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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제재와 센토사 합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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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제재와 센토사 합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익명 (미확인) | 월, 2018/08/13- 12:53

ICAN(핵무기폐기 국제운동기구)는 2017년 UN총회에 핵무기금지조약을 제안한 공로로 깜짝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런데 ICAN의 특별제안에 대한 UN총회의 진행 과정과 결과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까지 120여개국이 찬성한 가운데 53개국이 서명을 마친 상태이다. 실제 핵을 보유하거나 배치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국가들은 대부분 불참하였고, 한국과 일본 등 30여 개국은 기회적으로 기권하였으며, 놀라운 것은 핵무기 개발로 선진제국으로부터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아온 북한이 핵무기금지 조약의 찬성을 주도해온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거부한 미국 등 강대국이 오히려 조약의 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북한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이름으로 보복적 제재를 시행하는 역설과 모순이 진행되는 것이 오늘날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유엔 조직 내에서 또 다른 역설과 모순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제6차 핵실험에 대한 보복조치로 미국이 주도하여 대북 원유 및 정유제품의 공급에 대한 제한조치, 북한 해외노동자의 24개월내 전원 송환조치, 북한의 수출입금지 품목의 확대(무역규모의 8-90% 수준), 해상차단 및 검색에 대한 조치강화 등 실제적으로 ‘저강도전쟁’ 수준의 제재를 2017년 12월 22일 안보리 제2397호로 결의하였다.  

반면에 사무총장 산하에 있는 OCHA(인도주의사무국)은 수년 전부터 평양에 주재원을 두고 북한의 식량, 건강, 질병 및 장애 등 인도적 사항에 대한 실태를 정밀하게 조사하였고 실무책임자인 로우콕(Lowcock) 사무차장이 지난 6월 9일-12일간 평양을 방문하여 향후 지원계획을 협의하면서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에 대한 상세한 사항은 7월 16일자로 다른백년 아젠다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의 지원이 절실하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60 여 년간 미국에 의해 강요당한 준전시(準戰時)적 체제와 국제적 지원의 창구역할을 하였던 소련조차 붕괴된 상황에서 오랜 기간을 고립당한 채 살아온 북한의 현실은 한마디로 가혹하다.

북한 주민의 40%가 넘는 천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와 질병 그리고 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미행정부는 여전히 유엔안보리의 결의라는 미명하에 인도주의적 원조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북한에게 목조르기식 봉쇄조치를 양보없이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한심한 것은 민족의 당사자인 남한 당국이 안보리 결의에 눈치를 보느라고 OCHA에서 할당한 지원금 8백만원의 송금을 보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한 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유엔의 OCHA조직에 의존하여 진행할 사항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 당국과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국제사회의 결의와 비난을 무릎 쓰고라도 대대적인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는 한편 대규모 의료봉사단을 조직하고 파견하여 북한의 의료 체계를 지원하고 보완해야 할 사안이었다. 이는 진작이 배달 민족의 역사와 이름으로 세계 만방에 알리면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진행했어야 동포애적 협력사업이다. 세계시민들은 문제아 트럼프보다 모범생 문재인을 더 열렬히 응원하고 지원한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한 로우콕 사무처장의 평양 기자회견과 호소문조차 당일 남한 주류언론에는 단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다. 통일을 외쳐온 우리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427판문점과 612싱가포르에서 정상간 회담과 선언이 이루어 졌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쟁 직전의 험악한 말폭탄과 위협을 주고받은 북미 당사자들이 극적으로 합의한 센토사 성명은 우리에게 한반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공하기에 충분하였다. 구체적인 실천의 내용과 이행 과정에 합의가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장래에 평화협정에 이루어 지고 북미간에 국교가 정상화 된다면 인류의 역사에 남을 대사건 이다.

사실 센토사 성명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양국간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정착하기 위하여 양국은 전쟁행위를 극복하고 후속 협상을 통하여 대화를 지속하는 가운데,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북한의 비핵화가 아닌)에 대한 노력을 약속하며 한국전쟁의 포로와 유해를 즉각 송환한다는 합의를 이룬 것이다.

