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과연 와드와 같은 시리아 난민들은 각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조선학교와 조선유치원에 대한 무상교육 지원금을 끊고 마스크 지원도 끊는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극도로 분노했으며, 최근에는 재난기본소득을 외국인에게 지급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를 들으며 허탈했고, 코로나-19를 이유로 재외국민들을 위한 투표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 또 한 번 분노해야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시리아 전쟁 그 자체를 종결시키는 일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와 함께 사는 이방인들과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통계를 보면 한국에도 약 1,200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를 찾아 여기까지 온 이들에게 차별은 곧 또다른 선전포고와 다름없지 않을까요. 우리 안의 시리아, 예맨 등의 평화를 지켜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바샤르 알 아사드와 그 부역자, 조력자들에게 천벌을.

시리아의 민주화를 꿈꾸는 시리아 인민들에게 평화를.

 

정우성 배우도 강력추천한 그 영화^^(출처: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2019. 6. 30. 방영)

 

** 덧붙이는 알림

천지선 변호사님을 중심으로 저와 몇몇 회원 여러분이 페미니즘을 다룬 만화, 책,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를 함께 감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눠보는 민변 내 소모임 ‘만감’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미디어와 함께 공부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미리 부탁드립니다^^

The post [회원기고] 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2) 무엇이 정의인가(What‘s Justice?) – “사마에게(For Sama)” 리뷰 / 조덕상 회원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수, 2020/04/15- 00:12
2
0

민변 광주전남지부 20주년 기념행사 준비기

과연? 과연!

 

–  이소아 

 

 

지난 2019. 9. 9. 저녁 광주지부 20주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렸지요. 저녁 6시부터 지하 1층 로비에서 정말 맛있고 예쁜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에 들어서니 민변 회원분들을 포함하여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시는 귀한 손님들이 이미 자리를 많이 채우고 계셨습니다.

김정호 지부장님의 “인사는 생략한다”로 요약되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년간 광주지부 회원분들이 시민으로서, 변호사로서, 민변회원으로서 얼마나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그 자리에서 모두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나 빨리 끝났다고 느끼는 그 시간 동안 참석한 모두는 감격하고, 감동했고, 울고 또 웃었습니다. 특히 지부 회원분들께서 직접 준비하신 변론기 낭독과 연극 퍼포먼스는 지금 돌이켜 떠올려 보아도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납니다.

행사의 내용을 그려드리는 것 대신, 광주지부 회원분들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얼마나 열심히 행사를 준비했는지 그 과정을 이소아 회원님의 글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 2019. 1. 말경 준비단 첫회의

7명이 모였다.

각자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 하면 멋진 것을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입 밖으로 꺼내면 해야 하니까.

이러저러한 논의 끝에 행사 자체와 20주년을 갈무리할 백서?변론사? 크게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가닥이 쳐졌다.

회의 초반 행사를 가볍게 할 것인가, 멋지게 할 것인가로 나뉘었지만, 멋지고 의미있게 하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갔다. 2년 전 대전충청지부 20주년을 보고 왔던 김상훈 전지부장님의 요구도 한몫 했다(나도 그 행사를 함께 보았는데, 여러 시민단체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보였었다). “우리는 무조건! 이보다 멋지게 해야할 것이여!”

멋지게 하려면….

일단 20주년 행사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정할 그 무언가(문구? 슬로건?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장은백 변호사가 “이번 행사는 뭔가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묻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답하는 그런 컨셉이었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오! 그래! 미래가 과거에 묻다. 과거가 미래에 답하다. 뭐 이런 제목이면 되것네!

 

나는 공익소송기획단장으로서도 필요한 일이기에 변론사 작업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김정희 변호사님이 “10주년 때도 백서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만들지 못했다. 너무 힘든 작업이다. 그냥 부담을 갖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걱정을 하셨다. 안다. 얼마나 손이 가는 작업이고 피곤한지. 그러나 단체의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엮어가는 것은 중요하니까, 또 내가 잘 할 수 있으니까, 또 일은 그냥 하면 되니까 하기로 한다.