이에 필자는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포괄적 합의와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체제와 양국의 정상화를 위하여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미국이 승인하고 이를 신속하게 이행한다는 약속을 만천하에 공포한 것으로 해석한다.

북한은 정상회담 전에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풍계리 핵실험장을 완전 폭파하였으며, 회담 이후 신속히 전쟁실종자 유해를 송환하였으며 미사일 발사장치대의 순차적 해체를 진행하는 등 회담의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개의 쌍비적 주제가 갖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핵무장은 어떤 경우에서도 상대방에게 먼저 사용할 수 없는 자기방어적 성격을 지닌다. 북미간에 핵무기의 용량과 군사력의 규모는 비교가 의미가 없을 만큼 큰 격차의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행위이며 북한 지도부가 누구보다도 이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북한의 핵무장은 군사적으로는 순수한 자위적 방어 무기체계(MAD, Massive Assured Destruction)이며 정치외교적으로는 강력한 협상의 자산일 뿐이다.

이에 반하여 미국이 종잇장으로 약속하는 평화협정은 언제라도 묵살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매우 취약하고 위험한 함정적 성격을 지닌다. 더구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확실하게 지적하였듯이 소연방 붕괴 이후 미국은 국제사회의 약속을 단 한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통독과정에서 약속한 나토체제의 동결, 리비아와 이라크의 불법적 침공, 파리 기후협약의 탈퇴, 이란 핵개발 방지를 위한 JCPOA의 파기, WTO 무역체계의 일방적 묵살 등 근년에 미국이 보인 패악은 끝이 없는 지경이다. 더구나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과 미국 주류사회조차 동의하지 않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향후 미국 정치의 향배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 위에 북한이 자신들의 안위와 주권을 위하여 미국행정부에 확실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과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요구하며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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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히 볼턴을 포함한 네오콘들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묵살하고 북한에 대해 길들이기에 들어갔고, 북을 중국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하는 듯 하다.

이러한 북한의 요구에 대하여 미국측은 주류언론과 네오콘 등을 동원하여 온갖 여론을 조작하며 북한에게 일방적 이행을 강요하고 협박을 가하고 있는 형세이다. 현재 국면에서 우리는 특별히 현재 미국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으로 있는 ‘존 볼턴’을 예의 주목해야 한다.

2002년 국무부 차관보였던 켈리가 평양 방문시, 조작이 의심스러운 여러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며 당시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항의에 대하여, 북한 조선인민 공화국은 국가의 자위를 위해서라면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entitled to do so)고 반발한 사실이 있다. 물론 현재에도 북한은 당시까지 농축한 사실이 없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당시 국무부 정무차관보였던 ‘볼턴’이 리비아에 적용했던 CVID를 들먹이며 북한 핵에 대한 원칙으로 내세웠고, 이에 반발하여 북한은 NPT를 탈퇴하고 판도라 상자를 열듯이 핵개발에 진입하고 만다. 한국전쟁 이후 자존심 하나로 버터 온 북한 당국으로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악연은 계속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2006 년, 북한은 대치적 상황의 변화를 위하여 미국에 평화협상과 양국간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외교적 수단으로 첫 번째 핵실험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북한이 희망하는 대화와 외교로 대응하기는커녕, 자신의 안마당 격인 유엔 안보리를 통하여 외교적 경제적 제제조치인 1718호를 결의한다. 이때 상황을 주도한 인물 역시 당시 미국의 유엔 대사였던 ‘볼턴’이다. 불행한 유년시절 과정에서 형성된 심리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볼턴’은 북한에 대해 확고하고 불변하는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 ‘철저하게 의심하고 끝까지 파헤쳐라’