우리에겐 10년전에는 없었던 훌륭한 후배 동료들이 포진해 있으니까(김수지, 정다은, 송창운, 장은백, 권소연, 류리, 박인동 등등등등등등)!

 

앞으로 정해야 할 것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구체적인 내용은 차기 회의 때 기획안을 세워와서 논의하기로 해산했다.

 

#2 – 변론사 밑작업

늘 그렇듯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수소문해서 모으는 것이 힘들다.

수소문해서 사건리스트들을 정리해보았는데 리스트만 40개 사건 정도 된다. 이걸 다 책에 넣을 순 없다. 시의성과 중요성을 기준으로, ‘광주’ 민변에 더 의미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20개 정도를 추렸다. 개중에는 의미는 있으나 기록이 없어서 빠지게 된 것도 있었다.

연초부터 역대 지부장님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돌리고 문자를 드리고, 직접 찾아 뵙고 하여 자료를 모았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만나뵙기 쉽지 않은 경우, 사건에 대한 기억은 있는데 기록이 폐기된 경우, 공동대리로 하다보니 그때 그걸 누가 했는지 정확하지 않은 경우 등등등. 자료를 모으는 것이 오래 걸렸다. 그냥 기록만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간략한 사건메모표(소회를 포함하여)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요청을 드렸으나, 이것을 독촉하는 것도 일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이 지루하고 빛이 안나는 밑과정을 끈기 있고 꼼꼼한 정다은, 송창운 변호사가 해주었다. 독촉독촉독촉하다가 결국에 안되면 각자 직접 기록을 보고 사건메모표를 작성하였다.

추려놓고 보니 ‘광주’ 민변의 변론사의 흐름이 보인다. 다양성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익변론들이 어떻게 다변화되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3 인터뷰와 동영상

행사 당일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활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에 동영상만한 것이 없다. 사진을 모아 편집하는 정도 말고 뭔가 더 나은 뭔가가 필요하다. 선배 지부장님들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다. 선배들만 하면 재미 없으니 후배들도 집담회 형식으로 인터뷰 해보기로 한다.

학보사 기자 출신인 김수지 변호사가 있으니 주 인터뷰이를 하고, 내가 카메라가 있으니 동영상과 사진을 같이 찍고, 누가 속기를 하면, 인터뷰 할 때 동영상, 사진, 속기를 같이 할 수 있어서 나중에 일을 줄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가끔 후회하기도 했다.

첫째로 동영상, 사진, 속기를 같이 하기 위해서는 인터뷰이가 3명은 따라 붙어야 안정적인데 그 일정들을 조율하는 것이 어려웠다. 인터뷰 일정을 여러번 펑크내는 경우도 있었고 솔직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칠만도 한데 한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함께 챙겨주고, 막판에 1천쪽이 넘는 원고를 직접 편집한 김수지 변호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갑작스런 요청에도 흔쾌화게 속기를 맡아준 권소연, 김민아, 류리, 김성익 변호사에게도 고마움을 보낸다.

둘째로 내 동영상 기술이 무척 후회됐다. 결국 쓰지 못한 컷도 있고…. 결국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라는 깊은 교훈을 다시 새김.

 

#4 행사 장소, 식사 !!!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

식사가 가능하고, 행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200명 정도는 올 수 있는 곳. 섭외하기도 어렵다. 장은백 변호사, 박상희 간사 등이 여러 장소를 답사한 결과 5. 18 기념문화관이 좋겠다고 결정된다.

5.18 재단 및 광주광역시 담당 공무원과 장소 협의는 20주년 기념사업준비단 단장인 오래한 정인기 변호사님이 책임지기로 하였다.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밥이다.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도 각자 그리는 상이 다르다. 일단 몇가지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보기로 하고 회의 해산.

 

#5 연극 퍼포먼스 라고라고라! – 과연?

민변 본부 총회에서 보았던 변론 낭독회를 하기로 한다. 우린 변호사집단이니까.