북미 정상이 센토사에서 합의한 내용과 무관하게, 유엔의 안보리 결의 2397호를 내세워 ‘볼턴’은 그의 신조에 따라 북한을 철저하게 압박하여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는 한편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부단히 시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미정상 회담 이후 유엔 제재의 내용을 점차적으로 완화하고 종국에는 해지하여 북한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자는 국제사회의 일반적 여론과 이를 반영하는 중러의 제재 완화 제안을 철저히 묵살하고, 미국측이 사소한 문제를 확대하고 없는 사실마저 조작해 가면서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강요하는 배경의 핵심 인사에는 ‘볼턴’과 그의 성실한 충복인 헤일리 현 유엔대사가 버티고 있다. 다른백년은 8월 1일자에, 글로벌 리서치 유엔 특파원이 기고한 ’싱가포르 비핵화 합의를 거스르는 폼페이오-헤일리 라인’ 라는 칼럼을 빌어 이를 고발한 바 있다.

북미간 생산적 대화의 진행이 어려움에 봉착된 현재, ‘볼턴’을 계속 안보보좌관으로 끌어안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과 판단이 무엇이지 확실하지 않다. 장사꾼적인 감각과 기질로 벌리는 양동작전 수준의 전술인지, 11월에 있을 중간 선거의 승부수로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연출의 과정인지, 위에 언급하였듯이 북한을 굴복시키고 중국을 봉쇄하려는 전략적 포석인지, 자신이 결국 미국 내 보수집단에게 완전히 포위를 당한 수준인지, 갸름하고 미리 예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 있다. 9월 북한 정권수립 70주년과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사이에 종전선언 또는 이에 준하는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북미간에는 다시 험악한 대결과 전쟁 위협을 되풀이 하는 상황으로 돌아갈 위험이 크다.

조만간, 문재인 정부는 센토사 북미 정상간 합의의 단계적 이행과 북한의 굴복을 강요하는 안보리 제재 사이에서 새롭게 상황을 주도하는 돌파구를 모색하여야 한다. 그것이 판문점 선언의 정신이자 이행이다.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자면, 배후(背後)인 미국의 패권놀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자 통로인 유엔안보리를 무력화하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평화 위원회를 유엔 내에 구상하고 제안할 시점이다. 현재의 미국은 예전처럼 세계질서를 지켜주던 미국이 아니다.