그런데 같은 것을 다시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무얼할까… 하던 중 전두환 회고록 명예훼손 형사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 재판에서 피해자로 나오는 증인 분들의 이야기를 그냥… 간단히 모의법정 같은 증인신문을 요약해서 무대위에서 해보자 라고 의견이 나왔고 장은백 변호사가 주관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장은백 변호사는 모의재판 증인신문에 대한 아이디어와 개요를 마련하기 위해 전두환 재판을 재판방청하고 속기 메모를 해왔다. 재판은 어떤 날은 밤 9시에도 끝나고 그랬다. 메모를 하다 지친 장은백 변호사가 몰래 녹음을 하기도 하였고, 그 녹음한 것을 녹취록으로 푼 값만 30-40만원이 들었다.

그런 원자료들을 가지고 장은백 변호사와 나는 7월 초순엔가, 극단 토박이에서 활동하며 광주의 여성활동가들과 ‘시나페’라는 연극모임을 하는 나창진 감독님을 만났다. 자료들을 감독님에게 넘겨드리고 7월 말로 다음 회의를 잡았다.

충격은 나창진 감독님과 두 번째 회의에서 있었다.

5.18 기억 왜곡과 관련한 것이기는 하나 완전히 다른 내용의 퍼포먼스 대본을 만들어서 오신 것이다. 내용이 좋기는 했지만, 기존에 장은백 변호사가 애쓴 원자료들은 모두 쓰이지 않는 것들이 된 허탈감도 컸고, 춤을 추고, 외치고, 하는 그런 퍼포먼스를 우리가 연습할 수 있을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의심도 들었다.

장은백 변호사와 내가 생각한 ‘증인신문’이라는 방식은, 전문배우들이 구현한다 하더라도 어설프게 보일 수 있는 데다가(왜냐하면 그날 그 상황 그 감정을 알 수 없으니까), 숙련되지 않는 변호사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이야기 한다면, 자칫 무대 위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우습게 보이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취지셨다. 또한 피해자들의 증언에 대한 것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찾아보면 여러 다큐멘터리나 극을 통해서 드러났기에 효과적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지 않다는 취지이기도 하셨다. 그래서 역사 쿠데다, 기억 쿠데다를 시도하려는 세력들을 신나게 몰아내고 정화하는 방향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장은백 변호사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증인신문이 적절하지 않으냐, 또한 우리는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이 있는 단체이고 행사가 지향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나창진 감독님의 연극인으로서의 고집.

광주 민변의 구성원으로서 행사를 총괄하는 변호사로서의 고집.

둘 사이 팽팽한 긴장감 사이 어딘가에서 안절부절하는 나.

 

 

#6. 연습 시작

준비단 논의 끝에 감독님의 안대로 진행하기로 결정은 되었다. 그러나 아직 감독님과 장은백 변호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채 연습이 시작되었다(긴장감은 나만 느꼈을수도).

장은백 변호사의 카리스마로 많은 후배 변호사들이 첫 대본 리딩에 함께 하였다.

대본을 받아든 이들의 눈빛도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간단한 안무라고 해도 춤도 추고 노래도 해야 한다. 과연 가능한가? 감독님이 말하는 대로 나오는 것인가? 흔들리는 눈빛들을 보니 확신을 주고 싶은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서.

에라이 모르겠다. 쪽 팔리지만 일단 신나게 해보는 거지 뭐.

 

준비물 : 확성기, 빗자루, 모자, 태극기, 일장기, 성조기, 뺑뺑이 안경, 의상, 그리고 5.18 상징물

준비물 중 5. 18 상징물이 중요하다.

나비와 노란리본과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것을 50개 만들어야 한다.

전민규, 김성익 변호사가 주말에 가위질과 본드질을 해서 완성하기로 한다.

재료 구입은 장은백, 박상희, 전민규….

 

#7. 빗자루춤과 5.18 선무 방송

빗자루를 들고 왜곡 세력들을 싸그리 몰아낸 다음 춤을 추는 장면이다. 대본엔 지문만 있고, 7가지 동작이 있다. 말을 안해도 되는 건 좋은데 몸이 힘들다. 춤 연습을 한지 내게는 한 시간 연습한 것 같은데 10분밖에 안지났단다. 동작 외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신나게 추라는 주문이다. 모든 댄서들에게 존경을….