시민들의 의견

2016년 그 날 (75) 몇 차례 군수와의 협상시도가 실패했다. 군수가 계속 회피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군수에 대한 압박의 수준을 높였다. 12:30 군수와 친분이 있다는 제3부지를 찬성한 사람을 만나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15:00 이강태 신부와 만나 협상내용을 협의했다. 21:30 군수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날 투쟁위원회 측에서 이강태 신부, 김성혜 교무, 김충환 위원장, 이수인 전 기획팀장, 이재동 부위원장이 참석했고, 군수 측에서는 김항곤 군수, 김세환 부군수, 권도기 기획감사실장, 최종관 총무과장, 이재복 노인회장, 조익현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성주경찰서 김강현 정보과장이 배석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졌다. 317일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성주 평화나비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창환의 시, “대한민국 성주사람 오추옥”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영영 썩지 않을, 서러운 이름 하나 넙죽 받아 안고 저물어갔다. 아! 징그러운 이 땅. 14:00 백남기 농민, 돌아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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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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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앞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한미연합연습과 북 핵실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월, 2017/09/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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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전문 그룹 민주시민들을 위한 모임에 일제를 찬양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김정은을 자신의 동료라며 우기며 인신공격을 만행하는 쓰레기들의 집합소입니다. 군복압는 불법 어린 젖먹이, 과대망상 대인관계 문제자, 인터넷상에서 인신공격하다가 경찰에 입건된 놈들까지 별종들이 모인곳입니다. 다름아닌 제가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 그룹이 우리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그룹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바로 가입해서 공격합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적폐를 청산합시다!
월, 2017/09/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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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사드배치 반대론자를 중심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에 의구심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25일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드특위는 사실상 사드배치 반대입장을 가진 의원들의 모임
월, 2017/09/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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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 성주촛불 440일 with CameraFi Live
월, 2017/09/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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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으로부터 경찰 개혁의 방향에 대해 들었습니다. #국가폭력 #백남기 #쌍용자동차 #강정 #용산참사 #밀양 #가톨릭교회
월, 2017/09/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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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고 무기 팔아먹은 나라. 우리나라에 주둔하여 전시작전권도 가져가고 안돌려주는 나라. 기업 투자하라고 무기 사라고 사드 배치하라고 명령하는 나라. 식민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좋다는 호갱님들의 나라 우리나라. ≪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 미국-1 ≫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호전적(好戰的)인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하는 나라도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해 왔다. 첫째, 미국은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2016년 현재까지 240년 가운데 무려 219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는 8.8%인 21년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전 세계 150개 이상의 지역에서 약 250개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가운데 200개 이상의 전쟁이 미국에 의해서 일어났다. 참고로 20세기에만 약 1억9000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셋째, 미국은 2016년 세계 각지에 약 1000곳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일본에 5만2000명, 한국에 2만5000명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8만 명 이상, 독일에 3만7000명, 이탈리아에 1만2000명 등 유럽에 6만 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 멕시코 : 원주민 학살의 역사 > 멕시코와의 전쟁을 전후로 미국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백만 명 이상 죽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개척'일지라도 원주민들에겐 참담하고 끔찍한 학살이었다. 역사는 대개 승자가 쓰기 마련이며 패자의 기록보다는 승자의 기록이 퍼지고 오래 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미국의 '서부 개척'이라는 승자의 용어를 쓰려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이라는 승자의 용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며 '한반도 침략'이라는 패자의 입장을 주장하려면, 미국의 잔인함을 비판하며 '원주민 학살'이라는 패자의 처지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 스페인 : 선민의식과 조선에 대한 배신 >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1895년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쿠바에 투자한 미국인들의 보호를 명목으로 1898년 쿠바에 해군 함정을 보냈다. 곧 이 함정이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되자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겼다. 전리품으로 거의 모든 스페인 식민지를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지도자들이 내세운 게 선민의식이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인종이 기독교 문화와 그를 기반으로 발전된 서양 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미개한 유색인종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도리요, 의무라고까지 주장했다. 참고로, 1898년 쿠바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함정의 폭발은 무려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스페인군의 기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해외로 확장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1905년 태프트-가쓰라 비밀 협정을 맺었다. 태프트 미군 장관이 식민지 필리핀 시찰에 앞서 일본의 가쓰라 총리를 만났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양해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맺자, 서양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1882년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던 미국은 가장 먼저 조선을 떠났다. < 일본 : 고립주의와 중립주의에서 국제주의로 > 1935년 히틀러의 독일은 군비 증강에 착수하고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한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동원령을 내리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중립법을 제정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교전국에 대한 융자와 전쟁 물자의 판매까지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1940년 곤경에 처한 영국이 협력을 요청하자 미국은 중립법을 피하고 무기 대여법을 통해 영국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미국도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며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1945년 7월 인류 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8월 일본에 터뜨림으로써 전쟁을 끝냈다. 