연습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당시 선무방송을 외치는 부분이었다. 그 간절함을 사실은 모르겠는 것이다. 안다 해도 그것을 목소리로 외쳐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내 안의 어떤 감정이 ‘이 이상은 안되겠어’라고 차단하고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넘어서 보기도 전에 연습과 공연이 끝나 버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넘어보고 싶으면 왠지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서.

 

#8. 돌발 상황

큰일났다!

좀비 역할이 2명 밖에 없는데 그 중에 한명이 못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

더 큰일 났다!

코러스 4명이어야 하는데 그 중에 한명이 못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

남은 5명으로 어떻게 하나?!!!

결국 만능 재주꾼 박인동 변호사가 좀비와 코러스까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좀비 역할을 하던 사람이 코러스로 또 나오면 이상하니까 의상을 바꾸어 입고 태극기 안경도 바꾸어 쓰기로 한다.

처음 7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연습을 해가면서 뭔가 조금씩 합이 맞추어 진다.

 

#9. 리허설과 무대감독

극에서 중요한 것은 배경 영상, 음향, 조명이 적절한 타이밍에 바뀌는 것이다.

기술감독, 무대감독이 따로 있는 이유!

나창진 감독님 지도 하에 장은백 변호사가 조명실에서 조명과 음향을, 박상희 간사님이 무대 뒤에서 영상을 맡았다.

행사 일주일 전에 한번, 행사 당일 3시간 전에 모여서 다시 한번 연습을 했다.

무대에 직접 와서 연습을 해보니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10. 행사 당일 – 과연!

재판보다 안 떨린다.

재판은 내가 변호사로서 실력을 보여야 하는데, 어차피 나는 전문 연극인이 아니니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큰 실수 없이! 공연을 마쳤다.

모두 집중해 주셔서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믿지 못하는 우리를 이끌고 이 기획을 이루어주신 나창진 감독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법률가인 변호사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서

내년 5. 18 40주년을 앞두고

앞으로 5.18이 어떠한 방향성과 확장성을 가져야 하는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어서 기뻤다.

 

 

다음 날 장은백 변호사 페이스북에 올려진 글로 마무리 한다.

 

“일당백을 해주었던 퍼포먼스팀

5주간의 연습

연출 장인 나창진감독님

수차례 고민과 이견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믿지는 못했지만

시키는대로 따라가니 믿을신 한 글자가 오롯이 남았던“

The post [지부소식] 민변 광주전남지부 20주년 기념행사 준비기 : 과연? 과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수, 2019/09/25- 00:50
2
0

지부연합산행 후기 –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던 팔공산 산행

대구지부 변호사 박정민

 

2019. 10. 19. 토요일, 총 43명(대구지부 13명, 광주전남지부 10명, 부산지부 10명, 대전충정지부 3명, 본부 7명)의 민변회원·가족들과 함께 팔공산 자락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오전 10시에 팔공산 분수대광장 앞에서 집결한 후 탑골등산안내소부터 깔딱고개를 넘어 동화사까지 2.5km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1시간 정도 산길을 걷다가 1-2시간 정도 동화사 경내를 두루 구경할 수 있는 팔공산 올레길 중 하나입니다.