핵무기에 따른 조선인들의 피해도 매우 크고 끔찍했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 약 7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4만 명이 폭사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국제주의로 바뀌었다. 유럽 열강들이 두 차례 대규모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하며 쇠퇴하는 터에, 세계 제1의 국가로 솟아오른 미국이 소극적 고립, 중립주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 소련 :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와 저지 >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1이 되었는데 곧 미국에 맞서는 나라가 나타났다. 자본주의 멸망을 추구하며 세계 제2위로 오른 사회주의 소련이었다. 미국은 한반도가 그리스나 터키보다 전략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여겨, 1947년 초부터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며 물러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1947년 9월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10월 한반도 문제를 미국 외교의 뒷마당이랄 수 있는 유엔에 떠넘겼다.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국가 이익'이다.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련과 손잡고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뒤엔 연합국이던 소련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까지 우방으로 만들었다. 1947년부터 안으로는 국가안보위원회 (NSC), 중앙정보국 (CIA), 그리고 합동참모본부 등을 만들고 밖으로는 미주기구 (OAS),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등의 창설을 주도하며 소련과의 냉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 한반도 : 60여 년 지나도 끝나지 않는 전쟁 >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트루먼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했다. 그리고 남한이나 대만이 공산화하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이 합법적이고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란 성명을 발표하고, 긴급 상황이라며 의회의 동의 없이 병력을 보냈다.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1950년 9월 인천에 상륙해 서울을 되찾고 북쪽으로 진격했지만 10월 중국군이 참전함으로써 1951년 1월 후퇴했다. 1년간의 격전 끝에 1951년 7월부터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2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1953년 7월 휴전‧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그로부터 63년이 흐른 2016년 8월까지 전쟁을 쉬거나(휴전) 멈추고 있는(정전) 상태에서 완전히 끝내거나(종전)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호전적'인 북한은 줄기차게 종전-평화 협정을 요구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과 남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베트남 : 제2의 한국 전쟁 >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대한 베트남의 독립 전쟁인 제1차 베트남 전쟁은 1946년 시작되어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끝났다.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하되 2년 안에 선거를 통해 통일 국가가 되도록 한다는 내용의 제네바 협정이 맺어졌다.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남베트남에 경제 및 군사 지원을 시작했다. 선거가 실시되면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추구해온 호치민의 북베트남이 압도적으로 이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 개입을 확대하면서 북베트남 통킹만에 함정을 보내 정찰 활동을 펼쳤다. 미국 함정이 공격당하는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를 빌미로 1965년부터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벌였다. 제2차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은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971년 조작으로 밝혀졌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한 빌미로 삼았던 미국 함정의 폭발이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 것과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격렬한 반대와 저항을 받았던 범죄행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굴욕적인 전쟁이기도 했다. 이토록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나라가 남한이었다. 처음엔 미국에 간청하다시피 해서 파병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미국의 신임과 지지를 받으면서, 미국의 지원에 의한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 이라크 : 일방주의 그리고 선제공격 > 미국은 2003년 유엔의 반대와 많은 나라들의 비판을 받으며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라크를 침공했다. 네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미국처럼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많이 배치해 놓고 있는 나라는 없다. 둘째, 이라크가 9.11테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9.11 이전까지 미국만큼 테러를 많이 지원했던 나라는 없다. 셋째, 이라크가 독재를 실시하고 인권 탄압을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독재와 인권 탄압에서 이라크 못지않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에는 무기도 팔고 경제 지원도 했다. 그리고 미국처럼 독재 정권을 많이 지원한 나라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독재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수십 개의 민주화 운동이 미국의 도움에 의해 반공의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넷째,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유엔 역사상 미국만큼 유엔 결의안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없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엔을 무시하고 단독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대외 정책에 공개적으로 밝힌 나라 역시 미국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를 점령해 군사 정권을 세우려는 진짜 속셈은 반미 정권을 제거하고 석유 자원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있었다. 그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남한은 한미 동맹을 앞세우며 베트남전에 이어 또다시 병력을 보냈다. < 새로운 냉전의 시작 :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며 봉쇄해왔다. '냉전'의 정의와 개념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겠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말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10%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해왔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1996년 일본과 안보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1997년엔 일본과의 방위 협력 지침을 개정했다. 2015년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만들고,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을 끌어들여 이른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국 견제용이다. 2016년 남한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것 역시 중국 때문이다. 미국이 60여 년이 넘도록 한국 전쟁을 끝내지 않고 북한과의 평화 협정을 거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종전 협정이나 평화 협정을 맺으면 주한 미군을 계속 유지할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사의 내용을 일부 생략하여 간추린 것입니다.
화, 2017/09/2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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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 발간] 제주도 사려니숲길을 찾은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로 꼽히는 제주지역이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지역경
월, 2017/09/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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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월, 2017/09/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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