가을비가 자주 내리더니 지부연합 산행을 하는 날에는 간만에 날씨가 화창하게 좋았습니다. 대구에 살면서도 정말 오랜만에 동화사에 가보는 거라서 나름 설레고 마음이 들떴습니다. 대구지부도 총 9명의 회원이 모여서 집결지로 향했습니다. 손님맞이를 하느라 집결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삼삼오오 도착하는 회원분들께 김밥과 과일 등이 든 간식봉지를 나눠드리고 함께 먹으며 모두들 무사히 도착하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등산스틱 등 제대로 된 산행차림을 하고 오신 분들도 계셔서 괜스레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전답사팀은 회원들이 힘들지 않게 팔공산 구경을 하실 수 있도록 가벼운 산책코스를 짰다고 했기에 혹시나 먼 길 오셔서 실망하고 돌아가시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산행이 시작되고 처음 시작된 깔딱고개는 거리는 짧았지만 정말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저질 체력임을 실감하는 순간 고개 정상에서 여유있게 쉬고 계시는 회원님들을 뵈니 민망하였습니다. 깔딱고개 위에서 각 지부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몇몇 선배님들은 지부연합산행의 시초였던 대구지부가 부산지부 회원들을 팔공산에 초대한 2008년의 추억을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때는 케이블카 타고 올라갔다고 하신 말씀에 모두들 부러워했습니다. 산행당일에 대구민변은 대구변호사회의 단체여행 일정과 겹쳤었는데 광주변호사회도 단체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광주민변에서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 주셨고 일정이 겹쳐 더 많이 오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까지 전해 주셨습니다. 대전지부에서는 발목 부상에도 참석하셔서 일당백 투혼을 보여주겠다고 하신 회원님도 계셨습니다. 매번 같은 얼굴을 본다며 나름 반가움을 표한 회원도 계셨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2017년 부산 금정산과 2018년 순창 강천산 지부연합산행을 다녀온 덕분에 그때 뵈었던 다른 지부 회원님들은 더욱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소개를 마치자 단체사진을 찍은 후 이제 동화사 뒷길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분들을 위해 더 위쪽으로 올라가실 수 있는 염불암 산행을 권해드렸고, 10여명의 회원들이 염불암을 다녀오셨습니다. 저는 체력상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산길을 만끽하고자 다른 회원들과 바로 동화사로 내려왔습니다.

동화사에 들어서자 작은 음악회가 한창이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국화로 만든 미로같은 길이 있었습니다. 실제 미로는 아니고 한 방향으로만 길이 나 있어서 걷다보면 출구가 나오는 재미난 곳이었습니다 대웅전 뒤로 하늘하늘 피어난 코스모스, 청명한 파란 하늘, 맑은 바람. 고즈넉한 옛 건물, 좋은 사람… 묵은 스트레스가 스르르 풀리는 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약사여래대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에는 엄청 크게 느껴졌던 불상이 지금 와서 보니 그리 크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민변의 역할과 위상이 너무 커서 민변 회원이 되는 것 만으로도 어렵고 힘들게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하게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의 저의 마음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정된 산행을 모두 마치고 사전답사팀이 자신있게 자랑하던 식당으로 갔습니다. 오리능이백숙과 참나무장작바베큐.. 본부에서 솔직히 대구는 음식은 기대하지 않고 왔는데 정말 맛있다는 칭찬까지 하실 정도였으니 상상이 가시지요? 대구지부 회원께서 본인 대신 보낸 보드카 한 병과 팔공산 불로막걸리에 광주지부에서 공수해 오신 무등산 막걸리까지 더해지니 식사자리는 절로 흥에 겨웠습니다. 이에 광주지부 회원님의 산도깨비 노래 한 자락이 더해져 맛과 즐거움을 돋우었습니다. 여흥을 해소해 드리기 위해 식당에 노래방기기까지 부탁하여 준비하였지만 모두들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오셔서인지 3시도 되지 않아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기차예약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은 본부팀과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며 잠시 쉬었다 갔습니다. 대구지부 몇몇 회원들은 그날의 산행이 무척 좋아서 당장 다음 달부터 매월 산행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한라산·백두산·히말라야 등반까지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먼저 설산이 멋진 태백산부터 가보자는 꽤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누었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신이 나는 것 같습니다.

본부팀은 1시간 정도 일찍 기차시간을 당겨 서울로 올라가셨고 대구민변도 저녁 5시 무렵 헤어졌습니다. 집에 가던 길에 대구민변 최지연 변호사와 함께 맥주 한 잔만 마시고 가기로 하였다가 결국 19병이나 마셨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 날이었습니다. 언젠가 민변 회원님들과 다리 뻐근하게 한라산, 백두산을 오르고 밤새워 함께 술 마시며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The post [지부연합산행 후기]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던 팔공산 산행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화, 2019/11/05- 02:08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